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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학년 3반 활동결과물(인물소개하기) by 민락5학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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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3-12-11 04:03: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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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마리아</title>
         <author>202244191</author>
         <link>https://padlet.com/minlak53/waxawuxu4d7pl0f8/wish/2820541293</link>
         <description><![CDATA[<p>1. 어린시절</p><p>김마리아는 1891년 6월 18일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 일명 솔내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 마을은 한국에서 기독교가 처음 뿌리를 내린 곳으로 유명하다. 그의 아버지인 김윤방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서 서상륜으로부터 기독교를 처음 받아들였으며 이후 이곳을 방문한 언더우드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가재를 기부하여 마을에 교회를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한국 최초로 세워진 솔내교회이다.  마리아란 이름도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다.</p><p><br></p><p>2. 겪은 고난</p><p>김마리아는 서울에서 3.1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정신여학교를 방문하였는데 학생들의 가두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로 일본 형사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이 때 모진 고문을 당했으며 이후 이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토록 고생을 해야만 하였다.</p><p><br></p><p>3. 주요업적</p><p>제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짓기 위한 파리강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도쿄유학생들도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당시 2.8독립선언을 준비하던 송계백과 백관수가 김마리아를 찾아와 여학생들도 운동 준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p><p><br></p><p>4. 극복한 방법</p><p>김마리아의 집안은 민족 의식이 투철한 명문가였다. 김마리아의 고모부인&nbsp;서병호와 그의 아들인&nbsp;서재현은&nbsp;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일한 독립운동가였으며&nbsp;김규식의 부인이며 역시 독립운동가인 김마리아에게는 김순에가 나이 많은 5촌 종고모가 됀다.</p><p><br></p><p>5.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p><p>김마리아는 대한통일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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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4:48: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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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마리아의 사진</title>
         <author>20224419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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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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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4:49: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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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자현</title>
         <author>20224322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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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ㄱ:남자현은 1남3녀중 막내딸로 태어났다.</p><p>ㄴ:남자현은 19세에 시집을 가 6년 만에 명성황후시해사건이 배경이 된 을미의병에서 남편을 잃었다.</p><p>ㄷ:남자현은 사이토를 암살함.</p><p>ㄹ:남자현은 일본영사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함.</p><p>ㅁ:남자현은 나라에 몸과 마음을 바침.</p><p>남자현은 정말 대단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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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4:58: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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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플로렌스 나이팅게일</title>
         <author>20224509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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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나이팅게일은 1820년 영국의 부유한 명문가집안에서 태어났다.</p><p>그녀는 어릴적부터 부모님덕에 부족함 없이 살았다.그래서 부모님은 간호사 처럼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을 원치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하고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계속 공부했다.</p><p>그녀는 사람들이 어려울때 자신이 간호사가 되어서 도와줄 사람들을 생각하며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한다.</p><p>그렇게 나이팅게일은 크림전쟁에서 활약하며 많은 병사들을 살렸다.나는 그녀가 사람들을 도우려는 가치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p><p>이상입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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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00: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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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신성</title>
         <author>202242125</author>
