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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3-1한일관계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 by 김태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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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3-03-02 02:15: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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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선은 망할 운명이었는가?</title>
         <author>teseus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00456331</link>
         <description><![CDATA[<div>https://www.youtube.com/watch?v=h8I7f3ciTBo<br><br>위의 영상을 시청하고 &lt;조선은 왜 망국으로 가게 되었는가? 이 시기 조선의 대응은 실패로 평가할 수 있는가?&gt;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작성해 주세요. 본인의 코멘트 페이퍼와 다른 이의 글에 대한 댓글 하나를 다음주 월요일 27일 23시 59분까지 제출해 주시면 됩니다. 수업 관련된 건의나 요청사항도 적어주심 감사.&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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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02 02:49: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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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3410 이성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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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0083401</link>
         <description><![CDATA[<div>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시 조선의 대응은 명백한 실패였다. 이것이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었고 당장 뚜렷한 돌파구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조선은 끊임없이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당시 조선은 세도 정치와 고립된 외교, 각자 도생하기 바쁜 국민들로 나라가 급속도로 쇠퇴하였다. 이후 조선은 서둘러 나라의 기틀을 다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였다. 초기에 조선을 가장 탐냈던 나라는 서유럽 국가나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였다. 이때 조선은 러시아와 일본의 대립에서 아무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고, 양국이 힘을 키우고 전쟁이 일어나는 일을 바라 보야만 했다. 그 사이에 일본은 영국과 미국의 승인까지 받으며 점차 한반도 침략의 명분을 구하려 했고, 그렇게 조선은 세계 어느 나라의 도움도 받지 못하게 되었고 이것이 조선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러일전쟁은 단순히 조선, 일본,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점차 조선을 고립시키려는 계획적인 움직임이었고 최종적으로 더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였다. 조선은 주변 정세에 휘둘리기만 한 채 막연히 중립을 하겠다고만 외쳤지만 힘 없는 중립은 아무 효력이 없었다. 강연에서 나왔듯이 국제관계에서 고립된 나라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div><div>강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국제 관계에 면밀한 인식을 갖고 정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은 단순히 좋고 나쁜 나라가 존재하거나 감정에 휘둘려 해석하는 문제가 아니다. 정치, 경제, 지리가 면밀히 엮여 나라를 넘어 세계 전체가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 예측해야 한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적어도 국민들이 의견을 표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큰 문제가 없고 국민들도 해외 정세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는 있다. 하지만 자세한 사정은 모른 채 단순히 반일, 반중 등의 시선으로 다른 나라를 멸시하거나 사회-문화적으로 고립되거나 외국과 소통하지 않는, 소위 말하는 ‘갈라파고스화’가 진행되기도 하는 실황이므로, 아직도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는 모습도 존재한다. 현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끊임없이 국외 정세와 나라의 현황에 눈을 기울이고 국민 스스로도 도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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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4 08:04: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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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2869</title>
         <author>2021112869</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1252028</link>
         <description><![CDATA[<div>영상을 보고 느낀 것은 조선은 너무나도 힘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이 아니였어도 다른 나라에게 먹히는 것은 큰일이 아니였을것같다. 조선은 국제적으로 자주적으로 내세울수 있는 권력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고립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 어떻게 일본이 우리를 통치했고 주권을 빼앗았는지에 대한 과정은 면밀히 배우지만 그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의 조선의 상황과 위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던것같다.</div><div>해방도 우리 손으로 하지 못하고 일본이 패망하면서 영미 국가들과의 동맹이 깨지며 해방할수 있었다.&nbsp;</div><div>조선은 개혁이 너무나도 늦었다.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나고 프랑스에서 시민 혁명이 일어날 때 우리는 영조와 정조가 집권을 하고 있었고 혁명은 생각지도 못한 시기에 살고 있었다. 조선은 이런 수준이 낮은 사회를 너무 오래 유지를 했고 비전이 존재하지 못했다.&nbsp;</div><div>이처럼 이러한 일이 다시 반복하지 않고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가 자주적인 힘을 가지려면 국제관계에 대한 면밀한 인식이 필요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기를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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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5 12:44: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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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4110282 조선은 망할 운명이었는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1537899</link>
         <description><![CDATA[<div>&nbsp;조선은 망할 운명이었는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운명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 라는 뜻이다. 즉, '조선은 망할 운명을 가지고 있었는가?' 라는 물음에 답하려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 안팎의 많은 인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뛰어 넘는 초인간적인 힘에 의하여, 구조적으로 망국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 나라였는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nbsp;<br>&nbsp;지리적으로 조선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 사이 작은 반도에 위치해있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므로 중국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조선은 동아시아의 패권을 잡은 중국을 따라 화의질서의 중간단계에, 오랑캐는 아니지만 우두머리도 아닌 위치에서 500여년동안 왕조를 지켜왔다. 이러한 국제관계는 조선이 나름의 독자적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중간의 위치에서 급격한 사회변화는 일어나기 힘들다. 화이질서에 동참하여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지만 동시에 급격한 사회변화의 기회는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반면, 일본은 지리적으로 중국에서 매우 먼 탓에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상대적으로 늦을 수 밖에&nbsp; 없었고 화의질서의 가장 끄트머리에 자리잡았다.&nbsp; 이는 곧 변화의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의미한다. 일본은 서양과의 교류가 항상 중국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했던 조선과는 다른 환경에 놓여있었다.<br> 물론 한 국가의 운명이 이런 한 가지의 요소 만으로 결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의 화이질서가 한계에 봉착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아직도 망하지 않고 제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주듯이, 국제질서는 영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중국의 그늘 아래서 큰 변혁을 꾀하기 어려웠던 조선은 새 시대의 흐름에 떠내려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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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6 01:21: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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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1397</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1627044</link>
         <description><![CDATA[<div>  조선이 망국이 된 것은 미리부터 정해져 있던 운명과 같다. 영상에 나온 것처럼 조선은 지리적으로 당시 강국인 러시아의 요충지였고, 갓 근대국가가 된 섬나라인 일본은 러시아에게 조선을 빼앗기면 고립되는 상황이었다. 이를 알고 있던 일본은 러시아가 약해진 틈을 타 그들을 공격하고 한반도를 점령하는 데 성공하였다. 우선 조선에게는 열강들과 맞설 힘이 전혀 없었다. 군사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그랬다. 당시, 다른 열강들에서는 높은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자국 정치에 불만을 품어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반면에 조선에서는 개개인이 권력만을 갖기 위해 일으킨 온갖 부패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나라의 안위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nbsp;</div><div>  만약 조선에 유능한 왕이 있었고, 사람들이 연대의식을 갖고 나라의 발전을 향해 큰 소리를 내었으며, 나라가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면 결과가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결과를 생각하고 그를 이뤄내기엔 당시 조선에는 그 무엇도 없었다. 조선이 망국이 되지 않음을 바라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이 뒤틀려 있었다. 일본은 그들의 지리적 정치적 위치와 약점을 파악하고 빠르게 움직여 바라던 목표를 정확이 이뤄냈다. 일본이 넓은 시야로 나라 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조선은 국외는 물론, 나라 안의 상황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고 오직 ‘나’만 바라보는 좁은 시야만을 갖고 있었다. ‘조선의 대응은 실패로 평가되나?’라는 질문의 배경에는 조선이 할 수 있는 대응에 여러 대안이 있고 그 대안 중 옳은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미 할 수 있는 대응이 ‘0’이었던 조선에게는 이 질문이 애초에 있을 수 없다.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위기가 닥치기 훨씬 전부터 조선은 망국의 길을 걷고 있던 것이다.</div><div>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우리나라를 지키려면 국내 뿐 아니라 국외의 상황을 객관적이고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의 시민의식은 그때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뒤로하고 유명한 연예인의 소식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다시 그때의 위기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역사, 정치, 경제 등 국내외적인 상황에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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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6 07:07: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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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21569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1669328</link>
         <description><![CDATA[<div>나는 우선 이 영상에 깊이 공감한다.&nbsp;</div><div>조선이 망한 이유는, 국제 관계에서 완벽하게 고립당했기 때문이라는 말.</div><div>이 말을 놓고 봤을때 조선은 대응에 있어서 실패가 아닌 실패를 운운할 수도 없는 상황이 아니였을까 싶다.</div><div>솔직히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나쁘다고 말하고 분하다라는 생각은 많이 해봤어도, 정말 떳떳히 자랑스런 업적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div><div>내가 바라본 역사는, 조선 자체를 놓고 보았을때 마치 하나의 공처럼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를 반복하다가 강국과 싸우고 이겨서 당당히 승리했다기 보단, 그 당시 상황에 있어서 시대적 흐름을 잘 타거나, 그 외의 나라가 약해졌을때 얼떨결에 이루어진 상황이 꽤 많은 것 같다.</div><div>솔직히 한나라의 국민으로써 안타깝고 분하지만, 이러한 상황만을 보았을때 조선은 실패할 힘조차 없었던게 아닐까라는생각이 들었다.</div><div>무언가를 시도하려 하더라도, 강국에 제지당하고, 눈치만 보다가 결국 무산되고를 반복하는 것. 이것이 조선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개인적으로 현재까지도 반복되고 있는 듯 싶다.</div><div>우리나라가 분단된 뒤,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점차 발전 시키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핵을 소유하지 못한 이유는 미국의 제지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결국 북한처럼 마이웨이 기질을 보이지도 못하고, 그저 수긍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의문이고 속상하기도 하다.</div><div>따라서 결국 우리나라가 국력을 키워 살아남을 방법은 결국 외교에 힘을 쏟아 주변국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안일것이다. 지금의 정부가 한일 관계 완화를 위해 노력 하고 있듯이, 우선 국제 관계를 개선하고확장해 나가는 것이 지금 현재 가장 큰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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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6 09:02: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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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0656 송동영</title>
         <author>thdehddud00</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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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nbsp; 19C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탈에 대해서 중국은 '중체서용, 일본은 '화혼양재', 그리고 조선은 '동도서기'라는 대응논리를 통해 대응하려 하였다. 이는 3국이&nbsp; "자신들의 것을 중심으로 서구의 문물을 활용하자!" 라는 매우 유사한 기지를 내걸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각자의 결과는 매우 달랐다.&nbsp;<br><br>&nbsp;청은 1차 아편전쟁으로 인한 1842년 난징조약에 의해서 동아시아 3국 중에서 가장 빨리 개항을 하게 되었으나, 태평천국운동과 2차 아편전쟁 등으로 자주적 근대화 동력을 상실하였다. 이후 서태후의 폭정과 위화단운동 등으로 반식민지상태에 처하게 된다.<br>&nbsp;일본은 1858년 미일통상조약을 맺어 두번째로 개항을 하게 되었는데, 개화를 시킨 미국은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남북전쟁을 겪으며 외부의 압력이 중국과는 달리 약해서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후기 제국주의반렬에 합류한다.<br>&nbsp; 조선은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일본에 의해서 동아시아 3국 중 가장 늦은 개항을 하게 된다. 이후 자주적 근대화를 시도하지만 성공하지 못하여 1910년 한일병합조약에 의해 일본에 병탄당하며 식민지가 된다.<br><br>&nbsp;가장 빨리 개항을 하고도 외부압력 등에 의해서 자주적 근대화에 실패한 청, 개항 후 약한 외부압력덕에 자주적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 너무 늦은 개항으로 인해서 근대화를 성공할 수 없었던 조선. 개항의 시기와 개항과정에서 일본의 성공에 대해서 운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br>&nbsp;그러나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한 청과 조선, 그리고 성공한 일본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는 '입헌군주제'에 대한 수용방식이었다. 서구문물을 제대로 수용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바로 군주의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br>&nbsp;청이나 조선은 실질적 주권자가 국왕이어왔기에 국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입헌군주제를 도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은 국왕은 상징이고 쇼군이 통치하던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입헌군주제를 도입할 수 있었다.<br>&nbsp;&nbsp;<br>&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입헌군주제의 도입 여부 하나만으로 조선 멸망의 전체적인 부분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태국이나 에티오피아의 사례를 보면 입헌군주제를 도입하지 않고도 중립화를 하여 국권을 유지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대응을 총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br>&nbsp;<br>&nbsp;먼저 개항이 늦어진 이유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비판받는데, 대원군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위해서 펼친 정책이 아니라 당시 조선이 전면개항을 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실시한 정책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대원군도 병인박해 이전에 프랑스에 접촉하려는 시도를 하였기 때문이다. 쇄국정책 만으로 조선의 개항이 늦어져서 종국적으로 멸망을 하게된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양란 이후 대기근으로인한 구조개혁실패, 단기적으로 60년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인해서 급작스러운 개항을 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또 오페르트 도굴사건 등으로 인해서 서구에 대한 반감이 생긴 상황에서 쇄국정책의 동기는 충분했다 할 것이다.<br><br>&nbsp;그렇다면 개항 이후의 조선정부의 대응은 어떠하였는가. 개항이후 조선은 황준헌의 &lt;조선책략&gt;에 따라서 다른 나라들보다 특히 미국과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보빙사를 파견하고 미국에서 고문을 초빙하여 여러 문물을 도입하려 하였으며, 조미조약을 체결하였다.&nbsp;<br>&nbsp;조미조약에는 '거중조정'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있는데 이는 조선과 다른 나라간의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미국이 제3국으로서 양자의 의사소통을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이는 이홍장이 미청통상조약에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처음 포함하였고, 조미조약을 체결할 때에도 같은 목적으로 삽입하였다.&nbsp;<br>&nbsp;조선정부와 고종은 이 거중조정 조항을&nbsp; '중재' 라는 의미로 이해하여 미국이 조선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직접적으로 도와주리라 믿었다.&nbsp;<br>&nbsp;청일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이 오독의 문제가 발생한다. 1894년 6월 21일, 주미조선공사 이승수가 미 국무장관에게 거중조정을 요청하여 미국의 도움을 구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일본도 미국에 로비를 하면서 불개입의 원칙을 지키려던 미국이 7월부터 일본쪽으로 기울면서 7월 20일에는 미국이 아예 거중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하며 입장을 아예 친일쪽으로 선회한다.<br>&nbsp;조선은 이후 미국에 기대려던 것을 포기하고 삼국간섭 이후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강해지는 러시아의 영향력에 도움을 청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동북아정세는 러시아vs 러시아를 견제하는 영미의 대리국인 일본의 대결로 고착화되면서 조선은 고립되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게 되면서 일본에 병탄당하게 된다.<br>&nbsp;<br>&nbsp;당시 조선에는 국권을 유지할 수 있는 여러번의 기회가 있었다.&nbsp;<br>&nbsp;프랑스대혁명처럼 유혈이 난자하는 혁명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만민공동회와 관민공동회처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만민공동회는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요구를 저지하고 프랑스의 광산채굴권 요구를 좌절시키는 등 자주 국권운동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만민공동회는 관리까지 참여하는 관민공동회로 발전하면서 이들이 결의한 헌의 6조에는 위에서 얘기한 입헌군주제 등의 내용이 있었다. 고종은 이를 수정없이 재가하면서 이를 보완하는 조칙 5조까지 공포하였으나, 보수파의 익명서 사건 날조에 의해서 독립협회가 해산되면서 이는 실현되지 못하고 폐지되었다.<br>&nbsp;또 동학농민운동처럼 혁명적 성격을 지닌 움직임도 있었고, 이에 따라서 이루어진 1차 갑오개혁은 청일양국이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든 전쟁중이었기에 그나마 자주적인 개혁안들이 모습을 들어냈었다.<br><br>&nbsp;그러나 이런 기회들이 있었음에도 멸망하게된 조선은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br>&nbsp;먼저 당시 영국vs러시아의 세계정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앞길에 급급하여 청,러시아,일본 3국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던 것이다.&nbsp;<br>&nbsp;&lt;조선책략&gt;은 러시아를 다가올 위험이라 평가하며 친청,결일,연미를 제시한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다가올 위협이 된다는 것은 파악을 하였다.<br>&nbsp;그러나 그 러시아와 계속해서 분쟁을 겪어오면서 러시아를 가장 견제하고 있던 영국에 대해서는 미국과는 달리 너무 관계 발전을 노력하지 않았다. &lt;조선책략&gt;이 영국,프랑스 등이 식민지 침탈을 한 것을 비판하고 미국은 당시까지 그런 점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을 당시 전통적 외교와는 다른 선택지를 제시한 것은 맞지만, 외교라는 것은 도덕률에 따라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실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기에 아무리 영국이 제국주의 침략자라도 당시의 조선에 힘이될 수 있었다면 그들의 지원을 구했어야 할 것이다.<br>&nbsp;또, 미국의 국익이 운요호사건 때부터 일본에게 정보를 제공하며 여러차례 도와왔듯 조선보다는 일본을 돕는 것에 방점이 찍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미국의 거중조정에 의존하다가 그것을 받지 못한 이후 내각이 친청내각, 친일내각, 친러내각으로 계속해서 바뀌면서 외교정책의 연속성을 기대할 수 없었다. 외교라는 것이 앞길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장기적인 대전략을 꾸려야 하는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br>&nbsp;이는 일본이 일으킨 을미사변 등의 외세의 영향도 있으나, 결국 당시 통치권자인 고종과 각료들의 장기적인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그런 혜안이 있었다면 청일전쟁 이전부터 영국 등과의 관계에도 신경을 썼을 것이다.<br>&nbsp;두번째는 기득권층의 주제넘은 욕망이다. 관민공동회에서 헌의 6조는 전제황권이라는 표면적인 내용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입헌군주제에 가깝다. 헌의 6조가 재가되면서 안 좋은 외부상황에서 한줌이라도 가능성이 보였던 근대화는 기득권이 익명서 날조사건을 일으켜 뒤집어버리면서 자주 국권운동은 중심을 잃어버렸다. 여러 의병활동이 있었지만 1907년 신민회가 결성되어 중심을 잡고 활동을 할 때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던 것이다.<br>&nbsp;통치권자인 고종도 광무개혁에서 군주주권이라는 시대착오적인&nbsp; 사상을 바탕으로 개혁을 실시하였다. 경술국치 이후에 이왕가의 작위를 받아 생활한 것을 보면 기득권층에게는 국가보다 자신들의 지위보장이 중요했을지도 모른다.&nbsp;<br>&nbsp;헌의 6조만을 보더라도 지식인들의 구조변화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있었고 동학농민운동과 여러 대일항쟁의병을 보면 민중의 자주적 의지도 있었다. 그러나 이 노력이 기득권과의 힘싸움에서 밀린 것이다.&nbsp;<br>&nbsp;이런 지식인과 민중의 인식이 1917년 대동단결선언에서 '황제권의 자발적 포기로부터 민권의 도출'과 임시정부 수립, 그리고 독립운동 과정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복벽파 등, 망국 이후에 비로서 실현된 점이 안타깝다할 것이다.<br><br>&nbsp;조선이 개항이후 자주적근대화에 성공하거나, 일본이 러시아 견제 역할을 했던 것을 조선이 대신할 수 있었다면, 그것이 아니더라도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구도를 미리 파악하여 영국과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국권을 유지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br><br>&nbsp;이런 관점에서 조선의 대응을 평가한다면 다음과 같이 평할 수 있을 것이다.<br>&nbsp;조선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한 것은 좋게 평가할만 하나, 열강들의 국익과 세계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 그리고 미국 하나에 너무 매달리면서 장기적인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스스로의 개화를 기득권의 권력욕으로 인해서 실패한 점은 조선이 멸망한 이유로서 지탄받아야 할 것이다.&nbsp;<br>&nbsp;총평하자면, 조선이 노력한 점이 있지만 그 노력이 미흡해서 망국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므로 실패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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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6 10:02: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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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0792 송석주</title>
         <author>dxuosavz</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1768287</link>
         <description><![CDATA[<div>&nbsp;당시 조선의 시대상을 반영해봤을 때,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조선은 약 60년간의 세도정치로 인해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와 달리, 유럽에서는 명예혁명,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새로운 사회를 맞이할 움직임이 일어나야 하는 그 시기에, 조선은 비전이 없었으며 각자 살기에 바빴고, 그 시간이 너무나도 길어진 것이다. 조선은 당시 너무나도 힘이 없었으며, 국제 관계에서 완벽하게 고립되고 말았다. 러시아는 일본과의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일본의 승리를 인정했고, 영국은 ‘제2차 영일동맹’으로 일본이 한국에서 가지는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이익을 보장하였으며,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이 대한제국을 침략하고 한반도를 통치하는 것을 용인했다. 이는 주변의 모든 나라가 조선을 외면했다는 뜻이었는데, 이 시기에 이토 히로부미 주도하에 을사조약이 체결되며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것이다.</div><div> 세도정치로 인해 조선 스스로가 무너지고 있을 시기 일본은 어땠을까?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근대화가 훨씬 더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일본은 조선의 유교 사상처럼 틀에 박혀 있지도 않다 보니, 시대적 상황이나 사람들의 생활 수준 또한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무사를 중심으로 사회가 흘러가긴 했지만, 상인이나 농민들이 충분히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러한 근대화가 일본을 더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div><div>&nbsp;세계 제국주의의 팽창, 일본 제국주의의 탐욕, 일본의 만주 진출에 대한 욕심, 중국의 쇄락, 러일전쟁에서의 러시아의 패전이 조선이 망한 이유도 맞긴 하지만, 이것은 단지 대외변수일 뿐이다. 제일 큰 원인은 우리가 잘못해서 조선이 망한 것이다. 조선은 쇄국정책으로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지 않고 문호를 닫아 서로 통상하지 않고만 있었다. 유교라는 사상을 국가 사상으로 선택하고 있어 기술이라든가, 노동에 대해 천시하고 있어, 근대화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상업조차 천시하다 보니, 근대화가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신분제 체제 또한 확고하다 보니 근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와 반대로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정치·경제·문화 전 분야에 걸쳐 근대화를 성공시키고 있었던 것이다.</div><div>&nbsp;앞서 말한 내용들을 다시 정리해보면, 조선은 일본에 비해 너무나도 근대화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문호를 닫는 통상 거부를 내세우다 보니, 국제 관계에서 고립이 되어버렸다. 이로써 이 시기의 조선의 쇄국정책, 통상 거부 정책은 잘못된 대응이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 대안이 있었다 한들, 그 당시 조선에게는 그를 수행할만한 힘조차 없었을 것이다. 과거에 조선이 국제 정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고립되어 일본의 식민지화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가의 국력을 키우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지만, 다른 나라와의 외교 관계에도 힘써서 국제 관계에 있어 소외되지 않는 나라가 되도록 힘써야 하는 것을 깨닫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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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6 12:47: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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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379</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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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조선이 망국이 된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당시의 국제질서와 그 속에서의 조선의 위상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nbsp;</div><div>먼저 국제질서이다.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영토 확장을 위해서는 자신들의 해군이 뻗어 나갈 수 있어야 했다. 그들의 영토에서 대서양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북해나 지중해를 통과해야 했다. 러시아의 영토에서 지중해를 통해 나가기 위해선 현재 터키 영토에 속해있는 두 해협을 통과해야 했다. 이를 가만둘 수 없었던 영국이 프랑스, 오스만 제국과의 연합을 통해서 러시아의 남하를 막자, 서쪽의 부동항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없었던 러시아는 눈을 극동아시아로 돌리게 되었다. 그들은 청으로부터 다롄과 만주, 연해주 지방을 얻었으며, 그 다음은 조선이었다. 그러나 이를 원치 않았던 영국과 미국은 일본을 통해 러시아의 세력확장을 저지하고자 하였고, 이를 계기로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러시아는 영국과 미국에 의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었으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반면 일본은 자신들의 개화 및 자강을 통하여 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동아시아의 패권을 쥐었고, 서양의 열강들은 일본을 통해 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을 막고자 하였다. 그렇게 일본은 영국과의 동맹을 맺고 미국과 협약을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왔고 결국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레이트 게임이라고도 불러지는 러시아와 영국간의 대립이 동아시아에서도 이어졌으며, 영국은 러시아를 막아내기 위해 국제 정세를 잘 이용하였으며, 일본은 그 덕에 수혜를 받았고, 러시아는 쇠퇴와 혼란의 시기로 접어들었다.</div><div>다음은 동아시아와 세계에서의 조선의 위상이다. 국제사회에서 조선이 영향력을 잃은 공식적인 시점은 1905년 을사조약 이후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부터라고 본다. 전후과정에서 조선은 러시아와 일본의 완충지대가 되었으며, 조선을 두고 이미 러시아와 일본은 수많은 협상과정을 거쳤다. 그들에게 조선의 의견은 이미 뒷전이었고, 두 나라의 협상에서 조선의 입장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또한 러일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포츠머스 조약에서마저 조선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음에도 불구, 조선의 의견이 하나도 들어가지 못했으며 이후 조선이 일본에 완전히 병합되면서 망국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고종은 일본과 러시아 중 러시아를 택했으나 러시아는 동쪽에 완전히 시선을 쏟기 어려웠으며, 결국 러시아의 패배와 함께 완전히 국제관계에서 도태되었다.</div><div>따라서 조선이 망국이 된 이유는 그레이트 게임 최후반부 시기에 영국을 등에 업은 일본에게 패배한 러시아를 선택하고 밀어준 조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조선은 러시아가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원했으나, 한일의정서에 의거하여 일본은 조선과 그 근해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했고, 전략적 우위를 점한 일본이 러시아를 이기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조선은 처해진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를 택했지만 썩은 동아줄은 그리 오래 갈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은 당시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라는 강국을 택할 수밖에 없었으나, 국제정세에 의해서 망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결론내리고 싶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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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6 13:02: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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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0737</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1826586</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조선이 진짜 망한이유가 국제적 고립이라는 것 즉,나선다고 해도 아무도알아주지 않는 현실이라는점이 허망하고 안타까웠다. 대부분이 알다시피조선은 일본으로 인해 망한것이 맞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국제관계에서 너무도 소극적이었다는것이다.한국이 소극적이었다기보단 아예 다른나라들이 관심조차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것같다.무관심이 제일 무섭다라는 말이있듯이 국제관계 속에서의 무관심은 정말 답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지금은 다르다.그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시민의식도 많이 높아지고 국제관계 또한 나아졌다고 생각한다.이런 상황속에서 우리는 더욱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발전하고 국외적으로 더욱 관심을 가질필요가 있을것같다.<br></strong><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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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6 14:24: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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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95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1881319</link>
         <description><![CDATA[<div>영상을 시청한 이후에 조선이 망국이 된 이유를 꼽으라고 하면 다수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 외교 정책의 실패를 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십 분이 조금 넘는 영상을 관통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이에 상당 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흐름에 몸 맡기는 식의 동조가 아니다. 공감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나 주관이 배제된 무지성적인 공감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본 강좌를 수강하기 전까지 조선의 패망은 이전에는 딱히 생각해본 적 없던 주제였다. 고등학교 한국사 수업에서 스쳐지나간 수많은 지식 중 하나 정도였을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 떠올려 보자면 아마 나는 어렴풋이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진 정치가 조선 패망의 원인이겠거니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따지고 보면 아주 틀린 것은 아니긴 할 것이다. 외교도 정치의 일환이니 말이다. 은근슬쩍 그렇게 보자면 나는 이 영상을 통해 다소 무책임하게 흩어진 생각을 나름의 길을 찾아 좁혀본 것 같다.&nbsp;</div><div>&nbsp; 영상을 보는 내내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숱하게 언급하시는 말이 뇌리에서 맴돌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주 하는 실수인 '현재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기.' 수업을 들으면서도 이와 관련해 나름 많은 부분에서 놀라움을 느끼곤 한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상식에 가까운 지식들이 사실은 나도 몰랐던 어떤 보이지 않는 틀에 갇힌 것이었다는 것. 처음에는 물음표를 띄우며 반문하지만 곧 반쯤은 수긍하고 결국엔 그랬구나, 납득하길 반복한다. 수업을 통해 이를 거쳐온 사고의 과정이 이번 영상과 함께한 결과, 나에게선 조선의 대응을 실패라고 평가하기에는 어렵다는 결론이 다소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현대를 살아가는, 그러니까 조선을 포함한 한반도와 현존하는, 어쩌면 지금은 사라진 국가들의 지난 수백수천 년의 역사를 손만 뻗으면 알아낼 수 있는 우리라면 당연히 조선의 대응에서 수없이 많은 부족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항상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지 않던가. 그러나 2023년, 우리의 현재가 아닌 이 당시의 조선을 현재라고 여겨 조선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일개 고졸인 나조차도 당당하게 읊었던 부족함을 하나라도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난 그러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은 당시의 제한된 정보력과 기술, 이외의 현대의 우리도 알 수 없는 내밀한 무언가가 종합된 결과였으리라 감히 짐작해 본다. 이전까지는 당시 러시아의 영향력의 엄청난 영향력과 영국, 미국 등 이외의 국가들의 사정을 전혀 몰랐던 나이기에 조선의 패망에 얽힌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분야를 불문하고 수없이 많을 것이라는 묘한 확신도 든다. 이를 실패 혹은 성공이라고 단정하기 위해선 그 역사를 직접 체험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정말 이 시대에 대한 지식을 수없이 쌓고 또 쌓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누군가는 그럼에도 조선의 대응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를 충분히 이해하며 더 나아가 앞서 영상에 공감한 것처럼 상당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드넓은 포용력으로 포장할 수 없을 정도의 무지함에서 비롯되는 얄팍한 주관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부끄러움을 동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조선의 패망에 대해 더 확고한 주관을 갖기 위해서는 당시의 사회, 정치, 행정... 다양한 분야에 관한 정보를 더 깊게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나는 조선이 망국으로 가게 된 원인은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조선의 대응을 실패라고 보기 어렵다, 정도의 의견만 덧붙이고자 한다. 이 역시도 무책임한 말이라고 지적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자동응답기처럼 알맹이 없는 말만 내뱉던 어제보다는 나은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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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6 15:55: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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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214580 남강희</title>
         <author>2020214580</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1921993</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은 당시 외교적인 고립이 심화되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런 외교적 고립은 한 순간에 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기 전까지 다른 나라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고 특히 종교적으로도 탄압을 하던 국가였다. 이로 인해 많은 나라들과 크고 작은 분쟁이 있었고 그래서 다른 나라들이 더욱 조선에 대해 관심을 더 기울이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영국과 프랑스 및 네덜란드는 이미 식민지가 많았기에 더 많은 식민지를 확장하는 것은 힘들고 이미 자신들이 가진 식민지를 관리하는 것을 더 집중하였지만 미국과 일본 같은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은 조선을 다른 나라들보다 더 노린 것은 맞다고 본다. 하지만 그 사이 러시아도 영국을 견제하며 러시아 제국주의를 더욱 확장하고자 조선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맞지만 결정적으로 러일전쟁에서 패배하고 일본이 승리하게 되고 또한 일본이 다른 서방국가들에게도 동맹 및 조약 등으로 상호 식민지를 인정하며 식민지 조선을 가지게 된 것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제 아무리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승격하고 중립국가라고 선포해도 결국에는 열강으로부터의 인정을 받아야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로 인해 조선, 즉 대한 제국은 망하게 되었다. 물론 영상에서 말했듯이 조선은 중립 국가가 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러-일이 서로 합의를 한다는 전제하였고 말 그대로 조선은 당시에 문호를 개방했어도 이미 늦은 상황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결과가 어찌되었건 100년전과 같이 한국은 목소리 낼 힘을 이미 잃었고 중립외교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즉, 주권국가로서의 힘을 잃었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생각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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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6 17:11: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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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450 김태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2336638</link>
         <description><![CDATA[<div>  ‘조선은 과연 망국이 될 운명이었는가?’ 라는 말을 고등학교때 들었다면, 아마 망할 운명이 아니었으나, 일본의 외압에 의해 망국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이에 대한 역사를 시험을 맞추기 위해 단편적 지식을 습득한 후 전체에 대한 흐름을 파악했다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nbsp;</div><div>조선이 망국이 된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저 운 없이 이전에도 여러차례 전쟁을 벌였던 일본에게 정복당한 것이 아닌, 세계 각국의 겹겹이 쌓인 이해관계 속에서 망국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br><br></div><div>  이동수단의 발달과 함께 전세계는 급속도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시 세계 열강의 일축이었던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중 특히 당시 조선에 눈독 들이던 나라는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태평양 진출을 위해 조선을 영향력에 넣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div><div>이렇게 조선에 영향력을 넓히려는 나라는 러시아와 러시아가 조선을 지배하게 되면 고립되게 되는 일본이 조선의 영향력을 두고 협상을 시작하게 되고, 협상의 결렬과 함께 시작된 전쟁에 의해 결국 조선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나라들의 국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망국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일본이 조선에 눈독들인 이유가 러시아가 조선으로 영향력을 넓히게 되면 섬나라인 일본이 고립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했던 조선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벌어진 이권 경쟁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br><br></div><div>  여기에서 느낄 수 있었던 점은 바로 세계화가 진행되는 시기의 타국과의 외교 및 동맹 관계의 중요성이다. 결국 국제적으로 고립되어있었기 때문에 당시 조선의 주권을 지켜주는 것이 타국에게 어떠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열강들의 먹이로 전락해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조선의 쇄국정책으로 타국과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고, 늦은 근대화로 인해 타국에 대한 영향력이 적었으며 이는 결국 외교적 협상 능력의 부재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당시의 국가기관인 조선 정부의 정책이나 민중들의 관심 등에 영향을 받는다.<br><br></div><div>  결론적으로 위와 같이 조선이 망국이 된 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바로 세계화 시대에서 국제적 이권의 이동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20세기 초반이었던 당시보다 현재는 세계화가 더욱 진행되어 국가 간의 이익이 더욱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대이다. 타국과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과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타국에게 경쟁력 있는 협상력을 유지하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대한민국이 망국이 되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이런 협상력은 현재 우리 국민 모두의 관심과 이를 반영한 국가정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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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02:42: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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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304 김민석</title>
         <author>ck09239</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2449393</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이 망한 가장 큰 원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 같다.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말이 있다. 먼저 사다리를 다 오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것이다.<br>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아시아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서구식 근대화를 이루어 냈다. 그리고 당시에 서구식 근대화란 곧 제국주의 국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제국주의는 필연적으로 식민지를 만들어야 하는 필요가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은 주변국들을 식민지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주변국들의 근대화를 가만히 보고 있을리가 없다. 당연히 사다리 걷어차기를 해서 주변국들이 근대화 될 수 없도록 해야했다.<br>그렇기에 일본은 러일전쟁과 청일전쟁으로 한반도에서 다른 국가들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자신의 입맛대로 조선을 만들어갔고 결국은 1910년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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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04:34: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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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308</title>
         <author>jasonkim123</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2480954</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은 망할 운명이었다는 개념을 이전부터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다만 구체적으로 나의 의견을 뒷받침 할 근거가 없었다는 것을 이번 영상을 보고 깨달았다. 여태까지 조선의 패망을 단순히 조선의 세도정치나 일본의 침략 같은 내제적인 접근법으로만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국가의 패망을 지엽적으로 바라본 듯하다.&nbsp;</div><div>&nbsp; &nbsp;</div><div>본 영상에서 말하는 조선이 망국으로 가게 된 이유는 국제사회에서 고립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이다. 고립되지 않으려면 조선 내부에서 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변화는 부재했고 낮은 수준의 시민의식, 혁명의 부재 등 조선은 스스로가 변화에 실패했다. 당시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조선의 대응은 현재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한심하기 그지없다.&nbsp;</div><div>&nbsp; &nbsp;</div><div>하지만 당시 조선의 입장에서 변화가 가능이나 했을까? 500여년의 중앙집권체제에서 뿌리 깊이 박힌 유교 사상과 고일대로 고인 정치 세력이 존재 하는 조선 말기였다. 일본은 다이묘의 등장 이래 봉건제를 유지하다 에도 막부가 들어서고야 중앙 권력이 어느 정도 집중되었으나 지방의 다이묘들의 권한이 인정됐기에 완전한 중앙집권국가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천황은 메이지유신으로 입헌군주제가 되기 전까지는 상징적인 존재로서 국가 권력에 힘이 없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분리된 정치 체제 아래에서 몇몇 번들이 힘을 모아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다. 특히 유교 사상을 받아들인 하급 무사들의 계몽은 메이지유신을 이끈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반면 조선의 경우 조선 왕조에 권력이 집중되었고 뿌리 깊이 박힌 유교 사상은 근대화를 저해하는 중요 요소로 작용했다. 유일하게 근대화를 이끌 수 있었던 양반 계급이 계몽할 기회는 부재 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제 정세의 흐름이 아닌 조선 내부의 권력 다툼이었다. 국제 사회가 어떻게 변화 하는 지 그들에게는 중요한 사안이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div><div>&nbsp; &nbsp;</div><div>결론적으로 당시 조선 내부는 일본처럼 변화 할 기회가 현저히 부족했다. 김옥균과 같은 개혁파도 있었지만 메이지유신을 이끈 일본의 주역들에 비하면 초라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고립이 조선의 패망을 이끈 것은 전적으로 동의하나 조선의 대응을 비난하라 한다면 주저할 수밖에 없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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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05:02: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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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57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2487324</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이&nbsp;망할 운명이었나?' 라는 질문에 답변하자면, '그렇다'라는 대답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조선 말기로 들어서면서, 조선의 사회질서는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고 외세의 압력은 증가했다. 또한 그 외압을 버티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사회 개혁은 유교 사상과 현재의 달콤함을 버리지 못해 끝까지 붙들고 있던 무능한 지도층으로 인해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이러한 정치에 대한 결과로 조선은 온갖 신식 무기로 무장한 나라들과의 전투에서 처절하게 패배하였으며 이를 '사변'이라고 이름붙였지만, 사실상 그 일들은 지난날을 잊지못해 끝까지 붙들고 있는 그들의 무능의 소치가 아니었나 싶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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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05:07: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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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0811 김경미</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2543994</link>
         <description><![CDATA[<div>당시 조선의 대응을 실패로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면 단연코 실패라고 생각한다.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를 하면서 한 가문만이 권력을 잡고 있는 문란한 정치 상황이였다. 나라 내에서 정치가 불안정한 상태임과 동시에 러시아가 태평양 진출을 위해 조선을 요충지로 삼으려고 하였기에 세계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도 조선은 위험한 상황이였다. 이 때만 하더라도 일본은 오히려 조선이 러시아에게 점령되지 않기를 바라며 러시아에게 협상을 두 차례 해왔다. 조선이 러시아에게 점령을 당하게 되면 일본 또한 러시아에게 위협을 받을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협상은 실패하였고, 일본은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러시아를 견제하던 미국은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을 인정해주는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맺음으로써 일본의 본격적인 지배가 시작된 것이다.<br><br></div><div>&nbsp;어느 나라이건 경제적, 지리적, 정치적으로 더 강대국이 되길 원하는데, 일본의 조선 지배 원인 또한 이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조선 내부의 불안정한 상황으로 인해 적극적인 국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것은 오로지 조선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후 일본의 지배 과정을 보면 끔찍하고 벌받아 마땅한 행동들이 수만가지이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지배를 당하기 전까지의 상황을 보면 조선의 대응이 알맞지 못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내부에서 오로지 높은 관직을 올라가기 위해, 심지어 공명첩을 발행하던 시기여서 국민들 또한 신분, 관직 상승에 눈이 멀어 자신의 삶에만 신경을 쓴 것 같다. 단도직입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사태가 일어나기까지는 조선의 업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본 동영상을 보면서 내가 가장 처음 느낀 생각은 역사를 잘못 배워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드라마, 영화, 한국사를 보고 배우면 항상 근대사에서 일본은 우리나라의 대역죄인으로만 인식되었고, 특히 어린 친구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한 인식이 뇌리에 쉽게 박히게 한다. 나 또한 일본은 단순히 독도라는 영토를 자신의 영토로 억지로 주장하고,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고 많은 국민을 괴롭혔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거부의식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역사 실패의 시초는 항상 자신 국가에 원인이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이 영상을 통해 새롭게 들었다. 이를 통해 현재 우리 국민들도 k-pop, k-food와 같은 문화콘텐츠만이 아닌 전세계적으로의 시사와 국제 관계에 대한 시민의식을 늘려가야하고 이에 관한 편향적이지 않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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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05:56: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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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01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2653851</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은 한반도에 존재한 한민족의 마지막 왕조국가. 일본의 근대화와 침략으로 인해 멸망했다며 흔히 알려져있지만, 그이유에는 외부적, 구조적 측면 뿐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던 조선의 모습이 있다. 세도정치 60년 속에서숭유배불 즉, 억불숭유로 인한 문신의 약화, 혹은 유교라는 프레임에 갖힌 사상과 더불어 당시 핵심 세력이었던 신진사대부들의 권력 독점, 조선 조정에 대한 국왕과 국민의 무관심 등의 모습을 띄었다. 군주인 고종은 무능했으며 탐관오리들은부패했었다. 이 시기에 서양 열강은 혁명과 새로운 문물 속에서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끊임없이 만들어갔다. 그 과정 속에서 조선은 작은 수단 중 하나가 되었고, 그곳에서 발버둥 칠 힘 조차 없었다. 중국의 계몽 지식인 량치차오는한일 강제병합 직후의 조선 멸망의 원인으로 ‘조선이 망하는 길을 취하지 않았다면 비록 100개의 일본이라고 하더라도저들이 어쩌겠는가?’ 라며 조선 내재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냉혹한 국제관계에 무지 했다는 것이다. 결국 조선이 몰락한 데에는 일본 및 서구 열강들의 잘못보다도 내부적으로 발전이 더뎠고 국제관계와 국력에무지했던 조선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으며, 자연의 이치와 같이 약한 국가는 도태되고 강한 나라가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형태가 국가 간의 모습으로 잘 드러난 사례라고 생각한다.&nbsp;</div><div>조선의 내재적 요인 외에도 일본의 수용적인 근대화에 대한 태도나 서구 열강의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전쟁이론, 국제관계에서 전략적으로 펼쳐진 정세에 대한 책략 등 조선의 나약함 또한 망국의 원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조선 내부의 문제에 더 집중하고 싶다. 현재 시점에서 이 사건들을 보는 우리는 조선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멸망의 원인에 대해 알게 됨으로써 국민 개개인이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국내에서의 상호 작용에서 나아가 외부의 국제 관계까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nbsp;</div><div>그렇다면 오늘 날은 어떠한가?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주적 권리를 갖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대의와 사회를 위하여도모할 줄 안다. 국제 정세를 알고 역사를 배우며 가슴 아픈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일본은 다소 이와는 비교되는 양상을 띈다고 생각한다.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갔던 기억 속의 일본의 어른이나 정치인들은 1980년대까지 이어져 온 버블 경제의 찬란한 과거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nbsp;</div><div>한국과 일본의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양상은 국민과 사회, 국가에 대한 정의와 의지라고 생각한다. 이태원 참사를 일본뉴스에서 마주하게 됐을 때에 유학생들이 많이 분노했다. 한국 국내의 시위와 집회에 대하여 일본인 친구들이 ‘한국인의 단합력과 정의감은 정말 멋있고 신기해!’라며 다른 모습에 대해 놀라움을 보여주곤 했었다. 이는 어쩌면 각자의 과거에 대한 반응이 여실히 남은 것이 아닐까?</div><div>어쨌든 전입신고나 마이넘버카드, 혹은 유쵸의 카드 발급이 한달이 넘도록 지연 됐던 것은 어쩌면 과거의 영광에 머문 일본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아주 개인적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한민족 뿐 아니라 모든 이들은 과거의 패망 혹은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발전해 나갈 길을 지속적으로 탐구해야 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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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07:27: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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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2750 김지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2746323</link>
         <description><![CDATA[<div>1905년 을사조약을 통해 조선은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하며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우리 민족에게 일제강점기는 치욕적이고 서러웠던 역사로 남아있기 때문에 이 사건을 떠올리면 흔히 일본을 만악의 근원으로 여기며 탈취된 국권에 대한 분노를 모두 일본에 돌릴 것이다. 물론 민족적인 감정이 담긴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 민족을 식민지배했던 한 나라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 나라가 망했던 이유,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떠올리자면 그건 우리가 분노하는 만큼 전부가 일본의 탓은 아닐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에 만약이란 건 없지만, ‘만약 을사조약이 체결되지 않았더라면 조선은 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에 대한 대답인 것이다. 일본이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했다는 것이 조선 패망의 단순한 하나의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영상에서 제시하고 있는 관점에서 보자면 당시 조선은 일본과 달리 열강들과 대치할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비록 당시 새롭게 변하고있던 일본이 서구열강에 대적할만한 강국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국제관계 속에서 자국이 서있을 수 있는 자리정도는 마련했었다. 그에 비해서 조선은 국권을 온전히 지킨 채 서있을 자리를 마련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었다. 영상에서는 ‘국제관계속에서의 완전한 고립’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고립 끝에 일제에 굴복했던 것이지 이 고립을 형성한 것이 오로지 일본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과거, 그리고 그에 비추어 현재를 바라볼때는 좀 더 객관적이고 자세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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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08:45: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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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74 최병우</title>
         <author>quddn071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2765139</link>
