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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 모둠공간 by 양선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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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사회 프로젝트 자료 공유 :)</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1-08-25 01:51: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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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윤예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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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의식주: 전통의상,전통음식,건물,전통 건물 조사</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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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9-13 05:51: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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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노수현/축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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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삼바의 시작<br><br>&nbsp;앞뒤로 걸으며 상하, 전후, 좌우로 격렬히 몸을 흔드는 춤, 브라질의 상징이 된 ‘삼바’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삼바는 브라질의 아프리카 흑인들이 추던 개성 있고 리드미컬한 4분의 2박자의 전통춤에 마시쉐 등의 장르가 결합하면서 만들어졌다. ‘삼바’라는 말은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토속신에게 바치는 의식용 음악과 춤인 ‘셈바(Semba)’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명칭의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낮추어 부를 때 칭하던 ‘삼보(Sambo)’가 변형된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br><br><br>&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리우 카니발(Rio Carnival)<br><br></div><div>카니발은 원래 금욕 기간인 사순절을 앞두고 즐기는 축제를 말하는데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열리는 '리우 카니발'이 가장 성대하다. 개최 시기는 브라질 정부에서 정하는데, 매년 2월 말부터 3월 초 사이의 4일 동안이다. 이때는 토요일 밤부터 수요일 새벽까지 축제가 이어진다. 원래는 거리 축제였으나 삼바 학교가 생겨나면서 큰 경연이 열리는 축제로 변모했다. 사람들은 삼바 학교에 등록하여 1년 동안 퍼레이드를 준비한다. 각 삼바 스쿨을 상징하는 깃발을 든 여성 무용수 포르타-반제이라와 그녀를 호위하는 남성 무용수 메스트리-살라는 삼바가 아닌 부드럽고 우아한 춤을 추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br><br><br></div><div><br></div><div>&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삼보드로무(Sambodromo)<br><br></div><div>삼바 공연장 '삼보드로무'는 700m 길이의 행진로를 위쪽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9만여 관람석을 갖추고 있다.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각 삼바 스쿨들은 이 행진로를 대략 60~80분 동안 지나가며 준비한 프로그램을 펼쳐 보인다. 삼보드로무는 구역마다 입장료가 다른데, 스페셜 삼바 그룹의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축제 마지막 이틀의 입장권 패키지는 암표가 성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카니발이 끝나고 삼바 경연 대회 심사 결과가 발표된다. 최종 우승한 삼바 스쿨에게는 상금이 수여되고 우승한 삼바 스쿨과 상위 입상한 삼바 스쿨들은 삼보드로무(Sambodromo)에서 다시 한 번 행진한다.<br><br><br><br><br><br><br>O&nbsp;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상파울루(São Paulo), 살바도르(Salvador), 헤시피(Recife) 등 4개 도시를 중심으로 매년 2-3월 사이 브라질 전역에서 성대하게 개최되고 있으며, 이 중 리우 카니발이 가장 유명함.<br><br></div><div>O&nbsp; 카니발이 브라질의 대표적인 축제 문화로 발전하는데 있어 정부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함.