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rss version="2.0">
   <channel>
      <title>사랑과 혁명 1,2,3 by 한만임</title>
      <link>https://padlet.com/iylhe10212/vggoir1bfd9kw7fi</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4-02-06 05:11:49 UTC</pubDate>
      <lastBuildDate>2024-02-21 15:36:08 UTC</lastBuildDate>
      <webMaster>hello@padlet.com</webMaster>
      <image>
         <url></url>
      </image>
      <item>
         <title>2윌 19일</title>
         <author>iylhe10212</author>
         <link>https://padlet.com/iylhe10212/vggoir1bfd9kw7fi/wish/2874552403</link>
         <description><![CDATA[<p>맡겨진 소녀</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4-02-06 05:18:0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iylhe10212/vggoir1bfd9kw7fi/wish/2874552403</guid>
      </item>
      <item>
         <title>들녘, </title>
         <author>iylhe10212</author>
         <link>https://padlet.com/iylhe10212/vggoir1bfd9kw7fi/wish/2874596088</link>
         <description><![CDATA[<p>들녘은 자연의 다른 이름이다. 태어날 때부터 자연의 섭리를 온몸으로 느끼고 순응하는 천성이 농사꾼이어서 각각의 자연물와 교감하며 진심을 다해 보살핀다. 하늘이 땅이 살아있는 모든 생기가 그에게는 곧 신과 같은 존재이기에 섬김의 대상이었다. 그런 정성은 악지에서도 풍년을 만들어내지만 악질적인 마름으로 인해 하나뿐인 어머니를 잃고 산으로 들어가게 되며  이아기 아가다를 만나고 사랑하고 천주교를 접하고 자신의 삶 속에 신을 받아들이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정말 고통스러운 순간순간에도 들녘의 곁에는 늘 소중한 이들이 존재했다. 아들을 위해 목숨조차 내어 놓을 수 있었던 어머니와 쫓기는 들녘을 거두어 준 곡곰,  생명을 구해주고  동정부부가 되어 믿음으로 이끌어준 아가다, 자신의  일처럼 앞 뒤 가리지 않고 도움을 주는 짱구와 길치목까지 적지 않은 인물들이 들녘과 함께 했다. </p><p> 우리 모두에게도 이런 소중한 이들이 존재할 것이다. 단지 내가 정성을 다하지 않아 타인과의 교감이 부족하기에 감사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p><p>'벌써'와 '아직도 ' 사이의 가장 적절한 때에 나도 들녘처럼 흙을 풀을 나무를 진심을 다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4-02-06 05:58:0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iylhe10212/vggoir1bfd9kw7fi/wish/2874596088</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iylhe10212</author>
         <link>https://padlet.com/iylhe10212/vggoir1bfd9kw7fi/wish/2874629414</link>
         <description><![CDATA[<p>스스로 종교를 배워서 받아들인 유일한 나라, 전 세계를 들썩일 정도의 대규모 사이비 종교를 양산해 내는 나라,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www.nls.or.kr/main/sub.html?Mode=view&amp;boardID=www52&amp;num=27685&amp;page=&amp;keyfield=&amp;key=&amp;bCate=">어느 평범한 교회의 일주일 헌금이 4천만원이 넘는 나라</a>, 대통령이 되겠다고 손바닥에 왕자를 쓰고 듣도보도 못한 도사 흉내를 내는 사람이 국사노릇을 하는 나라, 왜 우리는 이토록 종교적일까?</p><p>종교는 사람들이 자신의 앞에 닥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 문제해결 방법을 구하거나 혹은 위로나 희망을 얻어 심리적인 안정을 구하고자 할 때 찾게 된다. 이러한 종교에 사람들이 심취할 수록 사실 이들이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은 불행하며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럽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하다. 왕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왕조의 역사는 사실 가장 낮은 자리의 백성들의 고통의 역사였다. 과연 종교는 백성들에게 진정한 평안을 주었는가? 사실 종교란 고통스런 백성의 정신승리의 다른 형태일 뿐 인간을 옭죄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비록 종교를 통해 정신승리를 해서 그 고통스러운 상황을 기쁘게 수용한다면 그것은 지배자의 고도의 술책같기도 하다. 또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는 또 그 그물에 걸려 고통으로 괴로워할 것이다. </p><p>국외적으로는 중국,일본, 러시아, 미국, 프랑스 등의 열강 사이에서 시달리고, 국내적으로는 외척의 세도정치와 부패한 탐관오리가 백성들을 수탈하는 조선 말에 수많은 신생 종교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많은 종교들이 교리로만 해결되지 않는 백성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야고보가 다시 배교를 하고 봉기군이 되어야 했던 데는 그런 깨달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깨부술 수 있는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는 정말 필요한 것일까?</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4-02-06 06:38:1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iylhe10212/vggoir1bfd9kw7fi/wish/2874629414</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iylhe10212</author>
         <link>https://padlet.com/iylhe10212/vggoir1bfd9kw7fi/wish/2874631247</link>
         <description><![CDATA[<p>2권 전주감영의 옥에서의 모든 장면들은 상상만으로도 그저 고통이었다. 지붕만 얹은 한데에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살을 에이는 추위를 견뎌야하는 상황을 떠올려보면 배교를 하는 이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4-02-06 06:40:4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iylhe10212/vggoir1bfd9kw7fi/wish/2874631247</guid>
      </item>
      <item>
         <title>정해박해</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iylhe10212/vggoir1bfd9kw7fi/wish/2874649427</link>
