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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북중학교 2반 문화유산 지도 by Hyebeen Le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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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문화유산을 사진+작품설명  올려주세요(작품설명 앞에 번호,이름 작성하기)</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3-28 05:36: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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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북 경주시 석굴로 238</title>
         <author>leehyebeen0754</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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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20100/이영북]  초반 9세기에 세운 석탑사 사찰의 석탑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암각화이며, 한국의 암각화예술의 최고봉 중 하나로 꼽힙니다.석굴암은 전체적으로 높이 4m, 폭 5m 정도의 면적에 약 3,000여 평방미터에 걸쳐 암각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암각화는 세월을 거치면서 흔들리거나 변형되지 않은 특징이 있어, 전형적인 고려시대 암각화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석탑 돌벽에 새겨진 암각화는 다양한 주제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요한 역사적 사건, 종교적 이야기, 문화적 자화상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암각화를 감상할 때는 먼저 암각화의 깊이와 섬세한 조각 기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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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3-28 05:36: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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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다보탑</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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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20203 김태현</p><p>석가탑은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사에 있는 석조 불탑으로,&nbsp;<strong><mark>남북국시대 신라의 일반형 석탑</mark></strong>입니다.&nbsp;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nbsp;</p><p><strong>석가탑의 특징</strong></p><ul><li><p>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상륜부를 조성한 일반형 석탑입니다.&nbsp;</p></li><li><p>기단부나 탑신부에 아무런 조각이 없어 간결하고 장중하며, 각 부분의 비례가 아름답습니다.&nbsp;</p></li><li><p>탑 주위에는 연화가 조각된 8개의 둥근 돌을 돌리고, 이들 연화석 사이에 긴 돌을 끼워 경계를 삼았습니다.&nbsp;</p></li><li><p>이후 건립되는 우리나라 석탑들은 대부분 이 석가탑을 모범으로 삼아 건립되었습니다.&nbsp;</p></li></ul><p><strong>석가탑의 이름&nbsp;</strong></p><ul><li><p>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이며 흔히 줄여서 석가탑(釋迦塔)이라고도 합니다.</p></li><li><p>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에서 따 무영탑(無影塔)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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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35: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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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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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br/></p><p><strong>고인돌</strong>(dolmen) 또는&nbsp;<strong>지석묘</strong>(支石墓<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A%B3%A0%EC%9D%B8%EB%8F%8C#cite_note-1"><sup>[1]</sup></a>)는 고인의 시신을 넣은 관을 묻는 크고 평평한 바위를 몇 개의 바위로 괴어 놓은&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A%B3%A0%EB%8C%80">고대</a>의&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A%B1%B0%EC%84%9D">거석</a>(Megalith) 구조물을 말한다.&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95%84%EC%8B%9C%EC%95%84">아시아</a>와&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9C%A0%EB%9F%BD">유럽</a>,&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B6%81%EC%95%84%ED%94%84%EB%A6%AC%EC%B9%B4">북아프리카</a>에 6만개정도가 분포하며, 숫자상으로&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D%95%9C%EA%B5%AD">한국</a>에 남·북한을 합쳐 4만개 정도로 가장 많다.<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A%B3%A0%EC%9D%B8%EB%8F%8C#cite_note-2"><sup>[2]</sup></a><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A%B3%A0%EC%9D%B8%EB%8F%8C#cite_note-3"><sup>[3]</sup></a>&nbsp;고인돌은 윗부분이 평평하며, 내부에는 방이 마련되어 있다. 세워진 연대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유럽과 아프리카는 기원전 5,000년 ~ 기원전 4,000년, 동아시아는 기원전 2,500년 ~ 기원전 수백 년 전후로 추정된다. 