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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2-1 일본사회문화의 이해(2) by 김태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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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열린 마음가짐을 담아 만듦</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2-04-27 02:04:53 UTC</pubDate>
      <lastBuildDate>2026-04-08 03:29:21 UTC</lastBuild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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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철완아톰으로 보는 전후 일본</title>
         <author>teseus7</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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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1963년판 시청.&nbsp;<br>https://www.youtube.com/watch?v=YeJj4y9pE1s<br>1980년판 시청<br>1화 https://www.youtube.com/watch?v=jIcBwDn91eI<br>2화 https://www.youtube.com/watch?v=9yHq1EUVzN4<br>3화 https://www.youtube.com/watch?v=XKJIp9gjjTc&nbsp;<br>영어자막<br>https://www.youtube.com/watch?v=KDES29-OqwU<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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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27 02:06: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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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시마 유키오로 보는 일본</title>
         <author>teseus7</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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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우국https://www.youtube.com/watch?v=bO-w-cn-pJM&amp;t=1705s<br>미시마-그의 인생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IC60z3PaJSsJcldSkyekyThjGt0rly99?usp=sharing&nbsp;<br>영화 11.25 자결의 날 https://www.youtube.com/watch?v=95VUlMPf5i0&amp;t=2248s</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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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4 02:10: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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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8 우국 감상평</title>
         <author>ocy200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69877867</link>
         <description><![CDATA[<div>&nbsp;대사도 하나 없는 28분짜리의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모르겠으나, 보고 난 후의 찝찝함은 남아있었다. 우국이란 영화는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인 우국을 본인이 연기하고 감독을 한 작품이다.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한 할복자살을 감행하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인데, 미시마 유키오는 영화 속 할복한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몇 년 후 할복자살을 하였다고 한다.&nbsp;<br><br></div><div>&nbsp;영화의 3번째 챕터에 나타난 할복하는 장면의 연기는 실제 상황이라고 느껴질 만큼 생생하고 잔인했다. 또한, 이를 바라만 봐야 하는 부인의 허무한 표정 연기도 잊을 수 없었다.&nbsp;</div><div>&nbsp;4번째 챕터에서 부인은 남편이 할복한 공간의 옆방으로 가, 오랜 시간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에선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다. 분명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였지만, 알 수 없는 미소를 띄고 있어 어딘가 기괴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도 남편처럼 할복을 한 후, 그의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nbsp;<br><br></div><div>&nbsp;천황을 위한 쿠데타인 2.26사건이 실패로 흘러간 후 할복하는 부부의 이야기에선 감독의 천황주의적인 시선이 담겨있다고 느껴졌다. 실제로 작가가 우익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편견의 시선으로 영화를 관람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작가가 가진 사상을 모르고 영화를 봤다면, 더욱 혼돈의 영화로 남았을 것 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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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4 13:10: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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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국 감상평 강영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1124723</link>
         <description><![CDATA[<div>대사 한 마디 없는 30분 가량의 짧은 단편영화인 데다 벌어지는 사건도(비록 하나하나가 강렬하지만) 많지 않은 이 작품에 대한 세세한 감상을 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텍스트로 제시하니만큼 온전히 영화만으로 감상을 논하기는 힘들고 원작 등 영화 바깥의 이야기를 찾아봐야 했다.</div><div>원작자이자 감독인 미시마 유키오가 주연한 다케야마 준위는 친구들이 저지른 반란을 진압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그는 충성과 의리라는 두 가치의 충돌을 겪고 도저히 두 가치를 함께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신혼이라고 자신에게 반란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지 않은 친구를 원망하기도 하면서 그는 대립하는 두 가치의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복을 택한다.</div><div>소설의 배경이 된 2.26 사건은 천황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일어선 군인들이 천황의 이름으로 반란군으로서 진압된다는 다소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지는 사건이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이 사건을 일으킨 천황파에게, 나아가 사무라이 정신에 호의적이라는 것은 작가의 훗날의 행보에서도 충분히 읽히는 일이다.</div><div>문화권이 다른 한국인으로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와 같은 사무라이 정신이다. 죽음을 숭상하고 할복자살을 명예로운 행위처럼 바라보는 관점은 여러 매체에서 수없이 접하면서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게는 그저 명예에 흠집이 가 받게 될 비판을 견딜 수 없어 저지르는 도피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죽은 뒤에는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없는데 그것이 어떻게 명예를 지키는 행위이며 '우국'이라는 것인가? 비록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읽은 적은 없지만 그가 무척 재능 있는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재능이 한국인으로서는 입에 담기도 껄끄러운 군국주의를 부르짖는 데에 쓰였다는 점일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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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5 09:01: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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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국 감상평 2020113218 </title>
         <author>mika6565jk</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1340381</link>
         <description><![CDATA[<div>내 22년간 삶의&nbsp; 처음에 자막도 대사도 없는 작품을 봤다. 솔직히 말했어 나 한테는 괘 충격적이었다. 처음에 접하는 스타일이라 어떤 기준을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고, 스토리 소개를 안 읽으면 아마도 내가 모르며 깊게 이해가 안 갈 거라가고 생각하다.&nbsp;</div><div><br></div><div>전체적으로 보면 이 제품은 성공한 제품이다. 본 후에 이 제품을 출연한 남자가 감독부터 예슬시도까지 참여하는 것이 알게 된다. 내가 보기에 미시마 유키오라면 자신이 납득할때까지 끝까지 다지는 것이고 믿는다. 작품을 보면 한칵한칵&nbsp; 따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다. <strong>얼굴 표정의 클로즈업 장면， 눈만 보이는 장면 , 카메라의 원근 조절 , 촬영 기법이 다 신경이 많이 써서 나오는 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nbsp;한 초 한 초가 기가 막힌 정도 아름답다.</strong></div><div><br></div><div>영화는 미시마가 천황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우익적 정치이념 외에도 문학작품에서 표현되는 의식의 아름다움, 육체의 아름다움, 정욕의 아름다움, 죽음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보여준다. 영화 우국은 미시마 유키오의 미학 사상을 영상화한 전시라 할 수 있다.</div><div><br></div><div>일본의 무사도 정신에서 절복은 영광의 죽음, 신성한 죽음이라는 미시마의 죽음의 미학에 딱 들어맞는 '미(美)'의 신성함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강한 의식감이 돋보여야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서예 서화, 감실, 사무라이 칼 등은 고전적 미적 감각과 사무라이 정신의 의식화를 상징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자살 직전 아내와의 환애는 마지막 육체적 쾌감을 경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죽음의식의 한 부분으로서 신성화라는 의미를 지닌 부부간의 작별인사 방식이며, 무사도 정신 속의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div><div><br></div><div>의식, 육체, 정욕, 미의 형식이 겹겹이 이어졌고 결국 미시마 미학 사상의 최고 단계인 죽음으로 승화됐다.</div><div><br></div><div>나는 자살부분이 2배 속도로 봤다. 예슬에 대한 몰라보는 행동이지만 너무나 피비린내&nbsp; 나서 저는 못봤지만 그래도 예술감이 엄청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div><div><br></div><div>나는 미시마 유키오가 매우 복잡한 인격과 자웅동체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여성의 섬세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남성의 강인함과 강직함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 행위, 심지어 그 자체가 예술이고 그의 죽음까지도 예술이다. 그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파괴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결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사상, 심리는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으며 그의 작품도 그의 사람처럼 요염한 빛을 발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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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5 12:36: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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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국 감상평 2018113415 주찬</title>
         <author>iltycb</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2348376</link>
         <description><![CDATA[<div>&nbsp; &nbsp;우국은 미시마 유키오 자신이 직접 주연한 자신의 소설을 각색한 매우 특별한 영화이다. 영화는 30분밖에 안 남았고 흑백화면의 묵극 형식을 채택하고 있다. 소리가 없기 때문에 화면의 충격감이 더 강해진다.<br>&nbsp; &nbsp;주인공이 있는 시기는 일본이 서구 문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시기다. 이로 인해 그는 일본의 전통문화 (천황에 대한 충성) 를 계승하면서도 불가피하게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이런 모순은 그로 하여금 독특한 정신적 기질을 갖게 되었다. 일본의 고전주의는 피비린내와 죽음을 추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비장하고 잔혹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주인공은 천황에 대한 충성을 어기고 싶지도 않고 자신의 우정을 포기할 수도 없다. 이런 진퇴양난의 경지도 자살의 완벽한 이유가 되었다. 이 배경에서 주인공은 죽음을 선택했고, 이런 죽음은 일본 문화에서 극도의 추앙을 받고 있다. 그는 국가를 위해 의리를 위해 죽음을 택한 영웅이다. 이 점은 주인공의 아내에게서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녀는 남편이 자살할 것을 알고 반대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가 빛나는 영웅이라고 생각했고, 자원해서 그와 함께 죽었다. 주인공의 마지막 절복하는 화면도 무사도 정신에 대한 일본의 극도의 추구를 보여 주며 자살 전 성애와 자살의 화면도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주인공이 자살한 뒤 아내가 자살한 그 피빛도 비장한 예술미학으로 가득 차 있다.<br>&nbsp; &nbsp;이 영화를 보고 나서 미시마 유키오의 현실 자살을 연상하게 되면서 이 영화가 그는 자신의 삶을 위해 선택한 결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nbsp; 미시마 유키오에게서&nbsp; 천황과 무사도 정신에 대한 일본인의 열광적인 숭배와 일본 문화에서만 볼 수 있는 잔혹함과 비장한 아름다움을 보았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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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6 03:05: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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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53 우국 감상평</title>
         <author>cord20010306</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2402287</link>
         <description><![CDATA[<div><br><br>많은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접하며 다양한 형태와 특징을 가진 작품을 많이 접해보았지만 30분의 러닝 타임 동안 한 마디의 대사조차 없는 영화는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찰리채플린 등 1920년 전후의 무성영화들을 즐겨 본 입장으로서, 무성영화에는 익숙했지만, 그 때 당시의 영화들은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무성영화로 개봉을 한 것이고, 우국은 1966년 작품으로 유성영화로 개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성영화로 제작한 점에서 여타 다른 무성영화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필자는 유무성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무성영화를 선택한 것에서 조금 의아함이 느껴졌다. 과거는 기술의 제약으로 인해 무성영화를 제작했고, 관객의 이해를 최대한으로 돕기 위해 작가들은 대사를 자막으로 삽입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 그러나 우국은 감상하며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 친절함이 다른 무성영화들 보다 결여되어있다고 생각했다.<br><br>'우국'은 혼인한지 반년도 되지 않은 군인이 자신의 부인과 할복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을 그려낸 작품이다. 할복의 원인은 2.26 사건의 발발과, 남편의 측근들이 반란사건을 일으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nbsp;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을 진압할 수 없었던 다케야마는 할복을 택한다.<br><br>사실 여러 작품을 수업에서 접하며 일본의 무사도 정신, 특히 사무라이의 할복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였다. 그러나 시대와 문화가 다른 필자로서는 아직도 무사도 정신과 할복에 대해선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사무라이의 세계에서 할복은 명예로운 행위이며 무사의 명예를 존중하는 사형제도라고 여기어 지지만, 필자는 할복이 명예를 존중하는 행위라는 점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분명 다케야마는 할복 이외에도 반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점에서 우국을 감상하며 가장 중심이 되는 다케야마의 할복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br><br><br><br><br><br><br><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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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6 04:26: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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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49 소유란 - 우국</title>
         <author>happycow20</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2451777</link>
         <description><![CDATA[<div>약 30분의 시간 동안 대사 한 마디 없는 흑백 영상을 보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아서 새롭게 다가왔다. 미시마 유키오 주연의 &lt;우국&gt;은 할복자살을 중심 매개로 하여 미시마 유키오 자신이 직접 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당시 일본 사회는 무사도 정신이 팽배한 시기였으며 사무라이들에게 가장 명예로운 죽음은 할복자살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할복자살 외에는 당시의 사회가 달리 선택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상 속에서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의&nbsp; 아내와 함께 삶의 마지막을 아름답고도 잔인하게 장식한다.<br><br>대사 없는 흑백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전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연출 능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러한 점에서 &lt;우국&gt;은 전달력이 좋은 작품이었다. 죽기 직전 부부가 나눈 육체적 쾌락이 할복자살으로 넘어가는 스토리 라인은 그 성격이 극명하게 대비되면서도 하나로 연결되는 '사랑'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부분은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하는 과정을 가감없이 잔인하게 보여준 장면과, 그러한 남편을 보던 아내의 표정이었다. 슬픔이나 고통과 같은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나 있는 것처럼 보여 시청자로 하여금 더욱 이입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br><br>미시마 유키오는 실제로 영화에서처럼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전에 감상했던 작품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졌었는데, 과연 당시 일본 사회에서 할복자살이 지니는 의미는 어느 정도였을까.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단순히 '이해하기 어려운 잔혹한 문화'에 불과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으로는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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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6 05:58: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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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110118 유은우</title>
         <author>6cnb57g7r5</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2538333</link>
         <description><![CDATA[<div>미시마 유키오의 ‘우국’<br><br>우선 20분의 분량 안에 하나 이상의 플롯도 없이 기억에 남는 영상을 만들기란 어렵다는 것을 상기하고 싶다. 이번 학기 일본 사회 문화를 배우며 ‘할복’에 대해서 많이 언급했지만 적나라한 할복 장면은 글로 배운 것보다 더 자극적이고 이해하기 쉬웠다. 극 중 남성과 아내인 여성이 할복을 통해 동반 자살을 한다. 본인은 이것을 보고 일본의 남성주의가 얼마나 극단적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남편의 사상을 따라가는 것, 즉 남편이 아내에게 한 사상적이고 정서적인 교육 또한 폭력이 될 수 있구나 생각했다. 현재 아동 인권 논의로 부모와 동반 자살이 아닌 부모의 일방적 살해라고 보아야 하는 지점이 있는데 본인 또한 우국의 할복도 일방적 살해라고 생각한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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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6 07:44: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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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303</title>
         <author>hsuwei85</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2679833</link>
         <description><![CDATA[<div>미시마-그의 인생<br><br>영화 4개 부분으로 형성되어, 앞에는 미시마의 세 소설 '금각사' '교코의 집' '분마'의 내용을 시각화하고 보여준다. 마지막은 미시마 유키오의 주요 생애와 1970년 11월 25일에 사건의 전말을 다룬다. 영화의 소개에서 이해하면, 이 4막은 각각 진리와 여성에 대한 미시마의 시각(미), 예술적 관점, 군사적인 활동, 검과 붓의 통일을 묘사한다.</div><div>&nbsp;</div><div>소설을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영화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각편에서 각 시기의 미시마 모습을 담고 있다. 미의 추구, 전통의 무사정신과 일본민족주의 등. 그에 대한 이념과 생각을 조금이라도 안 것 같다. 영화를 보고 개인적으로 미시마 유키오는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이 아주 커다란 것을 느꼈다. 그의 행동을 인해서 영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미친놈이 아닐까 싶기도 한다.</div><div>&nbsp;</div><div>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역시 할복전 연설하는 장면이었다. 미시마가 열정적으로 자위대원들에게 자신의 이상을 말하려고 하는데, 그들은 듣고 싶지도 않고 내리라고 그랬다. 이어 미시마가 할복하였다. 이 장면은 잔인하고 정확하게 미시마 유키오의 이상이 무자비하게 짓밟히는 것을 재현했다. 미시마는 부정을 당한다는 것보다 완전히 “거절”을 당한 것이다. 계회대로 무사정신을 대표한 할복으로 자결했지만 미시마 유키오에게 가장 비참한 결말인라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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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6 10:15: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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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국 감상문 2020110277 김여경</title>
         <author>yeokyoeung</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2774901</link>
         <description><![CDATA[<div>&nbsp; 이 작품에 대해서는 너무 충격적이라는 말 밖에 생각이 안 날 정도로 감상 직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대사 하나 없이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음산한 배경 음악과 함께 두 명의 배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이러한 점이 이 작품을 더욱 기괴하게 느껴지게 했다. 특히 부부의 자살 장면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힘들고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작품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이해가 되었지만, 도대체 작가가 무엇을 전하고 싶은건지는 와닿지 않았을뿐더러 감정이입도 안 되었다. 할복 전 진하게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도대체 어떤 감정선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며 기괴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보통 그러한 장면이라면 슬프거나 애절하거나 하는 감정이 들 것 같지만 감상하는 내내 무엇을 전하고 싶은 건지에 대한 의문점만 끊임없이 들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마주한 할복 장면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스스로 배를 긋기까지의 준비 과정과 배를 그어 피가 철철 나며 내장이 튀어나오는 장면을 굉장히 길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결말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잔인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부인이 입은 순백의 옷에 피가 튄 모습과 함께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데, 눈물을 흘리는 부인의 얼굴에서는 슬픔이라는 감정보다는 경악에 가까운 감정이 느껴졌던 것 같다. 남편이 자살한 칼에 묻은 피를 혀로 햝는 장면과 죽은 남편에게 입을 맞춘 후 끝내 그 칼로 스스로의 목을 그어 자살하는 장면 역시 기괴하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nbsp;<br><br></div><div>&nbsp; &lt;우국&gt;은 천황을 위한 쿠테타였던 226 사건에 실패한 후 할복하는 이야기인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직접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의 배경을 알고 나니 더더욱 작품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루스 베네딕트의 &lt;국화와 칼&gt;에서 일본의 충과 할복에 대한 내용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사랑하는 부인과 함께 동반자살을 할 정도로 천황에 충성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기도 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히 있겠지만 내게는 이해하기 난해한, 어려운 작품이었던 것 같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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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6 12:07: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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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lt;우국&gt; 감상평 2020110250 이다현</title>
         <author>leedahyeon011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2895695</link>
         <description><![CDATA[<div>&nbsp;영화 &lt;우국&gt;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다소 당황스러운 작품이었다. 약 30분 정도의 영상에는 각 장이 시작될 때 잠깐 보여주는 글과, 한 남성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보여주는 행동 외에는 감독이 말하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묘사가 없다. 대사는 일절 없으며, 극적인 포인트도 없는 클래식 음악만이 청각적 요소를 채우고 있다. 줄거리만 떼어 본다면 한 일본 장교가 집에 돌아오고, 아내와 육체적 사랑을 나눈 후, 할복으로 자살하고 아내도 자살로 그 뒤를 잇는다는 내용이다. 플롯보다는 예술적인 영상 기법으로 에로티시즘과 잔혹함, 그리고 몽환적인 느낌이 눈에 띄며, 영화라기보단 하나의 행위예술을 보는 느낌이었다.</div><div>&nbsp; &nbsp;</div><div>&nbsp;2.26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의 중심 요소를 뽑으라면, ‘죽음’일 것이다. 사건의 실패를 한탄하는 듯한 굳은 얼굴로 등장하는 남자는 집에서 자살, 그것도 아내와의 동반이자 할복 자살을 자진해 선택한다. 배에 칼을 꽂아 가로로 그으면서, 장기가 튀어나오고 입에 거품을 무는 고통을 느끼면서까지, 그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끝내 자신의 목을 베며 자살을 마친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잔혹하고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이지만, 미시마 유키오는 그것이 이상적인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천황을 위해 죽는 모습을 그는 사회에, 그리고 자신에게 요구했던 것이다.</div><div>&nbsp; &nbsp;</div><div>&nbsp;현대사회의 가치로 본다면, 그것이 무슨 목적이든 생명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서, 미시마 유키오는 다소 비정상적인 가치관을 가졌던 사람으로 평가될 수 있다. 더욱이 극우 사상에 민감한 우리의 관점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단순히 미시마 유키오라는 사람을 본다면, 그의 죽음의 미학은 자신의, 또 사회의 가치를 위한 의미를 둔 죽음에 중점을 두었다. 만약 그 대상이 사회 전반이 인정하는 정의였다면 그는 대단한 열사이자 영웅으로 칭송받았을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잔혹한 죽음에서 예술성과 수려함을 느낀 것은, 그가 그의 가치에 무서울 정도로 순수했으며 강고했기 때문이다. 대사도 없고, 등장인물은 둘뿐이며, 방이 아니라 어딘가의 무대같이 공허한 느낌을 주는 배경은, 그가 이 모습대로 삶을 끝마치기 직전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좁은 관점으로 다소 편견을 가지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의 아름다움. 비록 그의 정치적 성향은 비평할 수 있다 해도, 그가 배를 그어 드러내고자 했던 것, 뿜어져 나온 혈액이 그가 존재한 사회에 그 자신만이 가능한 수채화를 남기는 것은 아름답다 하지 않을 수 없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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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6 13:39: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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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210988 신민호 &lt;미시마, 그의 인생&gt; 감상평</title>
         <author>minhomino0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3020277</link>
         <description><![CDATA[<div>&nbsp;미시마, 그의 인생은 일본인 감독이 참여한 작품이 아닌 미국인 감독이 참여한 영화이다. 영화는 외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천재 작가라고 불리우다 우국을 울부짖다가 할복 자살을 한 한 인간으로서의 미시마 유키오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br><br>&nbsp;총 4장으로 구성된 영화는 미시마 유키오의 대표작들(금각사, 교코의 집, 분마)을 영상화하여 보여주고, 다양한 색감(흑백과 컬러의 교차 등)과 연극적 요소를 가미하여 지루할 수도 있는 영화의 내용을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br><br>하지만, 영화를 보며 과연 그는 자위대 총감실 점령 사건(미시마 사건)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이상을 펼칠 수 밖에 없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nbsp;<br>"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다. 미시마는 전형적인 펜을 든 사람이었다. 물론, 검도를 수준급으로 하는 그였지만, 그의 본업은 작가였으며 아사히 신문에서 선정한 지난 일본 1000년간의 위대한 작가 11위에 위치한 이른바 천재작가였다.<br>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전공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이상을 펼쳤다. 아니, 펼치지도 못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br><br>과연 그에게 있어서 그러한 방법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을까하는 의문이 들게하는 영화였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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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6 15:00: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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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309 (우국) 감상평</title>
         <author>songkim158a</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3699394</link>
         <description><![CDATA[<div>이번에 접하게 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이라는 작품은 실제로 작품 속 주연인 다케야마 중위의 역을 미시마 유키오가 직접 연기를 한 작품이다.대략 30분 좀 안되는 러닝타임동안 아무런 대사도 나오지 않는 작품이다. 솔직히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대사가 없어서 그런지 묘한 느낌을 받았다. 대사가 없으면 집중이 잘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집중이 더 잘 되고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 것 같다.&nbsp;<br><br>"우국"은 2.26 사건을 배경으로, 한 군인이 '우국지정'을 말하며 혼인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아내와 함께 할복하여 삶을 끝내는 내용이다. 시간적 배경이 되는 2.26 사건은 육군 장교들이 일으킨 군부반란 사건이다. 여기서 다케야마 중위는 충성과 의리라는 양날의 감정에 어찌 할 줄을 모르게 된다. 그의 측근인 동료들을 배신할 수 없던 그는 천황에 대한 충성 또한 배신할 수 없었기에 그가 내린 결론은 할복이었다. 일본에서 할복은 사무라이 정신으로 고귀한 행위로 보여진다. 그들은 할복으로 자결하는 것이 명예를 존중한 사형제로 숭고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작품 마지막에 다케야마 중위가 할복을 하려하자 그의 아내 또한 같은 뜻을 같고 함께 할복하여 생을 마감하며 작품은 끝이 난다.<br><br>필자는 아무런 대사도 존재하지 않는 "우국"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의도치 않게 감정이 격해졌다. 작품에 나오는 다케야마 중위와 그의 아내는 이제 막 결혼을 한 신혼부부이며, 심지어 6개월 채 되지 않는 사람의 절정기에 있는 젋은 부부이다. 하지만 2.26 사건으로 인해 할복하는 젋은 부부를 보면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필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복해야 하는 그것도 6개월 채 되지 않는 신혼부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있어서 너무나도 속상하고 보고 난 뒤에 감정이 가시지 않았다. 이에 필자는 과연 그들이 말하는 명예로운 사형제도인 "할복"을 선택했어야만 하는건가...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문화의 차이도 존재하기에 그저 안타깝고 속상한 기분이 들었던 작품인 것 같다.&nbsp;&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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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7 07:27: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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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215472 윤건희 우국 감상평</title>
         <author>jkheeyoon</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3703987</link>
         <description><![CDATA[<div>군부 쿠테타 사건을 소재로 한 군인 부부의 동반자살을 다룬이야기고 보는중 선정성 잔인함 으로 많은 오해와 논란이 있었을꺼 같았다.</div><div>&nbsp; &nbsp;</div><div>2.26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div><div>&nbsp; &nbsp;</div><div>일단 이 작품은 28분에 시간동안 한마디도 대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영상은 나는 처음 경험했는데 정말 복잡미묘한 기분이 든다. 예전에 마블 영화중에서 조커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거기서도 주인공의 복잡미묘한 감정이 나오는데 비슷한 느낌이 드는 기분이 들었다. 우국은 총 1챕터에서 4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1~3장은 할복을 하기전까지 마음가짐 마지막 부인과의 관계를 보이는거같고 마지막 4챕터에서는 할복을 하는 과정이 묘사된다. 나는 그중에서 마지막 할복 장면이 가장 인상 깊다고 느껴진다. 마지막 할복장면은 정말 느리게 할복을 하는 것이다 슬로우 장면처럼 죽음은 단순히 생의 종결이 아니라 장렬한 하나의 의식이라고 생각하는거 같다 죽는 방법 중에서는 할복이라는 방법은 매우 고통스럽고 하기 힘들다고 알려지는데 이 방식을 통해서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줄라는 것 같았다. 마치 숭고한 고통처럼 말이다. 미사마 유키오의 작품 유국은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다고도 생각이 들었다. 매우 많은 내용을 작품안에 담았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의 따라 작품의 해석이 달라질 작품의 해석이 달라질꺼라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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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7 07:41: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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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2 김기려 &lt;우국&gt; 감상평 </title>
         <author>Giryo</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3776836</link>
         <description><![CDATA[<div> 현대 관점에서 봤을 때는 조금 잔인한 내용이어서 보기가 힘들었다. 미시마 유키오란 사람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 사람이 우익이라던가 천황주의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 배경을 먼저 듣고 보니까 이 영화를 끝까지 볼수 있었던 것 같다. 현대에 살고 있는 한국인인 나에게는 힘든 영화였다. 하지만 미시마 유키오란 사람을 잘 표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백에 대사까지 없앤 연출로 우리는 등장인물들에게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우리는 끔찍함을 느꼈지만 미시마 유키오는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 같다. 솔직히 할복에 대해서 잔인한 행동이라고 생각을 하기에 내용에 대해 좋은 말은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책이나 영화를 공부하고 출품하는 것에 대해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nbsp;</div><div><br></div><div>이름이 익숙했는데 옛날에 &lt;금각사&gt;라는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또한 기괴해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상심리가 나힐리즘으로 변해가는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꼭 자살할거라던 책 속 주인공은 모든 걸 파괴시키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그 책도 아직까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미시마 유키오는 ‘죽음’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nbsp;모든 작품이 끝에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것 같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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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7 10:45: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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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국 감상평 2021110261 서가은</title>
         <author>geseo0523</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3894869</link>
         <description><![CDATA[<div>    30분 정도로 짧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하다.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으로 그가 직접 다케야마 중위를 연기하고, 작품 내내 대사나 효과음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고 클래식 음악이 나온다. 내용도 배경지식이나 후에 설명이 없었더라면 이해하기 힘들고, 거북하기만 했을 것이다. 극 속 다케야마 중위는 아내와 육체적인 관계를 가진 뒤 할복한다. 아내도 그를 이어서 할복한다. 이는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2.26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nbsp;</div><div>    무사도 정신이나 할복에 대해서는 수업 시간에 다양한 작품을 접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할복하는 장면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들은 할복한다는 것을 자신의 충성심을 나타냄과 동시에 신성한 것이라고 여겼겠지만 보는 사람으로서는 잔인하고, 끔찍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미시마 유키오는 스스로 자신의 배를 갈라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반감을 샀고,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div><div>    할복하는 장면에서 할복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어떤 의식이자 신성한 것이라는 것이 대사와 효과음이 없었기에 더 잘 느껴졌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천황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것에서 이해는 되지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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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7 14:52: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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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67 두다혜 &lt;우국&gt;</title>
         <author>endltgld</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123609</link>
         <description><![CDATA[<div>“인간의 본능은 생명의 본능인 에로스(Eros)와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Thanatos)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다.”</div><div>“에로스란 자기 보존적 본능과 성적 본능을 합한 삶의 본능을 말한다.”</div><div>“타나토스란 공격적인 본능(파괴의 본능)으로 구성되는 죽음의 본능이다.”</div><div>“죽음에 대한 인식이 없는 삶은 그 가치가 높기 어렵다. 생명, 즉 삶은 죽음을 전제할 때 그 의미와 가치가 빛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명의 본능인 에로스를 사랑하는 만큼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한쪽이 우세할 때 서로 충돌하지만, 반대로 서로 조화를 이루며 대체될 수 있다. 인간의 몸과 마음에도 삶과 죽음의 본능은 동시에 존재한다.”</div><div>이는 프로이트가 그의 저서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다룬 인간의 정신세계에 관한 이론의 내용이다. 나는 ‘우국’이라는 작품을 보고 프로이트의 이러한 이론과 정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작품 속에서 자살을 앞둔 부부의 성관계를 할복과 마찬가지로 느린 템포와 긴 시간을 들여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원작이 되는 소설 ‘우국’에서 역시 부부는 ‘군인과 군인의 아내’로서 상시 죽음을 각오했다고 묘사했으며, 그러한 각오 위에서 성관계라는 육체적 쾌락은 한층 더 강렬한 것으로 다가오는 듯 보였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일본에서, 특히 사무라이나 군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삶의 종결이라는 의미보다 그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는 언제나 죽음이라는 타나토스를 가까이 둠을 통해 누구보다도 강렬한 에로스를 경험할 수 있었으며, 자살 전 유서를 써두고 한 성관계는 천황에 대한 충성도 죽은 친구들에 대한 의리도 아닌 그야말로 죽음이라는 기폭제를 통한 쾌락의 폭발과 같은 것이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할복도 과거 사무라이들이 했던 것처럼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죽음이라는 수단 자체를 아름다운 것으로서 포장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신주(동반자살) 역시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남녀가 신주를 하면 내세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라는 일종의 방식으로 작용한다. 물론 아내가 죽는 것은 군인의 아내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따른다는 의미가 없다고 하면 거짓일 것이다.</div><div>나는 이러한 프로이트의 이론과 할복, 그리고 수단으로서의 죽음 등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타나토스를 통해 에로스를 극대화시켰듯 할복이라는 행위를 통해 삶에 있어서의 자신의 가치관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천황에 대한 충성도 군인 친구들에 대한 의리도 모두 삶을 이어갈 때나 중요한 것이지, 죽은 후에는 사실상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죽음조차도 수단으로, 즉 인간이 지배하고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할복이란 그야말로 엄청난 고통을 누르는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고통을 누르는 정신력이란 죽음의 상태 자체에는 순응할 수밖에 없을지라도 그 과정과 방식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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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00:05: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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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국 감상문 2020113205 황목자</title>
