<?xml version="1.0"?>
<rss version="2.0">
   <channel>
      <title>조선시대 청백리 조사하기(성장노트과제1)의 복제물 by 배덕향</title>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link>
      <description>청백리(淸白吏)란 재물에 욕심 없이 곧고 깨끗한 관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청백(淸白)’은 청렴결백(淸廉潔白)에서 나온 것으로 동양의 전통에서 가장 이상적인 관료의 덕목이다. </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lastBuildDate>2025-12-05 14:33:58 UTC</lastBuildDate>
      <webMaster>hello@padlet.com</webMaster>
      <image>
         <url></url>
      </image>
      <item>
         <title>10207 양신혁 </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72</link>
         <description><![CDATA[<div><br>조사수&nbsp; [ 趙士秀 ]<br><br>이칭별칭</div><div>&nbsp;| <strong>자</strong> 계임(季任), <strong>호</strong> 송강(松岡), <strong>시호</strong> 문정(文貞)<br><br></div><div>유형</div><div>&nbsp;| 인물<br><br></div><div>시대</div><div>&nbsp;| 조선<br><br></div><div>출생 - 사망</div><div>&nbsp;| 1502년(연산군 8) ~ 1558년(명종 13)<br><br></div><div>성격</div><div>&nbsp;| 문신<br><br></div><div>성별</div><div>&nbsp;| 남<br><br></div><div>본관</div><div>&nbsp;| 양주(楊州)<br><br></div><div>대표관직(경력)</div><div>&nbsp;| 좌참찬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590">조사수</a> [趙士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br><br>생애 및 활동사항<br><br></div><div>1531년(중종 26)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정언·교리·보덕 등을 역임하고, 1539년 경차관(敬差官)으로 파견되어 성주사고의 화재원인을 조사하기도 하였다.<br><br></div><div>그 뒤 제주목사·이조참판 등을 거쳐, 대사성·대사간·대사헌·경상도관찰사 등의 직책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다시 이조·호조·형조·공조의 판서를 거쳐, 지중추부사·좌참찬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br><br></div><div><strong><br></strong>&nbsp;<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590">조사수</a> [趙士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72</guid>
      </item>
      <item>
         <title>조선시대 청백리 조사하기(생애,업적,저서 및 일화조사하기)*일화: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아니한 이야기*</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74</link>
         <description><![CDATA[<div>1. <mark>학번과 이름 쓰기</mark><br>2. 조사를 희망하는 인물 아래<mark> + 를 클릭하여 작성</mark>하기<br>3. 조사한 인물의 이름은 <mark>한자로</mark> 조사해서 쓰기<br>4. <mark>생애조사</mark>하여 작성하기<br>5. 관련 <mark>일화조사</mark>하여 작성하기<br>6. 관련 영상 링크 삽입도 가능함&nbsp;<br>&nbsp; &nbsp;(단 내용은 요약정리하기)<br>★같은 인물 조사는 가능 일화는 다른 내용이어야 함★<br>반별로 같은 내용이 중복되는 경우 먼저 올린 친구의 과제만 인정<br><br>예시를 참고해서 작성해주세요</div><blockquote><mark>수업시간 중 패들렛에 올린 학생만 인쇄해서 성장노트작성시 제공(패들렛에 올리지 않은 학생은 감점받을 수 있음)</mark></blockquote><div>&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563887744/56e9413d5e0d294688d5a8fa14560c48/image.png"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74</guid>
      </item>
      <item>
         <title>10226배덕향(예시)</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76</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nbsp;황희(黃喜, 1363~1452)  </strong><strong><em><mark>-&gt; 한자로 작성</mark></em></strong></div><div>공민왕 12년(1363년)에 개성에서 판강릉부사 황군서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네 살 때인 우왕 2년(1376년)에 음직으로 복안궁 녹사가 되었고, 스물한 살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곧이어 진사시에도 급제했다. 그러나 관직을 사양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힘쓰다가, 창왕 원년(1389년)에 성균관 학관으로서 관직 생활을 하였다.   <mark>-&gt;</mark><strong><em><mark>생애기록</mark></em></strong></div><div><strong>https://youtu.be/3-DqMx_NUZI</strong><br>하나 뿐인 관복을 세탁한 저녁, 세종이 황희를 급히 부르자 젖은 옷으로 입궐해 왕이 그의 검소함을 알게 됐다는 일화는 '단벌 정승' 이라는 별명을 남겼습니다.  <strong><em><mark>-&gt;일화작성</mark></em></strong></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youtu.be/3-DqMx_NUZI"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76</guid>
