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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시아기독교의 시작 (2월 13일) by Sun Ju Moo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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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서원모(아시아교회사의 첫장으로서 시리아교회), 사무엘 마펫(최초의 아시아기독교)의 글을 읽고 느낀 점, 궁금한 점 남기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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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27 07:05: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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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계현 </title>
         <author>seromipa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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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새롭게 알게 된 점&nbsp;<br><br>i. 서론<br>_아시아 교회와 선교의 역사는 시리아 교회, 가톨릭 교회, 개신교회의 흐름<br><br>ii. 아시아 교회로서 시리아 교회<br><br>1. 지리적 분포<br>_넓은 지역에서 부족 내지 도시 형태로 다양한 정치적 문화적 지평을 지니며 분포했기에 지리적 해석으론 한계<br>_시리아의 안티오케이아와 예루살렘은 로마제국 동부의 중요 거점으로 아시아 교회라 칭하기에 무리<br>_로마 제국의 서부 시리아 교회를 단지 로마 제국 안에 있더가너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유로 아시아 교회의 역사에서 배재하는 것은 곤란<br><br>&nbsp;2. 시리아어<br>_아람어의 방언으로 셈어의 북서부어군, 아람어는 기원전 600년부터 기원후 700년까지 근동 전역에서 문학과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 그리스도교와 랍비 유대교의 형성 시기의 주요 언어, 그 중에서도 기원후 3세기부터 7세기의 아람어 방언 중 하나인 시리아어는 주요 그리스도교 문헌과 예배에 널리 사용된 언어로 에데사 방언이 바탕, 에데사 왕의 예수를 초청하고 예수께서 제자를 보낼 것을 약속했다는 “아브가르의 전설”에 기대어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그리스도교인의 문학적 언어 지위 획득<br><br>&nbsp;3. 아람/시리아 그리스도교의 역사<br>_예수의 사용 언어로서의 아람어의 가치<br>_4세기까지 아람/시리아 그리스도교 초기 역사는 자료가 부족하고 성격이 다양해 서술의 한계 존재<br><br>&nbsp; 1) 팔레스티나 “원시공동체”<br>_에우세비오스의 “교회사”에 인용된 헤게시포스의 자료를 통한 원시공동체의 역사 연구&nbsp;<br>_”방랑의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의 타이센과 올록은 이들을 방랑 선교 공동체로 묘사<br>_동반 선교와 윤리적 급진주의 제시, 스데반 집단의 헬레니즘계 공동체의 선교 방식과 구분&nbsp;<br>_헬레니즘계 공동체(와 바울의 선교)가 공동체의 책임과 계획 하의 공동체 수립에 방점을 두었다면, 공동체 건설에 관심을 두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가 방랑 선교의 목표<br><br>&nbsp; 2) 유대인 그리스도교 신자와 유대 그리스도교<br>_이후의 아람/시리아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유대교 율법을 준수하며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유대 그리스도교를 통해 이해<br>_2차 자료가 많고 교부들의 자의적 해석이 많아 단편적이며 상충적인 한계<br>_에비온파(히브리어 ”가난한 자”로 스스로 일컫는 호칭): 동정녀 탄생 부인, 마태복음 사용, 바울 거부, 예언서의 문자적 주해, 할례와 율법 및 유대교 관행 준수, 히브리어로 된 마태복음인 “히브리인 복음서” 사용, 바사니티스의 코카베와의 연관성 제기, 아람어 사용 가능성<br>_나조라이파: 코일레시리아의 베로이아, 펠라, 코카베 거주, 신구약 독서, 창조와 부활 신앙,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 할례와 안식일 등 모세 율법 함께 지킨다는 점만 여타 그리스도인과 구분, 히브리어 능통, 히브리어(아마도 아람어)로 된 마태복음 사용(아마도 “히브리인 복음서”)<br>_엘카사이파(히브리어 “숨은 힘”): 마니가 24세까지 거주한 공동체, 1세기 말 시리아에서 세워진 세례공동체,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98-117년) 파르티아의 도시 세라이와 연결, 시리아 동쪽 에데사와 아디아베네의 아람어 지역에서 시작, 3세기까지 로마 전역으로 확산, 요단 강 주변의 세례공동체 대부분이 동일한 정체성, 남바빌로니아의 메세네, 코케라 불렸던 셀레우키아-크테시폰에도 존재, 오세아파와 삼세아파로 불리는 공동체가 나바테아, 모압, 페레에 존재했는데 같은 정체성의 공동체로 추측<br>_272년 페르시아의 바람2세는 조로아스터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인의 추방을 언급하며 “나자레이파”, “그리스도교인”, “마니교인”을 구별된 집단으로 호명하는데, 이들이 유대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된 집단을 형성한 유대 그리스도교 집단<br>_최근엔 교리와 신학적 관점이 아닌 “유대인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인종적 관점에서의 개념 제시되며 이런 틀 안에서 “유대 그리스도교”에 대한 접근 필요성 제기<br>-유대 전쟁 이후의 이스라엘 지역과 디아스포라로 나누어 고찰 필요, 랍비 유대교는 두 번에 걸친 유대 전쟁 이후 갈릴리 유대인 전체를 지배하지 못했으며 다양한 사상과 종파가 존재, 유대인 그리스도교 신자도 다른 유대인과 함께 생활하며 신앙 유지, 로마 제국 안에 있는 서방 디아스포라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는 동방 디아스포라로 고찰할 필요, 바빌론은 디아스포라 유대교의 중심지로 성경과 탈무드의 집성 및 유대교 학원 발전, 페르시아 당국은 그리스도교보다 유대교를 선호했는데 이 지역에서는 유대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생활했을 가능성 존재<br><br>&nbsp; 3) 시리아 교회의 기원<br>_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최소한 2세기, 170년경 쓰인 “4복음 조화서”와 2세기 말 니시비스에 그리스도교인이 있었다는 에비르키오스의 비문이 근거, “에데사 연대기”는 201년경 에데사의 홍수 때, 왕궁 가까이 있었던 “그리스도교인의 공동체의 성전”의 파괴를 기술, 3세기 초 에데사 왕궁에서 활동한 바르다이산(154-222/3)은 144년 로마를 떠난 마르키온의 추종자에 대한 반대의 글 기술, 그의 제자 필리포스는 “나라들의 