         <description><![CDATA[<div>&nbsp;조선이 망하게 된 이유는 조선 내부적 상황과 외부적 상황을 함께 볼 때 비로소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조선 내부적으로는 전근대적인 정치,경제 체제로 인해 성장의 기반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 있고, 외부적으로는 강대국의 식민 지배 쟁탈 속에서 한 나라로서의 외교적 권리를 하나도 행사하지 못했던 그 안타까운 자세에 있다. 조선이 망한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나는 조선이 당시의 세계 정세 속에서 한 대응들이 실패였는가는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br>&nbsp;결과론적으로 조선이 망했으니 조선이 했던 모든 행위들이 실패인 것으로 볼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망해버린 조선 속에서도 현대에서 쉽게 보지 못하는, 그 당시 상황 속에서만 이해되어지는 무언가가 있을것이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망했지만, 많은 정책들을 펼쳤고, 그 마다 이유가 있었다. 영상에서는 조선이 망국으로 간 이유로 '완벽한 국제적 고립'을 들었으니 조선과 다른 나라의 관계 속에서 이 논의를 풀어가고자 한다.<br>&nbsp;조선은 과도하게 수동적인 나라 만은 아니었다. 현대의 한국이 중국-미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어느 쪽에 힘을 실을 것인지 고민하는 바와 같이. 조선도 분명 그러했다. 처음에 조선은 청과 일본의 두 강국 사이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물론 청과의 역사와 관계가 훨씬 깊었긴 했지만, 그것만이 조선이 청을 선택한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청일 전쟁으로 청이 일본에 무참히 패배하기 전까지, 청은 나름 다른 서양 강대국의 침략으로부터 안정적으로 방어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대외적으로 확실한 성과를 보였다고 보기 힘든 일본에 대해서 조선이 믿음을 가지고 힘을 실어주기에는 다소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그 상황 속에서 조선이 일본이 아닌 청을 선택한 것은 실패라기 보단 조선 입장에선 합리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br>&nbsp;또 하나, 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 정책은 어떠했는가. 이 정책은 사실 어찌보면 조선이 자신들의 국제적 고립을 자처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조선이 이러한 정책을 펼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서양과 교류 했을 때 일본과 같은 성공적인 근대화의 방향으로 갈 수 있었을까? 조선은 내부부터 무너지고 있는 나라였다. 의도적이던 의도적이지 않던, 상공업이 이미 발달하여 근대화의 발판을 튼실히 키워왔던 일본과 상공업을 배척하고 낮게 생각한 조선과는 그 기반부터 달랐다. 따라서 만약 적극적인 서양의 교류는 오히려 더 빠른 조선의 식민지화를 만드는 결과를 낳았을 지도 모른다.<br>&nbsp;결과적으로 일본이 청일 전쟁에 승리하고 연이어 러일전쟁에도 승리하여 포츠머스 조약과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통해 조선의 지배권을 획득하였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결과만 보면 조선의 대응은 실패했다. 그치만, 양자택일의 선택 속에서 조선이 과연 다른 선택을 하여 대응했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오히려 결과적으로 이와같은 선택들이 조선의 식민지화를 조금은 더 늦춘것은 아닐까. 정답은 모르겠다. 그러나 조선이 수동적이고 수많은 정책의 실패를 통해 망했다고 비판만 하기엔 그 당시 세계 속 조선의 상황은 너무나도 암울했다는 것이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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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09:00: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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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3222 이진학</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2803220</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의 국내적 상황과 조선과 주위 국가의 국제적 상황을 함께 살펴보면 조선이 왜 망국으로 향했는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조선의 국내적 상황은 조선 후기 세도정치로 인해 정치를 비롯한 민생까지도 상당히 붕괴된 상태였다. 나라의 질서와 법도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실질적인 정치를 시작하며 세도정치 세력 척결을 중심으로 정치를 해나갔다. 자연스럽게 정치의 방향은 국제적 흐름과는 달리 세도가 척결, 왕권 강화와 같은 조선의 무너진 질서를 회복하는데 집중된 것이다. 또 이 시기는 국제적으로 서양의 식민지 개척과 개방이 활발하던 시기로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침략을 통해 문호를 개방하는 상황이었다. 조선도 이와 같이 침략으로 느껴지는 문호 개방이 찾아왔었다. 이 문호 개방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서구의 침략을 물리치고 튼튼한 내실을 갖춘, 흥선대원군이 정치를 실시한 후 가장 성공적인 개혁 결과가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이 생기며 조선의 정치가 내실을 강화하는 것으로 향하게 되고 개방을 통한 교류가 아닌 폐쇄를 통한 자강으로 정치 방향이 굳어진다.&nbsp;</div><div>한편 당시 국제적 상황은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서구의 침략을 통해 문호를 개방한 나라가 많아지고 식민 지배를 통해 국력과 국토를 강화해가는 시기였다. 이 시기 강력한 패권국으로 떠오른 영국과 러시아제국은 세계의 패권을 강화하기 위한 경쟁을 시작한다. 그 경쟁 중 한 곳이 바로 조선인 것이다. 조선은 지정학적으로 당시 러시아에게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패권경쟁을 하는 영국과 달리 자국 영토 내 부동항이 없는 러시아는 해군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부동항이 필요했다. 또한 러시아 국토의 특성상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로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은 러시에게 동아시아의 패권과 유럽의 영향력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영토인 것이다. 그렇기에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을 차지할 필요가 있었고 이를 대신할 대리자로 일본을 이용한 것이다.&nbsp;</div><div>이렇게 영국과 러시아의 패권 경쟁 대리전의 당사자가 된 조선의 선택은 현재의 시점으로는 실패였다. 앞서 말한 조선의 국내적 상황을 해결하며 국력을 비롯한 국제적 위치에서 고립된 나라가 되어버렸으며 조선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의 조선은 외세의 도움을 이용하여 자신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일깨우고 어필하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방법은 결과적으로 조선의 영토를 주요한 거점으로 생각하고 있던 외세를 국내로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전략이 되어버렸고 조선은 점점 국제 사회에서 지워지며 망해갔다고 생각한다.&nbsp;</div><div>결과로만 보면 조선은 망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그들의 생존 전략은 실패으 연속이었다. 하지만 당시 혼란하였던 국제 상황보다 더욱 엉망인 국내 상황으로 인해 국제 사회로 나아갈 기회를 놓친 조선에게는 주어진 선택지가 없었고 당시의 최선의 선택을 해온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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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09:33: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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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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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020110760손몽초&nbsp;<br>조선의 멸망의 원인은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br>한편으로 북한 정치제도의 결함과 경제제도의 실패는 북한 경제를 침체시키는 요인입니다.북한이 계획경제 모델을 채택하고 있고, 중앙집권화된 의사결정체제로 인해 북한 경제가 시장경제화와 세계화 추세에 적응하지 못해 외자 및 기술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또한 북한의 고도의 정치적 집권과 인권 문제, 국제사회의 제재와 고립은 북한의 정치·경제적 압박을 증가시켰습니다.<br>한편, 조선의 멸망은 역사적, 지리적 요인과도 관련이 있습니다.조선반도의 정치적, 역사적, 지리적 위치 때문에 북한은 오랫동안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고, 여러 가지 이해 갈등과 지정학적 경쟁에 직면해 있었습니다.이런 배경에서 북한의 정치적 불안과 외교 정세의 변화는 북한의 쇠락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br>요약하면, 조선의 멸망의 원인은 다방면에 걸쳐 있을 수 있으며, 정치, 경제, 역사, 지리 등 다양한 요인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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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09:40: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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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380 김태경</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2833505</link>
         <description><![CDATA[<div>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nbsp;<br><br>조선은 근대화와 식민 지배가 활발히 일어나던 서구 열강들에 비하여 한없이 뒤쳐져 있었다. 영상을 시청한 후, 당시의 조선이 정말 한없이 작고 힘없는 나라였으며 열강들의 침입에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되었다.&nbsp;<br><br>영상을 시청 후, 그렇다면 조선은 왜 당시에 서구 열강들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국력을 가져야만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어 생각해보았다.&nbsp;<br><br>조선은 중국에 들어섰던 나라들과의 조공, 책봉 관계로 수백년 동안 이어져 왔다. 그러나, 조선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입지를 챙기기에 바빴고 국력을 강하게 키워 중국의 간섭 아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중국을 대국으로 생각하고 그 아래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한정된 시야로 중국 만을 바라보며 제 살기에 급급하였다.&nbsp;<br><br>이에 있어 아쉬운 점이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조금이라도 지도자들의 생각이 트여 율곡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조선 스스로 국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거나 스스로 국력을 키우기에 한계가 있었다면 광해의 중립 외교와 같이 넓고 대외 정치적인 시각으로 조금 더 빠른 시기에 지도자들이 눈을 돌렸으면 조선은 망하지 않았을 것이며 망했다고 하더라도 눈 뜨고 코 베이는 격으로 열강들의 침입을 지켜만 보고 한마디 하지 못하는 약국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nbsp;<br><br>영상에서 백성들의 의식 수준도 낮았고 공명첩 등으로 조선은 이미 망해가고 있었다는 부분이 나오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의문이 든다. 조선은 철저한 신분 제도로 몇백년 이어오던 국가이다. 이런 국가에서 백성들의 의식 수준은 지도자가 어떻게 통치를 하는가에 많이 좌지우지 된다. 지도자들부터 국가의 안위와 안녕을 생각하지 않고 제 살기, 권력에 관심만 있으니 백성들은 당연히 뻔한 결과이다.&nbsp;<br><br>그러므로, 현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로 지도자를 우리가 직접 선출할 수 있기에 더욱 지도자 선출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nbsp;지도자들은 부국의 필수 요건인 많은 인재를 배출하기 위하여 다양한 기회와 자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단순히 일본, 중국은 악하다. 라며 욕하고만 있는 것이 아닌, 다시금 끔찍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역사적 배경을 잘 숙지하고 현재의 대한민국 주변 상황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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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0:01: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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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3241</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2864518</link>
         <description><![CDATA[<div>영상을 통해서 조선은 망국이 될 운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당시 조선은 워낙 힘이 없어서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어기 때문이다. 영상에서 설명이 있듯이 지리적으로 봐도 그렇다.</div><div>당시 강국인 러시아, 섬나라이자 근대국가인 일본.</div><div>러시아의 조선 지배는 다른 강국이었던 영국이나 미국으로 부터도 최악의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근대국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일본으로서도 러시아의 조선 지배는 일본이 국제적으로 고립당할 수도 있는 중대한 사건이고 최악의 상태이기도 하였다.</div><div>이토 히로부미의 협상도 실패로 끝나고, 일본과 러시아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시베리아 횡단철도’ 와 ‘동청철도’ 가 1905년 완공되면 전쟁에서 러시아는 우세했고 일본의 패배는 뻔하였다. 하지만, 그것을 일찍 깨달은 일본은 10년이나 긴 시간을 걸쳐 대책을 세운 것, 그리고 피의 일요일 사건도 맞물려 일본이 승리하였다. 그것이 러일전쟁이다. 예상치 못한 러시아의 패배에 영국과 미국은 좋아하였다. 이후 ‘을사조약’, ‘포츠머스 조약’, 제 2차 영일동맹‘, 그리고 ‘가쓰라-태프트 밀약’ 이 체결되어 조선이 망하였다.</div><div>러일전쟁은 단순한 러시아와 일본의 싸움 ・ 문제뿐만 아니라 조선을 망국으로 인도하는 원인으로 큰 영향을 준 사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즉 조선 망국은 운명이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div><div>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듯이 앞으로 국제관계에 더욱 주목해 가는게 중요하다. 그리고 주변국과 협력관계를 계속・개선하고, 키워나가는 것, 국제관계에 대한 면밀한 인식이 국가가 생존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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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0:29: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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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1113 문예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2902737</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이 망국이 된 이유가 단순히 일본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다른 국제 관계들이 엮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고교과정에서 흔히 배우는 한국사에는 당시 조선의 국제관계에서의 위치에 대한 설명보다는 결과 중심, 우리 나라 내부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간과된다.&nbsp;<br><br>사실 조선이 망국이 된 이유를 살펴보려면 국제와 그 안에서 조선의 위치를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의 위치는 지리적으로 러시아에게 요충지였다. 영국을 포함한 타국에서 조선의 위치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러시아라는 막강한 나라가 조선을 차지하게 두는 것을 견제할 필요를 느꼈다. 러시아가 조선을 차지할 때 큰 피해를 보는 국가 중 하나가 일본이었으며, 일본은 이를 막기위해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국제관계에서 힘을 가지지 못한 조선은 다른 국가들에게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nbsp;<br><br>국제관계에서 조선이 고립된 이유는 이미 망국으로 가고 있던 조선 내부의 부패때문이다. 당시 판을 치던 매관매직, 안동 김씨의 정권 차지, 공명첩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해당 영상에서 당시 조선과 영국, 프랑스의 상황을 비교해주는데 우리 나라의 정치에 큰 무력감을 느꼈다. 타 국은 스스로 개화의 길을 걷고 있는 시기에 조선은 권력욕에 눈이 멀어 세계 정세를 살펴보지 않고 있었다.<br><br>따라서 현재 우리의 관점에서 조선의 대응은 실패로 보여진다. 그러나 당시 수 없이 얽혀있는 정치, 사회, 문화적인 측면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에 당시 조선의 선택이 최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해본다.<br><br>역사를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전에 했던 우리의 실수가 또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지 말고 우리나라와 타국의 관계, 서로  엮여있는 역사적인 측면, 경제적인 측면까지 고려하는 모습을 보여야할 것이다.<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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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1:05: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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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0 시문옥</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2979819</link>
         <description><![CDATA[<div>지금 조선을 언급하면 여러분들의 첫인상은 가난하다는 것이다.조선은 현재 2500만 정도의 인구를 가지고 있고 2018년 자료에 따르면 조선의 1인당 GDP는 700달러인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선간의 동포형제인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 1천 달러에 달한다.조선의 GDP 총량은 한국의 1%에 불과할 정도로 두 나라의 삶의 질은 천차만별이다.하지만 1980년대 이전에는 조선이 사실 선진국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그렇다면 승승장구하던 준선진국에서 단숨에 지금의 지경으로 전락한 조선은 도대체 어떤 몰락을 겪었을까?<br>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마셜플랜을 내놓았다.유럽 동맹국들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붕괴 직전의 경제체제를 회복하도록 돕기 위해서다.소련과 공산주의 세력의 유럽 침투에 맞서기 위해서였다.재난의 시작은 1991년이었다.12월 25일,소련은 해체되었다.조선이 자랑하던 환경은 완전히 사라지고 재난도 동시에 시작됐다.<br>단,본론으로 들어가서 역사적으로 일본은 항상 조선을 침략했고 조선은 항상 일본의 괴롭힘을 당했다고 본 것이다.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br>첫째는 일본에 위기감이 있다는 것이다.<br>일본은 섬과 화산 활동이 활발한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항상 자신이 사는 곳이 안전하지 않거나 침몰할 것 같거나 바닷물에 잠길 위험이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그래서 그들은 항상 더 안전한 곳을 찾고 싶어한다.<br>또 일본은 해외에 고립돼 있어 역사적으로 의존도가 적었다.하지만 조선은 다르다.모든 대륙 중원국가의 번속국 중에서 가장 충성스럽고 가장 갈등이 적은 것은 바로 조선이다.대륙국가와 이런 끈끈한 관계 때문에 조선은 항상 안정감을 갖고 있다.결국 자신이 곤경에 처하면 형님 대대로 대륙의 중원 국가로서 반드시 나서서 그들을 평정할 것이다.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군사건설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다.이렇게 되면 일단 일본이 쳐들어왔을 때 그들은 당연히 이길 수 없고 대륙의 중원 국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br>둘째, 일본의 조선 침략은 단지 조선 침략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br>일본이 여러 차례 조선을 침략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것은 결코 조선만을 침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선을 하나의 발판으로 삼아 대륙을 침략하려는 의도였다.<br>일본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첫째,대륙의 중원국가가 넓다.이런 곳에서 살면 안심하다.둘째,대륙 중원 국가는 물산이 풍부하고 일본은 대륙 중원 국가에 침입하여 풍부한 물자를 얻을 수 있다.명나라 때 바닷가에서 왜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일본인들이 약탈을 통해 더 많은 물자를 얻으려 했다는 증거였다.이 발판이 있으면 일본은 이곳에서 준비를 하고 물자를 사재기하고,군대를 훈련하고,전술을 배치한 다음 당황하지 않고 대륙의 중원 국가로 진격할 수 있다.이 발판이 없이 배에서 직접 쳐들어오면 그들은 뿌리가 없으면 중국에서 싼 것을 찾기 어렵다.<br>그래서 조선은 중국이 있기 때문에 항상 일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다.<br>1910년 8월 29일 일제는 조선에 대한 침략전쟁을 일으켰다.이후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35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그 사이 조선 주민들은 엄청난 고난과 압박에 시달렸고 그들의 인권과 자유는 심각하게 제한됐다.조선 인민은 오랜 기간 일본의 군사적 점령과 경제적 착취에 시달려야 했고 생활 여건은 매우 열악했다.1945년 8월 15일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나서야 조선은 35년간의 일제 식민통치를 종식시켰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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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2:09: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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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37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2981795</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이 망한 이유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조선 후기에는 왕실 내부에서의 권력 싸움과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특히, 정조 때 이승만과 정약용 등의 사건으로 왕권과 사대부의 대립이 심화되었고, 이러한 내부 정치적 불안정은 조선의 경제 발전과 국방력 강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 전기에는 경제 발전이 있었지만, 후기에는 서구의 열강들이 선진 기술과 무역 네트워크를 보유해 조선의 경제적 발전을 앞서나갔다. 이에 따라 조선은 국내 산업의 발전과 해외 무역에서도 뒤쳐지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일본의 침략과 정치적 압박이 계속되었다. 이에 대한 조선의 대처는 충분치 않았고, 그 결과로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다. 또 조선 후기에는 기존의 노비제도가 붕괴되고, 양반 계층이 존재하지 않는 민중 계층이 대두되면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의 전통적인 사회 체제와 가치관을 충돌시켰고, 이에 따라 정치적인 불안정과 경제적 후퇴를 가속화시켰다.<br><br></div><div>조선이 망하지 않고 일본에 합병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본의 침략에 대해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여 일본과의 갈등을 완화시켜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의 외교적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외교 관점에서 일본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했다. 또 조선은 일본과의 군사적 대립을 위해 국방력을 강화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군대를 현대화하고, 기술력을 향상시켜야 했다. 또한, 외국의 도움을 받아 군수 지원을 받거나, 외국인 군사 전문가들의 지도를 받을 수도 있었다. 조선은 경제적으로도 성장하고, 일본의 경제적 압력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산업의 발전을 추진하고, 해외 무역에서도 강한 경쟁력을 발휘해야 했다. 또한, 국내의 자원을 적극 활용하고, 국제적인 제도를 활용하여 경제적 자립을 추구해야 했다. 조선은 기존의 사회 구조를 개혁하고, 민중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노비제도의 폐지와 양반 계층의 존재를 없애는 등의 구조적 개혁이 필요했다. 또한, 민주주의적 체제의 구축과 국민의 참여를 촉진해야 했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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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2:10: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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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1378 김유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3002896</link>
         <description><![CDATA[<div>나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사를 배울 때, 우리나라와 주변 국가인 일본과 중국에 초점을 맞춰서 배웠다. 그래서 내가 배운 한국사에서는 어떤 사건에 대한 결론도 세 나라에서만 이유를 찾았었다. 그러나 위 영상 같이 세계적인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볼 때, 여태껏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본론으로 들어와서, 조선의 대응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이에 대해서는 쉽게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고 생각한다.<br><br></div><div>주체가 힘이 없다면, 그 주체의 대응을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영상에서, 강한 나라들에게는 그저 주인이 없는 빈 땅처럼 비춰 질만큼 조선은 다른 나라들처럼 경쟁력이 있지도 않았고, 외교력이 있지도 않았다. 되려 그 안에서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 당시 조선의 통치자나 지배층에 문제가 있었다보다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폐쇄적인 성향이 강했고, 그 특성은 정치적으로 너무나도 취약하다. 이러한 폐쇄성이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이유라고 생각한다.<br><br></div><div>그러나 폐쇄적인 것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도한 개방성이나 타국의 영향력에 노출되어 생기는 문제도 분명히 있다. 영상에서 말한 것처럼, 과거의 조선에서 배워, 현재의 우리는 개방성과 폐쇄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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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2:25: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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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0895 유윤지</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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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nbsp;한 나라의 존망은 오로지 그 국가의 역사로만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nbsp; 현재의 외교와 같이 세계를 널리 살펴보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조선은 그러지 않았기에 망국이 되었다.<br><br>&nbsp;세계가 혁명으로 요동치던 중 조선은 그제야 영, 정조를 통한 발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즉 세계의 흐름에 뒤따르지 못한 것이다. 이미 세계의 강대국으로 자리 잡고 있는 영국과 러시아의 패권 싸움에 휘말렸다. 그때 조선이 유럽과 같이 시민 혁명이 일어났던 국가였다면 어땠을까.&nbsp;<br><br>&nbsp;흥선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우고 항구를 걸어 잠근 것은 역사 시간에 배워서 익히 아는 사실일 것이다. 이때 흥선대원군이 서양의 개항 요구를 받아들였으면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조선은 매관매직과 같은 부정부패로 망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에 개항을 했어도 부정부패가 흥행하는 조선 사회는 몰락했을 것이다. 그전부터 정권에서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아야 영국, 러시아, 일본의 패권 싸움에서 약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세계를 누비며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던 역관 오경석이 조선에서 가장 혜안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 보인다.&nbsp; 오경석과 같은 역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변화를 만들었다면 적어도 패권 싸움의 중립 지역은 될 수도 있었다. 어떻게 흘러갈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무력하게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선은 식민지가 된 후에 정부의 노력만 보이고 조약 체결 전의 정부는 그저 도망치기 급급한 것으로 비춰진다.&nbsp;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 조선의 대응은 아쉽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패권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면 오경석과 같은 혜안을 가진 인물들이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을 이끌어 가야 한다. <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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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3:02: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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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111518</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3095309</link>
         <description><![CDATA[<div>2023년 현재에 미국과 같은 강대국일지라 하더라도 다른 나라와 전혀 교류하지 않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국가의 존망과 직결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국제적으로 고립된 조선은 1910년이 아니었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망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조선은 이를 몰랐을 것이다. 당시 조선은 60년간 지속된 세도정치로 사회적 모순이 격화되고, 매관매직 등이 성행하며 지배자들이 본인들의 잇속만 챙기면서 정치, 사회적으로 무너지고 있었고, 조선 밖에서 일어나는 국제적 변화에 큰 관심이 없었다. 조선의 관점에서 갑자기 일어난 외세 침략의 대응책은 쇄국정책이나 광무개혁이었다. 부국강병, 황권의 강화를 통해 그들에 맞설 힘을 기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배층들은 그런 정책을 통해 국가의 힘의 범위를 좁히기에는 더 이상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것이 무너져가는 조선사회를 재건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유교사상으로 국민들을 다스릴 최선의 방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민주화를 위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을 때 이러한 정책은 구시대적이었던 것이다. 다른 나라로, 다른 대륙으로 건너갈 수 없었던 과거에는 효과적인 정책이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물론 지금에서 보면 그 당시 조선의 대응책은 시대착오적이며 실패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그것이 조선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조선의 문제는 발전하는 기술과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선을 둘러싼 여러 나라의 국제적 관계를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한 국가가 자급자족할 수 없는 시대에서 조선은 빠르게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우리나라가 주체적인 힘을 가지려면 조선의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국제관계에 대한 면밀한 인식이 필요하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파악할 때 단적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사를 배울 때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절대선, 절대악이라는 것이 역사에 존재할 수 없는데 이분법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이에 크게 반성하며 국제 정세에 관심을 두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겠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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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3:24: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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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113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3124884</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은 왜 망국으로 가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의 답은 영상에서도 나왔듯 ‘이완용 때문에, 고종의 정치 실패로 인해’와 같은 내재적 접근법으로 바라본 의견이 지배적일 것이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다.&nbsp;</div><div>그러나 이 영상을 통해 조선이 망한 이유를 구조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지배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러시아의 관점에서는 조선이 요충지였고, 조선에 관심이 없던 영국이 딱 한 번 조선의 거문도를 점령한 것도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한 것이었다. 미국 또한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을 막기 위해 조선을 점령하는 것을 견제하는 상황이었다. 조선은 열강의 타깃이 된 것이다. 근대 국가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일본 또한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는 상황이었는데, 이 때문에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협상을 시도한다. 조선을 중립지대로 삼아 서로의 안전을 보장, 39도 분할선을 제안하지만 협상이 결렬된다. 두 차례의 협상이 모두 결렬되자 일본은 철도가 완공이 되기 전 전쟁을 일으키게 되고 러시아를 꺾고 승리를 거머쥔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조선이 망한 이유가 등장한다. 조선이 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국제 관계에서 완벽하게 고립당했기 때문이다.&nbsp;</div><div>이 시기의 조선의 대응은 결과적으로 실패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은 국제 관계에서 고립되는 것을 막지 못했고 이것이 조선이 망국으로 가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해방 또한 온전히 조선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국제 정세의 큰 영향을 받았다. 조선은 고립과 심지어 해방의 상황에서조차 조선의 의지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의지대로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이 문제에서 대두되고 있는 나라들에 비하면 굉장히 약소국이었고, 국내 정치 상황도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국제 관계에서 고립되는 것은 조선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을지언정 막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선의 실패를 비판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div><div>현재도 한국과 일본 관계와 문제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많고 여전히 대중들은 내재적인 접근법으로 이러한 문제를 바라본다.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측면으로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상을 통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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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3:41: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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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8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3130792</link>
         <description><![CDATA[<div>우리는 한국사를 공부할 때 이 시기 조선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초점이 한국이었기 때문에 청,일본,러시아,영국 등의 국가적 상황과 각 나라의 생각등은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br>역사를 가르치면서 국제적인 정치, 정세 등을 살펴보지 않고 단지 한국에만 집중하는 것이다.<br>따라서 관련 역사를 더 넓게 살펴보지 않는다면 좁은 시야를 통해 이 시기를 바라볼 수 없게 될 것이다.<br>세계에서 살펴보았을 때 조선은 영국에는 이익이 되지 않았지만 러시아에게는 세계로 뻗어나갈 요충지였다.<br>이러한 러시아의 진출을 막기 위해 영국은 거문도 사건을 통해 거문도를 점령하였으며 일본 또한 러시아가 한국을 차지하게 될 경우 다음 표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에 결국 러일전쟁을 일으키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br>결국 개항을 하지 않고 쇄국정책을 벌이며 세계 정세를 둘러보지 않고 자신의 나라에만 갇혀 있던 조선에게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했을 것이다.<br>조선 내부적으로도 정치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 또한 원인 중 하나로 뽑히게 될 것이다.<br>영상에서 나오는 말 중 국제 관계에 대한 면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말이 와닿았다.<br>현재 또한 자신의 시각으로 세계에 대해 넓게 보고 나아가려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없다.<br>이번에 한일과 관련된 사건 역시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반일 감정을 가지고 비판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 세계의 시각으로 보려는 노력은 없는 것 같다.<br>우리가 정말로 깨어있는 시민을 자칭하기 위해서는 좁거나 편협된 시각이 아닌 국제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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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3:45: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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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3192691</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2022110736&nbsp;<br></strong><br></div><div><strong>중고등학생 시절에는 그저 일본의 조선침략, 식민지 생활, 일제의 만행등 편협한 시각에서역사를 바라보았다.그렇다보니 현재 이 수업은 나에게 다른 시각을 통해 역사를 보여주고있어 역사를 새롭게 접하는 기회가 되었다.&nbsp;<br></strong><br></div><div><strong>수업과 영상을 통해 조선이 망국이 된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nbsp;<br></strong><br></div><div><strong>&nbsp; 영상을 통해서&nbsp; 조선이 망국이 된 과정의 외부적 상황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조선은 러시아가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요충지였고 영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은 국익에 위협이 가해지지 않게 이를 막아야 했다는 것. 또한 영상에서는 조선이 망하게 된 이유로 국제적 관계에서 완전히 고립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nbsp; 새로운 방향에서 조선이 망국이 된 이유를 보니 역사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선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닫게 되었다.<br></strong><br></div><div><strong>&nbsp;하지만 영상을 끝까지 본 후에도 결국 조선 내부의 문제로 인해 조선이 망국으로 접어들었다고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사실 조선은 이미 어느정도 망가진 상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뿌리깊은 유교사상과 세도정치, 그 외의 모든 것이 조선을 서서히 망해가도록 하였다. 일본의 침략은 마지막 한방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br></strong><br></div><div><strong>또한 그 당시 조선의 대응은 실패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조선은 국력이 너무나도 약했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조선은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현재 대한민국도 많이성장했지만 여전히 다른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는 상황을 보면 아직 국력이 약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현재 더 큰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또한 국력을 키우기 앞서 국민들이 계속해서 나라의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br></strong><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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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4:22: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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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316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3196726</link>
         <description><![CDATA[<div>본 동영상과 댓글들을 통해 조선을 바라보는 내재적인 접근이라는 역사 교육에 대해 반추하게 됐습니다. 저 역시 이번 영상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과거사를 이해하게 됐고 국제 관계에 대한 면밀한 인식이라는 중요성을 깨닫게 됐습니다. 양국의 관계도 내재적 접근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급변하는 국제 관계 속에서 양국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시각을 갖출 필요가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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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4:24: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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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99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3197735</link>
         <description><![CDATA[<div>중고등학교 때 국사를 배우면서 단순 암기만 했던 나로서는 영상의 모든 내용이 새롭기만 했다. 당시에는 러시아, 영국에 관해서는 거의 듣지 못했으며 청나라와 일본, 조선 간의 관계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관심밖에 난 조선, 러시아의 남하와 이를 경계하는 영국, 위기를 느낀 영국과 일본의 동맹 등 모든 것은 국제 정세와 관련돼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무능했다. 안으로는 퇴보했으며 밖으로는 무지했다. 조선의 지배권을 둘러싼 열강들의 전쟁(러일전쟁)이 일어날 때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이때 조선의 지식인들은 일본의 승리를 빌기도 했다. 청일전쟁 때처럼 전쟁이 끝난 뒤에도 조선의 독립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하는 생각이었고 결국 조선은 전쟁 당사국이 아니었음에도 격전장이 되어 가장 큰 피해를 봄과 동시에 식민 지배가 시작됐다.&nbsp;</div><div>&nbsp; &nbsp;</div><div>이런 배경에서 과연 우리는 무분별하게 일본은 나쁜 나라고 조선은 선량한 피해자임을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일본의 식민 지배 과정에서 잔혹한 일들이 자행된 것은 사실이나 그 전에 조선의 무능함 먼저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이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개개인은 열강에 휘둘리지 않도록 의식을 갖고 지속적으로 주변 사람과 생각을 교류하며 이분법적인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과연 현재 대한민국은 그리고 나는 이렇게 하고 있을까? 피로 물든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아직도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것 같다.&nbsp;</div><div>&nbsp; &nbsp;</div><div>영상과 수업을 통해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망했다고 생각했던 나의 일차원적이고 편협한 사고를 돌아볼 수 있었다. 또한 역사를 볼 때는 내 시각을 어느 시점, 어느 입장에 맞추는지에 따라 생각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며 주변국과의 관계를 살펴봐야 함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영상을 보면서 궁금한 점이 있었다. 물론 지나간 과거에 ‘만약’을 붙일 수는 없지만, 만약 조선 또한 세도정치 등으로 인해 퇴보하지 않고 민주화 근대화 같은 움직임이 일어났다면 국제 관계 그리고 조선은 어떤 역사를 그려나갔을지 궁금하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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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4:25: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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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22110902</title>
         <author>wasdyy12345</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3239785</link>
         <description><![CDATA[<div>한국사를 통해 바라보는 조선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100년이 더 넘은 현재의 관점에서 결과를 알고 조선 패망의 이유를 찾는다면 항상 일본과 조선 내부의 인물들이라 생각해왔다. 영상을 보면서 이러한 이유를 단지 이들에 국한하지 않고 더 넓은 시야로 보아야 한다고 느꼈다. 조선 말기로 들어서면서 한국사는 한국과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영국, 러시아, 미국 등 수천km 이상 떨어진 이들이 나타났다. 당시의 모든 열강이 그랬듯 이들도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할 뿐이었다.<br><br>조선의 대응을 평가하자면 물론 실패라고 생각한다. 역사가 말해주듯 일본 제국의 손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선 다양한 국가들의 이익이 얽혀있었다. 그렇기에 조선의 운명은 피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당시 러시아와 영국은 그레이트 게임이라 불릴 정도로 서로의 세력 확장에 치열하게 대응하였다. 러시아는 유럽, 중앙아시아에서부터 남하를 꾀했지만 실패하였고 시베리아 동쪽을 통해 태평양에 진출한다는 좋은 카드를 발견한다. 대양 진출에 필사적인 러시아와 이를 막는 영국, 서양 열강들과 함께하기를 바라는 일본 사이에서 고립주의를 고수해온 조선은 이를 막을 수 없었다. 오랜 역사 동안 지속해온 조선의 고립주의는 외교의 실패로 이어졌다. 조선은 서방과의 교역에 상당히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역사의 무대가 동북아가 아닌 세계로 확장된 상황에서 이러한 태도는 현실을 외면하고 파악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 결과 이웃 나라들과 서양의 야욕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였다.<br><br>조선의 대응 역시 실패라고 생각한다. 조선이 패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립주의에서 탈피하여 외교적 유연한 대처와 현실을 파악해야 했다. 기술을 받아들이고 군사력을 강화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지식인들의 태도가 필요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이러한 행동들은 있었으나 결국 의사를 결정하는 왕과 그 주변 사람들의 역할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br><br>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넓은 시각을 가지고 세계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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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4:49: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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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1407 김현중</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3249922</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은 해당 시기에 서서히 망국으로 가게 되었다. 조선이 망국으로 향하게 된 이유는 국내적 이유와 국제적 이유로 분류할 수 있다. 국내적 이유로는 조선의 지도층이었던 사대부들의 부패, 조선 고위층들의 국제 정세에 대한 낮은 이해도, 변화에 대한 폐쇄적인 태도 등을 들 수 있다. 유교나 성리학을 표상했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이념이 국가 운영에 원칙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세도 정치 등으로 기득 카르텔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폐쇄성을 지닌 태도 역시 조선이 서구와 교류하거나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지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그대로 놓치게 만들었다. 국제적 이유로는 당시의 국제적 헤게모니에서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포츠머스 조약과 가쓰라-태프트 밀약 등으로 서구 열강의 조선 외면을 공인받은 이후 일본의 주도 하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 국제적 고립 이후에 나라의 안녕이 보장된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국제적 고립은 이는 조선의 멸망을 넘어서 이후 한반도 분단까지도 이어지게 되었다.&nbsp;<br><br></div><div>결과론적 관점에서 보면 이 시기 조선의 대응은 실패이다. 종단에 좋은 결과를 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당시 국제적 관점에서 조선이 어떠한 대응을 취하던 망국으로 치닫지 않을 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가능세계에서는 조선을 넘어 대한민국의 주권 역시 보장받지 않았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무수히 엮인 역사를 후대에 평가하기는 너무나 힘든 일이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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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4:55: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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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036 이민형</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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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조선이 어떤 운명이었는지는 결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조선은 일본의 지배를 받게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시련의 기간이 있었다고 어릴적 교과과정을 통해 배웠음이 기억이 난다. 성년이 된 지금에야 주어진 교과과정을 통한 학습에 대해 고찰해볼 기회가 있겠으나 학창시절의 교과서를 의심하고 참구해볼 기회는 적었다. 일본과의 축구경기가 있으면 왠지 덩달아 열렬히 응원하곤 했었다. 영상에서 나온 시대에 영국의 제국주의를 비롯한 서양 국가들의 영토 정벌은 다시금 새롭다. 영국을 비롯한 서양국가들이 세계를 정복하고 주도한지 이미 몇세기가 지났음은 전세계가 착취의 역사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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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27 15:29: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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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완용의 변명</title>
         <author>teseus7</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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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https://sillok.history.go.kr/id;jsessionid=06A6D7F41BD2F5A7EB5FF87D0F32F197/kza_14212016_003<br><br>다음 글을 읽고 코멘트를 적어주세요.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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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30 02:36: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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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53</title>
         <author>redelusion</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7729280</link>
         <description><![CDATA[<div>평소 생각하던 부분과 너무 다른 부분이 많아 적지않게 놀랐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대비해야한다는 말은 그냥 허울좋은 말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과거 우리나라가 처한 환경이 현재와 많이 비슷한 사실을 보고 실질적으로 역사를 통해 대처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울질을 통해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이상 불안정한 외교정책은 필연적이다.&nbsp;<br>과거 청나라에 집중하느라 일본의 부상을 애써 외면하고 일본을 견제하지 않았기에 국제적으로 고립됬다는 부분에서 현재와 많이 비슷함을 느꼈다. 현재 우라나라도 일본과의 마찰에 치우처져있기에 중국에 대한 과중한 경제적의존과 문화약탈의 과정이 축소되어 인식되는 상황이&nbsp;<br>120년전과 정반대인 상황이지 않은가?&nbsp;<br>일본의 과거를 완전히 잊어버리자는 뜻이 아니라, 이미 일몬 GDP와의 차이가 크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할 것 같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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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30 03:43: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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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4110282 실록을 읽고</title>
         <author>ynho123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7730277</link>
         <description><![CDATA[<div><br> 고종실록이 일본의 감독하에 작성되어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이완용의 변명을 들어보면 일견 타당한 부분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 5명을 대상으로 한 탄핵 상소는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고종이 사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고 일부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내비치며 사안을 대신들의 손에 넘긴 것, 이미 한일의정서에 조인한 시점에서 을사늑약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 이에 대해 미리 앞에 나서서 저항한 사람이 없고 8명의 대신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만 이는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매국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결과라는 것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일견 타당한 지점이 있다. 표면상의 힘 없는 제국이지만 대한제국의 결정권은 고종에게 있었고 고종의 명확한 의사가 없는 한 대신들의 운신의 폭은 좁을 수 밖에 없다. 또한 한일의정서에 도장을 찍은 순간부터 을사조약은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을사조약과 이후 대한제국의 망국으로 흘러가는 모든 책임을 '을사오적' 이라고 불리는 대신 몇명에게만 지울 수도 없다. 그러나 완전히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시대의 변화를 잘 관찰하여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한 나라의 최고대신이 해야하는 중요한 일이다. 한일의정서 체결이 을사조약으로 당연하게 귀결될 것이라고 예측했다면 '너네도 가만히 있었잖아' 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최고 엘리트인 대신들부터 나서서 황실과 인민을 조직해야 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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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30 03:44: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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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76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37739544</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이 조약으로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려는 목적을 달성했고, 한국을 일본의 사실상의 식민지로 전락시켰습니다.을사늑약에 따르면, 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그 대외관계는 일본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었으며, 일본의 허락 없이 외국과 조약을 맺을 수 없었습니다.표면적으로는 일본이 한국의 외교를 통제하기 위해 한국통감부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한국의 모든 사무를 관장하고 있으며, 내정간섭은 사실상 식민기구이자 대한제국 황제의 '태상황'입니다.한국 황제와 정부는 조약이 체결된 후 일본인의 꼭두각시가 되었습니다.일본 학자들이 논술한 바와 같이 을사늑약 체결 후 ”삼국간섭환요 10년 이래 한국을 통치하려는 일본의 염원이 상당 부분 실현되었습니다“을사늑약 강화조약 이래 30년간의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그 체결로 일거에 한반도를 점령한 일본의 한일 병합은 시간문제였습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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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3-30 03:54: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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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036 실록 독후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3392003</link>
         <description><![CDATA[<div>글이 한글과 한자로 적혀있지만 문체적 표현이 난해하여 생각보다 읽기가 어려워 평이한 문체로 풀어낸 번역본이 있었다면 일반 대중에게도 쉽게 읽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는 지난날의 사건이고 이에 대한 평가는 현 세대의 의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겠으나 정보화 시대에서 점차 개방화되는 사회에서 개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한 공유는 필요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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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4 08:04: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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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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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식민지수탈론 vs. 식민지근대화론</title>
         <author>teseus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5741937</link>
         <description><![CDATA[<div>주어진 리딩자료를 읽고 둘 중의 한쪽 입장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세요.&nbsp;<br><br>기한은 4월 9일 일요일 자정까지입니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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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6 02:52: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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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304 김민석</title>
         <author>ck09239</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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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리딩자료 1과 2를 읽고나서 김낙년 교수의 글에는 대부분 동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김낙년 교수가 쌀은 ‘수탈’된 것이 아니라 ‘수출’이 된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대가를 지불하였다고 하였지만 이렇게 수출된 쌀은 지주제와 소작농이라는 방식으로 사실상 조선인에게 이미 수탈한 쌀을 수출한 것이다. 물론 지주층에게는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줬을지는 몰라도 대다수의 소작농에게는 수탈이였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심지어 이는 김낙년 교수도 책 53 페이지 맺음말 부분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최종적으로는 대가를 지불하고 쌀을 가져간 것이기에 수탈이 아닌 수출이다 라고 하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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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6 04:12: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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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74 최병우</title>
         <author>quddn071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5823447</link>
         <description><![CDATA[<div>&lt;일제는 조선을 수탈한 것이 맞다&gt;</div><div>상반되는 두 참고자료를 읽어봤다. 두 글을 읽으면서 팩트도 있고, 팩트를 왜곡 또는 축소시키는 것도 있다고 느꼈다. 우선 ‘일제는 조선 식민지를 수탈한 것이 맞나’ 라는 질문에 ‘그렇다’ 라고 답변하고 싶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입장은 궁극적으로는 일제가 꼭 나쁜것만은 아니었다 라고 말하고 싶은것 같다. 일제가 조선을 억압하는 모습, 여러가지 강제적이고 부당한 모습들이 있었지만 분명히 조선 사회의 부정적 모습들도 있었거니와 일제가 그것을 어느정도 개선해준 부분도 있음을 인정하고자 하는 것같다. 나도 어느정도는 위 주장에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논리는 사실 일제와 제국주의를 현실보다 낭만적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쌀 이출에 대해여 얘기해보자. 조선 내 쌀 이출은 수탈인가 수출인가. 어쩌면 둘 다이다. 강제적으로 농민에게 수출을 강요하고 돈을 지급하지 않은 것도 아니니 수출로 볼 수 있다. 그치만 쌀을 생산하는 과정 그리고 쌀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과연 일제의 의도는 없었는가. 그리고 그 의도는 조선 사람들을 이롭게 만들었는가. 결과는 조선 내의 쌀 부족, 대지주들과 소작농들 사이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그것이 조선 내의 농경사회의 폐해라고 했을지라도 일본인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대지주들과 결탁하여 농인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작농들을 더 상대적으로 가난하게 하지 않았는가. 결론적으로 일제가 수탈을 목적으로 산미증식과 이출을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조선 사회가 피해를 본 사실은 자명하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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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6 04:13: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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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76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5832136</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제국주의 만행을 항상 황당한 발언으로 비판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br>1. 정서와 민족정체성: 한국은 일본의 식민통치국으로서 이 역사적 시기에 대한 정서적 고통과 민족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 있다. 역사교육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억압과 침략을 강조함으로써 한국의 피해자로서의 위상을 강조함으로써 민족적 자긍심과 통일감을 고취시킬 수 있다.<br>2. 국가 정책: 한국 정부는 역사 교육에서 국익과 국가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일제 식민 통치의 부정적인 영향을 강조하는 특정한 정책 방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역사교육에 대한 정부의 지도와 규제가 교과서의 집필과 교수 내용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br>3. 사회 및 문화적 맥락: 사회 및 문화적 맥락 또한 역사 교육의 편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 광범위한 논의와 논쟁이 있을 수 있고, 일부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으며, 이는 역사 교육의 기술과 강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br>&nbsp; &nbsp; 그러나 역사교육은 국가정책, 교육제도, 역사가의 시선, 역사연구 등이 얽혀 있는 매우 복합적인 분야이다. 역사적 사건과 사실에 대한 기술은 엄격한 역사적 연구와 학문적 합의에 기초해야 하며 왜곡과 편견을 피해야 한다. 동시에 개방적이고 공정하며 객관적인 역사 교육을 촉진하고 여러 국가 간의 역사 및 문화 이해와 대화를 촉진하는 것은 평화롭고 우호적인 국제 관계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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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6 04:25: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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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0656 송동영 식민지근대화론 비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5833112</link>
         <description><![CDATA[<div>&nbsp; 식민지근대화론은 산미증식계획에 의한 쌀 증산이 조선인의 소득증가에 기여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쌀이 주요 생산품이었기 때문에 쌀 생산의 증가만으로 소득증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nbsp;<br>  그러나 이는 산미증식계획에 있던 생산비용의 전가와 분배구조 등 여러 모순을 배제하고 나온 주장이다. 산미증식계획때 생산비용을 당시 총독부가 지원한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비료와 개간사업비용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생산비용부담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수리조합을 강제적으로 설립하고 조합비로는 일본인 지주가 수혜하면서 비용은 조선인 지주와 소작농이 부담하게 되었다. 증산량과 수리조합비가 유사했을 정도로 생산증가의 효과를 조선인이 누리긴 어려웠다. 또한, 토지조사사업부터 이어진 일본인 지주증가와 조선인 지주의 몰락은 결국 산미증식계획의 과실을 일본인 지주가 독점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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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6 04:27: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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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111518</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5852020</link>
