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rss version="2.0">
   <channel>
      <title>2025 3-2반 내 영혼의 독립운동가 찾기(나와 같은 독립운동가는 누구??)&amp;수행평가 준비 by 정정화</title>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8-11 01:19:06 UTC</pubDate>
      <lastBuildDate>2025-08-12 05:49:46 UTC</lastBuildDate>
      <webMaster>hello@padlet.com</webMaster>
      <image>
         <url>https://padlet.net/icons/8.0/png/1f60d.png</url>
      </image>
      <item>
         <title></title>
         <author>gwangnamt200006</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39542733</link>
         <description><![CDATA[<ol><li><p>링크를 클릭하여 테스트를 한다.</p></li><li><p>결과 링크를 복사하여 작성하고, 자신과 연결된 독립운동가의 활동을 조사하여 내용을 작성한다.</p></li><li><p>서평 수행평가 안내문에서 자신이 읽을 챕터 번호를 쓴다.</p></li><li><p>자신이 선택한 챕터의 독립 운동가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작성한다.</p></li><li><p>자신이 선택한 챕터의 친일파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작성한다.</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8-11 01:19:0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39542733</guid>
      </item>
      <item>
         <title>내 영혼의 독립운동가 찾기</title>
         <author>gwangnamt200006</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39542735</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c=9&amp;kc=888" />
         <pubDate>2025-08-11 01:19:0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39542735</guid>
      </item>
      <item>
         <title>30201 김대원-권기옥</title>
         <author>gwangnamt200006</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39542736</link>
         <description><![CDATA[<ol><li><p>내영혼의 단짝 독립운동가: 권기옥(1901.1.11 ~ 1988.4.19)</p></li><li><p>한국의 독립운동가로 평양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등으로 활약하였으며, 1920년 이후에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중국군에서 10여 년간 복무하면서 항일활동을 계속했다.</p></li><li><p>챕터 3 선택</p></li><li><p>독립운동가 남자현(1872.12.7 ~ 1933.8.22): 서로군정서 등에서 활약한 여성 독립운동가. 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암살을 계획했으며 혈서 '조선독립원'을 작성하여 조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일본장교 암살하려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p></li><li><p>친일파 배정자(1870 ~ 1951): 친일(親日) 민족반역자.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로 간첩교육을 받고 귀국, 일본의 한국병탄 성취에 큰 역할을 했다. 국권피탈 뒤 민족탄압을 도왔고 일본의 시베리아 출병 때 군사 스파이로 암약하고 만주·중국 본토 등에서 독립투사 체포에 앞잡이 노릇을 했다.</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85435789?c=3" />
         <pubDate>2025-08-11 01:19:0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39542736</guid>
      </item>
      <item>
         <title>30221하승현-조마리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4957</link>
         <description><![CDATA[<p>1.내영혼의 단짝 독립운동가:조마리아</p><p>  (1862.4.8 ~1927.7.25)</p><p>2.황해도 해주 출신 안중근의사의 어머니이다.</p><p>1907년 5월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아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뒤 투옥되자 법원에 상소하여 목숨을 구걸하느니 영광된 죽음을 맞이하라고 수의를 지어 보냈다.</p><p>이후 중국 상해에서 상해재류동포정부경제후원회 위원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제후원회의 정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는 일에 몰두하였다.</p><p><br/></p><p>3.챕터 7 선택</p><p><br/></p><p>4.독립운동가 장준하(<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1918%EB%85%84">1918년</a>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8%EC%9B%94_27%EC%9D%BC">8월 27일</a>~<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1975%EB%85%84">1975년</a>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8%EC%9B%94_17%EC%9D%BC">8월 17일</a>):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민주주의와 통일 운동에 헌신했습니다. 