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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사 5반 by 신성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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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10-21 00:36: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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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03남동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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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서영해는 일제강점기 프랑스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오교특파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언론인 그리고 문필가였다.</p><p>고려통신사에서 출판 및 선전활동에 나섰다.&nbsp;</p><p>고려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일제의 한반도강탈과 잔악한 만행을 알리는 책을 출간했다.</p><p>1928년 파리저택에 한국연락처라는 기구를 두고 한국어 관해 소개하며 유럽에서의 임시정부수립을 위해 노력함.</p><p>1929년 [어는 한국인의 삶과 주변]이라는 책에 한국의 당시상화을 적었고 3.1운동독립선언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수록함으로써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널리 알리고자 했다.</p><p>해방 후 한국에 돌아와 프랑스어를 가르쳤다.</p><p>1995년 건국훈장애국장을 받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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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3 04:45: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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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06 박준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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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서영해(1902)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특파원이자 언론인이었다.</p><p>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세계에 알린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프랑스 주요 신문에 기고하며 일제의 식민지배 실태를 폭로했고, ‘KOREA LIBRE’와 같은 언론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의 독립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그는 언론을 통해 진실을 전하고 세계 여론을 움직인 대표적인 해외 독립운동가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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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3 04:47: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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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09 신지호</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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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동풍신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는 학생운동과 비밀결사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힘썼고, 3.1운동 이후에도 항일 시위를 주도하며 독립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또한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고 동지들과 함께 항일선전 활동을 펼치며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하였다. 그의 활동은 조국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희생정신의 상징으로 평가되며,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독립운동의 의미와 민족정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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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3 04:50: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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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23 김재안</title>
         <author>bbcjason08</author>
         <link>https://padlet.com/seonggwanghigh/pj2p4pp1flsrmtuz/wish/3646711352</link>
         <description><![CDATA[<p>이태준은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난 의사이자 독립운동가로, 일제강점기 동안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한일병합 이후 일본의 식민 통치를 거부하고 만주로 망명한 그는, 신흥무관학교 인근에서 독립군의 부상병을 치료하며 의료 지원 활동을 펼쳤다. 당시 만주는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의약품으로 인해 부상자 치료가 어려웠지만, 이태준은 자신의 의술과 헌신으로 수많은 독립군의 생명을 구했다. 이후 그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된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strong>남로군정서</strong>에 합류하여 군의로 활약했다. 그는 전투 중 부상당한 병사들의 치료뿐 아니라, 위생 관리와 의약품 확보, 군의 체계 정비 등 독립군의 전투 지속력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일본군의 탄압이 심화되던 1921년, 그는 독립운동을 이어가던 중 일본군에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는 총 대신 메스를 들고 싸운 군의관으로서 독립운동의 숨은 영웅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으며, 그는 지금도 의술로 조국의 독립을 도운 대표적 독립운동가로 기억되고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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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3 04:51: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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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05 박승민</title>
