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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권의 의미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 by 남기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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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아래 더하기 버튼을 클릭하여 토론 주제에 대한 답변을 게시하세요.</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5-20 03:45: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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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skarlqor202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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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인권은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소중하게 가지는 권리로,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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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20 03:46: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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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가온{마틴 루터 킹 주니어}</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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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흑인인권</p><p>#인권운동가</p><p>#평화</p><p>[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미국의 목사였어요.</p><p>기독교 평화주의자이며,흑인 해방 운동가로도</p><p>활동했지요.]</p><blockquote><p>-출생:1929년 1월 15일</p></blockquote><blockquote><p>-사망:1968년 4월 4일</p></blockquote><p>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보스턴 대학 철학 박사의 학력을 가지고 있어요.</p><p>또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지요.</p><p>그리고 1957년에 남부 그리스교도 지도회의(SCLC)를 설립하기도 한 대단한 인물이에요.</p><p>•1954년 미국 침례교회 목사까지</p><p>했던 인물이랍니다.</p><p>&lt;이제 마틴 루터 킹 주니어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겠나요?이처럼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같은 인권 신장에 도움을 준 대단한 인물이 많아요!&gt;</p><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youtu.be/CVDlcDE584Y?si=tDWteeCuMwA16Exx">https://youtu.be/CVDlcDE584Y?si=tDWteeCuMwA16Exx</a></p><p>위의 링크를 클릭하여 영상을 보시면</p><p>마틴 루터 킹 주니어에 대해 잘 알수 있을 겁니다!</p><p>•옛날에는 흑인 인종 차별 이상으로 흑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어요.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그런 흑인들을 해방시켜주고 흑인 인권을 위해 힘썼답니다.•</p><p>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p><p>연설로 유명하기도 해요.</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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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1 07:28: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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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민지(넬슨 만델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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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인권 운동가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p><p>-출생:1918년 7월 18일</p><p>-사망:2013년 12월 5일</p><p>(넬슨 만델라는 1944년 아프리카 민족회의에 합류 했지만 움콘토 위 슬레투라는 ANC의 무장조직을 이끌며 정부시설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였고,이로 인해 1964년에 종신형을 선고받고 로벤섬 감옥에 수감 되었다.27년 동안의 감옥 생활은 혹독한 시련이었지만 그의 강인한 정신과 투옥 생활동안 에도 끊임 없이 메시지는 전세계 적으로 그의 명성을 더욱 높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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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1 08:27: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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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엄찬희 &lt;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 박두성&gt;</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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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lt;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 박두성&gt;</p><p> 여러분들은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 이라고도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님을 아십니까? 송암 박두성 (1888~1963) 선생님은 한국인 최초로 한글 점자를 만드신 분입니다.</p><p>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은 박두성 선생님께서 한글점자를 만드시기 전까지는 한국인 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점자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1926년11월4일, 박두성 선생님께서의 노력으로 한글점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11월4일이 점자의날 이기도 하지요. 박두성 선생님은 점자를 만드시고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점자를 알려주셨습니다. </p><p>  이렇게 많은 한국인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많은 힘을 써주신 박두성 선생님에 대해서 잘 알수있는곳도 있습니다. 바로 인천에 위치한 송암 박두성 기념관 입니다. 이 기념관에는 송암 박두성 선생님의 삶과 업적들이 소개되어있습니다.</p><p> 지금까지 송암 박두성 선생님의 업적과 삶의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우리 이렇게 송암 박두성 선생님에 대해서 알게되어으니 이제 박두성 선생님과 점자에 관심을 가져보는것은 어떨까요? 우리 이제 박두성 선생님과 점자에 관심을 가져봅시다.</p><p>#장애인 인권 #한글 점자 #송암 박두성#시각장애인 인권</p><p> </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www.youtube.com/watch?pdlt=1&amp;v=GRtXtWmgeR4" />