주요 업적으로는 《사상계》 발행인으로서 언론 활동, 유신 체제에 대한 비판, 그리고 통일 운동 등이 있습니다</p><p><br/></p><p>5.친일파 백선엽(1920.11,23 ~ 2020.7.10)</p><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EC%9D%BC%EC%A0%9C%EA%B0%95%EC%A0%90%EA%B8%B0">일제강점기</a> 시절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EA%B0%84%EB%8F%84%ED%8A%B9%EC%84%A4%EB%8C%80">간도특설대</a> 복무 전력으로 인해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EC%B9%9C%EC%9D%BC%EB%B0%98%EB%AF%BC%EC%A1%B1%ED%96%89%EC%9C%84%EC%9E%90">친일반민족행위자</a>라는 비판을 받음과 동시에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6.25%20%EC%A0%84%EC%9F%81">6.25 전쟁</a> 당시 대한민국을 구해낸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EB%AA%85%EC%9E%A5">명장</a>이라는 평가도 받기에, 대한민국 현대사의 명과 암을 동시에 보여주는 인물이다.</p><p><br/></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343?c=3" />
         <pubDate>2025-08-12 05:36:1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4957</guid>
      </item>
      <item>
         <title>30205 김현지-권기옥</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5051</link>
         <description><![CDATA[<p>1.내영혼의 단짠 독립운동가:권기옥</p><p>(1901.1.11~1988.4.19)</p><p><br/></p><p>2.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하늘을 무대로 삼겠다는 멋진 포부를 가졌다.목표를 세우며 독립운동에 대한 뜨거운 의지를 불태웠지. 이후 중국에서 다양한 독립운동 단체들과 함께 활발하게 활동하며 조국 광복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p><p><br/></p><p>3.챕터4</p><p><br/></p><p>4.독립운동가 이육사(1904.5.18~1944.1.16)</p><p>이육사 독립운동가는 일제강점기 저항 정신이 가득한 시와 글로 우리의 얼을 깨운 멋진 시인이였다.실제 비밀결사 운동에도 참여했고, 여러 차례 감옥에 갇히면서도 조국 독립을 위한 불굴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p><p><br/></p><p>5.친일파 현영섭(1907.12.29~???)</p><p>현영섭은 일제강점기에『조선인의 나아갈 길』과 『신생 조선의 출발』 등을 저술하며 친일 활동을 한 인물이다. 그는 1940년 내선일체실천사의 이사를 맡아 친일 논설을 발표하고, 황도학회와 정학회 같은 친일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해방 후에는 일본으로 도망가 주일미국대사관 등에서 근무하기도 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358?c=3" />
         <pubDate>2025-08-12 05:36:2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5051</guid>
      </item>
      <item>
         <title>30204 김태희 - 윤동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5123</link>
         <description><![CDATA[<ol><li><p>내 영혼의 단짝 독립운동가:윤동주</p><p>(1917년 12월 30일 ~1945년 2월 16일)</p></li><li><p>일제강점기 동안 나라를 잃은 슬픔과 내면을 성찰하는 아름다운 시들을 꾸준히 창작하셨고, 대표적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통해 시대에 저항하는 정신을 보여주셨다.</p></li><li><p>챕터 1 선택</p></li><li><p>독립 운동가 이회영(1867년 3월 17일 ~ 1932년 11월 17일에)</p><p>전 재산을 바쳐 만주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교육과 무장 투쟁에 힘썼으며, 일제에 맞선 직접적인 항일 활동을 펼치다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하셨다.</p></li><li><p>친일파 이근택(1865년 9월 30일 ~ 1919년 12월 7일)</p><p>을사조약 체결을 주도하여 '을사오적'으로 불리며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273?c=3" />
         <pubDate>2025-08-12 05:36:3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5123</guid>
      </item>
      <item>
         <title>30211 이민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5152</link>