         <link>https://padlet.com/minlak53/waxawuxu4d7pl0f8/wish/2820549624</link>
         <description><![CDATA[<p>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집을 나간 버린 상태였으며, 어머니는 선생이 9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고아가 된 선생은 고모와 함께 살다가 16세에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은 가산을 탕진한 후 아편을 먹고 자살해 버렸다.</p><p> 1919년 3.1운동 이후 선생은 맹산독립단을 주도적으로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과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동하였다. 1920년 8월 독립단 활동을 하는 도중 독립단원들이 일제 경찰에게 붙잡히자 선생은 경찰의 팔을 붙잡고 군도를 빼앗아 던져서 이들을 달아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선생은 공무방해죄로 징역 6개월을 언도 받았다. 그 후 옥고기간이 끝날 즈음 1921년 11월 다시 맹산독립단 사건으로 선생은 징역 2년 6개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br><br> 옥고 기간이 끝난 후 선생은 평원군 한천에서 사숙을 세워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대동군 대평에서 취명학교를 운영하였다. 1928년에는 평양에서 근우회 평양지회를 조직하고 평양 여성들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며, 동년에는 근우회 중앙집행위원, 1930년에는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근우회가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되자 선생은 평양에서 여성들을 위한 실업운동과 교육운동에 매진하였다.</p><p>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어려움을 극복하였다.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으며 국가보훈처는 2007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여 고인의 공훈을 기렸다.</p><p>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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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00: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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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권기옥</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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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인물의 어린시절:만18세 나이에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2주동안 구류되었다</p><p><br></p><p>인물이 겪은 고난:일본의 밀정이라는 모함을 받고 중국 경찰에 붙잡혀 8개월 의 옥고를 겪기도 했다</p><p><br></p><p>인물의 주요업적:독립 운동에 힘을 많이썻고</p><p>비행사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다</p><p><br></p><p>인물이 어려움을 극복한 방법:끝까지 포기하지않고 </p><p>도전하기.</p><p><br></p><p>인물이 중요하게 생각한가치:포기하지않고</p><p>도전해보기</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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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01: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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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제로부터 불교를 지켜내다 승려 백용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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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ol><li><p> 백용성은양반가에서 아버지 백남현과 어머니 손씨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세에 출가했다.</p></li><li><p>일제강점기에서 독립 운동가들이랑 모임하다 감옥에 1년 6개월 갇혔었다 불교 정화 및 대중화에 힘써 서울 시내에 최초로 포교당을 세웠고 신불교운동을 주창하며 서울에 대각사란 절을 운영하기도 하였고 선농일치 등을 주장하며 국내와 만주 등에서 과수원, 농장 등을 경영하며 독립운동의 자금을 지원하였다. 또한 60여 종의 불경어록과 저술을 남겼다.</p></li></ol><p>아들뻘 제자인 동헌스님은 불교정화운동당시 수장 역할을 하며 왕성히 활동하였고 증손주뻘인 법륜스님은 정토회 등의 단체를 만들어 활발히 사회참여 중이다.</p><p><br/></p><p>윤봉길을 불교에 귀의시킨 뒤 그를 임시정부로 보내 김구 밑에서 일하게 하기도 했다는 것이 불교계의 주장인데, 안타깝게도 백용성의 제자였던 도문의 구술 말고는 이를 입증할 만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 윤봉길 의거 후에는 직접 중국으로 가 장제스와 마오쩌둥에게 독립운동 지원을 요청하는 등 무장투쟁을 준비하였으나 밀정에게 걸려 실패했으며, 실의 속에 1940년 입적하였다.</p><ol><li><p>그는 국민으로써 일제의 불의 앞에 물서서지 않았고 종교인으로써 고통을 함께 겪음</p></li><li><p>굳게 다짐하고 독립을 위해 앞으로 나아감 </p><p>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와 그 대응으로서 민족의 주체성 확립’ ‘전통과 근대의 만남과 그 대응’이라는 근대 한국사회가 직면한 커다란 파도에 직면하여 불교도로서 이에 대응하고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p></li><li><p>독립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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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06: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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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패드노트에 적었던거</title>