         <description><![CDATA[<div>&nbsp;수탈이란 무엇인가? 무력으로 위협하지 않으면 수탈이 아니게 되는 것인가? 경제적 수탈이란 강제력을 동원해 그 나라사람들을 자기 의도대로 부리고 그 과정에서 그 나라의 토지와 자원을 마음껏 활용해서 이익을 얻는 것이라는 반일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의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nbsp;</div><div>&nbsp;반일종족주의자들은 일제가 조선의 식량공급기지를 만들어 조선의 쌀을 수탈한 것이 아니고 조선인들의 자발적인 수출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조선의 인구가 증가하여서 조선 농민의 입장에서는 일본이라는 새로운 수출시장이 생긴 호재라고 설명한다. 이는 과연 타당한 논리인가?&nbsp;</div><div>&nbsp;일제가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한 이유는 일본의 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후에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면서 일본의쌀 시장을 지키기 위해 조선미의 일본 유입을 제한하려하자 조선 농민은 반대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이&nbsp; 과연 조선농민이 반대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nbsp;</div><div>&nbsp;일제는 조선 농민의 자발성을 빼앗고 수리조합을 만들어 그들을 강제했다. 일본인 대지주의 수가 급증하며 총동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조선인 토지 소유자들은 몰락해갔다. 수리조합 내에 소작농들은 드높은 수리조합비 및소작료와 철옹성같은 지배체계 아래에서 농사를 지었다. 이것을 조선 농민의 호재라 볼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조선에서많은 수익을 내고 있던건 일본인 대지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따라서 조선미의 일본 유입을 반대한 것이 대부분은그들이라 추정할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지주와 소작농 사이의 빈부격차는 존재했을테지만 일제가 그것을 더욱 심화시킨 것이다. 조선의 쌀 소비량이 줄고 잡곡 소비량이 증가한 것이 조선의 경제적 성장을 보여준다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다. 소작농의 수중에 떨어지는 쌀의 양으로는 배를 채울 수 없으니 그것을 팔고 저렴한 잡곡을 먹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김낙년 교수는 그 때 생긴 차액으로 다른 재화를 소비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으 무엇인지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이 신뢰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일제 말기의 할당량을 공출하지 않으면 불법으로간주되고 죽창을 휘두르며 강제했던 쌀 공출제도도 그러한 생각으로 수탈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일본의 행위들을 수탈이 아닌 수출이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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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6 04:49: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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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214580 남강희</title>
         <author>2020214580</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5868826</link>
         <description><![CDATA[<div>자료 1에서 말하는 것은 일본 측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통계가 정확하다면 그 말이 사실처럼 보여질 수 있고 그렇다면 정말 일본이 조선을 본국처럼 다루려고 했다면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별이 있었을까라는 것을 반론 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그들은 법을 만들고 자료를 통해서 보여지는 것은 조선인과 일본인들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한다고 말하고 싶다. 산미증식계획도 수탈이 아니라 수출이라고 볼수 있는 여지도 있다. 그리고 한국의 쌀의 품질은 박정희 시대 이후 좋아졌다는 것도 분명할 정도로 일제강점기 시대의 쌀 품질은 정말 좋지 못했다. 그리고 물론 예나 지금이나 조선인들은 잡곡을 먹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산미증식계획은 일본 측에서 시행한 것이지 농민들이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렇기에 나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일단 생산분에 있어서 수출한 것이 정당하게 농민들에게 이득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그 이익들은 당연히 일본이 가져갔다고 본다. 정말 일본 측이 쌀이 더 필요했다면 조선말고도 다른 국가의 쌀 또한 수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용보다 조선에서의 생산이 더 좋은 환경이기에 그들은 조선에서 쌀 생산을 한 것이고 그로 인해 통계에서는 수출 증가로 보여지게 된 것이다. 또한 당시에 강제 징용된 사람들의 증언들도 자신이 끌려갔고 정당한 임금을 지불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측에서는 그들이 자원했고 자신들은 정당하게 임금을 지불하였다고 말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점 및 주장이 다르듯이 이 논쟁 또한 마찬가지라고 보여진다. 앞서 말했던 쌀 증식 계획은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써 쌀과 차들을 많이 생산 및 수입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인도인들도 그것이 정말 인도인을 위한 것이였다면 그들은 간디를 중심으로 독립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당시에 저항의 상징이였던 물레방아도 한국에서도 물산장려운동이 있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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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6 05:04: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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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308</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5933376</link>
         <description><![CDATA[<div>반일종족주의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경제적 관점에서 그럴싸한 논리로 수출과 수탈을 구분 짓는다. 자료에서도 나오듯이 결국 언어학의 기초 상식을 무시하고 오로지 경제적 관점으로만 단어의 의미를 정의한다. 당시 열강들이 앞 다투어 식민지 세력을 확장하려던 이유는 경제적인 측면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 또한 경제적인 측면이 큰 요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는 오로지 일본의 관점에서만 수출로 정의할 수 있다. 조선 입장에서 일본의 시장이 분명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무력을 동원해 불합리한 정책으로 수출하도록 강요한 것을 우리는 수탈이라고 정의한다. 물론, 철저히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수출로 볼 수 있다. 나아가 일본이 한반도 근대화를 위한 설비 투자 또한 이득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경제적 관점으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경제와 윤리는 인간 사회에서 충돌은 하되 배제할 수는 없는 특성이다. 우리나라 역사 교육이 일제를 비판하는 표현을 포기 못한다는 주장은 동의한다. 하지만 반일종족주의가 주장하는 표현의 비판은, 철저히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역사를 가르치라는 꼴이다. 일본의 침략은 자명한 사실이고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수출이라는 표현이 옳을 수 있더라도 수탈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것이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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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6 06:07: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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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3410 이성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5951466</link>
         <description><![CDATA[<div>식민지&nbsp;근대화론이 생기는 근본적 이유는 표면적인 행위만 보고 그것을 확대해석하는 데에 있지만, 조금만 깊이 파 보면 금방 논박할 거리가 생긴다. 우선  위 자료에서 나와 있듯이 조선의 농업 생산량이 늘어났지만 이를 소유한 사람은 조선인이 아니었다. 일제 강점기의 거의 모든 조선인은 자기 땅을 잃으며 자작농과 자소작농은 감소하고 일개의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농업의 발전으로 증가하는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조선인들이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수확물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이 농작물을 늘리려는 목적도 결국 일본 본인들의 이익이었는데, 일본은 20세기 중반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을 치르며 식량을 포함한 물자가 필요해졌고 그것을 조선에게서 얻어가기 위해 조선 땅에서 개발을 한 것 뿐이다. 그 과정에서 조선인의 희생과 대가는 현재까지도 청산되지 얂았다. 그 외에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개발이나 근대론조차 독립 이후 모두 송환되었으며 6.25전쟁 이후 흔적마저 사라져 사실상 새롭게 일궈 낸 것이다. 즉 한일합병이 한반도 근대화에 기여한 점은 하등 존재하지 않는다. 김낙년 교수가 말하는 바에서 감정에 휘둘려 일제를 무조건적으로 비하하는 것은 올바른 대처가 아니겠지만, 이를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필시 잘못된 관점이라고 판단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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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6 06:27: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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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53 박성민</title>
         <author>redelusion</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5955999</link>
         <description><![CDATA[<div>처음 곡물의 수출이라고 표현하는 내용과 그 근거를 듣고, 나도 모르게 내가 잘못된 역사관을 가지게 되었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번째 글을 읽고 난 후에는 사람이 얼마나 잘 설득되는가를 깨달았다.&nbsp;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수출'이라는 그럴싸한 표현으로 그 당시의 시대상을 정의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한 이렇게 역사왜곡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좀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설득당할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br><br>결론적으로 나는 과거에 벌어진 일들이 일제의 '수탈'이라고 생각한다. '수출'이라는 표현과 일본 농민들의 조선쌀 수입반대 운동만으로 그 행위를 '수출'이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이득을 봤을 것이고, 수익이 증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의 일본 지주들과 일제에 붙어 지내는 조선 지주들일뿐, 조선의 근간을 이루는 국민들에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다.&nbsp;<br><br>그럼에도 특정 소수층의 수익증가를 대한민국의 수익상승과 gdp상승이라는 표현으로 그 당시의 '수탈'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반대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일본이 정말 조선을 위해서, 조선의 쌀 수출등을 장려하고 조선의 gdp성장을 위했다면, 농업이 아닌 다른 기술이나 공정을 한반도에 이전했겠지 싶다. 결국 일본에게 조선은 그냥 평생 농사나 지으며 그 생산량의 대부분을 '수출'이라는 명목으로 착취하기 위한 땅인 것이었다.&nbsp;<br><br>한때, 위안부는 거짓된 과거기록이라고 주장하는 몇몇 '한국'단체들과 개인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한 tv다큐에서 취재한 결과 그러한 주장을 하는 교수의 연구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본 대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꾸준히 받아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로 일본은 중국에는 위안부문제를 사과한 전력이 있음에도 한국에는 없었다고 꾸준히 말하는 것이다. 과거 친일파로 불렸던, 일제에 빌붙고 동족을 팔아넘겨 주머니를 채우던 이들이 아직도 현재에도 남아있는 것 같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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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6 06:32: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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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21569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5989518</link>
         <description><![CDATA[<blockquote><strong>식민지수탈론vs식민지근대화론</strong></blockquote><div><br></div><div><strong>이 둘 중 하나를 고르면 나는 당연히 식민지 수탈론이 맞다고 본다.</strong></div><div>들어가기 앞서,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의 의미를 짚고 넘어가자면,</div><div>식민지 수탈론-일본인을 위해 한국의 경재를 개발했다.</div><div>식민지 근대화론-일본은 한국을 위해 한국의 경재를 개발했다.</div><div>인데, 솔직히 이것은 당연히 일본의 입장 그리고 한국의 입장 모두 다를 것이고,&nbsp; 개개인마다 또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div><div>하지만 내가 당연히 식민지 수탈론이 맞다고 한 것은,</div><div>지금까지의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보았을 때, ‘일본이 한국을 배려하고 상의하에 행동한 적이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모든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없다고 말을 할 것이다.</div><div>우선 ’식민지‘라는 뜻 자체가 부정적이다. ’작정하고 한국을 통제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다. 조선의 식민지화를 시작했을 때 일본이 추진한 내용을 보면</div><div>1.한국의 금융을 장악했다.</div><div>2.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함으로써 세금 수입이 증가하였다.</div><div>3.산미증식계획을 추진하여 우리나라 쌀의 절반이 일본으로 들어갔다.</div><div>4.철도를 건설하여 군사시설 즉, 대규모 군대 이송과 군수 물자 이송을 가능 캐 했다,</div><div>굵직하게 보았을 때 이 정도 내용이 있는데, 이 중 그 어느 것도 조선이 원해서, 순순히 받아들일 내용이 없다. 특히 3,4번은 강제적으로 조선이 쌀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걷어가고, 철도 건설을 위해 철도가 놓아지는 구간에 사는 사람은 강제적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div><div>모든 것이 강제 혹은 반강제인 면을 보면, 과연 한국을 위해=한국 국민을 위한 경제 개발이라고 할 수 있을지... 깊은 의문이 드는 입장이다.</div><div>물론 국가적으로 정말 경제적 발전만을 놓고 본다면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div><div>하지만, 한국을 위해라는 말은 여전히 큰 물음표가 머릿속에 되뇌어지는 의문투성이이고, 이 시대만을 놓고 본다면 식민지 근대화론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div><div>아무리 ’수탈‘, 그리고 ‘고의’가 아닌, 한국의 경제 개발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선의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한 들, 일본의 방식은 우리 국민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비합리적이고 힘든 과정이었다고 생각이 든다.</div><div>따라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일방적인 강압이 아닌 서로가 합의하에 어우러졌어야 하지 않을까? 합의까진 못 가더라도, 최소 타협할 수준, 우리가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div><div>따라서 나는 '식민지 수탈론' 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바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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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6 07:08: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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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379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6301642</link>
         <description><![CDATA[<div>수많은 논거를 뒤로 하고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나는 식민지 수탈론 쪽이 조금 더 일본 치하 시기를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영훈 교수나 김낙년 교수가 중심이 된 낙성대경제연구소가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내용 또한 사실에 근거하고 있기에 무시해서는 안되는 주장이겠지만, 일부분을 보고 전체로 확대해석하려는 경향이 보이는 것 같다. 대표적인 근거로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주장하는 산미증식계획에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산미증식계획을 통하여 조선인의 쌀 생산량이 점진적으로 증가하였고, 이 증가한 쌀 생산량을 바탕으로 일본에 많은 쌀을 수출하여 조선인의 경제 상황이 나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소수인 대지주 조선인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며, 대다수인 조선인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하였다. 산미증식계획 과정 속에서 수리조합비 등으로 지주에게 바치는 쌀의 양 또한 증가하였으며 실질적으로 소작농들이 나누어갖는 쌀의 양은 비슷하였다. 또한 일본에 쌀을 수출하는 과정 속에서 늘어난 쌀 수출량을 통해 얻은 이득들은 소작농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증가한 잉여 미곡은 대지주들 혹은 일본 정부에게 대부분 돌아갔으며, 얻은 수출량을 다시 재판매하여 얻는 이익 또한 그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은 당연할 것이다.&nbsp; 그렇다면 근대화 과정에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조선인들이 수탈을 당했다고도 볼 수 있는 증식계획을 통해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수탈 쪽에 조금 더 가깝다고 답할 것이기 때문에, 수탈론에 힘을 실어 글을 쓰는 부분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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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6 13:56: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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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95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029047</link>
         <description><![CDATA[<div>&nbsp; 제시된 네 가지 자료를 읽고 나는 식민지 수탈론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보다 체계적으로 비판할 수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시대 상황을 '근대화'라는 단어로 포장할 생각이 없었던 지라 나름대로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글도 흥미롭게 읽었다. 그들이 말하는 바는 결국 자의적이고 의도적인 해석이 가득한 숫자 읽기와 선택적 눈 가리기에 근거한 확대 해석이었지만 말이다. 이미 읽기 자료에서 그들의 숫자 해석과 문헌 해석의 빈약함을 수없이 지적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백 번 양보하여 그들이 해석하는 방식이 옳다고 가정을 해보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 덕분에 우리나라 쌀 생산량이 늘고, 1인 쌀 소비량이 줄고... 이외에도 경제 성장 지표로 보기에 충분히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단순한 가정이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 현상을 분석할 때 한 가지 측면만을 분석한 자료 내지는 결과가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다. 한 국가의 경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사회, 행정, 법,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와 현황이 맞물려 분석되어야만 비로소 실제적이고 유의미한 분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수많은 오류를 배제하고 그 자체만 바라보더라도 그것은 지극히 1차적이고 표면적인 해석에 가까운 것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 나는 이 역시도 그들이 의도적으로 더 깊이 파고들길 회피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에서 비롯된 숫자는 일제강점기의 사회와 법 등의 다른 측면들과 마주하게 되면 긍정적인 해석의 여지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조선의 곡식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경제학적인 논리라면 그 사이에 노동자들은 더 높아진 임금을 체감했어야 한다. 그러나 조선의 농민들은 그 결과로 몰락하고 만다. 여기까지 분석이 이어진다면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쌀을 '수탈'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송이버섯의 비유를 들어 내용을 보충하는 것을 김 교수님의 책에서 찾을 수는 있지만 이를 철저히 반박하는 글 역시 참고자료2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애초에 쌀과 송이버섯이 가지는 재화의 성격이 다른 것이다. 해당 비유가 제시된 맥락이라면 콜라를 사이다에 비교를 해야지 생뚱맞게 와인에 비교하고 있는 꼴이다. 경제학원론을 배운 학생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을 교수님께서 모르셨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nbsp;</div><div>&nbsp; 결론적으로 나는 이처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각화되어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읽기 자료를 토대로 보았을 때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측면에서 제시하는 자료와 주장은 한 마디로 터무니 없는 내용이라고 보아 그들이 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실제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길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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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7 07:16: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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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57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568117</link>
         <description><![CDATA[<div>&nbsp;일제는 조선의 곡물을 수탈한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일제로 인한 조선으로부터의 곡물 '반출'은 단순히 숫자를 통해 그 의도와 강제성을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nbsp;<br>&nbsp;일제가 조선에서 산미증식계획을 시행하여 쌀 생산량을 늘렸던 이유는 분명하다. 1937년 중국과 전쟁을 개시하며, 일본 내에서는 식량 문제가 대두되었다. 따라서 일본은 식량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조선을 일본의 주요한 식량 창고로 만들어 전쟁에 필요한 식량 공급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산미증식계획을 시행한 것이다.&nbsp;<br>&nbsp;또한 생산 단계와 생산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조선 총독부가 수많은 농민들을 강제하여 계획을 실행하였다. 일본은 농민이 그들의 지시에 따르는지 하나하나 감시했다. 또한 일본인 대지주의 수는 점점 늘어나는 반면 조선인 대지주의 숫자는 줄어들었는데, 이는 싼 값에 조선인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일본 정부측에서 조선인 지주들의 땅 판매를 강제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nbsp;<br> 단순히 생산량이 늘어난 것, 조선과 일본의 수출입 금액의 증가를 통해 일제의 수탈을 변호하고 옹호하는 행위는 이러한 내부적인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조선의 자원과 노동력 착취를 변호하는 행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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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8 10:55: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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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013</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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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lt;반일종족주의&gt; 가 출간됐을 때 여론은 양극으로 갈렸다. 반은 별점 다섯개를 주는가 하는 반면 나머지는 시민단체를 결성해 낙성대연구소까지 찾아가 저자에게 시위하는 수준이었다. 더 깊은 이해를 위해 kbs에서 방영했던 ‘논란의 베스트셀러 -반일종족주의’ 영상을 봤다. 영상에서 정리해준 반일종족주의의 ‘강제징용이 아니었다.’&nbsp; ‘위안부는 자발적이었다.’ 등의 쌀 문제 외에도 여러 논란거리가 있었다. 근데 우선 이 내용들은 일본 극우의 주장 그러니까 아베 정권의 주장과도같다. 반일종족주의에 반박하는 도서에서도 김낙년 교수의 주장에는 모순이 있고 강제성이라는 것이 꼭 한가지 국한된데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부분을 지적했다. 영상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반일종족주의 저자에게 화를 내며 사과하라는 부분이 나왔는데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어떻게 나라의 희생된 분들에 대해 매춘이라고 표현하는 아베와 일본의 극우세력들의 주장을 한국인이 할 수나 있는가? 근데 그 영상의 댓글이 가관이다. 일베를 하는건지 한국에서 도태된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 대해 찬양하고 kbs의 주장은 매도하는 것이며, 좌빨들이 제일 싫어하는 책이라며 조롱하고 있다.&nbsp;</div><div>일본에서 잠깐 유학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처음엔 일본이 좋아서갔다. 전공과 대학원 연계를 위해 더 깊은 공부를 하고자했고 유학생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근데 처음엔 일본 좋아서 간 한국인 친구들도 결국엔 일본인은 꺼리게 된다고 했다. 물론 일부일 뿐이고 개인적 의견이지만 나 또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독도 문제, 무시 등의 성가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전공에 대한 석사 공부는 계속 할 것이고 일본의 문화는 존중하지만 이제는 일본이 전처럼 좋지 않다는 내 주위 모든친구들의 의견이 있다. 일본에서도 저 책이 인지도가 있는데 솔직히 망신스럽다. 무조건적인 반일감정이 아닌 겪었던 일을 토대로 그런 생각이 있고 또한 반일종족주의 라는 책에 대한 감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애초에 표지 자체가 욱일기인책은 읽을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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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8 11:48: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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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0 일본학과 시문옥</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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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Reading1&amp;2:</div><div><strong>일본의</strong> <strong>이런</strong> <strong>행위는</strong> <strong>어떤</strong> <strong>용어로</strong> <strong>씻겨도</strong> <strong>결국은</strong> <strong>약탈로</strong> <strong>이어졌다옛날에는</strong> <strong>전쟁터였던</strong> <strong>군오도</strong> <strong>넘볼</strong> <strong>수</strong> <strong>없는</strong> <strong>중요한</strong> <strong>관문으로</strong> <strong>조선에</strong> <strong>큰</strong> <strong>타격을</strong> <strong>주었다</strong>.<strong>수출만</strong> <strong>하고</strong> <strong>있다면</strong> <strong>왜</strong> <strong>자신부터</strong> <strong>도탄에</strong> <strong>빠진</strong> <strong>것일까</strong>?<strong> 물론</strong> <strong>조전</strong> <strong>농민들에게도</strong> <strong>피해가</strong> <strong>너무</strong> <strong>크다.쌀은</strong> <strong>필수한 식량이다.이것도 탄수화물로</strong> <strong>쓰이지만</strong> <strong>농사짓는</strong> <strong>농민들은</strong> <strong>일본에</strong> <strong>팔아</strong> <strong>값싼</strong> <strong>잡곡으로</strong> <strong>생계를</strong> <strong>꾸려야</strong> <strong>했고</strong> <strong>인구의</strong> <strong>절반이</strong> <strong>농업에</strong> <strong>종사하면서</strong> <strong>쌀을</strong> <strong>생산하고</strong> <strong>있지만</strong> <strong>수확량은</strong> <strong>형편없다는</strong> <strong>보도도</strong> <strong>있었다</strong>.<strong>생산력이</strong> <strong>낮다는</strong> <strong>것은</strong> <strong>곧</strong> <strong>소득이</strong> <strong>낮다는</strong> <strong>것을</strong> <strong>의미한다.한</strong> <strong>나라의</strong> <strong>발전은</strong> <strong>경제의</strong> <strong>버팀목이</strong> <strong>될</strong> <strong>수밖에</strong> <strong>없고</strong> <strong>일본은</strong> <strong>조선을</strong> <strong>그렇게</strong> <strong>몰아붙이고</strong> <strong>있고</strong> <strong>조선을</strong> <strong>경제난에</strong> <strong>허덕이고</strong> <strong>있고</strong>,<strong>생존도</strong> <strong>문제다</strong>.<strong>일본은</strong> <strong>조선을</strong> <strong>동화시키려</strong> <strong>했을</strong> <strong>뿐</strong> <strong>아니라</strong> <strong>당시에도</strong> <strong>확실히</strong> <strong>손을</strong> <strong>댔던</strong> <strong>것이다</strong>.</div><div><strong>그렇다면</strong> <strong>문제의</strong> <strong>근원은</strong> <strong>역시</strong> <strong>일본에</strong> <strong>있다</strong>.</div><div>1918<strong>년</strong> <strong>일본의</strong> <strong>쌀값</strong> <strong>폭등으로</strong> <strong>쌀</strong> <strong>소동이</strong> <strong>일어나자</strong> <strong>국토</strong> <strong>내</strong> <strong>쌀</strong> <strong>부족</strong> <strong>문제를</strong> <strong>해결하려는</strong> <strong>시도가</strong> <strong>수탈로</strong> <strong>이어졌다</strong>.</div><div><strong>일본의</strong> <strong>쌀</strong> <strong>소동은</strong> <strong>세계를</strong> <strong>놀라게</strong> <strong>하고</strong> <strong>일본의</strong> 10<strong>월</strong> <strong>혁명으로</strong> <strong>이어질</strong> <strong>뻔했다는</strong> <strong>반천황의</strong> <strong>폭동이라는</strong> <strong>주장도</strong> <strong>있다</strong>.<strong>당시</strong> <strong>일본</strong> <strong>쌀</strong> <strong>상인들이매점매석해</strong> <strong>일본</strong> <strong>어민들이</strong> <strong>쌀가게를</strong> <strong>빼앗았다</strong>.<strong>일본은</strong> <strong>원래</strong> <strong>자원이</strong> <strong>부족한</strong> <strong>섬나라로</strong> <strong>경공업</strong> <strong>품종이</strong> <strong>많지</strong> <strong>않아</strong> <strong>매년</strong> <strong>농산물</strong>,<strong>섬유</strong>,<strong>수공업품을</strong> <strong>미국에</strong> <strong>판매하고</strong> <strong>있으며</strong> <strong>매년</strong> <strong>많은</strong> <strong>쌀을</strong> <strong>미국에</strong> <strong>판매하고</strong> <strong>있다</strong>.<strong>러시아와의</strong> <strong>전쟁에</strong> <strong>간섭하기</strong> <strong>위해서는</strong> <strong>군량미를</strong> <strong>징발해야</strong> <strong>했고</strong> <strong>시장의쌀은</strong> <strong>순식간에</strong> <strong>비어버렸다</strong>.<strong>이때</strong> <strong>쌀</strong> <strong>상인들은</strong> <strong>그</strong> <strong>틈을</strong> <strong>타서</strong> <strong>매점매석하여</strong> <strong>쌀을</strong> <strong>팔지</strong> <strong>않고</strong> <strong>앉아서</strong> <strong>폭리를</strong> <strong>취하였다</strong>.<strong>정부는</strong> <strong>인민의</strong> <strong>생사를떠나</strong> <strong>오로지</strong> <strong>전쟁에만</strong> <strong>급급하고</strong> <strong>인민은</strong> <strong>기아에</strong> <strong>허덕이고</strong> <strong>있다</strong>.<strong>도저히</strong> <strong>살</strong> <strong>수가</strong> <strong>없고 매일</strong> <strong>굶어죽는</strong> <strong>곳은 많다.온</strong> <strong>나라가</strong> <strong>화약통</strong> <strong>같아서</strong> <strong>조금만</strong> <strong>튀어도</strong> <strong>불똥이</strong> <strong>튄다</strong>.<strong>이런</strong> <strong>상황에서</strong> <strong>일본이</strong> <strong>제</strong> <strong>밥그릇</strong> <strong>챙기기에는</strong> <strong>북한이</strong> <strong>쌀을</strong> <strong>더</strong> <strong>이상</strong> '<strong>수출</strong>'<strong>할</strong> <strong>수</strong> <strong>없다고 생각한다.</strong></div><div><strong>또</strong> <strong>이</strong> <strong>같은</strong> <strong>쌀은</strong> <strong>동아시아에서</strong> <strong>가장</strong> <strong>중요한</strong> <strong>식량자원으로</strong> <strong>그동안</strong> <strong>일본이</strong> <strong>국내</strong> <strong>식량</strong> <strong>유통을</strong> <strong>제대로</strong> <strong>통제하지</strong> <strong>못해</strong> <strong>봉기가</strong> <strong>일어났다</strong>.<strong>그러나아무리</strong> <strong>충분한</strong> <strong>식량이라</strong> <strong>해도</strong> <strong>전화가</strong> <strong>도처에</strong> <strong>번지난 소국과</strong> <strong>막대한</strong> <strong>전쟁</strong> <strong>비용을</strong> <strong>감당할</strong> <strong>수</strong> <strong>없었고</strong> <strong>전쟁이</strong> <strong>끝났을</strong> <strong>때</strong> <strong>사람들은</strong> <strong>폐허</strong> <strong>속에서</strong> '<strong>식량</strong>'<strong>을</strong> <strong>찾아야</strong> <strong>했고</strong> <strong>그</strong> <strong>대가를</strong> <strong>톡톡히</strong> <strong>치러야</strong> <strong>했다</strong>.</div><div><strong>동시에</strong> <strong>군국주의의</strong> <strong>일본에</strong> <strong>대해</strong> <strong>많은</strong> <strong>역사를</strong> <strong>묻으려</strong> <strong>했다</strong>. 918,<strong>난징</strong> <strong>대학살</strong>,<strong>역사에</strong> <strong>기록되지</strong> <strong>않은</strong> <strong>많은</strong> <strong>예가</strong> <strong>있다는</strong> <strong>것을</strong> <strong>세상</strong> <strong>사람들은모두</strong> <strong>알고</strong> <strong>있다.조선을 식민지로</strong> <strong>몰아넣고</strong> <strong>옛</strong> <strong>정부권을</strong> <strong>박탈해</strong> 35<strong>년간</strong> <strong>극심한</strong> <strong>고난과</strong> <strong>압력에</strong> <strong>시달린</strong> <strong>조선을</strong> <strong>주민들은</strong> <strong>인권과</strong> <strong>자유가</strong> <strong>제한되고</strong> <strong>경제아 군사적으로</strong> <strong>착취당하는</strong> <strong>열악한</strong> <strong>생활환경에</strong> <strong>시달렸다</strong>.<strong>그뿐만</strong> <strong>아니라</strong> <strong>당시</strong> <strong>많은</strong> <strong>재일동포들이</strong> <strong>냉대에</strong> <strong>시달리며</strong> <strong>차별대우를받았다</strong>.<strong>그래서</strong> <strong>나의</strong> <strong>관점을</strong> <strong>더</strong> <strong>논증했고</strong>,<strong>나도</strong> <strong>이</strong> <strong>점이</strong> <strong>나의</strong> <strong>논점을</strong> <strong>뒷받침하기에</strong> <strong>충분하다고</strong> <strong>생각했다</strong>.</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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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8 16:23: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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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275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665933</link>
         <description><![CDATA[<div>지금까지 배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일제강점기에 대한 내용 중 하나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적으로, 폭력적으로 수탈했다는 것이다. 수탈당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쌀이다. 리딩자료1에서는 맨 처음 문장부터 이 생각을 비틀어 줄만한 내용이 제시되었다. 저자가 어떤식으로 이 내용을 풀어갈지, 어떻게 내 생각을 비틀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줄지 궁금함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읽기를 계속하면 할수록 내가 새롭게 접하게 된 이 주장에 설득당하기보다 의문만 커져갔다. 어째서 저자가 이런 생각과 주장을 하고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그래프와 수치를 근거로 삼아 주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것이 수탈이 아닌 이유, 강제적이지 않은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46p의<strong><em> '당시의 자료나 신문을 조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쌀은 통상의 거래를 통해 일본으로 수출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em></strong>&nbsp; 라는 문장에서 말한 '자료나 신문'이 완전히 당시의 상황을 대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으로 <strong><em>'만약 누군가가 피땀 흘려 생산한 쌀을 강제로 뺴앗아 갔다고 한다면, 바보가 아니고서야 가만히 참고 있을 농민도 없겠거니와 그것이 곧 신문에 보도될 뉴스거리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em></strong>가 있는데, 이 또한 나의 의문을 증가시키는 내용밖에 되지 못했다. 애초에 강제로 빼앗길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면 억울한 상황을 신문에 싣지도 못할 정도로 무력하고 억압된 상황이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말하는 당시의 자료나 신문에는 약탈 당한 사람들의 입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 뿐인데, 이것을 가지고 당시의 상황이 강제적이지 않았고 약탈 당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조금 어이가 없다. 앞서 언급한 내용 외에도 리딩자료 1에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내용들이 다수였다. 타당하지 못한 근거를 가지고 어째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또, 내가 이 리딩자료를 읽기 전에 이미 알고 있던 당시 조선을 점령했던 일제의 논리가 있는데, 나는 그 논리가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왔었다. 그리고 반일종족주의를 읽으며 느낀 점은 저자의 주장이 그런 일제의 논리와 닮아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어떤 관점은 제시받지 못했고 아쉬움만 남았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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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8 16:32: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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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1397</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686382</link>
         <description><![CDATA[<div>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각각의 입장에서 쓰인 자료들을 읽고 식민지 수탈론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두 입장 모두 논리를 비약하거나 팩트를 과장하고 축소하는 것이 있었고 억측한 부분도 있었다. 내가 아는 선에서 그것들을 감안하고 봤을 때, 식민지 수탈론이 더 맞다고 판단되었다. 먼저 『반일종족주의』에서 하나의 추측 근거로 ‘누군가가 피땀 흘려 생산한 쌀을 강제로 빼앗아 갔다고 한다면, 바보가 아니고서야 가만히 참고 있을 농민도 없겠거니와 그것이 곧 신문에 보도될 뉴스거리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라며 그 이후에도 농민들의 반발이 없었고 언론이 잠잠했다는 점을 내세우며 말했다. 여기서 든 의문은 과연 그 당시 조선총독부가 있던 상황에서 언론은 자유로웠으며 농민들은 정말 한 마디 불만 없이 쌀을 수출했는가와 그렇다고 하더라도 할 말이 없어서 하지 않았는지 혹은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말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산미증식계획에서는 조선총독부의 권력이 분명 작용되었고 나라는 힘이 없었으며 농민들은 더더욱 힘이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반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더 많은 잡곡을 얻기 위해 쌀을 수출했다고도 하였다. 하지만 2번째 자료에서의 저자 말처럼 이를 경제성장이라고 할 수 없을뿐더러 쌀 생산이 늘었는데도 개개인에게 주어진 쌀이 줄어들어 잡곡이 필요했다는 것은 일본을 향한 쌀 수출량이 쌀 생산량의 증가폭보다 컸다는 말이다. ‘쌀을 수출해서 더 많은 양을 입에 넣을 수 있었다. 이는 긍정적인 효과이다.’ 이것은 그 어떤 다른 면도 고려하지 않은 상태로 양적인 부분만 고려하여 성급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물론, 모든 농민이 직간접적으로 압박을 받아 쌀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수출한 농민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산미증식계획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있었던 조선총독부의 명령과 감시는 무시할 수 없고 그러한 것들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순수히 ‘수출’이라는 말은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식민지 수탈론에 더 가까이 서게 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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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8 17:42: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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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079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755546</link>
         <description><![CDATA[<div>&nbsp;식민지 근대화론의 핵심적인 주장을 간추려 보면, 조선 후기 사회가 생산력의 붕괴와 더불어 자멸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놓여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으로부터 근대적인 여러 제도가 도입되고 선진적인 자본이 대거 투입됨으로써 조선이 빠른 속도로 개발되었으며, 그 결과 조선인들의 생활수준도 향상되었다. 이러한 식민지적 개발의 경험과 유산이 해방 후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의 역사적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nbsp;<br>&nbsp;일제강점기의 자료들을 들여다보면 그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근대적인 일본의 법이 조선에 적용됐으며, 시장제도가 발전했다. 철도·도로·통신·항만 등의 사회기반시설이 확충됐으며, 선진적 기술을 가진 일본의 자본이 대거 투입되어 공장과 광산이 건설됐다. 농지개량과 농업개량에 의해 경지면적이 확대됐고 농업생산성도 올라가고 도시계획과 상하수도 시설이 보급되었던 시대이다.<br>&nbsp;하지만, 일본인들은 맹렬한 속도로 조선의 토지를 장악해 갔고, 광공업 자산은 90% 이상이 일본인들 소유였다. 소수의 일본인들이 토지나 자본과 같은 생산수단을 집중적으로 소유했기 때문에, 소득분배가 민족별로 불평등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불평등한 소득분배 구조는 일본인들한테 더 많은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게 하고, 그것이 소득불평등을 확대시켰다. 이러한 민족별 불평등의 확대재생산 과정이 식민지시대 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던 개발의 본모습이었다.불평등한 개발은 민족 차별을 확대시켰다. 조선의 개발은 일본의, 일본인들에 의한, 일본인들을 위한 개발이었기 때문에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조선인들은 그러한 개발의 국외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점 더 민족별 생산수단의 불평등이 확대되고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는 이른바 ‘식민지적 경제구조’에 갇히게 되었다. 따라서 식민지 체제가 청산되지 않는 한, 조선인들은 식민지적 경제구조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해방이 바로 이 식민지적 경제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것이다.<br>&nbsp;어떤 한 나라의 생활조건을 물질적인 소비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의 삶의 질이 좋아졌다든가,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는 등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해방 후 한국은 소득수준이 매우 낮은 나라의 하나였다. 해방 후 오랫동안 보릿고개라는 말이 없어지지 않았을 정도로 늘 굶주림에 시달리던 나라이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그렇게 많은 개발이 이루어졌다면, 해방 후 한국이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를 토대로 봤을 때 식민지 근대화론의 ‘불편한 진실’은 ‘불편한 허구’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이 아닌 식민지 수탈론이 옳은 이론이라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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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8 22:27: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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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316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774013</link>
         <description><![CDATA[<div>수탈론과 근대화론의 한 입장으로 비판하는 과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김낙년의 글처럼 쌀의 '수출'인지 '수탈'인지 그 용어가 내포하는 의미가 중요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주어진 자료들을 읽으면서 고종 재위 당시의 조선과 대한제국의 사회상을 알게 됐다. 전제군주인 고종이 이끌었던 대한제국에서 고종과 특정 세력의 수탈로부터 내부적으로 시민 혁명을 가지고 왔을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근대화론의 입장임을 밝힌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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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00:06: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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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4110282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798930</link>
         <description><![CDATA[<div>&nbsp;반일종족주의가 출간되어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엄청난 화제를 일으킨지도 어느덧 오랜 시간이 흘렀다. 리딩자료에도 드러나듯 당시 책에 대한 엄청난 비판과 옹호가 한데 뒤섞여 꽤나 오랜 시간동안 찬반 논쟁이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논쟁은 한동안 사그러들었지만 문 정부 시기의 반일과 노재팬 운동에서부터 윤 정부의 강제징용&nbsp; 배상 논란에 이르기까지 한일관계가 요동을 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nbsp;<br>&nbsp;반일종족주의 책이 주장하고 있는 바는 일제시대 쌀은 '수탈' 당한 것이 아니라 '수출'한 것이라는 것. 또한 일제가 현대적인 농업방식을 장려하여 쌀 생산량이 늘어났고 이는 일본으로 수출되어 농민들의 수입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방식은 물론 정치적으로 차별을 두기는 하였으나 경제적으로는 차별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일본은 조선을 동화시키려 했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것 만큼 악독하게 조선을 차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br>&nbsp;이에 반해 식민지 수탈론은 쌀을 마치 도적떼처럼 강제로 빼앗아가는 수탈은 없었지만 각종 제도와 정책으로 쌀을 수탈해 갔다고 주장한다. 일제는 농민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자신들의 농업방식을 모든 농민들에게 강요했으며 이것을 총독부 주도 하에 감시했다. 또한 수리조합의 구조적 문제, 소수의 대지주들이 대부분의 땅을 독점하고 이들이 총독부와 결탁하여 소작농들을 착취하는 구조가 만연했음을 지적한다.<br> 결정적으로 반일종족주의의 주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의 의도를 너무 긍정적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제국주의 국가들 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더 '강한' 국가가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를 침략할 때 '선한'의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일제는 수탈을 한 적이 없고 조선을 근대국가로 거듭나게 하여 일본인과 동화시킨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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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02:11: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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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0811</title>
         <author>rudal320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871560</link>
         <description><![CDATA[<div>&nbsp; &nbsp;</div><div>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료를 읽고 수탈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수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제조건, 즉 수탈이 기본조건은 아니였다는 것이다. 수탈은 자신의 나라 이익, 부를 채우는데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였다고 생각한다. 과정의 정도가 심했지만 만약 조선이 일본의 경우였다고 하면 조선에게도 이러한 과정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다만 얼마나 어떻게 악의적으로 수탈하냐 마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애덤 스미스의 분업의 개념을 빌려서 15쪽의 쌀 이출을 강행했다는 내용이 있다. 돈을 벌 목적으로 쌀을 시장에 내놓았던 것이 아니라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기 식구가 먹을 쌀을 팔았다는건데, 나는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가난 때문에 쌀을 팔았다는 것은 즉,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리딩자료2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일제 강점기 쌀 공출제도는 명백히 일본이 조선 농민에게서 쌀을 강제로 빼앗아간 수탈 정책이라고 한다. 한국 정부가 이 공출제도를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일본에 비해 힘이 없어서였을까? 이 공출제도가 조선 자신에게 이익이 있으리라 생각한 것도 있을것이기 때문에 이제도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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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07:21: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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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3222</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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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식민지 수출론과 식민지 수탈론 각각의 주장을 읽어보며 식민지 수탈론의 근거가 가장 공감이 갔다. 물론 식민지 수출론의 근거 또한 기존의 생각을 수정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좋은 근거들이 많았다. 그 예로 쌀이 수탈된 것이 아닌 수출한 것이라 말하며 쌀의 수출량이 증가한 시기와 생산량이 증가한 시기가 일치하고 그 비율로 보았을 때 수출 전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nbsp;</div><div>하지만 이것을 반박하는 식민지 수탈론의 주장을 읽으며 수탈론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우선 식민지 수출론을 반박하며 쌀의 수출량이 쌀의 생산량과 함께 증가한 것은 사실이나 쌀의 생산량 증가량이 수출량 증가량보다 현저히 낮았다는 점으로 보아 수출이 아닌 수탈이었다는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nbsp;</div><div>또 식민지 수탈론을 주장하며 쌀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통감부의 철저한 감시 아래 품종, 농사법, 농사 시기 등이 시행되고 강요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쌀의 생산량을 늘리고 그 늘어난 양만큼만 수출을 통해 가져간 것이 아닌 쌀을 억지로 늘려서 수탈해갔다고 생각하였다.&nbsp;</div><div>마지막으로 식민지 수출론에서 쌀의 품종이 바뀌로 여러 변화를 거치며 조선이 지주는 줄어들고 일본인 지주는 늘어난 상황을 통해 실질적으로 수출을 통해 득을 보는 조선인은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비판 또한 식민지 수탈론이 식민지 수출론보다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게 했다.</div><div>리딩자료에 나온 말을 인용하여 ‘총,칼만 안 들었지 순 강도다.’라는 말처럼 당시 식민지배 현실이 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총,칼을 통해 수탈을 이어간 강도짓과 같았다고 생각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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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10:14: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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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450 김태헌</title>
         <author>taeheon9916</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924319</link>
         <description><![CDATA[<div>&nbsp; &nbsp;</div><div>지금까지 교육과정에서 나는 일본은 조선의 토지, 식량, 인적자원을 모두 수탈해 갔으며, 이 때문에 후 조선이 발전하는데 앞길을 막았다는 교육을 받아왔다. 그렇기에 첫 번째 읽기자료를 보고 당시 주된 수탈의 대상이라고 교육받았던 식량자원인 쌀의 경우 당시 일본에서 조선의 쌀을 다 수탈해 갔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보기 보다는 당장 조선의 당시 식량 생산에 있어 지주들과 소작농의 상황을 빗대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div><div>하지만 그 뒤에 두 번째 읽기자료를 읽으며 일제의 산미증식 과정에서 농민들에게 강제성을 띈 부분을 수탈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나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첫 번째 읽기 자료에서 분명 당시 조선사회의 농민들의 가난의 원인을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 때문이라고 제시했으나 이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본다면 당시 조선에서 이를 주도한 것이 일본의 대지주층이었다는 것에서 과연 결국 산미증식계획은 결국 타국에서 자국민의 이익을 위해 식민지를 착취한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이 옳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div><div>‘당시 조선의 안 좋았던 상황을 모두 일제치하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은가?’라는 의문을 이번 읽기자료를 읽으며 갖게 되었는데, 여기서 당시 일제치하에서 일어난 산미증식계획 등의 정책이 수탈이었는지 수출이었는지에 대한 나의 의견은 수탈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분명 일본 측에서도 수탈과는 다르다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나, 결국 당시 조선의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부당하게 이익을 챙긴 지주층에 일본인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고, 일본인이 아니더라도 조선인 지주층 역시 일본에 가담했기 때문에 이는 수탈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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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10:33: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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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37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938761</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은 식민지 시절 일본의 근대화와 경제적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수출입 국가였다. 그 중에서도 쌀 수출은 조선의 대표적인 수출품 중 하나였다. 식민지 지배 아래 조선이 쌀을 수출함으로써 조선의 경제는 성장하고 일본의 경제적 이익도 함께 증가했다.</div><div>우선, 쌀 수출은 조선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수출에 따른 기술 발전과 농업 생산성 증대에도 큰 기여를 했다. 식민지 지배 아래 조선의 농업 생산성은 매우 낮았지만, 쌀 수출을 통해 현대적인 농업 기술과 재배 방법, 새로운 품종 등이 소개되었고, 이를 통해 조선의 농업 생산성은 크게 향상되었다.</div><div>또한, 쌀 수출은 일본과 조선의 경제적 상생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조선의 쌀 수출은 일본의 식량 안보를 지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으며, 일본의 쌀 수입은 조선 쌀 수출과 함께 증가했다. 이는 조선과 일본 모두 경제적 이익을 누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div><div>또한, 조선의 쌀 수출은 일본의 식량 안보와 국가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식량 자급률이 매우 낮았던 일본은 조선의 쌀 수입을 필요로 했으며, 조선의 쌀 수출은 일본의 식량 안보를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일본과 조선은 서로 경제적 상생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div><div>하지만 이러한 점들이 모두 식민지 시절 조선의 쌀 수출이 옳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식민지의 악랄한 침략과 착취로 인해 조선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발전이 방해받았고, 식량 자급률이 떨어지며 기아가 발생하는 등 국민들의 삶과 복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div><div>그러나 이 문제는 당시의 조건과 상황에서 쌀 수출을 통해 조선 경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와 같은 현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 식민지 시절 조선의 쌀 수출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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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11:29: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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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111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942177</link>
         <description><![CDATA[<div>&nbsp;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수출론의 근거들을 읽어보며 식민지 수탈론의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처음에 식민지 수출론의 근거들을 읽으며 고등학생때부터 배웠던 수탈이 혹시나 수출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nbsp;<br>&nbsp;그러나 자료1에서 쌀을 수출한 것이 생활수준의 하락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송이버섯의 예를 든 부분에서 논리적인 오류가 있다고 생각했다. 송이버섯이 일본으로 대량 수출되어 귀하고 비싸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먹기 어렵다고 표현하며 당시 많은 수출로 인해 쌀이 귀해지고 비싸져 먹기 힘들었기에, 다른 잡곡을 먹으며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쌀은 송이버섯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식임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을 양보다 더 많은 양의 쌀을 수출하게 된 것 자체가 다양한 법적인 방법을 통해 수탈당했다고 보이는 부분이다. 또한 혹여 당시 농민들이 원해서 그 많은 양의 쌀을 수출했다면 다른 부분에서 생활수준의 상승이 보여야 하지만 오히려 빈곤이 심화되는 모습이 보인다. 따라서 쌀을 수탈당했다고 보는게 맞다고 생각한다.<br>&nbsp;또한 자료1에서 강제로 쌀을 빼앗아갔다면 바보가 아니고서야 참고있을 농민이 없었을 것이며 신문에 보도될 뉴스거리가 되었을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위 논리가 마치 학교폭력 가해자가 "난 장난이었는데? 그렇게 싫었으면 신고해야지." 라고 말하는 논리와 유사하다고 느꼈다.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쌀을 수탈당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에 놓인 농민들이 어떤 보복과 피해를 볼 줄 알고 나서서 반대를 하겠는가.&nbsp;<br> 따라서 나는 이러한 이유로 식민지 수탈론에 더 마음이 기울었고 총 칼을 겨누고 협박을 하는 것만이 수탈인 것은 아니라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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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11:42: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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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089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949463</link>
         <description><![CDATA[<div>김낙년 교수의 식민지 수출론에 대해서 전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br>우리가 그 시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없을뿐더러, 한 가지의 사건에 대해서 여러 시각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br>자료 1에서는 "조선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이라는 대규모 쌀 수출 시장이 생긴 덕분에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라고 말한다. 조선 농민 생활의 실상은 경작한 쌀을 팔아 그 돈으로 잡곡을 사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수출 시장이 커진다는 것은 평면적으로 좋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쌀 수출 시장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조선 농민들은 쌀을 잡곡으로 바꾸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행위는 쌀의 가치에 비해서 농민들의 생활 소득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자료 1을 읽는 내내 한 생각은 "일본으로의 쌀 수출 때문에 조선의 쌀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간 것이 아닌가? 결국 일제 수탈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이다.<br>또한 공출제도 아래에서 조선 농민은 쌀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없었고, 정해진 할당량을 강제로 공출해야만 했으며, 나중에는 자기 소비용 쌀까지 압수당했다. 돈을 벌 목적으로 쌀을 시장에 내놓았던 것이 아니라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기 식구가 먹을 쌀까지 판 것이다. 이 행태를 보고도 진정 "식민지 수출론"을 운운할 수 있는가?<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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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12:07: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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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380 김태경</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963444</link>
