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rss version="2.0">
   <channel>
      <title>[비문학 독해 훈련]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금 진수쌤반) by DECA</title>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link>
      <description>조선의 역사를 살피다.</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2-01-06 05:32:17 UTC</pubDate>
      <lastBuildDate>2023-03-03 18:36:40 UTC</lastBuildDate>
      <webMaster>hello@padlet.com</webMaster>
      <image>
         <url></url>
      </image>
      <item>
         <title>[선생님] 패들렛에 온라인 글쓰기를 할 때의 작성 규칙</title>
         <author>4995kjs</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7981776</link>
         <description><![CDATA[<div>1. 제목 칸 [&nbsp; &nbsp; ] 안에 작성자의 이름을 쓴 뒤, 제목을 적는다.<br>2. 내용을 쓸 때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문장으로 확실하게 쓴다.&nbsp;<br>3. 그리고 문단을 나눠 써야 할 때는 엔터를 쳐서, 문단이 나눠진 것<br>   이&nbsp;확실하게 보이도록 한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2-01-06 05:32:1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7981776</guid>
      </item>
      <item>
         <title>글쓰는 형식입니다.</title>
         <author>4995kjs</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7981777</link>
         <description><![CDATA[<div>◎ 이 인물, 사건을 고른 이유<br><br>◎ 이 인물, 사건의 중요한 점&nbsp;<br>&nbsp; &nbsp; &lt;그림으로 보는 한국사&gt; 책에서 찾은 것<br><br>◎ 이 인물, 사건에 대해 더 알게 된 것&nbsp;<br>&nbsp; &nbsp; &lt;네이버 지식백과&gt;에서 찾은 것<br><br>◎ 새롭게 알게 된 단어<br>&nbsp; &nbsp; &lt;네이버 국어사전&gt;에서 찾은 것<br><br>◎ 인물, 사건에 대한 마무리<br>&nbsp; &nbsp; -나의 느낌,생각, 의견</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2-01-06 05:32:1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7981777</guid>
      </item>
      <item>
         <title>[선생님] 정조 - 조선을 새롭게 변화시키다.</title>
         <author>4995kjs</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7981778</link>
         <description><![CDATA[<div>(이 인물을 고른 이유)</div><blockquote><strong>1. 사도세자의 죽음</strong></blockquote><div>&nbsp;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뒤주에 가둬져 굶어 죽었다. 그때 노론 신하들은 사도세자에 대해 나쁜 말을 했다. 결국 사도세자와 사이가 더 나빠진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고 만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정조는 조선을 새롭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참 훌륭하다고 생각했다.<br><br>(이 인물의 중요한 점 - &lt;그림으로 보는 한국사&gt; 책에서 찾은 것)</div><blockquote><strong>2.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왕</strong></blockquote><div>&nbsp; 정조는 백성들의 소리를 귀담아들은 임금으로 유명하다. 정조는 수원 화성을 지은 뒤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수원으로 종종 행차했다. 행차가 있는 날이면 임금이 지나가는 길마다 수많은 백성들이 나와 구경을 했다. 이때 정조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백성들이 징이나 꽹과리를 울리며 앞에 나와 자신의 사정을 말할 수 있도록 했다. 신하들이 아무리 말려도 정조는 백성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려 했다. 그리고 궁궐로 돌아가면 행차 때 들은 백성들의 문제들부터 해결해 주었다고 한다.<br><br>(새롭게 알게 된 단어- &lt;네이버 국어사전&gt;에서 찾은 것)</div><blockquote><strong>3. 행차</strong></blockquote><div>&nbsp; 행차란 웃어른이 차리고 나서서 길을 가는 것이나 그때 이루는 대열을 말한다. 나라의 웃어른인 정조가 대열을 이루어 수원까지 길을 가는 것이다.<br><br>(이 인물에 대해 더 알게 된 것 - &lt;네이버 지식백과&gt;에서 찾은 것)</div><blockquote><strong>4. 학문 연구소 규장각 설치</strong></blockquote><div>&nbsp; 정조는 능력이 있는 서얼을 규장각 관리로 채용했다. 서얼이란 아버지는 양반이지만 어머니가 평민이나 노비인 경우를 말한다. 지금까지는 신분 때문에 관리가 되는 길이 막혀 있었던 서얼들이 규장각에서 신하로 일하며 많은 개혁 정책들을 연구했다. 또 정조와 정책 토론을 하고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nbsp;<br><br>(인물에 대한 마무리-나의 느낌,생각, 의견)</div><blockquote><strong>5. 꼭 기억하고 싶은 훌륭한 왕</strong></blockquote><div>&nbsp; 정조는 참 훌륭한 왕이다.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비참하게 돌아가셨지만 복수보다 나라를 생각했다.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학문 연구를 열심히 했던 정조를 꼭 기억할 것이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4551D334CE8F3D66C" />
         <pubDate>2022-01-06 05:32:1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7981778</guid>
      </item>
      <item>
         <title>[선생님] 병자호란, 삼전도에서 항복하다.</title>
         <author>4995kjs</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7981779</link>