유럽의 고인돌들은 주변에 흙이나 작은 돌로 덮어 무덤을 조성하기도 하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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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35: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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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숭례문</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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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20218최용준</p><p><br/></p><p><br/></p><p>숭례문(崇禮門)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전통 건축물로, 국보 제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문은 1395년에 건립되어 조선의 수도 한양(현재의 서울)을 대표하는 중요한 출입문 중 하나입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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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37: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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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leehyebeen0754/oosciijnizfsm8pl/wish/3390455148</link>
         <description><![CDATA[<p>김도영</p><p><br/></p><p>첨성대</p><p>신라시대에 건립된 천문대이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소재하며 높이 9.17m, 밑지름 4.93m, 윗지름 2.85m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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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38: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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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경복궁 향원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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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20205 박시후</p><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62725&amp;ref=y"><br>경복궁 건청궁</a> 남쪽에 위치한 누각(樓閣)으로, 누각은 사방의 경관을 감상하기 위해 여러 층으로 지어진 건축물을 말한다. 전각의 명칭인&nbsp;'향원(香遠)'은 '향기가 멀리간다.'라는 뜻으로, 중국 북송시대의 유학자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42771&amp;ref=y">주돈이</a>(周敦頤, 1017 ~ 1073)가 지은 《애련설(愛蓮說)》에서 참고하였다. 현판의 글씨는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62330&amp;ref=y">고종</a>이 직접 썼다.&nbsp;</p><p><br/></p><p><strong>역사</strong></p><p><br/></p><p>1885년(고종 22) 즈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오늘날까지 잘 남아있다. 향원정의 연못을 건너는 다리인 취향교는 6.25 전쟁 당시 훼손된 것을 1953년에 복원하였으나, 그 위치와 형태가 다르게 복원되었다. 2017년 향원정 보수공사를 하면서 취향교를 원래의 위치에 본래 모습으로 다시 복원하기로 하였고, 2021년에 복원이 완료되었다.</p><p><br/></p><p><strong>구조 및 형태</strong></p><p><br/></p><p>2층 규모의 건축물로, 누각의 평면은 정육각형이다. 장대석으로 기단을 만들고, 위에 육각형의&nbsp;장주초석을 올렸다. 1·2층을 한 나무의 기둥으로 세웠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4분합 창문을 두었다.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63820&amp;ref=y">공포</a>는 익공계로 1출목 2익공 형태이며, 바닥의 가장자리에는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28949&amp;ref=y">온돌</a>이 설치되어 있다.&nbsp;</p><p><br/></p><p><strong>가치 및 의의</strong></p><p><br/></p><p>향원정은 고종이 휴식을 취했던 공간으로 경복궁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대표 건물이다. 심미성과 비례감이 뛰어나며 주변의 풍경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nbsp;2012년 3월 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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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39: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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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4가 숭례문 광장</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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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이 건물은 특수한 목적을 가진 성문이기 때문에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46265&amp;ref=y">천장</a>을 가설할 필요가 없어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이 건물의 지붕 형태가 어느 시기에 변경된 것인지 뚜렷하지 않으나 당초에는 평양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80713&amp;ref=y">대동문</a> 또는 개성 남대문과 같은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57368&amp;ref=y">팔작지붕</a>이었다는 것이 해체, 수리 때의 조사에서 드러났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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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39: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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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굴암길</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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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ul><li><p>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되었습니다.