법”에서 길란, 쿠산, 미디아, 파르티아와 하트라에 그리스도교인의 존재를 기술&nbsp;<br>_다만 시리아 교회 기원에 대한 자료의 역사성 논란(앗다이 전승, “아르빌 연대기”, “마르 마리 행전”)과 가늠하기 어려운 성격과 출처(초기 시리아 그리스도교 문헌”솔로몬의 송가”, 바르다이산파의 “나라들의 법”, 토마 전승, 마니교 문헌 등)의 한계<br>-그럼에도 이수민은 “동방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가설들” 특강에서 일곱 가지 가설을 소개하며 상호배재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종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 (1) 동방 그리스도교 전승: 동방 학자-점성가들의 선교; (2) 바빌로니아 유대인 가운데 메시아 신앙의 확산; (3) 사도들의 선교(”마르 마리 행전”); (4) 로마의 동방 원정 때 포로가 된 그리스도인 병사들의 선교; (5) 토마 사도의 동방 선교: “토마 행전”과 마니교, 영지주의 전승; (6) 바빌로니아 유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엘카사이 세례공동체의 확산; (7) 마르키온파와 바르다이산파 기원설 이러한 가설의 통합 가능성 주장은 시리아 교회 기원에 관한 복잡한 논의의 일례<br>_에데사와 아르빌을 통한 상황 파악<br>_”타대오 행전”과 ”앗다이의 가르침”에 나오는 앗다이 전승은 에데사 왕 아브가르 왕의 예수 초청과 예수의 제자 파견 약속, 타대오(시리아어로 앗다이라는 이름의)의 에데사 선교 서술, 이 때의 아브가르왕은 예수 당시의 아브가르 5세가 아니라 2세기 말부터 3세기 초를 다스렸던 아브가르 대왕이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br>_”아르빌 연대기”는 아디아베네의 수도 아르빌의 파키다(104-114)를 개종한 첫 감독으로 보고<br>_시리아 교회의 성격에 대한 상충적 해석 문제<br>_유대교나 유대 그리스도교 기원설: 유대교로 개종한 아디아베네 왕국에서 메시아 사상의 전파와 함께 그리스도교가 발전, 유대 그리스도교 종파 엘카이파에 속한 마니의 예를 통한 유대 그리스도교의 이방인 선교 가능성, 에프렘과 아프라핫 같은 4세기 시리아 교부들의 유대교 교리에 관한 친숙 등을 근거로 드는 누스너의 견해<br>_ 마르키온파, 영지주의, 마니교 등 이단적 종파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기원설: 5세기까지 시리아 그리스도교의 복음서였던 “4복음서조화본”의 존재, 영지주의자로 알려진 에데사 궁정 봉사자 바르다이산의 마르키온에 대항한 신학의 발전, 4세기 중엽 에프렘은 니시비스를 떠나 에데사에 도착 후 마르키온파, 바르다이산파, 마니교, 아리오스파와 같은 다양한 집단 발견, 정통파조차 감독의 이름을 따라 “팔룻파”라 호명, 이에 바우어는 시리아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마르키온파와 영지주의자인 바르다이산파로 지목했고, 드라이퍼스는 에데사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혼합주의적이라고 이해하며 이것이 3세기 마니교에 의해 종합되었다고 파악, 그에 대항하여 보다 “정통적인” “앗다이의 가르침”이나 “솔로몬의 송가”가 출현했다고 주장.<br>_시리아 그리스도교의 성격 문제는 토마 전승의 해석 문제와도 연결, 초기 그리스도교 전승은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복음을 전한 사도로 토마를 지목하는데, 초기 전승에 따르면 토마는 파르티아로 갔지만, 후대에는 파르티아, 미디아, 페르시아뿐 아니라 박트리아, 카르마니아, 히르카니아까지 전했다고 전해짐, 반면 3세기 전반 시리아어로 씌어진 “토마 행전”은 토마를 인도의 사도로 묘사하며, 나그 함마디의 영지주의 문서 “토마 복음”과 “용사 토마의 책”에서는 “토마 행전”과 같이 토마가 예수의 쌍둥이로 나타난다. 마니교의 “토마 시편”은 마니 자신을 토마처럼 예수의 쌍둥이로 묘사함<br>_이처럼 원시 그리스도교-유대 그리스도교-시리아 그리스도교의 선명한 역사 이해 불가능<br>_다만 분명한 것은 2-3세기 이 지역에는 유대인 그리스도교 신자, 유대 그리스도교, 마르키온파, 타티아노스파, 바르다이산파, 영지주의자, 마니교 등 다양한 집단의 존재, 이것이 4세기 아프라핫과 에프렘의 정통 교회로 이어지는 흐름은 불명확함<br>_지금까지 살펴본 다양한 시리아 교회를 “네스토리우스파 교회”, “단성론파 교회”로 선언하는 것은 장구한 역사에 대한 성찰 제한<br><br>iii. 시리아 교회의 토착 전승과 그리스도론 논쟁<br>_고유한 토착 전승을 가진 시리아 교회의 4세기 이후 제국 내의 교회와의 관계 고찰, 특히 그리스도론 논쟁을 통한 그리스 교회의 학문적 영향 관찰&nbsp;<br><br>&nbsp;1. 시리아 교회의 토착 전승<br>_4복음서 대신 타티아노스의 “4복음서조화서” 사용은 고유한 토착 전통 발전을 의미<br>_머레이에 의하면 초기 시리아 교회의 특징으로 금욕주의, 상징신학, 예술적 산문을 들 수 있으며 당시 그리스 교회나 라틴 교회의 표현 방식과 정조(ethos)에서 유의미한 차이<br>_4세기 아프라학과 에프렘에 의해 꽃 피운 초기 전통<br>* 아프라핫: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에서 그리스 신학이나 철학의 영향 없이 오직 성경에 기초한 신학 전개, 그의 책 “논증”은 관련된 성경 본문을 나열하는 형식 사용&nbsp;<br>**서원모가 제안한 ‘첫 번째 아시아 신학자’ 에프렘: 단테와 비견되는 시인으로 평가, 상징과 역설, 대조와 대구를 활용, 자연과 성경 속에서 다양한 상징과 모형을 발견하여 상징신학 전개, 여성 찬양대를&nbsp; 조직하여 다양한 운율의 찬양 작곡, 아리오스파에 대항한 작곡 “신앙 찬가”는 같은 상황의 그리스 교부의 신학 논문 저술의 전통과 극명한 대비<br>_한떄 헬레니즘에 물들지 않은(을 모르는) 셈어 그리스도교의 일례로 이해되었으나, 당시의 에데사와 니시비스는 헬레니즘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기에 헬레니즘 개념과 사상에 물들지 않았다는 견해는 무리<br>_이런 독자적인 학문적 전통은 4세기 로마의 국교화 이후 제국의 신학과 전통, 특히 그리스 교회의 문헌과 신학에 영향을 받기 시작하며 5세기 그리스도론 논쟁으로 수용 가속화<br><br>&nbsp;2. 시리아 성경의 개정 과정<br>_구약성경의 아람역본 “타르굼”: 에스라, 느헤미야, 다니엘 제외<br>_구약성경의 시리아역본 “페쉬타”: 2세기-3세기 초 히브리어에서 시리아어로 오랜 기간 여러 사람에 의해 거의 번역,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의 일부를 시리아어와 유사한 아람어 방언으로 번역 후, 시리아어를 말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 역본을 받아들여 발전시킴<br>_원래의 형태로 현존하지 않는 “4복음조화서”는 4복음서와 다른 자료를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책으로 중복 부분 생략, 불일치 조화, 생략된 부분을 재구성한 것이 그 특징으로 5세기에 탄압을 받기 전까지 시리아에서 상당한 인기를 구가, 아프라핫과 에프렘은 이 책을 인용했으며, 에프렘은 “4복음조화서 주석” 작성<br>_4복음서 본문으로 가장 오래된 성경은 옛 시리아역본, 2세기 말부터 4세기 초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4복음서를 조화시키려는 흔적과 “서방” 본문의 특징 존재<br>_시리아 교회의 표준 역본인 “페쉬타”는 몇 권의 책과 복음서 일부분이 빠져 있으며, 바울서신을 야고보, 베드로전서, 요한일서 등 일반서신 다음에 배열, 5세기 초 번역이 완성되며 “4복음조화서”와 옛 시리아역본 등 이전 역본 대체<br>_로마 제국 주류 교회와의 접촉과 그리스도론 논쟁을 통해 6-7세기 새로운 역본이 나타나며, 그리스 본문에 더 가깝게 수정하는 방향으로 흐름<br>_신학적 관심에 방점을 둔 6세기 초 마북의 감독 필록세노스의 신약성경을 그리스 본문에 더 가깝게 수정하라는 지시로 시골감독인 폴리카르포스의 수정 작업을 거친 “필록세노스역본”<br>_7세기 초 아타나시오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 본문에 가깝게 시리아어 성경을 수정하도록 지시, 이에 파울로스는 “시로-헥사플라”로 불리는 구약성경을 만들며, 토마스는 언어학적 측면에 관심을 두며 “필록세노스역본”을 그리스 본문에 가깝게 수정한 “하르켈역본”을 616년에 만들게 됨, 이 역본들은 불변화사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어 단어를 시리아 단어와 1대1 대응시키려는 “거울번역” 기법을 사용하며 형식적 일치 추구<br><br>&nbsp;3. 