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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화로 나라를 지키다, 간송 전형필 (목) by 마중물논술_이진선T</title>
      <link>https://padlet.com/book_kebi/kansong2</link>
      <description>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1-08-05 02:40: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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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배보다 더 소중한 민족문화 수호의 일념</title>
         <author>book_kebi</author>
         <link>https://padlet.com/book_kebi/kansong2/wish/1669533025</link>
         <description><![CDATA[<div>&nbsp;  무언가를 1만개를 모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끈기를 요한다. <mark>하지만 간송 전형필 선생은 본인의 일생과 재산을 바쳐 고서적 1만 여권과 미술품 3000여 점을 수집했다.</mark> 이중에는 <strong><mark>혜원 신윤복의 &lt;단오풍정&gt;, 겸재 정선의 &lt;해악전신첩&gt;, &lt;훈민정음 해례본&gt; 등 가치를 헤아릴수 없는 한국 문화의 근간이 다수 포함돼있다.</mark></strong></div><div>&nbsp; &nbsp;</div><div>&nbsp;  <strong>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문화재를 보호해 나라를 지켰다고 평가 받는다.</strong><strong><mark> 전국에 뿔뿔이 흩어진 문화재를 모으고 해외로 반출될 위기에 처한 문화재를 지켜기 때문이다.</mark></strong> 때로는 기와집 400채를 살 거금으로 도자기 20점을 인수하고 당시의 대기업인 일본의 상회와 경매에서 맞붙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mark>그렇게 간송 선생이 하나씩 소장하게된 문화재는 현재까지 한국 미술사학계를 발전시킨 주요 자료가 됐다.</mark><strong><mark> </mark></strong>오세현 간송미술관 연구원은 “몽유도원도처럼 일본에 소장되었다면 미술사 연구에 제약이 많았을 것”이라며 "간송 선생이 겸재 정선의 주요 작품을 보존했기에 ‘진경산수’라는 개념이 등장할 수 있었다”며 이라고 말했다.</div><div>&nbsp; &nbsp;</div><div>&nbsp;  간송 선생은 1906년 배오개(현재 종로구 인의동)에서 2남 4녀 중 늦둥이 차남으로 태어났다. 각종 벼슬을 지내고 배오개 상권을 장악하면서 <strong>서울 일대와 충정도, 황해도의 대지주로 거듭난 집안에서 태어난 전형필</strong>은 어의동공립보통학교와 휘문고등보통학교에 다니며 신식교육 받았고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을 했다.</div><div>&nbsp; &nbsp;</div><div>&nbsp;  간송 선생이 문화재를 수집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그의 막대한 재산이 있었다. 그는 14살에 막대한 재산을 지닌 집안의 적손이 된다. 전형필 선생은 후사가 없는 작은 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 작은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았으며 그의 친형인 전형설이 28살 젊은 나이로 요절해 생가의 재산도 물려받았다. &lt;간송 전형필 선생의 민족 문화주의 철학&gt; 논고를 저술한 장재천(용인대 교육대학원) 교수는<mark> “경제적인 뒷받침이 없다면 어려웠을 일이지만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고 간송은 민족문화수호 일념으로 문화재 수집에 할애했다”</mark>고 평가했다.</div><div>&nbsp; &nbsp;</div><div>&nbsp; <strong>간송 선생이 고려·조선 문화재 중에서도 정수만을 수집할 수 있었던 데에는 주변인의 도움도 컸다. </strong>휘문고보 시절 미술선생님이자 서양화가였던 고희동의 소개로 만난 <strong><mark>오세창은 간송의 문화재 수집에 일종의 ‘멘토’ 역할을 했다.</mark></strong> 추사 김정희의 제사인 역관 오경석의 아들이자 신라대부터 우리나라의 서화·글씨를 정리한 &lt;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gt;을 저술한 <strong>오세창은 간송에게 문화재의 가치에 대한 감식안을 키워주는 스승이었다.</strong> 오세현 연구원은 “간송은 29살부터 문화재 구입을 시작했다"며 "할아버지 벌이었던 오세창 선생의 미술작품에 대한 조언과 도움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div><div>&nbsp; &nbsp;</div><div>&nbsp;  <strong><mark>또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손과 발이 돼 준 거간꾼 덕분에 간송 선생은 다양하고 많은 문화재를 수장할 수 있었다.</mark></strong> 거간꾼이란 간송 선생대신 경매에 나가거나 전국의 유명 문화재를 보유한 사람을 수소문해 문화재를 사들인 중개인을 말한다. <strong>간송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거간꾼은 이순황이다. </strong>간송의 수집활동은 경영위기에 처한 한남서림을 이순황을 대리인으로 삼아 인수하고 더욱 활기를 띤다. 장재천 교수는 <strong>“당시 국내에서 고서적과 고미술품을 수집하고 판매하는 곳이 없었다는데 그런 중심거점이 된 곳이 한남서림”</strong>이라고 말했다.