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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리오너라 순창 [순창읍] by DoriTeache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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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1-10 04:55: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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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창읍 순화리</title>
         <author>doriedu</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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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지명유래: 통일신라 때 살기좋고 인심이 좋은 곳이라 하여 순화리라 불림</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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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05: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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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창읍 남계리</title>
         <author>doriedu</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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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지명유래] 조선 고종때까지 하천지라 부르다가 1930년에 금산을 뒤에 두고 거울같은 맑은 시냇물이 남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남계라 개칭</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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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05: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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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창읍 장덕리</title>
         <author>doriedu</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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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지명유래] 맹씨가 맨처음 터를 잡았다 하여 맹가당이라 하였으며 병자호란 때에 한씨가 맹가터를 지나 닭모양과 같은 바위에 쉬고 있을때 날짐승이 날으면서 닭바위,닭바위,닭바위 하고 3번 우는 것을 보고 닭바위라고 부르게 됨. 이후 덕을 쌓아야만 많은 인물이 배출된다 하여 장덕마을이라 불림</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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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06: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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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창읍 복실리</title>
         <author>doriedu</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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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지명유래] 칠원 제씨가 이곳에 처음으로 터를 잡아 정착하면서 복동이라고 하다가 복골이라 하였는데 45년에 해방되면서 복실이라고 함</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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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06: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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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창읍 백산리</title>
         <author>doriedu</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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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지명유래] 정월 대보름날에 마을 뒷산에서 천용제를 지내고 제사상에 올린 돼지머리는 제를 지낸 후 나무밑에 묻는 풍속이 전해 내려옴</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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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07: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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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창읍 교성리</title>
         <author>doriedu</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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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지명유래] 고려 때에는 오산(烏山)이라고 하였으며 숙종 당시 군수 조태기가 향교를 완공하여 오늘에 이름</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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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08: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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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창읍 가남리</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622165</link>
         <description><![CDATA[<p>[지명유래] </p><p>- 가잠(佳岑) : 조선 세조때 신말주와 함께 낙향하여 남산에 살다가 대정으로 이사와서 살았던 선비의 개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아 찾아보니 현 가잠마을에서 새끼를 낳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p><p>이때 노승이 이곳을 지나다가 개가 잠자는 형국의 명당이라 하여 개잠이라 불렀으며 조선 고종때 가잠이라 하였다.</p><p>- 남산(南山) : 오산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남산이라 함</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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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08: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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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창읍 신남리</title>
