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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5-2-11 문학 A by 국어교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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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문학은 사랑의 실천일까?</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4-23 23: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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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활의 노래 들어 봤니? &#39;기억이 부르는 날에&#39;...... 충담사가 부릅니다. &#39;찬기파랑가&#39;</title>
         <author>korean5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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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em>열치며</em></p><p><em>나타난 달이</em></p><p><em>흰 구름 좇아 떠가는 것 아닌가</em></p><p><em>새파란 시냇가에</em></p><p><em>기랑의 얼굴이 있구나</em></p><p><em>이로부터 시냇가 조약돌에</em></p><p><em>낭의 지니시던</em></p><p><em>마음의 끝을 좇고 싶어라</em></p><p><em>아! 잣 가지 높아</em></p><p><em>서리 모르시올 화랑장이여 </em></p><p><mark>&lt;양주독 해독 기반 현대어 풀이&gt;</mark></p><p><br/></p><p>가끔씩, 무례하게도, 아주 가끔씩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린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당신들의 표정과 목소리와 이름을 떠올려 보는 그때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의 존재를 믿고 느낀다.</p><p><br/></p><p>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코코'에 담긴 이야기에는 멕시코에서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의 명복을 비는 명절('죽은 자의 날')과 집집마다 있는 제단에 사진을 놓고 그들을 잊지 않고 함께 살아가려는 풍속이 잘 담겨 있다. 겨울왕국의 'Let it go'를 작곡한 부부가 작곡해서 더욱 놀라웠던, 영화 OST 'Remember me'를 읊조리면서, 누군가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과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메리 골드(금잔화) 다리처럼 아름답게 서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p><p><br/></p><p>배경 설화에도 나오지만, '영복'한 스님, '충담사'께서도 '찬기파랑가'에서 '기파랑'의 이름을, 그의 모습과 인품을 기리며 'Remember 기파랑'을 부르고 있다. 단순한 추모, 순수한 추도이든 혹은 다른 정치적 의도나 시대적 요구가 숨어 있든, '기파랑'이라는, 현실에는 없는 존재를 여러 자연물들에 빗대어 빛나고 깨끗하며, 강인하고 원만하며, 고결한 존재로 다시 소환하고 있는 듯하다.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p><p><br/></p><p>멕시코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을 3가지로 나눈다고 한다. 첫 번째 죽음은 심장이 멎은 때, 두 번째 죽음은 땅에 묻힌 때, 세 번째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때.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화자는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고 했는데 그 역설의 의미도 조금 이해할 듯하다.</p><p><br/></p><p>추신. '코코' 시즌 2는 '체코'가 배경이지 않을까? 멕시코, 체코, 이하 '코코'</p><p><br/></p><p>&lt;향가 '안민가', '찬기파랑가'의 배경 설화&gt;</p><p>삼국유사 권 제2 기이 제2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p><p>경덕왕이 재위한 것이 24년간이었고 오악(五岳)이나 삼산(三山)의 신(神)들이 때때로 궁전 뜰에 나타나 모시기도 하였다. 3월 3일에 왕이 귀정문 문루에 행차하셔서 좌우의 신하에게 말하기를 "누가 나가서 영복한 스님을 얻어 오겠느냐?"하였다. 마침 큰 스님 한 분이 위풍이 정결하고 당당하게 지나가자 좌우 신하들이 모셔다 뵙게 하였다. 왕은 "내가 말하는 영복한 스님이 아니다." 하고 보내었다. 다시 한 스님이 헤어진 장삼을 입고 앵통을 지고 남쪽에서 왔다. 왕이 기뻐하여 문루 위로 맞아들이고 통 속을 보니 차 달이는 기구를 담았을 뿐이었다. "네가 누구냐?"고 묻자 "충담입니다."하였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하니 "소승이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이면 차를 달여서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공양하는데 오늘도 벌써 차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하였다.왕이 "과인에게도 한 잔 나눌 수 있느냐?"고 묻자 곧 차를 달여 드렸는데 차 맛이 특이하고 그릇에서도 특이한 향기가 풍겼다. 왕은 "짐이 듣건대 대사가 기파랑을 기려서 사뇌가를 지었고 그 뜻이 매우 고상하다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고 묻자 "그렇습니다."고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짐을 위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노래를 짓도록 하라." 충담사는 곧 칙명을 받들어 노래를 지어 바쳤다. </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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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9 04:44: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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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조 세 편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맛을 표현해 본다면? ㅠㅠ 애틋한 사랑의 맛, ^^ 자연 속에서 느끼는 흥의 맛, --;; 탐관오리들을 향한 풍자의 맛</title>
         <author>korean53</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33104287</link>
         <description><![CDATA[<p><mark>&lt;황진이, '어져 내 일이야~' 현대어 풀이&gt;</mark></p><p>아! 내가 한 일이야, 그리워할 줄을 (미처) 몰랐더냐?</p><p>(1) 있으라 했더라면 (임이) 굳이 떠나려 했겠느냐마는</p><p>(2) 있으라 했더라면 (임이) 떠나려 했겠느냐마는 (내가=화자가) 굳이</p><p>보내고 (이제 와서 새삼) 그리워하는 마음은 나(화자 자신)도 모르겠구나.</p><p><br/></p><p>결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방탄소년단의 'Fake love'의 가사 일부를 인용해 봅니다.</p><p>"널 위해서라면,</p><p>난 슬퍼도 기쁜 척 할 수가 있었어.</p><p>널 위해서라면,</p><p>난 아파도 강한 척 할 수가 있었어."</p><p><br/></p><p>임과의 이별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 이별로 인해 생겨날 고통과 외로움을 감내할 수 있는 척, 그렇게 센 척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고 무지였음이 여지없이 드러나 버린 자책과 한탄, 후회와 푸념은 화자의 임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여리고, 애틋한 것인지를 잘 드러내 주고 있는 것 같다.</p><p>Don't fake your love, Don't fake your feeling!</p><p><br/></p><p><mark>&lt;윤선도, '만흥'의 현대어 풀이&gt; </mark></p><p>제3수</p><p>술잔을 들고 혼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니,</p><p>그리워하던 임이 온다 하여 반가움이 이보다 더하겠는가?</p><p>(산)이 말도 없고 웃음도 없지만 못내 좋아하노라.</p><p>제4수</p><p>누가 (자연이) 삼정승보다 더 낫다고 하더니 만승천자가 이만하겠는가?</p><p>이제 생각해 보니 소부와 허유가 영리했구나.</p><p>아마도 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지내는 흥취는 비할 데가 없으리라. </p><p>제5수</p><p>내 천성이 게으른 것을 하늘이 아셔서</p><p>인간 만사의 일을 하나도 맡기지 않으시고,</p><p>다만 다툴 이가 없는 강산(자연)을 지키라고 하시는구나.</p><p><br/></p><p>'저절로 일어나 넘치는 흥'을 의미하는 '만흥(총 6수)'은 윤선도가 56세 경 전남 해남 금쇄동에 기거할 때 창작한 총 18수의 연시조('산중신곡'이라 불림)에 포함된 작품으로 오우가 6수와 함께 전해진다. 남인 출신으로 유배 4번, 총 25년을 유배지에서 보냈지만, 많은 유산으로 실제로는 풍족하게 살았다고 한다. 세 가지의 핵심 키워드를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안빈, (임천)한흥, 연군' 조선 사대부들이 추구했던 '강호가도'의 맥락을 잇고 있다.</p><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blog.naver.com/awriter/221289679620">https://m.blog.naver.com/awriter/221289679620</a></p><p><br/></p><p><mark>&lt;작자 미상, '일신이 사쟈 하엿더니~'의 현대어 풀이&gt;</mark></p><p>이 (한) 몸이 살자 했더니 무는 것 (많아) 힘겨워 못 살겠다.</p><p>비파 같은 빈대 새끼, 사령 같은 등에, 각다귀, 사마귀, 흰 바퀴, 누른 바퀴, 피 껍질 같은 작은(새끼) 이며, 보리알 같은 살찐 이며, 굶주린 이, 갓 깐 이, 잔 벼룩, 왜벼룩, 뛰는 놈, 기는 놈에, 다리 기다란 모기, 부리 뾰족한 모기, 살찐 모기, 여윈 모기, 그리마, 뾰록이(로 인해 생긴) 심한 피부병에 더 (견디기) 어려워라. </p><p>그중에 차마 못 견디는 것은 오뉴월 복더위에 쉬파리인가 하노라. </p><p><br/></p><p>인간의 생활에 해를 끼치는 벌레('믈ㄱ것')를 통틀어 이르는 해충들(사마귀는 조금 억울하겠지만...)이 들끓는 작품으로는 유일하지 않나 싶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리 삶을 더 힘들게 만드는 해충 같은 존재들이 예나 지금이나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에 뒷맛이 씁쓸하다. </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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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1 15:14: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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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포 김만중, 경남 남해군 노도에서 &#39;사씨남정기&#39;를 낳다.</title>
         <author>korean53</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54254953</link>
         <description><![CDATA[<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www.kislandnews.com/3239">https://www.kislandnews.com/3239</a></p><p>김만중의 『사씨남정기』는 숙종 대 인현왕후 폐위 사건을 배경으로 창작된 고전소설로, 권선징악 구조를 바탕으로 유교적 덕목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는 사씨를 인내와 예의를 갖춘 인물로 설정해 이상적인 여성상을 구현하고, 교씨를 간사한 첩으로 그려 참언과 간계의 말로를 보여준다. 이는 당시 유교 사회의 가족 질서와 여성의 역할에 대한 관념을 문학적으로 재현한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김만중은 작품을 통해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갈등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당대의 정치 상황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극적인 서사 전개와 인물의 대비를 통해 독자의 흥미를 끌며, 당시의 윤리 의식과 시대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은 한 가정 내에 일어난 분란과 그 해결을 넘어 조선 후기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문학적 자료로서 의의가 크다.</p><p>&nbsp;</p><p><mark>&lt;숙종의 인현왕후 폐위와 복위 과정&gt;</mark></p><p>조선 제19대 왕 숙종(재위 1674~1720)은 재위 기간 동안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붕당 간의 권력 균형을 활용한 ‘환국 정치’를 시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표적인 사건으로 인현왕후 민씨의 폐위와 복위가 있다.</p><p>&nbsp;</p><p>1689년, 장희빈(희빈 장씨)이 원자(훗날 경종)를 낳자 숙종은 이 아들을 세자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집권 세력이던 서인들은 신분 문제를 이유로 반대했고, 이에 숙종은 서인을 제거하고 남인을 등용하였다. 이 정치적 전환을 '기사환국(己巳換局)'이라 하며, 이때 인현왕후는 폐위되고, 장희빈이 왕비로 책봉되었다.</p><p>&nbsp;</p><p>하지만 장희빈과 남인 세력의 전횡, 그리고 민심의 반감이 커지면서 숙종은 다시 서인을 등용하고 남인을 축출하게 된다. 이는 1694년의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이때 인현왕후는 복위되고, 장희빈은 다시 후궁으로 강등되었다.</p><p>&nbsp;</p><p>이러한 환국 정치는 국왕이 붕당 사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며 정국을 조정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인현왕후의 폐위와 복위는 단순한 궁중의 갈등이 아니라 당쟁과 정치 세력의 교체가 얽힌 복합적 사건으로 평가되며, 후에 김만중의 『사씨남정기』 등 문학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사건은 조선 후기 정치의 불안정성과 왕실 내 여성의 정치적 위치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이기도 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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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6 13:22: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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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28 홍승경</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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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찬기파랑가는 단순한 향가의 형식을 넘어, 당시 화랑도의 이상적 인격과 공동체적 가치관을 반영한 작품으로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 이 시는 화랑 기파랑의 고결한 인품과 숭고한 정신을 예찬함으로써, 덕성과 선한 영향력이 어떻게 시대를 넘어 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히 한 인물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삶을 통해 공동체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인간상을 제시하는 점에서, 이 시는 화랑도의 정신적 지향과 공동체 윤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p><p>더 나아가, 찬기파랑가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흔히 성과와 경쟁을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다운 품성이나 도덕적 가치를 뒷전으로 밀어놓기 쉽다. 그러나 기파랑처럼, 시대를 초월해 모든 이의 존경을 받으며 기억되는 삶은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의 표본이 아닐까 한다. 그의 삶은 단지 개인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그 존재 자체가 공동체에 지속적인 울림과 감동을 주었다는 점에서 더욱 이상적으로 다가온다.</p><p>이처럼 과거의 노래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히고 가슴에 와닿는 이유는, 그 안에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 가치와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찬기파랑가는 단순한 찬양의 노래가 아니라, 인간의 고귀함과 도덕적 이상을 기리는 철학적 시이며, 그 정신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깊은 메시지를 전한다. 나 또한 이 시를 통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고, 기파랑처럼 공동체에 긍정적 영향을 남기며 고결한 정신으로 기억될 수 있는 삶을 지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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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24 17:57: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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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13 김태경</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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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lt;찬기파랑가&gt;라는 작품은 쉽게 보면 향가의 형식을 가진, 옛 신라에서 화랑도를 이끌던 ‘기파랑’이라는 화랑에 대한 예찬과 그리움으로 감상을 끝낼 수 있지만, 그 당시 이 시를 짓던 충담사의 시점에서 감상하자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100년이 지난 그 당시 한때 찬란하게 빛나고 신라가 통일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준 고매했던 화랑 정신이 힘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 충담사의 안타까움과 이 시를 읽게 될 사람들이 다시금 화랑정신을 본 받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단순하지 않은 작품이다. 기파랑의 맑고 깨끗한 청렴한 모습, 원만하지만 강단있는 성격, 높고 고고한 지조절개를 각각 시냇물, 조약돌, 잣나무가지라는 사물들을 내세워 빗대면서 한때 신라를 통일할 수 있게 이끈 화랑의 우두머리였던 그를 기리면서도 짧고 함축적으로 화랑정신을 표현하였다. 이 작품을 충담사의 시점에서 공부하면서 우리나라의 화랑의 전통과 위상을 잠시나마 되새길 수 있었고, 묘사된 기파랑의 모습과 인품에서 그 당시 사람들이 이상적이라고 여긴 인간상에 대해 간략히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단순한 화랑 예찬을 넘어서, 화랑도에 대한 회상과 화랑정신의 계승을 바라는 작가의 마음과, 우리 역사 속 이상적인 인간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 수 있는 심도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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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25 14:42: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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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오늘 저녁에 고운 노을을 바라보며, 마음 주머니에 &#39;천 원짜리 지폐&#39; 한 장 적립하기 위해 퇴계 선생과 함께 &#39;만보(1만 걸음:萬步)&#39;를 걸어 보지 않으실래요?</title>
