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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반] 6월 민주항쟁 타임라인_1,2,3모둠 by 신민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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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9-16 08:52: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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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title>
         <author>m27d251212</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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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0.26사태(박정희 대통령 피살)</p><p><strong><mark>박정희 밑에 사람들 중 한 명인 김재규가 박정희와 함께한 술 자리 와중 벌떡 일어나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차지철 경호실장을 먼저 쏘아 오른팔에 관통상을 입혔다.</mark></strong> 이를 본 박정희 대통령이 “뭐하는 짓이야”라고 소리 지르자 김재규는 박정희의 가슴을 쐈다. <strong><mark>박정희는 사망이로써 박정희 정부는 무너져 내렸다. </mark></strong></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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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5 02:33: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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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title>
         <author>m27d251212</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tlucgeg1y0l5gysx/wish/3602983075</link>
         <description><![CDATA[<p>12.12군사반란</p><p><strong><mark>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전두환을 필두로한 신군부 세력은 12.12사태를 일으키고 저우건을 장악한다. </mark></strong>결국 전두환은 대통령의 취임했고 개헌을 단행한다. 이것이 8차 개헌이다.주요 골자는 대통령간선제와 7년 단임이었다. 하지만, 7년 단임제라는 허울을내세었을뿐 실제론 간선제를 통해서 장기집권을 하겠다는 속셈이 감춰져있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요규는 연이어 일어난 사건으로 폭발하게 된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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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5 02:36: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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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87년 1월 13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title>
         <author>ilovetomorrowxtogether</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tlucgeg1y0l5gysx/wish/3602992752</link>
         <description><![CDATA[<p>경찰은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혐의도 없었던 <strong><mark>서울대 학생 박종철을 잡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폭행과 가혹한 고문 등을 가해, 결국 사망을 이르게 했다. </mark></strong>하지만 이것을 숨기기 위해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어이 없는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당시 부검의 양심고백으로 인해 1월 19일 4일 만에 진실이 밝혀지고, 이 사실은 6.10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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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5 02:41: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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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87년 6월 9일 이한열</title>
         <author>m27d251212</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tlucgeg1y0l5gysx/wish/3613276777</link>
         <description><![CDATA[<p>1<strong><mark>987년 6월 9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개최하기로 한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 쟁취 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가 개최되었다.</mark></strong> 전국에 갑호비상령이 떨어진 가운데 이한열도 이 대회에 참가하였다. <strong><mark>교문을 사이에 두고 ‘백골단’과 시위대가 공방을 나누는 가운데 충돌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이한열은 연세대 정문 앞에서 경찰이 쏜 SY-44 직격 최루탄에 뒷머리를 피격당하여 쓰러졌다.</mark></strong>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내일 시청에 가야하는데..”였다. 언젠가 그가 노트에 메모한 대로 “피로 얼룩진 땅, 차라리 내가 제물이 되어 최루탄 가스로 얼룩진 저 하늘 위로 날아오르고 싶다”던 그는 사경을 헤매다 7월 5일 결국 사망하였다.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건’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학생과 시민들의 광범위한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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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01 11:40: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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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10 국민 운동</title>
         <author>m27d251212</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tlucgeg1y0l5gysx/wish/3613285942</link>
         <description><![CDATA[<p><strong><mark>1987년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는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조작규탄및 호헌철폐 민주헌법쟁취를위한 범국민대회’를 개최하여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mark></strong>같은 날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노태우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 전두환 정권의 간선제 호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급격히 확산되었다. 15일까지 명동성당농성투쟁, 18일 최루탄추방대회, 26일 민주헌법쟁취대행진에 이르기까지 <strong><mark>20여 일간 전국적으로 500여 만 명이 참가하여 4·13호헌조치 철폐, 직선제개헌 쟁취, 독재정권 타도 등 반독재민주화를 요구하였다</mark></strong></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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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01 11:46: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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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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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부의 개헌논의 유보 (4.13 호헌조치)</title>
