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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제 정치 활동 보고서_김은결 by 최혜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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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매주 한 국제 정치 활동에 대한 활동 보고서를 쓰는 칸 입니다. </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8-19 10:45: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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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소개</title>
         <author>heymi_7</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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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이름</p><p>학번</p><p>희망 디플로마</p><p>진로</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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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19 10:45: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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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서별 활동/공공외교/분쟁/역사와 국제관계/선거관리 챕터 작성 가이드</title>
         <author>heymi_7</author>
         <link>https://padlet.com/cnsa/qch74g082oogc0om/wish/3547497609</link>
         <description><![CDATA[<p>-기본적으로 한 줄 이상의 활동을 파악할 만한 내용이 매주 수업시간마다 작성되면 됩니다.</p><p>-특별한 활동이 있을 때에는 만든 보고서, 포스터, 사진 등을 첨부합니다. </p><p>-첨부파일, 기사 링크 등을 활용해도 좋습니다(패들릿 첨부 기능 이용)</p><p><br></p><p>필수 포함 내용</p><ol><li><p>같이 한 사람 (있을 경우에만)</p></li><li><p>나의 역할 (있을 경우에만)</p></li><li><p>연관된 이전 활동의 날짜 또는 링크 (있을 경우에만)</p></li><li><p>수업 시간 배운 내용 또는 및 추가 첨부 자료와의 연관된 내용</p></li><li><p>느낀점</p></li><li><p>기타 자유롭게</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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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19 10:45: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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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소개</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cnsa/qch74g082oogc0om/wish/3553220774</link>
         <description><![CDATA[<p>이름: 김은결</p><p>학번: 20907</p><p>희망 디플로마: 사회과학 디플로마</p><p>진로: 미정, 현재 희망 진로는 변호사</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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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02:43: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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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발표 자료 조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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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주제: 국제 정치 체제의 형성과 변화 과정</p><p>[학습 목표]</p><p>- 국제 정치 체제의 형성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p><p>- 국제 정치 체제의 변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p><p>[국제 정치 교과서 - 베스트팔렌 조약]</p><p>(근대적 국가가 형성된 이유를 중점적으로)</p><p> 근대적 국제 사회, 즉 주권 국가를 구성원으로 하는 국제 사회는 30년 전쟁을 끝내는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을 계기로 형성되었다. 이 조약의 참가국들은 주권 평등, 영토 존중, 내정 불간섭, 국가 간 합의의 존중 등의 기본 원칙에 합의하였다. 새로운 근대적 국제 질서가 형성된 것이다. </p><p> 주권을 가진 국가의 성립은 국제 정치의 시작을 의미하였다. 과거에는 국가 간에 분쟁이 생기면 교황이 이를 조정하면서 해결자의 역할을 했지만 이제 분쟁의 해결은 민족 국가 자신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민족 국가의 최대 목적은 생존과 번영이 되었고,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는 상황이 되면서 국가 간의 정치가 시작되는 영역이 생긴 것이다.</p><p>[베스트팔렌 체제와 국제 질서]</p><p> 베스트팔렌 조약은 유럽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와 신성 로마 제국의 지배적 역할을 실질적으로 무너뜨리고, 봉건 영주국의 군주들에게 완전한 영토적 주권과 통치권을 인정하였다. 