         <author>korean53</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71549628</link>
         <description><![CDATA[<p>인간의 감정, 그 근원이 두 가지인지 한 가지인지, 사단과 칠정이 그 뿌리가 다른 것인지, 같은 것인지, 그 결론에 대한 궁금함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하나의 학문적 주제로 촉발된 교분(사귐)에 관한 것이다. 26살이나 차이가 나는 퇴계 이황(성균관 대사성 ≒ 서울대 총장)과 고봉 기대승(성균관 출신 무명의 젊은 유생)이 12년 동안 안동-서울-광주를 거쳐 200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견해를 완성해가는 과정과 그런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는 토론과 사유의 장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p><p><br/></p><p>퇴계 이황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명망 있던 학자로서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후학의 문제 제기를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려는 자세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고, 고봉 기대승의 도전과 패기 또한 부럽지 않을 수 없다.</p><p><br/></p><p>두 분의 브로맨스가 더 궁금하다면,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사단칠정논쟁에 대해 찾아 보시길 권합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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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29 00:19: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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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9;나타&#39;와 &#39;아집&#39; 깨우는 &#39;죽비&#39;, &#39;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39;?</title>
         <author>korean5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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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탈무드에 보면 한 젊은이가 랍비에게 [탈무드]를 공부하고 싶다고 청을 하자 다음과 같은 테스트 문제를 내면서 맞히면 제자로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랍비가 낸 문제는 “두 사람이 집의 굴뚝을 청소했네. 그런데 한 사람은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서 굴뚝에서 내려왔고，다른 사람은 그을음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네. 자네는 어느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으로 생각하는가?”<br>  그 젊은이는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씻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랍비는 틀렸다면서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그 젊은이는 정답이 무엇인가 묻자, 랍비는 “굴뚝 청소를 한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깨끗한 얼굴로， 또 한 사람은 더러운 얼굴로 내려왔네. 얼굴이 더러운 사람은 얼굴이 깨끗한 사람을 보고 자기 얼굴도 깨끗하다고 생각하네. 그러나 얼굴이 깨끗한 사람은 얼굴이 더러운 사람을 보고 자기 얼굴도 더럽다고 생각할 걸세”<br>  그러자 젊은이는 테스트를 다시 한 번 할 수 있도록 청하였다. 이에 랍비는 젊은이의 청을 받아들이면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했는데, 한 사람은 깨끗한 얼굴로, 다른 한 사람은 더러운 얼굴로 내려왔네, 자네는 어떤 사람이 얼굴을 씻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러자 젊은이는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 씻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랍비는 젊은이의 대답이 틀렸다고 하고 있다.<br>  젊은이는 이런 경우 탈무드는 무엇이라고 답하는지를 묻자 랍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답은 두 아이가 모두 씻지, 왜냐하면 굴뚝 청소를 했다면 깨끗한 얼굴로 내려올 수 없기 때문이니까.”<br>  앞의 교훈은 사람들은 자신을 타인을 통해서 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뒤의 교훈은 어떤 문제를 볼 때 마음과 눈을 열고 볼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똑같은 질문이니까 똑같은 대답이 정답일 것이라는 생각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br>  자신을 타인을 통해서 본다면 자신과 타인이 똑같은 처지에 있을 때만 객관적이고 올바르게 보고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과 똑같은 타인이나 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탈무드는 두 번째 이야기에서 우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황이 다르면 그에 대한 답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br>  세상과 사회의 많은 문제에는 정답이 있으면서 정답이 없다. 자신의 시각에서 보면 정답이 있지만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정답이 아닌 경우가 많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답인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ity:한 사람의 후생을 더 좋게 하면서 다른 사람의 후생을 감소시키지 않는 상태)의 해결 방법은 이상과 관념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 사는 세상에 올바른 정답이 될 수 없다.<br>  우리는 정답이 없는 것을 정답이 있는 것처럼 찾아 헤맨다. 그러다 보니 자기주장과 자기가 내세운 정답이 올바르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속임수, 과장, 억압 등의 온갖 수단을 쓴다. 우리는 없는 정답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주장과 다른 해답을 찾아 헤매는 노력도 필요하다. 비록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br><br>출처 : [박홍운 교수의 창](<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www.ccdn.co.kr">https://www.ccdn.co.kr</a>)</p><p><br></p><ol><li><p>'나(질문을 받은 사람)'의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p><p>  '나'의 관점에서 보면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씻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씻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는 것이다. </p></li><li><p>'나(이야기 속 한 인물)'의 관점을 '타인(이야기 속 상대)'의 관점과 비교하고, 수정,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p><p>  내 얼굴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상황(상대방의 얼굴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의 관점이나 판단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고, 오류를 발견했다면 열린 자세로 수정, 보완해야 한다.  </p></li><li><p>질문이 제시하는 상황이나 조건에 대해 근원적으로(메타적으로)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답은 없지만 정답에 가까워지려면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p><p>  어떤 대상이나 사실에 대한 질문은 종종 우리를 오도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황에서 한 아이는 얼굴에 그을음이 묻지 않고, 다른 아이의 얼굴에는 그을음이 잔뜩 묻을 수는 없지 않은가? 쉽지 않지만, 질문에 대해서도 질문을 해야 한다. </p></li></ol><p><br></p><p>단편소설 '난.쏘.공'을 읽은 후, 다시 소설집 '난.쏘.공' 전체를 찾아 읽으며 느낀 (아주 고된 독해의 시간이었지만) '슬픔과 분노'가 '아직 내 혈액 속에 흐르고' 있다는 말로 그 감동과 영향을 표현하고 싶다. 고 조세희 작가님께 경의를 표합니다.</p><p><br></p><p> '난.쏘.공'에는 우의적인 성격의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합니다. '뫼비우스의 띠'나 '클라인 씨의 병'에 관한 것들 모두, 일상 속에서 '멍' 때리고, '나타'에 젖은 채 살아가는 내 의식을 깨우고, '자기'와 '세상'에 대한 단단한 고집과 편견을 깨뜨리는 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을, 정말 듣고 싶습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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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29 22:39: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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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27 하선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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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p><p><br/></p><p>공부를 하지 않고는 우리 구역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 했다. 세상은 공부를 한 자와 못한 자로 너무나 엄격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끔찍할 정도로 미개한 사회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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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0:57: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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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23 이찬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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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ul><li><p>난장이 아버지가 우리들에게는 거인처럼 보였다.</p></li></ul><p><br/></p><ul><li><p>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됩니다.</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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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1:01: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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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21 여윤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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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p><p>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 흘릴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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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1:02: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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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28 홍승경</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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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그 자세로 아버지는 종이비행기를 날렸다.</p><p><br/></p><p>“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 흘릴</p><p>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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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1:02: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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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11김세림</title>
         <author>6xcvv8ggsg</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73147777</link>
         <description><![CDATA[<p>-정의는 반드시 승리하는가?</p><p><br/></p><p>조선 후기 한글 소설 사씨남정기는 오래도록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적 주제를 전하는 대표적 작품으로 회자되어 왔다. 간악한 첩 교씨가 착한 정실 사씨를 모함하고 가문에서 쫓아내지만 사씨는 끝내 절개를 지키고 자식을 훌륭히 길러낸다. 결국 시간이 흐른 후, 교씨의 죄가 드러나고 사씨는 가문의 정실 부인으로 복권된다. 선은 보상받고 악은 벌을 받는 결말은 명백한 정의의 실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처럼 깔끔한 권선징악의 구조는 과연 현실에서도 가능한가? 이 글은 사씨남정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는가’라는 질문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자 한다.</p><p>작품 속 사씨는 부당한 일을 당해도 끝까지 인내하며 조용히 물러난다. 직접적인 반격이나 해명 없이 침묵하는 선택은 유교 사회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여성의 모습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씨는 자식의 성장과 권력의 도움을 통해 다시 그 자리를 되찾는다. 겉보기에는 정의가 실현된 듯 보이지만, 사씨가 직접적으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의의 승리’는 조건부라고 볼 수 있다.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선 긴 시간과 외부의 도움이 필요했고, 피해자는 오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p><p>더 나아가 교씨와 같은 악한 인물이 벌을 받는다는 설정은 통쾌함을 줄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항상 그런 결말이 이뤄지지 않는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진실이 끝내 밝혀지지 않는 경우, 힘 있는 자가 악행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경우는 지금도 빈번하다. 그런 점에서 사씨남정기의 권선징악은 이상적인 정의 구현의 모습이지만 현실에선 예외가 너무 많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판타지에 불과한가?</p><p>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씨남정기는 오히려 정의가 쉽게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더 의미 있는 작품이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이 직접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씨는 자신의 방식으로 진실을 지키고 다음 세대에게 올바른 가치를 전한다. 교씨의 거짓이 시간이 지나 드러나듯, 진실은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는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라는 점을 암시한다.</p><p>결국 사씨남정기는 정의가 반드시 즉각적으로 승리하지는 않더라도 정의의 가치는 끝까지 지켜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현실이 작품처럼 명쾌하지 않다고 해서 우리는 정의를 포기할 수 없다. 시간이 걸릴지라도,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더라도, 정의는 끝내 드러난다는 믿음이야말로 이 작품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이다. 이 작품을 읽은 후 한가지 질문이 남았다. 우리는 과연 ‘정의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얼마나 단단히 붙잡고 있는가?</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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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1:04: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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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11김세림</title>
