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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 지역 문화유산 소개 by 선생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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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3-04-28 03:08: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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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영 욕지도 모밀잣밤나무 숲</title>
         <author>pilsoluv</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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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이 모밀잣밤나무 숲은 물고기를 보호하고 숲 가까이로 유인하는 어부림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상록수림 중의 하나이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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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3:14: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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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제 고현성</title>
         <author>pilsoluv</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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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거제의 읍성으로, 평면의 배 모양으로 돌을 쌓아 만들었다. 현종 4년(1663)까지 거제군의 관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br><br>이 성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 때 왜군에 함락되기도 하였으나, 남해안 수군의 진영에 이웃한 요새지로 쓰였다. 그 후 관아를 거제읍으로 이전하면서 읍성의 기능을 잃었다. 한국전쟁 때에는 UN군에 의해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현재는 서남쪽 600m 정도만이 옛모습의 성벽을 유지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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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3:59: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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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제 둔덕기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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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둔덕기성(屯德岐城)은 7세기 신라시대 축조수법을 알려 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현문식(懸門式) 구조인 동문지(東門址)와 삼국시대 초축(初築)되고 고려시대 수축(修築)된 성벽 등은 축성법의 변화를 연구하는데 학술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br><br>또한, 이 유적에서 인화문토기, ‘상사리(裳四里)’ 명문기와, 청자접시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신라 문무왕대 설치된 상군(裳郡) 및 경덕왕대 거제군의 치소성(治所城)으로 추정되며,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에 따르면 고려 의종이 3년간 거제도에 유배됐고, 조선 초 고려 왕족들이 유배된 장소로도 기록되어 있는 등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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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4:33: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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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층석탑</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1312790</link>
         <description><![CDATA[<div>단속사 터의 금당터 앞에는 동서로 두 탑이 서 있는데 그 중 동쪽에 세워진 것이 이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br><br>기단의 아래층은 ‘ㄴ’자 모양의 돌을 이용해 바닥돌과 동시에 만들어졌다. 그 위로 기단을 한 층 더 올린 후 몸돌과 지붕돌을 교대로 쌓은 탑신을 올려놓았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머리장식의 일부가 남아있다.<br><br>전체적으로 상·하의 비례가 알맞고 위로 오를수록 탑신의 크기가 알맞게 구성되어 있어 그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함께 세워져 있는 서탑과 비교할 때 그 규모와 수법이 거의 동일하여 같은 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 후기의 조성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김건희-</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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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4:34: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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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율곡사 쾌불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1316272</link>
         <description><![CDATA[<div>율곡사 괘불탱은 화면 가득 보살형의 인물만을 단독으로 그린 그림으로, 가로 475㎝, 세로 827㎝ 의 크기이다.<br><br>이 보살형 인물은 머리에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의 중앙에는 5구의 작은 화불이 모셔져 있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치켜 뜬 듯한 눈썹과 긴 코, 작은 입, 적당히 큰 귀 등 이목구비가 매우 단정하며,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옷은 부처가 입는 법의 형태로 속옷의 끝단과 소매자락, 윗부분 등에 걸쳐 여러 형태의 꽃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겉옷의 왼쪽 아래 끝자락을 황금색실을 이용하여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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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4:37: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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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주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1318610</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조 선조 24년(1591) 7월, 경상감사 김수(金수：1537∼1615)는 진주성을 수축하고 외성(外城)을 쌓았다. 동 25년(1592) 10월, 임진왜란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진주목사 김시민(金時敏：1554∼1592)이 3,800명의 군사로서 3만 여명의 왜적을 물리쳐 진주성대첩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인 계사년(1593) 6월에는 전년의 패배를 설욕코자 10만 여명이 또 침략하여 끝내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는 비운을 겪었다. 동 37년(1604)에는 합포(合浦, 마산(馬山))의 우병영을 진주성으로 옮겨 온 이래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영이 있었고, 고종 32년(1895) 5월부터는 진주관찰부, 건양 원년(1896) 8월부터는 경상남도관찰사의 감영이 있었다. 그리하여 1925년까지는 경상남도의 도청이 있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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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4:40: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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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함안 마갑총 고리자루 큰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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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함안 마갑총은 1992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한 고분으로, 목곽분 발굴 중 말갑옷 1점과 고리자루 큰 칼 1점이 출토되었다. 이 두 유물은 출토지가 분명하고, 함께 출토된 여러 유물들을 통해 5세기 아라가야에서 제작하여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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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4:40: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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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나린: 양산 통도사봉발탑</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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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이 봉발탑은 통도사의 용화전 앞에 서 있는 것으로 무슨 용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기본형태는 받침부분 위에 뚜껑있는 큰 밥그릇을 얹은 듯한 희귀한 모습이다. 받침부분의 돌은 아래·가운데·윗부분으로 구성되며 장고를 세워 놓은 듯한 모양이다. 받침돌 위에는 뚜껑과 높은 굽받침이 있는 그릇 모양의 석조물이 있다.<br><br>만들어진 연대는 연꽃조각과 받침부분의 기둥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로 추정되지만, 받침부분과 그릇 모양의 조각물과는 품격의 차이가 느껴지므로 동시대의 작품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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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4:41: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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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합천 해인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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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구성을 보면 모두 1,496종 6,568권으로 되어있다.수천만 개의 글자 하나 하나가 오자·탈자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이다. 또한 2007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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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4:41: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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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영우:고성덕명리공룡과새발자국화석산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1320224</link>