         <pubDate>2025-05-31 10:38: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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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율민&lt;마하트마 간디&gt;</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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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간디는 1869년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인도에서 태어났다.</p><p>인도에는 카스트라는 계급제도가 있었고 계급 차별이 너무 심해 하층계급들은 무척 천대를 받았다.</p><p>그런 인도의 계급제도를 피해 남아프리카로 간 인도인들이 그곳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었다.</p><p>인도의 독립을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간디는 22살에 변호사가 되었고 인도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 일을 맡게 되어 남아프리카로 가게 되었다.</p><p>남아프리카에서 차별 대우를 받으며 고통받고 있는 인도인들을 보게 된 간디는 남아프리카 정부에 맞서 비폭력 저항 운동을 하였고 폭력을 쓰지 않고도 잘못된 차별법을 없애고 남아프리카 인도인의 단결을 이룬 뒤에 22년 만에 인도로 돌아왔다.</p><p>간디는 인도에서도 영국 정부에 맞서 비폭력 저항운동과 영국 상품 불매 운동을 하고 감옥에 갇히는것을 반복하였다. </p><p>1947년8월15일 마침내 인도는 영국에서 벗어나 독립하게 되었지만 1948년 79살의 간디는 총을 맞고 사망하였다.</p><p>간디는 끝까지 폭력을 쓰지않고 힘없이 복종하지도 않음으로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인 마하트마라고 불리게되었다.</p><p>#비폭력주의자 간디 #마하트마 간디 </p><p>#유색인차별정책해지</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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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1 12:02: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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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차효승&lt;해리엇 터브먼&gt;</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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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해리엇 터브먼은 1822년에 노예로 태어나셔서 1849년, 노예에서 탈출하시고, 1850년 부터 1860년까지 노예탈출을 돕는 비밀 네트워크인 지하철도에서 차장으로 활동하며 많은 수의 노예를 해방시키셨습니다. 또 흑인들의 권리 보장과 여성 참정권 행사에 관한 운동에도 헌신 하시며 여성과 흑인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p><p>그 외에도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간호사, 요리사, 무장정찰병, 스파이로써 전쟁의 승리에 기여하였습니다.</p><p>출생:1822</p><p>사망:1913</p><p>#여성 인권 운동가</p><p>#흑인 인권 운동가</p><p>#노예 해방 운동</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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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1 12:15: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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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지아) 넬슨  만델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spotlessshoteducation/uk8r60gbixdpf744/wish/3474539549</link>
         <description><![CDATA[<p><br></p><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blog.naver.com/danikim/223463802846?photoView=0">https://blog.naver.com/danikim/223463802846?photoView=0</a></p><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blog.naver.com/darlingoy/2238556859671918%EB%85%84">1918년</a> 7월 18일생 2013년 12월 5일 사망 넬슨 만델라는 부족사회의 전통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정책)의 잔혹한 현실에 직면하게되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흑인들에게 극심한 차별과 억압을 가하는 제도였고 이는 만델라의 삶의 방향 결정짓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델라는 인종차별 제도를 없에기 위해 노력하다 27년 종신형을 받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습니다.</p><p>#흑인 인권운동가</p><p>#흑인대통령</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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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1 13:16: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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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수민&lt;소저너 트루스&gt;</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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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86%8C%EC%A0%80%EB%84%88_%ED%8A%B8%EB%A3%A8%EC%8A%A4">https://ko.m.wikipedia.org/wiki/%EC%86%8C%EC%A0%80%EB%84%88_%ED%8A%B8%EB%A3%A8%EC%8A%A4</a></p><p><br></p><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femiwiki.com/w/%EC%86%8C%EC%A0%80%EB%84%88_%ED%8A%B8%EB%A3%A8%EC%8A%A4">https://femiwiki.com/w/%EC%86%8C%EC%A0%80%EB%84%88_%ED%8A%B8%EB%A3%A8%EC%8A%A4</a></p><p><br></p><p>출생-1797년 경</p><p>사망-1881년 11월 26일 (나이 약 86세)</p><p>직업-하인,노예 제도 폐지론자,작가</p><p><br></p><p> 소저너 트루스는 흑인 노예 제도 폐지론자이자 여성 권리 운동가로 거듭나면서,원래 이름인 이사벨라 비움프리 라는 이름을 버리고 ‘진실에 머무는 자‘라는 뜻으로 소자너 트루스로 개명하였어요. 트루스는 주로 대중연성을 통해 흑인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고.1851년 오하이오 에크런의 여성 권리 집회의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연설로 유명해요.