         <description><![CDATA[<div>(이 사건을 고른 이유)</div><blockquote><strong>1. 치욕적인 전쟁</strong></blockquote><div>&nbsp; 인조는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삼전도로 나가 청나라에 항복하고 말았다. 이때 인조는 낮은 신분을 뜻하는 푸른색 옷을 입고, 오랑캐라고 업신여기던 청나라를 황제의 나라로 섬기겠다고 약속했다. 정말 치욕적인 전쟁이다. 이 전쟁을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br><br>(이 사건의 중요한 점 - &lt;그림으로 보는 한국사&gt; 책에서 찾은 것)</div><blockquote><strong>2. 조선에 쳐들어온 청나라</strong></blockquote><div>&nbsp;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인조는 후금을 멀리하고 명나라와 친하게 지냈다. 그러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후금이 1627년 조선에 쳐들어왔다. 이 전쟁을 '정묘호란'이라고 한다. 이때 조선과 후금은 서로 형제처럼 지내기로 약속하고 전쟁을 끝냈다. 그런데 얼마 뒤 후금이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명나라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조선은 신하의 나라이니 황제의 나라인 청나라를 섬기라고 했다. 조선이 청나라의 요구를 거절하자, 1636년에 또다시 조선에 쳐들어왔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것이다.&nbsp;<br><br>(이 사건에 대해 더 알게 된 것 - &lt;네이버 지식백과&gt;에서 찾은 것)</div><blockquote><strong>3. 광해군은 중립 외교로 후금의 침입을 막았다</strong></blockquote><div>&nbsp; 후금이 힘을 키우고 있을 때는 조선의 임금이 광해군이었다. 광해군은 의리만 생각하여 망해가는 명나라를 무조건 돕다가는 후금이 중국의 주인공이 되는 날 후환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명나라를 도와주는 척만 했다. 이런 탁월한 중립 외교 덕분에 광해군 때에는 후금의 침입이 없었다.<br><br>(새롭게 알게 된 단어-&lt;네이버 국어사전&gt;에서 찾은 것)</div><blockquote><strong>4. 중립외교</strong></blockquote><div>&nbsp; 중립외교는 어느 한 나라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각 나라에 같은 비중을 두는 외교를 말한다. 광해군은 명나라를 돕는 한편 후금과도 다투지 않는 외교 정책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인조는 중립외교를 하지 않아 전쟁이 일어나고 말았다.&nbsp;<br><br>(사건에 대한 마무리 : 나의 느낌, 의견, 생각)</div><blockquote><strong>5. 막았어야 할 전쟁</strong></blockquote><div>&nbsp; 인조는 당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망해가는 명나라의 편만 들다가 결국에는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병자호란으로 20만 명의 백성들이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고 한다. 왕이라면 이런 끔찍한 전쟁을 막도록 노력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t1.daumcdn.net/cfile/blog/234D043A55855BB828" />
         <pubDate>2022-01-06 05:32:1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7981779</guid>
      </item>
      <item>
         <title>[O서O] 서양문화,동양으로 오다</title>
         <author>4995kjs</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7981781</link>
         <description><![CDATA[<blockquote>&nbsp; 1. <strong>우물안의 개구리,조선</strong></blockquote><div>&nbsp; &nbsp;나는 조선사람들이 그땐 그냥 세계의 우물안의 개구리 였는데 서양문화와 서양문물이 들어왔을때 조선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드릴지 매우 궁금했기 때문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br><br></div><blockquote><strong>2.신기한 서양 문물들&nbsp; &nbsp;</strong></blockquote><div>17세기 무렵,청나라에는 선교활동을 하러온 서양 선교사들이 많았다.청나라로 간 우리나라 사신들은 선교사들이 가져온 신기한 물건과 뛰어난 과학 기술 등 각종,서양 문물을 접하고 놀랐다.그중 몇몇은 만완경,시계,세계지도등을 조선에 드려놓았다.이걸 본 조선사람들은 매우 놀라거나 서양에 호기심을 느꼈다.그러나 양반들은 그런걸 벋아드리지 않았다.<br><br></div><blockquote><strong>3.천주교 시작과 탄압</strong></blockquote><div>당시 우리 조선에는 신분 제도로 인해 무시당하거나 차별받고 있던 백성들이 많았다. 이들에게 천주교의 평등사상은 큰 호응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천주교는 그들에게 모두가 평등하고, 누구든지 착하게 살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기 때문에 천주교를 믿는 백성이 늘어났다.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습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렇지 못했다.. 1801년 약1만여 명에 달할 만큼 많았던 조선의 천주교 신도들이 박해를 받은 사건이 일어났다. 위험을 무릅쓰고 천주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해 온 중국의 청나라 신부 주문모가 처형되었으며, 천주교 포교 혐의로 체포된 이승훈, 정약종 등이 처벌을 받아 사형을 당하는 등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검거되거나 처형당했다.<br><br></div><blockquote>4.<strong>탄압</strong></blockquote><div>&nbsp;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적 지배계급이 반체제활동을 저지 또는 근절하기 위하여 경찰 ·군대 ·법원 등의 국가권력장치를 발동하는 일이다.<br><br></div><blockquote>5.<strong>종교,서로 이해하며 살자</strong></blockquote><div>자기가 믿는 종교 때문에 탄압을 받는일이 얼마나 슬플까?천주교 신자들은 고작 종교 때문에 가슴 아프게 탄압을 받았던일이 너무 슬프다.그일을 되돌릴순 없지만,우리는 종교때문에 사람을 차별하는일이 없도록 하자.</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godpeople.or.kr/files/attach/images/15241/445/011/003/e4d0adba959e3ce7695e6ab11282a7f6.jpg" />
         <pubDate>2022-01-06 05:32:1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7981781</guid>
      </item>
      <item>
         <title>[O지O]뒤주에 갇혀 굶어 죽은 사도세자</title>
         <author>4995kjs</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7981782</link>