&nbsp;</p></li><li><p>석굴암은 당나라 성당 시대의 사실주의 양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사실주의를 토대로 신라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nbsp;</p></li><li><p>석굴암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nbsp;</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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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41: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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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장곡길 칠갑산 장승공원ᆞ20217조준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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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20217조준혁</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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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41: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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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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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20206 박한가온 </p><p><br/></p><p>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1·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 3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다포(多包)집이다. 겉모양이 3층으로 된 한국의 유일한 법당으로 내부는 통층(通層)이다.</p><p><br/></p><p>기단(基壇)은 양쪽에 자연석을 초석으로 앉힌 돌계단이 있다. 두리기둥은 우주(隅柱:모서리 기둥)가 매우 굵고 기둥머리에 창방(昌枋)을 끼고 그 위에 평방(平枋)을 올렸으며, 머리끝 부분과 기둥 사이에 공간포(空間包)를 놓았다. 가구(架構) 방식은 1층은 고주(高柱) 4개와 20개의 기둥을 주위에 세워 고주와 이 기둥들을 커다란 퇴보로 연결하였다. 2층은 이 퇴보 위에 가장자리 기둥을 세워 그 안쪽 고주를 퇴보로 연결하였다. 3층은 몇 토막의 나무를 이어서 만든 고주를 그대로 우주를 삼아 그 위에 팔작지붕을 올렸다. 이 특수한 가구 방식은 목조 탑파(塔婆)의 구조에서 볼 수 있는데, 심주(心柱) 각층 기둥이 연결되는 방식을 본떠서 한 개의 심주 대신에 네 개의 고주가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p><p><br/></p><p>공포는 내외 2출목(二出目)으로 외부 첨차(檐遮)는 우설(牛舌), 내부 첨차는 운궁(雲宮)으로 되었다. 1층과 2층의 퇴보는 그 끝이 길쭉하게 뻗어나와 외목도리를 받치고 있고, 그 아래에 운공(雲空)이 있다. 규모가 웅대하고 상부의 줄어든 비율이 크기 때문에 안정감을 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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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41: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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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창덕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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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조선의 법궁(정궁)은 경복궁이었으나 예법에 따라 딱딱하게 지어진 탓에 실제 거주는 주로 창덕궁에서 하였고[4] 이후 임진왜란때 경복궁이 완전히 소실된 이후부터[5]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되는 1867년까지. 경복궁을 대신하여 창덕궁이 조선의 정궁 역할을 대신 수행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 정사의 대부분이 이 창덕궁에서 일어났다고 보면 된다.</p><p>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6] 1997년 12월 4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개최된 제21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7]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8]</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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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42: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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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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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962년 12월 20일&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66964&amp;ref=y">국보</a>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27.5cm,&nbsp;입지름 26.1cm이며, 경상남도 밀양시&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79802&amp;ref=y">단장면</a>&nbsp;구천리 표충사에 소장되어 있다. 향완이란 절에서 마음의 때를 씻기 위해 향을 피우는 데 사용하는 도구로서&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62465&amp;ref=y">향로</a>라고도 부른다. 1177년(<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61454&amp;ref=y">고려</a>&nbsp;명종 7)의 작품으로 청동향로에 무늬를&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85476&amp;ref=y">음각</a>하고, 그 음각한 홈 속을 은사(銀絲)로 메워 장식하였다.&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85474&amp;ref=y">은입사</a>&nbsp;기법은 중국에서 이미 전국시대에 발달한 기술로 이와 같은 은입사 장식의 한국의 예로는 고려시대의&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04863&amp;ref=y">불교미술</a>에서 찾아볼 수 있다.