<br>- 제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 대통령은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직후 어려운 경제 상황 하에서 국민 대통합의 일환으로 당시 하층민 사이에 유행하던 삼바를 활용한 카니발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br>- 바르가스 대통령은 브라질의 정체성이 유럽계 백인문화뿐 아니라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문화도 포괄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1935년 리우 카니발을 공식 지원<br>- 1984년 브라질 정부는 리우 카니발을 위한 전용 행사장인 삼보드로무(Sambódromo)를 건립(9만 명 수용 규모), 매년 삼바 경연대회 개최<br><br></div><div>O 브라질 카니발은 단순히 화려한 축제가 아니며 다민족 국가인 브라질의 정체성이 담긴 행사로, 사회·정치적 불만의 배출과 자유에 대한 열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br><br><br>(카니발 축제는 2월달에 한다는 사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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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9-13 14:00: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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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은</title>
         <author>haeunlim2009</author>
         <link>https://padlet.com/mintrosa4u/us9i4dfn6psvomwa/wish/1737700180</link>
         <description><![CDATA[<div>브라질은 1500년 포르투갈인(人) P.카브랄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적색염료\의 원료로 쓰이는 브라질나무의 이름을 따서 브라질로 불리게 되었다. 1531년 포르투갈은 북동부에 식민을 시작하여, 유목·반유목의 생활을 하는 원주민을 절멸시키거나 내륙부로 추방하고, 그 대신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수입하여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08067&amp;ref=y">사탕수수</a> 재배를 시작했다. 17세기에는 식민지의 중심이 북동부에서 남부로 옮겨짐에 따라 ‘반데이란테스’라는 개척자들이 원주민의 저항을 물리치면서 오지로 전진하여, 거의 현재의 국경을 확정했다. 그때 미나스제라이스주에서 금·다이아몬드 등이 발견되어, 18세기 중엽에는 금수출에서 세계 제일을 자랑했다.<br><br>1769년의 ‘티라덴테스’ 운동에 나타난 상인·민족적 지주 등의 독립의 꿈은 나폴레옹의 포르투갈 점령과 더불어 19세기 초에 빗나간 형태로 실현되었다. 즉, 1808년 나폴레옹에 쫓겨 일족과 함께 피해 온 포르투갈 왕실의 황태자 돔 페드루는 1822년 9월, 국왕 주앙 6세가 귀국한 후, 브라질의 독립을 선언하고 스스로 페드루 1세라 칭했다. 1831년 페드루 1세가 전제(專制)를 이유로 물러나게 된 후, 페드루 2세 치하의 브라질은 인근의 여러 나라로 진출하였고, 커피 재배의 보급과 유럽 이민의 대량유입에 의해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37535&amp;ref=y">자본주의</a> 발전에 박차를 가했다.<br><br>1888년에는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으나, 대지주와 지방의 세력자 등으로 이루어진 계급집단인 ‘콜로네레스’는 이에 불만을 품고 이듬해인 1889년 무혈반란으로 왕제를 폐지하고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63867&amp;ref=y">공화제</a>를 채택했다. 그후 40년 동안은, 19세기 말에 세계 총생산의 3/4을 차지한 커피 생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제를 바탕으로, ‘콜로네레스’의 지배가 계속되었다. 19세기 말의 바이아주 농민의 대봉기, 1912∼1915년의 남부농민이 일으킨 반란 등은 진압되었으며, 1922년 ‘테니엔테스(청년장교)’의 반란을 지휘한 프레스테스는 1924∼26년에 한 부대를 이끌고 정부군과 싸우면서 2만 4000km나 행군했으나, 정권을 타도하지는 못하였다.<br><br>1930년 세계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80502&amp;ref=y">대공황</a>하에서 커피 생산이 타격을 받게 된 것을 기회로 리우그란데두술주(州)의 목축·공업자본을 대표하는 G.바르가스가 청년장교의 지지를 얻어서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50704&amp;ref=y">쿠데타</a>에 성공하여, 비로소 ‘콜로네레스’의 지배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1920년 바르가스 집권 이후 쿠데타에 의한 잦은 정권교체로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다. 