      </item>
      <item>
         <title>10209 이용훈</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78</link>
         <description><![CDATA[<div><br><a href="https://search.naver.com/p/crd/rd?m=1&amp;px=56&amp;py=216&amp;sx=56&amp;sy=216&amp;p=heVgDdp0JywssMmmU4RssssstL0-482491&amp;q=%EB%A7%B9%EC%82%AC%EC%84%B1&amp;ie=utf8&amp;rev=1&amp;ssc=tab.nx.all&amp;f=nexearch&amp;w=nexearch&amp;s=1TYE2aYDjmYTlG%2FSc2xMIg%3D%3D&amp;time=1629164438560&amp;a=kdc_gng.title&amp;r=1&amp;i=8818579c_00000000008b0167ab36e6ef&amp;u=https%3A%2F%2Fterms.naver.com%2Fentry.naver%3FdocId%3D5702816%26cid%3D47317%26categoryId%3D47317&amp;cr=1"><strong>맹사성</strong></a>孟思誠<br><br>출생 - 사망</div><div>&nbsp;| 1360 ~ 1438년</div><div>국적</div><div>&nbsp;| 대한민국</div><div>활동분야</div><div>&nbsp;| 정치</div><div>주요 작품</div><div>&nbsp;| &lt;<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5889&amp;cid=41708&amp;categoryId=44531">강호사시가</a>&gt;</div><div>주요 저서</div><div>&nbsp;| &lt;<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23014&amp;cid=47322&amp;categoryId=47322">팔도지리지</a>&gt;</div><div><br>맹사성은 1360년에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났어. 그의 할아버지 맹유는 고려의 고위 관료로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610365&amp;cid=47306&amp;categoryId=47306">최영</a>장군과는 가까운 사이였지. 하루는 최영 장군이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집 앞에 있는 나무를 타고 용이 올라가는 꿈을 꿨어. 잠에서 깬 최영이 나무를 살펴보았는데 그 나무에는 맹사성이 올라가 있었고, 맹사성과 이야기를 나눈 최영은 그의 남다름을 느낀 후 자신의 손녀와 혼례시켰다고 해.<br><br><strong>[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702816">맹사성</a> (만화로 보는 교과서 인물, 류경욱, 김덕영, 이서윤)</div><div><br><strong>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여 군수 자리에 오른 맹사성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고을을 돌아보던 중 존경받는 고승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절을 찾아갔다. 맹사성은 고승에게 “스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최고로 삼아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시오?”라고 물었다. 고승은 가만 웃고 있다가 “그건 간단합니다.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많이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맹사성은 화를 내며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내게 해줄 말이 고작 그게 전부요?”라고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고승이 차나 한잔하고 가라며 붙잡았고, 이에 맹사성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strong></div><div><strong><br>[출처] </strong><a href="https://blog.naver.com/h77171/222034863984"><strong>맹사성의 일화가 남긴 교훈</strong></a><strong>|작성자 </strong><a href="https://blog.naver.com/h77171"><strong>니르바나<br></strong></a><br></div><div><br><br></div><div><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78</guid>
      </item>
      <item>
         <title>10201 고도현</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81</link>
