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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독립신문 탐색하기 by 유은진</title>
      <link>https://padlet.com/yigugu0202/Serch_newspaper</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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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5-20 02:46:56 UTC</pubDate>
      <lastBuildDate>2025-05-21 01:22:01 UTC</lastBuild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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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사 제목(연.월.일)</title>
         <author>yigugu0202</author>
         <link>https://padlet.com/yigugu0202/Serch_newspaper/wish/3458349379</link>
         <description><![CDATA[<p>1. 기사 내용 요약</p><p>2.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p><p>3. 독립신문을 통해 본 독립협회의 의미</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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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20 02:48: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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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가 독닙신문을 오늘 처음으로 출판하는데 조선 속에 있는 내외국 인민에게 (1896.4.7.)</title>
         <author>yigugu0202</author>
         <link>https://padlet.com/yigugu0202/Serch_newspaper/wish/3458371749</link>
         <description><![CDATA[<p>1. 특정 당파나 계층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조선인을 위한 매체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정부의 일을 백성에게 알리고, 백성의 뜻을 정부에 전달하여 서로 오해 없이 유익한 관계를 맺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문이 아닌 국문으로 쓰였으며, 글을 띄어 써서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었다. 고위 관리나 일반 백성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공정하게 알릴 것이며, 외국인에게 조선의 사정을 바로 알리고자 일부는 영문으로도 실린다. 또한 외국의 사정도 전해 조선 사람들이 세상을 넓게 알 수 있도록 하고자 하며, 이 신문을 통해 모든 이들이 지식과 견문을 넓히기를 바라고 있다.</p><p>2. 신문이 단순한 소식 전달이 아니라 사회 개혁과 계몽의 수단으로 인식되었다는 것, 국문 사용에 대한 의식 변화, 민권 의식의 성장, 근대적 언론의 태동, 세계 인식의 확대</p><p>3.  ~~~~~<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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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20 02:58: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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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슌검일명이 술을 먹고… (1896,04,07)</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yigugu0202/Serch_newspaper/wish/3460108931</link>
         <description><![CDATA[<p>1.한 순검이 술에 취해 행실이 좋지 않았고, 이를 본 총순이 꾸짖자 순검이 오히려 무례한 말을 했습니다. 이에 총순은 사직하려 했지만, 경무청에서는 사직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순검에게도 별다른 처벌이 없었습니다. 그 후에도 순검은 총순을 조롱하는 말을 하여 결국 총순은 사직을 강행했습니다. 글쓴이는 이 상황이 부당하며, 경무사장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고 무례한 순검은 처벌하고 총순은 복직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p><p>2.상하 관계의 붕괴: 하급자인 순검이 상급자인 총순에게 무례한 언행을 했음에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음.</p><p>3.독립신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신문으로, 백성들이 정치적 문제와 사회 문제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고 비판할 수 있는 공론장의 역할을 했습니다.</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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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21 00:50: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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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셔울 시고문밧 뚝셤 셔가 셋과 니가 한나히 양춍을 가지고 슛골 뒤산으로 산영을 (1896.04.1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yigugu0202/Serch_newspaper/wish/3460119434</link>