         <author>20224419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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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 어린시절</p><p>김마리아는 1891년 6월 18일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 일명 솔내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 마을은 한국에서 기독교가 처음 뿌리를 내린 곳으로 유명하다. 그의 아버지인 김윤방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서 서상륜으로부터 기독교를 처음 받아들였으며 이후 이곳을 방문한 언더우드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가재를 기부하여 마을에 교회를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한국 최초로 세워진 솔내교회이다.  마리아란 이름도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다.</p><p>2. 겪은 고난</p><p>김마리아는 서울에서 3.1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정신여학교를 방문하였는데 학생들의 가두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로 일본 형사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이 때 모진 고문을 당했으며 이후 이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토록 고생을 해야만 하였다.</p><p>3. 주요업적</p><p>제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짓기 위한 파리강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도쿄유학생들도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2.8독립선언을 위한 준비가 시작된 것이었다. 당시 2.8독립선언을 준비하던 송계백과 백관수가 김마리아를 찾아와 여학생들도 운동 준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김마리아는 이러한 권유에 따라 여자 유학생들에게서 성금을 거두어 준비 자금에 보태는 등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p><p>4. 극복한 방법</p><p>김마리아의 집안은 민족 의식이 투철한 명문가였다. 김마리아의 고모부인&nbsp;서병호와 그의 아들인&nbsp;서재현은&nbsp;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일한 독립운동가였으며&nbsp;김규식의 부인이며 역시 독립운동가인 김마리아에게는 김순에가 나이 많은 5촌 종고모가 됀다.&nbsp;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을 졸업한 숙부 김필순은 나중에 임시정부를 세운&nbsp;노백린&nbsp;류동렬&nbsp;이동 김규식 등과 가까운 사이로 김마리아는 숙부의 집에서 연동여학교정신여자고등학교의 전신를 다니면서 민족정신을 갖고 있는 집안 어른들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p><p>5.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p><p>김마리아는 대한통일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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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08: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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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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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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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09: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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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리퀴리</title>
         <author>20224315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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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마리퀴리는 가난한 교육자의 딸로 태어났다. 마리퀴리는 10살때 패결핵을 앓던 어머니와 사별하며 혼란한 어린시절을 보냈다.</p><p>     마리퀴리는 남편과 사별후 유대인으로  취급했다.또 모진 욕설을 듣기도했다. 하지만 마리퀴리는  그것을 참았다.</p><p>      마리퀴리의 업적은 라듐을 이용해서 많은  군인을 치료한것이다.</p><p>     마리퀴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안전과 도덕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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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11: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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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더 테레사》</title>
         <author>202244033</author>
         <link>https://padlet.com/minlak53/waxawuxu4d7pl0f8/wish/2820560312</link>
         <description><![CDATA[<p>마더테레사는 어린시절 12살때 인도로가서 수녀생활을 하고싶다고 말했고 18살에 어머니에게 허락을 받고 고향을 떠나 아일랜드에 있는 로레타 수녀회에 들어갔다.</p><p><br></p><p>테레사 수녀가 겪은 고난은 대부분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은 테레사 수녀의 봉사의 손길을 선교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오해하며 적대시 하였다.</p><p>테레사 수녀는 인도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기 위해 검은 수녀복을 벗고 인도의 흰색 사리를 입었다. 흰색 사리는 인도의 여인 중 가장 가난하고 미천한 여인들이 입는 옷이었는데, 이 옷은 훗날 테레사 수녀를 상징하는 옷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테레사 수녀는 자신이 특정 국가나 특정 종교를 홍보하기 위해 나온 사람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 인도의 국적을 취득해 인도인이 되었다.</p><p><br></p><p><br></p><p>테레사 수녀의 주요 업적</p><p><br></p><p>테레사 수녀는 들어오는 기부금은 통째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썼고 본인은 다 낡아 여기저기 기운 자국이 역력한 흰색 사리 하나만을 걸친 채 나병 환자를 씻기고 아이들을 돌보았다. </p><p>자신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고 돌보아야 할 사람을 돌볼 뿐이라며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에게로 </p><p>달려갔다.</p><p><br></p><p>테레사가 어려움을 극복한 방법</p><p><br></p><p>그녀가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 앞에서 보인 허물없고 간곡한 행동들을 통째로 부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테레사 수녀는 죽음을 맞이할 때에도 더 나은 의료 시술을 거부한 채 자신이 돌보았던 환자들과 똑같은 치료를 해줄 것을 원했다고 한다.</p><p><br></p><p>테레사가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와 테레사에게</p><p>본받을점</p><p> </p><p>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해야 대해야 한다!</p><p><br></p><p> </p><p><br></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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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13: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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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더글러스 맥아더</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minlak53/waxawuxu4d7pl0f8/wish/2820562863</link>