         <description><![CDATA[<blockquote><strong>1.정조에게 살해된 사도세자</strong></blockquote><div>&nbsp; 사도세자와 정조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노론 신하들은 영조 곁에서 사도세자에 나쁜 말만 했다. 사도세자와 정조는 사이가 더 나빠졌다. 결국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굶어 죽였다.<br><br></div><blockquote><strong>2.왕 영조와 사도세자</strong></blockquote><div>&nbsp; 영조의 탕평책도 붕당의 대립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영조가 어쩔 수 없이 노론 신하들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조는 천한 신분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노론 신하들의 도움으로 겨우 왕이 되었다. 하지만 사도세자는 영조와는 뜻이 다른 소론 신하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세자와 정조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div><div><br></div><blockquote><strong>3.어린 나이의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strong></blockquote><div>&nbsp; 사도세자는 고작 나이가 27살 때 죽음을 맞이했다. 영조도 41세,그다지 나이가 많지 않았다.<br><br></div><blockquote><strong>&nbsp;4.노론이란</strong></blockquote><div>&nbsp; 조선 시대에, 사색당파의 하나. 남인에 대한 처벌 문제로 서인에서 갈려 나온 당파이다. 숙종 9년에 송시열, 김익훈 등의 강경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br><br></div><blockquote><strong>5.사도세자는....</strong></blockquote><div>&nbsp; 나는 이런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가 안쓰럽다.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에게 죽음을 당하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다. 만약 내가 영조였다면 사도세자와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cfile10.uf.tistory.com/image/2404BE4357EE9ADB14B868" />
         <pubDate>2022-01-06 05:32:1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7981782</guid>
      </item>
      <item>
         <title>[정승준] 실학자 정약용</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76453</link>
         <description><![CDATA[<div>&nbsp; 1. 정약용<br>다산 정약용은 조선의 실학자 이고, 정약용은 많은 발명품을 만들었다. 그중 에서 정약용의 발명품들은 조선이 발전하는 것에 도움이됬 다고 생각 한다. 특히 정조의 계획이었던 수원화성도 정약용의&nbsp; 발명품인 거중기 와 녹로 등의 발명품 등으로 수원 화성을 빨리 만들수 있었다.<br><br>&nbsp; 2.중요한점<br>정약용은 조선의 과학 발전을 이끌었고 그가 만든 발명품들과 책들이 사람들에게 큰 도움 이 되었다. 특히 그가 펴낸 책들 중 대표적으로 경세유포와 목민심서 가있다.<br><br>&nbsp; 3.우리가 자세히 몰랐던 정약용의 이야기<br>정약용이 관직에 있는 동안 정조가 추진한 여러 가지 개혁 정책을 도우며 수원화성 건설을 이끌었다. 하지만 정조가 세상을 떠난 뒤인 1801년에 천주교인 들이 청나라 신부와 함께 역모를 꾀했다는 죄목으로 천주교를 탄압하는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이때 정약용의 셋째 형인 정약종은 처형되었고, 그와 둘째 형인 정약전은 귀양을 가게 되었다. 정약용은 귀양살이를 하던 강진에서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을 체험하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 연구에 더욱 집중했습니다.<br><br>&nbsp; 4.국어사전/역모<br>역모란 반역을 꾀하는 것이다.<br><br>&nbsp;5.나의 생각은 정약용은 조선의 대단한 실학자이고 조선을 발전시켜서 많은 발전을 이끌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커서 정약용처럼우리나라의 좋은 발전을 주고 싶다.</div><div><br></div><div><br><br></div><div><br></div><div><br></div><div><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cfile208.uf.daum.net/image/16337D024BCAE5AE37149E" />
         <pubDate>2022-01-07 01:26:1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76453</guid>
      </item>
      <item>
         <title>[이하준]김정호 한반도를 종이에 담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77203</link>
         <description><![CDATA[<blockquote>&nbsp;1.<strong>김정호 한반도를 종이에 담다.</strong></blockquote><div>내가 이 제목을 고른 이유는[김정호] 나는 끈기와 노력을 중요 하게 생각 하는데, 김정호는 한반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nbsp; 대동여지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김정호의 끈기와 용기를 본받고 싶다.그리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가치를 느끼싶기 때문이다.<br><br></div><blockquote>&nbsp;2.<strong>김정호는 어떻게 한반도를 다 돌아다닌 걸까?</strong>&nbsp;</blockquote><div>라고 나는 예전에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다. 하지만 김정호는 지리책을 참고하여 만들기도 했다는 것을 알았다.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는 산줄기, 물길,도로가 하나의 그물망 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길이 빠른 길 인지, 물길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수있다.<br><br></div><blockquote>&nbsp;3. <strong>김정호 한국 지리에 빛 이되다.</strong></blockquote><div>&nbsp;김정호는 &lt;대동여지도&gt;를 완성한 뒤 32권의 《대동지지》 작업에 몰두했다. 《대동지지》에는 전국 8도의 산천과 국방, 도로, 역사 지리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지리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까지 풍부하게 적어 놓은 이 책은 우리나라의 지리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div><div><strong><br></strong><br></div><blockquote>4.<strong>지리학의 뜻은 무엇일까?</strong></blockquote><div>김정호는 지리학에 뛰어나다...... 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들을수 있다.그런데 지리학의 뜻은 무엇일까? 지리학은 지표상에서 일어나는 자연 및 인문 현상을 지역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문이다.<br><br><br></div><blockquote>&nbsp;5.<strong>지도의 아버지 김정호</strong></blockquote><div>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완성한 한국에 없어서는 안돼는 인물이다. 김정호가 없었다면 예전 사람들이 길을 잃어 힘들어 할수있기 때문이다. 김정호는 지도의 아버지 이다.<br>&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storage.doopedia.co.kr/upload/_upload/image5/travel/editor/2018/09/21/20180921110359.JPG" />
