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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감인문학 관점에서 바라본 감염병 by 교사손윤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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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9-18 09:44: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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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의광고 김윤하</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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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감염병의 윤리적 (사회,문화적) 의미</p><p><br/></p><p>감염병은 오랫동안 인류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그것은 한 사회의 제도, 문화, 가치관, 그리고 인간관계의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거울이 된다. </p><p>첫째, 감염병은 사회적 불평등을 드러낸다. 코로나19 시기에 방역 지침을 지킬 수 있는 여건은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았는데, 재택근무가 가능한 계층은 상대적으로 안전했지만 대면 노동을 하는 배달 기사나 돌봄 노동자, 의료진은 감염 위험에 크게 노출되었다. 이는 감염병이 사회 계급과 노동 환경, 경제적 조건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p><p>둘째, 감염병은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만들어낸다. 역사적으로 한센병 환자들이 ‘부정한 존재’로 낙인찍혀 격리되었던 적이 있고, HIV/AIDS 환자들이 도덕적 편견 속에서 배제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질병 그 자체보다 사회가 가진 두려움과 편견이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음을 알려준다. 결국 감염병은 한 사회의 차별구조와 배타성을 드러내는 사건이 된다.</p><p>셋째, 감염병은 문화적 관습과 규범을 변화시킨다. 코로나19 이후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비대면 생활양식은 단순한 방역 행위가 아니라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을 새롭게 정의한 문화적 실천이었다.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예의였던 시기에서, 얼굴을 가리는 것이 배려의 표현으로 전환된 것은 감염병이 사회 규범을 재구성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p><p>마지막으로, 감염병은 사회적 기억과 정체성을 형성한다. 한국 사회에서 사스, 메르스, 코로나19는 단순한 전염병 사건이 아니라, 정부의 대응 능력, 국민과 국가 간의 신뢰 문제와 결부되어 집단적 기억으로 남았다. 이러한 기억은 다음 세대에도 교훈과 트라우마로 이어지며, 사회적 정체성의 일부를 구성한다. </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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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8 09:57: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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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발곡고 홍류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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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strong>천연두 박멸을 위한 전세계적 협력과 공중 보건의 탄생</strong></p><p><br/></p><p>천연두는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괴롭힌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이다. 사망률이 매우 높았으며 생존자들에게도 흉터를 남기는 끔찍한 병이었다. 이 질병은 오랜기간동안 신의 저주나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인류의 발전으로 백신이 발명되고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과학적 지식과 행동으로 전염병을 이겨낼 수 있다고 사고방식이 변화하게 된다. 또한 인류의 재앙을 막기 위해서 전 세계의 공동목표인 안전과 발전을 위해 정치적 장벽을 허물기도 하는 등 시민의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는 계기가 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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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8 10:01: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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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의고 서원진</title>
         <author>a01027976319</author>
         <link>https://padlet.com/hanbitnurihighs/x3mcchp6hhp1dhf5/wish/3591764154</link>
         <description><![CDATA[<p>116세기 스페인의 아즈텍과 잉카 침략으로 서양은 신대륙을 정복하면서 막대한 지하자원과 풍부한 농업생산력을 얻었다. 서양 국가의 무기는 금속인 반면에 언주민들은 몽둥이가 전부였다. 그들은 총과 대포에 도망다니기 일쑤였다. 오랫동안 페스트 같은 전염병이 창권했던 유럽 사람들은 목욕을 하면 페스트에 걸린다고 믿었기 때문에 목욕을 하지 않아 위생상태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오랫동안 배를 타고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원주민보다 더 더러웠다. 이때문에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들어가자 마자 순식간에 원주민들에게 전염병이 퍼졌고, 수많은 원주민들이 죽었다. 스페인 군대느,ㄴ 아즈텍의 황제 몬테수마의 초청을 받은 자리에서 몬테수마를 인질로 잡고 금은보화를 약탈했으며.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이에 분노한 아즈텍이 스페인군을 몰아냈다. 겉보기엔 아즈텍의 승리였지만 스페인인에게서 비롯된 천연두가 창궐하면서 수많으 사상자가 속출했다.</p><p>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것을 보면"스페인인들이 도망친 뒤에 끔찍한 역병이 우릴 공격했다. 