         <author>dhd117259</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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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안희제는 일제강점기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한 상인·기업가이자 독립운동 후원자로, 백산상회·백산무역을 설립하여 무역 수익을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 자금으로 전환하였습니다. 그는 상하이와 만주로 이어지는 연락·운송망을 활용해 인물·자금·물자를 은밀히 조달·수송하며 실질적 지원을 수행하였습니다. 지역 사회의 교육·계몽과 언론 활동을 후원하여 경제력과 사회 기반을 독립운동의 동력으로 연결하였습니다. 일본의 지속적인 감시와 탄압, 구금에도 불구하고 재산과 생애를 독립에 헌신하였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안희제는 “경제를 통한 독립”을 실천한 대표적 인물로 평가됩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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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3 04:52: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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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15 이성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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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독립운동가 <strong>장형</strong>은 일제강점기 <strong>신민회</strong> 비밀회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습니다. 그는 만주와 경성 등지에서 <strong>치료소, 회사, 상업</strong> 등을 운영하여 <strong>군자금</strong>을 모았으며, 이 자금을 <strong>대한민국 임시정부</strong>에 조달하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strong>워싱턴회의 한국독립청원서</strong>에 서명하며 외교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strong>손병희</strong>와 <strong>안창호</strong>의 영향을 받아 광복 후에는 <strong>백범 김구</strong>와 함께 <strong>건국실천원양성소</strong>를 운영하고, 최초의 4년제 사립대학인 <strong>단국대학교</strong>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교육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1963년 <strong>건국훈장 독립장</strong>을 수여받았으며, 그의 교육 정신은 아들 장충식, 손자 장호성 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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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3 04:54: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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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20장승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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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일제강점기 때,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고, 평안남도 경찰국 청사 폭탄 투척 의거에 가담한 독립운동가.평안남도 대동 출신. 기독교신자로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 2년 수료 후 고향에 있다가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1개월간 구류를 살았다.</p><p>그 해 11월 감리교 여성신자로서 중진이던 오신도(吳信道)·안정석(安貞錫) 등과 같이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를 조직하고 평양본부의 교통부원 겸 강서지회 재무를 담당하였다.</p><p>많은 군자금을 거두어 상해임시정부로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20년 초 동지 106명이 일본경찰에 잡히자, 김행일(金行一)을 따라 상해로 망명하였다.</p><p>1920년 8월의 미국의원단 일행의 내한을 이용하여, 국제여론을 환기시킬 목적으로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서 국내에 결사대를 파견하자, 제2대에 참가하여 장덕진(張德震)·박태열(朴泰烈) 등과 함께 5월에 도보로 상해를 출발하여 8월 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다.</p><p>이들은 8월 3일 평안남도 경찰국 청사에 폭탄을 던져 평양시내를 진동시켰고, 평양시청과 평양경찰서에도 투탄하였으나 도화선이 비에 젖어 불발되었다.</p><p>그 뒤 피신하여 함경남도 이원군 남면 호상리에 숨었으나 이듬해 3월 붙잡혔다. 평양지방법원에서 사형언도를 받았다가 공소하여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이 확정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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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3 04:58: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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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21 정재헌</title>
         <author>wjdwogjs2009</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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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황애덕은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습니다.</p><p>1920년대에는 여성 교육운동과 사회 계몽활동에 참여하여, 여성이 사회적 역할을 자각하고 교육을 통해 독립의식과 민족의식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황애덕은 근우회 중앙 간부로 활동하며, 여성의 교육권·참정권 확대, 조혼 폐지, 여성 노동환경 개선 등을 주장했습니다. 특히 여성 독립운동가 간의 연대를 강화하는 데 힘썼습니다. 당시 근우회에는 김활란, 정칠성, 김마리아, 유각경 등 다양한 계열의 여성운동가들이 함께했는데, 황애덕은 이들 사이에서 온건·교육 중심 노선을 지지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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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3 05:01: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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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병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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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김병로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독립운동에 힘쓴 변호사 이다. 그는 여운형과 안창호의 치안유지법 위반에 대한 변론을 필두로 김상옥,박헌영,조용하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해 주었고 김용무등과 함께 형사공동연구회를 만들어서 독립운동가들에 무상으로 법적 도움을 주고 그들의 가족들을 보호해 주었다 또한 이상재의 뒤를 이어 신간회 중앙 집행 위원장으로 활동했다.게다가 정의부ㆍ광복단 사건,경성제대 반제동맹 사건,이재유와 공산당 재건운동,광주학생 항일운동,6ㆍ10만세운동등 운동들을 무상으로 변호해 주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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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3 05:02: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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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08송승준</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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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참가하였으며, 같은 해 7월 남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군사훈련을 받았고, 12월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에 가입하였다.