         <author>6xcvv8ggsg</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73151020</link>
         <description><![CDATA[<p>우리는 시대를 초월해 존경받는 인물을 기억한다. 그들은 뛰어난 업적을 남긴 경우도 있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마음에 남지 않는다. 진정으로 기억되는 이들은 언제나 ‘어떻게 살았는가’, 즉 삶의 방식과 내면의 품격으로 평가된다. 덕 있는 사람은 단지 자신의 삶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삶은 타인에게 본보기가 되고,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우리는 그러한 인물을 오래도록 이야기하고, 본받고, 존경한다. 그 덕이 공동체를 바로잡고,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수많은 성공을 이야기하지만, 진정한 존경은 결국 ‘어떻게 살았는가’에서 비롯된다. 찬기파랑가가 전하는 기파랑의 모습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인간 존엄성과 이상적 삶의 본질을 가르쳐준다. 물질적 성취보다 도덕적 품격을 중시하는 사회야말로 진정으로 건강한 공동체일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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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1:06: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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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11김세림</title>
         <author>6xcvv8ggsg</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73432355</link>
         <description><![CDATA[<p>이황의 시 「만보」는 자연을 묘사하며 삶과 학문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황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들판은 가을 수확을 앞두고 풍요롭고, 짐승과 새들은 때에 맞추어 움직이며, 모든 것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그러한 자연을 바라보며, 자신은 아직도 숙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고, 자신의 삶은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 시에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과연 이황이 바라본 자연은 진정으로 ‘완성’된 것일까? 그리고 그는 정말로 ‘미완성’의 인간이었을까?</p><p>자연이 완성되어 있다고 느낀 것은, 그것이 질서와 조화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완성이란 감각은 시인의 ‘인식’에 의한 것이지, 절대적인 사실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계절의 흐름, 생명의 주기, 동물의 움직임까지 많은 것을 관찰하고 배우지만, 우리는 영원히 자연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자연을 ‘완성된 존재’로 본 것은 시인이 그 순간 자연에 부여한 의미이다. 다시 말해, 자연이 진정 완성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 자연의 완성된 형태인지를 알지 못하기에 그렇게 판단한 것이다.</p><p>반면, 이황은 자신에 대해서는 ‘부족하다’고 단정 짓는다. 그는 자신의 삶과 학문 수양의 궤적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스스로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황은 조선 유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수많은 후대 학자들이 그를 도학의 완성자로 여긴다. 즉, 그 자신은 미완성이라 느꼈지만, 다른 누군가의 시선으로는 이미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완성’과 ‘미완성’이라는 개념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지극히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이다.</p><p>현대 사회는 이황의 자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미완성’을 강요한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타인의 성취와 끊임없이 비교하고, 그 결과 자신을 과도하게 깎아내리거나 불완전하다고 여긴다. 이는 자기 성찰이라기보다 자기 소모에 가깝다. 부족함을 아는 것은 성장의 발판이지만 그것이 반복적인 자책과 열등감으로 이어질 때, 오히려 인간의 정신은 위축된다. 이황의 성찰은 겸허와 수양의 언어였지만 오늘날의 자기비판은 때로 자기파괴로 흘러간다. 이황의 「만보」는 완성된 자연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하며 삶과 학문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성찰을 그대로 모방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무엇이 본질적인 태도였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는 남과 비교하지 않았고, 외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단지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내면의 이상’과의 거리에서 부족함을 느꼈다.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바로 그 진정성이다. 완성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지, 타인이나 사회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p><p>결국 인간은 본질적으로 미완성된 존재다. 그러나 그 미완성 속에서 끊임없이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가 곧 ‘완성에 이르는 태도’다. 이황은 ‘나는 무엇을 해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같은 질문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답은 ‘성취의 크기’가 아니라, ‘성찰의 깊이’에서 찾아야 한다. 완성은 결국 멈춤이 아니라 계속 나아가려는 의식 속에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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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3:50: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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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08 권은정</title>
         <author>mzjn9zsgsd</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74589590</link>
         <description><![CDATA[<p>“그러나 마음에 드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 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p><p><br/></p><p>“우리의 조상은 세습하여 신역을 바쳤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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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1 15:06: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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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1120 양소율</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74615624</link>
         <description><![CDATA[<p>선정한 문장1</p><p>&nbsp;“아버지는 피뢰침을 잡고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자세로 아버지는 종이비행기를 날렸다.”<br><br>선정 이유<br>이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으로 아버지가 공장 굴뚝 꼭대기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모습입니다. <br>종이비행기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비행체입니다. 아버지가 굴뚝 끝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것은 현실의 절박함 속에서도 놓지 않는 마지막 희망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이 장면의 종이비행기는 아버지가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 그의 마지막 외침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인상깊은 문장으로 선정하였습니다. <br><br></p><p>선정한 문장2<br>“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br><br>선정 이유<br>지섭이 아버지에게 한 이 말은 개인의 불행을 넘어 공감과 연대가 결여된 사회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단순히 가난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성의 붕괴를 경고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법과 제도만으로는 모든 것이 채워지지 않고 따듯한 눈물과 관심이 함께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 계기가 되어 인상깊은 문장으로 선정하였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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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1 16:07: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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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19 안지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75508621</link>
         <description><![CDATA[<p>“그들 옆엔 법이 있다.” 아버지 말대로 모든 이야기는 끝나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p><p><br/></p><p>법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최소한의 도덕이나 사회적 기준을 제시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그저 강자의 이익을 위해 쓰여지고 마는 이야기 속 현실이 와닿았고 가슴아팠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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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2 02:45: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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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1107 권도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75537639</link>
         <description><![CDATA[<p>“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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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2 03:00: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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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16박소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75543042</link>
         <description><![CDATA[<p>난장이 아버지가 우리들에게는 거인처럼 보였다.</p><p>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p><p>“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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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2 03:03: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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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17 서우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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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ul><li><p>난쟁이 아버지가 우리들에게는 거인처럼 보였다.</p></li></ul><p><br/></p><ul><li><p>끔찍할 정도로 미개한 사회였다. 우리가 학교 안에서 배운 것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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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2 03:23: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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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02 장재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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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주정뱅이는 계속 딸꾹질을 해댔다.</p><p>“그만두세요.”</p><p>내가 말했다.</p><p>“그럼 찾아보렴.”</p><p>주정뱅이가 말했다.</p><p><br/></p><p>2.“그만두세요.”</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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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2 03:49: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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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22 원예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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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고통을 알아</p><p>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 줄 사람이었다.</p><p><br/></p><p>성장한 명희는 마지막 순간에 어렸을 적 일들 속을 헤매었을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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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2 03:50: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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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01 윤서준</title>
         <author>24hy1030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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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p><p><br/></p><p>“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p><p><br/></p><p>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는 말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난장이 가족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지 잘 드러내며 독자에게도 큰 인상을 주는 구절같다. 하루하루가 전쟁같은 난장이 가족의 상황을 내 내면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장면을 머리속으로 상상하며 공감하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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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2 03:56: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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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13 김태경</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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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그들과 악수할때 아버지는 발뒤꿈치를 들었다. 아버지가 어떤 자세를 취했건 상관이 없었다. 난장이 아버지가 우리들에게는 거인처럼 보였다.</p><p><br/></p><p>공부를 하지 않고는 우리 구역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공부를 한 자와 못한 자로 너무나 엄격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끔찍할 정도로 미개한 사회였다. 우리가 학교 안에서 배운 것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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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2 04:16: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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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최병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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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난장이 아버지가 우리들에게는 거인으로 보였다” ,“아버지는 피뢰침을 잡고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자세로 아버지는 종이비행기를 날렸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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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2 04:20: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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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11김세림</title>
