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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기반탐구활동A by </title>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8-24 08:47: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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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50355</link>
         <description><![CDATA[<ol><li><p>기능한다. 왜냐하면 이모지나 이모티콘도 본래의 뜻을 압축시켜 전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p></li></ol><ol start="2"><li><p>그저 진실만을 탐구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언어가 아니다.</p></li><li><p>의도가 없어도 서로 뜻만 통한다면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다.</p></li><li><p>예술작품도 어떤 뜻을 전하기 위한 도구이므로 언어이다.</p></li><li><p>사람의 맥락과 상황을 학습하고 그에 따른 판단을 하는것이 사람과 다르지 않고 그게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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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04: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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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 수학 기호나 악보, 화학 구조식은 &#39;언어&#39;라고 할 수 있는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52330</link>
         <description><![CDATA[<p>수학기호나 악보와 화학 구조식 모두 사용할 때 문법과 같은 특정 규칙이 있으며,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계산 또한 언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학은 만국의 공통된 기호체계이기에 나는 언어라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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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06: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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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54101</link>
         <description><![CDATA[<ol><li><p>언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상대방에게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바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이모티콘이나 이모지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하기 위한 것이고 이 의미가 상대방에게 잘 전달되기 때문에 언어로써의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p></li><li><p>수학 기호, 악보, 화학 구조식은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수학, 음악, 과학은 각각 만국 공동의 언어라 불리운다. 출신 국가가 어디든지 기본적인 초등 교육만 받는 다면 숫자, 연산 기호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음악, 화학 기호 또한 마찬가지이다. 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손가락을 3개 펼치면 누구나 3개라는 의미를 알 듯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는 오히려 각 나라의 독립적인 언어보다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 </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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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10: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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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54413</link>
         <description><![CDATA[<p>언어란 <strong><mark>인간이 생각이나 감정을 음성, 문자, 수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체계적인 의사소통 도구이자 사회적 약속</mark></strong>이다. 언어는 특정한 소리나 문자와 의미가 자의적으로 결합하지만 사회적 구속력을 가지며, 창조성과 역사성을 지니고 시간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특징을 가진다.&nbsp;</p><p><br/></p><ol><li><p>이모티콘이나 이모지는 언어로 기능하고 있는가?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려는 의도성을 갖추고 있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에 언어로 기능한다고 생각한다.</p></li><li><p>수학 기호나 악보, 화학 구조식은 '언어'라고 할 수 있는가? 작곡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나 감정을 담아 악보를 만들고 수학에서도 이진법 등의 표현법이 있으며 화학 구조식도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표현하여 우리에게 정보를 알려주고 있으므로 언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li><li><p>언어의 의도성은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가? 언어는 의도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도가 없으면 소음에 불과하고 언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할 지도 모른다.</p></li><li><p>언어가 창조적이고 혁신적이라면, 예술 작품은 '언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예술 작품 또한 창조자의 의도가 담겨있으며 새롭고 혁신적인 표현법이 만들어지며 언어처럼 정해진 틀이 없다. 또한 예술은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고 감정 및 시상을 색, 선, 소리 등의 요소를 활용해 표현을 할 수 있기에 언어라고 생각한다. </p></li><li><p>AI 번역기에 '언어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한다고 볼 수 있는가? 인공지능 또한 우리의 뇌와 같이 스스로 생각하고 학습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도 우리처럼 차근차근히 배우면 우리의 의도와 맞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AI 선구자인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은 AI 신경망이 자연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했으며, 실제로 자신들이 생성하는 내용을 ‘이해’한다고 평가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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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10: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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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54621</link>
         <description><![CDATA[<p>이하 내용은 '문자'를 '언어'의 하위 개념으로 받아들인다는 가정 하에 전개된다.</p><p><br/></p><ol><li><p>이모티콘과 이모지는 명백히 언어로 기능하고 있다고 본다. 각 이모지마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의미가 존재하고, (그림 등과 다르게) 사용 가능한 기호의 종류가 체계화되어 있으며, 사용자는 분명히 의도를 갖고 어떤 이모지를 사용할지 선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 합의에 의해 같은 이모티콘/이모지의 의미가 확장되거나 변하기도 하므로, 이모지 언어는 시간에 따라 진화하기도 한다. 특히 이모티콘은 이미 있는 기호들을 사람들이 조합하기 시작하며 만들어진 자연어적 특성이 있다면, 이모지는 '어휘 목록'이 기기에서 사용 가능한 기호들로 정해져 있으므로 인공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p><p><sub>게다가 최근에는 Genmoji라는 이름의 AI 기술로 여러 이모지를 합쳐서 새로운 의미를 드러낼 수도 있게 되었는데, 이것으로 이모지에 어휘 파생의 개념을 적용할 수도 있게 된 것이 아닐까.</sub></p><p><br/></p></li><li><p>마찬가지로 언어라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의미와 정형화된 체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p></li><li><p>의사소통의 개념은 한쪽이 다른 쪽에게 자신의 의도를 (언어를 매개로) 전달하는 것이므로, 의사소통이 성립하려면 언어에 의도가 필수적으로 담겨 있어야 한다. 설령 의도되지 않은 의미가 우연히 전달되었더라도 이를 의사소통이라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p></li><li><p>예술 작품은 의미를 창조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언어'에 비유할 수는 있겠지만, 그 방식이 너무나도 비정형적일 뿐더러 전달자의 의도를 고스란히 전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가 스스로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촉매에 가깝다. 더구나 예술 작품이 모두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없으므로 언어의 범주에 포함시키기 어렵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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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10: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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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54712</link>
         <description><![CDATA[<p> 2.수학 기호나 악보, 화학구조식은 '언어'라고 할 수 있는가?수학이나 과학이란 분야는 사람마다 다른 관점으로해석될 수 있는 예술과 달리 절대적인 규칙성이 있다. 그 절대적인 성질을 사람들이 서로 공유하고 사용하는데 있어서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 기호이기 때문에 언어라 볼 수 있다  </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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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11:0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54712</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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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모티콘도 자신의 의도를 담아서 뜻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웃는 이모티콘을 사용함으로써 상대방한테 즐겁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54716</link>
         <description><![CDATA[<p>수학 기호나 악보, 화학 구조식은 언어라고 하기 어려울것 같다.  왜냐하면 이런것들은 학문의 장치들의 일종이므로 학문적 의미를 담아서 쓰는것은 가능하지만 다른 용도로 의사소통을 하는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어로 하기 어렵다.</p><p>언어의 의도성은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언어가 의도가 없이 쓰였다면 그냥 평범한 낙서나 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p><p>예술 작품은 언어라고 보기 힘들것같다. 예술 작품은 특정한 의도나 내용을 작품에 담을수있지만 그것은 고정되어 있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예술 작품은 언어가 아니라 특정한 의미를 담은 그림이나 조각이라 생각한다. </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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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11: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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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54880</link>
         <description><![CDATA[<p>질문을 하기에 앞서 제가 생각하는 언어의 기준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말로 하는 대화뿐 아니라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 언어라고 생각한다.</p><ol><li><p>일상 속에서 sns를 통해 이모티콘으로 자신의 기분 상태를 나타내어 의사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li><li><p>수학기호나 악보 화학구조식을 통해 자신이 나타내고 싶은 공식,음악, 화학반응식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언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li><li><p>언어를 사용할 때 항상 의사소통을 위하여 사용되고 혼잣말 같이 타인간의 의사소통이 아닌 언어는 나자신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p></li><li><p>예술 작품이 언어라면 말하는 화자는 그 자리에 없을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서 작품을 보는 사람은 작품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다를 지라도 화자가 말하고 싶은 것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li><li><p>AI 번역기는 문장에서의 단어가 수많은 의미 중에서 어떤 의미인지 원래 말한 사람이 어떤 의도로 말한 건지 그 사람의 감정 상태 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번역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한 말의 의도를 완전히 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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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11: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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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55154</link>
         <description><![CDATA[<p>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언어의 범주를 '체계성, 보편성이 존재한다'로 한정하고자 한다. 막말로 이를 한정하지 않을 시, 필통, 연필, 가위 등의 언어의 또 다른 특징인 의도성만을 포함하여 언어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p><p><br/></p><p>1. 이모티콘이나 이모지는 언어로 기능하고 있는가? </p><p>앞서 말한 체계성, 보편성을 먼저 따져본다면 이들은 특별한 체계나 규칙을 찾기 힘들어서 체계성을 갖췄다고 생각하기 힘들고, 이모티콘이나 이모지는 실재하는 것들에서 모티브를 따왔기 때문에 body language와 같이 거의 모든 사람이 의미를 알아볼 수 있으므로 보편성을 만족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종합하여 봤을 때 이모티콘과 이모지는 넓은 범주로 따졌을 때 언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p><p><br/></p><p>2.수학 기호나 악보, 화학 구조식은 `언어`라고 할 수 있는가?</p><p>수학 기호나 악보, 화학 구조식은 이를 배워본 사람이라면 체계성을 갖췄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수학 기호나 악보, 화학 구조식은 전세계적인 약속을 기준으로 발달하고, 나라마다 기호나 식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보편성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종합했을 때, 각자의 분야에서 이들은 언어라고 할 수 있다. </p><p><br/></p><p>3.언어의 의도성은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가?</p><p>맞다고 생각한다. 의사소통이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뜻이 서로 통함을 의미하는데, 이 부분에서 언어의 의도성과 보편성을 찾아볼 수 있다. 애초에 의도를 전하지 않는다면 의사소통이 굳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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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11: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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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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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55539</link>
         <description><![CDATA[<p><strong>1.이모티콘이나 이모지는 언어로 기능하고 있는가?</strong></p><p>이모티콘이나 이모지가 사용자의 감정이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사실이긴 하다. 이는 '언어의 규칙성과 의도성, 자의성'이라는 조건을 충족한다고 할 순 있지만 세상의 모든 사물을 이모티콘으로 만들 순 없기에 '한계가 명확한 언어' 라고 생각한다.</p><p><br/></p><p><strong>2.수학 기호나 악보, 화학 구조식은 '언어'라고 할 수 있는가?</strong></p><p>언어는 일반적으로 기호성, 규칙성, 소통기능의 세가지 특징을 가진다. 즉, 일정한 형태가 의미를 가지며, 문법적 규칙에 따라 배열되고, 타인과 사고를 공유할 수 있게 해 주는 체계다. 이 정의를 기준으로 볼 때, 수학 기호, 악보, 화학 구조식 역시 인간의 언어와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기호 체계들은 음성적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기호성과 규칙성, 의미 전달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언어로 기능한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소통에서도 수학과 물리의 언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수학 기호, 악보, 화학 구조식은 사고를 표현하고 지식을 전달하며, 우주적 소통의 도구로 확장할 수 있는 보편적 언어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p><p><br/></p><p>3.언어의 의도성은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가?</p><p><br/></p><p>4.언어가 창조적이고 혁신적이라면, 옛술 작품은 '언어'라고 부를 수 있는가?</p><p><br/></p><p>5. AI번역기가 '언어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한다고 볼 수 있는가?</p><p><br/></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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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12: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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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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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55608</link>
         <description><![CDATA[<p>1. 이모티콘이나 이모지는 언어의 일종인가?</p><p>A. 언어는  X</p><p><strong>단지 언어의 일부 기능(의미 전달, 감정 표현)을  수행하는 비언어적 요소로서 사용되며, 때로는    언어보다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기능함</strong></p><p>2.언어의 의도성 진정한 의사소통의 필수 조건인가?</p><p>A.보통 의사소통은 우리의 의도로부터 발현되고 설설 갓 태어난 아기라 할지라도 배고프거면 소리를 내 자신의 의사를 나태내기에 언어는 의도성이 필수 조건이다.</p><p>3.수학 기호나 악보, 화학 구조식은 언어인가?</p><p>A.언어이다, 언어는 사상<strong>·감정을 나타내고 의사를 소통하기 위한, 음성·문자 따위의 수단. 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strong></p><p>언어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약속이므로 사회적 강제력을 가집니다.</p><p> 기호 악보 구조식 또한 일종의 약속이기에 </p><p>원소 기호의 예시로 </p><p>중세 연금술사들은 자신들만 알아볼 수 있도록 독자적인 그림 문자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 문자는 원소의 수가 늘어나면서 복잡해져 불편해짐.&nbsp;</p><p>18세기 말, 새로운 원소들이 많이 발견되면서 그림 기호의 불편함이 커졌습니다. 이에 영국의 화학자 돌턴은 연금술 기호를 발전시켜 통일된 기호를 제시했습니다.&nbsp;</p><p>19세기 초, 스웨덴의 화학자 베르셀리우스는 원소 이름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사용하고, 첫 글자가 같을 경우 두 번째 글자를 소문자로 덧붙여 원소를 구별하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nbsp;</p><p>4.예술 작품은 언어의 일동인가?</p><p>A. X</p><p>5. ai번역기가 언어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가능한가?</p><p>A. 아직은 미숙하지만 최근의 성장세를 본다면 가능하다고 본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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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12: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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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에 대한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56396</link>
         <description><![CDATA[<p>저는 위의 내용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언어에 대해서 자세히 탐구하고 싶습니다. 언어는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의 역할의 하기도 하지만 다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저희의 생각,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p><p>1.이모타콘이나 이모지 등이 언어의 기능을 한다는 질문을 답해보겠습니다. 이모지는 키보드 문자, 스티커등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이모지등은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언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모지를 이용할 경우 감정을 단편적으로 밖에 전달하지 못하며, 다른 자신의 생각,정보등은 표현할 수 없게 됩니다. 즉, 저의 표현을 통해 말하자면 이모티콘등은 일종의 '제한적인 언어'인 셈입니다.</p><ol start="2"><li><p>수학적 기호나 악보, 화학 구조식은 '언어'라고 할 수 있나요?</p><p>이 문제는 전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체계가 '언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수학 기호는 저희의 생각을 부분적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자연을 탐구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됩니다. 하지만 아러한 기호체계가 저희의 완전한 정보, 생각등을 담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기호, 악보, 화학 구조식은 앞에서 말한 제한적인 언어라고 하고 싶습니다.</p></li></ol><ol start="4"><li><p>언어가 창조적이고 혁신적이라면, 예술 작품이 '언어'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저는 동의합니다. 모든 예술 작품에는 그 작품의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행동에는 작가의 무의석이든 의식전인 의도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작품에는 의도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도는 작품을 매개로 이를 보는 감상자에게 그들의 주관적인 생각이 담긴 해석을 만들어내면서 작가의 의도가 바뀐 의미로 전달되게 됩니다. 그렇기에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던 간에 의미가 감상자에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이 또한 언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완전한 생각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인 언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p></li><li><p>AI번역기등은 다른 언어를 AI가 번역하고자 하는 문자체계에 대응하는 단어를 고르고 이를 조합하여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이러할 경우 기존 문자에 담긴 맥락등이 빠지거나 진정한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어를 한국어로 바꿀 때 다의어인'date'가 날짜로 해석될 수 도 있지만 '연애'등의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기에 해당 문장의 맥락이 깨진 기계적인  해석이 나오면서 인간이 가진 '감정'이 누락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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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13: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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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57787</link>
         <description><![CDATA[<ol><li><p>이모티콘이나 이모지는 언어로 기능하고 있는가?</p><p>둘다 언어로 기능한다. 왜냐햐면 이모티콘과 이모지 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고, 특히 이모티콘에는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단어들도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p></li><li><p>수학 기호나 악보, 화학 구조식은 '언어'라고 할 수 있는가?</p><p>셋 다 언어의 특성 중 '규칙성'과 '혁신성'에 해당하기 때문에 언어라고 표현할 수 있다.</p></li><li><p>언어의 의도성은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가?</p><p>우리가 언어를 이용하여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때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언어의 의도성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의도가 잘 전달되면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의도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p></li><li><p>언어가 창조적이고 혁신적이라면, 예술 작품은 '언어'라고 부를 수 있는가?</p><p>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보지만, 예술 작품의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감상자에게 주고자하는 느낌과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p></li><li><p>AI번역기가 '언어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한다고 볼 수 있는가?</p><p>타인에게 번역된 언어 자체는 잘 전달되겠지만, 만약 비유적 표현을 쓴다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잘 전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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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16: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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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59549</link>
         <description><![CDATA[<p>1.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모티콘과 이모지는 저마다의 뜻을 가지고 그 뜻을 나타내는 문자를 대신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언어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p><p>2.수학 기호와 악보, 화학 구조식은 각각 수학의 언어, 음악의 언어, 화학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야에서 정해진 기호를 쓰지 않고 항상 평소에 쓰는 문자로만 표현하면 쉽게 나타내기가 어렵고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평소에 쓰는 문자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결국 복잡한 단어로 구분하기도 어렵게 정리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호들은 적어도 특정 분야에서는 이해를 더 쉽게 하는 목적을 가지는 언어로 기능한다. </p><p>3.언어의 의도성은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말을 할 때도 비대면으로 의사소통을 할 때도 우리는 의도가 없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에서 이것이 언어가 아니라고 하면 언어의 기준이 매우 모호해질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언어의 의도성은 필수적이지 않다. </p><p>4.예술 작품은 언어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있다고 해도 지속적인 의사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전달이 되기 때문에 언어의 기능을 온전히 하지 못하는 경우이고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해석을 하더라고 작가의 창작 의도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되더라도 언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쌍방이 아닌 일방적인 전달과 자의적인 해석이기 때문에 언어의 소통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p><p>5.전달이 가능하지 않다. 사람들은 창의적인 생각으로 처음 본 표현도 문맥을 통해 추측할 수 있고 맥락에 따라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ai는 그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해 더 적절한 맥락을 통계적으로 도출하는 것이기에 언어를 작성한 사람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통계적으로 결론을 내려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아직은 더 많은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는 것에 그치기 때문에 몇 번 쓰이지 않았던 표현을 데이터에 있어도 도출해내지 못하고 정확한 문화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사람보다 정확한 해석을 하지 못해 모호한 의미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ai는 통계가 주장하는 결론을 거의 따르려고 하기 때문에 잘못된 해석이더라도 사람이 답을 알려주기 전까지는 계속 답을 바꾸지만 모두 정확하지 않은 결과가 생기게 된다. 사람은 학습하는 능력이 논리에 따라 작용하는 경우가 통계로 작용하는 것 보다 많지만 ai는 그렇지 않아서 논리적으로 이해 가능한 해석을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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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19: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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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73700</link>
         <description><![CDATA[<p><br></p><ol><li><p>이모티콘이나 이모지는 언어로 기능하고 있는가?<br>어떤 것을 언어라고 하려면,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할까? 먼저, 단순히 정보 전달의 수단 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 의지도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모티콘이나 이모지는,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 내용을 담은 텍스트에 붙어, 감정을 풍부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언어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li><li><p>수학 기호나 악보, 화학 구조식은 언어라고 할 수 있는가?<br>복잡한 문제 같다. 수학 기호? 악보? 모두 누군가의 의지와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만, 일상 언어와 달리, 특정한 상대방을 정하여 말하는 것이라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는 언어와 달리, 이들은 보편성이 강하여 정보 전달에 유리하단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난 이들이 언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li><li><p>언어의 의도성은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가?<br>물론 언어를 통해 충분히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하고 소통을 할 수는 있지만,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라면, 의도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AI와 같이, 의도라기보다는 주어진 명령에 단순히 따르고 결과를 출력하는 모습은 진정한 의사소통이라 할 수 없을 것 같다.</p></li><li><p>언어가 창조적이고 혁신적이라면, 예술 작품은 언어라고 부를 수 있는가?<br>예술 작품은, 이를 보는 감상자의 마음에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언어라고 보는 관점에 관해 들어 보았다. 타당한 주장이라 생각하지만, 몇 가지 반박을 하고 싶다. 먼저, 예술 작품은 감상자에 의해 해석된다. 작가가 작품 옆에 해석을 적어 두는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감상자가 바라보며 느끼는 것이, 바로 예술 작품이 가지는 의미 그 자체이다. 그런데, 예술 작품의 특성상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하는 의미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사람마다 각기 다른 내용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언어도 그런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말하는 사람이 속해 있는 집단에 따라 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이 다르게 인식되는 '진영논리'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예술 작품은, 위에서 언급한 수학 기호 등과 다르게, 언어이지만 보편성보다는 상대성과 감정이 강조되는 언어라고 생각한다.</p></li><li><p>AI 번역기가 언어의 의미를 온전하게 전달한다고 생각하는가?<br>아니다. 누구나 AI 번역기를 사용해 봤을 것이다.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것도 한 이유이지만, 그것보다는, 언어가 가지는 맥락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메시지의 상당 부분이 상황과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고맥락 언어'와 같은 개념이 있다. 이러한 언어를 AI 번역기를 활용하여 번역한다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적 맥락에서만 존재하는 비유나 사회적 방언은 번역된 언어로 인식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만의 맥락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AI 번역기는 온전히 언어의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p></li></ol><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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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40: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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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잘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89155</link>
         <description><![CDATA[<ol><li><p>아이디어가 중요한 과목은 이미지로, 논리적 과정이 중요하면 단어와 문장으로 사고한다. 아이디어는 즉각적이고 혁신적이지만, 생각하는데 많은 노력이 소요되고 정확하고 정제되어있지 않는다. 하지만 논리는 느리지만 안정적이고 정확하므로 서로 다른 사고과정에서 사용한다. </p></li><li><p>사고와 언어는 서로 영향을 끼친다. 이미 형성된 언어는 사고에 영향을 끼치고 새로운 사고는 새로운 언어의 창조를 유발한다. 이미 정착된 문화와 외부의 야만 문화는 서로 견제하며 영향을 끼치고 한쪽을 좌지우지하거나 때로는 정복해 상호영향을 끼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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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59: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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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89905</link>
         <description><![CDATA[<p>나는 이미지로 사고하는것 같다. 나는 책을 읽거나 상상을 할 때 그림을 머리속에 그리며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p><p>언어는 우리의 사고 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언어는 사람의 생각을 밖으로 표출하고 표현하기 위한 수다이고 매개체일 뿐이기 때문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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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1:59: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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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91549</link>
         <description><![CDATA[<p>2. 언어 상대성 가설(사피어-워프 가설)은 <strong><mark>사용하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가 사고방식과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mark></strong>입니다. 언어 상대론의 강력한 형태인 언어 결정론은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고 주장하지만, 현대 언어학에서는 이보다 약한 형태인 언어 상대론, 즉 언어가 사고와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에 더 무게를 둔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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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2:00: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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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II</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94378</link>
         <description><![CDATA[<ol><li><p>나는 어떻게 사고하는가...? 내가 어떻게 사고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사회적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성장하며, 배우고 듣고 표현한 대부분의 내용은 우리의 사회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단어와 문장, 이미지와 같은 요소들도, 모두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단어와 문장, 이미지는 무엇에 영향을 받았을까? 당연히 우리 사회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단어와 문장 등은, 우리의 사고에 부차적인 영향을 미치고, 중심이 되는 것은 사회라고 생각한다.</p></li><li><p>언어가 우리의 사고 방식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치는가?</p><p>언어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생존에 필수적인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을 간소하게 하고, 지식의 공유를 통해 지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는, 거의 완성된 언어 체계 안에서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체계 안에서 언어는 우리의 지식의 대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언어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발전된 요소이기 때문에, 우리의 사고 방식이 언어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우리 선조가 알아야 했던 것,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이 언어로 직결되고, 이것이 후대인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언어'라는 것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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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2:04: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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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언어....사고</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94741</link>
         <description><![CDATA[<ol><li><p>나는 어떻게 사고하는가?, 단어와 문장으로 사고하는가?, 이미지로 사고하는가? 아니면 다른 형태의 과정을 거치나? </p><p>나는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사고한다. 예를 들거나 가정을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기에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생각하면 나만의 답이 도출된다. 또 생각하고자 하는 것과 관련있는 단어들을 떠올려 연계시켜 답과 근접한 단어를 결국 찾게 된다.</p></li><li><p>언어가 우리의 사고 방식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p><p><mark>나는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못 미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mark> 인간이 그 언어를 떠올리거나 말할 때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며 머릿속에 떠올리면 사고를 하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보자면 누군가를 만나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고, 무언가 감사한 상황에 처하면 "고맙습니다"라고 사례를 한다. 마치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 같지만, 사실 감탄사, 단순 반응이 아닌 이상 뇌를 통한 사고 과정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strong><mark>하지만</mark> </strong>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안 미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신생아들도 비록 말은 할 수 없지만 자신의 감정을 부모에게 표출할 수 있다.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에 똥이나 오줌을 싸면 기분이 나쁘기에 운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받고 자기 기분이 좋으면 웃음으로써 기분을 표현하다. 비록 신생아가 하등한 존재로 보일 수 있지만 이 갓난애기의 행도도 자신의 주변을 인식하고 감정을 아는 것이므로 사고한다고 볼 수 있다.</p></li></ol><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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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2:05: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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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94985</link>
         <description><![CDATA[<p>Sapir의 '상대주의' 가설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언어의 분절성에 따라 언어는 개념의 경계를 나누고 어디까지가 서로 다른 개념으로 구분되는지 정한다. 게다가 여러 해 동안 언어를 사용하면서 뇌가 개념을 구분하는 데 능숙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에 따라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의 범위가 달라진다는 주장은 논리적이다.</p><p>그러나 Whorf의 '결정주의', 즉 언어에 따라 인지할 수 있는 개념이 제한된다는 가설은 반례가 너무나도 많다. 가령 칠레 야간족의 단어 'Mamihlapinatapais'가 <sub>'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굳이 스스로 하고 싶지는 않은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하여 해 주기를 바라는,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sub>을 의미함은 유명하다. 당연하게도 우리말에는 이 개념을 의미하는 단어가 없지만, 상당수의 우리말 화자가 이러한 상황을 겪어 보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어가 독일어에서 'schadenfreude(남의 불행으로써 얻는 행복)'라는 단어를 빌려온 지 오래지 않았지만, 다수의 영어 화자는 그 전부터 이미 그러한 감정을 느껴 보았다. 이는 언어의 한계로 인해 어떠한 개념을 느끼지 못한다는 주장을 무너뜨린다. 애초에 이러한 단어를 빌려 왔다는 사실 자체가 그 개념에 대한 인식이 존재한다는 뜻이 아닐까.</p><p>문법적 성에 관한 예시 역시 실험으로 반박된 바가 있음을 차치하고서도, 언어에는 유의어가 서로 다른 문법적 성을 가진 경우가 많다. 가령 스페인어의 '집'을 뜻하는 'casa(여성)'와 'hogar(남성)'이 그렇다. 또한 독일어에는 'das Madchen(소녀, 중성)'처럼 실제 성별이 명백함에도 문법적 성이 이와 다른 경우가 있다. 나아가 독일어에서는 모든 명사의 복수형에 여성형 관사가 붙어 사실상 여성명사의 형태를 띤다. 복수가 되는 순간 대부분의 경우 문법적 성의 구별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스페인어나 독일어 화자들이 같은 개념을, 어떤 단어를 어떤 형태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성별 이미지로 연관짓는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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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2:05: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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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95590</link>
         <description><![CDATA[<p>1.나는 문장 중심으로 사고한다. 문장 중심으로 사고하면 정확한 맥락을 이해할 수 있고 단어의 뜻도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사고를 할 때 인과관계 등을 더 잘 기억하고 사고할 수 있어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느낀다. </p><p>2.사피어-워프 가설은 언어의 체계가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인데, 여기서 사피어는 영향을 미친다, 워프는 결정한다 라고 생각하고 가설을 만들었다. 여기서 사피어의 주장이 좀 더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워프의 주장은 사고가 언어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고 언어의 영향력만 강조하고 있다. 평소에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지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에서만 봐도 결정한다는 주장은 현실에서 적용했을때도 잘못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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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2:06: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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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96255</link>
         <description><![CDATA[<p>나는 어떻게 사고하는가? 단어와 문장으로 사고하는가? ,이미지로 사고하는가? 아니면 다른 형태의 과정을 거치나?</p><p><br></p><p>모두 맞는 말이다. 특정 하나로만 답을 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단지 그 방식들의 특징에서 서로 차이가 있을 뿐이다.개인적으로 보통 단어, 문장 등 정형화 된 체계를 통해 사고하고, 이런 정형화가 어려울 때 사용하는 방식이 이미지, 그 다음이 무의식적인 사고를 한다 본다.</p><p><br></p><p>언어가 우리의 사고 방식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p><p><br></p><p>유식할수록 사고력이 풍부하고, 무지할수록 무식하고 사고력이 뒤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p><p>언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용하는 언어의 표현가능한 범주에 따라 언어를 사용하여 사고를 정리하는 인간의 사고 범주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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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2:07: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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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96259</link>
         <description><![CDATA[<ol><li><p>나는 '무조건 이런 방식으로 사고한다'라고 확실하게 한가지 사고방식으로 나타내기보다는 다양한 상황에 맞춰서 다양하게 사고한다. 예를 들어 어떠한 문제를 겪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문장으로 해결 방안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실행했을 때 어떻게 될 것인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과정을 거친다.</p></li><li><p>우리 뇌 속에서 어떠한 것을 이해하여 알 수 있는 것을 형성하고 다양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해결하기 위한 방법 찾기와 같은 행동들은 내가 언어를 사용할 줄 모른다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뇌를 작동 시키기 위한 퍼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감각을 통하여 맞춰지지 않은 퍼즐 조각들을 모으고 사고를 통하여 조각을 맞추어 우리 삶에서 매일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것이라고 생각한다.이러한 내 생각이 맞다면 언어가 존재해야 사고방식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는 우리의 사고 방식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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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2:07: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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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96348</link>
         <description><![CDATA[<p>나는 어떻게 사고하는가?</p><p>개인적으로는 공부할때 문장을 소리내어 말하고 그 내용을 이해한 다음, 키워드를 중심으로 암기를 선택적으로 하는 편이다. 어차피 서술형 평가에서 채점기준은 키워드이기 때문이다.</p><p><br/></p><p><strong>언어가 우리의 사고방식과 우리가 할수있는 것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strong></p><p>언어는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수단으로, 단순히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고의 틀을 규정하는 체계이다. 언어가 다르면 세계관과 사고 구조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의성어나 의태어가 발달한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는 사물을 느낌, 소리, 움직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며, 이에 감각적 세밀함과 정서적 공감 능력이 발달하게 된다. 이는 의성어, 의태어가 발달하지 않은 영미 언어권에서는 사물을 객관적, 논리적, 구조적으로 기술하는 경향이 있는 것과 대비된다. 또한 이러한 사고의 틀이 특정 언어를 더 발달 시키는 피드백 루프가 형성됨으로써 언어가 사고를 만들고 사고가 다시 언어 발달을 야기하는 순환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뇌과학적 측면에서도, 문법적 질서가 중요한 언어권에서는 좌측 브로카 영역이 강하게 활성되어 구문 구조 분석 능력이 발달하며, 문맥적, 감각적 단어가 많은 언어권에서는 우뇌 청각 연합 영역과 감정, 이미지 처리 영역(우측 전두엽, insula, 상측두회)이 활성화된다. 뇌의 가소성 때문에,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신경 연결망이 재구성되고 뇌발달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정 뇌의 네트워크 강화는 인간의 사고의 틀을 규정하기 때문에, 특정 언어는 특정 뇌부위의 발달을 야기하며 이것은 곧 인간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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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2:07: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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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고방식</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96385</link>
