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rss version="2.0">
   <channel>
      <title>(사회) 우리 지역의 국가유산 조사하기 by 이은지 선생님</title>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5-18 23:56:41 UTC</pubDate>
      <lastBuildDate>2025-05-19 01:38:28 UTC</lastBuildDate>
      <webMaster>hello@padlet.com</webMaster>
      <image>
         <url></url>
      </image>
      <item>
         <title>조사 내용에 꼭 들어가야 할 내용</title>
         <author>niceyej</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091640</link>
         <description><![CDATA[<ol><li><p>제목에 번호 이름을 꼭 씁니다.</p><p>(예) 22번 이은지</p></li><li><p>내가 조사한 국가유산 이름</p></li><li><p>지정일(혹은 등록일)</p></li><li><p>문화유산, 무형유산 중 어떠한 것인지</p></li><li><p>국가유산 사진 첨부</p></li><li><p>특징/가치 5줄 이상</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5-19 00:11:4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091640</guid>
      </item>
      <item>
         <title>16번 이하명</title>
         <author>2240116_2</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31095</link>
         <description><![CDATA[<p>문화유산의 첨성대,등록일:1962년 12월 20일</p><p>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를 올리고 맨 위에 정자형의 정상부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p><p><br></p><p>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www.google.com/imgres?imgurl=https%3A%2F%2Fupload.wikimedia.org%2Fwikipedia%2Fcommons%2Fthumb%2Fe%2Fe2%2FCheomseongdae-1.jpg%2F1200px-Cheomseongdae-1.jpg&amp;tbnid=zhBvC5REX2lrNM&amp;vet=1&amp;imgrefurl=https%3A%2F%2Fko.wikipedia.org%2Fwiki%2F%25EC%25B2%25A8%25EC%2584%25B1%25EB%258C%2580&amp;docid=xiZzgldyxOgnPM&amp;w=1200&amp;h=1602&amp;hl=ko-KR&amp;source=sh%2Fx%2Fim%2Fm1%2F4&amp;kgs=5104f4079b3affe2" />
         <pubDate>2025-05-19 00:33:2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31095</guid>
      </item>
      <item>
         <title>3번 김아진 </title>
         <author>2240103_4</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43461</link>
         <description><![CDATA[<p>국가유산 이름:안중근의사 유목 - 운재</p><p>지정일: 1972.08.16</p><p>문화유산</p><p>특징:「안중근의사유묵-운재(安重根義士遺墨-雲齋)」는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뒤 여순감옥(旅順監獄)에서 1910년 3월 26일 사망하기 전까지 옥중에서 휘호한 유묵을 일괄ㆍ지정한 것이다. 일괄 지정된 이 작품들은 1910년 2월과 3월에 쓴 것으로 글씨 좌측에 “경술이(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안중근서(庚戌二(三)月, 於旅順獄中, 大韓國人安重根書)”라고 쓴 뒤 손바닥으로 장인(掌印)을 찍었다.<br><br>글씨 내용은 「논어(論語)」ㆍ「사기(史記)」 구절 등 교훈적인 것이 많으며, 자신의 심중을 나타낸 것, 세상의 변함을 지적한 것, 일본에 경계하는 것, 이밖에 어떤 사람의 당호(堂號)를 써준 것 등이다.<br><br>유묵 대부분은 당시 검찰관, 간수 등 일본인에게 써준 것들이다. 그중 "안중근의사유묵-욕보동양선개정계시과실기추회하"는 러일전쟁 때 종군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여순감옥에서 근무했던 사람[오리타타다스(折田督)]이 받은 것으로, 8ㆍ15 광복으로 그의 가족들이 일본으로 귀국할 때 조카[오리타간지(折田幹二)]에게 넘겨주었고, 그것이 1989년 2월 20일 단국대학교에 기증되었다. 또 "안중근의사유묵-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는 안의사 수감 당시 여순감옥에서 경관을 지냈던 이의 손자[야기마사즈미(八木正澄)]가 2002년 10월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한 것이다. 또 "안중근의사유묵-국가안위노심초사", "안중근의사유묵-위국헌신군인본분"는 앞쪽에 “야스오까 검찰관에게 증여한다(贈安岡檢察官)”라고 적었듯이 당시 관련했던 검찰관에게 써준 것이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623903782/fc685959cd8383cf80b5a80bb867091f/17476152412291608833993189724526.jpg" />
         <pubDate>2025-05-19 00:40:0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43461</guid>
      </item>
      <item>
         <title>6번 김하윤 </title>
         <author>2240106_5</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63707</link>