         <author>h1577266009</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123677</link>
         <description><![CDATA[<div>&nbsp; &nbsp;오늘은 대사가 없는 영화 '우국'을 봤다. 이 영화는 미시마 유키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본인이 출연했다. 한 일본 장교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뒤 아내와 작별한 후를 그렸다.이어 할복자살했고, 그의 아내도 곧바로 자살했다. 대사 하나 없이 느릿느릿한 클래식 음악만 나온다.30분짜리 흑백필름은 폭력의 미학을 보여준다.<br><br>&nbsp; &nbsp; 처음엔 할복하는 장면을 보고 무서웠다.다른 영화를 통해 할복 자결을 접한 적도 있지만.&nbsp; 처음으로 할복 자결 장면을 온전히 보고 일본의 '할복' 의식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 생기발랄한 몸뚱이가 썩어가는 시체로 변해가는 것을 본다. 일본인들은 어떤 면에서는 정말 극단적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할복 자결은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 절복하는 과정에서 미시마의 얼굴 표정까지 세세하게 그려져 기억에 남는다. 아내가 화장을 하고 자결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br><br>&nbsp; &nbsp;할복은 일본 군인들의 천황에 대한 충성을 대변한다.극중 벽에 걸린 '지성(至誠)'도 일본인의 무사도 정신을 보여준다.<br>&nbsp;<br>    이 영화를 보고, 나는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인적 사항을 찾아보았다.미시마 유키오는 무사도 광열자였다. 결국 미시마 유키오도 할복했다. 아마 이 영화는 그의 자살 예고편일 것이다. 그가 이렇게 미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지만.하지만 이것도 역시 미시마 유키오 자신의 신앙이 아닐까 싶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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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00:05: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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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3 정은채</title>
         <author>spring_crb</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154434</link>
         <description><![CDATA[<div>‘우국’은 미시마 유키오 본인이 집필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이다. 30분간 아무런 소리없이 흑백으로 진행되는 영화여서 조금 공포스러웠다. 시각적, 청각적으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서 더욱더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느꼈던 것 같다.</div><div>&nbsp; &nbsp;</div><div>2.26사건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영화이기에 천황에 대한 충성심은 엄청났다. 실제로 미시마 유키오 본인도 천황제로 다시 돌아가길 바랐고 굉장히 거칠게 이에 관련해 연설 등 많은 활동을 해왔다. 실제로 영화에서, 소설에서 다케야마와 레이코는 같이 할복자살을 하여 죽음을 맞이하는데 영화와 같이 그의 인생도 이와 같이 할복자살로 그의 삶을 끝냈고 그가 얼마나 전후 전 역사와 가치 특히 사무라이의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었다.</div><div>&nbsp;&nbsp;<br>그 뿐만 아니라 영화는 상당히 템포가 바르게 진행되었다고 느꼈다. 30분에 모든 것을 담기엔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랬지만 그래도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는데는 충분하다고 느꼈다. 더 긴 영화를 찍었으면 내용은 어떻게 더 추가되고 달라졌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br>&nbsp;</div><div>영화가 굉장히 한 장면에서 머물러있어 현실과 동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그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배경에서 느낄 수 있었고, 굉장히 사실적으로 표현이 되어서 굉장히 놀랐던 부분이 많았다. 특히 할복자살 장면에서는 너무 잔인해서 미처 보지 못하고 넘긴 기억이 있다.</div><div>&nbsp; &nbsp;</div><div>미시마 유키오의 일생을 찾아보면서 굉장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굉장히 예술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을알 수 있었다. 사실 아직도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가 추구했던 가치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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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01:53: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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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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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3401 주현우 </title>
         <author>jhw01049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172523</link>
         <description><![CDATA[<div>영화 '우국'은 대사가 전혀 없다. 음산한 분위기 속에 30여분간 진행되는 작품은 인간이 할복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할복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이 작품은 장면에 따라서는 기괴함까지 느껴질 정도다.<br><br>생각해 볼 점은 작품의 감독이자 주연인 미시마 유키오 또한 할복자살을 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매우 공개된 장소에서, 인질극을 벌이면서까지 관객을 불러모은 후 할복을 하였다는 것이다.<br><br>미시마는 어째서 할복까지 간 것일까? 우선 영화를 보자면 이때의 할복은 2.26 사건 이후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실제 사건에 대해서는 그가 말했듯이, "자위대만이라도 일본의 정신을 유지해야" 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문화 전통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br><br>그렇듯이, 작품과 실제 사건 모두 '천황'이 그의 중심이 되어 있다. 실제로 미시마는 천황주의자였다. 천황에 대한 그의 사상이 이러한 작품세계를 만들었고, 결국 할복까지 간게 아닌가 싶다.<br><br>솔직히 나는 아직도 미시마의 작품세계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의문을 던져 볼 수 있는 것은, 과연 천황이 일본인에게 어떠한 존재인가라는 것이다. 물론 미시마의 천황관이 모든 일본인에게 적용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일본 사회에서 '천황'이라는 존재가 특별한 의미를 가져왔음만은 명백하지 않을까?&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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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02:56: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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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우국 감상평 2018113414강영화</title>
         <author>9rjbjr8xjj</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194517</link>
         <description><![CDATA[<div>우국 이 영화는 미시마 유키오가 자작 감독으로 출연한 영화이다. 일본 2.26정변을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br>영화는 대사 한 마디도 없지만 그의 문학작품에서 표현되는 의식의 아름다움, 육체의 아름다움, 죽음의 아름다움, 정욕의 아름다움을 각 장면마다 보여준다.<br>일본 무사도 중 切腹은 가장 영광스러운 죽음이며 이는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의 미학과도 부합한다.<br>영화라는 것보다 성대한 죽음의 의식처럼 느껴졌다.<br>영화에서 나타난 서화, 무사도 등의 소품은 모두 고전적 미감과 무사정신의 의식화를 상징하는데 사용된다.<br>비록 극 중 남녀를 통해 육체적으로 묘사되는 장면이 있지만 저는 이 애욕이 육체의 욕망보다는 정신의 정에 치중했다고 생각한다.<br>자살전에 아내와의 섹스는 마지막 육체적 쾌감을 맛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의식의 한 부분이다.<br>그것은 부부가 이별하는 방식이며 더욱 사무라이 정신 중의 사랑의 표현이다.<br>의식감, 육체, 정욕의 표현으로 영화도 마지막 단계 온다 . 즉 죽음이다.<br>이 영화 역시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하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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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04:13: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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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3195 채원징 우국</title>
         <author>wenjingcai546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209792</link>
         <description><![CDATA[<div>&lt;우국&gt;은 30분 가까이 대사 없는 영화다.주인공의 퍼포먼스와 배경음악만으로 영화를 구성했다.영화 전체를 보면서 성과 죽음의 틈바구니에서 순도(殉道)를 추구한다는 것을 아주 단순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br><br>영화는 2.26정변을 배경으로 전개되는데 주인공은 신혼 얼마 되지 않아 동료들로부터 선의로 반란 가담자 명단에서 제외되지만 자신이 동료와 함께 죽지 않으면 다음 날 토벌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못하고 다른 한쪽을 배신한 그는 신혼부인과 마지막 완벽한 성교를 마친 뒤 할복한다.아내도 모든 과정을 지켜본 뒤 그를 따라 자살했다.<br><br>중위는 천황을 위해 죽을 권리를 빼앗겼지만 마지막에는 동료보다 더 완전한 순도(殉道）를 했다.&nbsp;<br><br>할복은 극단적인 고통을 가져오지만, 성은 고통을 가져온다.둘 다 중위가 순도하는 길에 꼭 필요한 절차다.아내와의 사랑과 마지막 할복은 천황에 대한 환심과 희생과도 같다.<br><br>미시마 유키오는 이 영화에서 무사가 할복하는 순간 최고의 미를 지녔다고 생각하는 무사도 정신을 담았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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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05:13: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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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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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t;금각사&gt; 그리고 &lt;우국&gt;을 통해서 보는 &quot;진정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quot;에 대한 고찰</title>
         <author>tinytedkim</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221899</link>
         <description><![CDATA[<div><sub>2016110279 일어일문 김하선<br><br></sub>&nbsp; &nbsp;</div><div>&nbsp;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테마다. 허나 쉽사리 답이 나오는 질문은 아니다.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 아름다움의 고향은 어디인가?</div><div>&nbsp; &nbsp;</div><div>&nbsp;먼저 아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다룰 필요가 있다. 글자를 따져 보도록 하자. 먼저 아름다울 ‘美’를 보자. 이 한자는 羊+大 로 이루어져 있다. 양이 크면 아름답다는 것이다. 즉, 과거에는 가축이 잘 크는 것이 곧 아름다움이었다. 아름다움과 실제 생활이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던 것이다. 양이 거대해지면 해질수록 고기도 많이 나와 배부를 것이며, 털도 가죽도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름다움이란 “<mark>나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mark>”일까?&nbsp;</div><div>&nbsp; &nbsp;</div><div>&nbsp;다음으로 한국어 아름다움을 한번 보자. 아름다움이란 단어의 어원은 “알음답다”라는 단어다. <mark>잘 아는 것, 자세히 본 것들이 아름답다.</mark> 그야말로 낭만적인 어원인데, 자세히 모르는 것은 아름답기 힘들다는 것이다. 당신이 처음에는 관심 없었던 길거리에 핀 꽃도 어느샌가 모르게 학교에 가다가 한 번 보고, 집에 가는 길에 또 한 번 보고, 세 번째 볼 때,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니 아름다움의 어원을 알고 나니,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단어의 뜻이 단어의 근거가 되다니 참 재밌는 일이다.&nbsp;</div><div>&nbsp; &nbsp;</div><div>&nbsp;앞서 말한 아름다움 외에도 아름다움의 어원은 많다. 전자 같은 경우는 유용성이 아름다움이 된 경우고 후자는 지혜가 아름다움이 된 경우다. 이 외에도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세상만큼 아름답다는 설도 있고, 나와 유사한 것이 아름답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과거부터 인류는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했는가?</div><div>&nbsp; &nbsp;</div><div>&nbsp;고대 인류는 기본적으로 경외심과 함께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 불규칙한 것처럼 보이는 자연 안에서 규칙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혼돈 속 질서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낸 것이다. 덕분에 예술은 최선을 다해서 자연을 모사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여전히 우리는 저녁노을을 보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낀다.&nbsp;</div><div>&nbsp; &nbsp;</div><div>&nbsp;그러나 칸트의 판단력비판 이후 커다란 미학적 역전이 일어난다. 기존의 <mark>아름다움은 자연에 실존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름다움은 외부에서 찾았다.</mark> 아름다움은 외부에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칸트가 “아름다움이 외부에 있든 없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판단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따져보는 것 아니겠는가?” 라는 엄청난 미적 패러다임 전환으로 인해서 처음으로 근대 인류는 <mark>아름다움의 고향을 인간 내부에서 찾기 시작했다.</mark> 덕분에 근대 이후의 인간들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내부에서도 찾을 수 있게 됐다. 심지어 기술의 발달과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서 점차 원본의 가치가 희미해지며(미적 가치가 애초에 내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희미해진 것) 카메라의 발달로 인해서 더 이상 자연을 복제하는 일은 기계를 따라가기 힘들어지면서 인간 내부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div><div>&nbsp; &nbsp;</div><div>&nbsp;이러한 흐름 안에 미시마 유키오 또한 포함된다. 미시마 유키오의 탄생은 1925년부터 1970년. 근대적인 미적판단과 포스트모던적 기류에 모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니면 본인이 그러한 경향을 이끌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lt;우국&gt;을 보면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흔히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미시마의 자전적 소설인 &lt;금각사&gt;를 통해서 미시마의 미적판단의 기준을 재해석할 것이다.&nbsp;</div><div>&nbsp; &nbsp;</div><div>&nbsp;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혹은 추구해야만 하는 것을 세 가지 뽑자면 당연히 진, 선, 미가 나올 것이다. <mark>진리와 선과 아름다움.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요소를 추구한다는 것은 즉, 진선미가 지금 나에게서 결여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mark> 진리가 내게 없고, 내게 선이 모자라며, 아름다움이 결핍되어야 이 모든 것을 추구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결핍된 것만 추구할 수 있다. 만약 내 주변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더 이상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두 찾았다면 나는 더 이상 아름다움을 추구 할 수 없을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 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욕망은 결핍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했었는지 모르겠다만 그는 본인이 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nbsp;</div><div>&nbsp; &nbsp;</div><blockquote><strong>미조구치</strong>: 몸도 약할뿐더러 달리기를 해도 철봉을 해도 남에게 뒤지는 데다가, 선천적인 말더듬 증세가 나를 더욱더 내성적인 아이로 만들었다.</blockquote><div>&nbsp; &nbsp;</div><div>&nbsp;이처럼 자기 신체의 추함을 지속해서 인지하고 있었던 미시마는 작중의 주인공 ‘미조구치’를 통해서 자신의 콤플렉스를 재인식한다. 하지만 타자와 비교하여 자기 신체의 결핍을 인지하는 경향이 그를 더욱 내적으로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했을지 모른다.</div><div>&nbsp; &nbsp;</div><blockquote>&nbsp;<strong><em>미조구치</em></strong><em>:</em> 외모는 보잘것없었지만 나의 내부 세계는 누구보다도 이토록 풍요로웠다. 무언가 씻어 없앨 수 없는 열등감을 지닌 소년이 자신을 은근히 선택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blockquote><div>&nbsp; &nbsp;</div><div>&nbsp;이처럼 미시마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신체를 초월해서, 물질을 초월해서 있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러한 자신의 물질적 결핍이 그에게 초월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미를 판단할 수 있는 모든 근원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div><div>&nbsp; &nbsp;</div><blockquote>&nbsp;<strong><em>미조구치</em></strong><em>:</em> 무슨일이 있어도 금각은 아름다워야만 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금각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도 금각의 미를 상상할 수 있는 내 마음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blockquote><div>&nbsp; &nbsp;<br>&nbsp;즉, <mark>미시마에게 있어서 미적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금각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금각의 미를 판단할 수 있는 자신의 내부 판단 능력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mark> 따라서 금각에 내재되어 있는 아름다움의 실체 같은 것은 없다. 금각을 보는 내 마음에 미적 판단의 기준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금각을 보는 마음에 금각을 추하다고 느끼면 추한 금각이 되는 것이고, 금각을 아름답게 보면 아름다운 금각이 되는 것이다.&nbsp;<br><br></div><blockquote><strong><em>미조구치</em></strong><em>:</em> 나는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어 혹은 고개를 기울여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동도 일지 않았다. 그것은 낡고 거무튀튀하며 초라한 3층 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꼭대기 봉황도 까마귀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름답기는 커녕 부조화하고 불안정한 느낌마저 들었다. 미라는 것은 이토록 아름답지 않은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br><br><strong><em>미조구치</em></strong><em>:</em> 그토록 실망을 주었던 금각도 야스오카에 돌아온 후 나날이 내 마음속에서 다시 아름다움을 되살려, 어느덧 보기 전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금각이 되었다. 어디가 아름답다고는 말 할 수 없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금각이라고 아버님이 말씀하신 것은 정말입니다."</blockquote><div><br>&nbsp;이러한 두 가지 태도는 미시마 안에서 공존한다. 금각사를 추하다고 생각했을 때도, 금각사를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때도 결코 금각자체의 변화는 없다. 내 미적판단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미적판단 대상의 실체가 변화한 것이 아니라 나의 판단 기준의 변화를 통해서 미추의 변화가 생긴다고 생각한 미시마는 미적 실체에 있어서 미추의 관계성을 설명한다.&nbsp;<br><br></div><blockquote><strong>미</strong><strong><em>조구치</em></strong><em>:</em> 아무리 잘생긴 얼굴이라도, 그럴 때는 나와 똑같이 추한 얼굴로 변모한다. 그것을 본 순간 내가 표현하려고 생각했던 중요한 것들은 기왓장이나 다를 바 없는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blockquote><div><br>&nbsp;잘생긴 것이 언제든지 추한 얼굴로 변모할 수 있는 것. 우리가 추악하고 역겹게 생각하는 내장들이 모이고 모여서 아름다운 신체가 형성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미시마가 찾아낸 미추의 공존성이다.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으로부터 나오고,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부터나오는 것. 따라서 충족은 결핍으로부터 오고 결핍은 충족으로부터 온다. <br><br>&nbsp;따라서 그는 <mark>추해 보이는 것이 사실 아름다움과 밀접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mark> 둘을 미시마에게 있어서 결코 때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lt;우국&gt;에서도 그는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한 내장을 다 보여주면서 자살한다. 하지만 할복 직전의 신체는 아주 정돈되어 있으며 아름답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아름다운 신체를 더욱 높은 경지로 승화시키는 요소는 추악함인 것이다. 따라서 미시마는 항상 더욱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더욱 극단적인 추악함을 함께 곁들여서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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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05:57: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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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55 이세영 우국 감상평</title>
         <author>jennyda1013</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238108</link>
         <description><![CDATA[<div>아무 대사 없는 흑백 영화는 처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순수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전체적으로 내용은 대강 어떤지 알 수 있다. 둘은 부부 사이이고 남자가 할복 자살을 결심하자 여자 또한 남편을 뒤따르는 것이 큰 틀이다. 영화의 줄거리를 알게 되었으나 이해는 가지 않는 게 나의 감상이었다. 작가가 상당히 할복을 신성하고 거룩한 행위라고 여긴다고 추측했고 그만큼 천황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작품이 나올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br><br>작중 여자 또한 왜 자살을 했는지 계속 의문이 들었다. 그저 남편을 뒤따른 것일까 아니면 천황을 향한 충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후자라면 작가의 사상이 사상인 만큼 납득 가능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생명 경시의 끝을 보여주는 게 되지 않는가? 자신의 생명을 저버리는 의지와 행위에는 그에 걸맞은 대의와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우국 소설을 읽어보면 의문이 풀리지 않을까 싶다.<br><br>할복 장면은 결국 반 이상을 뛰어 넘겼다. 사실인 것마냥 너무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후반에는 창자가 나온다는 후기를 보았는데 다 안 보고 넘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영화의 주연과 감독을 맡았다고 하는데 할복 연출을 통해 작가가 할복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게다가 미시마는 할복으로 삶을 끝냈다. 영화 속 그가 연기한 다케야마 중위의 할복 장면이 스쳐 지나가면서 꺼림칙함이 훅 끼쳐온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작품이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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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06:49: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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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20110266 우국 코멘트</title>
         <author>ggykmh</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275427</link>
         <description><![CDATA[<div>미시마 유키오의 '미'를 날 것 그 자체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nbsp;<br><br>영화는 다듬어지지 않은 붓으로 거친 질감의 종이에 먹을 뿌리듯 전개된다. 주인공 다케야마와 그의 부인을 찍어내는 묘사가 심상치 않기도 했고 영화가 흑백으로 묘사되었다는 점에 집중해 지켜봤다.<br><br>작품 내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미의 서술은 흑백처럼 표현된다. 흑과 백, 충성과 배신, 적과 아군, 죽음과 삶 등 뚜렷하게 대조되는 특징을 갖는다. 특별한 대사 없이 진행된다는 작품의 특성 또한 이러한 대비감을 더욱 부각시켰다. 천황을 향한 미시마 유키오의 정치적 신념 또한 이러한 흑백의 대조로 인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초월적인 충성. 다케야마는 마지막 장면에서 할복을 통해 이를 보여준다.<br><br>앞서 서술하였던 것과 같이 초월의 미 또한 미시마 유키오가 추구하는 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죽음을 대하는 장면에서조차 이를 고통이 아닌 쾌락으로 묘사하려 하였다는 점과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에서 등장하였던 성적인 묘사 또한 미사마 유키오 본인의 실제 삶에서 결핍되었던 점을 작품 내에서 충족시켜 이를 초월하려 하였음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br><br>작품의 1/3이 할복에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져있어 솔직히 말하자면 관람하기에 조금 껄끄러운 부분은 있었으나, 영화를 보고 나면 미시마 유키오의 삶이 일부분 이해가 되며 그가 추구하고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였던 삶의 완전성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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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08:33: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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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78 미시마 그의 인생 </title>
         <author>halin237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293061</link>
         <description><![CDATA[<div>&lt;미시마-그의 인생&gt;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과 그의 인생이 교차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처음에는 &lt;우국&gt;을 감상하려 했는데 흑백과 음악, 영상의 연출 방식을 30분이나 감상 해야한다는 것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껴 일반 영화처럼 보이는 이 것을 감상했다. 그러나 감상하다보니 &lt;우국&gt;만큼은 아니지만 알 수 없는 깔끔하지 않은 감정이 들었다.&nbsp;<br><br>영화는 미시마가 천황을 위한 연설 후 할복하기로 한 날의 하루와 미시마의 작품을 영상화 한 것은 컬러로 보여주고 미시마의 과거는 흑백으로 보여준다. 총 4장으로 1장:미에는 소설 '금각사'가 2장:예술에는 '교쿄의 집' 3장: 행동은 '달아난 말' 4장:붓과 검의 조화로 총 3가지의 소설도 4장을 제외한 장에 하나씩 다루는 것으로 구성되어있다. 처음에는 영화가 컬러와 흑백을 오가고 등장인물도 다양한 사람이 나와서 구성과 내용을 이해하는데 혼란이 있었다. 그래도 계속 감상하다보니 미시마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과 그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점점 구분이 되었다. 미시마의 작품을 영상화 한 것은 연극 무대를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은 구도도 포함되어있어서 작품 내용이라는 것이 인지되었다.<br><br>미시마의 인생보다 미시마 소설의 영상화 부분이 특히 알 수 없는 깔끔하지 않은 기분이 들게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잔잔히 불쾌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렇듯 작품을 그의 인생과 교차시켜 보여준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미시마의 인생에 집중하는데 도움을 주었다.&nbsp;<br><br>미시마의 최후인 연설과 총감실에서의 할복은 제 3자의 입장으로 본다면 비참해보였다. 연설을 해도 들어주는 이는 없고 결국 아무도 미시마와 뜻을 같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에서 나온 말 중 '말과 행동이 조화되는 상위의 원칙이 죽음이었다'와 같이 연설과 할복은 미시마에게 자신만의 원칙을 지킨 결과라고 생각되었다. 4장의 제목처럼 작가로 살아오며 붓을 가까이 하던 그가 검을 통해 최후를 맞이하며 그 스스로만의 조화를 찾아낸 것이라고, 이런 해석이 이 영화를 감상한 후 미시마를 이해한 최대한이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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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09:14: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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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271 김영 우국과 미시마 유키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323609</link>
         <description><![CDATA[<div>미시마 유키오라는 인물을 살펴보면 그가 일반적인 우익인사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극좌를 담당하는 전공투와 소통을 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고,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체제의 건설을 원하지만 당시 일본의 기득권인 우익에는 비판을 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정치철학을 지녔다.</div><div>그가 써낸 작품인 ‘우국’을 중심으로 해석을 해보자면, 그가 제국주의 일본까지 존재했던 천황 지배 하에서 무사도의 주인에 대한 충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를 일본의 남성적 미로 여기고 현재 일본은 GHQ체제를 하에서 해당 ‘미’를 잃어버렸기에 이를 되찾아야한다 주장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nbsp;</div><div>그러나 그 의견에는 동의 여부를 떠나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아름답게 여겼던 천황 중심 일본이란 이미 지나간 과거이며, 지나간 과거는 어떤 수를 통해서도 회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변증법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사회는 정, 반, 합의 형태로 발전해 나간다. 미시마 유키오가 미시마 사건을 일으킨 당시의 일본은 이미 과거의 제국주의 일본의 시체 위에, 미국의 민주주의가 이식된 형태로 제국주의 일본도, 미국적 일본도 아닌, 제3의 새로운 형태로 빚어진 ‘현대 일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div><div>그가 바래고자 했던 것은 역행에 불과하며, 현대 일본의 본궤도에 올라 정상작동하고 있었고, 사회구성원들이 현대일본이 작동하는 틀 안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고도성장의 수혜를 누리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체제 변환의 최우선조건인 ‘해당 체제에 반발하고자 하는 세력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가’부터가 충족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div><div>그가 주장한 것이 성공하여 앙시앙 레짐이 다시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이미 민주주의를 맛보았던 일본인, 전공투를 비롯한 좌파 지식인들이 이를 끝내 수용할 것인지와, 기득권이었던 우파 세력들이 천황이라는 또 다른 정치적 변수를 반겼을지도 의문이다. 어느 정도 실현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미시마 유키오가 바랬던 것과 비슷한 무언가’일 것이지, 원본 그대로 일 수 없을 것이다. 예시로 앙시앙 레짐을 표방하는 탈레반 하의 아프가니스탄이 겪고 있는 사회적 모순을 들 수 있을 것이다.</div><div>한편으로, 미시마 유키오 본인도 현대 일본의 수혜자이면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느꼈던 것도 아이러니하다 볼 수 있다. 천황을 지배의 토템으로 삼는 사회가 된다는 것은 곧 천황 하의 권위주의적 정부를 만든다는 것으로 봐야한다.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자신의 권위의 실추를 막기 위해 필연적으로 문화, 예술에 대한 검열이 들어간다. 그런 사회하에서 과연 방화범의 시선을 그려낸 ‘금각사’와 쿠데타 미수사건과 관련된 ‘우국’과 같은 작품이 등장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답은 아무리 좋게 봐도 부정적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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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10:26: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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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355 서혜연 &lt;우국&gt;</title>
         <author>haibara46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324236</link>
         <description><![CDATA[<div>우국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이다.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서는 그저 우익이었던 사람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수업 중에 그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를 어떤 사람으로 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었다. 그런 감독이 만든 우국이란 작품을 처음 재생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일단 대사하나 없이 진행되는 영화는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게 맞는지 재생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재생하기도 했다. 흑백 영화로 30분 정도의 짧은 러닝 타임을 가진 이 작품은 짧은 시간동안 잔잔하기도 하고 난해하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한 여러 가지 면모를 보여준다. 우국의 줄거리는 2.26 사건을 배경으로 반란군이 된 동료들을 진압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내 레이코에게 할복할 것을 알라고 그 아내 앞에서 할복해 생을 마감한다. 이후 아내 또한 그의 곁에서 자살을 택한다. 내용에 대한 선행이 없이 영화를 보았으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할복을 통한 무사 정신, 신념 등을 표현한 것 같았다. 그래도 천황을 위해 할복을 택하는 그 남편을 따라 자살을 택하는 아내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를 할 수는 없었다. 천황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작품으로 감독에게 있어 일본에서의 천황이란 존재가 무엇인지, 그가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좀 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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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10:28: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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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30009 臼杵すみれ</title>
         <author>sumire1122usk</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334212</link>
         <description><![CDATA[<div>대사도 큰 장면 전환도 없이 담담하게 진행되는 흑백 단편영화, 우국. 아니,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될 정도로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작품이다. 인생 내내 강렬하고 특이한 삶을 살아왔던 미시마를 상징하는 듯한 작품이다.&nbsp;</div><div>&nbsp;</div><div>이번 학기 누누이 등장한 주제, ‘자결과 일본’. 츄신구라나 가미카제 특공대 등 수업 내내 몇 번이나 일본인들의 특이한 사상관 즉 ‘자결’에 대한 언급이 되어 왔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자결’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를 가질 수 없었다. ‘자결’이 상징하는 것, ‘자결’이 일본에만 존재하는 이유, ‘자결’을 택한 사람들의 심정 등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이 많아 이 주제가 등장할 때마다 나는 당황했다. 미시마의 사인 및 영화 ‘우국’의 주제가 ‘자결’임을 알게 되어, 이번에는 꼭 ‘자결’이 가진 뜻을 이해하려고 영화를 감상했더니 의외의 곳에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영화에 배경이 설치된 掛け軸(족자)이다.&nbsp;</div><div>&nbsp;</div><div>배경정보가 최대한 배제된 영화 안에서 유독 눈에 뛰는 족자. 거기에는 ‘至誠’라는 단어가 써 있었다. 대사가 의도적으로 배제된 작품 안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이 단어에는 자결을 택한 주인공들의 심정, 또는 미시마의 자결의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여 그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至誠”란 「これ以上ないほどに誠実であることを表わす様。」라는 뜻이며 비슷한 말로 “真心”나 “誠意”가 나왔다. 여기에 ‘자결’ 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에 있어서의 자결이란 ‘誠意(성의)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nbsp;</div><div>&nbsp;</div><div>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자결’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nbsp; 츄신구라에서는 주인의 원수를 갚은 후 그 성의를 자결, 즉 할복자살이라는 방법으로 표현했다. 가미가제 특공대도 마찬가지며 국가(군)에 대한 성의를 특공대 지원이라는 방법으로 표현하여 특공대 참여를 거부한 미야베 규조는 ‘성의가 없는 자’라는 평가를 받다. 미시마자신도 그렇다. 물론 육체미나 죽음에 대한 특이한 동경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천황에 대한 성의가 자결을 택한 큰 이유였을 것이다. 미시마는 자신의 “至誠”를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자결을 작품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끓는 방법으로도 선택하지 않았을가.</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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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10:50: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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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3 정붕거 우국</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335279</link>
         <description><![CDATA[<div>'우국'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생전에 자작극을 펼친 영화로,일본 2.26정변에 실패후 일본 장교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순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영화는 미시마 유키오가 천황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우익 정치이념 외에도 그가 작품에 담아낸 의식의 아름다움, 육체의 아름다움, 정욕의 아름다움, 죽음의 아름다움을 담았다.<br>이 영화는 30분밖에 안 됐지만 배경음악을 빼고는 대사가 하나도 없다.영화는 중위가 자살 직전 아내와 마지막 성교를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이번 성교는 죽음의식의 한 부분으로서 '신성화'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부부가 자살하기 전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며, 더욱 사무라이 정신의 사랑의 표현이다.<br>이 영화의 마지막은 중위가 아내 앞에서 할복자결을 하고 아내도 따라서 자살한다.영화는 원작이 묘사한 할복자결의 장면을 완벽하게 되살려냈고, 남자 주인공의 표정, 심리, 신체 반응까지 모두 담아냈다.<br>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일본의 할복식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원래 할복은 그렇게 고통스럽다.생기발랄하던 사람이 한 구의 시체로 변하는 것을 보고 있다.영화 속 남자 주인공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서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무사도 정신을 표현했을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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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10:53: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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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110264 이현정 미시마 유키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357949</link>
         <description><![CDATA[<div>미시마 유키오의 성장과정이나 작가가 된 이후의 행보가 굉장히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보를 찍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프로듀싱과 출연을 맡은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는 등의 모습을 통해 평범하지는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천재적인 작가이기도 하지만 극우주의자, 천황주의자로 이해되기도 한다. 1970년 11월 25일에 있었던 그의 할복자살이 그 이유일 것이다. 무엇이 그를 할복자살로 이끌었을까? 미시마 유키오는 그 날, 자위대의 궐기를 호소하였다. 자위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자위대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일본을 지키는 것은 천황을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 전통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그는 천황을 정치적인 존재가 아닌 문화로서 바라보았다. 솔직히 그가 생각하는 문화로서의 천황이라는 개념이 잘 이해되지는 않는다. 문화방위론을 통해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일본의 역사를 관통하는 ‘천황’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미시마 유키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div><div>결국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일본의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여전히 할복이라는 행위와 그의 생각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할복 자살이라는 형태로 그의 결의를 보여준 것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div><div>미시마 유키오는 아무래도 극우라는 이미지 때문에 다루기 조심스러운 인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흥미로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우라는 틀에서 벗어나 그를 바라본다면 일본 문화를 더 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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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11:45: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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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국] 2020113262 박진규</title>
         <author>qkrwlsrb</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364208</link>