         <description><![CDATA[<div>이원익{李元翼,1547년 ~ 1634년}<strong><em><mark>-&gt; 한자로 작성</mark></em></strong><br>15세에 동학(東學: 4학 중의 하나)에 들어가 수학해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하고, 1569년(선조 2)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이듬해 승문원권지부정자로 활동하였다. 사람과 번잡하게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공적인 일이 아니면 외출도 잘 하지 않는 성품이었다 한다.<mark>-&gt;</mark><strong><em><mark>생애기록<br>https://youtu.be/blLxcVZYknE<br></mark></em></strong>성품이 소박하고 단조로워 과장이나 과시할 줄을 모르고, 소임에 충실하고 정의감이 투철하였다. 다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으나 집은 두어 칸 짜리 오막살이 초가였으며, 퇴관 후에는 조석거리조차 없을 정도로 청빈했다 한다. 인조로부터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br>+키가 작아 키작은 재상으로 널리 불렸다.<strong><em><mark>-&gt;일화작성</mark></em></strong><br><br></div><div><br></div><div><br><br></div><div><strong><br></strong><br><br></div><div><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youtu.be/blLxcVZYknE"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81</guid>
      </item>
      <item>
         <title>10210 이푸름</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83</link>
         <description><![CDATA[<div>이원익(李元翼, 1547~1634)<br>이원익은 1547년(명종 2) 10월 24일 서울 유동 천달방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원익은 17세 때 생원시에 합격해(1564년, 명종 19) 성균관에서 수학했고 5년 뒤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1569년, 선조 2). 이듬해 승문원 부정자(종9품)로 관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35세(1582년)까지 호조·예조·형조좌랑, 사간원 정언(이상 정6품), 예조정랑, 홍문관 응교(이상 정5품) 같은 주요한 당하관직을 거쳤다.</div><div>https://www.youtube.com/watch?v=RBWuwp4ZdKo<br>이원익은 영의정 취임 초기 대동법을 건의하여 전국적으로 실행하도록 하였으며 불합리한 세금제도를 고치게 하고 군사제도를 개혁하려고 했다.<strong><br></strong><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www.youtube.com/watch?v=RBWuwp4ZdKo"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83</guid>
      </item>
      <item>
         <title>10213전호영</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85</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85</guid>
      </item>
      <item>
         <title>10212 장진우</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87</link>
         <description><![CDATA[<div><br>유성룡(柳成龍)<br><br>조선 시대의 문신. 25세에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라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는 우의정 자리에 오른다. 임진왜란<strong><sup>1)</sup></strong>이 일어났을 때 총책임관을 맡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인 &lt;징비록&gt;을 썼다.</div><div>출생 - 사망 | 1542 ~ 1607년<br>국적 | 대한민국<br>직업 | 정치가, 학자<br>주요 저서 | &lt;<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50620&amp;cid=58584&amp;categoryId=58624">징비록</a>&gt;, &lt;증손전수방략&gt;<br><br>일화+4세에 글을 깨우쳤고, 한 번 본 것은 잊지 않을 만큼 똑똑해서 조선의 천재라고 불림<br><br>https://youtu.be/xsfXC2tzeBo 생애 기록<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youtu.be/xsfXC2tzeBo"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87</guid>
      </item>
      <item>
         <title>10202고서준</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94</link>
         <description><![CDATA[<div><a href="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9C%A0%EC%84%B1%EB%A3%A1">유성룡</a>(柳成龍, 1542~1607) <br>유성룡은 1542년(중종 37) 10월에 의성현 사촌 마을의 외가에서 아버지 <a href="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9C%A0%EC%A4%91%EC%98%81">유중영</a>(柳仲郢, 1515~1573))과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21세의 유성룡은 형 운룡과 함께 퇴계 이황의 문하로 들어가 학업에 매진했다. 형 운룡은 당시의 선비들이 학문이 채 영글기도 전에 과거시험을 보고 벼슬길에 나가는 세태를 한탄하고, 과거시험보다는 학문에만 전념하였다.형 운룡에 이어 유성룡을 본 스승 퇴계는 그가 하늘이 내린 인재이며 장차 큰 학자가 될 것임을 직감하였다고 한다1576년 유성룡은 사간원헌납이란 직책으로 다시 벼슬길에 올랐다.유성룡은 50세에 이르러 좌의정이 되었고 이조판서를 겸임하였다. 그러나 당론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성룡은 더 이상 벼슬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여러 차례 사직상소를 올렸으나 왕은 끝내 윤허하지 않았다. 