         <description><![CDATA[<div>이곳은 다양한 퇴적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1억 2천만년 전 생물의 생활흔적이 많이 나오고 있어, 공룡의 생활상, 자연환경, 퇴적환경, 해륙분포, 새의 진화과정 등을 알 수 있는 학술적으로 귀중한 화석지이다. 또한 이곳은 기묘한 바위와 괴상하게 생긴 돌, 바닷물에 깎여 생긴 해식동굴 등 해안의 경치 또한 뛰어나다.<br><br>고성 덕명리 공룡발자국과 새발자국 화석산지는 과거 생물의 생활 흔적뿐 아니라 자연경치가 뛰어나고 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이를 보존하고 있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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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4:41: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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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제현 관아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1320581</link>
         <description><![CDATA[<div>거제현의 관아는 배산구조와 안산, 관아 배치와 진입로 구조가 시각적으로 뚜렷한 축을 형성하여 한양의 광화문-경복궁-백악산의 축과 매우 흡사한 시각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br><br>현존하는 관아 건물인 기성관은 거제현의 객사로 중심적 역할을 하던 곳으로 단청이 화려하고 웅대한 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록 동헌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면사무소가 들어서 있지만 부속 건물이었던 질청이 남아있고 당시 고지도 등의 관련 자료가 많아 당시 읍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유적중의 하나이다.<br><br>따라서 거제 읍치의 관아와 거리는 조선후기 읍치의 전형적 경관과 구조를 보여줄 뿐 아니라 주요건물인 객사와 부속건물이 남아 있어 역사적·경관적으로 보존가치가 매우 크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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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4:42: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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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제 옥산성</title>
         <author>jesan20113</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1321178</link>
         <description><![CDATA[<div>옥산성지는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수정봉 정상에 쌓은 산성으로, 높이 4.7m, 둘레 778.5m이다. 수정같이 솟아있어 ‘수정봉성’이라고도 부른다.<br><br>성문 밖에 세워진 비석에 새긴 글에 의하면 조선 고종 10년(1873) 거제부사 송희승이 조정에 지방의 행정·경제·군사 중심지에 읍성을 쌓자고 건의하였다. 이에 왕은 거제의 읍터를 3번이나 옮겨서 백성의 부담이 너무 크다하여 허가하지 않았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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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4:43: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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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도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1321785</link>
         <description><![CDATA[<div>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이곳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金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 한다. 지금 건물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23년(1645)에 다시 지은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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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4:43: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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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제 기성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1321914</link>
         <description><![CDATA[<div>거제 기성관」은 거제현 및 거제도호부의 객관으로서 1665년(현종 6) 창건 이래, 1726년(영조 2), 1801년(순조 1), 1892년(고종 29)의 중수를 거쳐 1909년경까지 기능을 유지하였다. 이후 20세기 초 객사의 제사가 철폐되면서 보통학교의 교사로 전용되어 사용되다가 일부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2007년에는 질청 및 관아 터와 함께 사적 「거제현 관아」로 지정되었다.<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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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4:43: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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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해 용문사 대웅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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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남해 용문사 대웅전은 중창기록과 건축양식으로 볼 때, 조선 현종 7년(1666)에 일향화상에 의해 건립되고 영조 47년(1773)에 중수가 완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br><br>정면3칸, 측면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기단은 지형을 고려하여 전면은 2단으로 높게 형성하고 배면과 측면은 1단으로 구성하였다. 기둥은 4면의 우주를 평주보다 크게 사용하였고, 전면과 후면 그리고 측면의 순서로 기둥 크기를 달리하여 정면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네 모서리에는 팔각형 초석 위에 팔각형 활주를 세워 구조적 안정을 꾀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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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4:45: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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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함양 상림</title>
         <author>jesan2011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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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함양상림은 함양읍의 서쪽에 있는 위천(渭川)강가에 있는 숲으로서, 통일신라 진성여왕(재위 887∼897) 때 최치원 선생이 함양읍의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예전에는 대관림(大館林)이라고 불렀으나 이 숲의 가운데 부분이 홍수로 무너짐에 따라 상림(上林)과 하림(下林)으로 나뉘게 되었다. 현재 하림은 훼손되어 흔적만 남아있고 상림만이 예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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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28 04:45: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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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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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br>탑신은 각 층에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하여, 층층이 온화하게 크기를 줄이면서 올려놓았다. 몸돌에는 모서리에만 뚜렷하게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5단의 밑받침을 두었다. 지붕돌의 경사면은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며, 처마의 윗선은 거의 수평을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서서히 들려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쳐주는 네모난 노반(露盤)만 남아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노반 위로 불꽃조각을 한 수연(水煙)이 얹혀 있었는데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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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17: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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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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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595778</link>
