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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0 4모둠 프랑스 혁명 활동 by 조정은 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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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문나은, 현지혜, 김지수, 김민지</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0-10-18 23:18: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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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테니스코트의 서막</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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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789년 5월 5일 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Louis XVI, <br>1754~1793)는 미국의 독립전쟁을 비롯해 왕실의 사치로 인한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하여, 삼부회(三部會)를 소집해 세금을 인상하고자 했다. 14세기에 처음 등장한 삼부회는 제1신분 성직자ㆍ제2신분 귀족ㆍ제3신분 평민(부르주아)으로 구분되는 중세적 신분제 의회로, 각 신분별 대표가 동일한 수의 의원으로 구성되었다. 이에 따라 신분별로 심의와 표결에 부치게 되면 특권층인 성직자나 귀족의 대표의원 수에 밀려 세금 인상의 몫은 모두 평민층이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제3신분은 2배수의 의원을 요구해 삼부회가 개회됐으나, 제1ㆍ2신분이 끝내 신분별 표결권을 고집하여 삼부회는 결렬되었다.<br><br>결국 1789년 6월 17일 제3신분 평민의원들은 독자적으로 영국식 국회인 '국민의회'를 결성하였다. 여기에 자유주의적 성직자들과 일부 귀족까지 합류하자, 6월 19일 루이 16세는 특권층 의원들과 회의 끝에 국민의회의 해산을 결정하고 삼부회 회의장을 폐쇄시켰다. 이에 대항하여 6월 20일 제3신분 평민의원들은 베르사유 궁전의 테니스 코트인 줴드폼으로 집결하였고, 국민의회의 초대 의장이었던 장 실뱅 바이이(Jean Sylvain Baillie, 1736~1793)는 "헌법을 제정하고 사회 질서를 회복할 때까지 해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사건을 '테니스 코트의 서약(Serment du Jeu de Paume)'이라고 한다.<br><br>한편 테니스 코트의 서약을 그림으로 옮긴 작품으로, 자코뱅파의 혁명당원이었던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825)의 &lt;줴드폼의 선서&gt;(1791)가 있다.<br><br>21014현지혜</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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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2:33: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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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스티유 감옥 습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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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역사 속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는 1789년 7월 14일 평범한 파리 시민들이 당시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 속에 난입한 일일 것이다. 이는 격동과 혼란 속에서 군주제 타도로까지 이어졌고, 자연권과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에 의거한 공화정이 수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파산한 군주인 루이 16세가 170년 만에 처음으로 프랑스의 삼부회를 소집한 이후, 일 년간 긴장은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1789년 6월 20일, 제3신분의 대표자들은-귀족이나 성직자가 아닌 이들을 말한다-폐회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맞서 독립적인 정치 기구인 국민의회를 유지하기로 서약했다.<br>7월 12일, 평민에 협조적이었던 재정장관 자크 네케르를 왕이 해임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점점 더해 가는 불안 상태가 보수주의 반동에 진압당할 것을 두려워한 상퀼로트(글자 그대로는 '반바지를 입지 않은 이들'이라는 뜻으로, 평민을 의미한다)들은 파리의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질서 유지의 임무를 맡은 '가르드 프랑세즈' 연대와의 사이에서 긴장이 높아 갔고, 7월 14일 시위대는 앵발리드(노병을 위한 요양 병원-옮긴이)에 강제 진입해 총기를 찾았으나 화약은 없었다.<br>그 이후 약 1천 명이 '바스티유'라 알려진 성으로 행진했다. 바스티유는 전통적으로 정치범을 구금하는 장소였지만, 그날에는 일곱 명밖에 없었으며, 주로 위조범이나 '광인'들이었다. 수비군은 약 60명으로 로네이 후작이 지휘하고 있었다. 오후 1시 30분경, 군중은 정문을 부수었고, 그들이 바깥쪽 구내로 진입하면서 사격이 시작되었다. 네 시간이 지나 습격한 이들 가운데 수십 명이 죽었을 무렵 성문을 부수는 데 쓸 대포가 도착했고 수비대는 항복했다. 로네이 후작은 집단 폭행으로 죽었고 군중들은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폭정의 상징인 바스티유는 신속하게 허물어졌다.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br>"이것은 반란인가? / 아닙니다 폐하, 반란이 아니라, 혁명입니다."<br>루이 16세와 라 로슈푸코-리앙쿠르<br><br>21014 현지혜</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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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2:35: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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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루이 16세 처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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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792년 12월 11일, 지난해 8월 이후 가족과 함께 탕플 탑에 갇혀 있던 38세의 루이는 국민공회에 출두하여 "자유의 폐허 위에 폭정을 다시 일으키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자신의 혐의에 답하라는 명을 받았다. 루이와 세 명의 변호사는 훌륭하게 죄목을 반박했지만, 국민공회는 어떻게 해서든 유죄 판결을 내릴 생각이었고, 그는 만장일치로 유죄가 되었다.<br>형벌을 두고는 논란이 일어났다. 온건주의인 지롱드당은 투옥이나 추방형, 아니면 적어도 루이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조직할 때까지 처형을 유예할 것을 주장했다. 상퀼로트 민병대를 이루는 파리의 빈민 지구에서 우세했던 극단주의 자코뱅은 사형을 요구했고, 361대 319로 사형이 결정되었다. 사형이라는 투표 결과가 나오자 관중들은 환호했다. 더 가벼운 형벌을 선택한 이들은 으르렁대는 관중들로부터 커다란 욕설을 들었다.<br>1월 21일, 왕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일랜드인 사제 에지워스 드 피르몽과 함께 기도를 올렸다. 그는 마차를 타고 처형대까지 왕과 함께 갔다. 넓은 혁명 광장(오늘날에는 콩코르드 광장)에 세워진 단두대에 도착하자, 손은 뒤로 묶이고 목덜미의 머리카락은 잘렸다. 왕은 자신을 사형에 처한 이들을 용서한다는 말로 시작하여 군중을 상대로 연설하려 했지만, 일부러 울린 요란한 북소리 때문에 그의 말은 묻히고 말았다.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자, 혁명파인 조르주 당통은 프랑스가 대담하게도 전 유럽에 도전하여 군주의 목을 떨어뜨렸다고 선언했다.<br><br>21014 현지혜</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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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2:35: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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