         <description><![CDATA[<p>미국의 군인이자 정치가 통칭 맥아더 장군 미국역사상 매우 유명한 장성중 한명이다 일찍이군인이 돼어 제1차 세계 대전의 용장, 제2차 세계 대전의 명장 등 20세기에 주요전쟁에 모두 참전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집안 역시 명문 군인 가문이어서 아버지 아서 맥아더는 육군 장성으로서 필리핀의 군정 총독이기도 했다. 더글러스 맥아더는 이미 1910년~1920년 대에 국가적 영웅이였는데, 육군사관학교 수석 졸업, 최연소 육군 사관학교 교장, 최연소 육군 소장, 최연소 육군 대장이자 육군 참모총장, 육군 원수까지 군의 주요지위를 거쳤으며, 태평양 전쟁과 일본의 전후처리에서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였다. 또한 한국의 6.25 전쟁에서도 인천 상륙작전을 세우고 총지휘하였다.</p><p>수여받은 약장은 매우 비범하다. 약장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명예 훈장부터 시작해서 하나 받아도 가문의 영광인 수훈십자장 3회 수훈(천만에 가까운 미육군 누적 참전 병력 중 현재까지 겨우 13,000명만 수훈받았다.), 하나 받아도 베테랑 병사 취급받는 은성훈장 6회 수훈, V기장(영웅적인 행동을 한 군인에게 수여)이 달린 동성훈장 수훈, 육군 수훈복무훈장 4회 수훈, 대통령 부대 표창 6회 수훈, 대한민국 정부의 무공훈장 중 최고 등급인 태극무공훈장 수훈, 그 외에도 육군항공 조종사 마스터 기장, 소총, 권총 특등 사격기장까지 약장만 봐도 어마어마한 명장이다.</p><p>가치관:포기하는것 은 어리석다</p><p>본받을것:포기하지 말자</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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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15: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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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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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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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16: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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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라이트형제</p><p>최초의동력비행기를만든형제</p><p>윌버라이트1873~1912,오빌라이트1871~1948</p><p>출생독일게미국인</p><p><br></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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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20: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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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만덕 객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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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739년에 태어나서 12살에 부모님 모두 사망하여 기생의 수양딸이 되어 제주도에서 유명한 기생으로 살았다.</p><p>제주도에 태풍이 강타해서 식량생산이 저조했던 농사에 큰 타격을 입었다.</p><p>본토에서 2만 섬을 보내지만 가던 중 침몰했다.</p><p>김만덕 객주는 자신의 재산을 털어서 본토에서 쌀 5백 섬을 사와 제주도민의 구호에 써달라고 헌납했다.</p><p>김만덕 객주가 사망할 때 양아들의 기본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재산을 제주도민에게 기부했다.</p><p>김만덕 객주는 베풀고 나누며 살았습니다.</p><p>사업을 경영할 때 이익은 적게 남기고 많이파는 박리다매, 적절한 가격으로 판매해서 원망을 사지 않는 정가매매, 정직함이 우선이라는 신용본위를 지키며 살았습니다.</p><p>남을 배려하며 살았던 김만덕 객주의 가치관을 본받아야겠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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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22: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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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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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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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23: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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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관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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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출생: 1902년 12월 16일</p><p>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p><p><br></p><p>인물의 어린시절</p><p>1916년 선교활동을 하던 미국인 감리교회 선교사인 사애리시 부인의</p><p>추천으로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장학생으로 편입하였다.</p><p>1919년 이화학당 고등부에 진학했다.</p><p><br></p><p>인물의 주요업적</p><p>3.1운동에 참여하고 3월5일의 만세 시위에도 참여하였다.</p><p><br></p><p>인물이 겪은 고난</p><p>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p><p><br></p><p>인물이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p><p>독립운동</p><p><br></p><p>인물이 어려움을 극복한 방법</p><p>이화학당 , 독립운동</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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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24: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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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권율</title>