</p><p>형태는 넓은 전이 달린 몸체와 나팔모양의 받침을 갖춘 고배형(高杯形)으로,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양식을 보이고 있다. 전과 몸체가 닿는 부분을 둥글게 처리하고 받침 둘레의 가장자리에 얕은 턱을 만들어 안정감을 주었다. 또한 높이나 너비의 비율도 거의 1：1을 이루어 균형을 보인다. 향완 전체에 문양이 음각되어 있는데, 6개의 원 안에 '범(梵)' 자를 은입사하였으며, 그 사이에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받침에는 구름과 용무늬를 장식하였는데, 굵은 선과 가는 선을 적절히 배합하여 능숙하게 표현된 용의 모습에서 고려시대의 뛰어난 은입사기법을 볼 수 있다.</p><p>이 향완은 향로의 화사(火舍) 둘레 뒷면에 "大定十七年丁酉六月八日…"로 시작되는 명문이 있어 제작연대를 알 수 있으며, 이는 현재 국내에 알려진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 명문에 '함은향완(含銀香垸’)'이라는 문구가 있어 향로의 이름을 함은향완이라고 한 것이다. '함은'이라는 말은 은입사라는 뜻이며 이 말은 현재 흔히 쓰이는 은<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09603&amp;ref=y">상감</a>(銀象嵌)이라는 말과 같다. 뿐만 아니라 받침 안쪽에 새겨진 글을 보면 원래 이 향완이 있었던 곳이 현재의 표충사가 아닌 창녕 용흥사였음을 알 수 있는데, 어떻게 해서 표충사에 전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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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42: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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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5정유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leehyebeen0754/oosciijnizfsm8pl/wish/3390461171</link>
         <description><![CDATA[<p>석가탑(釋迦塔)은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사에 위치한 탑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고대 석탑 중 하나입니다. 석가탑은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를 모신 탑으로, 774년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집니다.</p><p>석가탑은 그 당시의 뛰어난 석조 건축 기술과 불교 미학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그 구조와 조각은 매우 섬세하고 정교합니다. 탑은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탑은 불교의 교리와 상징성을 담고 있습니다. 탑의 외형은 기하학적이고 균형 잡힌 형태를 이루며, 석가탑의 가장 큰 특징은 탑의 위쪽에 놓인 석재들이 마치 인위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완벽하게 맞춰져 있다는 점입니다.</p><p>석가탑은 그 당시 불교 예술과 건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이 탑은 불교의 교리와 철학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예시로, 불교 신앙의 상징이자 한국 고대 건축의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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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43: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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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126 20213 이도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leehyebeen0754/oosciijnizfsm8pl/wish/3390461208</link>
         <description><![CDATA[<p>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顯忠祠)에 있는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의 장검 2자루이다. 길이 2m의 칼몸 2점과 1.45m의 칼집 2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칼날에는 이순신의 직접 지은 시구 ‘三尺誓天山河動色(삼척서천산하동색 :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떤다.)'와 ‘一揮掃蕩血染山河(일휘소탕혈염산하 :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가 금동으로 입사(入絲)되어 있다. </p><p><br/></p><p>칼집은 나무를 깎아 만들었으며, 몸에 찰 수 있도록 가죽끈을 매달았다. 칼자루와 칼날을 결합하는 부분인 슴베에는 ‘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茂生作(갑오사월일조태귀련이무생작 : 갑오년(1594년) 4월에 태구련(太九連)과 이무생(李茂生)이 만들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제작 시기와 제작 장인을 알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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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43: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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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장서윤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첨성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leehyebeen0754/oosciijnizfsm8pl/wish/3390463037</link>
         <description><![CDATA[<p>첨성대(瞻星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월성 동쪽에 위치한 고대의 천문 관측소입니다. 이 첨성대는 신라 시대(7세기) 천문학적 연구와 관측을 위한 중요한 시설로, 신라의 왕실과 국가의 중요한 일정을 결정하는 데 활용되었습니다. 특히, 별이나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여 농사의 시기나 군사적 결정을 내리는 데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p><p>첨성대는 그 이름이 "별을 바라본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신라의 천문학적 지식과 과학 기술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건축물은 7층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층은 점차 좁아지는 형태를 보입니다. 첨성대의 건축 양식은 당시 신라의 고대 건축 기술과 천문학적 상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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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44: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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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경복궁 20209손규동</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leehyebeen0754/oosciijnizfsm8pl/wish/3390464175</link>