         <description><![CDATA[<p>줄타기</p><p>무형유산</p><ol start="1976"><li><p>6. 16</p></li></ol><p>줄타기는 공중에 맨 줄 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와 발림을 섞어가며 여러 가지 재주를 보여주는 놀이이다. 줄 위를 마치 얼음지치듯 미끌어지며 나가는 재주라 하여 '어름' 또는 '줄얼음타기'라고도 한다. 주로 음력 4월 15일이나 단오날, 추석 등 명절날에 연희되었으며, 개인의 초청에 응해서 돈을 받고 놀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줄타기는 조선시대에 두 계통으로 나뉘어 발달했다. 하나는 주로 양반층을 위해 공연되었던 광대줄타기로 순수하게 줄타기로만 구성되어 기술의 종류나 솜씨에서 뛰어났다. 다른 하나는 남사당패의 어름줄타기로 서민들을 위해 공연되었던 만큼 재담이나 오락성이 뛰어났다.</p><p><br></p><p><br></p><p>줄타기는 줄광대와 어릿광대, 삼현육각잡이로 편성된다. 줄광대는 주로 줄 위에서 놀고 어릿광대는 땅 위에 서서 재담을 하며 삼현육각잡이는 줄 밑 한편에 한 줄로 늘어앉는다. 줄의 높이는 일정하지 않으나 대략 3m이고, 길이는 10m정도이다. 줄타기는 주로 훈련이 잘 된 남자가 했지만 때로는 여자가 타는 수도 있었다. 줄 위에 올라갈 때는 손에 부채나 수건을 들었는데 동작이 멋있어 보이기 위한 것도 있지만,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사용되었다. 줄을 탈 때에는 아래에 있는 잽이들이 장구, 피리, 해금 등으로 흥을 돋우어 광대들의 동작을 율동적이고 날렵하게 만들었다. 줄타기의 기교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여 가지로, 줄 위에서 걷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동작이며 뒤로 걸어가기, 줄 위에서 한 발로 뛰기, 걸터앉고 드러눕기도 하며 때로는 재주를 넘고 떨어지는 척 해서 구경꾼들을 놀라게 한다. 줄타기를 할 때에는 단순히 줄만 타지 않고, 노래를 부르거나 파계승과 타락한 양반을 풍자한 이야기로 익살을 떨고, 바보짓이나 곱추짓, 여자의 화장하는 모습들을 흉내내 구경꾼들을 즐겁게 했다.</p><p><br></p><p><br></p><p>우리나라의 줄타기는 외국의 줄타기와 달리 줄만 타는 몸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노래와 재담을 곁들여 줄타는 사람과 구경꾼이 함께 어우러진 놀이판을 이끄는데 그 의의가 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623908903/c40484fcf7152d05deb1f8d0edc8b667/17476156959888669290280248975681.jpg" />
         <pubDate>2025-05-19 00:51:4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63707</guid>
      </item>
      <item>
         <title>8번 박서균 </title>
         <author>2240108_6</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69409</link>
         <description><![CDATA[<p>반구정 </p><p>1983.09.19</p><p>문화유산</p><p>반구정’은 조선 시대의 황희(黃喜, 1363년-1452년)가 관직에서 물러나 남은 인생을 보내던 곳으로, 임진강 주변 언덕에 세운 정자(亭子)를 말한다. 주변에 낙하진(洛河津)과 가깝게 있어 ‘낙하정(落河亭)’이라 하였으나, 임진강 주변을 가득 채운 갈매기들과 함께 놀겠다고 의미로 ‘반구정’으로 불렀다고 한다. 반구정은 조선 중기 의 학자였던 허목(許穆)이 지은 &lt;반구정기(伴鷗亭記)&gt;에 “정자는 파주 서쪽 15리 임진강 아래에 있고 조수(潮水; 밀물과 썰물) 때마다 백구(白鷗; 흰 갈매기)가 강 위로 모여들어 들판 모래사장에 가득하다.”라고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p><p><br></p><p>반구정은 한국 전쟁 때 모두 불타 없어졌었다. 이후 후손들이 부분적으로 복구해 오다가, 1998년에 ‘유적지 정화사업’의 하나로 반구정을 새로 지었다. 현재는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의 ‘황희 선생 유적지’(기념관, 영당, 앙지대 등) 안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 규모는 전면 2칸, 옆면 2칸이고, 지붕은 겹처마를 두른 모임지붕으로 지붕 꼭대기에 절병통(節甁桶; 모임지붕 꼭대기에 올려놓은 호로병 같은 장식 기와)이 놓여 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623902515/74cc0f635f49ac55586f2377802b5670/17476160070658783468400262559396.jpg" />
         <pubDate>2025-05-19 00:55:1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69409</guid>
      </item>
      <item>
         <title>5번김태민</title>
         <author>2240105_4</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72545</link>
         <description><![CDATA[<p>문화유산</p><p>동의보감</p><p>1610.02.13</p><p>동의보감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한의학 전서입니다. 국내에서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문화유산 중 기록유산에 속합니다. 동의보감은 조선시대 어의 허준이 편찬한 것으로,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한의학의 대표적인 서적입니다. </p><p>동의보감은 허준이 편찬한 조선 시대 대표적인 의학서로, 국보 제31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특히, 동의보감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어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p><p><br/></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623902720/a3a652d614ab99071a70bec28cb4734a/Fug8hwn6F23GFwmIVBzYisIqQo7OrXUfsOFlst6CwJyUUKO_fSLDW2oDYru5N9oq6JPRqxkKLpR6eA9w7T9YGQ.webp" />