         <author>20224504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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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537경기도 강화도호북 13월28일에 태어났다. 6살때 한번은 어머니가 하얀비단옷을 새로 지어주며 입으라고 하자 입기 싫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의복은 몸만 가리면 그만이지 뭐 하러 남의 시선을 생각합니까?"라고 대답했는데 아버지 권철은 이 얘기를 듣고 비범한 인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권율은 호조 정랑에서 의주 목사로 전격 발탁되었다. 이 무렵에는 늦게 출세한데다가 문관 출신이다 보니까 부하들 중에는 권율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던 모양. 1592년 봄에 베이징에 간 역관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요동 지역을 어수선하게 했다는 말이 나와서 국문하는 일이 있었는데 권율도 사건의 불똥을 맞아 파직되고 만다. 그러나 4월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조는 권율이 능력이 있다는 신하들의 간언을 듣고 다시 기용해 전라도 광주 목사에 임명되면서 임지로 내려가 부임했다. 권율의 업적은 이치전투이다 한양을 점거하고 한반도 전체를 장악해 나갔고 임시 도절제사 권율과 동복현감 황진이 이끄는 1천여 명의 조선군이 왜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이끄는 2천여명의 대군과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둔 전투로 일본의 전라도 진격작전을 좌절시켰다. 이 승리로 왜군은 그 후 다시는 전라도를 넘보지 못하게 되었으며 권율은 전라감사로 승진하였다. 당시 전쟁 도중 황진이 총탄에 맞아 조선군 사기가 저하되었지만, 기적적으로 병사들을 추슬러서 독려하여 고바야카와 군을 상당수 몰살시키게 된다. 1592년 가을 이치 전투에서 승전한 공로로 곧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권율은 자신감이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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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26: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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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율곡이이 ( 이율곡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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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유년시절 - 율곡이이는 1536년 강원도 강릉 오죽헌에서 부친 이원수와 모친 사임 신씨 사이에서 셋째</p><p>아들로 태어났다. 율곡이이는 1548년 13세의 어린</p><p>나이로 진사시에 합격 해 조광조의 문인인 백인걸 문하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p><p><br/></p><p>인물이 한 일 - 조선시대는 양반이 주도하던 사회로</p><p>실력보다는 출신을 중요시 하던 시기였다</p><p>조선시대 성리학자 이율곡은 당시 학자였던 퇴계이황을 존경하고 그의 학문을 중요하게 생각했다.</p><p>이율곡은 23세 되던 해에 퇴계이황을 찾아가 그의 </p><p>집에서 머물면서 학문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시를 짓고 , 관심주제에 대해 토론했다. 퇴계이황은 이율곡의 재능에 크게 감탄을 하였다.</p><p><br/></p><p>인물의 업적 - 1568년 천추시의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고 , 1583년 병조판서가 되어 선조에게 시무육조와 십만양별설 등 개혁안을 올렸다.</p><p><br/></p><p>인물이 겪은 고난 - 율곡이이는 무단가출을 하고 잘못을 깨달은 뒤 , 후회와 슬픔이 치솟고 스스로 책하고 부끄러워 하며 살았다.</p><p><br/></p><p>인물이 증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 뜻이 서지 않으면</p><p>만사가 성공하지 못한다. 먼저 반듯이 뜻을 세워라</p><p>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안과 밖이 한결 남으면 남이 안 보이는 곳에서도 거리 낄 것이없으며 , 또한 남이 보는 데서라도 청천 백일과 같이 떳떳할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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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26: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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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인슈타인</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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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1879%EB%85%84">1879년</a>&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3%EC%9B%94%2014%EC%9D%BC">3월 14일</a>&nbsp;오전 11시 30분 독일 울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보이는데 12~16살에는&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B%AF%B8%EC%A0%81%EB%B6%84">미적분</a>을 혼자서 공부했다고 하며,&nbsp;<strong>특히 어린 시절에&nbsp;</strong><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C%9C%A0%ED%81%B4%EB%A6%AC%EB%93%9C"><strong>유클리드</strong></a><strong>의&nbsp;</strong><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A%B8%B0%ED%95%98%ED%95%99%20%EC%9B%90%EB%A1%A0"><strong>원론</strong></a><strong>을 읽으며 그 논리성에 감탄했다고 한다.</strong><br><br>청소년기에는&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A%B9%80%EB%82%98%EC%A7%80%EC%9B%80">김나지움</a>에 진학했는데&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C%88%98%ED%95%99">수학</a>,&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B%AC%BC%EB%A6%AC%ED%95%99">물리학</a>에 심취하여 당시 교육과정을 뛰어넘어&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A%B5%90%EC%82%AC">교사</a>들도 쩔쩔매는 질문을 해 유명한 학생이 된다. 이런 아인슈타인의 초월질문에 교사들은 "너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라고 대꾸했는데, 이게 와전되어 아인슈타인이 공부 못하는 아이였다는 식으로 떠돌게 된 것이란 얘기도 있다.<br><br>당시 독일의&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C%A3%BC%EC%9E%85%EC%8B%9D%20%EA%B5%90%EC%9C%A1">주입식 교육</a>에 굉장한 반감을 가지기도 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학풍이 보다 자유로운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여튼 1894년 말에는 의사에게 진단서를 받아서 자퇴를 하고 가족을 찾아 떠나는데, 이 시기에 쓴 첫 번째 논문이[자기장에서의 에테르의 상태]이다.<br><br>1895년 중순&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C%B7%A8%EB%A6%AC%ED%9E%88%20%EC%97%B0%EB%B0%A9%20%EA%B3%B5%EA%B3%BC%EB%8C%80%ED%95%99%EA%B5%90">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a>의 입학시험을 쳤으나 낙방하고 말았다. 