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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원중 2학년 조선 후기 문화(2-1) by In hee Le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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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조선 후기 문화에 대한 내용을 온라인에서 조사하고 전시해봅시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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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0:16: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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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팔만대장경 (20600 이인희)</title>
         <author>flotnstls</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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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우리나라 국보 제 32호로, 고려시대대몽항쟁 시기에 부처의 힘으로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만든 대장경이다. 대장경이란 불교 경전을 모은 것을 의미한다. 총 16년 동안 제작되었으며 8만 개의 판수에 다다르기 때문에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현재는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출처: 교과서, 네이버 지식백과]]></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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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0:16: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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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국유사 (20600 이인희)</title>
         <author>flotnstls</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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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고려시대 충렬왕 시기에 승려 일연이 지은 역사서이다. 불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수록되지 않은 다양한 전설이나 신화 등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삼국유사는 고조선의 단군설화를 최초로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출처: 교과서, 네이버 지식백과]]></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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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0:16: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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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료 조사 방법</title>
         <author>flotnstls</author>
         <link>https://padlet.com/flotnstls/kwcj5mf9ihmho25v/wish/1034869220</link>
         <description><![CDATA[<div>1. 제목에는 각자 맡은 <strong><mark>주제, 학번, 이름</mark></strong>을 함께 적어주세요.<br>예시. 팔만대장경 (20300 이인희)<br><br>2. 자료조사(교과서, 책, 인터넷 등)를 한 후 내가 맡은 문화재에 대한 <strong><mark>간략한 소개를 사진과 함께 올려주세요. </mark></strong><br><br>3. 마지막에는 <strong><mark>출처</mark></strong>를 꼭 밝혀주세요. (예. 출처-교과서, 네이버 지식백과 등) - <strong><mark>출처 내용은 참고하되, 그대로 옮겨오지 말고 본인이 정리하여 작성해보세요.</mark></strong><br><br>4. 문화재 소개를 작성한 후에는, 다른 친구들이 작성한 글도 천천히 감상해보세요.</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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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0:16: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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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택리지(20112 엄은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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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751년 (영조 27년) <mark>실학자 이중환</mark>이 전국의 <mark>현지답사를 토대로</mark> 편찬한 지리서이다.<br>내용은 1753년에 쓴 정언유의 서문이 2면에 걸쳐 있고, 사민총론·팔도총론(평안도·함경도·황해도·강원도·경상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복거총론·총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br><br>택리지는 우리나라 <mark>실학파 학풍의 배경</mark>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지리서이며 종전의 군현별로 쓰여진 백과사전식 지지에서 우리나라를 총체적으로 다룬 팔도총론, 도별지지, 그리고 주제별로 다룬 인문 지리적 접근을 갖춘 새로운 지리지의 효시이다.<br><br>필요에 따라서는 도 경계를 넘어 하천 유역을 중심으로 지리적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지리서이기는 하나 그 <mark>내용이 역사·경제·사회·교통 등을 다루고</mark> 있기 때문에 많은 학문 분야의 관심을 끌고 있다. <br><br>[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네이버 지식백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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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0:39: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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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당(20110 신준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lotnstls/kwcj5mf9ihmho25v/wish/1034909414</link>