         <pubDate>2025-05-19 00:57:1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72545</guid>
      </item>
      <item>
         <title>2번 김서진</title>
         <author>2240102_6</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72728</link>
         <description><![CDATA[<p>서울 암사동 유적</p><p>1979년 7월26일</p><p>문화유산</p><p>아차산성을 마주하는 한강변에 있는 신석기시대 유적이다.</p><p><br/></p><p>3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방사선탄소측정에 따르면 B·C 4,000∼3,000년기에 걸친 유적이다. 20여 기의 집터와 딸린시설, 돌무지시설이 드러났다. 집터는 바닥을 둥글거나 모서리를 죽인 네모꼴로 팠으며 크기는 길이 5∼6m, 깊이 70∼100㎝ 정도이다. 집터 가운데에 돌을 두른 화덕자리도 보이며, 입구는 주로 남쪽을 향한다. 기둥구멍은 보통 4개이며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바닥이 뾰족한 빗살무늬 토기가 많이 나왔으며 돌도끼, 그물추, 불에 탄 도토리 등이 출토되었다.</p><p><br/></p><p>한강유역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유적이며, 지금까지 확인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중 최대의 마을단위 유적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당시 생활모습을 살필 수 있는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 신석기인의 문화를 추측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p><p><br/></p><p><br/></p><p><br/></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623904206/7ee8e9aa4fe905564e9088a94845f24f/17476157495252818911360426065742.jpg" />
         <pubDate>2025-05-19 00:57:2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72728</guid>
      </item>
      <item>
         <title>18번 정승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75506</link>
         <description><![CDATA[<p>문화유산 파주용미리 마애이 불입상 1963년1월21일</p><p>거대한 천연 암벽에 2구의 불상을 우람하게 새겼는데, 머리 위에는 돌갓을 얹어 토속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p><p><br/></p><p>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까닭에 신체 비율이 맞지 않아 굉장히 거대한 느낌이 든다. 이런 점에서 불성(佛性)보다는 세속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는 지방화된 불상이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圓笠佛)은 목이 원통형이고 두손은 가슴앞에서 연꽃을 쥐고 있다. 오른쪽의 4각형 갓을 쓴 방립불(方笠佛)은 합장한 손모양이 다를 뿐 신체조각은 왼쪽 불상과 같다.</p><p><br/></p><p>지방민의 구전에 의하면, 둥근 갓의 불상은 남상(男像), 모난 갓의 불상은 여상(女像)이라 한다. 고려 선종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元信宮主)까지 맞이했지만, 여전히 왕자가 없었다. 이것을 못내 걱정하던 궁주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道僧)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長芝山)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 틈에 사는 사람들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꿈을 깬 궁주가 하도 이상하여 왕께 아뢰었더니 왕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내어 알아 오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고 보고하였다. 왕은 즉시 이 바위에다 두 도승을 새기게 하여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했다는 것이다.</p><p><br/></p><p>이 불상들은 고려시대의 조각으로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탄생설화가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예로 높이 평가된다.</p><p><br/></p><p><br/></p><p><br/></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857785715/4789f2808e653b287a081bf93894069f/17476162753531649870898308936183.jpg" />
         <pubDate>2025-05-19 00:59:1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75506</guid>
      </item>
      <item>
         <title>19번조하은 </title>
         <author>2240119_1</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82472</link>