         <author>doriedu</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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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지명유래]</p><p> - <strong>대정(大亭)</strong> : 해방 전까지 이곳에는 일하다 놀 수 있는 30평정도의 큰 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대정이라 하였다.</p><p>- <strong>무수(舞袖)</strong> : 남산마을의 고령 신씨가 산수좋은 이곳에 선산을 정하고 묘를 만들어 3년상을 치르는데 스님이 하늘에서 춤을 추고 내려왔다 하여 무수라고 불렀다고 전해짐</p><p>- <strong>탄금(彈琴)</strong> : 선녀가 춤을 추고 내려올때 이곳에서 가야금으로 장단을 맞춘 곳이라 하여 탄금이라 칭함</p><p>- <strong>성자(聖慈)</strong> : 57년 나환자들이 이사하면서부터 마을을 이루었고 기독교 봉사회에서 신남교회를 설립하면서 성자마을이라고 부르게 됨</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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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09: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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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화리 순창 객사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48호</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630825</link>
         <description><![CDATA[<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8%9C%EC%B0%BD_%EA%B0%9D%EC%82%AC">순창 객사</a>는 유형문화재 제48호 지정되어 있으며, 순창읍 순화리 313에 있다. 순창초등학교 교문에서 약 50m쯤 떨어진 운동장과의 사이에 있다. 본 객사의 창건 연대는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1759%EB%85%84">1759년</a> 7월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98%81%EC%A1%B0">조선 영조</a> 35년)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원래 이곳에는 정당(正堂), 동대청(東大廳), 서대청(西大廳)이 있었으며, 전면에 중문(中門)과 외문(外門), 그리고 옆에 무곽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정당과 동대청만 남아 있을 뿐이다.건물은 원래 정면 13칸, 측면 2칸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지붕은 팔자솟을지붕이었으나, 서대청이 없어진 뒤 동대청만이 팔작지붕으로 남아 있고, 정당 3칸 서쪽은 맞배지붕 형태로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초석(柱礎石)은 장대석 또는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포작(包作)의 형태로 보아 익공(翼工)집이면서도 외목도리를 하여 처마를 길게 밖으로 빼낸 것이 특징이다.</p><p><br/></p><p>객사(客舍)는 조선 시대에 관청의 손님이나 사신이 머물던 곳이다. 새로 부임한 수령은 반드시 객사에 와서 참배를 해야 했으며, 국상(國喪)을 당한 때에도 궐패(闕牌)[조선 시대에, 중국 황제를 상징한 ‘闕’ 자를 새긴 위패 모양의 나무패]에 망배(望拜)하였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정읍의 무성 서원(武城書院)에서 임병찬(林炳瓚) 의병장이 의병을 일으켜 순창객사(淳昌客舍)에 진을 치고 일본군 및 시위대에 맞서 격전을 벌였고, 면암(勉庵)&nbsp;최익현(崔益鉉)이 항일 의병 본부로 사용하다가 일본군에게 붙잡힌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br><br>[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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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13: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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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화리 순화리 삼층석탑</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634081</link>
         <description><![CDATA[<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8%9C%EC%B0%BD_%EC%88%9C%ED%99%94%EB%A6%AC_%EC%82%BC%EC%B8%B5%EC%84%9D%ED%83%91">순화리 삼층석탑</a>은 유형문화재 제26호이며, 순창읍 순화리 514-2에 있다. 순화리 삼층석탑은 현재의 순창여자중학교 본관 건물과 숙직실 사이에 위치해 있다. 고려시대의 전 옥천사(玉川寺) 경내에 건립되었던 것이라 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석탑 가까이에서 지금도 기와 파편과 그릇 파편들이 발견되고 있어 이 부근에 큰 사찰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탑은 화강암으로 조성한 3층인데 탑의 기단부 지대석은 서북쪽의 일부가 지상으로 노출되어 있고 다른 부분은 땅에 묻혀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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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14: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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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미산 [금과 내동 마을에서 바라본 아미산]</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655214</link>
         <description><![CDATA[<p>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 금과면 방축리, 풍산면 죽곡리 경계에 있는 산. 아미산(峨媚山)은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요염하게 웃음 짓는 여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아미산은 말의 꼬리 형상의 마미산(馬尾山), 높고 험하다는 뜻의 아미산(峨嵋山), 배 모양이라는 의미로 배산[舟山], 배를 매 두었던 곳이라는 뜻으로 배맨산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아미산관련항목 보기이 순창읍 방향으로 배를 엎어 놓은 듯한 복주(伏舟) 형상이라서 배산으로 불렸던 것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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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25: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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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창 금산</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663470</link>
         <description><![CDATA[<p>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교성리, 순화리, 남계리, 가남리에 걸쳐 있는 산.</p><p>금산관련항목 보기은 풍수지리상 옥녀가 비단을 짜는 옥녀직금(玉女織錦 ) 형상이라서 금산(錦山)이라 했다는 설과 풍수지리의 대가인 홍성문(洪成文)이 지은 「회문산가(回文山歌)」에 순창읍에 기러기가 내려앉는 형상의 새 금(禽)을 쓰는 금산(禽山)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br>금산은 순창의 북쪽에 솟은 순창읍의 기(氣)를 조성하는 진산이다. 산줄기는 백두 대간&nbsp;장수&nbsp;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가지 친 금남 호남 정맥이 장안산, 팔공산, 마이산, 부귀산을 지나 진안과 완주 경계인 주화산에서 두 갈래를 친다. 그리고 호남 정맥은 북쪽 금남 정맥과 갈라져 남으로 뻗어가며 경각산, 오봉산, 내장산, 백암산, 용추봉, 추월산, 강천산까지 뻗어온다. 이곳에서 호남 정맥과 갈라져 서쪽 왕자봉에서 무이산 쪽으로 가지를 친 순창의 북쪽 산줄기에 원통산과 금산을 형성하였다. 금산의 물줄기는 모두 섬진강에 합수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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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28: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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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경천(팔덕면 -&gt; 순창읍 -&gt; 유등면 -&gt; 섬진강)</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682978</link>