         <pubDate>2022-01-07 01:26:5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77203</guid>
      </item>
      <item>
         <title>[박연우]조선의 선비를 닮은 소박한 백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78039</link>
         <description><![CDATA[<div>나는 백자에대해 몰라서 백자에 대해 더 알아보려고 이내용을 골랐아요.<br>&nbsp;알아보려고백자는 귀족적인 화려함이 가득한 고려청자와 달리,조선의 백자는 소박하고 깨끗한 모양이에요.조선 백자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둥근 보름달을 닮은 우윳빛 백자달 항아리 예요.백자 달 항아리는 우리네 정서가 잘녹아 있어서 세계인들로 부터 가장 한국적인 도자기라는 칭찬을 받아요.<br><br><strong><em><mark>백자를 만들 때에는 청자보다 수준 높은 기술이 필요했어요.더 질 좋은 흙을 써서,더 높은 온도에서 구워야 했지요,군는 온도가 높으니 유약도 더 좋은 것 을 사용해야 했고요.나라에서는 경기도 광주에 백자를 만드는 분원을 두고 궁걸에서 사용하는 도자기를 만들 기로 했어요.실력이 뛰어난 도궁과 전국 각지의 질 좋은 흙이 이곳으로 모여들었어요.조선의 우수한 도자기 기술을 탐내던 일본은 임진왜란 때 이삼평을 비롯한 조선의 도공들을 자기네 땅으로 끌고 갔어요.이들은 일본 최고의 도자기로 손꼽히는 아리타 자기가 탄생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지요.그뒤 일본의 도자기 산업이 크게 발전했고,일본의 도자기가 유럽으로 수출 됬어요.<br></mark></em></strong><br>백자는 고려초기부터 청자와 함께 일부로 만들어졌으며,그 수법은 계속 이어져 조선시대 자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이요.순백색의 바탕흙 위에 투명한 유약을 발라 구워 만든 자기. 청자에 비하여 깨끗하고 담백하며 검소한 아름다움을 풍긴다.<br><br>담백<br>저는 담백의 뜻을 더 알아보았어요. 담백은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는 뜻이에요.<br><br>백자는<br>순백색의 바탕흙 위에 투명한 유약을 발라 구워 만든 자기. 청자에 비하여 깨끗하고 담백하며 검소한 아름다움을 풍긴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www.gwangjuart.com/data/cheditor4/1503/AUpiMGtsfNSE3MMfmGeKHj2TcB2VI.jpg" />
         <pubDate>2022-01-07 01:27:3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78039</guid>
      </item>
      <item>
         <title>[이채영] 백성을 먼저 생각한 임금,세종</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78875</link>
         <description><![CDATA[<blockquote>&nbsp; 1. 고른 이유</blockquote><div>나는 세종대왕을 골랐다.<br>왜냐하면 <mark>세종대왕이 백성을 먼저 생각한 세종대왕의 마음</mark>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말 한국어를 만드셨기<br>때문이다.<br><br></div><blockquote>2. 중요한 점</blockquote><div><mark>세종대왕은 1443년에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mark>처음에는 여러 관리와 양반들이 한글을 쓰는 것을 반대 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배우기 쉽고 읽고 쓰기에도 편리해서 널리 쓰였다<br><br></div><blockquote>3.네이버 지식백과 &nbsp;조선왕조 제4대 왕(재위 1418~1450).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였다.</blockquote><div><br></div><blockquote>4.국어사전</blockquote><div>실질<br>실제로 있는 본 바탕<br><br></div><blockquote>5. 생각과 의견</blockquote><div>나는 세종대왕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세종대왕이 글을 몰라서 어려워 하는 백성들을 위해 눈병이 걸려서라도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든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div><div><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73E15355738182715" />
         <pubDate>2022-01-07 01:28:2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78875</guid>
      </item>
      <item>
         <title>[김류민]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든 세종</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79111</link>
         <description><![CDATA[<blockquote><strong>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strong></blockquote><div>&nbsp;세종대왕은 태종의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이 태조의 뒤를 따라 왕이 되었다. <mark>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은 백성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글자이다.</mark>세종대왕이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을까?<br><br></div><blockquote><strong>백성을 가르치는 소리, 훈민정음</strong></blockquote><div>&nbsp;세종은 백성이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안타까웠다.또한 백성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잘전달하고, 사람들이 지켜야 한다고 글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 했다. <mark>그래서 1443년에 학자들은 훈민 정음을 만들었다.