         <description><![CDATA[<div><br>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이곳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金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 한다. 지금 건물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23년(1645)에 다시 지은 것이다.<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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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18: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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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선구 줄 끗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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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하지만 선구줄끗기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은 해방 직후부터 시작됐다. 이 마을에 사는 향토문화연구가 김찬중씨의 노력으로 중단된 민속놀이가 재현되었고 현재에는 선구줄끗기보존회에서 계승하면서 벚꽃축제 때는 관광객들에게 선보이기도 한다.<br><br>선구 줄끗기는 당산제-어불림-필승고축-고싸움-줄끗기-달집태우기 순서로 진행된다. 선구줄끗기에 사용하는 줄은 1개의 고에 문어발처럼 된 네 가닥의 작을 줄을 매달아 만든다. 줄끗기 전에 고싸움을 하여 그 결과에 따라 이기는 편이 숫고가 된다. 숫고가 되면 줄끗기 승부에서 이길 확률이 많기 때문에 숫고가 되기 위하여 힘을 다하여 싸운다. 암고, 숫고가 결정되면 2개의 고를 빗장으로 연결하여 줄끗기를 시작한다. 이때 여자들은 자기편의 줄을 무겁게 하여 이기려고 바닷가에 있는 몽돌을 치마에 담아 가지고 와서 치마폭에 싼 돌을 줄과 함께 움켜잡고 줄끗기를 했다고 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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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18: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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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선진리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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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진항의 북방에 있는 이 성은 삼면이 바다에 접하고 동쪽만 육지에 닿아 있는 반도 지형에 세워졌다.<br><br>조선시대에는 항구로 유명했으며 선진이 설치되기도 하였는데, 선진은 싸움터에서 앞장서는 군대를 뜻한다. 『읍지』와 『대동지지』의 기록을 보면 이 선진에는 전함이 1척, 병선이 1척, 하후선이 2척 있었다고 하여, 삼천진이라 불렸다. 선조 30년(1597)에 왜의 석만자가 이곳에서 지내면서 울산의 도산, 순천의 왜교와 더불어 3굴이라 불렀다고 한다.<br><br>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지은 성으로, 규모나 구조면에서 볼 때 활동의 주요 근거지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순신 장군에 의해 격파 당하기도 하였다. 현재 흙으로 쌓은 성벽이 1㎞ 가량 남아 있으며, 돌로 만든 누(樓)는 무너졌으나 대체로 성의 규모대로 터가 남아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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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20: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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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제 오량리 석조여래좌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597933</link>
         <description><![CDATA[<div>1950년경에 오량리 절골의 석불암 앞산에서 발견된 불상이다. 거제도에서 이런 큰 불상이 나온 것은 드문 일인데, 1170년에 고려 의종이 거제도에 폐왕성(廢王成)을 쌓고 3년간 머물면서 만들었다는 설이 전해진다.<br><br>어깨는 넓게 표현했지만 하체를 왜소하게 나타내고 있어 어딘지 불안정해 보인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입은 옷은 비교적 얇은 편인데 밀집된 옷주름을 보이고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로 올리고 손가락이 아래로 향한 항마촉지인(降魔觸地印)으로 석가모니불임을 알려준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원추형의 상대와 하대만 남아 있다.<br><br>하체의 조각이 소홀하고,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처리된 점에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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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20: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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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큰줄 땡기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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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줄다리기는 줄쌈이라고도 하는 일종의 편싸움 놀이이다. 줄다리기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벼농사를 위주로 하는 중부 이남지방에서 널리 행해지는데 농경의식의 일종으로 해석되고 있다. 마을을 동서로 나누어 두패로 편을 짜는데 동서 양편은 각각 남성과 여성으로 상징되며, 생산의 의미에서 여성으로 상징되는 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생각한다.<br><br>의령 큰줄댕기기는 1800년경부터 시작하여 2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민속놀이로 온 마을이 참여하는 축제로 정착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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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22: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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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제포로수용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00124</link>
         <description><![CDATA[<div>한국전쟁 중 UN군에 포로가 되었던 공산군을 수용하던 장소이다.<br><br>1950년 11월부터 고현·상동·용산·양정·수월·해명·저산지구 등 360만평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하여, 인민군 15만, 중공군 포로 2만, 여자포로와 의용군 3천명 등 최대 17만 3천명을 수용하였다.<br><br>이 곳에서 반공포로와 친공포로간의 유혈사태가 자주 발생하였으며,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소장인 돗드 준장이 납치되는 불미스런 사건까지 있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후 폐쇄되었고, 친공포로들은 판문점을 통하여 북으로 보내졌다. 현재는 수용소의 잔존건물 일부만이 곳곳에 남아 당시의 상황을 말해준다.<br><br>한국전쟁의 참상을 말해주는 민족역사교육의 장소로,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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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23: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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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식 남명 문집 목판</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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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조식은 평생 학문에 힘썼으나 과거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1567년 임금이 불러도 나아가지 않고, 다만 왕을 만나 난을 다스리는 방도와 학문을 마칠 것임을 밝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일상생활에서도 철저한 절제로 일관하여 의(義)가 아닌 것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같은 시대에 살았던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학풍을 만든 인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참여하는 등 국가에 위기가 닥치면 몸소 앞장서서 싸움에 참여하였다. 그가 죽은 후 차례로 대사헌,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여러 서원에 그의 위패가 모셔졌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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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24: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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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제포로수용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01400</link>