         <description><![CDATA[<p>1.내 영혼의 단짝 독립운동가: 김마리아(1891년 음력 6월 18일~1944년 3월 13일)</p><p><br/></p><p>2.일제에 맞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친 신여성이었던 김마리아. 그는 3·1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2·8 독립선언에 참여한 뒤, <strong>독립선언서를 국내에 들여와 교육·종교계 지도자들에게 전달해 독립운동을 촉구하고 3·1운동을 일으키는 데 공헌</strong>했다</p><p><br/></p><p>3.챕터2</p><p><br/></p><p>4.안희제:국권회복을 위해 정신적·경제적 자강(自強)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교육과 민족기업 육성에 힘썼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는 한편, 언론·종교운동을 통해 독립사상을 고취했다.</p><p><br/></p><p>5.김갑순:<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C%A0%9C%EA%B5%AD">대한제국</a>과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BC%EC%A0%9C%EA%B0%95%EC%A0%90%EA%B8%B0">일제강점기</a>의 관료이자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BC%EC%A0%9C%EA%B0%95%EC%A0%90%EA%B8%B0">일제강점기</a>와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대한민국</a>의 기업인, 자본가이다. 어려서 고아가 되었으나 부를 축적하여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B6%A9%EC%B2%AD%EB%82%A8%EB%8F%84">충청남도</a>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B5%EC%A3%BC%EC%8B%9C">공주</a> 지역의 부호로 성장했으며,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BC%EC%A0%9C%EA%B0%95%EC%A0%90%EA%B8%B0">일제강점기</a>에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C%B4%9D%EB%8F%85%EB%B6%80_%EC%A4%91%EC%B6%94%EC%9B%90">조선총독부 중추원</a> 참의를 지냈다.</p><p><br/></p><p><br/></p><p><br/></p><p><br/></p><p><br/></p><ol start="3"><li><p><br/></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336?c=3" />
         <pubDate>2025-08-12 05:36:4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5152</guid>
      </item>
      <item>
         <title>30208 안채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5529</link>
         <description><![CDATA[<ol><li><p>조마리아</p></li><li><p>국채보상운동 참여, 임시정부의 상해재류동포정부경제후원회 위원 역임.</p></li><li><p>챕터4</p></li><li><p>시를 통해 민족의식과 저항정신 표현, 의열단에 가담하여 무장투쟁 전개</p></li><li><p>조선어 폐지, 조선인 생활의 일본화, 내선 결혼 주장, 내선일체 강조</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415?c=3" />
         <pubDate>2025-08-12 05:37:1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5529</guid>
      </item>
      <item>
         <title>30206 박시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5688</link>
         <description><![CDATA[<ol><li><p>내 영혼의 단짝 독립 운동가: 안중근 (1879~1910)</p></li><li><p>열정적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로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를 시찰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에게 총탄을 명중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p></li><li><p>챕터 4 선택</p></li><li><p>독립운동가 이육사 [본명: 이원록](1904~1944):<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EC%9C%A4%EB%8F%99%EC%A3%BC">윤동주</a>,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ED%95%9C%EC%9A%A9%EC%9A%B4">한용운</a>과 더불어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EC%9D%BC%EC%A0%9C%EA%B0%95%EC%A0%90%EA%B8%B0">일제강점기</a>의 저항 시인으로 유명하다.1927년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년 7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인 <strong>264</strong>에서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1기로 입교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폭탄·탄약·뇌관 등의 제조법과 투척법, 그리고 피신법·변장법·무기운반법 등을 배웠으며 권총 사격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전한다.1943년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EB%B2%A0%EC%9D%B4%EC%A7%95">베이징</a>으로 건너갔다가 어머니와 큰형의 소상을 위해 5월에 귀국했다가 이 해 6월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되었고 이듬해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교도소에서 옥사하였다.</p></li><li><p>친일파 현영섭(1907~미상):현영섭은 처음부터 급진적인 친일파는 아니었다.그는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EC%95%84%EB%82%98%ED%82%A4%EC%8A%A4%ED%8A%B8">무정부주의자</a>로서 항일독립투쟁에 투신하게 되었다. 