         <description><![CDATA[<div>제작은 18세기이다.</div><div>기법은 종이에담체이다<br>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div><div>크기는 26.9x22.2cm이고</div><div>장르는 회화,한국화,동양화,수묵채색화이다</div><div>서당의 모습을 인물 위주로 익살스럽고 재치있게 그렸다.</div><div>훈장님에게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는지 한 아이가 훈장님 앞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다. 그런 친구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입을 가리고 킥킥대며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도 보이며. 그 중 갓을 쓴 사람도 보이는데 갓을 썼다는 것은 장가를 갔다는 뜻이다. 김홍도는 지금의 학교와 같았던 서당의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했다.</div><div>김홍도는 자유자재로 먹선을 사용하여 다양한 풍속과 표정을 예리하게 묘사하여 감정까지 드러나도록 그림을 그렸으며.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 사람들의 자세와 동작만으로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기분일지 알 수 있을 걱 같다.</div><div><strong><br>출처:[네이버 지식백과]</strong></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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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0:42: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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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의보감(20111신희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lotnstls/kwcj5mf9ihmho25v/wish/1034929623</link>
         <description><![CDATA[<div><br><strong>동의보감</strong>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97%88%EC%A4%80">허준</a>이 선조의 명을 받아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학 서적(<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9D%98%ED%95%99">한의학</a>을 하나로 모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0%B1%EA%B3%BC%EC%82%AC%EC%A0%84">백과사전</a>으로서,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596%EB%85%84">1596년</a><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84%A0%EC%A1%B0">선</a>부터 편찬하여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610%EB%85%84">1610년</a>에 완성된 의학서이다.당시 의학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C%9D%98%EB%B3%B4%EA%B0%90#cite_note-2"><sup><br></sup></a>허준이 직접 간행에 관여하여 나온 동의보감의 어제본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5%AD%EB%A6%BD%EC%A4%91%EC%95%99%EB%8F%84%EC%84%9C%EA%B4%80">국립중앙도서관</a>과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A%B5%AD%ED%95%99%EC%A4%91%EC%95%99%EC%97%B0%EA%B5%AC%EC%9B%90">한국학중앙연구원</a>에 소장 중으로, 각각 국보 319호와 319-2호로 지정되었으며,2009년 7월 31일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C%A0%EB%84%A4%EC%8A%A4%EC%BD%94">유네스코</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4%B8%EA%B3%84%EA%B8%B0%EB%A1%9D%EC%9C%A0%EC%82%B0">세계기록유산</a>으로 등록되었다.<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C%9D%98%EB%B3%B4%EA%B0%90#cite_note-4"><sup><br></sup></a><sup>[</sup><strong><em><sup>출처:위키백과]</sup></em></strong></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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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0:55: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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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동여지도(20124백건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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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대동여지도는 철종12년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편찬한 22첩 전국지도이다.  다른 지도들과는 다르게 휴대가 용이하도록 절첩식으로 제작되었다.  또한 산의 높낮이를 구분할 수 있게하여 당시의 다른 지도들과는 다른 특색이 두드러지고 각 장끼리의 연결관계를 파악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br><br>『대동여지도』의 표현 양식상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산지의 표현이다. 산도(山圖)에서 사용되는 산의 표현방식을 응용하여 개별 산봉우리를 그리지 않고, 끊어짐이 없이 산줄기를 연결시켜 그렸다. 이는 우리나라 지도제작의 특징으로서 전통적인 자연인식 체계이기도 하며, 풍수적 사고가 반영된 것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산지 표현에서는 이렇게 연맥을 강조하는 표현뿐만 아니라 산줄기의 험이(險夷)에 따라 산줄기의 굵기를 달리하여 그렸으며 특정 산들을 강조하여 산세를 표현하였는데, 이를 '산악투영법(山岳投影法)'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산계의 표현은 기본적으로 하계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는 것으로 하천을 가르는 분수계는 평지에 가까운 경우라도 산줄기로 표현되고 있다.</div><div><strong><br>출처: [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1198">대동여지도</a> (한국 미의 재발견 - 과학문화, 2004. 12. 31., 김인덕, 서성호, 오상학, 오영선)</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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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0:56: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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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탈춤 (20123 한준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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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탈춤은 탈을 쓰고 벌이는 전통적인 가면극을 말한다. 탈춤은 최치원의 &lt;향악잡영&gt;  을 통해 9세기부터 시작했다는것을 알 수 있다. 