         <description><![CDATA[<div>분명한 수탈이다.<br>&nbsp;리딩 자료를 읽기 시작하며 새로이 알게 된 사실들이 많았다. 당초 가지고 있던 생각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쌀의 매매가 이루어졌고 이에 대해서 일본 현지의 농민들도 불만이 있었다는 점 등이다. 추가로 제시된 그래프와 기사 자료 등 또한 수출 및 근대화론의 입장을 대변함에 있어 솔깃한 자료들이었다. 하지만, 자료들에는 허점이 존재하였고 이를 활용한 주장 또한 허점이 다수 존재했다.&nbsp;<br>&nbsp;첫 번째로, 조선 쌀의 생산량과 그 상품가치가 올라갔다는 부분에서, 생산량이 올라가고 상품가치가 올라간 것은 일본에서의 투자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직접 조선 농민들의 피 땀으로 일구어낸 업적이다. 그러나, 이를 일본의 투자와 기반시설 마련으로 된 것처럼 서술하는 부분이 말이 안되는 주장으로 보인다.&nbsp;<br>&nbsp;두 번째로, 자료에도 소개되어 있듯이, 쌀 판매의 수익은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닌 소작농 지주들이 절반을 가져가는 형식이었다. 일본이 실시한 토지 조사 사업은 토지에 대한 세금을 더욱 징수하겠다는 소리인데, 그렇다면 결국 쌀 판매가 높아질수록 농민들보다는 그 땅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과 세금을 걷는 자들의 배를 불리는 것으로 직결된다. 누가 보아도 명백히 인과관계가 그려지는 자료를 들고서 수출 및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점은 이해할 수 없다.&nbsp;<br> 마지막으로, 진정으로 일본이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것이었다면, 조선을 그 당시의 일본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정도 수준의 경제적 경쟁성을 갖출 수 있는 생산품의 생산에 투자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을 그저 쌀 생산 기계로만 돌리고 토지 및 세금 징수에만 생각했던 것 같고, 조선을 근대화 시키고자 한 것 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여진다. 또한, 가장 문제점은 진정으로 조선의 근대화를 위하였다고 할지라도 조선 백성들의 진정한 동의 없이, 강제로 판매하게 하고 이주를 시키는 등의 짓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수출', '근대화'등의 용어와는 거리가 멀다고 보여진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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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12:51: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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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21111378</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976279</link>
         <description><![CDATA[<div>"식민지 수탈론"과 "수출론"에 대한 자료를 읽어보고 고민해 본 결과, 일본의 행동은 명백한 수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식민지 수탈론"은 결과와 작성된 서류에만 초점을 맞춘 주장으로, 분명한 오류가 있는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조선의 의사와 상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득을 보았다는 "결과"뿐만 아니라 거래를 원했다는 "의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br><br></div><div>빈곤했던 당대에서 조선과 조선의 농민들이 쌀 수출을 원했는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조선은 "수출"이라는 것이 이뤄졌음에도 빈곤한 생활을 보냈다. 반면, 일본은 자국 내의 식량 부족 문제를 조선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는 완벽히 일본에게 유리한 상황인 것이다. 당시 조선이 정상적인 의사 결정이 어려운 상태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는 두 나라 간의 공정한 수입/수출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된다.<br><br></div><div>"총칼로 빼앗지 않았다면 수탈이 아닌가?"라는 의견에 백 번 공감하는 바이다. 이는 일본의 행위가 당시 조선의 의사와 상황을 무시하고, 강제로 수탈했다는 것을 시사한다.<br><br></div><div>따라서, 일본의 행동은 명백한 수탈이며, "식민지 수출론"에 대한 더 깊은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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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13:26: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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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073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978189</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반일종족주의 글을 읽었을 때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일리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김낙년 교수가 일본은 쌀을 수탈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수출한 것이라는 주장은 신선했다. 하지만 두번째 자료 반일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을 읽고 나서는 역시 식민지 수탈론이 맞다고 생각했다.일본에서 조선을 상대로 실시한 산미증식계획을 보면 식민지 조선에서 쌀을대량으로 증산하여 일본으로 대량 이출하기 위해 실시한 정책이라고 한다. 김낙년 교수는이출이 사실상 수출과 다름없다고 하지만 자료2를 읽고 나면 그 의견에 동의할 수가 없다. 조선에 조선총독부가 들어서고 나온 정책들에는 일제의 감시, 통제가 깔려있었다.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수출이라는 말로 감출 수 있지만 그안을 들여다보면 강제성이 깔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nbsp; 강제성이 깃든 행위를 과연 당하는 당사자는 좋은의도로 받아들일 수있을까? 이를 조선의 근대화시켰다고 하는 것은 좋게 포장하기 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2를 읽다보면 ‘일본인들의 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조선인들을 굶기면서까지 쌀이출을 강행했다.’, ‘돈을 벌 목적으로 쌀을 시장에 내놓았던 것이 아니라 가난 때문에 어쩔수 없아 자기 식구가 먹들 쌀까지 팔았다는 뜻이다.’ 라는 문장들이 보인다. 이런 점을 보았을 때 수출이라 표현한다해도 과연 공정한 수출이었을까 의문이 든다.&nbsp;<br></strong><br></div><div><strong>따라서 결국엔 식민지 근대화론에는 동의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을 따져보아도 식민지 수탈론에 손을 들 수 밖에 없다.<br></strong><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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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13:30: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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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3227</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988062</link>
         <description><![CDATA[<div>식민지&nbsp;수출론과 식민지 수탈론 각 주장 모두 나름의 논리와 근거를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근거가 모두 각각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한 쪽의 입장을 고르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수탈론이 조금 더 맞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뭐 수출을 통해 조선이라는 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다라는 말을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일본의 폭력을 묵인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일례로는 쌀 수출량에 대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쌀 증식 계획을 통해 쌀의 생산량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사실상 거의 일본이 가져갔다. 이것이 조선의 농업을 발전시켰다는 것은 결과적인 해석이고 그 목적은 조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위한것이 명백히 드러난다. 일본이 아무리 대가를 지불하고 가져갔다고 한들 대가를 받는 사람은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 아니라 소수의 지주가 받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과연 이것이 수탈이 아닌 수출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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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13:54: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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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113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7999726</link>
         <description><![CDATA[<div>식민지 근대화론 자료의 글을 보았을 때,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냈다고 해도 정치적으로 압박 받으면서 성장하는 것을 조선이 원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민지 수탈론 자료를 읽으면서 대가 없이 가제로 쌀을 빼앗아가는 약탈은 없었지만, 제도와 정책을 통한 수탈이 있었다는 것을 보고 식민지 수탈론이 더 설득력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산미증식계획은 조선 농민에 자발성에 의존하지 않았으며 권력을 동원하여 명령하고, 농민이 관청의 지시를 따르는지 일일이 감시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한 쌀의 이출은 수출이라고 볼 수 없다. 제도적 수탈인 것이다. 「반일종족주의」에서는 "조선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이라는 대규모 쌀 수출 시장이 생긴 덕분에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에 총독부 권력의 강제와 감시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런 말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br>나는 식민지 수탈론의 입장이지만, 식민지 근대화론 글을 보면서 느낀 점은 사실과 거짓이 섞여있을 경우에 거짓인 정보가 밝혀진다면 사실까지 믿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에 사실만을 가지고 비판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조선을 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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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14:25: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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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1407 김현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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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nbsp;주어진 읽기자료에서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수탈론’이라는 두 쟁점을 다루고 있다. 그에 관련된 사례 역시 제시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일제강점기에 발생한 일제로의 쌀 반출을 제시하고 있다. 이 쌀 반출이 수출이었는지 수탈이었는지에 대해 나름대로 서술한 복수의 글을 읽어볼 기회가 되었다. 해당 글을 읽고 나서 내 생각을 여럿 되돌아보게 되었다. 우선 나는 해당 시기에 역사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지라 해당 시기의 쌀 반출을 약탈이나 이에 준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역사에 정답이란 없으니 무엇이 옳다곤 말 못하겠으나, 읽기 자료를 읽고 난 후 이 시기의 쌀 반출은 기본적으로 수출의 형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나는 이해했다. 허나, 수출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수탈이 아닌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진다.&nbsp;<br><br></div><div>&nbsp;축사의 최신화(근대화)가 가축을 위한 것인가? 축사의 최신화는 축산업자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제 시대에 여러 제도적 경제적 개선이 이루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조선의 근대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생산기지인 조선의 생산력 증대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물론, 식민지 근대화론은 그 내부에 담긴 선악을 가치판단 하는 것이 아니다. “일제가 어떤 의사로 조선을 근대화 시켰는가?” 가 아닌, “일제로 인해 조선이 근대화 되었는가?” 를 판단하는 학설이다.&nbsp;<br><br></div><div>&nbsp;그렇기에 나는 확실하게 두 학설 중 하나를 선택 할 수가 없다. 특정 부분에서는 근대화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다른 특정 부분에서는 전보다 악화시키기도 했고, 더 나아가 몇십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부정적 관습이 이어져 오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로써 근대화되기도 했지만, 수탈의 객체이기도 했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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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14:36: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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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3241</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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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식민지수탈론 vs &nbsp; 식민지근대화론</div><div>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생각에 가깝다.</div><div>솔직히 개인적으로 학창시절에 식민지에 대해 자세히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이 과제를 했을 때 어느쪽 입장에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div><div>하지만, 어느 한쪽 입장에서 비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리딩자료1,2 그리고 배포된 자료가 조금 어려웠기 때문에 다른 자료들도 포함해서 생각해 보았다.</div><div>각각의 자료를 읽어보고 내용에 있던 쌀을 ‘수탈’한 것과 ‘수출’한 것은 천양지차라는 말에 굉장히 공감하고 이번 주제를 생각하기 위해서 엄청 중요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식민지수탈론은 수탈을 주장하지만 ‘수탈’이라는 표현은 조금 심하지 않을까 느꼈다. 수탈이 분명히 없었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그렇지만 조선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의 근대적인 여러 제도가 도입되거나 선진적 기술을 가진 일본의 자본이 대러 투입됨으로써 급속히 개발되었고, 그 결과 조선인의 생활수준도 향상되지 않았을까. 또한 이러한 근대적인 다양한 변화가 식민지 조선을 개발시켰을 것이고, 그 개발 덕분에 조선인들은 조금은 잘 살지 않았을까, 조금은 이익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div><div>쌀 공출제도도 그렇다. 일본이 조선 농민에게 쌀을 강제로 빼앗아 가는 수탈 정책이라면 왜 조선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을까…?조선에 이익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div><div>수탈론도 근대화론도 두 입장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저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생각에 더 가깝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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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14:45: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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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994</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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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식민지수탈론) 처음에 리딩자료 1, 2를 연달아 읽었을 때는 1을 읽으면 식민지근대화론이 납득되고 또 2를 읽으면 식민지수탈론이 맞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전체를 읽고 정리한 뒤 다시 보니 식민지수탈론에 오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한 건 리딩자료 2에 다 나와 있기 때문에 간단히 적어 보자면 김낙년 교수님은 단순히 자료만 분석할 뿐 당시 시대상이나 정치, 경제, 문화 등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일본이 동화주의를 추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무력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조선은 힘이 없었기에 대항하지 못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만들어진 통계들이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나도 식민지수탈론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것은 경제적 수탈이라고 생각한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읽다 보면 마치 소위 노는 애들이 물건 빌려 달라고 말하면 자발적으로 주는 것을 보고 강제로 뺏은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속을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식민지근대화론은 표면적인 것만 분석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따라서 리딩자료 1과 2는 같은 문제를 두고 다르게 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nbsp;<br><br>두 개의 자료를 읽으며 주관 없이 한 쪽의 입장을 비판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근거에 뒷받침되는 자료가 설득력이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한쪽으로 치우칠 때 본인의 주장에 오류가 있는지 점검 및 경계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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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14:47: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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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0902 김정환</title>
         <author>wasdyy12345</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8008498</link>
         <description><![CDATA[<div>현대의 관점에서 당시 조선 농민들이 겪었던 생활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당시의 상황은 식민지 수탈이라는 것이다. 물론 글을 통해 다양한 견해가 있음을 알았고 다양한 근거를 통해 일방적으로 수출이 아닌 수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출을 주장하는 글을 읽으면서 주장과 근거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되었고 상대되는 의견을 갖게 되었다.<br><br>&nbsp;리딩 자료 1에서는 조선미의 일본 유입이 일본의 쌀값을 압박해왔고 일본의 조선미 유입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조선 농민의 반대 입장이다. 글에서는 이를 반대로 생각하였을 때 일본이라는 대규모 수출 시장 덕에 조선의 쌀 생산이 많이 늘어났음에도 쌀값이 불리해지지 않고 이것이 조선 농민의 소득 증가에 크게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을 읽고 과연 이 상황이 조선 농민의 실질적인 소득 증가로 이어졌는가? 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 글에서 역시 이후에 조선 사회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조선의 체계상 실질적인 농민은 여전히 궁핍한 삶을 살았다고 했기에 이는 모순되는 근거가 된다. 또한 조선미 유출을 일본에 의해서 나타난 상황이기에 이미 조선미가 유출된 순간부터 조선 농민에게는 이출되는 조선미의 가격을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애당초 일본의 조선미 이출이 없었다면 이런 상황은 없었기에 일본 농민이 겪는 쌀값 문제 역시 일본이 초래한 상황이고 당연히 일본이 책임져야 한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br><br>글을 읽으면 “조선의 쌀 소비 감소가 곧 생활 수준의 하락을 뜻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이 질문에 과연 조선의 쌀 이출이 조선 농민의 생활 수준의 상승을 뜻하는가? 라고 묻고 싶다. 또한 이 주장의 근거로 송이버섯과 쌀의 비교를 예시로 들면서 두 얘기는 논리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송이버섯은 사치품이고 쌀은 양 국가의 주식으로 농민들의 식단에 필수적이다. 또한 당시 조선은 마땅한 다른 반찬을 농민들이 준비할 여력도 안 될뿐더러 밥에 잡곡을 섞어 먹는 상황이었고 단백질 섭취가 힘들어 탄수화물인 밥에 전적으로 식단을 의존하는 상황에서 옳지 않은 비유라고 생각한다.<br><br>이 외에도 농업 생산량이 기존에 낮았음에도 ‘수출’을 시도한 점, 지주제 강고하게 유지된 상황에서 일제시기에 농민들의 삶의 수준이 더 낮아진 점 등을 보아 일제의 이러한 행동은 ‘수출’이 아닌 ‘수탈’이라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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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14:48: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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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8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48010314</link>
         <description><![CDATA[<div>기본적으로 식민지 수탈론의 입장이었지만 이러한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 판단하기 위해 두 입장 모두 비판적으로 보고자 하였다. 두 입장 모두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 것 같아 흥미로웠다.<br>다만 자료를 다 보았음에도 처음 입장이었던 식민지 수탈론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근대화론의 자료를 보며 느낀 점은 생각은 흥미로우나 그에 해당하는 근거 자료,&nbsp; 당시 국제 상황, 정치 등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br>또한 수탈론에 대한 반론을 펼치기는 하지만, 일본인 교수나 그 문서들에 남아있던 쌀을 공출하기 위해 자택을 수색한다 같은 근거들에 대한 합리적인 반론을 제시하지 못하였고, 애초에 자신이 주장에 대한 근거 자료 같은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호응을 얻지 못할 것 같다. 자료들을 보면서 조선인 가운데에는 친일파라고 불리는 인물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근대화론 입장에서 어떠한 스탠스를 취할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일본은 당시 조선뿐만이 아닌 다른 여러 나라 또한 식민지로 가지고 있었는데 그 나라들과의 차이점 같은 것들 또한 제시하였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근대화론에서 말했던 일본이 조선에서 시행했던 것들 중 법 같은 것들이 남아 조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부분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본다. 일본의 일부가 조선에 남아 근대화에 영향을 주었다 라고 주장하였으면 동의를 하였을지도 모르지만, 쌀 반출이 수출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인해 김낙년 교수의 입장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함으로써 조선을 근대화로 만들었다. 정치(법)도 그렇고 경제도 그러하다 라는 입장으로 해석되어 근대화론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br>따라서 근대화론의 생각을 일부는 동의하면서도 수탈론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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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09 14:52: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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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036</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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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식민지 수탈론 과 수출론의 논쟁은 어린시절 학교폭력과 이전 세대 조폭들의 시장 상인들에 대한 보호비 지급을 연상하게 한다. 학교폭력의 주동자들이 있으면 이를 당하는 이들이 존재하고 이전 세대의 조폭들은 시장상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의 금액을 지급받곤했다. 학교폭력은 주로 친구들과의 장난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었을 것이며 그 당시의 같은 학교의 같은 반 급우의 영향이 상당했던 또래들은 이를 거부하기도 어렵고 일부는 폭력을 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음에 이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한편으로는 주동자들을 동경했을 수도 있다. 당시에는 암묵적으로 자행되었던 사회의 풍토가 있었으나 최근들어 이러한 학교폭력이 수면위로 많이 들어나는 추세이고 이에 대한 근절 의견이 대두됨에 따라 연예인들의 학창시절 과거가 들어나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장난이었는지 일방적인 폭행이었는지는 사회의 판단과 당사자들간의 의견을 반영하여 객관적/주관적 근거에 의한 판단이 합리적일 것 같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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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12 09:16: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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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업 중간 피드백</title>
         <author>teseus7</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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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a href="https://forms.gle/S7ntKVAreuyYRdU48">https://forms.gle/S7ntKVAreuyYRdU48</a></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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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13 00:45: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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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협력과 저항 읽기자료</title>
         <author>teseus7</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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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http://yunposun.com/tech72/board.php?board=notice&amp;command=body&amp;no=317</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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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13 02:54: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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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215696</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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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이 글들을 친일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변명이라고만 하기에는 조금 안타깝다. 이 글을 보면서 솔직히 그렇게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역사적으로 친일파라고 한다면 나쁜 사람으로 인식이 된다. 하지만, 그 당시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를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조금은 이해가 된다.<br>이해가 된다고 한 이유는 조선. 그 당시 조선이 해방한 그 역사 뒤에는 일본의 힘이 약해져 있을 당시였다. 그런데, 마치 호랑이가 사람을 물리친 듯 애국의 힘으로 오롯이 조선의 힘만으로 물리쳤다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이때, 조선 사람들이 똘똘 뭉쳐, 하나의 힘을 이루어 일본을 물리쳤다? 라고 생각하기엔 우리의 역사 속 인물은 그리 셀 수 없이 많지 않다. 따라서 여기에는 아무 생각 없이 해방을 맞이한 사람들도 있을 터이다. 이 글 속의 인물들은 그저 이러한 생각이 없는 사람들의 무지함, 그리고 조선. 한국의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닌, 그저 일본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으로, 친일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이 사람들 역시 조선인으로써 해방을 반겼을 것이며 이를 위해 노력을 하다가 질린 인물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저 친일파의 변명 그 안에는 조금은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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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13 04:26: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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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111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55897263</link>
         <description><![CDATA[<div>&nbsp;보통의 한국사 교육을 받은 나로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포함해 일제의 만행을 조선의 발전에 도움이 됐던 것으로 치부하고 미화하는입장에 대해 반대한다. 이 입장은 여러 방면에서 결함이 많은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산미증식계획이 조선 농민의 소득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거나, 일제강점기 공출제도가 쌀 수탈이 아니라 쌀을 수출함으로써 농민들의 경제 생활을 활성화시켰다고 하는 주장에 그들이 덧붙인 근거들에는 논리적인 비약이 너무나도 많았다. 역사를 서술할 때는 사실 그 자체를 기술하는 영역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사회문화적상황까지 고려하면서 해석이 가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당시 상황들을 그 시대의 분위기에 맞춰서 해석을 한다기보다는 그 당시에 일어난 현상과 사건에 대해 단순하게 결론을 맺어 나열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역사의 팩트 자체로만 따졌을 때는 그들의 논리가 나름대로 흥미롭고 평소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관점이라 이해는 갔지만 따라오는 논리들을 봤을 때 합당하지 않은 부분들이 많았다. 소작농이 가난함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도 조선의 한정적인 토지에 비해 인구가 더 많아 계속해서 지주제가 존속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부분도 의아한 부분이 많다. 그 당시 법률과 정책은 소작농 계급에게 너무 가혹한 것들이 많았다. 소작농의 삶의 질을 올리고 가난을 벗어날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을 더 악화시키는 정책들과 법률들이 더 만연하게 시행되고 있었다. 이외에도 그들은 일제의 여러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들에 대해 눈 감고 포용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한번쯤은 이렇게 반대되는 입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까지는 좋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완전히 공감해줄 수는 없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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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16 17:18: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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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4110282 이광수와 윤치호의 글을 읽고</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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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이광수와 윤치호. 교과서와 미디어에서 꽤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로, 사전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꼬리표가 달려있는 인물들이다. 개인이 정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인물들의 삶을 면밀하게 들여보지 않는 한 보통의 사람이 가장 크게 가지는 이미지 역시 이 '친일파'라는 꼬리표일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인물의 글은, 특히나 이광수의 글은 꽤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교과서나 언론을 통해 접하는 이광수는 친일파 행적에 대한 이야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이 인물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가 어렵다. '나의 고백'을 살펴보면 그가 어린 시절 가졌던 생각과 감정 등을 알 수 있고 그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윤치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텍스트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이광수와 윤치호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자신들을 대변하려는 글이므로 곧이 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그들의 친일 행적은 분명 사실이고 끝까지 변절하지 않은 인물들과 비교가 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교과서와 미디어 등지에서 이런 논의 자체가 터부시 된다는 데에 있다. 일제강점기의 시공간을 단지 흑백의 논리로 재단해서 백은 잘했고 흑은 못했다, 흑은 나쁜놈이니까 그들의 논리와 입장은 생각해볼 필요가 없다는 논리가 한국사회에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일 병합은 한국이 단순히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며 '악마' 일본과 그의 추종자인 친일파를 단죄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한다는 표상이 각종 미디어 매체를 통해 끊임 없이 재생산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방향으로만 사회가 나아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합리화와 단죄의 카타르시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다음번 '억울한 일'을 맞닥뜨렸을 때 똑같이 나쁜 결과만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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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17 23:51: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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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0 시문옥</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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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이광수와 윤치호 코멘트페이퍼입니다.<br><strong>저는 항상</strong> <strong>역사는</strong> <strong>사람이</strong> <strong>쓴다고</strong> <strong>생각해왔는데</strong> <strong>많은</strong> <strong>사람들이</strong> <strong>역사에</strong> <strong>기록되지</strong> <strong>않고</strong> <strong>심지어</strong> <strong>역사는</strong> <strong>승자의것이라고</strong> <strong>생각한다</strong>.<br>공산주의와 조선이라면 식민지 시절부터 사회주의 사상과 정치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데 조선에 대해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는가?어떤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가 20세기의 가장 큰 환상이라고 말한다.공산주의의 실패는 인간의 잘못 때문일까 아니면 이 운동 자체가 가져온 극복하기 어려운 약점 때문일까?공산주의의 실패 원인은 후자에 있다.공산주의가 실패한 것은 주의가 좋아서 잘못한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나쁜 공상일 뿐이다.오늘날 공산주의는 중국,조선,베트남등 소수 국가에서만 잔존한다.공산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엄청난 양보를 통해서만 정권을 지탱할 수 있었다.마르크스주의는 공산주의의 이론적 토대이며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파멸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왜냐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자본주의에 관한 논술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마르크스주의는 거짓된 역사철학 위에 세워진 것이며 또한 사상누각의 심리학 이론 위에 세워진 것이다.이것은 공산주의 정부가 폭력을 통치의 상용 수단으로 삼도록 강요했다.사람들이 사사로운 것을 내놓도록 강요하고 국가의 요구에 복종하기 위해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려면 공무기관은 무한한 권력을 누려야 한다.공산주의의 경제정책은 곳곳에서 실패했고 농업에서는 그 후폭풍이 가장 심했다.공산당의 지배를 받는 거의 모든 국가는 농업을 경제 기반으로 한다.사유지를 몰수하고 농업을 집단화하려면 대대로 내려오는 경작 방식을 혼란스럽게 하고 전례 없는 기근을 초래해야 한다.</div><div>공산주의가 실패하고 실패해야 하는 이유는 적어도 두 가지가 있다.</div><div>첫째,공산주의의 주요 목표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그러한 평등을 강요하기 위해서는 온갖 특권을 누리는 폭력기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평등의 뜻을 무색하게 한다.둘째,언제 어디서나 본족에 충성하고 본토에 충성하는 그런 정은 계급적 속성과 충돌할 때 항상 싸워 이긴다.살아남은 사람들도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공산주의 국가들은 거국적 일치와 여론의 일률화를 위해 고압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함부로 추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추방하거나 구금하거나 발언권을 박탈한다.그리고 그 사람들은 늘 가장 똑똑하고 유능하며 선견지명이 있는 편이다.그래서 역도태가 된 것이다.가장 평범하고 무능하며 유유자적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살아간다.선견지명이 있고 충성심이 강하며 공평무사한 사람들은 오히려 살 수 없다.이렇듯 공산주의 국가는 최고의 인재를 잃고 그만큼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러시아가 공산주의를 가장 오래 시행한 것은 큰 고통이었다.공산주의가 러시아에 남긴 영향 중 하나는 민중의 자주 정신을 상실하게 한 것이다.소련의 정치 체제에서는 모든 공무를 위에서 내린 명령에 따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주장이 곧 범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즉시 결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사소할 것 없이 모두 위의 명령을 기다려 그대로 처리한다(형사사건만 예외로 할 수 있다).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짧은 열정이 분출된 후 구태가 되살아나 강력한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다.이 나라는 이미 진력이 없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가 어렵다.그러나 공산주의가 러시아에 끼친 피해는 이보다 훨씬 더 컸고 오랫동안 공산당의 지배를 받아온 모든 나라들도 러시아와 비슷했다.이들 국가에서도 공산주의는 직업윤리를 상실하고 사회에 대한 공중도덕을 상실하게 했다.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내재된 해결할 수 없는 모순 때문에 멸망할 운명이었다고 생각했다.사실 자본주의는 경험을 바탕으로 일을 처리하는 제도이며 임기응변하고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으며 그때마다 닥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반면 공산주의는 경직된 교조다.그것은 사이비 과학이 사이비 종교로 ㅔ다시 경직된 정치 체제로 구체화되는 것이다.공산주의가 신봉하는 그릇된 관점을 버릴 수 없고 그 공산주의의 환상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공산주의가 다시 일어선다면 역사의 흐름에 역행해 또 한 번의 참혹한 실패를 맛보게 될 것이다.그러나 이제 와서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그들의 끝은 독재다.자본주의는 자본(미국,한국)을 위한 것이고 공산주의는 권력을 위한 것이다.모두 장단점이 있다.<br>원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남에게 돌을 먼저 던진 사람들은 자신의 불명예스러운 과거를 감추기 위해 남을 비난함으로써 덮어버리는 것에 대해 저는매우 공감하다.그렇게 하면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 '치욕감'이 덜해지는 것 같다.남을 비판하면서도 도덕적 고점에서 자신을 심판하기 때문이다.그들의 행동은 이기적이고 비겁한 행동입니다.자기 이익은 남의 손해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남을 공격하고 그래서 자기가 더럽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거나 심지어 책임을 회피한다.그동안 조선은 주권을 빼앗긴 나라였고 조선 주민들은 조산에 남거나 생계를 위해 일본에 가거나 도탄에 빠져 살았다.조선이 일본의 일부라는 데는 공감하지만 사건의 직접 경험자만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br><br>이광수에 관한 그의 '친일' 행위는 그 생애의 오점으로 여겨지며 언급을 회피하거나 혹은 일대를 넘나드는 것으로 여겨진다.그의 이런 행위는 사실 그 성장 경력과 그 자신의 한계로 인한 인식상의 착오에 의한 것이지 그 사상의 진정한 반란이 아니다.그는 평생을 조선민족의 해방을 위한 길을 모색해 왔으니 그는 여전히 애국이라 할 수 있다.저는 이러한 행동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div><div>1.어린시절의 성장환경</div><div>1921년 이광수가 당시 한국의 민족해방사업을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일본 정부에 체포되었는데 체포된 후에도 반일을 고집한다면 그는 자신이 분투하여 얻은 모든 부를 잃거나 심지어 생명까지도 잃게 될 것이다.반대로 만약 그가 일본 정부를 위해 일을 한다면 옥고를 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본래 가지고 있던 재부를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가 제공한 명예와 재부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비록 그는 자신의 나라와 민족에 대한 애정이 강했지만 소년 시절의 경험과 느낌은 어렵게 얻은 행복과 부를 희생시키지 않았고 소년 시절의 가난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직간접적으로 그의 후기 행위로 이어졌다.</div><div>2. 동학사상의 영향</div><div>일본 헌병이 이광수를 잡으려는 것은 그가 동학 조직의 연락책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그는 일본 헌병을 피해 서울로 향했고 동학 장학금을 받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동학에서의 평등사상과 무저항주의는 톨스토이의 인도주의와도 맞아떨어져 이광수의 무위,무저항사상은 톨스토이 사상을 받아들이기 이전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다만 톨스토이 사상을 받아들인 후에 더욱 명확화,이론화,체계화되었다.</div><div>그는 후기에도 일본이 조선이 지향해야 할 문명인 동시에 조선에 대한 억압적인 존재임을 깨달았다.그러나 문명으로서의 일본과 억압으로서의 일본은 분리되어 있었다.전자는 철저히 공부하는 자세,후자는 저항했다.또 전자에 대해서는 동화에 대한 욕망을,후자에 대해서는 이화에 대한 욕망을 나타냈다.무엇이든 그에게 일본은 거울이다.그러나 문명화된 일본을 거울로 삼아야 문명이 부족한 조선을 발견할 수 있다.그가 본 일본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본 일본이며,한국이 근대에 걸어온 길이라고 생각한다.당시 한국은 일본을 모델로 삼아 민족과 국민국가를 형성해 왔다.그것은 모델이자 저항의 대상이며 문명인 동시에 억압이다.</div><div>이광수가 훗날 친일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그가 자신의 조국과 민족을 배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자신의 경력과 계급적 한계에서 비롯된 인식의 오류였다.그의 친일은 결코 진정한 사상상의 반란이 아니다.왜냐하면 그는 사실 시종일관 이런 잠재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그의 반란도 진정한 의미의 반란이 아니다.외래의 우수한 민족정신으로 당시 한국의 낙후되고 부패한 사회제도를 충격하여 자신의 나라를 결국 당시의 일본처럼 훌륭하고 강건하게 만들 수 있기를 바라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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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18 10:06: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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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65년 한일협약을 어떻게 볼 것인가?</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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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https://www.youtube.com/watch?v=JiKA8WId180 (KBS 다큐 22분~31분, 36분~50분)</div><div>https://www.youtube.com/watch?v=uztHLrlCXoo (역사저널)</div><div>https://www.youtube.com/watch?v=qfR2Mo07-34 (김종필 회고)&nbsp;</div><div>https://www.youtube.com/watch?v=8NWukL0PsDY (전후체제 남기정)<br><br>위 동영상들을 보시고 한일협정의 쟁점이 어떤 배경 속에 있는지,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세요. 개별적으로 글 파서 다시면 됩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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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1:48: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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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53 박성민</title>
         <author>redelusion</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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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실리인가 명분인가.&nbsp;<br>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을 보면 분명 경제성장을 위해 급한 외화수입은 필수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정부측이 좀 더 확실하게 명분도 챙기려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애초에 한국정부측이 명분을 신경쓰지 않는 상태였기에 그럴가능성은 적었지만 너무 실리만 따진 것이 아쉬웠다. 자신들의 결정때문에 현재 한국의 경제가 성장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정말 당신들의 선택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까지도 최빈국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는가?&nbsp;<br><br>그냥, 헌국측에서 명분을 챙기려는 움직임이 없었다는게 충격적이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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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10: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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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214580 남강희</title>
         <author>2020214580</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4589975</link>
         <description><![CDATA[<div>1965년 한일협정은 당시 문제가 많이 있는 협정이라고 생각한다. 한일회담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박정희 정부도 피해보상을 받는 것보다 그 돈을 일본으로부터 받아 경제 개발을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개인청구권이 우리가 포기한 것이 아니라 협상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보고 2019년 대법원이 판결한 개인청구권 보상 문제가 아직 유효하다는 것을 현재 한국정부와 일본정부는 존중해야한다고 본다. 당시에 많은 정치인들이 일본으로부터 로비를 받아 당시 한일 청구권협상은 비정상적이고 피해자를 위하지 못한 협상이였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강제징용 명단도 일본측에서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한국측에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고 일본은 피해보상 청구보다 경제협력으로 협상을 하고 싶어하였고 또한 그 자리에서 일본 정부는 사과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오히려 당시에 피해보상 청구권이 아니라 경제협력으로 봐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우리 정부도 그렇게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차후 다시 양국 정부는 다시 청구권 협상에 돌입하는 것이 양국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양국은 주권 국가으로써 타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협상에 임해야한다고 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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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10: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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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0656 송동영 한일협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4600664</link>
         <description><![CDATA[<div>1965년 한일협정은 총칼로 집권한 박정희 독재정권의 경제발전을 통한 정당성 확보,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회피, 그리고 막후의 케네디 행정부의 동아시아 외교전략까지 각자의 이해관계의 일치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박정희정권이 내세운 개발독재의 정당화를 위해 경제개발자금이 필요했고, 이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식민지배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한일 국교정상화라는 당면한 상황을 활용한 것이다. 이는 식민지라는 역사의 청산에 실패했으며, 박정권이 주장한 징용피해자에 대한 개별 배상도 경제개발에 묻혀버리며 실패하였다. 이는 결국 강제동원 문제를 현재까지 이어지게 만들었으며 한일 양국의 건전한 외교까지 방해하는, 협정의 목적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뿐더러 역으로 그 목적을 저해하는 협정이 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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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4:24: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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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0792 송석주</title>
         <author>dxuosavz</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4658829</link>
         <description><![CDATA[<div>&nbsp;한일 기본조약은 1965년에 체결된 한국과 일본 간의 조약으로, 일제 강점기의 피해를 받은 한국의 손해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결되었다. 아는 바에 의하면, 이 조약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8억 달러의 경제 지원과 손해 배상을 받는 대신, 한국은 이에 대한 모든 소송과 청구권을 포기하게 되었다고 한다.</div><div>&nbsp;한일 기본조약은 당시의 국제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 필연적인 조치였으며, 일본의 경제 발전과 한일 관계 개선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은 한다. 이 조약을 통해 한국은 경제 발전의 기반이 마련되었고, 일본과의 상호 협력과 교류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한일 기본조약은 일부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인 상처와 피해를 받은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 그리고 일본의 과거 역사 관련 문제 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인식되지 않고, 한일 간의 불신과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div><div>&nbsp;한일 기본조약은 그 역사적, 정치적 맥락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와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며, 양국 간의 상호 협력과 이해를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일 기본조약은 한국과 일본의 경제 발전과상호 협력을 위한 필연적인 조치였지만, 그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기에, 이에 대해서는 양국 간의 대화와 상호이해가 필요하며,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 등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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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5:18: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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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0902 김정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4670195</link>
         <description><![CDATA[<div>한일 청구권 협정에서는 양국의 의견충돌이 있었다. 일본은 식민지배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경제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주고자 했고 한국은 강제 징용 사과와 배상의 명목으로 받고자 했다. 또한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일본은 피해자들 개개인에게 직접 주기를 원했고 한국은 한국 정부가 수령한 후&nbsp; 피해자들에게 주기를 원했다. 금액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었다. 또한 미국이 협정 처음부터 개입하였으며 한일 양국에 미국의 영향력으로 압박하였다. 당시 한국은 근대화를 위해 큰 자금이 필요했으며 미국에게 거절당한 뒤 일본이 유일한 선택지었다. 결국 산업화를 위해 협정으로 얻게된 자금을 사용하였고 피해자들에게 돌아간 금액은 매우 적었다.&nbsp; 그러나 이 자금을 통해 경제의 기반을 마련했고 한강의 기적을 거치며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적절한 배상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결과라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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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5:28: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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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1407 김현중</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4676038</link>
         <description><![CDATA[<div>당시 한국 국민의 반응이나 일본측의 태도를 보았을때, 해당 협정은 아무래도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을 받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일본은 자국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한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꾀했고, 당시 박정희의 한국 정부는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자금이 필요했다. 이런 각 정부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이루어진 것이 한일협약이였다. 해당 협약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김종필은 이를 회고하며, 당시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결과였고, 아무리 잘 해도 나중에 돌아보면 잘못한 게 있다고 말했다. 해당 시기 이 협약은 양국 정부에게 서로 득이 되는 협약이였다. 한국은 경제 성장을 위한 자금을 얻었고, 일본은 한국 시장확보와 영향력 행사권등을 얻어냈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 보면 피해자 개개인에게 제대로 된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본 정부의 배상책임이 부족했다는 의견과 배상청구가 종료되었다는 쟁점 역시 분분하다. 한일간의 과거사 청산은 언제가 되어서야 완료될 수 있을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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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5:33: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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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7110308 김재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4683450</link>
         <description><![CDATA[<div>한일기본조약은 이분법적 관점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일본이나 한국이나 국교 정상화와 경제적 이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부흥을 노리고 대외 정책으로 외부 영향력을 넓힐 필요가 있어서 수교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한국 입장에서는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경제 발전을 하고자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론적으로 한일기본조약은 경제적 관점에서는 양쪽 모두 이득이었지만 그 외에 관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개입도 문제가 되고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 문제도 여전히 유효한 것도 문제가 된다. 이처럼 한일기본조약은 양국의 경제적 이득은 확실하지만 이 외에는 여러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논란인 것이다. 특히 김종필의 ‘대의를 위한 결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가 쟁점이라 생각한다. 14년 동안 무려 1200여 회에 달하는 회담이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김종필은 박정희의 특명을 받고 회담을 결론 지었다. 당시 한국으로서는 최선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이 조약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어 낸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에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발전을 이유로 우리나라의 자존심을 접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어느 관점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여전히 논쟁이 되는 것이며 한일 관계가 정상화 되는 현 시점에서 이 논쟁이 어느정도 결론 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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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5:41: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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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1378 김유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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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한일기본조약은 지금의 시선으로 봤을 때, 이해가 안가는 조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았고, 시기의 문제가 있었을 뿐 언젠가는 체결될 조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국은 복잡하고 비극적인 과거사를 가진 사이였지만, 동시에 서로에게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이였다. 언젠가는 과거사를 청산하고, 대등한 관계를 개척해 나가야 했다. 양국은 한일기본조약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완벽한 조약은 어디에도 없듯이,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사과와 보상이 돌아가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대등한 관계를 위해서는 확실한 과거의 청산과 보상이 있어야 했는데, 경제 개발을 위해 자금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정부가 한발짝 물러나게 되었고, 그로 인한 파장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말 아쉬운 부분이다. 한국이 강국이었다면 더 확실한 사죄를 받아내는 것이 이렇게 어려웠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또한, 양국간의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더 확실한 조약을 맺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한국과 일본은 상호 협력하여 발전해야 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이웃인 두 나라는 닮은 점도 많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과거사에 대한 사죄는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미래 발전의 발목을 잡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양국이 서로 해결할 부분들을 확실하고 깔끔하게 해결하여, 더 이상 이러한 문제들로 과거에 대한 논의를 하는 사이가 아닌, 미래를 보고 서로 발전을 위해 논의하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분명히 과거에 대한 사죄는 필요하다. 이쯤 했으면 눈 감고 넘어가자는 의견은 절대 아니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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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8:14: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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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215696</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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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strong><em>&lt;한일 협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gt;</em></strong></div><div><br></div><div>영상으로 본 한일협정은 허술함 그 자체인 듯싶다.</div><div>일본 측도 문제지만 한국 측도 조금은 잘못된 태도였다고 생각한다.</div><div>일본 측이 돈을 개개인에게 지불하겠다고 하였음에도 한국은 나라가 대신해서 오롯이 나라가 알아서 하겠다는 입장. 조금은 의아했다.</div><div>정말 단순히 생각했을 때 일본 측이 개개인에게 지급했더라면 그래도, 개개인에게 조금은 사과의 뜻으로 받아들여졌을것이다. 하지만 이 뜻을 전하지 않고 한국 정부가 그것도 받은 돈의 일부만을 나누어주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않는다.&nbsp;</div><div>물론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돈으로 보상한다는 것. 이 자체가 나쁘다. 또한 일본이 자료를 은폐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또한 미심쩍은 부분이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마치 역사는 묻어버리자는 식으로 아무런 반성도 없이 입 꾹 닫고 ’사과‘ 하지 않는 것이 일본의 가장 큰 실수이자 문제이다.</div><div>하지만 과거와 자료를 은폐하고 사과 없는 일본 vs 그저 금액만 부르고 아무런 자료도 없이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div><div>나는 이 둘을 놓고 봤을 때 솔직히 일본만의 잘못이 아닌, 양국 모두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div><div>한국은 무조건 절대적으로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 어느 정도 문자화한 자료가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과 개인의 문제도 아니고, 국가 간 문제이다. 솔직히 남과 싸웠을 때도 둘 다 토라진 상태에서 어느 한쪽이 크게 잘못했다 한들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사과하라고 하면 누가 하고 싶겠는가. 이 말이다. 어느 정도 구체적인 타당한 근거. 이유가 있어야 할것 아닌가.라는 입장이다.</div><div>개인도 이러한데, 국가는 어떻겠냐는 말이다.</div><div>한국은 사과받을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이다. 이는 바꿀 수도 새로 고칠 수도 없으니 무엇보다 견고한 이유이다. 따라서 사과받은 이유는 분명하니 타당한 ’자료‘, ‘문서’ 가 필요하다.</div><div>하다못해 역사적인 일본의 잘못된 태도를 리스트 업하여 줘도 이유에 대한 근거 아닌가?라는 단순한 생각이다. 이렇게 단순하진 않겠지만 말이다.</div><div>결론적으로 한국 측은 그냥 막무가내로 ’사과해, 보상해‘가 아닌 이유를 뒷받침하는 자료화된 근거를 들며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 보이 기고, 일본 측은 예로부터 보수적이라 생각이 쉽게 안 바뀌겠지만 한 번쯤 한국의 이야기를, 문서를 보고 ‘생각’이란 걸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입장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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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9:03: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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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1116 광고홍보학과 김은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4933027</link>