그리스 학문의 번역과 그리스도론 논쟁<br>_5-6세기의 그리스도론 논쟁을 계기로 그리스 교부와 헬레니즘 문화 유입 가속화<br>_마북의 필록세노스는 기존 시리아 성경이 신학적 논쟁에 부적합하다 느껴 그리스어 원문에 더 가까운 역본을 제시할 뿐 아니라, 시리아의 토착적 상징신학 전통 대신 철학적으로 정의된 그리스 신학을 선호했으며 시리아어가 그리스인들에게 통용되는 정확한 용어의 사용에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br>_그리스 철학과 논리학에 대한 관심 고조, 서부 시리아 교회는 세르기오스를 출발점으로 한 이슬람 시대의 야흐야 이븐 아디(893-974)까지 그 철학적 고리가 뚜렷하며, 동부 시리아 교회는 선명하진 않으나 아리스토텔리스와 그리스 학문에 대한 관심 표명, 이러한 학문적 전통은 9세기 이후 이슬람 세계 안에서 일어난 아랍어 번역 운동과 철학의 발전과도 연결<br>_5세기는 헬레니즘 문화에 대한 반감에서 동화로 이행되는 시기로 동, 서 시리아 교회 모두에 영향<br>_431년 에페소스 공의회를 둘러싼 에데사의 감독과 신학교 교장의 갈등은 그 역사를 잘 묘사<br>_471년 에데사에서 니시비스로 신학교를 옮긴 나르사이는 안티오케이아 학파의 몹스에스티아의 테오도로스의 신학 방법, 특히 성서주석을 토대로 하여 신학 교육을 실시했으며,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알레고리적 해석을 반대하고 역사적, 문법적 해석을 강조하여 동부 시리아로부터 “그 해석자” 칭호 획득<br>_6세기 파울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성서해석을 위한 입문 과목으로 도입, 이후 “단성론파”의 가르침을 논박하는 주요 도구로 사용, 안티오케이아 학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성서주석의 예비과정으로 가르쳤고 에데사와 니시비스의 신학교는 이러한 전통 계승<br><br>&nbsp;4. 시리아 교회의 분열<br>_그리스도론 논쟁을 계기로 시리아 교회는 여러 정파로 분열<br>_시나이, 팔레스티나 혹은 트랜스 요르단에 사는 그리스도교인은 칼케돈 정통교리를 고수, 그리스어를 지배적인 교회 언어로 사용하였고 지교회에서는 팔레스티나 그리스도교 아람어라고 불리는 아람어 방언 사용<br>_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제국의 정통 교리를 거부하며 시리아어를 사용한 그리스도교인들<br>_서부시리아교회: 키릴로스의 신학을 이어받아 마북의 필록세노스의 그리스도론적 정식 수용<br>_동부시리아교회: 페르시아 수도 셀레우키아-크테시폰을 중심으로 안티오케이아 학파의 대표자인 몹스에스티아의 테오도로스를 기초로 삼고 나르사이와 대 바바이의 신학과 그리스도론을 따름<br>_무슬림 정복과 6차 공의회(681)를 거치며 “황제파”, “마론파”, “네스토리오스파”, “야콥파”, “단성론파” 등으로 분열<br><br>iv. 결론<br>_아시아 교회사는 아람/시리아 그리스도교로부터 시작<br>_아시아교회사 서술에서 시리아 교회를 첫 장으로 기록하고 그 유산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것은 핵심적 과제<br>_그리스도교가 아시아 종교라는 사실의 확인은 아시아 그리스도교의 영광과 수난을 잘 보여주며, 오늘날 아시아 선교를 위한 깊은 통찰 제공<br><br></div><div><br>궁금한 점<br><br>1) p96 동반 선교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div><div>2) p113 그리스도교는 ‘아시아의 종교’라는 수식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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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27 07:07: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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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하섭</title>
         <author>seromipa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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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새롭게&nbsp; 알게 된 점&nbsp;<br><br><br><br><br><br>궁금한 점&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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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27 07:14: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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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동은 </title>
         <author>seromipa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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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새롭게 알게 된 점&nbsp;<br><br><br><br><br><br>궁금한 점</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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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27 07:15: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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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상환 </title>