         <author>6xcvv8ggsg</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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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p><p><br/></p><p>나는 우리가 이 구역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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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2 04:58: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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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06 허태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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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ul><li><p>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 흘릴 줄 모릅니다.</p></li><li><p>그들 옆엔 법이 있다.</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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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2 09:19: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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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26조서연</title>
         <author>24hy10925</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78845750</link>
         <description><![CDATA[<ul><li><p>나는 우리가 이 구역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p></li><li><p>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 흘릴 줄 모릅니다.</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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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4 12:17: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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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14 남기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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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식사를 했다.</p><p><br/></p><p>우리와 식구를 제외하고 세계는 모두 이상했다. 아니다. 아버지와 지섭마저 좀 이상했다. 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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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4 16:15: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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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09 권하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79385592</link>
         <description><![CDATA[<p>”난장이 아버지가 우리들에게는 거인처럼 보였다.“</p><p>“아버지 말대로 모든 이야기는 끝나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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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4 23:41: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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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79511044</link>
         <description><![CDATA[<p>형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형은 언제나 나보다 생각이 깊었다. 아는 것도 많았다. 학교를</p><p>그만두자 더 많은 책을 읽었다. 아버지가 난장이만 아니었다면 형은 학자가 될 사람이었다.</p><p>형은 틈만 있으면 책을 읽었다. 나는 형을 위해 기계에서 돌아 나오는 인쇄물을 접어다 주고</p><p>는 했다. 아주 어려운 것도 형은 참고 읽었다.</p><p><br/></p><p>그것은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이었다. 큰 공장이 문을 닫으면 수많은 공원들은 갈 곳이 없</p><p>었다. 작은 공장들이 채용할 인원은 한정이 되어 있다. 나는 돈도 못 벌고 놀게 될지도 모른</p><p>다. 새로운 일터를 찾는다고 해도 낯선 곳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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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5 01:11: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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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23 이찬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82981391</link>
         <description><![CDATA[<p>충담사의 「찬기파랑가」는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향가로, 화랑 기파랑의 인품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노래이다. 기파랑은 역사적으로 뛰어난 인격과 신념을 갖춘 화랑으로 전해지는데, 이 시에서는 그를 다양한 자연물에 비유하여 그의 정신적 위대함을 예찬한다. 그러나 단순히 한 사람을 칭송하는 노래가 아니라는 점이 좋았다. 이는 신라 사회에서 이상적인 인간상과 정신적 가치를 형상화한 작품이며, 기파랑이라는 인물을 통해 공동체가 추구했던 도덕적 원형을 보여준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저 “기파랑이라는 인물이 참 대단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곱씹을수록 이 노래가 가진 철학적 깊이와 시대적 메시지가 느껴졌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과연 ‘변하지 않는 가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기파랑의 곧고 변치 않는 성품은 사회 전체가 본받아야 할 인간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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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9 03:55: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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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리한 풍자와 너른 해학이 펼쳐지는 한마당, &quot;탈춤을 추자.&quot;</title>
         <author>korean53</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84851809</link>
         <description><![CDATA[<p><mark>부조리·갈등 넘어 소통과 화해의 춤</mark> (기사 인용)</p><p><br/></p><p>2022년을 마무리하는 달인 12월 첫째날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가 열린 모로코에서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바로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풍자와 해학’으로 지친 서민의 시름을 달래준 한국의 전통 가면극 탈춤이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오른 것이다. 등재 명칭은 한국어 발음 ‘탈춤’을 영문으로 옮긴 ‘한국의 탈춤’(<mark>Talchum, Mask Dance Drama in the Republic of Korea</mark>)이다.</p><p> 이번 등재로 한국은 총 22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탈춤은 무형문화유산 제도가 한국에 처음 도입된 1960년대부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한국인에게는 무형유산의 상징으로 인식돼온 종목이기 때문에 이번 등재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유네스코가 등재 결정문에서 밝힌 따끈따끈한 주요 등재 사유를 함께 살펴보면 기쁨이 배가 될 것 같아 아래 발췌했다.</p><p>“탈춤은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는 역할 이외에도 지역 방언과 지역 민요를 포함함으로써 지역의 정체성 강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탈춤 공연은 지역 축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중략) 전통 탈춤 공연은 <mark>보편적 평등의 가치와 사회적 신분제에 대한 비판</mark>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주제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들이다. 탈춤은 <mark>전승 지역의 문화 정체성에 상징적인 요소</mark>로 자리 잡고 있다. (중략) 탈춤 등재는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전통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배양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무형유산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다.”</p><p>민중의 삶과 의식 구체적 묘사</p><p>한국의 탈춤은 조선시대 성행했던 가면 놀이다. 조선 전기 각 지역에서 연행되다가 17세기 중반 궁궐 주관 아래 산대(민속놀이를 하려고 마련한 무대)에서 주로 상연됐으나 인종 12년인 1634년 궁중 공연이 폐지되면서 민중에 유입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p><p>탈춤은 춤과 음악, 노래, 연극의 모든 요소가 총망라된 종합예술이다. 정식으로 차려진 무대가 아니더라도 배우와 관객만 있으면 공터에서도 공연이 가능하다. 탈춤의 주요 내용은 <mark>부조리한 사회 이슈와 윤리적 모순</mark> 등을 주제로 했다. 여기에 <mark>풍자와 해학</mark>을 곁들여 재치 있게 풀어내면서 배우와 관객이 소통했다. 탈춤은 배우의 드라마뿐만 아니라 <mark>관객의 동조와 호응</mark>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소통 예술의 특성을 보인다.</p><p>한국의 탈은 모양이 귀엽거나 예쁘다기보다는 기괴하다는 인상을 준다. 너털웃음을 짓는 하회탈조차도 다소 과장된 주름과 표정에 깜짝 놀랄 때가 있을 정도다. 왜 그럴까. 공연에 사용하는 탈은 배우가 자신을 감추고 또 다른 자아를 드러내는 도구다.</p><p>한국의 탈을 종류별로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 자신이 일생 짓게 되는 희로애락의 온갖 감정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을 눈치 챌 것이다. <mark>인간의 표정을 감추려고 쓴 탈이 인간 내면의 솔직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있는 셈이다</mark>. 탈춤에 사용되는 가면은 바로 한국 민중의 삶과 의식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p><p>갈등 넘어선 조화의 전통유산</p><p>한국의 탈춤은 총 18개 무형유산 종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봉산탈춤과 북청사자놀음, 하회별신굿탈놀이, 양주별산대놀이, 통영오광대 등이다. 맛보기로 봉산탈춤을 한번 들여다보자. 강령탈춤과 함께 해서(海西)탈춤의 대표 격인 봉산탈춤은 황해도 일대에서 추어오던 탈춤이다. 중부지역의 양주별산대놀이와 견줘 볼 때 뛰어노는 춤이 많아 굉장히 활달하고 씩씩하며 빠른 템포의 특징을 갖고 있다.</p><p>탈도 사실적 외관을 하고 있다. 봉산탈춤은 몰락한 양반과 하인, 무당, 파계승, 서민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권선징악을 주제로 익살스러운 재담을 곳곳에 배치하면서 현실의 부조리를 폭로한다. 무속과 불교 신앙적 색채도 가미돼 있지만 종교적 의미는 크지 않고 민중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오락적 요소가 풍부하다.</p><p>한국의 탈춤은 언뜻 <mark>부조리와 갈등을 공론화하고 단순히 이를 풍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거기서 더 나아가 화해의 춤으로 마무리한다</mark>. <mark>갈등을 넘어선 화해와 조화의 전통유산</mark>이라는 문화예술적 가치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p><p>배우는 관객과 적극적으로 환호와 야유를 주고받으며 양반과 사회의 문제를 호되게 비판하지만 마지막으로 흐르면서는 모두가 더불어 하나 되는 세상을 지향하는 상호 존중의 유쾌한 공동체적 퍼포먼스로 극을 흐르게 한다. 상대의 말에 좀처럼 귀 기울이지 않는 요즘 세태에 신명 나는 탈춤 한마당을 펼쳐 보이며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건 어떨까.</p><p>김정필 &lt;한겨레&gt; 기자</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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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10 07:09: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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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절정에서 약간 비켜선 채로, 조금쯤 비겁하고 옹졸하게,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며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소시민들을 위한 노래, &#39;자그냐 자그냐&#39;</title>
         <author>korean53</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84859268</link>
         <description><![CDATA[<p>항상 절정 위에 있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만, 나의 일상이 정면에서 너무 비껴나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이닥칠 때 이 시를 읽습니다. 김수영 시인이 살아 있다면, 첫 연의 4행을 조금 고쳐달라고 청하고 싶지만("설렁탕집 주인에게 욕을 하고" 정도로 말이죠), 그는 이미 없으니 어쩔 수 없네요. 첫 연의 4행이 마음에 몹시 걸리지만 그래도 이 시의 <mark>놀라운 정직함</mark>을 좋아합니다. 후대의 시인으로서 김수영 시인에게서 배운 가장 큰 것이라면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mark>삶에 대해 가져야 할 정직함과 번민의 자세</mark>입니다. 이 시는 1960년 4.19혁명 이후 들이닥친 1960년 5.16 군사쿠데타, 그 반혁명의 시절을 살아내는 <mark>소시민으로서의 자신에 대해 회초리를 들고 있습니다</mark>. 제가 느끼기에 시인으로서의 김수영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자유를 향한 지칠 줄 모르는 갈망과 일상에 대한 냉혹한 반성이 만날 때입니다. 그리하여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 사랑을 발견하겠다"(「사랑의 변주곡」 첫 부분)고 열기 어린 사랑의 지향을 노래할 때입니다. <mark>60년대의 김수영이 거론하는 '비겁'의 목록을 2010년대의 '비겁'의 목록으로 바꾸어 읽어봅니다. 떠오르는 많은 괄호들이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mark>. 아,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 이 탄식이 하릴없는 자조로 침몰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씩씩해져야겠습니다. 오, 자유! 오, 사랑! </p><p>문학집배원 김선우</p><p><br/></p><p>김수영 시인을 향한 헌사로 느껴지는, 강은교 시인이 김수영 시인이 시 '푸른 하늘을'을 패러디한 작품입니다. '하찮은 것들의 위대함'이라는 역설이 뼈를 때립니다.</p><p><br/></p><p>그대의 들</p><p>                      강은교</p><p>'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로 시작되는</p><p>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하네</p><p>하찮은 것들의 피비린내여</p><p>하찮은 것들의 위대함이여 평화여</p><p>밥알을 흘리곤</p><p>밥알을 하나씩 줍듯이</p><p>먼지를 흘리곤</p><p>먼지를 하나씩 줍듯이</p><p>핏방울 하나 하나</p><p>그대의 들에선</p><p>조심히 주워야 하네</p><p>파리처럼 죽는 자에게 영광 있기를!</p><p>민들레처럼 시드는 자에게 평화 있기를!</p><p>그리고 중얼거려야 하네</p><p>사랑에 가득 차서</p><p>그들의 들에 울려야 하네</p><p>'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대신</p><p>모래야 우리는 얼마큼 작으냐</p><p>'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대신</p><p>바람아, 먼지야, 풀아 우리는 얼마큼 작으냐, 라고</p><p>세계의 몸부림들은 얼마나 얼마나 작으냐, 라고</p><p><br/></p><p>출처 : 더뷰스(<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www.theviews.co.kr">http://www.theviews.co.kr</a>)</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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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10 07:14: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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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1118 성제민</title>
         <author>lyongdong31</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88594499</link>
