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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가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꿈을 지키는 방법 by DEC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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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gt;를 읽고</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2-11-17 10:27: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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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톨스토이와 농민들의 삶</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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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nbsp; &nbsp;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대문호이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lt;전쟁과 평화&gt;, &lt;안나 카레리나&gt; 등의 장편 소설과 &lt;바보 이반&gt; 과 같은 단편 소설이 잘 알려져 있다. 1828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톨스토이는 당시 백작 가문 출신으로 귀족이었으나 어렵게 생활하는 농민들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당시 러시아의 농민들은 노예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여 농노라고 불릴 정도였다. 이러한 농민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한 톨스토이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번민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자기 영지 내의 농민 생활을 개선하려 시도했지만 실패하였다.&nbsp;<br><br>&nbsp; 또한 톨스토이는 문학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과 대다수 국민들의 빈부격차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 귀족들은 톨스토이의 책을 출판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톨스토이의 문학에서는 그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잘 드러나는데, 그는 평소 원시적이며 간소한 생활을 최상의 것으로 추구했다. 그는 자신이 오랜 삶 속에서 얻어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천과 사랑의 삶을 문학에 담아 전달하고자 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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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11-18 11:12: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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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차르의 독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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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nbsp; 러시아는 아시아와 유럽에 걸친 나라로, 아시아의 문화를 담고 있는 동시에 유럽의 산업혁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나라이다. 러시아는 근대화를 추진했지만 19세기까지 농노제가 남아있어, 산업의 기반이 농업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로 2세는 1861년 농노 해방령을 선포하고 개혁을 시작했다. &nbsp;<br><br>&nbsp;  다른 나라가 부르주아 시민이 개혁을 주도한 반면, 러시아는 모든 개혁을 차르가 이끌어나갔다. 이렇게 차르가 러시아의 모든 힘을 쥐고 독단적으로 국가를 통치했기에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러시아 백성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며, 여전히 다른 유럽에 비해 빈곤하고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져가던 결과, 러시아는 결국 20세기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맞았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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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11-18 11:24: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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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흠의 욕망</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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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nbsp;[톨스토이 단편선] 속 단편소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의 주인공 바흠은 농민 생활을 하며 지주가 되려는 꿈을 이루고자 애썼다. 그는 아내와 함께 성실하게 살았지만 몇 년 동안 허리끈을 졸라매도 밭 한 뙈기 살 수 없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바시키르 인들이 사는 곳에 가면 아주 싼 값에 땅을 많이 살 수 있다는 희소식을 듣게 된다. 결국 그는 얼마 되지 않는 가산을 정리해서 바시키르 인들의 마을을 찾아갔다. 그는 1000루블만 내면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걸어서 돌아온 땅을 모두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그곳엔 한 가지 조건이 걸려 있었다. 해가 질 때까지 출발점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땅을 하나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흠은 동이 트자마자 봇짐을 메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그는 점심이 지났는데도 반환점을 돌지 못하고 앞으로 계속 전진만 했다. 나아가면 갈수록 더욱 비옥한 땅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욕심을 부렸다. 문득 정신을 차린 그는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가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급하게 출발선을 향해 몸을 돌린 그는 땅을 하나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달리고 또 달렸다. 열심히 뛴 끝에, 그는 해가 막 서산마루를 넘어가려는 순간 출발선에 발을 걸쳤다. 그를 애타게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의 성공을 축하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피를 토하며 죽은 후였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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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11-18 11:37: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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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주가 되고 싶어한 바흠</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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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blockquote><strong>지주</strong>(地主) ::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86%A0%EC%A7%80">토지</a>의 소유자, 또는 소유한 토지를 남에게 빌려 주고 지대를 받는 사람을 뜻한다.