         <author>seromipa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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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새롭게 알게 된 점&nbsp;<br><br><br><br><br><br>궁금한 점</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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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27 07:15: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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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배용하</title>
         <author>seromipa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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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새롭게 알게 된 점&nbsp;<br><br><br><br><br><br>궁금한 점</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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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27 07:16: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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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권민수</title>
         <author>seromipa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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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새롭게 알게 된 점&nbsp;<br><br><br><br><br><br>궁금한 점<br><br>1. 바울은 회심 후 아라비아 사막에 나갔습니다. 이는 시리아 기독교와 연관이 있을까요?<br><br>2. 샤루프 2세의 그리스도인에게 부과한 2배의 세금으로 볼 수 있을까? 이슬람 사회에서 타종교인에 대한 차별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터인데<br><br>3. 서아시아 지역의 과학에 대한 탐구가 기독교와 적대하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기독교의 적대가 오히려 더 풍성한 기독교가 되지 못하는 장애가 되고 있지 않은가?&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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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27 07:16: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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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진용</title>
         <author>seromipa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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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새롭게 알게 된 점&nbsp;<br><br><br><br><br><br>궁금한 점</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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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27 07:16: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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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현지</title>
         <author>seromipak</author>
         <link>https://padlet.com/seromipak/u81yqlx13bx8d3gk/wish/2458623577</link>
         <description><![CDATA[<div>새롭게 알게 된 점<br>구약성서 시리아어역은 단순한 문자적 번역이 아닌 해설을 포함하는 타르굼을 시리아어로 재표현하고 표기한 것이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유대교와의 연관 관계를 말해준다.<br><br>아다이전설은 후대에 첨가된 부분이 많지만, 그 저변에는 에데싸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복음을 받았다는 것이 깔려 있다.<br><br>2세기 에데싸: 유대인 그리스도교적인 기원을 가진 집단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평화롭게 공존했으며, 초대교회 전통을 보존한 동시리아지역의 중심(예루살렘 교회가 2차 유대 전쟁 이후 이방인의 교회가 되어 초대교회의 전통을 상실)<br><br>콘스탄틴 이전에 로마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시기에 페르시아는 그리스도인의 도피처가 되었으며 관대. 페르시아 교회는 평화와 안정 속에 성장.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로마에서 공인 되었을 때 페르시아는 태도를 바꾸었으며, 콘스탄틴이 대페르시아 전쟁 준비도중 사망 후 대박해. 샤푸르3세의 로마와 강화조약체결로 페르시아 교회는 평화회복. 이때로부터 페르시아 교회는 점차 로마의 제국 교회로부터 구별된 독자노선을 걷게 됨.<br><br>동방 그리스도교의 수장 카톨리코스는 로마 제국 교회의 총대주교와 동등. 그러나 이것은 로마 제국 교회의 분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 페르시아 교회는 교리적으로 니케아 신조를 승인했고 교회적으로는 여전히 공통적 신앙의 규범을 받아 들임. 페르시아 교회는 네스토리안 논쟁에 휘말리지 않음.<br><br>네스토리안 상인들은 선교 활동을 겸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해 상인이 선교사로 안수 받는 일이 용이.<br><br><br><br>궁금한 점</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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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27 07:17: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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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승민</title>