         <description><![CDATA[<div>한국전쟁 중 UN군에 포로가 되었던 공산군을 수용하던 장소이다.<br><br>1950년 11월부터 고현·상동·용산·양정·수월·해명·저산지구 등 360만평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하여, 인민군 15만, 중공군 포로 2만, 여자포로와 의용군 3천명 등 최대 17만 3천명을 수용하였다.<br><br>이 곳에서 반공포로와 친공포로간의 유혈사태가 자주 발생하였으며,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소장인 돗드 준장이 납치되는 불미스런 사건까지 있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후 폐쇄되었고, 친공포로들은 판문점을 통하여 북으로 보내졌다. 현재는 수용소의 잔존건물 일부만이 곳곳에 남아 당시의 상황을 말해준다.<br><br>한국전쟁의 참상을 말해주는 민족역사교육의 장소로,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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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25: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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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취수정</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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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취수정은 450여년전 무오사화를 파하여 온 보령현감 김수양이 건립하였던 것을 다시 1871년에 중건하였으며 가조면 대초리 선산김씨 집성촌 중앙에 위치해있다 양질의 건축부재와 수려한 건축미를 보이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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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26: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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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해금강</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03744</link>
         <description><![CDATA[<div>거제 해금강의 이름은 그 모습이 마치 금강산의 해금강처럼 아름다워 붙은 이름이다. ‘제2의 해금강’ 이라고도 부르며, 거제도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다. 해금강은 두 개의 큰 '갈도' 바위섬이 서로 맞닿아 있고 깎아 놓은 듯한 절벽의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십자(十字)동굴을 비롯하여 석문, 사통굴, 일월봉, 미륵바위, 사자바위 등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다.<br><br>이곳부터 충무까지는 모두 한려해상국립공원이며, 섬의 동쪽으로 임진왜란 때 옥포해전으로 유명한 옥포만이 있고 서쪽으로는 한산도와 접해 있어 역사적 감회를 느끼게 한다.ㅊ</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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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27: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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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윤예서: 함안 말이산 고분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04424</link>
         <description><![CDATA[<div>함안말산리고분군(사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것을 2011년 7월 28일 역사적 특성을 고려하여 같은 산자락에 걸쳐 있는 두 고분군을 통합하여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으로 재지정한 것임<br>고분군은 일제 강점기 때 처음 조사되었는데, 당시 34호분(현 4호분)은 봉토의 지름이 39.3m, 높이가 9.7m나 되는 큰 규모의 무덤이었음.&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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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28: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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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광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04726</link>
         <description><![CDATA[<div>통영오광대는 길놀이를 시작으로 제1과장 문둥탈, 제2과장 풍자탈, 제3과장 영노탈, 제4과장 농창탈, 제5과장 포수탈 등 5개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둥이․말뚝이․양반․팔선녀․영노․사자 등 31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양반과 파계승의 풍자, 처와 첩의 문제 등 민중의 생활상을 반영하고 있다. 가장 특징이 있는 춤은 문둥이춤으로 꽹과리가 주도하는 반주음악에 맞추어 문둥이의 생애와 한을 표현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오광대 중에서 사자춤이 있는 것은 통영오광대 뿐이다. 통영오광대는 우리나라 남부 지역 탈춤 전통을 잘 보여주는 탈놀이로서 서민생활의 애환을 담고 있는 전통적인 마당놀이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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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28: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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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윤찬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05354</link>
         <description><![CDATA[<div>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으로 수많은 포로들이 생겼고,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장소가 필요하여 1951년부터 거제도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다.<br><br>인민군 15만, 중국군 2만 등 최대 17만 3천 명의 포로를 수용하였고, 그 중 300여 명의 여자 포로도 있었다.<br>역사의 고통을 보여주는것으로 의의가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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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29: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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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천사지 승탑</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05798</link>
         <description><![CDATA[<div><br>전체적으로 각 면을 안으로 굽어 깎은 점이 특징적이며 기단의 아래받침돌에 새긴 용과 구름무늬가 무기력해 보이는 흠이 있다. 또한 지붕돌이 무겁고 두꺼운 점은 시대가 내려오면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볼 수 있어 승탑이 건립된 시기는 고려 전기로 짐작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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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29: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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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권응수 장군 유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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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권응수장군유물(權應銖將軍遺物)은 조선시대 무신이었던 권응수(1546∼1608) 장군의 유물들로 장군이 쓰던 물건 및 임금에게 하사받은 물건과 집안에 내려오던 유품들을 모은 것이다. 권응수 장군은 선조 17년(1584)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무찌르는 등 많은 활약을 하였다.<br><br>유물의 내용을 보면 권응수 장군의 영정, 선무공신교서, 태평회맹도병풍, 장검, 유지 및 장군간찰, 교지 및 유서, 각대, 가전보첩 2첩 등이다. 권응수 장군의 모습을 담은 영정은 선조 임금이 하사한 것으로 장군이 선무공신에 봉해질 때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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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0: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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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창원시 완구 김다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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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완구는 일명 ‘댕구’라고도 부르며 유통식(有筒式) 화기의 한 종류로 조선 태종 때 최해산이 만들었다고 한다.&nbsp;<br><br>완구는 크게 완(碗), 격목통(激木筒), 약통(藥筒)의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완은 발사물 즉 큰 돌이나 쇠공을 올려 놓는 곳으로 그릇 모양을 하고 있다.<br><br>중완구(中碗口)의 약통은 화약을 넣는 곳으로 점화선을 끼우는 점화구멍을 2개 가지고 있다.&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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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0: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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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남루</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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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조선 선조 35년(1602)에 세운 화축관의 문루로 추정되며, 당시 임금이 온천에 갈 때 머물던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br><br>본래 중앙초등학교 정문에 있던 것을 1959년에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br><br>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앞면 중앙에 층계가 있으며 4면에 난간을 설치했다. 건물 안에는 우암 송시열이 지은 글(記文)이 남아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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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0: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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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제 구조라진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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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소속의 수군진성으로 쓰시마섬에서 오는 왜적의 침입을 막으려고 성종 21년에 1490에 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 아래 구조라 마을이 있습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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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0: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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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자총통</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07840</link>