얼굴과 가슴에 염증이 생기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염증의 고통이 너무나 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수많은 이들이 염증에 걸려 죽고. 먹지 못해 굶어 죽었다. 이렇게 두 달 동안 고생하던 와중 스페인 놈들이 또 쳐들어왔다" 2000만명에 달하는 아즈텍인이 160만명으로 급감하였다. 168명의 군대가 8만의 잉카제국 군대를 무너뜨린 것도 천연두 때문이였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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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8 10:02: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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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의여고 하영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bitnurihighs/x3mcchp6hhp1dhf5/wish/3591766913</link>
         <description><![CDATA[<p>감염병: 스페인 독감</p><p><br/></p><p>- 스페인 독감은 1918년에 발생했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이다. 20세기에 들어서서 가장 크게 유행하고 치명률이 높았던 전염병이다. </p><p><br/></p><p>-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H1N1)에 의한 스페인 독감은 1918년 봄의 1차 유행과 가을~겨울에 걸친 2차 유행으로 크게 구분되는데, 이 2차 유행은 인류역사에 대재앙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유행시기에 세계적으로 적게는 2천만명, 많게는 8천만명 정도가 독감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는 당시 세계인구의 약 1/50에 해당하는 4~5천만명이 독감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은 1천만명이 사망한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었다</p><p>1918년 유행 당시 특이한 점은 젊은 인구의 높은 사망률로 전체 사망자의 대부분이 65세 이하였으며, 특히 20~45세가 전체 사망자의 60%를 차지하였다</p><p><br/></p><p>- 미국 캔자스에서 발병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연합국은 이를 ‘스페인 독감’으로 불렀다. 전시에는 적국에 이로운 상황이 알려지지 않도록 전시검열을 했다. 그러나 스페인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참전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론에서 이 사태가 깊이 있게 다뤄졌다고 한다.</p><p><br/></p><p>-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사람이 1,500만 명 정도였는데 비해, 스페인 독감으로 1,700만~5,000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서둘러 매듭지어졌고,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독감 예방 접종 문화가 시작되었다.</p><p><br/></p><p>- 감기에 걸린 듯한 증상을 보이다가 폐렴으로 발전하는가 싶더니 환자의 피부에서 산소가 빠져나가면서 검은빛으로 변해 죽어가는 병이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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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8 10:04: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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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의광고 이지원</title>
         <author>9cjwy4gtny</author>
         <link>https://padlet.com/hanbitnurihighs/x3mcchp6hhp1dhf5/wish/3591770723</link>
         <description><![CDATA[<p><strong>6세기 무렵 </strong>중국을 통해 들어온것으로 추정되는 천연두는 사람을 통해서 전염되는 전염병이며 고려시대,조선시대,19세기 말까지 주기적으로 유행했고 증상은 발열,두통,몸살,구토와 전신에 곰보자국 흉터를 일으키며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했다.사람들은 천연두를 마마님으로 부르고 굿과 제사로 달래려는 시도를 하며 종교적,민속적이 발전했지만 이후 지석영의 종두법.근대 의학의 도입되며 이러한 풍습은 사라졌다.천연두는 근대 의학 도입에 이바지하였으며 국가의 보건 행정 발전에 기여하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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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8 10:07: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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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석고 최현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bitnurihighs/x3mcchp6hhp1dhf5/wish/3591776256</link>
         <description><![CDATA[<p>코로나 유행으로 인한 위생관념의 발전</p><p><br/></p><p><br/></p><p>최근에 유행했던 코로나 19( covid 19) 라는 전염병은 호흡기감염병인 만큼 기침, 말할 때 나오는 침등으로 감염되는데, 감염 시에는 열, 기침, 호흡곤란, 심하면 사망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에는 감염병에 걸렸을 때 마스크 끼기, 자가격리하기, 손소독제 하기 등의 위생관념이 있기는 했지만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자 전 세계의 사람들이 위생관념이 바이러스 예방, 치료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여 전 세계적인 위생관념의 수준을 높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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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8 10:12: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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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의광고 박서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bitnurihighs/x3mcchp6hhp1dhf5/wish/3591780232</link>