         <author>seromipa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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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새롭게 알게 된 점&nbsp;<br><br><br><br><br><br>궁금한 점</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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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27 07:17: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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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학준</title>
         <author>seromipa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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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새롭게 알게 된 점&nbsp;<br><br><br><br><br><br>궁금한 점</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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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27 07:17: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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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영수</title>
         <author>seromipa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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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새롭게 알게 된 점&nbsp;<br>-너무 많아서 패들렛에 정리하기 어려워요. ^^;;&nbsp;<br><br>궁금한 점<br>- 아시아 교회사의 첫장으로서 시리아 교회 : 시리아 교회가 여러 종파로 분열된 것이 결국은 그리스도론 논쟁인데, 칼케톤 정통교리의 주된 내용(핵심내용)은 무엇이고, 정통 교리를 거부한 이들이 따르는 교리와는 어떤 차이가 있어서, 서부 시리아 교회( 단성론파, 야곱파)와 동부 시리아 교회(네스토리오스파)로 나뉘어 진 것인지...?&nbsp;<br>-&nbsp; 예루살렘에서 장안까지 : 1254년 네스토리안이 중국 15개의 성에 산재했고, 당나라가 서역과 교류를 할 때도 네스토리안파 그리스도교가 유입되었다고 했다. (1) 중국은 전체적으로 네스토리안파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주로 받은 것인지 (2) 시리아 교회의 여러 종파 중에 네스토리안파가 특히 중국쪽에 진출한 이유는 무엇인지...?  <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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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27 07:17: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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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주</title>
         <author>seromipa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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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새롭게 알게 된 점&nbsp;<br><br><br><br><br><br>궁금한 점</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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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27 07:17: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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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선주</title>
         <author>seromipa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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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새롭게 알게 된 점<br>-시리아교회가 아시아교회의 첫장으로서 아시아 교회와 선교의 원천.<br>-시리아어는 아람어의 방언.&nbsp;<br>-구약성경의 시리아역본은 “페쉬타”&nbsp;<br>-시리아 교회의 가장 오래된 신약성경은 165년부터 180년 사이에 만들어진 타티아노스의 『4복음조화서』 &nbsp;<br>-4복음서 및 다른 자료61)를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복음 서로, 타티아노스는 중복된 부분을 생략하고 불일치를 조화시키고, 생략된 부분을 채워 넣음.&nbsp;<br>-시리아 교회의 그리스 학문에 대 한 “반감”은 5세기와 6세기를 거치면서, 특히 그리스도론 논쟁을 통해 그리스 문 화와 학문으로 흡수내지 동화로 바뀌게 됨.<br>-그리스도론 논쟁은 시리아교회에 큰 타격을 주었고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는 제국의 정통교리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은 시리아어를 사용.<br>-이슬람 세계 안의 아람/시리 아 기독교인은 독자적인 교리적·교회적 정체성을 지닌 신앙고백적 공동체로 분열<br>-4세기까지 시리아 교회는 고유한 토착 전통을 발전시켰다는 것 을 강조하고, 4세기부터 제국의 다른 교회와 연결되면서, 그리스 교회와 신학, 철학과 과학의 영향을 받아 변화를 겪었음<br><br>&lt;사무엘 마펫: 최초의 아시아 기독교&gt;<br>-네스토리안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의 이유:1. 네스토이란이 너무 대중화되었다는 점과 페르시아기원이냐 중국기원를 구별하지 못 했다는 점&nbsp;<br>-서방교회와 구별되는 동방 기독교의 역사는 페르시아와 시리아를 출발점으로 보아야 한다. 중국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편재해 있지도 못 했다.&nbsp;<br>-터어키를 지나 티그리스강 오스뢰네 에뎃사에서 최초의 교회건물발견, 희랍어로 번된 성경발견, 왕이 기독교, 콘스탄틴대제 이전 최초의 100여년의 기독교국가,&nbsp;<br>-희랍정교회보다 서방 가톨릭보다 더 빠르게 전개된 아시아교회의 특징: 1선교를 강조했음. 