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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반] 6월 민주항쟁 타임라인_1,2,3모둠 by 신민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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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9-16 01:45: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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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배경1] 1985년 2 · 12총선에서 신한민주당의 승리</title>
         <author>m27d251066</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ps6nw9ih9ormvpwp/wish/3588953772</link>
         <description><![CDATA[<p>1985년 2 · 12총선에서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tn-detail-line tooltip-contents" h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3532">신한민주당</a>이 승리한 것을 기점으로 대통령 간선제를 없애고 대통령직선제 개헌 요구가 날로 커졌다. 1986년 개헌서명운동의 성과로 국회 내 개헌 특별 위원해가 만들어졌지만, 여야 간 개헌 협상은 난항을 거듭하였다. 이를 빌미로 1987년 4월 13일 전두환은 대통령 임기 내 개헌을 거부하고, 기존 제5공화국 헌법으로 차기 대통령 선거를 치르겠다는 이른바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tn-detail-line tooltip-contents" h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3741">호헌조치</a>를 발표하였다.</p><p>----------------------------------</p><p>개헌:<strong>헌법의 개정을 국민투표로써 결정하는 경우</strong></p><p>특별위원해(특위)<strong>:특정 안건을 심사하거나, 여러 상임위원회와 관련된 중요 안건을 다루기 위해 일시적으로 설치되는 위원회</strong></p><p>(호헌조치) : 헌법 내용에 대통령 7년 단임, 대통령 간선제를 넣자는 것 - 전두환의 검은 속내가 숨어 있었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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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7 03:21: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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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연세대 학생 이한열 혼수상태</title>
         <author>m27d251066</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ps6nw9ih9ormvpwp/wish/3588960616</link>
         <description><![CDATA[<p>1.6 · 10국민대회 하루 전날인 6월 9일 연세대 학생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tn-detail-line tooltip-contents" h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9011">이한열</a>이 교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sk-47.428-0937)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p><p>2.그는 곧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의 분노하였다. 이러한 분노 속에서 6 · 10국민대회가 열렸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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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7 03:25: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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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골당과 시위단의 공방</title>
         <author>pdh2662</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ps6nw9ih9ormvpwp/wish/3598750490</link>
         <description><![CDATA[<p>(1) 1987.5.9연세대 교수 40명은 ‘헌법개정과 정부가 할 일에 대한 우리의 제언’ 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p><p>(2) 한편 5월 9일부터 호헌철폐를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이던 학생대표들이 전경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연행되자  4천여 명의 학생들이 </p><p>모인 가운데 비상학생총회가 열렸다. </p><p>(3)1987.6.9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개최하기로 한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 쟁취 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6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가 개최됨</p><p>(4)전국에 갑호비상령이 떨어진 가운데 이한열도 이 대회에 참가하였다. 교문을 사이에 두고 ‘백골단’(전두환이 지위하는 경찰들)과 시위대가 공방을 나누는 가운데 충돌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결국 전두환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위해 8차 개헌을 지키겠다(4,13 호헌조치를 발표함)</p><p><br/></p><p>(호헌조치) : 헌법 내용에 대통령 7년 단임, 대통령 간선제를 넣자는 것 - 전두환의 검은 속내가 숨어 있었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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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3 03:08: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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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 · 10국민대회</title>
         <author>m27d251066</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ps6nw9ih9ormvpwp/wish/3598769349</link>
         <description><![CDATA[<p>경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6 · 10국민대회가 열리는 성공회대성당을 원천 봉쇄하였다. 그 결과 6 · 10국민대회는 대회장에 미리 들어가 있던 소수의 인원만으로 진행되었다.</p><p>하지만 대회 예정 시간인 오후 6시 이전부터 서울 시내 곳곳에서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시민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6 · 10국민대회와 학생 시위에 동참하였다. 이날 밤 늦게까지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은 명동성당주1으로 들어가 이후 5일 동안 농성을 계속하였다. 애초 계획된 것은 아니었지만 대학생들의 명동성당 농성은 6 · 10국민대회가 단발성 행사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저항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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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3 03:19: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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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최루탄추방대회’ 와 ‘국민평화대행진’</title>
         <author>m27d251066</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ps6nw9ih9ormvpwp/wish/3610483830</link>
         <description><![CDATA[<p>6 · 10국민대회 이후 약 20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매일 평균 100회 이상의 시위가 동시다발로 벌어졌다. 특히 6월 18일 ‘최루탄추방대회’와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은 전국 곳곳에서 한꺼번에 1백만 명 이상이 참여하였다.</p><p>갈수록 참가 지역이 전국 곳곳으로 확산되어 대도시, 중소도시뿐만 아니라 농촌 지역의 군 단위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6월 26일 하루에만 3738개 시 · 군에서 시위가 동시에 벌어졌다. 유월항쟁에 참가한 연인원은 약 40만 명으로 추산된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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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30 03:00: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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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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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찰력의 한계와 군대 투입</title>
         <author>m27d251066</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ps6nw9ih9ormvpwp/wish/3610492011</link>
         <description><![CDATA[<p>반면 유월항쟁의 전국적 동시다발 시위는 경찰 병력을 분산시켰다. 하지만 분산된 경찰력으로는 거센 시위의 물결을 막아 낼 수 없었다. 결국 최루탄 남발로 인해 최루탄이 고갈되기 시작하였다. 유월항쟁 결국 경찰력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전두환 정권이 기댈 수 있는 것은 군대의 힘밖에 없었다.</p><p>하지만 군대를 동원하였을 때 과연 군대가 전두환의 뜻대로 움직일지가 미지수였다. 또한 전두환 정권이 집권 내내 강조했던 88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아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때처럼 유혈 사태와 대량 학살을 반복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무엇보다 군대를 동원하더라도 이러한 대규모 시민 항쟁을 진압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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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30 03:03: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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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 6 · 29민주화선언’</title>
         <author>m27d251066</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ps6nw9ih9ormvpwp/wish/3610496613</link>
         <description><![CDATA[<p>결국 경찰력으로 항쟁을 막기 힘들고, 군대 투입도 어렵다고 판단한 전두환 정권은 1987년 6월 29일 ‘ 6 · 29민주화선언’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있었던 이한열이 7월 5일 끝내 사망하였다. 5일장 후 7월 9일 치러진 이한열의 노제에 100만 명의 인파가 모인 것을 끝으로 약 한 달 동안 지속된 유월항쟁은 마무리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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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30 03:06: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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