         <description><![CDATA[<p>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전기에 창건되어 정궁으로 이용된 궁궐. 정궁.</p><p><strong>개설</strong></p><p>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北闕)이라고도 불리었다.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창건되어 초기에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궁궐로 이용되었다.</p><p><strong>연원 및 변천</strong></p><p>이성계가 왕이 되어 곧 도읍을 옮기기로 하고,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어 궁의 창건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 완성하였다.</p><p>이 당시 궁의 규모는 390여 칸으로 크지 않았다.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 5칸에 상하층 월대(月臺)와 행랑 · 근정문 · 천랑(穿廊) · 각루(角樓) · 강녕전(康寧殿) 7칸, 연생전(延生殿) 3칸, 경성전(慶成殿) 3칸, 왕의 평상시 집무처인 보평청(報平廳) 5칸 외에 상의원 · 중추원 · 삼군부(三軍府) 등이 마련되었다.</p><p>궁의 명칭은 『시경』 주아(周雅)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두 자를 따서 경복궁이라고 지었다.</p><p>정종이 즉위하면서 도읍을 다시 개성으로 옮기어 궁을 비우게 되었으나, 제3대 태종 때 또 다시 환도하여 정궁으로 이용되었다. 태종은 궁내에 경회루(慶會樓)를 다시 지었는데, 연못을 넓게 파고 장대한 누각을 지어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사신을 접대하도록 하였으며, 파낸 흙으로는 침전 뒤편에 아미산(蛾眉山)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p><p>세종은 이곳에 집현전을 두어 학문하는 신하들을 가까이에 두었으며, 경회루 남쪽에 시각을 알리는 보루각(報漏閣)을 세우고 궁 서북 모퉁이에 천문관측시설인 간의대(簡儀臺)를 마련하였으며, 강녕전 서쪽에는 흠경각(欽敬閣)을 짓고 그 안에 시각과 사계절을 나타내는 옥루기(玉漏器)를 설치하였다.</p><p>1553년에는 궁내에 불이 났는데 강녕전에서 불이 나 근정전 북쪽의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듬해에 강녕전 외에 교태전(交泰殿) · 연생전 · 흠경각 · 사정전(思政殿)을 복구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궁은 전소되고 말았다. 이때 창덕궁 · 창경궁 등도 모두 불에 타버려 난이 끝나고 왕이 환도하였을 때 정릉동의 구(舊) 월산대군가(月山大君家)를 임시 어소(御所)로 정하였다.</p><p>궁의 복구 문제는 왜란 직후부터 논의되었으나 실천에 옮겨지지는 못하였다. 선조는 환도한 뒤 경복궁에 가가(假家)라도 지을 것을 명하였고, 1606년에는 궁궐영건도감(宮闕營建都監)을 설치하고 광화문과 근정전 등 주요건물만이라도 우선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일부 대신들이 ‘공사가 커서 1, 2년에 끝낼 수 없으므로 후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만류하자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p><p>여기에다 경복궁이 길(吉)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어서 결국 왜란 후 경복궁 대신에 창덕궁을 재건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과거 경복궁에서 단종이 쫓겨난 일이 있고 중종 때에는 조광조(趙光祖)가 사정전 뜰에서 왕의 친국(親鞫)에 이어 사약을 받은 일 등이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광해군도 한때 경복궁성을 수축케 하고 중건의 뜻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p><p>궁의 중건이 완료된 것은 소실된 지 약 270년이 흐른 1867년의 일이다[중건공사 개시: 1865년, 중건공사 완료: 1867년 말]. 수렴청정 중인 대왕대비[신정왕후]의 강력한 의지로 여느 궁궐의 규모나 격식을 훨씬 능가하는 대규모로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그 규모는 7,225칸 반이며 후원에 지어진 전각은 융문당(隆文堂)을 포함하여 256칸이고 궁성 담장의 길이는 1,765칸이었다. 궁이 완성되고 나서 1868년에 왕은 경복궁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때 조선왕조는 외국 열강들의 세력다툼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1895년에는 궁 안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은 이어(移御)한 지 27년째인 1896년에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겨,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궁안의 전(殿) · 당(堂) · 누각 등 4,000여 칸의 건물을 헐어서 민간에 방매(放賣)하고, 1917년창덕궁의 내전에 화재가 발생하자 경복궁의 교태전 · 강녕전 · 동행각 · 서행각 · 연길당(延吉堂) · 경성전 · 연생전 · 인지당(麟趾堂) · 흠경각 · 함원전(含元殿) · 만경전(萬慶殿) · 흥복전(興福殿) 등을 철거하여 그 재목으로 창덕궁의 대조전 · 희정당 등을 지었다. 궁전 안에는 겨우 근정전 · 사정전 · 수정전(修政殿) · 천추전(千秋殿) · 집옥재 · 경회루 등과 근정문 · 홍례문 · 신무문(神武門) · 동십자각 등이 남게 되었으며 정문인 광화문도 건춘문 북쪽으로 이건하였다.</p><p>또한, 궁의 중심건물인 근정전 정면 앞에 매우 큰 석조건물인 총독부청사를 지어 근정전을 완전히 가려 버렸다. 이 밖에 자선당 자리에도 석조건물이 들어서고 건청궁(乾淸宮) 자리에는 미술관을 지어 궁의 옛 모습을 거의 인멸시켰다.</p><p>1945년 광복 후 궁은 공원으로 개방되는 한편, 일인(日人)들이 지었던 총독부청사는 정부종합청사로 활용되다가, 1971년에 궁의 동북 담장 가까이에 지어진 목조기와건물 모양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에 들어있던 국립박물관이,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명칭을 고치면서 이 건물로 이건되었다. 구 총독부청사는 1995년 8·15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철거되었으며, 이 자리에 원래 있던 흥례문 권역이 2001년 10월 복원 · 낙성되었다.</p><p>한편, 일제에 의해 건물이 훼철되는 피해를 입은 경복궁을 복원하는 공사가 1991년부터 침전 · 동궁 · 흥례문 · 태원전 · 광화문 등 5개 권역으로 나누어, 20년에 걸쳐 5단계로 진행되었다. 이로써 고종 당시 지어진 건물의 40%가 복원되고,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다가 1968년에 철근콘크리트로조 지어졌던 광화문도 원래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p><p><strong>내용</strong></p><p>경복궁의 주요건물 위치를 보면 궁 앞면에 광화문이 있고 동 · 서쪽에 건춘(建春) · 영추(迎秋)의 두 문이 있으며 북쪽에 신무문이 있다. 