         <description><![CDATA[<div>&nbsp;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을 통해 일본미와 천황, 그리고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br><br>&nbsp;그동안의 미디어 작품들과 다르게 이번 주차의 미디어는 30분 가량 되어서 꽤나 짧았지만, 영화를 보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알아보는 시간은 그동안의 코멘트 작성 준비 기간보다 길었다. 왜냐하면 영화의 내용을 처음 보고서는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두 번이나 보았다.<br><br>&nbsp;'우국'은 자결에 대해 다룬 작품인데, 사실 일본 특유의 자결정신은 옛날부터 많이 접해왔다. 일본 애니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고, 일본 옛날 배경으로 하는 작품 속 표현에서도 배를 갈라 사죄하겠다는 등 일본의 작품들을 보면 곳곳에서 자결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자결이라는 개념에 대해 아예 이해를 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치만 자결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br><br>&nbsp;영화의 내용은 등장인물인 일본 장교와 그의 아내가 동반자살하는 내용이다. 배경으로는 2.26 쿠데타의 실패로 남자 일본 장교의 동료들이 처형되자 자기와 자기의 아내도 같이 자살하는 것인데, 처음 보고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두 번 보고 이 작품을 통해 미시마 유키오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 그의 생각, 그리고 일본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br><br>&nbsp;'우국'의 전체적인 인상은 선정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이 입은 옷과 그의 행동을 통해 제국주의 느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무대와 자결을 통해 일본풍을 느낄 수 있었다. 흑백영화에 대사도 없고 조용한 작품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기에는 너무 표면적으로 보는 것 같았다.<br><br>&nbsp;그래서 뒤의 도코노마 비슷한 것에 쓰여진 한자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strong><em>至誠 </em></strong>이 한자의 의미는 지성, 동의어로는 진심, 성의라는 의미이다. 이것과 그들이 행한 자결이랑은 무슨 연관관계가 있을까? 에 대해 생각했다. 결국 자결은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정성이자 성의, 그들의 진심을 담은 행동이 아니었을까.<br><br>&nbsp;미시마 유키오가 결국 자위대에 들어가 자결을 한 것도 언뜻 보면 굉장히 충격적이고 어그로를 끌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미시마 유키오가 그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자결만큼이나 자신의 의지가 진심이고 자살을 통해 자신의 성의를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고 죽음까지 일본풍으로 마무리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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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11:58: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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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t;우국&gt; 코멘트페이퍼 2017110143</title>
         <author>joonjoon082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379074</link>
         <description><![CDATA[<div>&nbsp; 자신이 쓴 소설 속 주인공과 똑같은 최후를 맞이한다는 것만큼 낭만적인 죽음이 있을 수 있을까. &lt;우국&gt;은 이제껏 봤던 모든 영상물 가운데 가장 낭만적으로 죽음을 묘사한다. 죽음을 낭만적으로 그려낸 이야기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다만 그 가운데 대부분은 어떠한 화소가 끼어 죽음에 낭만성을 부여해주는 방식이다. &lt;우국&gt;은 자체로 낭만적인 죽음을 그려낸다. 우선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은 ‘온도’의 대비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을 대조시켜 보여준다. 겨울날 방과 마당에 쌓인 눈을 비추며 영화가 시작하고, 타케야마 중위가 눈을 맞은 채 집에 들어올 때 집 안에서 유품을 정리하던 레이코가 나와 맞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이후부터 긴 시간을 들여 두 육체와 그 육체들이 온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이 둘은 뜨거운 피를 방바닥에 뿌려가며 차갑게 식어간다. 죽어가며 흘리는 피와 배경 전반의 흰색이 보여주는 대비 역시도 인상적이었다.</div><div><br>&nbsp; 영화에 쓰인 오브제는 거의 없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배경으로 나오는 벽면의 ‘至誠’ 족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공간 이동이 거의 없는 플롯의 특성 상 배경의 족자가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왜 족자의 문구는 ‘지성’인 것일까. 앞에서도 언급했듯 &lt;우국&gt;은 낭만적인 죽음을 연출했는데 여기에는 죽음의 동기, 과정, 수단, 결과가 모두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의 동기란 ‘우국’이고 과정은 ‘정사 후 자결’이라 할 수 있겠다. 수단이란 ‘할복’일 것이고 결과란 ‘동반자살’일 것이다. 이 멋진 죽음의 전체가 미시마에게 있어서 ‘지성’ 곧, 더할 나위 없는 진심이 아니었을까. 다만, 정사 장면 중 산발적으로 이 배경의 족자가 의도적으로 지워지기도 한다. 원초적이고 극히 인간적인 즐거움 앞에서는 이런 ‘지성’마저 잊힌다는 묘사인 것일까.</div><div><br>  영화에서 그려내는 낭만적인 죽음의 완성은 영화 밖에서 이루어졌다. 작가이자 감독이며 주연 배우인 미시마가 10여 년 뒤 동일한 동기와 방법으로 죽은 것이다. 자위대 건물 한 켠에서 피를 뿌려가며 죽어가는 미시마는 스스로 ‘至誠’을 다했다고 생각했을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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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8 12:27: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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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3059 최재혁 미시마 유키오</title>
         <author>choi_jaehyuk</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4901497</link>
         <description><![CDATA[<div>&nbsp;일본의 사무라이(무사도) 정신은 수백년간 이어온 유구한 전통이었다. 미시마 유키오도 그 전통을 이어받았고 일본이 근대화의 물결을 헤엄쳐 나갈 때 주창하던 '존왕양이' 또한 계승하여 일본이 평화의 상징이 아니라 부국강병한 제국주의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다.<br>&nbsp;<br>&nbsp;사무라이의 소재에 빠질 수 없는 것이라면 바로 '할복 자살'인데 막부시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자주 등장하였지만 여전히 그러한 장면이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물론 이 정의 혹은 충성이라는 신념 속에서 다양한 나라에서 명예로운 자살(?)이라는 것이 꽤나 등장하였지만 그것이 나를 불쾌하게는 만들지는 않았다.&nbsp;<br>&nbsp;<br>&nbsp;하지만 '할복 자살'에서는 자신의 배를 스스로 가르지만 대부분 그것을 돕는 조력자가 있는데 죽음의 고통에 빨리 헤어나오도록 단칼에 목을 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잔인한 장면들에서는 그냥 얼굴을 찡그리는 부분에 그쳤지만 할복자살만큼은 정말 내 배를 부여잡을 정도로 그 고통이 동기화(?)됐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보기 힘들었다.<br><br> 사무라이들 혹은 이 사상을 계승한 천황을 숭배하는 군국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죽을때조차도 명예롭게 죽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그것이 명예롭다든가 추악하다든가 무엇이 소용이 있나 싶다. 죽어서까지도 체면을 차려야 하는 참 허무하고 무상하다고 생각된 영화였다.<br><br>&nbsp;<br>&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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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9 02:03: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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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에반게리온으로 보는 오타쿠</title>
         <author>teseus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78613957</link>
         <description><![CDATA[<div>•신세기 에반게리온 영상</div><div>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UYf2NFLeB9i16fLImkquD9TWqLGarohg?usp=sharing<br>25화, 26화를 먼저 보시고, 시간이 되시는 분은 극장판 보시면 됩니다. 극장판은 마무리 부분에 주목해서 보심 되요.&nbsp;</div><div>•에반게리온 해석 https://www.youtube.com/watch?v=5ZhO9wfAyzY</div><div>•안노히데아키의 세계 https://www.youtube.com/watch?v=HzPqgOl3A4o&amp;t=64s</div><div>•신에반게리온 다큐 프로페셔널 안노 히데아키 관련https://blog.naver.com/gemble67/222472846592&nbsp;</div><div>https://blog.naver.com/gemble67/222479816078<br><br>이번주부터는 토요일 자정까지 올려주세요~</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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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1 02:16: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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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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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3218 유영남</title>
         <author>mika6565jk</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1037246</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이 애니메이션은 일본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인기가 있는 정도 유명하다는 제품, 예술품이라고 해고 과언이 라이죠. 나는 이 제품을 어릴때 부터 알았지만 실제 보는 것은 이번에 처음이다.</strong></div><div>&nbsp;이 애니메이션이 만들게 된 당시의 일본은 “전후의 최대의 어두운 해”라고 불러 있었다. 1월17일에 발생은 한신 아와지 대지진, 그런 마당에 3월20일에 발생한 “지하철 사린 사건”, 22일에&nbsp; 옴 진리교에의 강제 수사의 개시이 시작했다. 불황은 이미 심각하고, 일본의 장래는 불안시되고 있었다.</div><div>이런 상황에 시작한 본 제품은 처음에는 전혀 인기가 없다고 했다. 사회불안에 대한 걱정이&nbsp; 지속하는 가운데 가정에 문제를 안은 아이가 성인 후에도 그 트라우마를 벗어날 수 없는 성인 칠드런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에반에 나온 주인공들이 지니는 문제,&nbsp; 고민을 당시의 청중이 너무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 90년대 불황과 사회 불안 등이 반영된 작풍</div><div><br></div><div>주인공을 간단하게 분석하자면 :&nbsp; 에반에 나오는 모두가 “가족 상실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nbsp;</div><div>주인공 신지: 충분한 모성애도 부성애도 받지 못하고 자랐다.자신의 존재가치에 의문을 품고 자신감을 가질 수 없고 섬세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는 주인공</div><div>아스카: 활발한 성격으로 자신의 내면적인 고통을 숨기려고 하는 , 마음이 간한 여성으로 보일 수 있지만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중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기에 굳건한 마음의 벽을 구축하듯 강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div><div>리츠코: 아버지는 부재하고 어머니도 일 중심으로 딸에게 어머니다운 일은 하고 있지 않은 이런 환경에서 자랐던 사람.</div><div>미사토: 세컨드 임팩트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인물로 그 정신적 외상으로부터 마음을 닫고 오래 실성증을 앓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일에만 집중하고 배려는 잘 주지 않았다고 본다.</div><div>여기서 알 수 있듯이 주요 등장인물은 부성 부재, 모성 부재 문제를 안고 부성애, 모성애가 현저하게 결핍된 환경에서 자랐으며 심지어 어머니 또는 아버지를 자살하거나 사고사로 잃고 있는 바탕이다.&nbsp;</div><div>어떤가요? 여기까지 보면은 주인공들이 성장황경, 성격특징은, 우리가 너무나 공감할 수 있게 되고 있으므로 마참, “다른 세상에 나” 이다.&nbsp; 주인공들은 그 세계에서 함께 생활하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바로 위리한테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에반이 예전부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원인이지 않을까?&nbsp;</div><div><br></div><div>그리고 에반은 일면 현대사회에 사는 젊은이들의 목소리도 없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집에 돌아가면&nbsp; 식은 저녁뿐 남아 있다, 저출산이 진행되고 있어 형제자매도 없고 부모님은 일하느라 바빠서 벌써 며칠째 얼굴을 보지 못했다.아무리 밖에서 친구들과 놀았다 하더라도 집에 왔을 때의 묘하게 느껴지는 고독감. 왜냐하면 현실이 외로움으로 구성 되고 있다.&nbsp;</div><div>사회적으로 기업 비리, 정치와 돈 문제, 범죄의 증가, 무궁무진한 불투명함 속에서 도대체 무엇에 희망을 가져야 할지 젊은이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밖에 없죠.&nbsp;</div><div><br></div><div>마지막으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nbsp; 것이 바로 残酷な天使のテーゼ。 이곡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만큼 당시 핫했다. 이 노래도 성공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나는 처음에 이 노래가 표현하고 싶었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고. 내용을 조금만&nbsp; 알고 난 후 깨달았다. 아마&nbsp; 에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시는 분은 더 깊게 노래가 전하고 싶은 것을 수 있는 것이다.</div><div><br></div><div>많은 사람들이 이 애니메이션에 구원을 받지 않았을까요?</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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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2 10:49: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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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세기 에반게리온 감상 강영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1258513</link>
         <description><![CDATA[<div>&lt;신세기 에반게리온&gt;의 마지막화에서 자의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 언뜻 보기에는 매우 그럴싸한,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제작 스케줄의 붕괴로 인해 제대로 완성시키지 못해 급조된 화임을 아는 사람으로서는 보는 내내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오카다 도시오가 언급한 1세대 오타쿠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lt;신세기 에반게리온&gt;은 실패한 작품에 불과하다. 시리즈 내내 언급한 세계관의 중요한 비밀들(인류보완계획, S2기관 등등)을 내팽개치고 주요 등장인물들의 정신세계만 보여주다 마지막에는 이카리 신지의 깊은 자의식 이야기만을 보여준다. 결국 26화라는 TV 애니메이션의 정해진 분량 안에 이야기를 매듭짓지 못하고 별도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보충해야만 했던 이 작품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TV애니메이션으로서는 결함품이라 할 수 있다.</div><div>그러나 오히려 그런 결함품적인 요소가 센세이션을 일으킴으로써 &lt;에반게리온&gt;이 공전의 히트를 거두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히려 &lt;에반게리온&gt;은 이러한 '실패'가 없었더라면 그저 잘 만들어진 오타쿠 취향의 애니메이션으로만 회자되었을 테고 지금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 현상을 일으켰다고 일컬어질 수준의 IP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div><div>&lt;에반게리온&gt; 마지막화에서 이야기한 결국 자신의 정의, 자신의 존재 긍정이었다. 어른의 강압으로 인해 원치 않게 에반게리온(이하 에바)의 파일럿이 된 신지는 에바 파일럿으로서의 자신만을 바라는 주위의 시선에 진절머리를 내면서도 에바에 타 활약하면서 받는 칭찬을 내심 기꺼워하기도 했다. 이런 양가적인 감정을 품는 일은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운 사춘기에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일 테고 &lt;에반게리온&gt; 마지막화를 감명깊게 봤을 3세대 오타쿠들은 &lt;에반게리온&gt; 방영 시기에는 한창 사춘기인 10대 청소년들이었을 터이다. 그렇기에 어른에게 휘둘리고 갈등하고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는 데 혼란을 느끼는 신지에게 깊이 몰입하고 마지막에 자신을 긍정하는 신지의 모습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신지 군은 저예요' 같은 말을 입에 담은 것이 아닐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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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2 13:31: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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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49 소유란 - 신세기 에반게리온</title>
         <author>happycow20</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2092297</link>
         <description><![CDATA[<div>애니메이션 &lt;신세기 에반게리온&gt;에 대해서는 자주 들어본 적이 있지만 직접 영상을 감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5, 26화만 보는 것으로는 스스로가 다소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유튜브에 올라온 &lt;신세기 에반게리온&gt; 해석 영상도 같이 참고하며 감상했다. 본 애니메이션이 제작된 배경은 1990년대 일본 사회의 불황이었다. 지속되는 불안정한 사회로 인해 사람들은 점차 개인주의와 고독에 휩싸이게 되었고 가정 내에서도 편안함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작품 속 주인공인 '신지'로 대표되는 당시의 미래세대들은 편히 마음놓을 수 없는 공간에서 자라왔기에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고통과 고독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였다.<br><br>인간은 끊임없이 타인으로부터 이해받고 싶어하지만 인간이란 모두 자신만의 자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가치관 측면에서 들었던 의문은, '그렇다면 과연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이해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였다. 작중에서 등장하는 '인류 보완 계획'의 목적은 결국 모든 인간의 자아를 없앰과 동시에 고통과 고독감을 소멸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서 떠올랐던 소설이 올더스 헉슬리의 &lt;멋진 신세계&gt;다. &lt;멋진 신세계&gt; 세계관 속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아를 빼앗기고 정해진 업무만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주어진 목숨대로 따라가는 것이 본질이라고 여기며 자유의지를 박탈당해 세상의 부품으로 흔들리는 것이 유토피아인 줄 안다. "환상이란 천국인 동시에 지옥일지도 모른다." 인류 보완 계획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br><br>작중에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의 벽'이라는 설명으로 정의되고 있는 'AT 필드'는 자신만의 마음세계인 자아를 의미하며 인류 보완 계획을 방해하는 중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완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과 불완전성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인간인 것이다. 사람들은 고독을 굉장히 우울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지만, 그러한 고독감 속에서 자아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nbsp;마지막에는 자신의 자아를 긍정할 수 있게 된 신지의 모습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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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3 00:35: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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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세기 에반게리온 감상평  2018113415 주찬</title>
         <author>iltycb</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2182869</link>
         <description><![CDATA[<div>&nbsp; &nbsp;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하 EVA) 을 말하면 일본 애니메이션을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명작을 아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큰 영향을 미쳤고, 당시 시대적 배경에서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왜 이렇게 큰 영향을 미쳤을까? 나는 내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br>&nbsp; &nbsp;일본 애니메이션 연구자 아즈마 히로키는 자신의 책에서 EVA를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세 번째 변혁을 가져온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과 옴진리교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오타쿠 문화에 혐오감을 갖게 되면서 애니메이션에도 큰 저촉이 되었다. 이번 변혁으로 쇠퇴하던 일본 애니메이션계가 새롭게 태어나면서 애니메이션과 오타쿠 문화를 싫어하던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왜 우수할까? 나는 이 작품이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주로 그것의 혁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혁신에 대해 말하자면 당시 일본의 시대적 배경과 결합해야 한다. EVA라는 작품은 1995년 탄생했다. 당시 일본은 거품 경제에 극심한 영향을 받은 시기였다. 사람들의 정신 상태는 원래 피곤하고 불안했고, 이 배경에 한신 대지진 사건도 발생했다. 이 일련의 사건들로 일본은 당시 사회 분위기가 매우 낮고 국민들이 자신의 생존 의미를 찾지 못하고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당시 발생한 옴진리교 사건은 당시 사회 분위기의 축소판으로 볼 수 있고, 이 사건도 일본 전후 발생한 가장 큰 무차별 살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애니메이션과도 관련이 있다. 옴진리교의 간부는 그가 애니메이션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고, 옴은 새로운 인간 (출처는 기동전사 건담) 이라고 불렀다. 당시 일본이 말세라고 선전했고, 옴은 이 현상을 깨뜨릴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사건은 일본인들을 무섭게 하고 애니메이션을 싫어하게 하는 한편, 사실 어느 정도 말세사상을 묵인했다. 이런 배경에서 EVA가 탄생했다. EVA의 세계는 당시 일본 사회의 현황과 매우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속 악의 천사는 현실 세계의 각종 부정적인 분위기 (사교론, 말세론, 금전지상주의 등) 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일단 사회에 완전히 수용되면 '인류 보완계획'이 완성되고 일본은 전체적으로 무의식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EVA의 주인공과 그의 초호기는 이런 부정적인 분위기와 싸우고 있다. 이는 저자도 당시 일본 사회의 부정적인 분위기에 극력 반항하고 있는 것과 같다. EVA는 이러한 사회와의 높은 동기성 때문에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는 다른 애니메이션도 가지고 있지 않은 혁신이다. 게다가 당시 25회와 26회에서 사용된 의식의 흐름 수법 (경비가 부족해서 그렇게 됐다는 소문도 있지만) 도 큰 충격을 주었다. EVA가 창조한 세계와 캐릭터는 애니메이션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새로운 탄생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 분위기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것이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신작이라고 불리는 이유라고 생각한다.<br>&nbsp; &nbsp;이 작품은 현재의 배경에서 이해하기 어렵고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결합해 보면 깊은 뜻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생각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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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3 01:53: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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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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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210988 신민호 &lt;신세기 에반게리온&gt; 감상평</title>
         <author>minhomino0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2517374</link>
         <description><![CDATA[<blockquote><strong>&nbsp;"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strong></blockquote><div><br>&nbsp;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이 말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26화 엔딩과 같은 맥락을 보이고 있다.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이들은 모두 정상적인 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주인공 신지가 그 단적이 예이다. 어릴적 어머니를 여윈 신지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이후, 어쩔 수 없이 에반게리온에 탑승하여 사도들을 물리치지만, 자신이 좋아하던 이들(레이, 카오루)의 현실 앞에 그는 좌절하게 된다. 처음으로 타인에게 마음을 주었던 신지였기에 좌절감이 더욱 컸을 것이다.<br>&nbsp;<br>&nbsp;하지만, 그러한 신지는 26화에 들어 결국, 남이 보는 나의 모습이 아닌 내가 보는 나의 모습, 내가 정의할 수 있는 자신이 되기로 마음 먹는다. 신지가 그러한 마음을 먹게되자 신지 주변의 유리가 깨지게 되며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박수를 받으며 작품은 마무리된다.<br><br>&nbsp;작품의 엔딩은 나라는 존재가 '어디로부터 왔는가' 가 아닌, 나라는 존재가 '어디로 가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를 갈구하던 신지가 비로소 자신의 자아를 확립함으로서 타인이라는 세계의 알을 깨고 날아간 것이다.&nbsp;<br>또한 작품에서는 완벽한줄 알았던 에반게리온 초호기의 폭주 등과 같이 호봇의 오류를 통해 인간을 비롯한 모두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br><br>&nbsp;이후,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통해 작품은 당시 버블 경제 몰락에 따른 90년대 수많은 청년들에게 '자아각성'을 이야기한다. 경기 불황과 취업난으로 인해 많은 청년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서브컬쳐를 탐닉하며 그 속에서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해가며 일종의 라포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며 자신들이 그 속 인물이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고, 에반게리온은 그러한 이들에게 '내가 보는 남은 남이 아니며 남이 보는 나 또한 내가 아닐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모습을 확립해나갈 것을 던졌다.<br><br>&nbsp;그 예가 레이의 몸과 하나가 된 신지가 그녀를 밀어내며 타인과 하나가 된 세계를, 서드임팩트를 부정한다. 그렇게 인류보완계획이 중지되며 해변가에 남겨진 신지와 아스카의 모습으로 에반게리온 극장판은 마무리된다.<br><br>&nbsp;결국, 에반게리온의 모든 결말은 '자아각성'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되는 것이다. 안노 히데아키가 이 작품에서 진정으로 건네고 싶던 말은 자신을 감싸고 있던 알을 깨고 뒤돌아보지 않으며 날아가는 새처럼 타인으로 둘러싸여 어느새 그 세계가 나의 세계인지, 타인에 의해 정의된 세계인지 모르는 그 세계를 스스로 깨고 날아감으로서 자기 자신으로 도달하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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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3 07:33: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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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신세기 에반게리온</title>
         <author>hsuwei85</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2883822</link>
         <description><![CDATA[<div>25화부터 26화 중간까지는 너무 무겁게 느껴졌고, 인물들의 내면세계가 상당히 왜곡돼 있었다. 다 상처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심리적인 문제가 생긴 것 같다. 특히 남자 주인공 신지는 후기에 우울증의 징후를 많이 보이며, 절망, 죄의식, 비관, 자기혐오, 게다가 카오루를 죽여서 생기는 엄청난 죄의식까지 겹쳐 심하게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div><div>26화 후반, 또 다른 세계에서는 EVA를 운전할 필요가 없어 모두가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것은 다른 세계가 아니다. 마음의 생각이 우리가 보는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볼 수도 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좁은 시선에 얽매여있다. 물론 타인의 눈에 각양각색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면 타인이 어떻게 나를 좋아하게 될 수 있는가? 마지막에 신지가 마침내 납득한 후, 모든 인물들이 이곳에서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었다. 사실은 모두가 신지의 곁에 함께 있었고, 단지 신지가 눈치채지 못했었다. 이장면은 상당히 감동적이다.</div><div>&nbsp;</div><div>그전에 신세기 에반게리온 본 적이 없었다. 유명한 작품인걸 알고 있지만, 내가 관심이 있는 주제가 아니라서 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25화와 26화를 봤는데, 역시 이해가 안 된다. 표현하는 방식이 독특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다. 그래서 내용 살짝 더 검색하다 보니까 전부를 본 사람도 25화와 26화가 어렵다고 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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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3 13:30: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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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t;신세기 에반게리온&gt; 감상평 2020110250 이다현</title>
         <author>leedahyeon011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2914825</link>
         <description><![CDATA[<div> &lt;신세기 에반게리온&gt;은 그 명성처럼, 90년대 애니메이션의 명작으로 손꼽히며, &lt;달링 인 더 프랑키스&gt; 등 이후의 서브컬처 작품에 큰 영향을 주면서 메카물의 중심에 서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본 후의 사람들의 평을 보면, 메카물로 분류할 수 있는지 의문을 품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그것은, &lt;신세기 에반게리온&gt;이 탈 것이자 직접 전투를 하는 기체보다는, 임무를 위해 그것에 탑승하는 소년소녀들과 주변 인물들이라는 캐릭터들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경향은 극이 진행될수록 두드러지며, 주인공 이카리 신지를 중심으로 관계와 정신성의 인과가 복잡하게 얽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div><div>&nbsp; &nbsp;</div><div> 작품이 마무리되는 25화와 26화는 신지의 정신붕괴와 극복이 중심이 되어, 초호기가 등장하지 않을 정도다. 아들에게 무관심하고 온갖 만행을 서슴치 않는 아버지에게 반강제적으로 초호기에 올라타게 된 신지는, 아버지를 갈망하면서도 증오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인륜적이고 위험한 작전도 용인하고 친구 토우지가 탄 에바를 신지의 에바로 무참히 파괴하면서 충격과 상처를 주는 아버지, 폐인이 된 보호자 미사토와 아스카, 자폭 후 기억을 잃은 제3의 레이, 본인의 손으로 직접 죽인 카오루 등 인간관계가 모두 산산조각나고, 그저 타인을 보고 에바에 탑승했던 신지 본인의 ‘있을 이유’가 방향을 잃으며 정신 붕괴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25화에서 혼란 속에 ‘자신’이 무엇인지 몇 번이고 묻는데, 26화에서 마침내 자신을 인정하면서 그 유명한 ‘오메데토 엔딩’으로 이어지며 작품이 마무리된다.</div><div>&nbsp; &nbsp;</div><div> 당시에는 이 엔딩에 불만을 표하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았다고 하나, 이 작품을 단순 메카물이 아닌, 각종 비극에 놓인 14살 소년의 성장 이야기라고 본다면 신지를 향한 ‘축하해’는 긴 여정을 통해 정신적 불안정성을 극복해낸 후의 종착지에서 마땅히 받아야할 인정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장치로 볼 수 있다.</div><div> “모든 칠드런들에게 축하합니다.” 추가적으로 여기에서 이 대사를 남김으로써, 엔딩의 의미를 작품 내 주인공 신지를 벗어나 현실까지 뻗쳐간다. 일본의 90년대는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된 시기로써, 사람들의 심리적 방황이 극도로 치달았다. 인간관계에 회의적이고 담을 쌓는 ‘히키코모리’나 가상 세계에 의존하는 ‘오타쿠’와 같은 사회 현상이 발생한 것도 그 영향이다. 비록 맞서야하는 대상은 다르지만, 현실에도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해 절망하는 신지가 무수히 생겨나고 있었고, 이들에게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축하’를 건네는 것이 작품의 진짜 목적으로 볼 수 있다.</div><div>&nbsp; &nbsp;</div><div> &lt;신세기 에반게리온&gt;은 명작임과 동시에 특유의 난해한 플롯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원작 기준으로 약 30년 전의 고전 작품이지만, 그 복잡함이 현재에서도 작품을 촌스럽게 느끼지 않게 하는 요소가 된다고 생각한다. 90년대 일본뿐만 아니라 현재의 세계에는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것이 일탈 혹은 자살로 이어지면서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마냥 지탄하는 것이 아니라, ‘축하해’라는 인정을 건네는 이 작품의 엔딩은 그 무엇보다 무겁게 느껴진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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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3 13:51: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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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55 이세영 신세기 에반게리온 감상평</title>
         <author>jennyda1013</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232625</link>
         <description><![CDATA[<div>근래에 에반게리온 구작화 tva 애니메이션을 봤던지라 타이밍 좋게 수업에서 다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반게리온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는 주인공 신지의 부친이 희대의 나쁜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는데, 해당 작품이 그렇게나 우울하고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하여 궁금한 나머지 정주행을 하게 되었다. 줄거리나 세계관 자체는 흥미로웠으나 14살 남짓인 어린 청소년들이 사도로부터 세계를 지키기 위해 커다란 에바에 타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특히 에바가 겪는 고통을 파일럿이 곧이곧대로 느낀다는 설정이 너무도 끔찍했다. 초반에 신지가 괴로워 했었으나 아스카와 신지가 합동 작전을 위해 서로 동기화하는 훈련을 하는 에피소드는 다소 유쾌했다. 보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에바의 실체가 밝혀지고 아스카가 무너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에바의 본체가 드러나면서 펼쳐졌던 잔인한 연출은 시각적으로 힘들었고, 아스카의 좌절은 정신적으로 타격이 컸었다.<br><br></div><div>애니메이션 후반부에 신지는 카오루라는 아이와 짧은 시간 내에 마음을 열고 애틋한 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카오루의 존재는 사도였고 신지는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카오루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된다. 카오루 또한 제레에게 휘둘리던 삶을 끝내고 싶은 마음으로 신지가 본인을 죽이도록 내버려 두었다. 다음 화인 25화는 자신이 카오루를 죽였다는 사실에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신지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25, 26화는 등장인물들이 내면적 고뇌를 겪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신지의 정신적 충격이 극에 달하게 만든 카오루의 존재의 의미가 궁금하다. 이 둘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데 타인을 대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던 신지가 왜 카오루에게는 쉬이 마음을 열고 편하게 대할 수 있었을까? 신지는 미사토로부터 지적을 받을 정도로 심하게 상대의 눈치를 보며 행동했는데 말이다. 인간의 형태이지만 아담의 영혼이 깃든, 신비롭고 신적인 존재가 주인공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관계가 헤르만 헤세『데미안』속 데미안과 싱클레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br><br></div><div>25, 26화는 놀랍게도 뛰어넘긴 에피소드들이었다. 마지막 화는 결말을 아껴 보려고 시청하지 않았고, 25화는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묻고 추궁하고 자문자답을 하는 형식의 연출이 반복되는, 그들 간의 관계와 각자의 내면이 주로 다루어지는 식이어서 큰 흥미 없이 넘겼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에반게리온 작품이 무얼 말하고 싶은 건지 인지하지 못했나 보다. 피피티에 있던 에반게리온 해석 유튜브 영상을 본 후 이 작품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철학적이고 당대의 사회상이 많이 반영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그저 인구를 개편하는 줄로만 알았던 인류 보완 계획이 실상은 집단 자살 계획이었다는 점이 가히 충격적이었다.<br><br></div><div>결말 부분에는 신지를 깨우는 아스카가 나와 살짝 뜬금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환상 속 세계였다. 하지만 작중에서는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나(이카리 신지)’라고 표현이 되어 있어서 거짓 세계라고 하기에는 신지에게 미안해진다. 실제로도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깨달은 신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음을 다잡았으니 말이다. AT필드가 인간의 자아이자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라는 작품 내 설정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인간이 외로움과 고뇌를 겪으며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본질을 부정하는 건 결국 인간의 자아, 즉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신지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그 과정에서 내적 및 외적으로 갈등한다. 에반게리온은 그런 내용들을 담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단순한 로봇 전투물이 아니라.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애니메이션을 수업 시간에 다룸으로써 더 심층적으로 생각하고 안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를 알게 되어 뜻깊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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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3 17:35: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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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세기 에반게리온] 2020113262 박진규</title>
         <author>qkrwlsrb</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382345</link>
         <description><![CDATA[<div>&nbsp;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보면서, 25화와 26화를 주로 하여 초점을 맞춰 등장인물들의 독백, 그리고 에반게리온 자체가 90년대 이후 일본 사회 속 애니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감상했다.<br><br>&nbsp;먼저 위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굉장한 오타쿠이자 능력자인 안노 히로아키 감독이 만든 오타쿠적인 애니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애니의 클리셰, 밈, 그리고 세카이계가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다. 다르게 이야기 한다면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후 지금의 애니 속에서 다양한 클리셰, 밈, 세카이계에 영향을 줬을 뿐만 아니라 애니 산업계에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전설의 애니메이션이다. '사도' 라고 불리는 정체불명의 적이 지구를 공격해 오고 주요 등장인물들이 무찌르는 이야기 속에서 인류의 비밀병기인 에반게리온, 그리고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br><br>&nbsp;1편부터 24편까지는 재미있는 메카닉물이다. 하지만 25편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하면서 그동안과는 매우 다른 작화와 그림체로 주요 인물들의 독백과 신지의 독백, 고뇌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특이한 부분과 극장판으로 인해 이 애니메이션은 전설이 되었고 오타쿠들에게 지금까지 두고두고 회자될 뿐만 아니라 현 애니계, 애니 산업, 애니들의 전개방식과 세계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br><br>&nbsp;오늘 이 작품을 볼 땐 신지의 독백에 대해서 자세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왜 하필 우리가 생각하는 그 '오타쿠' 들이 이 독백에 열광하거나, 고민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br><br>&nbsp;<em>"이건? 아무것도 없는 공간, 아무것도 없는 세계, 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세계, 나를 잘 모르게 돼 가. 내가 사라져 가는 느낌. 나라는 존재가 사라져 가. 여긴 너밖에 없으니까. 자기 외의 존재가 없으면 넌 너의 형태를 알 수 없거든." </em>이 부분은 신지가 읊은 독백이다. 이런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신지는 자신을 알 수 없고 자신 어떤 형태인지도 인지하지 못 한다.<br><br><em>&nbsp;"다른 이의 형태를 봄으로써 자신의 형태를 아는 거지. 다른 이와 벽을 봄으로써 자신의 형태를 이미지로 그리는 거야. 넌(신지) 다른 이가 없으면 볼 수 없어. 다른 이가 있기에 내가 있을 수 있는 거잖아. 혼자선 언제까지고 혼자잖아... 타인과 다름을 인식함으로써 자신의 형태를 짓는 거지. 가장 최초의 타인은 어머니. 어머니는 너와 다른 인간이야. 그래 나야. 다만 타인들이 내 마음의 형태를 만들고 있는 건 분명해..." </em>등 이렇게 인류보완계획 과정 속에서 신지와 미사토, 아스카, 레이가&nbsp; 자신의 의식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 하게 된다.<br><br>&nbsp;작품의 후반부에 이르게 되면 신지 뿐만 아니라 아스카의 독백과 고뇌도 나오는데, 분리불안과 애착행동, 타인의 안에서 자신을 찾고 싶어하고 혼자가 되는 게 두려워 하는 모습을 보면 신지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아야나미 레이는 특수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던진다.<br><br>&nbsp;결국 이 독백과 고뇌와 이야기들을 생각해보면 타자가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신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본다는 것을 말한다. 타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인식과 인정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이 결정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지가 이렇게 타인의 시선과 인식에 대해 민감해하는 것도 사람이 일반화된 타자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타인의 시선을 통해 우리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존감 자신감이 매우 낮고 자라온 환경이 좋지 못 한 신지는 스스로를 낮추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더욱 아래로 가라앉아 시청자들로 하여금 답답함을 주지만 동시에 스토리가 진행되기도 한다.&nbsp;<br><br>&nbsp;원래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이야기, 세계관, 그리고 콜라보 작품들 등 에반게리온 전체에 대해 관심이 있었지만, 25화와 26화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보고 생각해보았다. 결국 신지의 이런 독백과 결론을 통해 안노가 오타쿠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서파큐 다카포까지 나오고 안노의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당시의 25화 26화의 회차가 오타쿠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은 오타쿠들이 자신의 세상에 빠지는 건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표면적일 수도 있는 메시지지만 당시의 사회에서 바라보는 오타쿠들에게 던지는 메세지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일본 사회의 흐름과 상황 속에서 힘든 처지의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세지를 통해 던지는 메세지와 그 메세지를 받는 대상, 그런 구도와 메세지 그 자체로 으로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도 어렴풋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br><br>&nbsp;더 이야기하자면, 사람은 타인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스스로에게 빠지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면 자신의 세상에만 갇히고 편협하고 삐뚤어질 수도 있는 세상이 형성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세상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선 타인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그 타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자신이 선택해야 할 문제이다. 결국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만들어 가야 하는 것. 혹여나 타인에게 상처받더라도 스스로의 세계에 갇히면 안 된다는 것과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마지막 회차인 26화의 타이틀 Take care of yourself) 에 대해서 안노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br><br>&nbsp;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애니의 근간이 되는 종교관이 혼합된 상징적인 세계관, 그리고 인간의 기본적인 부족함에 대한 인류보완계획 등 다양한 매력을 갖고 있는 애니메이션이지만, 25화와 26화에서 나오는 신지의 주요 독백과 주요 등장인물들의 심화된 이야기들 또한 굉장한 매력을 갖고 있음을 느꼈다. 신지가 이야기하는 타자가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신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보는 것, 그리고 아스카가 집착하는 부모와 특정 인물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 타자가 자신을 긍정, 멸시함에 따라 스스로를 긍정, 멸시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자기의식을 가진 인간은 타자의 인정 여부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이 결정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스카가 자기를 인정해달라고 하는 스스로의 투쟁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점 같다. 신지 또한 고뇌와 고민 속에서 고통받지만, 신지가 말하는 '일반적인 다수의 타자들로부터 자신이 형성된다' 는 점은 아스카를 대상으로 말하는 것이라고도 느껴졌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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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3 19:56: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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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271 김영 &lt;신세기 에반게리온&gt; 감상평</title>