</p><p><br></p><p>#흑인 노예 제도 폐지론자#여성 권리 운동가#진실에 머무는 자#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인가</p><p><br></p><p>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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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1 14:00: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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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민승&lt;전태일&gt;</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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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https://youtu.be/JaZ8LJMKmNo?si=kzGNp_Pvwk-TCWEG</p><p>인권 운동가 · 노동 운동가</p><p>전태일 (1948.9.28 ~ 1970.11.13)</p><p>출생: 1948년 9월 28일, 대한민국 경상북도 대구부 남산동</p><p>사망: 1970년 11월 13일 (향년 22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동대문</p><p> 1965년, 전태일은 평화시장 내 ‘삼일사’에 미싱사로 들어가 재봉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곳에서 열악한 작업 환경과 긴 노동 시간, 그리고 직업병으로 해고당하는 동료들의 현실을 목격하며 충격을 받았다. 노동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회사의 눈밖에 나게 되었고, 결국 1966년 여름 해고당하고 만다.</p><p> 1966년 8월 17일, 그는 평화시장 2층 244호에 있는 의류 공장 ‘한미사’에 재단보조로 재취업했다. 같은 해 말, 기존 재단사가 사장과 갈등을 겪고 해고되자, 전태일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기술을 익히고 일의 중심으로 나아갔지만, 여전히 비인간적인 노동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p><p> 1968년, 그는 우연히 ‘근로기준법’이라는 법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노동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이 법은 전태일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는 해설서를 구해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법과 너무나 달랐고, 그는 “왜 법이 존재하는데 아무도 지키지 않는가?”라는 의문과 함께 분노를 느꼈다.</p><p> 1969년 6월, 전태일은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바보회’를 만들었다. ‘바보처럼 순수하게, 바보처럼 정직하게 살자’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었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의 내용을 알리고, 근로 조건 개선을 위해 함께 싸울 방법을 모색했다. 이 작은 모임은 노동운동의 씨앗이 되었다.</p><p>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서울 평화시장 앞에서 분신하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다. 그는 단순한 항의가 아닌, 자신의 몸으로 세상에 절규를 남겼다. 그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고, 이후 노동운동의 불씨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p><p> 전태일은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의 외침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을 바꾸었다. 그는 법과 현실의 괴리를 온몸으로 고발했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말은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의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있다.</p><p>#노동인권운동자</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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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1 14:38: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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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틴 루터 킹 주니어</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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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1929년 1월 15일 미국 조지아 애틀랜타 시의 침례교 목사 마이클 루터 킹 아들로 태어났다. 소년 시절에 그는 침례교회에 다니면서도 기독교의 교리에 회의적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는 9학년과 12학년을 월반하여 15세가 되던 해에 모어하우스 대학 신학과에 입학하고 졸업했다. 대학교 재학 중 넉넉한 가정 환경으로 여유 있는 삶을 살았지만, 흑인 학생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당하기도 했다. 신학교를 마친 뒤 다시 매사추세츠주로 건너가 보스턴 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1955년 보스턴 대학교 대학원 신학부에서 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54년앨라배주 몽고메리의 덱스터 애버뉴 침례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맡게 된다. 1955년 백인들은 '몽고메리 시에서 운영하는 버스에 흑인은 탈 수 없다' 라는 규정을 만들려고 하였고, 그는 이를 반대하였다. 킹 목사는 참가자들에게 흑인 해방 운동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1964년 초 에일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가톨릭 인종협력협회로부터 존 F.케에디 상을 수상받았다. 베트남 전쟁 장기화 시기인 1968년 4월 4일 멤피스의 한 모텔 2층 발코니에서 미리 잠입해 있던 테네시 출신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안종차별주의자인 제임스 얼 레이가 쏜 총에 킹 목사는 머리를 맞고 사망한다.</p><p><br></p><p>   #마틴 루테 킹 주니어</p><p>    #흑인 인권운동가</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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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1 00:54: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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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태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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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B%8C%80%ED%95%9C%EB%AF%BC%EA%B5%AD">대한민국</a>의 재단사이자&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B%85%B8%EB%8F%99%EC%9A%B4%EB%8F%99%EA%B0%80">노동운동가</a>. 1960년대 후반&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D%8F%89%ED%99%94%EC%8B%9C%EC%9E%A5(%EC%84%9C%EC%9A%B8)">평화시장</a>의 봉제&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A%B3%B5%EC%9E%A5">공장</a>에 취직하고 1970년부터는 재단사로 일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노력했다. 