수학, 물리학 실력은 최고점을 받았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지만 어학 성적에서 낙제를 하는 바람에 공과대학 입학 시험에 낙방한 것이다. 하지만 학장이 김나지움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오면 입학시킨다는 배려로 1년 후에 입학하게 되었고 17세 때 스위스 아라우 주립학교에 다녔다.</p><p>이로부터 몇년이 지난후,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C%B2%AD%EB%85%84%EC%8B%A4%EC%97%85">실업자가 된</a>&nbsp;아인슈타인은 대학 동창으로 절친한 친구였던 마르첼 그로스만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로스만의 아버지가&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B%82%99%ED%95%98%EC%82%B0%20%EC%9D%B8%EC%82%AC">특허청 고위공무원에게 부정청탁</a>해서 아인슈타인은 간신히 위기를 탈출했다. 1901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면서 스위스의 병역의무가 부과되어 받게 된 징병검사에서&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D%8F%89%EB%B0%9C">평발</a>과&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C%A0%95%EB%A7%A5%EB%A5%98">정맥류</a>가 있어 병역면제를 받았는데, 이에 아인슈타인 자신은 놀랐다고 한다. 1902년 아인슈타인은 스위스&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B%B2%A0%EB%A5%B8">베른</a>으로 이주했다.</p><p><br>심사관으로 근무하면서 자투리 시간에 연구를 해서 연구자로서 성과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그걸 해내서&nbsp;1905년에 5편의 논문을 독일의 물리학 연보에 연속으로 발표했다. 5월에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B%B8%8C%EB%9D%BC%EC%9A%B4%20%EC%9A%B4%EB%8F%99">브라운 운동</a>', 3월에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A%B4%91%EC%A0%84%ED%9A%A8%EA%B3%BC">광양자 가설</a>', 6월에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D%8A%B9%EC%88%98%20%EC%83%81%EB%8C%80%EC%84%B1%20%EC%9D%B4%EB%A1%A0">특수 상대성 이론</a>'에 대한 논문을 연달아 발표했고 4월에는 분자 크기 결정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7월에는 '고체를 이루는 분자의 운동과 에너지'에 대한 주제로&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C%B7%A8%EB%A6%AC%ED%9E%88%20%EB%8C%80%ED%95%99%EA%B5%90">취리히 대학교</a>의 박사 학위 논문을 지도교수&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C%95%8C%ED%94%84%EB%A0%88%EB%93%9C%20%ED%81%B4%EB%9D%BC%EC%9D%B4%EB%84%88">알프레드 클라이너</a>와 함께 발표했다. 9월에는 'E=mc<sup>2</sup>'로 잘 알려진&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C%A7%88%EB%9F%89-%EC%97%90%EB%84%88%EC%A7%80%20%EB%93%B1%EA%B0%80%EC%9B%90%EB%A6%AC">질량-에너지 등가원리</a>에 대한 유명한 논문을 발표한다. 12월에는 브라운 운동에 대해 보충하는 논문을 발표한다.<br>5편의 논문 중 5월에 발표된 세편의 논문은 엄청난 것으로 3가지 논문 모두 이후&nbsp;<strong>물리학의 세부 학문을 만들어내면서 이중 광양자 가설로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다.</strong>&nbsp;이 외에도 아보가드로수 관련 논문을 썼다고 한다.<br><br>아인슈타인이 당시 심사관으로서 시계들의 동기화를 하는 기계에 대한 특허를 많이 접했다. 19세기 말은 현대화가 가속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여러 시계들을 동기화하는 것은 사업가들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또, 19세기 말은 제국주의의 시대였고 본국과 점령지들 사이의 시계를 동기화 시키는 것(시간을 지배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에 시계들을 동기화하는 것에 당시 사람들의 관심은 컸다. 당연히 그 중에는 전자기현상(빛)을 이용해 시계를 동기화하겠다는 아이디어도 있었고, 아인슈타인은 특허청에서 일하면서 이런 아이디어들을 자연스럽게 접하였다. 때문에 아인슈타인에게 절대 시간, 여러 관찰자들 사이의 변환 등의 개념은 단순히 추상적 사고 대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였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특허 서류들을 보면서&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C%A0%84%EC%9E%90%EA%B8%B0%ED%95%99">전자기학</a>에 대한 사고 실험을 많이 했고, 시간이 남을 때마다&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B%8F%84%EC%84%9C%EA%B4%80">도서관</a>에 갔다. 오늘날 GPS 등에서 시계를 동기화 하는데 상대성 이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시 아인슈타인이 특허청에서 일했던 경험의 영향은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br>1909년 아인슈타인은 특허청에 사표를 냈다.</p><p><br></p><p>1930년대가 되자 독일은&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C%95%84%EB%8F%8C%ED%94%84%20%ED%9E%88%ED%8B%80%EB%9F%AC">아돌프 히틀러</a>가 집권하면서&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C%9C%A0%EB%8C%80%EC%9D%B8">유대인</a>&nbsp;탄압이 시작되었다. 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그의 연구, 책들도 유대인의 연구라는 이유로 태워버렸다. 유대인이었던 아인슈타인도 나치 독일 정권으로부터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이었던 5만 마르크의 현상금까지 걸리게 되면서 신변에 위협을 받게 된다.<br><br>결국 아인슈타인은 1933년에 유대인을 탄압하는&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A%B5%AD%EA%B0%80%EC%82%AC%ED%9A%8C%EC%A3%BC%EC%9D%98%20%EB%8F%85%EC%9D%BC%20%EB%85%B8%EB%8F%99%EC%9E%90%EB%8B%B9">나치 독일 정권</a>을 피해&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B%AF%B8%EA%B5%AD">미국</a>으로 피신하여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jfJWkwsl" href="https://namu.wiki/w/%EC%95%8C%EB%B2%A0%EB%A5%B4%ED%8A%B8%20%EC%95%84%EC%9D%B8%EC%8A%88%ED%83%80%EC%9D%B8#fn-32"><sup> </sup></a>이후 독일에 있던 재산은 나치에 의해 전부 몰수되었는데 배는 팔아치우고 집은&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D%9E%88%ED%8B%80%EB%9F%AC%20%EC%9C%A0%EA%B2%90%ED%8A%B8">히틀러 유겐트</a>&nbsp;숙소로 만들었다. 당시 이렇게 미국으로 도망친 유태인들은 꽤나 많았는데&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B%B3%BC%ED%8E%9C">볼펜</a>을 발명한 헝가리 국적의 유대인이었던 비로 라슬로 역시 비슷한 시기에&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C%95%84%EB%A5%B4%ED%97%A8%ED%8B%B0%EB%82%98">아르헨티나</a>로 망명했다.