         <description><![CDATA[<ol><li><p>기사 내용 요약: 서울 근처 뚝섬에 사는 서 씨 집안 사람 3명과 다른 한 사람이 총을 들고 산에 사냥하러 갔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솣골이라는 마을의 소몰이꾼들을 만나게 되었다. 소몰이꾼의 눈에는 이들이 소에게 총을 겨누는 것처럼 보여서 그들의 총을 뺏으려다 청이 발사되어 자신의 무릎에 총알을 맞게 되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화가 나서 떼로 몰려와 서 씨 집 세 채를 부수고 사냥꾼 네 명을 붙잡으려고 했다. 그 중 셋은 도망치고 한 명은 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이 소를 훔치던 도둑이라고 주장했지만, 조사 결과 이들은 부자였기에 소를 훔칠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었다. 총을 맞은 사람은 서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치료비는 서 씨 집안에서 거의 부담을 했고, 그 사람은 점점 나아졌다.</p></li><li><p>당시에도 현재와 다를 바 없는 크고작은 사건들이 다양하게 일어났으며, 그러한 내용을 담은 기사도 요즘처럼 자세하고 구체적이게 작성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옛날이라고 해서 피해자의 주장만을 듣고 결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름 꼼꼼히 조사하여 사실을 밝히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p></li><li><p>독립협회에서 발행된 독립신문을 통해 당시에 일어난 사건들을 요즘과 같이 신문 형태로 자연스럽게 발표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의 혼란했던 상황 속에서도 여러 사건들을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달할 수 있게 하는 의미도 있었다고 생각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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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21 00:55: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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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라샤이 쳥국을 도와 요동이란 땅흘 일본에 빼앗기지 아니하게하고 샹을(1996년 4월 18일)</title>
         <author>s25022_5</author>
         <link>https://padlet.com/yigugu0202/Serch_newspaper/wish/3460120663</link>
         <description><![CDATA[<ol><li><p>  러시아가 청국을 도와 요동이란 땅을 일본에 빼앗기지 아니하게하고 , 배상을 러시아에서 먼저 취대하여주어 일본에 갚게 하니,</p><p> 청국서 러시아를 대하여 감사히 여겨 항구 한 곳을 빌려 주고자 하고 철도를 청국 지방 안에 놀 권리를 허가했다.</p></li><li><p>당시 세계 정세와 주변국끼리의 외교 상황이 잘 나타나있다.  특히 이 기사엔</p><p>러시아가 일본을 압박하여 청에게 요동을 돌려주게 한 삼국 간섭의 상황, 따라서 청이 러시아에게 우호적이게 된 상황이 드러나있다. 세계인식이 드러난 기사라고도 볼수 있다.</p></li><li><p>  독립신문은 민중에게도 의견을 나눌수 있는 의견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 되었을것이다.따라서 독립협회의 활동과 목적도 더 잘 전달 할수 있는 중요한 기능을 했을것이다. </p><p>이는 자주적이고 근대적인 국가로 나아가려는 독립협회의 목적과 일치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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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21 00:56: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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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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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모둠원:나보미,나한비,이민서,임시환</title>
         <author>s25005_2</author>
         <link>https://padlet.com/yigugu0202/Serch_newspaper/wish/3460123672</link>
         <description><![CDATA[<p><strong>일젼 신문에 우리가 말 기를 머리 고 양복 거슨 집 곳친 후에 새로 도와 쟝판 것 다고(</strong>1896년 05월 26일)</p><p>1. 기사 내용 요약</p><p>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는 일은 집을 고친 후에 도배와 장판을 하는 것에 비유되며, 시기와 순서를 잘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시작된 변화를 다시 되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는 집을 고치기 전에 도배를 했다가 다시 뜯는 것과 같은 잘못이라고 본다. 머리 모양과 복장은 개화의 본질은 아니지만 백성에게 편리한 일이므로 억지로 시키거나 금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백성에게는 복장과 머리에 대한 자유를 주되, 군인과 순검 같은 공무원은 질서를 위해 일정한 규칙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대군주께서도 상투와 망건을 하지 않으시므로, 관인과 군사들은 임금을 따라 서양식 복장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결론짓는다.</p><p><br></p><p>2.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p><p>이 기사는 조선 개화기 당시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는 외형적 개혁을 통해 당시 사회의 갈등과 변화를 보여준다. 저자는 머리 깎기와 양복 착용을 집을 고치기 전에 도배와 장판을 먼저 하는 일에 비유하며, 개혁은 근본적인 제도 정비가 먼저 이루어진 뒤에 외형적 변화가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백성의 복장과 머리 모양은 개인의 자유에 맡기는 것이 옳으며, 정부가 억지로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군사나 순검처럼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일정한 기준을 따를 필요가 있으며, 서양식 군사제도를 도입한 이상 외형도 그에 맞춰 정돈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임금이 앞장서서 상투를 자르지 않았기 때문에 관료와 군사들도 이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며, 전체적으로 개혁은 질서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드러낸다.