</p><p>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이탁이 대한청년단연합회와 협력해 조직한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이 미국 국회의원단이 한국을 방문하는 8월 국내 일제관청을 폭파하고 일제요인을 암살하여 조선인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세계에 과시하기로 하고 행동대를 국내에 파견하기로 하자, 여기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은 문일민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수여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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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3 05:05: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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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독립운동가 황학수 10514이상민</title>
         <author>ideol6952</author>
         <link>https://padlet.com/seonggwanghigh/pj2p4pp1flsrmtuz/wish/3646737375</link>
         <description><![CDATA[<p>황학수는 대한제국의 군인이자 일제 감정기 당시 만주의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육군무관학교 졸업이후 군인이 되었다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당하자 해산 군인들과 함께 의병에 합류하여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3•1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설립을 도왔다. 이 시기에 임시정부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며 대한의 독립을 위해 독립운동의 방향을 논의하였다. 또한 군무부에서 설립한 육군무관학교에서 활동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썻다.1921년 서로군정서를 담당하였고 1927년 김좌진과 함께 무장 투쟁을 이끌었다.그리고 1931년 한국독립군에 참여하였고 일본군에 대항하여 중국 국민당과 연합하여 군사 작전을 수행하였다.이후1939년 한국 광복군 창설을 위해 독립군들을 모았고 그 다음해에 총사령을 맡아 광복군을 지휘하였다. 이로서 황학수는 대한제국 군인에서 독립군과 광복군을 아우르는 무장투쟁의 선봉에 서서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의 일생은 무력으로 나라의 독립을 되찾고자 했던 치열한 항일 무장투쟁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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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3 05:05: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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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17이승환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seonggwanghigh/pj2p4pp1flsrmtuz/wish/3646839153</link>
         <description><![CDATA[<p>조명하는 1905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로, 청년 시절부터 조국의 독립을 위해 결심하고 1928년 대만 타이중에서 일본 황족 구니노미야 구니히코 왕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여 부상을 입히는 의거를 일으켰으며, 체포된 뒤 일본 법정에서 굴하지 않고 조선의 독립 의지를 당당히 밝히며 사형을 선고받고 1928년 10월 10일 대만 타이베이형무소에서 순국한 인물로, 그의 용기와 희생은 이후 독립운동사에서 청년 항일투쟁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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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3 06:04: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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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01김승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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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안경신 의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며 여성의 독립 의지를 보여주었고, 이후 대한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으고 전달하는 등 항일운동에 힘썼다. 1920년에는 일제의 통치기관을 폭파하기 위한 폭탄거사에 직접 참여하였는데, 당시 임신한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체포 후 옥중에서 출산한 뒤 재판을 받는 등 끝까지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안경신 의사는 여성으로서 드물게 무장투쟁에 참여한 인물로, 자신의 생명보다 조국을 먼저 생각한 용기와 희생정신이 매우 대단하다고 평가받는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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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3 10:28: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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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13 이동윤</title>
         <author>dy9295608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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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박차정(朴次貞, 1910~1944)은 일제강점기 시절 <strong>“민족의 해방과 여성의 해방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strong>는 신념으로 싸운 대표적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여성의 사회 참여와 독립 의식을 함께 강조했다.</p><p>1920년대 후반, 박차정은 근우회 활동을 통해 여성의 교육과 권리 신장을 위해 힘썼으며, 여성 해방과 민족 독립을 하나의 목표로 보았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가 김원봉과 결혼하고, 의열단에서 정보 전달과 무기 운반, 자금 조달 등 위험한 임무를 맡아 활약했다.</p><p>1937년 조선민족전선연맹 부녀복무단장으로 선임된 그녀는 여성 대원들을 이끌며 선전과 후방 지원을 담당했다. 