탈춤의 소재는 부부간의 갈등, 서민생활의 곤궁상 등이 있으나 대부분 양반이나 부패한 관리들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br>탈춤은 무대나 가면 이외에 특별한 도구가 필요 없어서 들판같은 곳에서 상연하고 시간의 제한이 없어 새벽까지 끝나지 않는 탈춤도 있다. <br><strong><em><sub>[출처: 위키백과]</sub></em></strong></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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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1:03: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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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청계천(20109 박지호)</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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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본래 자연하천이었던 청계천은 조선 태종때 부터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96%91">한양</a>을 서울로 한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조선</a>시대 내내 개거, 준설 등 치수 사업의 대상이었다. 태종은 1406년부터 자연상태에 있었던 하천의 바닥을 쳐내서 넓히고, 양안에 둑을 쌓았으나 큰비가 올 때마다 피해는 계속되었다. 1411년 12월 하천을 정비하기 위한 임시기구로 '개천도감'를 설치하고, 이듬해 1월 15일부터 2월 15일까지 큰 공사를 실시하였다. 청계천의 양안을 돌로 쌓고,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4%91%ED%86%B5%EA%B5%90">광통교</a>, <a href="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D%98%9C%EC%A0%95%EA%B5%90&amp;action=edit&amp;redlink=1">혜정교</a>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들었다. '개천)'이라는 말은 '내를 파내다'라는 의미로 자연상태의 하천을 정비하는 토목공사의 이름이었는데, 이 때의 개천 공사를 계기로 지금의 청계천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세종은 청계천의 지천의 정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종로의 시전행랑 뒤편에 도랑을 파서 물길을 하천 하류에 바로 연결시켰는데, 지천의 물이 한꺼번에 개천 상류로 몰려들어 넘쳐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도심의 홍수를 예방할 수 있었다. 세종은 1441년에 마전교 서쪽에 수표를 세워 수위를 측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br><br>출처 위키백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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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1:40: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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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단오풍정 (20103김동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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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조선 후기 신윤복의 작품으로, 단오날 놀이를 나온 여인들이 머리를 감고 그네를 타는 등을 즐기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특히 김홍도와는 달리 이 그림에서는 신윤복의 특징인 세련됨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여인들의 복장으로 인해 선정적인 분위기가 자아내진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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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1:43: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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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홍길동전(20119최유진)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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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홍길동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이고 풍자를 사용하여 서얼 차별과 탐관오리를 비판하고 있다. 이 소설은 조선 중기 광해군 때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허균의 혁명적인 사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홍길동전’은 당시 조선 사회의 모순을 비판한 최초의 사회 소설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당시 서얼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벼슬길에 오를 수 없는 등 차별이 있었고 못된 벼슬아치들은 신분을 이용해 백성들에게 재물을 빼앗기도 했다. 허균은 이런 부패한 사회를 비판하고자 서얼 출신의 홍길동이 힘없는 백성에게 빼앗은 탐관오리의 재물을 훔쳐 백성들에게 돌려주는 내용의 ‘홍길동전’을 썼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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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2:10: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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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허생전(20106김성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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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허생전〉은 1700년대 후반에 박지원이 쓴 한문 단편 소설로, 《열하일기》에 들어 있다.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청나라를 다녀온 뒤 남긴 기행문으로 박지원의 실학사상이 잘 나타난 단편 소설들이 들어있다. 《열하일기》에서 당시 조선의 양반들은 청나라를 오랑캐의 나라라고 하여 청나라의 문물을 거부하였는데, 박지원은 우리 생활에 이로운 것들은 받아들이자는 주장을 펼쳤다. 〈허생전〉에서도 글만 읽는 무능한 양반들을 비판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상업과 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div><div>[출처:네이버 지식백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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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4:05: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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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멜포류기 (20105김서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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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하멜포류기는 조선 선박원이였던 핸드릭 하멜이 조선에 13년동안 포류되어있던 동안 귀국으로 돌아갈 때 까지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포류기와 조선 왕국기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조선 왕국기’는 조선의 지리, 풍토, 산물, 정치, 군사, 형법 제도, 종교, 교육, 교역 등 하멜이 조선에서 체류하면서 보고 들은 조선에 대한 각종 정보들을 기록한 것이다. 