         <description><![CDATA[<p>내가 봤을 때 영희 이 계집애는 미친게 분명하다</p><p>사람이 주제파악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혼자서 뭔 자신감으로 입주권을 가지러 간건지 모르겠다</p><p>내 생각엔 주변에서 이쁘다 이쁘다 해줘서 얼굴 하나 믿고 일단 가본 것 같다. 글고 부동산 사나이 걔도 알고 그냥 쓱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둿을 거 같다. 훔쳐져도 다시 뺏으면 그만이다</p><p>글고 난장이 너무하다</p><p>솔직히 지섭도 선빵 칠 때 난장이가 도와줘겠지 하는 마음으로 쳤을 거 같은데 아무도 안 도와줘서 괜히 나댔다 싶을 거다.</p><p>근데 난장이가 현명하다</p><p>약한놈들 머릿수 좀 늘어난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거 같다</p><p>내가 봤을 땐 도와준지 삼초만에 집 부순 망치로 머리통 갈렸을 거다</p><p>아빠는 이렇게 현실파악을 잘 하는데 영희는 좀… 하,,</p><p>그래도 평생을 가난하게 살 바에 어쩌면 순수함이 망가진 채로 조금은 더 여유롭게 사는게 더 나을 수도 있다.</p><p>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은 너무</p><p>현실적이라서 </p><p>비극적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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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12 23:13: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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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18 성제민</title>
         <author>lyongdong31</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88632664</link>
         <description><![CDATA[<p>교씨는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p><p><br/></p><p>내가 봤을 때 교씨도 사씨랑 유한림 못지않게 똑똑했던 사람이다</p><p>작품에서 사씨는 현명하다고 표현되고</p><p>교씨는 교활하다고 표현이 되었는데 내 생각엔 현명이랑 교활은 한끗차이다.</p><p>교씨 이 기집애는 연기력도 엄청나고 예뻣을 거다</p><p>솔직히 유한림도 아내의 권유로 첩을 받았더라도 </p><p>노래시키고 술따르게 하고 애까지 만든 거 보면 교씨는 사람을 홀리는 능력이 꽤나 있는 것 같다. </p><p>작품에서 살짝 노래부르는게 천박st 이니깐 사씨가 뭐라고 한 거 같긴한데 만약 교씨가 좋은 가정에서 나고자랐으면 천박하고 교활해졌을까? 생각이 들었다. </p><p>교씨를 정당화 할 생각까지는 없지만 과연 교씨를 그저 악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가? 생각도 들었다</p><p>교씨는 심리적 생존기제가 발동됐을 수도 있다. 물론 교씨가 천성이 조금 못나서 모든걸 다 뺏고싶고 질투가 나서 그럴 수도 있지만 자신의 아이만큼 죽일정도로 악했던 사람일까? 생각이 든다</p><p>교씨는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첩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본래 사랑해서 들여온 첩 자체는 아니니 상대적으로 위치 자체가 더 불안할 것이다. </p><p>아니 솔직히 교씨 입장에서도 사씨 조금 너무하다</p><p>애 낳으라고 들여보내와서 애를 낳았으면 그냥 그 애를 조금 잘 케어해주고 사랑해주다보면 교씨도 조금 덜 불안해할 거 같은데</p><p>자꾸 애도 낳아놨는데 유한림이랑 사씨랑 밤마다 사랑을 나누니까 결국 애까지 생긴 것 아닌가? </p><p>이건 걍 자기가 애 못 낳을 거 같아서 보험용으로 들여논 것 밖에 안 된다. </p><p>이렇게 되면 교씨와 그 아들은 그 가문에서 아무것도 아닌 한미한 사람이 될뿐이다. </p><p>교씨는 어쩌다 그렇게 까지 됐을까 </p><p>정말 궁금하다</p><p>근데 정말로 교씨가 사씨같은 집안에서 자라났더라면</p><p>정말로 그런 사람이 됐을까</p><p>선이랑 악의 기준은 대체 누가 정하는 건지 모르겠다</p><p>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선이랑 악은 달라지는 것 같다</p><p>그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p><p>곧 선인 것 같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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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12 23:59: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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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11김세림</title>
         <author>6xcvv8ggsg</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92245419</link>
         <description><![CDATA[<p>진실은 언제나 힘 있는 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말할 권리를 박탈당한 자,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자의 입에서야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권력은 언제나 스스로를 포장한다. 말과 글, 규범과 법을 통해 자신이 정당하다는 서사를 만든다. 그러나 이름 없이 살아가는 이들은 그들은 단지 눈으로 본 것을 말하고 몸으로 겪은 것을 전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는 세련되지는 않지만 거짓이 없다. 모순과 부조리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말은 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다.</p><p>그들의 말은 종종 웃음 속에 담긴다. 풍자와 해학이라는 형식을 빌려 감히 직면할 수 없던 현실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그 웃음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억눌림의 역사 속에서 유일하게 허용된 말하기의 방식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틈을 비집고 진실을 말한다. 위선적인 권위를 조롱하고, 허울뿐인 권력을 무너뜨리는 언어는 그 어떤 비판보다 강력하다. 웃음 속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우스꽝스럽지만 내면에는 뜨거운 저항의식을 간직한 이들이다. 왕의 말이 진실이었고, 학자의 말이 진리였던 시대에서도 시대의 모순을 처음으로 말해낸 것은 농부였고 광대였으며 이름 모를 백성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바꿀 힘은 없었지만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던진 질문은 어느 순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마침내 중심을 흔드는 씨앗이 되었다. 이렇듯 약자의 말은 쉽게 사라질 수 있지만 그 울림은 길게 남는다.</p><p>오늘날 우리는 누구의 말을 듣고 있는가.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는 사람들,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적이 있는가. 진실은 권위 있는 말보다 권리를 빼앗긴 말 속에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일은 단지 공감을 넘어 사회의 균형을 바로잡는 일이다. 우리는 약자의 입에서 시작된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진실을 담고 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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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16 23:32: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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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05  최병규</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92250547</link>
         <description><![CDATA[<p>충담사의 찬기파랑가는 통일신라에 쓰인 대표적인 향가 중 하나이다. 오랫동안의 전쟁이 끝나고는 100년 동안의 태평과 안일의 시대가 찾아왔다. 신라 때에는 전쟁이 많아서 무신 즉 화랑 중심의 시대였다면 통일 신라 때에는 전쟁이 많이 없어 불교나 유교, 중국의 학문을 배우고 중시하는 문관들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문관 중심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p><p>이런 상황 속에서 신라 특유의 풍속인 화랑정신이 점차 문신이 힘이 세지면서 약해지게 되었고, 그 상황에서 안타까움을 느낀 충담사가 기파랑은 찬양하기 위해 '찬기파랑가'를 지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문신 중심의 사회에서 기파랑은 작품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아직도 예전 화랑의 무리에 대한 애착과 미련이 남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찬기파랑가, 양주동 해석 버전은 화자가 딸에게 물음을 건네면서 시작한다. 달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기 파랑의 성품이 직접 드러나지 않고 자연물을 통해 드러나는데 예를 들면 '냇물'은 기 파랑의 깨끗하고 청렴한 모습을 말하는 거고 '조약돌'은 강직한 성품 '잣나무까지'는 고고한 절개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이 원관념이 드러나지 않고 자연물 같은 보조 관념만 드러나는 기법을 상징이라고 합니다. 또 재미있는 점은 향찰로 쓰였기 때문에 사람마다 해석이 다른 것입니다. 양주동 작가는 대화체로 추모보다는 찬양의 의미가 강했지만 다른 작가 김완진에 해석본을 보면 대화체가 아닌 독백체로 쓰였고 찬양보단 추모의 의미가 강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떄문에 찬기파랑가는 최고의 향가라고 불리는 것 같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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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16 23:39: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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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01 윤서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492255715</link>
         <description><![CDATA[<p>찬기파랑가는 신라 시대 대표적인 향가로 모범적인 화랑 기파랑을 예찬하고 기르기 위한 찬가이다. 문학 교과서 학습활동에는 찬기파랑가가 쓰인 당시 시대적 배경을 "충담사가 살았던 경덕왕 때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지 백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태평과 안일의 시대가 열리면서 불교나 유교, 중국의 학문을 중시하는 문관들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신라의 국풍으로 인정받던 화랑정신과 통일 전쟁을 이끌었던 무관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점차 힘을 잃어 갔다. 충담사가 이 작품에서 '기파랑'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화랑의 무리에 대한 애착과 미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 작품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다시 읽어본다면 새롭게 보일 것이다. 신라에서의 화랑은 그야말로 국가의 근본이라고 볼 수 있다. 삼국 통일 과정에서도 화랑의 역할이 컸고 국가의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화랑이다. 그런데 평화의 안일의 시대가 열리며 문관들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화랑정신과 무관들이 점차 힘을 잃어가며 기강이 해이해진다면 결국 신라는 혼란에 빠질 것이며 만일 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릴 것이 분명하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시대 때 임진왜란이다. 몇백년의 평화와 안일에 군기강은 해이해졌고 문관들만이 권력을 독점하다 임진왜란이 터지고 조선은 끔찍한 피를 보게 된다. 물론 충담사가 평화와 안일을 경계하는 태도로 찬기파랑가를 쓴 것은 아니지만 화랑정신을 강조하는 충담사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이나마 가슴에 와닿았다. 기파랑의 고매한 인품을 자연물에 빗대며 청렴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형상화하며 화랑 정신의 가치를 부각하고 색채대비를 통한 의미대비로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찬기파랑가는 문학적 표현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시 사회를 보여주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찬기파랑가를 읽고 우리 사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무로', '세종로' 이순신 동상, 세종대왕 동상 등 전국 곳곳에 있는 여러 동상들이 있다. 즉 찬기파랑가를 통해 기파랑을 예찬하듯 당시에는 문학을 통해서 기리던 영웅들을 이제는 더 많은 방법으로 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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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16 23:45: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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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27 하선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514130110</link>
         <description><![CDATA[<p>찬기파랑가는 신라 시대 충담사가 지은 10구체 향가로, 화랑 기파랑의 고결한 인격을 찬양한 작품입니다. 달빛, 시냇물, 잣나무에 비유해 기파랑의 덕성을 표현했으며, 향가 중 문학성이 뛰어난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이러한 찬기파랑가를 읽으며 느낀 점은 죽음에 대한 고찰입니다. 이 작품 속의 기파랑이라는 대상은 실제로 작품이 쓰여지기 전의 인물로 작품이 나오는 때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쓰는 이는 기파랑으로 대표되는 화랑 집단의 전성기를 그리워 하며 그 집단이 추구하는 바와 정신을 따라가고 싶다고 말함으로써 이 작품을 쓴 이의 마음 속에 아직 그 화랑과 기파랑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현대적 관점으로 바라보았을 때 사랑하는 내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이 비록 육신은 현실 세계에 남아있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좋아했던 무엇가 혹은 그 사람의 가치관을 남은 사람이 함께 지켜나가는 것이 고인에 대한 추모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계속 생각하고 회상하며 그 기억을 함께 나누는 것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상적인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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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09 00:48: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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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27 하선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514245361</link>
         <description><![CDATA[<p>사씨남정기는 조선 후기 김만중이 지은 고전소설로, 사씨가 교채란의 모함으로 인해 시댁에서 쫓겨났다가 온갖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사씨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조선 사회가 이상적으로 여긴 여성상, 즉 정숙하고 인내심 깊으며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는 여성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용의 전개에서 선과 악의 구도가 명확히 드러나며, 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자성어는 권선징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사씨는 ‘선’을, 교씨는 ‘악’을 대표하는 인물로 등장하며, 유한림(유연수)은 교씨의 계략에 한동안 휘둘리지만 결국에는 ‘선’을 택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가정 내 갈등이나 여성의 덕목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의 정치적 상황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으로 이어지는 세 번의 환국에서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갈등이 중심에 있었고, 작가 김만중은 이러한 현실을 소설 속 인물인 사씨와 교씨를 통해 반영했습니다. 인현왕후가 폐위되고 장희빈이 왕비로 책봉된 기사환국 시기의 상황을 반영하여, 인현왕후를 닮은 사씨는 이상적인 여성이자 억울한 피해자로, 장희빈을 닮은 교씨는 이기적이고 간악한 악인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서인이었던 작가의 정치적 입장과 시각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며 단순히 선과 악의 구도만으로 모든 인물을 판단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과연 교씨는 정말 절대적인 악인일까?“라는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물론 작품 속에서는 교씨의 행동이 매우 극단적이고, 그녀의 악행이 인물들의 대화나 편집자적 논평을 통한 서술로 강조되어 있지만, 만약 이 이야기의 시각이 달랐다면, 교씨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면 같은 행동이라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사씨는 조선 후기 사회가 이상적으로 여겼던 여성상을 대표하는 인물로, 인내심이 강하고 덕이 있으며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러한 모습이 이상적으로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바로 그 지나친 인내와 자기희생적인 태도가 사씨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씨는 교씨의 모함과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억울함을 드러내기보다는 묵묵히 참고 기다리는 태도를 취합니다. 