         <description><![CDATA[<div>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하는 유통식화포(有筒式火砲)는 그 크기와 사용되는 화약의 양, 발사거리에 따라 4가지로 분리하여 천자문에서 그 이름을 따 천(天)·지(地)·현(玄)·황(黃)자총통이라 붙였는데, 이 것은 그 중 크기가 3번째에 해당하는 중화기이다.<br><br>경남 거제군 고현만에서 발견되었으며, 총길이 95㎝, 통(筒)길이 60㎝, 총구의 지름 7.5㎝이다. 화약이 들어가는 약실은 통몸보다 약간 도톰하게 되어 있고 점화구멍은 약실 오른쪽에 뚫려있다. 발사물은 화살&lt;차대전(次大箭)&gt;과 둥근포탄&lt;철환 (鐵丸)&gt;을 사용한다.<br><br>현자총통은 조선 태종 때 부터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약실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보아 선조 29년(1596)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는 장군이 12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전함을 격파한 명량해전에서 이 화포를 크게 활용하였음을 적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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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2: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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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제 기성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08051</link>
         <description><![CDATA[<div>거제 기성관은 거제현 및 거제도호부의 객관으로서 1665년(현종 6) 창건 이래, 1726년(영조 2), 1801년(순조 1), 1892년(고종 29)의 중수를 거쳐 1909년경까지 기능을 유지하였다. 이후 20세기 초 객사의 제사가 철폐되면서 보통학교의 교사로 전용되어 사용되다가 일부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2007년에는 질청 및 관아 터와 함께 사적 「거제현 관아」로 지정되었다.<br>1974년의 해체수리 시에 종도리 아래에서 창건시의 상량묵서와 함께, 3건의 상량문이 발견되었다.<br>「거제 기성관」은 행정과 군사적 성격을 갖는 남해안 관아의 객사로서 인근의 통영 세병관, 여수 진남관 등과 비견할 수 있는 규모와 형식, 특히 다른 곳에서 유래를 보기 힘든 독특한 솟을지붕의 처리 기법, 인근 지역에서 거제면이 갖는 역사문화환경적 위상 등을 고려할 때,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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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2: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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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자총통</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09171</link>
         <description><![CDATA[<div>지자총통(池字銃筒)은 천(天)·지(地)·현(玄)·황(黃) 총통 중에서 천자총통 다음으로 큰 우리나라 고유의 대포이다. 길이 89.5㎝, 안지름 10.5㎝, 바깥지름 15㎝이며 명종 12년(1557)에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지자총통보다 1개월 앞서 만들었다.<br><br>총구쪽에서 화약을 넣는 약통쪽으로 갈수록 두툼하게 만들었으며, 손잡이는 2개였는데 모두 파손되었다. 마디는 총구에 있는 것까지 포함하여 모두 10개이며, 앞에서부터 일곱번째 것과 여덟번째 마디가 서로 붙어 있어 약통과 격목통을 구분하고 있다. 격목통은 원기둥 모양의 나무를 박아 약통 속에 있는 화약의 폭발력을 최대한 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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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3: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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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제 현관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10149</link>
         <description><![CDATA[<div>1..'ㄷ'자 모양이다<br>2..사적 제484호<br>3..현존하는 관아 건물인 기성관은 거제현의 객사로 중심적 역활을 함.<br>4..1974년2월16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81호 지정<br>5..1911년 이후 거제보통학교&nbsp;<br>6..320년 동안 같은 자리<br>7..조건시대 우아한 고전미</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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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4: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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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태리 오층 석탑</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10524</link>
         <description><![CDATA[<div>탑신은 1층 몸돌을 제외하고는 몸돌·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1층 몸돌은 각 모서리에 두툼한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높이가 매우 높다. 이에 비해 2층 이상의 몸돌은 높이도 크게 줄고 기둥조각도 훨씬 좁아졌다.<br><br>지붕돌은 처마끝이 위로 들린 정도가 경쾌하고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네 귀퉁이에는 독특하게도 작은 연꽃무늬 조각이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방울장식을 달았던 듯한 큼직한 구멍이 있다. 탑의 머리에는 장식을 받치는 노반(露盤)과 철로 만든 기둥의 한 끝만이 남아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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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5: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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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밀양 얼음골</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10970</link>
         <description><![CDATA[<div>밀양 남명리 얼음골은 천황산 동북쪽 산줄기의 북쪽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얼음골 입구는 해발 약320m이고 그 정상부는 해발 약 1,000m이다. 얼음골 계곡은 동·서·북 3면이 절벽으로 되어 있으며 북쪽은 돌밭으로 되어 있다. 대체로 3-4월부터 바위틈에 얼음이 생기기 시작해서 7월말∼8월초에 가장 많은 얼음이 생기며, 겨울에는 얼음이 생겼던 바위틈에서 따뜻한 공기가 나와 계곡물도 얼지 않는다. 이와 같은 현상은 암석속에 틈이 많이 생겨서 일어난다고 하는데, 밀양의 신비로 불려진다. 이러한 얼음골 현상은 희귀한 일로 포천·단양·의성·정선 등지에서도 보고되고 있다. 여름철 결빙 현상의 원리에 대한 이론이 여러가지가 있으나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어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그 원인이 밝여질 수 있을 것이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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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5: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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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남 무형문화재 제46호 한지창</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11154</link>
         <description><![CDATA[<div>이상옥 장인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에서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전통한지 제조기술인 흘림뜨기(외발지, 음양지)로 전통한지를 생산하고 있으며 1만평의 재배지에 약 7만 그루의 닥나무를 직접 재배하고 있다.<br><br>이상옥 장인의 증조부 고 이규태 선생이 1882년(고종19년)부터 관청 별감(세무책임자)에 임명되어 지리산 일대 사찰의 종이부역으로 생산된 사찰종이와 관청 지소에서 만든 종이를 관리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약 140년 동안 전통한지를 보존·전승하며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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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5: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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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상팔경도 (瀟湘八景圖)</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11395</link>