또한 포류기는 네덜란드를 떠난 이후 조선에서의 억류 생활을 거쳐 다시 귀국할 때까지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일지이며, 난파 경위, 조선에 표박한 이후 하멜 일행이 겪은 체험과 감상이 연대순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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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4:07: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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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발해고 (20107 김영은)</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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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발해고》는 조선 정조 8년(1784년)에 규장각검서로 일하던 실학자 류득공이 발해에 관해 저술한 역사서이다. 1권본과 4권본의 두 종류가 있으며, 신라와 발해를 남북국으로 칭하는 남북국사관을 창조한 서적이다. 《발해고》는 한국에서 현존하는 발해 역사서 중 최초의 역사서이자 발해 전문 자료휘문집으로 의의가 크다.<br>(출처 위키백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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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4:55: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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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화(20108박상언)</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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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민화는 조선시대의 민예적인 그림으로 정통회화의 조류를 모방하여 생활공간의 장식을 위해 그리거나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제작된 실용화를 말한다. 민화는 조선 후기 서민층에 유행하였으며 대부분이 정식 그림 교육을 받지 못 한 무명화가나 떠돌이 화가들이 그렸다. 그리고 서민들의 일상 생활 양식과 관습 등의 항상성에 바탕을 두고 발전하였기 때문에 창의성보다는 되풀이하여 그려지는 형식화한 유형에 따라 인습적으로 계승되었다.따라서 민화는 정통회화에 비해 수준과 시대 차이가 더 심하다.<br>민화는 장식 장소와 용도에 따라 종류를 달리하는데 이를 화목별로 분류하면 화조영모도-어해도-작호도-십장생도-산수도-풍속도-고사도-문자도-책가도-무속도 등이 있다.<br>대표적으로 산수도는 금강산이나 관동팔경과 같은 산천을 소재로 그린 실경산수와 중국식 산수로 나눌 수 있다. 주로 병풍으로 꾸며져진다<br>이와 같이 다양한 유형으로 이루어진 민화는 생활형식의 오랜 역사와 밀착되 형성 되어 내용이나 발상 등에는 한국적인 정서가 짙게 내재해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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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5:09: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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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원화성(20121 허건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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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본래 수원의 행정청[邑治]은 지금의 수원에서 남쪽으로 약 8㎞ 떨어진 화성군(현: 화성시) 태안면 송산리의 화산(花山) 아래 있었다. 정조는 양주군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이곳으로 이장하면서 수원읍과 민가들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팔달산 아래 지금의 수원으로 옮기고 읍명을 화성(華城)이라 했다.<br><br>정조는 곧 화성 축성에 들어갔다. 성안에 행궁을 설치하는 등 화성성역(華城城役)이라 부르는 신도시 건설이 무르익어갔다. 이에 정조는 일찍이 유성룡이 제시했던 설과 유형원·강항·조중봉, 그리고 실학의 집대성자 정약용이 주창한 성설(城說)을 설계의 기본 지침으로 삼는다. 실학사상이 크게 영향을 미친 대역사(役事)였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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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8:25: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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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왕제색도(20114이가윤)</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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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인왕제색도는 조선 영조대 화가였던 겸재 정선이 서울 인왕산을 그린 그림이다.한여름 소나기에 젖은 인왕산 바위의 모습을 묵중한 필체와 대담한 배치를 통해 사실적으로 그려낸 수작으로, 국보 216호에 지정되었다. 그런데 그림을 보다보면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인왕산의 봉우리는 검은색이 아니라 흰색인데, 정선은 그것을 검게 그렸다. 비가 온 후에는 봉우리가 젖어 검은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진경산수화의 특징 중 하나이다.</div><div>인왕제색도는 일반적인 그림에서 볼 수 없는 구성으로 그림을 보는 사람이 봉우리 가까이 다가선 것 같은 느낌을 준다.<br>[출처: 네이버 지식백과]</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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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12:11: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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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농가집성 20116 이은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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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조선 중기, 문신 이지당이 쓴 농업서적으로 목판본이다. 세로 28.5cm, 가로 19.4cm이며 효종 때에 처음 간행 되었다가 여러 차례 삭제되고 간행되었다. 《농사직설(農事直說)》,《금양잡록(衿陽雜錄)》,《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외에 《구황촬요(救荒撮要)》까지 다 융합해 넣은 책으로 중국의 ≪사시찬요≫와 ≪농가집성≫에 들어간 ≪사시찬요초≫와 비교하면 우리 나라의 풍토에 맞추어 적절히 교정되었다. 또한 우리 나라 고유의 기술도 많이 나와있다. 이로써 농민을 위한 전형적인 농업지침서가 만들어졌다. 농가집성은 균형 있는 종합 농서로서 당시의 농업기술과 원저와 중간본들 사이의 기술 변천을 살필 수 있고 우리나라 농업사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책이며 이 책 속에 나오는 여러 가지 작물의 품종명에서 이두와 한글의 표기가 많이 나와 국어사 연구에 유용하다.<br><br></div><div><br></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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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13:55: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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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사강목 20115 이윤서</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lotnstls/kwcj5mf9ihmho25v/wish/1036515669</link>