         <author>rladud010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601912</link>
         <description><![CDATA[<div>흔히 에반게리온을 유명하게 해준 것은 마지막 부분(25, 26화)이라고 한다. 그러나 막상 보면서 느꼈던 감정은 '이게 왜 잘 만들었다는거지?' 였다. 독백만 계속 이어지고 장면 역시 정지된 스틸 컷을 내보내거나 과거에 나왔던 장면을 재활용하였으며 후반으로 갈수록 그마저도 유지하지 못하고 초안 형태의 모습을 그대로 내보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는 갑자기 그간의 등장인물들이 나와 박수를 치면서 축하한다라 말하고 끝나는게 아닌가.</div><div>에반게리온을 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 애니메이션이 메카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주인공 자아성찰 세미나로의 장르의 급작스런 전환은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이를 곱씹어보았을 때 에반게리온이 단순히 오락물에만 그치지 않고 대중적인 매체로 철학을 논하려시도했기에 유명해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div><div>에반게리온에서 나오는 말은 전혀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자기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세상으로 나와라’이다. 일반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전달방식과 메시지를 수신할 대상들을 보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자기혐오에 빠져든 주인공 이카리 신지는 현실 세계의 히키코모리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외부와의 소통을 포기한 이들이 접할 매체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오락거리로서 존재하던 애니메이션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해 줄 것은 스스로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해줬다는 것은 충격요법이나 적어도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던져줬을 것이다.</div><div>한편으로 극장판 엔드오브에반게리온에서는 한층 더 발전하여 본래 애니메이션의 큰 설정이었던 인류보완계획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인류보완계획 속에서 신지가 인간 따위는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모두 액체상태로 변해버리고 마음의 벽과 자아가 사라진 채 하나의 통합개체가 된다. 이전의 25, 26화가 급조되면서 신지의 자의식을 독백이라는 형태로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면 극장판에서는 스토리와 연관시키며 신지가 일그러져가는 과정을 더 자세히 보여주고 인간의 마음의 벽이 사라져 버렸을 때의 세상을 시각화, 상징화함으로써 한층 더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div><div>흥미로운점은 저마다의 마음의 벽이 존재하는 인간사회에서 신지는 고통받았지만, 마지막에는 아스카라는 타인으로부터 위로를 얻었다는 것이다. 액체로만 가득찬 세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스스로를 긍정하고 나아가서 타인과 교류를 할 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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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03:03: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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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세기 에반게리온」의 타자인지와 영육의 결합</title>
         <author>tinytedkim</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658568</link>
         <description><![CDATA[<div><sub>2016110279 일어일문학과 김하선<br><br><br>　</sub>에반게리온은 친절한 작품이 아니다. 맥락을 모르면 놓치게 될 것이 너무나도 많고, 무엇보다 중요한 세계관에 대한 설정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고서 스토리가 시작되기 때문에 무턱대고 1화부터 보면 도대체가 에바는 왜 타야 되고 사도는 왜 쳐들어오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쳐들어오는 사도만 막다가 갑자기 인류보완계획을 실행한다는데 이게 도대체가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갑자기 인간들이 하나 같이 오렌지주스가 되어 버린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과 에바의 세계관을 먼저 명확히 밝히고 에반게리온을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내 나름대로 정리하겠다. <br><br>　에바를 보기 전에 이 작품의 세계관에 대해서 조금만 알고 들어가도 에반게리온을 그냥 보는 것보다 훨씬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에바는 기독교 사상과 떼어 놓을 수가 없는 작품인데, 먼저 에반게리온 세계관과 맥락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해 보자.<br><br>　먼저 에바 세계관 안에 태초의 땅에는 생명이라는 존재가 없었다. <mark>무기질만 있었을 뿐인 황량했던 지구에 운석이 떨어진다.</mark> 그리고 그 운석 사이에서 떨어진 알이 있는데, 이것을 ‘하얀 달’이라고 한다. 이 하얀달은 운석에서 떨어져 나온 뒤, 남극에 안착하게 되는데,<strong> </strong>이 달 안에는 <mark>태초의 생명체인</mark><strong><mark> ‘아담’</mark></strong><mark>이 잠들어 있었다.</mark> 아담은 타자 없이 자기 신체를 복제할 수 있는 신체적 완성체이며, 아담은 어떤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들인 ‘사도’를 낳을 수 있다. 아담이 사도를 낳음으로써 지구에 최초의 생명이 나타난다. 따라서 <mark>아담과 사도가</mark><strong><mark> 에바 세계관에선 태초의 생명체</mark></strong>이자 최초의 신체를 가진 유기물이다. <br><br>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운석이 한 번 더 충돌한다. 이 운석 충돌이 너무나도 강력해서 충격을 이기지 못한 아담과 사도들은 모두 활동을 중단해버린다. 이때 충돌한 운석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검은 달’이다. 이 <mark>안에는</mark><strong><mark> ‘리리스’</mark></strong><mark>가 존재했다.</mark> 여기서 이브가 아니라 리리스라는 인물이 잠들어 있던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는 차차 설명하겠다. 리리스가 지구에 도착하기 전에는 아담과 사도만이 유일한 생명체였는데 이들은 스스로가 이미 완벽한 신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서로를 복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그저 존재만 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과는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타자가 필요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특이성이 있다. 그러나 리리스가 지구에 도착한 이후<strong> </strong>리리스는 <strong><mark>자기 체액인 L.C.L</mark></strong>을 지구에 뿌리게 되는데 이는 에반게리온 초호기를 타면 나오는 주황색 물이다(이 글에 사진속 주황색 바다도 모두 L.C.L이다). 리리스의 체액은 온 지구에 퍼지게 되고 바다 전체에 퍼지게 된 리리스의 체액인 L.C.L을 바탕으로 우리가 아는 생명체가 탄생하게 된다. 이들의 후손이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인 것이다. 이 생명체들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지만, 서로를 인지할 수 있으며 서로를 통해서 서로를 복제해간다. 따라서 리리스의 체액을 통해서 태어난 생명과 아담이 낳은 사도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strong><mark>리리스의 자손은 서로를 인지하며 지혜를 가질 수 있는 존재다.</mark></strong> 즉,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로서 태어난 존재들이 리리스의 자손이다.<strong> </strong><strong><mark>아담의 자손은 반대로 타자를 인지할 필요가 없다. </mark></strong><mark>이미 스스로가 완벽한 신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존재한다.</mark><br><br>　하지만 왜 리리스였을까? 이는 리리스라는 인물이 어떤 맥락으로 등장하는가 보아야 한다. 흔히들 아담과 이브가 태초의 인류로&nbsp; 알고 있다. 하지만 태초의 인류라고 해서 아담과 이브가 같은 것은 아니다. 아담과 이브는 창조 방법에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담은 하나님이 흙을 빚어서 만들었으나 이브는 갈비뼈에서 파생된 이차적 존재로 창세기에는 묘사된다. 하지만 이브 이전에 아담의 부인이 있었다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mark>아담과 </mark><strong><mark>똑같이 흙으로 빚어진 동등한 존재</mark></strong><mark>인 ‘리리스’다.</mark><br><br></div><blockquote>'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신후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배필을 지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2장 18절). 하나님은 또한 흙으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을 만드셨던 것과 같은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릴리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릴리스는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서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릴리스는 '아래에 눕지 않겠다'고 말하고 아담은 '나는 당신의 아래에 눕지 않겠다. 오직 당신의 위에만 있겠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래에 있는 자세에 적합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당신보다 우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릴리스는 '우리는 대등하다. 우리 모두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말을 듣지 않으려 했습니다. 릴리스는 더 이상 아담과 말다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릴리스는 지극히 거룩하여서 차마 입으로 말할수 없는 이름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하늘 높이 날아갔습니다. 아담은 창조주의 앞에서 '우주의 주권자이시여. 당신께서 나에게 주신 여자가 도망갔나이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창조주는 세명의 천사를 보내어 릴리스를 당장 데려 오도록 지시했습니다.<br><br><a href="https://blog.daum.net/johnkchung/6828057">https://blog.daum.net/johnkchung/6828057</a></blockquote><div><br>　<strong><mark>리리스는 스스로가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주체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이다.</mark></strong> 따라서 같은 평등한 존재에 있어서 권위에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존재다. 즉, 리리스는 쫓겨난 지혜이고, 자발적으로 퇴장한 주체이다. <mark>그는 제2의 성이 되기보다는 주체를 선택한 존재이기 때문에 에반게리온에서는 리리스의 체액을 바탕으로 태어난 생명체들은 지성을 가지게 되었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mark>따라서 에바 세계관에서 인간이 지혜나 이성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이 리리스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mark><br></mark><br>　<strong>이렇게 아담의 자식은 아담에게 생명의 열매, “육체”를 물려받게 된 것이고, 리리스의 자식은 지혜의 열매, ‘이성’ 혹은 ‘영혼’을 물려 받게 된 것이다. </strong><br><br>　하지만 인간은 판단했다. 리리스의 후손으로서 지혜를 물려받았으나, <strong><mark>인간은 리리스의 체액을 바탕으로 태어난 것이지 리리스가 아니기에, 아담의 자식인 사도와는 다르게 완벽한 육체가 없었다.</mark></strong> 사도들은 아담이 직접 복제한 아담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사도와 아담의 신체는 동일하다. 따라서 <mark>사도는 늙어 죽지 않는다.</mark> 하지만 리리스의 체액을 바탕으로 기존의 지구와 섞여가며 태어난 <mark>인간은 아무리 지혜를 통해서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육체의 한계, ‘수명’이라는 커다란 한계가 존재했다.</mark> 이는 리리스의 자식 인간에게는 커다란 문제였다.&nbsp;<br><br>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인류보완계획’이다. 인간은 애초에 리리스의 자식이기에 인간의 AT 필드를 삭제하면 모든 인간은 리리스의 체액인 L.C.L로 치환된다. 모든 인간을 다시 리리스의 체액으로 되돌린 뒤, 리리스의 액체 안에 존재하는 리리스가 준 ‘지혜’ 혹은 ‘이성’ 혹은 ‘영혼’을 모두 리리스의 알로 되돌린 뒤, 알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뒤, 인간은 리리스의 완전한 육체와 영혼을 둘 다 가진 새로운 존재가 되려고 한다. 즉, 지혜와 육체가 완벽하게 존재하는 신인류으로 거듭나려고 했던 것이다.&nbsp;<br><br></div><div>　그런데 여기서<strong> ‘AT 필드’란 무엇일까? </strong>이 개념이 매우 중요한데, AT 필드는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strong> </strong><strong><mark>‘타자를 인지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의식 개념을 지키기 위한 방어막’이다.</mark></strong> 개념이 약간 어려운데 쉽게 이야기하면 자의식과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라고 볼 수 있다. <mark>모든 지구의 생명체는 리리스의 체액으로부터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지구 생명체한테 있어서 차이는 없다.</mark> 모두 리리스한테서 나온 자식이니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계속 흐름에 따라서 가면 갈수록 리리스의 자식들은 서로가 같은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strong><mark>타자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mark></strong> 외부의 타자를 인식함으로써 자연스럽게<strong> </strong><strong><mark>‘자아’</mark></strong><strong> </strong>개념이 등장한다. 나와 타자를 다르게 보면서 자의식이 더욱 강해지고, 더욱 강해진 자의식은 자의식과잉 상태의 인간을 만들어 낸다. <strong><mark>하지만 AT 필드가 삭제되면 타자를 완전히 자신과 융합해 낼 수 있게 되고 타자와 나의 경계가 사라지게 된다. </mark></strong><br><br></div><blockquote><strong>아야나미 레이</strong>: 어디서부터가 나고, 어디서부터가 타인인지 모르는 애매한 세계</blockquote><div><br>　바로 이 부분이 내가 에반게리온을 정말 재밌게 느끼는 지점이다. 이카리 신지는 엄청난 자의식 과잉 상태의 인간이다. 인류보완계획으로 모든 인간이 리리스의 체액으로 녹아버렸을 때, 신지는 자신이 죽었는지 레이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레이는 모든 것이 하나로 되었을 뿐, 네가 죽은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strong>리리스의 알 내부는 자아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든 것이 하나로 된 완벽한 세계다.</strong> 리리스의 알 내부에선 모든 인간에 차이는 없다. 신지의 불안한 의식과 질문을 알 내부에서 해결해가면서, 이 세상을 본래&nbsp; 평등한 세상임을 인지하게 되는 과정을 에반게리온에선 이카리 신지라는 자의식 과잉 상태의 캐릭터로 보여주고 있다.&nbsp;<br><br></div><blockquote><strong>이카리 신지</strong>: 모두 나를 싫어하는게 아닐까?<br><strong>아스카 랑그레이</strong>: 너가 그렇게 생각할 뿐이잖아?</blockquote><div><br>　이 대사는 자의식이 점차 붕괴하는 과정속에 그것을 두려워하는 신지의 문제의식을 아스카라는 인물을 통해서 <strong><mark>자의식이라는 강한 지위를 가진 개념을 관념적 허상이라는 하찮은 지위로 하락시키는 장면이다.</mark></strong>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은 나라는 관념이 실체로 존재해야 느낄 수 있지만 실상 이러한 관념을 모두 나의 인지로부터 나올 뿐, 실체가 없는 존재다. 즉, 그런 생각은 네 생각일 뿐 허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AT 필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리리스의 알 속의 모든 인류는 이런 자의식을 지키려 하는 에고의 몸부림과 자기방어적 사고가 점차 붕괴하기 시작한다.<br><br></div><blockquote><strong>이카리 신지</strong>: 하지만 나는 나를 싫어해.<br><strong>아야나미 레이</strong>: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수 없어.</blockquote><div><br>　이는 자의식을 강화하면 강화할수록 타자와 자신을 비교하여 자기혐오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관념을 붕괴시키는 장면이다. <strong>사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도 타인을 사랑할 수도 있을 것이며 자신을 사랑해도 타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strong> 하지만 타자와 자아의 경계가 붕괴해서 자신과 타자의 차이점을 알 수 없게 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strong>리리스의 알속에서 나와 타인의 차이는 없다. </strong><strong><mark>이 안에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타인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mark></strong>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신지는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무너뜨리는데 성공하고, 자의식이 붕괴한 순간 타자의 개념도 붕괴하고 모든 것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자연스럽게 기존에 가졌던 죄책감이나 자기혐오 또한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된다. <br><br>　하지만 인류보완계획의 태생부터 가지고 있는 <strong>모순적 한계를 깨달은 신지는 이제는 더 이상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없으며 모든 대상에 대해서 긍정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모든 인간을 리리스의 알을 통해 다시 태어나게 할 이유가 없다.</strong> 따라서 <strong><mark>신지는 다시 타자를 인지하고 자신을 인지할 수 있는 모든 다양성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하고 다시 삶을 긍정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mark></strong><br><br>　그런데 만약 인류보완계획이 완성되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사실 완성되어도 커다란 문제는 없다. 리리스의 알로 새로 태어난 인류는 완벽한 신체와 완벽한 영혼을 가지게 됐을 것이며, 더 이상 인지할 수 있는 타자도 없기 때문에 자신이 존재하는지도 인지할 수 없다. 늙어 죽지도 않는 새로운 신인류는 더 이상 자신이 완전한지 불완전한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즉, 이원론적 존재가 아니라 일원적 존재가 된다. 죽지 않으니 태어날 일이 없으며, 즐겁지 않으니 슬플 일도 없으며, 쾌락이 없으니 마찬가지로 고통도 없다. 이러한 상태는 모든 공간에서 아무런 비교 대상도 없는 상태로 영원히 존재하는 무언가가 될 것이다. <strong><mark>비교 대상인 타자가 없으니 나를 인지할 수 없고 영원히 존재하는 이 완벽한 대상에게는 더 이상 삶도 없고 죽음도 없다. 이는 불완전 상태인 인간으로 보면 완전한 상태겠지만 불완전을 인지함으로써 비로소 완전함을 인지할 수 있는 인간에게는 사실상 완전함을 인지할 수 없는 인류보완계획은 애초부터 목적성과 맞지 않는 계획이었다.</mark></strong><br><br>　따라서 신지는 <strong><mark>자신의 결핍과 고통과 두려움의 존재야말로 자신의 충족과 즐거움과 용기의 양면적 존재임을 긍정하고 다시 삶으로 되돌아간다.</mark></strong><strong> </strong>즉, <mark>에반게리온이 보는 우리의 삶에 대한 태도는 긍정이고, </mark><strong><mark>신세계, 이세계, 유토피아를 바라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길 바라는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mark></strong> 이러한 방식으로 에바를 본다면 에바는 상당히 재밌는 작품이다. 물론 에바는 복잡한 작품이고 즐길 수 있는 방식은 너무 많으며, 내 해석은 단지 내 해석일 뿐 아무런 가치도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의 해석이 에바를 보는 데 있어서 상당한 즐거움을 준다. 누군가 에바가 뜬구름을 잡는 것 같고, 감이 안 잡힌다면 개념을 다시 정립하고 더욱 즐겁게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이 있다. 오랜만에 기억이 에매모호한 에바 세계관도 찾아보고 창세기도 뒤지면서 글을 정리하다보니 어릴 적에 티비에서 에바 극장판을 보다가 사도가 너무 무서워서 울던 생각이 났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에바를 보는 태도가 다르지만, 결국 에바가 나의 마음에 언제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음에 차이는 없다. 어찌 됐든 에바는 나에게 있어서 언제까지나 좋은 작품일것 같다.<br><br><br><strong><sub>참고 영상&nbsp;<br></sub></strong><br></div><h1>エヴァンゲリオンがさらにわかる動画：旧【最終調整版】</h1><div><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TeoFnVoiQAs">https://www.youtube.com/watch?v=TeoFnVoiQAs</a><br><br> <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7QLpLOV1QMo">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人類補完計画」の概要【エヴァ解説】</a> <br><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7QLpLOV1QMo">https://www.youtube.com/watch?v=7QLpLOV1QMo</a><br><br></div><h1>목숨을 건 인정투쟁 (feat. 헤겔, 스타트렉, 신세기 에반게리온)</h1><div><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1qjQgSAAMPI&amp;t=4s">https://www.youtube.com/watch?v=1qjQgSAAMPI&amp;t=4s</a><br><br><strong><sub>글 쓰면서 들었던 에바 OST<br>&nbsp;</sub></strong></div><h1>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The End of Evangelion OST - Arianne</h1><div><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HLs8ZOlEBeg">https://www.youtube.com/watch?v=HLs8ZOlEBeg</a></div><div>&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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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05:36: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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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78 신세기 에반게리온</title>
         <author>halin237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670082</link>
         <description><![CDATA[<div>처음 영상을 틀었을 때 이 내용을 어떻게 이해 해야하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nbsp; 25화와 26화 모두 25분 내외로 그리 길지 않은 영상 길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독백과 빠른 전환, 이전의 회차들을 보지 않고서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갈등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 등 때문에 엄청 긴 시간으로 체감되었다. 사실 이전에 &lt;신세기 에반게리온&gt;이란 작품을 들어본 적도 없는 상태였어서 기본 정보가 필요했다. 일단 영상들을 한번씩 본 후에 등장인물과 대충 줄거리를 살펴보고 다시 영상을 시청해봤다.&nbsp;<br><br>&nbsp;인류를 위험하게 하려는 사도라는 적을 막기위해 등장인물들은 '에반게리온'이라는 것에 타서 싸움을 하고 최종적으로 적이었던 사도를 죽인 주인공 신지가 괴로움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주인공은 4명 정도이고 각각의 인물들은 어떤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다. 25, 26화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혹은 그저 허공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며 그런 결핍의 원인, 혐오의 원인,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깊게 들어가본다. 그리고 최종으로는 주인공 신지가 자신을 인정하고 좋아해주려고 하며 '나는 나일수밖에 없다'고 하며 자기 혐오에서 벗어나고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nbsp;<br><br>&nbsp;25화와 26화에서는 자신이 마음먹기에 달렸고 스스로가 먼저 자신을 좋아해주어야 한다는 등 이야기의 전개와 함께 시청자들에게도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방식이 이전과는 다른 표현법인 것 같았다. 25화와 26화를 보는 것 만으로는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앞의 24화 조금을 ott를 통해 봤는데 정말 평범하게 그저 이야기를 전개하는 형식이었다. 이렇게 보고나니 25화와 26화가 확실히 다르다는 게 다시 체감되었고 그래서 '회차'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스페셜 편으로 나뉘는 게 더 적절한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nbsp;<br>&nbsp;<br> 처음 접한 작품에 형식이었어서 초반엔 좀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딱 25화와 26화의 내용만 봐서는 내용과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았다. 4명, 그중에서도 특히 이카리 신지의 고뇌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표현할 때 장면의 빠른 전환이 이를 극대화하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그저 적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가 아닌 세계를 이해하고 내면의 성장을 이루는 것 까지 다루고 있기에 더 인기 있던 작품이지 않았나 생각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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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06:17: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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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22130009 우스키 스미레</title>
         <author>sumire1122usk</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673149</link>
         <description><![CDATA[<div> 1995년부터2021년까지 애니메이션, 만화, 영화 등 다양한 형태를 통해서 많은 대중들을 매료시켜온 &lt;에반게리온&gt; 시리즈. 나도 그 매력에 빠진 사람 중 하나다.&nbsp;</div><div>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애니시리즈를 감상했다. 그 탁월한 심리묘사와 다른 戦隊モノ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성에 바로 매료되었다. 애니를 5번은 넘게 거듭 시청하고, 작년 개봉된 ‘신에바’를 개봉일에 영화관에서 감상한 나는 어떻게 보면 ‘에반게리온 오타쿠’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nbsp;</div><div>&nbsp;</div><div>&nbsp;그러나 &lt;에반게리온&gt;은 몇 번 시청하여도 그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불가능한 독특한 작품이다. アダム、リリス、ロンギヌス（の槍） 등 기독교와 관련한 용어나 ATフィールド、L.C.L, 人類補完計画 등의 복잡한 개념이 작품 내내 등장하여 시청자들은 그 난해함에 당황한다. 실제로 나도 몇 번이나 &lt;에반게리온&gt; 시리즈를 감상해 왔지만 그 내용의 상세한 부분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다른 시청자들도 그럴 것이다.&nbsp;</div><div>&nbsp;이러한 스토리에 복잡함이 &lt;에반게리온&gt;이 큰 인기를 얻게 된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적을 쓰러뜨리다’라는 주제만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단순한 ‘戦隊モノ’와는 달리 난해하고 복잡한 주제, 전개를 설정한 &lt;에반게리온&gt;은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謎解き’와 가까운 느낌을 준다. 실제로 인터넷상에는「エヴァンゲリオンをわかりやすく解説してみた！」와 같은 수많은 글이나 동영상이 올려 있다. ‘이러한 복잡한 스토리를 이해하고 논의할 수 있는 나’ 라는 오타쿠들의 자존심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을 &lt;에반게리온&gt;가 인기를 가지게 된 하나에 이유로 뽑을 수 있을 것이다.&nbsp;</div><div>&nbsp;</div><div>&nbsp;대중들이 &lt;에반게리온&gt;에 매료되는 이 뿐만 아니다. 각 등장인물들이 오타쿠들의 심정에 초점을 맞추어 깊게 감정몰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점도 그 중 하나다. 세일러문이나 ウルトラマン와 같은 기존의 완벽하고 영웅적인 캐릭터와 달리 &lt;에반게리온&gt;의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 일종의 ‘부적함’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 이카리 신지는 우유부단하고 겁이 많은 성격과 아바지와의 갈등, 아스카는 어머니의 부재, 아야나미 레이는 감정 및 공감능력 결핍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부적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소년, 소녀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신지 아버지, 겐도우는 죽은 아내, 유이에 대한 상실감, 미사토는 죽은 아버지와의 갈등 등 모든 등장인물이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완벽하고 모범적인 캐릭터는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인물 뿐 만 아니라 때론 에반게리온자체도 폭주하거나 명령을 어길 행동을 하는 듯 결전병기로서 완벽하게 기능 안 한다.&nbsp;</div><div>이는 &lt;에반게리온&gt;이 감독, 안노 히데아키의 정신적 갈등을 들어내는 작품이며 안노 자신도 ‘부적’이라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nbsp; NHK다큐, 프로페셔널에서 안노는 자신의 아버지가 사고로 왼발을 잃어 이를 계기로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증오감을 항상 느끼고 있었다고 들어냈다. 이것이 &lt;에반게리온&gt;의 캐릭터들이 ‘부적함’, 특히 가족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는 이유이며 &lt;에반게리온&gt;이라는 작품 전체, 또한 주인공 신지의 성장을 통해서 안노 자신도 ‘부적’에 대한 갈등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에 대한 콤플렉스, 부적함,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오타쿠’들이 이러한 &lt;에반게리온&gt;의 설정에 깊게 공감하고, 몰입하고, 자신들과 비추어봤다는 점이 이 작품이 큰 인기를 얻게 된 또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div><div>&nbsp;</div><div> 마지막으로 ‘신에바(シン・エヴァンゲリオン)’를 감상했을 때 느낀 점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작년 개봉된 ‘신에바’는 약25년동안 이어진 &lt;에반게리온&gt;시리즈의 완결판으로서 개봉전부터 커다란 관심을 끌어 왔다. 나도 개봉일에 영화관을 방문하여 작품을 감상해 왔지만 영화 이외에도 깊게 인상에 남은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오타쿠상（像）의 변화’이다. &nbsp;</div><div> 그 날 영화관을 방문하기 전 까지는 &lt;에반게리온&gt;이라고 하면 전형적인 ‘오타쿠’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며 ‘오타쿠’라고 했을 때 맨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즉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안경을 쓰고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영화관에는 이러한 ‘오타쿠’들이 넘쳐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관을 방문해보니 내가 상상한 전형적인 ‘오타쿠’의 모습은 많지 않았다. 중년 남자, 중・고등학생, 나와 같은 젊은 여자, 부부까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 모습이 거기에는 있었다. ‘신에바’를 개봉일에 보는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lt;에반게리온&gt;에 진심인 ‘오타쿠’일 텐데 내가 상상한 ‘오타쿠상’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어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div><div>&nbsp;이는 단순히 &lt;에반게리온&gt;의 펜들이 다양해졌다는 측면 뿐 만 아니라 일본에서의 ‘오타쿠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오타쿠’라고 하면 위에서 언급한 이미지와 비슷한 부정적인 느낌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일본의 ‘오타쿠’는 거의 한국의 ‘팬’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 소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타쿠’에 해당하게 되었다. k-pop오타쿠, コスメ오타쿠, 美容오타쿠 등 특정의 장르 이름을 앞에 붙이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전반을 가리키거나 ‘오타쿠’들의 성지, ‘秋葉原’가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애니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나 여성들도 많이 방문하는 곳으로 변화한 듯 이제 ‘오타쿠’는 아주 흔한 존재가 되어 부정적인 이미지는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div><div>&nbsp;그러나 이러한 인식의 변하는 아직 한국에서는 볼 수 없어 여전히 ‘오타쿠’라고 하면 애니를 좋아하는 남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이 인식의 차이를 느낀 기회가 된 드라마가 작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lt;D.P.&gt;이다. 이 작품에는 애니와 그림을 좋아하는 케릭터, ‘석봉’이 등장하는데 주변 훈병들을 그를 ‘오타쿠’라고 부르고 놀린다.&nbsp;</div><div>이는 일본에서는 이제 통하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에서 ‘오타쿠’는 이미 흔한 존재가 되어 특정의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게다가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점점 없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긍정적인 말로 쓰일 때도 많다.</div><div>&nbsp;‘오타쿠=부정적’이라는 인식의 차이가 없어지고 해외에서도 일본의 새로운 ‘오타쿠상’이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nbsp;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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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06:27: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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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3059 최재혁 - 신세기 에반게리온</title>
         <author>choi_jaehyuk</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685636</link>
         <description><![CDATA[<div>예전에 에반게리온을 처음 접했을 때는 평범한 '메카물'인줄 알았다. 나는 애니메이션중에서 특히 메카물을 굉장히 좋아했기에 에반게리온은 여느 다른 작품들인 '건담', '천원돌파 그렌라간' 등의 전형적인 메카물의 장르라고 생각했었다.&nbsp;<br><br>&nbsp;초반에는 나름 메카물(?)의 특성을 잘 살려서 '사도'라는 작중 악당을 물리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에반게리온을 단순한 메카물로만 판단해서는 안되었다. 전투 중에 굉장히 잔인한 장면도 많이 나오고 심오한 스토리텔링도 나오기에 꽤나 복잡한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애니메이션을 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서 에반게리온 작품을 분석하는 글들이나 유튜브에서의 해석한 영상들이 꽤나 많이 있다.<br><br>&nbsp;당시 25,26화를 제작했을 때 그 비화가 있다. 스케줄이 펑크가 나버려서 급하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이전화들이랑 다르게 정적인 장면들과 독백장면들이 주를 이루었다. 에반게리온 제작측에서는 당연히 "망했다"라는 인식이 퍼졌지만 감독인 '안노'가 자신만의 철학을 잘 담아내어 이 애니메이션이 일본만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모두의 애니메이션이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타인과 나의 관계는 어떠한지 등 자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의 각각 캐릭터마다 고뇌를 그리고 있었다.&nbsp;<br><br>&nbsp;최근에 에반게리온의 대미를 장식할 '에반게리온 다카포'가 개봉되었다. 나는 과연 '안노'가 해피엔딩을 그릴것인지 모두가 절멸하게 되는 배드엔딩으로 마무리하게 될 지 궁금했다. 그런데 왠지 안노의 에반게리온 작품들을 보면서 절대 해피엔딩으로는 끝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강했다.<br><br>&nbsp;결말은 (스포주의) 에바에 탑승한 아이들이 미래를 그리는 방향으로 긍정적인 행보로 마무리 되었는데 안노가 아마 스토리구성을 하면서 관객들이 해피엔딩을 바라지 않았나의 여론에 반응하여 그런식으로 끝낸게 아닌가 싶었다.<br><br>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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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06:59: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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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3205 황목자 신세기 에반게리온 </title>
         <author>h1577266009</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695860</link>
         <description><![CDATA[<div>신세기 에반게리온 은 일본에서 매우 유명한 애니메이션이다.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바꾼 대작이기도 하다. 25와 26화밖에 못 봤지만 중간 읽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과 틱톡에 담긴 작품 해석 영상을 통해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됐다.1988~1989년 일본 도쿄도와 사이타마현에서 중대한 여아 유괴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오타쿠에 대한 세간의 평판이 매우 좋지 않다.이번 사건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어 일본에서는 한신 대지진, 옴진리교 지하철 독기 사건이 잇따랐다.일본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다. 그러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등장으로 상황이 호전됐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등장은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다. 오타쿠들은 그들에 대한 사회의 멸시에서 벗어났다.<br><br>마지막 25.26회의 의식의 흐름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대단함을 직접 목격하게 한다. 본능적인 부르짖음이냐, 내면의 호소냐.끊임없이 영혼의 해부를 해도 만족할 만한 답을 얻을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모든 사람의 마음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고, 모든 선택은 그럴듯하다.진정한 구원은 없고, 진심의 갈증도 없고, 정답도 없다. 모순은 보편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진정한 절대성은 영원히 없다.최선이 안 되는 이상, 또한 나쁜 짓하지 마십시오. 인간의 마음의 양면은 안팎으로 서로를 보완하고, 본연의 마음을 향하고, 세상을 향하고, 자신을 주장하고, 삶을 포용한다. 마지막 엔딩도 부드럽게, "take care yourself"라는 제목이든 마지막에 모든 아이들에게 축하의 말이든.<br><br>이 리뷰를 쓴 뒤 나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극장판과 전24화를 보러 갈 예정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의미를 좀 더 깊이 파고든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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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07:26: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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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3401 주현우 </title>
         <author>jhw01049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713452</link>
         <description><![CDATA[<div>솔직히 말해서 뭐가 뭔지 모르는 50분이었다. 에반게리온이라는 단어를 들어는 봤지만 본 적은 처음이었는데, 1-24화까지의 모든 분량을 모르는 상태에서 25-26화를 보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br><br>그나마 추측해 볼 수 있던 것은, 해당 50분의 과정이 어느 정도는 청년의 자아를 찾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50분 내내 등장하는 현실의 인물은 단 한명이다. 그 밖의 인물들은 그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은 고의적으로 조잡하게 연출된 장면 내지는 검은 화면을 통해 내면의 존재라는 것을 드러낸다. 결국 25-26화 50분의 모든 과정은 그의 내면에서 어떠한 내적 결론, 즉 자아를 찾는 과정인 것이다.<br><br>그렇다면 대체 50분동안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로 점철된 애니메이션이, &lt;에반게리온 현상&gt;이라는 단어까지 만들 정도로 흥행하였는가? 물론 그 답을 완벽하게 찾을 수는 없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해보면 어느 정도 추측해보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nbsp;<br><br>1990년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대외적으로는 소련이 붕괴하며 탈냉전이 시작되었다. 그 5년 전만 해도 핵무기 수천발을 겨누던 세계가 어느 정도 평화무드에 들어섰고, EU 등 지역통합이 화두에 올랐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걸프전과 코소보를 통해 전쟁의 생중계라는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으며, 미국에서는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나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건 등 국가보다는 개인의 테러리즘이 부상했다.&nbsp;<br><br>일본 내적으로도 1990년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경제적으로는 일본 최대의 경제부흥시대가 지나면서, 미국의 슈퍼 301조 발동과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각종 부패 사건의 발각과 55년 체제의 붕괴, 사회적으로는 고베 대지진과 94-95년간 발생한 옴진리교의 테러 사건이 큰 충격을 준 시대였다.<br><br>즉 1990년대는 핵전쟁의 공포가 일부 해소된 평화의 시대이면서도, 동시에 전통적인 군사적 위협이 아닌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위협을 맞이하는 시대였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사회적으로 분리된 삶을 사는 히키코모리 문제가 주목받기도 했고, 특정한 주제에 몰입하는 오타쿠 현상이 사회적으로 대두되기도 했다.&nbsp;<br><br>즉 당대의 청소년-청년층은 사회적으로 분리되어 가는 문제가 존재했다. 그러한 면에서 청소년의 자아와 그 탐색의 과정을 다루고 있는 25-26화는 당시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감독의 철학이 투영된 것이 아니었을까. 또 에반게리온이 그렇게 큰 흥행을 거둔 것도, 감독의 의도가 주된 시청자층에게 그대로 적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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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08:14: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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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3 정붕거 신세기 에반게리온</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735862</link>
         <description><![CDATA[<div>&nbsp;<strong>솔직히 이 신세기 에반게리온 애니메이션을 처음 봤다.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이 유명하고 주제곡도 몇 번 들어봤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strong><br> 이 애니메이션의 25화와 26화는 주인공 이카리 신지가 나기사카오루를 직접 죽인 후 자책감을 느낀 후 끊임없이 자기부정을 반복하다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내면과 현실세계를 다시 보게 되는 내용이다.<br> 처음 보는 만화이고 줄거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처음 봤을 때 내용이 뭔지 잘 모르겠다.나는 주인공이 왜 계속 자신을 부정하고 주변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위로를 주는지 모르겠다.그리고 애니메이션의 줄거리 소개를 보고 나서 대략적인 내용을 알았다.25화에서는 심리극으로 주인공의 심리치료를 진행했다.치료의 목적은 주인공의 심리적인 부정적인 감정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다.26화에서 주인공은 늘 갈망하던 따스함과 배려를 친구, 가족을 통해 느끼게 되고 결국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게 된다.<br> 애니메이션의 결말은 주인공의 내면과 현실의 화해처럼 모두가 주인공에게 둘러싸여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br> 완전한 줄거리를 모르기 때문에 이것은 나의 일시적인 생각이다.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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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09:08: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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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3414  강영화  신세기 에반게리온</title>