         <description><![CDATA[<p>1983년9월19일</p><p>문화유산 반구정 반구정’은 조선 시대의 황희(黃喜, 1363년-1452년)가 관직에서 물러나 남은 인생을 보내던 곳으로, 임진강 주변 언덕에 세운 정자(亭子)를 말한다. 주변에 낙하진(洛河津)과 가깝게 있어 ‘낙하정(落河亭)’이라 하였으나, 임진강 주변을 가득 채운 갈매기들과 함께 놀겠다고 의미로 ‘반구정’으로 불렀다고 한다. 반구정은 조선 중기 의 학자였던 허목(許穆)이 지은 &lt;반구정기(伴鷗亭記)&gt;에 “정자는 파주 서쪽 15리 임진강 아래에 있고 조수(潮水; 밀물과 썰물) 때마다 백구(白鷗; 흰 갈매기)가 강 위로 모여들어 들판 모래사장에 가득하다.”라고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p><p><br></p><p>반구정은 한국 전쟁 때 모두 불타 없어졌었다. 이후 후손들이 부분적으로 복구해 오다가, 1998년에 ‘유적지 정화사업’의 하나로 반구정을 새로 지었다. 현재는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의 ‘황희 선생 유적지’(기념관, 영당, 앙지대 등) 안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 규모는 전면 2칸, 옆면 2칸이고, 지붕은 겹처마를 두른 모임지붕으로 지붕 꼭대기에 절병통(節甁桶; 모임지붕 꼭대기에 올려놓은 호로병 같은 장식 기와)이 놓여 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ulPageNo=1&amp;region=2&amp;searchCondition=%eb%b0%98%ea%b5%ac%ec%a0%95&amp;searchCondition2=&amp;s_kdcd=31&amp;s_ctcd=31&amp;ccbaKdcd=31&amp;ccbaAsno=00120000&amp;ccbaCtcd=31&amp;ccbaCpno=3413100120000&amp;ccbaCndt=&amp;ccbaLcto=00&amp;stCcbaAsno=&amp;endCcbaAsno=&amp;stCcbaAsdt=&amp;endCcbaAsdt=&amp;ccbaPcd1=&amp;chGubun=&amp;header=region&amp;returnUrl=%2fheri%2fcul%2fculSelectRegionList.do&amp;pageNo=1_1_3_1&amp;sngl=Y" />
         <pubDate>2025-05-19 01:03:2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82472</guid>
      </item>
      <item>
         <title>9번 소이현</title>
         <author>2240109_4</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84186</link>
         <description><![CDATA[<p>안중근 의사 유묵 - 운재</p><p>문화유산</p><p>1972.08.16</p><p><br></p><p>안중근의사유묵-운재(安重根義士遺墨-雲齋)」는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뒤 여순감옥(旅順監獄)에서 1910년 3월 26일 사망하기 전까지 옥중에서 휘호한 유묵을 일괄ㆍ지정한 것이다. 일괄 지정된 이 작품들은 1910년 2월과 3월에 쓴 것으로 글씨 좌측에 “경술이(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안중근서(庚戌二(三)月, 於旅順獄中, 大韓國人安重根書)”라고 쓴 뒤 손바닥으로 장인(掌印)을 찍었다.</p><p><br></p><p>글씨 내용은 「논어(論語)」ㆍ「사기(史記)」 구절 등 교훈적인 것이 많으며, 자신의 심중을 나타낸 것, 세상의 변함을 지적한 것, 일본에 경계하는 것, 이밖에 어떤 사람의 당호(堂號)를 써준 것 등이다.</p><p><br></p><p>유묵 대부분은 당시 검찰관, 간수 등 일본인에게 써준 것들이다. 그중 "안중근의사유묵-욕보동양선개정계시과실기추회하"는 러일전쟁 때 종군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여순감옥에서 근무했던 사람[오리타타다스(折田督)]이 받은 것으로, 8ㆍ15 광복으로 그의 가족들이 일본으로 귀국할 때 조카[오리타간지(折田幹二)]에게 넘겨주었고, 그것이 1989년 2월 20일 단국대학교에 기증되었다. 또 "안중근의사유묵-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는 안의사 수감 당시 여순감옥에서 경관을 지냈던 이의 손자[야기마사즈미(八木正澄)]가 2002년 10월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한 것이다. 또 "안중근의사유묵-국가안위노심초사", "안중근의사유묵-위국헌신군인본분"는 앞쪽에 “야스오까 검찰관에게 증여한다(贈安岡檢察官)”라고 적었듯이 당시 관련했던 검찰관에게 써준 것이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623906209/f504d28e4d5bca4fc18860de3218638a/17476166309233578071497580070917.jpg" />
         <pubDate>2025-05-19 01:04:2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84186</guid>
      </item>
      <item>
         <title>11번 안성하 </title>
         <author>2240111_7</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88918</link>
         <description><![CDATA[<p>태고사 원증국사탑 문화유산,등록일:1983년 12월27일,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고려 후기의 승려인 원증국사 보우의 사리탑으로, 3단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위로 탑신(塔身)을 올린 후 독특한 모습의 머리장식을 얹었다.</p><p><br></p><p>기단의 맨 밑단이 되는 4각의 아래받침돌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새겼으며, 그 윗면에는 굵은 선으로 연꽃무늬를 새겨 두었다. 8각의 가운데받침돌은 각 모서리에 원기둥을 새긴 후 면마다 큼직한 꽃무늬를 새겨 장식하였다. 원형에 가까운 윗받침돌은 굵은 선으로 연꽃을 새겼고, 꽃잎 안에 고사리무늬를 두었다. 탑신의 몸돌은 원형으로 위쪽이 좁아져서 지붕돌 밑면에 들어 맞게 되어있다. 지붕돌은 처마가 거의 수평을 이루며, 각 귀퉁이마다 꽃장식이 투박하게 솟아 있다.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이 있다.</p><p><br></p><p>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비의 건립이 고려 우왕 11년(1385)이므로, 이 사리탑은 그 이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www.google.com/imgres?imgurl=https%3A%2F%2Fgjicp.ggcf.kr%2Fstorage%2Fupload%2F2023%2F02%2F28%2FLk4XXnuP6IK1MaV01ZT30LRAuc9SjjQDcfHN0jTS.jpg&amp;tbnid=e30qkfYIqy0NyM&amp;vet=1&amp;imgrefurl=https%3A%2F%2Fgjicp.ggcf.kr%2FmediaObjects%2F97&amp;docid=xcST25MNQ7-HrM&amp;w=573&amp;h=800&amp;hl=ko-KR&amp;source=sh%2Fx%2Fim%2Fm1%2F4&amp;kgs=fca71c4022685358" />