         <description><![CDATA[<p>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nbsp;강천산에서 발원하여 순창읍을 경유하여 유등면에서 섬진강으로 유입하는 하천.<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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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38: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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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양지천(인계면 노령 -&gt; 경천)</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687633</link>
         <description><![CDATA[<p>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북쪽 끝에 있는 노령에서 발원하여 경천으로 유입하는 하천.<br><br>[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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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41: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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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창군 장덕산</title>
         <author>doriedu</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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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장덕리, 복실리와 인계면 갑동리 경계에 있는 산.<br><br>[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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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43: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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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창 대모산(백산리) </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698571</link>
         <description><![CDATA[<p>전라북도 순창군 백산리의 마을이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1.5km 떨어진 대모산 위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터이다. 대모산성 또는 백산리산성, 홀어머니산성이라고도 한다.<br>백제시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초기까지 군량미를 비축해 둔 곳이다. 대모산의 두 산봉우리를 배 모양으로 두르고 있는 포곡식 석성이다. 섬진강 지류인 경천을 해자로 활용하고 있다.</p><p><br/></p><p>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에 있는 이 산성은 대모산성 또는 백산리산성으로 불리는데, 두 산봉우리를 배 모양으로 감싼 형태를 하고 있다.</p><p>옛날 양씨 부인이 살고 있었는데, 설씨 총각이 결혼할 것을 요구하자 부인은 “총각이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올 때까지 내가 성을 다 쌓지 못하면 허락하겠다”고 하였다. 부인이 마지막 성돌을 채 올리기 전에 총각이 돌아오자, 돌을 나르던 치마를 뒤집어쓰고 성벽 위에서 몸을 날려 자결하여 정절을 지켰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p><p>동쪽으로 향한 물이 흘러나가는 구멍(수구)는 직선으로 단을 쌓았으며, 그 북쪽으로는 대모암이란 작은 사찰이 있다. 백제 때 만들어진 산성으로,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까지 군창으로 사용되었다 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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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47: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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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마탑(남계리)</title>
         <author>doriedu</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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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동은 마을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탑.</p><p><br></p><p><strong>[개설]</strong></p><p>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동은 마을의 주민들은 남계리 가마탑을 돌가마 혹은 각시탑이라고 부르며, 남계리 가마탑이 있는 지역을 각시 숲이라고 부른다. 남계리 가마탑 바로 옆에는 탑이 세워지게 된 애잔한 사연의 역사가 비문에 잘 새겨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는 정책으로 비문을 뽑아 근처 수로에 처박아 버렸다.<br><br>1989년 남계리를 조사하였을 때에는 ‘연길하(年吉下)’라고 새겨진 명문 기와를 습득하였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이 지대를 남계리 절터로 보고하고 있으나 이 또한 추측에 불과하다. 이 지역 일대에 민가가 밀집해 있어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매우 힘들다.</p><p><br></p><p><strong>[건립 경위]</strong></p><p>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남도 곡성 땅에 지체 높은 양반이 살았는데 이 집에 혼기가 된 아름다운 규수가 있었다. 그런데 순창 고을의 명문인 조 진사댁과 혼담이 이루어져 하필이면 삭풍이 몰아치는 엄동설한에 시집을 오게 되었다. 어느 날 곱게 단장한 꽃가마를 타고 앞뒤에는 수십 명의 하인들이 이고지고 줄줄이 가다가 각시 숲에 당도하여 잠시 쉬어 가게 되었다.<br><br>그런데 잠시 숨을 돌린 일행이 막 떠나려 할 때였다. 각시가 탄 꽃가마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상하여 여종을 시켜 가마 문을 열고 보니 가마 속 새 각시가 어느새 죽어 있었다. 그러니 기쁘고 신나기만 하던 산행길이 눈물과 통곡으로 얼룩진 초상 마당으로 변하였다. 할 수 없이 발 빠른 젊은 사람을 골라 곡성 본가에 이 사실을 알리게 되고 얼마 후에는 친정 부모가 초죽음이 되어 각시 숲에 당도하여 방성통곡을 하며 가마를 붙들고 몸부림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딸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저승길이 멀다 한데 어찌하여 더디기만 하느냐고 타이르자 그제야 거짓말처럼 가마가 땅에서 떨어졌다고 한다.<br><br>그 후로 해마다 그날이 오면 각시 숲 일대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각시귀신이 나와 슬프게 우는 것이었다. 여러 해를 그러다가 마침내 동네 사람들이 의논 끝에 각시 숲에다가 가마를 만들어 각시귀신을 위로하고 정월 열나흘 날이 되면 제사를 지내 주기 시작하였다. 그 후부터 각시귀신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각시 숲 마을 사람들이[송재일] 정월 열나흘 날이면 각시탑에 제물을 바치는 행사가 이어져 오고 있다.<br><br>이와 유사한 또 다른 전설이 있다. 지금의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한내리 한사 마을과 우곡리 부근에 집성촌을 이루고 대대로 살던 창녕 조씨(昌寧曺氏) 집안의 묘령의 아름다운 규수와 순창을 본관으로 한 염씨 총각은 양쪽 부모의 허락 아래 장래를 약속하였다. 그런데 연산군(燕山君)이 채홍사(採紅使)라는 벼슬아치들을 통해 전국의 어여쁜 여인을 모조리 잡아들이는 횡포를 자행할 때 조 진사의 딸도 예외는 아니었다. 염씨 총각은 이 사실을 알고도 속수무책의 현실을 한탄하며 식음을 전폐하더니 “조 진사의 딸이 한양 가는 길목에 묻어 달라.”는 말과 함께 죽고 말았다.<br><br>때가 되어 채홍사가 조 진사의 딸을 가마에 태우고 가던 중 염씨 총각이 죽어 묻혀있는 곳에서 잠시 쉬는 동안 조 진사의 딸은 자결하고 말았다. 두 남녀의 사랑을 하늘이 허락하였는지 가마꾼들이 가마를 아무리 들어도 들리지 않고 가마와 시체가 땅에 붙어 버렸다. 조 진사 내외와 순창 군수가 둘의 사랑이 영원하도록 가마탑을 세워 주기로 약속하고서야 가마가 떨어졌다고 한다. 이곳에 돌로 만든 가마탑을 세우고 매년 정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특히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p><p><br></p><p><strong>[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827992">남계리 가마탑</a> [南溪里-塔]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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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50: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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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해오 효자</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706169</link>