정철의 처벌 문제를 두고 동인들은 내분에 휩싸여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게 되었는데, 이때 유성룡은 온건파의 우두머리였다. &lt;생애기록<br><br><br></div><div>재상 유성룡[柳成龍]의 계서야담 [溪西野譚]</div><div>조선 선조때의 재상(1542~1607) 의성 출생으로 자는 이견(而見) 호는 서애(西厓) 이다&nbsp;</div><div>이황의 문인인 그는1566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후 영의정꺼지 지냈다</div><div>임진왜란때 도체찰사(都體察使) 로 군무를 총괄하며 이순신 권율등 명장을 등용하였다</div><div>도학 문장 서예로 이름을 떨친 문신겸 학자인 동시 바둑의 애호가 이기도 했다</div><div>&nbsp;<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조선시대 명(名) 재상유성룡에 얽힌 전설같은 이야기..</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유성룡(柳成龍)에게는 바보 숙부(痴叔?치숙)한사람이 있었다.</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그는 콩과 보리를 가려 볼줄 모를정도로 바보였다.</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그런데 어느날 그 숙부가柳成龍에게 바둑을 한 판 두자고 했다.</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柳成龍은 실제로 당대 조선의 국수(國手)라 할만한 바둑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어이없는 말이었지만 아버지 항렬되는 사람의 말이라 거절하지 못하고</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두었는데 막상 바둑이 시작되자 유성룡은 바보 숙부에게 초반부터 몰리기 시작하여</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한쪽 귀를 겨우 살렸을 뿐 나머지는 몰살 당하는 참패를 했다.바보 숙부는 대승을 거둔 뒤 껄껄 웃으며"그래도 재주가 대단하네.</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조선 팔도가 다 짓밟히지는 않으니 다시 일으킬 수 있겠구나." 라고 말했다.</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이에柳成龍은 숙부가 거짓 바보 행세를 해 왔을 뿐, 異人(이인)이라는 것을 알고 의관을</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정제하고 절을 올리고 무엇이든지 가르치면 그 말에 따르겠다고 했다.</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그러자 숙부는 아무날 한 중이 찾아와 하룻밤 자고 가자고 할 것인데,</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재우지 말고 자기한테로 보내라고 했다.</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실제 그날, 한 중이 와 재워주기를 청하자柳成龍은 그를 숙부에게 보냈는데</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숙부는 중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네 본색을 말하라고 해</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그가豊臣秀吉(토요토미 히데요시) 이 조선을 치러 나오기 전에柳成龍을</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죽이려고 보낸 자객이라는 자복을 받았다.</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그리하여柳成龍은 죽음을 모면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영의정의 자리에서 사실상 국난을 극복하는 주역이 되었다는 것이다.</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그러니까 사람들이 모두 바보라고 부르던 그, 異人(이인)이</a></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위기의 조선을 구했다는 것이다.</a></div><div><br></div><div><strong><br>[출처]</strong> <a href="https://blog.naver.com/duackd_/221505112290">재상 유성룡(柳成龍)일화</a>|<strong>작성자</strong> <a href="https://blog.naver.com/duackd_">duackd_<br></a><br></div><div><br><br></div><div><a href="http://cafe.daum.net/dusktrain"><br></a><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94</guid>
      </item>
      <item>
         <title>10211 장윤서</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96</link>
         <description><![CDATA[<div>이덕형(李德馨, 1561년 ~ 1613년)&nbsp;<br>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광주이며, 이극균의 현손이다.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漢陰)·쌍송(雙松)·포옹산인(抱雍散人)이다. 이항복과 함께 '오성과 한음'으로 알려졌다. 선조와 광해군 때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1608년(광해군 즉위) 정운원종공신 1등(定運功臣一等)에 책록되고,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1등(衛聖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br>생애기록-https://www.youtube.com/watch?v=TUsFnYZsPzs<br>일화-오성집의 감나무 가지가 권율의 집으로 휘어 들어갔는데 이가지에 열린 감을 권율집에서 차지하자 권율이 있는방문에 주먹을 찔러 넣고 이주먹이 누구 주먹이여 라고 맗하자 감을 가로챈일을 추궁하였다<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www.youtube.com/watch?v=TUsFnYZsPzs"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696</guid>