</div><div>&nbsp; &nbsp;</div><div>&nbsp;  그 예전에도 미술품 수집은 재테크의 수단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strong><mark>간송의 문화재 수집은 재산을 증식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문화재 보존과 전수’에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mark></strong> 오세현 연구원은<strong> “심사정의 ‘촉잔도권'은 간송 선생이 당시 5000원을 주고 구입했지만 6000원을 들여 복원을 했다”</strong>며 “단순히 부를 축적하기 위해 미술품을 사들였다면 보존할 돈으로 다른 미술품을 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병선(인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도 “그 시대에도 이재를 위해 문화재를 수집한 사람이 많았다”며 <mark>“</mark><strong><mark>‘지켜내고자’했던 의지가 간송이 가진 차이</mark></strong><mark>”</mark>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간송은 문화재의 미래 전수를 염두에 두었다. 신간 서적을 구입할 때면 복수로 갖춰 분실과 소실에 대비했다는 일화는 문화재와 보존에 대한 간송의 혜안과 아량을 보여준다.</div><div><br><br>고대신문, 이영현 기자</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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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8-05 02:54: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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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훈민정음 해례본(민태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book_kebi/kansong2/wish/1669900805</link>
         <description><![CDATA[<div>훈민정음 해례본은 경상도 안동에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었다.<br>이 소식을 간송이 들었고, 이순황이라는 중간거래인 덕분에 아직 국내에 발견되지 않은 '훈민정음 해례본' 을 마침내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br><br>책주인이 값으로 1천 원을 불렀지만 간송은 1만 원을 주인에게 주었다.&nbsp; 훈민정음의 가치가 어마어마 하기 때문에 값에 맞는 거래를 해야 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nbsp;<br><br>간송은 숨이 멎는듯한 느낌이 들었다.<br>왜냐면 이 거래가 알려지는 순간 조선총독부가 눈에 불을 키고 달려올 것이기 때문이다.&nbsp;<br><br>결국 이 귀하디 귀한 훈민정음은 간송이 얻게 되었다.<br>한글을 못 쓰던 일제강점기에서 '훈민정음 해례본' 을 얻은 것은<br>우리 민족을 감싸는 한줄기의 빛이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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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8-05 10:48: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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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존 개스비로부터 되찾은 우리 문화재_이경표</title>
         <author>lgp1015</author>
         <link>https://padlet.com/book_kebi/kansong2/wish/1669901190</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에 사는 영국인 존 개스비라는 사람이 있었다.<br>그는 고려자기에 푹 빠져 고려자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br>일본에서 구한 것들로는 만족하지 못한 개스비는 서울 뿐만 아니라 부산이나 광주 등 지방의 골동상품점까지 돌아다니며, 자기를 수집했다.<br>그는 고려자기에 대한 칭찬을 아끼자 않았다.<br>그래서 고미술품 수집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개스비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br><br>어느날, 설맞이에 분주한 서울의 한 골동상점에 개스비가 왔다.<br>그는 여기에 '청자상감정병'과 '백자향로'를 사러 왔다.<br>주인은 시기를 잘못 잡아 안 된다고 했지만, 개스비가 성사시켜 달라고 애원해서 일단 보여주었다.<br>개스비는 그것을 보고 한동안 넋을 잃었다.<br>그리고 결국엔 정병과 향로를 샀습다.<br>그는 수고비를 두둑히 주고는 일본으로 갔다.<br><br>간송도 개스비의 이야기를 들었다.<br>그가 20년동안 도자기를 수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개스비의 수장품을 모두 찾아오기로 결심했다.<br>그래서 그는 개스비는 영국인이니 언젠가는 일본으로 돌아갈거라는 생각을 하고 개스비가 수장품을 처분한다는 정보를 들으면 자신에게 이야기 해 달라고 했다.<br><br>나중에 일본이 심각한 변란을 일으켰을 때, 개스비가 수장품들을 처분한다는 정보를 듣고 도쿄로 가 개스비를 만났다.