         <description><![CDATA[<p>[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에 있는 효자 한해오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p><p><br/></p><p>[개설] 한해오(韓海晤)는 갖바치의 아들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1760년에 편찬된 『옥천 군지』에 의하면 한해오는 아버지가 즐기는 음식을 정성껏 마련해 올리고 떨어지지 않도록 애썼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묘소가 약 7.85㎞[20리] 밖에 있었으나 날마다 가서 곡을 하고 비바람도 피하지 않았다. 또 아버지의 신위(神位)를 방에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올렸으며, 제철 음식은 반드시 먼저 아버지의 영전에 올린 뒤에야 먹었다. 나라에서 한해오의 효행을 듣고 호세(戶稅)를 면제해 주었다. </p><p><br/></p><p>[위치] 효자 한해오 비(孝子韓海晤碑)는 순창읍 교성리&nbsp;순창군청 정문 앞에 있었는데, 순창 향교 경내로 옮겼다. 주소지는 순창군 순창읍 교성리 134번지[교성1길 13]이다.<br><br>[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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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52: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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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창 전통고추장마을 (백산리)</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712020</link>
         <description><![CDATA[<p>순창 전통고추장 민속마을은 순창군이 전통장류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순창전통고추장의 명성과 전통적 제조비법을 이어가기 위해 조성한 마을로 3년여의 조성 기간을 거쳐 1997년에 생겨난 곳이다. 순창군 곳곳에 흩어져 있던 고추장 제조 장인들을 아미산 자락에 있는 순창읍 백산리 일대에 모아 전통고추장민속마을을 형성시켜 관광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현대의 과학이 입증하는 위생적 요구와 맛과 성분이 그대로 살아있는 장인들의 비법이 잘 어우러져 위생적이면서 전통적인 본래 고추장의 맛을 만들어내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마을 전체가 고추장 판매장이자 관광지로, 집집마다 마당에 커다란 고추장과 장아찌 항아리가 가득하고 처마에는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전통미를 더하고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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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55: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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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창 발효테마파크(백산리)</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715518</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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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1:57: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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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산</title>
         <author>doriedu</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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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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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2:06: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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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옥녀봉(백산리)</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735544</link>
         <description><![CDATA[<p>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와 풍산면 죽곡리에 있는 산.<br>옥녀봉(玉女峰)은 『한국 지명 총람』에는 옥녀처럼 용모가 단정하여 얻은 이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 마을 주민에 의하면 햇볕을 가리는 천막을 친 형상이라 하여 전라도 방언으로 채알봉[차일봉]으로 부른다고 했다. 동쪽의 바위산은 『산경표(山經表)』를 편찬한 신경준(申景濬)의 생가가 있는 남산(南山)으로 이어지는 가산이다.<br><br>[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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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2:07: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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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순창향교 대성전(교성리)</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927712</link>
         <description><![CDATA[<p>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교성리에 있는 향교. 1413년(태종 1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그 뒤 군수 김수광(金秀光)이 군 북쪽의 옥천동으로 이건 하였으며, 1560년 군수 신련(申璉)이 중수하였다. 1661년에 군수 윤완지(尹完之)가 이건 하였고, 1694년 낙뢰로 파괴된 것을 1713년에 군수 조태기(趙泰期)가 오산 아래로 이전하여 중창하였다. 1950년에 6·25 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1959년 군수 김인덕(金仁德)이 중수하였으며, 1974년과 1975년에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5성(五聖), 10 철(十哲), 송조 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다. 그러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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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3:57: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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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귀래정(가남리)</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931017</link>