또 <strong>조선의용대 창설(1938)</strong>에도 참여하여 여성 지도자로서 군사 활동을 이끌었고, 직접 전투에도 참여했다. 1944년 중국 전선에서 부상을 입고 순국한 박차정은, 민족과 여성의 해방을 함께 외친 투철한 혁명가로 남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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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3 22:31: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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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11 이건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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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박열(朴烈, 1902~1974)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무정부주의(아나키즘) 사상가로, 조선의 해방뿐만 아니라 모든 억압과 권력으로부터 인간의 자유를 추구한 인물이다. 그는 1902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나 3·1운동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하던 중, 일본 사회의 불평등과 제국주의를 보며 무정부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일본 내에서 박열은 조선 청년들과 함께 아나키즘에 기반한 비밀결사 ‘불령사(不逞社)’ 를 조직하였다. ‘불령사’라는 이름은 ‘불령선인(不逞鮮人)’ — 즉, 일본 정부가 ‘불온한 조선인’이라 부르며 멸시하던 표현을 스스로 받아들여 “억압에 굴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들” 이라는 의미로 바꾼 것이었다.</p><p><br></p><p>불령사는 1921년 도쿄에서 결성되어, 일본 내 조선인과 일본 청년들 간의 연대를 추구하며 식민지 조선의 독립과 사회 해방을 목표로 했다. 이들은 단순한 민족독립운동을 넘어서 국가 자체를 부정하고, 자유와 평등에 기반한 무정부 사회를 건설하자는 급진적인 사상을 내세웠다. 박열과 동지들은 잡지와 선언문을 통해 일제의 폭력과 차별을 비판하고, 조선 청년들에게 자주적인 사상과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불령사는 일본 경찰의 감시와 탄압을 받았으나, 조선인 아나키즘 운동의 중요한 중심지로 기능하며 많은 청년들에게 영향을 끼쳤다.</p><p><br></p><p>이 시기에 박열은 일본인 여성 혁명가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를 만나 동지이자 연인으로 함께 활동했다. 두 사람은 국경과 민족의 벽을 넘어 자유와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을 이어갔으며, 이후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뒤 일본 정부가 조선인을 희생양 삼아 대규모 학살을 일으키자, 일본 당국은 박열과 가네코를 ‘천황 암살 음모 사건’ 의 주범으로 몰아 체포했다. 이 사건은 조작된 것이었지만, 박열은 법정에서 “나는 천황을 죽이려 했다”고 당당히 말하며 제국주의의 권위에 맞섰고, 그 결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2년간 복역했다. 가네코 후미코는 옥중에서 의문사했다.</p><p><br></p><p>해방 이후 박열은 귀국하여 조선 아나키스트 연맹 등에서 활동하며 아나키즘 운동을 이어갔다. 이후 정치적 혼란 속에서 점차 사회운동의 일선에서는 물러났으나, 평생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1974년 세상을 떠났으며, 식민지 시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정신의 상징 으로 남았다.</p><p><br></p><p>박열은 단순한 독립운동가를 넘어, 권력과 억압을 거부하고 모든 인간의 자유를 추구한 사상가로 평가된다. 그가 세운 불령사는 조선인들이 스스로를 ‘불령선인’이라 부르며 자주적 정체성을 되찾고, 자유와 저항의 정신을 퍼뜨린 역사적 단체로 남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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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5 16:17: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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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10윤재원</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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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886년 10월 15일 전라남도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구봉에서 부친 김동진(金東鎭)과 모친 전주 이씨 사이에서 4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주위로부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영광군 묘량의 외가에서 한학을 공부했고, 1908년 9월 영광 광흥학교에 입학했다. 1년만에 졸업한 그는 1909년 경성법부 법관양성소에 입학해 1912년 3월에 졸업했다. 이후 일본에 유학가서 1915년 메이지대학을 졸업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 뒤 1917년 상하이로 망명했다.</p><p><br></p><p>1918년, 김철은&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JYj++4j" href="https://namu.wiki/w/%EC%97%AC%EC%9A%B4%ED%98%95">여운형</a>,&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JYj++4j" href="https://namu.wiki/w/%EC%9E%A5%EB%8D%95%EC%88%98">장덕수</a>, 한진교(韓鎭敎),&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JYj++4j" href="https://namu.wiki/w/%EC%84%A0%EC%9A%B0%ED%98%81(%EB%8F%85%EB%A6%BD%EC%9A%B4%EB%8F%99%EA%B0%80)">선우혁</a>&nbsp;등과 함께 신한청년당 결성에 참여해 발기인을 맡았다. 이후&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JYj++4j" href="https://namu.wiki/w/%EC%84%9C%EB%B3%91%ED%98%B8">서병호</a>, 선우혁과 함께 국내로 잠입한 김철은 영광으로 가서 광흥학교 동창 조병모(趙炳模)의 집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승려를 가장하여 돌아다니며 지방 유지들의 협력을 얻어내고자 노력했다. 또한 고향 함평에 들러 자신의 가산을 정리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했고,&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JYj++4j" href="https://namu.wiki/w/%EC%B2%9C%EB%8F%84%EA%B5%90">천도교</a>&nbsp;교주&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JYj++4j" href="https://namu.wiki/w/%EC%86%90%EB%B3%91%ED%9D%AC">손병희</a>를 만나&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JYj++4j" href="https://namu.wiki/w/3.1%20%EC%9A%B4%EB%8F%99">3.1 운동</a>을 협의하고 독립운동자금 지원을 약속받았으며,&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JYj++4j" href="https://namu.wiki/w/%EA%B8%B0%EC%82%B0%EB%8F%84">기산도</a>&nbsp;등과 함께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한 뒤 상하이로 돌아갔다. 이어 신한청년당원들과 함께 상하이 프랑스조계 보창호 329호 건물에 '독립 임시사무소'를 설치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작업에 착수했다.</p><p>1920년 5월 28일, 김철은 임정에서 설립한 육군무관학교 교관으로 임명되었으며, 11월 18일에는 육군무관학교 학도대 중대장을 겸임했다. 항일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상하이에 설립된 이 학교는 1920년 5월 8일 졸업생 19명을 배출했고, 1920년 12월 4일 제2회 졸업식을 거행해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하고자 노력했다.<br><br>1921년 3월, 임시의정원 제8회 정기 의회가 개최되었다. 