         <description><![CDATA[<p>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단순히 수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전염병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 문화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인문학적 사건이었다.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희생되면서 사람들은 죽음을 일상적으로 체감하게 되었고, 이는 인간의 존재 의미와 삶의 무상함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촉발시켰다. 또한 교회가 감염병을 막지 못하고 무력한 모습을 보이자 신 중심적 세계관에 대한 회의가 커졌고, 인간 스스로의 가치와 주체성을 강조하는 르네상스적 사고가 확산되었다. 문학과 예술에서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나 ‘죽음의 무도’와 같은 작품들이 나타나, 감염병 속에서 인간이 느낀 공포와 혼란, 그리고 죽음 앞에서의 평등을 표현하였다. 흑사병은 이처럼 단순한 의학적 재난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사유의 전환을 불러온 계기였다. 21세기 인류가 경험한 코로나19 또한 이와 유사한 인문학적 의미를 지닌다. 코로나19는 의학적·과학적 문제를 넘어 인간의 일상, 사회적 관계, 나아가 문화적 가치관까지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았다. 전 세계 사람들은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봉쇄 정책을 경험하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했고, 기술의 발전을 통해 원격 수업과 재택근무, 비대면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이는 인간이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만남과 교류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했다. 또한 코로나19는 감염병이 불평등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의료 체계가 취약한 사회적 약자일수록 피해가 컸고, 이는 인간 사회가 평등과 연대를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였다. 결국 흑사병과 코로나19라는 두 감염병 사례는 시대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인간에게 삶과 죽음, 공동체와 연대, 그리고 문명과 가치의 문제를 다시금 묻는 계기가 되었다. 흑사병이 중세 사회의 신 중심적 세계관을 흔들고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사상적 변화를 촉발했다면, 코로나19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 의존, 인간관계의 단절,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성찰하게 하며 새로운 가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감염병은 단순히 생물학적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방식 전체를 바꾸는 거대한 인문학적 사건임을 알 수 있다.</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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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8 10:15: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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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의광고 신이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bitnurihighs/x3mcchp6hhp1dhf5/wish/3591785788</link>
         <description><![CDATA[<p>결핵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치명적인 감염병 중 하나로,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도 흔적이 발견될 만큼 그 기원이 오래되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소모병’이라 불리며 환자가 점차 야위어 가는 모습 때문에 두려움과 신비로움의 대상이 되었고, 종종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질환으로 인식되었다. 18~19세기 산업혁명 시기에는 급격한 도시화와 과밀한 주거 환경, 빈곤과 위생 문제로 결핵이 대규모로 확산되어 ‘백색 페스트’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이 시기의 결핵은 단순한 질병을 넘어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으며, 많은 젊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결핵으로 요절하면서 문학과 예술 속에서도 빈번히 다루어졌다. 실제로 결핵은 비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병으로 묘사되었고, 이는 사회적 인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p><p><br/></p><p>과학의 발전은 결핵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82년 로베르트 코흐가 결핵균을 발견하면서 질병의 원인이 세균임이 밝혀졌고, 이후 예방과 치료를 위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세기 중반 항결핵제가 개발되면서 결핵은 치료 가능한 질환으로 전환되었으나, 치료 기간이 길고 약물 부작용이 큰 탓에 완치율은 여전히 낮았다. 게다가 20세기 후반부터는 항생제 내성 결핵이 확산되면서 세계 보건에 또 다른 위협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도 매년 수백만 명이 결핵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특히 저소득 국가와 의료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 높은 발병률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결핵이 단순히 의학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보건 정의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p><p><br/></p><p>결국 결핵의 역사는 질병을 극복하려는 인류의 노력과 동시에, 질병이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결핵은 단순히 인체를 공격하는 세균 감염병에 그치지 않고, 시대적 환경과 인간의 삶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의미를 지니며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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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8 10:20: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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