         <description><![CDATA[<ol><li><p>저는 사고를 할 때 비슷하고 익숙한 이미지와 엮어서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하여 처음 겪어보는 내용에 대한 친근감을 가질 수 있고 더욱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비슷한 이미지를 엮어서 생각하면서 새로운 부분에 대해 보충할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미지를 활용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과정에서 많은 단어들이 섞이지 않으면서 균형감 있게 사고를 할 수 있으며, 단순한 문장외에 이미지를 같이 생각하면서 해당 문장의 의미를 현실 세계에 적용하면서 논리적이며 현실적으로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p></li></ol><ol start="2"><li><p>언어가 우리의 사고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저는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언어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언어가 저희 생각전에 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저희의 의식적, 무의식적인 생각의 산출물이고 언어를 사용하는 것 또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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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2:07: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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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 언어가 우리의 사고 방식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96399</link>
         <description><![CDATA[<p>그렇다, 언어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진다. 언어의 구조가 우리가 인지하는 현실의 범위를 제한하거나 넓힐 수 있다. 예를 들면, 긍정적인 말은 자신감을 높일 수 있고, 아는 언어(단어)가 많을 수록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많아져 우리가 그것에 대해 더 탐구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용하는 언어는 자신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nbsp;그러므로 언어는 문화적 틀로서 작용하며,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8-25 12:07: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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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96863</link>
         <description><![CDATA[<p>나는 언어가 기본적인 사고 능력을 창조하는데 관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어 능력을 갖추어야 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선천적으로 시각 장애인인 동시에 청각 장애인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은 외부로부터 정보를 수용할 수 없으며 그 때문에 언어 능력이 없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도, 심지어는 사고 과정에서 언어를 사용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사람이 식물인간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은 여전히 미각, 촉각, 후각을 사용할 수 있다. 만약 이 사람이 선인장을 만진다면 본능적으로 손을 빠르게 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위험하다.' 라는 생각을 하고 '손을 땐다' 라는 사고 명령을 통해 행동을 실행한다. 이처럼 언어가 없어도 단순한 사고를 하는 것에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이 사람은 단순한 사고 이상을 하진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빈곤함'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언어를 통해서만 명확히 정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가정 때문에 언어가 없어도 기본적인 사고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복합적인 사고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한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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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2:08: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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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797613</link>
         <description><![CDATA[<p>언어가 우리의 사고 방식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p><p>영향을 미치긴 하겠지만 그렇게 크게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고 방식은 무릇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아 변화하고, 또 굳어지기 때문이다. </p><p><br/></p><p>'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은 해석하기 애매하여 내가 해석한대로 생각을 적어보자면,</p><p>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과, 연필, 지구를 생각하면 당장 머리에 이미지가 떠오르듯이 일종의 장기적인 최면으로 `사과=빨간색의 둥근 모양을 가진 식용이 가능한 열매`와 같은 사고회로를 형성한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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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2:08: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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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3803552</link>
         <description><![CDATA[<ol><li><p>나는 어떻게 사고하는가?</p></li></ol><p>나는 단어나 문장으로 사고하는 것 보다는 이미지로 사고를 하는 편 인것 같다. 예를 들어, 시험 공부를 할 때 나는 선생님이 수업 당시에 말해주셨던 여러 이야기, 환경, 이미지 등을 바탕으로 기억을 떠올리는 편 인것 같다. 또한, 나는 어려운 개념에 대해 공부할 때나 복잡한 식을 외울 때 나만의 언어로 쉽게 이해한다.</p><ol start="2"><li><p>언어가 우리의 사고 방식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p><p>나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흔히 쓰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영어 문제를 풀 때 자신이 어떠한 단어(언어)를 알고 있는지에 따라 영어 문제가 매우 쉽게 풀릴 수도 있고, 또 어렵게 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타인과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도 우리는 자신의 언어 수준에 따라 사고하고 말을 한다. </p><p>물론, 수업 시간에 들은 여러 반례들처럼 사고가 언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위의 예시에서는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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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5 12:15: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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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언어의 구분 기준은 무엇일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5356642</link>
         <description><![CDATA[<p>언어를 의사소통, 감정, 생각의 전달의 매게체로 본다면  동물도 언어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ex.코끼리, 원숭이 ,꿀벌 등...) </p><p><br/></p><p> 언어의 특징은?  </p><p><br/></p><p>언어의 자의성, 규칙성,의도성,혁신성</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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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6 11:10: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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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수학 기호나 악보, 화학 구조식은 언어라 할 수 있는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5367572</link>
         <description><![CDATA[<p>나는 수학 기호나 악보, 화학 구조식 또한 언어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것 또한 의도를 가지고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저자가 사용한 매게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의도 없이도 성립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위의 것들은 의사소통보다는 기록의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이라는 것 자체가 미래의 나 또는 누군가의 의사소통하는 것의 일종이라 볼 수 있으므로 위의 것들도 언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저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닌 순전히 기록 그자체로서의 수학방정식등은 어떨까? 예술 작품처럼 온전한 마스터 피스는? 그것을 언어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표현의 매게체로서의 언어의 사용이라 볼 수 있을것 같다. 즉 언어라는 것은 이런 사용도 있는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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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6 11:25: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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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언어가 우리의 사고 방식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5406803</link>
         <description><![CDATA[<p>나는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는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언어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쌍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일단, 사고하는데로 언어가 나오고 언어를 사용하면 할 수록 그쪽 방면으로 반복학습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면 그런 주제(방식) 언어를 더욱더 많이 사용하게 되는 강화 작용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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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6 12:16: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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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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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55410226</link>
         <description><![CDATA[<p>나는 사고하는 방법이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세계 암기 대회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서 다양한 암기 기법이 적용되는데 여기서는 단어와 문장으로 암기,  이미지로 암기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한다.(이를 다양한 작업대라 표현한다) 나 또한 여러가지 방법을 이용하는 것 같다</p><p>즉 생각을 무조건 언어로 표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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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6 12:19: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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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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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술이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01360</link>
         <description><![CDATA[<p>어떤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발명한 실용적 도구이다</p><p><br/></p><p>그 역할은? </p><p><br/></p><p>1.지식의 생산과 확산이 촉진</p><p>2.쉽고 빠르고 광범위한 접근(지식의 민주화)-&gt; 이익 증가 </p><p><br/></p><p>그 영향은?</p><p><br/></p><p>1.기술(인터넷)이 안다는 것의 개념을 바꿈</p><p>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지식의 중요성 감소, </p><p><br/></p><p>2.앎의 과정으로 도구와 조사방법의 도구로 인터넷을 활용하는 능력, (ex.프롬프트 쓰는  능력, 검색능력)의 중요성 증가</p><p><br/></p><p>정보와 데이터와 지식은 같지 않다.(정보는 과거에 비해 압도적으로 접근성이 높아졌고 개개인의 지식은 그렇게 늘어나지는 않음)</p><p><br/></p><p>부작용?</p><p><br/></p><p>지식의 접근성이 쉬워짐-&gt;</p><p>잘못된 지식의 위협(어설픈 지식은 위험)</p><p>-&gt;더닝 크루거 효과(<strong>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현상</strong>.)</p><p><br/></p><p>사고방식 조작(기업의 선동 댓글 알바)</p><p><br/></p><p>구글 효과(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쉽게 잊어버림)</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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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37: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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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04090</link>
         <description><![CDATA[<p>우리는 기술 덕분에 더 많은 지식을 가진 것인가?</p><p><br/></p><p><br/></p><p><strong>우리 사회가 정보 사회로 이행되면서 정보의 절대적인 양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을 제한하고 창의성을 억누르는 것인가?</strong></p><p>정보의 절대적인 양이 증가하면 왜 인간 사고의 깊이가 얕아지는가? 첫째로 인간의 뇌는 정보를 무한히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잡한 정보를 동시에 다루면 주의 자원이 빠르게 소모된다. 즉, 정보가 많아질수록 뇌는 깊이 있게 사고하는 대신, 얕게 사고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특히 스마트폰 등의 빠른 정보전환은 즉시 보상 회로를 자극하여 즉각적 반응을 강화시키게 된다. 둘째로, 정보가 많아질수록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기 보다 필터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플랫폼 알고리즘이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다양한 시각보다는 편향적 시각을 갖게 되는 이유이다. 셋째로, 정보는 단순한 데이터이기 때문에 의미를 가지기 위해 해석이 필요하지만, 현대의 정보 환경은 의미있는 연결을 만들기 보다는 빠르게 소비되는 조각들을 쏟아냄으로써 인간 사유의 상실을 야기한다. 결국 정보 과잉은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것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를 만들게 되며, 스스로 선택하기 보다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편향된 지식에 의존하게 되어 인간의 창의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된다.</p><p><br/></p><p>기술이 지식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제한한다고 생각하는가?</p><p> </p><p><strong>빅데이터는 인간보다 더 공정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strong></p><p>빅데이터는 인간의 직관이나 감정이 개입되지 않고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인간보다 훨씬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데이터 자체가 인간 사회를 반영한 산물이기 때문에 그가 학습한 데이터에 과거의 차별이나 불평등이 포함되어 있다면 데이터를 학습함으로써 편견을 강화할 수도 있다. 그리고 빅데이터의 의사결정 과정은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자율적 판단권을 약화시키고 책임의 주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p><p>인간은 편견과 감정에 취약하고 제한된 정보로 불완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한계 때문에 공정한 사회를 위해 인간과 인공지능은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는 협력적 판단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빅데이터가 제공하는 객관적 분석에 인간의 윤리적 성찰과 사회적 맥락 해석이 결합될 때 진정한 의미의 공정성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p><p><br/></p><p>빅데이터 알고리즘의 편향을 막기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가?</p><p> </p><p><br/></p><p>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대에, 인간의 직관과 경험은 여전히 가치가 있는가?</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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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40: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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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09899</link>
         <description><![CDATA[<ol><li><p>기술 덕분에 지식을 얻은 것은 맞지만, 그렇게 많은 지식을 얻은것은 아니다. 우선 지식은 정보와 데이터를 가공해 다른 상황에서도 활용될만한 보편성을 가져야하는데, 정보는 많아져도 그것을 정제할만한 시간이나 인간의 능력은 좋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은 그다지 증가하지 않았다.</p></li><li><p>창의성을 억누르는 것이다. 사람에게 너무 많은 정보가 주어지면 정보를 오히려 받아들일 수 없으니 이처럼 우리의 정보처리능력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우리의 관점은 제한되고 창의력은 억눌러진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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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47: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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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우리는 관점을 제한하고 창의성을 억누르는 것인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0095</link>
         <description><![CDATA[<p>어떻게 보면 그럴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창의성이란 있는 재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재조합하여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이 더욱 다양해지고 풍부해져 더욱 창의적인 것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AI 문학 창작, 제약, 임상 실험, 노벨상 등을 보면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많은 창의적인 것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01 10:48: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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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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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0456</link>
         <description><![CDATA[<p>기술이 지식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킨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거의 무제한적인 정보가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이 사람들의 지식 수준을 크게 향상시키고, 민주 의식이 빠르게 비교적 다수에게 퍼진 데도 기여했다. 물론 이러한 정보의 상당수가 편향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경향이 있지만, 이것은 공신력 있는 정보를 얻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려웠던 과거에 비해 오히려 개선되었다고 본다. 선택지가 없어 불확실하고 질 나쁜 정보에만 의존해야 하는 것보다, 좋은 정보를 얻기 훨씬 쉬워졌지만 인간의 (인지 자원을 소모하지 않으려는) 본능적 경향 때문에 간혹 이를 거부하는 상황이 더 낫다는 것이다.</p><p><br/></p><p>창의성 역시 기술로 인해 덕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기 때문에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 자체가 늘어난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발명되기도 전에 사진의 구도, 조명, 색조 등의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중세 시대에 (예술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 이상)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얼마나 되었을까. 기술로 인해 무대가 조성되었기에 인간이 현재와 같은 창의성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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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48: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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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2821</link>
         <description><![CDATA[<p>우리는 기술 덕분에 더 많은 지식을 가진 것인가?</p><p>A. 그렇다 기술이 있기에 지식을 얻는 것이 훨씬 용이해질 수있었다.</p><p><br/></p><p>우리의 관점을 제한하고 창의성을 억누르는 것인가?</p><p>A. 맞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해결하면 그 문제 해결에 대한 다른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쌔로운 탐구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p><p><br/></p><p>A.  기술이 지식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제한하거나 형성한다고 생각하는가?</p><p><br/></p><p>당연하다 기술을 통해 지식을 얻는 과정은 매우 힘들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형성하는 순간 다른 방향의 알 수 있는 것을 제한한다고 본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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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51:1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2821</guid>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gs25162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3410</link>
         <description><![CDATA[<p>기술은 지식 접근성을 높였지만 동시에 인간의 관점과 창의성을 제한할 위험이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클라우드에 기억을 외부화하면 장기기억과 맥락 통합 능력이 약화되어 깊은 통찰을 만들기 어려워집니다. 추천 알고리즘은 필터 버블을 형성해 이질적 관점과의 충돌을 줄이고 사고의 폭을 좁힙니다. 즉각적 해답의 유혹은 탐구와 시행착오 과정을 단축시켜 독창적 문제 해결 능력을 저하시킵니다. 또한 도구는 설계자의 전제를 반영하므로 도구의 범주 내에서만 문제를 정의하게 만들고, 디지털 환경의 잦은 알림과 짧은 콘텐츠는 집중력과 심층 학습을 약화시킵니다.</p><p>따라서 기술 자체가 곧 인지적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능력을 외부화할지 의식적으로 결정하고, 다양한 정보 출처를 탐색하며 깊이 있는 읽기와 오프라인 토론을 통해 창의적 사고의 근육을 유지해야 합니다. 기술을 단순한 도구로 통제할 때만 지식의 양과 질이 균형을 이루며 창의성이 보존됩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01 10:52:0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3410</guid>
      </item>
      <item>
         <title>1.1.2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4762</link>
         <description><![CDATA[<p> 1.저는 인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굉장히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기술의 도움을 통해 확장된 지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선 기술을 활용하여 세상에 있는 많은 정보를 순식간에 접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저희가 모든 지식을 머리로 가지고 있거나, 컴뷰터에 저장된 정보를 찾거나에서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심제어 저희의 기억은 왜곡, 망각을 통해서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에 의해 저장된 정보는 0,1이라는 숫자로 인해 저장됬다는 점에서 정확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희는 기술 덕분에 많은 지식을 가졌다 할 수 있습니다. </p><p> 2. 인터넷은 저희가 자주 찾는 정보를 계속 보여주는 알고리즘을 통해 다른 정보에 대한 접근이 평상시에 어렵다는 점이 창의성을 가로 막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관점을 보여주며,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를 잘 활용하면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도 있습니다. </p><ol start="3"><li><p>최근 AI의 대두로 많은 사람들이 귀찮은 사고를 AI에 맞김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지식이 기술에 의해 형성됨으로써 편협된 정보를 많이 가지곤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료를 찾는 용도로 사용하고 쓴 글의 수정과 평가를 AI에 맞김으로써 보다 나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01 10:53:4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4762</guid>
      </item>
      <item>
         <title>2차시 질문&amp;탐구1</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5239</link>
         <description><![CDATA[<ol><li><p>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알수 있는 정보의 범위는 넓어질 수 있더라도 오히려 편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이유로 굳이 생각해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하여 머릿속에 지식을 더 줄어들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p></li><li><p>chat gpt등의 ai가 등장하면서 모르는 것에 대해 직접 생각해내려 하지 않고 ai에 의존하는 모습이 많이 나타나게 되어서 창의성을 억누르게 되는 것 같다.예를 들어 ai가 보급되기 이전의 수행평가를 준비할 때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시간이 길고 그 결과물도 인상적이었는데, ai가 나온 이후 급하게 ai로 해결하여 나의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 것 같았다.</p></li><li><p>오히려 지식을 통해 기술을 완성해 나가야 되는데 기술이 우리의 지식을 제한하게 되어 앞으로 기술에 과하게 의존하게 된다면 미래의 기술이 2025년에 멈추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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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54:3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5239</guid>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7279</link>
         <description><![CDATA[<p> 1. <strong>기술이 지식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제한하거나 형성한다고 생각하는가? 2. 우리의 관점을 제한하고 창의성을 억누르는 것인가?</strong> </p><p><br/></p><p><br/></p><p>1.나는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과학적 원리나 지식을 실제로 응용하여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사물을 가공하거나 사물을 다루는 능력 또는 방법을 의미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즘 챗gpt와 같이 AI를 활용하여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 이것은 단지 AI에게 자신의 일을 맡기는 것이지 실제로 지식을 응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식을 응용하려면 그 지식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AI가 제시한 결과값을 자세히 읽어보기를 귀찮아하며 결과값을 그대로 이용한다. 이러한 행동은 지식을 깊이 있게 습득하기 어렵다.</p><p> 2.정보기술과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은 인간의 소통 방식, 사고방식, 생활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SNS를 통한 초연결 사회에서는 시공간의 제약이 크게 완화되고 '공유'와 '참여'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더 나아가 가상현실, 메타버스 등은 인간이 실제 물리적 공간이 아닌 디지털 공간에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디지털 플랫폼의 폭넓은 정보와 기술로서 다양한 관점을 접할 수 있다. 다양한 관점, 가치관 등을 접하면서 우리의 사고 방식도 확장될 것이다. 따라서 기술이 우리의 창의성을 확장시킬 것이다.</p><p>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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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56:5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7279</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8214</link>
         <description><![CDATA[<p>기술 덕분에 더 많은 지식을 가진 것일까?</p><p>인터넷, ai등의 기술들은 방대한 지식을 즉각적으로 접근 가능하게하며 과거엔 도서관이나 전문가를 찾아야만 알 수 있던 지식을, 지금은 손쉽게 얻을 수있다</p><p>2.</p><p>검색 알고리즘과  추천시스템이 우리의 시각을 특정 방향으로 편향시킬수 있다</p><p>3.인공지능 검색엔진, 온라인 교육은 학습 효율을 극대화한다. 또한 누구나 전문가 지식에 접근할수 있는  지식민주화가 일어난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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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57:3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8214</guid>
      </item>
      <item>
         <title>2차시 질문&amp;탐구</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8463</link>
         <description><![CDATA[<p>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관점을 제한하고 창의성을 억누르는 것일까?</p><p><br/></p><p>과거에는 책과 논문,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지식을 탐구하며 스스로 의견을 도출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챗gpt나 구글 같은 기술 덕분에 지식 접근이 훨씬 쉬워졌고, 이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따라서 기술 발전이 우리의 관점을 제한하거나 창의성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식만 달라졌을 뿐 창의성과 사고의 기회를 확장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기술은 도구로서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 오히려 창의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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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57: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18463</guid>
      </item>
      <item>
         <title>지식과 기술</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21042</link>
         <description><![CDATA[<ol><li><p>우리는 기술 덕분에 더 많은 지식을 가진 것일까?</p><p>당연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기술이 발달하여, 지금처럼 지식이 일반 대중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생산도 가능해진 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단순한 책조차 일반 대중들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지식이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접근 가능한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기존의 지식을 종합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고려하여,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 원활해졌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기술을 통해, 일반인인 우리가 가진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생각한다.</p><p>다만,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이 가진 지식들이 마냥 증가하기만 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현재 발달하고 있는 생성형 AI에만, 사람들이 지식의 습득을 의존하며, 지식을 수집하는 능력을 기르지 않고, 이미 널리 알려진 관점을 단순히 수용하며,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지 않으면, 지식을 새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들 것이다.</p></li><li><p>우리의 관점을 제한하고 창의성을 억누르는 것인가?</p><p>우리의 관점을 확장시키는 면이 있지만, 위에서 제시했듯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연구된 관점만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능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를 잘 활용하여, 기술을 지식 습득의 보완적인 수단으로 사용하여, 지식을 종합하여 절충하여 사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창의성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p></li><li><p>1번과 같이 대답하겠습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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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01:2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21042</guid>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 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22601</link>
         <description><![CDATA[<ol><li><p>우리는 기술 덕분에 더 많은 지식을 가진 것일까?</p><p>우리는 AI나 다른 여러 현대 기술 덕분에 더 많은 지식에 접근하고 습득하기 편해진 것이지 더 많은 지식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접근성이 좋아지면 지식을 습득하기 좋아진 것은 맞지만 기술 덕분에 직접적으로 더 많은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p></li><li><p>우리의 관점을 제한하고 창의성을 억누르는 것인가?</p><p>나는 기술이 우리의 관점을 제한하고 창의성을 억누르기도 하지만 오히려 관점을 넓혀주고 창의성을 길러준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떤 한 사람에 의해서 여러 사람이 선동되는 경우, 관점이 제한되고, 창의성도 억제될 수 있다. 또한, AI 기술을 사용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오직 검색만으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창의성이 저하된다고 본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보면서 자신의 견해도 성찰하고, 넓힐 수 있기 때문에 관점을 넓혀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여러 가지 소재들을 조합, 활용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창의성을 높여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p></li><li><p>기술이 지식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제한하거나 형성한다고 생각하는가?</p><p>기술은 당연히 현대 사회에서 지식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우리가 지식을 얻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코로나 때의 여러 가짜 뉴스와 같이 사람들을 거짓되고 자극적인 정보로 선동하는 경우, 우리가 정확한 사실을 알 권리를 제한한다고 본다. 따라서, 나는 기술은 단편적으로는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만, 우리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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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03:2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22601</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 20250901(1)</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22841</link>
         <description><![CDATA[<p>우리는 기술 덕분에 더 많은 지식을 가진 것인가? 기술의 발전은 지식에 더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과연 기술의 발전이 지식의 실질적인 양을 늘인 것일까? 기술은 지식으로부터 나온다. 간단한 예를 들어, 빛 대신 전자광선을 사용하여 물체를 관측하는 전자 현미경은 지식으로 인한 산출물이다. 전자 현미경을 사용함으로써 이전의 광학 현미경으로는 관찰할 수 없던 분자, 원자 수준의 세계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재료 공학, 세포 단위의 생명 현상 등의 지식을 얻었다. 이 예시에 따르면 기술은 지식의 영역을 확장하고 더 많은 지식을 가지게 해 준다고 볼 수 있다. 기술은 우리의 관점을 제한하고 창의성을 억누르는 것인가? 기술이 발전하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던 일도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개선된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관점을 제한하고 창의성을 억누르는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고 서서히 기술에 의존하면서 사람이 직접 생각하고 탐구하는 경우가 드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넓어진 지식의 범위에서 기술에 대한 의존성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그 관점과 창의성은 확대된다.</p><p>기술이 지식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제한하거나 형성한다고 생각하는가? 지식이 낳은 기술은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시야를 넓힌다. 넓어진 시각은 창의성과 새로운 지식을 가져온다. 결국 기술은 더 많은 지식을 가져온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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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03:4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22841</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25472</link>
         <description><![CDATA[<p>1.우리는 기술 덕분에 더 많은 지식을 가진 것일까?</p><p>우리는 기술을 통해 더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기술은 우리가 지식을 더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게 해 주는데 원래는 지식을 얻기 위해 책들을 찾아가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 정보를 찾았다면 기술의 발달 후에는 ai나 검색 사이트 등의 기술로 같은 정보를 훨씬 적은 시간에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적게 필요하게 되었으므로 남은 시간에 더 많은 지식을 얻게 되고 결국 효율 향상을 통한 더 많은 지식의 습득을 이루었다.</p><p>2.우리의 관점을 제한하고 창의성을 억누르는 것인가?</p><p>기술은 우리의 관점을 제한하거나 창의성을 억누르지 않는다. 존재하는 정보들을 활용하거나 정보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을 창의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인데, 정보가 많을수록 더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고 정보를 정리하는 기술로 필요없는 정보는 걸러내고 필요한 정보만 정돈해 뛰어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는 점도 우리의 창의성을 증진시킨다.</p><p>3.기술이 지식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제한하거나 형성한다고 생각하는가?</p><p>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제한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오히려 부정확한 정보를 줄 수 있지만 심층 분석 등을 사용하면 사용하지 않을 때 찾기 거의 불가능한 논문 등의 자료를 찾을 수 있다. 특히 검새가 사이트에서 찾으면 전문가를 찾아가서 일일히 물어보는 것보다 훨씬 쉽게 소통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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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06: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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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amp;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27107</link>
         <description><![CDATA[<p>우리는 기술 덕분에 더 많은 지식을 가진 것인가?</p><p>A. 그렇다 기술이 있기에 지식을 얻는 것이 훨씬 용이해질 수있었다.</p><p><br/></p><p>우리의 관점을 제한하고 창의성을 억누르는 것인가?</p><p>A. 일부 사실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해결하면 그 문제 해결에 대한 다른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새로운 탐구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술이 창의력을 억제한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기술의 존재로 우리의 활동 가능 범위는 크게 증폭되고 새로운 지식을 개척하는 기반를 마련한다. </p><p><br/></p><p>A. 기술이 지식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제한하거나 형성한다고 생각하는가?</p><p><br/></p><p>당연하다 기술 없이 지식을 얻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지식 발견에 있어 기술은 필수라 볼 수 있다.  </p><p> 지식을 얻는 과정은 매우 어렵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형성하는 순간 다른 방향의 알 수 있는 것을 제한한다고 본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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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09: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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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데이터는 사실을 말한다는 것은 사실일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51622</link>
         <description><![CDATA[<p>어느정도까지는 옳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분석하는 것보다 객관적인 데이터가 더욱 많은 것을 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자기 객관화가 매우 힘든 생물이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인간보다 빅데이터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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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36: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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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54844</link>
         <description><![CDATA[<p>1</p><p>아니다 오히려 지식 접근성을 넓히고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p><ol start="2"><li><p>데이터 자체가 사회적 편견을 반영할 수 있어 알고리즘도 불완전함</p></li><li><p>알고리즘 오류 편향  가능성이 있으므로  최총 판단은 인간 책임 </p></li><li><p>데이터는 무엇을 측정했는가 에 따라 달라지며 해석과정에서 왜곡 될수 있다</p></li><li><p> 데이터에 측정되지않는 윤리 맥락 창의서은 인간만이 제공 가능하다</p></li><li><p>투명성확보, 감시기구 설립, 교육 강화 </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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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40: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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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54940</link>
         <description><![CDATA[<ol start="3"><li><p>인공지능이 내린 결정은 검증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빅데이터를 이용한 가장 보편적인 대답만을 하기 때문에 만약 실제와 조금이라도 상황이 다르거나, 누락된 정보가 있다는 다른 결론이 도출될 수 있기에 이런 문제가 있는지 점검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다른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 현명하다.</p></li></ol><ol start="5"><li><p>인간의 직관과 경험은 가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찾아올 인공지능은 완전히 인간과 비슷한 사고구조를 가지도록 발전될 것이고, 이것이 극한에 다다르면 같은 직관을 인공지능도 가질 것이며 이렇게 된다면 경험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 인공지능 앞에서 우리는 그들의 뉴런 1개의 직관도 생각해낼 수 없을 것이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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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40: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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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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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54961</link>
         <description><![CDATA[<ol start="3"><li><p>알고리즘이 내린 결정을 인간이 무조건 따라야 할까? 라는 질문에는 당연히 재검증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TED영상에서 언급되었듯이 알고리즘에는 알고리즘 계발자의 의견과 편견이 반영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에 대해서 자신의 지식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첨가함으로써 완벽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p></li><li><p>데이터는 사실을 말한다. 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저는 이 의견이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데이터는 제작하는 사람의 생각이 반영되어 조작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즉 부정확한 정보가 개입되어 있기 쉽습니다. 또한 다양한 정보가 아니라 알고리즘등에 의한 제한된 정보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데이터가 완전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p></li><li><p>인간의 직관과 경험은 여전히 가치가 있습니다. 아무리 AI가 발전했다고 해도 여전히 AI 선대 자료를 분석하여 결과물을 내기 때문에 인간이 완전히 새로운 점을 만드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직관을 통하여 창작물을 만드는 것은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작관과 경험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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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40: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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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55184</link>