의회에 참석한 의원은 43명이었는데, 김철은 이때 교통차장을 사임하고&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JYj++4j" href="https://namu.wiki/w/%EA%B9%80%EC%9D%B8%EC%A0%84">김인전</a>,&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JYj++4j" href="https://namu.wiki/w/%EB%82%98%EC%9A%A9%EA%B7%A0">나용균</a>,&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JYj++4j" href="https://namu.wiki/w/%EC%A0%95%EA%B4%91%ED%98%B8(1895)">정광호</a>와 함께 전라도 의원으로 선임되었다. 1925년 3월 13일&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JYj++4j" href="https://namu.wiki/w/%EC%9D%B4%EC%8A%B9%EB%A7%8C">이승만</a>&nbsp;임시대통령 면직안에 찬성했으며, 1926년7월 국무령에 선출된&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JYj++4j" href="https://namu.wiki/w/%ED%99%8D%EC%A7%84">홍진</a>으로부터 전라도 대표로 추천받았지만 기호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후 1926년 12월 14일 국무령에 선출된&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JYj++4j" href="https://namu.wiki/w/%EA%B9%80%EA%B5%AC">김구</a>에 의해 국무위원에 선임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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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6 12:06: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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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22 천용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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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김용관은 조선이 가난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루어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로 민족의 힘을 키워야한다는 신념을 가졌던 독립운동가이다.</p><p>김용관은 조선인들의 생활이</p><p>외국 상품에 지배당하고 있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과학을 생활화하고 공업지식을 보급해</p><p>조국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p><p>근대화가 발명과학의 대중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p><p>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발명학회’를 설립하여</p><p>발명과학 대중화 운동에 앞장섰다.</p><p>김용관은 또한 ‘과학의 날’의 시초를 만들었다.</p><p>1934년 2월 발명학회의 인사들을 중심으로 31명의 사회 저명인사들은 과학 대중화를 위한 ‘과학데이’와 같은 행사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고,</p><p>찰스 다윈(1809-1882)의 서거일인 4월 19일을 ‘과학데이’로 정했다.</p><p><br></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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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6 14:02: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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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07 박창준</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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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이은상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으로 1903년 생이다.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 직후 일어난 만세운동에 청년학생으로써 참여했고 이후엔 청년학우단, 독립청년회와 연계해 항일 격문을 배포하였다. 조선어학회, 조선문학가협회 등에도 참여해 민족 문화 단체에 참여했다. 일제가 조선어 말살 정책을 본격화 하자 조선어학회를 전적으로 지지하며 재정적, 사상적으로 지원했다. 그의 작품에서도 항일 정신이 나타나는데, 가고파, 국화 옆에서, 귀촉도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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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9 10:38: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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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18 이은학</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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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strong>한치진(韓致鎭, 1900~1966)</strong>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기를 거치며 한국 근대 심리학의 기초를 세운 선구적 학자이자 교육자이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의 식민지 교육체제 아래에서도 조선인이 스스로의 정신세계를 연구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신념을 품었다.</p><p>1920년대 일본 도쿄제국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한치진은, 조선인으로서는 드물게 과학적 실험심리학을 연구하며 학문적 자립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귀국 후에는 교육 현장에서 학생의 심리 발달을 연구하며, 억압된 시대 속에서도 인간 이해와 민족의 지적 성장을 위해 힘썼다.</p><p>해방 이후 그는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창립에 참여하여 한국 심리학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후학 양성에 헌신했다. 무력투쟁 대신 지식과 학문으로 나라의 근본을 세우고자 했던 한치진은, <strong>‘학문으로 나라를 일으킨 지식인형 독립운동가’</strong>로 평가받는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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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9 13:17: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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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02 김태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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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권기옥 지사는 일제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항공인이었습니다. 1901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1919년 3·1 운동에 학생 신분으로 참여해 체포되었고, 이후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 및 독립운동 조직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20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한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1925년 중국 윈난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해 한국 최초 여성 비행사로 기록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중국 공군에서 활약하며 일제 침략군을 상대로 항공전을 준비했고, 조국 해방 이후에는 한국군 및 공군 창설 초석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1977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아 그의 독립운동과 항공활동이 국가적으로도 공식 인정되었습니다.