독립운동가 원심창을 찾아간 현영섭은 상해로 건너가,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EB%82%A8%ED%99%94%ED%95%9C%EC%9D%B8%EC%B2%AD%EB%85%84%EC%97%B0%EB%A7%B9">남화한인청년연맹</a>에 가입하였으며 거기서 번역, 교육, 사설 집필, 내외 운동상황 소개 및 연락 등의 역할을 맡았다.그리고 원심창의 명령을 받고 '조선동흥노동동맹회'에 가입한 후 일본인 다케우치 데루요와 함께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활동은 1934년 때까지 계속 된 걸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활동 때문에 1930년 11월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EC%B9%98%EC%95%88%EC%9C%A0%EC%A7%80%EB%B2%95">치안유지법</a> 위반으로 체포되었으나, 무죄를 받고 출옥하였다.그는 변절 이후부터 아버지의 대를 이은 그야말로 <strong>극렬 친일파</strong>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친일성향 수필, 평론, 논설 등을 써서 발표하였다.해방 이후에는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EB%B9%A4%EC%8A%A4%EB%9F%B0">일본으로 도주하여 잠적하였다.</a> 주일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하였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475?c=3" />
         <pubDate>2025-08-12 05:37:3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5688</guid>
      </item>
      <item>
         <title>30220 최주희 -윤동길</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6421</link>
         <description><![CDATA[<ol><li><p>내영혼의 단짝 독립운동가: 윤동길</p><p>(1908.6.21 ~ 1932.12.21)</p></li></ol><p>  2.   윤봉길 의사에게 투쟁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일본의 상하이 침공은 윤봉길 의사에게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nbsp;</p><p>3.챕터 4번</p><p>4. 독랍 운동가  이육사(이원록)</p><p>  (1904.5.18 ~ 1944.1.16):이육사는 일제강점기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strong><mark>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의열단에 가입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mark></strong>했습니다. 특히 그의 시는 강렬한 저항 정신과 민족의 염원을 담아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중국에서 항일 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1944년 중국 베이징의 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nbsp;</p><p>5.친일파 현영섭 (1907.12.29 ~ 미상): <strong>생애</strong> 교육자 출신으로 조선총독부의 관료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현헌의 아들이며,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수재였다.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의 교토시에서 노동 운동을 한 이력을 갖고 있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상하이의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담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323?c=3" />
         <pubDate>2025-08-12 05:38:5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6421</guid>
      </item>
      <item>
         <title>30212이수인 - 황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6423</link>
         <description><![CDATA[<ol><li><p>독립운동가: 황현(1855.12.11~1910.09.10)</p></li><li><p>황현은 1899년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 언사소를 지어 국가 개혁을 주장했다. 또한 1905년 일제가 조선 외교권 강탈을 위해 을사늑약을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는 애국시를 발표했고 매천야록과 오하기문을 저술해 국가 지도자들의 무능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썬 민초들의 저항의 역사를 낱낱이 기록했다. </p></li><li><p>챕터 5</p></li><li><p>안재홍(1891~1965): 안재홍은 해방 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며 일제강점기에 일본 육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렸으며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격었다. </p></li><li><p>방응모(1884~1950년경으로 추정): 1938년부터 조광에 집중적으로 친일 논설을 기고하거나 시국 강연에 참여하여 전쟁 지원을 독려 하는 등의 다양한 친일 행위 글을 써서 조광에 발표하였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등 여러 친일 단체에 가담하였다. </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378?c=3" />
         <pubDate>2025-08-12 05:38:5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6423</guid>