         <description><![CDATA[<div>이 &lt;소상팔경도&gt;는 종이에 수묵으로 그려져 있는데 8폭의 그림이 두 폭씩 對를 이루는 구도로 좌우에 우뚝 솟은 산세가 마주보면서 무게 중심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그림에는 농담의 대조와 용묵법에 의해 계절의 변화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마치 사계산수처럼 봄을 표현한 산시청람으로 시작해서 연사모종, 어촌석조, 원포귀범, 소상야우, 동정추월, 평사낙안, 그리고 겨울 장면인 강천모설로 마무리된다.<br><br>이 &lt;소상팔경도&gt;는 “소상팔경”을 주제로 8폭이 모두 갖추어진 완형의 작품이자, 조선 초기 문인사회의 시화일치사상이 잘 녹아있는 대표적인 산수화이다. 또한 16세기 전반 안견파 화풍의 한국화현상 즉 편파삼단구도, 넓은 공간, 해조묘의 수지법, 단선점준 등의 양식적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회화사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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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5: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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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성 옥천사 청독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11659</link>
         <description><![CDATA[<div>옆면은 중앙에 굵게 돌출된 선이 있어 위 아래로 구분되고, 선 위로 둥근 모양의 고리가 3개 있어 매달 수 있게 되어 있다. 고면(鼓面)의 무늬가 뚜렷하고 손상이 없으며, 옆면의 글을 통해 만든 시기와 유래, 발원자와 제작자까지를 알 수 있어 당시 고려 장인사회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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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6: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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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윤예서: 산청 대포리 삼층석탑</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14460</link>
         <description><![CDATA[<div>삼장면의 면소재지인 대포리 마을에 서있는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br>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 부분에 기둥을 본떠 새긴 조각이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고, 윗면에는 약한 경사가 흐르며 네 귀퉁이에서 서서히 들려있다.특히 아래층 기단에서 보이는 2개씩의 가운데기둥은 이 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예로, 일부 파손되긴 하였으나 대체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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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9: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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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합천 옥전 28호분 출토 금귀걸이 (陜川 玉田 二十八號墳 出土 金製耳飾)</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14605</link>
         <description><![CDATA[<div>합천 옥전 28호분 출토 금귀걸이’ 한 쌍은 1985년～1986년까지 경상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로, 공반(共伴) 유물이 확실하고 가야 금귀걸이의 원형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특히 현존하는 가야시대 긴 사슬 장식 금귀걸이 중 가장 화려하고 보존 상태가 좋은 뛰어난 금속공예품이다.<br><br>제작 기법을 보면, 이 금귀걸이는 사슬고리나 S자 금판고리를 연결하여 긴 사슬[장쇄식長鎖式]로 연결고리를 만들어 백제나 신라 금귀걸이와 구별되는 기술적 가치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야 귀걸이는 세환식(細環式) 주고리 아래에 수하식(垂下飾) 1줄을 매다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귀걸이는 3줄을 매달고 속이 빈 둥근 공모양의 중간식과 그 아래로 속이 빈 원추형과 심엽형(心葉形) 장식을 매달아 화려하다는 점에서 예술적인 가치 또한 높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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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9: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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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황사 석조비로자나 불좌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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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파손된 것을 새로 만든 머리 부분을 포함하여 체구는 인체비례와 유사한 편인데 우아한 어깨, 당당한 가슴, 날씬한 허리에 얇은 옷의 표현으로 사실성8세기 후반의 가장 우수한 석불상의 예일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사자좌를 가진 석불좌상으로 크게 주목되며, 학술적으로도 신라 조각사에서 반드시 취급되어야 할 중요한 불상으로 여겨진다을 높여주고 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옷은 얇은 층단주름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우아하고 사실적인 형태는 8세기 중엽의 불상들과 상통하는 면이지만, 얇은 층단식 주름의 세련된 표현은 8세기 후반의 특징을 보여준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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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39: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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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해군 선구 줄끗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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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선구마을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아랫마을을 남편으로 윗마을을 북편으로 나누어 시작되는 줄끗기는 세시풍속이며 이 지방의 민속놀이이다. 정월 대보름이 되기 며칠 전부터 각 집에서 고를 만들 짚을 모으고 어린이들은 다른 데서 훔쳐오기도 한다.<br><br>대보름날이 되면 아랫 당산에서 먼저 당산제를 지낸다. 이것은 반농 반어촌인 선구마을에 한 해 동안 풍농과 풍어를 빌며 해난사고의 방지,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선구줄끗기 역시 완전히 없어졌다.<br>하지만 선구줄끗기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은 해방 직후부터 시작됐다. 이 마을에 사는 향토문화연구가 김찬중씨의 노력으로 중단된 민속놀이가 재현되었고 현재에는 선구줄끗기보존회에서 계승하면서 벚꽃축제 때는 관광객들에게 선보이기도 한다.<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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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40: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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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천 흥사라 매향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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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매향(埋香)이란 하늘과 땅의 신을 모시기 위해 향나무를 땅에 묻거나 향을 피우는 의식을 말한다.건립목적과 세운 연대가 확실한 비로, 잊혀진 우리의 옛 민속을 알려주고 고려 후기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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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41: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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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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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빛벌가야(지금의 창녕군)를 신라 영토로 편입한 진흥왕이 이곳을 순시하면서 민심을 살핀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당시 창녕군은 신라가 서쪽으로 진출하는데 있어 마치 부채살의 꼭지와 같은 중요한 길목이었는데, 진흥왕 16년(555) 신라에 병합되었고, 565년에는 대야주(지금의 합천군)와 합쳐져 비사벌군(比斯伐郡) 또는 비자화군(比自化郡)으로 불러워지게 되었다.<br><br>비를 세운 시기는 대가야가 멸망하기 1년 전인 신라 진흥왕 22년(561)으로, 이 지역을 가야진출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 왕의 정치적인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진흥왕 당시의 사실을 기록해 놓아『삼국사기』의 내용을 보완해줌으로써, 이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으므로&nbsp; 이 문화유산은&nbsp;<br>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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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41: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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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동 운암영당 최치원 초상 (河東 雲岩影堂 崔致遠 肖像)</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17042</link>