         <description><![CDATA[<p><br></p><p>1827년(순조27) 정해년에 전라도 곡성을 시작으로 경상도 상주와 충청도·서울의 일부에까지 미쳤던 천주교 박해의 옥사이다. 정해사옥(丁亥邪獄)이라고도 한다. 1801년(순조1) 신유박해 때 살아남은 천주교인들은 산간벽지로 흩어져 새로운 교인촌을 이루어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신유사옥을 마무리짓기 위해서 전국에 발포한 ‘척사윤음(斥邪綸音)’은 천주교 탄압의 법적 근거가 되어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박해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천주교인들은 이런 와중에서도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1140949&amp;ref=y">정하상</a>(丁夏祥) 등을 중심으로 교회재건과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1827년 2월 곡성의 한 교인촌에서 사소한 다툼이 일어나 곡성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1163042&amp;ref=y">현감</a>에게 천주교도를 고발하는 밀고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빌미로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가 다시 벌어졌다.</p><p>곡성에서 시작된 천주교인에 대한 검거선풍은 차츰 전라도 전역으로 파급되었고, 240여 명의 교인들이 전주감영에 갇히게 되었으며, 이어 4월 22일 전주의 포졸들이 경상도 상주에서 신태보(愼太甫)를 체포하여 전주로 압송해 가면서 경상도에서도 천주교인들에 대한 검거선풍이 불어 많은 교인들이 체포되었다. 서울에서는 4월에 이경언(李景彦)이 체포되어 전주로 압송되었고, 충청도 단양에서는 경상도에서 박해를 피하여 이곳의 교인 집으로 숨어 들었던 신자들이 체포되어 충주로 압송되어 갔다.&nbsp;이렇게 하여 전라도·경상도·서울·충청도 등지에서 2~5월의 넉 달 동안에 500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체포되었다. 그런데, 이들 중 전라도에서 신태보·이경언·이일언(李日彦)·정태봉(鄭太奉) 등 8명, 경상도에서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1171162&amp;ref=y">박보록</a>(朴甫錄)·<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1171164&amp;ref=y">박사의</a>(朴士儀)·<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1171436&amp;ref=y">김사건</a>(金思建) 등 6명, 충청도에서 황지석(黃之石)·유성태(劉性泰) 등 2명, 도합 16명이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1116121&amp;ref=y">순교</a>하였으며, 이들 말고 대부분의 신도들은 배교하여 석방되거나 유배되었다. 이 옥사로 전라도 지방의 천주교회는 거의 궤멸 상태에 빠져 버렸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4-02-06 07:04:2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iylhe10212/vggoir1bfd9kw7fi/wish/2874649427</guid>
      </item>
      <item>
         <title>조용한 혁명</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iylhe10212/vggoir1bfd9kw7fi/wish/2877572927</link>
         <description><![CDATA[<p>   우리가 역사를 통하여 혁명이라 불리는 것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어 온 많은 이들이 기존의 부조리한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움으로써 완성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혁명은 우리나라의 동학운동처럼 실패하기도,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처럼 성공했으나 이후 혁명에 참여했던 이들에 의해 다시 기존의 질서로 회귀한 경우도 있다. 어쩌면 물리적 힘에 의한 혁명은 다시 물리적인 힘에 의해 언제고 뒤집힐 수 있는지도 모른다.</p><p>19세기 조선, 열심히 일할수록 쌓이는 것은 빚이고, 굶는 것을 밥 먹듯 하고 힘이 없어 억울함을 당하는 그 시절을 살았던 조선 사람들은 세상이 뒤집어져 다른 세상이 되기를 매일 꿈꾸었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에게 서학, 예수의 가르침은 희망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세상이 변화하길 누구보다 꿈꿨던 분이며 기득권의 부정부패와 타락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 나라라는 새 세상을 제시하고 사람 개개인이 사랑으로 변화될 것을 가르쳤기에 힘든 세상을 사는 조선인들에게는 혁신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물리적임 힘에 의해 기존의 기득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지 않았고 오히려 기득권들과 물리적 힘에 의한 혁명을 꿈꾸던 이들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이런 예수의 삶을 통하여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킨 이들은 물리적 힘에 의한 혁명이 지니는 한계를 이해했던 것 같다. 물리적인 힘으로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하느님의 나라, 그들이 바라는 새로운 나라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진정한 새로운 세상으로의 길은 인간 개개인의 혁명에서 비롯된다는 것을.</p><p>어쩌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비슷한 방식과 원인으로 반복되는 문제를 직면하다 보면 세상이 뒤바뀌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불쑥불쑥 일어나는 요즘, 여전히 예수와 그 뒤를 따른 수많은 신앙인들이 실천했던 개인의 조용한 혁명은 여전히 유효한 것은 아닐까 한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4-02-08 07:00:1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iylhe10212/vggoir1bfd9kw7fi/wish/2877572927</guid>
      </item>
      <item>
         <title>3권의 마지막 부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iylhe10212/vggoir1bfd9kw7fi/wish/2877585668</link>
         <description><![CDATA[<p>들녘이 정해박해의 기록물을 지키기 위해 시장에서 소동을 피우고 장삼과 이사를 묶어 두고 맞아가면서도 김대건 안드레아와 김방지거가 안전하게 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이 인상깊다.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위가 아닐까한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4-02-08 07:19:4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iylhe10212/vggoir1bfd9kw7fi/wish/2877585668</guid>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