노동환경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B%B0%95%EC%A0%95%ED%9D%AC%20%EC%A0%95%EB%B6%80">박정희 정부</a>와 자본기업들에게&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A%B7%BC%EB%A1%9C%EA%B8%B0%EC%A4%80%EB%B2%95">근로기준법</a>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다가 시위 현장에서 자신의 몸에&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D%9C%98%EB%B0%9C%EC%9C%A0">휘발유</a>를 끼얹고 불을 붙이면서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B%B6%84%EC%8B%A0#s-1">분신자살</a>하여 22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흔히&nbsp;<strong>"대한민국&nbsp;</strong><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B%85%B8%EB%8F%99%EC%9A%B4%EB%8F%99"><strong>노동운동</strong></a><strong>의 역사는 전태일 열사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strong>&nbsp;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노동 운동 발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nbsp;<strong>이처럼 전태일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노동운동의&nbsp;</strong><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C%83%81%EC%A7%95"><strong>상징</strong></a>과도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만약에 전태일 열사가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현재 수준보다 대우를 받지 못하거나 대우받는 시기가 매우 늦어졌을 것이다</p><p>전태일 열사 분신 사건 이후 노동자들에게 처한 열악한 현실에 대해&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B%8C%80%ED%95%9C%EB%AF%BC%EA%B5%AD">대한민국</a>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하였고&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C%A7%80%EC%8B%9D%EC%9D%B8">지식인</a>&nbsp;계층,&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B%8C%80%ED%95%99%EC%83%9D">대학생</a>들, 당사자 집단인 노동자 계층이 그의 죽음으로 각성의 계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어머니&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C%9D%B4%EC%86%8C%EC%84%A0">이소선</a>&nbsp;열사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평생을 노동자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운동가가 되었고 '노동운동의 대모(<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5%A4%A7">大</a><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6%AF%8D">母</a>)' 로 불리게 되었다.<br>사후 그는 노동열사로 추서되었으며,&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wZFaopNC" href="https://namu.wiki/w/%EB%AC%B8%EC%9E%AC%EC%9D%B8%20%EC%A0%95%EB%B6%80">문재인 정부</a>&nbsp;시절인 2020년에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p><p><br></p><p>#전태일#노동자의 권리#인권운동가</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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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1 02:48: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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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테레사(박시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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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출생:1910.08.26</p><p>고향:유고슬라비아</p><p>사망:1997.09.05</p><p>직업:수녀</p><p> 1928년에 아일랜드의 라스판햄으로 이주해서 로레토 수녀회에 입회 하였다. 이때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녀가 되고 테레사로 개명 하였다. 그 이후 인도로 선교 활동과 빈민 구제를 목적으로 당시 영국의 식민지이던 인도로 이주하였다. 1947년 인도 자치령이 독립하고 1950년에 인도 공화국으로 국호를 결정하자, 인도에 귀화해 로마 가톨릭 계열의 선교 단체인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였다. 1952년 8월 22일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이라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지었다. 당시 한두교도들은 로마 가톨릭 교도들이 산교 활동을 위해 건물을 쓸 것을 의심해서 시위를 벌였으나, 사랑의선 교회 수녀들이 종교에 구애 없이 복지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받아 들였다. 1955년 9월 23일 "때의 집"이라는 어린이 보호 시설을 개설하였고, 1958년에는 여기에 90명의 어린이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경찰과 공무원들이 고아와 버려진 어린이들을 보냈으며, 어린이들의 집에서는 이들을 먹이고 병도 고쳐주었다. 어린이들은 교육도 받고 해외로 입양되었다. 갓 아기는 로마 가톨릭 교도인 것을 알 수 있을 때만 세례를 주었다. 1968년에는 한센병환자들의 커뮤니티인평화의 마을을 개설하고, 1975년에는 회복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우해 "사랑의 선물"이란 이름의 장기 요양소를 만들었다. 이럼 여러 사회봉사 활동 덕분에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1997년 캘커타에서 37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p><p><br></p><p><br></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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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1 03:03: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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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서원-넬슨 만델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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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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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1 08:17: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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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지율&lt;김복동&gt;</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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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김복동의 1926년 4월 19일도로 경상남도 양산군 양산면에서 출생해 1940년 만14세가 되는 해에 일본군에게 속아 위안부로 끌려갔다. 