         <description><![CDATA[<div>동사강목은 조선의 학자 안정복이 쓴 강목체•판년체 역사서이다</div><div>기원전 1122년부터 1392에 이르기까지의 2514년에 걸치는 역사를 수록했다</div><div>동서강목의 초고는 18년 그의 나이 67세에 완성되었고 이후 정조 5년 동사강목은 정조의 교서에 따라 대궐로 바쳐졌다</div><div>전체 17권 34책에 서론과 부록 3권이 덧붙여져있다. </div><div>저자 안정복은 45세 되던 해인 영조 32년(1756)에 동사강목의 저술이 시작하였다</div><div>애국적 사상과 애민적 사상이 흐르고 있으며 동사강목의 가치를 한결같이 높여준 것은 마지막 부권이다 여기엔 고이•괴변설•잡설•지리고 등의 4개의 편목이 있다 각 편엔 국가별 여러개의 개별적 문제들이 취급되어 있다 동사강목은 경세치용학파의 저술로  근대 계몽기에 이르러 학문적•사상적 영향이 더욱 현저하였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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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18:05: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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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청화백자 20120 최인호</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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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순도 높은 백자에 청색의 코발트 안료로 무늬를 그리고, 그 위에 투명유약을 입혀 환원염에서 구워낸 목이 좁은 그릇.청화백자는 중국의 경우에는 14세기 초엽경에 본격적으로 생산되었으나, 우리 나라에는 14세기 말엽에 전래되어 생산단계에 들어간 것은 15세기 중엽경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15세기 중엽경의 초기 청화백자는 기형과 문양이 명나라 청화백자의 영향을 짙게 보이지만, 15세기 후반경에는 독자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에 코발트 안료를 중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으나 후에는 자체내에서 개발하여 사용하였다.청화백자의 청아한 문양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시기별로 문양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로 15세기에서 16세기경에는 매조 산수화, 추초 등, 둘째 17세기에서 18세기경에는 세필의 난초 및 매조 송죽, 매죽 등을 그렸고 19세기 이후에는 물고기, 용, 장생문 등의 문양이 주조를 이룬다.청화백자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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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05:56: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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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춘향전(20104김민서)</title>
         <author>gimminseo905</author>
         <link>https://padlet.com/flotnstls/kwcj5mf9ihmho25v/wish/1037830686</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에는 사람의 신분을 양민과 천민으로 구분하는 '양천제'라는 법적 신분 제도가 있었다. 양민은 과거 시험을 보고 벼슬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대신, 세금을 내야 하는 조세의 의무와 나라에서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부역의 의무가 있었다.<br><br></div><div>천민은 노비처럼 개인이나 국가에 소속되어 일하는 사람들로, 자유가 없는 대신 세금을 내거나 부역을 해야 하는 의무가 없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나뉘는 '반상제'에 따라 신분이 구별되었다.<br><br>신분에 따라 정치·경제적 지위가 정해지고, 권리와 의무도 정해졌다. 양반은 땅과 노비 등 재산을 가졌지만, 천민은 소유물로 취급되어 주인이 마음대로 팔거나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또한 신분이 자식에게 대대로 이어졌고, 혼인 또한 같은 신분 안에서 이루어졌다.<br><br></div><div>하지만 양반은 양민이나 천민을 첩으로 둘 수 있어서 신분이 다른 자식이 생기기도 했다. 첩의 자식은 서얼이라고 불리며 차별을 받았다. 게다가 어머니가 천민이면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야 했다. 《춘향전》의 춘향도 아버지는 양반이지만 어머니가 기생이었기 때문에 낮은 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br><br>하지만 엄격한 신분제 사회라 할지라도 신분 이동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천민만 아니라면 누구나 과거를 치러 벼슬을 할 수 있었고, 양반도 죄를 지으면 노비가 되기도 했다.<br><br></div><div>특히 《춘향전》의 배경이 된 조선 후기는 사회 각 분야에서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면서 중인이나 상민들도 벌어들인 돈으로 신분을 바꿀 수 있었다. 또 양반이 경제적으로 몰락하여 허울만 간신히 유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즉 신분 제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br><br>따라서 《춘향전》에서처럼 신분이 다른 남녀의 사랑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의의를 지닌다. 춘향이 몽룡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분의 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신분 제도의 변화는 그런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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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11:26: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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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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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전도비(20102 권민석)</title>