         <author>9rjbjr8xjj</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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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원래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25, 26회만 본다면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div><div>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시리즈마다 반복적인 관람과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쉽게 한 번만 보면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지막까지 완벽한 마무리를 짓지 못했서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이 만화영화를 보면서 주로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nbsp; 알게 되었습니다.</div><div>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주인공들은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이 부족하고 자의식의 미비로 인해 다른사람들과 접촉을 통해 서로 '보완'해야 한다.&nbsp;</div><div>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곡이 있는데 mother is the first other. Other는 객체를 뜻합니다. 엄마는 우리가 처음 만난 타인이고 엄마가 있어야 우리의 자아가 싹트기 시작합니다.&nbsp;</div><div>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주제는 모든 시리즈에서 일관성이 있다. 수많은 결손인격들의 자기보완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모두 친인척에게 상처를 받았거나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 그들 내심 사랑과 가족애를 갈망하면서도 사랑이 모자라 사랑할 줄 모른다. 자신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성격과 심리에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기구한 가운데 스스로를 용서하고 과거를 용서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자신을 받아들여 타인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마음 깊은 곳의 온전한 인간으로 자라게 됩니다.&nbsp;</div><div>사람들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기상천외한 설정에 대한 강한 반응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극중 장면 나누기, 수법, 철학 종교 등등.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 말고 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들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작품 속 캐릭터는 보는 내내 몸부림에서자신의 그.자를 볼 수 있는 거울 같은 존재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사람'에 대해 토론하며,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심리적 문제를 알려준다. 그래서 신세기에반게리온의 그렇게 인기가 높은 이유겠죠.</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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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09:26: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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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67 두다혜 &lt;신세기 에반게리온&gt;</title>
         <author>endltgld</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773838</link>
         <description><![CDATA[<div>아마 우리 나이대에서 에반게리온이라는 이름조차 한 번도 못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거라 생각한다. 전혀 관심이 없어서 지금껏 한 편도 제대로 보지 않은 나조차도 대충 어떤 만화인지, 상세한 줄거리는 몰라도 장르나 분위기, 하다못해 만화만큼 유명한 오프닝 곡 정도는 정말 많은 곳에서 들어봤다. 하지만 직접 본 사람들에게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애니메이션인 만큼 나 역시 비록 극히 일부밖에 보지 않았지만 이 만화가 내 취향이 아니라는 점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아마 앞으로도 굳이 찾아보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div><div>이렇듯 내 솔직한 감상은 불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에반게리온이 이렇게까지 유명한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 두 편이었기에 총 40분 남짓이라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어떤 결론을 내고 싶은지와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누구나 어느 정도는 공감되게 풀어내고, 극적인 연출까지 잘 이용하여 몰입하기가 쉬웠던 것 같다. 물론 주제가 ‘진정한 자신에 관한 것’이라는, 어떻게 보면 어렵지만 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기에 시간을 넉넉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div><div>내용을 정말 간략히 말하자면 결국 자신과 타인 사이에서 방황하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방황의 원인이 된 것은 그들의 어린 시절이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앞 내용을 몰라서 뭐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어쨌든 공통점은 부모에게서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정과 형태는 다양하더라도 결국 존재 자체로 목적이자 의미가 된 인물은 없었으며 모두 프로젝트를 위한 수단이 되고서야 처음으로 인정받은 듯 보였다. 티비를 보려고 할 때만 찾는 리모컨과 바를 바 없이 말이다. 어느 사건이나 그렇듯 여기서도 갈등의 시작은 과거, 이전 세대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삶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은 이미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누구인지도 모르는 ‘나’라는 사람이라는 점이 우선 씁쓸하게 느껴졌다.</div><div>나에게는 등장인물들이 하는 고뇌가 앞에서도 언급했듯 어찌보면 당연한 것처럼도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 ‘나’가 ‘어떠한’ 사람인가가 아닌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말로써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만 가지고 있는 습관도, 취향도, 심지어는 이름조차도 나를 수식하는 말일 뿐, 본질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잘 모르는 것, 정리되지 않은 것에 대해 사랑보다 공포를 느끼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정체를 알 수 없기에 뭐가 좋고 나쁜지 알 수 없고, 뭐가 좋고 나쁜지 알 수 없기에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두려워지고, 두려워지기에 다시 알 수 없게 되고 방황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흐름에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없다. 반면 남은 어떨까? 나는 등장인물들이, 그리고 우리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항상 마음 졸이면서도 ‘결국 나를 싫어하게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이유 역시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잘 모르는데 남을 알 수 있을 리 없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것처럼 깊이 생각할 수조차 없는 존재가 바로 타인이기에 그를 파악할 수단은 그의 말이나 행동밖에 없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속으로 방황하기만 하면서 더더욱 알 수 없는 부분까지 파고들어가게 되는 자신과 달리 타인의 언행은 확실한 하나의 표현, 즉 하나의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언어와 행동이라는 분명한 표현은 타인 역시 느끼고 있을 방황을 가려버린다. 사실은 에반게리온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서로의 마음속에 서로의 존재를 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분간하지 못하고 자신을 다그치는 소리로 변환하여 받아들이고 있듯 말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부분들 속에서는 당연히 끊임없는 모순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1이 아닌 1/3을 보여줘 놓고 나머지 2/3을 알아맞춰 주기를 바랄 뿐 아니라 1 전체를 사랑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막상 그것을 이해하는 대상은 ‘1’이 아닌 ‘하나’인데도.</div><div>이 모든 것을 초래한 것이 모두 이전 세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이런 방황과 모순된 마음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신에 대한 방황은 에반게리온처럼 극단적인 가정사와는 정반대로 사랑받고 자랐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나 역시도 수많은 관계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항상 겪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방황의 정도가 작품 속처럼 그렇게(죽고 죽이는 것과 연관될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겠지만 작품 밖의 우리까지도 누구나가 끌어안고 있는 고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한 번도 겪지 않는다면 그때야말로 자신이 정말 사회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에서 보여준 고뇌의 과정과 결말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div><div>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는 시간의 흐름과 그로 인한 변화 역시 자신이라는 부분이 특히나 공감되었던 것 같다. 이 부분은 내가 매일매일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결혼 생활을 통해 정신적으로 많은 변화와 성숙을 겪은 작가 본인이 과거에 자신이 그린 에반게리온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게 됐어”라고 했다는 일화를 보면 작가 본인도 크게 공감하는 부분일 것 같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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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10:39: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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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8 오채연 에반게리온 감상평</title>
         <author>ocy200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775741</link>
         <description><![CDATA[<div>&nbsp;‘에반게리온’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아예 모르는 감상자가 본 25화와 26화는 혼돈 그 자체였다. 명작이라는 평을 받은 에반게리온이지만, 주인공들에 대한 독백 분량이 많기에 어딘가 난해하고 어려운 작품이라고 받아들여졌다. ‘나는 누구’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반복하며, 극중 주인공들이 느끼는 혼란스러움을 더욱 극대화하였다. ‘인류보완계획’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나타내는 것들은 모두 한낱 기호에 불과하는데, ‘나’라는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극 중 인물인 신지는 인류보완계획에 따라야만 하는 수동적인 인물이었다.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들이 대거 등장하며 끝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공포감을 조성한다.&nbsp;<br><br></div><div>에반게리온은 1995년 상영 시작된 애니메이션이다. 에반게리온을 통하여 당시 일본의 국민들의 심리를 일부 반영하였다고 생각된다. 1995년 버블 경제가 사라지고 잃어버리게 된 신념 속에서 국민을 비롯한 정소년들이 느끼는 압박감을 애니메이션 속에서 극 중 인물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25화와 26화 각 각에 등장한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혼란스러운 장면들의 연출이 당시의 청소년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느껴졌다.&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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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10:44: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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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53엄희경 에반게리온 감상평</title>
         <author>cord20010306</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779390</link>
         <description><![CDATA[<div><br><br>&lt;에반게리온 신드롬&gt;, &lt;에바 신드롬&gt; ... 에반게리온이란 작품은 익히 이름을 들었고, 일본의 애니메이션 역사에 있어 큰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애니메이션을 본 적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사실 에반게리온을 전혀 보지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25,26화 만으로는 에반게리온의 줄거리 및 내용을 이해하기 조금 무리가 있었다.<br><br>25,26화를 감상하기 전까지도 에반게리온이 세일러문과 같은 히어로 애니메이션, 혹은 메카물, 건담과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중에서는 건담, 히어로 같은 소재 보다는 무엇인가 부족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인공, 그곁을 지키고 주인공을 응원하는 주변 캐릭터들의 감정 들이 주가 되었다.<br><br>에반게리온의 모든 줄거리를 알지느 못하기 때문에 25,26화를 기반으로 서술하자면, 에반게리온은 '인류 보완 계획'과 크고 작은, 개개인 마다 다른 부족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두 가지의 충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에 부족함이 있다. 신체적인 결여, 심리적인 결여, 사람으로 부터 상처를 받거나, 고통을 겪은 사람들... 작가 또한 신체적인 결여가 존재하고 에반게리온을 감상하는 독자들 또한 어디에선가 부족함과 결여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족함으로 인해 혼란을 겪고 방황할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아마 에반게리온이 인기를 얻은 이유도 이러한 점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90년대 당시의 혼란적인 시대와 히키코모리 등 사회문제, 그리고 자신들과 비슷하게 혼란을 겪고 결여가 있는 주인공들. 이러한 점에서 자신들과 공통점을 발견하고, 자신들을 투영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에반게리온 신드롬, 에바 신드롬들의 단어가 파생되고, 인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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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10:55: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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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세기 에반게리온 감상평 서가은 2021110261</title>
         <author>geseo0523</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808921</link>
         <description><![CDATA[<div>      에반게리온이 애니메이션으로써 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고, 오래된 만큼 그 팬층도 두껍다는 사실은 작품을 보기 전에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이번 수업을 통해서 에반게리온을 처음 접하게 되어서 25,26화와 요약본, 해설 등을 봐도 작품 전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다른 학우분의 감상평에서도 나와 같은 생각을 볼 수 있었는데, 나 역시 에반게리온이 건담, 로봇 등을 주로 다루는 메카닉물이며, 히어로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에반게리온은 그보다 더 심도 있는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었고, 인간의 자아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진실과 거짓, 비밀 등과 같은 장애물에 부딪히고, 고통과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며, ‘나’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유튜브에서 해석을 찾아보다 사랑을 통한 해방은 일시적이며, 혼자만의 고통은 영원하다는 것이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한다. 작품이 나온 당시는 20세기 후반으로 곧 들이닥칠 21세기에 대한 공포심과 기대감이 공존했던 상황으로, 버블 후의 방황하던 이들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꼭 이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나에 대해 이해하길 바라고, 살아가는 내내 방황하기 때문에 이 작품이 긴 시간 동안 사랑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div><div>       짧게나마 작품을 접하면서 이 커다란 세계관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던 작품이라 그런지 작품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해석을 참고하기에 어려움이 없었고, 관련 논문들도 많아 다양한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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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12:00: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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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세기 에반게리온 2014110282 윤녕후</title>
         <author>ynho123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824535</link>
         <description><![CDATA[<div>&nbsp;신세기 에반게리온, 특히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tv판 26부작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난해하기로 아주 정평이 나있는 작품이다. 특히나 26부작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25화와 26화만을 보고 이 작품의 전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전체 작품은 보지 못하고 25, 26화와 작품 내용 전체의 요약 영상을 보았다.&nbsp;<br>&nbsp;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탄생한 90년대 일본의 사회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90년대 일본은 일본이 전후 경제의 암울함을 지나 경제의 초고속 성장에 힘입어 미국을 넘보던 자부심이 버블과 함께 무너진 직후의 실망감과 허탈함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기이다. 경제는 무너지고 일자리는 사라졌으며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대이다. 특히나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더더욱 미래가 어둡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에반게리온은 이러한 시기에 탄생했다. 어려운 시기, 현실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청년들은 점차 안으로 파고들게 되었고 오타쿠 문화의 일부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에반게리온의 '인류보완계획'은 이러한 시대상이 만들어낸 청년들의 생각을 일부 엿볼 수 있게 한다. 즉, 전 인류를 하나의 동일한 개체로 만들어 각자의 개성을 없앨 것, 그렇게 하면 자기 자신을 잃을지 몰라도 현실의 고난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위험한 생각이 어려운 시대를 보낸 청년들의 공감을 산 것이다.&nbsp;<br> 한국의 10년후를 볼 수 있다는 일본의 이러한 점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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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12:35: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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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143 김준형 &lt;신세기 에반게리온&gt;</title>
         <author>joonjoon082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831283</link>
         <description><![CDATA[<div>에반게리온을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극장에 예매 없이 갔다 가장 빠르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에반게리온이었기에 별 생각 없이 표를 사서 보았다. 그렇게 에반게리온에 매료되었다. 영화를 보고는 몇 년 동안은 에바에 빠져 있었다. 그 당시에 구할 수 있었던 모든 에반게리온 관련 영상물, 서적은 다 보았던 것 같다.&nbsp;</div><div>&nbsp;</div><div>작년에 다른 수업을 들으며 오랜만에 다시 에반게리온을 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본 감상은 어릴 적 봤을 때와는 달리 다소 허술한 부분들이 많이 눈에 띠었다는 점이다. 전체의 플롯은 지금 보아도 훌륭하지만 그 외의 ‘안노 감독의 관심사 밖’의 것들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신경한 것이 보였다. 가령 극비 작전을 파일럿도 아닌 일개 중학생 두 명이 참관하거나 인류를 수호하는 파일럿의 신원이 공개되는 점, ‘흑막’이라는 인물들의 행동 양식이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점 등이다.&nbsp;</div><div>&nbsp;</div><div>그 가운데 신경에 거슬릴 정도로 이물감이 느껴졌던 것은 ‘멋진 이름’의 남발이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별 다른 의미를 갖지 않으며 ‘기호인 기호’로 서사적 기능을 다했다. 그러나 이는 에반게리온이 그토록 많은 오타쿠들에게 호응을 받은 가장 큰 두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즉, 의미가 공란인 채로 남겨진 기호에 비대한 자의식의 소유자인 오타쿠들이 저마다 자신의 해석을 채워 넣으며 자의식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div><div>&nbsp;</div><div>나머지 하나의 이유는 작중의 인물들이 비대한 자의식을 지닌 채 행동하기 때문에 많은 오타쿠들이 여기에 공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두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작중 중심인물들은 모두 저마다 사람과 마주하는 것이 거북하거나 미숙한 인물들이다. 이들 성격의 공통적인 원인은 사랑받아야 할 때 사랑받지 못한 것으로 간략하게 제시할 수 있을 텐데 특히 이 가운데에서도 눈에 띠는 것은 신지와 아스카의 관계이다. 두 인물 공히 아버지로부터의 사랑과 어머니로부터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성장했는데 인격이 표출되는 양상은 정반대라 할 수 있다. 신지는 소극적이며 모두의 눈치를 살피고, 타인과 필요 이상으로 관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반면 아스카는 모두의 앞에서 활발한 자신을 보여주려 하며 대부분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어 상처 받은 내면을 가린다. 이렇개 정반대의 방식으로 비대해진 자의식만을 지닌 인물들이 서로 관여한 결과는 신지의 자위 장면과 EoE의 결말, 신지는 아스카의 목을 조르며 아스카는 신지의 뺨을 쓸어내리며 ‘기분 나빠’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표현된다.&nbsp;</div><div>&nbsp;</div><div>이러한 후반부를 생각했을 때 중반부의 ‘제10사도 사하퀴엘’과의 전투 장면에서의 미사토의 대사는 의미심장하다.&nbsp;</div><div>“AT 필드가 저 아이들을 지켜줄 거야. / 에반게리온의 안이 가장 안전해.”&nbsp;</div><div>초호기와 2호기가 각각 신지와 아스카의 어머니의 영혼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에반게리온이 일종의 자궁이나 모성에 대한 상징이며 AT 필드가 사람 간의 심리적 벽에 대한 메타포인 점을 생각했을 때 결국은 사회로 나가지 않고 타인과 관여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역설 아닌 역설을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nbsp;</div><div>&nbsp;</div><div>그럼에도 TVA와 EoE의 결말부는 에바를 벗어 던지고 나오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그 결과가 TVA에서처럼 모두에게 축하를 받고 감사할 수 있는 그림일 수도 있지만 EoE와 같이 끔찍할 수도 있다. 결과가 어떠하든 간에 TVA와 EoE의 메시지는 결국 오타쿠에게 사회로 나가라는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 아닐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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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12:49: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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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20110355 서혜연 &lt;신세기 에반게리온&gt;</title>
         <author>haibara46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852807</link>
         <description><![CDATA[<div>에반게리온은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는 친구마저도 제목을 알고 있을 정도니 단순히 유명하다는 말로 정리가 되지 않는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겐 처음으로 중도 하차하게 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에반게리온을 처음 접한 건 중학교 1학년쯤이었는데, 그 당시 이해가 쉽고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과 달리 뭔가 불친절한 애니메이션인지라 몇 화 못 보고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거의 10년 만에 보게 된 에반게리온의 마지막 화는 사실 전반적인 내용을 모르다 보니 오히려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하는 내용이었다. 다만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은, 그때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주인공들이 굉장히 어리다는 것과 어린 주인공들에게는 가혹한 세계였다는 것이었다. 또한 25, 26화에서의 여러 등장인물의 독백은 마치 오늘날의 많은 사람에게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보기에는 히키코모리 같은 외부와 단절된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지만, 공부가 아니면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입시 경쟁에 몰려있는 학생들, 그리고 안정성을 중시하게 되고, 도전을 두려워하게 되는 직장인 등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 같았다. 전반적인 내용을 다 알지 못해, 좋은 엔딩이다 아니다 라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다면 어쩌면 그것이 다 전달된 마무리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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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13:30: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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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1116 카토유이 &lt;신세기 에반게리온&gt;</title>
         <author>sjelfchegoyui16</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893093</link>
         <description><![CDATA[<div>&nbsp; 저는 애니메이션을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에반게리온은 누구나 아는 명작이라고 하기도 해 이번이 두 번째 시청이었습니다. 재가 에반게리온을 처음 봤을 때는 중학생 때였습니다. 정말 내용이 어렵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 여러 번 보는 것으로 이제야 이해가 돼서 지금은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nbsp;<br>  다시 보면 이 작품은 어른용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보니까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많아 반대로 어렸을 때 어떤 마음으로 봤을까 하고 당시의 나에게 묻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보다가 신지에게 감정이입을 해 버려서 울어버렸습니다.<br>  마지막 회는 난해해서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람마다 견해는 다르지만 상당히 고찰력이 필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br>신화의 지식량이 고찰에 다소 영향을 주겠지만 난해도로 따지면 데이비드 린치 작품을 방불케 하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과 같은 액션 요소 설정이 서툰 부류이지만 스토리는 난해하면서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br>  자신의 과거나 비판 등 모든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자기자신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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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14:35: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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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8113195 에반게리온</title>
         <author>wenjingcai546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893404</link>
         <description><![CDATA[<div>신세기 에반게리온이란 작품은 일본 경제의 거품 이후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시대에 탄생했다.그때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잃었다.공상과학과 종교의 탈을 쓰고 있는 이 작품은 본래의 자신을 수용하고 사랑하게 만든다.<br><br>경비가 턱없이 모자라 돈을 거의 들이지 않는 수법으로 타인을 거울삼아 한 사람의 눈에 다른 이미지를 반사시키고 마지막 회에서는 타인의 가슴에 비친 남주의 모습을 비중 있게 다뤘다.<br><br>남주인공은 어려서부터 사랑이 부족한 아이로, 아버지가 쓰고 버린 도구로 타인의 칭찬을 받기 위해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선택했던 아이였다.타인에게 칭찬을 받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br><br>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계속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사랑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할 때까지, 그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의심하고, 이렇게 나약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관심을 원하는 자신이 싫고, 사랑이 없는 세상이 싫었다.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리면 자신은 자유이며 타인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br><br>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의 내면화상을 통해서 외부세계에 영향을 미쳐야만 자신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모든 사람 자신의 가치이며, 타인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사람마다 마음속에 있는 한 개인에 대한 견해와 이해는 다르지만, 자신의 자신에 대한 이해는 단 하나, 그 자신의 이해는 거짓이며, 자신이 도피하려는 어떤 정보를 걸러내고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그러므로 한 사람의 이미지는 한 가지뿐이 아니다. 자신의 인식에 깊이 빠지지 말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만 관심을 갖고 자신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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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14:36: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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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20110284 신세게 에반 게리온</title>
         <author>yoonsoo246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3992372</link>
         <description><![CDATA[<div>이번에 보게 된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라는 작품은 1995년 일본에서 제작된 안노 히데야키의 애니메이션 시리즈이다.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본 작품이었다. 하지만 에반 게리온을 보고 나서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애니메이션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꾸어 놓은 작품이었다. 대체로 행복, 즐거움, 감동을 주었던 기존의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에반게리온은 오히려 ‘인생이란 무엇인가, 자아와 타인, 꿈과 현실 등 다소 철학적인 생각을 가지게 만든 작품이었다. 에반 게리온은 굉장히 심오하고 복잡한 애니메이션이었던 만큼 그 안에는 많은 논쟁거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관심 깊게 봤던 것은 주인공 신지의 자아와 주변 사람들과의 연관성이었다. 애니메이션 초반에 주인공 신지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을 회피했고 또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의식하고 두려워했다. 신지에게 다른 사람들은 어찌보면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고통을 주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에반 게리온을 타게 되고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신지는 점차 에바 파일럿으로서의 자신의 자아를 찾게 되고 더 이상 인간관계에서 도망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후반부에 신지는 다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게 되고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다시 겪기도 하면서 모두가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까지 한 채로 마음의 문을 또 닫아버린다. 자신의 자아 와도 같은 카오루를 죽이게 되면서 신지는 절망의 늪으로 빠진다. 이 극단적인 늪에서 헤어나오는 것이 25.26화이다. 그는 자아와의 많은 질문과 답을 하면서 자아를 찾아간다. 사회를 겪으며 만난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자아를 회복해 나간 건 신지 스스로 한 일이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인 것 같다 마지막에 신지는 자신에게도 가능성이 있다며 희망과 가능성을 확인하며 애니메이션은 마무리가 된다. 꽤나 난해한 결론이었기에 에반 게리온 극장판으로 스토리가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극장판의 결말은 조금은 극단적이고 비극적이었기 때문에 희망적이었던 25. 26화가 이 애니메이션의 진정한 결말이라고 믿고 싶다.&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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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17:23: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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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110264 이현정 에반게리온</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4002267</link>
         <description><![CDATA[<div>배경 지식 없이 에반게리온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내용이 조금 난해하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이후에 해석 영상을 참고하여 이 작품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90년대의 일본을 우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일본은 버블 경제의 붕괴로 위기를 맞았으며 이는 가족의 해체와 청년 세대의 실업난을 야기했다. 따라서 당시 청년과 청소년 세대는 가족으로부터의 유대감을 느끼지 못함과 동시에 취업난으로 인한 어려움까지 겪어야 했다. 에반게리온의 25화와 26화는단순한 구성에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꽤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이 되는데 그 주된 내용은 인간 존재, 자아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등장인물들은 부모님으로부터 안정적인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앞서 언급한 당시의 사회적 맥락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없으니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어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div><div>&nbsp; &nbsp;</div><div>25화와 26화 내내 주인공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내면으로 깊이 침잠한다. 현실도 그렇다. 90년대의 일본의 청년 세대들이 느꼈던 것처럼,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의지할 수 없을 때, 좌절감을 느끼게 될 때 우리는 자신만의 공간(꼭 물리적 공간이 아니더라도)에 갇혀 자기 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부분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어떤 틀을 깨고 나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는다. 그 틀을 깨고 나옴으로써 다시 현실과 마주하겠다는 주인공의 결심은 박수와 함께 축하받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야 하기에 때로는 고통 속에 자신을 가두더라도 결국에는 그것을 벗어나야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당시의 청년 세대와 또 이 작품을 보는 누군가에게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혹은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div><div>&nbsp; &nbsp;</div><div>에반게리온은 당시 일본의 사회상과 함께 인간의 존재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점이 많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전편을 보며 이 작품을 깊이 감상하고 싶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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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4 17:42: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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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3 일본학과 정은채</title>
         <author>spring_crb</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4192749</link>
         <description><![CDATA[<div>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도 여러번 들어왔고 마니아 층이 탄탄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작품을 보았을 때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것이 버거워 많은 정보들을 찾아보고 이해해야했지만 왜 명작으로 불리우는지 깨달았다. 버블시기에 맞물려 가족의 파괴와 그로 인한 고립감과 좌절감 그리고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청년들의 성장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주인공 신지를 보면서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편적으로 조금은 과격하게 담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div><div><br></div><div>애니메이션이 처음부터 보지 않으면 잘 이해가 가지 않았고 조금은 불친절하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착실하게 애니메이션을 보면 작품의 철학에 감탄하고 말 것이다. 특히 가정의 파괴와 가족의 사랑의 부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주인공 신지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가족의 파괴로 불완전한 인간이 되었다. 인생에서 처음 사랑을 받는다는 존재들의 부재는 나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사회 공동체인 가족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수요층이 탄탄한 것이 이런 경험들을 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nbsp;</div><div>&nbsp; &nbsp;</div><div>인간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들을 없애는 다소 과격한 생각 속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나의 생각과는 다른 점들이 많아서 보기 힘들었던 부분들도 많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많았다. 왜 이 장면이 그려졌는지, 이야기 전개가 이렇게 되는 건지 의문이 많이 들었다. 굳이 그 장면이 필요할까?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런 부분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div><div>&nbsp; &nbsp;</div><div>인간은 혼자이지만 자신을 믿고 살아간다면 어디든 천국이다, 즉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이 작품이 응원해주는 것 같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하지만 행복은 신기루처럼 존재하는 듯 싶지만 잡을 수 없는 것만 같다. 늘 행복에서 고립되어가는 것만 같고 멀어져가는 것만 같다. 그렇지만 행복을 나의 반의어는 아니다. 유의어가 될 수 있고 언젠간 동의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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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5 02:19:5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4192749</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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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2 김기려 &lt;신세기 에반게리온&gt;</title>
         <author>Giryo</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4206115</link>
         <description><![CDATA[<div>전 세계에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알린 작품이다. 1화부터 거대로봇이 등장하는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계에서도 의미있는 작품이고 일본이 애니메이션의 거장이라는 이름의 받침이 된 작품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은 에반게리온 이후에 자주 등장한다. 보면서 작가가어디서 영감을 얻어서 이런 작품이 나왔는지가 궁금했던 것 같다.&nbsp;</div><div><br></div><div>작화가 이쁘고 세련됐다. 로봇을 중심으로 한 앞서간 관점을 가진 것이 신기했다. 이 작품을 전후로 일본 애니메이션 시대가 앞뒤로 나뉜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건물이 지하에서 보관된다는 등의 설정이 신기했다.</div><div><br></div><div>연출이 좋다. 빠르게 지나가는 기억이나 선을 넘는다던가 등의 연출이 몰입감 있게 볼 수 있도록 해준다.</div><div>이카리신지의 초점없는 눈 장면이 나오는데 돌아다니던 짤로 봤었다. 그런 장면들은 그만큼 표현력이 좋았기 때문에 유명한 것 아닐까.</div><div><br></div><div>솔직히 찌질한 캐릭턴데 그 캐릭터를 “원래 그런 애”로 봐준다. 인정해주는 느낌이다.</div><div>고슴도치에 비유한다거나 어른을 “멀어지고 다가가면서 적당한 거리를 아는것”이라고 설명한게 기억에 남는다. 세계관은 둘째치고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본 작품인 것 같다. 어리숙하고 사회생활을 못하는 캐릭터이지만 착한게 매력인 것을 잘 드러내고 있는 주인공이 좋았다.</div><div><br></div><div>기분이 안좋아질때 에스컬레이터를 수직으로 내려가는 연출같은 것이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리고 내용면에서도 절차를 중요시해서 참사를 맛보는 일본인의 단점을 지적한다. 작가가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같았다.</div><div><br></div><div>보통 주인공은 세상을 구하는데에 뿌듯함을 느끼는데 너무 소심하고 착하기도 한 신지는 매번 왜 더 잘하지 못했을까 하는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매번 부담감을 느끼며 하기 싫어하는 점이 눈에 띄었다. 그런 캐릭터성, 이미지, 컨셉화를 잘시킨 애니같다. 이 이후 걸작들이 줄줄이 나오게 된 이유도 에반게리온이 혁신적인 도전을 해서가 아닐까</div><div><br></div><div>그리고 이 작품은 종교적인 설정이 강하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더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떠도는 설로는 해피엔딩이되어야하지만 안노 히데아키의 우울증 때문에 마지막이 바뀌었다고 한다. 근데 그런 엔딩이기에 더 기억에 남는 작품이될 수 있었다.</div><div><br></div><div>로봇에서 나오는 장면이 진격의 거인이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다. 다른 작품의 작가들에게 캐릭터설정값 같은 것이나 큰세계관에 대한 영감을 주는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nbsp;</div><div><br></div><div>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 것임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망설임&nbsp; 후에 답을 내놓는 사람을 칭찬하고 싶었던 것 같다. 또 어딘가에서 본 해설인데 사회에 나가서 많이 부딪히고 실패하고 엮이면서 성장하라가 테마였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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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5 02:57:0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4206115</guid>