궁성 네 귀퉁이에는 각루가 있다. 광화문 안에는 흥례문이 있고 그 안에 개천(開川) 어구(御溝)가 있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나간다.</p><p>어구에 돌다리인 금천교(禁川橋), 곧 영제교(永濟橋)가 놓여 있고 다리를 건너면 근정문이 있으며 문을 들어서면 정전인 근정전이 이중으로 높이 쌓은 월대 위에 우뚝 솟아 있다.</p><p>근정전 뒤의 사정문을 들어서면 왕이 정사를 보는 곳인 사정전이 있고 그 동 · 서쪽에 만춘전(萬春殿) · 천추전이 모두 남향으로 놓여 있다. 사정전 뒤 향오문(嚮五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연침(燕寢)인 강녕전이 있고 그 앞 동서 양쪽에 연생전 · 경성전이 있다.</p><p>강녕전 뒤에는 양의문(兩儀門)이 있고 문 안에 왕비가 거처하는 교태전이 있으며 잇대어서 동쪽에 원길헌(元吉軒) · 서쪽에 함광각(含光閣) · 동북쪽에 건순각(健順閣)이 있다. 그 뒤로는 후원이 전개되어 소나무가 우거지고 연못 · 정자 등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다. 흥례문으로부터 이곳까지에는 동서로 낭무(廊廡)가 각 건물을 둘러싸고 있다.</p><p>이밖에 궁 서쪽에 수정전이 있고 그 위에 경회루가 있는데 수정전은 의정부 청사로 쓰였던 곳이며, 경회루는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 잔치를 베풀던 곳이다. 또한 건춘문과 영추문 안에도 수많은 건물들이 들어차 있었다.</p><p>현재 궁내에 남아 있는 주요건물은 근정문 · 근정전 · 사정전 · 천추전 · 수정전 · 자경전 · 경회루 · 재수각 · 함화당 · 향원정 · 집옥재 · 선원전 등이며, 복원된 건물은 강녕전 · 자선당 · 태원전 · 광화문 등이다.</p><p>근정전(국보, 1985년 지정)은 조선왕조 정궁의 정전답게 중층의 정면 5칸, 측면 5칸의 장대한 건물이며 건물의 양식은 조선 말기에 속하여 세부의 장식적 처리가 두드러진다. 경복궁 근정문 및 행각(보물, 1985년 지정)은 정면 3칸의 중층지붕건물이다. 근정문 좌우로는 행각(行閣)이 연결되어 근정전을 둘러싸고 있다.</p><p>경회루(국보, 1985년 지정)는 정면 7칸, 측면 5칸의 장대한 누각 건물로 하층은 네모진 돌기둥을 세우고 상층에는 사방에 난간을 두르고 나무기둥을 세웠다. 주변에는 네모난 큰 연못을 파고 우측면에 세 개의 돌다리를 놓았다. 누각 건물로는 현재 국내에서 제일 큰 규모에 속한다.</p><p>향원정은 육각형 평면을 한 정자로 연못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목조구름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자경전(보물, 1985년 지정)은 침전건물의 하나인데, 이 건물의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굴뚝(보물, 1985년 지정)에 묘사된 십장생 무늬가 특히 주목된다.</p><p>사정전 북쪽에 있는 아미산은 여러 단의 화계(花階)와 그 사이의 나무 · 괴석 등이 눈길을 끌며 전체적으로 사철의 변화에 따른 조화를 보여 주는 한국식 정원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도 봉황 · 귀면 · 당초문 등을 새긴 육각 화문(花文) 장식의 경복궁 아미산 굴뚝(보물, 1985년 지정)이 있다. 이밖에 18세기에 만든 바람의 방향과 강도를 측정하는 기기인 풍기대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보물, 1985년 지정).</p><p>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에 있을 때는 경천사십층석탑을 비롯한 국보 · 보물로 지정된 석조물들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었으나 용산에 새로 지어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대부분 옮겨져서 현재는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 등 일부만 남아 있다.</p><p><strong>특징</strong></p><p>경복궁이 자리 잡은 위치는 도성의 북쪽 북악산 기슭으로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주산(主山)의 바로 아래이다. 궁의 전면으로 넓은 시가지가 전개되고 그 앞에 안산(案山)인 남산이 있으며 내수(內水)인 청계천과 외수(外水)인 한강이 흐르는 명당(明堂) 터이다. 궁의 왼쪽으로 종묘가 있고 궁의 오른쪽에 사직단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중국에서 고대부터 지켜져 오던 도성 건물배치의 기본형식인 좌묘우사(左廟右社)를 따른 것이다.</p><p>고종 때 중건된 궁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장방형으로 되어 있으며 궁성의 둘레는 1만 여척으로, 시가지를 내려다보듯이 남면(南面)하였고 궁의 주요건물들도 모두 남향으로 되어 있다.</p><p>건물의 배치는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부분에는 정전과 편전들이 놓이고 뒷부분에는 침전과 후원이 자리 잡고 있어 이른바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격식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다른 궁궐들이 정전과 침전을 좌우에 놓거나 배치에 있어 앞뒤의 관계가 불분명한 것과 대조를 이루는데, 경복궁이 조선조의 정궁이므로 특히 엄격한 규범을 나타내고자 하였던 것으로 풀이된다.</p><p><strong>의의와 평가</strong></p><p>경복궁은 비록 궁내의 건물들 대부분이 없어져서 근정전과 경회루를 제외한 많은 전각들이 복원되었지만, 창건 때의 위치를 지키고 있어 조선왕조 정궁의 면모를 대체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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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45: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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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212 오주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leehyebeen0754/oosciijnizfsm8pl/wish/3390469852</link>
         <description><![CDATA[<p>화성(華城)은 경기도 수원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곽이다. 정조(正祖)가 자신의 부친인 장헌세자의 묘를 옮기면서 읍치소를 이전하고 주민을 이주시킬 수 있는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방어 목적으로 조성하였다. 1794년 2월에 착공하여 2년 반에 걸친 공사 후 완공되었다. 성곽 전체 길이는 5.74Km이며, 높이 4~6m의 성벽이 130㏊의 면적을 에워싸고 있다.