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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 국토 소개자료 만들기 by 이호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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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4-06-13 04:30: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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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소영,정린,조이현,김근호 소개자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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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s://padlet.com/arksolar/xu50rdfa7p72lv9d/wish/3026640543</link>
         <description><![CDATA[<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hanok.jeonju.go.kr/">http://hanok.jeonju.go.kr/</a> (공식홈페이지).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VNIcB3Sl" href="https://namu.wiki/w/%EC%9D%84%EC%82%AC%EC%A1%B0%EC%95%BD">을사조약</a>(1905년) 이후 대거 전주에 들어오게 된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VNIcB3Sl"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C%9D%B8">일본인</a>들이 처음 거주하게 된 곳은 서문 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천변이었다.(지금의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VNIcB3Sl U0zr9k+W" href="https://namu.wiki/w/%EA%B0%9D%EB%A6%AC%EB%8B%A8%EA%B8%B8">객리단길</a>이 이 권역에 포함된다) 서문 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지역으로 당시 성안과 성밖은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성곽은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존재했던 것이다. 양곡수송을 위해 전주~군산 가도가 개설(1907년)되면서 성곽의 서반부가 강제 철거되었고, 1911년말 성곽 동반부가 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이는 일본인들에게 성안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는데, 실제로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다가동과 중앙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市區改正)에 의하여 전주의 거리가 격자화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서문 일대에서만 번성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1930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930년대에 형성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洋風)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VNIcB3Sl" href="https://namu.wiki/w/%EC%84%A0%EA%B5%90%EC%82%AC">선교사</a>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색을 연출하게 되었다.<br>태조로에서 보면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VNIcB3Sl" href="https://namu.wiki/w/%EA%B2%BD%EA%B8%B0%EC%A0%84">경기전</a>이 속해있는 방면의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VNIcB3Sl" href="https://namu.wiki/w/%ED%95%9C%EC%98%A5">한옥</a>들은 일식가옥에 기와를 얹어놓은 느낌이 강하고,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VNIcB3Sl" href="https://namu.wiki/w/%EC%A0%84%EB%8F%99%EC%84%B1%EB%8B%B9">전동성당</a>이 속해있는 방면의 한옥들은 흔히 알고있는 한옥 느낌을 보여준다. 이는 현재의 태조로가 전주부성 성벽이었고 경기전 방면은 성벽 내부, 전동성당 방면은 성벽 외부였음을 생각하고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현재 오목대 관광안내소가 위치한 곳에는 마구간과 기마경찰대가 있는데 이곳이 옛날 일본군 기마대가 있었던 자리였다는 것 역시 성 내부 방면에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했다는 것을 증명한다.<br><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VNIcB3Sl" href="https://namu.wiki/w/%EA%B2%BD%EA%B8%B0%EC%A0%84">경기전</a> 동문방향에 위치한 경성house 숙박업소 역시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VNIcB3Sl"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20%EA%B2%BD%EC%B0%B0">일본 경찰</a>관사를 리모델링한 건물이고, 골목길엔 아직 미처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VNIcB3Sl" href="https://namu.wiki/w/%EB%A6%AC%EB%AA%A8%EB%8D%B8%EB%A7%81">리모델링</a>이 되지 않았거나 기와만 얹은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VNIcB3Sl" href="https://namu.wiki/w/%EC%A0%81%EC%82%B0%EA%B0%80%EC%98%A5">일본식 가옥</a>들도 제법 보인다. 사실 일본식 가옥 영향을 별로 받지 않은 건물들은 대부분 향교길 방면에 위치해 있으나, 정작 향교길은 향교 외 관광지로서의 상품성은 떨어져서 대부분 임대나 매매 플랜카드가 걸려있는 실정이다. 전주부성 복원계획으로 오히려 일식가옥지역들이 혜택을 받게 된 것을 보면 일종의 아이러니.