<br>그들은 고려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br>그리고 결국엔 개스비는 그가 이 수장품들을 가치있게 가질 수있다고 생각하고 모란무늬가 있는 청자 한잔과, 청자 향합 한개, 총 두점만 기념으로 간직하고 나머지 20점을&nbsp; 40만원에 모두 전형필에게 주었다.<br>지금 돈으로 치면 1200억 원인데 그만큼 가치가 있다.<br>왜냐하면, 20점 중에서 4점이 국보, 3점이 보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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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8-05 10:49: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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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해악전신첩_정우용</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book_kebi/kansong2/wish/1669901378</link>
         <description><![CDATA[<div>장형수(고미술품 중간거래인)가 경기도 용인에 사는 친일파 집안인 손병준의 집에 가 그림들을 구경하고 사려고 했다.<br>하지만 손병준은 그림을 보여주고 팔지는 않았다. 구경하는 사이 해는 저물었다.<br>늦은 밤이 되어 결국 하룻밤 자는데 새벽에 화장실이 급해서 밖에 나갔다.<br>그때 손병준 집 머슴이 문서를 마구 아궁이에 넣고 있었는 것을 보았다. 그 중 쪽빛 비단에 감싼 문서가 보였다.<br>자세히 보니&nbsp;겸재 정선이 그린 귀한 화첩이었다 .<br>그 귀한 화첩이 불타 사라지기 전 본 게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고 손병준한테 사겠다고 했다.<br>손병준이 20원 판다 해&nbsp;장형수는 20원에 이 귀한 화첩을 샀다.<br>간송은 장형수에게 그림에 값하는 만큼의 대가를 지불했다.<br>하마터면 불쏘시개가 될뻔 한 이 귀한 화첩은 지금 다행히 멀쩡히 박물관 전시되어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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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8-05 10:49: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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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김세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book_kebi/kansong2/wish/1669901407</link>
         <description><![CDATA[<div>청화백자는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장에 등장했다.<br>세계적인 골동거상인 야마나카도 유명한 청화백자를 사기 위해 경성으로 왔다. &nbsp;<br><br>경매가 시작됐다.<br>10원, 20원, 100원, 200원 그렇게해서 1000원, 2000원...<br>점점 올라갔다.&nbsp;<br>이때 1000원이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다. &nbsp;<br><br>결국 10000원 대로 올라갔다.<br>경매가 만 원대로 올라가면서 비싸지니까 10원 단위로 오르기 시작한다.&nbsp;<br><br>결국 14,580원에 낙찰되어 간송이 이겼다. 지금 돈으로 치면&nbsp; 45억 원 정도 된다. 원래 경매를 하면 깔끔하게 단위가 끝난다.&nbsp;<br>즉 580원은 야마나카와 간송 선생님의 치열한 흔적이었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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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8-05 10:49: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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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청학매병_이경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book_kebi/kansong2/wish/1669908939</link>
         <description><![CDATA[<div>청자상감은 마에다가 갖고 있었는데 전형필이 와서 사려고 했다. 마에다는 전형필이 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이만 원에 팔겠다고 했다. 놀랍게도 전형필은 그 자리에서 이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br><br>돈을 한 푼도 깎지 않고 고민도 없이 바로 이만 원을 냈다.&nbsp;<br>큰돈을 냈지만 아까워하지 않고 청자상감을 얻은 것에 기뻐했을 뿐이다.<br><br>그렇게 전형필은 청학매병을 샀다.<br>그 후에 일본인들이 자신들에게 팔라고 하자 형필은 이것보다 더 좋은 것 을 준다면 주겠다며 정중히 거절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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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8-05 11:05: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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