         <pubDate>2025-05-19 01:06:5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88918</guid>
      </item>
      <item>
         <title>4번 김은서 </title>
         <author>2240104_5</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89721</link>
         <description><![CDATA[<p>사적 파주 칠중산 2002.1.29 </p><p>문화유산 </p><p>"칠중성은 해발 147m의 중성산 정상부와 그 남서쪽에 위치한 해발 142m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축조한 퇴뫼식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603m이고 남북 폭은 198m, 동서 폭은 168m이다. 전체 높이는 북동쪽이 가장 높고 서벽에 비해 동벽 부분이 현저히 낮은 형태를 보이고 있다.</p><p><br></p><p>임진강 중류의 남쪽 연안에 위치하고 있어 관서지방과 한강유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삼국시대에 많은 전투가 있었다. 신라와 고구려의 전쟁이 이 성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시 나당연합군에 의한 고구려 침공 때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에는 신라와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그 역할이 매우 컸던 산성이다.칠자명의 평기와와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는 등 우리나라 고대사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사적 학술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623920043/6103f0589ec61ea49fcee83dcdffbf86/17476156142442190817693958665430.jpg" />
         <pubDate>2025-05-19 01:07:2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89721</guid>
      </item>
      <item>
         <title>17 임진서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92120</link>
         <description><![CDATA[<p>   </p><p><br></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www.sancheong.go.kr/tour/contents.do?key=6355" />
         <pubDate>2025-05-19 01:08:4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92120</guid>
      </item>
      <item>
         <title>20번 조항건</title>
         <author>2240120</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97905</link>
         <description><![CDATA[<p>등록일 1972.08.16(安重根義士遺墨-雲齋)」는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뒤 여순감옥(旅順監獄)에서 1910년 3월 26일 사망하기 전까지 옥중에서 휘호한 유묵을 일괄ㆍ지정한 것이다. 일괄 지정된 이 작품들은 1910년 2월과 3월에 쓴 것으로 글씨 좌측에 “경술이(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안중근서(庚戌二(三)月, 於旅順獄中, 大韓國人安重根書)”라고 쓴 뒤 손바닥으로 장인(掌印)을 찍었다.</p><p><br/></p><p>글씨 내용은 「논어(論語)」ㆍ「사기(史記)」 구절 등 교훈적인 것이 많으며, 자신의 심중을 나타낸 것, 세상의 변함을 지적한 것, 일본에 경계하는 것, 이밖에 어떤 사람의 당호(堂號)를 써준 것 등이다.</p><p><br/></p><p>유묵 대부분은 당시 검찰관, 간수 등 일본인에게 써준 것들이다. 그중 "안중근의사유묵-욕보동양선개정계시과실기추회하"는 러일전쟁 때 종군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여순감옥에서 근무했던 사람[오리타타다스(折田督)]이 받은 것으로, 8ㆍ15 광복으로 그의 가족들이 일본으로 귀국할 때 조카[오리타간지(折田幹二)]에게 넘겨주었고, 그것이 1989년 2월 20일 단국대학교에 기증되었다. 또 "안중근의사유묵-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는 안의사 수감 당시 여순감옥에서 경관을 지냈던 이의 손자[야기마사즈미(八木正澄)]가 2002년 10월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한 것이다. 또 "안중근의사유묵-국가안위노심초사", "안중근의사유묵-위국헌신군인본분"는 앞쪽에 “야스오까 검찰관에게 증여한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images.app.goo.gl/dJqtk" />
         <pubDate>2025-05-19 01:11:4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97905</guid>
      </item>
      <item>
         <title>10번신경민 </title>