         <description><![CDATA[<div>&nbsp;<strong>한일 관계 협정이 지어진 상황 자체와 이 두 국가의 관계, 여러가지 실리를 등등을 따져보았을 때 이 협정 자체는 다른 협정들과 같이 피할수 없는 결점이 있는 통상의 협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한국의 입장에선 굴욕적이고 협저 자체에 대한 소송도 걸 만큼 여러가지의 반발이 빗발쳤지만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피해보상에 대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러가지 불합리적인 결정들로 이루어진 협정에 대한 대처는 합당하게 이루어지지 않고있다. 이미 과거에 결정됐고 돌이킬 수 없는 역사는 우리들이 손을 댈 수 없지만, 지금은 충분히 그때의 오류와 피해들을 조금이라도 보상할 수 있는 상태이고 합당한 피해보상을 이루어낼 수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재 이 시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 미국, 일본의 이해관계를 고려하고 조정해야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이해한다만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고 과거의 피해를 아예 역사로 기억하게 남겨두는 선택들은 개선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몇 십년이 지났지만 앞으로 무수히 더 있을 한국과 일본 등의 외교 관계를 위해서도 새로운 처리안이 등장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strong></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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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09:29: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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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3410 이성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5141562</link>
         <description><![CDATA[<div>&nbsp;당시 한국은 아주 절묘한 절충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반일 감정은 극에 달았지만 일본은 외교적, 경제적 요충지였고 우리에게 떨어져서는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였으므로 관계가 단절되어서는 안 되었다. 또한 과거의 감정을 해결하지 않은 채 계속 폐쇄적으로 사는 것도 우리에게 득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소하느냐인데, 여기서 양측 모두의 책임으로 절충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nbsp;<br>&nbsp;일본 측의 잘못이라는 것은 명백하지만 그들이 순순히 이를 받아들이고 불리한 협상을 받아들일 리는 없었다. 그럼 타협을 잘 해야 했는데 그 과정이 매우 부실하였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모아도 감정적인 인터뷰만 나오니 전달이 원할하게 진행되지 않았고, 준비해온 자료는 계속 일치점이 없으니 설득시키기 어려웠다.<br>&nbsp;한국 측 역시 해방 직후에는 이승만의 실책으로 친일파 처벌을 해산하는 등 관계청산을 스스로 미루다가 10여년이 지나서야 작업을 시작하였고, 당시의 대통령과 외무장관 모두 외교 능력이 바닥인 사람들을 보내니 협상이 잘 될 리가 없고,  제 3국의 중재를 요구하려 했어도 그들은 한일관계에 관심도 지식도 없었을 테니 어영부영 넘어갔을 터이다. 즉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이 하나도 없이 협상을 진행한 것이다. 누구의 탓이기 이전에 혼란스러운 환경을 조장하여 협상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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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12:50: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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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954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5313880</link>
         <description><![CDATA[<div>단순한 국가 감정에 휩쓸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선 긋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여타 조약이나 협약 따위가 그러듯 한일 협약 역시 양국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체결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일 협약의 배경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이 연신 피해 배상금이 아닌 지원금으로 우리나라에 금전을 조달하고자 하는 것도 그들의 피해자 포지션을 회피하기 위해서니 말이다. 이 부분만 본다면 일본은 당연하게 한국에 적절한 배상금을 지급해야만 하는, 속히 말하는 악역처럼 보일 법하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은 일본에 순수한 배상금을 요구했나? 그러니까, 피해국인 한국은 자국 피해자들의 구제를 위해 이 협약에 임했는가? 그건 또 아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배상금을 국가 경제 성장 등 다양한 국가 사업을 위한 자본으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한 영상 자료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금액이 중요했지 명분이 중요하진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껍데기만 피해자-가해자 구도를 취한 협약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가? 이는 어떤 입장에서 해당 협약을 논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논지가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일본 측면에서라면 협약에 성실히 임하여 내용대로 지원금을 지급했음에도 현대에 정상적으로 이행된 협약을 가지고 한국이 발목을 잡는다며 한국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이며, 한국 측면에서라면 그때 일본이 피해 배상금이 아닌 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협약에 임한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라며 강제 징용의 가해국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일본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 당시 정부의 정책 방향성을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한일협약에 대한 논쟁은 현대에서도 상당히 지속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양국이 충분한 의견 교환을 바탕으로 이 논쟁을 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이미 두 나라 사이의 골이 깊어 결코 쉽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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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14:45: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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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304</title>
         <author>ck09239</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5321815</link>
         <description><![CDATA[<div>냉전이라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는 시기의 문제였을 뿐 반드시 해냈어야 하는 일임에는 틀림 없다. 다소 결과론적인 얘기긴하지만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국가경제를 부흥시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선, 일본으로부터 제대로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점, 피해자들 개개인에 대한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등이 있을 것이다.<br>그렇지만 한일기본조약은 어찌됐든 국가와 국가가 정당하게 맺은 조약이다. 당시 한국이 서슬퍼런 군사독재 시절 하였기에 반대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었다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 역시 우리의 역사 아닌가? 우리가 제3공화국을 전면 부정할 것이 아니라면 한일기본조약 역시 제대로 된 조약으로 인정하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온갖 변명을 들이대며 한일기본조약을 부정이라도 하듯이 문제를 제기하는 현재의 대한민국의 자세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의 자세는 억지를 부리는 아이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일기본조약의 내용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건설적으로 고민해봐야 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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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14:51: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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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036</title>
         <author>bsc4951</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5498982</link>
         <description><![CDATA[<div>이번&nbsp;수업을 통하여 한일 관계의 법정 쟁점을 보다 명확히 인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고속 성장의 배경에는 일본에서 조달받게 된 자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일간의 쟁점은 이러한 자금의 명분이 무엇이었는가에 관한 것이고, 이는 단지 두 나라간의 쟁점뿐만이 아닌 제국주의 시대의 여러 국가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세계 질서의 선례를 남긴다는 측면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일본어 인터뷰 영상이 인상깊었습니다. 당대의 상황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이어지는 서울대학교 교수님의 영상을 통하여 북한과 일본의 관계에도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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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2 16:58: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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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111518</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5933238</link>
         <description><![CDATA[<div>&nbsp;한일 협정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각 국의 이익을 따진 결과이며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 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일 양측은 일본의 식민지 시절 강제 징용등에 대한 청구권 문제로 한일 협정을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관련 서류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은 존재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청구권이라는 명목으로는 배상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비겁한대응을 했다.&nbsp;</div><div>&nbsp;한국 정부는 일본에게 받을 배상금을 단지 독립축하금, 경제협력을 목적으로 하여 받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지만 청구권을 명목으로 받았다고 했던 금액의 5%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협정의 중심 인물들은 그것이 한국의경제발전을 위한 최선이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대한민국에 외화 수입이 중요한 것은 맞았다. 다만 박정희 정부가 청구권이라는 핑계로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적은 금액마저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보상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의 경제 발전이 피해자들의 고통을 보상할 수 있는가?&nbsp;</div><div>&nbsp;또한 한일 협정이 미국의 동북아시아 외교전략으로 인해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충격이었다.&nbsp;</div><div>&nbsp;이러한 것들로 인해 현재까지 한일 협정의 목적이었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고통은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한일 양국의관계도 방해하고 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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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00:44: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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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380 김태경</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010363</link>
         <description><![CDATA[<div>한일협정을 통한 경제발전의 밑바탕이 되는 자본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2가지의 비판적 사고로 볼 사항이 존재한다. 일본의 사과 없는 경제 발전 지원금이라는 명목이라는 점, 박정희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경제발전인 것은 아니었는가 라는 점이다.<br><br></div><div>사실상 박정희 정권의 경제발전을 통한 정당성 확보,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 사실 회피, 미국의 동아시아 외교까지 모두가 각자의 이익을 위해 협약을 체결한 사실이다. 이에 있어 가장 피해를 입은 이들은 식민지배 당시 고통을 받은 평범한 시민들, 일개 소시민들이었고, 그들에 대한 개인적 보상 및 사과는 무엇도 이루어 지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의 신원을 확실하게 파악하여 임의의 협정으로 인해 개인에게 돌아가지 못한 보상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져야할 것이며 일본 측에서는 식민지배 당시의 본인들이 저지른 만행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 및 개인 청구권에 따른 보상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이에 있어 우리 정부의 확실한 압박과 요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 당시에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힘이 약소국에 불과하였지만 어느정도 비슷한 외교 위치에 올라선 만큼,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br><br></div><div>일본 측의 입장에 따라 일본이 박정희 정권에 지급한 돈은 경제협력의 명목이었기에, 여전히 식민지배에 따른 개인 청구권은 이행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는 일본이 제시하지 않았던 자료들 또한 충분히 우리 측에서도 확인이 가능하기에, 이에 대한 자료를 종합하여 일본에 사과와 보상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양국의 더욱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서는 하루빨리 사과와 보상, 용서를 통하여 이해관계를 회복하고 함께 나아가야할 것이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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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01:50: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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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21112869 윤회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052030</link>
         <description><![CDATA[<div>한일관계는 훨씬더 복잡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거같다. 지금까지도 예전에 일본의 독립 축하금이라는 명목으로 받았던 돈이 많은 논란에 있지만 총리가 마지막에 그때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한 결론이였다. 라고 한게 틀린말은 아닌것같다. 사실 반일 감정이 있든 일본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선진국이였고 일본과 적을 둬서 좋을게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막무가내로 우리가 원하는대로 요구할수 없었을것이다. 하지만 그 돈을 받아서 우리나라의 강제집용된 사람들에게 보상을 한것이 아닌 우리나리의 경제 발전에 대부분이 쓰여진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의견이 나뉠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박정희 정권이 있었고 경부 고속도로가 지어졌기때문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을수있는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거보다 억울한 일은 없을것이다. 한일협정의 결론이 잘했다 못했다로 확실히 나뉠순 없지만 아쉬운 부분은 분명히 존재하는것같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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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02:23: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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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8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494745</link>
         <description><![CDATA[<div>한일협정에서 각 국은 자신들의 명분과 이익을 위해 행동하였다.&nbsp; 일본이 강제징용과 관련된 서류를 소지하고 있었음에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 것은 비난받을 수는 있지만 일본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본인 또한 서류를 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국이 국민들에게 협정에서 자금과 관련하여 자신의 입장에 맞는 발표를 하였는데 이 또한 정치이해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다만 영상에서도 보여졌듯이 보상을 국가가 국가에게 지급하는 것이 아닌 일본 국가가 한국 국민 개인에게 지급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nbsp; 보상 문제가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당시 한국 상황을 본다면 정부의 선택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시 국가는 최빈국에 해당되었으며 개인에게 보상하는 것보다 국가 전체의 이득을 선택함으로서 경제를 부흥하기 위한 자금을 얻어 최빈국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결국 한일협정은 양 국이 당시 처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각자의 의견만을 피력하였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이라도 상호 존중과 협력의 태도로 문제를  잘 해결하였으면 하는 마음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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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09:26: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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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2750 김지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543379</link>
         <description><![CDATA[<div>사실 지금까지 한일협정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한일협정에 논란이 있었다는 것도, 미공개 문서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되었다. 이번에 보게된 동영상을 시청하며 완전히 처음으로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갖게 된것인데, 영상을 보며 느낀 문제점은 계속 한국정부에 있었다. 왜냐하면 일본이 주장하는 것들이 나름대로의 근거와 명분을 갖추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측의 주장에서 내가 느낀 것은, 한국측의 주장에 근거나 정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측이 주장하는 내용에 실질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수업에서 처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한국은 지속적으로 민족주의적인 측면에서 한일관계에 접근하고있다고 했고, 일본은 법적인 측면에서 한일관계에 접근하고 있기때문에 현재 생기고있는 한일관계 사이의 갈등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매우 공감했고, 이번 과제의 주제인 한일협정의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내에서 발생하는 일본에 대한 반발심은 식민지배와 관련하여 도덕적인 측면과 관련된것이다. 이는 한일협정 이후에 식민지배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억울함도 포함한다. 이 문제들을 한일협정때 해결했어야하는데, 그와 상관없은 국익을 챙기기 위해 그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졌다. 이에 대해 생기는 문제들은 한국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측이 애초에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도록 만든 것은 한국정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생기는 반일감정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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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10:15: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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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4110282 한일협정에 대해</title>
         <author>ynho123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568495</link>
         <description><![CDATA[<div>&nbsp;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항상 미국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아왔다. 냉전시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러시아, 중국과 접하고 있는 지리적 특성상 일본과 한국은 미국에게 굉장히 중요한 동맹국들이다. 한일간의 국교를 정상화하는 한일협정이 65년을 기점으로 이루어진 것과 냉전과 베트남전을 수행하던 미국의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한일협정의 역학관계를 따질때는 한일 양국 뿐만아니라 미국의 입장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로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미국기밀문건을 살펴보면 미국이 여러 루트를 통해 한일 양국에 영향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br> 한일협정은 한미일 3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합의될 수 있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한일관계가 개선될 필요가 있었으며 한국의 경제가 일정수준으로 올라올 필요가 있었다. 일본의 입장에선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한국과의 수교를 통해 한국과 화해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또한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이 경제발전을 이룬다면 일본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여러 기업들이 한국 정치인들의 정치자금을 댔던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당시 경제발전을 위한 종잣돈을 어떻게든 모으고 있던 상황으로 한일수교 이외에도 외화를 벌기 위해 해외에 광부나 간호사를 파견하고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즉, 한일협정은 3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협정이다. 물론 급하게 이루어진 한일협정은 많은 문제를 낳았는데, 조약에 관한 해석이나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나 체불임금 등을 직접 배상하는 형태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직도 양국의 갈등이 벌어지는 점 등 식민지 시대를 두고 양국 국민들의 화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 당시 미국의 뜻을 거스르기가 어려웠다는 점과 경제발전을 위한 자금원이 절실한 상황이었기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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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10:39: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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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1397</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585790</link>
         <description><![CDATA[<div>&nbsp; 이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일본 정부가 한국에 금전적인 배상을 지급하지 않았다.' 까지의 내용만 알고 있었다. 이번 수업을 듣고 그 뒤에 내가 알지 못했던 더 복잡한 내용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nbsp;<br>&nbsp; 일본측은 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문서, 자료, 증거를 통해 강제징용 되었던 피해자의 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한국측에는 그 정확한 수를 파악할 수 있을 만 한 자료가 없었다. 오히려 그러한 자료는 일본에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측에 한 일본의 요구는 비겁한 것이었다.&nbsp;<br>&nbsp; 한국이 일본이 경제협력이라는 명분으로 지급한 보상으로 인해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와서 그러한 지원이 없었어도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은 의미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제발전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지급된 금전적 보상은 막상 피해자들에게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br>  이러한 양측의 아쉬운 애매한 대처와 끝맺지 못한 상태로 흐지부지 해져 버린 과거는 현재의 좋지 않은 양국의 관계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와서 다시 제대로 끝을 맺기에도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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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10:58: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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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3222</title>
         <author>jinhak610</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654912</link>
         <description><![CDATA[<div>우선 한일협정의 쟁점이 어떤 배경 속에서 진행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협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의 각 국의 목적을 알아야한다. 우선, 한국의 경우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획득한 박정희 정권이 정치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 내세운 경제 발전을 실행할 자금과 한일관계 개선, 이 과정에서의 국민적 반발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협정의 주 목적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일본의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제 관계에서 오랜 기간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한일관계를 우호적으로 바꾸고자하는 압박과 돈을 지불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반발을 줄이는 방안이 주 목적이었다.&nbsp;</div><div>따라서 한일관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통적인 합의점이 있었기에 한일 협정이 진행되었지만 양국 모두 협정의 결과가 국민적 반발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진행되어야했기 때문에 쟁점이 생겨났다. 바로, 돈을 지불하는 것에 대한 명분이다. 한국의 경우 한일 협정을 맺는 것만으로도 국민의 공분을 사는 행위였고 이를 조금이나마 완화하기 위해 청구권이라는 말을 통해 일제 강점기의 배상을 받는 것으로 명분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사과에 대한 의미를 없애고 돈을 지불하는 것에 대한 적당한 명분을 위해 독립축하금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자 하여 쟁점이 생겼다. 이것의 경우 한국과 일본 각자 자국에서의 용어를 달리하며 한국측에서 일본에 돈을 일본측의 주장보다 더 받는 결과를 가져왔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각국에 서로 다르게 돈에 대한 명분을 설명하며 지금까지도 배상 문제에 대한 책임이 논쟁에 있고 일본의 경우 사과의 의미로 배상금을 준 것이 아닌 축하금과 같은 의미로 돈을 지불하였기에 사과 또한 없었기 떄문이다. 또 쟁점에 있었던 돈의 사용에 대한 문제도 존재한다. 한국이 일본 측에게 받은 돈을 대부분 정부가 경제 발전에 필요한 부분에 사용하여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까지도 한국과 일본이 배상 및 사과의 문제로 다투고 있으며 국제관계 속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원래의 목적과 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에 한일 협정이 너무 해결만을 바라보고 맺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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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12:09: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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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316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685534</link>
         <description><![CDATA[<div>지금의 한국은 한강의 기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정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한국은 외세의 갈등의 발원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br><br>김종필의 인터뷰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북한보다 못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우려는 국민과 국가를 위한 지도자였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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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12:37: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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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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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37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686808</link>
         <description><![CDATA[<div>해당 영상을 보고 든 생각은 다음과 같다. 한일협약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의 경제적 개발을 위해 필요한 일본의 지원을 받기 위한 것으로, 역사적인 배상 문제를 해결하고 일본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경제는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 냈으며, 일본도 대한민국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상호 협력을 이루어 냈다는 점엔 동의한다. 하지만 한일협약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적 배상 문제에 대한 해결 방식에 대한 논란이 있다. 일부 인권단체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한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식민지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한일협약은 일본의 역사적인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이 대한민국에 대해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은 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러한 부분들이 일본과 대한민국 간의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직까지도 이슈가 되고 있다. 따라서 한일협약은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서도 일부 논란이 있는 협약이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제적 발전과 상호 협력이 이루어졌으며, 이후의 한일관계 발전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역사적 평가는 다양한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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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12:39: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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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01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714377</link>
         <description><![CDATA[<div>&nbsp;한일회담에서 다루어진 기본관계는 양국 간의 과거 관계 청산에 관한 문제가 발생했다. ‘식민통치의 35년 역사를 어떻게 인식할 것 인가’의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한국병합조약과 같은 조약들의 무효 시점이 언제인가에 대한 논의였다. 이부분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의 상반되는 입장 차이가 나타난다. 한국은 강압에 의해 체결된 구 조약이기에 무효라는 입장이었던 반면, 일본은 구 조약이 국제법적으로 유효한 것이기었기에 일본의 패전으로 그 효력이 사라졌다는 주장을 하고있다. 양국의 정치적 대립 이후 결정적으로 돈 문제가 체결안으로 자리잡았는데, 데모도 많이 하고 그랬었다.</div><div>&nbsp;일본이 자존심을 좀 구기더라도 배상금 형태로 줘야하는데, 경제협력금 식으로 주니까 두고두고 욕먹고 발목이 잡혔다. 돈은 돈대로 뜯기고 욕만 먹고 위안부는 일본학자들이 사실 먼저 공론화 시킨 부분도 있기 때문에 아마 일본 정부는 이학자들에 굉장히 짜증나 있을 것이다… 강제징용 된 분들이 합당한 보상과 함께 끝없는 싸움에서 해방하여 행복한 삶을사셨으면 좋겠다.. 과거 위안부 건에 대해 민간 단체가 우리에게 보상한다 했을 때 한국 측의 대처가 아쉬운 생각이 있었다. 200만을 안받고 300만으로 올린다는 둥, 그냥 공식 사과가 아니라서 거절한다는 식으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이 무슨 일을 했으며 위안부와 강제징용, 노역, 징집 등으로 인한 사망, 장애, 임금체불 등을 계산하면 셀 수 없는 값인데 이 또한 미국이 압력을 가해서 배상금을 받은 거니까.. 일본은 반성하길 바란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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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13:01: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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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1811157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731148</link>
         <description><![CDATA[<div>1945년 해방 이후 한일협정은 대한민국과 일본간의 연대를 목적으로 체결된 조약이었다. 그러나 이 협정은 대한민국에게는 한국전쟁의 발생과 재산배상 문제로 큰 타격을 입혔다.<br><br>먼저, 한일협정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내부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 협정은 대한민국의 독립성을 제한하는 금융적 지원을 비롯하여 일본의 역사적인 침략행위를 인정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조항들은 대한민국 내에서 철저한 반대를 받았으며, 이타케완 스쿠네 일본 수석대사가 직접 수석협상대를 이끄는 상황에서 체결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대한민국의 주체성과 자주성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br><br>또한 이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차원에서도 큰 타격을 입혔다. 대한민국은 일본의 전쟁 초기부터 혈세를 바탕으로 일본 정부의 재산을 탈취하는 일을 했으며, 그 결과 전쟁 종료 이후에도 재산배상 문제가 여전히 대두되었다. 그러나 한일협정은 이러한 대한민국의 청구사업에 대한 보상을 일치시키지 않았으며, 일본은 대한민국에 대한 처지의 변화없이 독점적인 경제적 이익을 취할 있었다.<br><br>한일협정은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관계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필연적인 문제였다. 대한민국과 일본 모두 그림자처럼 내면화되어 적대적인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호 존중하며 평화적으로 대화하는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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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13:14: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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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23113227 서지한</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758383</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한국인 징용피해자 문제는 현재까지도 종종 언론에서 언급되는 문제이다. 나는 그것들을 보면서 과거에 우리 정부와 일본이 합의한 내용은 왜 기억에서 지워는지 궁금했다.&nbsp; 이번 계기로 그 당시 협의 내용을 알게되었다. 협상 초반에 한국 측 주장은 이러했다. 한국인 강제 징용에 대해 보상해라. 일본측 주장은 징용당시 한국인은 일본인이였다.&nbsp; 하지만 결국 보상을 위해서는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자료가 필요했다. 정작 한국측에는 자료없고 일본은 있었지만 알리지 않았다.<br></strong><br></div><div><strong>따라 구체적인 금액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였다. 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의 연금이 빠져나간 자료가 존재했고 따라 자료가 없다는 일본츨 주장은거짓이였다.<br></strong><br></div><div><strong>일존은 그 자료를 공개 안 하고 사실상 비겁한 교섭이였다. 이후<br></strong><br></div><div><strong>일본측이 한국측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개인별로 보상하겠다고 하자. 한국은 정부에게 일괄적으로 달라고 했고 이는 명백한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대한 기만 행위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측대로 일본에게 받은 돈은대부분 경제 성장을 위해 쓰였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피해자들의 신고를받아 개인에게 보상하겠다고 했지만 매우 제한적인 범위의 사람들이였다.<br></strong><br></div><div><strong>나머지는 정부 유관 기관이 사용했음에도 막상 회의록에 사과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사실상 한국은 피해보상에 대한 청구권 목적이 이니라 국교 정상화를 위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배경은 박정희 정권의 정당성 없음을 위해경제 개발을 위한 자금원에 불과했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당시는 대부분전 세계의 84프로가 식민지였기 때문에 사과를 하거나 하는게 없었다는점이다. 이 때의 배경을 알게되니 확실히 전일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 이러한 과정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면서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희생당한 선대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br></strong><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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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13:32: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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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2211073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822528</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냉전체제가 강화되면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빨리 국교 정상화를 하도록 압박했다. 미국의 압박이 있었지만 한국과 일본 두 국가 모두 경제발전을 위해 결국 서로가 필요한 입장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일협정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일협정에는 정말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회피라던가 박정희 정부 측에서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을 경제개발에만 집중한 것 등이 있다. 결국엔 일본과 한국 서로에게득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긴 했지만 이는 오직 국익을 위한 것이지 정작 피해자들은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고 배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한일관계에대해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탓이라고 생각한다. 한일협정으로 우리나라도 많은 발전을 했고 도움을 받은 것도 맞지만 그래도 식민지배,강제징용 등에대한 일본의 사과는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br></strong><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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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14:16: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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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8111450 김태헌</title>
         <author>taeheon9916</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849710</link>
         <description><![CDATA[<div><br></div><div>한일협정에서 가장 아쉬운점을 꼽자면 한국 측의 정보의 부재로 인한 주장의 설득력이 약해진 것에 있다고 본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명백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대체 몇 명이 피해를 입었는지, 얼만큼의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명확하게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측에서 주장한 금액은 추상적이라는 것에 반박할 수가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미지급 임금이 정부 측으로 지급되었고 이를 경제성장에 사용한 것 역시 국가적인 입장에서는 필요할 수 있었지만 방식에 있어서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본도 당시 한국의 경제성장이 급박한 상황임을 알고 있었기에 일본 역시 사과의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div><div>&nbsp; &nbsp;</div><div>그렇다면 국가적인 부분에서는 근대화를 위한 결정이라고 하지만 과연 조선인 강제징용의 피해를 입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어떠할까? 당장 협정을 통해 받은 한국의 자금 역시 당시 피해자들에게 돌아간 금액은 약 5%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당시 협정을 통해 한국에 유통된 자금이 경제발전에 ‘효율적’으로 사용되었을지는 몰라도 당시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야하는 효과적인 측면에서는 ‘비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div><div>&nbsp; &nbsp;</div><div>당시 협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김종필의 회고록에서 그는 당시 한국의 경제성장을 통한 경제적, 군사적 자립이 더 나은 한일관계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당시 협정을 주도했다고 말하고 있다. 분명 이는 당시 상황에 빗댄다면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양국 외교 관계에 있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외교라고 생각한다. 첫 단추를 잘못 낀 옷에 아무리 다른 단추를 잘 끼운다고 해도 옷의 형태가 일그러지듯이 당시 존재하던 한일관계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한일외교 관련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nbsp;</div><div><br></div><div>따라서 나는 결국 외교에서 고려해야할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후에 더 큰 문제나 반발이 일어날 만한 외교사건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당시 한일협정은 경제문제를 해결하는데에 급급하여 후에 발생할 문제를 간과하였다고 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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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14:34: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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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0811</title>
         <author>rudal320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862174</link>
         <description><![CDATA[<div>한일협정은 한일간의 관계를 정상화하여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외교나 무역을 활성화하자는 의미에서 협정을 한 것이다. 이 조약에는 한일 청구권 협정 또한 있었는데, 이는 양 국가간의 채권이나 채무 등의 금전적인 문제가 오랫동안 해결이 안되어왔기 때문에 이를 쉽게 말하면 없던 일로 하자는 협정이나 마찬가지였다. 협정이라는 말이 붙어있지만 우리나라에게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었다. 특히 이 부분을 느낄 수 있었던 문제는 식민지 지배 후 일본의 배상금 문제였다. 박정희 정부는 일본에게 식민지에 대한 배상금 약 3억 달러를 받는 것을 승낙하였고, 이것은 독립축하금이라고 명하였따. 그럼으로써 일본은 한국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위안부, 강제 징병에 대한 배상금 지불 없이 넘어갔고, 일본에게는 아무런 불이익이 없이 외교가 가능하였다. 그리고 이 당시의 협정으로 인해서 독도 분쟁이 계속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를 보면서 일본의 행동은 당연히 잘못되었고 반성을 해야하지만 당시 박정희 정부가 왜 협정을 체결하였는지 많이 의문이 들었다. 단순히 돈을 받기 위해, 자신의 정치를 위해서 협정을 승낙한 것이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역사 사건을 봐도 단순히 한 국가만이 잘못한 사건은 없으며 지배를 당하는 나라 또한 많은 반성과 용기, 발전이 필요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의 우리나라도 정치적인 일로 인해 나라를 내주는 일은 없어야함을 국민 모두가 인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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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14:42: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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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3241</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869027</link>
         <description><![CDATA[<div>네 개의 동영상을 보고 개인적으로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 머리에 떠오랐다.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주관적 해석만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말이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완변한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고 각자 당시의 상황에 대한 해석만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것. 즉, 사물을 포착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해석으로 결정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자신이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사실을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저널에서 제시된 한일기본조약 제2조를 봐도 ‘이미’라는 단어에 대해 스튜디오에서도 의견의 차이가 있었던 것처럼, 물론 영문 번역의 문제도 있지만 양국이 각자 마음대로 했기 때문에 자국이 유리한 쪽을 생각해서 해석해 양국의 의견이 달랐다는 문제가 생겼다. 그리고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해석의 차이 떄문에 일본은 식민지배는 합법이라고 생각해 ‘독립축하금’이라고 했지만, 한국은식민지배는 불법이고 독립축하금이 아닌 ‘청구권’이라고 했다는 의견의 차이도 그냥 해석에 차이로 인해 생긴 것이다. 즉양쪽이 동의한 것이 아닌 자신의 해석으로,자신이 유리적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 같다.그리고 김종필 등이 마지막에 ‘그때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한 결론이 였다.’ 라고 한게 저는 틀린말은 아닌것 같다고 생각한다.</div><div>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한국과 일본 정부는 1951년 말경부터 국교정상화와 전후보상 문제에 대해 논의를 시작 하지만, 일본에 의한 통치(식민지지배)의 보상액과 대상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려 협상에 난항을 겪었고, 그 원인은 통치의 합법성을 둘러싼 인식 다툼이었고, 일본은 합법, 한국은 불법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문제는 모호해진 채 1965년 국교정상화가이뤄졌고, 이에 따라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고 해서 일본 정부는 한국에 3억달러의 무상, 2억달러의 유상 지원을 했고 한국은 이를 주로 인프라 투자에 사용해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발전이 이룬 시점에서 다 끝났는데, 왜 이제와서 배상하라고 다시 문제삼는지 의문이 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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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14:46: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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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99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6871758</link>
         <description><![CDATA[<div> 단순히 지인 간에 한 약속도 아니고 국가 간의 협정에서 시점을 정하지 않은 조약을 맺은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역사저널 그날’에서 패널들마다도 ‘이미 무효’라는 단어의 시점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을 하는데, 국가 간 협상에서 이를 몰랐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만약 알았음에도 저마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조약을 맺은 것이라면 더더욱 실망스럽다. 이 조약은 단순히 일상적인 관계에서 맺은 것이 아닌 독립 이후에 한일 관계를 청산하고 다시 정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nbsp;</div><div>&nbsp; &nbsp;</div><div> 물론 남기정 교수님의 말씀처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법의 흐름과 당시 일본의 영향력 등으로 과도한 배상을 요구할 수 없었음은 이해했다. 이 속에서 김종필 전 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약 1조에 해당하는 돈을 청구권의 명목으로 받아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 돈을 발판 삼아 한국은 단시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세계 강대국 반열에 올랐고 그 힘과 자본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한일 관계, 특히 역사문제 또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이로 인한 양국 간의 감정은 좁혀지지 않았다.&nbsp;</div><div>&nbsp; &nbsp;</div><div> 표면적으로는 일본도 한국도 각자의 목적을 위해 두루뭉술한 협정을 맺은 것 같지만 그 내부는 허울 좋은 핑계라는 생각이 든다. 협정의 결과인 돈에 대해 일본 정부는 독립 축하금이자 경제 협력이라 말했으며, 한국 정부는 더 이상 일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자금이라 여겼다. 과연 이러한 생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그 정치 세력의 정당성과 공고화를 위함이었을까 혹은 자국민의 치유와 복리에 도움이 되고자 한 것일까? 김종필 전 총리 말처럼 무슨 선택을 하든 간에 후에 돌아봤을 때 후회와 비판은 남더라도 그러한 선택을 했던 이유는 자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했다. 현재 한국은 자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례 없는 발전을 이뤘지만, 한일 관계로 인한 끊임없는 내ㆍ외부적 갈등을 겪고 있다. 이는 마치 겉만 멀쩡한 집 같이 느껴진다. 기둥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집은 언젠가 흔들리고 만다. 지금부터라도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일본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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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3 14:4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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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74 </title>
         <author>quddn071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7472409</link>
         <description><![CDATA[<div>한일협정의 배경은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다소 다르다.<br>한국의 경우 경제 발전의 원천이자 종자금을 얻을 목적 하나와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청구를 위해 일본과의 청구권 협상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미국의 압박과 한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 협상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협상에 앉은 두 나라는 서로 다른 입장으로 다른 목적으로 협상을 시작했기에 논의가 10년을 넘게 길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br>결론적으로 협상의 결과는 한국이 무상 3억불과 유상 2억불을 받고, 이에 대한 명목은 각 나라에 입맛에 맞도록 국민에게 알리도록 하였다. 협상에서 일본은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 개인에게 직접 돈을 전달하겠다고 말한바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를 거부하고 한국정부가 돈을 받아 개인에게 전달한다고 했다. 하지만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돈을 돌아가지 못했다. 한국 정부는 3억과 2억 불의 돈을 모두 경제 개발을 위한 투자에 사용했다. 물론 이는 한국의 한강의 기적의 기반이 되었으며 성공한 투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이 있었다는 점과 그 개인의 희생이 자신들의 입장과 무관하게 정부의 강제로 되었다는 것에 아쉬운 점이 있다.<br>협상 자체는 우선 일본과 한국이 과거에 대한 정리를 위해 움직이고 수교를 이루는 데에 대해 도움이 되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 협상안에는 미국의 직 간접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운점이 있다. 또한 나라간의 협상이면서도 정확하게 돈의 명목을 정하지 않은 것은 후에 계속 잡음이 생기는 상황을 만든 점에서 아쉽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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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4 00:52: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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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111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7633512</link>
         <description><![CDATA[<div>&nbsp;한국은 한일회담에서 강압으로 인해 체결된 구 조약으로 무효를 주장하는 한편 일본은 국제법으로 유효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패전이 효력이 사라지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br>한일협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의 국민적 정서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를 한번 더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은 한일 협정을 맺는 것 자체에서 불만을 표출한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nbsp;<br>&nbsp;일본이 경제협력과 경제 발전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금전적 봥을 지급했으나 이 돈이 피해자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다는 대처가 매우 아쉬웠다.<br>&nbsp;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며&nbsp;서로의 입장차이가 확연하게 들어나는 상황이다. 그러나 감정적인 대처를 지양하고 서로의 입장차이를 분명히 이해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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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4 03:15: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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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76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7645363</link>
         <description><![CDATA[<div>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금을 요구하며 경제발전에 사용한 것은 확실히 어느 정도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했습니다.보상금 투입은 한국 정부가 국가를 재건하고 경제 발전을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이러한 성과는 확실히 한국에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명성을 가져다 주었습니다.<br><br>그러나 이로 인해 이 문제의 복잡성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한국과 일본 간의 역사적, 정치적 분쟁은 여전하고 배상 문제는 여전히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그리고 보상금을 통한 경제발전도 장기적인 노력과 지혜로운 관리를 통해 진정으로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br><br>전반적으로 배상 문제는 한국이 직면한 많은 도전 중 하나일 뿐이며, 정부와 국민은 경제, 정치, 사회 각 방면에서 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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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4 03:28: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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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379</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7649687</link>
         <description><![CDATA[<div>한일협정은 국익에는 도움이 되었다. 일본에게서 받은 총합 5억 불을 통해 한국은 소위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수많은 문제가 내재되어 있었다.<br>첫째, 개인의 피해에 대한 보상을 국가가 경제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챙겨갔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는 현재까지도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서 양국이 차이가 보이고 있는데, 만일 이 때 개인에 대한 조상을 확실하게 정리하였다면, 오늘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br>둘째, 물론 한국과 일본 간의 국교 정상화는 필연적이었겠지만, 냉전 시기에 공산주의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해 미국이 상당 부분 개입하여 중재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의 입맛에 의해 한국이나 일본 모두 상당 부분 타협을 하게&nbsp;<br>만들었고, 이는 첫번째 문제와 연결되는 청구권에 대한 문제를 낳았다.<br>한일협정은 청구권이라는 문제를 만들었으며, 수년이 걸린 합의이지만 이 협정은 현재까지도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점은 이 협정이 상당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였다고 생각한다.<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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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4 03:33: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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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113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7657214</link>
         <description><![CDATA[<div>협정 당시에 청구권 금액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근거 자료가 필요했고, 일본은 한국에 그것을 요구했는데 오히려 일본이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그러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채로 한국 측과 교섭을 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면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할 수 있었을텐데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br>한일협정이 식민 지배에 대한 과거 청산을 목적으로 했음에도 일본의 사과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은 국교정상화 축하한다든가, 한국의 번영을 바라고 한일친선을 기원하여서라는 명목으로 지불하는 것이라고 하고 한국은 이를 수령한 후 청구권이 해결되었다고 하면 될 것이라며, 한국측에 제공하는 돈을 피해보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은 처음부터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보상을 청구하기 위해 협상을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br>결국 무상 3억불, 유상 2억불을 받고 일본은 피해보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사과도 없었다. 이후 한국은 이 금액을 피해자 개인에게 지급한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에 이용했는데 이러한 상황을 봤을 땐, 협력 당시 일본이 개인에게 직접 지급하고 싶다는 요구를 받아들이고 그런 방식으로 피해보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행보때문에 일본에게 더이상 적극적으로 사과를 요구할 수도 없는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br>물론 당시 한국의 상황으로 보았을 때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 있겠으나, 협상 때의 입장과 이후 행동을 같게 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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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4 03:40: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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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0737</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77783064</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한일협정에 대한의견으로&nbsp;한일기본조약은&nbsp; 1965년 박정희정권이&nbsp; 5.16 쿠데타 이후 민정이양을 약속했다가 결국 이를 뒤집고 박정희 자신이 정권의 수반이 된 다음 정치적불안정이계속되면서 무척 다급하게 이루어진 조약인데,국민들이 그토록반대했던이유가 무엇인가 하니 일본에 대해 시조일관 굴욕적이고 저자세로 일관한 군사정권의 태도에 대한 강력한 민족주의적분노가 아니였나 싶다.한일협정에는 많은 문제가 있는것같다.한일합방이 무효이며 식민지배36년이 잘못된괴거였음을 명시하지 않은 부분과 박정희 정권이 일본 과거 식민통치를 합법화 할수있는 빌미를 스스로 제공한 점 등 말이다.이런점을 봤을때 한일협정은 너무 성급하게 이루어진것같다.좀더 민족을 생각하는 편으로 처음부터 생각했으면 좋았지 않을까 생각한다.<br></strong><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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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4 05:57: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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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제동원 이슈 토론하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2162364</link>
         <description><![CDATA[<div>•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이번주 수요일(17일) 자정 전까지 작성해 주세요. 본인의 입장을 밝히되, 일방적인 본인 주장만이 아니라 예상되는 반대편의 비판을 방어하는 논리로 반대의견을 가진 상대를 설득하는 글을 작성하세요. 본인 글 하나, 코멘트 하나.&nbsp;<br><br>https://www.youtube.com/watch?v=dRpHaYDhZaA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필수</div><div>https://www.youtube.com/watch?v=lubpF2rXvRM (손열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필수</div><div>https://www.youtube.com/watch?v=WfmGF6JVzwg&amp;list=WL&amp;index=3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필수</div><div>https://www.youtube.com/watch?v=kvGumFwJM7M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필수</div><div>&nbsp; &nbsp;</div><div>https://www.youtube.com/watch?v=q44nSFaeGJs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참고</div><div>https://www.youtube.com/watch?v=WBDOIKsiFXY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참고</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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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01:44: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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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304</title>
         <author>ck09239</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2368150</link>