물론 이는 당시 사회에서 여성에게 기대되던 ‘현숙함’의 기준에 부합하는 행동이었겠지만, 그만큼 자신의 감정이나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타인의 행동에 대한 저항이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매우 소극적이었습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사씨의 이러한 성격은 오히려 문제 상황을 장기화시키거나 자신을 억압하는 구조에 순응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다른 인물들과 소통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다면, 교씨의 계략이나 유한림의 오해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즉, 같은 사건과 인물이라도 누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진실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이 작품을 통해 깊이 느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우리는 다양한 성격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때로는 어떤 이의 말이나 행동이 전혀 이해되지 않거나 부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곧바로 단정 짓고 비난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태도, 즉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조금 더 열린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선’과 ‘악’이라는 흑백논리보다는 그 사이의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사씨남정기는 단순한 권선징악의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시선과 입장을 받아들이며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며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단순한 판단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깊이 느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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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09 01:54: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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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27 하선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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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6·25 전쟁, 4·19 혁명, 군사 쿠데타 등 역사적 사건 속에서 자유와 정의를 향한 열망이 좌절된 현실을 배경으로, 권력의 부조리 앞에서 침묵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하는 소시민적 태도를 자조적으로 성찰하는 시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옹졸함을 돌아보며, 개인이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며 살아가는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보이지 않는 계급’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작품 속 화자는 부정선거나 군사 쿠데타, 권력의 부조리함 앞에서는 침묵하면서도 사소한 일에는 분노하고, 자신의 옹졸함을 되돌아봅니다. 시인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자유와 정의의 좌절을 비판하며 자기 성찰을 하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태도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며,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가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서열이 되고, 그 서열은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작용하며 사람들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일상 속에서 조용하지만 강하게 개인에게 압박을 가한다고 느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침묵하게 만들고, 부조리에 순응하도록 만듭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부당한 일이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게 됩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지금 이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암묵적인 태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결과, 부조리한 권력 관계는 끊어지지 않고 대물림됩니다. 자신이 겪은 부조리를 다음 세대에게 다시 반복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자기 방어에 익숙해지고, 성찰보다는 합리화에 가까워지게 된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시 속 화자처럼, 자신보다 약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만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작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 앞에서는 침묵하는 이중적인 모습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며 문득 ‘저 역시 그런 태도를 보인 적은 없었을까’ 하고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부조리에 무감각해진 적은 없었는지, 부끄러운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넘긴 적은 없었는지를 되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저 자신에게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학생 신분인 저보다 더 많은 부조리를 겪어 보았을 어른들께도 묻고 싶습니다. 살아오시면서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안도시킨 적이 있으신가요? 그 말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그 말을 그대로 건네 부조리가 반복된 적은 없으신가요? 이 시는 단지 과거의 역사적 사건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권력의 본질과 인간의 태도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시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그때는 그랬지’라고 과거를 돌아보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도 어떤 구조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질문하게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성찰의 태도이며, 그 시작은 아주 작은 의문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 시가 그 질문의 출발점이 되어 주었다고 느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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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09 03:55: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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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22 원예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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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이 시는 표현의 자유 제한, 권력에 대한 침묵, 비판적 시민의식의 필요성을 담고 있습니다. 화자는 힘 있는 자에게는 반항하지 못하고 약자에게만 분노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성찰합니다. 이 시를 보며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나는 불의에 침묵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 해 보게 되었습니다. 바빠서라는 핑계로 길을 지나다닐 때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서명운동이나 캠페인 등을 죄송하다고 하며 그냥 지나친 경험이 많습니다. 이 시는 자유를 잃은 사회와 침묵하는 시민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는 1960년대 한국 사회의 불완전한 민주주의 상황을 반영하면서도, 오늘날의 시민들에게도 비판의식과 책임 있는 자유를 요구하고 강조합니다. 비판의식과 책임 있는 자유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사회적인 측면에서 깨어있을 때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부당한 권력이나 차별 또는 억압이 이루어질 때 냉정하게 그건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학교나 직장에서 일어나는 작은 부조리에도 관심을 가지고 개선해 나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공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사회를 일깨워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모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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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09 14:41: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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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28 홍승경</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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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이 시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취나 효율에만 집중하고 진정한 자기 성찰이나 인격적 성숙을 위한 학문 수양의 가치를 잊고 살아가기 쉽다. 그러나 만보는 조용한 산책과 자연의 움직임 속에서 학문 수양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지식을 쌓고 자신을 갈고닦는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p><p>특히 오늘날의 지식은 인터넷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이황이 학문과 삶의 일치를 고민했듯이 우리도 배운 것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 시는 학문이란 단순한 정보의 습득이 아니라, 삶을 더 깊이 있게 바라보고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임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p><p>따라서 만보는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의 우리에게도 학문 수양의 본질적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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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09 15:17: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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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23 이찬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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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고궁이라는 역사적 공간을 배경으로 혁명 이후에도 변하지 않은 사회와 그 안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이다. 시인은 사소한 일에는 쉽게 분개하면서도 정작 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에는 침묵해왔던 자신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러한 자기 성찰을 통해 그는 개인의 내면과 사회 전체의 모순을 동시에 드러낸다. 시의 초반에서 시인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자문한다. 그는 50원짜리 갈비의 기름덩어리에 화를 내고, 설렁탕집 주인에게 욕을 하며 분노를 표출하지만 한편으로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당한 현실이나 월남 파병과 같은 거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이는 단순한 자기비판을 넘어, 사회 속 수많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소시민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후 시인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중요한 순간마다 중심에서 비켜서 있었던 자신의 태도를 돌아본다. 포로수용소에서의 기억, 동료가 경찰에 끌려갈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기억은 단순한 개인의 회고가 아니고 시대 속에서 쉽게 침묵해버리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 그는 자신이 절정 위에 서 있지 않고 조금 옆으로 비켜서 있었다고 말하며, 그것이 비겁한 것임을 알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는 단순한 자기 연민이나 후회가 아니라,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시인의 자세를 보여준다. 시의 마지막에 반복되는 질문,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는 표현은 존재의 작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이는 단지 시인의 자책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자각하며, 그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는 과거의 상황을 바탕으로 쓰였지만, 그 내용은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이 시는 현대 사회와도 깊이 연결된다. 오늘날 우리는 SNS를 통해 손쉽게 분노하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욕한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 정말 필요할 때 행동으로 불의에 맞서는 것에는 주저하거나 비켜서는 경우가 많다. 김수영은 그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일에 분개하고 있으며 그 분노는 진정 사회적 책임감에 기초한 것인가? 혹은 아직도 ‘조금쯤 옆에 서 있는’ 상태를 합리화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도 우리는 수많은 사회 문제들 앞에서 침묵하거나 방관하는 경우가 많다. 혐오 표현, 환경 문제, 사회적 불평등, 정치적 갈등 등 다양한 문제들 앞에서 우리는 행동하기보다는 말없이 지나치거나, SNS 속 타인의 분노에 기대 안심하는 경우가 있다. 시인이 말한 ‘절정에서 비켜서 있는 태도’는 지금 우리의 삶에서도 자주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김수영의 이 시는 단지 과거의 시가 아니다. 개인의 무기력과 시대의 무관심,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기반서은 오늘날의 모두에게 적용되는 경고이다. 자유는 선언이나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의 책임과 실천 속에서 살아 있는 것임을 이 시는 정직하게, 그리고 절절하게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시는 시대를 넘어서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시다. 또한 김수영은 이 시를 통해 변화하지 않는 현실을 고발함과 동시에 그러한 현실을 용인한 개인의 태도 또한 날카롭게 성찰한다. 그리고 그 태도의 출발점은 자신임을 인정한다. 이 시는 거창한 정치적 메시지를 내세우기보다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는 데에서 시작된 문학이다. 그래서 더 진솔하고 더 강한 울림을 준다. 시인이 던진 질문은 곧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기에 나 역시 이 시를 통해 나 자신의 삶과 태도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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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1 00:32: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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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17 서우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516506800</link>
         <description><![CDATA[<p>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권력과 부조리에 침묵하며 사소한 일에 분노하는 소시민적 태도를 자조적으로 성찰하는 작품이다. 화자는 사소한 일에만 분노하고 정작 부패하고 본질적인 일은 외면하고 그러한 자신의 태도를 인식하지만 바뀌지 않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을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부조리하고 잘못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나는 현실을 인식하고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 역시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는 침묵하다가도 개인적인 사소한 불편함엔 쉽게 분노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구절은 나를 향한 지적 같았다. 나도 화자처럼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조금쯤 비켜서 있지 않은가? 이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이 시의 시대적 상황과 유사하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억압은 존재한다고 느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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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1 01:38: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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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14 남기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517940436</link>