      </item>
      <item>
         <title>2020110266 고가연 &#39;신세기 에반게리온&#39;</title>
         <author>ggykmh</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4210030</link>
         <description><![CDATA[<div>이번에 감상한 작품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서 나에게는 익숙하지만 한 번도 본 적은 없던 작품이었다.<br>안노 히데아키의 95년도 작품이며, 일본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마니아층을 갖고 있는 작품이라고 하여 관심 있게 시청하였다.<br><br>작품을 시청하며 전반적으로 '세기말 감성'이 난무하다고 생각했다. 세기말 감성, 이라 함은 국내에서 난해하거나 현재는 잘 취급하지 않는 마이너적인 요소의 것을 통칭할 때 쓰는 용어인데,&nbsp;<br>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는 이와 같은 분위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되어 무언가 어려우면서도 고차원에서 해석해야할 것이 많은 작품이라고 느꼈다.&nbsp;<br>또한 세계관이 매우 정교하게 구축되어 있어 이를 설명하기 위한 작품 내 용어가 많이 등장하여 에반게리온을 처음 접하는 나에게는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찾아가며 이해하려고 했다.<br>앞서 말했던 세기말적인 감성, 즉 어지럽고 혼돈스러운 분위기가 지속되고, 특히 신지가 에반게리온을 조종하게 되며 겪는 모든 내면의 고뇌와 혼란 같은 것이 작품에서 독백으로 표현되어 처음에는<br>해석하기 어렵고, 작품의 스토리 라인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뒤로 갈 수록 제 3자의 시선에서 작품 속 사건을 바라보기 보단 신지에 대입하여 해석하였을 때 좀 더 원활한 이해가 이뤄진다는 것을 느꼈다.<br>인류보완계획 등 작품 내 신지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을 내가 직접 이해하려고 하기 보단 이해할 수 없는 그 자체로 남기는 것이 감독의 의도가 아닌가 싶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남겼을 때 신지가 느꼈던 공포, 두려움, 혼돈스러움을<br>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nbsp;<br>신지가 대항하던 사도의 안에 타고 있었던 것이 신지의 친구 토우지라든지, 신지가 초호기에 흡수되어 에반게리온 자체가 자의식을 갖게된 채로 행동하는 것과 같은 장면 또한&nbsp;<br>사람들에게 이해를 요구하기보다는 그 상황 안에서의 신지에 대입하여 공감을 유발하려고 하는 감독의 의도가 더 잘 느껴졌다.<br><br>이 작품을 단순히 사도와의 대항전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br>결말에 가서는 결국에는 신지의 내면적인 성장을 그려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을 대하는 것에 서툴었던 신지가 에반게리온을 조종하며 만난 수많은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고찰 등<br>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필수적으로 한 번쯤은 해 볼 법한 내면적인 고민을 묘사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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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5 03:07: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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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신세기 에반게리온 감상문 2020110277 김여경</title>
         <author>yeokyoeung</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4278336</link>
         <description><![CDATA[<div><br></div><div>&lt;신세기 에반게리온&gt;이라는 작품은 굉장히 많이 들어본 익숙한 작품이지만 본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이 무엇을 다루는지,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 등을 전혀 몰랐고, 이러한 상태로 25, 26화를 보자니 이해하는데 조금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알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를 비롯하여 등장인물들 각각이, 비극적인 가족사와 같은 불행한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혐오의 늪에 빠져 끝없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춰질지에 대한 두려움을 내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떤 맥락에서 이러한 장면이 연출된 것인지 몰랐기에 굉장히 난해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작품을 감상하다보니 인물들에게 끊임없이 던저지는, 마치 압박면접과도 같은 상황에 몰입되었던 것 같다. 25, 26화만으로는 작품을 이해하기 힘들어 감상이 끝난 뒤 해석 영상도 찾아보았는데 이 작품이 일본 버블 경제 이후 경제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물들의 내면이 어둡게 묘사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버블 붕괴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를 당하고 취업난을 겪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고 이는 가족 해체로까지 이어졌다. 사회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안정적인 삶을 살기 힘들었던 사람들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이 작품에도 반영된 것이다. 해석 영상에 따르면 에반게리온 세계관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또한 ‘AT 필드’라는 마음의 벽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은 불안전함을 벗어날 수 없다는 설정 또한 굉장히 인상깊었다. 작품 속에서 끈임없이 모두가 자신을 싫어할거라며 괴로워하는 신지의 모습은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잘 드러내 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신지는 끈임없이 자신과 마주하고 사색하며 결국 불완전한 자신을 인정하게 되는데 그 순간 벽이 깨지는 연출은 AT 필드가 깨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로서의 AT 필드가 아닌, 마음의 벽으로서의 AT 필드가 말이다. 내면 깊숙이 뿌리잡고 있는 부정적인 마음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여 주변 인물들의 축하를 받으며 작품은 마무리되는데, 이는 버블 경제로 고통받은 사람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라는 해석 역시 그럴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nbsp;</div><div>현재 한국 역시 취업난과 경제난으로 힘들어하는 청년층이 많은 만큼 작품 내에서 신지가 끝없이 자기 혐오의 늪으로 빠지는 모습이 안쓰럽다가도, 공감이 가기도 했다. 그에게 날아오는 날카로운 질문들에 함께 심각해지기도 하며 굉장히 몰입해서 감상하게 되었다. 완전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작품의 신지처럼 자신의 불완전함을 직시,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태도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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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5 06:45:1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4278336</guid>
      </item>
      <item>
         <title>2017110309 (신세기 에반게리온)</title>
         <author>songkim158a</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4290737</link>
         <description><![CDATA[<div>에반게리온이라는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많이 들어본 적은 있다. 상당히 절망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흥미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지는 않았었다. 주변에서 에반게리온을 봤던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봐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결국 이번에 강의를 통해서 에반게리온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상당히 우울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nbsp;<br><br>에반게리온에 나오는 2호기와 초호기를 조정하는 파일럿인 신지와 아스카는 작중 주된 인물로써 내용에 전개상에서 주의깊게 보게 되었다. 90년대의 일본 배경을 바탕으로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당시에 일본은 버블 경제의 붕괴로 인해 가족의 해체와 청년들의 실업난을 야기했다. 이는 곧 청소년들에게 가족으로부터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고 심한 취업난으로 인해 어려움을 심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들은 결국 자신들의 내면 속 깊은 곳으로 숨어들게 된다. 작중에서도 이와 같은 당시의 일본의 사회상을 반영하듯이 신지와 아스카 또한 작품의 중반 이후부터 자신들의 내면에 파고들어 인간의 존재와 자아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점차 그들은 내면 속으로 파고들어 자신들의 공간에 가치게 된다. 하지만, 작중 마지막에 신지는 자신의 측근들에게 박수를 받는 장면을 끝으로 난해하면서 심오한 마무리를 보여준다.<br><br>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솔직히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뒤에 다양한 에반게리온의 후속작으로 영화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에반게리온을 시청하기에 버거운 마음이 들기도 해서 이에 대한 해석 영상을 보게 되었다. 결국에는 신지가 그의 측근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장면은 그가 자신의 내면으로 숨어들어갔지만 끝에는 자기가 해야될 일, 자신이 나아가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고 이해했다. 이는 결국 당시의 일본 시대상을 반영하여 작가가 청년들에게 당찬 메시지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에반게리온을 시청한 청년들에게 과연 그만큼의 메시지를 남겨줬을지 의문이기도 하다. 사실 당시에 일본에서 취업난을 겪으면서 자신의 대해 계속해서 의구심을 품으면서 낮아지는 자존감을 회복하기에도 벅찬 그들에게 에반게리온은 더욱 큰 우울감과 상실감을 안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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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5 07:25: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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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19215472 윤건희 “신세기 에반게리온”</title>
         <author>jkheeyoon</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4464891</link>
         <description><![CDATA[<div>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안노 히데아키의 95년도 작품이다</div><div>에반게리온을 이해할려면 성경책을 이해하라는 말도있다. 그만큼 스토리가 정말 난해하고 어렵다.</div><div>&nbsp; &nbsp;</div><div>에반게리온의 특징이라면 신선한 메카닉 디자인과 다양하고 사실적인 밀리터리 미장센, 성서를 기반으로 한 심오하고 철학적인 세계관, 소심하고 자폐적인 성격의 주인공 소년, 매력 있는 여성 캐릭터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div><div>&nbsp; &nbsp;</div><div>레이는 카오루도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고 하면서 굳이 죽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미사토가 이번 일은 어ᄍᅠᆯ수 없었고 앞으로 나아가면 될 거라고 격려해줬는데도 여전히 신지는 고민하기만 한다. 2016년 시작되면서 인류보완게획이 행해지고 자신이 사라질 때의 공포라는 것에 대해 나오는데 신지는 그게 오히려 자신에게 맞다고 생각한다. 주위에서 냉대를 숱하게 받은 탓에 자신이 필요없다며 비관적으로 되었다. 여기서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 후유츠키와 겐도를 통해서 나온다. 한 사람의 마음이 여리기 때문에 서로 보완해야간다는 것도 말이다. 왜 살아가는 건지 레이가 아스카와 신지에게 질문을 한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90년대 일본의 청년 세대들한테 던지는 작가의 메시지를 느꼈다. 주인공은 자기혐오가 있는데 그걸 일본 청년세대의 빙의한 모습이 보여지는거 같았다. 에반게리온은 당시 일본 경제 사회상 이것들을 에반게리온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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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5 13:33: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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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110118 유은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4543597</link>
         <description><![CDATA[<div>모든&nbsp;예술품은 당시 사회를 반영해서 만드는 것은 현시대까지 이어져 오는 대중문화의 유구한 가치일 것이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문화를 가장 잘 반영해오고 있는 대중 문화 중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에반게리온은 95년 작품으로 일본 버블 경제와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본인은 에반게리온이 인간의 형체와 비슷하지만 비슷하지 않은 점을 강조하는 것이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궁극적인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과 로봇이 다른 점은 결국 사고의 유연함 즉 공격과 수비의 범주에서 벗어난 그 이상의 것도 해낼 수 있는 것인데 에반게리온이 그 점을 담았다고 본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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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5 15:28: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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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과 재난으로 보는 일본사회</title>
         <author>teseus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8643307</link>
         <description><![CDATA[<div>•태양을 덮다(2020)</div><div>•<a href="https://drive.google.com/file/d/1jHQX3CcDwwIGHLbVCvAl4jwWyDeqh4I0/view?usp=sharing">https://drive.google.com/file/d/1jHQX3CcDwwIGHLbVCvAl4jwWyDeqh4I0/view?usp=sharing</a><br><br>•일본침몰(2006), 도쿄 매그니튜드 8.0(2009), 코펠리온-도쿄 방사능 그 후 (2013), 일본침몰2020(2020) 등 다른 재난과 관련된 작품을 보시고 코멘트를 하셔도 되요.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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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8 02:13: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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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태양을 덮다 감상문 강영준</title>
         <author>dud9040</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89318169</link>
         <description><![CDATA[<div>동일본 대지진, 그리고 그에 이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일본을 크게 바꾸었다고 여겨지는 사건이다. 단순히 영화만으로는 사건 이후의 국민들의 변화까지는 알기 힘들지만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략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에는 영화가 도움이 되었다. 이 재난으로 인해 일본인이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외부인으로서 온전히 알기는 힘들고, 일본인 본인조차 정확히 이것이 변했다고 말하기 힘들겠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일본의 우경화일 것이다.</div><div>수십 년 간의 자민당과의 다툼 끝에 간신히 여당의 지위를 얻었던 민주당은 이 사건으로 인해 정부의 무능을 드러내고 지지율 급락을 겪어 결국 자민당에게 다시 정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지금도 이어져 자민당의 입지는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div><div>일본의 ‘혐한’ 분위기 조성이 동일본 대지진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2011년 8월 후지 TV 앞에서 벌어진 한류 반대 시위는 재난의 울분을 ‘혐한’으로 표출하는 1923년 관동대지진을 연상케 한다. 자국 내의 분노와 허탈감, 좌절감에 대한 관심을 외부로 돌리고 희생양을 찾고 있는 꼴이랄까.</div><div>댕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채 일본 사회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도쿄 전력 경영진은 무죄 판결을 받았고, 이후 정권을 받은 자민당의 후쿠시마에 대한 대응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준으로 여러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은 다른 화제들로 인해 기억에서 잊혀 가고 있지만 당장 내년에도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겠다는 계획이 세워지는 등 사건은 여러모로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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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8 11:18: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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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49 소유란 - 태양을 덮다</title>
         <author>happycow20</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0590800</link>
         <description><![CDATA[<div>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역의 앞바다에서 엄청난 규모의 대지진이 발생했고 연쇄적으로 일어난 쓰나미는 도호쿠 지역을 물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는 갑작스럽게 야기된 재앙으로 인해 더 큰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가 되고 말았다. 원자력 발전소 건물이 일부 침수되고 전원이 끊어져 냉각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 수소폭발은 다량의 방사선 물질 누출을 허용했고 근처 주민들은 모두 대피해야만 했다. 이렇듯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1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일본의 대재앙이다.<br><br>&lt;태양을 덮다&gt;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면서도 가상의 등장인물들을 등장시켜 관객들이 사건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이러한 픽션이 가미된 영상매체만을 통해서는 사건 전후 상황을 모두 알 수 없으며 당사자들의 상황을 온전히 헤아리기 어렵다. 하지만 원전에서 일하던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 어디로 가야 자신의 어린 아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혼란스러워하며 절망에 빠진 부모, 관저에 있으면서도 원전으로부터 제대로 된 통신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등은 당시의 대혼란을 스크린을 통해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빠른 대처에 실패한 정부를 비판하는 모습과 정권의 변화까지 모두 보여준 이 영화는 당시 사건의 배경과 진행상황, 시사점까지 모두 담고 있다.<br><br>영화 마지막에 나온 대사처럼 여전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인들에게 '자국이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점점 그 위기감이 무뎌지고 있는 현상황에서 우리는 그때의 재앙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언제 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될지 모르고, 언제 다시 방사능 유출이 진행될지 모른다.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통해 미래를 새로이 만들어나가야 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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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9 03:29: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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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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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130009 우스키 스미레</title>
         <author>sumire1122usk</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0629235</link>
         <description><![CDATA[<div>&nbsp;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눈에 보이는 지진과 쓰나미에 의한 파괴. 그 뿐만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방사능에 의한 피해. 일본인들은 이 때 2증의 공포를 경험했다.</div><div>&nbsp;</div><div>&nbsp;이는 후쿠시마, 미야기, 이와테를 비롯한 동북지방만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일본 열도 전체가 혼란에 빠져 있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div><div>동일본 대지진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내가 그 당시 살고 있었던 니가타현은 동북지방과 매우 가깝다. 그 날 오후 2시46분, 나는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강렬한 진동을 느꼈다. 그 날 수업은 바로 중단되어 모든 학생들은 즉시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집에 돌아가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뉴스를 켜 봤더니 거기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영상이 있었다. 수많은 차, 집, 나무. 빌딩 등이 쓰나미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져 휩쓸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동일본 대지진부터 10년 이상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div><div>&nbsp;</div><div>&nbsp;일본은 대지진이 언제든,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나라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서 일본 사회는 1년에 수차례 의무적으로 열리는 피난 훈련, 해저드 맵, 방재 가방 등 일상생활 속에 ‘방재’가 마땅히 존재하고 있다. 이는 타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재해’와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일본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div><div>&nbsp;이들은 3.11 이후에 일어난 대책은 아니다. 일본은 옛날부터 대지진을 겪어 온 경험을 살려 3.11 전부터 철저한 재해 대책 체계를 확립했었고 일본 사회 전체에 전파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면밀한 대책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없었던 미증유의 재해,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대응은 실패로 끝났다. 그 책임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div><div>&nbsp;</div><div>&nbsp;일본인들의 머릿속에는 항상 재해에 대한 잠재적인 불안감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와 동시에 일정기간 시간이 지나면 재해의 대한 두려움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도 일본인이다. 영화 &lt;태양을 덮다&gt;에 나온 「あの時テレビを見ていた日本人は今何を思うだろうか？」라는 대사가 인상에 남았다. 그 날 티비를 보면서 느낀 감정을 재인식하게 된 영화였다.</div><div>&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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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9 04:04: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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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18110267 두다혜 &lt;일본침몰&gt;</title>
         <author>endltgld</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0717664</link>
         <description><![CDATA[<div>처음 ‘일본침몰’이라는 작품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유튜브 알고리즘 덕에 짧은 리뷰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서 지금 말하고 있는 작품은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는 어느 쪽이든 직접 보질 않아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번 기회에 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겨 막상 찾아봤더니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생각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받아온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본침몰’은 1973년 완성된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라디오드라마, 영화, 코믹스, 애니메이션,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여러 작품의 첫 시작이자 바탕이 되는 원작 소설 저자가 설명한 ‘국가를 구성하는 3대 요소인 국민, 주권, 영토 중에서 영토가 없어졌을 때 일본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주제는 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질병이 되었든 재해가 되었든 ‘영토의 소멸’이란 단순히 위기의식 때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주제가 소설, 만화, 영화 등에서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영화에 더불어 다른 매체에 대해서도 비교해 보게 되었다.</div><div>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차이는 주인공이었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가장 처음 접했기 때문에 도쿄 매그니튜드 8.0처럼 주인공이 일반인이었던 작품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소설, 코믹스, 영화에서는 잠수정 파일럿인 오노데라 토시오가 주인공급 인물로 등장하는 반면 애니메이션에서는 청소년 육상 선수 무토 아유무가 줄거리를 이끌며, 드라마에서는 아마미 케이시라는 환경성의 대표가 주인공이다. 주요 캐릭터들의 구성도 마찬가지다. 우선 소설과 코믹스, 영화는 오노데라와 일본의 침몰을 가장 처음 알아낸 타도코로 교수, 그리고 오노데라의 연인이 되는 레이코가 주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여기서도 소설의 레이코는 부잣집 딸인 반면 영화의 레이코는 소방관으로 나오는 등 세세한 차이가 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아유무와 그 가족들 및 피난길에 일행이 되는 사람들이 주요한 인물이다. 여기서는 토도코로 교수가 등장하지 않으며, 오노데라 역시 처음부터 줄거리를 주도하는 인물이 아닌 도중에 주인공과 만나 주인공이 간호하는 전신마비 환자로 처음 등장한다. 반면 드라마에서는 토도코로 교수가 처음으로 침몰을 예언하는 것 말고는 주요 등장인물이 새롭게 구성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div><div>그리고 이렇게 등장인물의 구성에 차이가 생김에 따라 내용의 전개도 크게 달라진다. 우선 원작인 소설에서는 후지산이 분화할 때 근처에 남아 있었던 레이코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고 오노데라는 자괴감에 빠져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일본에 남아 몸을 내던지는 식의 구조대원 활동을 한다. 그러다 화산 폭발에 휘말리고, 시간이 지나 양 손목을 잃은 채 정신착란 상태인 오노데라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타 있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반면 영화에서는 오노데라가 판과 일본을 분리하는 것을 성공하고 마그마를 밑으로 하강시켜 후지산은 폭발 직전에 멈춘다. 즉, 오노데라는 사망하게 되나 일본은 화산 폭발도 침몰도 멈추는 결말을 맞는다. 영화 이후 연재된 코믹스에서는 오노데라가 아니라 그의 동료인 유키가 오노데라를 기절시키고 대신 잠수정에 타며, 목숨과 맞바꿔 계획을 성공시킨다. 이후 오노데라는 원작에서처럼 구조활동을 하지만 원작과 달리 레이코가 함께 하고 마지막 구조 후 그 자리에서 결혼까지 한다. 이후에는 해일에 휩쓸리기까지 하지만 살아남아 세계를 여행하게 된다. 참고로 여기서는 구조된 일본인 전원이 UN 국제 구조대로 소속되게 된다고 한다. 반면 애니메이션에서는 아유무를 포함한 인물들의 생존과 탈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아유무와 동생 고우, 오노데라가 구출되고 각자 국가대표 멀리뛰기 선수, 국가대표 프로게이머, 유튜버가 된 미래를 보여주면서 끝난다. 여기서는 오노데라가 자신의 연구 기록이 있는 곳을 가르쳐주며 주요 인물들의 생존에 큰 도움과 희망을 주긴 하지만 전신마비라는 장애 역시 안고 있었기에 연구 기록을 구하거나 탈출을 위한 GPS 신호를 발사하는 등의 실행은 모두 주인공 가족이나 그 주변 인물들이 대신 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어머니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죽게 된다.(참고로 오노데라가 유튜버가 되는 이유는, 주인공 가족의 든든한 조력자로 활약하며 후에 오노데라를 살리고 구조까지 되게 도와준 카이토라는 인물이 유명 유튜버였는데 그가 오노데라를 살린 후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의 유튜브 채널을 대신 운영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연재된 드라마에서는 침몰의 원인 자체가 지각 변동이 아닌 인재인 것으로 각색되었다. 일본 정부가 지각 밑에 매장된 청정 대체 에너지를 채굴하려다 지각을 잘못 건드려 발생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후지산 폭발로 인해 수도권이, 포사 마그나 붕괴로 인해 혼슈가 침몰하고 홋카이도에서도 대지진이 발생하지만 너무나 거대한 변동에너지로 인해 오히려 침몰을 일으키는 판이 갈라지면서 큐슈, 홋카이도, 그리고 아오모리 북부는 남게 되었다는 기적에 가까운 엔딩을 맞는다.</div><div>이렇듯 ‘일본침몰’이라는 작품은 긴 시간을 들여 여러 매체로 각색되며 지금까지도 주목받고 있다. 나는 솔직히 영화를 본 후에 이 영화에 달린 수많은 혹평이 이해된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다른 버전들을 살펴보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고 바라보게 된 것 같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에 어떤 것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 오히려 주변국들은 무사하고 일본만 침몰하게 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면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원작 소설이 나올 당시에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것이 현재의 과학 기술이나 인간 심리로는 가능해질 수도 있는 것처럼, 모든 결말이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허황된 쓸데없는 영화라고 단순히 평가하는 것은 좋지 못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각기 다른 상황에서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춘 이 작품들은 현실과 떼어놓고 작품 자체의 재미로만 생각해도 적어도 나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한 사람의 개인이기는 하나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전문가에 가까운 오노데라의 시점에서 집중하는 것도, 그런 것에 대해 하나도 모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재앙을 당한 지극히 평범한 국민이라 볼 수 있는 아유무의 시점에서 집중하는 것도 색다른 매력이 있었고 이후의 전개 차이도 평행우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에 재미있었다고 생각한다. 과학 원리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에게는 어떤 버전이 어느 정도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주제에 관해 각각의 매체나 시대를 반영한 장치가 공유하거나 분리되는 부분에 집중해볼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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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9 05:19: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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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210988 신민호 &lt;태양을 덮다&gt; 감상평</title>
         <author>minhomino0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1237400</link>
         <description><![CDATA[<div>&nbsp;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최고 위험단계로 분류되는 레벨 7의 최악의 원전사고가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와 함께 발생하였다.<br><br>&nbsp;영화는 한 사람의 시선이 아닌, 각기 다른 계층의 사람들의 시선으로 원전사고를 보여준다.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는 정부,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들, 몇 십년간 살아오던 고향을 송두리째 잃게 되어버린 시민들, 원전에서 근무하는 자식을 둔 부모의 모습으로 말이다.<br><br>&nbsp;또한 영화에서는 누군가에게 영웅적인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 정치인들의 실명, 재난의 경과와 대응(원자력 발전소장의 전문지식 부족, 관저의 늦은 대처,&nbsp; 플러그가 맞지 않는 전력원 등)들을 보여주며 당시 일본 정부가 어떠한 대처를 하였고, 그 사이에 놓인 일본 시민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br><br>&nbsp;이 영화를 보며 컨트롤 타워의 위기대처 능력이 조금이라도 빨랐더라면(영화에서는 일본 정부가 원전 폭발 1시간 이후 사건을 보고 받았으며 사건의 발생경과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 일본 국민들의 피해가 조금이라도 덜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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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9 12:18: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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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9110118 유은우 &lt;일본침몰 2020&gt; </title>
         <author>6cnb57g7r5</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2353975</link>
         <description><![CDATA[<div>우선 제목부터 재난 영화임을 암시하게 만든다. 첫 화에 아유무가 육상 선수로 나오며 동생이 프로게이머라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부터 일본의 재난을 생각하는 태도를 볼 수 있다. 재난은 끝날 것 같지만 무엇인가를 크게 앗아가는 일본인의 무의식의 대부분을 반영하는 어떤 것이다.&nbsp;<br>동일본 지진 당시 아직까지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자식이 지진에 의해 죽었지만 울지 않는 부모가 뉴스에서 담담히 인터뷰 하는 장면이었다. 당시 어렸던 나는 그 장면이 충격적이었고 그저 일본에서 재난이 많이 일어나기에 담담했을 뿐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을 잃었기에 슬픔을 감추는 것에 있음을 알고 일본인들은 그 이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느꼈다.&nbsp;<br>일본침몰 2020에서 많은 인물들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죽는다. 익사, 가스 중독, 지뢰에 의한 죽음 등 재난 표현이 거침 없다. 이 점 또한 앞서 밝힌 것과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가 중요하기에 현실 반영에 충실한 것이라고 느꼈다. 한국 재난 영화와의 차이점이 보인다.&nbsp;<br>한국 재난 영화는 어떠한가. 해운대가 천 만 관객을 동원 했을 때 한국 관객들은 우리에게도 ‘일본’처럼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절반을 차지 했다. 이후가 아닌 이전을 생각했기 때문에 백두산, 판도라가 나오지 않았을까. 엑시트가 신선했다고 평가받는 이유가 이후를 반영한 영화라는 점 때문인 것 같다.&nbsp;<br>난해하고 고어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침몰 2020에서 일본인들의 ‘다시’정신을 볼 수 있기에 충분히 좋은 재난 영화라고 생각한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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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03:16: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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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lt;태양을 덮다&gt; 감상평 2020110250 이다현</title>
         <author>leedahyeon011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2401801</link>
         <description><![CDATA[<div> 영화 &lt;태양을 덮다&gt;는 지난 2011년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는 실제 사건을 제재로 하고 있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은 물론 세계의 관심을 끈 대사건이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같은 7등급 원전사고로 선언되었으며, 방사능의 80%가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갔고, 유출량도 비교적 적어 체르노빌보다는 전망과 피해가 심각하지 않다고는 하나 적지 않은 우려가 지금도 나오고 있는 것은, 방사능 유출이 한 해 두 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div><div>&nbsp; &nbsp;</div><div> 영화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되어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전력회사 임원, 정치인, 민간인들까지, 한 지역의 사고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그 누구도 이 사태를 악화시키려 한 사람은 없었지만, 재해로 인한 열악한 환경과 몇몇의 실수와 그리고 주요인물의 무능력 등으로 사태는 신속히 잡히지 못하고 결국 최악의 결과를 맞이한다. 그 긴급한 상황 속 전력 보안원장의 “모르겠습니다. 전 도쿄대 경제학부 출신입니다”라는 대사는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div><div>&nbsp; &nbsp;</div><div> 공식적으로 이 사태에서 비롯된 피폭으로 사망한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지금도 이 사태의 영향이나 정부의 대처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정확한 인과성은 증명되지 않았다고 하나 갑상선암의 발병률이 늘고, 후쿠시마산 식품을 섭취한 방송인이 건강이상을 보여 이목을 끌기도 했으며, 후쿠시마산 수산물을 수입 금지하는 한국의 조치로 일본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원전 반대 시위도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시민의 반발에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고, 오히려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소비하자는 ‘먹어서 응원하자’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도쿄전력 책임자들은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후쿠시마 이사를 지원하면서도 해당 지역에 대한 조치는 부실하게 행하고 있다. 해당 원자력 발전소의 폐쇄 결정은 2019년에나 이루어졌으며, 완료 예정인 2040~50년까지 이 불안은 계속될 것이다.</div><div>&nbsp; &nbsp;</div><div> 이 사태로 인해 일본은 지역경제에 타격을 입고 전력, 건강 문제 등 시민들의 불만을 키웠다.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의 경각심은 낮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일본이 짊어지게 된 오명과 일본 정부에 대한 불신은, 방사능 위험의 영향이 완전히 정상화되고 일본의 보수적 관료주의가 바뀌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div><div> 원전 사태는 사건이 일어난 당시보다는 그 후의 대처가 훨씬 중요하다. 현재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일본 정부 관료의 책임과 시민의 경각심이 끊임없이 요구될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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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03:59: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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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lt;태양을 덮다&gt; 감상문 2020110277 김여경</title>
         <author>yeokyoeung</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2415513</link>
         <description><![CDATA[<div>&nbsp;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2011년 3월 11일, 내가 초등학생 시절 발생했고, 그와 관련된 뉴스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일이다.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원전 폭발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을뿐더러 그저 단순히 일본에 안 좋은 일이 발생했다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원전 폭발과 관련해 후쿠시마산 농산물, 물 섭취와 관련된 문제, 방사능 피폭 문제, 방사능 오염수 방류 계획과 관련된 문제 등 수많은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하는 것을 보고 원전 폭발이라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lt;태양을 덮다&gt;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나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정부의 모습에 답답했다. 영화는 현장 상황에 대한 정보 공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모습과 함께 영문도 모른 채 자신들이 살던 집을 나와 대피해 있는 주민들,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리는 부모의 모습 등을 보여주며 긴박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다. 처음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정부에서는 원전 자체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원전 폭발의 조짐이 보인다는 정보가 들어온 이후에야 뒤늦게 대비책을 찾기 시작한다. 이를 보고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예상하고 대책을 마련했더라면, 원전 폭발 자체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겠지만, 그 피해가 조금은 축소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진과 쓰나미는 명백한 자연재해이지만 원전 폭발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사고였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동시에 3~4년 전에 봤던 &lt;판도라&gt;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본지 너무 오래되어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마을에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고, 어느날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원자력 발전소에도 영향이 가 결국 폭발까지 이어지게 된다. 영화에는 그 과정과 함께 더 심한 피해를 막기 위해 희생하는 원전 직원들과 소방대원들의 모습, 그들을 지켜보며 정든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주민들과 사고에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결국 피폭으로 사망하게 된 의료진과 직원들, 소방대원들의 모습과 추모 연설을 하는 대통령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당시 영화를 보며 너무나도 착잡하고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한국이 배경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지만 원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희생과 한순간에 너무나도 당연하고 행복한 일상이 산산조각 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원전 폭발이라는 것이 단순히 심각한 사고로 정의내릴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 영화 &lt;태양의 덮다&gt;를 보며 이러한 생각이 더 확고해졌던 것 같다.&nbsp;<br><br>&nbsp;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 전력 비중은 34.1% 정도이며 총 4개의 발전소가 존재한다. 추가적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계획도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논의는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물론 원자력 발전소가 안정적이고 값싸게 많은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혹시 모를 사고와 그로 인해 발생할 피해에 대한 두려움과 경각심을 항상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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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04:14: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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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78 태양을 덮다</title>