<br><br>처음부터 계획되어 신축된 성곽이라는 점, 거주지로서의 읍성과 방어용 산성을 합하여 하나의 성곽도시로 만들었다는 점, 전통적인 축성 기법에 동양과 서양의 새로운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는 점, 그 이전의 우리나라 성곽에 흔치 않았던 다양한 방어용 시설이 많이 첨가되었다는 점, 주변 지형에 따라 자연스러운 형태로 조성해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는 점 등의 특징이 있다. 1801년에 간행된 화성 준공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를 통해 공사의 자세한 전말을 알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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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49: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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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20219 최유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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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제주도에서 장승을 대신하여 세워진 마을의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남아 있는 향토자료를 보면 주로 성문의 입구나 길의 입구에 세운것이다.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다만 오래된 돌하르방이 쓰고 있는 모자는 보통 버섯머리 혹은 벙거지 모양으로 남근 모양과 흡사[3]한데, 이를 토대로 본래 남근석을 세워둔 것이 조선시대로 오면서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사람 모양의 돌하르방으로 고쳤던 거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뒷모습도 그냥 제대로 모자 모양을 한 것도 있어서 남근석설을 완전히 신뢰하긴 힘들다.</p><p><br/></p><p>제주도에서 많이 나는 현무암으로 만들어서, 전체적으로 구멍이 뽕뽕 뚫린 것이 특징이다. 그러한 현무암의 특징 때문에 투박하면서도 정감가는 모습이 인상적. 제일 큰 건 사람 키의 2배는 된다고 한다.</p><p><br/></p><p>또한 돌하르방의 종류는 손의 위치에 따라 상징하는 인물이 달라지는데, 오른손이 왼손보다 위에 놓인 돌하르방은 문인(文人)을 상징하고 왼손이 위에 놓인 돌하르방은 무인(武人)을 상징한다. 양손이 평등한 돌하르방은 평민 또는 근래에 만들어2016년 기준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전통 방식으로 제작된[4] 돌하르방은 총 47기로 제주목(현 제주시)에 23기, 대정현(현 서귀포시 서부)에 12기, 정의현(현 서귀포시 동부)에 12기이며 제주도에 현지에 있는 돌하르방은 45기이다. 제주목에 위치했던 돌하르방 2기가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옮겨졌기 때문. 이 3곳의 읍성에 세워진 돌 하르방들은 모양새가 각각 다르다.</p><p>제주대학교 돌하르방</p><p>제주목 돌하르방 : 일반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형태로, 다른 하르방들에 비해 높이가 더 높고[5] 얼굴의 주름이 가장 많고 할아버지의 모습을 띄고 있다. 사진은 제주대학교 박물관 앞에 전시된 돌하르방.</p><p>external/www.tte...</p><p>대정현 돌하르방: 다른 돌하르방들에 비해 순한 모습을 띠고 있으며 동그란 눈이 부각되어 있다.</p><p>external/www.tte...</p><p>정의현 돌하르방: 가장 단순한 형태로 다른 하르방들은 기본 틀 외에도 신체나 표정 등에 선을 새겼지만, 정의현 돌하르방은 딱 필요한 부분만 조각한 느낌이 강하다.</p><p>5. 유래[편집]</p><p>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히 언제, 어떻게 이 돌하르방이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보통 학계에서는 4가지 가설들이 논의된다.</p><p>북방 기원설: 몽골로부터 전파되었다는 학설. 몽골의 훈촐로오(人石)와 연관이 있다는 것에서 유래한 학설이다. 하지만 훈촐로오는 돌하르방과 달리 의자에 앉아 있는 석상들도 많고, 손에 식기를 들고 있는 석상도 있는 등 세세하게 따져보면 다른 점도 많다.[6] 제주도가 과거 원나라의 지배 하에 있어 그들이 이를 전파한 게 아닌가 하기 쉬우나 정작 학자들은 이 몽골에 있는 석상들은 몽골인이 세운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이전에 북방지역에서 활동했던 스키타이 민족이 세운 것으로 본다. 후술할 우실하 교수도 이 가설에 기초하여 돌하르방이 요하 문명의 석상에서 유래되었을 거라는 주장을 제시하기도 했다. 의외로, 제주 내에서는 상당히 인기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p><p>external/cdn.c.p...</p><p>external/2.bp.bl...</p><p>남방기원설: 남태평양에 있는 발리 섬의 석상문화가 해류를 타고 제주도까지 전파되었다는 설로 대만에서부터 시작된 폴리네시아계 민족[7]들의 대항해 과정에서 제주도가 영향을 받았으리란 견해가 있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도 양 손이 있고 갓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어 유력한 학설 중의 하나다. 제주도가 선사시대 당시 중국 산동 반도, 한반도 남부, 일본 열도와 더불어 원(原) 오스트로네시아족의 거주지 중 하나로 추정되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가 정작 다른 거주지들에서는 사라지고 제주도에만 남아 보존되었을 수 있다. 1세대 고고학자 중 하나인 김병모 교수도 이 가설을 주장하였다.#[8]</p><p>external/monthly...</p><p>external/www.anc...</p><p>발리섬 석상</p><p>볼리비아의 티와나쿠 석상(tiwanaku)</p><p>한반도 본토 유래설: 조선 중후기, 한반도 남부 지방의 석장승(벅수) 문화가 제주도를 통해 건너가면서 변형된 형태로 제작되었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벅수는 돌로 만들어졌다는 것만 빼면, 돌하르방과 다르게 일반 나무로 만든 장승처럼 특이한 모자[9]와 양 손이 없어서 유력하게 보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p><p>external/www.jeo...</p><p>조선후기 석장승들</p><p>자체생성설: 말 그대로 제주도에 거주하던 고대인들이 어떤 문명의 영향도 받지 않고 독자적인 형태로 제작했다는 가설.</p><p>그 외에 다른 주장으로 2014년 10월 29일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한국항공대 우실하 교수는 최근 중국 랴오닝(遼寧)성 차오양(朝陽)시 젠핑(建坪)현 젠핑박물관의 전시물 가운데 제주 돌하르방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은 요대(요나라 시대) 석인상을 발견했다고 29일 밝혔다. 우 교수는 "그동안 여러 주장에서 근거로 제시된 석인상들이 제주 돌하르방과 비슷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이번 요대 석인상처럼 '똑같다'는 느낌이 든 적은 없었다." 하면서 "제주 돌하르방과 거의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닮은 요대 석인상이 발견된 이상 최소한 그 외형은 몽골 이전의 요나라 시대와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마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기사 및 비교 사진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위 북방 기원설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우실하 교수가 홍산문화를 한국사와 결부시키는 선봉장 격인 인물이라는 점은 참고하자. 이 자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항공대 사회학 교수이다.