</p><p><br></p><p>3. 독립신문을 통해 본 독립협회의 의미</p><p>독립협회가 지향한 개화는 단순한 서양식 복제나 외형의 변화가 아닌, 국민의 자율성과 실질적 이익을 중심에 둔 합리젂이고 자주적인 개혁이었다. 따라서 이 기사를 통해 본 독립협회의 의미는, 백성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국가의 근본을 바로잡아 질서 있고 실용적인 방식으로 근대 국가를 건설하려 한 개혁적 민권 단체로서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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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21 00:57: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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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람이 행새를 똑똑히 하고 남에게 대접을 받으려면 (1897.5.2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yigugu0202/Serch_newspaper/wish/3460124234</link>
         <description><![CDATA[<ol><li><p><strong>자기 이해와 상대 이해의 중요성</strong></p><ul><li><p>사람은 자기의 장점과 단점, 형편을 잘 알아야 하고, 교류하는 상대의 성격과 처지도 알아야 제대로 대접받고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다.</p></li><li><p>마찬가지로, 나라는 자국 사정뿐 아니라 외국 사정도 잘 알아야 외교에서 실익을 얻을 수 있다.</p></li></ul></li><li><p><strong>조선의 현실 비판</strong></p><ul><li><p>조선에는 자국 사정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외국 사정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p></li><li><p>수십 년간 외국과 교류했지만 백성에게 이로운 성과가 없었던 이유는 조선인들이 나라 사정도 모르고, 외국과의 교류에서 이익을 취할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p></li></ul></li><li><p><strong>개화에 대한 오해와 실천 부족</strong></p><ul><li><p>‘개화’라는 말을 들은 지 오래지만 실상을 아는 사람은 적고, 아는 사람도 실행력이 부족해 백성은 여전히 개화에 대해 두려움과 의심만 갖고 있다.</p></li></ul></li><li><p><strong>백성의 변화와 기회</strong></p><ul><li><p>백성들은 점차 개명하고 있으며, 공평한 정부와 안정된 삶을 원하고 있다.</p></li><li><p>조선은 독립국으로 인정받고 있어, 다른 나라가 쉽게 침범할 수 없으며, 외교만 잘하면 전쟁 걱정도 줄일 수 있다.</p></li></ul></li><li><p><strong>편파적 외교의 폐해</strong></p><ul><li><p>과거 정부가 일본에 치우쳤고, 현재는 러시아에 치우치려는 움직임이 있다.</p></li><li><p>한 나라에만 의지하면 다른 나라의 반감을 사게 되며, 외세 개입과 내정 불안의 원인이 된다.</p></li></ul></li><li><p><strong>올바른 외교와 정치 방향 제안</strong></p><ul><li><p>모든 외국과 균형 있게 교류하고, 조선 백성을 우선적으로 대접해야 한다.</p></li><li><p>백성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외세가 아닌 조선 스스로를 믿고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p></li><li><p>외국 지식과 문물을 받아들이되, 조선인의 힘으로 조선을 지탱해야 한다.</p></li></ul></li><li><p>이 글은 단순한 비판글이 아니라, 조선 말기 <strong>지식인의 성찰과 실천적 제안이 담긴 정치·사회·외교 담론</strong>입니다.<br>조선의 진정한 발전은 <strong>외세 의존이 아닌, 조선인의 자각, 국민 계몽, 균형 외교</strong>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점을 강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p></li><li><p>이 글은 단순한 외교 논평이 아니라, <strong>당시 조선 지식인들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백성과 함께 길을 찾으려 했던 실천적 제안서</strong>입니다. 독립협회는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strong>조선 최초의 국민 정치운동</strong>을 이끌며, <strong>대한민국의 근대화와 민족 자주정신의 뿌리</strong>를 이룬 중요한 역사적 주체입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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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21 00:57: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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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교동샤진관 (1899년 12월 4일)</title>
         <author>s25019_2</author>
         <link>https://padlet.com/yigugu0202/Serch_newspaper/wish/3460132490</link>
         <description><![CDATA[<ol><li><p>일본인이 서울 교동에 사진관을 차리고 사진을 매우 싸게 찍어주겠다고 광고했으며, 한성부 관리들의 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는 등 영향력을 넓히려 했다.</p><p>2.일본인들이 서울(교동)에 사진관을 설립하고, 무료 혹은 매우 저렴하게 사진을 찍어주는 방식으로 조선 사회에 영향력을 넓히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p><p>3.<strong>독립신문</strong>은 한글과 한문을 함께 사용하며, 일반 대중도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최초의 민간 신문입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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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21 01:01: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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