         <author>halin237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2583214</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후쿠시마 제 1원전에서 발생한 원전사고에 대해&nbsp; 다루는 영화다. 원전사고가 일어난 당시에는 사건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었고 그 이후에는 그저 원산지가 후쿠시마인 것은 조심해야한다 생각만 남았었다. 방사성 물질에 대한 위험성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로 인해 잘 알고 있었지만 사람은 금방 잊어버린다고 영화에서 나왔듯이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은연중에 한국에서 발생한 일이 아니고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났으니 어느 정도 수습되었다고 멋대로 생각해버려서 잊은 걸 수도 있다.<br>&nbsp; 영화는 정말 다양한 시점에서 원전사고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나라의 주요인사들이 있는 관저, 본사, 후쿠시마 원전 현장, 후쿠시마 인근 주민, 도쿄의 주민 그리고 이 모든 시점의 정보를 가까이서 전달 받던 기자까지 다루며 그때의 불안감과 절망감, 긴박함 등이 전부 담겨있었다. 지진이 계속 발생하여 관저에 경보음이 울릴 때,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 속에서 실제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 때 그 일을 직접 느끼고 있는 것 처럼 같이 무서워지고 인상이 찌푸려 졌다. 영화에서는 예상 외로 당시 일본 내에서 부족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많이 다루고 있었다. 관저가 정보를 제일 늦게 알았다거나 원전 책임자 같은 사람이 실은 경제학과여서 자세히 알지 못했던 것 등이다. 이런 점들이 이 영화가 더 실제와 같았다고 느끼게 했던 것 같다.&nbsp;<br>&nbsp;영화에서는 2015년도까지 다루며 아직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여전히 후쿠시마에는 귀환 곤란 지역이 있고 방사능은 없어지지 않았다. 2011년도에 이런 사태를 겪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우리들은 이 사건을 잊으면 안된다는 것이 절실히 느껴졌다. 아직 복구도 되지 않았고 우리는 위험에 노출 되어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전달함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경각심까지 갖게 해주어서 실제 사건을 다룬 재난 영화로서 좋은 역할을 해준 것 같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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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06:50: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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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3218 유영남</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2659002</link>
         <description><![CDATA[<div>2011년 3월11일 東日本大震災나한테 아무 인상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지신 당일, 나는 친한 친구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 집에서&nbsp; 지신이 발생했다고&nbsp; 뉴스를 봤다.&nbsp; 일본에서 지신을 발생하는 것이 흔히 있는 것이고 어렸던 나는 어차피 곧 멈출 거라고 생각해 가볍게 생각해버렸다. 그날 집에 돌아가 밤이 돼서 밥 먹다가 뉴스에서 사람을 죽는다는 뉴스를 보고 나는 아주 충격적이었다. 이번 지진이 이렇게 심해서&nbsp; 많은 사람이 죽을 줄 몰랐다는 말이다. 지진 후 쓰나미가TV에 나오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정말 큰 지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장난 같은 이전의 지진과는 다르다……….. 그 후TV에서 쓰나미에 휩쓸려 간 집, 집에 못 돌아가는 노인, 지진으로 실종된 사람들을 보면서 내 마음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고 그때의 어리석은 생각도 부끄러워졌다.</div><div><br></div><div>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 18초에 일본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동일본 , 게다가 일어난 후쿠시마현 원자력 발전소의 멜트다운을 그린 작품이다.&nbsp;</div><div><br></div><div>"픽션"이라고 쓰여있긴 했지만 실제로 있었을 여러 가지 일들을 그려져 있지 않을까 싶다.</div><div><br></div><div>분주한 정부와 현장,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는 지역주민들, 대피구역이 넓어지고 대피소를 옮겨야 한다는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정부와 주민, 두 시각이 뉴스 영상을 통해 그려져 있어 당시의 속도감과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졌다.</div><div>정치적인 내용은 내가 잘 몰라서 평가하기 어렵다. 어디까지 재현이 되어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관저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는지...&nbsp; 라는 여러가지 생각하게 되는 이런 측면에서 보면은 좋은 작품이라 생각하다.&nbsp;</div><div><br></div><div>지신 발생한 당시 나처럼 큰 지진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긴장을 푼 사람은 많이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지신이 라는 것은 일본사람한테 일상의 일부분이 된다해도 과언이 아니고 태어나서부터 학교에 갈때도 매년 이런 긴급상황에대비하여 피난 훈련을 매년, 매학기 해왔으니까. 근육이 기억을 할 정도로 횟수가 많으며, 벨이 울리면 반사돼 어떻게 자구해야 할지 알고 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지진에 익숙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심각하지 않을 것 같아 방심해 버렸다고 생각하다. 일본도 이번 지진에 신경을 쓰고 있으며 이전에 대지진과 달리 11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3월 11일tv에서 지진 관련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그때의 지진 경험자는 아니지만 TV에서 뉴스 영상을 봤을 때의 충격을 영원히기억할 것이다.&nbsp;</div><div><br></div><div><br></div><div>내일과 의외는 어느것이 먼저 올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소중히 생각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살고 싶다. 또한, 뜻하지 못한 것이 찾아온 것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 자구, 조난당했을 때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 등 긴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공부를 미리 많이 해야 될 가라고 생각하다.&nbsp;</div><div><br></div><div>단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평안하고 멋지게 보낼 수 있을지는 우리 평생의 과제이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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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07:50: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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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본침몰 (2006) 감상평 2018113415 주찬</title>
         <author>iltycb</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2845837</link>
         <description><![CDATA[<div>&nbsp; 이번에 본 영화는 일본에서 매우 유명한 재난 소재의 영화 &lt; 일본침몰 &gt; 이다. 보고 나서 많은 비용과 정력을 들여 촬영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재난 영화도 일본이라는 나라의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nbsp;<br>&nbsp; 우선 이 영화는 일본인들의 불안감을 어느 정도 반영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일본 자체는 섬나라이라서 국가 면적이 좀 작고 자원이 부족하며 지세 때문에 지진을 비롯한 각종 자연재해도 많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매우 심각한 위기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위기감은 그들의 불안감의 주요 원인이다. &lt;일본침몰&gt;은 이러한 일본인들의 불안감을 확대하는 상징이다. 일본인의 마음속에 있는 심각한 위기감을 대표한다. 하지만 영화도 이런 갑작스러운 재난에 직면했을 때 일본인들의 강인함과 다양한 인간성의 빛을 보여준다. 영화 속 사람들은 일본이 침몰할 것을 알았을 때 무서웠지만, 곧 냉정해졌고, 단결했고, 아무도 극단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매우 드문 일이라고 생각한다.<br>&nbsp; 위의 측면을 제외하고 가장 큰 소감은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 이럴 때 인간의 힘은 전혀 저항할 수 없다. 이런 절망 앞에서 인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영화는 나에게 답을 주었다. 이럴 때는 더욱 냉정하고 단결해야 한다. 할 수는 없지만 노력하여 자신의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이런 용기도 바로 인류의 매우 얻기 어려운 소중한 정신이다. 이 영화는 재난에 대한 일본인의 용기뿐만 아니라 인류가 재난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불러일으켰다. 나는 이것이 모든 방면에서 매우 우수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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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11:08: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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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303</title>
         <author>hsuwei85</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017117</link>
         <description><![CDATA[<div>『浅田家!』는 일본 사진작가 浅田政志(아사다 마사시)의 진실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영화의 앞부분은 아사다 가족의 이야기와 마사시가 사진작가로 성공하고 전국 돌아다니면서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과정을 담고 있다. 후반부는 311대지진이 일어나 마사시가 자신 촬영했던 가족이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어해서 피해 지역을 찾아갔다. 거기서 사진에 대한 봉사활동을 참가하며 흙이 묻은 사진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고, 주인에게 돌려주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봉사활동을 통해서 사진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고 계속 사잔작가의 길을 걷는다.</div><div>&nbsp;</div><div>개인적으로는 재난영화를 싫어하지 않지만, 보고나서 남아있는 무거움과 답답한 느낌이 싫다. 그래서 아사다 가족을 보게 된다. 아사다 가족은 다른 재난영화보다 그렇게 무겁지 않아,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피해지역에서 이런 사진을 세척하는 일이 정부나 지방에게는 중시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진은 이재민들에게 추억을 남기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위한 것이다. 특히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사진을 찾았을 때 그 웃음을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div><div>그리고 영화에 이재민이 나온 장면은 한달만 지났는데 일본인이 혼란이 없어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이고, 사람들이 슬픔이 있더라도 절망 없이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div><div>&nbsp;</div><div>감독님: 사실 사진 세척은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영화 촬영 목적 중 하나는 모르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조사를 하면서 ‘사진 한 장으로 구원이 된다’는 말 많이 듣었다. 역시 사람은 살아온 역사의 증거가 없으면 무너질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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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13:38: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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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3 정은채</title>
         <author>spring_crb</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089325</link>
         <description><![CDATA[<div>&lt;태양을 덮다&gt;는 나에게 다시 한번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 어렸을 때 가족들끼리 모여 동일본 대지진의 뉴스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던 그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몰아치던 쓰나미와 무언가 소리쳐던 사람들의 모습들은 아직도 잊지못하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 영화는 특히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루고 있는데 이 당시 얼마나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갔는지, 자연재해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였다.</div><div>&nbsp; &nbsp;</div><div>아이를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엄마, 미국으로 떠나는 부부, 책임감을 느끼고 원전으로 돌아가는 직원 등 후쿠시마의 주민들은 각자 자신들의 위치에서 어떻게든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사건을 컨트롤하고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할 정치인들의 무능력함을 잘 그려냈다. 원전 최고 권력자가 도쿄대 경제학부 출신이며 원자력에 대해서는 완전 무지한 상태를 보면서 굉장히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또한 원전에서 방출되는 방사능을 막기 위해 전력이 필요한 상태인데 플러그가 맞지 않아 가동되지 못하는 부분들을 보며 굉장히 가슴이 답답했다. 과연 이것이 자연재해로 인한 재해라고 볼 수 있는가? 이로 인해 후쿠시마는 파괴되었고 후쿠시마 주민들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의 모든 터전과 기억을 두고 떠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div><div>&nbsp; &nbsp;</div><div>이런 대처가 이어진다면 눈뭉치가 굴려지듯 결국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공식 자료는 2013의 법 제정으로 더 이상 확인할 수 없고 실제로 원전 사고로 인해 사망자는 없다고 말하지만 이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시 평온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낙원은 없지만 현실이라도 살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가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div><div><br></div><div>&nbsp; &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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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14:28: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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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17113401 주현우 태양을 덮다 </title>
         <author>jhw01049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176344</link>
         <description><![CDATA[<div>어쨌든간에 참 속터지는 90분이었던것 만큼은 분명하다. 전문성을 가져야 할 관료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도 않다. 위기상황이 존재하지만, 이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지 못하며, 대응을 조정할 컨트롤타워도 부재하다. 정치가 관료사회를 제대로 통제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결국 관저가 직접적인 컨트롤을 시작한 후에야, 무언가 돌아가기 시작한다.<br><br>영화 초반 원전의 상황을 묻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대답한 원자력보안원장이, "자신은 도쿄대 경제학부 출신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물론 어떤 조직의 수장은 전문가일수도, 전문가가 아닐수도 있다. 양 방면 모두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적어도 관저에서 대답을 해야 할 사람은 전문가를 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았겠는가?<br><br>어쨌든 속터지는 90분은 계속된다. 그 속칭 '관료'들도 상황을 모르고, 적절한 대응을 지시해주지도 못하며, 심지어 총리의 직접적인 질문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결국 정-관-민 유착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자민당의 이익배분을 통한 정치는 관료의 정치진출과 정책작성의 수월성을 불러온 동시에, 관료의 고착화와 정-관-민의 유착을 불러오기도 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건은 그 병폐를 그대로 드러낸다.&nbsp;<br><br>또다른 문제점도 드러난다. 국가기반시설이 국가의 통제가 아닌 민간의 손에 맡겨진 결과, 정작 정부가 모든 통제권을 쥐어야 할 위기상황에는 외려 직접적인 통제가 힘들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문제가 된 도쿄전력 자체는 전후의 개시 직후부터 민간기업이었기 때문에 논외이지만, 1980년대 나카소네 내각동안 분 신자유주의의 바람은 고이즈미와 아베를 거쳐 철도, 우정을 거쳐 이제는 수도에까지 이르렀다.&nbsp;<br><br>효율성과 재정건전을 위한 민영화이지만 정작 위기상황에서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민영화는 과연 제대로 된 것일까. 최근 한국에서도 그러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런 점들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nbsp;<br><br>후쿠시마 사건 관련 각종 기록들을 살펴보면 결국 간 나오토가 나라를 구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는 위기상황에서 통제권을 관저에 두었고, 명확한 지휘권을 구사했으며, 관료의 벽에 막혀 상황을 통제하기 힘들 때에는 주저않고 현장을 습격해 통제권을 쥐었다. 일본 민주당 정권의 3년은 분명 실패로 점철되었지만, 적어도 3.11 직후의 한 달은 아니었다.&nbsp;<br><br>별개로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에 있어서 속터지는 한달에 대해서는 오시카 아스아키의 &lt;멜트다운&gt;을 추천한다. &lt;태양을 덮다&gt;보다 좀 더 자세하고, 상황 전반을 다루는 책이다. 그리고 에다노와 간은 좀 더 닮은 배우가 없었을까.&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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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15:32: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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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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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도쿄 매그니튜드 8.0(2009) 2020110253 엄희경</title>
         <author>cord20010306</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189289</link>
         <description><![CDATA[<div><br><br>&lt;도쿄 매그니튜드 8.0&gt;, &lt;태양을 덮다&gt; 등... 많은 재난 영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보며 일상은 순식간에 깨지기 쉽고, 갑작스러운 비일상은 수십년간 지속된 일상을 완전히 깨트릴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lt;도쿄 매그니튜드 8.0&gt;는 수도권 지역에서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을 가정한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은 초반에 미라이와 가족의 일상을 보여준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일상적인 날들 살아가는 가족. 그리고 바쁜 부모님으로 인해 미라이와 남동생만 오다이바로 여행을 가게 되고 큰 지진을 겪게 된다.&nbsp;<br><br>그리고 남동생 유우키는 누나를 구하다 머리에 부상을 입게 되지만 치료를 받지 못해 그대로 사망하게 된다. 유우키의 이름의 뜻은 '흘러간 귀한 것'이라는 의미를 닮고 있는데, 이는 바쁜 일상으로 인해 가족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지 못했던 부모님과 유우키, 미라이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nbsp; 이 작품을 보며 크게 두 가지를 느끼게 되었다. 첫째, 지루하고 계속이어질 것만 같았던 일상도 순식간에 깨져버릴 수 있다는 것과, 둘째, 갑작스러운 비일상과 그로인한 좌절 등은 일상의 소중함을 더욱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유우키의 사망 이후, 이전의 일상보다 더욱 미라이에게 관심을 쏟으며 유우키의 빈자리를 그리워 한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비일상은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고 생각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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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15:42: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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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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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55 이세영 태양을 덮다 감상평</title>
         <author>jennyda1013</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299660</link>
         <description><![CDATA[<div>개인적으로 재난 영화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태양의 덮다’ 영화 속 주된 사건인 동일본 대지진의 실시간 상황을 보았던 것이 여간 공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작 티비 화면에 불과했지만 밀려오는 쓰나미와 곳곳의 화재를 찍던 상공 카메라 구도는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동일본 대지진은 어마무시한 규모의 지진이었고 그에 걸맞은 막대한 피해를 낳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특히 현재까지 문제가 사라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br><br></div><div>영화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일본 정보의 대처와 패닉에 빠진 국민들을 보여준다. 당시 총리였던 간 나오토의 대처에 일본 국민들이 극심한 불만을 품어 민주당이 10년 넘게 정권을 잡지 못했다는 내용을 얼핏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제대로 대답도, 대응도 못하는 장면이 들어 있다. 해수가 투입되지 못하면 원전은 폭발하고 마는데, 도쿄 전력이 해수 투입을 망설이며 현장 상황을 보고하지 않아 정부 차원의 대응이 늦어지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결국 후쿠시마 주민들은 피난을 떠나고 원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이렇게 당시 상황을 생생히 바라보니 일본 전역이 방사능에 물들지 않은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div><div>2016년 경주에서 5.1, 5.8 규모의 지진이 발발한 바가 있다. 이 정도의 강도에도 땅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고 향후 몇 달 간 극심한 지진 후유증을 겪었는데 지진 빈도가 잦은 일본 국민들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경주에는 월성 원자력 발전소가 위치해 있어서 당시 원전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가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도 원자력 발전소는 여럿 존재하며, 지진한테서 완전히 안전한 지대는 아님이 확인된 만큼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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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17:12: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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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태양을 덮다] 2020113262 박진규</title>
         <author>qkrwlsrb</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373821</link>
         <description><![CDATA[<div>&nbsp;'태양을 덮다' 작품을 보고 3.11에 대해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재난이 많은 나라인 일본이 인식하는 재난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br><br>&nbsp;영화 '태양을 덮다' 는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해 다룬 영화이다. 지진 발생과 그 과정, 그리고 후쿠시마의 1호기 2호기 3호기 4호기의 원전사고 과정을 재현해서 담은 영화인데, 이 영화를 통해 3.11대지진과 원전사고 과정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게 되었다. 원자로 용해 (멜트 다운)과 수소폭발, 원자력 발전소 2호기는 수소폭발은 하지 않았지만 가장 많은 양의 방사성 물질을 내보낸 것 등 3.11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과 원인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영화였다.&nbsp;<br><br>&nbsp;영화에서는 흔히 이야기하는 높으신 분들의 사정과 이야기도 보여주고, 기자의 시점, 일반 일본 서민의 시점, 후쿠시마 주민의 시점과 방사능 직원의 시점 등 3.11사건과 얽혀있는 다양한 지역과 계층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특히 일본 서민들이 걱정하는 점은 원전사고 방사능 오염수 배출에 대한 한국인들의 걱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크게 노력을 한다거나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없다. 거기서 오는 불안감과 무력함을 영화에서는 보여준다. 이런 장면을 보고 사고에 대한 빠른 대처와 감추려고 하지 말고 일반인들에게 투명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 그리고 정부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br><br>&nbsp;핵연료라는 것은 저절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만약 사고가 나면 아무도 도망칠 방법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마지막 부분의 대사처럼 후쿠시마는 잘못이 없다. 국적과 지역색을 떠나 그곳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피해를 입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또한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이었던 기자와 기자의 아내는 일본 전역의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걱정한다. 이는 이 두 부부의 생각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들이 생각하는 원자력에 대한 불안감에 대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br><br>&nbsp;일본은 지각변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열도이기 때문에 지진과 쓰나미 등 많은 자연재해를 안고 있는 곳이다. 다양한 재해와 함께 살아가는 일본인들은 자연재해 뿐만 아니라 피폭을 당한 국가이기도 하다. 몇 세대 위의 일본인들은 피폭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3.11을 통해 그 두려움은 현세대들도 갖게 되었다. 일본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 그리고 현재도 방사능 오염수 배출에 대해 한국에서도 다양한 단체들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방사능 오염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대처를 어떻게 할 것이고 앞으로 예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치적, 외교적으로 매우 복잡한 문제이고 이해관계가 많이 얽혀있으며 지금도 논란이고 앞으로도 쉽게 해결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절차와 형식적인 것을 방패로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은 옳지 않다. 만약 그런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사실을 숨기려고만 한다면, 3.11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고 배웠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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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18:16:2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373821</guid>
      </item>
      <item>
         <title>2020110266 고가연 영화 &#39;태양을 덮다&#39; 코멘트</title>
         <author>ggykmh</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729963</link>
         <description><![CDATA[<div>&nbsp; 일본 예능을 보다보면 일본의 유명하고, 인기 있는 연예인들이 나와 후쿠시마산 재료로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는 장면을 종종 봤었다.<br>그럴 때마다 그들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완벽하게 '해결'했다는 인상을 받기보다는 아직까지도 덮기에 급급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br>우리는 모든 것을 해결했고 이제 후쿠시마는 안전하다, 라는 걸 억지로 증명하기 위해 일종의 퍼포먼스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br>왜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응할 수 있었던 실타래의 시작 부분조차 쉽게 잡지 못했는가. 왜 그들은 아직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를 절반도 복구하지 못했는가.<br>이러한 참사의 원인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그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 '태양을 덮다' 이다.<br><br>&nbsp; '태양을 덮다'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당시 일본 정부의 대응 방식을 그려낸 영화다.&nbsp;<br>흥미진진한 플롯이 가미된 픽션적인 영화가 아니라, 당시 일본 정치인들의 이름도 비슷하게 따오는 등 실화를 대다수 반영한 다큐멘터리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br>그래서인지 그 당시 일본 정부의 초기 대응 방식이 얼마나 실패적이었고, 이로 인해 일본의 국민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얼마나 막심한 피해를 아직까지 입고 있는가, 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nbsp;<br><br>&nbsp; 일본은 국가의 지형 특성 상 정말 오래 전부터 수많은 자연 재해를 겪으며 재난 앞에 인간은 얼마나 무능한가를 그 어떠한 나라보다 잘 알고 있다.<br>그러나 재난 앞 인간의 무능함이 그 인간 집단을 이끄는 무리, 다시 말해 원전 사고 때로 치자면 정부의 무능함을 만나면 얼마나 한없이 더 나약해지는가는 잘 몰랐던 것 같다.<br>원전 사고가 발발해 당장 일본 열도가 지도 상에서 없어질 위기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정부 관료들이 팩스를 붙들고만 있다든가, 냉각 장치와 관련된 외부 전력기와 콘센트가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든가,<br>무언가 단호하고 확실한 해결책이 필요할 때 총잭임자가 자신은 도쿄다 경제학부 출신이라 이런 쪽엔 무지하다고 답변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br>어찌 보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철저히 인간에 의해 일어난 재난이며, 인간의 무능함으로 악화된 재난이기에 아직까지도 그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nbsp;<br><br>&nbsp; 누구나 따가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눈을 찡그리며 작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nbsp;<br>내리쬐는 빛이 손바닥에 의해 가려져 찡그려졌던 눈이 다시 커지고, 일시적으로 조그마한 그늘이 만들어진다.<br>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태양이 우리의 손바닥에 의해 완전히 가려진 것인가?&nbsp;<br><br>&nbsp;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대응했던 당시 일본과 일본 정부의 태도는 햇빛이 따갑다며 손을 더 쫙 피고, 팔을 더 멀리 뻗어 태양을 가리고자 하는 우둔한 짓과 다를 바 없다.<br>재난 앞 인간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당장의 여론과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숨기고, 은폐하고, 가리기 바쁜 행위는 옳은 방식인가?<br>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몇몇의 재난 사고가 떠오르며 당시 우리나라는 어떠했는가, 까지 생각하게 해준 가치 있는 영화였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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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06:22: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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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8113195 &lt;일본 침몰2006&gt;</title>
         <author>wenjingcai546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733154</link>
         <description><![CDATA[<div>&lt;일본 침몰&gt;은 표준 재난 영화다.338일 후면 일본 열도가 사라질 판이다.이 영화는 확실히 일본에서 보기 드문 대작이며, 재난 장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만들었다.그동안 일본인들의 안타까운 마음과 심각한 위기감이 반영된 영화라고 생각한다.이 영화는 이런 일본인들의 조바심을 극대화해 최악의 경우 일본이 어떻게 해야 할지 구상하고 있다.물론 이 영화는 일본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직접 보여 준 것으로 애국정신을 강조해 국민을 격려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은 또한 격려 영화다.<br><br>&lt;일본 침몰&gt;을 보기 며칠 전 중국 원촨 대지진 14주년 기념제였기 때문이다.원촨 지진 당시 보도, 뉴스, 동영상, 하루 종일 슬픔에 잠겼던 이 지진은 내가 태어난 이래 중국에서 일어난 최악의 자연재해였다. 비록 지진의 발생지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 모두 우리 자신의 힘을 보탰고, 그 시기에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일어났다.<br><br>그래서 정치적 이유를 떠나 재난에 임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를 존경한다.자연조건이 불안정한 섬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타고난 우환의식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닥친 자연재난에 고통과 절망감을 느끼면서도 침착하게 대처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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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06:32:1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733154</guid>
      </item>
      <item>
         <title>재난이 끝나고 화살이 향하는 곳</title>
         <author>tinytedkim</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760478</link>
         <description><![CDATA[<div><sup>2016110279 일어일문 김하선<br></sup><br><br>　<mark>재난이란 무엇인가. </mark><strong><mark>재난에 대하여 다루기 전에 재난에 대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mark></strong> 세상엔 수많은 재난이 있다. 하지만 재난이라는 객관적 현상이 모든 사람들에게 일치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각자 재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괴리가 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을 나누는 기준은 다양하다. <mark>두 가지로 나눌 경우 흔히 천재(天災)와 인재(人災)로 나누기 마련이다.</mark>&nbsp; 일반적으로 해일, 폭풍, 홍수 등을 천재로 취급하며, 아파트가 무너지거나 비행기가 추락하는 등 인간의 행위로 파생된 사고는 인재로 취급하고는 한다. 이런 경우 말고 <mark>범위로 판단할 때도 있다. 재해, 재난, 재앙 등으로 나누는 것</mark>인데 이는 피해 규모와 피해 범위, 그리고 집단적 도움이 필요한 경우 등을 따져 범위로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준은 전 세계 공통적인 것이 아니다. 재난의 양상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수많은 재난을 범위로 따질 경우, 재난에 대한 기준을 통일하기 쉽지 않다. 비단 예를 들어 도시 전체가 블랙아웃<sub><sup>어떤 이유로 인해 하나의 지역에서 전기의 공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것</sup></sub>이 와버리는 경우 시간 상으로는 잠깐일 수도 있고, 어떤 인물이 구체적인 상해를 입거나 하지는 않지만 재산상의 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또 다른 경우, 현대 인터넷 전쟁의 일환인 사이버 해킹 같은 경우에는 피해 규모가 어마어마 할 수 있다. 또한가벼운 홍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사회적 혼란을 야기 시킨다. 이런 형태의 재난은 후폭풍도 계산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재난의 범위를 늘릴 경우 이번 루나 코인 사태<sub>테라폼랩스에서 발행한 </sub><a href="https://namu.wiki/w/%EC%95%94%ED%98%B8%ED%99%94%ED%8F%90"><sub>암호화폐</sub></a><sub> 테라USD(UST)와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자매 코인인 </sub><a href="https://namu.wiki/w/LUNA(%EC%95%94%ED%98%B8%ED%99%94%ED%8F%90)"><sub>루나(LUNA)</sub></a><sub>가 대폭락한 사건</sub> 또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재산 피해와 정신 피해를 입었으므로 엄청난 인재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strong>개념을 정의할수록 재난이란 무엇인지 잘 모르게 된다. 도대체 재난이란 무엇인가? </strong><strong><mark>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겪고 있는 것일까.</mark></strong><br><br>　무엇을 겪고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하나 분명한 사실은 재난이 되었든 재앙이 되었든 <mark>어떠한 객관적 현상은 일어났다는 것</mark>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다루었듯이 이것을 누가, 어떤 식으로, 언제, 어디서 겪었는가에 따라서 재난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객관적 재난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인지하는 경우의 수는 무한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정확하게 재난을 바라보고 있을까.<br><br>　사실 재난을 어떠한 식으로 인지할 것 인가에 대해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내가 보기엔 영화 매체일 것 같다. 재난은 물론 심각하지만 솔직하게 대답하자면 재난을 직접 겪지 않고 바라보는 재난은 그저 텔레비전 속의 한 장면일 뿐이란 생각을 떨치기 쉽지 않다. 정말 뛰어난 상상력과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재난의 소식만 듣고도 자비심과 안타까움을 일으킬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것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mark>인간은 자신이 파악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만 믿어 버릇하고, 자신과 관련성이 높은 것들에 신경을 많이 기울이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mark> 따라서 재난에 관한 소식을 듣거나 뉴스를 보는 것 보다, 영화 매체를 통해서 재난을 인지하는 것이 더욱 설득력 있다. 객관적 사실만 전달하는 뉴스보다 어떤 인물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게 영화매체는 맥락을 준비해주기 때문이다. &lt;타이타닉&gt;부터 시작해서 &lt;폼페이: 최후의 날&gt;, &lt;2012&gt; 등 <mark>재난은 매우 보편적인 영화 주제 중에 하나다.</mark> 우리나라도 수많은 재난 영화가 있다. &lt;해운대&gt;, &lt;부산행&gt;, &lt;엑시트&gt; 등 재난 영화는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최근에 내가 가장 재밌게 본 재난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lt;돈 룩 업&gt;이다. 재난 영화는 언제 나와도 유행에 뒤떨어진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그야 물론 인류가 태초이래 항상 재난에 시달리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문명 사회로 이전하고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예전보다 재난에 훨씬 잘 대응한다고 생각하고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하루가 기계의 오작동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고, 도시 안의 열돔 현상 때문에 엄청난 폭염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은 문명이 발달했기에 추가된 재난이다. 우리는 여전히 항상 재난에 시달린다. <br><br>　재난은 한시도 우리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럼에도 공감을 끌어올리기 어려운 내용들에서 공감을 이끌어 내려면 영화만한 것이 없다. <mark>영화가 재난에 대한 메시지를 주는 것에 유용한 이유는 어떤 ‘재난’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인간’의 관점으로 재해석 해서 공감하기 쉽게 보여주기 때문이다.</mark> 하지만 이는 커다란 단점이 있다. 지나치게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재난영화는 특유의 과장과 과도한 감정 상태, 긴박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극대화하는 경향성이 있다. 따라서 재난영화를 통해서 재난을 인식하다 보면 재난을 어떠한 특수한 상황으로만 인식하거나, 매우 특이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위험성이 있다. &lt;도쿄 매그니튜드 8.0&gt;도 그러한데, 지진을 겪는 매우 어린 소녀인 ‘오노자와 미라이’의 측면에서만 스토리가 진행되다 보니, 영화를 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오노자와라는 인물에게 집중하여 그 인물의 입장으로만 재난을 살펴보게 되고, 파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lt;도쿄 매그니튜드8.0&gt;는 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닫는 일상의 소중함과 타인의 따듯함, 가족의 소중함등 중요한 가치가 많이 들어있고, 실제로 감동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재난을 이렇게 감성적으로 다루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낭만적으로 끝내서 될 일이 아니다. <mark>재난은 재난 당시도 매우 두렵지만 진정한 두려움은 재난 후에 오기 때문이다.</mark> <br><br>　재난이라는 비참한 현실을 그저 비참하게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재난이란 상황을 아름답게 승화 시키는 것 또한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재난이란 현실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심각하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이란 상황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오지 않는다. 재난은 모두에게 심각하지만, 특히 취약 계층에 더욱 비참하게 다가온다. <strong>영화 &lt;기생충&gt;에서처럼 누군가는 비가 많이 온다는 사실이 그저 비가 많이 왔을 뿐이지만, 반지하에 사는 사람에겐 많이 온 비는 엄청난 재난일 수 있다.</strong> 지진과 같은 대형 재난은 더더욱 그러하다. 지진이란 객관적 사실은 모두에게 같지만, 그것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 개개인은 공평하게 겪지 않는다. 나는 어릴 적의 도쿄에 살면서 수많은 지진을 겪었다. 동경은 태평양 판과 가깝고, 해역에서 일어나는 지진은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강도가 높은 지진은 항상 두려웠고 매그니튜드가 5.0이나 6.0이 넘어버리면 서 있기는커녕 제 몸 가누기조차 쉽지 않다. 내진 설계에도 데미지를 줄 정도의 큰 지진이 오면 정말 곤란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누굴 탓하는 것이 쉽지도 않다. 재난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정말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mark>인과관계를 따지기 좋아하는 인간의 특성 상 반드시 재난의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정말 두려운 재난이 일어나기 시작한다.</mark><br><br>　<mark>인간이란 종족은 재난의 원인 분석에 있어선 정말 어리석음의 극치를 달린다.</mark> 과거의 어리석음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자. <strong><mark>역사적으로 항상 재난은 어떠한 신앙적인 요소로 이해되어 왔다.</mark></strong> 가뭄이나 홍수등 나타나는 모양새는 여러 형태를 가지지만 원인은 거의 신의 분노로 재난을 읽어 왔다. ‘신이 노하셨다.’라는 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신의 뜻을 인간이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nbsp; 그저 기도하고 제사를 지내는 정도밖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화산 폭발도 이러한 방식으로 원인을 분석 당하고는 했다. 과학 혁명이 일어나기 전, 이탈리아 남부의 베수비오 화산 폭발은 엄청난 피해를 준 대표적 화산 재난 중 하나다. 어떤 연구가들은 베수비오 화산 폭발의 피해가 태평양 전쟁 시절 히로시마 원폭 피해과 유사할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재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폭발의 원인을 신의 분노로 해석한 것이다.<br><br>　인간은 항상 재난의 원인을 분석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정확 할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원인을 헛다리 집는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인해서 폼페이는 엄청난 열기와 화산재로 뒤덮여 순식간에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종말로 이끌었다. <mark>처음에는 폭발을 사람들은</mark><strong><mark> 불카누스</mark></strong><strong><mark><sub><sup>불의 신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헤파이스토스와 동일신</sup></sub></mark></strong><strong><mark>의 분노</mark></strong><mark> 때문이라고 생각했다.