또한 가톨릭, 루터파, 칼뱅파에게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면서 오랜 종교 전쟁을 마무리 지었다. 이후 정치는 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나 세속화하였고, 국가 간의 세력 균형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새로운 체제가 성립되었다. 국제 질서는 민족 단위의 국가[nation-state]로 재편되기 시작했으며, 민족 국가의 주권을 상호 존중하는 근대적 국제 질서, 이른바 '베스트팔렌 체제'가 시작되었다. 이 체제는 두 가지 핵심 원칙을 기초로 한다. 첫째, 국가는 주권적 관할권을 가진다. 국가는 자신의 영토 내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하여 독립적 통제권을 가진다. 둘째, 국가들 간의 관계는 모든 국가들이 주권적 독립을 수용함으로써 구축된다. </p><p> 이러한 원칙은 국가 내 모든 기구와 조직들은 신성한 것이든 임시적인 것이든 모두가 국가에 종속되며, 모든 국가들은 법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p><p>출처: 헤이우드, [국제 관계와 세계 정치]</p><p>[국제 정치 교과서 - 빈 체제]</p><p>(빈 체제로 인해 일시적이나마 평화가 가능했던 이유, 그 평화가 깨졌던 이유)</p><p>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유럽 국가들은 약 100년간 비교적 평화롭고 안정된 시대를 보냈다. 빈 회의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열린 '회의 체제'는 19세기 유럽의 국제 질서로 자리를 잡았는데, 이 시대를 유럽 협조 체제라 한다. 이는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강대국들의 협상과 타협을 통해 구축되었다.</p><p> 1815년 승전국들은 빈 회의에서 유럽의 원상회복을 결정했다. 프랑스는 혁명 이전의 왕정 체제로 복귀했으며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강대국들의 이익과 세력 균형에 맟추어 영토와 국경이 설정되었다.</p><p> 그러나 유럽 협조 체제의 세력 균형은 배타적이고 패권 추구적인 강대국 중심의 세력 균형과는 다른 모습을 띠었다. 여기서 강대국은 자국의 패권을 추구하면서도 '유럽 협조'라는 규범 아래 평화, 공영, 문명 등 공통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다. 이러한 '유럽 협조'에 의해 나폴레옹 전쟁 이후 19세기의 유럽이 크고 작은 전쟁들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및 이후의 시대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안정과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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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31 13:34:0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cnsa/qch74g082oogc0om/wish/3562014170</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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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발표 추가 자료 조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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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 베스트팔렌 체제: “주권국가” 국제질서의 출발점인가?</p><p>1-1. 형성 배경과 조약의 구조</p><p>배경: 30년 전쟁(1618–48)은 신성 로마 제국 내 종교·권력 갈등이 전유럽적 종교·왕조·영토·상업 경쟁으로 비화한 전쟁이었다. 전쟁은 독일 전역을 초토화했고, 전후 유럽의 정치지도를 바꾸었다. </p><p>조약 묶음: ‘베스트팔렌 평화’는 1648년 10월 뮌스터(프랑스–황제)와 오스나브뤼크(스웨덴–황제)에서 맺은 두 조약을 가리키며, 그해 1월에는 별도로 스페인–네덜란드 평화가 체결되었다. </p><p>1-2. 핵심 조항(사실 기반 정리)</p><p>종교 합의: 가톨릭·루터파에 더해 칼뱅파를 법적으로 인정, 1624년을 기준연도로 삼아 종교·교회재산 현상을 확정(‘노르말야르’ 규정). 신앙 문제의 사법·절차 보장도 강화. </p><p>영토·국제법적 조치:</p><p>네덜란드 공화국과 스위스 연방의 독립을 확인. </p><p>프랑스·스웨덴은 조약 보장국 지위를 얻고 영토 이득을 확보. </p><p>1-3. 왜 ‘근대적 국가’로 이어졌나? — 국가형성의 동학</p><p>주권(대내적 관할권)·주권평등(대외적 독립성)의 상호인정이 관행화되며, 종교 권위(교황)보다 세속국가의 권한이 앞서는 방향으로 질서가 이동했다.</p><p>동시에, 16–17세기의 전쟁·상비군·과세·관료제 확대가 중앙집권적 영토국가를 촉진했다는 ‘전쟁이 국가를 만들었다’(Tilly) 논지가 널리 인용된다. 이는 베스트팔렌 합의가 작동할 주체(국가)의 물적 기반을 설명한다. </p><p>1-4. “베스트팔렌=주권의 탄생” 서사의 수정(학계 논쟁)</p><p>많은 교과서가 베스트팔렌을 주권·불간섭의 기원으로 소개하지만, 역사학·국제정치학에서는 ‘웨스트팔리아 신화’라며 점진적·복합적 형성을 강조한다(오시안더 2001; 크라스너 1999). 즉, 조약이 곧바로 절대적 불간섭·평등을 만든 게 아니라 관행·힘의 정치와 함께 서서히 제도화되었다는 비판적 시각이다. </p><p>핵심 정리: 베스트팔렌은 “교황·제국 중심”의 중세적 권위가 약화되고, 영토를 기반으로 한 세속 국가들이 서로의 관할권을 인정하며 협상·균형 속에서 공존하는 틀을 마련했다. 다만 그 틀은 이후 150년 가까운 전쟁·외교 관행의 축적을 통해 공고화되었다. </p><p>2) 빈 체제(회의/협조 체제): 평화가 가능했던 이유와 그 균열</p><p>2-1. 1814–15년 빈 회의의 원칙과 세팅</p><p>원칙: 정통성 복원, 보상과 균형을 통해 프랑스를 배제가 아닌 관리 가능한 행위자로 재통합. 지도 재조정과 함께 강대국 공동책임의 관념이 출발했다. </p><p>제도적 장치:</p><p>사국동맹(영·러·오·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점진적 복귀(1818)로 5대 열강 공조 구도 형성. </p><p>회의 체제(congress system): 엑상프로방스? → (정정) 엑스-라-샤펠(1818), 트로파우(1820), 라이바흐(1821), 베로나(1822) 등에서 분기별 현안 조정. </p><p>2-2. 