</p><p><br>이상 나무위키입니당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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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13 04:38: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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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독도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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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경상북도 울릉근 울릉읍 독도안용복길3</p><p>독도는 &lt;삼국사기&gt;에 처음으로 '우산도'라고 처음 나와있다.</p><p> 신라지증왕(152년)때 이사부 장군이 독도를 신라의 땅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실록엔 (1454)우산(울릉도),무룽으로 실린다.</p><p> 신승동국여지람에는 (1531) 우산도(독도)가 울진현에 속한 조선의 영토라 나와있다.</p><p> 숙종실록땐(1728)</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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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13 04:42: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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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라북도 임실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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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임실 치즈마을,임실테마파크</p><p>임실군 성수면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앞에는 임실IC가 있다.</p><p>임실치즈를 바탕으로 유럽풍테마파크가 운영중이다.</p><p>매년 임실n치즈축제 열린다.</p><p>테마파크 안에는 임실치즈역사관,치즈캐슬,치즈레스토랑,뒤편에는 치즈키즈랜드,임실치즈팜랜드가 있다.</p><p><br></p><p>옥정호</p><p>옥정호는 임실군 운암면 일원에 섬진강댐으로 인해 생긴 인공호이며, 2023년 3월엔 섬진강 르세상스의 핵심인 옥정호 내</p><p>붕어섬을 연결하는 출렁다리가 정식 개장되었다. 옥정호 주변에는 물안개길, 생태탐방로가 조성되어있고 수변도로에는 벚꽃이 형성되어 매년 봄에 벚꽃을 볼 수있다. 앞으로도 진라인, 케이블카, 수상레저 조성등을 계획하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큰 관광지이기도 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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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13 04:51: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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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광화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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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nbsp;</p><p><strong>1395년(태조4년) 9월에 경복궁이 처음 지어졌을 때는 오문(午門, 현재의 흥례문)이 정문 구실을 하였다가, 이후 궁성을 추가로 두르면서 동문(건춘문), 서문(영추문)과 함께 1398년 ~ 1399년 사이에 창건되었다. 이 때의 규모는 현재와 같은 중층 3칸짜리였다. 1426년(세종 8년)에 광화문으로 이름을 고쳤다.</strong><br><strong>이에 관하여 태조 시기에도 이미 '광화문'으로 불렀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광화문'이라는 명칭은 세종 때 붙은 것이 맞다. 《태조실록》은 두 번에 걸쳐 찬집되었는데, 현존하는 《태조실록》은 1448년(세종 30년) 8월에 찬집된 본이기 때문에 편찬 과정에서 세종 재위기에 이미 쓴 '광화문'이란 이름을 그대로 삽입하였기 때문이다. 또 세종 전까지 쓴 이름은 '사정문(四正門)'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당시를 다룬 실록에서는 이런 이름이 발견되지 않는다.</strong><br><strong>비슷한 이름으로 1395년(태조 4년) 10월 7일 기사에 정도전이 경복궁의 각종 전각들의 이름을 지은 뜻을 밝히면서, '남쪽의 문(午門)을 정문(正門)이라 하였다'고 한 것을 두고 광화문의 원래 이름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이 때에는 궁성을 착공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실 흥례문을 지칭한 것이다. 창건 당시 기사에서 실제로 흥례문을 "오문(午門)"이라 지칭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광화문의 경우 세종 8년 광화문이란 이름을 얻기 전에는 그냥 궁성 "남문(南門)"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strong><br><strong>성종때인 1474년 3월 3일에는 경복궁을 수리하면서 광화문,흥례문(홍례문), 근정문에청기와를 덮으려 하였으나 정괄이 저지했다.훗날중종은 "경회루에 청기와를 올리려 하면서 꼭 정사를 처리하는 곳만을 청기와로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예시는 정사를 처리하는 곳 외에 청기와 건물이 존재했다면 들 수 없는 것이므로 경복궁의 청기와 건물이근정전과사정전뿐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strong></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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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13 05:07: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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