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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0 2모둠 프랑스 혁명 활동지 by 조정은 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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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김은지, 민성아, 민윤주, 김세이</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0-10-18 23:16: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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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스티유 감옥 습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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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프랑스의 제 3신분인 민중들은 투표 표결 방식에 대해 머릿수 표결 방식을 요구하며 국민 의회를 구성하고, 헌법 제정 전에는 해산하지 않겠다고 서약하였다. 이것이 테니스 코트의 서약이다. 그런데 국왕이 국민 의회를 무력으로 해산하려 하자 파리의 민중들은 이에 저항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다. 이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은 프랑스 전국에 영향을 미쳤다.<br><br>21008 민윤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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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2:48: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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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제도의 모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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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프랑스 혁명 직전의 앙시앵 레짐, 즉 구제도는 신분 제도였다. 제1신분은 성직자, 제2신분은 귀족, 제3신분은 평민이었다. 전 국민의 4%에 불과한 제1신분과 제2신분이 대부분의 토지와 재산, 그리고 특권을 소유한 반면에, 전 국민의 96%에 달하는 제3신분은 과중한 세금 및 의무로 신음하고 있었다. 형식상의 의회인 삼부회가 있었지만, 제3신분에게는 제1, 2신분과 대등한 권리가 부여되지 않았다. 이러한 정치·경제·사회적인 모순이 프랑스 혁명의 원인이 되었다.<br>21002 김세이</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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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2:48: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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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폴레옹 집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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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나폴레옹은 징병제를 토대로 군사적 지도력을 발휘하여 오스트리아를 격파하고 영국과 조약을 체결하려 평화를 회복하였다 프랑스 국립은행을 설립하여 산업보호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국민 교육을 시행하여 프랑스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였다 또한 프랑스 혁명의 상과를 반영한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하여 법 앞에서의 평등과 재산 소유권을 보장하였다 이러한 개혁을 바탕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은 나폴레옹은 국민 투표로 황제에 즉위하였다<br>21007 민성아</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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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2:50: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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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랑스 2월혁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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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7월 왕정에서 소수의 대지주에게 권력과 부가 집중되었으며 선거권도 부유한 시민에게만 주어졌다 이에 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졌고 선거권 확대 요구로 발전하였다 이 무렵 프랑스에서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사회주의가 확산되었고 노동자들의 의식이 크게 성장하였다 마침내 중소 시민 계급과 노동자들이 선거권 확대를 요구하며 루이 필리프를 몰아내고 공화정을 수립했다<br>21007민성아</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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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2:52: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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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랑스 7월혁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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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빈 회의 이후에 프랑스에서는 부르봉왕조가 부활하였다 샤를 10세는 의회를 해산하고 선거권을 제한 하였고 언론을 통제하였다 이에 파리의 자유주의자,시민과 노동자들이 부르봉 왕조를 무너뜨리고 루이 필리프를 왕으로 추대하여 입헌 군주제가 수립되었다<br>21007 민성아</div>]]></description>
         <pubDate>2020-10-19 02:54: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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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루이 16세 처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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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전쟁으로 생활이 어려워져 과격해진 파리 민중들은 국왕의 퇴위를 주장하며 왕궁을 습격하였고, 그 결과 왕권이 정지되고 국민 공회가 들어섰다. 국민 공회는 공화정을 선포하고 자코뱅파의 주도로 루이 16세를 처형하였다. 이러한 국왕 처형에 놀란 유럽 각국들은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한다.<br><br>21008 민윤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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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2:56: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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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부회(삼신분회) 소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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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다이아몬드 사건의 악재와 맞물려, 왕실에는 개인적 불행이 연속적으로 불어닥쳤다. 그러는 사이 프랑스 정부는 비효율적인 조세징수와 무모한 대외전쟁 때문에 산더미 같은 부채를 짊어지고, 시급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른바 '명사회'가 소집되었지만, 무능한 명사회는 정부의 재정위기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1789년 5월 5일 루이 16세는 국가의 파산을 막기 위한 최후 수단으로 베르사유에 삼부회를 소집했다. 당시 삼부회 의원은 제1신분이 294명, 제2신분이 270명, 제3신분이 578명이었다. 이론상 제3신분은 모두 평민이었으나 실제는 제3신분의 10%도 안 되는 부르주아 계층이 주도권을 장악했다. 1614년의 모델에 따르면, 삼부회의 각 신분 대표는 모두 똑같은 비율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수가 많은 제3신분은 2배의 대표를 요구했다. 그렇다면 '신분별로 투표를 할 것인가, 아니면 의원 수대로 할 것인가?' 종전의 신분별 투표 방식을 고집하는 제1, 2신분과는 달리, 평민 대표들은 신분과는 관계 없이 참석한 모든 대표마다 1표를 행사한다는 개인별 투표 방식을 주장했다. 개인별 방식이 채택된다면 제3신분이 2대 1로 우세한 입장에 놓이지만, 신분별 방식이 채택되면 대체로 뜻을 같이하는 특권 귀족과 성직자가 2대 1로 우세해진다. 그리하여 패권 쟁탈전이 벌어지게 되었다.</div><div>의원 선거를 앞두고 제3신분의 입후보자들은 일제히 특권 귀족을 공격했다. 평민 대표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관철될 가망이 없어 보이자, 따로 모여 국민 의회를 구성했다. 루이 16세는 고의적으로 제3신분의 회의장을 폐쇄하였고, 이에 분노한 국민 의회, 이에 분노한 국민 의회는 테니스 코트로 이동하여 "헌법이 제정되고, 그 기초가 확립되기 전까지 결코 해산하지 않겠다."는 유명한 '테니스 코트의 서약'을 했다. <br>21002 김세이</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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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3:01: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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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테니스코트의 서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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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프랑스혁명을 촉발시킨 사건 중 하나이다. J.L.다비드의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5월 5일 이후 설치된 삼부회에서 자유주의 귀족과 평민의원이 중심이 되어 6월 17일 국민의회를 형성하자 궁정이 회의장을 폐쇄하였다. 이에 국민의회에 찬동하는 의원들은 옥내 구희장에 모여 결속을 다짐하고 천문학자 J.S.바이이를 초대 의장으로 선출하고 "국민의회는 헌법을 제정하고 사회의 질서를 회복시킬 때까지 결코 해산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선서를 하여 제3신분의 결의를 표시하였다.<br>21002 김세이</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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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3:02: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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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테르미도르의 반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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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루이 16세 처형 이후 자코뱅파는 온건파인 지롱드파를 숙청한 뒤,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여 민중의 지지를 얻고자 하였다. 이후 자코뱅파의 지도자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공안 위원회는 혁명 재판소 활동을 통해 반혁명 세력을 처형하는 등 공포정치를 주도했다. 이러한 공포정치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온건파의 쿠데타인 테르미도르의 반동이 일어났고, 로베스피에르는 처형되었다. <br><br>21008 민윤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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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0-19 03:07: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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