평화가 가능했던 구조적 이유(요점 3가지)</p><p>강대국 공조 규범: 메테르니히·캐슬레이의 주도로, 패권 추구를 자제하고 사안별 공동 대응(개입/비개입의 조율)이라는 규범을 세움. 프랑스를 처벌보다 포섭한 것도 장기 안정에 기여. </p><p>세력균형+회의외교: 전쟁 억지가 상시 협의 메커니즘(회의체제)에 실렸다. 이는 19세기 중·단기 위기(예: 이탈리아·스페인 혁명파동)에 대한 선조정·선개입 논의를 가능케 했다(트로파우 원칙: 혁명 확산 시 개입 정당화 주장). </p><p>규범의 실용성: ‘유럽 협조’는 공영·문명 등 공동가치 언어를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합의 가능한 최소공약수를 찾아 대전(大戰) 재발을 억제했다. 브리태니커는 1815년 이후 수십 년간 상대적 평화 유지의 공로를 평가한다. </p><p>2-3. 평화가 균열·해체된 이유(요점 3가지)</p><p>이념 균열 심화: 1820년대 이후 자유주의·민족주의의 확산과 1830·1848 혁명은 ‘질서 유지를 위한 개입’ 원칙을 두고 영국(신중·비개입)과 대륙 보수 연합(개입 선호) 사이의 노선 분열을 키웠다. </p><p>이해관계 충돌: 오스만 제국 문제(동방 문제)에서 러시아의 팽창과 영국·프랑스의 견제가 정면충돌하여, 결국 크림전쟁(1853–56)에서 ‘협조’가 붕괴. (브리태니커 등 표준서술 참조) </p><p>회의체제의 피로와 경직성: 1820년대 후반 이후 회의는 점점 권위주의적 개입의 정당화로 인식되며 정당성 약화. 영국의 이탈 기류와 함께 정례 협의의 동력 상실. </p><p>핵심 정리: 빈 체제는 합의된 규범(공동책임)+실용적 균형으로 ‘대전 없는 장기평화’를 달성했지만, 이념 변화와 열강 이해 분화 앞에서 균열되었다. 그래도 ‘강대국 협조+다자 회의’라는 운영방식은 현대 다자외교의 선례가 되었다.</p><p><br/></p><p>연관된 이전 활동 링크: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padlet.com/cnsa/_-qch74g082oogc0om/wish/lDK1ZR1YqLqjQJ9z">https://padlet.com/cnsa/_-qch74g082oogc0om/wish/lDK1ZR1YqLqjQJ9z</a></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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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5 03:29: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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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 1차 중동 전쟁 조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cnsa/qch74g082oogc0om/wish/3593857856</link>
         <description><![CDATA[<p>아랍, 이스라엘 분쟁의 역사적 배경</p><p>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1세기경 모세가 이집트에서 헤브라이인들을 이끌고 나와 가나안에 정착하면서부터였다. 그 이후 이스라엘과 유대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1세기경 독립 전쟁을 일으켰지만 로마에 패하였고,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전 세계를 떠도는 유랑 민족으로 전락하였다.</p><p>이후 유대인들은 시오니즘(유대인 조국 재건 운동)을 앞세워 팔레스타인 지역에 독립 국가 건설을 추진하였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을 치르던 영국이 미국 내 유대인들의 국가 수립을 지지한다는 이른바 밸푸어 선언을 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오는 유대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p><p>반면에, 아랍인들은 636년 예루살렘을 손에 넣었으며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였다. 아랍인들은 이스라엘 건국 전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팔레스타인에는 예로부터 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함께 있는 복잡한 종교적 지역이 되었다.</p><p>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전 세계로부터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었다. 유대 난민의 대량 유입으로 분쟁이 격화되자, 이 지역을 신탁 통치하고 있던 영국은 분쟁의 해결을 국제 연합에 위임하였다. 1947년 11월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을 아랍과 유대의 양 국가에 분할하고 유대 인에게 팔레스타인 지역의 56%를 제공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p><p>전쟁의 발발과 전개</p><p>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땅은 유대인의 탄생지이다. 여기서 최초로 국가를 만들었고 책 중의 책(성경)을 세계에 전하였다. 우리는 이곳에 이스라엘이라는 유대 인 국가의 설립을 선언한다.” 텔아비브 미술관에서 유대 국가 건국 위원회 의장 벤구리온이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였다. 독립 선언 직후 미국과 소련은 이스라엘 건국을 승인하였다.</p><p>△ 이스라엘의 건국(왼쪽),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언한 다비드 벤구리온(오른쪽): 팔레스타인 지방에 주둔하던 마지막 영국군이 철수한 1948년 5월 14일 벤구리온이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였다. 벤구리온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대인들의 시오니즘 운동을 이끌었으며,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으로 선출되었다.</p><p>영국군이 철수하고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이날이 ‘재앙의 날’이 되었다. 