         <description><![CDATA[<p>퇴계 이황의 시 만보를 처음 접했을 때 단순히 가을 풍경을 그린 작품이라고 느꼈는데, 곱씹어 읽다보니 이 시는 단지 자연 관찰을 넘어 그 풍경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한 사람의 사적인 기록이라고 느꼈다. 어지러진 책을 보고 문득 밖으로 나가 걷고, 주변을 천천히 바라보며 마음속 묵은 감정들을 떠올리는 이 시는, 마치 산책하듯 써내려간 일기처럼 느껴졌다.</p><p>이 시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지팡이 짚고 뜰에 내려가 / 고개를 들고 구름재를 바라보니’라는 구절이다. 단순한 산책 같기도 하지만, 시인의 시선은 멀리 아득한 곳을 향한다. 주변 풍경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시인의 마음과 연결된다.&nbsp; 그 풍경 속에서 시인은 ’내 인생은 홀로 무얼 하는지 / 숙원은 오래도록 풀리질 않으니‘ 라며 자신을 돌아본다. 이 장면을 읽으며, 시를 쓰는 과정 속에서 시인 스스로 자신의 속마음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받았다.</p><p>나는 문학이 ‘기억하게 해준다’는 말보다, 문학은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내가 나도 모르게 잊고 있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에 더 깊이 공감하다. 시인도 마찬가지로 일상 속에서 글을 쓰며 인생에 대한 회한을 자연스럽게 꺼내게 된 것이 아닐까. 시인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려 한 것이 아니라, 글을 쓰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나 역시 글을 써 내려갈 때, 내 경험 속에서 숨겨진 내 감정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문학이란 ’기억해내는 행위’ 라는 생각이 든다.</p><p>이 작품은 삶의 무게와 고요한 회한을 전해주는 시였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시인이 자신의 삶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써 내려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때로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마주하기 위한 글쓰기일지도 모른다. 이 시를 통해 나는 문학이 삶을 기록하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내 안의 기억과 감정을 꺼내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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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3 13:26: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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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1126 조서연</title>
         <author>24hy10925</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517969033</link>
         <description><![CDATA[<p> 이황의 만보는 저녁에 산책을 하며 마음을 성찰하는 뜻을 지닌다. 초반에는 잊음이 많아 책을 자주 뒤적거리는 화자의 모습을 통해 화자의 연륜을, 이어서 해가 저무는 가을 저녁의 풍경과 가을걷이의 풍요로움, 자연의 평화로움을 그려내고 이에 따른 자아성찰과 외로운 정서를 담아냈다. 선경후정의 방식으로 자연 산책을 통한 학문적 회한과 인생에 대한 자아성찰을 나타낸다. </p><p> 이 작품을 감상하며 학문적 이상과 고뇌를 읽어낼 수 있었다. 오랫동안 학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는 자신과 가을걷이의 풍요로움이나 자연의 평화로움을 비교하며 한탄한다. </p><p> 하지만 이황은 지금의 지폐에도 실릴만큼 학문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이룬 사람이다. 그런데도 숙원이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표현한 건 왜일까? 여기에서 이황의 끊임없이 자기 수양 하려는 태도를 볼 수 있다. 추가적으로 해석해봤을 때, 이 작품은 단순히 학문적 실패에 대한 회한을 담은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끝없는 배움의 자세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연 속 산책과 그 속에서의 자기 성찰과 회한은 오히려 참된 배움의 완성이 아닌 계속해서 나아가는 마음임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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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3 14:39: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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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1111김세림</title>
         <author>6xcvv8ggsg</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518005239</link>
         <description><![CDATA[<p>난장이는 작은 공을 하늘로 쏘아올린다. 그 공은 한 인간이 감당해내기 어려운 현실의 무게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환상의 매개이자,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무언의 저항이다. 하지만 공은 결국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이 짧은 궤적을 통해 한 인간의 결핍과 고통이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억압적이고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발한다.  난장이 가족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는 결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속에 존재한다. 이들의 삶은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의해 철거되고, 자식들은 교육 기회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심지어 도덕과 정의를 따르는 것이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는 사회 안에서, 가족은 생존을 위해 범죄에 내몰리거나 죽음을 맞이한다. 이는 단지 개별 인물의 불완전함이 아닌, 고통을 재생산하는 사회 구조의 폭력성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작은 공’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로부터의 탈주 욕망’이자,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결핍된 환경에 맞서 상상력으로 저항하려는 몸짓이다. 하지만 그 공은 다시 추락하고, 이는 희망이 구조의 중력 안에서 쉽게 짓눌린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한다. 문학은 이처럼 환상을 보여주되 그 환상이 왜 지속될 수 없는지를 철저히 드러냄으로써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결국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인간의 고통을 개인의 나약함이 아닌 사회 구조 속 결핍의 결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작품은 그 공의 궤적을 통해 묻는다. 왜 인간은 끊임없이 공을 쏘아올릴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공이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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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3 16:33: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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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1116박소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518028341</link>
         <description><![CDATA[<p> 만보는 오언 배율 형식의 근체시로, 정해진 자수와 운자를 갖추어 시의 정형미를 잘 보여준다. 다섯 자로 이루어진 구절들 속 비슷한 소리의 운자들은 시의 운율을 만들어낸다. 기승전결의 구조와 선경후정의 시상 전개 방식을 통해 시는 가을 저녁의 고요한 정경에서 화자의 내면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p><p> 초반부에 묘사된 기울어가는 해와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 의젓한 백로의 모습 등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 화자의 정서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어서 드러나는 화자의 학문적 성취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은 이황이 이 작품을 남긴 이유임을 짐작하게 한다.</p><p> 시는 짧은 글 안에 많은 뜻을 담아내는 문학 갈래다. 특히 만보처럼 정형화된 형식과 감각적인 시어를 통해 자기반성적 내용을 표현할 때, 그 함축성과 깊이가 독자들에게 더욱 강한 울림과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시의 특징은 독자로 하여금 화자의 내면에 공감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닌다.</p><p> 만보의 화자가 자신을 성찰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아쉬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감정이다. 훌륭한 유학자인 이황조차도 이를 떨쳐내지 못했다는 점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감정임을 일깨워준다. 아쉬움은 때로 우리를 멈추게 하지만, 동시에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이런 아쉬움이란 감정은 잘 활용하면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에게 아쉬움은 결코 달가운 감정이 아니다. 그렇기에 미래의 아쉬움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사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물론 나 역시 항상 현재에 충실하지는 못한다. 부족함을 느끼고 지나간 일을 붙잡아 아쉬워하는 날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나간 일에 연연하기보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국 아쉬움과 후회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앞으로 나아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말은 진심으로 힘주어 할 수 있다.</p><p> 이 시를 통해 나는, 시가 가진 형식적 아름다움과 함축된 의미가 깊은 자기반성과 삶에 대한 성찰에 대한 주제와 결합 됐을 때 독자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다가오는지를 다시 한 번 느꼈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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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3 18:18: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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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09 권하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518061523</link>
         <description><![CDATA[<p>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산업화로 인해 길을 잃은 빈민 층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1970년대에는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시기였으나, 그 경제 발전의 이면에는 빈부격차의 심화, 도시 빈민의, 인간 소외와 같은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존재하였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 그 이면에 존재했던 고통 받는 계층인 도시 빈민과 노동자들의 삶을 처음으로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난장이 가족이 처한 삶을 통해 1970년대 도시화가 많은 이들을 사회의 가장자리에 내몰았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난장이 가족들이 당한 착취와 소외는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들을 외면하고 희생시킨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소설 속 난장이 가족은 철거 통보를 받고 거리로 내몰리며, 삶의 터전을 국가와 돈에 의해 파괴됩니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 문학이 단지 과거의 기록이나 감정 표현이 아니라, 한 시대의 모순과 고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고, 오히려 계속해서 소외되었습니다. 난장이의 가족인 영희의 줄 끊어진 기타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사회적 경고이자 성찰의 계기가 되는 작품입니다. </p><p>이 작품을 통해 문학이 사회에게 비판과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학이 단순 글이 아닌 시대의 배경에서 어떠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고 다양한 장치와 시선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또한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지 되돌아볼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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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3 21:18: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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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08 권은정</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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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는 자유가 억압된 시대 속에서 정작 중요한 문제는 외면한 채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적인 화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시인은 “왜 나는 조금만 일하면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황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라고 말한다. 이는 권력의 부조리라는 본질적인 문제 앞에서는 침묵하면서도, 일상적이고 사소한 불만에만 분개하는 자신을 자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런 본질과 비본질의 대조는 시 전반에서 반복된다. 붙잡혀간 소설가, 언론의 침묵, 월남 파병 같은 본질적 문제와, 오십 원짜리 갈비의 기름 덩어리나 야경꾼 같은 비본질적 요소들이 함께 나열된다. 그러면서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라고 말하며, 자신의 왜소한 모습을 보잘것없는 자연물에 대비하여 자조한다. 이후 기말고사를 준비하며 읽은 김수영 시인의 다른 시, '사령'은 다른 방식으로 자유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화자는 말하지 못하는 자신을 반성하고 괴로워했지만 '사령'에서는 시인은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아라"라고 말하며 자유를 잃어버린 삶에 대한 불만족을 들어낸다. 또 시인은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며, 화자의 자괴감을 드러낸다. 이 두 시는 모두 자유를 말할 수 없던 시대, 그리고 그 안에서 화자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시인의 고민이 담겨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침묵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사령'에서는 자유를 말하지 못하는 화자의 자괴감을 들어낸다.나는 이 두 시를 통해 김수영 시인이 현실의 부조리함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던 시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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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3 22:58: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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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10김서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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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한국 사회의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깊이 있게 조명한 작품이다. 소설은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여러 편의 단편이 연결된 연작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자 계층이 겪는 현실의 고통과 부조리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p><p>작품의 주인공들은 대개 도시 빈민층이나 철거민들이다. 그들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끊임없이 밀려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인물은 '난쟁이' 김불이와 그의 가족이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한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구조적인 불평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을 고스란히 드러낸다.</p><p>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작은 공’은 희망, 저항, 혹은 인간의 꿈을 상징하는 듯하다. 현실은 비참하지만, 그 안에서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처럼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단지 슬픔이나 절망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존엄성과 희망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p><p>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단지 과거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고,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닿아 있는 문제들이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단순한 문학작품 그 이상이며,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들을 던지는 의미 있는 메시지라고 느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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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4 01:12: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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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1124 정수인</title>
