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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채민] 제목을 정하세요. by DEC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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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부제목이나 핵심 설명을 덧붙이세요.</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3-11-15 10:17:36 UTC</pubDate>
      <lastBuildDate>2023-11-23 12:53:53 UTC</lastBuild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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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흠 = 지금의 우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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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바흠이 땅에 대한 욕심을 냈던 것처럼 우리도 현재 많은 욕심을 내고 있다. 예를 들면 돈에 대한 욕심, 옷에 대한 욕심, 공부에 대한 욕심 등등이 있다. 공부에 대한 욕심은 결과에 대한 욕심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p><p><br></p><p> 일단 바흠이 냈던 욕심은 물질 만능 주의와 관련이 있다. 물질 만능 주의란 경제적 물질적 가치를 중요시하여, 인간이 가져야 할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고, 인간을 경시하는 풍조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위에서 말했던 돈에 대한 욕심, 옷에 대한 욕심은 물질 만능 주의와 관련이 있다. </p><p><br></p><p> 그런데 우리가 계속해서 욕심을 낸다면, 바흠과 같은 일이 일어날까?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흠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 꼭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도 바흠처럼 비극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p><p><br></p><p> 우리 모두 욕심을 조금씩 줄인다면 오히려 더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다. 마치 원래 바흠의 목표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걸 바라서는 안 된다. <mark>욕심을 줄이고, 그 삶에 만족한다면 오히려 비극이 아닌 더 행복한 삶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mark></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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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1-22 11:40: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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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욕심이 많은 바흠의 인생에 대하여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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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소작농 바흠의 가장 큰 꿈은 자신의 땅을 경작하는 것이다. 그는 아내와 함께 성실하게 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몇 년 동안 허리끈을 졸라매도 밭 한 뙈기 살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희소식이 들려왔다. 바시키르 인들이 사는 곳에 가면 아주 싼 값에 땅을 많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p><p><br/></p><p> 그는 얼마 되지 않는 가산을 정리해서 바시키르 인들의 마을을 찾아갔다. 그는 그곳 촌장과 땅 매매계약을 한 뒤, 벅찬 가슴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1000루블만 내면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걸어서 돌아온 땅을 모두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해가 질 때까지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땅을 하나도 받을 수 없었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샌 바흠은 동이 트자마자 괴나리봇짐을 메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바흠은 점심이 지났는데도 반환점을 돌지 못하고 앞으로 계속 전진만 했다. 나아가면 갈수록 더욱 비옥한 땅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바흠이 문득 정신을 차려 하늘을 보니 색깔이 점점 파란 빛은 없어지고 주황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깜짝 놀란 바흠은 그제야 출발선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땅을 하나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점점 급해졌으나 몸은 더 말을 들지 않았다.</p><p><br/></p><p> 바흠은 지는 해를 바라보며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서산마루를 막 넘어가려는 순간 가까스로 출발선에 도착했다. 그러나 가슴을 쥐며 쓰러짐과 동시에 그를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과 바시키르 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의 성공을 축하했다. 촌장은 넘어진 바흠을 일으켜 세우려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바흠은 이미 피를 토하며 죽어 있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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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1-22 11:47: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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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톨스토이, 그는 누구였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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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대문호이다. 1828년 러시아 백작 가문 출신 귀족이었으나, <mark>어렵게 생활하는 농민들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mark>. 그는 원시적이며 간소한 생활을 최상의 것으로 추구하였고, 땅 위에서 자신의 손으로 직접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삶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p><p><br/></p><p> 톨스토이는 자신이 오랜 삶 속에서 얻어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천과 사랑의 삶을 문학에 담아 전달하고자 했다. <mark>그리하여 19세기 말에는 톨스토이가 온 세계의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러시아 국민 정신 생활에 중심이 되었다</mark>.</p><p><br/></p><p> 톨스토이가 '사람에게는 얼마 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책을 쓴 이유는 바흠처럼 악마의 유혹,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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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1-22 11:52: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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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러시아의 산업혁명은 바흠의 욕심의 원인일까?