이틀 뒤인 5월 16일 이집트를 비롯한 트란스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이집트, 예멘 왕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7개국으로 구성된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진입함으로써 제1차 중동 전쟁이 발발하였다.</p><p>전쟁 초기의 전세는 군사적으로 우세한 아랍 연합국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지속됨에 따라 아랍 진영 내에 전쟁 수행과 더불어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되면서 행동 통일에 균열이 생겼다. 특히 전쟁 초기 제2차 세계 대전 때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과 소련이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하였는데,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에 압력을 넣어 이스라엘에 성능 좋은 신무기 공급을 주선하였다.</p><p>이러한 상황에서 전열을 정비한 이스라엘의 역공으로 아랍 국가들은 패배를 반복하였다. 이에 제1차 중동 전쟁은 1948년 11월 6일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휴전 결의 채택으로 일시 중지되고, 마침내 1949년 2월 14일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휴전 협정을 체결하고, 3월 22일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휴전 협정을 체결하였다. 4월 3일에는 이스라엘-요르단, 7월 20일에 이스라엘-시리아가 휴전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제1차 중동 전쟁은 종결되었다.</p><p>전쟁의 영향</p><p>제1차 중동 전쟁 후 이스라엘의 영토는 확장되었다. 과거 유엔 분할안에 의한 이스라엘의 영토 크기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56%이었으나, 휴전 후 이스라엘-아랍 간의 국경 재조정은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에게 유리하게 적용되어 팔레스타인 영토의 80%(2만 662㎢)를 확보하였다. 결국 아랍 측에게 남은 팔레스타인 영토는 20%에 불과했는데, 트란스요르단이 점령한 예루살렘의 구시가지를 비롯한 요르단 강 서안 지역과 이집트 정부가 점령한 가자 지구를 의미한다.</p><p>제1차 중동 전쟁의 아랍 측 패배는 약 90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대이동을 초래하였고, 그들은 피란민으로서 인접 아랍 제국들에 분산되었으며, 유엔 난민 구제 사업 기관의 구제 대상이 되었다. 아랍 국가들의 패배는 일부 아랍 국민들에게 정치적 각성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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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9 11:48: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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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 1차 중동전쟁 발표 자료 제작</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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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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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6 03:26: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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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리아 내전 분쟁 조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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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2011년 — '아랍의 봄' 여파로 시리아 내 내분 발생, 내전으로 발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쿠르드족이 독자 정치·군사 세력으로 부상.</p><p>2014년 — 이슬람 국가(IS)가 수니파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보하며 시리아 전역에서 무차별적 테러를 일삼음.</p><p>2015년 전후 — 알 아사드 정권이 이란, 헤즈볼라, 러시아와의 연대 및 협력을 통해 수세에 몰리던 전황을 뒤바꿈.</p><p>2017년 — 알카에다 분파인 알누스라 전선 등을 모태로 한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수니파 중심의 과격 이슬람주의와 일정 거리를 두며 지지기반을 확대하기 시작.</p><p>2017년 7월 — 연합군의 락까 수복 이후 이슬람 국가(IS)가 주요 거점을 모두 상실.</p><p>2017년 10월 — 이슬람 국가(IS)가 락까 상실 이후 정치세력으로서 영향력을 크게 잃음.</p><p>2019년 10월 — 미군의 시리아 감축 논의가 본격화되자 시리아 아사드 정부와 쿠르드계 시리아민주군(SDF)이 남하하는 튀르키예에 맞서 연합함.</p><p>2020년 3월 — 러시아와 튀르키예 간 이들리브 휴전이 맺어지며 시리아 내전이 '동결 분쟁' 형태로 지속됨.</p><p>2023년 10월 —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의 전쟁 발발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시리아 내 이란과 헤즈볼라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섬.</p><p>2024년 4월 — 이스라엘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내 이란 영사관을 폭격하여 이란혁명수비대(IRGC) 고위 장교들이 사망.</p><p>2024년 8월 25일 — 이스라엘-헤즈볼라 간 전면 충돌 양상이 나타남.</p><p>2024년 9월 말 — 이스라엘이 하산 나스랄라를 비롯한 헤즈볼라 지도부 다수를 제거.