      </item>
      <item>
         <title>30209용거련</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6882</link>
         <description><![CDATA[<p>1.황현 (1855.12.11 ~(1910.9.10)</p><p><br/></p><p>2. 29세(1883) 과거 합격, 하지만 시골 출신이라고 2등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벼슬길에 단념</p><p>- 34세(1888) 부모의 권유를 어기지 못해 다시 과거에 응시, 합격. 그러나 부정부패로 찌들어가는 정치 현실에 실망하여 벼슬길을 영영 단념하고 구례 월곡 마을에서 &lt;매천야록&gt; &lt;오하기문&gt; &lt;동비기략&gt; 등 저술</p><p>- 45세(1899)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해 &lt;언사소&gt;를 지어 조정에 개혁방안 제시</p><p>- 51세(1905) 을사조약 체결 소식을 듣고, 매국노를 규탄하는 시 &lt;문변삼수&gt;와 애국지사를 애도하는 시 &lt;오애시&gt;를 지음</p><p>- 54세(1908) 향토인 구례에 호양학교를 세워 신식학문을 가르침</p><p>- 56세(1910) 일제에 의해 끝내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지식인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절명시 4수와 유서를 남긴 채 자결 순국함.</p><p><br/></p><p>3.챕터 3 선택</p><p><br/></p><p>4.독립운동가 남자현(1872.12.7~ 1933.8.22):서로 군정서 등에서 활약한 여성 독랍운동가. 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암살을 계획했으며 혈서 '조선 도립원'을 작성하여 조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일본장교 암살하려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건국 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p><p><br/></p><p>5.친일파 배정자(1870~1951):친일 민족반역자.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로 간첩 교육을 받고 귀죽, 일본의 한국병탄 성취에 큰 역할을 했다. 국권피탈 뒤 민족 탄압을 도왔고 일본의 시베리아 출병 때 군사 스파이로 암약하고 만주.중국 본토 등에서 독립투사 체포에 앞잡이 노릇을 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534?c=3" />
         <pubDate>2025-08-12 05:39:4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6882</guid>
      </item>
      <item>
         <title>30219조현경</title>
         <author>2320_170</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7610</link>
         <description><![CDATA[<p>1.유관순</p><p>(1902.12.16~1920.9.28)</p><p><br/></p><p>2.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이후 고향인 충남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1920년 9월,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 후유증과 열악한 환경으로 순국.</p><p><br/></p><p>3.챕터4</p><p><br/></p><p>4.독립운동가 이육사(1904.5.18~1944.1.16)</p><p>국내외에서 항일 시위에 참여하다 여러 차례 체포 투옥됨.이육사라는 필명도 서대문형무소 수인번호 264번에서 유래.</p><p><br/></p><p>5.친일파 현영섭(1903.8.24~?)</p><p>1930년대 중반 무정부주의 운동으로 잠시 투옥된 후 활동을 재개하며, 조선어 전폐론 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한국어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고 일본어만을 사용하자는 주장입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467?c=3" />
         <pubDate>2025-08-12 05:41:1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7610</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7852</link>
         <description><![CDATA[<ol><li><p>조마리아-(조성녀) (1862년 4월 8일~1927년 7월 25일[향년 65세])</p></li><li><p>한 때 남편 안태훈의 생전에는 그의 충실한 내조자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남편과 사별한 다음에는 구국 차원의 애국계몽사업에 뜻을 둔 장남 안중근을 따라 개화운동이 활발했던 삼화항으로 이주하였다. 그녀는 아들이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EA%B5%AD%EC%B1%84%EB%B3%B4%EC%83%81%EC%9A%B4%EB%8F%99">국채보상운동</a>에 적극 호응하는 걸 지켜보고 자신도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1907년 5월, 그녀는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ED%8F%89%EC%95%88%EB%82%A8%EB%8F%84">평안남도</a> ‘삼화항 은금폐지부인회’를 통해 국채보상의연금을 납입했다. (국채보상운동:일본이 대한민국에게 제공한 차관 1300만원[현재 환율로 약 2400억원]을 국민들이 상환을 주도한 운동)</p></li><li><p>4번 무명시인과 베스트셀러 저자 선택</p></li><li><p>이육사(이원록) (1904년 5월 18일~1944년 1월 16일[향년 39세])</p><p><br/></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465?c=3" />