김복동은 그이후 중국,홍콩,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 등 8년동안 여려나라를 돌아다니며 성폭행을 당했다.</p><p> 1948년 고향으로돌아온 김복동은 1992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고발하며,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서 피해사실을 공개증언 하였다. 그 이후 여려나라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해 위안부의 문제를 알렸다. 2000년도에는 일본 성노예 사건을 고소하기도 했다.</p><p> 2012년도에 성폭력 피해자를 돕고 어린이를 위해 5000만원을 기부했다. 그리고 2015에 미국의 흑인 운동가 넬슨 만델라,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깨 이름을 올렸다. 평화와 인권을 존중한 김복동을 위해 정부는 국민훈장을 수여했고 2017년도 에는 '김복동 평화상'이 제정됐다 .</p><p>2019년도에 1년간에 암투병을 끝네 93세에 나이로 별세하였다. 김복동은 끝까지 싸싸워달는 유언을 하여</p><p>#여성인권운동가#평화#일본 위안부 피해자</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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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1 10:29: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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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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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세빈&lt;방정환&gt;</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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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박세빈&lt;방정환&gt;</p><p> 방정환은 1899년에 테어났다.</p><p>방정환은 1920년9월 중순,도쿄 지회장의</p><p>임무를 띠고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을 했다.</p><p> 방정환은 1922년 5윌1일에 어린이날</p><p>행사를 주최하였다.어린이날이 </p><p>공식적으로 만들어진 날은 1946년</p><p>5월5일이다.</p><p> 방정환이 어린이 인권 운동가를 했던 </p><p>이유는 자신의 눈으로 청소년들이 </p><p>노동을 하는 것을보고 이들을 </p><p>억압과 착취로부터 해방하고자</p><p>해서 어린이 인권 운동가 일을 시작했다.</p><p> 또 방정환은 3.1운동에도 참가했으며</p><p>기미독립선언서를 인쇄하다 걸려</p><p>고등계 형사들에게 끝임없이 감시를</p><p>받았다.</p><p> 방정환은 그렇게 인권운동을 계속하다</p><p>1931년 7월23일 만 31세에 생을 마감한다.</p><p> 방정환이 생을 마감하고 약26년 뒤에</p><p>제정된 상이 소파상이다.</p><p>#어린이날#어린이 인권</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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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1 11:21: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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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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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신영 &lt;마틴 루터 킹 주니어&gt;</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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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p><p>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미국의 목사이자 미국 흑인의 인권 운동을 이끈 개신교 목사인데요. 오늘은 인종 평등을 위해 노력하신 마틴 루터 킹 주니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p><p>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1929년 미국 조지아 애틀렌타주에서 태어났으며 1986년 4월 4일 39세의 나이로 어느 한 모텔에서 총격을 맞아 사망하셨습니다.</p><p> 그의 가치관은 사랑과 비폭력이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흑인들이 우월주의자 백인들에게 차별을 받는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에 따라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비폭력 저항을 통해 인종차별 철폐와 인종 평등을 위한 노력으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이로 인해 흑인의 권리 증진뿐만 아니라 미국의 법과 제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셨습니다. 이 헌신으로 인해 그는 세상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1964년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또 놀라운 사실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흑인 인권 운동만 하신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평화로운 사회를 위해 노력하신 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몽고베리 버스 보이콧 운동, 워싱턴 대행진, 베트남 전쟁 반대</p><p> 지금 우리가 숨쉬고 있는 이 순간에도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많은 곳에서 존경받고 있습니다.</p><p> #흑인 인권 운동 #인종 평등</p><p>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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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1 12:34: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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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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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시현(방정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spotlessshoteducation/uk8r60gbixdpf744/wish/3474961048</link>