         <author>kmskms3349</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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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637년 2월 24일, 남한산성에 고립되어 있던 조선 왕 인조는 청 황제 태종 앞에서 삼배구고두로<a href="https://namu.wiki/w/%EC%82%BC%EC%A0%84%EB%8F%84%EC%9D%98%20%EA%B5%B4%EC%9A%95"> </a>항복하고 가까스로 한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직후 청나라는 병자호란에서 선봉으로 활약한 마푸타를 통해 인조의 항복을 받은 자리에 자신들의 승리를 기록한 비석을 세우도록 요구하였고, 이에 따라 당시 경기도 광주부 중대면 송파리, 지금의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자리인 삼전도(三田渡)에 이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br><br>출처 나무위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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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15:36: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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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사(이종휘) 20118이주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lotnstls/kwcj5mf9ihmho25v/wish/1041285259</link>
         <description><![CDATA[<div>《동사》는 수산(修山) 이종휘(李種徽)의 문집인 《<a href="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88%98%EC%82%B0%EC%A7%91&amp;action=edit&amp;redlink=1">수산집</a>(修山集)》 가운데 수록되어 전해져 온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8%B0%EC%A0%84%EC%B2%B4">기전체</a>의 통사 서적이다. 이종휘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6%8C%EB%A1%A0">소론</a>에 속하며,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6%91%EB%AA%85%ED%95%99">양명학</a>의 영향을 받아 유교사관의 재정립을 시도했다.<br><br>주자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4%B1%EB%A6%AC%ED%95%99">성리학</a>의 전통적인 역사 인식에서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8%B0%EC%9E%90%EC%A1%B0%EC%84%A0">기자조선</a>을 높게 평가한 것과 달리,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2%85%ED%9C%98">이종휘</a>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B%A8%EA%B5%B0%EC%A1%B0%EC%84%A0">단군조선</a>의 의미를 높게 평가하였다. 한국사의 뿌리는 단군조선으로서, 비록 단군조선이 기자조선에 의해 멸망되었지만,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B%A8%EA%B5%B0">단군</a>의 후손들이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6%80%EC%97%AC">부여</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B%A7%A5">예맥</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9%84%EB%A5%98">비류</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8%A5%EC%A0%80">옥저</a> 등을 건국하였고, 부여의 후예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A%B5%AC%EB%A0%A4">고구려</a>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0%B1%EC%A0%9C">백제</a>를 건국하였으므로, 결국 단군의 혈통임을 강조하였다. 이종휘는 기자조선의 의미도 문화적 측면에서 높게 평가하였다. 기자를 통해 중국의 문화가 유입됨으로써 조선이 소중화(小中華)로서 문화 국가가 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사대주의 성리학자들의 역사관과 달리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2%85%ED%9C%98">이종휘</a>는 기자불신설(箕子不臣說), 즉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3%81%EB%82%98%EB%9D%BC">상나라</a> 왕족인 <a href="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A%B8%B0%EC%9E%90_(%EC%83%81%EB%82%98%EB%9D%BC)&amp;action=edit&amp;redlink=1">기자</a>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3%BC%EB%82%98%EB%9D%BC">주나라</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3%BC_%EB%AC%B4%EC%99%95">무왕</a>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중국사에 예속되지 않는 조선사의 독자적 의미를 강조하였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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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4 12:47: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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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lotnstls/kwcj5mf9ihmho25v/wish/1043649346</link>
         <description><![CDATA[<div>상평통보 20101권미소 <br>1633년(인조 11) 김신국(金藎國)·김육(金堉) 등의 건의에 따라 상평청(常平廳)을 설치하고 주조하여 유통을 시도했는데 결과가 나빠 유통을 중지하였다. 그후 1678년(숙종 4) 정월에 다시 영의정 허적(許積), 좌의정 권대운(權大運) 등의 주장에 따라 상평통보를 다시 주조하여 서울과 서북 일부에 유통하게 하였다. 그 뒤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 유통하게 했는데, 조선 말기에 현대식 화폐가 나올 때까지 통용되었다.<br><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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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8 04:24: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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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해동역사 20117 이주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lotnstls/kwcj5mf9ihmho25v/wish/1044994953</link>
         <description><![CDATA[<div>해동역사는 조선 말기에 실학자 한치운과 조카 한진서가 기전체로 서술한 사서이다. 단군조선부터 고려까지를 기전체로 기술했다. 단군조선에서 고려시대까지의 한반도 역사를 한치윤이 원편 70편을, 그의 조카 한진서(韓鎭書)가 속편 15권을 편술한 것으로, 한반도 서적 이외에 중국·일본 등 외국의 서목 550여 종에서 자료를 뽑은 것이 특징이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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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9 06:38: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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