</p><p><br/></p><p>이렇듯 여러 가설들이 제각기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에 종합설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제주도는 고려시대 이전에는 한반도 문화권과 상이한 집단이 거주혔을 가능성도 제기되는데[10], 이때 제주도의 원주민들은 남방계 문화의 영향을 일찍이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11] 그러는 한편, 고려시대 이후로 몽골의 직접적인 통치 거점이 되면서 우실하 교수의 주장대로 요나라 등과도 같은 계통인 북방 몽골계 문화가 들어왔고, 조선시대 이후로는 한반도의 장승 문화까지 들어오면서 현재의 돌하르방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위에 나열된 사진들을 보면 지리적으로는 북방기원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고, 돌하르방 손의 위치는 남방기원설로 설명하는 게 가능하다. 어느 한 가지로만 기원을돌하르방은 제주 방언으로, 표준어로 해석하면 '돌 할아버지'가 된다. 이 명칭은 근대에 나왔고, 그 전에는 우석목(偶石木)이라고 불렀다. 조선 시대의 기록에는 옹중석(翁仲石)이라는 단어로도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1] 이후 어린이들이 돌하르방이라고 부르는 게 널리 퍼지다, 결국 문화재로 지정할 때 돌하르방이 정식 명칭이 된 것.[2]</p><p><br/></p><p>그 외에 불교의 미륵 신앙의 영향을 받아 육지에서 큰 돌을 미륵이라 부르는 것처럼 미륵, 돌미륵이라 불리기도 한다. 설명하기에는 해명해야 할 점들이 많다.</p><p>진 것.</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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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52: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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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특별시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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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20208서기원</p><p><br/></p><p><br/></p><p>"순수비(淳樸碑)"는 삼국 시대 신라의 왕인 진흥왕(재위 540~576년)이 세운 기념비 중 하나입니다. 순수비는 왕이 직접 영토를 확장한 지역을 순행하며 세운 비석으로, 국경 확장과 정복지를 기념하는 목적이 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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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52: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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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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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20207방주원</p><p>불국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호국사찰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p><p>불국사의 특징</p><p>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년) 신라 귀족 김대성이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p><p>목조 건축과 석조 기단이 잘 조화되어 통일신라 불교미술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p><p>불국사는 신라인이 그린 불국, 이상적인 피안의 세계를 지상에 옮겨 놓은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p><p>불국사는 아시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건축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p><p>불국사의 문화유산 </p><p>비로전에 모신 금동비로자나불좌상</p><p>극락전에 모신 금동아미타여래좌상</p><p>국보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p><p>불국사와 석굴암</p><p>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 12월에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p><p>석굴암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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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01 05:52: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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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6 정윤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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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 무게 18.9톤이며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 최대의 종으로, 에밀레종 또는 봉덕사(奉德寺)에 달았기 때문에 봉덕사종이라고도 한다.</p><p><br/></p><p>종명(鐘銘)에 의하면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이 그의 아버지 33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큰 종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 혜공왕(惠恭王)이 뒤를 이어 771년(혜공왕 7)에 완성하고 성덕대왕신종이라 불렀다. 원래 봉덕사에 걸었던 것을 1460년(세조 6) 영묘사(靈妙寺)에 옮겨 걸었는데, 홍수로 절이 떠내려가고 종만 남았으므로 현 봉황대(鳳凰臺) 옆에 종각을 짓고 보존하다가 1915년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p><p><br/></p><p>종 모양은 입 부분에 당초문으로 된 띠가 있으며, 당초문 사이에 8개의 큼직한 연화무늬를 일정한 간격으로 둘렀다. 종 위에는 웅건한 모습의 용(龍)이 음관(音管)을 감고 있다.</p><p><br/></p><p>몸체에는 당초문을 두른 견대(肩帶)가 있고 그 아래에 4개의 유곽(乳廓) 안에 각각 9개씩 모두 36개의 연꽃을 넣었으며, 그와 대칭으로 보상화무늬와 연꽃으로 된 당좌(幢座)가 있다. 비천상(飛天像)은 양각된 종명을 사이에 두고 2구씩 상대한 4구가 연화좌(蓮花座) 위에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공양상(供養像)이다. 그 주위로 보상화(寶相華)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비천상 사이의 2개처에 이 종의 유래와 종을 만들 때 참가한 사람 및 글쓴이의 이름이 적힌 종명이 있어 신라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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