         <author>2240110_4</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98260</link>
         <description><![CDATA[<p>예산수덕사</p><p>지정일</p><p>1962년12월20일 문화유산  수덕사는 덕숭산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 절에 남겨진 기록에는 백제 후기 숭제법사가 처음 짓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다시 고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 다른 기록에는 백제 법왕 1년(599)에 지명법사가 짓고 원효가 다시 고쳤다고도 전한다.</p><p><br></p><p>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p><p><br></p><p>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 받고 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ulPageNo=1&amp;region=2&amp;searchCondition=&amp;searchCondition2=&amp;s_kdcd=00&amp;s_ctcd=34&amp;ccbaKdcd=11&amp;ccbaAsno=00490000&amp;ccbaCtcd=34&amp;ccbaCpno=1113400490000&amp;ccbaCndt=&amp;ccbaLcto=41&amp;stCcbaAsno=&amp;endCcbaAsno=&amp;stCcbaAsdt=&amp;endCcbaAsdt=&amp;ccbaPcd1=&amp;chGubun=&amp;header=region&amp;returnUrl=%2fheri%2fcul%2fculSelectRegionList.do&amp;pageNo=1_1_3_1&amp;sngl=Y" />
         <pubDate>2025-05-19 01:11:5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98260</guid>
      </item>
      <item>
         <title>1번공민서</title>
         <author>2240101_4</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99801</link>
         <description><![CDATA[<p>안중군 의사 유목</p><p><br></p><p>1972. 08.16</p><p>안중근의사유묵-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安重根義士遺墨-歲寒然後知松栢之不彫)」는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뒤 여순감옥(旅順監獄)에서 1910년 3월 26일 사망하기 전까지 옥중에서 휘호한 유묵을 일괄ㆍ지정한 것 중의 하나이다. 일괄 지정된 이 작품들은 1910년 2월과 3월에 쓴 것으로 글씨 좌측에 “경술이(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안중근서(庚戌二(三)月, 於旅順獄中, 大韓國人安重根書)”라고 쓴 뒤 손바닥으로 장인(掌印)을 찍었다.<br><br>글씨 내용은 「논어(論語)」ㆍ「사기(史記)」 구절 등 교훈적인 것이 많으며, 자신의 심중을 나타낸 것, 세상의 변함을 지적한 것, 일본에 경계하는 것, 이밖에 어떤 사람의 당호(堂號)를 써준 것 등이다.<br><br>유묵 대부분은 당시 검찰관, 간수 등 일본인에게 써준 것들이다. 그중 "안중근의사유묵-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은 러일전쟁 때 종군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여순감옥에서 근무했던 사람[오리타타다스(折田督)]이 받은 것으로, 8ㆍ15 광복으로 그의 가족들이 일본으로 귀국할 때 조카[오리타간지(折田幹二)]에게 넘겨주었고, 그것이 1989년 2월 20일 단국대학교에 기증되었다. 또 "안중근의사유묵-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는 안의사 수감 당시 여순감옥에서 경관을 지냈던 이의 손자[야기마사즈미(八木正澄)]가 2002년 10월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한 것이다. 또 "안중근의사유묵-국가안위노심초사", "안중근의사유묵-위국헌신군인본분"는 앞쪽에 “야스오까 검찰관에게 증여한다(贈安岡檢察官)”라고 적었듯이 당시 관련했던 검찰관에게 써준 것이다.<br><br><br><br>ㅇ 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歲寒然後知松柏之不彫) : 날이 추운 뒤에야 소나무ㆍ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p><p><br></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623938987/263c7bced3a560949be0828685e7442a/1613496.jpg" />
         <pubDate>2025-05-19 01:12:4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199801</guid>
      </item>
      <item>
         <title>15번 이정민</title>
         <author>2240115_3</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201101</link>