&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Kj1tAc-" h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mid=sec&amp;sid1=104&amp;oid=022&amp;aid=0002939035">그리고,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프로이트 등 몇몇 유명인사들 역시 나치를 피해 망명했다.</a><br><br>아인슈타인은 미국으로 망명한 후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고,&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D%94%84%EB%A6%B0%EC%8A%A4%ED%84%B4%20%EB%8C%80%ED%95%99%EA%B5%90">프린스턴 대학교</a>에서 물리학 강의를 하였다.<br><br>아인슈타인의 업적을 정리하자면, 아인슈타인이 1905년 물리학 연보에 연속적으로 발표한 광전효과, 브라운 운동, 특수 상대성 이론,&nbsp;E=mc^2<em>E</em>=<em>mc</em>2은 하나같이 현대 물리학의 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논문이라 뉴턴의 그것(1665 - 1666년; 미적분, 광학, 중력)에 비유되어 소위 기적의 해 논문이라 불린다.</p><p><br></p><p>아인슈타인의 죽음이유는 복부&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B%8C%80%EB%8F%99%EB%A7%A5%EB%A5%98">대동맥류</a>&nbsp;파열로 인한 내출혈이다. 이스라엘 건국 7주년 기념행사의 연설을 준비하다가 쓰러졌는데, 병원으로 실려갔을 당시<br>"나는 내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싶소. 인간의 기술로 삶을 늘리는 건 천박한 짓인 거 같소. 내 사명은 이제 끝냈으니, 우아하게 갈때라오."</p><p>이 말을 하며 수술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까지 연구를 계속하다가 결국 사망했다.<br>유명인물 치고는&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s3zppxXT" href="https://namu.wiki/w/%EC%9C%A0%EC%96%B8">유언</a>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죽을 당시 미국에 있어서 주위에 찾아와 있던 미국인 지인들이 그가 죽기 직전 내뱉은 독일어를 해석하지 못했기때문에 위의 말을 사실상 아인슈타인의 유언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br>아인슈타인의 사체 부검을 맡았던 토머스 스톨츠 하비 박사는, 아인슈타인이 죽기 전에 미리 동의를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뇌를 무단으로 적출한 뒤 240조각으로 잘라내어 보관해 두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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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29: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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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안익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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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출생 1906.12.5 ~1965.9.15 출생지 평양</p><p>안익태는 문화포상 (1957) 문화훈장 대통령장 (1965) 등을 받았다 </p><p>주요작품은 '강천성악' , '한국환상곡' , '한송이 흰백합화' 등 이다 </p><p>안익태는 애국가를 작곡하였다 안익태는 미요르카교향익단에서 지휘자로 지내였다 구니타치 음악학교에 들어가 첼로를 전공하였다 방학 중에는 귀국하여 독주회를 열기도 하였다 1932년 템플음악 대학 음악대학과 전학을 추진했고 정식학생으로 입학에 허가 되어 추방의 위기에 처했을때 미국에 처재 할 수 있었다 안익태는 끝까지 포기 안 한것을 중요시 한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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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30: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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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세훈 독립유공자</title>
         <author>20224111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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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원세훈은 2살때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한문을 수학하다가&nbsp;<br>1906년 3월 서울에 올라와서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br>그리고 1911년에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 활동하였다.<br>원세훈은 졸업을 3개월 앞두고 일본경찰에 잡혔다가 5개월 만에 가석방되었으며, 곧이어 동만주로 망명을 하였다.<br>오랜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5월 서울 중구에서 민족자주연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6 · 25전쟁이 일어나 북한으로 납치당하였다.<br>원세훈 독립유공자의 주요업적은 정치를 하며 동시에 일본에 맞어싸웠다.<br>이 인물은 어려움을 끈임 없은 노력으로 극복했었고,&nbsp;끈임없는 노력을 중요시 했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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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05:30: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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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로봇 공학자 홍원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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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어릴적 스타워즈라는 영화를 보며 로봇공학자의 꿈을 가짐</p><p>미국 최초로 두다리로 걷는  휴머노이드 찰리를  만들었고 또한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이 직접 움직일구 있는 자동차를 