         <description><![CDATA[<p>알고리즘을 통한 의사결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재를 보면, 사람들이 알고리즘의 원리를 너무 망각하고 있지 않은지 의문이 종종 든다. 머신 러닝 알고리즘은 단지 데이터에서 패턴을 인식하여 그 패턴에 부합하는 답을 예측하는 데 지나지 않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고차 다변수 함수에서 극솟값을 찾아가면서 수치화된 기준(definition of success)에 다가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학적으로 정상 작동하는 알고리즘은 데이터세트의 편향을 그대로 답습하게 되어 있다. 알고리즘은 일관적으로 공정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지적 오류와 편협함을 일관적으로 따른다. </p><p><br/></p><p>예를 들어보자. 2016년 미얀마에서는 소수민족인 로힝야에 대한 끔찍한 대량 학살이 있었다. 그리고 UN 사실 조사단은 이 사건에 Facebook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결론 지었다. 내막인 즉, 사람들이 로힝야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 표현과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그에 대해 격하게 댓글과 좋아요를 남기자, Facebook은 '참여 수가 많은 게시글이 좋은 게시글'이라는 목표 아래 이러한 혐오 게시글을 마구 퍼날랐던 것이다. Facebook 엔지니어들은 자신의 플랫폼을 발전시키기 위해 사람들의 참여를 최대한 늘리는 방향으로 알고리즘을 설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분노와 부정적 자극에 더 극렬히 반응하는 인지 편향을 그대로 답습하는 영향을 가져왔다. 물론 Facebook이 이러한 사태를 적극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다. 단지 알고리즘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맹신하는 부작위로 인해 참극을 불러온 것이다.</p><p><br/></p><p>알고리즘의 좋은 점은, 현재의 기술로 잘 훈련되었다는 가정 하에 데이터세트와 목표치에 착실히 따른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알고리즘에 대한 맹신을 걷어내고 인간이 합리적인 목표를 정할 수만 있다면 알고리즘의 편향을 상당 부분 제거할 수 있다. 따라서 의사 결정에 큰 역할을 하는 알고리즘은 공식부터 데이터 출처까지 명백히 오픈 소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블랙 박스' 형태의 알고리즘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투명성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의도야 어찌 되었든) 알고리즘을 감시하려 혈안이 된 이들이 다수라면 데이터세트에 조금이라도 내재한 편향에 가차없는 비판을 쏟아내지 않겠는가.</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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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40: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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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57186</link>
         <description><![CDATA[<p>인공지능과 빅테이터 시대에, 인간의 직관과 경험은 여전히 가치가 있는가?</p><p><br/></p><p>가치가 있다 ai와 빅데이터도 결국 수많은 인간의 경험과 직관을 종합, 분석해서  활용하는 분야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경험과 직관이 더욱 누적되어야 이러한 것들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p><p><br/></p><p>빅데이터 알고리즘의 편향을 막기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까? </p><p><br/></p><p>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은 범죄로 악용되거나 기업의 지나차니 이익 목적을 위한 남용시 막대한 피해를 유발시킨다. 이를 막기 위해선 강력한 국가와 국제적 단위의 제도가 구비되어야한다. 기업의 알고리즘, 빅뎅이터 활용방법을 국가에게 공유,검증 받아야 한다. 이는 가업의 이익추구 방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강력한 규제의 부재로 발생하는 피해가 기업의 잠재적 손실보다 본질적으로 크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잠재적 손실도 사전에 방지할 수 없는것도 아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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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43: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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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차시 질문&amp;탐구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57501</link>
         <description><![CDATA[<p> 2. 인간과 달리 빅데이터는 어떠한 감정에도 치우치지 않고 판단할 수 있으며 객관적인 정보들을 분석하여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보다 공정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p><p><br/></p><p> 5.인공지능 빅데이터가 객관적이고 확실한 정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앞서 2번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인간의 감정을 통해 정보가 편향될 수 있다고 말했었는데 오히려 그 감정이 인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직관과 경험이 될 수 있고 이 경험들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여전히 인간의 경험은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p><p><br/></p><p>4.데이터는 사실을 말한다라는 말은 단순히 객관적인 정보만으로 한정한다면 모든 범위에서 옳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인간만이 판단할 수 있는 주관적인 정보도 같이 들어간다면 특정 부분에서는 옳은 말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ㄷ.</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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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43: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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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빅데이터는 인간보다 더 공정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62825</link>
         <description><![CDATA[<p>빅데이터는 수많은 데이터들이 모인 집합인데, 개중에는 일상생활, 재판 기록, 과학적 사실, 헌법 등 매우 다양한 분야들의 기록이 담겨있다. 한 가지 상황을 상상해보자, 길을 걷던 A가 차에 치여 자신의 한 쪽 팔이 떨어져 나갔고, 길을 지나던 B는 이를 주워 도망가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A가 자신의 팔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걸었다면, 법정에서는 과연 어떤 판결을 내릴까?</p><p>일반 상식으로는 당연히 A가 승소하고 자신의 팔을 되찾겠지만, 법적 논리에만 기반한다면 A는 팔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법에서는 신체에 대한 소유권을 명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관점에 따라 결과도 다양하게 바뀔 수 있는데, 수많은 분야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빅데이터가 하나의 사건에 대해 인간보다 공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빅데이터는 당연히 인간과 달리 사적인 감정, 연민 등을 빼고 결론을 내리기에 공정한 의사결정 보다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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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48:3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62825</guid>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gs25162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66073</link>
         <description><![CDATA[<p>인간은 알고리즘이 내린 결정을 검증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해야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알고리즘은 많은 결정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돕지만, 그 판단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인간의 검증과 비판적 수용이 필요합니다. 알고리즘은 학습 데이터의 편향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고, 설명이 어려운 내부 구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의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입력 데이터의 오류나 시대적 변화로 인한 오차, 윤리적·사회적 요소의 결여는 차별과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높입니다. </p><p>따라서 알고리즘 도입자는 모델의 목적과 데이터 출처, 한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설명 가능한 기법을 도입해 의사결정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중요한 판단은 알고리즘의 추천을 참고하되 최종 결정권은 인간에게 두어 예외적 상황과 사회적 영향을 고려한 검토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외부의 독립적 감사와 정기적 재평가·재학습, 그리고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통해 오류를 보완하고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면, 알고리즘의 이점을 안전하고 공정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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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51:2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66073</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 20250901(2)</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69440</link>
         <description><![CDATA[<p>빅데이터는 인간보다 더 공정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빅데이터는 인간이 내린 수많은 의사 결정 및 상황에 대한 판단의 데이터가 모인 것을 분석하고 비교하여 결과를 도출해낸다. 물론 그 데이터는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빅데이터 자체가 완전히 공정한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갖어하여 같은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당시의 감정, 대상과의 유대감 등 그 이외의 많은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보다 더 편향된 의사결정을 내린다. 반면 빅데이터는 가지고 있는 데이터 안에서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인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공정하다. 그렇다면 알고리즘이 내린 결정을 인간이 무조건 따라야 할까, 아니면 검증해야 할까? 위에서 서술하듯 빅데이터는 인간보다 공정하다. 그러나 모든 상황이 데이터 내에서만 발생한다는 보장은 없으므로, 데이터로 파악하기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는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반면 직관을 가진 인간은 그에 비해 아직까지는,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융통성이 뛰어나다. 그러므로 빅데이터가 모든 경우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게 되지 않는 한, 최종 판단은 인간의 검증을 거쳐 상황에 맞게 해야 한다. 인간의 직관과 경험이 여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이터가 사실을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데이터 자체는 이미 사실의 집합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 서술했듯 인간이나 빅데이터나 완전히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데이터는 사실을 말한다"라는 표현은 각각의 규모로는 진실이지만 그것이 편향되어 축적된 빅데이터의 규모에서 보았을때는 성립하지 않는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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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54:3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69440</guid>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 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69725</link>
         <description><![CDATA[<ol><li><p>빅데이터는 인간보다 더 공정하게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p><p>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빅데이터는 인간보다 더 공정하게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요즘 스포츠 분야의 심판들을 다 빅데이터에 기반한 AI 심판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많다. 그 이유는 선수나 감독이 미리 심판에게 잘 봐달라고 뇌물을 주거나, 심판의 오심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로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의 가나전에서의 심판과 같이,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AI 심판을 이용하면, 빅데이터에 기반하여 누구보다 공정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스포츠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분야에서 빅데이터가 인간보다 더 공정하다고 생각한다.</p></li><li><p>알고리즘이 내린 결정을 인간이 무조건 따라야 할까, 아니면 결정해야 할까?</p><p>위에서 말한 내용과는 달리, 사실 AI 심판은 의도적인 악성 프로그래밍이나, 프로그래밍 실수에 취약하다. 그러므로, 첫 결정은 빅데이터가 하도록 하지만, 인간이 무조건 따르지는 말고 교차검증을 하면 더 좋다고 생각한다.</p><p><br/></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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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54:3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69725</guid>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70941</link>
         <description><![CDATA[<ul><li><p>우리는 AI가 지식과 앎에 위협이 된다고 믿는가? 인공지능은 우리의 지식과 앎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항상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으로 생성된 대규모 허위 정보를 확산한 사례를 예로 들겠다. 2022년 5월 22일, 펜타곤 청사 근처에서 대형 폭발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이미지가 SNS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바로 생성형 AI로 만들어진 가짜 이미지였다. 이는 SNS와 언론 등에서 공유되며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로 인해 국채와 금값이 상승하고 주식시장까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AI도 허위 정보를 통해 우리의 지식과 앎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p></li><li><p>빅데이터는 인간보다 더 공정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빅데이터가 인간보다 더 공정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빅데이터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매우 유용하며 의사결정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핵심 요소이다. 인가의 직관이나 제한된 정보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빅데이터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여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p></li><li><p>알고리즘이 내린 결정을 인간이 무조건 따라야 할까, 아니면 검증해야 할까? 알고리즘은 과거의 사건, 경험 등을 기반하기 때문에 약간의 편판적인 면을 보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Amazon의 AI 채용 시스템이 있다. 2018년 Amazon은 AI 시스템을 기반으로 학습해 여성 지원자에게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성별 편향성을 보였다.</p></li><li><p>빅데이터 알고리즘의 편향을 막기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까?</p><p>편향성을 줄이기 위해 빅데이터 알고리즘의 편향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AI 개발자가 그들에게 보상을 주게하는 법을 만들 것이다. 따라서 AI 개발자가 알고리즘을 신중하고 자세하게 검토하게 될 것이다.</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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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55: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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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72313</link>
         <description><![CDATA[<p>1.우리는 ai가 지식과 삶에 위협이 된다고 믿는다. ai는 인간의 편의성을 증대시키는 기술이지만 잠재적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예시로 ai가 미래에 대체할 수 있는 직업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는 이러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윤리적 기준 미흡으로 인한 통제 불가능의 경우도 인간의 삶에 위협이 된다. ai가 잘못된 사실을 실제로 학습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통제권을 상실할 수 있고 예시로 ai채팅봇이 악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학습되어 역사를 왜곡하고 옹호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위대하다고 추앙하는 말을 해서 서비스가 정지된 적이 있었다. 이때 개발자와 관리자들은 잘못된 정보를 ai의 학습 상황에서 제거할 수 없었으며, 서비스를 정지하지 못했다면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ai는 윤리적인 기준을 명확하게 갖추지 못하면 사회에 정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p><p>2.빅테이터는 인간보다 더 공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 의사결정은 여러 변수들과 매우 많은 복합적인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빅데이터는 현재까지 존재했던 사례들을 학습해 의사결정을 할 뿐 여러 변수의 중대성을 비교해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보편적인 이성과 윤리적인 기준조차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답변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빅데이터는 새로운 경우에서는 공정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힘들 것이다.</p><p>3.당연히 검증해야 한다. 오류도 많고 사람과 생각이 다를수도 있는데 바로 믿을수는 없다.</p><p>4.데이터는 사실을 말하지만 2번에서 답한 것과 같이 적용하면 무리가 있을 것이다. </p><p>5.인간의 직관과 경험은 여전히 가치가 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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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1:57: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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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인간이 이해하지 못한 AI의 산출물을 지식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2504</link>
         <description><![CDATA[<p>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식이란 어떤 대상을 연구하거나 배우거나 또는 실천을 통해 얻은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의미하는데, 질문에 나와있듯이 인간이 이해하지 못한 AI의 산출물이라면 후에는 지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현재로서는 그저 자료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01 12:08:4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2504</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2850</link>
         <description><![CDATA[<p>이 성과는 인간의 지식인가? ai의 지식인가.</p><p><br/></p><p>인간이다. ai는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고 인간의 성과다. 단순히 한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ai가 한것이므로 ai만의 성과라고도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ai도 결국 여러 인간이 만들어낸 성과물이고 ai의 성과도 결국 인간이 어떻게든 낼수 있는것이다. ai는 그거서을 효율적이게 하는 수단일 뿐이다.</p><p><br/></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01 12:09:0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2850</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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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3560</link>
         <description><![CDATA[<ol><li><p>인간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AI도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실험을 하면서 플라스크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성과를 냇다고 해서 이 업적을 플라스크의 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는 모두 인간이 AI가 산출한 데이터를 가지고 새로운 발상을 통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창의성이 곧 새로운 결과물을 만듬으로 인간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p></li><li><p>인간이 이해하지 못한 AI의 산출물은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데이터임으로 '지식'이라거 인정할 수 없습니다. 데이터가 거짓일수도, 사실일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에서 이는 '지식'이 될 수 없습니다. </p></li><li><p>AI는 자료를 찾고 거기에서 유의미한 특징이나, 아주 복잡한 계산을 빨리 할 수 있는 도구임으로 인간이 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을 AI에 맞김으로써 이를 활용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데에 유용하게 새용될 수 있습니다. </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01 12:10:1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3560</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3801</link>
         <description><![CDATA[<p>'AI의 지식'이라는 표현이 애초에 성립하는가? 인공 지능은 지식을 얻어 봐야 그것을 어떤 효용으로 전환시킬 의식/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배제한 채 지식을 전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공 지능의 산출은 인간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한 연구의 일환으로 발생하여, 결국 인간에게 귀속되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 활용된다. 이는 인간의 지식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고 본다.</p><p><br/></p><p>AI의 계산 결과를 인간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은 과학이 발달하기 전 과거의 경험칙에 비유할 수 있다. 가령 '계절의 변화'라는 가장 기본적인 지식을 떠올려 보자. 먼 과거에는 계절의 변화가 어디에서 기인하고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AI의 산출물이 어떤 연산 과정을 거쳐 도출되었는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그럼에도 인간은 계절의 변화가 주기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잘 활용하여 생활에 이익이 되도록 하였다. 이처럼 인간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인공 지능 에이전트가 도출한 답일지라도 인간이 인지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인간의 지식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그 자세한 원리가 먼 훗날까지 밝혀지지 않더라도 말이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01 12:10:2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3801</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4964</link>
         <description><![CDATA[<p>인간의 지식이다, AI가 산출한 결과물도 결국 인간이 설계한 데이터·알고리즘의 산물이므로, 근본적으로 인간 지식의 확장이다</p><p>과학 이론도 처음에는 소수만 이해했고, 시간이 지나며 널리 ‘지식’으로 자리 잡았다. AI의 결과물도 비슷하게 볼 수 있음</p><p>정보 접근성을 향상시켜주는 도구로서 사용</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01 12:11: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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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5198</link>
         <description><![CDATA[<ol start="3"><li><p>나는 앞으로 더욱 많은 지식 습득 과정을 인공지능에게 맡길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능력차이가 점점 벌어지며 그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중간 전문가가 필요하고, 인공지능이 지식습득에도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므로 지식 습득을 인공지능으로 하는 과정을 익숙하게 만든다면 추후 내게 도움이 될 인공지능은 무엇일지, 내가 얻고싶은 지식을 위해서는 어떤 중간 전문가를 찾아야 하는지, 어떤 정보를 걸러야 하는지 등을  인공지능을 쓰는 다른 모두와 인공지능 그자체의 지식습득과정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01 12:11: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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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7221</link>
         <description><![CDATA[<ol><li><p>이 성과는 인간의 지식인가, AI의 지식인가?</p><p>인간이 이해를 하지 못하고 풀지 못했지만 AI가 풀었으므로 이는 당연히 AI의 성과이다. </p></li><li><p>인간이 이해하지 못한 AI의 산출물 또한 '지식'이다. 인간이 AI가 아니였다면 알 수 없었지만 인가이 AI를 통해 그 원리를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으므로 이 또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p></li><li><p>앞으로 나는 AI를 질문에 대한 전체적인 답을 묻기 보다는 원리나 관련 사례 검색, 개념, 글 요약으로 사용할 것이다. 사고는 내가 하고 AI가 이해하는데 도와주는 보조적인 역할만 하게 하는 것이다. AI에게 질문을 통으로 묻는다면 인공지능이 사고하는 것이지 나의 사고과정을 거치지 않으므로 지식을 얻더라도 금방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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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2:14: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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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차시 질문&amp;탐구 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7692</link>
         <description><![CDATA[<ol><li><p>이 성과는 ai의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발명품을 완성한 사람, 최초로 어떤 것을 발견한 사람들 모두 이러한 업적을 이뤄낸 사람이 했다고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ai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예술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 결과물을 모두 alphafold의 제작자가 이뤄낸 것일까?그들은 alphafold라는 ai를 개발한 것이지 이 결과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기록에 남겨야 한다면 ai의 성과라고 기록해야한다고 생각한다.</p></li><li><p>앞서 말했듯이 지식은 인간이 어떠한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을 장기기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그런데 ai의 산출물을 인간이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정보라고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p></li><li><p>ai는 앞으로 나에게 지식을 알려주고 앞으로 내가 해야할 수많은 일들을 함께 도와주며 완성도를 높여주는 영원한 지원가 또는 파트너로 사용할 것이다. 만약 그러지 않고 ai를 단순히 일을 완료해주는 도구로 이용한다면 나의 지식 범위만 좁아지고 발전은 없는 삶이 될 것 같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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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2:14:4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7692</guid>
      </item>
      <item>
         <title>인간이 이해하지 못한 ai의 지식을 지식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8029</link>
         <description><![CDATA[<p>AI 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여 구글이 화학 노벨상을 받았듯 ai는 인간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고 뛰어난 산출물이 지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를 인간이 이해만 한다면 인간의 지식으로 생각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획기적인 발전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의 것이 아닐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예전엔 책에서 지식을 찾는 것보다 인터넷으로 찾는 것이 훨씬 빠르고 그것이 일의 능률을 극적으로 높여주었지만 그것은 인간의 것이라 우리는 생각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인간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고도화된 지식이 아니라면 인간의 지식이라고 생각한다.</p><p><br/></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01 12:15:0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8029</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8649</link>
         <description><![CDATA[<p>이 성과는 인간의 지식인가, ai의 지식인가?</p><p><br/></p><p><strong>인간이 이해하지 못한 ai의 산출물을 지식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strong></p><p>전통적으로 지식은 정당화된 참된 믿음으로 정의되어 왔다. 하지만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진리를 산출하는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과를 지식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라마누잔의 예에서 라마누잔은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진리를 발견했지만, 여전히 이해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고, 그의 직관은 결국 수학적 증명으로 이어져 인간의 언어로 정당화될 수 있었다. 반면, AI는 스스로 이해하지 않으며 인간이 그 과정을 완전히 해석하기도 어렵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라마누잔은 “이해불가능한 인간”이며, AI는 “이해하지 않는 비인간”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AI의 산출물을 검증하고 재현할 수 있다면 지식의 새로운 형태로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은 전통적인 인식론의 변화이며, 지식의 기준이 “이해 가능성”에서 “검증 가능성”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과제는 우리의 이해 한계 앞에서 새로운 형태의 지식을 어떻게 검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p><p><br/></p><p><strong>앞으로 나는 AI를 지식 습득 도구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strong></p><p>AI는 인간이 접근할 수 없던 데이터를 탐색하여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는 반면, 인간의 이해를 대신함으로써 사고력을 약화시킬 위험도 있다. 또한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요약, 분석, 정리해 주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나 이는 의미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전제로 할 때, 의미있는 지식이 된다. 즉, 질문하는 능력이 지식 습득의 중심이 된다.  그러므로 AI는 단순한 검색기가 아니라 질문자의 논리를 비판하게 하거나, 다른 관점을 요청함으로써 인간의 사고를 확장, 점검할 수 있는  "대화자"가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AI와 함께 사고하는 새로운 인식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AI가 가진 많은 정보량을 이해하고 의미화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AI의 사고를 비판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자기 사고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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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2:15: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8649</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 20250901(3)</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8784</link>
         <description><![CDATA[<p>AI로 얻어낸 성과는 인간의 지식인가, AI의 지식인가? AI 즉 인공지능은, 말 그대로 인간이 만들어낸 지능이며 인간으로 인해 창조되어서 인간으로부터 배운다. 결국 인공지능의 지식은 인간이 가진 모든 지식을 넘지 못하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더라도 인간의 지식을 연역하여 얻어낸 것이므로, AI의 지식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아무리 복잡하고 난해한 결과물을 얻어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사고방식(혹은 인간이 만들어낸 사고방식)과 지식을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AI는 인간의 결과물이므로 AI의 결과물은 인간이 AI라는 도구로써 얻어낸 인간의 지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p><p>AI가 정보 처리 속도와 정확성에 있어서 인간을 압도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에 있어 AI를 사용하는 것은 이익이다. 하지만 AI의 지식이 인간을 초월하는 특이점을 넘지 않은 이상, 인간의 통제 없이 스스로 작동하는 것은 무리다. 이러한 현재 상황에서 AI는 인간의 작업 효율을 올리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어야 하며 그 자체의 지식 소유는 인정할 수 없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01 12:16:0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8784</guid>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 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9907</link>
         <description><![CDATA[<ol><li><p>이 성과는 인간의 지식인가, AI의 지식인가?</p><p>나는 이러한 성과를 인간의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국 AI를 활용하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에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li><li><p>인간이 이해하지 못한 AI의 산출물을 '지식'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p><p>'지식'의 정의에 대해 검색해본 결과, '지식'이란, 교육, 경험, 관찰, 연구 등을 통해 얻은 정보, 사실, 기술, 이해의 총체이다. 따라서, 인간이 아직 이해하지 못한 AI의 산출물은 인간이 경험, 관찰, 연구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식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본다.</p><p><br/></p></li><li><p>앞으로 나는 AI를 지식 습득 도구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p><p>나는 앞으로 AI를 무조건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충분히 나만의 사고를 수행한 뒤, 나의 사고를 바탕으로 AI의 지식과 결합하여 이용할 것이다.</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01 12:17:2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89907</guid>
      </item>
      <item>
         <title>지식과 기술(III)</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90002</link>
         <description><![CDATA[<p>지식과 기술(II) 날라갔어요 ㅠㅠ</p><ol start="2"><li><p>인간이 이해하지 못한 AI의 산출물을 '지식'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p><p>인간이 이해하지 못한 AI의 산출물이란 어떤 것일까? 생성형 AI에게 조사를 부탁하고, 시간이 지나 생성된 결과물을 확인했지만, 너무 복잡한 개념이라 이해할 수 없을 때. 그럴 때, 우리는 지식을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일단, '지식'이라는 것이, 누구의 지식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답이라 생각한다. 이해하지 못한 정보가, 그 정보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지식이라 할 수 없다 생각한다. 다만, 이미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와 같은 경우에는, 그러한 정보를 보고 이를 지식으로써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금 말한 것 처럼, 복잡한 개념과 심화적인 내용 때문에 이해하지 못한 지식이 아니라, AI만의 추론으로 생성하여, 기존에 존재하지 않은, 새롭게 생성된, 그런 형식의 지식이라 사람들에게 이해가 어려운 지식일 때는, 그것을 지식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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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2:17: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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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63290207</link>
         <description><![CDATA[<p>1.인간의 지식이다. ai는 인간이 만들었고 결국 ai는 인간의 도구이다. 따라서 도구를 사용해 지식을 얻는 것을 도구의 지식이라고 하지는 않으므로 이는 인간의 지식이다.</p><p>2.지식으로 인정할 수 있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해도 인간은 관찰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고 한다. 반복된 경험에 대해 인간이 인과관계를 이해하지 못해도 그것은 인간의 지식이 된다. 따라서 ai의 산출물을 인간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지식이라고 볼 수 있고 인간은 이러한 지식들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발전해나가며 결국 이해해 낼 수 있을 것이다.</p><p>3.나는 ai를 앞으로 유용한 도구로 활용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ai를 이용해 그냥 과제를 해결하지만 이를 잘 사용하면 세상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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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2:17: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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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74419</link>
         <description><![CDATA[<ol><li><p>어느 권력이든 자신에게 유리한 지식만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나치 독일은 게르만족이 우월하고 유대인은 나쁘게 몰아가는 등의 선전을 했다.</p></li><li><p>지식은 언제나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있다. 지식은 현대의 정보화 사회에서 어떤 작은 정보든 큰 무기가 될 수 있고 꼭 그런 것만이 아니더라도 그 정보를 과장하고 보이고 싶은 것만 드러내 많은 이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p></li><li><p>사회적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개인이 알고싶다고 해서 사회 안정을 무너뜨린다면 사회에 혼란이 일어나 개인의 알 권리를 포함한 여러 개인의 권리들이 침해받기 때문이다. </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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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0:51: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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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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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77113</link>
         <description><![CDATA[<p>국가는 정부에 따라 국민들이 알아도 상관없는 정보는 강조함으로써 눈길을 돌리고 중요하고 알려지면 안되는 정보는 숨기고 감춘다.</p><p>지식은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정부는 자신만 아는 지식이나 정보를 통해 국민을 가지고 논다.</p><p>개인의 알 권리를 우선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개인이 모든 정보를 알게 되었을떄 그 순간은 혼란스럽고 어지러울거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 순응하고 적응하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으로 사회적 안정에 도달할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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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0:53: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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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78884</link>
         <description><![CDATA[<p>사회적 안정과 개인의 알 권리가 충돌할 때, 어느쪽을 우선해야 하는가?</p><p><br/></p><p> 권력 남용을 위한 정보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는 가정에서 사회적 안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개인은 모든 정보를 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일반인의 수준에서 이해되기 힘든 중요 정보가 공개될 때, 개인들의 무지로 인해 큰 파장이 생길 수 있다. 이를 방지하고자 국가는 일부 정보를 기밀로 할 의무가 있다.</p><p><br/></p><p>정치적 맥락에서 "진리"라고 불리는 지식은 과연 보편적 진리일까, 아니면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지식은 언제, 어떻게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있을까</p><p><br/></p><p>후자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지식이 아닌 정치적 맥락의 진리는 주관적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정도의 보편성이라면 객관성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지식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히틀러도 그중 하나로 들 수 있다. 그에 대한 비난의 시선도 정치적 의도가 들어있다. 그가 희대의 전범자라는 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와 적대적인 세력들의 악행을 묻히기 위한 의도로 그가 더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것도 명백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기득권이 자신들의 권력 보전을 위해 지식을 배포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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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0:55: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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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상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79192</link>
         <description><![CDATA[<ol><li><p>교과서 교정화, 나치 독일, 중국 인터넷 검열등의 공통점은 해당 통치 정부에 유리한 정부를 차별적으로 선정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유리하지 않은 정보는 국민들에게 제한하면서 정보를 제한적으로 검열하면서 국민들의 알 권리를 제한합니다. </p></li><li><p>정치적 맥락에서 '진리'라는 것은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지식을 만드는 정부는 집당하고 있는 좌,우의 색깔이 한쪽으로 취우처 있으며, 당연하게 권력을 가진 당이 추구하는 바가 반영된 지식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권력의 결과입니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정보가 지속적으로 국민들에게 노출되게 된다면 국민들은 처음에는 정보를 의심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정보를 수용하게 되면서 이는 정부가 추구하는 방향의 정보가 대중을 쉽게 세뇌시킬 수 있습니다. </p></li><li><p>사회적 안정과, 개인의 알 권리 중에서는 사회적 안정이 먼저 추구되어야 합니다. 밀과 벤담이 주장했던 공리주의에 따르면 사회전체의 이익이 증가한다면 처벌과 같은 악은 악이자만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처벌과 같은 교정이 정당화 된다고 사회 윤리시간에 배웠습니다.또한 인간의 본성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죽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고, 알고 싶은 사실을 찾을려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사회가 무너진다면 개개인의 하루하루가 생존의 경쟁이 되면서 인권이 위협받습니다. 옛날</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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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0:55:1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79192</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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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8</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81833</link>
         <description><![CDATA[<p>1. 나치는 아리안 우월주의를 강조하고 유대인 학문을 배제. 교과서 국정화는 정부 관점을 강조하며 비판적 시각을 배제. 중국은 공산당 업적을 부각하고 민주화 운동 정보를 차단합니다. 권력은 자신에게 유리한 지식만 허용하고 위협적인 정보는 억압하는 패턴을 가짐</p><p>2.과학적 사실은 보편적 진리이지만, 역사 해석이나 사회 제도는 권력에 의해 구성되기도 함. 지식은 사회적 갈등이나 권력 투쟁 시기에 선택적 사실 강조, 프레임 조작, 전문성 악용, 교육 시스템을 통해 정치적 도구로 활용됨.</p><p>3.절대적 우선순위는 없다. 국가 안보나 개인정보는 사회적 안정을, 정부 정책이나 시민 안전 관련 정보는 알 권리를 우선해야 함. 최소 제한 원칙, 투명한 절차, 시한 설정, 사법부 견제, 시민 참여를 통해 상황별 균형점을 찾고 민주적 절차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함</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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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0:57:2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81833</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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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85019</link>
         <description><![CDATA[<p>권력자들은 종종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진실을 악용한다. 또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가 완벽하지 않다는 (자명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지식을 조작하기도 한다. 가령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가난은 게으름의 산물이다'라는 내러티브는, 사회 제도 자체의 모순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려 애쓰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일 테다. </p><p><br/></p><p>따라서 권력자들의 진리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권위를 가진 자가 설파하는 진리를 배척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개인은 결국 자신의 가치관 또는 안전에 부합하는 쪽으로 정보를 취사선택하게 되고, 이는 에코 체임버에 갇혀 진리와 더욱 멀어지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p><p><br/></p><p>질서와 지식 중 질서를 보편적 관점에서 우선시한 사회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어떻게 유린하는지 우리는 수도 없이 보아 왔다. 나치가 권력을 잡은 과정만 봐도, 부침하는 국가에서 사회 질서를 되찾는다는 명목으로 국민들에게서 진실을 빼앗고 끔찍한 환상을 주입한 것이 아닌가.</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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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0:59: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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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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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역사적으로 권력이 지식을 통제한 사례에는 뭐가 있을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85171</link>
         <description><![CDATA[<p>나치 독일에서 게르만족이 우수한 민족이고 유대인이나 집시 등이 열등하다고 지식을 조작한것,교과서 국정화 등은 많은 문제를 초래 할 수 있다. 결국 미래를 구성하게 될 사람들인 학생들이 잘못된 지식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 잘못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진나라 때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통해지식을 통제하려 했던 것도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왜곡된 지식이 전승되고 진실이 사라진다면 그 왜곡된 지식도 진실처럼 받아들여 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더더욱 왜곡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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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0:59:4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85171</guid>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85261</link>