         <description><![CDATA[<div>강제동원에 대한 현 정권의 방향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는 바이다.&nbsp; 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이미 배상과 관련한 문제가 해결되었다. 물론 일본의 이후 과거사 관련 발언과 같은 문제는 분명 좌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배상을 다시금 요구하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국가 대 국가가 맺은 조약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자세가 한일관계의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국가와 국가 사이의 정당한 조약을 일방적으로 뒤엎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명분과 정당성을 떨어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br>게다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적절한 배상을 받지 못한 것은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책임이 더 크다. 당초 일본은 개개인에게 직접 배상을 하려고 했다는 것을 이 수업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그러나 결국 모두가 알다시피 배상금은 정부가 받게 되었고 그 돈은 경제개발을 위해 사용되었다. 한일기본조약을 맺을 당시와 달리 우리의 경제력이 충분히 증대되었는데 우리가 65년 당시 피해자들에게 배상하지 못한걸 지금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해주지 못한 배상을 하는 것이 더 좋은 그림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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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04:07: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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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74</title>
         <author>quddn071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2368268</link>
         <description><![CDATA[<div>한일 간의 강제동원 문제에 대하여 지속적인 외교적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한다.<br>&nbsp;이번에 있었던 위안부 합의 이슈에 대하여, 일각에서는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 이행해야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지리적 위치의 가까움과 혼돈의 세계 정세 속에서 한일관계의 회복은 꼭 해결해야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합의에 대한 문제는 국가간의 신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 측에서도 계속된 합의에 대한 한국의 불이행에 대해 신뢰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역사적인 문제를 경제 문제에 대입하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않다. 이러한 입장이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할 수 없지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한다.<br>&nbsp;위 입장의 해결책은 다소 한일관계 회복을 위해서 한국이 너무 숙이고 들어가는 느낌이 있다. 어디까지나 과거 일본이 한국에게 가한 피해에 의해서 일어난 한일관계 악화이며,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이 오히려 더 중요해보인다.&nbsp;<br>&nbsp;한일 양국은 어떤 합의 하나에 의해서 관계를 정립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합의를 도출하여 지속적으로 한일 관계를 정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 사실 외교적 협의를 통해서는 역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가 참 힘들다. 주고받기식의 외교적 협의로는 양국의 대다수의 국민들이 충분히 이해하는 합의가 도출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번의 협의로 끝날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만한 합의를 도출해가야할 것이다. 또한 합의안에 대해서는 양국이 충실히 이행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는 나도 일각의 입장과 동일하다. 외교적인 합의를 한 이상 국가간의 신뢰성의 입장에서 이행하지 않는 것은 한국의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nbsp;<br> 한국과 일본은 모두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도 말이다. 따라서 양국은 상대국에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젊은 세대의 생각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는 것도 필요하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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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04:07: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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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53</title>
         <author>redelusion</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2390669</link>
         <description><![CDATA[<div>&nbsp;강재동원의 문제는 일본의 총리가 정확하고 확실한 단어를 언급하며 사죄해야 한일간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될수 있다. 만약 강제동원의 피해자분들이 살아계실때 그런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한일관계는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불안한 관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nbsp;<br>&nbsp;물론 일본정부도 본인들 잘못이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펼치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애매한 사죄의 발언들은 아무리 모여도 한국국민의 정서를 움직이지 못한다. '이만큼 했으면 됬지 뭘 더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만약 우리가 원하는 사과를 설명하면 그대로 하려고 할 것인가?'라고 답을 하고 싶다.&nbsp;<br>&nbsp;우리가 바라는, 한국국민정서를 일본에 우호적으로 바꾸는 방법은 일본도 알고 있다. 물론 일본정부도 본인들의 지지세력과 정치적 영향때문에 하고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그건 일본 현정부의 사정이지 우리가 신경써줄 문제가 아니다.&nbsp;<br>&nbsp;현 일본정부는 자신들의 상황을 고려해달라며 한국을 설득해야할게 아니라 현재 어떻게 해야 사과와 현정부유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게 자국 국민들을 설득시켜야 한다.&nbsp;<br><br>물론 몇몇 사람들은 한국이 너무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 이젠 서로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니 이쯤에서 그들의 사과를 받아주는 편이 좋지 않겠냐고 주장한다. 물론, 서로의 협력이 필요한 시점인건 맞다. 하지만 일본이 확실한, 정확한 사과를 해야한다는 주장은 한국만을 위해서가 아닌 일본과 미국을 위한 주장이기도 하다. 만약 이렇게 애매한 상태로 상처를 덮어두면, 어느순간 한국의 야당이 집권을 위한 카드로 현재까지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던 일본의 태도를 언급하며 국민정서를 돌릴것이다. 만약 그 상황이 한미일의 연대가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면 이는 한미일의 동맹을 흔들고싶어하는 어떠한 단체에게도 굉장히 좋은 카드가 될 것이다.&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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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04:27: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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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036</title>
         <author>bsc4951</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2565522</link>
         <description><![CDATA[<div>최근 한일 관계에 대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교수님의 담론을 통하여 폭넓은 관점에서 외교 관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뉴스를 통하여 최근 한일 관계가 비교적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접했습니다. 외교로 인하여 피부에 와닿는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인지 사실 한일 외교관계가 실제로 어느정도의 갈등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 윤 대통령이 일본에 방문한 것이 외교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이는 경제적인 협력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독도 문제와 식민지 시대에서 비롯한 국가간의 청산되지 않은 갈등과 분쟁의 여지가 있고 이러한 사항에서는 한국의 근거와 명분이 앞선다는 관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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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06:39: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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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379</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2848849</link>
         <description><![CDATA[<div>한일 양국간의 강제동원 문제는 1965년의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의 제 2조 1항 부분에 대한 논쟁과 관련이 있다.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한)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따라서 현재 일본은 강제동원 피해 배상에 대하여 이 협정에 의거하여 개인의 청구권 또한 소멸되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div><div>그러나 이에 대해 최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1991년 주일 대사관이 작성한 외교문서에서 당시의 정무수석 비서관의 발언이 담겨 있는데, ‘청구권 협정은 정부 간의 해결을 의미하며, 개인의 권리는 해결된 것이 아니다. 일본 측 대표도 동일한 견해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는 내용이다. 개인의 권리가 1965년에 사라지지 않았다면, 현재 강제동원 피해자, 혹은 그 유족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게 되며, 일본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개인의 청구권 소멸에 대하여 논파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이것은 협정과 관련된 견해를 적어놓은 문서일 뿐이지, 협정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법정 효력과는 관계가 없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렇기에, 한일 양국간의 강제동원과 관련한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해 본다. 다만 정서적으로 한일관계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 기업이나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다면, 미래로 나아가는데 있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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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10:05: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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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95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3055184</link>
         <description><![CDATA[<div>이번 정권과 이전 정권은 일본에 대해 아주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최근 대한민국과 일본의 정상회담이 다시 시작되면서 뉴스에서 어렵지 않게 일본 정부와의 이슈를 접하곤 한다.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세계에서 강국으로 자리하는 일본과의 관계 회복은 그 자체만 본다면 환영할 일이지만 강제동원의 문제가 두 나라 사이에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온 일본과의 깊은 갈등은 이 문제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추세를 살펴보면 일본에 굉장히 친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나라 간의 골이 너무 깊어 완만한 해결을 위해서라면 어느 쪽이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게 설령 피해국인 우리나라가 되더라도 국익과 여러 이해관계를 고려해서 그것이 최선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nbsp;</div><div>그러나 설령 대한민국이 그 역할을 맡게 되어도 결코 우리는 피해자의 정체성을, 엄연히 하나의 국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 지키고 최종적으로는 국민을 지키는 것을 위함이 외교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야만 한다. 기시다 총리는 지금까지 몇 차례 가진 회담에서 대한민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사과, 사죄를 의미하는 단어는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정과 사과가 없다면 강제동원 문제는 하나의 헤프닝에 지나지 않게 된다. 또한 국제적 차원에서 대한민국을 열세에, 일본을 우세에 두게 되는 꼴이 되기에 앞으로의 대한민국의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을 고려하더라도 사과는 필히 받아야 하는 부분이다,</div><div>물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과의 인터뷰를 보면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과의 외교에 상당히 힘을 쏟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까놓고 말하면 그들이 언급하는 성과는 죄다 기대와 예측에 불과하다. 우리의 노력만큼 일본이 응할 것을 기대한다, 물잔에 물이 반이 찼다 등의 말로 좋게 포장할 뿐, 일본은 나중에 정세에 따라 변심하여 입 닦으면 그만인 것이니 우리 입장에서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7일에 열렸던 정상회담에서도 일방적 양보만 있을 뿐 성과, 약속같은 것은 하나도 얻어내지 못하고 국민들의 거센 반감만 샀다. 비약적인 예측일 수도 있지만 이대로 흘러간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독도 문제 또한 강제동원 문제와 같은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div><div>결국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손열 교수가 말하는 3가지 과제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 중에서도 국력 강화가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협상은 본래 평등한 위치에 있는 자들끼리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타당한 요구를 요청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같은 위치에, 혹은 더 높은 곳에 도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일단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다른 과제들이나 문제들은 점차 해결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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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12:59: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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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316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3102526</link>
         <description><![CDATA[<div>2023년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은 미래 협력을 위한 한일정상화의 발걸음을 다시 내딛었습니다. 1965년 청구권 협정과 총리를 포함한 고위관계자들의 사과와 수차례의 양국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갈등에 더이상 발목잡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당의 정당 성향에 따라 일본을 향한 관점이 변하는 것은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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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13:30: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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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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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0656 송동영 제3자 변제안 비판</title>
         <author>thdehddud00</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3109550</link>
         <description><![CDATA[<div>&nbsp;최근 한일관계는 윤석열 행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기조에 따라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nbsp; 초계기 갈등, 화이트리스트 배제, 반도체 수출규제 등 정면충돌한 한일관계가&nbsp;<br>&nbsp;이번 제3자 변제안의 기저에 있는 논리는 "2018년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이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이다."라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이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하고 판결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br>&nbsp;그러나 이 제3자 변제안은 좋은 대안이라기보다는 기저의 논리가 역사적 사실관계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 이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내용을 담고있으므로 비판해야 마땅할 것이다.<br>&nbsp;먼저 사실관계에 대한 부분이다. 한일관계가 악화된 원인은 2018년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이 아니다. 한일관계는 2011년부터 악화일로에 빠져서 한일양국의 여러 행정부를 거치면서 10년간 해결되지 않은 숙제였다. 대법원이 2018년 10월 30일 선고한 강제동원피해자 배상관련 파기환송심(2013다61381)은 한일관계 10년의 중간과정의 일일 뿐이다. 또한, 강제동원에 대한 대법원의 유권해석은 2013다61381이 처음이 아니라 파기환송심이라는 이름에 맞게 2012년 5월 24일에 선고한 2009다68260가 첫 시작이었다. 대법원 판결로만 본다면 강제동원 배상문제는 7년이상 지속되어왔던 문제이고, 한일 정면충돌의 원인은 대법원의 판결이 아니라 초계기갈등과 이후의 여러 대한 경제제재가, 일본의 귀책사유가 명백한 여러 행위가 원인이라고 해야할 것이다.<br>&nbsp; &nbsp;<br>&nbsp;혹자들은 대법원의 2018년 판결이 통치행위에대한 판결로서 사법적극주의의 일환으로 잘못된 결정이라고 하지만, 이는 우리 사법체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nbsp;<br>&nbsp;행정학에서의 통치행위론의 기반은 고도의 정치성을 띄는 '행정행위'에 대한 사법부 개입의 불가능성 내지 곤란성에서 출발한다. 이 사안에서의 대법원의 심리는 행정행위의 적법성에 대한 판결이 아니라 민사적인 불법성, 그리고 그에 대한 손해배상이 문제였다. 행정행위가 아닌 국민의 권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헌법 제101조에 따라 사법권이 부여되어있는 법원은, 헌법 제10조 그리고 제103조와 여러 법률에 따라 국민의 권리구제 의무가 있는 법원은 이에 대해서 판결을 내려야 마땅한 것이다.&nbsp;<br>&nbsp;사실 이 문제가 통치행위에 해당했다더라도 우리 헌법 제 107조 제2항의 행정소송의 개괄주의에 따르면 국민의 권리구제를 위해서 통치행위 자체도 심사대상이다, 또한 우리 헌법재판소는 93헌마186에서 통치행위에 대하여 "이른바 통치행위를 포함하여 모든 국가작용은 국민의 기본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한계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고,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사명으로 하는 국가기관이므로 비록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행해지는 국가작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라고 하며 통치행위에 대해서도 국민의 권리구제라는 사법의 대원칙에 기반한 사법적 개입가능성을 열어놓기도 하였다.&nbsp;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개입이므로 우리 대법원의 잘못이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이었다."라는 주장은 '대법원의 잘못'이라는 기초부터 잘못된 것이다.<br>&nbsp;또 대법원의 법률심은 사실관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실심인 1,2심에서 다투어진 사실관계와 그를 바탕으로 한 법률의 해석적용의 과정에서 '법률의 해석과 적용'과정에 대한 평가를 하는 과정이다.&nbsp; 이미 2012년에 원심의 법리해석이 잘못되었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던 대법원이 18년에 해당 사건이 다시 돌아온 상황에서 기존의 판결이 법리해석에 문제가 없었다면 그 취지와 동일한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서 비판할 수는 없다.<br><br>&nbsp;이 판결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지점은 2가지이다. 하나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등에 의한 외교적보호권 포기와 개인적 청구권의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 사법부의 다른 법리해석, 두번째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점이다.<br>&nbsp;먼저, 한국대법원과 일본 최고 재판소의 서로 상반된 법리해석에 관해서는 우리 대법원이 잘못해석한 부분은 없다고 볼 수 있다.<br>&nbsp;외교적보호권과 개인적 청구권에 대한 문제는 국제위법행위에 대한 국가책임의 문제로,&nbsp; 국내구조완료의 원칙에 따라 피해자가 개인적 청구권을 가해국내의 구제절차를 완료한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을 경우 피해자의 국적국이 직접피해자의 지위에서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는 것이다.&nbsp;<br>&nbsp;개인적 청구권에 대한 국제법적 동향은&nbsp; "국가가 개인의 동의 없이 타국과의 합의만으로 개인적 청구권을 포기할 수 없다"이다. 이 것의 국제법원성은 일반국제법화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지만, 그 전에 법의 일반원칙상 권원없는 자의 행위는 무효이므로 원칙으로 확립할 필요없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nbsp;<br>&nbsp;1965년 한일 기본조약은 한일 양국이 상대국에 대해서 국가가 외교적보호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지 국민의 동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적 청구권을 대위변제 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일본 최고 재판소에서 개인적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보는 것이 잘못된 해석인 것이다. 우리 대법원의 해석은 1965년 조약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조약에 따른 제대로된 해석을 한 것이다.<br>&nbsp;또,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것에 대해서 우리 수업시간에 '시제법 원칙'에 따라서 당시의 국제법상 식민지배가 정당하였고,&nbsp;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뿐만아니라 패전국조차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nbsp; 법적 안정성을 근거로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는 점은 논리적이지 못하다.<br>&nbsp;국제법은 침략을 '용인'한 것이 아니라 현실주의, 힘의 논리에 따라 '묵인'한 것일 뿐 불법을 법으로 만들지 않았다.&nbsp;<br>&nbsp;또한, 법의 이념가운데 법적 안정성이 중요한 것이라고 하여도 국제평화주의에 따라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의의 관점에서 식민지배의 불법부당성을 확인하고 그 지점부터 제대로된 처방을 하여야 할 것이다. 법적 안정성이 아무리 중요하여도 정의가 불법에 자리를 양보할 수 없듯이, 70여년의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 미래의 국제평화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br>&nbsp;더욱이 한일병합조약은 계약에서 의사자유의 원칙에 심각한 하자가 있는데 이를 당연무효라고 보지 않을 근거가 없다.&nbsp;<br><br>&nbsp;이런 점들을 종합해보면, 2018년 대법원 판결은 법리적으로 정확한 해석이며, 정의의 관점에 부합하는 판결이다. 또한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원인도 아니고, 우리 대법원으로서는 법치주의 원칙에 의한 의무에 맞는 타당한 심리를 한 것이다.<br>&nbsp;그러나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것이 한일관계를 개선하여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아니다.&nbsp;<br><br>&nbsp;먼저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서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하였기 때문에(이부분도 완전 명시적으로 쓰지 않았기 때문에 강제동원문제 전부에 대한 포기라고 볼 수 없다는 해석론 존재) 일본 최고 재판소가 종전 판결을 변경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국내적으로 해결하는 것 이외에는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대법원의 판결 이후에도 일본기업들이 이에 따르지 않는 현 상황에서 이를 집행하는 것은 행정부가 해야하는 것이므로 결국 통치행위론의 문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여기서 행정부가 대법원판결 그대로 강제집행을 나서게 되면 한일관계가 더 냉각될 수 있으므로 외교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국민 60%정도가 판결대로 강제집행에 나서는 것보다는 다른 해법을 찾는 것이 좋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다. 정부도 이점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판결 이후 약 5년간 강제집행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br>&nbsp;또한 배상방식을 정할 때, 당시 행정부가 받아서 피해자에게 배상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피해자 보상에 대해서는 우리정부의 책임또한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본이 전부 배상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옳진 않으며 한일기본조약 체결 맥락에도 맞지 않는다.<br><br>&nbsp;따라서 이 문제는 외교적으로 제대로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한쪽의 일방적인 손해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한일관계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 것에서 나오는 독을 한일 양국이 모두 감수하면서 한일양국의 우호와 더 나아가 역내의 평화를 목적으로 대승적인 결단을 해야할 것이다. 김대중 오부치선언 그 이상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br>&nbsp;한국은 조약의 취지대로 강제동원 배상금을 부담하면서도 일본의 책임있는 사과를 받아내야하며 지금까지 있었던 반한,혐한 정책에 대한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야한다.<br>&nbsp; 또한, 한일관계를 악화국면에서 아예 대결국면으로 전환한 진짜 원흉인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에 대한 제대로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WTO 재판 1심에서 수출규제가 WTO체제에 반하는 행위라며 국제위법행위임이 나왔기 때문에 더더욱 주장해야한다.<br>&nbsp;<br>&nbsp;그러나 이번에 나온 제3자 변제안에 대해서 일본 피고기업의 참가를 명문으로 규정하지 않은 것, 양국의 기업의 기금 출연이 법적인 근거가 없어 또다른 갈등을 낳을 수 있다는 것, 1965년 한일기본조약도 한국국민의 공론을 모으고 설득하는 과정이 없었는데 또다시 반복된 것, 일본의 명시적인 사과없이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 계승'이라는 모호한 의미로 김대중오부치선언을 왜곡한 것, 일본의 수출규제 등에 대한 사과없이 원점회복만 합의한 것은 일본이 진정으로 한일관계의 대승적 발전을 추구하고 있는지 의심이 되게 만들고 있다.&nbsp;<br>&nbsp;명시적인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이번 합의또한 1965년처럼 'agree to disagree'를 한 것 같기 때문에 한일관계를 발전시켰다고 하기엔 과거의 실패를 담습한, 매우 미흡한 합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disagree의 지점에서조차 한국의 운신의 폭이 일본의 폭보다 현저하게 부족한 점은 외교적 실패라고 평가될 것이다.<br><br>&nbsp;이번 합의는 결국 제대로 된 인식을 바탕으로 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해법조차 찾지 못했으며 향후에도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숙제를 계속되게 문제해결을 뒤로 넘긴 부족한 결과물이 된 것이다.<br>&nbsp;<br>&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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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13:32: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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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0902</title>
         <author>wasdyy12345</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3238917</link>
         <description><![CDATA[<div>한일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과서사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강제동원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협상이 진행된다면 그저 일시적인 관계 회복일 것이다. 후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또다시 과거사 문제가 불거진다면 여지없이 양국의 관계는 다시금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 지난날 동안 양국은 모두 수동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일본과의 행보는 당장의 그 결과가 어떠하든 매우 적극적이면서 또한 동시에 향후 일본의 태도에 따라 많은 것이 오갈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컵의 반, 혹은 그 이상을 따랐더라도 일본이 나머지를 채우는데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인다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선 만큼 실패도 그만큼 더 크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일본 측에서 우리가 먼저 다가간 만큼 유의미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일관계에서 밝은 미래를 향한 진전이 있을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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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14:55: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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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370</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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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한일 관계는 양국 모두에게 중요하다. 두 나라는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으며, 협력을 통해 지역 문제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양국은 역사적 갈등을 해결해야 하며, 이를 통해 보다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 국가로,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두 나라는 무역, 투자, 관광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 왔다. 또한 북한 문제와 같은 지역 문제에 대해 협력해 왔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 갈등도 가지고 있다.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한국을 식민지화했으며, 이로 인해 많은 한국인이 고통을 받았다. 한국은 일본에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요구해 왔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해 왔다. 역사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은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다. 2015년에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체결되었으며, 이 합의로 일본은 1,000만 달러의 보상금을 한국 정부에 지불하고 한국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주장을 철회하기로 동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한국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으며, 결국 파기되었지만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 갈등을 해결하고 보다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 정부의 방향대로 한일관계를 이어나가고 발전시킬 시 얻는 이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무역과 투자의 증가가 있다. 한국은 일본의 주요 무역 파트너다. 2021년 한국의 대일 수출액은 2,509억 달러, 수입액은 1,267억 달러로 총 3,776억 달러에 달했다. 한국의 대일 무역 적자는 1,242억 달러에 달했다. 강제동원에 대한 사과를 받지 않더라도 양국 관계를 유지하면 무역과 투자가 증가할 수 있다. 또 한국 기업의 일본 진출 용이성이 존재한다. 한국 기업이 일본 시장에 진출하기가 더 쉬워질 수 있다. 일본은 한국의 주요 투자 파트너다. 2021년 일본의 한국 투자액은 171억 달러로 한국의 총 해외 투자액의 2.5%를 차지했다. 양국 관계를 발전시킨다면 한국 기업이 일본 시장에 진출하기가 더 쉬워질 수 있다. 또 갈등 비용이 감소한다. 예를 들어, 2019년 한일 무역 분쟁으로 한국은 70억 달러의 무역 손실을 입었다. 이 분쟁은 일본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중요한 3가지 물질의 수출을 제한했을 때 시작되었다. 한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수출국이지만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한다.&nbsp; 한국은 일본에서 불화수소, 플루오린화폴리이미드, 삼중수소화붕소를 수입한다. 또한 자동차 산업에서도 일본에게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지만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한다. 한국은 일본에서 자동차용 반도체, 자동차용 타이어, 자동차용 자동차용 모터 등을 수입한다. 전자산업 또한 한국은 일본에서 디스플레이 패널, 반도체, 전기 부품 등을 수입한다. 강제동원에 대한 사과를 받지 않더라도 양국 관계를 유지하면 이러한 갈등 비용이 감소할 수 있다.<br>&nbsp;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에 일본 정부는 항상 사과를 했지만 행동으로 뒷받침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받는 것만으로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사실, 공식적인 사과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일본 정부가 사과하면 한국은 일본에 대해 더 가혹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양국 간의 긴장과 갈등을 증가시킬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더 효과적인 방법은 양국 간의 협력이다. 한국과 일본은 경제, 안보,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다. 이러한 협력은 양국 간의 이해와 신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공식적인 사과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더 효과적인 방법은 양국 간의 협력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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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15:26: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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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0737</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3575317</link>
         <description><![CDATA[<div>여전히 한일관계에는 불신의 벽이 존재한다. 하지만 국제질서를 회복하는데 있어서 한일관계가 장애물이 되는것은 안되며,일본과의 원만한 관계를이루는 쪽으로 노력하는것이 좋겠지만 강제징용에 대해서는 조금 다르다.일본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보상을 제대로 한적이 있는가? 위안부는 그냥 어영부영 넘어가서는 안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위해서도 과거사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된다는생각이 든다 그래야 앞으로 한일관계를 원만하게유지 할수있다고 생각한다<strong><br></strong><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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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19:03: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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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214580 남강희</title>
         <author>2020214580</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3888078</link>
         <description><![CDATA[<div>강제동원 배상에 대한 나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일단 대한민국 대법원에서 나온 판결은 우리 정부가 존중해야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리고 그 판결에 따라 우리나라 정부가 일본 강제징용 전범기업들의 한국 내 자산들을 압류해 손해배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일단 외교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우리 대법원에 판결을 존중하지 않고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3권분립의 붕괴의 시작으로 볼 수 있고 또한 이러한 행동은 다름의 대법원 판결에 우리 정부가 다시 한번 그것을 무시하고 정부가 마음대로 위법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피해자 입장인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일본의 개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는 것인데 이것에 대해 일본 정부가 보복조치를 한다면 우리도 또한 상응하는 조치를 다시 들어가야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외교는 적을 두지 않은 것이 중요하지만 이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우리 국민들이 통합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본다. 또한 한일관계에서도 향후 10년이상동안은 냉랭할지언정 우리가 더욱 유리한 외교적 위치에 있을 때 이겨놓고 외교전을 펼치면 우리측에 유리하게 미래 지향적인 외교를 펼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대측의 비판을 설득하는 논리로서는 우리 정부는 지난 무역수지로 일본에게 얼마나 흑자와 적자를 만들어냈는지를 알고 또한 현재 대한민국의 최고 무역 흑자 국가는 베트남이고 우리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이고 배상 문제는 국가간의 배상이 아닌 개인배상에 대한 것이므로 일본측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미 일본과의 무역에서 무역수지는 높지 않고 오히려 현재는 대미무역 흑자를 보기 시작했으므로 일본에 대한 실익은 미래지향적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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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01:12: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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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4110282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입장</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050517</link>
         <description><![CDATA[<div>강제동원 문제는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와 더불어 한일 관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이다.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이어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해법을 들고 나왔고 이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반반 정도로 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찬성하는 측에서는 현재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제 정세를 감안하면 일본과의 관계 회복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고 지속적인 대화의 장을 만들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있고 반대하는 측에서는 일본이 양보하는 것은 없고 한국이 내어 준 것만 있다며 이른바 '굴욕 외교' 라며 비판하는 모양새다. 나는 강제동원 합의에 대해 부족한 점이 있지만 찬성한다는 입장이다.<br>&nbsp;양국의 강제동원 합의를 살펴보기에 앞서 한 가지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손 열 교수가 영상에서 언급했듯 외교적 합의에 있어 모두를 만족시키는 답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 국민 대다수를 만족시키는 합의란 절대 나올 수 없다. 강제동원 이슈에 대해 도덕적 관점에서 옳고 그름을 가린다던지, 법리적 해석을 가미하여 국제법 상 합법인가 아닌가를 따진다던지 하는 것들은 각각의 의미를 분명하게 가지지만 외교적 합의를 평가함에 있어서는 여러 이슈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우선 순위를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얼마나 가져오고 얼마나 양보하는 가를 정하는 저울질이다.&nbsp;<br>&nbsp;먼저 국제 정세의 문제다. 한일 간의 관계가 가까워 질 때는 항상 국제 정세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1965년의 한일협약과 이번 2015년의 위안부 합의, 그리고 이번 강제동원 문제까지 단지 한일 양국의 이해관계만으로 협상이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주변국과 동맹국과의 관계, 특히나 미국의 의도가 양국 우호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23년 현재의 경우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 하기 때문에 한일 양국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에 한일 정상이 일본에서 만난 이후 바로 한미 정상회담이 이루어 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욱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의해 한국의 주요 수출품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미일 3국의 관계 증진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한일 강제동원 합의는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국제 정세에 의한 압력으로 인해 신속하게 추진되었다고 할 수 있다.&nbsp;<br> 강제동원은 위안부와 수탈 등 일본의 식민시대 다른 많은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잘못되었다. 하지만 잘못 되었다고 하는 것과 상대방에게 어느정도까지 요구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90년대 이후 정권이 자주 바뀌는 한국의 특성 상 한국의 대일정책 방향은 굉장히 자주 바뀌었다. 완벽하지 않고 구멍이 많은 합의라고 할지라도 합의를 번복하는 모양새가 자꾸 반복된다면 적어도 다른나라와의 외교적 해결을 바라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현실적으로 일본과 우리나라의 국력이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마치 힘의 논리가 국제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전에 너의 힘부터 길러라는 식의 주장을 매우 싫어한다. 하지만 식민지와 피식민지국들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사과와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면<br>&nbsp;<br>&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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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03:05: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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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01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072256</link>
         <description><![CDATA[<div>강제동원은 일본이 전쟁을 위해 조선민들을 강제로 징집, 성착취, 노동 등을 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은 배상할 수 없다 했기에,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 배상안’이라는 명목 하에 이들에게 대신 배상해주는 형식이 마련됐다. 2018년 즘 일본기업과 정부에게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을 요구했던 한국 대법원에 일본은 수출 규제로 답했다. 그때 19살이었을 때 정말떠들썩 했었는데 꼭 필요한 반도체를 한국에만 수출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덧붙여 수출 절차를 간편하게 해주는백색국가 대상에서도 제외를 하는 등의 보복 조치를 한 일본의 모습이 있었다. 이에 세계무역기구에 소송을 함으로써 한국은 맞대응을 했고 심지어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또한 끊었다.&nbsp;</div><div>&nbsp;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입장 발표문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은 ‘정부는 최근 엄중한 한반도 및 지역, 국제 정세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함께 한일 양국의공동이익과 지역 및 세계의 평화번영을 위해 노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div><div>&nbsp;여지껏 강제 동원 배상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침묵했고, 해법은 한국이 마련해오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솔직히 화가 나긴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일본과의 관계 회복은 물론 국가적, 그리고 개개인에게도 경제적으로 완화가 될 수 있는 일종의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배척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서울인권연합 회원으로서 당연히 그들이인권 또한 보장 받아야 하며 국가적으로도 그들에 대한 방치는 큰 문제로 상기될 수 있다. 그러나 모두의 입장이 충족된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모든 것을 챙길 수는 없지 않을까? 그렇기에 만약 일본-한국사이의 배척과 연합 중에 고르라면 연합을 고를 것이다. 이점이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div><div>&nbsp;나는 일본 수출 규제 완화와 함께 관계 회복 및 개선에 큰 힘을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 유학 경험도 있고 이번 여름방학에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갈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의 경제 완화가 과거에 대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보호에는 서툴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 성장 및 경제 발전에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길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산업에 있어서 두 국가가 손을 맞잡음으로써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그동안 서로 기술 혹 인력, 특히나 학문에 대해서 교류할 기회가 없었는데, 일본의 니시아마네가 동양에서 ‘철학’이라는 단어에 대해 처음 썼으며 일본의 철학 사상과 종교적 이치가 감히 한국을 능가할 정도의 경지라는 것을 보면 양국의 교류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더 많을 것이다.&nbsp;</div><div>&nbsp;윤석열 정부가 지금 욕먹는 이유가 재단을 통해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주겠다는데, 실질적으로 일본에 얻어낸 것은 없고 당연히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반발했다. 반쪽 해법이라고 조롱 당하기도 하고 끝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라고도 한다. 이에 대해 심지어는 시민단체가 정부안 철회를 요구하면서 강제동원 해법안을 규탄하는 긴급시국선언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과의 관계는 개선될 것으로 보이며 그것은 국익을 넘어 사익에도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가는 강제 동원 피해자에 대한 방안을 잘 모색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사과 하면 정말 완화가 잘 될 거 같은데, 역시 일본의 공부는 재미있지만 일본 정부는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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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03:22: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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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308</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195705</link>
         <description><![CDATA[<div>강제동원 해법에 대한 찬반 논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반대 입장이 밀어붙이는 주장은 굴욕 외교라는 것이다. 검사 출신으로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강제동원 해법은 대법원 판결에 역행하는 행동이며 피해자가 먼저 가해자에게 해법을 제시하는 굴욕 외교라고 한다.&nbsp;<br><br></div><div>손열 교수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에 동의한다. 한국 대법원과 일본 최고재판소는 강제동원 판결에 서로 상반되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판단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끝없는 논쟁만 유발하는 무의미한 주장일 것이다. 따라서 외교적 해법이든 국제재판소에 제소하는 방식이든 대법원 판결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제3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에 대한 해결책으로 외교적 접근을 택한 것이다.<br><br></div><div>물론 강제동원 해법의 구체적인 내용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영상에서도 나오듯이 양쪽을 만족시키는 결론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조차 없다면 지난 10년간 이어온 한일관계는 끝없이 서로를 헐뜯는 생산적이지 못한 관계가 이어질 것이다. 외교는 양국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끊임없이 주고받는 형식이다. 물론 손열 교수도 말했듯이 일본이 우리가 기대한 것만큼 줄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한국이 먼저 손을 건네는 것이 비상식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br><br></div><div>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암묵적인 세계 질서는 흐트러졌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만일 그러한 상황이 도래한다면 한미일 삼각 관계는 안보든 경제든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필수적인 관계이다. 중국이 야욕을 드러낸 현 상황에서 언제까지 일본의 사과와 반성을 기다릴 것인가? 외교는 주고받는 방식으로 우리가 먼저 손을 건넸으니 일본도 최소한 손을 잡을 것이라 예상된다. 지금은 굴욕 외교로 충분히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지정학적 불리함과 1965년 합일협정 논란 등 여러 시각에서 이번 강제동원 해법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일본의 사과와 반성만은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강제동원 해법을 평가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된다. 만약 우리가 먼저 손을 건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또다시 일방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이번 강제동원 해법을 달리 평가해야 할 것이다.&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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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05:23: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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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0792</title>
         <author>dxuosavz</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293776</link>
         <description><![CDATA[<div> 한국의 경우, 일본식 식민지 지배하에서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간 동안 일본의 강제동원 정책이 심각한 인권 침해를 초래했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강제동원되어 노동력으로 사용되었고, 특히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강제동원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강제동원 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한국인들이 희생을 감수해야 했으며, 이는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div><div> 그중에서도 가장 큰 강제동원은 위안부동원이라 생각한다. 위안부동원은 일본군위안부와 노무위안부로 구분된다. 일본군위안부는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이후부터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1945년까지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는 명목 아래 일본군의 성병 예방이나 군기누설방지, 현지 여성 강간 방지 등을 목적으로 설치한 ‘위안소’에 동원되어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의미한다. 노무위안부는 일본군위안부 외에 탄광과 군 공사장 등지에 동원된 위안부를 칭한다. 일본군위안부의 동원 형태는 취업 사기, 협박 및 폭력에 의한 동원, 인신매매 및 유괴 등의 방법이었다.</div><div> 영상에서 손열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강제동원과 관련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일 관계는 두 국가 모두에게 중요한 만큼,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대화가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제3자의 중재로 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반대한다.</div><div> 지난 1월, 정부가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가해 전범 기업의 사죄와 배상 참여 없이 제3자를 통해 이행할 방침임을 분명히 하려 하는데, 이는 옳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협력 기조를 강화하며 강제동원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려고 하지만, 제3자의 중재로 가는 방법은 피해자 쪽이 강력 반발하고 법적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제3자의 중재로 가는 방법에 대해, 가해자의 사죄도, 배상 참여도 없는 정부 해법은 굴욕적이며 몰역사적인 해법이라 생각한다. 가해기업이 손해배상의무를 사실상 무시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대신 변제한다면 그들의 사법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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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06:46: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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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570</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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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일제가 대한민국 및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발생시킨 인권 침해와 강제 동원 문제는 불가피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일본의 제국주의와 착취적인 역사적 행위로 인한 것이며,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일본이 대한민국에게 진정성 있는 사죄와 배상을 해야한다는 요구가 현재 존재한다.<br><br>일본은 이미 피해국에 대한 일부 보상금을 전달한 적이 있다. 일본이 강제 동원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에 대해서는 보상금은 전달되었으나 이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와 같은 역사적 문제점에 대한 확실한 사과와 배상금의 지급은, 이제까지의 피해를 보상함으로써 피해자들에게 마음의 위로를 전할 수 있다.<br><br>또한,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교육을 통해 강화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과 일본, 두 나라의 청소년들과 세대들이 자국의 역사적인 책임과 사명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이를 중심으로 한 국제역사 교육의 활성화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br><br>일본은 실패와 오류에 대한 인식에서 나아가, 책임 있는 행동을 통해 대한민국과 아시아의 인권을 보호하며 사명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이루어진다면,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관계에서도 더욱 화합, 협력, 발전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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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09:45: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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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1407 김현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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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강제&nbsp;동원 관련해서는 이미 한국의 대법원이 2018년에 판결한 내용이 있다. 사법부의 판결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 강제동원이라는 것이 우리나라 내부만의 문제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일본의 대법원 역시 해당 사안에 대해 판결했지만, 우리나라와는 반대되는 결론을 지었다. 이 경우 한국 재판부의 해법을 몰아붙이는 것은 외교적으로 당연히 무리가 있다. 일본 역시 그에 따른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문제는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양국간의 견해 차이를 인정하고 그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강제동원 문제는 덮어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없는것으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뾰족한 해답 찾기를 잠시 유보하자는 것이다. 2018년 판결 자체가 국민들의 인식을 만든 것이 아니라, 국민적 인식이 2018년의 판결을 유도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 대한민국과 일본국의 상호 호감도는 연령대별로 많이 나뉘는 모습을 보인다. 아무래도 감정의 골이 깊은 고령층에 비해 젊은 층에서는 양국간 호감도가 높은 모습을 보인다. 범국민적 의견이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답을 찾는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현재 대한민국의 국력은 일본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타 국가와의 문제는 사실상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인데, 협상은 적어도 엇비슷한 관계에서 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양국간 갈등이 전부 해소되어 동북아시아 연합을 보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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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0:11: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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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1397</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531067</link>
         <description><![CDATA[<div>강제동원 문제는 끊임없이 한일관계라는 대주제 아래에서 계속 논의되고 있는 논제이다. 경제적, 국제적,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는 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끝나지고 끝내고 있지도 못하는 이 상황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완벽히 끝을 맺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피해자분들이 모두 돌아가셔서 조금도 돌이키기 힘들어지기 전에 일본 측의 진심어린 사과와 적절한 태도가 필요하다.&nbsp;<br><br>&nbsp; 영상에서는 강제징용과 관련해서 3가지의 방법이 있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는 것과 제 3자의 중재를 받는 것, 일본과 합의하는 것의 3가지를 언급했다. 대법원 판결은 우리나라의 판결과 일본의 판결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결국 3번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고 오히려 관계가 더 악화될 수도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방법은 이 문제를 더 복잡하고 애매하게 만들 수 있으며 다른 나라와의 관계도 틀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합의만 가능하다면 3번째 방법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우리가 그 오랜 시간동안 이뤄내지 못한 방법이기도 하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말이 있다. 그게 현재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일본에 적극적으로 사죄를 요청하고 강하게 말하는 대신 소극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학교폭력으로 비교하면 가해학생이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이 아닌 피해 학생의 부모님이 피해 학생에게 배상을 하는 격이다. 이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절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취해왔던 방식은 소극적 대응에 속한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된 사과도, 배상도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슷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양국의 관계가 더 좋아질 수 없음을 뜻한다. 앞으로 양국의 협력, 경제적인 발전을 함께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좀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서 확실한 사과를 받은 후에 이 문제에 대해 완전한 매듭을 짓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br><br>  강제동원 문제만 확실히 한다면 문화의 영향으로 현재 세대가 거듭날수록 좋아지고 있는 양국의 서로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미래의 협력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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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0:24: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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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3410 이성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547077</link>
         <description><![CDATA[<div>&nbsp;강제동원은 분명히 슬픈 과거이고 우리가 피해자라는 것은 명백하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합의를 명확히 내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인데, 영상에서도 말했듯이 서로를 모두 만족시키는 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2018년의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은 여러 해석이 존재하며 어느 쪽을 택해도 논란이 발생한다.&nbsp;우리가 현 시점에서 가장 현명하게 내릴 수 있는 방안은 우리나라가 일본에게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을 승인하며 과거사를 널리 알리며 그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br>&nbsp;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총리와의 담판에서 사태를 진정시키는 조치를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강제동원과 외교 문제는 매우 민감하지만 그렇다고 두 나라가 평생 악연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좋으나 싫으나 서로가 중요한 무역 요충지이며 군사적, 안보적, 외교적 동맹이 필수적이다. 2019년 일본 측의 무역 통제로 한국이 불매운동을 벌였을 때도 한국 측 기업이 되레 큰 타격을 받아 사업을 철수하기도 하였다. 이처럼&nbsp; 외교 악화로 우리가 얻는 손해는 오히려 한국을 더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br>&nbsp;그 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성숙한 대처는 타국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국력, 해외의 인지도는 나날이 상승하면 일부 분야는 일본을 넘어서기도 하였다. 이를 가속하는 것이 과거 피해자였던 한국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반격일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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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0:42: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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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111518</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562280</link>