         <description><![CDATA[<p>방정환은 1899년 11월 19일에 태어났습니다.</p><p>방정환은 도쿄 지회장의 임부를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어린이의 인격 및 행복 추구를 위해 1922에 어린이날을 개최하였습니다.</p><p>방정환께서 어린이 인권 운동가를 했던 이유는 자신</p><p>의 눈으로부터 어린이들이 노동을 하는것을보고 어린이들을 작취로부터 해방하자는 뜻으로 어린이 인권 운동가를 하였습니다. 방정환은 3.1 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신문을 등사 배포하는 활동을 전개하였고, 조성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어 1주일 동안 구금되었습</p><p>니다. 또한, 소년운동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잡지 &lt;어린이&gt;를 창간하였습니다. 방정환은 이렇게 우리나라를 위해 계속 인권운동을 하시다가 1931년 7월23일 31살 어린나이에 생을 마감하셨다. 방정환이 생을 마감하고 26년 뒤에 제정된 상이 소파상이다.</p><p>#어린이날</p><p>#어린이 인권 운동</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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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1 12:47: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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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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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종대왕의 업적(이준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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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민본정치</p><p>세종대왕은 백성을 항상 1순위로 생각해 정책을 펼쳤습니다.공법이라는 새로운 조세제도를  준비할 때 찬반이 갈려 논쟁이 치열해지자 백성들의 의견을 들어 보자며 여론조사까지 지시할 정도였다.</p><p>그 여론조사 규모가 당시로써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는데 신분에 관계없이 무려 17만명이 참여했다고 한다.</p><p><br></p><pre><code>2.과학의 발전</code></pre><p>세종대왕은 장영실 등 뛰어난 인재를 발굴해 천체와 기상을 관측 하게 하고 강수량을 측정해 기록하고 양부일구와 자격루 등 백성들이 시간을 알수 있게끔 해주는 장치들도 많이 만들어 내었다.</p><p><br></p><p>3.훈민정음 창제 </p><p>중국의 한자만을 찬양하는 일부 양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백성들이 배우기 쉬운 훈민정음을 반포한 것은 우리 역사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치가 남다른 세종대왕의 업적입니다.</p><p><br></p><p>4.법전의 정비</p><p>세종대왕은 법치주의를 강화했습니다</p><p>법전을 새로 정비하고 흠휼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p><p>(흠휼:죄를 범한 사람을 심의하여 신중히 처리함)</p><p>적합한 조항이 없는 경우에는 법률을 적용하는 것을 신중히 하게 했고 고문으로 사람이 사망하는 일도 없어지도록 주의를 시켰습니다</p><p><br></p><p>5.국토의 개척과 확장</p><p>두만강 쪽에 김종서를 보내 육진을 개척하고 압록강에는 사군 을 설치해 압록강 이남을 조선의 영토로 편입하였습니다.</p><p>국방 에도 힘을 기울이고 이종무를 보내 대마도룬 정말하기도 하였습니다.</p><p>한글창제:한글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문자로 교육 및 정보 접근성의 평등을 실현</p><p>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p><p><br></p><p>법개혁: 세종대왕은 기존 법률을 개선하고 사회적약자와 소외된 계층의 인권을 보호하기위해 노력을 했다.</p><p> </p><p>언론의자유:세종대왕은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위해 노력을 했다.</p><p><br></p><p>복지정책:세종대왕은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계층의 복지를 증진하기위해 노력을 했다.</p><p><br></p><p>인권존중:세종대왕은 모든사람들의 인권을존중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계층의 인권을보호하기위해 노력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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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1 13:25: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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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준수&lt;전봉준&gt;</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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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인권운동가#농민 운동가</p><p>출생일:1855년 1월 10일</p><p>출생지:조선 전라도 고창군</p><p>사망일:1895년 4월 24일(40세)</p><p>사망지:조선 한성부</p><p>한 일: 고부민란 주도(1893년): 고부 군수의 학정으로 인해 벌어진 고부민란을 일으켜 농민들의 피해를 구제하고, 부패한 관료들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p><p>동학농민운동 총대장(1894년): 고부민란을 계기로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하자, 남도접주로써 농민군을 지휘하며 활동했습니다.</p><p>군민공치 주장: 동학농민운동을 통해 임금과 백성이 함께 다스리는 '군민공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p><p>동학 접주: 동학 종교에 입대하여 고부접주로 활동하며, 동학도의 조직화와 정치 세력화를 이끌었습니다.</p><p>교수형: 동학농민운동이 실패하고 체포된 후, 1895년 4월 24일 교</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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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1 13:42: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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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t;모두의 존엄성 마하트마 간디&gt; 최연우 22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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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인도의 인권운동가 간디는 또한 인도 독립지도자이자 비폭력 저항 운동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여기서 마하트마란 칭호는 위대한 영혼이란 뜻입니다. 이 칭호를 받은 이유는 가르침과 윤리적 리더십을 인정받아 받게 되었습니다.</p><p> 간디는 1869년 10월 2일 포르반다드에서 태어났습니다.</p><p> 그리고 그는 힌두교 집안에서 자랐으며 1888년 영국으로 갔습니다. 사실 영국으로 떠난이유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함입니다.</p><p> 영구에서 그는 서양 서구 문화와 법률을 접했습니다. 1893년 부터 1914년 까지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변호사 일을하면서 인도인들이 격는 인종차별에 맞서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비폭력 저항을 발전시켰으며 진라의 힘 또는 영혼의 힘 을 의미합니다.</p><p> 현대 사회에서도 간디의 삶은 울리고 있습니다. 그의 비폭력 저항과 같은 경제에 대한 여러 생각들은 오늘날의 사회 운동을 비롯한 인간에게 필요한 행동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살아생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이 보고 싶은 변화가 되라" 지금 까지 모두의 존엄성 마하트마 간디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도 인권 운동#비폭력 저항 운동</p><p>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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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1 21:28: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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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틴 루터킹 (정선율)</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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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마틴 루터킹은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인권 운동가로 흑인차별을 없애기 위한 평화운동을 이끈 인물이다.