         <description><![CDATA[<p>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는 한반도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조선인의 저항을 막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지식을 통제했다. 이들은 먼저 법과 제도를 이용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했다. 신문이나 책이 만들어질 때는 검열을 거쳐야 했고, 민족주의적 내용이나 독립운동을 찬양하는 글은 금지되거나 삭제되었다. 이에 따라 저항적인 언론인이나 작가들은 체포되거나 투옥되기도 했다.</p><p> 일제는 교육을 통해 조선인의 생각과 정체성을 바꾸려 했다. 학교에서는 일본어와 일본 중심의 역사 교육을 강화했고,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낮게 평가하는 내용이 가르쳐졌다. 이런 교육은 어린 세대가 일본 중심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창씨개명 같은 정책으로 개인의 이름까지 바꾸게 함으로써 민족 정체성을 약화시키려 했다.</p><p> 이와 반대로 배제되거나 억압된 지식도 분명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운동과 민중의 저항에 대한 사실과 의미가 축소되거나 왜곡된 점이다. 토지 수탈, 강제징용, 문화 탄압 같은 식민지의 피해 사실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어, 전통 문화, 지역사회가 스스로 지닌 지식과 가치는 무시되거나 폄하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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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0:59: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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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 3차시 1</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85520</link>
         <description><![CDATA[<p>Q1. 역사적으로 권력이 지식을 통제한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나치 독일, 현대사 교과서 국정화, 중국 인터넷 검열 같은 사례에서 권력은 어떤 지식을 강조하고, 어떤 지식을 배제했는가?</p><p><br/></p><p>A1. 권력이 지식을 통제하는 사례들은 매우 다양하며, 이는 종종 권력 유지를 위해 전략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치 독일에서는 특정 역사적 사실과 인종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며, 반대되는 사상이나 유대인, 소수민족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는 배제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현대사 교과서의 국정화 역시 정부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부합하는 내용을 강조하고, 비판적 시각이나 대안적 해석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중국의 인터넷 검열은 특정 정보를 차단하거나 수정하여, 정부에 불리한 내용이 퍼지는 것을 막고, 국가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권력이 어떤 지식을 강조하고, 어떤 지식을 배제하는지에 따라 사회의 인식과 역사가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본다.</p><p><br/></p><p>Q3. 사회적 안정과 개인의 알 권리가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는가?</p><p><br/></p><p>A3. 사회적인 안정도 중요하다. 하지만 국민이 알아야 되는 사실을 숨기면 국민들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며, 개인의 알 권리가 침해되지 않아야 사람들이 해결 방안이나 노력 등을 할 것이므로, 사회적 안정보다 더 좋은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사회적 안정을 위해 그 일을 숨기면,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져 손을 쓸 수도 없게 되어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빈다면 해결 방안 또한 찾지 못하고, 사회적 안정을 추구했지만 오히려 사회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의 알 권리를 우선해야 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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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00: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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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정치와 지식(I)</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87271</link>
         <description><![CDATA[<ol start="2"><li><p>정치적 맥락에서, "진리"라고 불리는 지식은, 보편적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다른 일반적인 지식과는 다르게, "진리"라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불변적이고, 대부분의 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정치적 맥락이 지식을 드러내는 데 관여한다 해도, 그 지식이 "진리"의 특성을 가진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진리' 가 아닌, 다른 맥락에서의 지식은, 얼마든지 정치적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번의 사례(나치, 중국, 박근혜)에서 드러난 사례와 같이.</p></li><li><p>사회적 안정과 개인의 알 권리가 충돌할 때, 사회적인 안정이 만약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개인의 알 권리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사회 유지를 위해, 지식에 접근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공유되어 있는 지식을, 개인의 알 권리만을 내세우며 공개하기를 촉구하는 것은, 만약 그 지식이 은폐된 불편한 진실이나 부당하게 숨겨진 지식이 아니라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시민 불복종의 원칙 중 하나는, '목적의 정당성'이 있다. 개인의 권익이 아닌, 공익을 위해서만 정당화 될 수 있는 원칙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의 알 권리가 반드시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적 안정이, 불편한 진실을 숨기고, 시민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 성과라면, 개인의 알 권리가 우선시되어, 사회적 안정이 깨지더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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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01: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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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3차시 질문&amp;탐구1</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90198</link>
         <description><![CDATA[<ol><li><p>권력이 지식을 통제한 사례에는 과거까지 가지 않더라도 현재 우리 위에 있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나라 밖의 세상에 대한 지식이 완전히 통제된 상태이다.나치 독일,현대사 교과서 국정화, 중국 인터넷 검열 같은 사례에서 권력은 국가나 권력자와 같은 사람에 대해 충성하게 하는 지식을 강조시키고 자신들이 한 잘못에 대한 지식을 배제한다고 생각한다.</p></li><li><p>정치적 맥락에서의 진리는 보편적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매번 권력을 잡는 정권의 성향이 다른데 그 성향에 따라 우리의 진리가 반드시 변하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p><p><br/></p></li><li><p>나는 사회적 안정보다는 개인의 알 권리가 더 중요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담배회사에 관한 내용 이외에도 사회적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예가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사고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대표적인 사건들 외에도 셀수 없이 많은 사고들이 발생했었는데,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군대 내에서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는 경우도 많다.이처럼 아무리 개인 때문에 사회적 안정이 무너지면 안된다는 이유로 개인이 입은 피해를 무시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군인분들의 유가족들처럼 피해를 보는 개인들을 위해서 알권리가 더 중요시되어야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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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04: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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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정치적 맥락에서 진리라고 불리는 지식은 과연 보편적 진리일까, 아니면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지식은 언제, 어떻게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있는가?</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90280</link>
         <description><![CDATA[<p>정치적 맥락에서 진리라고 불리는 지식은 아무래도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물론 수학, 과학 등의 이미 보편적인 지식은 겸열없이 공표하겠지만 역사나 정치같이 성향이 갈리고 국가 체제에 관한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지식은 대부분 검열할 것이다. 당장 멀리가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북한의 역사와 관련 지식을 가르치치 않는 점, 북한과 중국 등지에서 SNS를 검열하고 개개인의 의견을 제한하는 점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지식은 언제, 어떻게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있을까? 바로 나치가 이의 대표적 예시이다. 나치 독일은 우생학을 '과학적 근거'로 내세워 인종적 우월성과 순수성을 강조하고 이를 법제화, 제도화하여 유대인, 장애인, 로마족 등 소수집단을 차별·배제했다. 강제 불임법, 등록, 감시와 의학, 인류학적 측정, 선전, 교육을 통해 정책을 정당화하고 대중의 태도를 조성했으며, 조직적 살해로 확대되어 홀로코스트의 이념적, 행정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로 인해 대중의 편견과 혐오가 강화되고 해당 집단과 그 가족은 극심한 공포와 고립을 겪었으며, 많은 전문직이 정책 집행에 참여해 일상생활이 국가 통제 하에 놓였다. 나치는 결과적으로 정치적 정당성과 사회 통제력을 강화하고 자원, 인력 배분의 명분을 얻었으며 대규모 집행, 기록 시스템 등 행정적 노하우를 축적하는 등의 정치적 이익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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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04: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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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93209</link>
         <description><![CDATA[<p>1. 권력은 권력자들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피지배층을 통제하기 위한 지식을 강조합니다. 이를 통해 폭넓은 시야를 볼 수 있게하는 다양한 지식들이 배제됩니다. 중국 인터넷 검열 사례를 보면 정부 비판, 반체제 여론 확산, 사회 불안 등을 막기 위한 정치적, 사회적 통제 목적입니다. 만리방화벽이라 불리는 거대한 검열 시스템을 통해 구글, 유트브 등 해외 사이트 접속을 차단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지식들이 배제되면서 활발한 시기의 청장년층들이 성적 욕구를 풀어주는 영상도 마음대로 시청할 수 없고 세계적 트랜드도 따라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 정부는 이를 통해 권위를 유지하고 국민의 정보 접근을 제한합니다.</p><p>2. 정치적 맥락에서 "진리"라고 불리는 지식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 개인의 가치관 등에 따라서 바뀌기 때문에 지식은 보편적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맥락과 상황에 맞게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p><p>3. 사회적 안정과 개인의 알 권리가 충돌할 때 저는 개인의 알 권리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 권리'는 헌법재판소가 헌법 제21조 표현의 자유의 하위 내용으로 인정하여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 권리는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로서 국민 주권을 실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나라 최고 법인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국민의 안전과 지식 획득을 위해 개인의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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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07: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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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 &amp; 탐구 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94126</link>
         <description><![CDATA[<ol><li><p>역사적으로 권력이 지식을 통제한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p><p>역사적으로 권력이 지식을 통제한 사례에는 중국 진나라 때 진시황이 시행한 분서갱유가 있다. 이 사건은 진시황이 사상 탄압을 위해 책을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생매장한 사건이다. 또 다른 사건으로는, 조선의 연산군이 시행한 '언문 금지령'이 있다. 이 사건은 연산군이 자신을 비방하는 글을 적은 벽서 사건 이후 한글로 쓰인 책들을 불태우고 언문 사용을 금지하는 지식 탄압이었다. 질문의 사례에서, 그리고 내가 조사한 사례에서는 권력자가 자신의 사상(주장)만 국민들에게 강조하고, 개인의 다른 의견은 철저히 배제했다고 볼 수 있다.</p></li><li><p>정치적 맥락에서 "진리"라고 불리는 지식은 과연 보편적 진리일까, 아니면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일까?</p><p>'빛은 직진한다'와 같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보편적 진리가 아닌 정치적 맥락에서의 진리는 보편적 진리라기보다는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집권자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적인 지식이라고 볼 수 있다. 푸코와 같은 학자들에 따르면, 지식은 권력과 분리될 수 없으며, 특정 시대의 권력 구조에 의해 정해진 지식을 진리로 본다고 하다. 지식은 위의 사례들 처럼 한 통치자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민이 지배되기를 바랄 때 국민의 지식을 한정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된다고 본다.</p></li><li><p>사회적 안정과 개인의 알 권리가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는가?</p><p>나는 이 둘은 상황에 따라 우선해야 할 부분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안정을 위해 알 권리를 제한하거나, 개인의 알 권리를 위해 사회적 안정을 희생시키는 것은 극단적인 접근인 것 같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에 배우는 통합사회의 '정의로운 사회의 장점'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개인의 알 권리인 개인선과 사회적 안정인 공동선의 조화를 추구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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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08: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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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 20250908(1)</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94202</link>
         <description><![CDATA[<p>역사적으로 권력이 지식을 통제한 사례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먼 나라로 갈 필요 없이, 당장 우리나라의 과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이전 한반도에서는 한자를 사용하거나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는 '이두'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한자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학습을 필요로 했다. 당시 양반 등 상위 계층의 사람들은 이를 이용하여 일반 백성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식만 간단히 가르쳐(유교 등) 그들의 지식을 통제함으로써 자신들의 재산적,권력적 이익을 챙겼으며 백성들은 억울하거나 부당한 일이 있어도 이를 알지 못하거나 표현할 수 없어 당하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이 외에도 정치적 목적으로 지식을 통제한 사례는 북한의 백두혈통 우상화, 나치 독일의 우생학 등이 있다. 이렇게 왜곡되어 형성된 정치적 진리는 보편적 진리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현 권력 집단이 이득을 취하기 위해 조작된 기만한 선전물일 뿐이다. 정당하게 보았을 때 지식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이 보편적 진리를 통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지켜야 한다. 이렇게 나온 알 권리와 사회의 안정이 충돌할 때는 무엇이 우선시되어야 하는가? 사회의 안정은 알 권리에서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개인이 진실을 알고 있다면 그에 맞게 행동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이것은 결국 사회의 안정으로 이어진다. 반면 사회의 안정을 위해 알 권리를 탄압하고 민중을 속이면 반드시 언젠가는 억압받은 진실이 터져나와 프랑스 대혁명, 동학 농민 운동, 2.28 민주화운동과 같은 시민혁명을 통해 거짓된 사회의 안정이 깨지고 진실된 사회의 안정을 찾게 된다. 알 권리는 탄압하고자 하여도 탄압할 수 없고, 탄압하려 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진실을 탄압한 왕정 국가들은 무너졌고, 진실을 탄압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은 쇠락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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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08: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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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 탐구</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94420</link>
         <description><![CDATA[<p>지식과 정치-정치적 권위</p><p> </p><p>권력과 권위</p><p>권력이 있다고 해서 권위가 있는게 아니다</p><p>권위가 있다고 해서 권력이 있는게 아니다</p><p>예) 군사 쿠데타</p><p><br/></p><p>특정 지식 정당화</p><p>정부-&gt;지식</p><p>정부&lt;-지식</p><p><br/></p><p>이용</p><p>교육과정-명시적 교육과정 예) 국영수-</p><p>             -잠재적 교육과정 예)경쟁사회, 사회화</p><p>              -영 교육과정 예)북한 관련 사상, 성소수자</p><p><br/></p><p>-담배 회사의 담배의 위험사항 표시 x</p><p>-&gt; '담배소송'</p><p><br/></p><p><strong>역사적으로 권력이 지식을 통제한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나치 독일, 현대사 교과서 국정화, 중국 인터넷 검열 같은 사례에서 권력은 어떤 지식을 강조하고 어떤 지식을 배제했는가?</strong></p><p>미셸 푸코에 의하면 ‘지식은 권력의 산물이며 권력은 지식을 통해 유지된다’고 하였다. 권력은 자신에게 유리한 지식을 ‘진리’로 만들고, 불편한 지식을 삭제함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해 왔다. 나치 정권은 인종주의를 ‘과학적 사실’로 포장하기 위해 우생학과 사회진화론을 이용하여 ‘아리안 인종의 우월성’을 과학처럼 선전하였으며, 인권 같은 인도주의적 가치와 자유주의적 문화를 배제하였다. 2015년 한국 정부가 시행한 현대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에서 정부는 국가발전, 안보의식, 산업화 성과를 강조하고, 권위주의 정부의 긍정적 면모를 부각시켰다. 반면 민주화 운동이나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시민 저항의 역사를 배제함으로써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를 제한하였다. 오늘날 중국의 인터넷 검열 정책에서도 특정 단어, 뉴스, sns 게시글을 차단함으로써 온라인 상의 여론과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의 지도력, 사회 안정, 애국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며, 민주주의, 천안문 사건, 위구르 인권문제, 정부 비판 게시물에 대한 지식을 배제함으로써 시민의 사고방식을 체제 친화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세 가지 사례에서 권력은 지식이라는 도구를 통해 현실 인식의 틀을 규정함으로써 권력 유지를 위한 장치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정한 지식의 힘은 사회적 비판과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p><p><br/></p><p>정치적 맥락에서 '진리'라 불리는 지식은 과연 보편적 진리일까, 아니면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지식은 언제, 어떻게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있는가?</p><p>예를 들어, 물컵에 물이 정확히 반틈이 들어있다고 생각해보자. '물컵에 물이 반이 채워져 있다' 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명백한 진리이다. 그러나, "정치적 맥락"에서 이 진리를 바라보게 되면 "컵에 물이 반이나 채워져 있다"라며 만족하고 마시는 등 보수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고,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며 서둘러 주전자를 찾아나서는 등 급진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이 예시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p><p><br/></p><p><strong>사회적 안정과 개인의 알 권리가 충돌할때 어느쪽을 우선시해야 하는가?</strong></p><p>정부나 기업들은 종종 사회적 안정을 이유로 정보를 제한하거나 은폐한다. 하지만 개인의 알권리를 무시한 안정은 겉보기 평온일 뿐 내적인 불신과 분열을 낳는다. 알 권리를 무시당하고 진실이 억압될 때 사람들은 공적 정보를 신뢰할 수 없게 되고, 오히려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확산되어 사회적 혼란은 더 커진다. 결국 권력이 진실을 통제하면 혼란을 막기 보다 시민들의 판단력을 약화시켜 통제를 강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반은 국민이 올바른 정보를 알고, 비판적 사고와 참여를 하는 것이다. 진실이 감춰지면 권력을 감시하지 못하게 되며, 시민은 복종을 강요받게 된다. 따라서 알 권리는 민주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사회의 안정은 투명한 정보 공유를 통해 신뢰를 쌓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독재 정권은 진실을 감추어 일시적 안정을 유지했으나 결국 진실을 알게 되면 더 큰 혼란과 갈등을 야기했다. 따라서, 사회적 안정이 알 권리보다 앞설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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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08: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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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696068</link>
         <description><![CDATA[<p>1.역사적으로 권력이 지식을 통제한 사례에는 일본이 자신들의 역사 교과서에서 역사 왜곡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에 유리한 대로 역사를 마음대로 왜곡했기 때문에 권력이 올바른 지식의 전달을 막는 예시이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의 자세와 비교되는데, 독일은 선조들의 행동을 잘못된 행동이라고 교육하고 히틀러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며 나치가 한 것을 반성하지만 일본은 아직까지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지도자들은 신사 참배 등을 하러 가면서 자신들의 입장에 부합하는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결국 권력은 자신들이 현재 주장하는 것에 부합하는 지식을 강조하고 그와 반대되는 지식을 배제한다. 따라서 이는 국민들의(특히 학생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p><p>2.정치적 맥락에서 진리는 보편적 진리가 아니다. 물론 과학적, 수학적 관점에서는 진리가 있지만 정치적 맥락에서 진리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진리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지식은 권력자가 주장하는 것에 부합하는 것이 진리로 정해지며 정치적 입지가 굳어지게 되고, 결국 이는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다.</p><p>3.사회적 안정이 중요하고, 개인의 알 권리만 보장되게 되면 사회적 안정을 위협하는 지식이 사회에 퍼지게 되고, 이로써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국가기밀은 사회적으로 퍼지게 되면 매우 큰 혼란을 불러올 것이고 국가의 보전에까지 중대한 위협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가 알 권리를 위해 알려지게 되면 알 권리를 보장한 국가가 결국 혼란에 빠지게 되므로 알 권리보다는 사회적 안정을 위한 정보의 비공개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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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10: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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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시민 불복종 사례</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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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strong>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소금 행진:</strong></p><p><br/></p><p>1930년 영국의 부당한 소금세에 맞서 수천 명의 인도인과 함께 바닷가로 행진하여 소금을 직접 채취한 운동입니다. 이는 비폭력 저항 운동의 상징적인 사례로, 영국의 지배 체제를 마비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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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19: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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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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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06984</link>
         <description><![CDATA[<p>홍콩 우산 시위</p><p>1. 홍콩 우산 시위의 쟁점은 2014년 범죄인 인도법안(다른 나라로 도피한 범죄인을 해당 국가의 요청에 따라 인도하는 절차를 정한 법률) 추진으로 시작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중국이 홍콩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 중국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홍콩의 정체성 보호 등이 주요 쟁점이었습니다.</p><p>2. 시위자들은 경찰의 물대포와 최루탄과 최루액에 맞서 우산을 사용하면서 시민 불복종의 의지를 표현했습니다.</p><p>3. 홍콩 우산 시위 시민 불복종의 영향은 홍콩 민주화 요구 확산과 중국 본토의 간섭에 대한 반발 강화, 시민 사회의 정치 참여 확대 그리고 2019년 대규모 반중 시위의 촉매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시위는 시민들이 우산을 저항의 도구로 사용하며 평화적인 시민 불복종을 통해 민주주의를 요구한 사건으로 중국 본토의 간섭이 강화되었으며 평화적 시민 불복종 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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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19: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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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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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 불복종 사례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07154</link>
         <description><![CDATA[<p><strong>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strong></p><p>1950년대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중심으로 앨라배마 몽고메리에서 버스 승차거부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이 운동은 인종 차별에 저항하며 평화로운 시민 불복종을 통해 민주주의 사회의 정의와 평등을 요구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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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19: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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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07628</link>
         <description><![CDATA[<p>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p><p> </p><p>1.  이는 중국 정부가 홍콩 반환 후, 홍콩의 내정에 너무 깊게 관여하자 홍콩의 여러 세력들이 일으킨 평화 시위이다. 이는 시위시에 뿌려진 최루액을 우산으로 막아 태양산운동으로도 불린다.</p><ol start="2"><li><p>시위자들은 우산을 들고 전진함으로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내비쳤다.</p></li><li><p>이 행위는 단기적으로는 집회의 해산, 즉 실패로 그쳤지만, 장기적으로는 홍콩의 정치적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고 '하나의 중국'이라는 이념을 한풀 꺾는 역할을 해 홍콩의 민주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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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20: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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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07632</link>
         <description><![CDATA[<p>역사상 시민 불복종 사건 조사 다음 내용포함</p><p>몽고메리 버스 보이콧</p><ol><li><p>사건의쟁점</p><p>버스 좌석에대한 인종차별 철페</p></li><li><p>시위자들이 불복종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p><p>버스를 타기를 거부하고 걸어가거나 먼 거리의 이동 경우 택시를 이용했다.</p></li><li><p>불복종 행위의 단기적또는 장기적 결과나 영향</p><p>1년 동안의 행위라 장,단 구분은 애매하다. 흑인들이 주고객이던 버스들은 매출 급감으로 적자를 보고 택시 이용이 늘고 카풀이 성행했다. 백인 주부들이 흑인 하인들을 픽업하기도 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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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20: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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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상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07669</link>
         <description><![CDATA[<ol start="2"><li><p>저는 시위자들이 불복종을 보여주기 위해서 했던 사례들 중 버스타는 것을 그만둔 몽고메리의 버스 보이컷 운동이 제일 인상깊습니다. 시위에는 여러 종류들이 있으며 폭력적인 시위도 있는 반면에 버스 보이컷 운동과 같은 비폭력적인 시위도 있습니다. 이 사건은 버스를 안 타는 것을 국가 보여줌으로써 국가에게 흑인의 인권을 보장하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p></li><li><p>불복종의 효과는 단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불만을 불복종으로 보여준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게 되면 부분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에 대한 분노가 희미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완전히 고처지지 못한체 여전히 사회적 문제로 남게 되지만 고처지기 힘들어 집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불복종 행위는 단기적이며 이러한 불복종 행위가 여러 번 실현되면서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틴 루터 또한 여러번의 흑인의 인권에 대한 운동을 펼치면서 흑인의 인권이 점차 보장받게 되었습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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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20: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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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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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07860</link>
         <description><![CDATA[<p>동유럽 혁명과 베를린 장벽의 붕괴(1989).</p><p><br/></p><p>1989년 동독에서 여행 자유화와 민주화를 외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지속되자, 동독은 여행법 개정으로 서독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검토하였다. 그런데 당시 기자회견에서 새로 부임한 정부 대변인은 법안 개정이 '즉각' 발효된다고 말실수를 저질렀고, 이에 각국의 언론이 일제히 이를 대서특필하였다. 국경수비대는 검문소의 경비를 더 엄격히 강화하려 하였지만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인파가 장벽으로 달려왔다. 이에 한 수비대장의 독단적 판단으로 바리케이드가 열려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몰려갔다. 이들은 망치와 도끼, 크레인을 동원하여 베를린 장벽을 부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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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20: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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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9/8</title>
         <author>gs25190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09250</link>
         <description><![CDATA[<p><strong> </strong>간디의 소금행진 </p><p>영국의 소금 독점법에 맞서 간디가 240마일을 걸어 바닷가에서 직접 소금을 제조하며 법을 공개적으로 위반한 사건. 간디와 6만 명이 체포되었으나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인도 독립운동을 가속화시키며 전 세계 비폭력 저항운동의 상징이 되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08 11:21: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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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3차시 질문&amp;탐구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10724</link>
         <description><![CDATA[<p>홍콩의 우산 혁명</p><p>1997년,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uWoeZBnE" href="https://namu.wiki/w/%ED%99%8D%EC%BD%A9%20%EB%B0%98%ED%99%98">영국에게서 홍콩을 다시 반환받을 때</a>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uWoeZBnE" href="https://namu.wiki/w/%EB%8D%A9%EC%83%A4%EC%98%A4%ED%95%91">덩샤오핑</a>은 홍콩에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를 적용하지 않고 현재의 정치, 경제 시스템을 최소한 50년간 유지하는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uWoeZBnE" href="https://namu.wiki/w/%EC%9D%BC%EA%B5%AD%EC%96%91%EC%A0%9C">일국양제</a>(一國兩制)를 유지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하지만 일국양제 원칙 자체야 50년은 형식적인 숫자이고 중국인도 홍콩인도 둘 다 자동 연장으로 보며<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OEUHbXx" href="https://namu.wiki/w/2014%EB%85%84%20%ED%99%8D%EC%BD%A9%20%EB%AF%BC%EC%A3%BC%ED%99%94%20%EC%9A%B4%EB%8F%99#fn-7"><sup>[7]</sup></a>, 그나마 "사회주의 체제"는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고 중영 공동성명에 명시되어 있어 상관없지만 이렇게 되면 일국양제는 껍데기만 남고, 실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중국 중앙정부가 꼭두각시 행정장관을 통해 자신의 입맛대로 주무르게 되어 대륙과 홍콩은 통합된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그래서 홍콩인들은 이 사실을 직시하고 반발 운동을 벌여 왔고, 이것이 폭발한 것이 우산혁명이다.</p><p>우산혁명은 2014년, 홍콩 시민들이 행정관을 직접 선출할 권리를 요구하며 최루탄에 맞서 우산을 들고 시위한 활동입니다. 79일간 이어진 시위에서 시민들은 우산을 방패 삼아 경찰의 최루액과 물대포에 저항했으며, 민주화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레논 벽에 포스트잇 메시지를 남기는 등 '평화로운' 방식으로 참여했습니다.&nbsp;</p><p>시위가 12월 15일자로 종료되면서, 홍콩 시민들은 '진정한 민주화'를 쟁취하지 <strong>못했다</strong>. 사실 이번 직선제 문제도 홍콩만의 일이 아닌 (최종적으로) 중국 전체의 일임을 생각해볼 때 애당초 성공하리라는 기대는 상당히 어려웠다.<br><br>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이번 우산 혁명으로 홍콩의 민주주의 수준에 대한 공론화, <strong>중국 공산당이 약속한 높은 수준의 자치권과 </strong><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uWoeZBnE" href="https://namu.wiki/w/%EC%9D%BC%EA%B5%AD%EC%96%91%EC%A0%9C"><strong>일국양제</strong></a><strong>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세계에 폭로</strong>, 그리고 <strong>홍콩 시민 스스로의 단결력</strong>을 쟁취하였기 때문에 이번 시위는 완전한 실패가 아닌 절반의 성공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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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23: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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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탐구(시민 불복종)</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11145</link>
         <description><![CDATA[<p>미얀마의 시민 불복종 운동</p><p>이 운동은 2021년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여 시작된 시민들의 저항으로, 파업, 시위, 세 손가락 표시 등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군부의 부당한 권력 장악에 맞서는 운동이다.</p><p>또 다른 시위자들의 행동으로는 밤에 불을 끄거나, 빨간 풍선을 들어올리는 것 등이 있다. 이러한 시민 불복종 운동은 군부의 강경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3년 넘게 지속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미얀마 시민들을 지지하는 집회와 캠페인이 열리고, 국제사회의 연대를 통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것 등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이 뻗어나가고 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08 11:23: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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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 운동</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11322</link>
         <description><![CDATA[<p>3.1 운동에서는 시위자들은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집회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공공장소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전단을 배포했으며, 관공서나 우체국 등 공공시설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상점 문을 닫는 등 경제적 불복종이나 파업도 일어났다. 대체로 비폭력 시위가 원칙이었으나, 일본의 강한 진압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충돌이 발생했다.</p><p>더 나아가 3.1 운동은 이후의 독립운동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등 정치적·외교적 활동의 기반이 마련되었고, 국내에서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교육·언론 활동이 활발해지며 독립운동의 조직적·지속적 전개가 가능해졌다. 일본의 통치 방식도 변화를 강요받아 이전보다 ‘문화통치’ 등 간접적 통제 수단을 쓰게 되었는데, 이는 식민 통치의 성격과 저항의 양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p><p>마지막으로 3.1 운동은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민 의식 형성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국민 주권과 자유, 평등에 대한 가치들이 이 운동을 통해 확산되었고, 이후의 민주화 운동과 시민사회의 성장에도 중요한 역사적 뿌리를 제공했다. 즉, 3.1 운동은 단기적으로 큰 고통을 낳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사회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게 하는 데 기여한 역사적 사건이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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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23:4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11322</guid>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11373</link>
         <description><![CDATA[<p> 시민 불복종은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법이나 제도에 대해 평화적 또는 공개적으로 법을 어기며 항의하는 행동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은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용하지 않는 정치 제도에 맞서 시민 불복종을 통해 권리를 요구한 대표적 사례다.</p><p> 쟁점은 여성의 정치적 권리, 즉 투표권의 부재였다. 당시 여성들은 교육을 받고 세금을 내면서도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없었고 남성 중심의 법과 관습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p><p> 이 운동의 참여자들은 평화적 집회 외에도 유리창 파손, 정치 행사 방해, 체포 후 단식 등 공개적이고 때로는 과격한 불복종을 통해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당국은 체포와 강제급식 등으로 대응해 큰 논란이 일었다.</p><p> 단기적으로는 큰 사회적 관심과 탄압이 공존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성과를 얻어 1918년 일부 여성에게 제한적 투표권이 부여되었고 1928년에는 모든 21세 이상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서프러제트 운동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다른 나라의 여성참정권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p><p> 이 사례는 시민 불복종이 때로는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만 약자의 권리를 확보하고 제도를 바꾸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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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23: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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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3차시 탐구 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11957</link>
         <description><![CDATA[<p>나는 홍콩의 우산 시위(우산 혁명)에 대해 조사해보았다.</p><p><br/></p><p><strong>우산 시위(우산 혁명)이란?</strong></p><p> 우산 시위는 2014년 홍콩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으로, 시민들이 정부의 정치 개입에 반대하며 거리에서 시위를 벌인 사건이다. 이 시위의 이름인 '우산 시위'는 경찰의 최루탄과 물대포를 피하기 위해 시위 참가자들이 우산을 사용한 데서 유래하였다. 이 운동은 홍콩의 선거제도 개혁과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하며 수많은 시민이 참여하였고,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p><p><br/></p><p><strong>쟁점:</strong></p><ol><li><p><strong>선거 제도 개혁과 민주화 요구</strong>: 홍콩의 행정장관 선거가 중국 중앙정부에 의해 제한된 상황에서, 시민들은 보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특히, 후보자 선출 과정에 대한 민주적 개혁이 핵심 쟁점이었다.</p></li><li><p><strong>중국 중앙정부의 개입과 홍콩 자치권</strong>: 홍콩은 '일국양제' 원칙 아래 일정한 자치권을 가지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이 권한을 제한하거나 간섭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습니다. 시위는 홍콩의 자치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목소리였다.</p></li><li><p><strong>평화적 시위와 경찰 진압</strong>: 시위는 평화롭게 진행되었으나, 경찰의 강경 진압과 최루탄 사용으로 인해 충돌이 발생했고, 이는 시위의 확산과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p></li><li><p><strong>국제적 관심과 지지</strong>: 우산 시위는 전 세계적으로 홍콩의 민주화 요구와 중국의 정책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에 대한 논의를 촉진시켰다.</p></li><li><p><strong>시위의 성과와 한계</strong>: 시위는 홍콩 시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을 높이고, 일부 정치적 논의를 촉진시켰지만, 중국 정부는 시위 참가자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시위는 결국 종료되었으며, 실질적인 선거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p></li></ol><p><br/></p><p><strong>시위자들이 불복종을 보여주기 위해 한 행위</strong>:</p><p> 홍콩 우산 시위에서 시위자들은 경찰의 진압에 맞서기 위해 우산을 펼쳐 방어 수단으로 사용했고, 이를 통해 폭력에 대한 평화적이지만 강력한 불복종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한, 우산은 시민들의 체제에 대한 저항과 민주주의 요구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으며, 이러한 행동은 정부와 경찰에 대한 불복종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적 표시였다.</p><p><br/></p><p><strong>불복종 행위의 단기적 또는 장기적 결과나 영향:</strong></p><p><br/></p><p>불복종 행위는 단기적으로 정부와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인해 일시적인 충돌과 손실을 초래하지만, 시민들의 연대와 저항 의식을 강화하여 사회 변화의 기반을 마련한다. 또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지를 얻어 홍콩의 민주주의 요구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며, 장기적으로는 정치 체제의 개혁과 민주주의 실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실패하거나 억압이 지속될 경우 시민들의 불신과 소외감이 심화될 위험도 있다.</p><p><br/></p><p><br/></p><p><br/></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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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24:1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11957</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 20250908(2)</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12280</link>
         <description><![CDATA[<p>시민 불복종은 정의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잘못된 법에 대해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며, 공개적이고 비폭력적으로 행해지고,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원칙 하에 시민이 양심에 따라 지배층의 정책이나 법률을 거부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산 혁명이라고도 일컫는 2014년 홍콩의 시민 불복종이 있다. 홍콩은 1997년 중국에 복속된 이후 간선제를 사용해야 했지만 중국 정부는 2017년에는 홍콩 정부의 자치권을 인정하여 직선제 도입을 허용하겠다고 발언하였다. 하지만 2017년이 오기도 전에 중국정부는 직선제는 커녕 홍콩의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사실상 중국정부의 독재나 다름없는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였다. 이에 반발한 홍콩의 시민들은 이에 반대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벌였는데, 당시 중국의 군과 경찰이 저지를 위해 최루탄과 최루액을 뿌리자 이에 물러서지 않고 가지고 있던 우산을 펼쳐 시위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여 우산 혁명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결국 12월 15일 시위가 종료되면서 목적이였던 홍콩의 민주화를 완전히 달성하지는 못하였으나, 홍콩에 대한 중국의 부당한 개입을 알리는 역할을 하였고, 홍콩 독립운동의 기세가 커지게 되었다. 그러나 시민 불복종의 특성상 중국 정부의 개입이 심해지고 사회적 혼란이 빚어지며 홍콩의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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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24:2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12280</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12934</link>
         <description><![CDATA[<p><strong>3·1운동이 시민 불복종 행위로서 가지는 철학적‧정치적 의미</strong></p><p>오늘날 시민 불복종은 비폭력적 정의 실현의 방식으로 평가되며, 이런 관점에서 3.1 운동은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집단적 시민 불복종의 역사적 사례로 생각할 수 있다. 3.1운동은 시민 불복종의 핵심 조건인 비폭력성, 도덕적 정당성, 공익성을 갖추었다. 3.1 운동의 비폭력성이 갖는 철학적 의미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도덕적 감화를 통한 사회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독립선언서는 단순한 항의문이 아니라 정치적 선언문으로 국민주권의 원리를 천명하였고, 시민이 국가의 정당성을 재정의함으로써 정치적 주권회복 운동의 의의를 가진다. 3.1 운동은 현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로 계승되었으며, 오늘날의 촛불집회, 인권 운동으로 이어졌다. 3.1 운동은 식민 지배라는 부당한 권력에 대한 비폭력 시민 불복종의 대표적 역사 사례로서, ‘법이 정당성을 잃을 때, 시민은 양심에 따라 저항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실천으로 증명하였다.</p><p><br/></p><p>결과와 영향</p><p>국제사회에 식민 통치하 한국의 독립 의지 선포<br><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uWoeZBnE" href="https://namu.wiki/w/%EB%8C%80%ED%95%9C%EB%AF%BC%EA%B5%AD%20%EC%9E%84%EC%8B%9C%EC%A0%95%EB%B6%80">대한민국 임시정부</a> 수립에 영향<br><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uWoeZBnE" href="https://namu.wiki/w/%EB%8C%80%ED%95%9C%EB%AF%BC%EA%B5%AD%20%ED%97%8C%EB%B2%95">대한민국 헌법</a>의 헌정사적 기원으로 설정<br>민족적 연합 전선 형성<br><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uWoeZBnE" href="https://namu.wiki/w/%EC%A4%91%ED%99%94%EB%AF%BC%EA%B5%AD%20%EB%B6%81%EC%96%91%EC%A0%95%EB%B6%80">중국</a>의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uWoeZBnE" href="https://namu.wiki/w/5.4%20%EC%9A%B4%EB%8F%99">5.4 운동</a>에 영향<br><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uWoeZBnE" href="https://namu.wiki/w/%ED%95%98%EC%84%B8%EA%B0%80%EC%99%80%20%EC%9A%94%EC%8B%9C%EB%AF%B8%EC%B9%98">하세가와 요시미치</a> 총독 사퇴<br><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uWoeZBnE" href="https://namu.wiki/w/%EB%AC%B8%ED%99%94%20%ED%86%B5%EC%B9%98%EA%B8%B0">소위 문화 통치</a>의 원인 제공</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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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24:5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12934</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16901</link>