         <pubDate>2025-08-12 05:41:3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7852</guid>
      </item>
      <item>
         <title>30218 정호영-김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7963</link>
         <description><![CDATA[<ol><li><p>내 영혼의 단짝 독립운동가: 김구</p><p>(1876.8.29~1949.6.26)</p></li><li><p>구한말부터 식민지 초까지는 그렇게 비중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나, 1919<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H3uoeNgK" href="https://namu.wiki/w/1919%EB%85%84">년</a>에 중화민국령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처음 창설될 때부터 참여하여,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사람이다. 본토에서 저항이 철저하게 짓밟히고, 1923년에 개조파와 창조파 논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을 때, 주요 독립운동가들도 임시정부를 포기하는 상황에서 끝까지 임시정부를 수호해 임시정부의 적통을 지켜냈다.</p></li><li><p>챕터 4 선택</p></li><li><p>독립운동가 이육사(1904년 5월 18일~1944년 1월 16일): 일제강점기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의열단에 가입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특히 그의 시는 강렬한 저항 정신과 민족의 염원을 담아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중국에서 항일 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1944년 중국 베이징의 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p></li><li><p>친일파 현영섭(1907.12.29~미상): 변절 이후부터 아버지의 대를 이은 그야말로 극렬 친일파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친일성향 수필, 평론, 논설 등을 써서 발표하였는데 그 중 1936년 8월에 「정치론의 한 토막」 이라는 글을 통해 조선어를 폐지하라는 '조선어 전폐론'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면서 조선인 생활의 일본화, 내선 결혼을 떠들어댔으며, 강연이나 기고문을 통해 내선일체를 그야말로 찬양하고 강조했다.</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usc1.storage.googleapis.com/4214719991/07136ed00764947cc53aec0c528f4df4/Screenshot_2025_08_12_2_27_57_PM.png" />
         <pubDate>2025-08-12 05:41:5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7963</guid>
      </item>
      <item>
         <title>30201 권서원-유관순</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8467</link>
         <description><![CDATA[<p>1. 내 영혼의 단짝 도립운동가:유관순(1902.12.16~1920.9.28)</p><p>2.고향(천안 지역)에서 열린 집회와 만세운동을 직접 조직하고 선도하여 많은 주민과 학생들이 참여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당시 시위는 일본 경찰·헌병의 무력 진압을 받아 희생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p><p>3.챕터 6</p><p>4. 동립운동가 김마리아(1891.6.18~1944.3.13):</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616?c=3" />
         <pubDate>2025-08-12 05:42:1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8467</guid>
      </item>
      <item>
         <title>30213이준석-남자현</title>
         <author>2115_291</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8492</link>
         <description><![CDATA[<ol><li><p>남자현 (1872.12.7 ~ 1933.8.22)</p></li><li><p>남자현은 대한제국 시기의 여성 독립운동가로, 3.1운동참여 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 활동을 지원하고 여성 교육 및 민족의식 고취 활동을 펼쳤습니다.</p></li><li><p>챕터 4</p></li><li><p>이육사 (1904.5.18 ~ 1944.1.16) 이육사는 일제강점기 시인이자 독립운도가로 활동했다. 그는 시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정신을 표현했다.</p></li><li><p>친일파 현영섭(1907.12.29 ~ 미상)</p></li></ol><p><br/></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724?c=3" />
         <pubDate>2025-08-12 05:42:1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8492</guid>
      </item>
      <item>
         <title>30207박준우-윤동주</title>
         <author>2205_268</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8826</link>