         <description><![CDATA[<p>1975년 2월 5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1456년(세조 2)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19013&amp;ref=y">신숙주</a>(申叔舟)의 아우 신말주(申末舟:1439∼?)가 수양대군이 조카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79818&amp;ref=y">단종</a>을 내몰고 제7대 왕위에 오르자 이에 불만을 품고 벼슬에서 물러나 순창으로 낙향, 자신의 호를 딴 귀래정(歸來亭)을 짓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면서 은둔생활을 하던 곳이다.</p><p>순창읍에서 88올림픽고속도로 진입로를 따라 1㎞ 지점에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74년 다시 세운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10909&amp;ref=y">서거정</a>(徐居正)이 지은 《귀래정기(歸來亭記)》와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57486&amp;ref=y">강희맹</a>(姜希孟)의 시문 등이 액판으로 보존되어 있다.</p><p><strong>[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93674">귀래정</a> [歸來亭]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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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4:00: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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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산(烏山) - 향교 뒷산</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932922</link>
         <description><![CDATA[<p>*오산(烏山):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교성리와 남계리 경계에 있는 산</p><p>*풍수지리상 순창읍의 형상은 기러기가 내려 앉은 모습이고, 순창읍 교성리 뒷산은 까마귀의 형상이라서 오산(烏山)이라고 부른다. </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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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4:02: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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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창군 순창장류박물관(백산리)</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936613</link>
         <description><![CDATA[<p>고추장의 고장, 전북 순창에는 고추장과 된장 등 전통 장류 문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장류박물관이 있다. 전통고추장민속마을 앞에 있는 장류박물관의 입구에 들어서면 관람객을 가장 먼저 반겨주는 고추장 할머니 로봇이 순창 고추장의 내력을 들려준다. 전시실을 둘러보면 다양한 고추장의 종류와 고추장, 된장의 역사 그리고 만들어지는 과정 등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장류 박물관은 직접 보고 체험하는 공간도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절구통에 콩을 넣고 찧어 볼 수도 있고, 현미경을 통해 발효 과정을 관찰할 수도 있으며, 메주발효체험기에서 메주가 숙성되는 가장 좋은 온도와 습도를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만화영화로 만들어진 고추장 이야기도 볼 수 있으며, 작지만 어린이 놀이공간까지 갖추고 있는 등 어린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준비되어 있다. 야외광장에는 장독대, 연자방아와 백제시대 고분 등이 있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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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4:05: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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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모암(백산리)</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940539</link>
         <description><![CDATA[<p>순창 대모암은 백제 시대의 산성터인 순창 대모산성 북쪽에 자리한 사찰이다. 학성이 1933년 창건한 곳으로, 6.25 전쟁 때 거의 폐사되다시피 했다가, 1973년 법당을 중수하였으며 1985년 범종각을 지었다. 1993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대모암은 대웅전, 범종각, 요사채 2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웅전은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건물이다. 내외부에는 단청이 그려져 있고 외부의 벽화에는 화훼도, 심우도가(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것) 그려져 있다. 불벽에는 부처가 있다. 대웅전에는 일제강점기 말에 대모암으로 옮겨져 왔던 ‘대모암 목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여래상이다. 이 불상은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린 자세를 하고 있으며,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이 밖에도 사각형의 얼굴과, 단순화된 옷 주름 등으로 보아 17세기 활동했던 승려 조각가 희장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유물로는 작법귀감, 보장록 등 학술 연구에 중요한 불교 관련 서적들이 있다.</p><p><strong>[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10592">대모암(순창)</a>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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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4:08: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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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옥천골 미술관(남계리)</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2948599</link>
         <description><![CDATA[<p>순창군은 미술문화의 확산과 육성을 위해 양곡창고를 미술관으로 리모델링 하는 사업으로 2015년 7월 미술관 건립에 착공, 2015년 12월 완공과 2016년3월말 공간 기능별 마감 공사를 끝내어,<br>2016년4월22일 순창 공립 옥천골미술관이 정식으로 개관하여 순창군민의 문화향유와 순창을 찾는 일반대중이 쉬어갈 수 있는 국내의 대표적인 공립미술관으로 개관되었다.<br>순창 공립 옥천골미술관은 순창군 순창읍 순창8길 11-8번지에 연면적464.59㎡(지상 2층/전시장.수장고.창작활동실 등) 규모로 세워진 미술관으로 전시관 뿐 만 아니라 교육시설 갖추고 있다.<br>현장체험 위주의 공간 확보 및 테마형 전시기획을 하여 순창 공립 옥천골미술관을 문화관광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br>순창 공립 옥천골미술관은 순창군민의 삶의 시간을 위해 새로운 시대문화를 만들고 가꾸어 후대에 귀감이 되는 세계 속의 순창 공립 옥천골미술관으로 정착하고자 미술관운영 4대 목표를(L.P.C.E)설정 운영하게 된다.<br>그 첫째로 지역주민과 소통하는 미술관(Local)과 참여하는 미술(Participation)을 적극 유도하고 창의적 미술(Creative)로 질 높은 문화를 생산하고<br>지역경제를 발전시키는 미술관(Economy)으로 탈바꿈 하여 찾아 가고 싶은 순창 공립 옥천골미술관으로 만들어 지역주민의<br>문화향유 활성화를 위해 차별화된 운영프로그램구축으로 순창군민 삶의 질 향상시키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해 앞장서 나아갈 계획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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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4:15: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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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순평사 금동여래좌상(순화리)</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3026281</link>