바르가스가 독재적인 경향을 강화한 데 대해, 1935년 공산당을 중심으로 결성된 ‘민족해방동맹’이 봉기하였으나, 오히려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어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br><br>1937년 바르가스는 선거 전의 혼란을 이유로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신국가’라는 이름 아래 전체주의적인 독재제(獨裁制)를 수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국 측에 서서 이탈리아 전선에 부대를 파견하였으며, 전후에는 민주적 정책을 취하려고 했으나, 1945년 군의 지지를 얻은 극우세력의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겼다. 1946년 E.G.두트라 대통령하에서 브라질의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헌법이 채택되었다.<br><br>1950년 선거에서 바르가스는 노동당의 지지를 얻어 다시 정권을 잡고,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66721&amp;ref=y">국가자본주의</a>의 육성에 진력했으나, 1954년 재정악화에 얽힌 분쟁으로 해서 자살하였다. 그후 1956~1964년은 민주정권이 통치하였는데, 1956년 선거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J.쿠비체크는 외국의 자본을 바탕으로 공업을 확장하는 동시에, 민족자본의 육성, 신수도인 브라질리아건설 등 공공사업을 추진하는 데 주력하였다.<br><br>1961년에 대통령이 된 J.콰드로스가 반년 만에 사임함으로써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J.B.굴라르는 쿠바 혁명의 영향 등으로 해서 농지개혁·외자기업(外資企業)의 접수 등을 시도했으나 사회·경제의 혼란을 한층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964년 3월 육군에 의한 무혈 쿠데타로 굴라르 정부가 무너지고, C.브랑쿠 장군이 대통령에 취임하여 반대파의 추방,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36478&amp;ref=y">인플레이션</a> 억제정책 등을 실시하였다. 1967년 3월 헌법개정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되었고, 국명이 브라질합중국에서 브라질연방공화국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79년 3월에 취임한 J.B.피게이레두 대통령까지 5명의 대통령은 모두 군부지도자가 차지했으나, 1985년 1월의 선거에서 T.A네베스가 당선되어 군정 20년 만에 민정으로 이양되었다. 그러나 대통령 T.A.네베스가 4월에 병사하자 부통령 J.사르네이가 대통령직을 승계함으로써 새 민간정부가 출범하였다.<br>&nbsp;<br>1988년 새헌법이 승인되어 1989년 12월 국가재건당의 F.A.코요르 데 멜루가 29년 만에 처음으로 치른 직접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코요르는 결승투표에서 좌익노동자당의 시우바를 이겼다. 코요르 정부는 1985년 21년간의 군정을 마감하고 들어섰던 사르네이의 과도정부가 남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옹호, 정부기구의 개편, 사회복지제도의 확대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1992년 부정축재 혐의로 사임한 후 프랑코 부통령이 승계하였으며 1994년 11월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카르도주 대통령은 집권 후 인플레이션을 줄이는 등의 업적을 남겼지만 일자리 감소와 농업개혁에 따른 문제점 등으로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1998년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2002년까지 브라질을 이끌었다.&nbsp;<br>&nbsp;<br>2002년 카르도주 대통령을 이어 대통령에 당선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집권당인 노동자당(PT)이 연루된 정치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탄핵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2006년 10월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카르도주 대통령에 이어 브라질 역사상 두 번째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다. 최초 집권 당시 중남미 좌파의 대명사처럼 불리기도 했지만 이후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해 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룰라 대통령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로는 경제성장과 개혁작업의 가속화, 그리고 현격한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갈등 해소 등이다.<br>&nbsp;<br>특히 브라질은 신흥 경제대국을 상징하는 브릭스의 일원이면서도 높은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에 훨씬 뒤 떨어지고 있다. 또한 빈곤층 문제 해소를 위해 많은 예산을 투여하고 있지만 소득수준의 불평등 구조가 좀처럼 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아 빈곤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상대적 박탈감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대외적으로 룰라 대통령은 ‘개발도상국의 대변인’의 입지를 살려 남미공동시장를 통한 브라질 주도의 중남미 통합과 개발도상국 연대 강화를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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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9-14 00:34: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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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은(식민시대)딱히 필요 없음</title>