         <description><![CDATA[<ol><li><p> 내 영혼의 단짝 독립운동가 : 윤동주</p><p>(1917.12.30 ~ 1945.2.16)</p></li><li><p>1938년 연희전문학교 학생 시절부터 항일 민족 정신을 시로써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lt;서시&gt;,&lt;별 헤는 밤&gt;,&lt;자화상&gt;등이 있으며, 일본 유학 중 일경에게 붙잡혀 경도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 중 옥사했다.</p></li><li><p>챕터 4 선택</p></li><li><p>독립운동가 이육사(1904.5.18~1944.1.16)</p><p>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p><p>1.장진홍 의사 사건 연루</p></li></ol><ul><li><p>대구격문사건 (1931년 1월)</p></li></ul><ol><li><p>1929년 11월에 터진 광주학생항일투쟁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사건임.</p></li><li><p>1930년 1월 중순에 동맹휴학이 시도되었고 6월에도 동맹휴학이 단행되었으며, 대구에서도 10월에 대구농림학교, 1931년 1월에는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동조하여 동맹휴학에 들어가게 되었음.</p></li><li><p>이육사는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옥고를 치름.</p></li></ol><ul><li><p>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 졸업 (1931년~1933년)</p></li></ul><ol><li><p>관련인물&nbsp;: 김원봉, 윤세주</p></li></ol><ul><li><p>서대문감옥 수감 (1934년 6월)</p></li></ul><ol><li><p>중국에서 군사간부로 육성된 목적에 충실하기 위하여 국내 공작원으로서 부여받은 사명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 1934년 3월 22일 경찰에 체포됨. 일본 경찰은 육사가 만주로 사라진 1932년 4월 이후 그를 추적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음. 일본경찰의 기록에 따르면 "1932년 4월에 다시 만주로 갔으나 그 뒤에 소재불명이어서 요주의 인물로 수배중에 있었음"이라고 적혀 있으며, 체포 후 6월 23일 기소유예로 풀려남.</p></li><li><p>1934년 7월 안동경찰서 보고내용은 육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음. 기록내용&nbsp;: "배일사상, 민족자결 , 항상 조선독립을 몽상하고 암암리에 주의의 선전을 할 염려가 있음 . 또 그 무렵은 민족공산주의로 전화하고 있는 것으로 본인의 성질로 보아서 개전의 정을 인정하기 어려움"</p><p><br/></p><p>5.친일파 현영섭(1907.?.??~불분명)</p><p>교육자 출신으로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C%B4%9D%EB%8F%85%EB%B6%80">조선총독부</a>의 관료와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C%B4%9D%EB%8F%85%EB%B6%80_%EC%A4%91%EC%B6%94%EC%9B%90">조선총독부 중추원</a> 참의를 지낸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98%84%ED%97%8C">현헌</a>의 아들이며,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2%BD%EC%84%B1%EC%A0%9C%EC%9D%BC%EA%B3%A0%EB%93%B1%EB%B3%B4%ED%86%B5%ED%95%99%EA%B5%90">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a>와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2%BD%EC%84%B1%EC%A0%9C%EA%B5%AD%EB%8C%80%ED%95%99">경성제국대학</a>을 졸업한 수재였다.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하고,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BC%EB%B3%B8">일본</a>의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5%90%ED%86%A0%EC%8B%9C">교토시</a>에서 노동 운동을 한 이력을 갖고 있다.</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373?c=3" />
         <pubDate>2025-08-12 05:42:5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8826</guid>
      </item>
      <item>
         <title>30210 이경모-황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9266</link>
         <description><![CDATA[<p>1.내영혼의 단짝 독립운동가: 황현</p><p>(1855.12.11~1910.09.10)</p><p>2.19세기 후반부터 1910년 국권이 일제에 침랄되기까지 47년간의 정치, 경제를 비롯해 전 분야에 걸쳐 역사서 '매천야록'과 '오하기문'을 기술하였다. 결국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옴독 자결하였다.</p><p>3.4번</p><p>4.독립운동가 이육사(1904.5.18.~1944.1.16): 이육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으로, 저항시를 통해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했습니다. 그는 항일 투쟁에 적극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시를 통해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과 민족의 강인한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청포도」, 「절정」, 「광야」 등이 있습니다.&nbsp;</p><p>5.친일파 현영섭(1907.12.29~미상): 현영섭은 변절 이후부터 아버지의 대를 이은 그야말로 극렬 친일파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친일성향 수필,평론,논설 등을 써서 발표하였는데 그 중 1936년 8월에 「정치론의 한 토막」 이라는 글을 통해 조선어를 폐지하라는 '조선어 전폐론'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452?c=3" />