         <author>ilovetomorrowxtogether</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tlucgeg1y0l5gysx/wish/3614551532</link>
         <description><![CDATA[<p><strong><mark>하지만, 전두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1987년 4월 13일, 그는 '대통령 특별담화'를 발표, 개헌 논의를 유보하겠다고 밝혔다.</mark></strong></p><p>이후 전두환은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1987년 내에 공정한 선거관리를 통해 자유 경선의 분위기가 보장되는 가운데 차질없이 실시할 수 있게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으며, 또 민정당의 후임 대통령 후보는 조속한 시일 안에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물 가운데서 당헌 절차와 민주 방식에 따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p><p><strong><mark>하지만, 이는 ‘호헌 조치’라는 그 이름대로 현행 헌법에 따라 권력을 이양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국민들의 큰 기대를 얻을 것이라 믿었으나, 기대는커녕 오히려 반발을 가져오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mark></strong> 곧바로 이튿날인 4월 14일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등 각계 인사들이, 호헌 조치를 비판하는 시국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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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02 02:56: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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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른 시위들</title>
         <author>m27d251212</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tlucgeg1y0l5gysx/wish/3614557141</link>
         <description><![CDATA[<p><strong><mark>6·10항쟁을 시작으로 6월 18일 최루탄 추방 대회, 26일 ‘민주헌법쟁취 국민평화대행진’ 등 6월 내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 시위가 이어져다. 시위 구호는 “호헌철폐”, “독재타도”, “직선제 쟁취”로, 시민들은 전두환 정부의 즉각적인 퇴진과 직선제 개헌을 요구했다. </mark></strong>특히 6·26평화대행진은 전국 37개 시·군에서 열렸는데, 4·19 이후 최대 규모였을 뿐 아니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다음날 ‘호헌철폐 및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현 정부는 이제 국민의 뜻에 승복, 새 헌법에 의한 정부이양 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했고, “위대한 민주 승리의 날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고 천명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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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02 02:59: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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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29 선언</title>
         <author>m27d251212</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tlucgeg1y0l5gysx/wish/3614558531</link>
         <description><![CDATA[<p><strong><mark>결국 전두환 정부와 신군부는 6월 항쟁에 굴복하고 ‘6·29선언’을 발표한다. 선언은 6월 29일 오전 민정당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노태우 대통령선거 후보에 의해 발표되었다. </mark></strong>사료에서 볼 수 있듯 <strong><mark>선언에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즉각적인 대통령 선거 실시를 비롯해, 대통령선거법 개정, 김대중의 사면 복권 등이 우선적으로 담겨있다. </mark></strong>선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내용들도 담겨있다. <strong><mark>국민기본권과 인권침해 시정, 언론의 자유 보장, 지방자치제 및 대학 자율화 실현, 정당의 건전한 활동 보장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6·29선언에 사회 제반 민주화에 대한 요구들도 일부 수용되었음을 보여준다. </mark></strong>그러나 전두환 정부의 인식이 담겨있는 내용도 확인 가능하다. ‘사회정화 조치’에 관한 대목이 그러한데, 이 조치는 전두환 정부에 의해 진행되었던 사업으로 노태우 대통령 당선 이후 “범죄와의 전쟁”으로 다시 한 번 반복되었다. 또한 야당을 “폭력을 써서라도 일방적인 주장만을 관철”시키려는 정당으로 규정하고 더 이상 참고만 있지 않겠다는 언사도 보이는데, 이는 향후 선거를 대비한 공세였다고도 볼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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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02 03:00: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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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박정희 정권때부터 이어져온) </title>
         <author>m27d251212</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tlucgeg1y0l5gysx/wish/3614574549</link>
         <description><![CDATA[<p>1980년 5·18 민주화운동으로부터 멀게는 4·19혁명으로부터 시작된 반독재 운동이자 민주화운동은, 1987년 ‘6월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분출되어 수십 년간 이어온 독재체제를 끊어낼 수 있었다<strong><mark>. 국민들은 1972년 10월 유신 이후 뿌리째 빼앗긴 대통령 선거권과 국민의 기본권을 바라고 있었고, 더이상 ‘체육관 대통령’을 용납하려고 하지 않았다환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 헌법개정 등 국민들의 민주주의 요구에 강경 탄압으로 일관했다.</mark></strong> 론을 통해 독재 반대 시위를 벌이는 대학생들을 좌경용공 으로 매도하였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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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02 03:08: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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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두환 등장</title>
         <author>m27d251212</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tlucgeg1y0l5gysx/wish/3614585677</link>
         <description><![CDATA[<p><strong><mark>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은 1980년 9월 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되었다.<br></mark></strong></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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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02 03:14: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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