      </item>
      <item>
         <title>10203 김귀열</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702</link>
         <description><![CDATA[<div><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36647&amp;cid=46649&amp;categoryId=46649"><strong>이황</strong></a><strong>(</strong>李滉,1501년(연산군 7) ~ 1570년(선조 3)<br><br>생애조사-경상도 예안현(禮安縣) 온계리(溫溪里: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좌찬성 이식(李埴)의 7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7개월에 아버지의 상(喪)을 당했으나, 현부인이었던 생모 박씨의 훈도 밑에서 총명한 자질을 키워 갔다.<br><br></div><div>12세에 작은아버지 이우(李堣)로부터 『논어』를 배웠고, 14세경부터 혼자 독서하기를 좋아해, 특히 도잠(陶潛)의 시를 사랑하고 그 사람됨을 흠모하였다. 18세에 지은 「야당(野塘)」이라는 시는 이황의 가장 대표적인 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20세를 전후하여 『주역』 공부에 몰두한 탓에 건강을 해쳐서 그 뒤부터 다병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한다.<br><br></div><div><strong><br>일화-</strong>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36647">이황</a> [李滉]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br>이황이 27살이 되던 해에 첫번째 부인과 사별한 뒤 3년 째가 되던 해, 마침 예안에 귀양가 있던 권질(權礩)이 그를 불렀다. 권질에게는 집안의 참극<a href="https://namu.wiki/w/%EC%9D%B4%ED%99%A9#fn-11">[11]</a>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여식이 있었는데, 권질은 이황에게 "자네가 아니면 내 딸을 맡아줄 사람이 없네"라며 간곡하게 부탁 하였다. 결국 이황은 권질의 여식을 아내로 받아들인다.</div><div>&nbsp;</div><div><a href="https://namu.wiki/w/%EC%9C%A0%ED%99%8D%EC%A4%80">유홍준</a>의《<a href="https://namu.wiki/w/%EB%82%98%EC%9D%98%20%EB%AC%B8%ED%99%94%EC%9C%A0%EC%82%B0%20%EB%8B%B5%EC%82%AC%EA%B8%B0">나의 문화유산 답사기</a>》에 보면 권씨부인을 요즘말로는 '사이코'라고 표현하였다. 흠좀무...후술된 행동을 보면 아마 일족의 몰살로 인한 충격에 의하여 유아퇴행을 한 것 같다. 그래도 이황의 성격이 무던해서 서로 잘 지냈던 모양이다. 덧붙여 첫째부인이 많은 유산을 남겨놓고 죽었기 때문에, 이황은 그 덕을 보았으며, 첫째부인의 어머니, 즉 장모를 장모가 죽을 때 까지 보살폈다고 한다.</div><div>&nbsp;</div><div>하지만 정신병을 앓던 권씨는 이황을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하였는데, 그녀는 제사가 시작되기 전에 제사상에 있는 배<a href="https://namu.wiki/w/%EC%9D%B4%ED%99%A9#fn-12">[12]</a>를 남몰래 집어 치마 속에 숨겼고, 결국 이일을 깨달은 이황의 형수가 그녀를 질책하자 이황은 "제사를 지내기 전에 음식을 먹는 것은 예법에 어긋난 일입니다. 하지만 조상님께서도 후손을 귀엽게 여기실 터이니 손자며느리의 행동을 노엽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라고 변설하여 아내를 감싸주었다.</div><div>&nbsp;</div><div>나중에 제사를 마친 뒤 이황이 아내에게 왜 그랬냐고 묻자, 권씨부인은 배가 몹시 먹고 싶어서 그랬다고 답하였다. 이에 이황은 아내를 위해 배를 가져다가 손수 깎아 주었다고 한다.</div><div><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702</guid>
      </item>
      <item>
         <title>10205 박사연</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704</link>
         <description><![CDATA[<div>생애 - 경상도 예안현 온계리에서 좌찬성 이식의 7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br>1534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br>1539년 홍문관수찬이 됬다가 임금으로부터 사가독서의 은택을 받았다.<br>1543년 성균관사성으로 승진하자 성묘를 핑계삼아 고향으로 되돌아가고 모든 관직을 사퇴했다.<br><br>일화 - 어렸을 때 형인 이해가 놀다가 손을 다쳐 상처에서 피가 흐르자, 이황은 형의 손을 잡고 울기 시작했다. 이황의 어머니가 이를 기이하게 여겨 "정작 손을 다친 형은 울지 않는데 어찌하여 네가 우느냐?"하고 물어보자, "형은 저보다 나이가 많아서 울지는 아니하나, 피가 이렇게 흐르는데 어찌 아프지 아니하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704</guid>
      </item>
      <item>
         <title>10214 정연호</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708</link>