         <description><![CDATA[<p>국가유산 이름:교하향교</p><p>지정일:1983.09.19</p><p>문화유산</p><p><br/></p><p>향교(鄕校)는 조선 시대 지방에 세운 공립 교육 기관으로, 중국 춘추 시대의 학자인 공자(孔子)와 여러 성현(聖賢)들의 제사를 지내고, 지방 사람들을 교육하는 곳이다. 향교는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大成展)과 선현을 모시는 동무ㆍ서무(東廡ㆍ西廡), 학생들의 강학소인 명륜당(明倫堂)과 그들이 기숙하는 동재ㆍ서재(東齋ㆍ西齋)로 구성되어있다. 그 이외에도 재사(齋祠)를 관장하는 전사청 등이 있다. </p><p>‘교하 향교’는 1407년에 파주군 탄현면 갈현리에 세워졌다가, 1731년에 지금의 장소로 이전되었다. </p><p>1943년에 파주향교를 제외한 다른 파주군 내의 향교와 함께 철폐되었는데, 1945년 이후 유림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를 배치하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와 서무를 두어, 앞에는 학문하는 공간, 뒤에는 제사하는 공간을 두고 있다. </p><p><br/></p><p>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人(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대성전 좌우에는 동무와 서무가 있다. 명륜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八(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p><p> </p><p>명륜당 좌우에는 동재와 서재가 있다. 이외에도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있다.</p><p><br/></p><p><br/></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images.app.goo.gl/XVX85SxngoaPCXZ99" />
         <pubDate>2025-05-19 01:13:2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201101</guid>
      </item>
      <item>
         <title>21번 홍지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214507</link>
         <description><![CDATA[<p>문화유산 1962.12.20</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857839313/0656bf85251f2e4a1f330f6cbbadc6fa/17476171780761077966341991036955.jpg" />
         <pubDate>2025-05-19 01:19:4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214507</guid>
      </item>
      <item>
         <title>17 임진서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214558</link>
         <description><![CDATA[<p>남원 실상사 백장 암산층 석탑</p><p>1962년 12월 20일문화유산실상사는 지리산 천왕봉 서편에 위치한 절로,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洪陟)이 창건하였다. 이 곳에서 북쪽으로 얼마쯤 가다보면 백장암이 나타나는데, 실상사에 딸린 소박한 암자로, 그 아래 경작지에 이 탑이 세워져 있다.</p><p><br/></p><p>낮은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각 부의 구조와 조각에서 특이한 양식과 수법을 보이고 있다. 즉, 일반적인 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너비와 높이가 줄어드는데 비해 이 탑은 너비가 거의 일정하며, 2층과 3층은 높이도 비슷하다. 층을 이루지 않고 두툼한 한 단으로 표현된 지붕돌의 받침도 당시의 수법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탑 전체에 조각이 가득하여 기단은 물론 탑신에서 지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각이 나타난다. 기단과 탑신괴임에는 난간모양을 새겨 멋을 내었고, 탑신의 1층에는 보살상(菩薩像)과 신장상(神將像)을, 2층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상(天人像)을, 3층에는 천인좌상(天人坐像)을 새겼다. 지붕돌 밑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3층만은 삼존상(三尊像)이 새겨져 있다.</p><p><br/></p><p>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탑은 갖가지 모습들의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구조가 돋보이고 있어, 당시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석탑 중 하나라 할 수 있다.<br></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www.sancheong.go.kr/tour/contents.do?key=6355" />
         <pubDate>2025-05-19 01:19:4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214558</guid>
      </item>
      <item>
         <title>12번 윤채빈</title>
         <author>2240112_5</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216250</link>
         <description><![CDATA[<p>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1963.01.21 문화유산</p><p>거대한 천연 암벽에 2구의 불상을 우람하게 새겼는데, 머리 위에는 돌갓을 얹어 토속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p><p><br/></p><p>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까닭에 신체 비율이 맞지 않아 굉장히 거대한 느낌이 든다. 이런 점에서 불성보다는 세속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는 지방화된 불상이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은 목이 원통형이고 두손은 가슴앞에서 연꽃을 쥐고 있다. 오른쪽의 4각형 갓을 쓴 방립불은 합장한 손모양이 다를 뿐 신체조각은 왼쪽 불상과 같다.</p><p><br/></p><p>지방민의 구전에 의하면, 둥근 갓의 불상은 남상 모난 갓의 불상은 여상이라 한다. 고려 선종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까지 맞이했지만, 여전히 왕자가 없었다. 