</mark><br><br></div><blockquote><strong>농사짓는 백성을 위해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다</strong></blockquote><div>&nbsp;<mark>기생</mark>의 아들로 태어난 장영실은 경상도에서 노비로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지역에 가뭄이 심하게 들어 백성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어요.<br>물건을 만드는 재주가 있던 그는 나무를 이용해 물을 퍼 올리는 수차를 만들어 가뭄을 이겨 낼 수 있게 해 주었다.이 소식을 들은 세종은 장영실을 궁궐로 불러들여 일을 하게 했다. <mark>그 뒤로 장영실은 여러 신하들과 함께 하늘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혼천의, 자동으로 종이나 북을 울려 시간을 알려 주는 물시계(자격루), 해의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그림자로 시간을 재는 해시계(앙부일구), 강물의 높이를 재는 수표 등을 만들었다.<br></mark><br></div><blockquote><strong>기생,혼천의,자격루</strong></blockquote><div>&nbsp;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나 춤 또는 풍류로 흥을 돋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이다.<br>고대 중국에서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관측하던 장치. 지평선을 나타내는 둥근 고리와 지평선에 직각으로 교차하는 자오선을 나타내는 둥근 고리, 하늘의 적도와 위도 따위를 나타내는 눈금이 달린 원형의 고리를 한데 짜 맞추어 만든 것이다.<br>조선 세종 16년(1434)에 장영실(蔣英實), 김빈(金鑌) 등이 왕명을 받아 만든 물시계. 물이 흐르는 것을 이용하여 스스로 소리를 나게 해서 시간을 알리도록 만든 것으로, 나무로 되어 있고 동자(童子) 인형 모양이다. 국보 정식 명칭은 ‘창경궁 자격루’이다. 국보 제229호이다. <mark>자격루를 집적 보고 관찰 하고 싶다.</mark><br><br></div><blockquote><strong>세종의 훈민정음</strong></blockquote><div>&nbsp;우리는 한글 덕분에 잘 생활하고 있다.만약 훈민정음이 없었으면<br>우리가 힘들었을 것이다. <mark>세종대왕은 우리의 한글을 만든 임금이다. 훈민정음을 소중이 여겨야겠다.</mark></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contents.history.go.kr/data/img/ta/ta_e61/ta_e61_0340_01.jpg" />
         <pubDate>2022-01-07 01:28:3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79111</guid>
      </item>
      <item>
         <title>[윤채성] 청나라의 끈질긴 공격</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79146</link>
         <description><![CDATA[<div><br></div><blockquote>1<strong>. 조선의 병자호란</strong></blockquote><div><strong>&nbsp;나는 어제 예전에 데카에서 읽었던 박씨전을 읽는데 그 책의 시대적 배경이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이라 관심을 갖게 되었다. </strong><strong><mark>처들어온 청나라를 조선은 어떻게 대응 했을까?</mark></strong><br><br></div><blockquote>2.<strong>남한산성으로 피하자</strong></blockquote><div><strong>인조가 왕이되자, 인조는후금(청나라)과는 멀리하고, 명나라와 친하게 지냈다.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후금(청나라)는 1627년 조선에 처들어 온다.&nbsp; 그러나 더이상 싸우고 싶지 않아 형제관계를 맺기로 약속한다. 청나라로 이름을 바꾼뒤 조선에게 청나라를 섬기라고 하였으나 조선은 당연히 계속 거절 했다. 그러자 9년뒤 청나라는 처들어온다. 그러자</strong><strong><mark>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한다.</mark></strong></div><div><br></div><blockquote>3.조선의 치욕</blockquote><div><strong><mark>조선은 인조가 직접 청 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 절차를 거쳐 청과 형제를 맺었다</mark></strong><strong>. 그리고 청이 요구하는 강화 조건을 모두 받아들였다. 소현 세자와 둘째 왕자인 봉림 대군을 청에 볼모(인질)로 보냈고, 청에 조공을 바쳤으며, 예를 갖추기 위한 사신을 파견하고, 청이 전쟁을 할 때 군사를 보내기로 약속한 것이다.<br></strong><br></div><blockquote>4. 치욕</blockquote><div><strong><br></strong><mark>수치와 모욕을 아울러 이르는 말</mark></div><div><br></div><blockquote><strong>5.</strong>파악 하지 못한 왕</blockquote><div><strong>청나라와 친하게 지냈으면 더 좋았을것인데 멸망하는 명나라와 친하게 지내다가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왕으로서 백성들을 더 지키려고 했어야 했는데 왕으로써의 일을 잘 해내지 못한것 같다. 왕은 전쟁을 막아 </strong><strong><mark>백성들의 피해가 없게 파악을 잘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br><br></mark></strong><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70B3355C6182C814" />
         <pubDate>2022-01-07 01:28:3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79146</guid>
      </item>
      <item>
         <title>[박지후]바다에서는 승리한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81823</link>
         <description><![CDATA[<blockquote>위인 이순신</blockquote><div>이순신은 너무나도 유명한 분이시다.<br>나는 일본이 쳐들어 온것,적에게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것만 알지 이순신 장군에대해 잘알지는 못한하는 것을 알게되었다.<br><br></div><blockquote>일본의 공격 전쟁의 시작</blockquote><div>1592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군사들이 조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임진왜란은 시작되었다.자신의 세력을 지키기위해 조선의 땅과 곡식을 뺏고 지방 세력들에게 나누어 준다.<br>지방 세력들에게 나누어 주었다.전쟁에서 계속 승리해 군사들의 사기를높여주고 거북선을 통해 임진왜란에서 승리한다.<br><br></div><blockquote>거북선</blockquote><div>거북선이 임진왜란 때 돌격전선으로서 기능을 발휘함에 따라 전란 후에는 그 모양이 조금씩 변하여 용머리[龍頭]는 거북머리[龜頭]로 바뀌고, 치수도 일반적으로 장대(長大)해지는 등 차차 크게 건조되었는데, 1795년(정조 19)에 간행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전라좌수영 거북선’ 및 ‘통제영 거북선’의 그림과 함께 건조에 필요한 부분적인 치수가 어느 정도 기록되어 있다.