</p><p>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하는 차별을 겪었는데 마틴 루터킹이 시민들과 함께 버스를 타지 않고 항의하는 운동을 주도 했다. 그 결과 일년후 미국 연방 대법원이 버스내 인종차별은 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p><p> 1963년 원싱턴 DC에서 열린 인권 행진에서 25만명 앞에서 인종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l have a dream 나는 꿈이 있어요. 라는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미국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연설중 하나로 평가된다.</p><p> 1964년 마틴 루터킹의 운동으로 공공장소 학교 등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이 만들어 졌다.</p><p> 35세 나이에 비폭력운동으로 인종차별 극복을 위해 노력한 마틴 루터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p><p> 마틴 루터킹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매년 1월 3째주 월요일을 마틴 루터킹의 날로 기념해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p><p><br></p><p>#흑인 인권 운동가</p><p>#마틴 루터 킹</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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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3 22:18: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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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경남인권운동가목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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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김경남 목사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며 한일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1974년에 한신대학교로 편입하여 민청학련에 참여하고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집행유예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NCCK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내며 인권 운동을 펼쳤습니다.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uVhVib" href="https://namu.wiki/w/%EA%B9%80%EA%B2%BD%EB%82%A8(%EB%AA%A9%EC%82%AC)"><strong>나무위키에 따르면</strong></a>, 김경남 목사는 민주화 운동의 핵심 인물로, 민주화 운동과 한일 관계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했습니다.그리고 김경남인동가목사가 인권운동에 참여한 이유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외소된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그는 한신대학교에서 민청학련 운동을 하는 등 사회 운동을 하다가 목사 안수를 받아 빈민 구제 사업 등에 힘썼습니다.1982년부터는 NCCK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내면서 인권운동에 더욱 깊이 관여하게 되었습니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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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12 04:40: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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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각장애인에 세종대왕 박두성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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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본명 박두현 </p><p>출생 1888년 4월 26일</p><p>경기도 교통부동면 상방리 다릿멀 인천광역시 광화군</p><p>사망 1963년 8월 25일</p><p>종교 기독교</p><p>국전 대한민국</p><p>시각장애인 교육자 한글 점자 창안</p><p>한글점자 창안자이며 시각장애 교육에 생애를 바친 박두성은 구할말인</p><p>고종 25년에 경기도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516번지에서 박기만씨의 </p><p>6남 3녀중 맏아들로 출생하였다</p><p>어려서는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8세가 되던 1895년 7월 무관출신 성제, 이동휘가 가강 화도에세운 보창학교에 입학하여 4년간 </p><p>보창학교에 입학하여 4년간 보통학교의 신확문을 수확하고, 성제의 </p><p>주선으로 한성사범 학교에서 수확 하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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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12 04:43: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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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민지 (이태영)2</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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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이태영은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다.</p><p>한국 가정 법률 상담소를 세우고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인습에 맞서 싸운 여성 운동가 이다.</p><p>-출생:1914년</p><p>-사망:1998년</p><p>1946년 32세 되던 해 여성으로는 최초로 서울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 하였고,6년뒤인 1952년에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첫 여성이 되었다.</p><p>그러나 그당시 대동령 이승만이 야당 인사인 정일형의 아내라는 이유로 판사 임용을 거부함에 따라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되었다.</p><p>또 1974년 11월 민주 회복 국민 선언,1976년 3.1</p><p>민주 선언등 민주화 운동과 인권 운동 에도 적극 참여 하여 실천적 지식인으로 서의 면모를 보여 주기로 하였다</p><p>https://naver.me/F5av40uW</p><p>#한국 최조 여성 변호사</p><p>#인권 운동가 #여성의 권리</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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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12 05:38: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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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틴 루터 킹 주니어&lt;김우람&gt;</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spotlessshoteducation/uk8r60gbixdpf744/wish/3487742338</link>
