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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0 5모둠 프랑스 혁명 활동지 by 조정은 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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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정재환, 차영진, 김상민, 김현성</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0-10-18 23:19: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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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랑스 혁명 中 : 테니스 코트의 서약</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eetana01/2105/wish/839603267</link>
         <description><![CDATA[<div>프랑스혁명을 촉발시킨 사건 중 하나이다. J.L.다비드의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5월 5일 이후 설치된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1109248&amp;ref=y">삼부회</a>(三部會)에서 자유주의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1068491&amp;ref=y">귀족</a>과 평민의원이 중심이 되어 6월 17일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1066918&amp;ref=y">국민의회</a>를 형성하자 궁정(宮廷)이 회의장을 폐쇄하였다. 이에 국민의회에 찬동하는 의원들은 옥내 구희장(球戱場)에 모여 결속을 다짐하고 천문학자 J.S.바이이를 초대 의장으로 선출하고 "국민의회는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1162710&amp;ref=y">헌법</a>을 제정하고 사회의 질서를 회복시킬 때까지 결코 해산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선서를 하여 제3신분의 결의를 표시하였다.국왕이 국민 의회를 무력으로 해산하려 하자, 파리 민중은 이에 저항하여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다.<br>21027 정재환</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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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2:34: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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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랑스 혁명 中 : 바스티유 감옥 습격 - 인권 선언</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eetana01/2105/wish/839603668</link>
         <description><![CDATA[<div><br> 약 1천 명의 성난 민중들이 '바스티유'라 알려진 성으로 행했습니다.바스티유는 전통적으로 정치범을 구금하는 장소였는데, 수비군은 약 60명으로 로네이 후작이 지휘하고 있었답니다.<br><br>그곳에 도착한 군중은 정문을 부수었고, 그들이 바깥쪽 구내로 진입하면서 사격이 시작되었죠. 네 시간이 지나 습격한 이들 가운데 수십 명이 죽었을 무렵 성문을 부수는 데 쓸 대포가 도착했고 수비대는 항복했습니다. 로네이 후작은 집단 폭행으로 죽었고 군중들은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쳤습니다.<br><br> 당대의 프랑스 왕실의 폭정의 상징인 바스티유는 신속하게 허물어졌답니다. 혁명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br><br></div><div><em>"이것은 반란인가? / 아닙니다 폐하, 반란이 아니라, 혁명입니다."<br></em><br><strong>루이 16세와 라 로슈푸코-리앙쿠르</strong></div><div><br> 테니스 코트의 서약과 바스티유 감옥 습격에서부터 이어진 프랑스 민중의 봉기는 지방 도시와 농촌에서부터 대도시에 이르기까지, 점차 전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특히 봉건적 제약과 의무에서 비롯된 부담에 허덕이던 프랑스 농민들은 자신이 속한 영지의 영주의 성을 습격하고 봉건 문서를 불태우며 자유를 얻고자 하였습니다.<br><br> 결국 국민 의회는 봉건제 폐지를 선언하며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인권 선언)」을 발표하였답니다. 이에 위태로움을 느낀 프랑스 국왕이 해외도주를 시도하다가 체포되면서 결국 국왕에 대한 프랑스 민중의 반감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br><br> 이후 1791년, 입헌 군주제와 제한 선거제를 규정한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국민 의회가 해산되고 입법 의회가 소집되었답니다. <br><br>이후 국민 공회가 들어서자 공화정이 선포되며 과격파인 자코뱅파의 주도로, 국왕 '이었던' 루이 16세는 끝내 처형되고 만답니다. <br><br>21028 차영진</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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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2:34: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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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랑스 혁명 中 : 국민 공회와 루이 16세 처형</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eetana01/2105/wish/839614274</link>
         <description><![CDATA[<div>1792년 8월 10일 파리 시민의 봉기로 왕권이 정지된 후 개설된 것으로, 입법의회에 이어 설립된 헌법제정의회다. 1792년 9월 21일부터 1795년 10월 26일까지 존속하였다. 의원은 보통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었는데, 개회와 함께 공화정을 선언하였다. 이것이 프랑스의 제1공화정이다. 1792년 8월 11일 혁명력 채용을 결정하고, G.J.당통의 제안으로 ‘유일불가분(唯一不可分)의 공화국'을 선언하였다. 공화정 선언, 국왕 처형, 미터법 제정 등의 업적을 남기고 해산하였는데, 후에 총재 정부가 이에 대신하여 혁명의 위기를 타개하였다. 21020 김현성</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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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2:41: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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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랑스 혁명 中 : 통령 정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eetana01/2105/wish/839622142</link>