</p><p>이처럼 권기옥 지사는 “하늘을 날며 조국을 독립시키겠다”는 결기로 독립운동과 항공 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수행한 인물입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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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30 07:32: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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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12 이도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seonggwanghigh/pj2p4pp1flsrmtuz/wish/3658238636</link>
         <description><![CDATA[<p>대구의 달동의숙과 경북실업보습학교를 졸업하였다. 1912년 일본에 가서 세이소쿠중학교와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대학 고등전공과에서 수학하였다. 대학을 마치고 일시 귀국하였으나, 1919년&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tn-detail-line tooltip-contents" h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772">3.1 운동</a>이 일어나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22년 일본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다.</p><p>서울에서 변호사업을 개업한 뒤 처음 변론을 맡은 사건이 의열단사건이었다. 당시 몇 안 되는 우리나라 변호사 중&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tn-detail-line tooltip-contents" h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3178">허헌,</a><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tn-detail-line tooltip-contents" h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9206">김병로 </a>등과 함께 이 사건을 변론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항일독립투쟁사에 남을 만한 사건에는 거의 빠짐없이 관여하였다.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tn-detail-line tooltip-contents" h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2129">조선어학회사건</a>&nbsp;때에는 4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다.</p><p>그가 맡았던 큰 사건 중에는&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tn-detail-line tooltip-contents" h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5301">광주학생사건</a>, 안창호사건, 수양동우회사건, 각종 필화 및 설화사건,&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tn-detail-line tooltip-contents" h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124">6. 10만세사건</a>, 경성제대학생사건,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tn-detail-line tooltip-contents" h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7600">만보산사건</a>등이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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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30 07:47: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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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16이승민</title>
         <author>is9314402</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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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남자현 지사(南慈賢, 1872~1933)는 일제강점기, 만주 벌판에서 무장 투쟁과 민족 계몽 운동을 이끌며 '여자 안중근'이라 불린 위대한 독립운동가입니다. 1895년 을미사변 때 남편이 의병으로 순국하자, 24세의 나이에 홀로 시부모를 봉양하며 유복자 아들을 길렀습니다. 이후 1919년 3·1 운동의 민족적 함성에 힘입어 48세의 늦은 나이에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고, 아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며 본격적인 항일 투쟁의 길을 걸었습니다.</p><p>만주에 도착한 지사는 무장 독립단체인 서로군정서에서 활동하며 군자금 모금과 정보 수집을 담당했고, 독립군 병사들의 뒷바라지와 간호를 도맡아 <strong>'독립군의 어머니'</strong>로 불리며 젊은 투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또한,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만주 지역 여성들을 위한 <strong>여자교육회</strong>를 조직하고 10여 개의 교회를 설립하는 등 교육과 종교 활동을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도 힘썼습니다.</p><p>남자현 지사의 투철한 독립 의지는 극렬한 항일 투쟁과 상징적인 결의로 나타났습니다. 1925년에는 일제 통치의 심장부를 겨냥하여 <strong>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 암살</strong>을 시도했으며, 1932년에는 일제의 만주 침략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strong>국제연맹 조사단(리튼 조사단)</strong>이 하얼빈에 방문했을 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왼손 <strong>무명지(넷째 손가락) 두 마디</strong>를 잘라 그 피로 <strong>"朝鮮獨立願 (조선독립원)"</strong>이라는 다섯 글자의 <strong>혈서</strong>를 흰 천에 써서 조사단에 전달하려 했습니다. 이는 독립 의지를 국제 사회에 호소하려는 처절하고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p><p>1933년, 지사는 만주국 전권대사 <strong>무토 노부요시 암살</strong>을 최종 목표로 세우고 거사를 준비하던 중 체포되었습니다. 6개월간의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옥중에서 단식투쟁을 전개했습니다. 병보석으로 풀려난 지 닷새 만에 순국하며 아들에게 <strong>"이 돈을 우리나라 독립 축하금으로 바쳐라. 만일 너의 대에 독립을 보지 못하면 너도 유언해 실행하라"</strong>는 유언과 함께, <strong>"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strong>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셨습니다.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지사의 공을 기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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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30 08:21: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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