         <description><![CDATA[<div>&nbsp;<strong>백인걸</strong>(白仁傑,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497%EB%85%84">1497년</a> -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579%EB%85%84">1579년</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9%EC%9B%94_29%EC%9D%BC">9월 29일</a>)<br><strong>생애조사:</strong>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김안국(金安國)에게서도 학문을 배웠다. 송인수(宋麟壽)·유희춘(柳希春)·이이(李珥)·성혼(成渾) 등 당대 사림계 인물들과 널리 교유하였다. 김식(金湜)이 대사성이 되어 새로운 학풍이 일어나게 되자 구도(求道)의 뜻을 세워 학문에 전심하였다. 특히 조광조를 존경해 그의 집 옆에 집을 짓고 사사하였다.<br>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비분강개해 금강산에 들어갔다가 돌아와 1531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537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br><strong>일화:</strong> 백인걸은 성혼 · 이이와 만나면 학문을 논하였는데, 늙어서도 그만두지 않았다. 백인걸은 성혼 · 이이를 크게 쓸 만한 인물이라고 선조에게 천거하였다.&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708</guid>
      </item>
      <item>
         <title>10208윤기로</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710</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박수량</strong>(朴守良,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491%EB%85%84">1491년</a> ~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554%EB%85%84">1554년</a>)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조선</a> 중기의 문신이자 정치가<br><br>생애 및 활동 상황:1513년(중종 8) 진사에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광주향교(廣州鄕校)의 훈도로 취임했다가, 다음 해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로 옮겼다. 이어 전적(典籍)·예조좌랑·정언(正言)·충청도도사 등을 거쳐, 1522년에 지평(持平)이 되었다.</div><div>1525년 양친을 봉양하기 위해서 고부군수로 나갔다. 1528년에 부친상을 치르고 이어 헌납(獻納)·장령(掌令),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사도시부정(司䆃寺副正) 등을 역임하였다. 1531년 어머니 봉양을 위해 사성(司成)을 사퇴하고 보성군수로 나갔다가, 이듬해 사예(司藝)가 되었다. 이어 사성·내섬시정(內贍寺正)·군기시정(軍器寺正) 등을 역임하였다.</div><div>1534년 함경도 경차관(敬差官)이 되어 지방 관서를 순시하던 중, 안원보(安原堡) 권관(權管) 전주남(全周男)이 야인들에게 잡혀갔다가 임의로 소와 말을 주고 풀려난 일을 조정에 보고하여 벌을 받게 하였다. 1536년 승문원판교 겸 춘추관편수관을 역임하고, 이어 통정대부로 승진해 병조참지·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수찬관(修撰官)을 지내고 좌승지로 옮겼다. 이어 가선대부로 승진해 호조참판에 임명되었다.</div><div>같은 해 나주목사로 기용되어 찰리사(察理使)를 겸했고, 전위사(餞慰使)가 되어 명나라 사신을 전송하였다. 1537년 함경도관찰사가 되었다가 이어 한성부판윤·동지중추부사·공조참판·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539년 오위도총부부총관·예조참판 등을 지내고 또 어머니 봉양을 위해서 담양부사로 나갔다가 1542년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다.</div><div>그 뒤 여러 차례 벼슬을 사양하다가 1546년(명종 1)에 다시 상호군(上護軍)에 나아가 곧 동지춘추관사가 되어 『중종실록(中宗實錄)』·『인종실록(仁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자헌대부로 승진해 지중추부사·한성부판윤·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div><div>1550년 우참찬에 임명되어 지경연의금춘추관사와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하였다. 이듬해에는 경기도관찰사를 겸임했고 숭록대부로 올랐다. 1552년에 우참찬을 비롯, 호조판서·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1554년에 지중추부사로 있다가 죽었다.</div><div>주세붕(周世鵬)과의 교유가 깊었으며 사람됨이 <em>간중신밀(簡重愼密)</em><em><sup>주 01)</sup></em>하고 예법을 잘 지키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30여 년의 관리 생활에서도 집 한 칸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청렴결백해 청백리에 뽑혔다. 시호는 정혜(貞惠)이다.</div><div><br>[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박수량(朴守良))]&nbsp;<br><br>일화</div><ul><li>일찍이 자제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본래 초야의 출신으로 외람되게 성은을 입어 판서의 반열에까지 올랐으니, 분수에 넘치는 영광이다".<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C%88%98%EB%9F%89#cite_note-2"><sup>[2]</sup></a></li><li>죽음에 이르러 후손들에게 "내가 죽거든 절대 시호를 청하거나, 묘비를 세우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다.</li></ul><div><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710</guid>
