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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반2조) 보건의료70년사와 일차보건의료 by LEE YURI</title>
      <link>https://padlet.com/wittyyurilee/qz7vwde0ywtvspxs</link>
      <description>2022-1 보건의료행정 (101반)</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2-06-08 23:29:10 UTC</pubDate>
      <lastBuildDate>2022-06-09 06:23:28 UTC</lastBuild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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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새로운 시대의 보건의료(1998년~현재)</title>
         <author>2022321003</author>
         <link>https://padlet.com/wittyyurilee/qz7vwde0ywtvspxs/wish/2215899769</link>
         <description><![CDATA[<div>- 국민의 정부(1998~2002년) 기간 중의 가장 큰 변화는 의료보험조합들을 통합하여 단일건강보험자 시대가 출범한 것과 의약분업이 시행된 것이다.<br>- 참여 정부(2003~2007년)는 의료의 형평성 보장 및 서비스 접근도 제고를 핵심 추진방향으로 설정하고, 공공보건의료 확충, 의료의 보장성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 이와 함께 만성질환의 예방 및 건강증진 중심의 보건의료 정책으로의 전환과 의료서비스 산업의 선진화에 역량을 집중하였다.<br>- 이명박 정부(2008~2012년)는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해서 사전예방적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식품의 안전을 강화했다. 2008년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하여 의약품 사용점검을 위한 ‘의약품 처방․조제 안심 서비스’ 소프트웨어(Drug Utilization Review, DUR)를 개발하였고, 2010년 전국 모든 요양기관에 서비스를 실시하였다.&nbsp;<br>- 박근혜정부(2013~현재)는 보건의료분야에서 해외 환자 유치와 의료기술 개발 지원을 포함한 보건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었고 4대 중증질환, 3대 비급여 개선에 집중했다. 박근혜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은 국민을 건강상의 위험, 의료비 부담으로부터 보호하고 의료산업 육성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며 소비자 중심의 보건의료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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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9 06:14: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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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염병의 극복(광복~1960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wittyyurilee/qz7vwde0ywtvspxs/wish/2215900310</link>
         <description><![CDATA[<div>-미국식 보건의료제도가 도입되면서 미군정청 위생과가 설치되었고 이후 보건후생부로 승격하게 됨<br>-1947년에는 보건후생부 산하에 방역연구소(1959년에 국립보건원)가 설립되었고, 1948년에는 보건후생부와 노동부가 통합하여 사회부가 됨<br>-1949년에는 보건부를 분리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으며, 한국이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사무처 (Western Pacific Regional Office)에 회원국으로 가입함<br>-6.25전쟁 이후 빈곤과 각종 전염병에 시달리게 되고 수인성 전염병, 발진티푸스, 장티푸스,천연두, 일본뇌염이 창궐하였으며, 전투지역에서는 유행성출혈열 환자가 발생했다. 국민 대부분이 기생충에 감염되었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가마솥에 해인초를 삶은 물을 마시게 하기도 했다.<br>-<strong>1951년에는 최초의 의료관련 법인 「국민의료법」이 공포되었음</strong><br>-휴전이후 정부는 보건소와 보건진료소를 설치하였고 1956년에 보건소법을 공포함<br>-1960년대에 들어서 정규 의료기사의 양성이 시작됨<br>-이당시 국내 의료시설은 낙후되었고 전쟁으로 파괴되어 외국에 가서 의료 서비스를 받았음<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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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9 06:14: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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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제 사회 발전과 건강보험의 확대(1977~1988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wittyyurilee/qz7vwde0ywtvspxs/wish/2215902479</link>