<br><br></div><blockquote>치수란?</blockquote><div>치수란 길이에 대한 몇 자 몇 치의 셈이다.유의어</div><div><a href="https://ko.dict.naver.com/#/entry/koko/4e0305aeb20b44fcb27d0d82acb16bd0">사이즈<sup>1</sup></a> <a href="https://ko.dict.naver.com/#/entry/koko/7dfad5a08dd648a4b2fb038d24928da8">척수<sup>2</sup></a> <a href="https://ko.dict.naver.com/#/entry/koko/ae4734f66ea64873907ae92fe3a77103">크기</a>가있다.<br><br></div><blockquote>이순신 평가하기</blockquote><div>이순신은 바다에서 똑똑한 방법으로 바다를 파악하여 처음의 싸움에서 승리 하여 군사들의 사기를 높여주었다.마지막엔 거북선을 이용해 임진왜란에서 승리 한다.현명한 방법으로 임진왜란에서 승리한다.<mark>이순신은 정말 현명하고 멋진 위인인것 같다.</mark></div><div><br></div><div><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img1.daumcdn.net/thumb/R720x0/?fname=http:%2F%2Fi0.wp.com%2Fslownews.kr%2Fwp-content%2Fuploads%2F2015%2F12%2F22645A505663F2BF10F9AE_compressed.jpg%3Fresize%3D480%252C660" />
         <pubDate>2022-01-07 01:30: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81823</guid>
      </item>
      <item>
         <title>[심윤성]신분 돈으로 사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86248</link>
         <description><![CDATA[<div>&nbsp; 1.상민도 돈으로 양반이 되다. 농사가 발달하면서 돈이 많은 상민들이 생기며 전쟁으로 가난해진 나라가 공명첩을 팔았어요. 그리고 가난해진 양반도 족보를 팔았지요.<br><br>2.조선 신분 제도의 변화. 돈이 많으면 상민도 양반이 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렇게 양반으로 태어나면 양반, 상민으로 태어나면 상민으로 살아야 했던 조선의 신분 제도에 큰 변화가 일어났어요.<br><br>3.농사 기술이 발달하면서 부자가 된 농민이 늘어났어요. 장사를 하여 재산을 많이 모은 상인도 늘어났지요.돈을 모은 이들이 맨 먼저 한 일은 바로 양반 신분을 사는 것이었어요.양반이 되면 세금도 내지 않고, 군대나 나라의 크고 작은 공사에 불려 나가지 않아도 되니까요. 또 더 이상 양반들에게 굽실거리거나 그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지요. 그래서 그들은 공명첩을 샀어요.<br><br><br>4.공명첩   성명을 적지 않은 백지 임명장. 국가의 재정이 궁핍할 때 국고(國庫)를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된 것으로, 중앙의 관원이 이것을 가지고 전국을 돌면서 돈이나 곡식을 바치는 사람에게 즉석에서 그 사람의 이름을 적어 넣어 명목상의 관직을 주었다.<br><br>5.나의 생각과 의견. 공명첩을 판 이유가 전쟁으로 바닥난 국고를 채우기 위해   판 것이지만 공명첩을 산 사람들은 세금을 내지 않으므로 국고가 다시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미래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dbscthumb-phinf.pstatic.net/4893_000_1/20170629204611871_QMLIZLLTX.jpg/ha60_155_i1.jpg?type=w431_fst_n&amp;wm=Y" />
         <pubDate>2022-01-07 01:34:3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86248</guid>
      </item>
      <item>
         <title>[유선호] 바다에서 큰 승리를 거두다.</title>
         <author>4995kjs</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96615</link>
         <description><![CDATA[<ul><li><strong><em>&nbsp; 학익진 덕분에 나라가 살다.&nbsp;</em></strong></li></ul><div><strong>&nbsp; &nbsp;</strong>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를 전쟁에서 승리하여 살린 장군들 중 유명한 장군 중 한 명이다. 그 중에서도 임진왜란 때<mark> 학익진</mark>을 사용하여 승리한 사건이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다른 전쟁은 어떻게 승리를 거두었는지 궁금하다<br><br></div><ul><li><strong><em>이순신의 승리 비결</em></strong></li></ul><div>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이 수백 명이 쳐들어와도 계획을 잘 세우고 다른 병사들이 잘 따라준 덕분에 승리를 거둔 장군이다. 장군이 승리를 거둔 이유는 <mark>튼튼한 판옥선과 거북선을 비롯하여 우수한 무기를 많이 갖췄기&nbsp; 때문</mark>이다.<br><br>&nbsp;</div><ul><li><strong>&nbsp;</strong>&nbsp; <strong><em>이순신, 임진왜란에 맞서 싸우다.</em></strong></li></ul><div>이순신은 늦은 나이에 과거에 합격해 무관이 되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많은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있었고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었다.<br><br><br></div><ul><li><strong><em>&nbsp;무관과 임진왜란</em></strong></li></ul><div>&nbsp;무관은 군에 적을 두고 군사 일을 맡아보는 관리를 말하고<br>임진왜란은&nbsp; 역사 조선 선조 25년(1592)에 일본이 침입한 전쟁이다.<br><br></div><ul><li>&nbsp; &nbsp;<strong><em><mark>이순신 장군의 최후</mark></em></strong><strong><em>, 내 생각</em></strong></li></ul><div>&nbsp;이순신 장군은 전쟁에서 무기가 자신의 몸에 큰 상처를 내면서 죽음을 맞이했고 죽기 전에 병사들에게 절대로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nbsp; 이순신 장군의 죽음이 일본군에게 알려지고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어야 했다. 이순신은 병사들을 사랑한 최고의 장군이라 생각한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919991910/bc887ab2a58d53150be2508a2f1d5d78/20111207_9ssapZ8J__1_.jpg" />
         <pubDate>2022-01-07 01:43:0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96615</guid>
      </item>
      <item>
         <title>[ 강건우 ] 바다에서는 이긴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96619</link>