         <description><![CDATA[<p>순평사 금동여래좌상은 순창시가지 북부에 위치한 사찰 순평사 대웅전에 보존되어 있는 석가모니불 금불상이다. 이 불상은 실제 사람과 비슷한 체구를 가지고 있으며 우아하고 귀족적으로 조각되었다. 가사의 양식 등을 보아 고려 말기 및 조선 초기인 14~15세기경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인다. 양쪽에는 최근에 만들어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이 있다. 원래는 남원 지역의 사찰에 보관되어 있다가 담양 지역, 장성 백양사를 떠돌며 부서져 가던 것을 수습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73년에는 다시 금칠을 하였고 1995년에는 순평사 대웅전을 지으면서 지금과 같이 보존하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주변에는 순창향교, 순창객사, 순창시장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p><p><strong>[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30345">순평사 금동여래좌상</a>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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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5:11: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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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충신리 석장승 - 국가민속문화재 제102호</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3031034</link>
         <description><![CDATA[<p>순창 충신리 석장승은 순창 남계리 석장승[국가민속문화재 제102호]과 한 쌍으로, 풍수 비보(裨補) 기능을 하는 미륵불과 성황(城隍) 신상의 조합형 수호 신상이다. 순창 남계리 석장승이 여성상[각시상]이라면 순창 충신리 석장승은 남성상이다. 두 석장승의 공통점은 불상의 안상(眼狀)과 성황 신상의 얼굴상에 장식된 연지를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순창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다. 문화재 안내판에는 석장승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석장승이 아니다. 순창 충신리 석장승은 석장승의 무서운 얼굴 도상과 장군 명문 등 기본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석장승보다는 석인상에 가깝다. </p><p><br></p><p><br></p><p>[충신리 석장승 위치] 순창 충신리 석장승은 원래 전주에서 순창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순창읍 순화리 충신 마을&nbsp;순창 고등학교 동쪽 담장 아래 세워져 있었다. 이후 2004년 12월 남원과 순창 간 도로를 확장하면서 순창 남계리 석장승과 함께 순창읍 남계리&nbsp;순창 문화원 건물 뒤 현재의 자리에 마주 보게 옮겨 놓았다. 원래 충신리 석장승이 세워져 있던 곳은 공터로 남아 있다.<br><br>[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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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5:14: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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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남계리 석장승 - 국가문화유산 제 102호</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3052413</link>
         <description><![CDATA[<p>충신리 석장승에서 25m 떨어진 곳에서 위치함.</p><p>둘은 같은 시기에 조성되었고, 각각 남자와 여자를 형상화한 석장승임.</p><p>순창읍의 북쪽 기운이 허하여 이산과 금산 사이에 석장승 2개를 서로 마주보게 세워놓고 숲을 조성해 북쪽의 허한 기운을 막을 목적으로 세운 것이라고 함.</p><p>남계리는 여성의 모습. </p><p>남계리 암미륵, 각시상이라고도 부름. 원래 위치는 순창에서 남원으로 가는 옛 도로인 남계리 숲에 있었던 것을 2004년 남원 순창 도로를 확장하면서 충신리 석장승과 함께 현 위치로 옮긴 것임. 순창을 지키는 수문신, 노신, 동제신 등 다양한 기능을 한 장승임.</p><p><br/></p><p><br/></p><p>장승은 나무나 돌로 사람 얼굴 모습을 조각해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고 잡귀를 막고 소원을 비는 마을 수호신 역할을 했는데, 두 석장승의 원래 위치를 찾아보니 서로는 700m 간격을 두고 충신리 순창고등학교 동쪽 담장과 남계리 하천 제방 위에서 북쪽을 서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고 함.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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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5:27: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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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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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말주 </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3066446</link>
         <description><![CDATA[<p>신말주(申末舟)[1429~1503]는 1454년(단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같은 해 식년 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1455년(세조 1)에 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정언·예조정랑 대사간·형조 참의 등을 거쳤다. 단종이 폐위된 뒤 처의 고향인 순창에 내려와 거주하였다.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에 귀래정을 지어 학문을 연마하였다. 1476년(성종 7) 다시 벼슬에 나가 전주 부윤으로 재직하면서도 순창의 귀래정을 오갔다고 한다. 1483년 창원 도호부사, 1487년 경상 우도 병마절도사와 대사간, 1488년 첨지중추부사·전라 수군절도사를 지냈다. 1503년(연산군 9) 12월 순창에서 75세로 세상을 떠났다.<br><br>[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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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5:38: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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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설씨부인</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3070239</link>
         <description><![CDATA[<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557">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557</a></p><p>[설씨부인 권선문은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에 위탁보관중]</p><p><br/></p><p>설씨부인은 조선 개국(1392년) 후 첫 여류화가(女流畵家)1)이다. 설씨부인이 남긴 그림과 글씨 『설씨부인권선문(薛氏夫人勸善文)』은 우리나라 국가지정유산 보물(제728호, 1981년 7월 15일)로 지정되어 있다.<br>그녀가 남긴 ‘설씨부인 권선문’은 이름그대로 선한 것을 권하는 글인데, 지역에 있던 사찰인 강천사를 다시 세우기 위해 시주를 권장하는 글로, 사찰을 그린 그림과 함께 구성되었다. 이 권선문은 조선시대 여성 문인이 쓴 최초의 산문 형식의 글이며 신사임당의 글보다도 60여 년이 앞서 있다. 또한 조선 전기 사대부 집안의 여인이 사찰을 복원하는 불사에 관심을 두고, 불교의 인과응보설과 관련된 글을 썼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 자료로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있다. 특히 당대 유행했던 조맹부체를 기본으로 하고있으며 그 밖에도 각종 화조도 등이 남아있어 그녀가 글과 그림에 모두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p><p>설씨부인의 본관은 순창설씨로 이 지역에서 태어나 살았고, 신말주와 혼인하였다. 신말주는 신숙주의 막내동생이다.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역모로 왕이된 세조를 따라 형 신숙주는 조정에 남았고, 동생 신말주는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현재 신숙주는 변절자의 이미지로 낙인찍혀 있으나, 결국 형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른 선택을 했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계유정난 후 신말주는 처가의 고향인 순창으로 내려왔고 이후 본인의 호를 따서 귀래정이라는 정자도 지었다. 