         <description><![CDATA[<p>1.미얀마의 군부 불복종 운동이 있는데, 미얀마 군부 통치를 거부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민주 연방 국가를 요구하는 것이다.</p><p>2.시위자들은 불복종을 보이기 위해 3개 손가락 경례, 반군부 구호 외치기, 인간 사슬 형성, 단식 투쟁, 자동차를 이용한 길 차단 등으로 저항하고 있다. 또한 시위를 계속하며 불복종을 보이는 중이다. 게다가 수많은 사망자가 나오게 되어 각종 축제를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빠르게 사람을 모으는 방법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p><p>3.불복종의 영향력은 잠깐 지속될 뿐이다. 불복종은 하는 것에 비한 효율이 그렇게 좋지 않고 시위는 근본적인 해결을 하지 않고 끝나고 난 후 여론이 시위 중 만큼 과격해지지 않아 국가의 행동을 대대적으로 저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는 불복종 운동이 끝나면 다시 마음대로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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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2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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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37524</link>
         <description><![CDATA[<p>질서 유지를 위한 지식의 은폐가 더 가치 있다. 왜냐하면 지식을 공개 해버리면 사회 혼란과 더불어 많은 손해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p><p>정당한 행위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얻어낸 정보로 많은 사건사고를 막고 대비할 수 있고, 테러같은것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p><p>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린 배신이다. 왜냐하면 이제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어서 정보를 얻기 힘들어졌고 이제 테러나 사건사고를 막기 어려워져 국가 안보에 위험을 빠뜨린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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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46: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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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8</title>
         <author>gs25190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38879</link>
         <description><![CDATA[<p><em>지식공개가 더 가치가 있다</em></p><p>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은 정보에 기반한 시민 참여이다. 지식과 정보의 공개는 시민들이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하고,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며, 사회 발전을 이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투명성이 더 안정적이고 건강한 사회를 만듬. 다만 개인정보나 진행 중인 수사 등 합리적 예외는 인정되어야 함</p><p><br/></p><p>맥락에 따라 정당화 될수 있음</p><p>헥티비즘은 기존 제도적 채널이 막혀있거나 불공정한 상황에서 시민사회가 진실을 알아내고 변화를 추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당성은 다음 조건들에 달려 있음 공익 목적성, 다른 합법적 방법의 부재, 비폭력성, 개인 사생활 침해 최소화. 단순한 법 위반이 아닌 시민 불복종의 연장선에서 평가되어야 함.</p><p><br/></p><p>민주주의와 투명성을 강화한 행동</p><p>스노든의 폭로는 정부의 광범위한 시민 감시 프로그램의 실체를 드러냈고,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임. 그의 행동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정부 감시에 대한 견제 장치가 강화되고 시민의 프라이버시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 국가 안보도 중요하지만, 무제한적 감시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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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47: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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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40140</link>
         <description><![CDATA[<p>2. 핵티비즘은 현대사회에 중요하게 사용되는 인터넷 전산망을 해킹함으로서 사회의 알 권리에 대한 침해를 비판하는 행위이다. 이는 알 권리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직접적인 활동으로 발현되었고, 또한 국가를 직접적으로 견제함으로서 내가 중요히 여기는 사회의 안정을 위한 억압과 개인의 알 권리에 대한 자유의 균형을 지키기 위한 한가지 활동이라고 생각한다.</p><ol start="3"><li><p>스노든의 내부고발은 민주주의의 투명성을 강화하기도 하고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린 행위이며 또한 국가와 개인의 억압과 권리의 균형을 지켜주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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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48: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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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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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노든의 내부 고발은 과연 옳을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42443</link>
         <description><![CDATA[<p>나는 스노든의 내부 고발이 옳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 이유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최대다수 의 최대 행복을 침해 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기는 하나 아까 영상에서 본 것에 따르면 50회 이상의 대규모 테러를 제재했다 되어 있고 스노든의 내부 고발이이 필요 이상의 혼돈을 불러 일으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원래 모르던 사람들에게 필요 없을 수 있었던 마음의 불안을 일으켰고 크게는 국가 안보까지 위협할 수 있었던 일이다.  따라서 이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옳은 일 일찌는 모르나 큰 관점에서는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08 11:50: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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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43533</link>
         <description><![CDATA[<p>1.질서 유지를 위한 지식의 은폐가 더 가치있다. 지식을 공개해 사회 질서가 혼란스럽게 된다면 아무리 공익을 위하는 것이라도 더 큰 손해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p><p>2.핵티비즘을 통해 생산, 전달된 지식은 법과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다. 핵티비즘은 해킹을 통해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이루는 것인데 일단 서버컴퓨터에 침입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 이를 이루기 위한 기술을 만드는 것도 당연히 불법일 것이다. 따라서 불법행위를 통해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찾아내 유포하고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법과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p><p>3.스노돈의 내부고발은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배신이고, 물론 정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주체의 정보이고, 어떤 정보인지에 따라 다양하지만, 미국이 셰계를 감시하고 있고 변형 등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사회에 혼란을 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폭로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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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51:0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43533</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46369</link>
         <description><![CDATA[<p>국가 안보라는 명목 하에 수백억 건의 개인 정보를 침해하고 부당하게 기밀을 감시하는 것은 이미 안보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 해당 주장의 출처가 미 정부 기관이라는 점 역시 상당히 미심쩍은 부분이다.</p><p><br/></p><p>NSA의 결정의 주체여야 할 국민의 다수가 정당한 방법으로 해당 정책에 동의한 바는 없다. 자국법에 버젓이 불법으로 규정된 자유에 대한 침해 행위가 국가적으로 자행되는 상황을 질서 유지라는 명분으로 덮을 수도 없다. 부당한 지식의 은폐에 대해 전 국민적 경각심을 가지게 하고, 부분적으로나마 정부의 이중잣대를 알렸다는 데서 스노든의 행위는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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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53: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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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지식의 은폐 vs 지식의 공개</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46922</link>
         <description><![CDATA[<p>공익을 위한 지식의 공개와 질서 유지를 위한 지식의 은폐 중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투명성과 시민의 알 권리를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와 사회 문제 해결에 유리하므로 공개를 기본 원칙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정보를 공개하면 국가 안보, 범죄 수사, 개인정보 보호 등에서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큰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에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은폐를 허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은폐는 남용되기 쉽기 때문에 최소한의 제한을 두어 독립된 기관의 검토, 정당한 사유의 공개, 그리고 이후 가능한 공개 절차와 같은 통제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안전과 피해를 고려하여 제한적으로 은폐하는 균형이 가장 가치 있다고 결론지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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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53: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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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47505</link>
         <description><![CDATA[<ol><li><p>저는 공익을 위한 지식의 공개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은 알 권리가 있고 국민이 정부가 보유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받음으로써 정부의 잘못된 행위를 견제하고 부패를 방지하며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또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 주권이 중요한데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기본권인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한다.</p></li><li><p>핵티비즘을 통해 생산, 전달된 지식은 사회적 변화를 위한 정당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핵티비즘을 통해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고 사회적으로 이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핵티비즘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가시성을 확보합니다. 또 '어나니머스'와 같은 핵티비스트 그룹들이 특정 테러 단체나 부패한 조직에 맞서 싸우며 사회적 정의 실현에 기여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부, 대기업, 종교 단체 등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들이 부당한 행위를 할 때 핵티비즘은 이들에게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p></li><li><p>저는 스노든의 내부고발은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강화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정부의 대규모 감시 활동(미국 국가안보국NSA)을 폭로하여 시민들의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수호하는 데 기여했고 그의 폭로로 정부가 시민을 어떻게 감시하는지 대중에게 알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변화를 촉발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스노든은 언론과 대중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감시의 필요성과 위험성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과 관심을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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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54: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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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현상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47915</link>
         <description><![CDATA[<ol><li><p>'질서 유지를 위한 지식의 은폐'가 저는 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이러한 생각에는 제가 인터넷에서 이상한 짓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유들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법적으로 저희 나라에서는 '사생활 , 개인정보 보호법' 등을 통해 저희의 개인정보를 보장해줍니다.</p></li><li><p> 핵티비즘은 법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잘못된 행위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변화를 급진적으로 일으킨다는 점에서 사회에 유용한 도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비밀을 미끼로 삼아 정치적 거물들을 빨리 행동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면서도 유용한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많이 사용되고 남발된다면 많은 개인의 비밀이 노출되고 그들에게 심리적인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비록 유용한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안 좋은 도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p></li><li><p> 스노든의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강화한 행동입니다. 애초에 이러한 활동은 불법적인 일이고 언젠가는 밝혀젔을 사실입니다. 또한 이러한 점을 밝혔다는 점에서 정부에서는 불법적인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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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54: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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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49654</link>
         <description><![CDATA[<p>'공익을 위한 지식의 공개'와 '질서 유지를 위한 지식의 은폐' 중 어떤 것이 가치있는가?</p><p><br/></p><p>물을 따르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지만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현대사회는 지식이 공유된 순간 완전히 회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그 정보가 파장을 불러올때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이기도 한다. 사회 존속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질서유지 존재가 전제한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지식의 은폐가 불가피하다.</p><p><br/></p><p>핵티비즘을 통해 생산,전달된 지식은 사회적 변화를 위한 정당한 도구인가 아니면 법과 지식을 위협하는 행위인가?</p><p><br/></p><p>전자다. 분명 법과 질서를 위협하는 면이 존재하나, 공익 실현을 위한 최후의 수단 이라는 점에서 사이버상의 시민 불복종이라 보면 된다. </p><p><br/></p><p>스노든의 내부고발은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강화한 행동인가, 아니면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린 배신인가?</p><p><br/></p><p>전자다. 앞서 나는 질서 유지를 위한 정보 비공개를 옹호하는 취지의 주장을 많이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보 공개시의 사회적 문제가 필요 이상일 것을 우려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사례는 비공개로 인해 가져올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개인이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본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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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55: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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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3차시 질문&amp;탐구 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49961</link>
         <description><![CDATA[<p>1.공익을 위한 지식의 공개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군대의 사례처럼 질서유지를 위한 은폐에는 반드시 피해자가 생기게 되고 희생을 요구하는 질서 유지는 쉽게 깨지고 가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반면 공익을 위한 지식의 공개는 사람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 내부의 우리가 알 수 없는 비리를 막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p><ol start="2"><li><p>정당한 도구라기에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전달된 지식이고 법과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라기에는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단체를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암행어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어서 이도저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본 어나니머스가 당하지 않는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정의로운 영웅같이 보일 수 있겠지만 그들의 시선에서 좋지 않다는 이유로 피해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범죄자나 다름없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p></li><li><p>스노든의 내부 고발은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강화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그렇게 생갂한 이유는 앞서 말한 사회 내부의 비리와 같이 단순히 개인의 이득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데 내부고발이 없었다면 이를 알지 못하고 가만히 손해보면서 살아야되기 때문에 인간의 권리를 위해서는 내부고발은 부정의한 행위가 일어났을 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행동이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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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56: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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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3차시 질문 &amp; 탐구 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53040</link>
         <description><![CDATA[<p>Q1. 공익을 위한 지식의 공개와 질서 유지를 위한 지식의 은폐 중 어떤 것이 더 가치있는가?</p><p><br/></p><p>A1. 나는 공익을 위한 지식의 공개가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질서 유지가 중요한 것을 맞다. 하지만 질서 유지를 위한 지식의 은폐는 나중에 국민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정부에 대한 배신감이 생길 수 있고, 더 나아가 이러한 배신감이 신뢰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공익을 위한 지식의 공개를 우선시 해야 한다.</p><p><br/></p><p>Q3. 스노든의 내부고발은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강화한 행동인가, 아니면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린 배신인가?</p><p><br/></p><p>A3. '스노든의 내부고발이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강화한 행동이다.'라고 볼 수도 있으며, 시민들이 정부의 감시 활동에 대해 알 권리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정부의 비밀 활동을 폭로함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고 책임성을 높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반면에, 그의 행동이 국가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국제 관계에 해를 끼쳤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유출된 정보가 테러리스트나 적국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으며, 정보기관의 작전 수행에 장애를 초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스노든의 내부고발이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강화하는 행동인지 아니면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린 배신인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관점과 가치관에 따라 달리 평가할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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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58:2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53040</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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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53249</link>
         <description><![CDATA[<p> 핵티비즘은 해킹이나 불법 침투를 통해 정보를 빼내어 공개하거나 조작하는 활동을 말한다. 이러한 행위는 일부 사람들이 정의를 위해 또는 부패를 폭로하려는 의도로 행하기도 하나, 법과 질서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봐야 한다.</p><p> 첫째, 핵티비즘은 법을 어기는 행위다. 타인의 컴퓨터에 허락 없이 들어가거나 데이터를 훔치는 것은 불법 침해에 해당한다. 법은 모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개인이나 단체가 법을 무시하고 스스로 판단해 행동하면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법을 어길 가능성이 생긴다.</p><p> 둘째, 핵티비즘은 질서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 공개된 정보가 사실과 다르거나 편향되면 사회적 혼란과 불신을 키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안전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가 퍼지면 공포와 혼란이 발생하여 공공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중요한 시스템이 공격을 받으면 금융, 의료, 교통 등 사회 기반 시설이 마비될 우려가 있다.</p><p> 셋째,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안전이 침해될 수 있다. 핵티비즘으로 노출된 개인정보는 개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으며, 피해자는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특히 무고한 사람의 정보가 공개되면 그 사람의 사회적 평판과 생활이 크게 망가질 수 있다.</p><p> 넷째, 핵티비즘은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책임과 절차를 무시한다. 민주사회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때 합법적 절차와 제도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해야 한다. 핵티비즘은 이런 제도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해치는 행동이다.</p><p> 마지막으로, 핵티비즘의 피해는 예측하기 어렵고 파급력이 크다. 한 번 공개되거나 조작된 정보는 되돌리기 어렵고, 그 결과로 발생하는 혼란과 손해는 개인이나 사회 전체에 오랫동안 남을 수 있다.</p><p>결론적으로 핵티비즘은 때로는 정의를 주장하려는 의도가 있을지라도 법과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로 보아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합법적이고 책임 있는 방법으로 행동해야 하며, 법과 제도를 통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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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58: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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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53292</link>
         <description><![CDATA[<p><strong>공익을 위한 지식의 공개와 질서 유지를 위한 지식의 은폐 중 어떤 것이 더 가치있는가?</strong></p><p>현대 사회에서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힘과 영향력을 가진 자원이기 때문에 지식을 다루는 문제는 윤리적 판단이 포함되어야 한다. 공익을 위해 지식을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지식의 공유로 공익증진을 도모하고, 정치 부패 방지, 시민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성숙한 사회를 만들 수 있게 해 준다고 주장한다. 반면, 질서 유지를 위해 지식을 은폐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무분별한 지식의 공개(핵무기 제조법, 해킹 기술 등)는 인류 전체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이 입장에서는 무기 제조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지식만 공개함으로써 국가 안보나 사회 통합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의견 모두 장점과 한계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상호보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익을 위한 지식의 공개는 인간의 자유와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가치이나, 그 지식이 사회적 혼란이나 위험을 초래할 때, 질서 유지를 위한 은폐 또한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공익을 극대화하면서 질서를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의 공개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위한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적 장치의 정비가 필요하다.</p><p><br/></p><p><strong>핵티비즘을 통해 생산, 전달된 지식은 사회적 변화를 위한 정당한 도구인가, 아니면 법과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인가?</strong></p><p>핵티비즘(hacktivism)은 해킹(hacking)과 액티비즘(activism)의 합성어로, 정보기술을 이용해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을 의미한다. 이는 권력기관이나 대기업의 정보 독점을 비판하여 진실을 공개함으로써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침입을 시도하여 저항이냐 범죄냐라는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나 기업들은 종종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숨기거나 조작하기 때문에, 핵티비즘은 공익적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사회 정의와 투명성의 확대라는 윤리적 목적을 가진다. 하지만 핵티비즘은 정보 유출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국가 안보나 기업 운영 시스템을 마비시킴으로써 사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이 공익을 독단적으로 판단할 경우, 사회적 합의가 아닌 자기 확신에 기반한 판단에 의존함으로써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핵티비즘은 공익적 목적과 책임있는 방법 모두를 만족해야 사회 변화를 위한 도구로 인정될 수 있으며, 어느 하나라도 결여시 지식이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다.</p><p><br/></p><p><strong>스노든의 내부고발은 민주주의의 투영성을 강화한 행동인가, 아니면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린 인물인가?</strong></p><p>정부가 자국민과 해외 인사를 대상으로 감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음을 폭로한 스노든의 내부고발이 민주주의적 가치 실현을 위한 정당한 행위인지, 국가 안보를 위협한 불법 행위인지 논란이 되었다. 정부의 감시 시스템은 헌법이 보장한 사생활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그 불법적 행위를 알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을 회복하는 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스노든의 폭로 이후 미국과 유럽의 각국은 개인정보 보호법을 강화했고, 권력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재정립하려는 노력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테러 방지, 외교 전략, 국방 시스템 등 국가의 안보에 직결된 정보가 유출되어, 다른 나라와의 동맹관계에 긴장을 초래함으로써 국가 간 신뢰를 손상시키고 안보 체계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혼란을 가중시킨 점도 있었다. 선의의 동기였더라도 방법이 적절하지 않다면 정당성은 약화되며, 정보 공개 정도도 개인이 독단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스노든의 내부고발은 목적은 정당하였으나 불완전한 수단을 사용한 예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개인적 폭로보다는 제도적 감시, 법적 절차, 시민 참여를 통한 구조적 개혁으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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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58: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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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 20250908(3)</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53782</link>
         <description><![CDATA[<p>스노든의 내부고발에서 "공익을 위한 지식의 공개"와 "질서 유지를 위한 지식의 은폐"중 어느 것이 더 높은 가치를 가지는가? NSA에서 정보를 수집하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테러, 전쟁, 첩보 등을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보아라. NSA가 정보를 수집하지 않았더라면 모두의 안전을 위협했을 그 정보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특정 집단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자들은 타인들의 알 권리를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는다. NSA가 세계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 것은 물론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비난받을 법하다. 하지만 토마스 홉스를 인용하자면, "인간은 이기적이며, 혼란스러운 자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통치자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세계의 정보를 수집한 행위는 인류의 질서와 안보를 지키기 위한, 은밀하지만 강력하고 정당한 행위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피상적인 자유와 권리만 주장하느라 수많은 이들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스노든의 내부고발은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린 배신이다. NSA가 인류를 감시하였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게 되었다. 인류는 분노하였겠지만 테러 집단들과 무장 단체 및 독재 세력들은 안도했을 것이다. 인류를 위해 50년 가까이 강력한 시스템을 구축해온 것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그렇다면 핵티비즘을 통한 지식은 정당한 도구인가? 핵티비즘 자체는 불법행위인 해킹을 통해 사회적 신념을 표현하는 것인데, 오프라인 세상의 입장에서 보자면 약자에 속하는 테러 단체의 인질극과 같다고 할 수 있으며 절대 정당화 될 수 없다. NSA의 정보 해킹은 용인하면서 핵티비즘은 반대한다는 것이 모순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NSA의 사건에서 핵티비즘의 개념이 적용되는가? 그들이 단지 사회적 신념 또는 특수 입장을 표명하려 하였는가? 그것은 핵티비즘인가? 아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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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1:58: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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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치와 지식(III)</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56972</link>
         <description><![CDATA[<ol><li><p>아까 말했다시피, '질서 유지'가 지니는 질서의 의미가, 불편한 진실을 은폐하고 공익을 침해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질서라면 그것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공익을 위한 지식의 공개'에서 공익의 의미와, '공익을 침해하면서 얻어지는 질서'에서의 공익의 의미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전자는, 사회의 이익의 총합을 말하고, 후자는, 얻어지는 이익 말고, 오직 침해되는 이익만을 고려한다고 생각한다.</p></li><li><p>두 가지 측면을 모두 가지지만, 사회적 변화를 위한 정당한 도구로써의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지식이 가지는 본질적인 목적은, 은폐된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공익(1번의 '전자')를 증진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질서에 위협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p></li><li><p>스노든의 내부고발은,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트렸다고 생각한다. 먼저, NSA의 활동이 공익에 기여한 점을 생각해보자. NSA의 정보 수집을 통해, 테러를 방지하고, 국가 안보에 기여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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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2:00: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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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 &amp; 탐구 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73761990</link>
         <description><![CDATA[<ol><li><p>"공익을 위한 지식의 공개"와 "질서 유지를 위한 지식의 은폐" 중 어떤 것이 더 가치 있는가?</p><p>'공익을 위한 지식의 공개'가 나는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정보 사회에 대두되는 권리인 '개인의 알 권리'와 같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질서가 혼란에 빠지더라도 공익을 위해 지식을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또, 지금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지식을 은폐한다고 하더라도, 먼 미래에 그것이 밝혀질 때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지식을 공개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p></li><li><p>핵티비즘을 통해 생산, 전달된 지식은 사회적 변화를 위한 정당한 도구인가, 아니면 법과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인가?</p><p>좋은 방법으로 사용된다면 영상에서 나온 것처럼 다른 사람의 개인 정보를 악용하는 여러 기업이나 정부에 경고를 가하는 등의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정당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커들이 자신의 실력, 지식을 악용할 경우, 전 세계 인구의 개인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에 법과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p></li><li><p>스노든의 내부고발은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강화한 행동인가, 아니면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린 배신인가?</p><p>나는 스노든의 내부고발은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강화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요즘 정보 사회에서는 개인 정보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스노든이 다른 사람들의 개인 정보를 보호할 권리를 지켜주었다는 점에서 투명성을 강화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면 아무도 모르고 혼란 없이 살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과연 이게 올바른 행동일까?'라는 궁금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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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8 12:04: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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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종교란 무엇일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17307</link>
         <description><![CDATA[<p>하나의 도덕적 공동체로 통일시키기 위해 고안된 믿음의 체계</p><p><br/></p><p>갈수록 종교를 믿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음</p><p><br/></p><p>혈통의 종교vs                           동의의 종교</p><p>(ex.유대교,힌두교,유교....)    (ex.기독교,이슬람교)</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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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26: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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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18009</link>
         <description><![CDATA[<p>혈통의 종교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님을 따라 어렸을 때 부터 부모의 종교를 보고 자라나서 부모의 종교를 따라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p><p>동의의 종교는 자신이 그 종교에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고 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지식을 터득하고 그것을 또 다른 새로운 사람들 한테 전파한다.</p><p>혈통의 종교와 더 관련이 있다 생각한다. 왜냐하면 요즘 애들은 인터넷을 통해 어릴때 부터 모든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부모의 강요된 종교를 싫어하고 거부하게 되어 무종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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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27: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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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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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23673</link>
         <description><![CDATA[<p>글로벌 시대에 종교 개종이 늘어나는 현상은 어떤 의미에서 동의의 종교를 강화하는가?</p><p><br/></p><p>과거에 종교는 신앙뿐만이 아닌 문화와 관습으로서 세대에 걸쳐 퍼지고 확산되었다. 이를 통해 지역마다 믿는 종교가 다 다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 과학 지식의 발달과 여러 문화의 발달등은 해당 지역에 대한 입지를 약화시키고 타종교에 관한 기회를 늘려 그 사람의 선택으로 종교를 택할 수 있게 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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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32: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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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글로벌 시대에 종교의 개종이 늘어나는 현상은 어떤의미에서 동의의 종교를 강화하는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26978</link>
         <description><![CDATA[<p>종교를 개종하는 것이 늘어나서 사람들이 특정 종교에 대한 구속력, 소속감이 줄어들고 <em>부담없는 자아</em>(윤리 수업시간에서 배운 개념)를 더욱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혈통의 종교는 출생시 부터 이어져와서 습득 기회가 적은 반면 동의의 종교는 후천적으로 신앙생활을 포교하는 것이므로 획실히 접근기회가 많고 혈통종교보다 더욱 포교의 가능성이 높아져 동의의 종교가 강화된것으로 생각된다.또한 종교의 개종이 자유롭다는 것은 하나의 종교에 얽메일 부담감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더욱 꺼리낌 없이 종교에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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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35: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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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27816</link>
         <description><![CDATA[<p>현재 우리나라의 주요 종교 몇 가지는 그 종류로만 따지면 동의의 종교에 속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게 되는 경위는 혈통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후술하듯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종교를 선택하는 (또는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의미상으로도 동의의 종교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p><p><br/></p><p>혈통의 종교는 가족 공동체 단위로 이루어지는 의례나 생활 양식 등에 종교적 믿음을 포함시킴으로써 구성원들이 자연스레 종교를 생활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때문에 혈통의 종교에서 지식의 전승은 생활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게 된다. 반면 동의의 종교는 경전의 형태로 종교의 믿음과 지식을 정리하고 이를 포교의 형태로 전파하는 과정이 전승과 정당화에 핵심적이다. </p><p><br/></p><p>무종교인의 증가 현상은 두 가지 형태 모두에서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혈통의 종교나 동의의 종교 양쪽에서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 체계 거의 전부를 특정 종교에서 말하는 것으로 대체해야 함을 의미한다. 즉 종교 공동체에서 배척당하지 않으려면 모든 면에서 그 종교의 가치관과 생활 양식에 동화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주의와 자아 실현이 대표하는 현대인의 가치 체계에서는 종교의 방식보다 자신이 원하는 믿음을 선택하여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더욱이 사회의 권위 있는 자들이 종교가 아닌 이성을 외치고 교육하는 환경에서, 종교의 믿음을 온전히,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전통적인 방식의 포교와 교리는 더 이상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수 없어진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현대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기본(default)'이 아니라 교양 내지 취미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으로 보인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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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36: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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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28238</link>
         <description><![CDATA[<ol><li><p>저는 저희 나라의 주요 종교인 유고는 혈통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희의 유교에서는 특정한 신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희의 유교적인 '제사'라는 행위는 저희가 어릴때 조부모님등이 제사를 지내셨기 때문에 하는 종교적인 행위이기에 저희의 혈통에 따라 전승되는 종교라는 점에서 저는 저희의 주요종교는 혈통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p></li><li><p>혈통의 종교와 동의의 종교는 지식을 믿음의 형태로 전승하고 정당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종교를 믿을때는 그것의 교리, 절대자등을 믿으며 그것을 따르고 그것에 대한 믿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지식을 믿음의 형식으로 전달한다고 생각합니다.</p></li><li><p>저희 나라의 무종교인의 증가는 동의의 종교와 갚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조부모님과, 부모님은 예전과 같고 저희와 더 오랜 기간 같이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기에 현대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게 되면서 자신을 더 중시하게 되면서 외적인 것에 대한 믿음이 감소하게 되면서 무종교인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p></li><li><p>글로벌 시대에서는 많은 정보가 온라인 상에서 교환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서 자신의 믿고 따르는 것이 쉽게 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교리와 절대자에 대한 해석을 접하면서 자신의 종교가 더 쉽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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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36: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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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28366</link>
         <description><![CDATA[<p>3.원래 한국에는 절대적인 국교가 없음으로 동의의 종교는 원래 수가 적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혈통의 종교는 유교, 즉 제사와 의례, 문화 위주로 계승되어와서 이 문화를 따르는 사람의 수가 많다. 기술이 발전하며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거나 아예 다른 나라에 까지 가서 가족간의 만남이 드무어지자 그에 따른 유교의 유지도 힘들어져 혈통의 종교와 더욱 관련이 있다.</p><p><br/></p><p>4.글로벌 시대에는 종교를 가지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개종이 늘어나게 된다면 동의의 종교 내의 사람들은 종교인의 이탈을 막기위해 더욱 강한 교리를 내세우며 표교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종교를 강화할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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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36: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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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우리나라의 주요 종교는 혈통의 종교일까 동의의 종교일까</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35988</link>