</blockquote><div><br>&nbsp; 바흠은 농민 생활을 하는 내내 지주의 삶을 꿈꿔왔다. 그렇게 아내와 함께 성실히 농민 생활을 하던 그에게 희소식이 들려왔는데, 바로 바시키르 인들이 사는 곳에 가면 아주 싼 값에 땅을 많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1000루블만 내면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걸어서 돌아온 땅을 모두 가질 수 있다는 말에, 그는 동이 트자마자 봇짐을 메고 길을 떠났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 가지 조건이 걸려 있었다. 바로 해가 질 때까지 출발선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땅을 하나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길을 떠난 그는, 걸으면 걸을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비옥한 땅에, 점심이 지났는데도 반환점을 돌지 못하고 계속 전진하기만 했다.&nbsp;<br>&nbsp;&nbsp;<br>&nbsp; 문득 정신을 차린 그가 하늘을 보니,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그제서야 바흠은 부랴부랴 발걸음을 돌려 출발선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잘못하다간 땅을 하나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해가 막 서산마루를 넘어가려는 순간, 마침내 그는 출발선 위에 발을 걸치며 쓰러졌다. 바시키르 인들과 그의 가족들이 환호성을 치르며 그의 성공을 축하했지만, 그는 이미 피를 토하며 죽은 후였다. 이렇게 그는 필요 이상의 땅을 얻으려고 욕망하다 자신이 죽어 드러누울 면적만큼의 땅만 얻고 삶을 잃어버리는 비참한 결과를 맞는다. </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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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11-18 11:50: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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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톨스토이가 지주였다고 해서 그의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는다.</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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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Q. 톨스토이도 지주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가치가 떨어지는가?<br><br>A. 나는 톨스토이가 지주였다고 해서 그의 작품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톨스토이는 1844년에 외교관이 되려고 대학교를 동양어학과에 입학했다가 다시 농민을 위해 일하려고 법학부로 전과하였다. 농촌생활에 열의를 가지고 농노들에게 교육이나 의료를 제공하여 온정적인 지주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농민들의 차가운 반응과 불신으로 실망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젊은 톨스토이는 상류사회의 사교계에서 방탕한 생활을 보내는데, 그러한 삶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맏형이 복무하던 캅카스 전선으로 여행을 간다. 여기서 톨스토이는 <mark>농도 제도 없이 사는 카자크들의 삶에 큰 관심을 가지고 </mark>그들의 문화 풍속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nbsp;<br><br>&nbsp; &nbsp; 그는 이 기간에 쓴 글을 잡지에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한다. 비록 자신은 귀족 생활을 보냈지만 그 누구보다 농민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농민의 복지를 위해 힘쓴 톨스토이의 작품이, 과연 가치가 떨어질까? 톨스토이는 외교관이 되기 위해 입학한 동양어학과까지 포기하며 농민을 위해 일하려고 법학부로 전과했다. 또한, 농민들에게 의료 및 교육적 복지를 제공하며 농민들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톨스토이가 비록 지주 출신이었다고 해도, 농민에 대한 이해가 풍부한 작가였기에 그의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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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11-18 12:07: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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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꿈을 위해 구분해야 할 것</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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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nbsp; 이 작품은 21세기인 지금도 사람들에게 충분히 교훈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소설 속 현실을 현대인의 자본주의 사회에 빗대어 해석하였다. 바흠은 평소 아내와 성실하게 땅을 일구며 살던 평범한 농민이었다. 하지만 그는 농민 생활을 하는 내내 지주가 되어 자신의 땅을 경작하는 삶을 꿈꿔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좋은 땅을 판매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는 점점 더 많은 땅을 갈망하며 땅들을 사들인다. 하지만 이미 '지주' 라는 꿈을 이룬지는 오래다. 그는 이렇게 지주가 되고 나서도 더 많은 땅을 얻기를 원한다. 땅에 대한 욕망 때문에 자신이 만족하던 행복한 생활을 뒤로 하고 오로지 땅만을 추구한다. 지주라는 꿈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었던 땅, 즉 <strong>물질</strong>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결국 가족과의 소중한 일상까지 잃고 마는 것이다. <br><br>&nbsp; &nbsp;나는 주인공의 이러한 모습이 마치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 물들어버린 사람들이 그들의 꿈을 이루기 위함이 아닌,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수단, 즉 <strong>자본</strong>에만 집착한 나머지 정작 진짜 소중한 것을 뒷전으로 놓아버린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내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 이 둘의 우선순위를 정확히 판단하기로 다짐했다. 앞으로 난 내 꿈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내가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가?', '지금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 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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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11-18 12:30: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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