</p><p>2024년 10월 —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앞세워 레바논 침공에 나섬.</p><p>2024년 11월 27일 — 시리아 제2도시 알레포를 중심으로 반군의 공세가 시작됨.</p><p>2024년 11월 29일 — HTS 중심의 반군이 공세 이틀 만에 알레포를 접수.</p><p>2024년 11월 말 —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선이 휴전함.</p><p>2024년 12월 5일-8일 — HTS 중심의 반군이 하마, 홈스, 다마스쿠스로 이어지는 시리아 서부 주요 축선 도시를 약 4일 만에 빠르게 점령.</p><p>2024년 12월 말 —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의 바트당 통치 종식으로 시리아 내전이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함. HTS를 이끌었던 아흐메드 알샤라(Ahmed Hussein al-Sharaa)가 시리아 과도정부 수장으로 추대됨.</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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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6 12:49: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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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시리아 내전 분쟁 인포그래픽</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cnsa/qch74g082oogc0om/wish/3662060728</link>
         <description><![CDATA[<p>까먹고 월요일 새벽에 금주의 한 줄 보고서 제출합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usc1.storage.googleapis.com/4667672315/844f6a9438bafa9ddd25aeec045ac1cf/________________20907____.pdf" />
         <pubDate>2025-11-02 16:00: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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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공공 외교 정책 수행평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cnsa/qch74g082oogc0om/wish/3684655818</link>
         <description><![CDATA[<p>공공 외교 정책 계획서를 작성하는 수행평가를 보았다.</p><p>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시민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의 문화(KPOP, 한류)를 기존에 접해보지 못한 국가들에 시민단체가 직접 파견을 나가, 우리나라의 문화를 접할 수 있게 하여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상승되고, 국가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게 하는 정책을 고안해 보았다. 이벤트성이나 홍보가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 인프라를 구축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지속적인 정책이 되도록 하였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11-16 12:58: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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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랜달 쉘러의 6가지 국가 전략 학습</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cnsa/qch74g082oogc0om/wish/3694945700</link>
         <description><![CDATA[<p>랜달 쉘러의 6가지 국가 전략은 아래와 같다.</p><p>1. 예방 전쟁</p><p>2. 세력 균형 및 봉쇄</p><p>3. 편승</p><p>4. 구속</p><p>5. 포용</p><p>6. 책임 전가 및 거리두기</p><p>이러한 국가 전략 중 우리나라가 선택해야 할 국가 전략을 선택해보는 활동을 진행하였는데, 나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선택해야할 전략은 편승 전략이라고 생각하였다. 미중 전략경쟁의 본질이 단기적 갈등이 아니라 체제적 경쟁으로 고착화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두 강대국 중 어느 쪽이 향후 국제질서를 주도할 가능성이 높은지 평가해야 한다. 현재 다양한 측면에서 미국의 구조적 우위는 여전히 견고하며, 그 영향력도 지속되고 있다. 한국이 미국에 편승하는 것은 미래 생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안보 구조가 미국 동맹에 사실상 구조적으로 결속되어 있다는 현실이 편승 전략의 필요성을 강화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지속적으로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독자적 억제력은 기술,비용,정치적 등의 제약으로 인해 즉각적 구축이 어렵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더 강한 세력인 미국에 편승함으로써 동맹 기반의 군사력 우위를 확보하고, 한반도 안보의 불확실성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또한, AI, 반도체 등 차세대 기술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기술 블록의 규범과 표준이 글로벌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는 점(메타, 엔비디아, 오픈 AI 등)도 편승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미국의 제재 체계가 중국을 압박하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중립을 유지할 경우 핵심 산업이 제재의 회색지대에 놓일 위험이 커진다.