계약이 아들, 딸이라는 표현으로 볼 수 있듯이 금욕적인 삶에 무척 충식했음. 2 복음에 충실했음. 네스토리안의 근본주의적 교리, 3 적응성, 토착화, 자기 나라말로 복음을 가르침,<br>-약점: 훈련은 왜곡된 환상주의에 영향받은 것으로, 엔크라티트, 극기와 금욕, 타티안의 가르침-완전한 하나님은 물질이 없으나 인간은 물질이다. 로고스가 없는 영혼은 물질로 치닫아 죽는다. (육식, 결혼, 술 거절), 금욕적인 수도원제도는 사실상 시리아에서 시작. 훈련개념의 손상은 복음의 왜곡에서 나온 것임.<br><br>강의---<br>언어로 나뉠 수 있는 기독교: 그리스어, 라틴어,&nbsp; 시리아어<br>13세기까지 시리아, 페르시아, 등에도 기독교가 있었다. 지금은 서유럽이 앞도적으로 우위이지만 그 전에도 그랬을까? 동서양의 주도권이 바뀐 것은 19세기이다. 아랍권, 이슬람권의 학문수준, 문화적 수준은 서유럽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nbsp;<br>타티아노스는 유럽에 편지를 쓰면서 너네가 가진 것 다 우리가 준거야라고 함.&nbsp;<br>자기들끼리 정통과 이단을 나뉜 것은 자위적이고 인위적이다. 누가 판결을 내렸는지에 따라 다른 맥락으로 고려될 수 있다. 우리는 서유럽쪽 관점에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서방정교회와 동방정교회의 자료만 읽어서 우리가 잘 모르는 패착이 있다.&nbsp;<br>특히, 시리아권의 교회는 최초의 기독교인이었다. 오리지날 기독교인이었다. 예수님이 이 곳 사람이며, 이 언어를 썼다.&nbsp;<br>'이집트를 모르면 기독교를 모른다는 것을 보고 왔다.' (느헤미야 교수팀) 어느 용광로에서 수렴되었는가에 따라 설명이 달라질 수 있다.&nbsp;<br><br>우리 안에 시리아 언어를 사용한 기독교인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이 강의 실익이다.&nbsp;<br>시리아어 권이 존재자체가 박탈당했다. 아랍권이나 페르시아권의 기독교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가장 강성했던 기독교가 12-13세기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것은 참 뼈 아픈 손실이다. 시리아 뿐 아니라 동방정교회도 무슬림에게 넘어 가고 겨우 모스크바 슬라브족에 의해 동방정교회가 남았다. 그 역사 속에서 보여지는 역동관계가 있는데 기독교가 들어간 곳은 기존 종교가 살아남지 않는다. 강제개종이거나 쫓아낸다. 이슬람이 지배한 땅에서는 박해가 있었어도 기독교가 종식되지 않았다. 기죽이고 위축되기도 했지만 종교의 관용을 베풀었다는 지점이 있다.&nbsp;<br><br>오늘 3편의 글을 읽었는데, 읽었던 모든 것을 가장 잘 정리한 책이 "..서유기, .. 동유기 "이다. 서원모 선생의 글을 축으로 해서 설명을 하겠다.&nbsp;<br>먼저 시리아 기독교의 범주는 시리아, 레바논, 터키, 지중해 동부지역 해변가를 따라 가서 오른쪽으로 지금의 이라크, 이란, 아프카니스탄, 온갖 탄이 붙은 나라, 중국까지가 당나라 때의 중심이었던 장안, 비단길을 따라서 사막길을 뚫고 와서 가는 길들이다.&nbsp;<br><br>에데사, 미시비스, 아르벨라, 이 3곳이 가장 중요한 고대의 기독교 중심지. 이곳을 여행을 하게 되면 이 곳을 반드시 들러야 한다.&nbsp; 여기서 기독교가 발원을 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다음, 기독교인이 모인 동네가 안디옥이다. 안디옥은 시리아에 있다. (시리아 안디옥, 소아시아 안디옥) 오랫동안 안디옥은 알렉산더 대왕이 BC4세기에 통치를 하면서 그리스와 로마의 점령으로 인해 아시아이면서도 그리스, 로마의 영향을 받게 된다. 같은 그리스어를 쓰는 동네였다.&nbsp;<br>기독교 초기역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읽게 되는데, 바울의 행적을 따라 가면서 쓴 사람은 누구인데 바로 그리스어 쓰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동쪽으로 간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nbsp;<br>이디오피아 이야기만 잠깐 나올 뿐이다. 바울의 루트를 따라 가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이쪽만 선교한 줄 안다.<br>하지만 동쪽으로도 복음이 전파되었다. 모든 이야기가 바울의 이야기이다. 베드로는 아람어, 시리아어(왼쪽)를 쓰는 사람이었다. 베드로가 오른쪽으로 갔으면 베드로의 이야기였을 것이다.&nbsp;<br>신약성경의 중심은 서쪽으로 간 바울, 그리스어에 능통한 사람이었기에 그 쪽 이야기로 차게 된다.&nbsp;<br>동쪽으로 간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성경은 그리스어로 쓰여졌고 그들이 중심에 있다. 동서의 싸움에서 서쪽이 있었기에 동쪽의 이야기는 전혀 서쪽에 소개되지 않는다.&nbsp;<br>(느헤미야)이집트에 가자마자 관심을 가진 것은 성 안토니오스가 수도원 시작. 시리아에 수도원이 100년전에 이미 세워졌었다. 동쪽으로 가면 바울 이야기도 하나도 안 나오고, 바울서신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의 수퍼스타는 도마이다. 우리가 아는 도마는 의심많은 제자였다. 서방교회에서 도마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 영지주의 문헌을 연구하면서 서방교회가 초창기에 세워지는 가운데 이단논쟁이 벌어지면서 이 사람들이 가장 반박한 것이 영지주의였다. 영지주의로부터 새롭게 구성해 낸 것이 정통기독교이다. 영지주의는 정죄의 이름이 되었다. 그렇게 몰렸던 사람들이 20세기와서 영지주의 문서들이 새롭게 발견되고, 거기에 사방팔방에 도마가 나온다. 하지만 서방에서는 믿음이 없는 대명사가 된다.&nbsp;<br>에데사에서 교회가 세워지고 페르시아 쪽으로, 인도로, 경교로 가는 흐름에서는 바울의 선교여정에 준하는 도마의 선교여정이 있었다. 그러나 서방에서는 이 모든 것을 이단문서라고 하였다. 동쪽 교회에서는&nbsp; 자신들의 신앙의 우두머리를 도마라고 생각하고 도마의 영향 속에서 세워졌다.&nbsp;<br><br>서원모 교수의 설명 중 도움이 된 것은 시리아어의 설명: 시리아 교회는 시리아어를 예배와 성경의 언어로 썼다. 시리아어는 브런치고 모체는 아람어이다. 신약성경에서 아람어는 변방의 언어다. 신약이 그리스어로 쓰여 있어서 그리스 사람의 종교라고 생각한다. 실은 초대교회의 사람은 아람사람, 아람어를 쓰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민족이라는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는 언어이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가 미국 LA에서 영어를 미국어를 쓰는 사람과 한국어를 배우고 몇 세대를 산 사람중 누구 한국인이고 미국인인가? 어떤 언어와 어떤 동네에서 살았는가가 중요하다. 아람어를 쓰는 사람이 믿었던 하나님이 그리스어로 소개된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nbsp;<br>그 지역의 사람이 그 지역의 언어로 소개하는 것과 외국어로 소개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데 아람어, 히브리어의 차이는 영국에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차이이다. 아람어는 셈족언어이다. 아람어 밑에 시리아어가 있다. bc6-7세기에 국제 공용어였다. 고대의 영향력있는 언어였다. 그러다가 페르시아가 점령하게 되면서 페르시아 영향권에서 아람어가 쓰여지게 되었다. 히브리어는 거의 문헌에만 남고, 일상의 용어는 아람어로 바뀌었다. 