         <author>haeunlim2009</author>
         <link>https://padlet.com/mintrosa4u/us9i4dfn6psvomwa/wish/1737707554</link>
         <description><![CDATA[<div>브라질은 최초로 1500년 4월 22일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에 의해 발견되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크게 유행하던 적색 염료 목재가 발견되어 1501년 가스파르 지 레무스가 원정을 시작하였다. 포르투갈은 1503년 곤살루 코엘류가 오지 탐험대와 해안 경비대를 조직한 후 적색 염료 목재를 채취하여 막대한 이득을 보았다. 오지 탐험대는 식민 당국의 경비 부담으로 조직된 공식적인 원정대로서 내륙 영토의 점령, 발견 및 침투로 개설에 주력했으나 1494년 스페인과 체결한 토르데시야스 경계선을 준수하였다.<br><br></div><div><br></div><div><strong>브라질 식민화를 시작하고 있는 마르팅 아폰소 지 소우자의 모습</strong></div><div>1528~1529년 사이 프랑스 상인들이 브라질 해안 지대에서 적색 염료 목재 채취에 열중하자 포르투갈의 동 주앙 3세는 1530년 400명의 선원과 함께 농기구와 종자를 선적시켜 마르팅 아폰소 지 소우자 원정대를 파견하였다. 그들이 페르남부쿠 해안에서 적색 염료 목재를 적재한 프랑스 선박 3척을 나포하여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함으로써 포르투갈의 브라질 정복은 본격화되었다. 한편, 일단의 프랑스 인들이 1501년 리오데라플라타 하구에 도착한 후 다시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하여 상비센치섬과 산투아마루 섬에 식민 마을을 건설하여 정착하려다 축출되었다.<br><br>1532년 포르투갈의 동 주앙 3세는 브라질을 15개 봉토로 분리하여 1534~1539년 사이 14개의 봉토에 12명의 양수인을 지정하여 분배하였다. 그 후 1548년 바이아에 최초의 총독이 부임하였다. 그 후부터 바이아의 살바도르는 1763년 리우데자네이루로 천도할 때까지 포르투갈의 식민 수도였다. 초기에 포르투갈의 식민 정책은 왕실, 교회 및 군을 주축으로 동북부 지역에서 사탕수수를 경작하는 것이었다. 브라질에서 제당 산업 농장주들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였다. 초기에 식민자들은 노동력을 원주민 사냥으로 충당하였으나 브라질의 동북부 지역에는 원주민이 적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수입하기 시작하여 1549~1850년 사이 600만 명이 수입되었다.<br><br></div><div><br></div><div><strong>노예선의 흑인 노예들의 비참한 모습</strong></div><div>포르투갈은 1555년 동북부 바이아데과나바라에서 프랑스 인들을 축출하였다. 이 사이 산투스 항을 중심으로 한 상비센치 지역에 정착한 포르투갈의 후예들, 즉 반데이란치스가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반데이란치스는 동북부의 농지주들보다 빈곤했으나 대단히 모험적이었기 때문에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여 특정한 산물을 경작하기보다는 계속 내륙으로 침투하여 원주민을 추적하면서 새로운 산물과 희귀 금속을 찾았다. 이들 반데이란치스는 민간 조직으로 브라질 남부 지역에서 내륙 영토의 확대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포르투갈이 스페인과 체결한 토르데시야스 경계선을 무시하고 스페인령까지 침투하여 후일 양국 관계를 악화시켰다.<br><br>1548년 브라질에 토메 지 소우자가 최초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1549년 3월 바이아지토도수우스산투스에 도착하여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1570년 동 세바스티앙 왕은 바이아의 살바도르에 수도를 정하고 브라질을 남북으로 양분하여 통치하였으나, 혼란이 가중되어 1572년 다시 하나로 통합하여 통치하였다. 1580~1640년 사이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통합되었던 시기에 네덜란드는 1585년, 1590년, 1596년 및 1599년 브라질에 침투하여 교역을 시작하고, 17세기 초에는 아마존 강 유역에 기지를 설치하는 한편, 1621년 네덜란드의 서인도 회사를 중심으로 식민과 교역을 강화하였다.<br><br>1640년 포르투갈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브라간사 왕조가 시작되면서 유럽에서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사이에 적대 관계가 종식되고 조르지 마스카레냐스가 브라질 최초의 부왕으로 도착하였다. 그 후 브라질에서 부왕 제도는 260여 년 간 존속하여 최후의 부왕인 마르코스 지 노롱냐가 재임 중이던 1808년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포르투갈 왕실이 리우데자네이루에 천도함으로써 끝을 맺었다.