         <description><![CDATA[<div>1. <strong>바다의 영웅 이순신</strong><br> 나는 바다에서 일본군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을 골랐다. 왜냐하면 이순신 장군에 작전을 알수있었기떼문이다.<br><br>2. <strong>바다에서는 막는다!<br>&nbsp;</strong>일본이 단숨에 한성 부근까지 올라왔지만 바다에서는 기를 펼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순신이 이끄는 군대가 바다에서 일본군을 물리쳤기 떼문이다. <br><br>3. <strong>이순신이 10년 동안 북쪽에서 살았다?!</strong><br>&nbsp; 이순신은 무관이 되고 거의 10년 동안 북쪽 지역에서 지내며 장수로 생활했습니다. 그러다 조선의 문신 유성룡의 추천으로 임진왜란 직전에 전라 좌수사에 임명되었습니다.<br><br>4. <strong>장수</strong><br> 장수라는 뜻은 군사를 거느리는 우두머리다.<br><br>5. <strong>나의 생각</strong><br>나는 바다에서 우리나라를 용감하게 지켜낸 이순신을 잊지안을거다. 그리고 이순신이 세운 업적들과 이순신에 일생을알고싶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an2-img.amz.wtchn.net/image/v1/watcha/image/upload/c_fill,h_1080,q_80,w_1920/v1583740939/p80le4qynaiwuq5vnwgg.jpg" />
         <pubDate>2022-01-07 01:43:0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96619</guid>
      </item>
      <item>
         <title>[민소율]고려 충신,정몽주의 죽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96648</link>
         <description><![CDATA[<div>1. <strong>사건,인물 소개</strong><br>정몽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싶어하는 이성계와 생각이 달랐다.일단 정몽주는&nbsp; 고려 충신이였다.정몽주 역시 고려의 변화를 꿈꾸는 신진 사대부 중 하나였다.<br>&nbsp;</div><div>2.<strong>중요한 점</strong></div><div>정몽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싶어하는 이성계와 달리 정몽주는 고려의 잘못된 점만 바로 잡고 싶을 뿐 고려를 지키고 싶엇다.<br>이성계는 그런 정몽주가 눈엣가시 같았다.하지만 정몽주는 끝까지 고려의 충성심을 버리지 않았다.<br><br>3. <strong>정몽주의 정보</strong><br>고려의 마지막<mark> 충신이자 유학자 </mark>였다.성리학의 창시자이라는 칭송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학문이 높았고,고려 말기의 여러가지<br>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성계의 세력이 조선을 세우는데 협조 하지 않아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했다.<br><br>4.<strong>충신</strong><br>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를 말한다<br><br>5.<strong>나의 생각,의견</strong><br>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정몽주의 마음을 느꼈다. 나는 자신의 의견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strong><br><br></strong><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9C9A455F1BD3F801" />
         <pubDate>2022-01-07 01:43:0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96648</guid>
      </item>
      <item>
         <title>[우주연] 조선왕의 하루일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96649</link>
         <description><![CDATA[<div>&nbsp;<strong><em>1.왕은 무슨일을 할까?</em></strong><br>나는 옛날부터 조선왕에 관심이 많았는데,그 중에서도 왕들의 하루일과가 가장 궁금했다.또,왕들이 무슨일을 하는지도 궁금해 이 일에 관심을 같게 되었다.<br><br>&nbsp;<strong><em>2.조선왕은 띵가띵가 놀았다?</em></strong><br>왕이 되려면 여러가지 일을 해야했는데&nbsp; 그중 몇가지만 뽑자면, 나랏일 의논,사신 만나기,군사들에게 암호정해주기,제사와 상소문 읽기등이 있다.대신 왕은 공부 안해도 됀다고?천만에! 왕도 매일매일 공부를 한다.우리가 학원에 다니는것같이 왕도 할일이 만가지가 넘었다고한다.쉴때도 명절이나 벼슬이 높은 신하가 죽었을때만 쉴수 있었다.그 때문에 영조를 제외하면 조선왕들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했다.<br><br>&nbsp; <strong><em>3.세자 시절의 엄격한 교육</em></strong><em><br></em>왕이하는 일을 알아보았으니까 이제 조선 2인자인 세자 차례이다.세자도 왕이 돼기전 교육을 받는거니까 여전히 바빴다.세자는 보통 다섯살이 돼면 좋은 선생님으로부터 글공부를 시작해야했다.그것 말고도 활쏘기,수 공부,말타기,심지어 음악까지 배웠다.거기에 예절 교육에 좋은 성품을 가지기 위한 교육도 있었다.세자도 하루에 7시간 공부를 한다.<br><br><strong><em>&nbsp;4.대리 청정이란?</em></strong><br>세자는 왜 있어야할까? 바로 대리청정 때문이다.대리청정은 왕이 나이가 들거나 갑자기 아프면 세자가 왕대신 나랏일을 맡아 하는것이다.그 때문에 조선은 세자를 미리 정해놨다고 한다.<br><br> <strong><em>5.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이 완성됀 이유</em></strong>.<br>왕은 엄청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물론 세자도.그래도 세종대왕,정조나 문종 같은 왕이 있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완성됄수있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왕과 세자의 하루를 보니까 앞으로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세자도 하루에 7시간씩 공부하니까...<br><strong>&nbsp;</strong></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blogthumb2.naver.net/20110903_223/francis_h_1315040752086wOy7B_JPEG/%BF%D5%C0%C7%BD%C3%B0%A3%C7%A5.jpg?type=w2" />
         <pubDate>2022-01-07 01:43:0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96649</guid>
      </item>
      <item>
         <title>[신재은]  임꺽정, 의로운 도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96662</link>