예수님도 아람어였다. 그들이 다 어떤 언어로 사고하고 학문하고 글로 썼는냐, 그게 아람어이다. 구약도 아예 아람어로 쓰여진 책이 있다. 예수의 제자들도 아람어를 썼다. 신약성경 안에도 아람어의 단어가 몇 개 나온다.&nbsp;<br>1세기 언어의 성경은 히브리어 본문, 그리스어로 번역된 성경, 그리스어로 쓴 성경, 언어가 굉장히 복잡했다. bc3-7기독교와 관련된 모든 문헌은 시리아어로 되어있다. 에데사에서 쓰던 시리아어로 성경, 신학서적을 썼다. 성경도 다시 이 언어로 번역되었다.&nbsp;<br>시리아지역의 언어가 아람어 계통의 방언이었고, 페르시아 지배후 제일 중요한 언어이다. 굉장히 넓은 지역에서 이 언어를 썼다.&nbsp;<br>그리스어, 라틴어 동네를 비교해보면 페르시아가 훨씬 컸다. 고대 시리아어는 넓은 권역이었다. 페르시아 다음에 알렉산더, 로마가 들어오면서 언어가 복잡해진다. 시리아어-헬라어-라틴어. 언어의 3층이 있는 것이다. 거꾸로 보면 엘리트는 라틴어, 그 다음 엘리트는 그리스어, 가장 평범한 사람들은 시리아어를 썼다. 큰 도시로 가면 그리스어를 쓰게 된다. 시골로 가면 시리아어를 썼다.&nbsp;<br>그런 상황에서 그리스어로 성경을 만들었다 하면 타켓이 누군인지 보이는 것이다. 우리도 한글로, 한자로 번역할지를 선택한다. 먼저는 한글로 번역했다. 한글도 10%만 알았다. 한글은 여자나 상민의 글이라서 양반들이 읽지 않는다. 그래서 국한문 혼용체로 번역한다. 이 종교가 누굴 대상으로 가겠다는 걸로 언어가 선택된다. 그 자체가 민중으로 대상으로 성경을 썼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선교를 주도했던 사람이 바울 밖에 없고 바울적 기독교가 될 수 밖에 없다.&nbsp;<br><br>예루살렘에서 아람어를 썼던 예수 공동체는 예수의 사후에 베드로와 예수의 형제 야고보에 의해 교회가 치리 되다 바울이 등장.&nbsp;<br>신약성경에 나오지 않는, 바울이 죽지 않은 상태에서 끝나는 데, 그 후의 자료를 쓴 헤게시포스의 글이 유세비우스의 글에 인용. (유세비우스는 교회사 정리)<br>유대전쟁이 2번 일어나는데, 첫번째 전쟁이 예루살렘에서 반란을 일으킴, 두번째 아우호크반의 전쟁으로 예루살렘 멸망.&nbsp;<br>첫번째, 계시로 펠라로 도주하라는 말을 들음. 기독교인의 주요 거점이 펠라. 135년 2차 전쟁 때까지, 60-70년 정도 예루살렘에서 15명의 감독이 교회를 이끌었다. 유다전쟁이 끝나고 로마가 예루살렘으로 친 다음, 예루살렘의 이름을 바꾼다. 모든 유대인을 추방. 콘스탄틴누스가 올 때까지 유대인이 있을 수 없었다. 이방인의 도시가 됨. 교회는 이방인의 교회가 되었다.&nbsp;<br>그 때의 기독교인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다. 흔적은 'wondering charisma'. 돌아다니면서 귀신을 좇아내고 복음을 전하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남. 공동체를 세우지 않았다고 함. 이것이 헤게시포스에 나옴. 이런 시기에 기독교인들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정리된 것은 아람어를 쓰는 유대공동체와 그리스어를 쓰는 경건한 이방인들이 나오는데, 사도들은 유대인들이 되고, 집사는 그리스사람들이 된다. 그 당시에 교회는 분화되어져 간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남아있었던 기독교인들은 바울쪽으로 무게를 두기 때문에 이들을 잘 모른다. 교회사에서 초기 기독교의 이단목록에 나오는 사람들이 1세대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이다. 유대 그리스도인, 이방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알던 그리스도인이다. 아람어를 쓰는 기독교인이 상당히 있었다. 뚜렷한 분파로 나뉘는데 에비온, 나조라이파, 엘카사이파. 다 아람어를 쓰는 기독교이다. 특징은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며 유대인이라 율법을 그대로 지킨다. 바울의 입장에서 베드로를 맹공격을 한다. 1세대 기독교인들은 율법도 굉장히 중요시 했다. 바울의 입장과 바울을 용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nbsp;<br>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했느냐에 따라 신학이 달라지는 것이다. 바울이 중심이 되면서, 다른 쪽에 있던 사람들은 이단이 되는 것이었다. 에비온파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동정녀 탄생을 부인한다. 바울서신 부인. 오직 마태복음만을 중시한다. 예언서를 문자적으로 읽는다. 유대적 관습을 중시, 아람어로 된 마태복음을 읽었다. 유대인의 뿌리에서 예수를 받아들임.&nbsp;<br><br>나조라이파, 나자렌파: 펠라지역, 신구약 성경을 읽고 부활과 창조 믿고, 모세율법을 따랐음. 히브리어에 능통. 바울로 가면 성경을 70인역을 읽는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음<br><br>엘카사이파, 숨은 힘:3세기까지 가면 로마제국 전체에 퍼짐. 요단강 근처 세례공동체가 엘카사이파. 마니교의 마니와 연결. 바빌로니아 지역.&nbsp;<br>공통점: 바울 배격, 아람어 고수, 유대율법을 그리스도 신앙과 함께 감. (교회에서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br><br>오스카르스와네: 유대전쟁 이후, 유대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분포되었는가 연구, 그 후에 2갈래로 나뉨. 한쪽은 갈릴리지역에서 은둔하다가 북이스라엘지역으로 흩어짐. 시리아로 가까움.<br>또 다른 그룹은 디아스포라가 된다. 로마제국, 동방 페르시아로 감. 135년에 하나는 이스라엘 영토안에서 갈릴리, 하나는 서로마지역, 페르시야지역.&nbsp;<br>1-7세기까지 유럽은 로마와 페르시아로 양분되었다. 에데사를 페르시아가 먹었다, 로마가 먹기도 했다. 페르시아로 간 사람이 있었다. 바벨론 지역이 특별히 중요했는데 그 이유는 586년 bc에 남유대가 망해서 끌려가는데 그 기간이 지나서 스룹바벨부터 돌아오는데 바벨론 갔던 사람이 다 돌아온 것은 아니다. 가장 많은 유대인이 사는 지역이 바벨론이다. 남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nbsp;<br>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유대인이 많은 바벨론으로 간 것이다. 거기서 탈무드도 완성되었다. 초창기 기독교를 연구하려면 이라크가 중요한 곳이다.&nbsp;<br><br>어떻게 시리아 교회를 세워졌을까로 넘어가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예루살렘이 평온했으면 거기서 교회를 다녔겠지만 계속 전쟁이 일어나고 나라가 망하면서 사람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 바로 옆에 안디옥에서, 에데사에서 등등에서 세워지게 되었다. &nbsp;<br>가장 복음을 쉽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에데사였다. 안디옥과 가깝다. 영향을 주고 받았다. 언제 누가 보냈는지 모르지만 문헌을 역추적해보니, 제일 많이 나오는 사람이 타티아누스. 디아케사로(170), 4복음서를 자기 맘대로 섞어 놓은 사람. 예수의 스토리를 자의적으로 만든 사람이 타티아누스였다. 빠진 블럭은 상상으로 채워넣음. 시리아어로 냄. 라틴어로 번역된 책은 없어짐. 이미 A급 학자 존재. 에데사 연대기에 3세기경 에데사 홍수로 교회가 홍수로 무너졌다라는 기록이 있다.