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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2 4모둠 프랑스 혁명 활동지 by 조정은 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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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전준희, 송윤서, 이정현, 진수아</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0-10-20 01:29: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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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폴레옹 쿠데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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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799년 11월 9일, 나폴레옹은 쿠데타를 일으켜 총재 정부를 전복시키고 통령에 오른다.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 정국을 수습하면서 혁명 정부의 기대와 우려를 한몸에 받았던 나폴레옹이 드디어 권력의 정점에 서고 영웅에서 간웅으로 변모하게 된 날이다. <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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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20 05:18: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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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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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바스티유 감옥 습격<br>1789년 7월 14일 평범한 파리 시민들이 당시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 속에 난입한 일일 것이다. 이는 격동과 혼란 속에서 군주제 타도로까지 이어졌고, 자연권과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에 의거한 공화정이 수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파산한 군주인 루이 16세가 170년 만에 처음으로 프랑스의 삼부회를 소집한 이후, 일 년간 긴장은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1789년 6월 20일, 제3신분의 대표자들은-귀족이나 성직자가 아닌 이들을 말한다-폐회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맞서 독립적인 정치 기구인 국민의회를 유지하기로 서약했다.<br><br>7월 12일, 평민에 협조적이었던 재정장관 자크 네케르를 왕이 해임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점점 더해 가는 불안 상태가 보수주의 반동이 진압당할것 을 두려워한 상퀼로트는 파리의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질서 유지의 임무를 맡은 '가르드 프랑세즈' 연대와의 사이에서 긴장이 높아 갔고, 7월 14일 시위대는 앵발리드에 강제 진입해 총기를 찾았으나 화약은 없었다.<br>그 이후 약 1천 명이 '바스티유'라 알려진 성으로 행진했다. 바스티유는 전통적으로 정치범을 구금하는 장소였지만, 그날에는 일곱 명밖에 없었으며, 주로 위조범이나 '광인'들이었다. 수비군은 약 60명으로 로네이 후작이 지휘하고 있었다. 오후 1시 30분경, 군중은 정문을 부수었고, 그들이 바깥쪽 구내로 진입하면서 사격이 시작되었다. 네 시간이 지나 습격한 이들 가운데 수십 명이 죽었을 무렵 성문을 부수는 데 쓸 대포가 도착했고 수비대는 항복했다. 로네이 후작은 집단 폭행으로 죽었고 군중들은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폭정의 상징인 바스티유는 신속하게 허물어졌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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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20 05:20: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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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테르미도르의 반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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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테르미도르의 반동은 프랑스 혁명기인 1794년 7월 27일에 일어난 반란으로, 쿠데타로 인하여 로베스피에르 파가 몰락하고 공안 위원회의 독재가 해체되어 공포 정치를 종결시킨 사건이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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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20 05:21: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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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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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루이 16세 처형<br>1792년 8월, 왕궁이 외국과 내통할 것을 염려한 민중들은 왕궁을 습격해 왕권 정지를 선언했다. 다음 달에는 공화제가 수립되고 왕정은 폐지되었다. 1793년 1월 21일, 혁명 광장에서 루이 16세의 처형이 기요틴에 의해 집행되었다. 이는 혁명정권 내의 과격파인 자코뱅파 로베스피에르 등이 제안한 것이었고 '혁명을 보다 잘 추진하기 위함'이라는 이유에서였다.<br>"국민들이여, 나는 억울하게 죽는다." 루이 16세의 이 말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열광적으로 '공화국 만세!'를 외쳤으며 기요틴의 칼이 내려와 왕의 목이 달아난 순간 왕이라는 존재는 말살되었다. 그리고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같은 해 10월에 같은 장소에서 처형당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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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20 05:21: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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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789.5 삼부회(삼신분회)소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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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789년 5월 삼부회(삼신분회)<br>루이 16세는 국가의 파산을 막기 위해 1789년 5월 삼부회를 소집했다. 삼부회에 소집된 인원은 제1신분(성직자) 294명 제2신분(귀족) 270명 제3신분(평민)578명이었다. 삼부회에서는 투표의결방식에 대해 갈등했다. 제1,2신분은 각 신분 별 1표를 선사 하기를 바랐고 제3신분은 수적으로 유리한 인당 별 1표를 바랐다. 투표의 표결방식은 어느쪽이 우세한지를 다루는 것과 마찬가지 이기에 어느 한쪽도 양보하지 않았으며 이 갈등은 테니스 코트의 서약으로 이어졌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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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20 05:33: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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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789.6 테니스 코트의 서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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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789.6 삼부회에서 투표 의결 방식에 대한 제3신분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특권층의 의원 선거를 앞두고 제3신분의 입후보자들은 팜플랫을 통해 공격했다. 제 3신분이 전부이며, 그 전에 제3신분을 위한 것이 없었음을 통해 앞으로 제3신분에게 무언가 주어져야 함을 나타냈다. 이러한 팜플랫 들로 해결되어지지 않을 것이 보이자, 평민 대표들은 국민 의회를 구성하였다. 루이 16세는 국민의회를 막기 위해 제3신분들의 의회장을 폐쇄하였고 이에 제3신분들은 테니스 코트장에 모여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해산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그들의 목적은 헌법이 제정되고 그들의 기초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며, 이 서약이 유명한 “테니스코트의 서약”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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