</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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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br/></p><p>러시아는 아시아와 유럽에 걸친 나라이며, 아시아의 문화를 담고 있었다. 반면에 유럽의 산업혁명을 아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나라 중 하나 이기도 했다. 산업혁명을 이루기 위해 차르는 농노 해방령을 선포하고 개혁을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유럽 국가들의 산업혁명은 시민들이 이끌고 있었지만, 러시아는 모든 개혁을 차르가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로 인해 러시아의 빈부격차는 더욱 더 심해졌고, 농민의 삶이 개혁되지 못했다. 결국 20세기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맞이하게 되었다.</p><p><br/></p><p> 당시 러시아에선 농노가 대다수 국민이었는데 그들은 아무리 일해도 일한 대가를 받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농노해방령, 농지개혁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자신의 소유물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p><p><br/></p><p> 바흠도 더 많은 땅을 더 차지할 수 있게 되면서  소유물을 갖고 싶은 욕심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면서 같이 살던 이웃을 경계하고 경쟁했다. 그렇게 경쟁하던 바흠은 이웃과의 관계가 무너지게 되었다. <mark>그리고 인간성을 상실하고 물질적 탐욕만을 추구했던 바흠은 결국 비극을 맞이했다.</mark></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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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1-22 11:55: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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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흠의 죽음은 결국 자살?</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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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바흠의 죽음은 타살일까, 자살일까?</p><p><br/></p><p> 우선 나는 바흠의 죽음이 자살과 타살이 모두 합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긴 했지만, 바슈키르 사람들의 계약이 오히려 바흠의 욕심을 더 돋구었기 때문이다.</p><p><br/></p><p> 바흠은 땅에 대한 욕심을 끝도 없이 내다가 마지막에 피를 토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바흠의 원래 목표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었지만, 바슈키르 사람들과 계약을 한 뒤로는 목표의 본질은 없어지고 욕심으로 바뀌게 되었다.</p><p><br/></p><p> 바흠의 죽음은 굉장히 안타깝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이 욕심을 조금이라도 줄였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만약 바흠이 조금이라도 더 절제하고, 욕심을 이겨냈다면 이런 일이 과연 일어났을까? 그 뿐만 아니라 <mark>자신의 진짜 목표인 행복한 삶을 위했더라면, 욕심은 조금 내려놓는 게 옳았을 거라고 생각한다.</mark></p><p><br/></p><p> 바흠은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에서 애정과 소속의 욕구에 속한다. 그렇다면  바흠이 욕심을 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그 위 단계인 존경 욕구에 속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혹은 정말로 땅에 대한 욕심만이 있었던 것일까? 생각을 해보면 존경 욕구에 속하고 싶어서 땅에 대한 욕심을 냈던 것 같다.</p><p><br/></p><p> 지금의 나는 3단계인 애정과 소속의 욕구에 속하는 것 같지만, 나도 존경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다. <mark>그러나 나는 바흠처럼 남에게 인정 받고 싶어서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존경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mark></p><p><br/></p><p> 바흠의 이야기를 보고 나는 옷에 대한 욕심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옷을 사는 데에 너무 많은 돈을 썼던 지라 앞으로는 옷에 대한 욕심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고 싶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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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1-22 12:08: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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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악마의 승리? 바흠의 패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4995kjs/x26jvb83lb8osv3e/wish/2799325261</link>
         <description><![CDATA[<p> '머리에서 발끝까지 6피트인 그가 묻힌 공간이 그에게 필요한 땅의 전부였다'.</p><p><br/></p><p> 바흠은 바슈키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곳에서 바흠은 하루 동안 걸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모두 자기 땅이 된다는 계약을 했다. 계획을 잘 세워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바흠에게는 자꾸만 더 욕심이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시간에 쫓기게 되었고, 바흠은 허겁지겁 출발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바흠은 피를 토하며 죽음을 맞게 되었다.</p><p><br/></p><p> 바흠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다. 그렇다면 그것은 악마가 승리하고 바흠이 패배한 것일까?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배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바흠이 죽음이라는 비극을 맞이한 걸 보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것이기에 바흠의 패배가 맞다고 봐야할 것이다.</p><p><br/></p><p> 즉, 톨스토이가 바흠, 혹은 이 단편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mark>돈, 바흠으로 따지자면 땅 뿐만이 삶의 가치가 아니라 다른 것들도 삶의 가치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돈으로만 삶의 가치를 찾으려 하지 말고 다른 것을 찾아봐야 한다.</mark>' 일 것이다.</p><p> </p><p>이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악마는 당신은 유혹할 수 있으니, 바흠처럼 되지 않으려면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라는 내용 또한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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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1-22 12:16: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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