&nbsp;<br><br>가톨릭판의 서원모인 어떤 분이 동방기독교에 대한 7가지 설이 있는데 서로 영향을 주었다. 동방그리스도인의 전승이다. 바벨론 유대인 사이에서 메시야 기독교가 전해졌다. 도마행전, 마리행전 등 12명 중에 없는데 70명의 제자 중 다대오가 가거나 그 제자인 마리가 간 것이 책에 나온다. 로마의 동방원전 때, 포로된 사람 중에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복음을 전했다. 도마가 복음을 전했다. 마르시온파가 전했다. 등등 있다.&nbsp;<br>초창기에 나오는 또 하나의 문헌은 역사적으로 의문이고 시간이 안 맞지만 아따이라는 사람이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아부가르 1세가 예수님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기가 아파서 죽게 되었는데 나를 고쳐달라고 초청함. 예수가 바빠서 못 간다고 답장하면서 제자를 보낸다고 하심. 70인 중 한명인 다대오, 즉 아따이(시리아어)를 보냄. 레벨이 낮은 아이를 보냄. 예루살렘교회에서 파송한 아따이가 에데사에 복음을 전했다. 아부가르가 정말 있었는지 고증이 필요함. 예수님 당시가 아니라 1-200년 뒤에 쓰여진 책같다고 함. 그 당시의 에데사 연대기에 홍수가 나고 예배당이 전소됨. 그 왕이 아부가르 대왕이었다. 이 책의 인물은 예수님과 동시대는 아니다. 뒤에 쓰여진 책이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명확하게 찍을 수 없지만 자신의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파송된 선교사가 복음을 전했다. 교회가 번성을 했다. 다른 이야기는 아따이가 그 동네에서 기적을 행했는데 파기라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첫번째 감독이 된다. 아따이가 오긴 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nbsp;<br><br>시리아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유대교로부터 개종했던 사람들.유대교 그리스도인이라 유대교적 성향이 매우 강했다. 또 다른 설은 이쪽 지역이 바울이 싫어하는 온갖 초대교회들이 여기 있는데 영지주의, 마니교, 마르시온주의이 다 이쪽에 있다. 이쪽 기독교는 예루살렘기독교가 아니라, 혼합주의 온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주목할 사실은 1-2세기에 초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으면서 로마는 네로 이후 콘스탄틴 전까지 기독교를 박해했다. 페르시아에서는 기독교를 박해하지 않았다. 신앙의 자유가 있던 곳으로 안식처를 찾은 곳이 페르시아지역이다. 결과적으로 유럽과 다른 종교가 생겼다.&nbsp;<br><br>도마의 문제: 도마가 초대교회에서의 위치. 흥미롭게도 도마의 위상을 드러낸 것은 도마복음, 도마행전. 영지주의 문서. 비기독교적인 문제. 요즘에 가장 오해되고 잘못되게 낙인 찍힌 것이 영지주의라고 한다. 다시 연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며 도마복음이 연구주제로 부상하고 있다. 시리아 기독교의 특징은 다원성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해했다. 이것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국가가 나서서 제국의 이데올로기로 만들었다. 각자의 언어권과 문화권에서 예수를 만들었다. 자신의 입장에서 예수를 본 것이다. 인식의 옳고 그름이 아닌데 틀림의 문제로 보았다. 초기부터 도마가 동쪽으로 간 것이 알려져 있다. 너무나 많은 교회가 도마를 첫 선교사로 본다. 파르티아, 미디아,페르시아, ... 아프카니스탄, 인도북부, 3세기 도마행전에서는 도마가 바로 인도에 갔다고 나와있다. 도마가 동시리아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옴. 물론 역사성은 의심이 된다. 초대교회에서 각 지역마다 교회의 시조로 사도를 언급하는데 어떤 것도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교회의 서열을 이끌어 올리는 의도가 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제자들과 달리 동쪽은 전부다 도마를 자신들의 교주로 찾고 있다.&nbsp;<br><br>나중에 에데사에 있는 교회들이 페르시아교회를 세운다. 네스토리우스라는 사람들이 페르시아쪽 사람이 된다. 에데사 지역이 초창기 교회의 중심이었다. 4-5세기 넘어가면서 네스토리우스(인간)와 알렉산드리아 킬리로스(신)와 예수에 대한 논쟁이 이루어진다. 요 지역에서 칼케톤 공의회가 끝나면서 안디옥과 콘스탄티노플은 한편이다. 알렉산드리아 쪽은 영지주의를 강조하는 사람. 알레고리칼 해석. 안디옥은 문자주의적 해석. 에데사, 안디옥, 콘스탄티노플은 네스토리우스편을 들게 됨.&nbsp; 단성론자들이 에데사를 먹으면서 미스비스로 도망감. 에데사의 영향이 페르시아로 가게 됨. 5-6세기가 되면서 페르시아 쪽 사람은 네스토리우파가 됨.&nbsp;<br>그 전까지는 네스토리우스와 관계없고 예루살렘에 영향을 받음. 지역적 친화성때문에 네스토리우스파가 됨. 선교를 열심히 했음. 실크로드를 통해서 계속 동방으로 갔다. 중국에서 네스토리안을 경교로 받아들임. 빛의 종교로 들어가게 됨<br><br><br>궁금한 점<br>-세계교회사라는 큰 그림이 있어야 아시아교회사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용어가 어렵다.<br>-왜 시리아 교회를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양성론파로서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면서 윤리적인 모범으로서 예수를 강조)” “단성론파 교회(예수의 신성이 강해서 예수의 인성을 잡아먹어버린 상태)”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장구한 역사를 고려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일까?&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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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27 07:18: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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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영준</title>
         <author>seromipa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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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목하고 싶은 점<br><br><br><br>궁금한 점</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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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30 03:33: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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