         <pubDate>2025-08-12 05:43:3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09266</guid>
      </item>
      <item>
         <title>30215 정민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11067</link>
         <description><![CDATA[<ol><li><p>내영혼의 단짝 독립운동가:이봉창 </p><p>(1901.8.10~ 1932.10.10)</p></li></ol><p>2.금정청연회,한인애국단 등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1932년 1월 8일 일본 도쿄에서 궁성으로 돌아가던 일왕에게 수류탄을 투척하였으나 실패하고 체포된후 사형당했다.</p><p><br></p><p>3 챕터 4 선택</p><p><br></p><ol start="4"><li><p>1925년 이육사(李陸史)는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의열단에 가입 활동 중, 1927년에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사건으로 붙잡혀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었습니다. 이후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과 1930년 대구격문사건에 연루되어 모두 17차례에 걸쳐 옥고를 치렀습니다. 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던 그는 1943년에 일본 관헌에 붙잡혀 베이징으로 송치된 후 1944년 1월 베이징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p></li><li><p>초명은 영남(永男), 창씨명은 아마노(天野道夫). 이명은 히라노(平野永男), 쿠도오(工藤永男).</p><p>강원도 참여관, 중추원 참의 등을 거친 현헌(玄櫶)의 장남으로,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p><p>1931년 경성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p><p>고등보통학교 재학시절부터 아나키즘 및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탐독했다.</p><p>광주학생운동 당시에는 경성제대의 운동을 주도하는 등,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로서 활동했다.</p><p>졸업 후 상해(上海), 동경(東京) 등을 왕래하며 남화한인청년동맹(南華韓人靑年同盟), 조선동흥노동동맹회(朝鮮同興勞動同盟會)에 가입해 선전활동을 담당했다. 동경부 학무국에서 근무하던 중 치안유지법 위반으로1935년11월20일 검거되었으나 이듬해 여름 무혐의 석방되었다.</p><p>1936년 12월 재조선일본인들의 국가주의단체 녹기연맹(綠旗聯盟)에 가입해, 이듬해부터 기관지 녹기를 통해 내선일체론을 설파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아직 황민화정책이 본격화되지 않았던 중일전쟁 이전 상황에서 논의를 선도했다는 점이 주목된다.</p><p>이후 조선인의 나아갈 길 및 신생 조선의 출발 등을 출간하며, 대표적인 조선인 내선일체론자(內鮮一體論者)로서, 중일전쟁 이후 정책적으로 본격화된 내선일체론의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p><p>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황도학회, 내선일체실천사 등에서 간부로서 활동했으며,1941년 무렵에는 중국 화북지방의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친일단체 화북반도인협회(華北半島人協會) 및 협려회(協勵會)에서 활동한 바도 있다.</p><p>해방 이후에는 일본으로 탈출해 주일미국대사관 등에서 근무했다고 전해진다.</p><p>일제강점기 말기의 대표적 내선일체론자이다</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300?c=3" />
         <pubDate>2025-08-12 05:46:5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11067</guid>
      </item>
      <item>
         <title>30214장진욱-황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13167</link>
         <description><![CDATA[<p>1.내영혼의 단짝 독립운동가: 황현</p><p>(1855.12.11 ~ 1910.09.10)</p><p><br/></p><p>2.<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339?c=3">동학농민운동과 갑오경장,청일 전쟁이 잇따라폭발하면서 그격동을 바라보다 당대사를 저술할 필요가 있다 느껴 매천야록과오하기문이라는 역사서를 저술했다.</a>1907~1908년에 황현은 신학문을 배워 나라를 발전시키려는 생각에서 향촌의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자금을 모아 호양학교를 세우기도 했다.</p><p><br/></p><p>3.챕터7.선택</p><p><br/></p><p>4.장준하는 일제강점기에 고육활동을 하였으며</p><p>일본군에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하여 교육을받고 탈출,중국 군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아국민혁명군</p><p>준위가 되었다.</p><p><br/></p><p>5.</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omang.com/liberation-lights-campaign/result/118701339?c=3" />
         <pubDate>2025-08-12 05:49:4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gwangnamt200006/v9pn5f5k80x0e0rq/wish/3541113167</guid>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