         <description><![CDATA[<p>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1929년 1월 15일 미국 조지아 애틀란타에서 태어났다. 사실 그의 어릴적 이름은 마틴이 아니라 마이클이었는데, 나중에 아버지를 따라 이름을 바꾼것 이었다. 그의아버지 마틴 루터 킹 시니어는 큰 업적을 남긴 목회자 이자 민권운동가로 아들에게 두가지를 가르 첬는데 첫번째는 기독교 신앙이었다. 두번째는 흑인 인권이었다.</p><p>그리고 1955년12월 1일 시내 백화점에서 제봉사로 일하는 로자 파크스라는 여성은 퇴근길에 버스 앞좌석에 앉았다. 당시 앨라배아 주법에 따르면 흑인은 앞죄석에 앉을 수 없었다. 버스운전사는 파크스에게 뒷좌석에 옮기라고 하였지만 파크스는 이를 거절 하였다. 얼마 후 경찰이 파크스를 채포하였다. 파크스의 소식은 전역으로 퍼져 흑인 인권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시위를하여 결국 흑인인권을 패지하였다.</p><p>마틴 루터 킹은 2006년에 74세에 별세 하셨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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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12 05:42: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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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해리엇 터브먼 </title>
         <author>oesoles07</author>
         <link>https://padlet.com/spotlessshoteducation/uk8r60gbixdpf744/wish/3488652649</link>
         <description><![CDATA[<p>1850년 노예 해방을 위한 비밀결사 "지하철도"의 일원이 된다. 이후 북부에서는 "노예들의 모세"라는 빛나는 명성을, 남부에서는 농장주들이 다 길바닥에 나앉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기세인 미친 여자라는 악명을 누렸다.</p><p>후술된 찰스 넬 관련 트로이 법원 습격사건이라는 예외를 제외하면, 남북전쟁 전까지 은밀하게 열아홉 번 노선(탈출로)을 운행하여 300명이 넘는 화물(탈출노예)을 빼냈다. 그녀는 가장 유명하고 수완이 좋은 차장(요원)이었다. 남부의 주정부들은 이 '미친 년'의 목에 4만 달러가 넘는 현상금을 걸었다.</p><p>처음 남부인들은 해리엇이 흑인인 줄도 몰랐다. 흑인은 열등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해낼 수완이 없고, 분명히 노예 해방에 찬동하는 백인의 소행이라고 여겼다.</p><p>이런 그녀의 활약에 초강경 노예해방론자인[2] 존 브라운은 그녀에게 '제너럴 터브먼'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하지만 이 별명이 말이 씨가 되리라고는 존 브라운도, 터브먼도 상상하지 못했다.</p><p>그녀가 구출해낸 노예 중 찰스 넬의 일화가 있다. 1860년 4월 20일, 뉴욕주 트로이 법원청사에서 도망노예 찰스 넬의 판결이 내려지려고 했다. 판사는 말 많은 도망노예 송환법을[3] 적용할 의욕이 만만했고, 그렇게 되면 넬은 노예사냥꾼의 손에 넘어가 버지니아주의 주인 집으로 끌려가 채찍질, 불에 달군 낙인 찍기, 철가면 씌우기 등의 끔찍한 보복을 당할 터였다.</p><p>법정 뒤쪽에 숄을 두른 한 작달막한 흑인 여성이 빵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는데 아마 집에서 구운 과자를 팔러 나온 잡상인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잠시 뒤 넬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간수들에게 팔을 잡힌 채 끌려나오자 흑인 아줌마가 갑자기 바구니를 집어던지더니 격투(!) 끝에 간수들을 쓰러뜨리고 어안이 벙벙해진 넬을 잡아끌고서 동조자들이 기다리는 곳을 향해 법원 계단을 달렸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경비들의 곤봉이 몇 번이나 여자 괴한의 머리를 내리쳤지만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 허드슨강 너머까지 숨막히는 추격전이 이어졌지만 마침내 넬은 노예 사냥꾼들도 올 수 없는 "약속의 땅" 캐나다로 가는 마차에 무사히 몸을 실었고 그렇게 그녀가 해방시킨 300명이 넘는 노예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p><p>그리고 그녀는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도 흑인 인권과 여성 참정권을 위한 새로운 싸움을 평생 계속했으며 새로운 고향이 된 뉴욕 주 오번에서 인종을 초월해 미망인, 고아, 가난한 참전용사들을 돕기 위해 모든 수입과 저축을 자선사업에 쏟아부었다. 1913년에 그녀가 많은 이들의 애도 속에 숨을 거둔 뒤에도 그녀의 박애주의 정신은 그녀가 나이 많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보금자리를 통해 계속 이어졌다.</p><p>#여성 인권 운동가#해리엇 터브먼#흑인 인권운동</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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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13 00:15: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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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지아)나혜석2</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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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896년4월28일생 1948년12월10일 사망 나혜석은 일본 여자미술학교 유화과에서 서양화를 공부한뒤 1918년 귀국하여 화가,작가로 활동하였으며 여성운동가,사회운동가로도 활동하였다.1918년에&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97%AC%EC%9E%90%EB%AF%B8%EC%88%A0%EB%8C%80%ED%95%99">미술학교</a>를 졸업하고&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A%B2%BD%EC%84%B1%EB%B6%80">경성부</a>로 돌아와 잠시 정신여학교 미술교사로 지냈다.&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9A%B0%EB%93%9C%EB%A1%9C%EC%9A%B0_%EC%9C%8C%EC%8A%A8">윌슨</a>의&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AF%BC%EC%A1%B1%EC%9E%90%EA%B2%B0%EC%A3%BC%EC%9D%98">민족자결주의</a>&nbsp;이후 1918년 12월부터&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B0%95%EC%9D%B8%EB%8D%95">박인덕</a>&nbsp;등과 함께 만세 운동을 준비 1919년&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m.wikipedia.org/wiki/3%C2%B71_%EB%A7%8C%EC%84%B8_%EC%9A%B4%EB%8F%99">3·1 만세 운동</a>에 참가하여 5개월간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p><p>#여성인권운동가</p><p>#사회운동가</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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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13 00:30: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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