         <description><![CDATA[<div>    🇨🇵 <strong>수립 과정</strong></div><div>로베스피에르를 축출하고 수립된 총재정부는 프랑스의 문제점을 해결하기엔 무능했으며, 군의 힘을 빌려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대프랑스 동맹을 갈아버리고 이탈리아, 이집트 원정에서 승리한 <strong>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strong>가 쿠데타를 일으켜 총재정부를 무너뜨리고 통령정부를 수립한다.<br>    🇨🇵 <strong>정책</strong></div><div>나폴레옹은 징병제를 토대로, 오스트리아 제국을 후두려패고 영국과 평화 조약을 맺는다. 또한 프랑스 국립은행을 설립하고 산업 보호 정책을 펼쳤으며, 국민 교육을 시행하여 애국심을 고취하였다. 또한 <strong>나폴레옹 법전</strong>을 편찬하여 재산 소유권을 보장하였다.<br>- 21018 김상민</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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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2:47: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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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랑스 혁명 中 : 삼부회(삼신분회) 소집</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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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h1><strong>삼부회 개회식</strong></h1><div>1789년 5월 5일 루이 16세는 국가의 파산을 막기 위한 최후 수단으로 베르사유에 삼부회를 소집했다. 결국 루이 16세는 재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1614년 이래 한 번도 소집되지 않았던 삼부회(삼신분회)를 소집하였다.삼부회(삼신분회)는 소집되지마자 투표의 표결 방식을 둘러싸고 서로 대립하였다. 제3 신분은 머릿수 표결 방식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국민 의회를 구성하고 헌법을 제정하기 전에는 해산하지 않겠다고 서약하였다(테니스 코트 서약).<br>21017 정재환</div><div><br></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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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2:50: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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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랑스 혁명 中 : 테르미도르의 반동</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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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테르미도르의 반동은 프랑스 혁명기인 1794년 7월 27일(혁명력 제2년 테르미도르 9일)에 일어난 반란으로, 쿠데타로 인하여 로베스피에르 파가 몰락하고 공안 위원회의 독재가 해체되어 공포 정치를 종결시킨 사건이다. 공포 정치 시기에 공안 위원회가 강력한 지도 아래 재정 위기를 극복하고 국내의 반혁명 세력을 진압하였으며 혁명 전쟁도 호전되었다. 이에 따라 봉건 지대에서 풀려나 토지를 분배받은 소농과 유산 시민 들이 보수화하여 전처럼 강력한 지지를 보내지 않았으며, 혁명 정부 내부의 분파 항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부르주아적인 당파들이 쿠데타로 주도권을 회복하였다. 이에 혁명 입법을 폐기하고 부르주아적 안정을 꾀하였으며, 1795년에 총재 정부가 성립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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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2:56: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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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랑스 혁명 中 : 제1제정과 나폴레옹 전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eetana01/2105/wish/839650726</link>
         <description><![CDATA[<div>    🇨🇵 <strong>수립<br></strong>1804년 나폴레옹은 국민투표로 나폴레옹 1세(Napoléon I)로 즉위한다. 이 시기를 프랑스 제1제정이라고 하며, 이 시기의 프랑스를 프랑스 제1제국이라고 한다.<br>    🇨🇵 <strong>나폴레옹 전쟁과 몰락</strong><br>영국이 평화조약을 파기하면서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하고,  영국 본토 상륙을 꿈꾸지만 트리팔가르 전투에서 허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제독의 영국 해군에게 패하였다. 그러나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제국+러시아 제국을 뚜까패면서 1806년에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킨다.<br> 나폴레옹은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strong>대륙 봉쇄령</strong>을 내려 영국과 대륙의 교역을 막는다. 그러나 영국은 식민지로 버티기를 하고, 정작 손해를 본건 영국과 교역을 많이 하는 러시아 제국이었다. 결국 러시아는 어쩔수없이 대륙 봉쇄령을 어기고,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을 떠난다. 그러나 러시아의 전술과, 살을 꿰뚫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대패하고, 엘바섬으로 유배된다. 그러나 다시 탈출하여 복귀하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영+보연합군에게 패배하여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폐되고 결국 1821년 사망한다(백일천하). 그렇게 다시 프랑스는 루이 18세(Louis XVIII)가 즉위하여 왕정이 수립된다(부르봉 왕정복고,1814~1830).<br>(참고로 국기는 일반 삼색기지만, 구별을 위해 국장을 넣는다.)<br>- 21018 김상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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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3:09: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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