         <description><![CDATA[<div>통일신라 후기의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고운 최치원(857∼) 선생의 초상화로, 운암영당에 보존되어 있다.<br><br>최치원은 통일신라 6두품 출신의 지식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경문왕 9년(869)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과거에 급제하여 활약하기도 하였다.<br><br>그림은 검은사모에 관리의 집무복인 관복을 입고 두 손을 맞잡은 채, 주인공이 높이가 긴 의자에 앉아있는 전신좌상으로, 주인공을 풍만하게 나타내었으며, 크기는 가로 77.5㎝, 세로 108㎝ 이다. 가슴에 있는 흉배는 화려하게 표현한 반면 허리띠의 문양은 단순하다. 비단 바탕에 화려한 채색을 하였으며, 화폭 윗부분에 구름과 대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아래쪽 배경에는 탁자 위로 문방구를 표현해 놓았다. 이는 평소 주인공이 문방구들을 사용했을 듯 하며 사대부의 엄숙함과 유학자의 풍모가 감도는 분위기를 그려 내고자 한 의도로 보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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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41: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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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제오량리석조여래좌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17627</link>
         <description><![CDATA[<div>1950년경에 오량리 절골의 석불암 앞산에서 발견된 불상이다. 거제도에서 이런 큰 불상이 나온 것은 드문 일인데, 1170년에 고려 의종이 거제도에 폐왕성(廢王成)을 쌓고 3년간 머물면서 만들었다는 설이 전해진다.<br><br>어깨는 넓게 표현했지만 하체를 왜소하게 나타내고 있어 어딘지 불안정해 보인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입은 옷은 비교적 얇은 편인데 밀집된 옷주름을 보이고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로 올리고 손가락이 아래로 향한 항마촉지인(降魔觸地印)으로 석가모니불임을 알려준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원추형의 상대와 하대만 남아 있다.<br><br>하체의 조각이 소홀하고,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처리된 점에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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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42: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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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큰줄 땡기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18262</link>
         <description><![CDATA[<div>1..1997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음력 정월 보름날 군민 모두가 참여하는 대동놀이다.<br>2..의령 큰줄댕기기 민속놀이는 1910년대까지 세시적 행사로 매년 행하다가 일제시대에 4회 놀고, 광복 이후 매년 계속되다<br>3..군내의 마을마다 짚을 모아 세 가닥의 왼 새끼로 꼬아서 만든 지름 15㎝, 길이 50∼130m 정도의 작은줄을 하나씩 가지고 정월 열흘 께가 지나면 놀이장소로 가지고 온다.</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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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42: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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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곽재우 유물 일괄 (郭再祐 遺物 一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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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곽재우 유물 일괄(郭再祐 遺物 一括)은 경상남도 의령군 충익사에 소장된 곽재우의 유물이다. 망우당 곽재우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유물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가 사용하였던 장검, 말갖춤(마구) 및 평소 사용했던 포도연, 사자철인, 화초문백자팔각대접 등 6점이다.<br><br>장검은 길이 86㎝, 너비 3㎝, 자루 16㎝로 칼과 칼집이 한쌍이며,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손잡이 부분은 나무로 되어 있으며, 겉은 가죽끈을 교차하여 감았다. 칼등이 위로 조금 휘여 있으며, 칼집은 윗부분이 약간 부식되어 떨어졌다. 마구는 곽재우가 타고 다니던 말안장으로 부식상태가 심하여 1973년 8월에 보존 처리되었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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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44: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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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천시 선진리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20129</link>
         <description><![CDATA[<div>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진항의 북방에 있는 이 성은 삼면이 바다에 접하고 동쪽만 육지에 닿아 있는 반도 지형에 세워졌다.<br><br>조선시대에는 항구로 유명했으며 선진이 설치되기도 하였는데, 선진은 싸움터에서 앞장서는 군대를 뜻한다. 『읍지』와 『대동지지』의 기록을 보면 이 선진에는 전함이 1척, 병선이 1척, 하후선이 2척 있었다고 하여, 삼천진이라 불렸다. 선조 30년(1597)에 왜의 석만자가 이곳에서 지내면서 울산의 도산, 순천의 왜교와 더불어 3굴이라 불렀다고 한다.<br><br>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지은 성으로, 규모나 구조면에서 볼 때 활동의 주요 근거지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순신 장군에 의해 격파 당하기도 하였다. 현재 흙으로 쌓은 성벽이 1㎞ 가량 남아 있으며, 돌로 만든 누(樓)는 무너졌으나 대체로 성의 규모대로 터가 남아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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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44: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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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선구 줄 끗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20543</link>
         <description><![CDATA[<div>선구마을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아랫마을을 남편으로 윗마을을 북편으로 나누어 시작되는 줄끗기는 세시풍속이며 이 지방의 민속놀이이다. 정월 대보름이 되기 며칠 전부터 각 집에서 고를 만들 짚을 모으고 어린이들은 다른 데서 훔쳐오기도 한다.<br><br>대보름날이 되면 아랫 당산에서 먼저 당산제를 지낸다. 이것은 반농 반어촌인 선구마을에 한 해 동안 풍농과 풍어를 빌며 해난사고의 방지,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선구줄끗기 역시 완전히 없어졌다.<br><br>하지만 선구줄끗기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은 해방 직후부터 시작됐다. 이 마을에 사는 향토문화연구가 김찬중씨의 노력으로 중단된 민속놀이가 재현되었고 현재에는 선구줄끗기보존회에서 계승하면서 벚꽃축제 때는 관광객들에게 선보이기도 한다.<br><br>선구 줄끗기는 당산제-어불림-필승고축-고싸움-줄끗기-달집태우기 순서로 진행된다. 선구줄끗기에 사용하는 줄은 1개의 고에 문어발처럼 된 네 가닥의 작을 줄을 매달아 만든다. 줄끗기 전에 고싸움을 하여 그 결과에 따라 이기는 편이 숫고가 된다. 숫고가 되면 줄끗기 승부에서 이길 확률이 많기 때문에 숫고가 되기 위하여 힘을 다하여 싸운다. 암고, 숫고가 결정되면 2개의 고를 빗장으로 연결하여 줄끗기를 시작한다. 이때 여자들은 자기편의 줄을 무겁게 하여 이기려고 바닷가에 있는 몽돌을 치마에 담아 가지고 와서 치마폭에 싼 돌을 줄과 함께 움켜잡고 줄끗기를 했다고 한다.<br><br>줄끗기에서 암고가 이기면 풍농, 풍어가 된다고 믿고 있다. 줄끗기가 끝나면 승부에 관계없이 달집태우기를 하면서 화합을 다짐한다.<br><br>선구줄끗기는 제25회 경남도 민속예술경연대회(1993.10.13)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1994년에는 전국 민속경연대회에 경상남도 대표로 출연하기도 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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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45: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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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주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21029</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조 선조 24년(1591) 7월, 경상감사 김수(金수：1537∼1615)는 진주성을 수축하고 외성(外城)을 쌓았다. 동 25년(1592) 10월, 임진왜란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진주목사 김시민(金時敏：1554∼1592)이 3,800명의 군사로서 3만 여명의 왜적을 물리쳐 진주성대첩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인 계사년(1593) 6월에는 전년의 패배를 설욕코자 10만 여명이 또 침략하여 끝내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는 비운을 겪었다. 동 37년(1604)에는 합포(合浦, 마산(馬山))의 우병영을 진주성으로 옮겨 온 이래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영이 있었고, 고종 32년(1895) 5월부터는 진주관찰부, 건양 원년(1896) 8월부터는 경상남도관찰사의 감영이 있었다. 그리하여 1925년까지는 경상남도의 도청이 있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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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45: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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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광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21254</link>