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편승 전략은 우리나라 기업의 세계 시장 접근성과 공급망 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접근은 단기적으로 유연해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우리나라가 오히려 양측의 압박을 동시에 받는 위험한 위치에 놓일 수 있게 된다. 편승 전략은 이러한 압박에서 벗어나고, 명확한 전략적 정체성을 통해 외교적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도를 제고한다. 우리나라의 국내적 불안정 요소까지 고려할 때, 국가 전략은 외부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하기에 편승 전략은 외교, 안보의 불확실성을 줄여 국내 경제와 사회의 안정성을 지키는 효과가 있어 우리나라가 선택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하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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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23 12:32: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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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미국 모의 G20 회의 국문 발제문 초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cnsa/qch74g082oogc0om/wish/3703702821</link>
         <description><![CDATA[<p>2028년 한국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는 급변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우리가 미래의 세계 질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길목에 서 있습니다. 미국은 이번 회의의 핵심 의제인‘성장과 지속의 균형’이 전 세계가 공동 번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세계 평화와 국제 협력은 그 어떤 성장 전략보다, 그 어떤 기술 혁신보다 앞서는 필수 조건이며, 우리는 이 원칙 위에 더 안정된 질서를 쌓아야 합니다.</p><p>그러나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지정학적 불안정, 기후위기에 따른 인도적 재난, 기술 격차로 인한 국가 간 불균형, 그리고 국제 규범을 위협하는 다양한 도전들은 어느 한 국가의 자율적 대응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습니다. 더 넓은 협력, 더 정교한 조정, 그리고 더 신뢰할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그러한 글로벌 협력의 중심에서 각국이 안정과 번영을 향해 함께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p><p>첫째, 세계 평화를 위한 협력은 국제적 규범을 존중하는 안정된 환경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유지됩니다. 한 국가의 무력 사용, 일방적 경제 조치, 정보 비대칭은 국제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갈등의 파급력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의 성장 기반을 흔듭니다. 따라서 우리는 규범 기반 국제질서의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믿습니다. 상호 존중, 투명성, 국제 규범 준수는 평화의 본질이며, 이러한 공통의 틀에서만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해집니다. 미국은 이러한 규범의 준수와 조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책임 있게 수행하고, 세계 질서가 보다 안정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할 것입니다.</p><p>둘째, 기술 협력과 기후 대응은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의 토대이며, 이를 위한 국제 조정 능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청정에너지 기술, 인공지능, 디지털 인프라 구축은 단순한 경제적 발전을 넘어 국가 간 신뢰와 상호의존을 강화하는 핵심 수단입니다. 이러한 분야에서의 협력이 공정하고 개방된 환경에서 진행될 때, 세계는 더 빠르고 안전하게 전환기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개방적 기술 생태계가 확대될수록 국제사회 전체의 안정과 번영이 강화된다는 믿음 아래, 책임 있는 협력을 추진하며, 필요한 역량과 경험을 공유하는 데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기여할 것입니다.</p><p>셋째, 포용적 성장은 국제사회의 장기적 평화를 담보하는 핵심 원리입니다. 극심한 불평등과 경제적 취약성은 갈등의 씨앗이 되며,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요인이 됩니다. 미국은 교육, 보건, 금융 접근성, 디지털 역량 확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취약국가의 발전을 지원하는 국제적 노력이 강화될 때, 국제사회가 더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은 어느 한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전 세계가 공동으로 추진해야 할 필수 과제입니다.