         <description><![CDATA[<div>제4차 5개년계획 이 시작된 1977년은 보건의료분야에서 의미가 큰 시기였다. 정부 정책의 입안에서 보건기획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첫해인 1977년에 제1종의료보험(직장의료보험)과 의료보호(현 의료급여)가 실시되었다. 직장의료보험이 점차 확대되면서 지역의료보험 대상자인 농어촌 및 도시 주민의 의료보험 가입 여부가 정치적인 의제로 등장하였다. 저소득층의 의료를 국가가 책임지는 의료보호제도는 1977년 1월에 실시되었다. 당연적용 의료보험제도는 1977년 7월부터 시작되었다. 1976년 12월말에 이르러서야 「의료보험 법」이 개정되면서 이듬해 5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단사업장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당 연 적용 의료보험이 실시됐다.건강보험이 시작되면서 의료서비스 수급의 문제점이 점차 가시화 되었다. 우리나라 의 의료서비스는 민간부문이 대부분이었고 공공부문은 빈약했다.1960년대부터 정부는 보건소와 보건지소의 기능을 향상시키면서, 의료시설을 지역 에 골고루 배분하려 시도했다. 1981년에는 농어촌 오벽지 주민의 보건향상을 위해 보건진료소를 설치하기 시작했 다. 도시와 농촌간의 의료시설 분포의 격차를 줄이고 의료보험의 확대로 늘어날 의료수요에 대비하 여 정부는 시설비 융자 알선과 의료장비 도입에 대한 정부차관 사업을 실시했고 이를 통해 공업단지와 의료취약지에 50여개 민간병원이 설립되었다. 1986년에 드디어 ‘국민복지증진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전국민의료보험의 실시가 결정되게 되었다. 1988년에는 농어촌지역에, 그리고 1989년 에는 도시자영자를 대상으로 지역의료보험을 실시하면서, 전국민의료보험시대를 맞게 되었다. 1977년에 당연 적용 강제의료보험을 시작된 이후 불과 12년 만에 전 국민이 건 강보험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정부는 부족한 의료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1970년대 후반 이후 의과대학을 지속적 으로 신설하였고 의료기관의 균형배치와 의료시설의 기능분담을 유도하기 위하여 1985년에는 지역별 의료기관의 개설허가 제한지역을 고시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의료의 질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보건사회 부는 1980년 대한병원협회에 병원표준화사업을 맡기고 1981년에는 수련병원에 대하여 표준화심사를 담당하게 함으로써 부분적이지만 의료의 질 관리의 개념과 프로그램이 공식화되기 시작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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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9 06:17:1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wittyyurilee/qz7vwde0ywtvspxs/wish/2215902479</guid>
      </item>
      <item>
         <title>만성질환의 증가와 건강보험 급여의 확대 (1989년~1997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wittyyurilee/qz7vwde0ywtvspxs/wish/2215907070</link>
         <description><![CDATA[<div>소득 증가와 함께 인구 증가<br>사고, 산업재해, 오염에 의한 건강위해 증가<br>-&gt; 건강증진과 의료보장 중심 보건행정 추진<br><br>88~89<br>-의료 취약 지역군 보건소의 병원화 사업 추진<br>-일차보건의료의 지역보건의료체계 전략<br>&nbsp;=&gt; 지역사회에서 일차의료수요를 충족<br><br>94<br>-농어촌 특별세법 제정<br>&nbsp;=&gt; 도시 지역에 비해 의료시설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농어촌 지역의 의료 이용에 대처<br><br>95<br>-지방자치제 실시<br>-보건소법이 지역보건법으로 전면 개정<br>-국민건강증진법 제정<br>&nbsp;=&gt; 의료의 접근성 강화<br>&nbsp;=&gt; 각종 건강증진 사업 의무화<br><br>97<br>-IMF 경제위기<br>-공공보건의료분야 구조조정<br> =&gt; 인력감축으로 경제위기 대처</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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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9 06:21: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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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의촌 해소와 가족계획(1961~1976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wittyyurilee/qz7vwde0ywtvspxs/wish/2215908232</link>