         <description><![CDATA[<div>1930년대까지만 해도 상당수의 야류와 오광대가 전승되고 있었으나 모두 단절되었다가, 현재는 동래야류·수영야류·통영오광대·<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25637&amp;ref=y">고성오광대</a>·<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25588&amp;ref=y">가산오광대</a>만이 60년대부터 복원되어 전승되고 있다. 최근 진주오광대도 복원되었다.</div><div><br></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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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45: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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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관해정</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vivaciousblowmotors/touk8mrb94urxeu9/wish/2574622715</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조 선조 24년(1591) 7월, 경상감사 김수(金수：1537∼1615)는 진주성을 수축하고 외성(外城)을 쌓았다. 동 25년(1592) 10월, 임진왜란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진주목사 김시민(金時敏：1554∼1592)이 3,800명의 군사로서 3만 여명의 왜적을 물리쳐 진주성대첩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인 계사년(1593) 6월에는 전년의 패배를 설욕코자 10만 여명이 또 침략하여 끝내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는 비운을 겪었다. 동 37년(1604)에는 합포(合浦, 마산(馬山))의 우병영을 진주성으로 옮겨 온 이래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영이 있었고, 고종 32년(1895) 5월부터는 진주관찰부, 건양 원년(1896) 8월부터는 경상남도관찰사의 감영이 있었다. 그리하여 1925년까지는 경상남도의 도청이 있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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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47: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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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선진리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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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사천 선진리성 泗川 船津里城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74호 사천 선진리성은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주둔한 왜군이 일본식으로 지은 성이다. 사천읍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선진리 북쪽의 낮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 대부분 복원된 형태로 남아 있다. 당시 북진하던 왜군은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저항하자 경상도 남해안 지방으로 물러나 남해안 곳곳에 성을 쌓고 머물렀는데 그때 쌓은 성 중 하나가 선진리성이다. 이 성은 기록에 따르면 왜군 장수 11명이 1597년 10월 29일부터 12월 27일까지 지휘하여 쌓았다고 한다. 성안에는 많은 건축물이 있었고, 성 주위에는 해자*와 나무 울타리가 설치되었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항구로 유명했으며 선진**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또한 고려 시대 전국 12조창*** 중 하나인 통양창(通洋倉)을 보호하기 위한 토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이 성은 왜군이 활동하기 위한 주요 근거지였기 때문에 한때 이순신 장군에게 격파당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선진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충무공사천해전승첩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해자(垓字): 성 주위로 들러 판 못 **선진(先陣): 지휘를 하는 본부가 있던 군영의 앞에 자리 잡거나 앞장서서 나아가는 부대 ***조창(漕倉) : 전국 각 지방에서 조세의 명목으로 거둬들인 곡식을 저장, 운영하던 국영 창고. 주로 해안이나 하천의 포구에 설치 &nbsp;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진항의 북방에 있는 이 성은 삼면이 바다에 접하고 동쪽만 육지에 닿아 있는 반도 지형에 세워졌다.<br><br>조선시대에는 항구로 유명했으며 선진이 설치되기도 하였는데, 선진은 싸움터에서 앞장서는 군대를 뜻한다. 『읍지』와 『대동지지』의 기록을 보면 이 선진에는 전함이 1척, 병선이 1척, 하후선이 2척 있었다고 하여, 삼천진이라 불렸다. 선조 30년(1597)에 왜의 석만자가 이곳에서 지내면서 울산의 도산, 순천의 왜교와 더불어 3굴이라 불렀다고 한다.<br><br>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지은 성으로, 규모나 구조면에서 볼 때 활동의 주요 근거지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순신 장군에 의해 격파 당하기도 하였다. 현재 흙으로 쌓은 성벽이 1㎞ 가량 남아 있으며, 돌로 만든 누(樓)는 무너졌으나 대체로 성의 규모대로 터가 남아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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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48: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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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상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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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보계(寶髻)가 솟아 있으며, 보관(寶冠)은 없어진 상태이다. 양감이 줄어든 얼굴에는 작고 가는 눈, 다문 입이 표현되어서 다소 업숙한 모습이다. 어깨는 각이 져 있으며, 신체는 장방형으로 보살상 특유의 유연성은 부족해 보인다. 가슴에 장식된 목걸이와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천의(天衣)는 매우 형식적으로 처리되었다. 허리에는 굵은 띠가 있고, 그 아래로는 양 다리에 걸쳐 U자형 옷주름이 엇갈리게 배치되어 있다. 오른손은 몸에 붙여 물병을 들고 있고, 왼손은 가슴에 대어 연꽃송이를 쥐고 있다. 이런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 유행하였던 관음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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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49: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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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해인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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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구성을 보면 모두 1,496종 6,568권으로 되어있다. 이 대장경의 특징은 사업을 주관하던 개태사 승통인 수기대사가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을 참고하여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아 대장경을 제작하였다고 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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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51: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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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승전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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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승전무는 경남 통영에서 전승되어 온 북춤, 칼춤, 입춤이다. 이 춤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영문(營門)에서 각종 의식․하례(賀禮), 이순신 사당의 춘추향사․생신제․기신제에 헌무(獻舞)한 춤이다. 승전무의 북춤은 궁중의 무고와 흡사한 춤으로 활옷을 입고 양손에는 한삼을 낀 원무 4명이 중앙에 북을 놓고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북을 울리며 춤을 추고, 협무 12명이 주위를 둘러싸고 돌면서 창(唱)을 부른다. 승전무의 흩어졌다 모여드는 형태는 삼진삼퇴를 뜻하며, 전체가 화려하고 웅장하면서 경쾌한 것이 특징이다. ‘영산회상’가운데 삼현도드리와 타령을 반주음악으로 쓰며, 춤가락은 순박하면서 예스럽고 독특한 향토적 특색을 갖고 있다. 칼춤의 의상은 홍치마에 흰저고리, 흑쾌자, 전립, 홍띠, 색동한삼 등을 갖추며 무구로 1쌍의 칼을 든다. 승전무의 우아한 춤사위와 가락 그리고 치밀한 짜임새는 예술적 가치가 높고 전통에 뿌리를 둔 춤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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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55: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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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함안 말이산 고분군 (咸安 末伊山 古墳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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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Ο 아라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37기의 대형 고분들이 높은 곳에 열을 지어 위치하여 있는 이 고분군은 일제 강점기 때 처음 조사되었는데, 당시 34호분(현 4호분)은 봉토의 지름이 39.3m, 높이가 9.7m나 되는 큰 규모의 무덤이었음. 최근에는 8호분 조사를 통해 다섯 사람의 순장 인골이 확인되었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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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56: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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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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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5:22: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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