만들어냄</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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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13:58: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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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20224111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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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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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23:30: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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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안익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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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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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1 23:48: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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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익점</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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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329년 경남선청에서 태어났다</p><p>이곡의 제자가되어 이색등과 함께공부하며 1360년</p><p>경덕재생으로서 경자방 문과에 응시하였는데 이때 병과4위로 급제하면서 벼슬사이를 시작하였다</p><p>1363년 사간원자정원으로 있을때 서장관이되어</p><p>계품사 이공수를 따라 원나라에갔다 때마침 원나라에 벼슬을하고있던 고려사람 최유가 원나라에있던 충선왕의 아들 덕흥군을 왕으로 옹립하고 공인왕들을 몰아내려했다 </p><p>몽화종자,시험개배 성공,전국적 보급,목화성유를 이용한 의료 제료 등 그 공이 매우커서 1440년에 영의정과 부민호에 추증 되었고 이후 도전서원과 월천 사원에 사당이 세워졌다</p><p>당장 눈에보이지 않지만 미래를 위해 투자할때면</p><p>겨자씨를뿌린다라는 버위를 듣곤한다 작은시작이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야기이다. 필자는 문익점이 전파한 목화씨가 겨자씨 법칙과같다고 생각한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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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2 03:51: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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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최영 장군</title>
         <author>202242192</author>
         <link>https://padlet.com/minlak53/waxawuxu4d7pl0f8/wish/2821969357</link>
         <description><![CDATA[<p>최영의 어린시절 :  최영의 고려 후기의 학자로서 집현전태 학사를 지낸 최유청의 5대손이며 최원직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살때 최영은 사헌부간관을 지냈던 그의 부친  최원직으로 부터 "너는 마땅히 황금보기 를 돌 같이 하라. " 라는 유훈을 받은 후 최영은 이를 그대로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실천하였다.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풍채가 늠름했으며 용력이 출중하여 문신 가문에 태어났으면서도 병서를 읽고 무술을 익히어 무장의 길을 길었다.</p><p>최영 이 겪은 고난 : 1363년 윤 3월에 홍건적을 물리친후 공민왕이 개경으로 돌 아오던 중 개경인근의 흥왕사에 머물 때 국왕의 출근 김용이 반란을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하였다.</p><p>최영의 주요업적 : 공민왕의 반원 개혁으로 원나라 와 의 갈 등이 절정에 달하였을 때 원나라의 군사적 위협을 막는데 기여하였으며, 수차례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였다</p><p>최영이 어려움을 극복한 방법 : 최영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민왕은 복주, 즉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으로 피난하였고, 개경을 홍건적에게 함락되었다. 그러나 최영은 이후 고려군을 규합, 지휘하여 개경을 수복하는 데 에 큰 공을 세웠다.</p><p>최영이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 : 이렇게 뛰어난 전공을 세우고, 또한 급박한 상황에서 국왕을 구출한 공으로 최영은 일등공신으로 책봉되어 그 초상을 공신각에 걸어두게 되는 등의 영예를 얻었다.</p><p><br></p><p><br></p><p><br></p><p><br></p><p><br></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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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2 04:42: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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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202242192</author>
         <link>https://padlet.com/minlak53/waxawuxu4d7pl0f8/wish/2821976539</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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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2 04:51: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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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락슈미바이</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minlak53/waxawuxu4d7pl0f8/wish/2822119022</link>
         <description><![CDATA[<p>락슈미 바이는 1828년에 태어나 어린시절에 특이하게도 교육과무술과 검술을 하였다. 그리고 락슈미바이는 어린나이에 결혼을했지만 남편은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힌두교의 전통으로아이를 입양했다</p><p><br/></p><p>인물이겪은 고난은 당시 인도의 총독이었던 영국의 댈하우지 경은 입양된 후계자를 인정하지 않았고</p><p>실권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결정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며</p><p>잔시의 영토를 즉시 합병했다.</p><p>락슈미 바이는 여왕의 궁전인 라니 마할을 나와 마을에서 떠날 수 밖에 없었다.</p><p>그러나 잔시의 여왕은 영토를 영국에 넘기지 않겠다고 결심하고</p><p>"나는 나의 잔시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p><p><br/></p><p>인물이중요하게 생각한 가치:전쟁</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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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12 07:37: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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