      </item>
      <item>
         <title>10215 정우식</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712</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박수량</strong>(朴守良,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491%EB%85%84">1491년</a> ~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554%EB%85%84">1554년</a>)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조선</a> 중기의 문신이자 정치가이다. (朴守良)<br><br>[생애]<br>박수량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491%EB%85%84">1491년</a> (성종 22)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0%84%EB%9D%BC%EB%8F%84">전라도</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C%84%B1%EA%B5%B0">장성현</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A%B3%A1%EB%A6%AC">소곡</a>에서 아버지 박종원과 어머니 이씨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어릴적에 고을 선생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A%B0%9C_(%EC%A1%B0%EC%84%A0_%EC%A4%91%EA%B8%B0%EC%9D%98_%EB%AC%B8%EC%8B%A0)">김개</a> 학사에게 수학하였다. 침착하고 근면하여 일찍이 한 글자도 마음놓고 지나가질 않았다.<br>그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3%BC%EC%84%B8%EB%B6%95">주세붕</a>과도 깊이 교유하였으며, 사람됨이 간이후중 근신조밀하고 예법을 잘 지키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38여년의 관리 생활을 하면서 직책이 경상의 지위에 까지 이르렀으나, 좋은 집한 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청렴 결백하게 공직을 수행하다 한 섬도 못 된 곡식만 남기고 떠났다. 2회에 거쳐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B2%AD%EB%B0%B1%EB%A6%AC">청백리</a>에 녹선되었다.<br><br>[일화]<br>일찍이 자제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본래 초야의 출신으로 외람되게 성은을 입어 판서의 반열에까지 올랐으니, 분수에 넘치는 영광이다"<br>죽음에 이르러 후손들에게 "내가 죽거든 절대 시호를 청하거나, 묘비를 세우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www.youtube.com/watch?v=QzJ3EIka6Dw"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712</guid>
      </item>
      <item>
         <title>10204 김선웅</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715</link>
         <description><![CDATA[<div>시호 :충절공(忠節公)<br>본관 :해평 길씨(海平 吉氏)<br>이름 :재(再)<br>자 :재부(再夫)<br>호 :야은(冶隱), 금오산인(金烏山人)<br><br>1353년(공민왕 2년) 경상도 선산부의 속현인 해평땅 봉계리(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에서 태어났다<br>1세가 되던 해에 냉산 도리사(冷山 桃李寺)에 들어가 글공부를 시작했고 <br>18세에는 상산(商山-지금의 상주)에 사는 사록(司祿, 목이나 도호부의 행정 책임자) <br>박분(朴賁)에게 &lt;논어&gt;와 &lt;맹자&gt;를 배우며 성리심학에 관한 학설을 듣게 된다<br>1374년 국자감에 들어가 생원시에 합격했고 1383년 사마감시에 합격했으며 <br>1386년 문과에 급제했지만 벼슬을 받지 않았고 이 때 이방원과 같은 마을에서 살아서 그와 교류했다고 한다. <br>1387년 드디어 성균학정에 제수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1388년 순유박사와 성균박사, <br>1389년 문하주서에 임명되었다가 1390년 고려의 사정이 안습이었기 때문에 <br>어머니를 봉양한다는 이유로 사직해 낙향했고 여러차례 부름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br>우왕의 죽음을 듣고 상복을 입은채 해장을 먹지 않는 등 <br>3년상을 지내면서 어머니를 정성스럽게 봉양해 반드시 맛있는 음식을 장만했으며 집안에 양식이 자주 떨어져도 늘 염려하는 기색이 없었다.<br><br>이방원이 길재가 산골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말을 듣고 <a href="https://namu.wiki/w/%EC%8C%80">쌀</a>과 <a href="https://namu.wiki/w/%EC%BD%A9">콩</a> 백 섬을 보냈으나 길재는 <a href="https://namu.wiki/w/%EB%82%98%EB%9D%BC">나라</a>를 위해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면서 받지 않았다고 한다. 길재의 명성은 이미 당대에 널리 알려졌으며 그의 절의와 인품에 감복한 군수 이양(李揚)이 율곡동(현재 도량동 밤실마을 일대)에 전원을 주고 좋은 전답으로 바꾸어 주었으나 ‘무릇 물건이 아무리 풍족하다한들 그 종말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증받은 전답을 그 가용에 준하여 남겨 두고 나머지는 다 돌려보냈다고 전해진다.<br>https://namu.wiki/w/%EA%B8%B8%EC%9E%AC</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namu.wiki/w/%EA%B8%B8%EC%9E%AC"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715</guid>