         <description><![CDATA[<blockquote><strong><em>백성의 영웅&nbsp;</em></strong></blockquote><div>&nbsp;나는 임꺽정이라는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다.임꺽정은 의로운 도적이다.<mark>백성의 영웅 임꺽정은 누구보다도 용감한 사람이다</mark>.<br><br></div><blockquote><strong>임꺽정</strong></blockquote><div>&nbsp;임꺽정은 양주 출신이다.<mark>임꺽정은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눠 주었다.</mark>임꺽정은 임꺽정의 난을 일으켰다.임꺽정은 조선의 3대 도적이다.<br><br></div><blockquote><strong><em>임꺽정의 난</em></strong>&nbsp;</blockquote><div>&nbsp;<mark>임꺽정의 난은 임꺽정이 일으킨 난이다.</mark>임꺽정은 가난한 백성들의 대장이었다.가난한 백성들은 임꺽정을 자신의 대장으로 모셨다.하지만 임꺽정은 측근의 배신으로 의로운 도적이 된지 3년만에 붙잡혀 처형되었다.<br><br></div><blockquote><strong><em>처형</em></strong></blockquote><div>처형이란 무엇일까?처형이란 사형과 비슷한 것이다.<mark>다시 말해 형벌에 처한다는 것이다.</mark>임꺽정이 처형당했다는게 사형되었다는 것이다.</div><blockquote><br><strong>임꺽정의 죽음</strong></blockquote><div>아...임꺽정의 죽음..너무나 안타깝다.임꺽정의 사람인 서림이 그동안의 활동과 비밀 작전을 다 고발했기때문이다.임꺽정이 죽은 이유가 자신의 사람이 다 고발했기 때문이다.<mark>비록 임꺼정은 이제 세상에 없어도 백성들의 마음에 굳게 자리잡고 있다.</mark><br><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cfile235.uf.daum.net/image/153335444FC58A9E2A77FD" />
         <pubDate>2022-01-07 01:43:1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96662</guid>
      </item>
      <item>
         <title>{김도은} 왕권을 강화한 세조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96860</link>
         <description><![CDATA[<blockquote><strong>수양대군, 어떤사람인가?</strong></blockquote><div>나는 단종의 왕권을 차지하고 많은 사람을 죽인 수양대군을 골랐다. 수양대군은 왕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죽이긴 했지만 강력한 정치를 펼쳤다고 한다. <mark>지금부터 수양대군(세조)에 대해 설명을 해보겠다.<br></mark><br></div><blockquote><strong>왕이 되고픈 수양대군</strong></blockquote><div>세종이 세상을 떠난 뒤, 왕이 된 문종은 몸이 약해서 왕위에 오른지 얼마되지 않아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아들인 단종이 열두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문종은 숨을 거두면서 세종때 6진을 설치하고 여진을 몰아낸 충신 김종서에게 어린 단종을 부탁했다. 호시탐탐 왕의 자리를 노리던 수양대군이 반란을 일으켰다. 김종서가 안평대군을 왕으로 세우려 했다는 모략을 꾸며 <mark>반대파를 모두 해치웠다</mark>. 왕이 되는 데 걸림돌이었던 동생, 안평대군마저 귀양을 보내 죽였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의 자리를 내주었다. <mark>이제 수양대군은 조선의 7대 임금인 세조가 되었다.<br></mark><br></div><blockquote><strong>지식백과</strong></blockquote><div><mark>수양대군은 조선 초기에 왕권 강화에 힘쓴 제7대 임금이다.</mark> 또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쫓아낸 뒤 임금이 되었는데, 토지 제도와 군사 제도를 개혁해 나라의 재정과 국방을 튼튼히 하고 《경국대전》을 편찬하는 등 많은 업적도 쌓았다.</div><div><br></div><blockquote><strong>모략</strong></blockquote><div><mark>모략이란&nbsp; 사실을 왜곡하거나 속임수를 써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mark><br><br></div><blockquote><strong>나의 의견</strong></blockquote><div><mark>세종처럼 좋은 왕이 되고 싶었던 단종이 너무나 안타깝다.</mark> 수양대군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욕심을 같지않고 단종을 도왔더라면, 더 좋은 나라를 만들었을 것이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postfiles12.naver.net/MjAxNjExMTlfMjIw/MDAxNDc5NTM4Mzc0NzM5.0r1dqRSAL0EfzwTpRNbfTVF1HRSTtFvPsmc-j-WkfzQg.7o-jRosTMOa6CFn6LZRkORSICQJHA_9V5MBv8AvbBIIg.PNG.casting96/%EC%88%98%EC%96%91%EB%8C%80%EA%B5%B0_1.png?type=w2" />
         <pubDate>2022-01-07 01:43:1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796860</guid>
      </item>
      <item>
         <title>김도은</title>
         <author>4995kjs</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805180</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919991910/8ad92db5a692dad7f3913c1aef49de38/3C844530_6339_453B_AB27_E6BD49740EA1.jpg" />
         <pubDate>2022-01-07 01:49:2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805180</guid>
      </item>
      <item>
         <title>윤채성</title>
         <author>4995kjs</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805608</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919991910/d29916fb8601f108b03b6891dc852d71/3445D0E4_F5CF_4056_90F5_794978014F39.jpg" />
         <pubDate>2022-01-07 01:49:4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805608</guid>
      </item>
      <item>
         <title>신재은</title>
         <author>4995kjs</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806089</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919991910/8a78a2c23e38502f0957f041727791ed/5215C7DE_7D47_44B8_AE98_6A3512836B6D.jpg" />
         <pubDate>2022-01-07 01:50:1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4995kjs/xzvlcg0ax37s5l32/wish/1979806089</guid>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