         <description><![CDATA[<div>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 현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를 포함한 외교적 대응이 아쉽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일본으로부터 사과도 받지 못했을 뿐더라 전범기업의 참여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대부분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전범기업과 일본정부의 사과이다. 하지만 윤정부는 제 3자 변제라는 피해자들은 전혀 납득하지 못하는 대안을 발표했다. 이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무효화시키며 삼권분립의 원칙이나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지 않는 모습으로 보인다. 또한 제 3자 변제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에게 사전 동의없이 찾아가는 등 무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강제동원 문제를 인정하거나 유감의 의사조차 표하지 않고 있다. 강제동원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사법부는 당시 일본이 '일본에 가면 기술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학교에 다닐 수도 있다'란 식으로 기만했다는 점과 사실상의 강압과 폭력이 행사됐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정부의 해법은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꼴과 다름없다. 일본에게만 이익이 되는 협상이었다. 한편에서는 이번 한일정상회담이 근 10년간 냉각되어있던 한일관계를 풀어나갈 첫걸음이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교는 상호 합의, 평등이 기본인데 이번 회담은 그것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따라서 앞으로의 한일관계가 대등한 국가간의 파트너십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의심이 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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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0:58: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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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99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574475</link>
         <description><![CDATA[<div>&nbsp;나는 강제동원 배상안과 4월에 이루어졌던 한일 회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역사 교육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영상의 통계 자료에서 알 수 있듯 나와 같은 이러한 혐오 감정의 양상은 각국 모두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외교를 통해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문제였다. 한국이 취하는 하나의 입장으로 친일, 혐일 모두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nbsp;</div><div>&nbsp; &nbsp;</div><div>&nbsp;배상안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2018년에 내린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것은 말이 되지 않으며 역사를 후퇴시켰다고 비판한다. 내가 배상안에 긍정한다고 해서 이러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우리나라 사법권의 최고 위치에 있으며 여기에서 나온 판결은 그만큼의 무게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판결을 뒤로한 채 일본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오히려 피해자가 배상하는(정확히 하자만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돈을 받은 적이 있는 한국 기업에 돈을 거두어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나누어주는 방식) 꼴을 만들었다. 아무리 일본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수출을 금지하고,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뺐다고 하더라도 역사를 청산하고 가지 않는 것은 굴욕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따라서 이런 치욕스러움을 견디면서까지 우호적인 한일관계를 만들려 하는 정부의 행보를 비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div><div>&nbsp; &nbsp;</div><div>&nbsp;그럼에도 내가 지금 한국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세계정세와 맞물린 상황들 그리고 이 상황에서 한일 관계를 회복할 시에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며 입지를 다지기 위해 싸우면서 세계 공급망은 불안해지고, 세계 경제 또한 침체 국면을 맞아 수출이 어려워졌다. 수출은 우리나라 GDP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이를 해결할 돌파구는 일본과의 관계 회복이었다고 생각한다. 관계 회복에 따라 일본의 수출 규제가 풀리면 공급망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뿐더러 이웃 국가인 만큼 교류에 따른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만을 위해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것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선택이다. 같은 국민으로서 마음이 아픈 것은 사실이나, 손열 교수님이 말씀하셨듯 국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국력을 키워야 말에 힘이 생기고 행동에 의미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nbsp;외교 그리고 외교에서 이루어지는 협상은 국력이 비슷한 나라끼리 가능한 것이다.&nbsp;빠르게 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는 최대한 현상 유지 혹은 발전을 위해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기대하고 기다리기보다는 이득을 취하고 그로 인한 과실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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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1:12: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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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380 김태경</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607373</link>
         <description><![CDATA[<div>강제동원문제 해법에 관한 한일정상회담의 찬반논쟁이 최근 우리 사회의 뜨거운 주제 중 하나이다. 통학길에 인터넷 뉴스를 조금만 보더라도 낯이 익을 것이다. 이에 있어, 먼저 밝히자면 현 정부의 외교적 대응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물론 긍정적인 요소들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언제까지나 서로를 불신만 하며 미룰 수 없는 문제이기에 일본에게 먼저 대화를 청하는 행위 등은 상당히 긍정적이며 앞으로의 양국 발전에 발판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nbsp;<br><br></div><div>하지만, 반대의 입장으로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이에 있어 특히 연세대 손열 교수님의 영상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nbsp;<br><br></div><div>영상의 첫 부분에서, 한일의 강제동원 관련 견해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하며 이를 이해하고 대화를 시작해야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 강의 등에서 본 영상자료에 나오듯, 강제동원과 관련된 증거는 현재 우리나라도 상당수 확보를 한 상태이며 일본이 박정희 정권 때 배상을 했다고는 하나 이는 경제협력의 명목이었지, 강제동원과 관련된 피해보상의 명목이 아니었기에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본다. 즉, 일본의 강제동원 관련 증거를 입증하고 일본 측에 확인을 받는 것이 우선이다.&nbsp;<br><br></div><div>영상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국제질서를 언급하며 “우리나라가 일본을 품어 안고 대승적, 대국적 사고방식으로 나아가야한다.”고 한다. 이어서 “우리의 국력이 일본의 국력에 근접할 때 정상적 한일 관계 가능”이라며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이는 정말 잘못된 생각이라고 판단된다. 우리의 국력이 약하다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의 외교를 이어가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미래의 국제질서에 한일관계가 더 이상 발목을 잡는 일이 없도록 깔끔한 과거사 청산을 위해 오히려 더욱 이 사안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확실한 합의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일본의 요구대로 따라가준다면 또 아픈 역사가 반복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겠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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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1:48: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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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111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678657</link>
         <description><![CDATA[<div>&nbsp;한국에서 새롭게 발표한 강제징용 해결안이 만들어진 것도 사실 양국의 외교적인 합의를 이루려는 목적에서 마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기성세대의 부정적인 감정, 신세대에도 형성되고 있는 일본에 대한 안 좋은 인식 등등 궁극적인 문제 해결에 원초적으로 필요한 우리나라 국민 개개인의 감정을 변화시키는 효과도 기대하며 새로운 협의안을 마련했을 것 같다. 물론 강제징용 자체에 대해서만 보면 나는 보통의 한국인으로서 일본의 입장은 그들 자국에 의한 변명이라고 생각하고 객관적으로 그때의 인력 동원 상황 자체에는 '강제성'이 필연적으로 작용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때문에 한국에서는 '피해자'의 인식이 더 강해 일본 정부와 피고기업의 직접적인 사과와 배상을 원하고 있지만 이와 반대되는 입장인 일본에서는 과한 여론이라고 생각해 장기적으로 상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완전한 해결을 바라기엔 어려워 보이는 지금, 우리는 편을 나눠 어느 한 편에서만 이득이 되고 승과 패가 나뉘는 방안을 만들 것이 아니라 대국적인 태도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한일 간의 불신의 벽은 꽤나 견고하게 다져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 벽을 깨기 보단 그 불신을 일정한 정도로 개선시키고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통의 한일관계로 돌이키기 위한 협의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한미일의 협업 관계, 다자무역질서 등등 외교적인 문제에는 꼭 일본이 껴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노력해야하지만 대한민국 개개인도 나름대로 인식을 변화할 마음가짐과 태도를 새롭게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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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2:51: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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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0811</title>
         <author>rudal320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695157</link>
         <description><![CDATA[<div>강제동원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한일정상회담의 내용과 이에 대한 교수나 전문가들의 생각을 들으면서 이번 정부의 대응은 다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정부의 결정은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사항을 행정부에서 꺾어버려 3권분립을 파탄낸 것이다. 강제동원 피해 배상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 기준은 한일 합방 및 그로 인해 발생한 당시일본 제국 정부가 행한 모든 행위의 원천적 불법성이다. 이 때문에 한일합방을 형식적으로 합법이라는 논리로 판결한 일본 재판부 판결을 우리나라 재판부가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보상금도 아닌 경제협력자금이었고, 이 돈 또한 경제개발을 위해 또다시 일본에게도 준 돈이 있었을텐데 왜 우리나라의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전해야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느 누구의 동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행동한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또한 한일 합병조약이나 다른 조약이 불법인지 아닌지는 단순 강제동원 문제가 아니라 영토주권 면에서도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지금도 우리나라와 독도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나라이고, 일본 또한 의견을 굽히지 않고 이 의견이 자신의 의견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는 일본의 한일병합조약이 당시 합법이였다는 것을 동의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반대의 입장에서 안보상의 이유로 어쩔 수 없는 것이였다라고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많은 국익을 얻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이익과 국익이라고 입장이 충돌할 때는 정부가 이를 설명하여야 하는데 현 정부는 이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3.1절 기념사에서 발언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은 우리나라, 그리고 국민들을 굴욕적으로 만든 것 같다.따라서 우리나라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한 국익은 전혀 없고 오로지 일본의 이익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함인데 이는 가만히 있는 국민을 버린다는 생각만이 드는 회담 내용이였고, 국민 자신의 힘을 키워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교는 상호외교가 필수임을 현 정부가 꼭 새겨들었으면 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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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3:03: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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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111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700342</link>
         <description><![CDATA[<div>우리나라가 국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이유들로 이웃국가인 일본과 긍정적인 방향으로 협력하는 것이 이익인 것은 사실이나 당시 일본정부가 노동자, 병력 및 성노예를 강제로 동원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수 많은 증거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국력과 국제관계를 위하여 일본과의 외교를 저자세로 갖는 것은 옳지 않다.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대처인 것 뿐만아니라 한 번 고정된 국제관계는 지속가능성이 높아, 앞으로 일본과의 관계에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강제징용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하라'는 주장은 양국 사이에서 이미 오랜 시간동안 합의점을 찾지 못하게 만든 주장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오랜 세월 악의적인 감정을 국제관계에서도 표출해왔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강제 징용과 관련된 문제를 당장 해결하고 뚜럿한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이유도 전반적인 국제상황과 일본과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양국간 악감정만을 키워온 것이 하나의 원인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는 양국에 대한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는 교육을 진행하는 동시에 일본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꾸준히 표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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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3:07: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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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450 김태헌</title>
         <author>taeheon9916</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745086</link>
         <description><![CDATA[<div>강제동원 문제는 한일관계에서 양국의 입장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입장은 강제동원의 가해자인 일본에서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펼치는데, 이는 한국의 대법원 판결이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2018년 한국의 대법원에선 과거에 발생한 청구권협상에 대한 배상이 강제동원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허나 일본은 이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당시 청구권 협상을 통해 의무를 다했다는 의견을 내비치기 때문에 양국간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div><div>분명 과거에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동원을 통한 잘못을 저지른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이런 강제동원에서 발생하는 외교 문제 등이 앞으로 양국의 관계 개선에 있어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본다. 분명 한국의 입장처럼 일본에서 일방적인 사과 및 배상금을 지급하는 상황이 이루어진다면 분명 이상적이겠지만, 이를 일본에서 납득할 가능성은 당연히 매우 적고, 경제적, 혹은 국제적 관계에서 분명 보복성 정책을 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div><div>이러한 보복 정책 등을 고려했을 때 한국에서 취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자세는 대일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이 일본의 보복성 정책으로 인해 외교정책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의 100대 핵심품목의 대일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만약 대일 의존도를 현재보다 낮출 수 있다면 한일 관계에서 조금 더 대등한 입장으로 외교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br>결론적으로 이런 대등한 입장을 기반으로 한 외교에서 앞으로 상호 생산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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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3:39: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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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275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802358</link>
         <description><![CDATA[<div><br>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이번 정부의 대응으로 한일관계가 이전과는 다르게 나아갈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 방향이 옳았는지(국익에 도움이 되는 최선의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강제동원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국민들과, 강제동원의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요소를 떠안고 나아가는 만큼 앞으로의 한일관계에서 우리나라가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것들이 많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언제까지 '제대로'된 사과만을 요구한다면 현재 악화되어있는 한일관계에 진전이 없을 것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일본에서 취하고있는 태도를 긍정하는 것도 아니다. 강제동원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 해결해야하는 문제 중 가장 예민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서적인 측면이 크기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리적인 것에 집중하느라 피해자들을 존중하지 못하는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한일관계를 빠르게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느라 무시되어서는 안되는 윤리적인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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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4:14: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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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113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815446</link>
         <description><![CDATA[<div>강제 동원 문제에 대해 일본과 한국은 강제 징용 문제가 '강제'인가 아닌가, 1965년에 한알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된 문제인가 아닌가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다른 상태로 외교적인 협의를 진행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문제를 풀기 어려웠는데, 입장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견해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br>나는 강제 동원 문제는 엄연히 '강제'가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떄문에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의 사과를 받지 못한 것은 아쉬운 결과이다. 우리나라 정부의 대응 또한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양국의 입장 차이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우리나라의 피해자를 위해 목소리를 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일본에게도, 우리나라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일본에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사람은 계속해서 생길 수밖에 없고, 이는 앞으로의 외교 문제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nbsp;<br>손열 교수의 일본에 대해서 감정,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원한 등에 사로 잡혀 있을 수는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또한, 일본을 적극적으로 품어안고 가는 대승적인 사고방식, 대국적인 태도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냥 일본에 굽히고 들어가기 보다는 안 좋은 감정을 배제하고 적극적으로 협의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 또한 이러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여론에 휩쓸려 부정적인 감정으로 문제를 바라보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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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4:23: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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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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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3241</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838389</link>
         <description><![CDATA[<div>영상을 보고 강제동원 문제도 결국은 양국의 인식 차이로 악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청구권 협상을 통해서 의무를 다했다라는 입장이지만 한국은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이 필요하다고 한다…</div><div>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을 써야 되는데, 솔직히 말하면 한일관계가 그렇게 좋지 않다고 들은적이 있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문제들(강제동원문제 등)이, 한일관계의 복잡한 역사(과거)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이 강의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한국 학생들은 어렸을 떄무터 한일에 관해 깊이 배우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다. 초, 중, 고등학생 때 한일관계에 대해 자세히 교육받은 기억이 없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한일관계에 관해 깊이 생각해본 것이 없었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한국 음악이나 드라마를 접해왔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는 호감밖에 없었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이 이렇게나 많은 줄 몰랐고, 일본이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줄 몰랐다. 이야기를 되돌리면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이 애매모호하게 하지 말고 공식적으로 사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국도 사죄를 받아들이고 서로 협력해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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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4:39: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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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8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851701</link>
         <description><![CDATA[<div>한일에 관련한 일제강점기 시절의 문제는 우리의 옆에 계속 존재해왔다.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이를 어떠한 시각으로 봐야하는가. 결론적으로 나는 이러한 문제들을 합의하는 것에 있어서 찬성하는 입장이다. 일본이 배상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문제가 되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사과나 배상을 하지 않았다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많은 사과와 배상을 일본은 지속해왔다. 그것을 진정성이 없는 사과, 돈뿐인 사과 등으로 치부하며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이다. 정말로 진정성이 없었는가? 솔직히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일본을 부정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현재의 정치인들이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는 것과 몇몇의 시민단체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배상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였던 피해자들에게 그 돈을 받으면 안된다고 압박하고 마치 돈을 받으면 똑같은 친일파인 것처럼 몰아가려고 했던 시민단체의 행태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 당시에도 일본은 개인 대 국가로 해서 보상하자는 안을 내세웠으나 그 당시 정부는 경제 개발을 하기 위해 국가 대 국가로 보상하기로 체결하였다. 결국 개인에 대한 보상은 한국 정부에서 전부 이뤄졌지만 해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과거의 정부 입장은 이해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계속 끌고 가기만 해서는 한일의 관계는 평행선을 이룰 뿐이다. 이번 일본 총리의 방한에서 총리는 현충원에 가서 참배를 하였다. 이 또한 진정성이 없는 사과인가? 물론 일본이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디어, 시민단체, 정부가 발표하는 일본의 부정적인 부분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일본에 대해 세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여 자신의 생각을 정해야 한다.  한일의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우선 해야하는 것은 개인이 관련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 여론에 휘둘리지 않는 비판적인 태도가 요구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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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4:48: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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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089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852786</link>
         <description><![CDATA[<div>현재 국제 사회에서는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 사회는 외교 싸움이 지배하고 있고 외교가 무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외교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강제동원 배상안은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나의 의견이 일본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nbsp;<br>강제동원 배상안을 철회하는 입장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권리와 이를 존중한 대법원의 결정을 무시함으로써 대한민국 헌정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정부의 방안은 용납할 수 없다"</div><div>"국민은 한국 대법원 판결에 경제 보복 조치로 맞선 일본 정부의 행태에 분노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일본의 가해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방안을 선택했다"</div><div>등과 같은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배상안을 시발점으로 결국 한미일 군사동맹을 맺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강력한 외교권을 지니고 있는 미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은 6.25 전쟁 이후 여태껏 미국의 군사 지원을 받는 등 자립하지 못하고 미국에 기대고 있다.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는 방안을 선택한 것은 국내 정치로 잘못된 것일 수 있지만 크게 봤을 때 국가에 더 이익을 줄 수 있다. 다른 국가들과 긍정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안을 내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미일 군사동맹을 체결하게 되면 상대인 북중러의 결속과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것은 강제동원 배상안을 체결한 내가 생각한 이유인 국민의 안전과 외교의 안정이 무시되는 일이다.  이 상황이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도록 미.일에 치우친 외교를 하지 않고 적절한 중립 외교를 펼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중요하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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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4:49: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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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1378</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863724</link>
         <description><![CDATA[<div>나는 이번 윤석열 정부의 한일회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가까운 듯 먼 나라인 양국이 간만에 대화와 소통을 시작하며 다시 긍정적인 협력 관계로 들어서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기시다 총리가 국립서울현충원에 참배를 하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나는 여기서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을 봤는지도 모른다.<br>나는 강제동원이 명백한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문제는 한일관계에서 반드시 이야기되어야 하고, 적절한 사과와 보상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또, 단순 사죄로 끝나는 것이 아닌 추후 양국의 젊은이들에게 양국의 정확한 역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br>대법원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아쉬운 대처지만, 그러나 나는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처 또한 한일관계 개선에 중요한 이점이 될 수 있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br>국제정세를 보면 외교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고, 그 중에서도 이웃 나라인 한일 양국의 관계는 아주 중요하다. 양국 간의 소통과 대화에서부터 긍정적인 협력 관계가 시작되고, 지속될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관계가 지속되면, 양국은 서로 엄청난 이득과 영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처로 합의점을 맞춰가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 외교라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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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4:57: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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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3222</title>
         <author>jinhak610</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866050</link>
         <description><![CDATA[<div>강제 동원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해결방안이 현재 뜨거운 감자로 이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 혹자는 치욕의 외교로, 혹자는 한일관계 진전을 위한 정부의 외교적 해결법으로 나누어져 정부의 해결방안을 비판,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에 대해 한국 정부의 해결방안이 있었어야 한다는 찬성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nbsp;</div><div>우선 강제 동원 피해에 대해 협상을 진행하며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관계의 우호적인 관계를 향한 점진적인 접근의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이 현재 미중 외교 분쟁에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 힘든 한국에 도움이 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대일 수출입 품목 및 대북 한미일 군사 동맹과 같이 수출 분야에서 중국의 거대한 영향력을 일본을 통해 조금이나마 줄이고 미국과의 관계를 미일 외교관계를 통해 더욱 우호적으로 해결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nbsp;</div><div>또한 과거 일본과 맺은 협약을 위반하지 않으며 현재 한국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가장 이성적으로 도출한 방안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일협정만으로 보더라도 비동의의 동의로 나타낼만큼 좁혀지지 않는 양국의 의견차이가 존재했고 이에 대한 논의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조항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해 꼭 현재와 같은 방안으로 해결했어야 했으며 성급한 것은 아니였는가에 대한 의견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결해야했을 외교 문제였으며 이를 가장 이성적으로 해결한 이번 정부의 방안은 옳았다고 생각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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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4:58: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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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2211073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4892724</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현 정부의 한일회담에서는 아쉬움이 많다고 생각한다. 외교적인 부분에 있어 일본과의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전체적으로 따졌을 때 긍정적인 부분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강제동원 문제는 따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제 동원으로 인해 피해 받으신 분들이 정말 많고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이를 먼저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앞으로의 한일관계를위한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이에 있어 상대국에 굽히는 태도를 보여서도 안된다. 그러한 태도는 여러모로 앞으로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더이상의 해결은 힘들고 일본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것은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있지만 모든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br></strong><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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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15:18: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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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21569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595634958</link>
         <description><![CDATA[<div>강제동원 해법. 이것은 솔직히 크게 두 가지 방안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br>1.피해자를 위한 해법 2.오롯이 국가를 위한 해법<br>이를 섞어야 마땅하지만, 지금의 한일 관계를 보면 절대 그렇게 나올 일본이 아닐 것이다.<br>피해자 보상.이는 일본 측에서 봤을때 언젠가는 일본이 치러야 할 과제이다.<br>하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해도 모자랄, 한국인이라면 화가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br><br>솔직히 일본이 이러한 한국의 입장을 모를까?<br>알고도 모른척 하는게 더 나쁘지만, 모른척 하는것일 것이다.<br>그렇다면 왜 그런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봤을때 일본이 미국과 같은 강대국을 상대로도 이렇게 나왔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br>조금 거북하지만, 일본이 한국보다 나은 국가라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은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이 붙지만 한국은 아직이다.<br><br>한일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일본이 과거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것, 그리고 한국의 미래지향적 양국관계 운영. 즉 서로를 깎아 내리고 등한시 하는 것이 아닌, 양국이 서로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라고 남기정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정말 깊이 동감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다.<br><br>현재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는 것이 아닌 정당화하고 있다. 이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고, 화가 나는 일이다.&nbsp;<br>그런데, 이렇게 일본이 과거를 부정하고 한국은 일본의 사과(피해자 보상)만을 요구하며 현재, 더나아가 미래의 상황도 이대로 흘러가는 것이 맞을까. 라는 생각으로 보면 정말 옳지 않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br><br>따라서 개인적으로 현재 윤석열 대통령께서 우선 한일관계 개선을 추진 한 것은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의 일방적인 결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우선 일본과의 외교를 복원하여, 안보협력의 강화와 함께 한국과 일본의 교류를 계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은 꼭 필요한 필수 행보라고 생각한다.<br><br>이렇듯 한국의 미래지향적 양국 관계 개선 의도는 비췄으니, 이제 일본의 과거 직시만이 남았는데, 일본측이 이러한 피해자 문제에 대하여 당장 사과를 하고 한일관계가 완화 되는 것이 베스트 이지만, 한일 관계 개선에 있어서 차차 양국 모두가 기브엔테이크의 관계가 되어 양국이 서로 중요한 존재임을 일본측의 보수적인 정치세력까지 인지할 수 있도록 하여 일본의 사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br><br>이끌어 낸다는 것이 웃기지만, 과거를 정당화 하고 있는 일본이 정말 진심어린 반성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나라의 국력을 키우고 일본과의 두터운 신뢰가 이루어짐으로 하여금 일방적인 외교, 화해가 아닌 서로가 서로의 나라를 인정하고 함께 상호작용을 할 때 비로소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가 좀 더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nbsp;<br>물론 처음부터 일본이 이를 인지하고 한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출발하는 것이 우리의 입장에서는 맞지만 말이다.<br><br>결론적으로 ’관계 개선‘에 있어서 화해를 하려면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듯이, 우선 한국이 손을 내밀었으니, 일본 측도 이를 받아 들였다면 미래를 향해 나아감에 있어서 보상은 보상이고, 한번의 제대로된 사과가 필수라는 것은 점차 양국의 관계가 개선된다면 더더욱 잘 드러나고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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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3:07: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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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2869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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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먼저 강제 동원 문제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선 매우 사과를 받아야하고 침울한 역사일수밖에 없다.하지만 일본의 입장에선 우린 그때 조선이라는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고 조선은 곧 일본이였다. 라는 명목하에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인권적인 문제나 식민지 였다고 한들 조선인을 노예 부리듯 부린 부분에 있어서는 합당하다고 할수없고 꼭 사과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괴를 받아여할 부분은 받고 질책할 부분은 질책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모든 일본과의 교류나 정책을 안하는건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본과의 교류는 미국과의 교류와도 매우 밀접하게 연관이 돼있기때문에 우리나라는 일본을 적대시<br>해서는 얻을게 없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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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3:27: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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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760</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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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한국의 강제동원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이 강제노동과 징집된 상황을 말합니다.이것은 역사, 정치, 인권 등의 문제를 다루는 민감하고 복잡한 주제입니다.<br><br>강제 동원은 심각한 인권 침해이며 어느 시기와 국가에서도 비난받아 마땅합니다.한국의 강제동원 상황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의 분개와 불만을 이해하고 공감합니다.강제 동원된 이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 동안 심각한 착취와 고난을 겪었고, 그들의 인권과 존엄성이 심각하게 침해되었습니다.<br><br><br><br>유사한 불공정 및 인권 침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인권 보호 메커니즘을 강화하고 교육, 홍보 및 관용을 통해 역사의 정의와 화해를 촉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이렇게 하면 우리가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더 공정하고 평등하며 인권을 존중하는 미래를 함께 만들 수 있습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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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21 04:14: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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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0</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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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강제동원은 지금으로선 아무리 배상을 해 줘도 제3자가 대신 배상해주는 방식이고 피해자의 합법적 권리와 인권에 대한 무시이자 역사적 진실과 정의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한다.어떤 일이든 다른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이런 엄중한 문제에서 한국이나 내 조국 중국이나 피해자들만 역사를 배우고 가해자들은 그렇지 않다.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중국 측 대표 장위안은 이렇게 말했다.그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근대사를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분하고 우습게 여기며 일본이라면 무릎을 꿇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한중 양국과의 영토 분쟁은 독도든 댜오위다오든 침해가 크다.관계 개선에도 불구하고 위안부나 교과서 등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많은데도 일본은 애매모호한 태도로 과거의 역사 청백에 나선 것이다.고난을 겪으며 식민지로 전락하고 인권을 침해받아 노예로 전락한 중한 양국 국민이 어떻게 교섭할 수 있겠는가?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후원하고 있으니 우리 세대에서 자강불식으로 시작해야 나라가 더 강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하지만 강제동원 문제는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데 민분은 가라앉을 수 없으니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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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22 15:40: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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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1135</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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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첫 번째로, 독도에 관해 일본은 옛날부터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경위도선을 표시한 일본 지도로서 가장 대표적인 나가 구보 세키스이(長久保赤水)의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1779년) 등 일본의 각종 지도와 문헌이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br>두 번째로, 한국이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 측이 주장하는 우산도가 독도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명확한 근거가 없으며, 우산도는 울릉도의 다른 이름이거나 가상의 섬이라는 것이다.<br>세 번째로, 안용복의 도일(渡日) 활동은 자신의 불법 도일 죄를 감하기 위하여 과장한 것으로 일본의 기록과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br>네 번째로, 한국은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으며, 일본은 엄중하게 항의를 하고 있고, 한국에 의한 독도 점거는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불법점거이며, 한국이 독도에서 행하는 어떤 조치도 법적인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에 관한 문제로 일본 정부는 1954년 9월, 1962년 3월에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제안했으나, 한국측이 이를 거부하였다고 주장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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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20: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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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53</title>
         <author>redelusion</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24865</link>
         <description><![CDATA[<div>주한 일본대사관 공식 독도에 관한 일본정부의 주장<br><br>1.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도 또한 국제법상으로도 분명히 일본국 고유의 영토입니다.<br>2. 한국에 의한 다케시마 점거는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이 행해지는 불법 점거이며, 한국이 이런 불법 점거에 따라 다케시마에 대해 실시하는 그 어떤 조치도 법적인 정당성을 가지지 않습니다.<br>3. 일본국은 다케시마 영유권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국제법에 따라 침착하고도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생각입니다.<br>4. (주) 한국측으로부터는 일본이 다케시마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영유권을 재확인한 1905년 이전에 한국이 다케시마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것을 나타내는 명확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br><br>일본의 근거<br><br>1. 1905년 1월 일본 각의 결정으로 무주지인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고 동년 2월에 시마네현 고시로 독도를 시마네현 관할 섬으로 공포되었었다.<br><br>2.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는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였으나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할 영토에 독도를 포함하지 않았다.<br><br>3. 1905년 일본 어부들이 자유롭게 독도를 오가며 고기잡이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청원을 받고 지방 자치단체인 시마네현이 일방적으로 “이제부터 독도가 일본 땅이다”라고 선언한 내용이 있다<br><br>4. 독도는 1952년 주일미군의 폭격훈련구역으로 지정되었다.<br><br>5. 일본은 17세기 말 울릉도의 도항을 금지했지만, 독도의 도항은 금지하지 않았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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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21: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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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111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25221</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한다.</div><ol><li>역사적 근거: 일본은 독도가 17세기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역사적인 기록을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17세기 말부터 독도에일본의 관리와 통제가 이루어졌으며, 이후로 일본의 통치하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역사적인 기록은 독도에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일본의 문화와 경제활동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져 왔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li><li>지리적 근거: 독도는 일본과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일본의 경제수역과 연결되어 있다. 일본은 독도가 일본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일본의 영토로서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독도가 일본의 주변 해역의 중요한 항로와 자원에 접근 가능한 위치에 있는것을 강조한다.</li><li>국제법상의 근거: 일본은 국제법상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인정받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일본은 독도의 통제력을 유지하고, 일본인들의 거주와 경제활동을 확대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국제적인 인정을 얻으려고 하였다. 일본은 또한 국제적인 기구나조약에서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언급하거나 일본의 관리하에 있음을 명시하는 노력을 벌여왔다.</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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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21: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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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37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26500</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고,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독도는 17세기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아왔다.독도는 일본의 에도 막부(1603-1868)가 17세기부터 지배해왔으며, 1696년 에도 막부가 발행한 "울릉도 도항 금지령"을 근거로 들고 있다. 이령은 조선인들의 울릉도 도항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일본은 주장한다. 메이지 정부(1868-1912)는 1877년에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공식적으로 편입했다.독도는 1905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후에도 일본의 영토로 남아 있었다.&nbsp;</div><div>또 다른 근거로는 1785년 쓰시마 번주가 발행한 "다케시마 쟁송 답변서"가 있니다. 이 답변서에서 쓰시마 번주는 독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으며, 조선과의 교섭에서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div><div>이 외에도 일본은 독도가 17세기부터 일본의 어민들이 조업을 해온 곳이며, 독도가 일본의 지도를에 표시되어 있다는 점 등을 역사적 근거로 주장하고 있다. 또한 독도는 1945년 일본이 패망한 후에도 일본의 영토로 남아 있었다고 주장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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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22: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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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3222</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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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 1951년 센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독도가 한반도의 영토라는 문장이 존재하지 않는다.<br>2. 시네마현 고시(1905)에 국제법상 무주지였던 독도를 일본땅으로 편입시켰다.<br>3. &lt;쓰시마부사&gt; 및 &lt;대일본축지도&gt;에서 1905년부터 독도에 경찰서를 설치해 실효지배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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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25: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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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2869</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31767</link>
         <description><![CDATA[<div>1.<strong>제주도 밑 섬까지 세세하게 그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독도라는 땅은나오지않는다. 이말인 즉슨 독도의 존재를 몰랐거나 조선의 땅이라고 인지를 하지않았다고 생각할수있다.<br></strong><br></div><div>2.<strong>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 기초과정에서 한국은 일본이 포기해야할 땅으로독도를 포함시키도록 요구했지만 미국은 다케시마가 일본의 관할하에 있다고 하여 요구를 거부했다.<br></strong><br></div><div>3.<strong>실제 미국 러스크가 보낸 국무차관보 서한에 따르면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까지만 조선이라고 명시돼있고 그 이상은 표시돼있지않다.<br></strong><br></div><div>4.1952년 주일미군의 폭격훈련으로 다케시마를 선정했었으며, 일본영토로 취급돼었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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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27: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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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380 김태경</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33731</link>
         <description><![CDATA[<div>1. 러일전쟁 이후 임자없는 땅을 일본이 먼저 선점했다는 논리&nbsp; - 무주지 선점 원칙에 의해 일본이 최초로 점거해서 일본땅이라는 논리인데, 이 논리가 성립하려면 러일전쟁 이전에 독도가 조선땅이었다는 근거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독도가 조선땅이었다는 지도, 문서들이 꽤 많다. 심지어는 일본측 기록들도 있다. 다만, '독도'라는 명칭이 붙혀진건 후대의 일이고, 그 기록들에 있는 독도의 이름은 제각각이다.(삼봉도, 우산도 등등) 그래서 일본은 삼봉도, 우산도 등등이 독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div><div><br>2. 1948년 주일미군의 폭격훈련장으로 독도를 지정 - 일본 패전 후 미군에 의한 군정이 종료되고 일본이 주권을 되찾고 일본이 제일 먼저 했던 일이 독도를 주일미군의 폭격훈련장으로 지정한 일이었다.  이는 일본정부가 자국영토를 폭격훈련장으로 지정했다는 근거를 만들기 위한 거였는데, 주일미군은 이런 일본정부에 이용당해서 일본에게만 폭격훈련 시간을 통보하고 훈련 실행하였고 이를 까맣게 모르고 독도에서 조업중이던 우리나라 어부들 수십명이 1948년 여름 미군 폭격에 맞아 사망하였다. 지금도 일본은 당시 폭격훈련장으로 지정했던걸 일본이 독도를 자국영토로 주권을 행사했다는 근거로 활용한다.</div><div><br></div><div>3.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가 빠짐 - 패전후 일본의 영토를 결정짓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초안에는 독도가 한국땅으로 표시되었다.(초안에는 일본 영토는 4개 본섬으로 국한됨) 이후 일본의 로비를 받은 친일파 시볼드가 담당자가 되면서 독도가 일본땅에 포함→ 시볼드는 오키나와도 일본땅에 포함시키고 심지어 대만도 일본땅에 포함해야한다고 주장 &gt; 다른 담당자들이 이를 보고 '무슨 일본이 승전국이냐..' 반발하면서 다시 독도는 한국땅 표시 &gt; 일본은 독도를 일본땅으로 편입시키려 무수하게 노력했고, 결국 로비가 어느정도 통해서 최종안에서 '독도는 한국땅이다'라는 문구가 사라짐 &gt; 이를 근거로 '독도는 한국땅이었다'는 문구가 있다가 사라졌음으로 독도는 한국땅이 아니라고 주장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핵심중 하나는 일본의 영토는 전쟁이전으로 되돌린다인데, 독도는 전쟁이전부터 일본땅(러일전쟁 직후)이었기때문에 일본땅이라고 주장한다.<br><br></div><div>4. 러스크문서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최종안에서 '독도는 한국땅' 문구가 사라진걸 확인한 이승만정부에서 당시 미국 극동지역차관보 딘 러스크에게 이를 시정해달라고 요구 - 딘 러스크는 일본의 로비를 받은 부하직원들의 말만 듣고 '독도는 일본땅임'이라는 서한을 보냈다. 이 문서의 존재를 안 당시 국무장관 애치슨은 일본에 호의적이었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노하며 '이 문서는 러스크 개인의 의견일뿐 미국의 공식적인 의견은 아니다'라고 선을 확실히 그었다. - 그 후 미국의 일관된 입장은 '독도문제와 같은 영토분쟁은 당사국끼리 해결해야할 문제고 미국은 개입안함'이라며 노코멘트 입장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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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29: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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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0656 송동영 일본의 독도영유권주장 근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35845</link>
         <description><![CDATA[<div>&nbsp; 일본은 대한민국정부가 1952년에 독도를 대한민국의 관할권하에 있다고 선언한 평화선에 대해서 반발하기 시작하여 계속된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하고 있다. 이는 이하의 근거에 따라서 이다.<br>&nbsp; 먼저 17세기에 일본이 독도를 먼저 발견하여 영유권의 원시적 권원을 획득하였다는 것이다. 이후에 일본 어부의 어업활동 등을 일본정부가 관리하여 왔다고 주장한다<br>&nbsp; 이후 러일전쟁 중인 1905년에 무주지인 독도를 시마네현으로 편입하며 무주지 선점의 법리에 따라서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서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와 관련없이 그 전에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고 주장한다<br>&nbsp; 마지막으로 일본은 센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를 일본영토로 인정하였다는 주장을 한다. 일본이 한국의 독립으로 포기하는 영토에서 독도는 명시되어있지 않은데, 이를 열거조항으로 해석하여 독도가 빠진 것은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본 것이라고 주장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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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31: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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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111518</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36349</link>
         <description><![CDATA[<div>독도는 일본에서 다케시마라고 불린다. 일본은 독도에 대한 국제적인 알려진 이름인 "Takeshima"를 사용하며, 이는 독도가 일본의 영토로 여겨져 온 역사적인 근거를 반영한다고 주장하며, 일본은 독도를 일본의 일부로 여기는 지도를 발표하고 교육자료 등에서 일본의 영토로 표기하여 국제적으로 이를 알리려고 노력한다. 또한 일본은 독도에 대한 역사적인권리를 주장한다. 일본에 따르면, 독도는 고대부터 일본의 영토로 여겨져 왔으며, 일본의 세력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고대 기록이나 지리적인 자료를 인용한다. 많은 고대 기록에서 독도를 언급하며이를 자신들의 영토로 여긴다.&nbsp;</div><div>가장 잘 알려진 기록은 8세기에 편찬된 일본 역사서인 "고국지기"이다. 이 책에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주장이 포함되어있으며, 독도를 "Usan-do"라고 기록하고 있다.&nbsp;</div><div>17세기에 일본의 지리학자인 "히조"가 쓴 "도국초기"라는 지리서에는 독도가 일본의 영토로 나와있다. 이 책은 일본의 지리적인 지식을 정리한 것으로, 독도를 일본의 일부로 표기하고 있다. 또한 성좌기록에도 이와같이 나타나있다. 성좌는 불교 사원의 이름을 기록한 문서로, 독도 주변에 위치한 성좌들의 기록에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로 언급되고 있다. 이기록들은 독도에 일본의 불교 사원들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이를 일본의 영토로 인정하는 근거로 인용된다.</div><div>근대에는 1904년 일본의 어업인이 독도에서 강치잡이를 독점하기 위해서 일본 정부에 독도 영토 편입을 요청하였다. 이에 일본 정부는 독도를 ‘죽도(다케시마)’라고 이름 붙이고 독도 영토 편입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일본은 이러한 결정을소위 ‘시마네 현 고시 제40호’를 통해 알렸다고 하면서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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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32: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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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95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38663</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이 독도를 일본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그 중에서도 일본에서 강력히 피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nbsp;</div><div>첫째, 일본은 옛날부터 다케시마(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한국이 옛날부터 다케시마(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가 없음을 지적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일본 측에서는 1779년에 만들어진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에 독도가 명시되어 있고 일본땅으로 표기되었다는 것과 삼국사기에서 우산국(울릉도)는 설명되어 있지만 독도에 대해서는 서술한 기록이 없다는 등 여러 근거를 제시한다.&nbsp;</div><div>둘째, 일본 정부는 1905년에 다케시마(독도)를 시네마현에 편입해서 다케시마 영유 의사를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 절차가 국제법에 의하여 적법하게 이루어졌으며 신문 등에 보도된 것으로 보아 상당히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nbsp;</div><div>셋째, 센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한국에 반환해야 하는 섬 목록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1951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 승전국과 패전국 사이에서 이루어진 조약인데, 여기에는 제주도와 울릉도, 거문도는 명시되었지만 독도는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다케시마(독도)가 일본의 것이라고 공인한 것으로 해석한다.&nbsp;</div><div>넷째, 다케시마(독도)의 영유권과 관련된 분쟁을 일본 측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여 해결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거부하는 것은 한국이라는 것이다. 해당 문제는 임의적 관할권에 의하여 양국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재판이 시작될 수 있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한국이기 때문에 다케시마(독도)는 일본의 소유라는 것이다.&nbsp;<br>이외에도 다양한 근거를 내세우며 일본은 다케시마(독도)를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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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34: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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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304</title>