남산마을 언덕 위에 위치한 정자에 서면 순창읍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멀리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어우러지는 것을 보고있자면 가슴이 시원하지만 한켠에는 신말주는 어떤 생각을 갖고 이 풍경을 바라봤을까 상상해본다.<br><br><br><br>설씨부인과 신말주는 이곳으로 낙향하여 고령신씨 가문이 순창에서 자리를 잡게되며 이후 후손들이 기거하게 된다. 후손으로는 대표적으로 손자인 신공제를 비롯하여 조선의 산맥체계를 백두대간과 연결된 14개의 정간·정맥으로 집대성한 신경준, 조선후기 풍속화가를 대표하는 신윤복이 있으며 이후 항일운동에 앞장선 독립유공자 신철휴, 신태식, 신악 등 훌륭한 후손이 많이 배출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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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5:41:3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3070239</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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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경준</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3083714</link>
         <description><![CDATA[<p>신경준(申景濬)[1712~1781]은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남산대에서 출생하였다. 1754년(영조 30) 향시 및 증광시 을과에 급제하였고, 1757년 성균관 전적(典籍), 예조·병조 낭관에 임명되었다. 1762년 서산 군수에 제수되었다. 이후 정언(正言)·장령(掌令)·사간 등의 관직을 두루 거쳤다. 1769년 종부시 정(宗簿寺正)으로서 강화의 선원각(璿源閣)을 중수한 뒤 고향에 돌아갔다. 1770년(영조 46)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를 편찬할 때 『여지고(輿地考)』를 담당하였으며, 그 해 6월 6일부터 8월 14일까지 『동국 여지도(東國輿地圖)』를 감수하였다. 이후 좌승지, 북청 부사, 순천 부사, 제주 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1779년(정조 3)에 고향인 순창으로 돌아가서 여생을 보내다가 1781년 70세로 세상을 떠났다.</p><p><br/></p><p>신경준은 문자학(文字學)·성운학(聲韻學)·지리학(地理學) 등을 중심으로 다방면에 걸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언어와 관련된 저서로는 『훈민정음 운해(訓民正音韻解)』, 『일본 증운(日本證韻)』, 『언서 음해(諺書音解)』[동음해(東音解)라고도 함], 『평측운호거(平仄韻互擧)』 등이 있다. 『훈민정음 운해』는 훈민정음의 소리를 도표로 작성하여, 훈민정음의 소리를 발음 기관과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지리학과 관련된 분야의 저서로는 『강계지(疆界志)』, 『산수경(山水經)』, 『도로고(道路考)』, 『산수위(山水緯)』, 『군현지제(郡縣之制)』 등이 있다. 신경준은 조선 팔도의 산천 지리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지리서를 지을 수 있었다. 이외에 『거제책(車制策)』, 『병선책(兵船策)』, 『수차 도설(水車圖說)』, 『논선거비어(論船車備禦)』 등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저술들도 있다.</p><p><br/></p><p>[순원화훼잡설]</p><p>꽃에 대한 설명과 고증, 단상</p><p>순창읍 남산마을에 있는 누정 귀래정(歸來亭)을 세운 사람은 신말주(申末舟)였지만 후손 중 출세한 인사 대부분은 대대로 한양에서 생활했다. 귀래정에는 어쩌다 들렀을 뿐이다. 그 후 8대가 지나 신선영(申善泳)이라는 사람이 고향으로 내려와 귀래정에 다시 살게 되었다. 동쪽 바위 언덕에 새로운 누정을 짓고 못을 팠으며, 못 안에 섬 셋을 두었다. 또 여러 기이한 바위를 모으고 온갖 꽃을 구해 심었다. 이를 순창의 정원, 순원(淳園)이라 했다.</p><p>그 손자가 순원을 물려받아 그곳에서 살았다. 바로 18세기 대표 실학자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ㆍ1712∼1781)이다. 그 역시 학업과 벼슬로 인해 자주 고향을 비웠지만, 조부가 조성한 정원의 꽃나무를 사랑해 여러 꽃의 특성을 간단하게 설명한 후 그에 대한 고증을 겸해 단상(斷想ㆍ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을 붙였다. 그 기록이 바로 《여암유고》(旅菴遺稿)에 실린 〈순원화훼잡설〉(淳園花卉雜說)이다.</p><p>순원에는 연꽃과 난초ㆍ매화ㆍ국화ㆍ철쭉ㆍ앵두ㆍ모란ㆍ작약ㆍ대나무ㆍ백일홍 등 지금도 쉽게 볼 수 있는 수많은 종류의 꽃이 있었고, 조밥나무(常山)ㆍ사계화(四季花) 등 이름이 생소한 꽃도 있었으며, 목가(木茄)ㆍ명사(榠樝)ㆍ면래(眠來)ㆍ어상(禦霜)처럼 어떤 꽃인지 알 수조차 없는 33종의 꽃이 기록돼 있다. 이조차 신경준이 보았던 꽃의 10%에 지나지 않는다 하니, 당시 순창에 얼마나 많은 꽃이 피었는지 짐작이 간다.</p><p>&nbsp;</p><p><strong>백일홍과 국화에 대한 단상</strong></p><p>꽃이 귀한 여름 한 철 붉은 꽃을 연달아 피어 올리는 배롱나무는 꽃이 백일 동안 붉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도 하고, 한자로는 자미화(紫薇花)라고도 한다. 신경준은 〈순원화훼잡설〉에서 자미화를 ‘절도 있는 꽃’으로 예찬했다. “자미화는 먼저 핀 꽃이 지려 할 때 그 뒤의 꽃이 이어서 피어난다. 많고 많은 꽃잎을 가지고 하루하루의 공을 나누었으니 어찌 쉽게 다함이 있겠는가? 아마 절도의 의미를 터득함이 있는 듯하다.”&nbsp;</p><p>도연명이 ‘음주(飮酒)’에서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꽃 따다가 / 유연하게 남쪽을 바라본다”라고 읊은 이후 국화는 군자의 은일(隱逸)과 지조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고, 서리와 추위에도 굴하지 않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꽃이 되었다. 신경준은 다른 말을 했다. 〈순원화훼잡설〉에서 “내가 보기에 국화는 사양하는 정신에 가깝다. 봄과 여름에 온갖 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다투지만 (중략) 국화는 입 다물고 물러나 있다가 여러 꽃이 마음을 다한 후에 홀로 피어 풍상에 꺾이는 것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으니 양보하는 정신에 가깝지 아니한가.”</p><p><br/></p><p><strong>고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글, 〈이름 모를 꽃〉</strong></p><p>〈순원화훼잡설〉에 실린 내용 중 특히 주목받는 대목은 ‘이름 모를 꽃’(無名花)에 대한 설명이다. 흔히 ‘학문은 사물의 이름을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우리는 정원이나 교외에 피어 있는 꽃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경준은 이름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름을 모른다 해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꽃이라면, 그것대로 감상하자는 여암의 선언은 꽃 이름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nbsp;</p><p>&nbsp;</p><p>● 다음은 고교 국어 교과서(신사고 발행)에도 실린&nbsp;</p><p>&lt;이름 모를 꽃&gt; 전문이다.&nbsp;</p><p>순원(淳園)의 꽃 중에 이름이 없는 것이 많다. 대개 사물은 스스로 이름을 붙일 수 없고, 사람이 그 이름을 붙인다. 꽃이 이미 이름이 없다면 내가 이름을 붙이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또 어찌 꼭 이름을 붙여야만 하겠는가?</p><p>사람이 사물을 대함에 그 이름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은 이름 너머에 있다. 사람이 음식을 좋아하지만 어찌 음식 이름 때문에 좋아하겠는가? 사람이 옷을 좋아하지만 어찌 옷 이름 때문에 좋아하겠는가? 여기에 맛난 회와 구이가 있으니 그저 먹어보기만 하면 된다. 먹어 배가 부르면 그뿐 무슨 생선의 살인지 모른다 하여 문제가 있겠는가? 여기 가죽옷이 있으니 입어보기만 하면 된다. 입어보고 따뜻하면 그뿐 무슨 짐승의 가죽인지 모른다 하여 문제가 있겠는가? 내게 꽃이 있는데 좋아할 만한 것을 구했다면 꽃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하여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p><p>이름이란 구별 짓기 위한 것이다. (중략) 구별하기 위한 것이라면 대소장단의 크기, 청황적백의 색깔, 동서남북의 방위 등 어느 것 하나 이름 아닌 게 없다. 가까이 있으면 ‘여기’라 하는데 이 역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멀리 있으면 ‘저기’라고 하는데 그 또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이름이 없어서 ‘무명(無名)’이라 한다면 ‘무명’ 역시 이름인 것이다. 