      </item>
      <item>
         <title>10206배성운 </title>
         <author>lg73365205</author>
         <link>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722</link>
         <description><![CDATA[<div>&nbsp;(李浚慶 이준경)<br><br>생애 및 활동<br><br><strong>동고 이준경(1499~1572년)</strong></div><div>​</div><div>본관 광주(廣州). 자 원길(原吉). 호 동고(東皐)·남당(南堂)·양와(養窩)·홍련거사(紅蓮居士). 시호 충정(忠正).&nbsp;</div><div>홍문관 수찬 이수정(李守貞)의 아들로 태어났다</div><div><br></div><div>청렴하고 강직한 정치가였다. <a href="https://namu.wiki/w/%EC%B2%AD%EB%B0%B1%EB%A6%AC">청백리</a>로 추앙받았으며 사후에도 청백리로 선정된다. 부인이 마련한 집에서 평생을 살면서 집에 서까래 하나 늘어나지 않았다. 최후에는 영상까지 지내면서 선조를 옹립하고 권력의 최정상에 섰으면서도 변하지 않은 드문 이력의 소유자. 선조 즉위 얼마 후 칠순이 넘었으니 이제 그만하겠다고 치사를 하자 선조가 궤장을 내리고 은퇴를 허락한다. 그러자 그는 사궤장 연회까지 아주 검소하게 치렀다고.<br><br>연산군 5년(1499년)에 태어나 중종 때 젊은 시절을 보냈고<a href="https://namu.wiki/w/%EC%9D%B4%EC%A4%80%EA%B2%BD#fn-1">[1]</a>, 인종 때와 명종 때를 거쳐 선조 5년까지 관직에 있었다. 선조와 일한 건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선조 묘(廟,사당)에 합사된 배향공신이다. 아들 없는 명종의 뒤를 이어 선조가 왕위에 오르는데 지대한 공이 있으며, 깔끔한 일처리로 선조의 부족한 정통성을 훌륭히 메꿔줬기 때문.<br><br>명종 대까지 치열한 암투를 벌인 훈구파와의 대결에서 결국 사림파의 승리를 이끌어낸 인물로 선비들의 대선배가 된다. 까칠한 독설가였으나 유머도 있었고, 동시에 경륜과 수완을 겸비한 유능한 정치인으로 인식됐다. 광주 이씨는 조선 전기 가장 열력이 화려하고 그 세를 자랑하는 집안이었는데도, 이준경은 청렴하고 담백하기가 이를 데 없어 더욱 존경을 받았다. 소위 집안의 세를 가지고 세도를 하려 들었던 가문들에게 일침이 될 큰 인물이었다<br><br><br>일화(wiht 이황)<br><br>성격 자체는 까칠한 독설가였던 모양. 이황을 '산새'<a href="https://namu.wiki/w/%EC%9D%B4%EC%A4%80%EA%B2%BD#fn-9">[9]</a>에 비유하여 구설에 오른 일도 있었다. 타인에게 굽힘이 없는 성격으로 선인을 좋아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자신을 낮추지는 않았다고 한다. 후술할 일화에도 이런 성격이 잘 드러난다.</div><blockquote><a href="https://namu.wiki/w/%EC%A1%B0%EC%8B%9D(%EC%A1%B0%EC%84%A0)">조식(曺植)</a>이 임금의 부름을 받고 서울에 들어왔을 때 준경은 옛 친구의 입장에서 서신은 보냈으나 끝내 찾아가 보지 않았다. 조식이 귀향하려 하면서 찾아와 고별하고 말하기를,<br>“공은 어찌 정승 자리를 가지고 스스로 높이려 하는가?”<br>하자, 준경이 말하기를,<br>“조정의 체모를 내가 감히 폄하할 수 없어서이다.”<br>하였다. 이황(李滉)이 서울에 들어왔을 때 사대부가 아침 저녁으로 그의 문전을 찾아가니, 이황은 한결같이 모두 예로 접대하였다. 최후에 준경을 찾아가 인사하자 준경이 말하기를,<br>“도성에 들어오신 지 오래되었는데 어찌 이제야 찾아오십니까?”<br>하니, 이황이 사대부들을 응접하느라 그럴 틈이 없었다고 하자, 준경이 언짢아하며 말하기를,<br>“지난 기묘년에도 선비의 풍조가 이러하였으나 그 가운데도 염소 몸에 호랑이 껍질을 뒤집어 쓴 자가 있었으므로, 사화가 이로 인하여 일어났습니다. 조정암(趙靜庵)<a href="https://namu.wiki/w/%EC%9D%B4%EC%A4%80%EA%B2%BD#fn-10">[10]</a> 이외에 그 누구도 나는 인정하지 않습니다.”</blockquote><div><br>일단 이 부분은 이황이 무례를 범한 것이 맞다. 상경할때 조정의 영수를 가장 먼저 찾아보는 것은 조선시대에는 당연한 예의였는데, 자기를 찾아오는 선비들을 먼저 대접하고 정작 영의정인 이준경을 나중에 찾아갔으니 앞뒤가 바뀐 처사였다. 하다못해 이준경이 이끄는 정부가 부패했다거나 불의한 정권이었다면 그나마 변명할 여지가 있겠지만, 이준경은 윤원형이 항상 기세가 등등할때도 그에게 부역한 적이 없는 강직한 대신이니 그런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br><br>이준경이 특유의 그 독설로 이황을 디스한 일도 있었지만 이황과의 사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모양. 이황은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선조에게 인재를 추천해달라는 말을 듣고 기대승과 함께 이준경을 추천하며 "큰 일을 맡길 수 있으니 신임하되 의심하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이황의 제자들이 이준경을 척신들과 같이 행동했다 하여 공격하자 이를 꼬투리 잡아서 윤원형의 잔당들이 그들을 밟아버리려 했으나 오히려 이준경이 그들을 숙청해버리기도 했다<br><br>https://youtu.be/kAo7zbDrN6M<br><br>이준경의 관한 영상 이황과의 일화 생애가 담겨있음</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youtu.be/kAo7zbDrN6M" />
         <pubDate>2021-08-17 02:3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lg73365205/zb6v51nxcq8908lw/wish/1681391722</guid>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