         <author>ck09239</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40996</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독도가 일본의 영토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를 읽어보고 내가 요약했을 때 일본이 내세우는 근거는 크게 3가지이다.<br><br>우선, 한국 측이 주장하는 고지도에 등장하는 우산도 등이 독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축척, 위치 등이 독도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br><br>두번째로, 일본은 예전부터 독도를 인지하고 있었고 늦어도 17세기에 일본의 영토에 편입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독도를 어업을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br><br>마지막으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등에서도 독도가 일본이 포기하는 영토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br><br>그렇게 일본 측이 정당하게 영유하고 있던 영토를 한국이 이승만 라인을 일방적으로 선언하면서 강제로 실효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일본측의 입장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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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36: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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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275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41502</link>
         <description><![CDATA[<div>1. 일본 정부는 17세기 돗토리번의 오야·무라카와(大谷⋅村川) 양가가 막 부(幕府)로부터 「竹島(울릉도) 도해면허」를 발급받아 울릉도에 도해할 때, 독도를 중간 정박지로서 활용하면서 독도에 대한 영유권도 확립했 다고 주장하고 있다.<br><br>2. 일본 정부는 「왕복외교문서」에서부터 안용복 활동에 대해 매우 부정 적인 평가를 해오고 있다. 이는 한국 정부가 “1696년 안용복을 포함한 한국인이 울릉도 및 독도에 가서 일본 선박이 이들 두 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이 섬들이 한국의 영토임을 주장하며 엄중 경고하였다”고16) 강조한데대해일측이반박하면서부터시작됐다. 당시일본정부는일 본의 여러 고문서들을 활용하면서 안용복 활동을 부인하는 여러 주장들 을 내세웠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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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36: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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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1397</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43139</link>
         <description><![CDATA[<div>1. 17세기 일본의 어부들이 일본 정부에서 면허를 받고 세금을 내며 울릉도에서 독점적으로 어업을 하였다. 이때부터 일본의 행정권이 독도에 영향을 미쳤고 국제법 상으로 섬에 대한 주권은 정부의 실효적 지배에 달려있다. 17세기 말에 일본은 울릉도는 조선 영토라고 판단하여 도해를 금지하였지만, 독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br><br></div><div>2. 국제법상 무주지를 선점하는 것이 영토 편입 조건 중 하나이다. 주인 없는 땅이었던 독도를 1905년 1월 일본에서 일본 영토로 편입하였다고 주장한다.<br><br></div><div>3.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일본이 한국의 독립 시 반환해야 할 영토에 독도를 언급하지 않았다. 조약 체결 직전 한국 정부는 반환해야 할 영토에 독도를 포함하도록 요구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의 독립은 인정되었던 반면에 독도는 영토 반환에 포함되지 않았다.<br><br></div><div>4. 한국의 고지도에 우산도라고 표시되어있는 곳의 위치를 보거나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와있는 '무릉도와 우산국은 멀지 않다.' 라는 말을 보면 우산도는 현재의 독도가 아니라 죽도일 가능성이 크다고 일본은 주장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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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38: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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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57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43170</link>
         <description><![CDATA[<div>1. 일본이 예전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주장<br>&nbsp; : 일본은 옛날부터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경위도선을 표시한 일본지도로서 가장 대표적인 나가구보 세키스이의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1779년) 등 일본의 각종 지도와 문헌이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nbsp;<br><br>2. 한국이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주장 : 한국이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 한국측이 주장하는 우산도가 독도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명확한 근거가 없으며, 우산도는 울릉도의 다른 이름이거나 가상의 섬이다.&nbsp;<br><br>3. 17세기 중엽에 독도의 영유권을 확립했다는 주장 : 일본은 울릉도로 건너갈 때의 정박장이나 어채지로 독도를 이용하여 늦어도 17세기 중엽에는 독도의 영유권을 확립했다. 에도시대 초기(1618년), 돗토리번의 요나고 주민인 오야, 무라카와 양가는 막부로부터 도해면허를 받아 울릉도에서 독점적으로 어업을 하며 전복을 막부에 헌상했다. 독도는 울릉도로 도항하기 위한 항행의 목표나 도중의 정박장으로서, 또 강치나 전복포획의 좋은 어장으로서 자연스럽게 이용되었다.&nbsp;<br><br>4. 독도 도항은 금지하지 않았다는 주장 : 일본은 17세기말 울릉도 도항을 금지했지만, 독도 도항은 금지하지 않았다. 1696년 울릉도 주변 어업을 둘러싼 한일간의 교섭 결과, 막부는 울릉도로의 도항을 금지했지만, 독도로의 도항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이는 당시부터 일본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생각했음을 보여준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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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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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독도와 관련된 일본측 주장의 근거를 찾아서 정리해 보세요</title>
         <author>teseus7</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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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31일 23시 59분까지 올려주세요.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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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39: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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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8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45627</link>
         <description><![CDATA[<div>1. 고문헌의 우산도가 다케시마라는 증거 없음<br>&nbsp; 조선의 고문헌에서 우산도가 현재의 다케시마라는 한국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br>&nbsp;예를 들면 한국측은,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와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에 우산ㆍ울릉의 두 섬이 (울진)현의 동쪽 바다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 우산도가 다케시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종실록지리지”는 ‘신라시대에는 우산국이라 불렀다. 울릉도라고도 한다. 그 땅은 방백리’(新羅時称于山国 一云欝陵島 地方百里),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일설에 따르면 우산ㆍ울릉은 본래 하나의 섬이다. 그 땅은 방백리’(一説于山欝陵本一島 地方百里)라고 하고 있으며, 이들 문헌에는 ‘우산도’에 관해서는 전혀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지 않으며, 울릉도에 대해서만 기술되어 있다. 우산도가 현재의 다케시마가 아님을 명확히 나타내는 조선의 고문헌도 있다. 예를 들면 “태종실록” 33권의 태종 17년 2월조(1417년)에는 ‘안무사 김린우(金麟雨)가 우산도에서 돌아와, 섬의 산물인 큰 대나무를…헌상하고, 주민 3명을 데리고 왔다. 그 섬의 인구는 대략 15호에 남녀 합하여 86명’(按撫使金麟雨還自于山島 獻土産大竹水牛皮生苧綿子撿撲木等物 且率居人三名以来 其島戸凡十五口男女并八十六)으로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다케시마에는 대나무가 자라지 않으며, 86명이나 되는 사람이 거주할 수 다.&nbsp;<br><br>2.안용복의 진술의 신빙성 결여<br>&nbsp; 안용복은 1693년에 울릉도(당시 일본명 ‘다케시마’)에 출어했다가 오야 집안의 대리인이 일본으로 데려와 송환했으며, 1696년에는 돗토리번에 진정을 올릴 일이 있다며 이번에는 자의로 일본에 왔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 후 안용복은 함부로 국외로 도항했다고 하여 조선에서 취조를 받았다. 취조 중 안용복은 울릉도에서 일본인의 월경을 꾸짖었다, 일본인이 송도(松島)에 살고 있다고 하므로 송도는 자산도(子山島)이며, 이 또한 우리나라 땅이라고 말했다는 등의 진술을 했다. 이 때문에 그 후 조선의 문헌에서 우산도와 지금의 다케시마를 결부시키는 기술이 등장되었다. 한국측은 이 안용복의 취조시의 진술을 다케시마 영유권의 근거의 하나로서 인용하고 있다.<br>&nbsp;이 안용복의 진술은 “숙종실록”의 숙종 22년(1696년) 9월 무인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문헌(숙종 23년 정축2월 을미조)에서는 당시의 조선이 안용복의 행동에 관여하지 않았고, 그의 행동은 조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안용복의 진술 자체도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묘사가 많으며, 신빙성이 결여되어 있다&nbsp;<br><br>3.샌프란시스코 조약<br>&nbsp; 1951(쇼와26)년9월에 서명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조선의 독립에 관한 일본의 승인을 규정함과 동시에 일본이 포기해야 하는 지역으로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조선’이라고 규정하였다<br>&nbsp;러스크 극동담당 국무차관보의 내용<br>&nbsp;미합중국 정부는 1945년 8월 9일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 사실이 그 선언에서 언급한 지역에 대한 일본의 정식 또는 최종적인 주권 포기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이론을(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반영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독도 또는 다케시마 혹은 리앙쿠르 바위로 알려진 섬에 관해서 말하자면, 통상 사람이 살지 않는 이 바위섬은 우리의 정보에 의하면 조선의 일부로 취급된 적이 결코 없으며, 1905년경부터 일본의 시마네현 오키섬 지청의 관할하에 있다. 이 섬은 일찍이 조선이 영유권 주장을 했었다고는 볼 수 없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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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41: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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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308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46035</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div><div>&nbsp; &nbsp;</div><div>도쿠가와 막부부터 독도의 실효지배 주장</div><div>&nbsp; &nbsp;</div><div>1905년 영토편입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했으며 당시에는 주인 없는 무주지라는 점을 확인하고 선점했기에 국제법적으로 정당성을 확보</div><div>&nbsp; &nbsp;</div><div>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2조 a항에서 독도가 누락되었으므로 일본의 영토임이 틀림없다는 입장이다</div><div>&nbsp; &nbsp;</div><div>무엇보다도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취하는 전략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일본이 무주지 선점의 논리를 자신의 영유권 주장의 권원으로 삼았다가 1962년부터는 역사적 권원을 주장하는 것으로 전환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보강했다. 이는 곧 독도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관한 기록들 중 명칭과 고지도에 있어서 약점을 공격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도해면허 발급을 실효적 지배의 상징으로 삼아 안용복의 담판을 중요한 계기로 삼는 우리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이렇듯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몇가지 근거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고 약점은 보완하는 전략적 사고와 목표를 영유권 주장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또한, 일본은 적극적으로 제3자의 견해를 끌어들여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해 객관성을 더하려고 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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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41: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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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22110902</title>
         <author>wasdyy12345</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46469</link>
         <description><![CDATA[<div>&nbsp; 각종 지도나 문헌을 통해 일본은 옛날부터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경위도선을 표시한 일본의 대표적인 지도인 나가구보 세키스이(長久保赤水)의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1779년)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nbsp;<br>&nbsp; 17세기 초에는, 일본의 상인이 에도 막부의 허가를 받아 울릉도로 갈 때 독도를 항로의 설정의 기준으로 , 또한 강치 등의 어획지로 이용했다. 늦어도 17세기 중엽에는 독도의 영유건을 확립했다.&nbsp;<br>&nbsp; 일본은 1905년에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하였고 독도 영유의사를 재확인했다. 일본은 독도를 관유지대장에 등록하였고 한구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했던 사실은 없다.<br>&nbsp;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승인함과 동시에 포기에햐 할 지역으로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조선'으로 규정하였고 한국의 독도 추가 요구에 미국은 일찍이 독도는 조선의 영토로 취급된 적이 없으며 한국측의 주장을 명확히 부정하였다.<br>  일본은 독도영유권에 관한 문제로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제안하고 있지만 한국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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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42:0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46469</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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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74 최병우</title>
         <author>quddn071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50353</link>
         <description><![CDATA[<div><br>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br>첫째는 독도는 근세초기 이래 일본의 영토였다.<br>둘째는 1905년 독도 영토편입까지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해 왔으며, 당시 주인없는 무주지를 일본이 선점하여 영토에 편입하였다.<br>셋째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2조 a항에서 독도가 누락되었으므로 일본의 영토임 이 틀림없다는 입장이다.<br><br>첫 번째 입장에 대해 자세히 보자면, 돗토리 현에 있는 두 가문이 다케시마 (지금의 울릉도)에 가서 벌목과 어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도쿠가와 막부에 제출하였고, 이에 대해 도쿠가와 막부는 1618년 다케시마과 그 연안에서의 활동을 허용하는 도해면허를 발급해 주었다. 그리고 1656년에는 두 가문에 마쯔시마 (지금의 독도) 도해면허를 발급한 바 있다. 이처럼 도해면허 발급을 통해 독도는 일본의 영토였다는 것이 일본의 입장이다.<br><br>두번째 주장은 무주지 선점의 논리로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900년대 초 독도해역에서의 강치 잡이가 본격화되면서 과당경쟁의 상태가 되었다. 그러자 시마네 현 오키시마의 주민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郎)는 안정적인 포획량 확보를 위해 1904년 9월 외무, 내무, 농상무의 세 대신들에게 ‘리양코 섬’의 영토편입과 10년간의 대여를 청원하였다.<br>이에 정부는 시마네 현의 의견을 청취한 뒤, 다케시마를 오키시마청의 소관으로 해도 문제가 없고 다케시마라는 명칭이 적당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에 따라 1905년 1월 각의결정에 의해 그 섬을 오키시마의 관할로 정하고, ‘다케시마’라 이름 붙인 다음 그 취지를 내무대신 이하 시마네 현의 지사에게 전달하였다. 그러므로 이 각의결정에 의해 일본은 자국이 다케시마를 영유할 의사가 있음을 재확인하였다. 거기다 이러한 사실을 고시하고 오키시마청에도 전달하였으며, 당시의 신문에도 게재하여 일반에게도 널리 알렸다. 그러자 시마네 현의 지사는 이러한 지시를 받아 다케시마를 관유지 대장에 등록하고, 아울러 강치 포획을 허가제로 전환하였다. 그 이후 강치 포획은 1941년까지 계속되었다. 이처럼 일본은 당시 무주지였던 독도를 이름까지 붙여가며 선점하였다는 것을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한다.<br><br>세번째 주장의 근거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일본으로부터의 조선의 독립을 확인할 때 일본이 포기해야할 지역으로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조선’ 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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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46: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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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214580 남강희</title>
         <author>2020214580</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52576</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이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일본해에서의 영유권 주장에 관련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일본은 예전부터 자신들이 영토라고 주장해왔는데 그 전에는 영토의 경계가 지금처럼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그닥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센카쿠열도와 같이 그 작은 섬에 분포되어 있는 지하자원과 해양개발이 문제가 예전과 달리 개발할 수 있으며 또한 지상으로부터 12해리는 자국의 영해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 이점을 가져가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 또한 오늘날에는 일본이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는데 일본 자위대가 독도에 대공미사일을 배치할 경우 효과적으로 일본열도를 방어할 수 있는 전진기지가 세워지는 것은 분명하고 또한 일본은 해상자위대의 전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독도에 기항할 수 있다면 일본 측에서는 일본해의 제해권을 더욱 크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은 과거의 일본의 전국지도의 사례를 들면서 자신들이 원래부터 다케시마를 자국의 영토로 간주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또한 식민지 시절에도 자신들이 점유하고 있었고 당시에 그 영토는 본토였다는 것이 일본 측 주장이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한국측이 독도와 이어도의 영토 표기를 한국으로 해달라는 것을 미국 측에 전달하였지만 거절당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다른 국가는 한국 측의 영토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내비쳤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은 이 조약을 근거로 더 강하게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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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49: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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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073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53348</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며 일본의 영토임을 꾸준히 주장해오고 있다. 이에 있어 일본 측의 근거를 살펴보면 일본은 영토주권은 누가 실효적 지배를 하였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에 대하여 일본측에서는 돗토리현 어부들이 독도에서 강치나 전복을 수확하여 일본정부에 현상하는 등 정부의 행정권이 독도에 미쳤기 때문에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하였다. 또한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였으나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할 영토에 독도를 포함하지 않은 것은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해 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일본은 국제법상 독도의 영유권을 근거로 들고 있다. 1905년 1월 일본 각의 결정으로 무주지인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고 동년 2월에 시마네현 고시로 독도를 시마네현 관할 섬으로 공포되었다. 국제법상 인정되는 영토 편입조건 중 하나인 무주지 선점론에 근거하여 독도가 주인없는 땅이며 시마네현 주민의 요청에 따라 일본 영토로 편입되었고 한국은 그 이후 1905년 11월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었고 1910년 8월에 한일합방이 이루어졌기에 독도의 일본 영토로의 편입애는 강제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일본은 다양한 근거를 들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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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49: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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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1407 김현중</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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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일본과 한국은 독도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을 보인다. 한국 측에서는 독도가 우산국 편입 이후로 한국의 실효지배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고, 일본 측에서는 무주지였던 독도를 1905년에 편입하였으나, 일본의 패전 이후 혼란을 틈타 한국이 무단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논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서로가 제시하는 근거들이 논파되지 않기 떄문이다. 각자가 제시하는 근거들은 서로 가지고 있는 중점과 우위가 다르다. 일본측의 근거는 한국이 제시하는 근거들보다 정확성 우위를 갖는다. 독도가 잠깐 인용되는 한국측 근거와는 달리 시마네현 고시 등에서는 독도에 대한 측량이나 좌표 등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기 떄문이다. 한국측의 근거는 일본측의 근거보다 시대적 우위를 갖는다. 한국 측의 근거는 세종실록 지리지 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종실록 지리지나 대한제국 칙령 모두 좌표 없이 석도라는 이름만 제시함으로서 일본측의 주장처럼 이것이 관음도가 아닌 독도임을 확실히 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 한국과 일본 모두 자국의 근거가 상대국보다 우위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양 국 모두 우위를 가지는 부분이 존재한다. 아무래도 역사적 사료만 가지고는 독도 관련 분쟁을 해결하기는 힘들어 보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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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50: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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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0792</title>
         <author>dxuosavz</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54083</link>
         <description><![CDATA[<div> 독도는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영유권 주장으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최근 한일 간의 여러 외교적 문제에 가장 심각하게 대립되는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것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안일 것이다. 더구나 매우 강력하고 중요한 건 우리가 현재 실효적인 지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대한민국의 주장에 긍정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 내 교과서에까지 자기들 땅이라고 잘못된 지식을 확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징의 진실은 무엇일까? 특히 독도 영유권 문제는 한일 간의 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도 끼어있다는 것이다.</div><div> 현재 일본은 대한민국과만 영유권 문제가 얽혀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곳은 중굮과 일본이 영유권 다툼 중인 센카쿠열도이다. 이곳은 일본이 현재 실효 지배하고 있는데, 중국명은 댜오위다오이다. 이곳은 본래 대만의 부속 섬으로 있었지만, 중일전쟁 이후 대만과 함께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가 2차 대전 중 미국이 점령했다. 또한, 다른 한 곳의 영유권 대립 지역은 쿠릴 열도의 일부인 북방 4개 섬인데, 이는 러일전쟁 후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가, 러시아가 1945년 러시아가 사할린에 진출하면서 러시아가 점령했다. 일본 패망 후 러시아가 이 섬을 현재 실효 지배하고 있다.</div><div> 일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독도가 국제적으로 통용되었던 명칭은 리앙쿠르 암초이다. 1800년경 유럽 열강들이 식민지와 무역 확장 및 자원 확보를 위해 탐험선과 상선 등을 세계로 보내던 시기였다. 1849년 프랑스의 포경선인 리앙쿠르호가 동해에서 독도를 발견하면서, 그 배의 이름을 따 리앙쿠르 암초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후 국제항해 지도에서는 독도가 리앙쿠르 암초로 표기되었다.</div><div> 일본이 공식적으로 독도를 영토로 포함한 때는 1905년 1월 18일로, 이름 없는 섬이라 하여 시마네현으로 편입했다. 이후 일본의 주장은 여기서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한반도가 일본의 지배로 들어가는 공식 일정이 1905년 11월 17일로, 11개월 앞서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 그로 인해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지배와 전형 상관없게 된 것이다.</div><div> 이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과 전쟁을 시작했고,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해 미국과도 전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데, 전쟁은 점차 일본의 패망으로 기울었고, 미국을 포함한 서구열강은 전후처리를 고민하게 되는데, 그중 일부가 카이로 회담인 것이다. 이 회담에 참가한 이는 중국의 장제스, 영국의 처칠, 미국의 루즈벨트였다. 열강들은 일본이 탈취한 태평양 여러 섬을 박탈하고 만주, 타이완, 펑후제도 등을 중국에 반환하고 일본이 약취한 모든 지역에서 일본 세력을 축출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이후 일본의 패망은 결정되었고, 카이로 회담에 따른 후속 조치로서 한반도, 대만, 사할린 등이 자유를 얻게 되었으며, 이것이 1952년 4월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다. 이 조약을 간단히 정리하면,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 포기, 일본은 타이완과 펑후제도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 포기, 일본이 1905년 9월 5일의 포츠머스 조약에 의해 획득한 사할린의 일부와 그것에 인접한 도서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 포기와 같다.</div><div> 하지만, 일본은 여기서 문제가 되는 여러 섬들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대만의 부속 도서인 센카쿠열도, 사할린의 부속 도서인 쿠릴 열도 4개섬, 그리고 울릉도의 부속 도서인 독도다. 일본은 이러한 부속 도서들이 그들이 내놓아야 할 섬이 아닌 본래 일본의 영토라 주장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볼 때 그들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카쿠열도는 미국이 점령했다가 일본에게 주었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으나, 북방 4개 섬과 독도는 원래 자기네 땅이었으니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조약 후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에 독도에 관한 그들의 주장에 대해 ‘독도는 어느 나라에 속해야 하는가?’에 대해 문의하였는데, 그에 대해 미국 정부는 1951년 8월 7일 국무성 차관보였던 딘 러스크 명의 의 서한으로 “독도는 조선의 일부로 취급된 적이 없으며 일본 시마네현 관할에 있다.”라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1951년 당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점인 것이다.</div><div> 그러나, 현재에도 그런 입장을 지니고 있는지는 아무도 확인한 바가 없다. 현재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부터 독도에 대한 실효적인 지배를 지속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법상 평화적인 지배를 계속하는 것이 영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라고 판단하여 독도에 대한 외교적 공론화를 피해 왔다. 이 많고 다양한 논란들이 있음에도, 가장 확실한 것은 ‘독도는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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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50: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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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10811</title>
         <author>rudal320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56072</link>
         <description><![CDATA[<div>1951년 9월에 서명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를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할 섬으로 포함하지 않아 독도의 영유권 분쟁이 시작되었다.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 주장을 대표적으로 4가지를 살펴보겠다.<br><br>1. 독도는 1905년에 일본 영토로 편입됐다.<br>1905년에 발령된 시마네 현 고시 제 40호에서 '다케시마는 주인이 없는 땅으로 일본령으로 편입한다'는 내용으로 독도를 무주지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국제법상 인정되는 영토 편입조건중 하나인 무주지 선점론에 근거하여 독도가 주인없는 땅이며 시마네현 주민의 요청에 의해 일본 영토로 편입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 이후 1905년 11월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었고 1910년 8월에 한일합방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독도의 일본 영토로의 편입은 강제성이 없었다.&nbsp;<br><br>2.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한국에 반환해야할 섬들의 이름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다.<br>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1951년 제 2차세계대전 종전 후 승전국과 패전국이 맺은 조약이다. 이 때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는 조약에 명시가 되어있었지만,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다.<br><br>3. 고문헌에 독도의 존재 여부<br>한국의 고지도에 울릉도와 독도가 표시되어 있으나 우산도는 무릉도 바로 옆에 표시되어 있어 현재의 독도가 아니라 죽도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무릉도와 우산도가 서로 멀지 않다."라는 내용을 근거로 세종실록지리지에 표기되어 있는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 바로 옆에 있는 죽도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br><br>4. 실효적 지배<br>17세기 중엽에 돗토리현 어부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울릉도 도해 면허를 발급받고 세금을 내며 울릉도에서 독점적으로 어업을 하였다. 따라서 17세기 중엽부부터 일본의 행정권이 독도에 미쳤다면 국제법상 섬에 대한 영토주권은 어느 정부가 섬을 지속적으로 관리했는가, 즉 누가 실효적 지배를 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섬에 대한 실효적 지배는 영토주권의 표현인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이 실제적으로 행사되었는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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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53: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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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4110282 독도에 관한 일본의 주장</title>
         <author>ynho123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56267</link>
         <description><![CDATA[<div>&nbsp;일본 정부는 2021년 내각관방의 주도 하에 독도 관련 홍보영상을 게재했다. 이는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고 있는데 이 영상에서 일본 정부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첫째 17세기 돗토리번 사람들이 막부로부터 울릉도의 도해면허를 발급받아 독도 주변의 해역에서 어로활동을 해왔다는 점. 둘째 한국 정부가 근거로 제시하는 안용복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는 점. 셋째로 도해 금지령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nbsp;<br>&nbsp;첫째, 17세기 오야,무라카와 양가가 막부로부터 울릉도 도해면허를 발급받아 어로활동을 하며 독도를 중간정박지로 활용했기 때문에 독도의 영유권이 일본에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이와 더불어 당시 조선은 공도정책의 일환으로 울릉도에 도항을 금지하고 주민들을 쇄환하며 울릉도를 방기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도 조선령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br>&nbsp;둘째, 안용복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nbsp; 일본측은 안용복의 1차 도해시 막부가 그에게 울릉도가 조선령임을 인정하는 서계를 주었을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안용복이 일본에 갔을 당시 자신의 신분을 '울릉자산양도감세장'이라 하였는데 이는 조선에는 없는 관직이기 때문에 한국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안용복은 불법 출국의 혐의로 조선 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유배를 갔기 띠문에 한국측의 진술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br> 셋째, 도해 금지령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도해금지령이 울릉도에 대한 도해를 금지한 것이며 독도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 도해금지령은 조선과의 우호를 고려해서 내려진 조치라는 것이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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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53: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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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99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56396</link>
         <description><![CDATA[<div>1.시마네 현의 고시(1905)</div><div> 1905년 일본 어부들이 시마네현에 고기잡이를 위해 독도를 오갈 수 있도록 있게 해달라고 하자, “이제부터 독도가 일본 땅이다”라고 선언한 내용</div><div>&nbsp; &nbsp;</div><div>2. 동헌문헌비고</div><div> 이 문헌에 안에는 울릉, 우산 모두 우산국에 땅이며, 우산은 왜의 소위 마쯔시마에 해당한다고 적혀 있음(여기서 마쯔시마는 독도를 뜻함)</div><div>&nbsp; &nbsp;</div><div>3. 1905년 일본은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며 일본의 영토로 편입함. 이후 세계 제 2차대전에서 패배한 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을 당시 독도를 돌려준다는 조약이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독도는 일본의 땅임.</div><div>&nbsp; &nbsp;</div><div>4. 대한 제국 칙령 제 41호</div><div> 1900년, 대한 제국 정부는 칙령 41호를 공포하여 울릉도를 울도로 바꾸고 도감을 군수로 승격시킴. 이를 통해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이 대한 제국에 있음을 알 수 있음.</div><div>&nbsp; &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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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53: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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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11089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57301</link>
         <description><![CDATA[<div>1. 다케시마(독도)에 대한 인지 - 현재의 다케시마는 일본에서 일찍이 '마쓰시마'로 불렸으며, 반대로 울릉도가 '다케시마' 또는 '이소 다케시마'로 불렸다. 명칭에 대해서는 일시적인 혼란이 있었지만, 일본국이 '다케시마'와 '마쓰시마'의 존재를 옛날부터 인지하고 있었던 것은 각종 지도나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나가쿠보 세키스이'의 "개정일본여지로정전도"가 있다.&nbsp;<br><br>2. 다케시마(독도)의 영유 - 1618년 요나고의 주민 오야 진키치와 무라카와 이치베는 막부로부터 울릉도에 대한 도항면허를 취득했다. 이 기간 중에 다케시마는 항행의 목표 지점으로서, 배의 중간 정박지로서 또한 강치나 전복 잡이의 장소로 자연스럽게 사용했다.&nbsp;<br><br>3. 다케시마(독도)의 시마네현 편입 - 정부는 시네마현의 의견을 청취한 후, 다케시마를 오키 도청의 소관으로 해도 문제 없다는 것과 '다케시마'의 명칭이 적당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근거로 1905년(메이지38년) 1월 각의 결정을 거쳐 다케시마를 '오키 도사의 소관'으로 결정함과 동시에 이 섬을 '다케시마'로 명명했고, 이러한 취지의 내용을 내무대신이 시마네현 지사에게 전달했다. 이 각의 결정에 따라 일본은 다케시마의 영유에 대한 의사를 재확인하였다.&nbsp;<br><br>4.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의 다케시마(독도) 취급 -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한국에게 보낸 의견서에서는 "독도 또는 다케시마 혹은 리앙쿠르 바위로 알려진 섬에 관해서 말하자면 통상 사람이 살지 않는 이 바위섬은 우리의 정보에 의하면 조선의 일부로 취급된 적이 결코 없으며, 1905년경부터 일본의 시마네현 오키섬 지청의 관할에 있다. 이 섬은 일찍이 조선이 영유권 주장을 했었다고는 볼 수 없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다케시마가 일본의 영토임을 인정하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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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3:54: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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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3410</title>
         <author>skckem9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65351</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 측의 독도에 대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br>1.1951년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반환하는 영토에 대해 제주도, 울릉도, 거문도만 명시되어 독도는 해당되지 않는다.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이었던 러스크는 미국 정보에 따르면 조선의 일부로 취급된 덕이 없어 조선의 영토로 볼 수 없다는 서한을 보냈다.<br>2.독도는 이전까지 무주지였으며, 1905년 시마네현 고시로 정식으로 일본 시마네현의 일부로 편입되었다.<br>3.일본은 17세기부터 일본이 영유권를 확립하였으며 지배를 승인했다.<br>4.한국측이 주장하는 신라의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며,  고문의 묘사가 실제 독도와 다르다. 예를 들어 실록에는 울릉도에서 독도를 봤다는 구절이 나오지만 실제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지 않거나 확실히 분간이 되지 않는다. 이후 조선 숙종 시대 안용복의 주장도 국가가 관여한 것이 아니라 조선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며 부정한다.<br>5.한국 측을 상대로 국제 사법 재판소에서 문제가 국제법의 기본원리의 해석을 포함한 영유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인증을 받고자 하지만, 한국이 불리하니 재판을 거부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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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4:03: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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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21569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08565688</link>
         <description><![CDATA[<div>&lt;독도에 관한 일본의 주장&gt;</div><div><br></div><div>한국은 독도 일본은 다케시마라고 불리는 이 영토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일관된다. 그 내용은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국 고유의 영토라고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다.&nbsp;<br><br>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nbsp;</div><div><br>한국에 의한 다케시마 점거는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이 행해지는 불법 점거이며, 한국이 이런 불법 점거에 따라 다케시마에 대해 실시하는 그 어떤 조치도 법적인 정당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한다.<br><br></div><div>일본국은 다케시마 영유권을 둘러싼 문제에 대하여 국제법에 따라 침착하고도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생각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nbsp;</div><div>한국측으로부터는 일본이 다케시마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영유권을 재확인한 1905년 이전에 한국이 다케시마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것을 나타내는 명확한 근거가 제시된 바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br><br></div><div>또한 일본측에서는 육안으로는 한국땅 어느 곳에서도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모든 주장을 나타내고 있으며, ‘석도'가 오늘날의 다케시마(독도)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칙령에는 왜 '독도'라는 명칭이 사용되지 않았으며, 왜 '석도'라는 섬 이름이 사용되었는가, 또한 한국측이 다케시마의 옛 명칭이라고 주장하는'우산도' 등의 명칭이 도대체 왜 사용되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을 함께 제기하며 ‘독도’를 ’다케시마‘ 즉 일본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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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4:03: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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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01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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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간혹 해외 지도를 보다 보면 독도가 죽도, 다케시마로 표기된 경우가 더러 있다. 외에도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며, 일본 학생들은 교과서를 통해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이자 한국의 불법 영토화 라고 배우고 있다. 이렇듯 일본이독도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로는 두 가지를 크게 들 수 있다. 첫째는 일본은 독도가 근세초기 이래 일본의 영토였다고 주장한 것. 둘째는 1905년의 영토편입에 이르기 까지 일본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해왔으며, 일본은 독도 편입을 한 당시 주인 없는 무주지 라는 부분을 확인하고 이를 선점한 것이므로 국제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div><div>&nbsp;일본의 첫번째 주장에 의하면, 일본이 근세 초기를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1600년대 초 일본이 조선에 앞서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毒川정부의 도해 면허 발급이 그것인데, 1612년 津島 번주가 동래부에 자신이 이의 명을 받아 울릉도를 보고자 길안내를 요청했다. 외에도 어업활동 등의청원을 막부에 냈고 허락이 되면서 현 독도의 도해면허가 발급됐다. 이 도해면허를 통해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nbsp;</div><div>&nbsp;두번째 주장은 무주지 선점의 논리다. 1904년 일본 고기잡이인들이 독도에서 강치를 잡으려고 일본 정부에 독도 편입을 요청했다. 이에 정부가 독도를 죽도라고 하고 일방적으로 독도를 편입했다. 이는 &lt;시마네 현 고시 제40호&gt;를 통해 알려지게 됐으며 ‘다케시마는 주인이 없는 무주지이므로 일본령으로 편입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독도가 한국땅임을알았으나 러일 전쟁에서 독도의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 독도 편입을 결정했다. 독도에 망루를 설치한다면 러시아군을잘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1905년 일본의 독도 불법 편입은 대한제국에 아무런 문의나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이뤄졌다.&nbsp;</div><div>&nbsp;외에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2조에서 독도가 누락되었기에 일본의 영토라는 둥의 주장이 있다.</div><div>&nbsp;반면 대한민국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신라시대 지증왕 12년, 이사부로 인해 우산국을 정복하게 하고 신라의 영토로 삼게 했다는 기록과 고려사 혹, 세종실록 등의 사료의 독도 근거로 인해 우리 민족은 독도의 존재를 인식했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도 울릉도에서 독도의 거리가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영토인 沖島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가까우며 맑은 날에는 직접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조항에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에 속한다고 해석할 수 없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1952년 이후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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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0 05:06: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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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10217761</link>
         <description><![CDATA[<div>오늘날에도 일본과 한국이 독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 그 중 큰 이유는 미국이 방해를 했기 때문이다.그리고 독도가 결국 한국의 실질적인 통제를 받는 것은 첫째는 독도의 주권이 한국에 속한다는 이유가 더 충분하고 둘째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더 강하다.독도의 섬 전체의 면적은 사실 매우 작고 섬의 자연조건도 상당히 열악하여 일년 내내 바람이 많이 불고 민물자원이 없고 섬은 험하고 돌이 많고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배가 정박할 수 있는 곳은 섬의 남동쪽에 면적이 제한된 약간의 갯벌뿐이다.이 섬은 열악한 자연 조건과 좁은면적 때문에 원래 무인도이다.하지만 이 섬의 위치는 해양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이어서 섬 주변의 바다는풍요로운 어장이 되었다.</div><div>사실 그 뒤에 숨겨진 역사가 더 안타까운데 이전 수업에서 배운 적이 있었는데 제대군인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조직하여 일본군을 몰아내고 한국 국기를 꽂는 데 성공하며 독도에 주둔하고 있다.일본군의 미친 소란에직면하여 그들은 마침내 대통령의 지지를 기다렸다.그 후의 현재, 일본은 우호 수교 기념일에 외교 발언에서독도는 자기 국토에 속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했고 이 사건을 교과서까지 편찬했다.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는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규정하고 한국이 독도를 점유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이 교과서도 중국이 댜오위다오를 중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영토 문제를 국방백서에 포함시켰다..일본은 뻔뻔하게 행동을 하지만 평화의 깃발을 높이 들고 성의가 전혀 없다.독도 주변의 수산자원뿐만 아니라 양국의 자존심과 미국의 충동질이 있다.미국은 전쟁에서 큰돈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어떠한 의견도 표명하지 않았다.일본이 제멋대로 하는 것을 용인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한일간의 분쟁을 일으켜 양국이 단합과 협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한일의 동남아 문제에 자신들의 개입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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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1 07:21: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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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1450 김태헌</title>
         <author>taeheon9916</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10489882</link>
         <description><![CDATA[<div>오늘날 한일관계에서 가장 민감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인 독도 문제에서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nbsp;</div><div>첫 번째로 일본은 옛날부터 다케시마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고, 한국이 옛날부터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독도는 무주지였고 일본이 먼저 선점하면서 소유했다는 주장이다. 세 번째는 일본측에서 울릉도의 도항은 금지했으나 독도로의 도항은 금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div><div>&nbsp; &nbsp;</div><div>첫 번째 주장에 대해서 일본측 입장을 자세하게 말하자면 현재의 다케시마는 일본에서 일찍이 ‘마쓰시마’라고 불렸으며, 반대로 울릉도를 다케시마로 불렀으며, 이에대해 일본국이 다케시마와 마쓰시마의 존재를 옛날부터 인지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1779년 초판된 개정일본여지로정전도 등에 울릉도와 다케시마를 한반도와 오키 제도 사이에 정확하게 기재하고 있는 지도가 다수 존재한다는 점을 이유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div><div>&nbsp; &nbsp;</div><div>두 번째 주장은 일본의 ‘무주지 선점론’인데, 이는 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 도중 당시 독도의 주인이 없다는 것과 국제법상 무주지는 선점하는 것이 영토의 편입조건이라는 것을 내세워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나, 이는 일본의 1905년 이전부터 독도의 영유권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과 모순되는 점이 있어, 1950년 ‘영유의사재확인’으로 일본정부에서 정정하여 주장을 발표했다.</div><div>&nbsp; &nbsp;</div><div>세 번째 주장은 일본측에서 울릉도의 도항은 금지했으나 독도로의 도항은 금지하지 않았고, 일본측 어부들이 독도 부근에서 어업을 했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의 막부가 1696년 1월에 울릉도는 일본 사람이 정주해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울릉도까지의 거리는 조선에서 가깝고 호키에서는 멀다는 점과 작은 섬을 둘러ᄊᆞ고 이웃 나라와의 우호를 잃는 것은 득책이 아니다는 점에서 울릉도 도항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독도로의 도항은 금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이 점으로 볼 때 일본이 당시부터 일본이 다케시마를 자국의 영토로 생각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nbsp;</div><div>&nbsp; &nbsp;</div><div>위와같은 세 주장을 제외하고도 일본은 돗토리현에 거주하던 어부들이 독도 부근에서 어업을 했었던 기록 등을 토대로 일본의 실질적인 지배를 하고있었다는 주장을 통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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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1 12:35: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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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1378 김유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10646718</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지속적으로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며, 한국이 독도를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br><br></div><div>17세기부터 일본 주민들이 독도에서 어업 활동을 진행해왔고, 각종 지도와 문헌들을 근거로 조선보다 먼저 인식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 1905년 발령된 시네마 현 고시 제40호에서 무주지인 독도를 영토로 편입했기 때문이다. 이는 무주지 선점론에 의하여 국제법으로 인정되는 영토 편입 조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정당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또, 한일병합조약을 통하여 독도를 포함한 조선의 섬들을 일본의 통치 영토로 편입하였다고 주장한다. 또,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한국의 영토 반환에 대한 내용 중 제주도와 울릉도 등이 언급되었지만 독도는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영토가 되었다고 주장한다.&nbsp;<br><br></div><div>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일본은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이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이 불법으로 점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 중심적인 근거들이며, 일본은 독도의 실효지배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비논리적인 행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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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1 14:58: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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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036</title>
         <author>bsc4951</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10720074</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독도에 대한 주장은 몇가지 사례로 대표되는 것 같다.<br>1.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한국에 영토 반환시 독도에 대한 명시가 되어있지 않았다<br>2. 독도는 무주지였고 한국의 무단 점유하고 있다.<br>3. 한국에 독도에 대해 주장하는 내용은 명확하지 않다.&nbsp;<br>논쟁을 살펴보면 독도는 그냥 울릉도 옆의 작은 암초같은 섬이고 이에 대해 특별히 법적으로 명시할 필요성을 못느껴서 조약에 기재하지 않은 것 같다. 독도가 어느 국가에 속하는지에 따라 영해권이 결정되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는 법적 허점을 짚어 국제 관계적 소송을 하여 자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고자 했을 것이고 한일 관계의 우호 관계를 원치 않는 서방국가에서는 일본에 은근히 힘을 실어주며 분쟁을 독려한것 같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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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31 16:06: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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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379</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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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관련한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nbsp;<br>첫 번째로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고대 시기부터 독도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17세기부터 울릉도에 가는 데 있어 경유지로서 독도를 이용하였고, 이는 과거부터 독도가 일본의 영유권에 있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이 삼국사기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과 독도 신라 편입에 대한 내용과 비슷한 맥락으로 바라 볼 수 있다.<br>두 번째로 일본정부는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제 40호를 반포하며 독도를 시마네현으로 편입하였고, 동시에 일본은 독도는 다른 국가가 점령하였다고 볼 수 없으며, 동시에 일본인이 이 곳에 인부를 이동시켜 거주하였기 때문에 일본 영토로 선언한다고 말하였다. 이는 일본 측 입장에서 독도는 무주지였고 최초로 거주하기 시작했던 사람 또한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실효 지배성으로의 독도의 일본영토를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br>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위의 내용과 연결되는데,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의 내용에서 제 2조인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자격, 영유권을 포기한다.'에서 독도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다는 점을 근거로 독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 역시 독도를 일본의 관할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배제시켰다고 말한다. 이는 미국이 독도를 이미 일본이 조선과의 조약으로 합병하기 전부터 일본의 영토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일본의 영토라고 바라보는 것이 맞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br>따라서 일본은 고대 시기부터 독도에 대해 인식하고 있고 한국과의 조약으로 합병하기 전부터 독도를 점거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독도는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의 내용과 관계없이 일본의 영토임을 주장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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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6-01 01:45: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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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760</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11272038</link>
         <description><![CDATA[<div>일한 죽도 문제는 죽도(일본은 죽도, 한국은 독도)에 대한 일본과 한국의 영토 분쟁을 말합니다.이 문제에 대한 견해와 입장은 일본과 한국 사이에 존재합니다.<br><br>일본은 죽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이를 일본의 영토로 분류했습니다.일본은 역사, 지리, 국제법 등의 이유로 영유권 주장을 지지합니다.<br><br>한국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 요구를 고수하고 있으며, 섬에 한국 경찰력을 주둔시키고 있습니다.한국은 역사, 지리, 민의 등의 이유로 영유권 주장을 지지합니다.<br><br>이 논란은 일본과 한국 간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지역 안정에도 도전했습니다.정치 및 경제 분야의 분쟁을 포함하여 긴장이 때때로 발생합니다.<br><br>한일 죽도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측의 자제, 대화 및 협의가 필요합니다.국제사회는 일반적으로 일본과 한국이 평화적이고 이성적이며 건설적인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고 양국 간의 상호 이해와 화해를 촉진할 것을 요구합니다.<br><br>이 문제를 위해서는 공정성, 평등성, 평화적 해결이 매우 중요합니다.모든 당사자는 국제법과 관련 국제 규범을 기반으로 대화와 외교 경로를 통해 상호 합의된 해결책을 도출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br>샌프란시스코 평화조정안이 한일 독도 문제를 직접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외교적 노력과 대화를 통해 상호 이해와 타협을 모색하는 것이 이 논란 해결의 관건입니다.국제사회는 일본과 한국이 평화적이고 이성적이며 건설적인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도록 권장합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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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6-01 03:12: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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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316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nt80ipnuedk261wm/wish/2612550832</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다음과 같은 근거로 다케시마가 일본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br><br>1. 과거 지도와 문헌을 통해 존재 인식<br>: 17세기 초 다케시마 항로를 이용한 어획 활동으로 17세기 중반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 확립<br><br>2.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br>: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포기해야 할 지역으로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조선'으로 규정되었고, 한국의 다케시마 추가 요청은 조선이 영유권 없음으로 그 요청은 거절<br><br>3. 이승만 라인<br>1952년 1월 이승만 대통령에 의한 이승만 라인은 국제법에 반한 일반적 설정으로 국제법상 불법이기에 그 영유권 역시 불법</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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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6-02 04:34: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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