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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반] 6월 민주항쟁 타임라인_4,5,6모둠 by 신민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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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9-16 00:15: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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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배경 1] </title>
         <author>m27d25105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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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987년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하나의 사건이 일어남. 그걸로 인해 서울대 학생 박종철을 잡아 경찰이 물고문과 여러 고문들로 박종철 학생을 사망시키고 박종철 학생을 죽인 범인은 진술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라는 입장을 내놓고서 그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음. 그러고서 어떻게 이 일을 마무리 하였을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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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9 03:02: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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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배경 2] 6월 민주항쟁 | 대통령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를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전개</title>
         <author>m27d251047</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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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ol><li><p>1985년 2 · 12총선에서 신한민주당이 승리한 것을 기점으로 대통령직선제 개헌 요구가 날로 커졌다. 1986년 개헌서명운동의 성과로 국회 내 개헌특위가 만들어졌지만, 여야 간 개헌 협상은 난항을 거듭하였다. 이를 빌미로 1987년 4월 13일 전두환은 대통령 임기 내 개헌을 거부하고, 기존 제5공화국 헌법으로 차기 대통령 선거를 치르겠다는 이른바 호헌조치를 발표하였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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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9 03:15: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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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월 10일/ 6월 11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title>
         <author>m27d251047</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ndysth6e5hb3mv83/wish/3598452640</link>
         <description><![CDATA[<p>1987년 6월 10일 잠실체육관에서 민주정의당 제4차 전당대회 및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개회가 열렸음. 그러나 같은 날 전국에서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 를 개최하여 민주화 시위가 일어남.</p><p> </p><p>시위가 터지자, 치안당국은 전날 있었던 야권의 집회는 '폭력성을 드러낸 법질서 유린행위' 였다고 지적함. 이 날(6월 11일)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600여 명이 경찰과 대치하며 1주일 째 시위를 계속했고, 남대문시장 등 명동 외곽 지대에서조차 산발적인 시위가 벌어짐.</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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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3 00:28: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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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월9일/6월10일 이한열 최루탄 사건</title>
         <author>m27d25105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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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987년 6월 9일 이한열은 6월10일 대회를 앞두고 갑자기 전국에 갑호비상령(경찰이 발령할 수 있는 비상령중 가장 높은 단계)이 떨어진 상황에서도 이한열도 6월10일 대회의 참가를 함. 교문을 사이에 두고는 연세대 정문 앞에서 쏜 경찰의 직격 최루탄의 뒷머리를 맞아 쓰러짐. 그 과정에서 이한열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내일 시청가야하는데.." 이 말이였음. 결국에는 7월 5일에 돌아가시고 이 일을 계기로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건'이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모든 학생들이 분노한 사건이 있었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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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3 00:31: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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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월12일~13일</title>
         <author>m27d251045</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ndysth6e5hb3mv83/wish/3598463161</link>
         <description><![CDATA[<p>6월12일: 6월 10일 대회 끝에 명동성당에 들어간 시위 농성자들은 도로로 진출해 시위를 벌였고, 서울 도심에서도 시위가 터졌다. 하지만 600명에서 350명으로 숫자가 줄었으나, 경찰의 해산에 불구하고 계속 시위를 하였다.</p><p>6월13일: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당정 회의를 잇달아 열어서 6.10 대회 이후에 계속 되고 있는 시위 사태에 대처 방안은 논의하였으며, 사회 혼란 행위에 대해서 강력히 대응하기로 결정 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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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3 00:35: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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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월 14일</title>
         <author>m27d251051</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ndysth6e5hb3mv83/wish/3598479985</link>
         <description><![CDATA[<p>명동성당에서 자리를 떠나지 않고 굳게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학생들은 오전 성당 밖으로 나와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음. 하지만 10시 20분 이후부터는 시국 토론회를 가졌으며 오전, 오후 토론이 끝난 뒤에 성당 광장에서 모두 충돌없이 곧 해산했음. 그 날 오후 명동성당 주변에 모여든 서울시내 대학생 2000여 명은 상업은행 본점, 롯데쇼핑, 사보이 호텔, 중앙극장 등 명동 일대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음. 경찰은 최루탄 발사를 자제했으며, 시위대 역시 돌과 화염병을 던지지 않고 이전과 같은 격렬한 시위는 없었음.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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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3 00:44: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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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월15일</title>
         <author>m27d251051</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ndysth6e5hb3mv83/wish/3598481270</link>
         <description><![CDATA[<p>그들은 오후 1시 30분 농성을 해산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고, 오후 2시 성당 입구에서 해산식을 가졌음. 그러나 서울을 비롯한 지역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계속되었고, 특히 서울의 경우 명동을 비롯한 시내 일부 대학에서 명동 사태를 지지하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계속됐고 부산, 대전, 대구 등 일부 지역에서도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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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3 00:45: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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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월 18일~6월 19일</title>
         <author>m27d251045</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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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6월18일: 어느 날 부산 좌천동 고가도로에서 당시 27살이던 이태춘이 경찰의 최루탄을 직격으로 맞아 남구 대연동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병원의 시설 미비로 인해 오전 12시 봉생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24일)</p><p>이 소식을 듣게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와 다른 시민들은 분노가 생겨 이날의 평화대행진에 회사원들도 같이 시위에 참여하게 되어 6월 항쟁은 학생 항쟁에서 시민 항쟁으로 됬다.</p><p>6월19일: 부산에서는 10개 대학 맟 3개의 전문대 학생들이 시내로 몰려나와 경찰 기동대를 무장해제시키고 진압장비를 탈취하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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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3 00:45: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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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월 16일/ 6월 17일</title>
         <author>m27d251047</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ndysth6e5hb3mv83/wish/3601034975</link>
         <description><![CDATA[<p>명동성당 점거 농성에 이어 시위가 계속되어 경남 진주에서는 파출소 4개에서 화재가 발생했음. 치안 본부에 따르면 당일 전국 57개 대학에서 4만여 명이 교내 시위를 벌였는데 주로 부산과 진주, 대구 지역에서 과격한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집계되었음. (16일)</p><p>전날에 이어 시위를 이어가던 진주 경상대 학생들이 진주시내 진입을 시도해 파출소를 불태웠음. 이 초유의 사태에 경찰특공대 투입, 시위대를 겨우 해산시킴. 하지만 그날 밤에 시위대가 다시 뭉쳐 경전선 철도를 점거하는 바람에 철도 운행이 일시 중단되었음.(17일)</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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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4 04:33: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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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월 29일</title>
         <author>m27d251047</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ndysth6e5hb3mv83/wish/3604942290</link>
         <description><![CDATA[<p>노태우는 전두환에게 직선제 개헌안을 수용할 것을 건의하여 승락을 받아냈다. 이후 노태우는 야당과 재야 세력이 주장해온 헌법 개헌 등의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요구를 대폭 수용하고 직선제 형태의 대통령 선거를 골자로 하는 내용의 8개항의 시국수습방안(6·29 선언)을 발표함.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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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6 01:54: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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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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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항쟁 이후</title>
         <author>m27d251047</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ndysth6e5hb3mv83/wish/3604947043</link>
         <description><![CDATA[<p>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의 6·29 수습 선언 이후 전두환이 몰락하게 됨. </p><p>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16년 만에 대통령선거가 직접선거로 치러졌지만,  김대중과 김영삼 대통령후보 출마를 놓고 공식 선거전을 앞둔 1987년 10월에 분열을 일으킴.</p><p>결국 6월 항쟁의 중심 역할을 했던 민주세력의 통합이 불발되었고,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태우 후보가 당선 되었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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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6 01:57: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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