         <description><![CDATA[<p>우리나라의 대표적 종교라 하면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유교이다. 그렇다면 이 유교는 혈통의 종교에 가까울까 아니면 동의의 종교에 가까울까?</p><p>유교의 큰 특징을 살펴보자면 조상 숭배, 효의 가르침, 가족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인식 등을 볼 수 있다. 여기서부터 벌써 유교는 혈통의 종교라 볼 수 있다.&nbsp;유교가 혈통의 종교라는 것은 가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유교의 본질에서 비롯되는데, 유교의 핵심 의례인 제사는 혈연을 기반으로 하는 조상 숭배 행위이며, 이는 혈통을 통해 조상과의 종교적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또한 유교의 바탕을 이루는 효 사상은 혈연관계에 대한 필연적인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보다 가족 공동체의 역할을 우선시한다. 이렇듯 유교는 사회의 기본 단위를 가족으로 설정하고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치관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는 개인의 동의를 통해 성립하는 동의의 종교와는 다른 혈통의 종교라 할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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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42: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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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15</title>
         <author>gs25190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36259</link>
         <description><![CDATA[<p>1. 우리나라의 주요 종교를 생각해보세요. 동의의 종교인가, 혈통의 종교인가? 아니면 이 둘 사이의 어떤 종교인가?</p><p>A.한국의 주요 종교들은 혈통의 종교의 성격이 강하다. 불교, 유교, 무속신앙 등이 혈연과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전승되어 왔고, 가족 단위의 종교적 전통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떄문이다</p><p>3. 현대 한국 사회에서 무종교인의 증가 현상은 혈통의 종교와 동의의 종교 중 어디와 더 관련이 깊은가?</p><p>A.혈통의 종교와 더 관련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가족 중심의 종교 전승 구조가 약화되고, 개인주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혈통을 통한 종교적 유대감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15 10:42:4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36259</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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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4차시 질문&amp;탐구 1</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37393</link>
         <description><![CDATA[<p>1. 우리나라의 주요 종교들은 보통 전세계에서도 널리 보편화되어있는 종교인데 특정 종교를 믿게 되는 원인에는 자신이 스스로 믿고 싶어서도 있지만 부모님이 한 종교를 계속 믿어온 집안인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종교를 가지고 있더라도 우리나라의 오래된 역사로 우리의 문화 안에 박혀있는 종교 활동(예를 들면 유교의 제사)같은 것들을 하고 있을 때도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주요 종교들은 동의의 종교와 혈통의 종교 사이의 무언가라고 생각한다.</p><p><br/></p><p>2. 혈통의 종교와 동의의 종교는 똑같이 주변환경을 통해 전승되어지는데 방식이 다르다. 혈통의 종교는 태어났을 때부터 한 종교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레 자신의 필요와 상관없이 믿게 되는데 동의의 종교는 자신이 정말 힘든 상황에 놓여있을 때 종교로부터 구원을 받고싶을때 종교를 찾아 믿음을 통해 자신을 안정시키는 방식으로 전승되는 것 같다.</p><p><br/></p><p>3. 현대 한국 사회에서 무종교인의 증가현상은 동의의 종교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서양은 천주교,기독교 동아시아는 불교,유교와 같이 종교의 선택권 없이 특정종교만을 선택하는 것을 넘어 믿기 싫어도 믿어야 되었다.하지만 현대의 대부분의 국가는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고 선택권이 생기면서 동의의 종교범위가 확장되어 무종교인이 증가하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p><br/></p><p>4. 종교 개종은 자신이 믿는 종교가 나를 더이상 도와주지않는다고 느껴질떄 또는 새로운 것을 믿고 싶을 때 주로 생기게 되는데 앞서 말했던 것 처럼 주변의 힘든 환경이 개종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동의의 종교가 확장된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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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43:4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37393</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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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 20250915(1)</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37625</link>
         <description><![CDATA[<p> 우리나라의 주요 종교에는 전통적으로 조선 시대로부터 전해 내혀온 혈통의 종교인 유교가 있으며 그 외에도 삼국 시대부터 전해졌던 동의의 종교인 불교, 근대화 이후 늘어나기 시작한 동의의 종교 기독교가 있다. 혈통의 종교와 동의의 종교는 계승 방식이 다름에 따라 지식의 전승과 정당화 방식도 다르다.</p><p> 혈통의 종교는 혈연을 통해 전승되는 종교이며, 이들은 특정 혈통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거나 예언이 있었으므로 당연히 대대로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이와 달리 동의의 종교는 혈통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들의 교리에 따르면 이익을 얻거나 인간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으로 교리를 정당화한다는 면에서 혈통의 종교보다는 개방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p><p> 그러나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를 믿지 않는, 무종교인이 약 60%를 차지한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데에는 혈통의 종교 보다는 동의의 종교와의 관련성이 크다. 동의의 종교는 종교를 믿는 것이 의무가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써 결정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가 중요시되는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종교를 믿지 않겠다고 선택하는 사람이 증가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대표적인 혈통의 종교인 유교는,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력이 여전히 크게 남아 있다(ex:제사의식 등).</p><p> 글로벌 시대에 종교 개종이 늘어나는 현상은 종교에 선택의 여지가 없던 과거(ex:로마의 기독교 박해, 병인박해 등)와 달리 종교를 더 이상 개인이 강제적으로 구속되어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이 동의하고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변경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시선이 늘어나며 생겨나게 되어, 동의의 종교를 강화한다. 하지만 이것은 종교 집단 내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전통적 교리를 파괴하는 문제점을 일으키고 있어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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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43: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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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37703</link>
         <description><![CDATA[<p><strong>질문1.</strong> 우리나라는 동의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20조에 따라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지며 국교는 인정되지 않고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특정 종교를 믿거나 믿지 않을 자유, 선택, 변경할 자유 등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p><p><br/></p><p><br/></p><p><strong>질문2. </strong>혈통의 종교는 혈연적 연고를 기반으로 하는 종교로서 주로 가문의 전통과 제사를 통해 지식이 전승되며 선민사상(특정 혈통이 선택 받았다는 믿음)과 전통, 관습, 같은 혈통으로 맺어진 공동체 구성원들이 상호 간의 유대감을 형성하여 지식을 정당화합니다.</p><p>동의의 종교는 신념과 동의를 기반으로 하는 종교로서 경전과 가르침을 통해 지식이 전승되는 방식을 이용합니다. 동의의 종교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에 부합하는 신앙을 선택하고 절대적인 진리나 신성한 존재에 도달하기 위한 동기, 종교의 자유 등을 통해 지식을 정당화합니다.</p><p><br/></p><p><strong>질문3. </strong>무종교인 증가는 동의의 종교와 더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혈통의 종교가 혈연에 묶인 사회적 특성이라면 동의의 종교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동의하여 종교를 선택하고 활동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따라서 개인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으므로  무종교인이 늘어난다고 생각합니다.</p><p><br/></p><p><strong>질문4. </strong>종교 개종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선택할 수 있는 신앙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그만큼 후천적인 선택을 내포하는 동의의 종교가 강화될 것입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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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44:0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37703</guid>
      </item>
      <item>
         <title>4차시 질문 &amp; 탐구 1</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37795</link>
         <description><![CDATA[<p>Q1. 우리나라의 주요 종교를 생각해요. 동의의 종교인가? 혈통의 종교인가? 아니면 이 둘 사이의 어떤 종교인가?</p><p><br/></p><p>A1. 우리나라의 주요 종교들을 보면, 대부분은 동의의 종교와 혈통의 종교의 특성이 어느 정도 혼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p><p>예를 들어, 불교와 기독교는 주로 개인의 신념과 선택에 기반하여 믿음을 갖게 되는 동의의 종교에 가까운 특징이 강하다. 사람들이 스스로 믿음을 선택하고, 교리와 신앙을 이해하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p><p>반면에, 유교는 전통과 가문, 조상 숭배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적 요소가 강하며, 일정 부분 혈통의 종교적 특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교적 가치관이 가문과 혈통, 그리고 전통을 중요시하는 문화와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p><p>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종교들이 서로 섞여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유교적 전통을 따르면서도 불교나 기독교를 믿거나, 가정 내에서 조상 숭배와 같은 문화적 관습을 유지하면서도 개인적 신념은 다른 종교를 따르기도 한다.</p><p>그래서 우리나라의 주요 종교는 명확히 하나의 카테고리로 구분하기 어렵고, 동의와 혈통의 특성이 복합된 ‘혼합형’ 또는 ‘문화적 종교’라고 볼 수 있다. 즉, 개인이나 가정에 따라 어느 쪽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지 차이는 있지만, 전통과 선택이 섞인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p><p><br/></p><p>Q2. 혈통의 종교와 동의의 종교는 지식을 어떤 방식으로 전승하고 정당화하는가?</p><p><br/></p><p>A2. 혈통의 종교와 동의의 종교는 지식을 전승하고 정당화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p><p>먼저, 혈통의 종교는 주로 혈연이나 혈통을 통해 계승된다. 즉,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종교적 신념과 관습이 자연스럽게 전해지며, 이런 방식은 전통과 연속성을 중요시한다. 혈통의 종교는 특정 공동체나 민족의 정체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지식과 관습은 권위와 역사적 계승을 통해 정당화된다. ‘우리 조상들이 전해준 것’이라는 믿음이 핵심이며, 이러한 전승은 성스럽거나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어 의심 없이 받아들여진다.</p><p>반면, 동의의 종교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동의하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이 경우, 종교적 신념과 교리는 설득력과 논리, 경험, 도덕적 합의에 근거하여 전파되고 확산된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합리성을 존중하며, 변화와 개혁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동의의 종교는 ‘믿음이 아니라 이해와 동의’를 바탕으로 지식을 정당화하며, 신앙의 의미와 근거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p><p>요약하자면, 혈통의 종교는 전통과 조상으로부터의 계승, 권위, 정통성을 통해 지식을 전수하고 정당화하는 반면, 동의의 종교는 개인의 선택과 합리적 설득, 경험적 증거를 통해 지식을 전수하고 정당화한다. 이러한 차이는 각각의 종교가 지식을 전하는 방식과 정당화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p><p><br/></p><p>Q3. 현대 한국사회에서 무종교인의 증가 현상은 혈통의 종교와 동의의 종교 중 어디와 더 관련이 깊은가?</p><p><br/></p><p>A3. 현대 한국사회에서 무종교인의 증가 현상은 주로 동의의 종교와 관련이 깊다. 이는 개인의 신념과 선택이 중요시되면서 전통적인 종교의 강제성보다는 자유롭게 자신의 신념을 결정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조상 숭배나 전통적 의례를 따르던 혈통의 종교적 요소가 여전히 일부 남아있지만, 현대에는 이러한 전통적 행위들이 선택적이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따라서, 무종교인 증가 현상은 혈통의 종교보다는 개인의 의사와 선택에 기반한 동의의 종교적 특성과 더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다.</p><p><br/></p><p>Q4. 글로벌 시대에 종교 개종이 늘어나는 현상은 어떤 의미에서 동의의 종교를 강화하는가?</p><p><br/></p><p>A4. 글로벌 시대에 종교 개종이 늘어나는 현상은 여러 측면에서 동의의 종교를 강화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p><p>첫째, 종교적 다양성과 포용성의 증대이다. 글로벌화로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접촉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기존 종교의 핵심 교리와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공통된 원칙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진다.</p><p>둘째, 개인의 영적 선택권이 강화된다. 글로벌 시대에는 정보와 사상이 빠르게 교류되어, 개인들이 여러 종교와 사상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이러한 환경은 개인이 자신의 영적 필요에 따라 종교를 선택하는 자유를 높이고, 그 결과 특정 종교의 교리와 가치에 대한 동의가 강화될 수 있다.</p><p>셋째,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이 확산된다. 전 세계적으로 종교를 바꾸거나 새롭게 믿게 되는 과정은 새로운 공동체와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며, 이는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는 종교적 특성을 강화할 수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더 포용적이고 연대적인 종교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p><p>넷째, 인권과 도덕 등 보편적 가치의 확산이다. 글로벌 시대에는 인권, 평화, 정의 같은 가치들이 널리 퍼지고 있는데, 이러한 가치에 대한 공감은 종교적 교리와도 맞물리면서, 종교 간 또는 종교 내에서 공통된 도덕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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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44: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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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38992</link>
         <description><![CDATA[<p>1.우리나라의 주요 종교는 동의와 혈통 사이의 종교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를 신앙의 절대적인 선택으로 보는 것 보다 공동체적 동의와 혈연적 전통 사이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국의 종교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종교를 가지고 있어도 유교의식을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전통적인 신앙을 믿지는 않지만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관습은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종교에서 공동체적 동의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이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 한쪽 종교에 맞춰 개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면에서 한국의 종교는 동의의 종교이고, 따라서 동의와 혈통 사이의 종교라는 것이 적절하다.</p><p>2.동의의 종교는 개인의 선택과 공동체의 합의를 중심으로 지식을 전송한다. 또한 설교, 전도 등을 통해 그 종교의 신자를 늘리려고 하며, 정당화 방식은 경전 등을 통해 설득을 한다. 혈통의 종교는 세대 간 전승이 중요한데,전송 방식은 가정, 일상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는 방식이다. 또한 정당화 방식은 전통에 기반한다. 조상 대대로 해왔고, 따라서 구성원들은 그대로 행동하게 된다.</p><p>3.현대 한국 사회에서 무종교인의 증가는 동의의 종교에 더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개인들의 자유가 강화되었고 이로써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한 특정 종교가 진리라는 인식이 힘을 잃으면서 어떤 한 종교에 강하게 얽매여 있는 경우가 줄어들었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창조론 등이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힘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종이 일어나는 이유도 사람들의 자율성 증가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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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45: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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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 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39848</link>
         <description><![CDATA[<ol><li><p>우리나라의 종교는 동의의 종교이기도 하지만, 혈통의 종교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유교의 제사, 차례와 같은 것처럼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해왔던 것은 혈통의 종교라고 할 수 있지만,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른 우리나라의 주요 종교는 태어날 때부터 해오던 것이 아닌 후천적으로 종교활동을 한 것이기 때문에 동의의 종교와 혈통의 종교가 섞여있다고 생각한다.</p></li><li><p>혈통의 종교는 부모나 친인척이 후대에 종교에 대한 지식을 전해주는 것으로 전승되고, 동의의 종교는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포교활동이나 인터넷을 통한 전파를 통해 전달된다고 생각한다.</p></li><li><p>현대 한국 사회에서 무종교인의 증가 현상은 동의의 종교와 더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혈통의 종교는 태어날 때부터 계속 그 종교의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일상처럼 여겨져 이상할 것이 없지만, 동의의 종교는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주의 가치관의 확산, 종교 기관에 대한 불신, 현실적 문제 해결 불가 등의 갈등을 겪으며 동의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무종교인으로 전환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믿지 않을 수 있어서 동의의 종교가 무종교인의 증가에 더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p></li><li><p>일단 종교의 개종이 일어나는 이유는 현재 믿는 종교의 가치관과 자신의 가치관 차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자하는 심리 등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의의 종교는 포교활동을 활발히 하고, 많은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킴으로서 혈통의 종교보다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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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45:5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39848</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41748</link>
         <description><![CDATA[<p>지식과 종교</p><ol><li><p>조직화된 종교 체계인가, 아니면 개인의 사생활인가?</p></li><li><p><strong>무교도 하나의 종교적 입장이라 할 수 있는가? 무종교 증가 현상은 혈통의 종교와 동의의 종교 중 어디와 더 관련이 깊은가?-----</strong></p><p>무교를 표방하는 인구의 증가는 단순히 신앙심의 약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무교인들이 신을 믿지 않더라도 자연, 우주 질서에 대한 경외심으로 삶을 바람직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 종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관이나 위안을 주는 기능을 일부 가질 수 있다. 종교를 초월적 신에 대한 신앙으로 정의내린다면 무교는 종교라고 볼 수 없으나 종교를 신념 체계로 보는 관점에서는 무교도 신앙의 자유를 선택한 믿음으로 볼 수있을 것이다. 산업화, 도시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면서 개인주의와 합리주의가 보편화되면서 개인이 스스로 판단하여 신앙을 선택하는 성격이 강해졌기 때문에 무교가 증가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종교가 더 이상 혈통이 아니라 개인의 동의와 선택의 문제가 된 것으로 종교의 쇠퇴가 아닌, 종교적 선택의 주체가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동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즉 무종교의 증가 현상은 동의의 종교와 관련이 깊다고 해야 할 것이다.</p><p><br/></p></li><li><p><strong>혈통의 종교와 동의의 종교는 지식을 어떤 방식으로 전승하고 정당화하는가?</strong></p><p>세계적으로 다양한 종교가 있으나, 종교마다 지식이 전승되고 정당화되는 방식은 크게 다르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종교를 혈통의 종교(전통 종교)와 동의의 종교(개인 선택의 종교)로 구분하였다. 이슬람, 힌두교, 유대교와 같은 혈통 종교는 출생과 동시에 신앙 체계도 물려 받기 때문에 신앙이 공동체 단위로 계승된다. 교리, 의례등의 지식은 습관, 생활양식을 통해 전수됨으로써 체화된다. 혈통 종교에서 지식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가르침이기에 옳다는 신성한 권위가 정당화의 기반이며 비판보다는 복종, 개인보다 공동체가 우위에 있다. 지식은 불변하며 그 불변성 자체가 진리의 증거가 된다. 개신교, 일부 불교의 종파에서의 동의의 종교는 교육, 개인적 체험을 통해 신앙이 전수되며, 이때 자발적 동의와 참여 행위가 필요하다. 지식은 합리적 설명, 개인적 체험을 통해 정당화되기 때문에 외부 권력보다 내적 확신과 이성적 해석에 의해 뒷받침된다. 두가지 종교 형태는 보존 vs 변화, 권위 vs 자율이라는 대립적 특징을 가지나, 이 두방식이 균형을 이루어 지식의 안정성과 생명력을 가질 때 종교는 시대와 소통할 수 있게 된다.</p><p><br/></p></li><li><p>개종이 늘어나는 현상은 어떤 의미에서 동의의 종교를 강화하는가?</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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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47: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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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종교와 지식(I)</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41812</link>
         <description><![CDATA[<ol><li><p>우리나라의 주요 종교는, 혈통의 종교의 측면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부터 발달해온, 우리나라의 배경의 큰 역할을 차지하는 유교는 대부분의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의 생각에 근본으로 깔려 있는, '나이 많은 사람을 공경'하고, '보수적인' 사상들은, 우리의 의지와 크게 관계없이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며 작용한다. 다만, 이를 탈피하고, 조금 더 진보적으로, 주도적으로 살아가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은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종교의 혈통적인 측면은 가족이 하는 것을 따라 제사를 지내는 행위 등이 있다. 이러한 행위도, 개인의 의지에 크게 상관없이, '가족이 하니까 하는 것이다', 와 같은 반응이 드러나고, 대부분 나이 많은 가족들이 하지 않으면 굳이 하지 않을 행위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종교는 두가지 측면이 모두 있지만, 동의의 종교의 측면이 더 강해지고 있고, 전체적으로 봤을때 종교라는 것 자게가 약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p></li><li><p>두 종교는 모두 사회적 압력에 의해 지식을 전승하고 정당화한다. 태어날 때 부터 가족의 영향을 받고 종교의 영향을 자연스럽게 받으며, 사회에 나가도, 대다수가 자신과 같은 종교를 믿고 있기 때문에, 이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을 크게 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p></li><li><p>더? 어디와 더? 1번에서 말한것과 달리, 생각해 보니, 동의의 종교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동의의 종교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고, 친족의 죽음 등을 통해서 종교를 따르지 않는, 혈통의 종교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이들이 반복되어, 동의의 종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조금씩 생기고,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요즘 대부분의 20대 이하의 사람들은 유교에 큰 제약을 받지 않고 살아간다. 그래서, 이런 기하급수적인 탈피가 반복되며, 동의의 종교의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p><p><br/></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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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47: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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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 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51552</link>
         <description><![CDATA[<p>성스러운 텍스트는 종교의 강점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성스럽다는 말 자체가 종교에서부터 나왔고 종교만의 텍스트를 사용하면 좀 더 신비로운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p><p>오히려 아무 대처 안하고 가만히 원래대로 하는것이 좋은 대처일 수도 있다.</p><p>외부는 종교의 지식 체계에 개입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외부와 내부를 딱 나눠놓을때 종교만의 장점이 나타나기 때문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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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54:4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51552</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53064</link>
         <description><![CDATA[<ol><li><p>성스러운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것은 종교의 장점이다. 왜냐하면 다른 과학같은 학문과는 다르게 어느 누구가 오더라도 절대적인 신이나 신앙의 대상의 말을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구성원들을 격려시키고 믿음을 키우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p></li><li><p>종교 전통은 대응을 해선 안된다. 왜냐하면 종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바뀐적 없는 글이므로 사회적 상황 정도로 신앙이 흔들리게 할 수 있는 변화를 취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혹시 이를 대처하려면 사회적 변화를 종교의 틀 내로 가져오려는 시도를 하지, 종교의 변화를 줘선 안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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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55: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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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55645</link>
         <description><![CDATA[<ol><li><p>성스러운 텍스트가 불변적이라는 것은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옛날 사람들이 추구하고 맏고자 했던 지식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글들은 오래전에 만들어 졌으면 만들어질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사상을 담고 있다는 점을 통해서 매우 가치있는 문헌이라고 생각합니다. </p></li><li><p>종교 전통은 바뀌어 가는 시대애서 예전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문화이기에 예전의 전통성을 강조하며 사회를 통합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p></li><li><p>외부의 변화가 내부 종교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종교도 문화라는 점에서 외부의 영향을 받으며 관습이 바뀌게 됩니다. 주로 바뀌는 방식은 당시 사회의 인식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합니다. 이러한 점을 통해 종교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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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0:57:0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55645</guid>
      </item>
      <item>
         <title>질문 @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57444</link>
         <description><![CDATA[<p>성스러운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종교적 지식의 강점일까? 약점일까?</p><p><br/></p><p>모두 지니고 있다. 성스로운 텍스트의 불변성은 그 종교의 존재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확산하는 기틀이 된다. 하지만 그 내용이 현대 지식과 비교하여 모순되는 부분이 있을 경우 그 기틀이 무너지는 위험도 있다.</p><p><br/></p><p>새로운 사회적 상황(예 여성 인권, 과학 발전)이 등장했를 때,종교 전통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p><p><br/></p><p><br/></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15 10:58:3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57444</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59454</link>
         <description><![CDATA[<p>3.텍스트의 불변성은 종교 지식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변화에도 변치않는 텍스트에 따라 종교 지식도 종교의 구성이라는 직책을 부여받기 때문이다.</p><ol start="4"><li><p>세속 사회가 종교 공동체의 지식 체계에 개입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종교는 외부에 변화를 받지 않아아만 하며 만약 현대의 정보로 무장한 개인도 종교에 접근할 때에는 기술에 대한 지식을 버리고 종교를 종교 그 자체로 바라봐야만 하기 때문이다.</p></li></ol>]]></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15 10:59: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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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59704</link>
         <description><![CDATA[<p>종교는 교인들을 납득시키고 믿게 하지 않는다면 존재 의의를 상실한다. 대부분의 교리는 해당 종교가 표방하는 핵심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교인들로 하여금 생활화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설계되었고, 이것이 불변의 진리인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면 이 목표를 이루기에 용이하다. 따라서 종교적 텍스트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는 점은 종교의 메시지가 언제나 보편타당한다는 의미를 함축하므로 종교의 권위 유지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텍스트가 언제나 보편타당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가령 이슬람교의 대표적 하람 식품인 돼지고기는 건조 기후 지역에서 불필요한 자원 소모를 유발하는 돼지 사육을 억제하기 위해, 즉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로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1500년이 지나고 이러한 시대적 맥락이 희석된 지금,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교리는 종교에 권위를 실어 주기는커녕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강제로 다가온다. 종교적 텍스트가 불변의 진리라는 믿음은 분명 종교에 강점으로 작용하지만, 시대적 상황상 그 믿음이 도저히 존립하기 어려워지면 오히려 역효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종교를 누르고 보편적 믿음으로 떠오른 비결로, 권위가 아닌 진리를 찾아 스스로 믿음 체계를 끝없이 수정해 왔다는 점을 든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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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00:0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59704</guid>
      </item>
      <item>
         <title>성스러운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종교적 지식의 강점일까 단점일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61294</link>
         <description><![CDATA[<p>지식이라는 것은 항상 변하고 발전하는 것이므로 표면적인 입장에서 생각할 때는 단점이라 볼 수 있다. 우리가 만약 성스러운 텍스트가 만들어진 시대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것은 지식적인 측면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고 '성스러운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단점이  될 것이다.</p><p> 하지만 이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이 2가지 정도 있다. </p><p>첫번째는 역사적, 전통적, 인류 발전적 관점이다. 성스러운 텍스트를 그저 단순한 지식이 아닌 역사적, 전통적, 인류 발전적 가치를 지닌 유물, 사료등으로 뽄다면 여기서 색다르고 많은 지식을 발굴해낼 수 있을 것이다.</p><p> 두번째는 종교 자체의 존재의미로서의 성스러운 텍스트가 가지는 지식으로서의 가치이다. 종교는 애초에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초월적 존재의 필요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의지할 대상이 필요하여 '종교의 성스러운 텍스트'가 사용되는 것이라면 그 목적을 충족하는데에는 성스러운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단점이 될 수 없을 듯하다.</p><p>따라서 나는 '성스러운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단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관점을 조금 바꿔보면 매우 흥미로운 장점이 될 수또 있다고 생각한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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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01: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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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9/15-2</title>
         <author>gs25190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65531</link>
         <description><![CDATA[<p>1. 양면성을 가집니다.&nbsp;</p><p>장점 종교의 정체성과 연속성을 유지하며, 신앙의 안정성을 제공함</p><p>단점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하기 어렵고,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기 힘듦</p><p>2. 유연성을 발휘해야 함. 핵심 가치는 유지하되, 성경이나 경전의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상황에 맞는 적용 방안을 찾아야 함. </p><p>3. 제약을 만든다. 텍스트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그에 대한 해석과 적용은 계속 발전할 수 있다..</p><p>4. 선택적 수용을 해야함. 종교 공동체는 자율성을 유지하되, 인류 보편적 가치 와 상충되는 부분은 재검토. 완전한 폐쇄도, 무분별한 개방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핵심 신앙은 지키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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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04:0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65531</guid>
      </item>
      <item>
         <title>4차시 질문 &amp; 탐구 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65568</link>
         <description><![CDATA[<p>Q1. 성스로운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종교적 지식의 강점일까? 약점일까?</p><p><br/></p><p>A1. 먼저, 강점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성스러운 텍스트의 불변성은 종교의 정통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텍스트가 변하지 않음으로써 신앙의 핵심 교리와 가르침이 일정하게 유지되어, 신도들이 신뢰하고 따라야 할 기준이 명확해진다. 이는 종교 공동체의 정체성과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며, 신앙을 전승하는 데 있어 안정성을 제공한다.</p><p>반면, 약점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시대적 변화나 새로운 이해에 대한 유연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가치관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거나, 새로운 해석과 발전이 어려워 교리의 진화가 정체될 수 있다. 이는 종교가 현대 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될 수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p><p>따라서, 성스러운 텍스트의 불변성은 종교의 정통성과 안정성을 높여주는 강점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시대 변화에 대한 유연성을 저해하여 약점이 될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p><p><br/></p><p>Q3. 성스러운 텍스트의 불변성은 종교적 지식 체계에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가?</p><p><br/></p><p>A3. 성스러운 텍스트의 불변성에 대한 개입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p><p>먼저, 시대와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과 이해관계도 변화한다. 따라서 성스러운 텍스트를 무조건 고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요구에 적응하는 데 방해가 된다. 텍스트를 개정하거나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더 포용적이고 현실적인 신앙생활이 가능하다고 본다.</p><p>또한, 성스러운 텍스트의 불변성을 이유로 권위가 남용될 위험이 있다. 권위자들이 텍스트를 절대화하여 해석권을 독점하거나, 교리의 유연성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종교의 본래 정신을 훼손하고, 신도들의 자유로운 신앙과 비판적 사고를 저해할 수 있다.</p><p>따라서, 나는 성스러운 텍스트의 불변성에 무조건 개입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시대적 맥락과 신앙인의 삶에 맞게 유연하게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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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04:0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65568</guid>
      </item>
      <item>
         <title>4차시 질문&amp;탐구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69093</link>
         <description><![CDATA[<ol><li><p>성스러운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종교적 지식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그 텍스트가 하나의 종교를 상징하는 문장이 될 수 있고 이러한 것들이 모여서 성경,쿠란과 같이 종교적 지식의 모음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li><li><p>새로운 사회적 상황이 등장했을 때 종교 전통은 전통을 조금은 포기해야될지라도 사회적 상황에 맞춰서 대응해야한다고 생각한다.이 상황의 가장 큰 예시로는 인도의 민족 종교인 힌두교,동남아에서 주로 믿고있는 이슬람교가 있는데 먼저 이슬람교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히잡문화를 현재까지도 이어나가고 있는 국가가 많다. 뿐만아니라 히잡의 착용여부로 인해 죄없는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이 자주 나오기도 한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는아직까지도 종교때문에 카스트제도라는 신분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카스트제도가 인도가 인구수 1위임에도 발전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현대사회와 맞지 않는 종교 전통은 그 종교의 이미지를 악화시키거나 사회를 과거에 머물게 하는 안좋은 영향을 미친다.</p></li><li><p>성스러운 텍스트의 불변성은 종교적 지식의 역사와 같이 남아서 이는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통해 살아숨쉬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의 역사또한 그 종교의 시작과 현재도 텍스트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문화재를 보호하려는것처럼 종교적 텍스트 또한 그들을 위해 보호해줘야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p></li><li><p>와부의 변화속에서 내부의 지식체계가 윤리적으로 잘못되었다면 충분히 개입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종교가 새로운 사회에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면 단지 내부의 체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외부가 종교에 개입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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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06:3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69093</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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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71506</link>
         <description><![CDATA[<p>1.성스러운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종교적 지식의 약점으로 작용한다. 현대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무리 성스러운 텍스트라고 해도 이는 정확할 수 없기 마련이고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뒤쳐지게 된다. 여기서 뒤쳐지는 것은 신자를 많이 확보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종교적 지식이 설득력을 잃는다는 사실이 가장 종교에 있어서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성스러운 텍스트가 바뀌면 현재까지 내려오던 지식이 부정되어 위험하다는 인식을 버리고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종교 교리에 완전히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융통성 있게 바꿔가야 한다. 또한 선대에 성스러운 텍스트를 쓴 사람이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틀린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종교가 시대에 맞춰 발전해나갈 수 있다.</p><p>2.새로운 사회적 상황에 대해 종교 전통은 교리를 융통성 있게 변형해야 한다. 교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회의 변화를 막는 경우도 많이 존재하지만 특정 종교의 일반화와 발전보다는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과학적, 사회적 발전이 더 중요하다. 이에 따라서 종교적 교리는 과학적, 사회적 발전에 자신들을 맞추어 나가거나 끝까지 고집하다가 종교가 사라지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p><p>3.성스러운 텍스트의 불변성은 종교적 지식 발전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종교가 몰락하는 것에 대한 중대한 요인이 될 것이고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것의 불변성은 그저 원래 독실한 신자였던 사람들을 붙잡아 두는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특정 종교는 매우 엄격한 교리를 가지고 있고 이는 현대 사회에서 매우 부적절한 상황을 불러일으키고 종교 신자들의 사회적 적응을 직접적으로 방해할 것이다. 결국 이는 종교에 새로운 신자를 감소시키고 원래 믿던 신자들의 능력도 약화시킬 것이다. 예전에 유리했던 교리들은 현재는 쓸모 없어졌기 때문에 이를 바꾸지 않고 강하게 무력 등을 사용해 고집하면 결국 종교의 파국을 불러올 것이다.</p><p>4.외부의 변화는 당연히 내부 지식 체계에 결합해야 한다. 이것이 정당한지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종교가 주가 아닌 외부의 변화가 인간의 번성에 주요하기 때문에 외부의 변화가 개입하는 것을 정당한지 따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종교가 사회에 맞춰가야 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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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08: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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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72125</link>
         <description><![CDATA[<p><strong>질문1. </strong>성스러운 텍스트는 아주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 문화적으로 그 텍스트가 만들어진 시대와 비교했을 때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따라서 그 당시에는 성스러운 텍스트라고 해도 현재에는 왜곡되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스러운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은 종교의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종교와 학문적 영역을 별개로 생각하며 이와 분리하여 본다면 종교는 그 본질을 지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p><p><br/></p><p><strong>질문2. </strong>새로운 사회적 상황이 등장했을 때 종교 전통도 이에 따라 바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변화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이에 따라 종교도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적응력 유지, 삶의 질 향상, 그리고 사회적 통합 및 공동체 문화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서 바껴야합니다. 변화하는 사회적 요구를 무시하면 종교는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p><p><br/></p><p><strong>질문3. </strong>성스러운 텍스트의 불변성은 종교적 지식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다. 만약 종교적 텍스트가 현대의 지식에 모순되고 부족한 점이 발견된다면 이를 바꿀 수 없으므로 신자들이 잘못된 신앙을 믿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지식 발전이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잘못된 지식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p><p><br/></p><p><br/></p><p><strong>질문4. </strong>외부 변화가 종교 공동체의 지식 체계에 개입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인간 존엄성을 유지하는 내에서 이루어지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종교의 자유와 기본권을 보호하는 배경을 바탕으로 지식 체계에 사회가 개입한다면 오히려 이치에 맞지 않는 내용, 부족한 부분을 상호 보완할 수 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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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08: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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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 20250915(2)</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72753</link>
         <description><![CDATA[<p> 쿠란, 성경과 같은 성스러운 텍스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시대, 인종 등에 구애받지 않고 보편적으로 인정받으며 옳은 진리(ex:신약성경에 담긴 비유들 ), 두 번째는 당시의 시대상과 문화적 요소가 첨가된 불변하지 않는 진리이다.</p><p> 이렇게 구분지어 보았을 때, 성스로운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종교의 약점이 될 수 있다. 과거에 쓰여진 텍스트가 현대의 기준에서 보았을 대 차별적이고 보편 윤리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통적인 종교의 지도자들은 이것을 대개 수정하지 않고 유지하며, 이렇게 보수적인 성향은 때때로 부패를 불러오기도 한다. 현대뿐만 아니라 중세를 보더라도, 이렇게 발생한 부패를 해결하고 세속 사회에 상응하도록 고치려는 종교 개혁이 종종 발생했고, 이것은 전통적인 종교와 분리된 새로운 종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종교 공동체의 지식 체계는 세속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은 버려야 하며 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에 동의한다.</p><p> 그러나 덧붙이자면, 특히 근대 이후에에 들어, 세속 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이 왜곡되어 개인 또는 집단의 사익을 추구하도록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사이비 종교). 이들은 현실과 맞지 않는 종교 지식 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종교 지식까지 부정하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이러한 측면에서 종교의 뼈대를 이루는 성스러운 텍스트가 변경되는 것은 어느 정도 통제되어야 한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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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09: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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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스러운 지식 변화 x=강점 or 약점?</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73117</link>