이것을 못내 걱정하던 궁주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 틈에 사는 사람들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꿈을 깬 궁주가 하도 이상하여 왕께 아뢰었더니 왕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내어 알아 오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고 보고하였다. 왕은 즉시 이 바위에다 두 도승을 새기게 하여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인 한산후가 탄생했다는 것이다.</p><p><br/></p><p>이 불상들은 고려시대의 조각으로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탄생설화가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예로 높이 평가된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623903018/8f018ef74ad8fe535e75c7442850bbca/1615671.jpg" />
         <pubDate>2025-05-19 01:20:2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216250</guid>
      </item>
      <item>
         <title>14번 이아윤 </title>
         <author>2240114_2</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247517</link>
         <description><![CDATA[<p>국가등록문화유산</p><p>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2013) ( 大韓民國 臨時議政院 太極旗(2013) )</p><p>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김붕준(金朋濬, 1888∼1950) 일가가 소장하고 있는 태극기 3점은 대한민국임시정부정부공보 제75호(대한민단 24년 8월 20일)에 게시된 태극기와 유사한 형태다. 특히 재봉틀 박음질 제작기법이나 제작구도를 볼 때 중경 임시정부 시절 제작된 국가등록문화유산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비슷하여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사의 국가 표상적인 맥을 함께 할뿐 아니라 국기 변천사를 알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p><p>경기 파주시</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623904666/179a5e4f2816161dc29e3fd0373fe433/17476184825542167108687807259446.jpg" />
         <pubDate>2025-05-19 01:34:5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247517</guid>
      </item>
      <item>
         <title>13번 이세현</title>
         <author>2240113_2</author>
         <link>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251619</link>
         <description><![CDATA[<p>국가유산 이름: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p><p>지정일:1963년 1월 21일</p><p>문화유산 </p><p>거대한 천연 암벽에 2구의 불상을 우람하게 새겼는데, 머리 위에는 돌갓을 얹어 토속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p><p><br/></p><p>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까닭에 신체 비율이 맞지 않아 굉장히 거대한 느낌이 든다. 이런 점에서 불성(佛性)보다는 세속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는 지방화된 불상이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圓笠佛)은 목이 원통형이고 두손은 가슴앞에서 연꽃을 쥐고 있다. 오른쪽의 4각형 갓을 쓴 방립불(方笠佛)은 합장한 손모양이 다를 뿐 신체조각은 왼쪽 불상과 같다.</p><p><br/></p><p>지방민의 구전에 의하면, 둥근 갓의 불상은 남상(男像), 모난 갓의 불상은 여상(女像)이라 한다. 고려 선종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元信宮主)까지 맞이했지만, 여전히 왕자가 없었다. 이것을 못내 걱정하던 궁주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道僧)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長芝山)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 틈에 사는 사람들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꿈을 깬 궁주가 하도 이상하여 왕께 아뢰었더니 왕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내어 알아 오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고 보고하였다. 왕은 즉시 이 바위에다 두 도승을 새기게 하여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했다는 것이다.</p><p><br/></p><p>이 불상들은 고려시대의 조각으로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탄생설화가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예로 높이 평가된다.</p><p><br/></p><p><br/></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623902211/fae7bc3162edbcc8a0d4ba64f7ba2329/17476178519833380555170489745168.jpg" />
         <pubDate>2025-05-19 01:37:0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ksrkfka123123/x2fqz53mnxm2o9dd/wish/3456251619</guid>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