</mark> 로마인들이 불카누스에게 지내야 할 제사를 제대로 지내지 않고 향락에 빠져서 불카누스가 화가 나 화산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이것도 지금 현대의 시점으로 보면 말도 안 되지만 <mark>후에 시대가 지나면서 생기는 이유는 더욱 말이 안 된다. 기독교 신앙이 유럽을 지배 해 가면서 로마 제국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약탈했기 때문에 </mark><strong><mark>화산 폭발은 하나님의 형벌</mark></strong><mark>이라는 해석이 등장한것이다.</mark> 이런 재난에 대한 오해와 곡해는 수많은 혐오를 양산해낸다. 화살의 방향을 잘못 설정하는 탓에 애꿎은 사람들이 고통 받게 된다. <strong><mark>인간은 나약해서 어떤 강력한 재난이 닥치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mark></strong> 그것이 자연 재해가 됐든, 인재가 됐든, 개인의 인생에서의 재난이 됐든 그리 다르지 않다. 원인을 잘못 설정할 경우 뒤로 가면 갈수록 판단의 오류는 증폭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인간의 나약함이 극도로 나타난 재난이 바로 ‘흑사병’이다.<br><br>　흑사병은 엄청난 재난이었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으며 동시에 세계사적 흐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재난이다. 사실 이런 재난은 지금 우리도 겪고 있다. ‘코로나19’를 통해서 말이다. 사실 근대를 지나 현대로 오면서 세상은 정말 큰 변화를 맞이했다. <mark>과학 혁명을 넘어선 인류는 진보 했다고 믿는 수많은 사람에게 전염병은 코웃음을 치듯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로 바꿔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발전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세의 사람들이나, 근대의 사람들이나, 현대인이나 전염병 앞에서 당황하고 헤매는 모습은 내게는 오십보백보로 보인다. </mark><strong><mark>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은 여전히 멍청하고 어리석다.</mark></strong>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흑사병을 바로 보아야 할 시점일지도 모른다.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사람들은 정말 많은 원인을 찾았다. 지금에서야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에 기생하는 벼룩이&nbsp; 페스트균을 옮겼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당시에 그것을 어찌 알겠는가. 흑사병이 창궐하던 당시 가장 의학적으로 뛰어났던 인물들이 낸 흑사병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br><br></div><blockquote>　우리는 이 감염병의 원인이 천체의 별자리라고 말하겠습니다. …이 행성의 교차를 통해 대기는 치명적으로 오염됐습니다. …이 부패한 공기를 마시면 공기가 심장까지 침투해 그곳에서 정신을 오염시키고 주변의 습기를 부패 시킵니다. 이렇게 해서 발생한 열이 생명력을 파괴하게 되는데 이것이 지금의 역병을 야기한 원인입니다.</blockquote><div><br>　사실 페스트는 공기의 문제도 아니고 별자리의 문제도 아니다.&nbsp; <mark>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문제 해결에서 멀어질 뿐이다. </mark>&nbsp;역시나 아니나다를까 페스트의 원인도 신의 분노에서 찾게 된 결과 이상한 집단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바로 ‘채찍 고행자’들이다. 이들은 매체에서도 많이 다뤄져서 유명한 인물들이다. <mark>이들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신의 형벌로 나타난 흑사병은 하나님의 형벌이니 자신을 채찍질하여 신의 노여움을 풀겠다는 기독교적 문제 해결 방식을 채택하여 자기 몸을 끊임없이 채찍질 한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mark> 하지만 피를 흘리며 집단을 이뤄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유럽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던 이들은 분명 걸리지 않을 수 있었던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흑사병에 걸리게 한 전염병 매개체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런 점이 바로 재난의 진정한 무서움이다. <strong><mark>재난 이후에 재난이라는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재난은 사실 끝난 게 아니며, 오히려 증폭된다. 재난의 희생양 찾기는 계속된다.</mark></strong> 흑사병의 원인을 신에게서 찾은 인간들은 유대인이 예수를 못 박았기 때문에 흑사병이 일어났다고 판단하고 유대인 혐오를 일삼았다.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풀어서 흑사병이 퍼졌다는 아무런 근거 없는 이야기가 유행했고, 이에 분노한 사람들은 유대인이라면 보이는 족족 고문하거나 학살했다. 유사한 모습이 지금도 보인다. ‘코로나19’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서 말이다.<br><br>　<strong>코로나19의 원인으로 지금 학계에서 가장 유력한 것은 서식지를 잃은 박쥐의 병원균이 인류에게 옮겨왔다는 입장이다.</strong> 지속적인 환경 파괴와 야생 동물의 서식지 파괴로 인한 그야말로 인류의 자업자득의 결과로서 코로나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중국의 인공적 바이러스 생성 음모론과 코로나 이후 이루어진 수많은 동양인 혐오, 그리고 코로나 초창기에 코로나 감염자에 대한 낙인과 사회적 괴롭힘. <strong>인류의 문명의 역사는 흘러왔으나 도대체가 진보란 것이 실체가 있는지 모르겠다. 인간이 정말 발전하고 있단 말인가?</strong><br><br>　일본도 마찬가지다. &lt;동경 매그니튜드 8.0&gt;처럼 일본이 괴멸될 정도는 아니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진도 9.0의 지진으로 그야말로 재앙에 필적하는 엄청난 피해가 일어났다. 이후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아픔과 갈 곳 없는 화살을 혐한으로 돌렸다는 학설은 벌써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무런 근거 없는 말이라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일본은 과거 관동대지진을 해결할 때도 ‘조선인의 폭동이 일어났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라는 말도 안되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국민의 시선을 돌렸기 때문이다. 동일본 대지진 후에 실제로 혐한 시위는 150% 가까이 증가했다. <mark>심지어 예전에는 어려웠던 유언비어 퍼뜨리기가 정보화 시대로 인해서 더욱 빨리 퍼지게 됐고, 팩트 체크가&nbsp; 되지 않은 수많은 말들이 SNS를 통해서 일파만파로 퍼 날라진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사람들이 관심 있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이다. 그야말로 ‘탈진실’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mark> 재난의 원인을 감정적으로 대할 수 있다. 그것을 막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만약 내가 <strong><mark>화살의 방향을 잘못 돌리고 있다면 제대로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mark></strong> 인간의 나약함은 필연적이나 인간의 비열함마저 용서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lt;동경 매그니튜드 8.0&gt;처럼 재난을 개인의 영역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mark>재난은 단지 현상적 재난이 끝났다고 해서 영화처럼 낭만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재난이 진정으로 시작되는 것은 재난이라는 현상이 끝난 이후일지도 모른다.</mark> <strong>인간의 나약함과 비열함이 낳는 재난은 그야말로 막을 수 없는 엄청난 재난이다.</strong> 인과적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내용을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만큼 위태로운 상태도 없다. 우리는 재난 이후의 재난을 경계해야 한다. <strong><mark>만약 화살의 방향을 올바로 설정하지 못할 경우, 진정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은 그때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mark></strong><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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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07:48: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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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2 김기려</title>
         <author>Giryo</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767217</link>
         <description><![CDATA[<div>&nbsp;&lt;일본침몰 2020&gt;<br><br>주인공의 아빠가 죽었을 때 충격이었다. 주인공이니까 해피엔딩이 나오겠지했는데 너무 일찍 주인공아빠가 죽어버렸다. 재난상황이 온다면 누구도 그런 상황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 끔찍하다. 그리고 그런 점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div><div><br></div><div>이 작품에서는 일본인들의 우려하는 포인트가 전부 담겨져 있다. 화산 폭발, 지진, 해일 그리고 화재 등의 모든 재난들이담겨져있다. 일본인들의 두려움이 묻어있는 작품이다.&nbsp;</div><div><br></div><div>&nbsp;일본 작품답게 “가족애”를 강조하고 있다. 가족들이 함께 희망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순혈일본인만 살아남아야한다는 극우 일본인의 사망장면이 나오는데, 이것때문에 극우 세력들에게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모두가 평등해야한다는 메세지를 담고 싶었던 것 같다.&nbsp;</div><div><br></div><div>&nbsp;또 어쨌건 살아있는 사람들은 잘 살아가자는 주제가 잘 보이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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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08:04:4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767217</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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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t;일본 침몰&gt;을 보고 2014110282 윤녕후</title>
         <author>ynho123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789014</link>
         <description><![CDATA[<div>&nbsp;어느덧 개봉한지 16년이 된 영화 &lt;일본침몰&gt;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영화의 스토리는 영화가 오래된 만큼이나 아주 뻔하다. 과학자에 의해 일본이 침몰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일본의 화산들은 분화하기 시작한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하고 누군가는 가라앉는 일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다. 영화의 스토리 자체에서는 할 이야기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일본에는 유독 이러한 플롯의 영화나 드라마가 많은 것일까?&nbsp;<br> 일본에 이러한 스토리의 영화가 많은 이유는 일본인들에게 재난에 대한 근원적 공포가 심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재난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여 지진과 쓰나미가 수시로 발생하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태풍 피해도 발생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자연스럽게 그러한 국가적 재난에 의한 위기상황에서 영웅적인 누군가가 등장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상황이 발생한다. 일본은 실제로 자연재해에서 촉발되어 인재가 겹쳐 발생한 후쿠시마 사태를 겪으며 이러한 모습을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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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08:58:4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789014</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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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8113414 강영화 &lt;일본 침물&gt;</title>
         <author>9rjbjr8xjj</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801434</link>
         <description><![CDATA[<div>이 영화에서는 일본 전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보통 재난 영화를 찍을 때는 국가의 한 도시만을 골라 찍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나라 전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때 재난이 닥치면 더 이상 개인과 도시의 위기가 아니고 그것은 전국과 민족의 위기입니다.</div><div>이전에 알아본 일본 문학서적, 영화, 애니메이션 작품에는 비관적인 기운이 섞여 있었고, 그 속에 주제를 망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태평양 한가운데서 독립한 섬나라의 나라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위기감이 아닐까요? 일본은 섬나라인데 사방이 바다여서 언제든지 침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지진, 화산이 잦고 자원이 부족하며 인구밀도가 높아 늘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일본민족의 뿌리 깊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우환과 조기경보의식을 자연스럽게 배태시킨 것입니다. 그들이 매사에 앞만 보고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의식 때문에 '일본 침몰' 같은 산물이 나온거죠.</div><div>이 영화에 대해 말하자면, 전 총리는 중국에 도움을 청하던 비행기에서 화산폭발로 조난을 당했습니다. 여기서 내가 이해한 것은 재난에서 누구의 운명도 자신이 장악할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div><div>그 후에 대리총리가 들어선 뒤 문제를 해결하기도 않고 스스로 살기 위한 일본 전체를 버리고 스위스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권세 있는 계급도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남은 것은 서민뿐입니다. 재난 앞에서 빈민들은 결국 사회의 밑바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재난이 올 때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잃고 도피하는 사람도 있고, 그를 키운 이 땅과 함께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div><div>그리고 이 영화에서 일본 난민 수용에 대한 각국의 태도도 돋보입니다. 특히 미국은 일본이 침몰하고 더 이상 활용가치가 없을 때 가차없이 일본을 버렸습니다. 재난 앞에서 남에게 너무 기대지 말고 자구하라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타인의 도움은 보통 이익 위에 세워집니다.</div><div>이 영화는 일본 민족의 위기감과 민족정신을 충격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div><div>영화의 마지막 후지산은 여전히 ​​폭발하지 않았는데 이는 일본의 신념이 여전히 존재하고 일본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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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09:30: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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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3 정붕거 일본침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817059</link>
         <description><![CDATA[<div>&nbsp;'일본 침몰'은 고마쓰 사교의 동명 소설 '일본 침몰'을 원작으로 한 재난 영화다.영화는 시작되자마자 미국 학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침몰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고, 판의 움직임 때문에 판의 가장자리에 있다가 40년 2개월가량 깊은 바다로 끌려가게 된다.하지만 지진이 빈발하면서 일본 학자들은 맨틀 아래 액체 상태의 메탄가스가 윤활제로 작용해 가속도가 붙은 판의 침몰이 338.54일밖에 남지 않아 일본이 완전히 침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마지막으로 일본 정부가 이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강구하는 내용이다.<br>&nbsp;이 영화는 일본에서 보기 드문 대작이며, 재난 장면을 헬기, 군함, 잠수함까지 동원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만들었다.나는 이 영화가 일본인들의 장기적인 초조한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일본은 땅이 좁고 자원이 부족한 데다 지진·화산·쓰나미 등 자연재해가 심한 섬나라다.그래서 일본인들은 심각한 위기감을 갖고 있다.나는 '일본 침몰'이라는 영화가 부분 일본인들의 이런 불안을 증폭시켰다고 생각한다.<br>&nbsp;영화에서 일본이 침몰한다는 것은 상상 속의 재난일 뿐이지만 현실은 아니다.그러나 나는 편안하고 안락한 처지에 놓였을 때도 위험한 때의 일을 미리 생각하고 경계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재난과 내일 중 어느 것이 먼저 닥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현재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후회 없이 살면 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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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10:06: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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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8 오채연 &lt;일본 침몰&gt;</title>
         <author>ocy200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825438</link>
         <description><![CDATA[<div>30년, 50년 뒤엔 80퍼센트의 확률로, 중반부부터는 1년도 안 남은 기간 일본이 침몰한다는 내용의 영화이다.<br>영화를 보며 국내 영화 '백두산'이 자주 떠올랐다. 재난 영화라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재난 영화에서 나타나듯 일본 침몰에서도 침몰과 이를 알리는 작은 사인들을 민첩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학자들, 의원들과 이에 대해 큰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책임감이 결여된 인물들에 대한 대립이 나타난다. 백두산이라는 영화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전개되어 엔딩마저도 유사하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일본의 침몰까지 1년도 남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몇몇의 의원들은 과학자의 상상력에 불과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곧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연구를 진행하기로 한다.&nbsp;<br>후리노산 분화를 시작으로 일본 곳곳에서는 피해가 속출나기 시작했다. 화산의 분화와 지진이 연속 발생한다. 시민들은 비상 식량 사재기를 하였고, 일본을 떠나려고 한다. 주가는 말도 안 되게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사태를 지켜본 일본 총리는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다. 예상 사망자의 수는 8천만명이 달하며, 시민들이 안전하게 다른 나라로 대피할 수 있도록 일부 의원들은 노력한다. 미국의 일본 경제 보호 포기, 각 나라들에서 발생하는 일본인 이주 반대 시위 등으로 일본이라는 나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된다.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일본 침몰을 막고자 하지만, 쉽지 않았고 이런 과정 속에서도 일본 시민들은 자연 재해로 목숨을 잃고, 집을 잃었다. 가족을 잃고, 일본 국민을 다른 나라에서 받아주려는 나라도<br>사라져 가고, 살고자 하는 사기 또한 꺾여만 간다. &nbsp;<br><br>일본 침몰에 대한 내용의 작품은 같은 제목으로도 3개 이상의 작품이 있다. 시즌으로 방영한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그리고 영화가 있다. 그 중 2006년에 제작된 '일본침몰'을 보게 되었다. 영화 속 일본이 직면한 문제는 지각변동으로 인한 메걸리스 붕괴뿐만 아니라 층간 박리이다. 다소 생소한 전문용어가 등장하였지만, 지각하부가 갈라져 일본이 침몰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nbsp;<br><br>일본은 오래 전부터 자연 재해와 가까운 나라였다. 일본의 지리적 특징으로 인하여 대.소규모의 지진 발생도 잦았던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일본과 가장 밀접한 나라에 살고 있지만, 지진이나 쓰나미나 화산 분화 등과 같은 류의 자연재해는 경험해 본 적이 없어 강도 7.4의 지진이 체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미디어를 통하여 또 이번 기회에 영화를 통해 접한 자연 재해는 정말 인간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일 중 가장 위력이 엄청나고 피해 규모도 상당하지 않나 싶다. 영화 속에서는 학자가 제안한 방법으로 두 청년들의 희생을 통해 완전한 일본 침몰만은 막을 수 있었다. 현실이었다면, 이런 극적인 해피엔딩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일본침몰은 실제 국가 비상 상황일 때, 국가에서 할 법한 대처들을 보여줘 더욱 실감나게 영화를 시청할 수 있었다.&nbsp;<br>개인적으로 재난 영화는 실제로 발생할 법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무섭다고 느껴져 즐겨 찾는 장르는 아니다. 현실에선 불가능할만한 극적 해피엔딩을 통해 영화는 운명적인 결말을 맞이했지만, 현실에서는 어떻게 되었을지 자꾸만 궁금해지는 영화였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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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10:27: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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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t;일본 침물&gt;2020113205 황목자</title>
         <author>h1577266009</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830922</link>
         <description><![CDATA[<div>이번에 본 주제는 일본 재난에 관한 영화이다.나는 '일본 침몰'을 선택했다.지각변동으로 일본 전체가 340여 일 만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는 지질학자의 연구 결과다.일본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고 일본 국민이 재난에 직면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한다.<br><br>일본은 역사적으로 한신 대지진, 311 대지진 등 여러 차례 큰 지진이 있었던 다지진 국가다.극중 일본 정부가 보여주는 우려는 현재 일본인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갖고 있는 운명에 대한 궁극적인 고민이기도 하다.당대 일본인들에게도 큰 위기감을 안겨줬다.<br><br>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몇 개 있다.우선 지질학자와 정치인의 대화인데 정치인들은 그의 연구를 매우 깔본다.일본이 침몰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막상 재난이 닥치자 일부는 도망을 쳤다.일부는 남아서 일본을 구하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극중 남녀 주인공이 그런 역할이다.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남자 주인공의 정신은 칭찬할 만하다. 남자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폭탄을 터뜨리자 일본은 침몰을 멈췄다.어린 소녀가 산 위에 서서 구조 헬기가 나오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감동적이다.헬리콥터가 오는 것을 본 소녀는 눈빛에 빛과 희망을 가득 담고 있었다.재해 복구에 대한 일본 국민의 믿음을 대변하기도 한다.<br><br>이 영화를 보고 나니 마음이 매우 무겁다.낯익은 도시가 파괴되고 가족이 이별의 아픔을 겪는다.정말 너무 슬펐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중국 원촨 512 대지진 14주년이었다.나도 텔레비전에서 그에 맞는 기념식을 본다. 나는 자연재해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생각한다.광포한 자연의 재앙 앞에서 고도로 발달한 인류 문명은 여전히 취약하다.극 중 일본이 침몰하면 이웃인 한국 중국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 뻔하므로 우리도 자연재해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세워야 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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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10:41: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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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355 서혜연 &lt;태양을 덮다&gt;</title>
         <author>haibara46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849175</link>
         <description><![CDATA[<div>태양을 덮다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토대로 한 논픽션드라마이다. 10년 전 모든 뉴스에서 긴급 속보를 전한다며 화면이 바뀌고 긴급 속보라는 자막이 달렸던 것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당시 어렸던 나는 그저 보고 싶은 채널을 볼 수 없는 것에 대해 짜증을 냈고, 그때 부모님은 지금 그게 문제냐 지금 네가 좋아하는 만화가 더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며 훈계했던 기억이 난다. 조금은 우습게도 그 말이 화면 속 어쩌면 나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했던 사건을 나와 밀접하게 만들었고 곧 현실감이 몰려왔었다.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날의 사건과 재난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단순한 원전 문제가 아닌 그것을 덮으려고 하는 세력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그저 눈을 가리려고 하는 세력들이 너무 화가 나고, 답답했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우리나라도 원전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은 만큼 원전에 대한 문제를 다시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사실 주제가 주제인지라 ‘재미있다’ ‘재미없다’로 표현할 수는 없는 영화이지만, 흐름 자체가 매끄럽다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원전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것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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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11:27: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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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271 김영 태양을 덮다 감상문</title>
         <author>rladud010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965082</link>
         <description><![CDATA[<div>‘태양을 덮다’는 실화기반 영화로 동일본 대지진에 이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처리 과정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내용이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영화에서 나온 것이 다른 관점에서 사고를 바라보게끔 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내부와 타국에서는 일본정부의 원전사고 대응 능력에 대해 비판을 가했지만 타국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어도 그것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방사능이 완전히 누출된 원전사고는 후쿠시마 이전에 체르노빌 단 한 번 밖에 없었으며 그 역시도 완벽한 대응이 아니었다. 어느 국가라도 체르노빌, 후쿠시마 이외에는 원전사고를 겪어본 적이 없으며 그렇기에 원전사고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간 나오토 정부의 실패에 대해서는 이해는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용납이 되는 실패는 아니다. 후쿠시마현의 시민들이 보금자리를 잃은 것과 방사능 누출에 의한 환자 발생, 일본 국민의 세금을 통한 재해 처리는 분명한 과오이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만 하는 실책이다.</div><div>한편 처음에는 현장과 원활한 소통을 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해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원전 운영 주체가 다른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일본은 원전이 민간주체(도쿄전력)에 의해 운영된 것에 반해 한국은 한수원이라는 공기업, 국영회사에 의해 운영된다. 또한, 늘 적성국가의 공격 목표물로 놓여있기에 감시와 정부와의 연계가 철저한 반면, 일본은 자칫하면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으로 여겨질 수 있기에 이를 쉽게 건들지 못했던 면이 있다고 생각된다.&nbsp;</div><div>철수 논란 역시 같은 면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보통 원전에 문제가 터지면 원전에서 일하는 인력이 처리를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누구도 원전사고를 수습하라고 강요하긴 힘들다. 체르노빌 사태에서 봤듯이 사고원전에 들어간 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에 철수를 막고 원전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원전 근무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간 나오토 총리의 철수 금지 요구는 긴급한 상황 속에서 적절하긴 하나 도덕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div><div>나름의 최선을 다했다고는 생각하나 원전사태의 수습에 허점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도쿄전력 측에서 현장과 통신할 수단이 있음에도 정부와 연결하지 않았던 것은 도쿄전력의 도덕적 해이로 봐야하며, 정부 측에서 이를 총리가 도쿄전력에 가는 순간까지 몰랐다는 것도 무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원전이 건설, 운영하는 것에 거대한 금액이 발생하는 만큼 보수적 조치를 취한 것은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그 원전이 불러올 재앙을 이미 체르노빌이라는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었던 만큼 극단적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div><div>한편, 영화의 마지막 결론이 ‘탈원전’을 주장하는 듯한 분위기로 끝이 나지만 이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우선 탈원전을 주장했던 독일의 실패와 범지구적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마저 탈원전에 반대하는 것을 바라볼 때 앞으로 ‘그린이코노미’가 중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원전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것이라 생각되진 않는다. 결국은 일본이라는 환경에서 어떻게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을지 답을 내는 것이 해결방책이라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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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14:59: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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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7113059 최재혁 &lt;태양을덮다&gt;</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3974010</link>
         <description><![CDATA[<div>영화 '태양을 덮다'를 감상하고나서 내 개인적인 일화가 생각났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2011년에 가족들이랑 외가친척들이랑 일본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패키지여행으로 시즈오카와 도쿄를 난생처음 해외여행을 가봤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나기 2주전에 우리가 그 재해를 일본을 갔다 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관한 뉴스들이 속보로 나오면서 내가 갔던 여행지들이 처참히 박살나고 잔해들이 바다로 인해 밀려들어와 국토가 초토화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만약 재수가 좋지 않았더라면 그 참상에서 살았을지 죽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을 것이다.&nbsp;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일본대지진과 그것으로 인한 전세계급 재앙을 불러일으킨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내막을 들여다보니 흥미로웠다. 특히 원전을 총괄하는 관리자가 '도쿄대 경제학과' 라는 전문분야에 있지도 않으면서 막중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또한 원전사고를 수습할 전력을 보급할 차가 사건현장에 도착했지만 공급해야할 플러그단자가 맞지 않아 결국 재앙이 커지게 된 것이 정말 환장의 콜라보레이션이 아닐 수가 없었다. 엎친데 덮친격 정부의 원전의 위험성을 은폐하고 전례없는 사건이 터지고 나서도 우왕좌왕한 모습을 보이는 것까지.. 이마를 탁치게 되는 인상적인 영화였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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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15:13: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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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7110143 김준형 &lt;태양을 덮다&gt;</title>
         <author>joonjoon082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4040316</link>
         <description><![CDATA[<div>이른바 ‘선진국’ 가운데 일본만큼 재해가 잦은 지역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일본 열도의 위치 특성 상 언제나 지진과 태풍의 위협에 직면해 있고 이들의 여파로 인한 쓰나미도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재해가 잦음에도 잘 갖춰진 인프라와 시스템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모습은 여타 재해가 잦은 개발도상국들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똑같이 지진, 태풍, 쓰나미가 잦은 인도네시아나 아이티 등과 비교했을 때 동일 수준의 재해일 때 일본의 피해가 압도적으로 작은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2011년 3월 11일의 동일본 대지진의 경우 원자력 발전소라는 개발 도상국에는 없는 시설의 존재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div><div><br>&nbsp;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몇 가지 실책과 자연 재해가 겹쳐 만들어진 사고라고들 이야기를 한다. 지진이 잦음에도 원자력 발전소를 환태평양 판과 인접한 지역의 연안에 세워 둔 것을 시작으로 당시 정부와 도쿄전력 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재, 정부와 도쿄전력 사의 늦은 대처 등을 사고가 일어나기까지의 실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원전의 부지 선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간 나오토 정부 시기에 일어난 일들이다. 이후 아베 신조 내각이 출범한 뒤 간 나오토 정부 시기에 일어난 실책들의 폭로와 당시 책임자들의 처벌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특정 비밀 보호법 등을 통해 더 철저히 은폐하고,&nbsp; ‘먹어서 응원하자’ 캠페인 등을 통해 위험성을 희석하려는 일이 벌어진 점은 어쩌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정치/사회적 특성을 보여주는 일면이 아닐까 싶다.</div><div><br>  20세기 이후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핵폭발은 네 차례 있었다. 그 가운데 세 번이 일본에서 일어났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에서. 1945년 세계 제2차 대전의 패전을 부른 두 발의 원자 폭탄 이후 일본은 원전을 다수 설치하며 핵 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지만,&nbsp; 2011년 후쿠시마에서 그 신화가 깨지는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 이 상황 속에서 일본인의 집단 무의식 속에 핵 에너지는 어떻게 각인이 되어있을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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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17:04: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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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17110309 (태양을 덮다) 감상평</title>
         <author>songkim158a</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4344765</link>
         <description><![CDATA[<div>작품의 전개는 지난 2011년에 실제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그려내고 있다. 당시의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 사고와 동일본 대지진은 세계적인 대사건으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같은 7등급 원전사고로 책정되었다. 영화에서는 우리들이 실제로 일본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보지 못했던 내용을 이번 작품을 통해서 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br><br>영화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서, 이후에도 쓰나미를 비롯해서 큰 재앙을 맞게 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 장치가 고장나서 방사능이 외부로 유출 될 수 있는 위기를 맞게 된다. 이를 위해 소집된 회의에서 전력 보안원장의 "모르겠습니다, 전 도쿄대 경제학부 출신입니다"라는 말도 안되는 답변과 함께 점차 위기는 실제호 위험으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실수들이 일어나면서 점점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br><br>나는 영화를 보면서 답답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일본의 보수적인 정책과 딱딱한 관료 정치의 습성으로 인해 정부와 행정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되지 않을 뿐 더러,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매 과정마다 문제 및 실수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한 느낌이었다. 지금도 일본의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소비하자는 '먹어서 응원하자'와 같은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몇명의 방송인은 실제로 후쿠시마산 식품으 섭취하여 건강이상을 보여주는 경우와 더불어 일본의 암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다. 원자력 폭발과 관련해서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일을 크게 만든 일련의 답답한 과정 속에서 우리나라 역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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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2 07:41: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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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20110284 일본 침몰 2006 감상문</title>
         <author>yoonsoo246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4470708</link>
         <description><![CDATA[<div>세상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는 인류가 존재한 이래 어느 시대나 다 있어왔다. 한국 또한 지구환경의 변화와 전쟁 등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굉장히 많다. 한국의 재난 영화, 또는 다른 나라의 영화와 일본의 영화가 어떤 차이가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과 함꼐 영화 ‘일본 침몰(2006)’을 보게 되었다.서서히 가라앉아가는 일본 열도의 이미지, 연속적으로 분화하는 일본의 화산, 계속되는 지진과 화산에 두려워 떠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1억 2쳔 만명의 일본인들을 열도에서 탈출 시키려고 한 사람이라도 구하려고 목숨 바쳐 애쓰는 영웅들, 살아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과 그들을 구하려고 애쓰는 군인들, 그리고 그 속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긴박하고 가슴이 벅찼다. 또 영화의 화려한 엑스트라들도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화려하고 치밀한 특수효과와 함께 인간의 정에 대해 느끼고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만족스러웠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많은 국민들의 외침과 살고자 하는 국민들의 발버둥을 뒤로하고 권위있고 지위 있는 정치인들과 아무렇 지도 않게 음악을 들으며 리듬을 타는 젊은 여성이 비행기에 오르는 모습이었다. 인간의 방자함과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인간들의 모습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요소들을 본다면 한국의 재난영화들과 비슷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결의로 뭉친 사람들, 목숨을 걸고 당당하게 가족, 국민, 나라를 살린 주인공의 모습을 또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일본과 교토가 바다에 가라앉아 건물과 유적들의 흔적만 살짝 보이는 장면에서도 자연재해의 거대함과 멸망할 수밖에 없는 도시들의 처절한 모습이 음악과 함께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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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2 12:25: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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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본침몰(2020) 감상평 서가은 2021110261</title>
         <author>geseo0523</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4552562</link>
         <description><![CDATA[<div>재난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공포심을 갖게 한다. 특히 지진, 쓰나미 등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일본에서는 더 직접적으로 무서움을 느낄 것이다. 판의 경계에 위치한 섬나라로, 크고 작은 지진이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나라 중 하나이다. 이상기후 때문에 해수면이 상승하고, 그에 따라서 섬나라인 일본이 가라앉는다는 말도 있지만, 이렇게 규모가 큰 지진이 일어나면, 연쇄적으로 화산도 폭발해 결국 일본이 침몰할 수도 있다.&nbsp;</div><div>영화는 상당히 사실적으로 재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순식간에 도로가 땅으로 꺼지고, 건물들이 무너진다. 사람들은 도망가다 절반이 사망하거나, 미리 이 사실을 안 정치인이나 고위직의 인물들은 해외로 떠났다. 실제 상황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화가 나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지진과 같은 재해를 상대적으로 많이 경험하기 때문에 항상 그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해운대 같은 자연재해를 다룬 영화들이 있는데 이런 재난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지기만 한다. 일본침몰에서처럼 폭탄을 설치해 재난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도 지진으로 인해 수능이 미뤄지기도 하고, 큰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최근에는 빈번해졌다. 재난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재난을 막기보다는 피해를 최소화 하도록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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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2 14:38: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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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215472 윤건희 일본침몰</title>
         <author>jkheeyoon</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4737982</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 침몰은 평화로운 일본에 갑작스런 지각변동이 시작되고 이를 조사하던 교수는 1년안에 일본이 침몰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일본정부에서는 D-1 계획을 착수해 조사를 하게된다. 그와중에 지각변동이 계속되어 훗카이도 화산이 분화하기 시작한고 국민들에게 거짓말을하여 5년안에 일본은 침몰한다라고 국민들의 안심시켰다. 그와중에 교수는 일본 침몰을 저지할 방법을 알아내고 결국 후지산 폭발 직전에 멈추고 침몰이 끝난 일본을 비추면서 끝난다.</div><div>&nbsp; &nbsp;</div><div>이 영화를 보고 딱 떠오로는 영화가 있었다. 바로 2012라는 지구 종말의 대한 영화였다. 보면서 매우 많은 공통점들이 있었다. 2012는 대인들의 예언대로 전 세계에서 지진과 화산폭발, 거대한 해일 등 각종 자연재해들이 발생해서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는 내용이다.</div><div>&nbsp; &nbsp;</div><div>이렇게 자연의 변화 앞에서는 모든게 소용이 없다라는 걸 보여주고 아무리 대비를 해도 한계가 있다는걸 보여주는거 같다. 하지만 피해를 최소화를 해 그에 대한 기틀과 방법을 마련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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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2 19:19:1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eseus7/lrva56i93p7dekwy/wish/2194737982</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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