<br><br></div><div><br></div><div><strong>19세기 초의 리우데자네이루</strong></div><div>식민 초기에 포르투갈은 브라질을 단지 원료 산지 및 관세 부과 지역으로 중요시했을 뿐 그곳의 개발 및 주민들의 생활상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교역면에서는 엄격한 독점 체제를 수립하여 대서양 횡단 선단의 밀수 방지를 위해 호송대를 파견하였다. 1554년 헤수이타파 선교사들이 브라질에 진출하여 상파울루 학교를 설립하였다. 이것이 상파울루라는 도시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1580년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합병되자 반데이란치스는 본국의 간섭 없이 내륙으로 쉽게 진출할 수 있었다. 1612년 프랑스 인들이 마라냥 주의 산루이스를 침공하여 정착하였으나 1655년에 축출되었다.<br><br>1698년 미나스제라이스와 마투그로수, 그리고 1725년에는 고이아스에서 금이 발견되었다. 그러자 북동부 지역의 제당업자들이 노예들을 이끌고 금광 지대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1750년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마드리드 조약을 체결하여 선언적 조항보다 실질적 점유권을 인정하고, 또 측정보다는 강, 산, 호수 등 자연적 경계를 인정하여 토르데시야스 경계선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1761년 포르투갈측이 이를 무효화시켜 스페인과 갈등을 빚었다. 이어 1763년 포르투갈 정부는 브라질에서 부왕청과 세관을 광산 지대에 인접한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전시켰다. 그 후 1789년 브라질에서 포르투갈의 관세 정책에 반발하여 티라덴티스 지휘하에 반역 음모가 발생하였다.<br><br></div><div><br></div><div><strong>대학의 설립, 노예 제도 폐지, 완전한 브라질의 독립을 요구한 티라덴티스</strong></div><div>결국 18세기 말에 이르러 브라질에서 포르투갈의 독점 교역은 사라지고, 또 금광 개발의 쇠퇴로 면화와 제당 산업이 부활되면서 커피가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식민 시대 브라질의 산업 발전 과정은 1500~1553년 사이에는 적색 염료 목재 개발 시대, 1554~1694년 사이에는 제당 산업의 번영기, 그리고 1694~1750년 사이에는 금광 개발의 시기였다. 그 후 면화, 제당 및 커피 산업이 발전하여 지리적으로 개발의 축이 동북부에서 남부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보였다.</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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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9-14 00:37: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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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현</title>
         <author>Lactea</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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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브라질의 기본정보<br>-브라질<br>수도: 브라질리아</div><div>언어: 포르투갈어</div><div>면적: 8억 5,157만 7천헥타르로 세계 5위</div><div>인구: 2억 1,399만 3,441명으로 세계 6위</div><div>국내총생산(GDP): 1조 8,397억 5,804만 765.6달러로 세계 9위</div><div>국화: 카틀레야<br>국기: 초록 바탕에 노랑 마름모가 있고 그 안에 파랑 원이 있으며 원 안에는 흰색 리본이 가로질러 있다. 초록은 농업과 산림자원을, 노랑은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65000&amp;ref=y">광업</a>과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64903&amp;ref=y">광물</a>자원을, 파랑은 하늘을 나타낸다.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46094&amp;ref=y">천구</a>의의 별자리 그림은 공화정이 선언된 1889년 11월 15일 8시 30분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89700&amp;ref=y">리우데자네이루</a> 하늘에 펼쳐진 것이라고 하는데, 26주와 1개의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26492&amp;ref=y">연방</a>자치구를 의미하는 27개의 별이 있다. 흰색 리본에는 초록색의 포르투갈어로 '질서와 진보' 라는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58795&amp;ref=y">표어</a>가 씌어 있다.</div><div><br><br></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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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9-14 03:58: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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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시현-브라질의 문화</title>
