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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24 황청안 에세이 초안 by 황청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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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1-06-29 05:15: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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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24 황청안</title>
         <author>ddoghui1004</author>
         <link>https://padlet.com/ddoghui1004/xfuj8y9vewsihtih/wish/1629567171</link>
         <description><![CDATA[<div>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크고 작은 다양한 고통과 마주친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항상 시험한다. 인간을 몰아붙이고 한정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게 만든다.&nbsp; 하지만 그럼에도 소수의 고귀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그 속에서조차 삶의 희망을 보고, 그것을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이걸 쓰고 있는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들이 남긴 족적을 좇으며 극한의 상황 속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그러한 상황 속 행한 비겁자의 손짓에 대해 변명해보려 하지만, 이는 합리화될 수 있을지언정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이미 반례가 그 흔적을 지나온 길 아래 선명히 남긴 채 실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처럼 자신에게 변명하기 위해 집중한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자리에 남아있으려 한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죽어간 이들에게, 고통 속에 삶의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온전히 그들의 입장을 취할 수 없는&nbsp;망명인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우리가 그들의 입장에 대해서 삶의 의미는 당신들이 느끼진 못했을지언정 존재했다고 왈가왈부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벗어나 삶의 의미의 편린이라도 찾아보고자 지금도 고통 속에 남아있다. 혼자 고통을 짊어지고 가려는 회개의 길에서 벗어나, 서로 공감하고 감정을 표출하며 함께 이겨내려 하고 있다. 그것이 최선책일 수는 없더라도 차선이 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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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6-29 05:15: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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