어찌 다시 이름을 지어다 붙여서 아름답게 치장하려고 하겠는가?</p><p>예전 초나라에 어부가 있었는데 초나라 사람이 그를 사랑해 사당을 짓고 대부 굴원(屈原)과 함께 배향했다. 대부 굴원은 《초사》(楚辭)를 지어 스스로 제 이름을 찬양해 정칙(正則)이니 영균(靈均)이니 했으니, 이로서 대부 굴원의 이름이 정말 아름답게 되었다. 그러나 어부는 이름이 없고 단지 고기 잡는 사람이라 어부라고만 했으니 이는 천한 명칭이다. 그런데도 대부 굴원의 이름과 나란히 먼 후세까지 전해지게 되었으니, 어찌 그 이름 때문이겠는가? 이름은 아름답게 붙이는 것이 좋겠지만 천하게 붙여도 무방하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아름답게 해주어도 되고 천하게 해주어도 된다. 아름다워도 되고 천해도 된다면 꼭 아름다움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는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면 없는 것이 정말 좋을 것이다.</p><p>어떤 이가 말했다. “꽃은 애초에 이름이 없었던 적이 없는데 당신이 유독 모른다고 하여 이름이 없다고 하면 되겠는가?”&nbsp;</p><p>내가 말했다. “없어서 없는 것도 없는 것이요, 몰라서 없는 것 역시 없는 것이다. 어부가 또한 평소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요, 어부가 초나라 사람이니 초나라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초나라 사람들이 어부에 대해 그 좋아함이 이름에 있지 않았기에 그 좋아할 만한 것만 전하고 그 이름은 전하지 않은 것이다. 이름을 정말 알고 있는데도 오히려 마음에 두지 않는데, 하물며 모르는 것에 꼭 이름을 붙이려고 할 필요가 있겠는가?”</p><p>출처 : 열린순창(<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www.opsc.kr">https://www.opsc.kr</a>)</p><p><br/></p><p>[고전수필 이름 없는 꽃] <br><br>[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br><br>[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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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5:49: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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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최익현</title>
         <author>doriedu</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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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ncms.nculture.org/righteous-army/story/9365">https://ncms.nculture.org/righteous-army/story/9365</a></p><p><br/></p><p><strong>최익현</strong>(崔益鉉,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1833%EB%85%84">1833년</a>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12%EC%9B%94_5%EC%9D%BC">12월 5일</a>~<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1907%EB%85%84">1907년</a>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1%EC%9B%94_1%EC%9D%BC">1월 1일</a>(음력: 1906년 11월 17일)은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B2%A0%EC%A2%85">철종</a> 치세 시절부터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C%A0%9C%EA%B5%AD_%EA%B3%A0%EC%A2%85">고종</a> 치세 시절까지 충청도 신창현감·호조참판·경기도 관찰사 등을 지낸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조선</a> 말기와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C%A0%9C%EA%B5%AD">대한제국</a>의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B9%98%EC%9D%B8">정치인</a>이며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F%85%EB%A6%BD%EC%9A%B4%EB%8F%99%EA%B0%80">독립운동가</a>이자,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wikipedia.org/wiki/1905%EB%85%84">1905년</a>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84%EC%82%AC%EB%8A%91%EC%95%BD">을사늑약</a>에 저항한 대표적 의병장이었다.</p><p><br/></p><p>구한말 일제의 만행은 끝을 모르고 자행되었다. 이에 전국의 선비들은 그에 대처하여 끝없이 저항을 했다. 그 중의 하나가 의병(義兵)이 되어서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이다. 순창에서도 의병들이 일어나서 일제의 만행에 맞섰다. 1905년(고종 42)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임병찬(林炳瓚)은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의병을 모아 스스로 의병장이 된 후 순창객사에서 진을 치고 일본군에 맞서 격전을 벌였다. 또한, 순창객사는 임병찬(林炳瓚) 의병장이 싸운 곳이기도 하지만,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이 1906년 6월 의병을 일으켜 항전한 곳이기도 하다.</p><p><br/></p><p>그때 최익현은 순창객사를 항일의병 본부로 사용하였다. 결국 이곳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혀 끌려갔지만, 순창객사는 의병의 본거지가 되어서 또 다른 객사의 구실을 했다. .</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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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5:54: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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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남리 귀래정신말주후손세거지</title>
         <author>doriedu</author>
         <link>https://padlet.com/doriedu/t9cnlwppxvu1r2di/wish/3443098048</link>
         <description><![CDATA[<p><br></p><p>1994년 8월 10일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79818&amp;ref=y">단종</a> 때의 문신 신말주(申末舟:1429∼?)와 정부인(貞夫人) 설씨(薛氏)를 비롯하여 신경준(申景濬) 등 그의 후손들이 살았던 곳이다.</p><p>신말주는 신숙주(申叔舟:1417∼1475)의 동생으로 1429년(세종 11)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자즙(子楫), 호는 귀래정(歸來亭)이다. 1451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454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면서 벼슬길에 올랐으나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13247&amp;ref=y">세조</a>가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부인 설씨의 고향인 순창으로 내려와 귀래정을 짓고 시문을 벗삼아 지냈다.</p><p>이후 신씨는 대대로 세를 이루어 명문가로 자리잡았는데 특히 11대손인 신경준은 영조 때의 학자로 1754년 문과에 급제, 강계(江界)·순천(順天) 부사, 제주목사(濟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1996년부터 복원사업이 추진되는 이곳에는 신경준이 그린 고지도 3점과 설씨부인권선문첩(薛氏夫人勸善文帖)을 비롯한 여러 점의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다.</p><p><strong>[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93926">설씨부인, 신경준 선생 유지(귀래정 신말주후손세거지)</a> [薛氏婦人, 申景濬 先生 遺址(歸來亭 申末舟後孫世居地)]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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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9 05:59: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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