         <author>Lactea</author>
         <link>https://padlet.com/mintrosa4u/us9i4dfn6psvomwa/wish/1738246033</link>
         <description><![CDATA[<div>브라질은 많은 나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 그 사람들이 각국에서 가져온 문화가 원래 있던 포르투갈 문화와 섞여 점차 독자적인 브라질 문화가 완성되었다.</div><div>&nbsp; &nbsp;</div><div>남부의 상파울루주는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의 영향이 크고 리우그란데두술 주는 독일이나 동유럽에서 온 사람들의 영향이 큼.</div><div>이와 같이 남부의 여러 지방은 유럽의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문화 수준이 높고 교육도 앞서 있다.</div><div>지방적, 민족적 문화에서 유럽 문화를 섞어 독자적인 브라질 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한 사람도 많다.</div><div>&nbsp; &nbsp;</div><div>인사법: 브라질의 인사법은 한국과 달리 적극적인 스킨십이 기본이다. 브라질에서 인사법은 서로 포옹하거나 서로의 뺨을 맞닿아 두번 또는 한번 터치하는 것이다.</div><div>&nbsp; &nbsp;</div><div>음악: 브라질의 음악은 포르투갈, 아프리카, 그리고 토착주민의 영향을 골고루 섞은 종합적인 것이다. 포르투갈의 요소는 세속적인 특징과 신성한 요소들이 뒤섞인 것이며, 아프리카 영향은 선창과 후창으로 나뉘는 노래 구조, 3/4과 6/8박자를 왔다갔다 반복하는 헤미올라 리듬, 7도를 반음 내리는 음계구조 사용 등이고, 토착 문화의 영향은 마라카스의 사용이나 브라질 특유의 독특한 무용이다. 브라질은 지역마다 다른 음악 장르가 있을 정도로 풍요로운 음악을 보유하고 있다.&nbsp;</div><div>&nbsp; &nbsp;</div><div>파두(fado): 리스본에서 널리 연행되는, 음악과 시가 결합된 공연장르</div><div>아프리카계 브라질 사람들의 노래와 춤, 리스본에 이루어졌던 노래와 춤의 장르</div><div>계속되는 포르투갈의 인구 이동 때문에 시골에서 유입된 음악 전통</div><div>파두는 보통 남자나 여자 솔로가수가 부르며 전통적으로 철사 줄이 달린 어쿠스틱 기타와&nbsp;</div><div>포르투갈 특유의 기타라(guitarra 포르투갈 기타), 즉 12줄이 달리고 배 모양으로 생긴 시턴(sitern)의 반주가 뒤따름.</div><div>&nbsp; &nbsp;</div><div>파두는 19세기의 제 2사반기 이후 리스본에서 생겨났으며, 그 후로 대부분의 리스본 시민들에 의해 현대적 도시의 형성과정과 그 실상을 반영하는, 중요 한 리스본의 문화유산으로 널리 인정되어 옴.</div><div>&nbsp; &nbsp;</div><div>그렇지만 새로운 선율과 가사가 만들어지는 등 레퍼토리가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고, 지금도 다름 음악 전통과 여러문화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지역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끊임없이 재형성하게 하는 음악장르임</div><div>&nbsp; &nbsp;</div><div>전통 무술: 카포에라</div><div>카포에라는 브라질 무술입니다. 브라질이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 흑인 노예들이&nbsp;</div><div>만들었음</div><div>노예들이 무술 수련을 하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춤으로 위장한 무술</div><div>&nbsp; &nbsp;</div><div>카포에라는 다른 무술과 달리 음악과 춤의 요소가 있음.&nbsp;</div><div>이게 바로 카포에라를 브라질 종합 예술, 브라질 컬쳐라고 부르는 이유</div><div>그뿐만 아니라 카포에라는 상대방을 이기는 것뿐만이 아니라 같이 즐기는 목적을 함께 갖고 있음.</div><div>&nbsp; &nbsp;</div><div>카포에라에는 아뻴리두라는게 있음. 스승으로부터 받는 카포에라 이름.&nbsp;</div><div>일종의 세례명인데 카포에라의 매력 중 하나</div><div>카포에라는 웃으면서 대련할 수 있는 무술, 다른 무술을 하셨던 분들은 웃으면서 스파링하는게 신기하고 재밌다고 함.</div><div>&nbsp; &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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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9-14 04:03: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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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휘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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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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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9-14 04:39: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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