         <description><![CDATA[<div><br></div><div><br></div><div><strong>▶ </strong>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었지만 경제 사회적인 여건은 열악하였음.<br><br></div><div>-&nbsp; &nbsp; &nbsp; 출산율과 인구증가율이 매우 높아 정부는 인구억제를 위하여 가족계획사업을 펼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br><br></div><div>-&nbsp; &nbsp; &nbsp; 국제가족계획연맹(IPPF)의 재정지원을 받아 1961년 가족계획협회 설립<br><br></div><div>-&nbsp; &nbsp; &nbsp; 1962년 가족계획사업이 국가 정책 사업으로 채택, 정부도 인구 억제를 위한 행정적인 지원을 강화<br><br></div><div>-&nbsp; &nbsp; &nbsp; 한국의 가족계획사업은 외국의 여러 기관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았으며, 뒷날 국제적인 성공 사례로 인정을 받게 됨.<br><br></div><div>&nbsp;<br><br></div><div>&nbsp;<br><br></div><div><strong>▶ </strong>1962년 각 시.군 단위에 보건소를 설치하였는데 보건인력이 부족하였음.<br><br></div><div>-&nbsp; &nbsp; &nbsp;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보건사업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으나 실제로는 1960년대 이후의 가족계획사업과 모자보건 사업 이외에는 뚜렷한 성과를 보지 못함. 3개 과로 구성된 모자보건관리관실로 격상되었음.&nbsp;<br><br></div><div>&nbsp;<br><br></div><div>&nbsp;<br><br></div><div><strong>▶ </strong>보건소를 중심으로 보건사업을 전개하면서 농어촌까지 보건서비스의 망이 넓어짐.<br><br></div><div>-&nbsp; &nbsp; &nbsp; 면 단위에 보건지소를 두고 지소마다 결핵, 가족계획, 모자보건 요원을 배치하였다. 일<br><br></div><div>부 급성전염병의 발생은 크게 줄었는데, 천연두 환자는 1959년부터, 발진티푸스환자는<br><br></div><div>1962년부터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음.<br><br></div><div>&nbsp;<br><br></div><div><strong>▶ 1970</strong>년대에는 특히 도시와 농촌간의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한 농촌지역의 지역사회 개발이 강조되었다.&nbsp;<br><br></div><div><strong>▶ </strong>1970년대에 지역사회보건과 환경오염 문제 등이 컸는데 「공해방지법」이 1963년에 제정되었지만 오염 억제에 중점. 각종 산업장이 증가하여 환경오염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되자 1977년에는 「환경보전법」이 제정, 공포됨.<br><br></div><div><strong>▶ </strong>1960년대 중반 이후에 지역사회보건과 지역사회개발이 세계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에 맞추어 지역사회의학사업 파일럿 프로젝트 시작<br><br></div><div>-&nbsp; &nbsp; &nbsp; 이는 의사가 없던 지역에서 진료와 지역사회보건사업, 그리고 지역사회개발프로그램을 시행한 것.<br><br></div><div>&nbsp;<br><br></div><div><strong>▶ </strong>1972년부터는 각 의과대학에 지역사회의학 과목이 개설되기 시작.<br><br></div><div><strong>▶ </strong>1960년대 후반에는 정부와 WHO가 모범보건도 조성 프로젝트(K-0025)를 충청남도에서 실시.&nbsp;<br><br></div><div><strong>▶ </strong>1970년에는 정부와 WHO가 종합보건개발 프로젝트(K-4001)를 경기도 용인군에서 실시.&nbsp;<br><br></div><div>-&nbsp; &nbsp; &nbsp; 이들 프로젝트의 성과로 면 보건지소의 요원이 결핵, 가족계획, 모자보건 요원 등 단일 사업별 요원에서 다목적 요원으로 전환하게 됨.<br><br></div><div>&nbsp;<br><br></div><div><strong>▶ </strong>보건사업에서는 가족계획과 모자보건사업, 급성전염병관리, 결핵 및 나병관리, 보건<br><br></div><div>망 강화, 농어촌 일차보건의료사업 등이 중심.&nbsp;<br><br></div><div>&nbsp;<br><br></div><div><strong>▶ </strong>급격한 공업화과정에서 수질오염과 대기오염 등 환경오염이 대두되기 시작.<br><br></div><div>-&nbsp; &nbsp; &nbsp; 특히 1960년대 말부터 각종 공장들이 설립되면서 오염 정도가 심해짐. 섬유공장에서<br><br></div><div>발생하는 산업재해는 사회의 이목을 모았음.<br><br></div><div>&nbsp;<br><br></div><div><strong>▶ </strong>소득의 증가와 더불어 육류 섭취가 증가하면서 암과 심장병 등 만성질환이 증가함.<br>보건인력의 부족 문제도 농어촌지역에 부각됨.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는 방학 때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학생들이 무의촌을 찾아 진료를 가는 것이 유행이었음. 소득증대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의료수요는 증가함. 의학기술의 발달과 의료의 분화로 의료비에 대한 부담도 커짐.<br>- 이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을 맞게 됨.</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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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9 06:22: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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