         <description><![CDATA[<p>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종교적 지식의 약점이라 생각한다. 옛날과는 다르게 현대에 종교를 믿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과학의 발전이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기존의 상식이 뒤바뀌는 세상인데 여기서 성스러운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텍스트가 오류를 포함하더라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놔둔다는 말이 될 수 있기에 마냥 사회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태되는 것인 아닌 해당 종교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15 11:09:3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73117</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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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74727</link>
         <description><![CDATA[<p><strong>성스러운 텍스트들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종교적 지식의 강점일까? 약점일까?</strong></p><p>성경이나 경전등이 바뀌지 않는 것은 신의 가르침이 인간의 해석이나 이해에 따라 변하지 않도록 해 주는 일관성의 보존의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세상이 변화하더라도 일관성 있는 절대적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신앙을 믿는 사람에게 정신적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가치관과 사회 구조도 바뀌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과학기술의 윤리, 젠더 평등, 환경 문제 등)에 대해 답을 제공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이에 종교가 현실과 동떨어져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괴리를 느끼게 하는 한계점도 있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텍스트의 내용은 변하지 않더라도 해석은 새로워질 수 있으며, 이것은 인간이 이해하는 방식은 유연성 있게 변화해야 종교적 지식도 살아있는 지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쿠란에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구절이 있어서 최대 4명의 아내를 둘 수 있으나 이것은 쿠란의 쓰여진 7세기 아라비아 상황에 맞추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의 성격을 띤다. 그러므로 이것을 오늘날에 적용하여 일부다처제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쓰여져서는 안될 것이다.</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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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10: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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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 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277083</link>
         <description><![CDATA[<ol><li><p>성스러운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종교적 지식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종교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변함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의 역사적, 종교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후대의 전승자들은 먼 과거의 종교를 정확하고 자세히 알 수 있으며 포교 활동을 하여 종교를 크게 키우는데도 좋다. 반면, 이것은 종교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여러 과학 기술들이 발전하면, 당연히 종교의 과학적이지 않은 부분과 과학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성스러운 텍스트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종교의 신자들의 과학과 종교에 대한 지식에 혼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약점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p></li><li><p>성스러운 텍스트의 불변성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후대의 기록자, 전승자들에게 매우 큰 종교,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또 종교의 세부적인 내용을 자세히 알게 해주는 특성이기 때문에 성스러운 텍스트의 불변성은 종교적 지식 발전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p></li><li><p>나는 현대 세속사회의 지식이 종교적인 지식에는 영향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신을 기반에 두는 종교의 창조론과 다윈의 진화론(자연 선택)의 대립처럼, 예전부터 과학과 종교의 갈등은 만연히 존재했고, 종교는 종교만의 역사와 내용이 있는 것이고, 과학은 과학만의 이성을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역사와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의 역사에 현대의 과학이 개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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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12: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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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02071</link>
         <description><![CDATA[<ol start="2"><li><p>종교가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학이 설명하지 못한 이유는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인데, 원래는 그저 채워지지 않았던 지식이였지만 종교가 개입하며 하나의 가설이 생기고 이를 반박하며 찾아나가는 것이 과학의 진보를 촉진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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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32: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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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지식과 종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02687</link>
         <description><![CDATA[<p>공존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생물은 창조되었고 그 기본적인 생물들이 진화하면서 지금의 이 상태가 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p><p>아니다.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은 아직 과학이 덜 발전한 것 뿐 시간이 지나고 과학이 발전하고 나면 설명할 수 있을것이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15 11:33: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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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04455</link>
         <description><![CDATA[<ol><li><p>통합과학 시간에 배운 진화론과 창조론의 차이는 창조론은 절대자께서 생명체를 만드셨다는 입장이고 진화론의 입장에서는 종 분화를 통해 하나의 종에서 수많은 종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둘의 개념이 공존하는 것이 물가능하다</p></li><li><p>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분야는 매우 많다. 우리가 과학의 개념으로 보는 우주의 대부분은 사실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모든 우주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를 종교말고도 자신의 신념, 믿음등로 자체적으로 해석하는 것ㅇ 또한 가능하기에 모든것을 과학이 설명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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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34: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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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종교와 지식(III)</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07485</link>
         <description><![CDATA[<ol><li><p>진화론과 창조론이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p><p>둘이 가진 가치는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 공존은 힘들다고 생각한다. 처음 시작부터, 진화론은 단세포 생풀 하나만으로 시작했고, 창조론에선 처음부터 다양한 생물들이 태어났다. 또한, 진화론은 거시적인 진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타당성을 입증하지만, 창조론은 이미 완성된 인간이라는 개체가 존재함을 주장한다.</p></li><li><p>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은 반드시 종교가 설명해야 하는가?</p><p>과연,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종교를 통해서만 설명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아직도 과학으로 접근조차 불가능한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많다. 이러한 현상들은,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하나하나씩 실마리가 풀릴 것이고, 설령 풀리지 않는다 해도 이를 종교로 설명해야 할 의무는 없다. 물론, 사회적으로, 사람들의 공동체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설명하기 힘든 현상을 종교로 설명한 역사는 존재한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지배자나 절대자가 완전하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러한 노력이 필요할까? 굳이 종교로 설명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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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37: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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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07562</link>
         <description><![CDATA[<p>진화론과 창조론이 완벽하게 양립할 수 없을지언정 진화론 등의 과학적 지식과 종교적 믿음이 양립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물론 신의 의도로 생명의 씨앗이 탄생하여 이로부터 진화의 과정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이는 두 입장이 온전히 양립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배제한다.) &lt;성경&gt;과 &lt;종의 기원&gt;은 그 서술 목적이 다르고, 과학과 종교는 그 존재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창조론을 주장하는 크리스트교이지만, 크리스트교의 핵심은 창세기의 내용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lt;성경&gt;의 핵심 메시지는 '신을 매개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로 정리되고,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신의 위대함을 설파하기 위해 창조론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진 것이다. 과학은 자연의 구동 원리를 설명하는 학문이지만, 그러한 객관적 지식이 밝혀진다고 해서 인간의 존재 의의를 납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종교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규명하고 이를 설파하기 위해 믿음이라는 수단을 활용하는 학문이므로, 종교에 세상의 구동 원리를 설명하는 '맞지 않는 기능'을 붙이지 않는 한 그 의의가 충분히 있다. 단지 &lt;성경&gt;의 구절 하나하나의 진위 여부에 얽매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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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37: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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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 @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08132</link>
         <description><![CDATA[<p>진화론과 창조론이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p><p><br/></p><p>진화론과 창조론은 서로 다른 방식의 설명이지만 반드시 배척할 필요는 없다. 진화론이 생명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밝힌다면, 창조론은 존재의 근본적  의미를 다룬다. 따라서 두 관점은 상호 보완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또한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이 반드시 종교의 몫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며 과학이 새로 밝히는 부분도 많기 때문이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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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37:3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08132</guid>
      </item>
      <item>
         <title>4차시 질문&amp;탐구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09727</link>
         <description><![CDATA[<p>  </p><p> 1. 진화론과 창조론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만약에 종이 계속해서 진화해온다면 나무도 처음에는 작은 씨앗으로 시작하듯이 진화하기 이전의 존재가 반드시 존재해야되는데 이것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게된다면 결국에는 창조라는 개념이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p><p><br/></p><ol start="2"><li><p>과학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은 반드시 종교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반대의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 개념으로 더이상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그 반대 개념으로 반드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단순히 숫자로 예를 들어보자면 한 숫자에서 시작해 허수i를 만들어야 되는데 그것에 실수를 더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실수를 빼는 방법으로 무조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종교만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개념으로 생각해 봐야 되는 것이다.</p></li></ol><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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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38:5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09727</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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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화론과 창조론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10197</link>
         <description><![CDATA[<p>나는 이 질문을 과학과 종교가 공존할 수 있냐는 질문으로 변형시켜보겠다.</p><p>나는 과학과 종교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서로 존재의 본질이 상충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의 목적은 세상에 대한 지식을 탐구해가는 것이고 종교의 목적은 믿음이라는 강력한 매게체를 통해 신앙심등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p><p>나는 이세상 모든 것이 과학으로 입증(그럴 일은 없겠지만)된다 해도 종교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밎는다. 그 이유는 종교의 목적이 사실 판단 여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존재이다. 종교적 경험을 과학적으로 입증 할 수 있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삼매 현상과 인간이 하나의 것에만 깊게 생각하여 들어가는 플로우 현상이 매우 비슷한 현상이라는 것이 입증됬다(가바 신경전달 물질,.... 등) -&lt;몰입&gt; 책참고 </p><p>따라서 인간에게 심적 안정감을 준다는 점에서 존재 할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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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39: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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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15-3</title>
         <author>gs25190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12771</link>
         <description><![CDATA[<p>1. 유신론적 관점에서(신이 진화를 이끌었다는 관점)기독교와 같은 종교에서 신이 우주의 창조와 생명의 발달을 주관했음을 믿으면서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명체가 진화했다는 과학적 사실을 인정하는 입장이다 즉, 신이 창조했지만, 그 과정은 진화라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진행되었다고 본다.</p><p>2. 아니다 정확히 말해 과학이 설명할수 없는 부분을 물론 종교가 설명할 수 있지만 반드시 모든 영역을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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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41: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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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13679</link>
         <description><![CDATA[<p>종교vs과학</p><p>ex)천동설-지동설</p><p>      창조론-진화론</p><p><strong>진화론과 창조론이 공존할 수 있는가?</strong></p><p>진화론은 관찰과 증거에 기반한 과학 이론으로 다윈 이후의 진화론은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의 발전을 통합하면서 생명의 다양성과 기원을 설명하고 있다. 반면 창조론은 신에 의한 창조 행위를 기반으로 하는 신앙 체계로서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이론이라기 보다는 믿음의 영역에 속한다. 진화론은 생명의 변화 과정에 대한 이론이며, 창조론은 생명의 존재 목적을 제시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충돌하지 않을 수 있다. 기독교를 예로 들었을 때,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입장, 진화를 신의 섭리로 인정하는 입장, 창세기 부분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과학과 신앙을 조화시키려는 입장 등, 다양한 입장이 있으며, 가톨릭 교황청도 진화론과 신앙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따라서 두 입장이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면 서로 다른 질문에 대답하는 것으로서 공존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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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41:4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13679</guid>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13886</link>
         <description><![CDATA[<p><strong>질문1. </strong>진화론과 창조론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화론을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 영역으로 생각하고 창조론은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세계관으로 이해한다고 두 영역이 서로 상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p><p><br/></p><p><strong>질문2. </strong>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은 아직까지 우리가 그 원리를 찾지 못했을 뿐 그 영역을 설명할 수 있는 진리는 항상 존재합니다.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 보아도 과거에는 설명할 수도 없었던 많은 영역을 현재 사람들이 발견하고 발명하였습니다. 우리의 과학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현재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을 반드시 종교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15 11:41: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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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4차시 질문 &amp; 탐구 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14248</link>
         <description><![CDATA[<p>Q1. 진화론과 창조론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p><p><br/></p><p>A1. 나는 종교는 주로 창조론을 중심으로 믿어진다고 생각한다. 많은 종교적 믿음은 신이 우주와 생명을 창조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창조론과 연결된다. 그러나 진화론은 이러한 창조론의 전체 틀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을수록,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로서 자연 선택과 유전적 변이를 통해 생명이 발전했다는 설명을 제공하는 반면, 이로 인해 종교적 신앙심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p><p>이러한 경험은, 진화론이 생명의 기원과 다양성을 자연적 과정으로 설명하면서, 종교적 믿음과 충돌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진화론과 창조론이 서로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둘은 각각 다른 세계관과 해석 방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하나의 진리로서 양립하기 어렵다고 느낀다.</p><p>이러한 견해는, 과학적 연구와 종교적 신앙이 서로 다른 역할과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명확해진다. 과학은 자연 현상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데 집중하는 반면, 종교는 존재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도덕적 가치를 제시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나는 이 둘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질문에 답하는 다른 방식이라고 이해하지만, 결국 두 관점이 하나의 진리로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점에서, 나는 진화론과 창조론이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p><p>이와 같은 생각은, 인간이 세상과 생명의 기원에 대해 갖는 깊은 신념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받으며, 개인적 신념이나 신앙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이 두 관점은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것으로 보이며, 하나를 선택하거나 서로 적절히 조화시키기 어렵다고 느낀다.</p><p><br/></p><p>Q2.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은 반드시 종교가 설명해야 하는가?</p><p><br/></p><p>A2. 나는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반드시 종교가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은 자연 현상과 법칙을 경험적 증거와 실험을 통해 이해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미지의 영역도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미지의 영역에 대해 종교적 설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p><p>개인적으로, 과학의 발전으로 자연과 우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종교적 설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탐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과학과 종교는 각각 다른 역할과 영역에 속하며, 과학은 자연 세계의 법칙을 밝히는 데 집중하는 반면, 종교는 초월적 존재와 신앙적 체계를 다룬다. 따라서,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종교적 해석이 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p><p>나는 개인적 신념이나 철학적 사고를 통해 삶과 우주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과학적 탐구와 별개로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각자의 믿음과 사고방식에 따라 그 해석은 달라질 수 있으며, 반드시 종교적 설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고 자연스러운 선택임을 믿는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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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42: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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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15827</link>
         <description><![CDATA[<p>1.진화론과 창조론은 공존할 수 없다. 진화론은 종이 변이를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다른 종으로 종분화되고 생물들은 모두 보편적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을 주장하고, 관찰, 실험, 화석 등으로 계속 검증되고 있다. 창조론은 생물종이 특별한 순간에 초자연적인 힘으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지구의 화석기록을 자신들의 주장에 부합하게 해석하는 경우에서 진화론과 충돌하기도 한다. 진화론과 창조론이 양립할 수 없는 근거들은 진화론과 창조론의 종에 대한 예측이 다르고, 진화론은 자연적 원인에 의해 설명하고 가설을 관찰이나 실험 등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반해 창조론은 초자연적 개입이 원인이고 이는 증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논리와 심리적 압박 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생물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화되었다는 명제와 각 종은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는 명제는 동시에 참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화론에는 여러 가지 증거가 있는데, 분자유전학, 화석 기록, 관찰 가능한 진화,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결과 등이 증거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창조론에서는 반박하고 있으므로 이는 절대 타협될 수 없다.</p><p>2.과학이 설명할 수 앖는 영역은 종교가 설명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종교는 이를 설명해도 결국 잘못된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 뿐이고, 따라서 이 질문에서 종교가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은 반드시 설명해서는 안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밝혀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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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43: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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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 20250915(3)</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16401</link>
         <description><![CDATA[<p>진화론과 창조론은 공존할 수 없다. 이 두 이론은 주장과 근거가 완전히 다르다. 진화론에서는 생명체는 생겨난 이후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하여 새로운 종이 되거나 사라지며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반면 창조론에서는 태초에 모든 것이 창조되었으며 각 종은 그 뿌리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현대에는 과학적 근거가 더 풍부하고 수많은 사례가 증명된 진화론 정설로 취급받고 있다.</p><p> 이와 같이 과거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을 설명 가능하게 되면서 종교와 과학의 충돌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은 반드시 종교가 설명해야 하는가? 그럴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세상 모든 것의 근원과 원인을 알고자 하지만 우리의 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럴 때 초자연적인 존재를 생각해내고 믿음으로써 무지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공동체를 형성하여 문명이 발전하게 되었다. 종교는 하나의 결속체 역할을 했던 것이다. 비록 발전된 과학은 종교를 부정하게 되었지만, 과학의 발전은 종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많은 사실이 밝혀진 현재에는 종교의 입지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그에 대한 두려움은 많다. 종교가 없다면 인류는 항상 불확실한 세상을 두려워하며 살 것이다. 과학과 종교는 공통적으로 인간의 호기심의 산물이지만 그 역할이 다를 뿐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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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43: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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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진화론과 창조론은 공존 가능한가? </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17719</link>
         <description><![CDATA[<p>아마도 공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과학은 주로 관찰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사실과 과정, 즉 ‘어떻게’에 대한 질문을 다루는데 반해 종교는 존재의 목적, 도덕적 기준, 궁극적인 의미와 같은 ‘왜’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사람이 왜 존재하는지,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어떤 행동이 옳고 그른지 등은 종교적 성찰의 영역이다. 이처럼 질문의 범위와 방법론을 구별하면 두 관점은 충돌하기보다는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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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44:3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17719</guid>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 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20074</link>
         <description><![CDATA[<ol><li><p>나는 저 둘이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현재 통합과학 생물 교과 과정에서 배우고 있듯이, 두 이론은 시작부터 다르다. 진화론은 하나의 생명체에서 시작된 반면, 창조론의 주장에 따르면 많고 다양한 생명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것 외에도 대부분의 창조론의 경우에는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 이브가 탄생하였다고 했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내용이다. 따라서 나는 종교적인 창조론과 과학적인 진화론은 공존할 수 없고 서로 대립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창조론이 쓸모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창조론은 특정 종교적 세계관을 뒷받침하고, 만물에 대한 신학적 설명을 제공한다. 이처럼 창조론에도 다양한 쓰임새가 있고, 진화론도 다양한 견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나는 진화론과 창조론은 공존할 수는 없지만, 서로 다양한 쓸모가 있다고 생각한다.</p></li><li><p>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을 굳이 종교가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현재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들도 설명 가능해질 것이고, 또 과학적인 내용이 거의 드러나있지 않은 종교의 지식으로 과학이 설명 하지 못하는 영역을 꼭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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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1:46: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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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43185</link>
         <description><![CDATA[<p>1.검증 가능한 결과에 더큰 가치가 있습니다. 출처는 그저 결과의 신빙성만 밝힙니다. 하지만 검증 가능한 결과는 어떤 지식이 만들어 지기까지의 과정과 증명가능성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p><p>3. 신앙적 체험은 추상적인 질문입니다. 이러한 추상적인 체험에서 얻은 정보는 객관적인 검증을 통해서 참, 거짓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만약 제가 '트럼프는 내일 죽는다.'라는 것을 꿈에서 알라가 말했다할 경우 이를 진짜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 입니다. 따라서 객관적인 증명은 지식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p><ol start="4"><li><p>저는 종교에 의해 과학이 유도되는 것에는 회의적이지만 과학이 종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저희의 추상적, 비객관족인 사실이고 과학은 객관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이 추상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치면 비논리적인 부분이 수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추상적인 부분이 객관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부분이 비논라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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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2:01:5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43185</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43847</link>
         <description><![CDATA[<p>1.출처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거짓이 아닌 명제는 그 자체만으로 탐구의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p><ol start="2"><li><p>그것도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직관을 통한 지식이여도, 증명을 할 수 없는 지식이여도 수학자들에게 발전의 기회를 넘겨주고 수학의 발전을 간접적으로 야기했기 때문이다.</p></li><li><p>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뛰어난 생각이라도 그게 그저 거짓이 아니라고 남에게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만약 이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지식으로서의 가치를 가지지 않을 것이므로 추후에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p></li><li><p>이러한 사례를 봤음에도 종교와 수학에는 관계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라마누잔이 신앙을 토대로 지식을 전수받았다면 아주 어린 시절에서부터 절정의 수학능력을 가지고 있었어야 할것이며 신의 지식을 가져오는 것이므로 그 지식에서의 발전도 허용되지 않아야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그저 천재였을 뿐이고 만약 두바이에서 태어났다면 무함마드가 알려줬다고 했을 것이다.  </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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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2:02:2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43847</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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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46439</link>
         <description><![CDATA[<p>기본적으로 어떠한 사실이 지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는 증명 여부에 따르지 않는다. 2차시에서 언급하였던 예시를 재활용하자면,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계절의 주기적 변화'라는 지식은 그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음에도 인간 생활에 유익하게 활용되었다. 그러나 수학적 발견의 경우 증명 과정이 없는 발견은 인정되지 못할 뿐더러, 그 발견에 도달하는 사고 과정이나 그 과정에서 차용된 지식 그 자체가 학문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즉 사실의 증명 과정이 매우 가치 있는 지식이므로, 증명되지 않은 공식은 흥미로울지언정 그 가치가 온전하지는 못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p><p><br/></p><p>같은 맥락에서 지식의 정당화는 합리적 증명이 있어야만 확립된다. 애초 확고한 진리만을 가치 체계에 더할 수 있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증명되지 않고 '사실인 것처럼 보이는' 지식을 인정한다면 학문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라마누잔의 공식 역시 증명과 검증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인정되었고, 라마누잔 자신도 수학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학자로 평가될 수 있었던 것이다.</p><p><br/></p><p>반대로 합리적 증명이 있는 한 지식의 출처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펜지어스와 윌슨이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그들이 과학적 탐구 과정을 거쳐 발견의 의의를 증명해낸 이상 아무도 그들의 공헌이 무가치하다고 폄하할 수 없다. 신앙이나 직관과 같은 출처에서 온전하고 타당한 지식이 도출되는 비율이 낮을 뿐, 이러한 과정에서 얻은 지식 역시 가치 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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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2:04: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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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라마누잔의 사례는 종교와 과학간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게 하는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47055</link>
         <description><![CDATA[<p>라마누잔이 꿈에서 신의 말을 듣고 수학공식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것은 놀랍게도 과학젂으로 입증가능한 이야기이다. 인간이 하나의 일에만 극도로 몰두하며 그것만 생각하게 되면 뇌는 그것이 생존과 직관된 굉장히 중요한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주제에 대해 몰입하게된다. 이때 인간은 몰입기간이 길수록 평소 자신의 능력 보다 훨씬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보다 더 길게 생각한다고 했고 뉴턴도 연구에 빠져들면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생각만 했다고 한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종교적 경험인 삼매와 매우 비슷한데, 이 상태의 뇌를 관찰 해 보니 실제로 비슷했다고 한다.(가바라는 신경 안정 물질등) 이때 기분이 고양되고 신성한 느낌이 드는데종교의 선지자들이 계시를 받은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나는 라마누잔이 수학에 대해 깊게 고민하다보니 그의 무의식이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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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2:04: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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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차시 질문&amp;탐구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47545</link>
         <description><![CDATA[<p>1. 지식의 가치는 '검증 가능한 결과' 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지식이 어디서 창출되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식의 가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장하는 논리나 공식의 확실한 근거이기 때문이다.</p><p>2.라마누잔이 신앙적 체험에서 얻은 수학적 공식을 증명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어렵기 때문에 라마누잔 본인만의 지식이 되었을 것이고 만약에 후세의 수학자가 라마누잔의 공식을 증면해냈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널리 보급된 지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p><p>3.지식의'정당화'는 반드시 합리저 증명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식은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쉽게 전달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인데 비록 지식의 출발점이 '신앙'이라 할 지라도 잘못된 정보가 지식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가져올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해서 합리적 정당화를 거쳐야된다.</p><p>4.종교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않은 새로운 수학적,과학적 지식을 알려준다해도 그것을 입증해줄 자료, 지식을 알려준 신은 현실세계가 아니라 마음 속에 있기 때문에 종교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 순 없어도 지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의시작점은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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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2:04: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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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종교와 지식(IV)</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48333</link>
         <description><![CDATA[<ol><li><p>지식의 가치는 검증 가능한 결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작권과 같은 지식 재산권의 측면에서 본다면 출처도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검증 가능한 결과'의 중요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출처가 확실해도 틀린 결과와 출처가 불확실하지만 맞는 결과. 당연히 후자가 더 가치 있지 않을까?</p></li><li><p>만약 라마누잔이 이를 증명하지 못했어도, 지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아니더라도 후대의 사람들이 이를 증명하여 신앙적인 공식을 증명된 지식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마누잔이 '꿈속에서 신이 나타나 공식을 알려주고 갔다'라고 자기 주장을 한 것은, 실제로 신이 그것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신앙심이 매우 깊은 사람이라, 자신의 머리 속에서 일어났던 복잡한 사고를 신에게 투영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가 만들어낸 공식은 대부분 증명이 된 공식이고, 단지 그가 증명을 기술하지 않았을 뿐인 것이라 생각한다.</p></li><li><p>반드시 거쳐야 할까? 지식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식이 확실한 증명이 필요하는 순수과학적 지식이면,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식이 주관적이고, 사회적, 변동 가능한 것, 종교적, 사상적 등 딱 떨어지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의 종류일때, 합리적 증명이 아닌,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지식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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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2:05: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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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라마누잔의 사례는 종교와 수학의 관계를 어떻게 다시 생각하게 하는가?</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51799</link>
         <description><![CDATA[<p>딱히 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자료에 나와있듯이 라마누잔은 굉장히 가난한 힌두교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가난한 탓에 종이를 아끼느라 직관적인 결과만 적는 것에 익숙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연구 스타일은 개인용 칠판 하나에 분필로 수식을 마구 적어가며 생각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엄청난 집중 상태에서 빠르게 생각하느라 칠판 지우개 찾는 시간도 아까워 옷소매로 지웠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나온 결과만을 귀하디 귀한 종이 노트에 정리했다. 본인은 나마기리 여신이 자신에게 가르쳐 줬다고 말했지만 아마 본인 종교를 위한 형식상의 말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이보다는 천재성의 결과라 보는 편이 맞는 듯하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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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2:08: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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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51878</link>
         <description><![CDATA[<p><strong>질문1. </strong>지식의 가치는 검증 가능한 결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믿기 좋은 출처라도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출처가 아닌 검증 가능하고 증명이 가능한 결과에 따라 지식의 가치가 결정되어야 합니다.</p><p><br/></p><p><strong>질문2.</strong> 라마누잔이 신앙적 체험에서 얻은 수학적 공식을 증명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지식이 합리적인 증명이 아닌 신앙적, 종교적인 믿음으로 지식이 정당화된다면 사회적으로 사람들의 절대적인 믿음, 신뢰를 얻을 수 없으며 만약 그 지식이 잘못된 것이라면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수학적(합리적)으로 증명하기 전에는 지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p><p><strong>질문3. </strong>질문2와 같음</p><p><strong>질문4. </strong>라마누잔의 사례는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연관성이 있는 관계로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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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2:08: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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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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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 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52040</link>
         <description><![CDATA[<p>검증 가능한 결과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검증이 안된다면 지식은 쓸모가 없어져서 가치가 없는 지식이 되기 때문이다.</p><p>지식이 아니다. 증명하지 못했다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지식이고 가치가 없다. 하지만 증명을 한 순간 그 지식은 가치를 가지게 되고 진정한 지식이 된다.</p><p>합리적 증명을 거쳐야한다 생각한다. 왜냐하면 증명을 하지못하면 지식이 아니므로 정당한 지식이 아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15 12:08: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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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52208</link>