</p><p>마지막으로, 미국은 G20이 단순한 경제 협력체를 넘어 전 지구적 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책임 있는 리더십의 장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각국이 상호 이해와 신뢰를 기반으로 협력할 때, 성장과 지속 가능성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며, 국제사회는 보다 평화롭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미국은 그러한 공동 목표 아래, 각국이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도록 함께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는 보다 투명한 규범, 더 정교한 조정, 더 안정된 협력 구조를 갖추게 될 것이며, 이는 우리 모두가 지향하는 평화로운 미래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p><p>미국은 오늘 이 자리에서, 세계 평화와 공동안보, 지속 가능한 번영을 위해 책임 있는 행동을 약속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협력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질서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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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30 14:53:4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cnsa/qch74g082oogc0om/wish/3703702821</guid>
      </item>
      <item>
         <title>미국 모의 G20 발제문(속내 해석 포함)</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cnsa/qch74g082oogc0om/wish/3710261543</link>
         <description><![CDATA[<p>존경하는 의장님, 그리고 각국 정상 여러분.</p><p>역동적인 변화의 중심, 이곳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마주한 과제는 명확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얼마나 성장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계가 얼마나 안정적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입니다.</p><p>미국은 오늘, 불확실성의 시대를 건너는 유일한 해법으로 '예측 가능한 질서'와 '신뢰에 기반한 연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p><p>첫째, 우리는 '약속된 규범'이 주는 평온함을 지켜내야 합니다.</p><p>세계 경제가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합의한 규칙들이 국경을 넘어 통용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이나 불투명한 관행은 이 믿음을 깨뜨립니다.</p><p>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그래왔듯, 국제사회의 '변하지 않는 상수'로서 기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와 규범이 흔들리지 않도록, 그 기준을 명확히 하고 지탱하는 역할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번영을 위한 가장 안전한 토대입니다.</p><p>(속내 해석: 미국이 만든 규칙이 곧 세계의 규칙이다. 이 질서를 어지럽히는 세력에게는 미국이 '상수'로서 단호히 대응하여 억제할 것이다.)</p><p>둘째, 기술은 '투명성'이라는 토양 위에서만 꽃피울 수 있습니다.</p><p>AI와 청정에너지는 인류의 미래를 결정지을 도구입니다. 하지만 이 도구가 불신과 통제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술의 발전은 개방되고 투명한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안전합니다.</p><p>미국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들에게 우리의 혁신 역량을 아낌없이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가치를 공유하는 기술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이 열린 문 안에서 우리는 가장 빠르고, 가장 안전하게 미래로 나아갈 것입니다.</p><p>(속내 해석: 미국 중심의 기술 동맹에 들어와야만 최첨단 기술과 시장을 공유받을 수 있다. 우리의 가치(개방성, 투명성)를 따르지 않는 폐쇄적 국가들은 이 생태계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다.)</p><p>셋째, 포용은 가장 정교한 안보 전략입니다.</p><p>격차와 빈곤은 불안정의 씨앗입니다. 취약 국가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세계 전체의 시스템을 견고히 하는 과정입니다. 미국은 교육, 보건, 인프라 등 전 분야에서 책임 있는 기여를 확대할 것입니다. 우리가 내미는 손을 잡고, 더 많은 국가가 이 안정된 궤도 안으로 들어오기를 희망합니다.</p><p>(속내 해석: 미국의 원조와 지원을 통해 글로벌 사우스를 우리 영향력 아래 묶어두겠다.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권 안에 머무는 것이 당신들의 안보와 경제에 유리할 것이다.)</p><p>정상 여러분,</p><p>진정한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의지와 조율된 행동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p><p>미국은 이 거대한 배가 폭풍우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나침반'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명확하고 안전한 항해에 동참하여, 흔들리지 않는 미래를 함께 완성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p><p>감사합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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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2-04 12:37:2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cnsa/qch74g082oogc0om/wish/3710261543</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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