         <author>24hy10423</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518231721</link>
         <description><![CDATA[<p>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단지 한 편의 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같았다. 시인이 고궁을 나오는 장면은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오랫동안 침묵과 무력 속에 잠겨 있던 자아가 깨어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해보며 나도 고궁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그 고궁은 단순한 역사 유적이 아니라 무심코 지나친 하루하루의 학업 태도였다. ‘열심히 해야지’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엔 미루고 해이해지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시인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절규하며 자신이 사회의 큰 부조리에는 무감각하면서도 일상 속의 사소한 일에는 쉽게 화를 내는 이중적인 모습을 자조한다. 그 구절을 읽는 순간 마치 내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뜨끔했다. 나 역시 학업을 하면서도 작은 성적 변화나 하루의 컨디션에는 지나치게 민감하면서 정작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필요한 집중과 꾸준함에서는 자주 도망쳤던 기억이 있다. 시인의 자조적인 고백은 곧 내 학업 생활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 나 역시 분노할 줄 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정말 바꿔야 할 것들, 즉 나의 나태함과 타협에는 너무 관대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시인은 이러한 무력과 침묵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체에 만연한 순응의 태도임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불의에 항거하지 않고 망설이는 것이다라는 구절은 단지 정치적 저항의 문제가 아니라 나처럼 스스로와 싸워야 할 과제 앞에서 끊임없이 미루고 망설이는 이들에게도 해당된다는 걸 깨달았다. 학업이라는 개인적인 영역에서도 무기력한 체념은 결국 나 자신을 억누르고 발전을 가로막는 하나의 불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시는 단지 비판과 절망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결국 침묵의 입에서 폭포처럼 언어를 쏟아내며 현실을 뚫고 나가겠다는 다짐을 보여준다. 나 역시 이 시를 통해 지금의 태도에 안주하지 않고 작더라도 무언가를 바꾸려는 태도를 가져야겠다고 느꼈다. 공부도 결국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며 현실을 관통해 나아가는 작은 저항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시를 통해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더 나은 학업 태도와 삶의 자세를 향한 의지를 다지게 되었다. 김수영 시인의 그 날의 고궁은 곧 나의 오늘이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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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4 01:15: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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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1113 김태경</title>
         <author>c7h8424ttk</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518441827</link>
         <description><![CDATA[<p>이황의 &lt;만보&gt;는 저녁 무렵 산책하며 느끼는 사색을 담은 시로, 자연의 고요함과 화자의 내면이 맞닿는 지점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시는 오언 배율이라는 정형시 형식을 따르며, 일정한 자수와 운율이 만들어내는 리듬 속에 화자의 사유가 잔잔히 흐른다. 처음에는 산책 중 접하는 평온한 자연 풍경이 펼쳐지지만, 이내 화자의 내면으로 시선이 옮겨가며 점차 자아 성찰의 깊이로 빠져든다. 초반부에 묘사된 기울어가는 해, 들판에서 수확을 끝낸 사람들의 기쁨, 그리고 한가롭게 서 있는 백로의 모습은 단순한 자연 풍경을 넘어선다. 이 장면들은 오히려 그 속에 서 있는 화자의 고요한 고립감과 대비를 이루며, 정서적인 배경을 만들어낸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자연과 달리, 화자는 오히려 자신의 내면에서 부족함과 회한을 마주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황이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충분히 이루지 못했다고 여기는 대목이다. 책을 자주 뒤적이며 잊어버린 내용을 확인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그는 기억력의 쇠퇴와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인정한다. 하지만 이 모습은 단순한 자조나 한탄이 아니라, 여전히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는 의지로 읽힌다. 현재 우리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황은 누구보다 위대한 학자다. 그럼에도 그가 스스로를 완성되지 않은 존재로 바라보며 반성하는 태도는 오히려 학문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짧은 시 속에 삶에 대한 통찰과 철학적 깊이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lt;만보&gt;는 고전시가가 지닌 문학적 함축성과 미학을 잘 보여준다. 정형화된 형식 속에서도 화자의 감정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진실하게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이 시는 단순히 한 유학자의 고백으로만 읽히지 않고, 독자에게도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가로이 걸으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산책의 시간은, 곧 진정한 배움이 시작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이황의 산책은 끝을 향한 길이 아니라, 다시 배움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삶을 어떻게 배우고 있는가. 그리고 진정한 배움은 어디서 비롯되는가.’와 같이 유효한 질문들을 이황의 가치관으로 하여금 다시 상기시킨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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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4 03:13: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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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1115 박서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518446302</link>
         <description><![CDATA[<p><strong>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는 단순한 풍경 묘사나 개인적 감상을 넘어서, 민중의 자유와 현실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고뇌와 분노를 담고 있는 시다. 시인은 고궁이라는 조용하고 고요한 공간을 나와 현실 세계로 들어서면서, 마주하는 사회의 모순과 불의를 직시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느끼는 자신의 무기력함과 시대의 억압에 대한 참담한 자각을 강렬한 언어로 드러낸다. “나는 왜 자유를 위해서 싸우지 않았는가”라는 시구는 내 가슴을 강하게 때렸다. 단지 한 개인의 반성이 아니라, 지식인으로서,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외면한 자신에 대한 뼈아픈 고백이다. 동시에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도 똑같이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나는 과연 이 시대의 불의와 마주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시를 읽으며, 자유는 결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고, 외치고, 싸워야 얻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시인은 단지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외침으로 독자를 흔든다. 그리고 그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남아 있다. 김수영의 시선은 날카롭고, 문장은 고통스럽지만 아름답다.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그의 태도와 언어는,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침묵하지 않기. 그것이 이 시가 내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인 것 같다.</strong></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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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4 03:16: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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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1105 최병규</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518451447</link>
         <description><![CDATA[<p><strong>조세희 작가의 난쏘공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성장’이라는 단어가 꼭 좋은 의미만을 가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경제가 발전하고, 도시가 커지고, 나라가 부유해지는 것이 당연히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그 발전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또 그 발전의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strong></p><p><strong>이 소설은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가족은 난장이라 불리는 아버지와 그의 가족으로, 가난한 동네에서 어렵게 살아간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하지만 임금은 적고, 노동 환경은 위험하다. 집은 재개발 때문에 철거될 위기에 놓여 있고, 가족들은 하나둘씩 뿔뿔이 흩어진다. 이 가족의 삶은 너무도 비참하고 고통스럽지만, 소설은 그것을 마치 우리 옆집 이야기처럼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고,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strong></p><p><strong>특히 난장이라는 인물은 단지 키가 작은 사람이 아니라, 사회가 외면하고 차별하는 약자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는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 하지만, 사회는 그에게 인간다운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저항하려 하고, 그것이 바로 ‘작은 공을 쏘아 올리는 행동으로 상징된다. 그 장면은 비록 짧았지만 내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진심으로 감동적이었다.</strong></p><p><strong>이 소설을 통해 나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더 큰 불평등이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중학교때 뉴스에서도 재개발 때문에 쫓겨나는 사람들,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접했다. 그래서 작품속 가족들에게 더욱 감정이 느껴졌고, 그들의 고통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히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strong></p><p><strong>또한 이 소설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나는 그동안 소설은&nbsp; 주로 유흥이나 이야기만 다룬다고 생각했지만, 난쏘공 은 그 생각을 바꾸어주었다. 소설은 사회의 문제를 보여주고, 사람들이 그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세희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 사회는 모두에게 공평한가?나는 이 질문들 앞에서 쉽게 대답할 수 없었고, 그만큼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strong></p><p><strong>난쏘공은 슬프고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앞으로 뉴스를 보거나 사회 문제를 접할 때 더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다.</strong></p><p><strong>문학은 결국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세상을 더 넓게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난쏘공은 그런 문학의 힘을 느끼게 해준 소중한 작품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사회적인 시선을 가진 작품들을 더 많이 읽어보고 싶다.</strong></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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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4 03:20: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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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01 윤서준</title>
         <author>24hy10303</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vkhkuvtc7zqeh6z8/wish/3518457787</link>
         <description><![CDATA[<p>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19070년대 당시 산업화로 인해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산업화가 일어나며 과거의 것들이 점점 없어지고 현대적인 문물들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도시 빈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됩니다. 책에서 나오는 공장의 높은 사람들은 노동자들에게 열악한 환경만을 제공하며 이용하고 또 노동자들이 그러한 부조리에 맞설 수 없도록 강제로 축구를 시키는 등 사회적 부조리가 만연했던 사회를 볼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일지라를 구하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공장 사장의 말을 들어야했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발언을 한다면 쫓겨나기 일쑤였습니다. 사장은 공장에 신식 기계들을 도입하며 점점 더 부유해지지만 반대로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져 있는 모습을 통해 앞서 말한 당시의 상황이 더 잘 와닿았습니다. 이런 사회적 부조리는 공장 등의 일자리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과 가족의 삶이 담겨있는 집, 거주지에서도 행해졌습니다. 재개발을 한다며 강제로 집을 철거하고 빈민층들에게 입주권을 나눠주며 얼핏 보면 정당해보이는 작업일지라도 결국 입주할 여력이 안되는 빈민층들은 입주권을 팔고 방황하게 될 것임이 분명했지만 아무도 그들을 배려하거나 고려해주지 않았습니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산업화가 일어나며 국가의 전체적인 경기와 경제성장률은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며 좋아지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고통받던 빈민층들의 애환이 있었습니다. 난쏘공에서는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구절을 통해 부조리에 저항할 수조차 없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지식인인 지섭이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하며 철거원들과 싸웠지만 역으로 두들겨 맞으며 처참한 몰골이 되어 지식인의 저항도 무기력하게 실패하는 장면을 통해 당시 시대에 대한 민낯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1970년대 경제 부흥기 그 이면에 가려져있던 도시 빈민들의 애환과 그 심정이 저에게 와닿았으면 당시를 깊이 있게 이해하였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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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4 03:25: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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