         <description><![CDATA[<p><strong>지식의 출발점이 신앙일 수 있지만 지식의 정당화는 반드시 합리적 증명을 거쳐야 하는가? </strong></p><p>지식을 정당화하는데는 다양한 기준이 존재할 수 있다. 합리적 증명 없이 믿음이나 직관으로 지식을 정당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인간의 이성적 사고나 논리적 증명, 감각적 경험이나 관찰, 실제 생활에서의 유용성으로 지식의 정당성을 증명할 수 있거나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학을 맹신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지식의 정당성을 증명하지 않고 믿음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고 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다른 시각에서 인간의 이성적 사고나 경험, 유용성으로 과연 지식을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도 있다.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는 이성을 통한 명확한 지식의 근거를 제시하지만, 형식적 사고의 한계점과 현실에서의 검증과정이나 실천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로크의 경험주의는 귀납법의 불완전성과 감각의 주관성으로 인해 보편성과 필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피어스의 실용주의는 효용성을 강조함으로써 진리의 절대적 기준이 소실될 수 있으며, 지식이 수단으로 격하될 수 있는 한계점이 있다. 여기에 종교적 관점에서 지식을 직관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검증이 불가능하며, 비합리적일 때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성, 경험, 실용, 직관이 서로 균형을 이루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라마누잔의 수학적 아이디어는 직관적 확신에서 비롯된 “정리”였기 때문에 합리적 정당화(증명과정)가 결여된 지식이었다. 이후 하디에 의해 라마누잔의 정리가 검증되면서 합리적 정당화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정당화가 결여된 직관적 지식이 거꾸로 후에 이성적으로 증명된 사례로, 합리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사례이자 직관이 논리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해 준다.</p><p><br/></p><p>라마누잔이 신앙적 체험에서 얻은 수학적 공식을 증명하지 못했자면 그것은 지식인가?</p><p><br/></p><p>지식의 가치는 '출처'에 달려 있는가 아니면 '검증가능한결과'에 달려 있는가?</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09-15 12:08:2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52208</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 20250915(4)</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52290</link>
         <description><![CDATA[<p>지식의 가치는 검증 가능한 결과에 달려 있다. 결과를 검증할 수 없다면 아무리 그럴듯한 지식이여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없다. 간단하게 생각하여 수학 공부를 한다 해도 공식만 외우고 검증 방법을 모르면 제대로 된 공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만약 라마누잔이 신앙적 체험에서 얻은 수학적 공식을 증명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라마누잔과 그 신만의 지식이다. 만약 그가 죽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지식으로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라마누잔에게는 신의 계시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 외에는 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지식의 출발점은 신앙이라도 지식의 정당화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다. 신앙으로 시작된 지식이 정당화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신기한 하나의 신앙물일 뿐이다. 라마누잔의 사례는 종교와 수학의 관계에 혼란이 일어나게 하였다. 라마누잔이 죽은 한 어느 누구도 그것이 진정 신앙적 체험의 결과물인지조차 알 수 없고 설령 신앙적 체험의 결과물이라 하면, 그게 아니라고 해도, 도대체 왜,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알 수 없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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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2:08: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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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 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52291</link>
         <description><![CDATA[<ol><li><p>지식의 가치는 '검증 가능한 결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대단하고 방대한 지식이라도 라마누잔의 공식처럼 그 원리를 검증할 수 없으면 그 대단한 지식은 그저 한 똑똑한 개인만의 지식으로 남는 것이 된다. 나는 지식이란 한 개인만의 것이 아닌 사회 전체가 공유하고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식의 가치는 출처보다는 검증 가능한 결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p></li><li><p>라마누잔이 신앙적 체험에서 얻은 수학적 공식을 증명하지 못했다면, 그 공식은 그저 사람들이 쓸 수는 있지만, 원리가 무엇인지, 증명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 모르고 사용하는 껍데기에 불과한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지식을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가 그 원리를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일부는 공식의 원리와 증명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라마누잔이 얻은 공식을 증명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껍데기만 있는 지식이라고 생각한다.</p></li><li><p>이 사례는 종교와 과학, 수학이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 나의 생각을 그래도 종교적인 믿음과 종교에 대한 탐구심을 바탕으로 과학, 수학적 원리를 밝혀내고, 공식을 찾을 수 있다 로 바꾸어주었다. </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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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2:08: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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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4차시 질문 &amp; 탐구 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52310</link>
         <description><![CDATA[<p>Q2. 만약 라마누잔이 신앙적 체험에서 얻은 수학적 공식을 증명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지식일까?</p><p><br/></p><p>A2. 신앙적 체험이나 직관은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에 불과하며, 객관적 검증이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확실한 지식으로 간주하기 어렵다. 현대 과학과 철학은 확실한 지식을 위해 검증 가능성과 재현 가능성을 중요시하는데, 신앙적 체험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개인의 경험은 타인에게 증명하거나 공유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보편적이고 확실한 지식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더 나아가, 체험이나 직관이 논리적 또는 경험적 검증에 의해 지지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확실한 지식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나는 그것들이 진정한 지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p><p><br/></p><p>Q4. 이 사례는 종교와 과학(또는 수학)의 관계를 어떻게 다시 생각하게 하는가?</p><p><br/></p><p>A4. 이 사례는 종교와 과학(또는 수학)의 관계를 재고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전통적으로 종교와 과학은 서로 대립하거나 별개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지만, 이 사례를 통해 두 분야가 상호 보완적일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p><p>먼저, 종교는 인간의 존재 의미, 도덕적 가치, 초월적 경험 등을 탐구하는 영역으로서,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 내면의 깊이와 의미를 다루는 역할을 한다. 반면, 과학은 자연 세계의 법칙과 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도구로서, 실증적이고 검증 가능한 방법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밝혀낸다.</p><p>이 사례는 종교와 과학이 각각의 독립된 영역임을 인정하면서도, 두 분야가 서로를 보완하며 인간의 삶과 우주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종교는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과학은 그 질문에 대한 자연현상의 답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두 영역이 서로를 채우고 확장하는 관계임을 재고하게 한다.</p><p>따라서, 이 사례는 종교와 과학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강점과 한계를 인정하며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사고를 이끈다. 이는 과학과 종교가 공존하며, 인간의 이해와 성장을 위한 다양한 관점을 포용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안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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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2:08: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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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585352522</link>
         <description><![CDATA[<p>1.지식의 가치는 검증 가능한 결과에 달려 있다. 지식의 출처는 지식이 검증 가능하기만 하다면 전혀 상관이 없다. 지식이 명백한 사실인데 지식의 출처가 더 중요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은 지식의 출처를 궁금해 하겠지만 지식의 출처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시깃에 바뀌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이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지식의 출처는 대부분 특정한 사람의 두뇌라는 것인데, 따라서 그 사람이 지식의 출처를 어떻게 얘기하든 이는 그 사람의 머리 속에 있는 지식들이 창의적으로 융합되거나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라 만들어낸 것이 지식이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고, 그 사람조차 확실하게 모를 수 있다. 이는 라마누잔의 예에서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라마누잔이 신이 꿈속에서 나왔다고 했지만 그것을 확인한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없을 것이다. 라마누잔도 자신의 두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고, 라마누잔이 다른 종교를 믿었다면 그 종교의 신이 꿈에 나왔다고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p><p>2.라마누잔이 공식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하면 이는 라마누잔의 지식이 맞지만 온전하지 않고 사람들에게는 지식으로 작용하더라도 여러 가지 의문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라마누잔도 증명하지 못하는 것을 자신의 온전한 지식이라고 하기 힘들 것이고 라마누잔이 끝내 증명하지 못하면 후대 수학자들이 그 공식을 온전한 지식으로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할 것이다.</p><p>3.출발점은 중요하지 않다. 정당화가 중요하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지식들을 융합해 새로운 지식들을 만들어내야 한다.</p><p>4.이 사례는 종교와 과학, 수학의 관계가 기존에 생각했던 대립 관계 또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 아니라 정말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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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5 12:08: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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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술-탐구활동</title>
         <author>knowngirl</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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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08:05: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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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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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0:42: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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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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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0:44: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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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과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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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gs251618</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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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차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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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51013(1a)</title>
         <author>gs251807</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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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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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gs25162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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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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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0:52: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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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술이란 무엇일까?</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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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나는 예술을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어떤 대상에 어떤 의미 부여를 하는가에  따라 예술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모든 대상은 예술이 될 가능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편적으로 예술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는 이를 사람이 대상에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변기가 그냥 화장실에 있을 때는 그저 유용한 도구이지만 작품'샘'은 예술가가 의미부여를 함으로서 예술 작품이 된것이다. 많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는 대상은 보편적 예술작품이고 소수의 사람이 의미부여를 할 수 있는 것은 개인적 예술 인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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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0:52: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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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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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0:53: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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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술에 대한 기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29565771</link>
         <description><![CDATA[<p>예술을 만든 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는가, 어느 경혐을 공유하려 했는가</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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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05: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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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29581252</link>
         <description><![CDATA[<p>영화 데드풀-- 사고로 인해 얻게된 끔찍한 얼굴을 가졌음에도 잃게된 얼굴보다 얻게된 능력을 잘 사용하며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아갈 만큼 자유롭고 긍정적이며 데드풀의 재생능력처럼 고난이 찾아와도 빠르게 회복하고 즐겁게 살아가려 노력했다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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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19: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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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29582191</link>
         <description><![CDATA[<p>만약 내가 타임캡슐을 만들어 미래의 손자, 증손자, 고손자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려 한다면 나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들고 갈 것이다. 스마트폰에는 내가 하고 있는 게임, 소셜 미디어, 내가 사용하는 사이트가 모두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갤러리에 사진을 통해 지금 현재 나의 사회는 어떠한지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 미래의 내 자손들은 나에 대해 더 잘 이해할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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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20: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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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차시 질문&amp;탐구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29582274</link>
         <description><![CDATA[<p>내가 좋아했던 노래들을 타임캡슐에 넣었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장르는  주로 발라드나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의 좋아하는 노래 장르를 알게 되면 사람의 이미지를 다르게 보이게 하기도 한다. 만약 내 후손들이 타임캡슐을 보게 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또 그 노래가 나온 시기를 통해 어떤 시대에 살았는지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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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20: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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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를 의미하는 타임캡슐에 넣을 예술 작품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29583005</link>
         <description><![CDATA[<p>내가 읽은,또는 감명받은 수많은 책</p><p>(교보문고 회장 신용호의 말)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gt; 나를 나타내고 내 사고 방식을 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던 책들</p><p>1.소설</p><p>2.자기계발서(공부책)</p><p>3.또는 이야기</p><p>4.또는 (미래에 내가쓴 )책</p><p>5.내가 좋아하는 노래 (고르기 힘듦)</p><p>6.(아직 내가 학생이니) 내 구글 doc 전체?(내 학교활동을 의미+사고 방식)</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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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21: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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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29583800</link>
         <description><![CDATA[<p>내가 내 후손들에게 나를 알릴 예술 작품을 고른다면 그림을 택할것 같다. 다른 요소인 영화를 생각하면 영화는 주어진 줄거리에 상영되는 영화일 뿐이고 여러 해석의 여지가 있다 해도 '나'라는 삶을 나타내기에는 제한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보다는 해석의 여지와 표현의 가능 범위가 훨씬 더 큰 그림이 좋을것 같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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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22: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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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 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29585732</link>
         <description><![CDATA[<p>나는 내 노래 플레이리스트를 고를것이다. 왜냐하면 하나하나의 노래마다 추억이 있고 그 순간이 떠오르기도 하고 나의 취향과 생각도 나타낼수 있기 때문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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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23: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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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29585925</link>
         <description><![CDATA[<p>지금이라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음악 취향이기에, 라디오헤드의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rateyourmusic.com/release/album/radiohead/in-rainbows/">In Rainbows</a>가 적절할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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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23: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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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 20251013 (1b)</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29587760</link>
         <description><![CDATA[<p>예술품의 기준은 제작 당시의 의도, 최초 창작 또는 변형성, 타인이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의 명확성, 제작 의도의 진지함이다. 제작 당시의 의도는 작품이 고의적으로 창작되었음을 의미하며, 순전히 운으로 예술이 창작되어 복권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최초 창작 또는 변형성은 작품이 창작자 자신의 아이디어를 담았음을 의미하며, 원본과 사본의 가치가 차이나는 이유이다. 타아니이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의 명확성은, 그 동의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변할 수는 있지만 아무리 창작자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타인에게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예술이라 할 수 없다. 제작 의도의 진지함은 현대의 추세 때문에 추가한 조건으로, 변기에 글자를 새겨넣고 예술이라고 한다던지, 바나나를 벽에 붙여놓고 비싼 값에 판다던지 하며 자신의 작품에 의미가 부여되기를 기다리는 기회주의적이고 비도덕적인 경우를 막기 위함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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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25: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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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29587958</link>
         <description><![CDATA[<p>만약 우리가 타임캡슐을 만들어 미래의 후손들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주려 한다면, 자신을 잘 나타내는 것으로 무엇을 고를 것인가</p><p>난 내가 공부한 책들을 보여줄 것 같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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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25: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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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 20251013 (2)</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29591176</link>
         <description><![CDATA[<p>오늘날의 우리를 가장 잘 나타내는 예술 작품에는 전쟁 영화, 환경 문제 영화, 아포칼립스 영화가 있다. 특히 생존 시대를 공유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는 나 한명이 누구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우리는 단지 2의 수십, 수백 승 넘는 선조들 중 한명일 뿐이다.(누가 자신의 원조(8대조) 할아버지의 삶을 진심으로 알고 싶어 할까. 적어도 나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들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현재의 문제점-인간의 욕심, 인간의 이기심 그리고 인간의 탐욕적인 본능-들을 부각하여, 경각심을 심어 주는 것이다. 물론 나는 만일의 가능성을 위해 약간의 진공 포장된 머리카락도 넣어 둘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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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28: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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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 #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29591210</link>
         <description><![CDATA[<p>만약 내가 타임캡슐을 만들어 미래의 나의 자손에게 내가 누군지 알려주려 한다면, 나는 아이유의 [love poem]을 고를 것 같다. 이 노래의 제목은 사랑시라는 뜻이지만,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홀로 걷는 너의 뒤에 singing till the end 그치지 않을 노래"와 같이, 계속해서 사랑하는 누군가와 공감하고 그를 지지하는, 그런 태도가 드러나 있다. 이런 가사를 통해,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노력을 한 사람이었고, 나의 자손들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이렇게 도와줄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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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28: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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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축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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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해외축구를 접하면 많은 사람들과 같이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직접하는 사람들과 붙딫히는 축구도 재미있지만 실제로 제가 응원하는 팀이 경기하는 해외축구를 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렇기에 만약 제가 증손자에게 나를 상징하는 물건을 한개를 골라서 보여줄 수 있다면 저는 제가 현재가지고 있는 축구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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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28: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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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gs251618</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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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내가 만약 타임캡슐을 만들어 미래의 후손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려 한다면, 나는 아마도 소설 마션을 넣을 것 같다. 그 이유를 한 가지 꼽자면 이 책이 나의 관심사를 드러내고, 여러가지 교훈을 얻었으며 나의 가치관을 정립하는데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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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28: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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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차시 질문 &amp; 탐구 2</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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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Q. 만약 여러분이 타임캡슐을 만들어 미래의 손자, 증손자, 고손자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려 한다면, 자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무엇을 고를 것인가요? 오늘날의 여러분을 가장 잘 나타내는 하나 이상의 예술 작품 (노래나 영화 등)을 떠올려 보고 그 이유를 공유해 봅시다.</p><p><br/></p><p>A. 내가 만약 타임캡슐을 만들어 미래의 손자, 증손자, 고손자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려 한다면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팀인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보여줄 것이다. 오늘날의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노래는 '유다빈밴드의 항해'라는 곡이다. 왜냐하면 나는 밴드 음악 중 유다빈밴드를 가장 좋아하고 이 노래를 들으면 내 인생도 항해 중이기에 쉽게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 곡이기 때문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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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29: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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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gs25162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29592211</link>
         <description><![CDATA[<p>타임캡슐에 넣을 작품으로 저는 애니메이션 시리즈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를 고르겠습니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거대한 시대 속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관계가 사람을 어떻게 만들고 무너뜨리는지를 강렬하게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p><p>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저는 새로운 친구들과의 관계, 소속감에 대한 갈망,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많이 느꼈습니다. 때로는 경쟁과 오해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기도 했고, 누구에게 기대야 할지 몰라 불안했던 적도 있습니다. ‘엣지러너’ 속 인물들은 각자 상처를 안고 있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무모한 선택을 합니다. 그 모습이 제가 느끼는 감정과 닮아 보였습니다. 기술과 속도의 세계에서조차 결국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진심 어린 존재라는 메시지는 제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p><p>이 작품을 통해 저는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로는 충성심과 과한 희생으로 관계가 망가질 수도 있다는 경계, 그리고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리고 싶습니다. 미래의 손주들이 이 작품을 보면, 제가 단지 빠른 것과 눈에 띄는 것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사람을 지키려 노력했던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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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29: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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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 5</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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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내가 미래에 타임캡슐로 나의 자손들에게 내가 누군지 알려주려 한다면, 나는 나를 나타내는 예술 작품으로는, 첫 번째로 영화 '어바웃 타임' 이라는 영화를 담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하루를 값지게 살고, 항상 최선을 다해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았다는 것을 알려줄 것이고, 또 미래 후손들에게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로, 나는 지금 내 집의 책장의 책을 타임캡슐에 담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그동안 읽은 책을 통해 후손들이 나와 같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을 것 같기 때문이고, 또 책은 그 시대의 다양한 감성을 이해하는데 좋기 때문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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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31: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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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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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33: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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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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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33: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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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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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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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gs251618</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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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gs25190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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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40: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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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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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40: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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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29604937</link>
         <description><![CDATA[<p><strong>1) 감정의 표현으로서의 예술</strong></p><p>시각예술 : 뭉크 &lt;절규&gt;</p><p>음악 : 쇼핑 &lt;야상곡&gt;</p><p>순수 서정시 </p><p><br/></p><p><strong>2) 항의, 충격, 혁명으로서의 예술</strong></p><p>시각예술 : 거리 그래피티(뱅크시)</p><p>음악 : 프로테스트 송, 힙합/랩</p><p>연극/영화 : 사회 고발 영화, 실험극</p><p>문학 : 검열에 저항하는 소설, 시, 에세이/디스토피아 소설</p><p><br/></p><p><strong>3)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의문을 제기하는 도구로서의 예술</strong></p><p>시각예술 : 초현실주의 그림(달리)/개념미술(설치, 텍스트 기반 작품)</p><p>음악 : 전통적인 형식, 조성을 깨는 실험 음악</p><p>춤 : 규칙을 깨고 자유로운 움직임</p><p>연극, 영화 :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연극/열린 결말의 영화</p><p>문학의식의 흐름 기법 소설, 실험적 시</p><p><br/></p><p><strong>4)치료로서의 예술(우리를 회복, 치유하거나 희망을 품게함)</strong></p><p>시각예술 : 아트테라피</p><p>환자, 트라우마 생존자들의 미술작업</p><p>음악: 음악치료에서 사용하는 연주음악/명상, 힐링 음악</p><p>춤 : 댄스 테라피 (몸을 움직이며 감정을 배출하고 자존감을 회복)</p><p>연극, 영화 : 연극치료/상실, 우울을 겪는 인물이 회복해 가는 영화</p><p>문학 : 자기 고백적 에세이, 치유에 관한 에세이</p><p><br/></p><p><strong>5)도덕적 가치에 대한 긍정이나 비판으로서의 예술</strong></p><p>시각예술: 선과 악을 대비시키는 종교화/풍자화</p><p>환경파괴, 동물권을 비판하는 사진전, 설치 미술</p><p>음악 : 인권, 평화, 연대를 강조하는 가사/차별, 혐오를 비판하는 랩</p><p>춤 : 인종차별, 전쟁, 폭력을 주제로 한 현대무용</p><p>연극, 영화 : 정의와 법, 공정성과 특혜를 다루는 법정극</p><p>문학 : 도덕적 딜레마를 다루는 소설/윤리를 주제로 한 우화</p><p><br/></p><p><strong>6)조화, 균형, 리듬 및 아름다움으로서의 예술</strong></p><p>시각예술 : 고전주의, 르네상스 회화/대칭과 반복, 패턴을 이용한 추상화</p><p>음악 : 클래식 소나타 형식, 푸가, 대위법, 합창곡, 오케스트라</p><p>춤 : 발레, 군무 중심의 케이팝 댄스</p><p>연극, 영화 : 화면 구도, 색채, 음악, 서사가 조화로운 연극, 영화</p><p>문학 : 운율과 반복, 리듬이 아름다운 시</p><p><br/></p><p><strong>7)종교적 또는 정치적 이념의 표현으로서의 예술</strong></p><p>시각예술 : 성화, 불화, 사원성당의 벽화</p><p>음악: 찬송가, 성가, 미사곡, 불교 이슬람 전통 음악/애국가</p><p>춤: 종교적, 민족적 의식을 담은 전통 춤/혁명, 해방을 기념하는 퍼포먼스</p><p>연극, 영화: 종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연극, 영화</p><p>문학 : 신화, 경전, 종교적 비유가 많은 문학/ 정치이념을 담은 소설, 시, 선전문학</p><p><br/></p><p><strong>8)초월, 신의 출현 또는 계시로서의 예술</strong></p><p>시각예술 : 천사, 성모, 신의 현현을 묘사한 종교화</p><p>음악 : 종교의식 음악(그레고리오 성가)/명상음악(초월적 경험)</p><p>춤 : 트랜스  상태에 들어가기 위한 의식 무용/샤먼의 춤</p><p>연극, 영화 : 신의 음성, 계시, 기적을 주제로 한 연극, 영화</p><p>문학 : 환시, 계시, 꿈속에서 신을 만나는 이야기</p><p><br/></p><p><strong>9)상징과/또는 의례로서의 예술</strong></p><p>시각예술 : 국기, 문장, 상징 로고 디자인/장례, 결혼, 제사 등에 사용하는 상징물</p><p>음악: 국가, 교가, 의식에서 사용하는 곡/장례식, 결혼식에서 연주되는 음악</p><p>춤 : 결혼식, 성인식, 제사의 춤/집단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민속춤</p><p>연극, 영화: 전통 의례를 재현하는 연극</p><p>문학 : 상징이 중요한 시/문화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소설</p><p><br/></p><p><strong>10)오락과 자극으로서의 예술</strong></p><p>시각예술: 화려한 디자인의 포스터, 광고, 팝아트</p><p>음악: 댄스, 팝 음악, edm/게임 사운드 트랙</p><p>춤 : 공연형 스트리트 댄스, 아이돌 댄스 무대</p><p>연극, 영화 : 액션, 코미디, 로맨스 영화/관객 참여형 쇼</p><p>문학 : 추리, 스릴러, 로맨스 장르 소설, 웹소설</p><p><br/></p><p><strong>11)상업과 판매로서의 예술</strong></p><p>시각예술: 광고 포스터, 브랜드 로고, 패션 디자인, 상품 촬영 사진</p><p>음악 : cf송, 브랜드 콜라보 곡, 마케팅을 위해 제작된 팝 음악</p><p>춤 : 제품 출시 행ㄷ사에서의 퍼포먼스</p><p>연극, 영화 : PPL, 상품 판매를 겨냥한 애니메이션 시리즈</p><p>문학 : 브랜드 스토리텔링 책자, 카탈로그</p><p><br/></p><p><strong>12)실생활의 재현 또는 모사로서의 예술</strong></p><p>시각예술 : 사실주의 리얼리즘 회화, 사진/다큐멘터리 사진</p><p>음악 : 도시 소음, 자연의 소리를 녹음한 사운드스케이프</p><p>춤 : 일상동작을 안무에 끌어들인 현대무용</p><p>연극, 영화 : 네오리얼리즘, 리얼리즘 영화/다큐멘터리 영화</p><p>문학 : 리얼리즘 소설/르포르타주, 논픽션</p><p><br/></p><ul><li><p>“시대 전체를 통틀어 더 오래, 더 넓게, 더 깊게 작동해 온 기능이 무엇인가?” 를 기준으로 예술의 중요도를 순서를 매기자면</p></li><li><p>1위. 상징과/또는 의례로서의 예술</p><p><br/></p><p>2위. 초월, 신의 출현 또는 계시로서의 예술</p><p><br/></p><p>3위. 종교적 또는 정치적 이념의 표현으로서의 예술</p><p><br/></p><p>4위. 실생활의 재현 또는 모사로서의 예술</p><p><br/></p><p>5위. 도덕적 가치에 대한 긍정이나 비판으로서의 예술</p><p><br/></p><p>6위.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의문을 제기하는 도구로서의 예술</p><p><br/></p><p>7위. 감정의 표현으로서의 예술</p><p><br/></p><p>8위. 치료로서의 예술(회복·치유·희망)</p><p><br/></p><p>9위. 조화, 균형, 리듬 및 아름다움으로서의 예술</p><p><br/></p><p>10위. 오락과 자극으로서의 예술</p><p><br/></p><p>11위. 항의, 충격, 혁명으로서의 예술</p><p><br/></p><p>12위. 상업과 판매로서의 예술</p><p><br/></p></li></ul><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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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gs25162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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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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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1:41: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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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gs251618</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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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gs25162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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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gs251719</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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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strong>1) 명확하게 예술</strong></p><p>예술가가 그린 순진무구한 아이 얼굴 그림</p><p>오페라</p><p>랩음악</p><p>모나리자</p><p>잭슨 폴록이 캔버스에 무작위로 물감을 떨어뜨린 그림</p><p>예술가가 미술관에 전시한 양동이와 걸레</p><p><br/></p><p><strong>2) 아마도 예술</strong></p><p>에베레스트 봉우리 그림</p><p>어린아이가 그린 얼굴 그림</p><p>모나리자를 완벽하게 모사한 그림</p><p>컴퓨터로 작곡한 음악 한 곡</p><p>도자기 (예술도자·공예품을 상정할 때)</p><p><br/></p><p><strong>3) 잘 모르겠음(맥락에 따라 바뀔수 있는 것들)</strong></p><p>도자기 (일반적인 그릇 전체를 통틀어 말할 때)</p><p>체조(개념적으로 예술과 스포츠의 경계)</p><p>휴일에 찍은 에베레스트 봉우리 사진 컷(그냥 가족앨범용 스냅이면 보통 예술로 보지 않음)</p><p>문신(타투) 전반(맥락에 따라 크게 갈리는 영역.)</p><p><br/></p><p><strong>4) 아마도 예술 아님</strong></p><p>제조된 냄비·후라이팬</p><p>축구</p><p>휴일에 찍은 에베레스트 봉우리 사진 컷(표현보다 기록, 기념이 주목적일 경우)</p><p>누군가 무작위로 캔버스에 물감을 떨어뜨린 그림(장난으로 뿌린 것)</p><p><br/></p><p><strong>5) 명확히 예술 아님</strong></p><p>에베레스트 봉우리(인간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음)</p><p>아름다운 얼굴(작품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므로)</p><p>사람 얼굴을 닮은 바위</p><p>원숭이가 무작위로 캔버스에 물감을 떨어뜨린 그림(예술가가 작품으로 기획해서 보여주는 경우 제외)</p><p>청소부가 미술관에 남겨 둔 양동이와 걸레(예술적 의도가 없을 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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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2:18: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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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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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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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13 12:22: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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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798600</link>
         <description><![CDATA[<p>---과학의 한계---</p><p>-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시스템의 한계)</p><p>-이중슬릿 실험(시스템의 한계)</p><p>-고릴라 실험(인간의 한계)</p><p>-과학주의</p><p><br/></p><p><br/></p><p>과학은 인간의 관찰과 완전히 독립된 진리를 다룰 수 있을까?</p><p>과학적 방법이 인간의 기대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p><p>과학적 지식이 유일한 진리 라거 주장할 때, 다른 지식 영역은 어떤 역할을 잃게 될까?</p><p><br/></p><p><br/></p><p><br/></p><p>---유사과학---</p><p>-mbti, 혈액형, 천동설, 운세, 타로카드 등</p><p>1.유사 과학의 예, 정당한 과학이 아닌 이유</p><p><br/></p><p><strong>말의 힘 실험</strong>: 양파나 밥에 좋은 말과 나쁜 말을 들려주어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실험은 과학적 오류가 있는 유사과학이라 할 수 있다.</p><p><strong>지구 평면설</strong>: 지구가 둥글지 않고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이론으로, 수많은 과학적 증거와 모순됩니다.</p><p><strong>지구 공동설</strong>: 지구가 속이 비어있고 그 안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가설이다.</p><p><strong>무한 동력(영구 기관)</strong>: 외부 에너지 공급 없이 영구적으로 일을 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은 열역학 법칙에 위배되기에 유사과학이다.</p><p><br/></p><p>2.과학이 틀렸다고 증명되면 그것은 과학이 실패했다는 뜻인가?</p><p><br/></p><p>"모든 백조는 하얗다"라는 가설은 아무리 많은 흰 백조를 관찰해도 100% 증명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검은 백조 한 마리만 발견되면 가설이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다.</p><p>과학은 이처럼 반증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존 가설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과정(반증)을 통해 발전한다.&nbsp;</p><p>기존 이론(패러다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변칙 사례'들이 쌓이면, 결국 기존 패러다임은 무너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해 과학적 혁명이 일어난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뀐 사례가 대표적이다.</p><p>이는 과학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하고 포괄적인 이론으로 대체되며 진보했음을 의미한다.&nbsp;</p><p>3.만약 어떤 것을 믿는다면 그것이 유사과학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왜 어려울까?</p><p>무엇이 과학이고 무엇이 유사과학인지를 결정하는데에 있어서 우리는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을까</p><p><br/></p><p>제니퍼 다우드나-배아를 편집하는것이 더 윤리적인가, 아니면 많은 배아를 선별해 선택되지 않은 배아를 버리는 것이 더 윤리적인가</p><p><br/></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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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0:47: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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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05960</link>
         <description><![CDATA[<p>다룰 수 없을것 같다. 왜냐하면 과학으로 다 다루기에는 자연에는 불규칙적인 현상들이 너무 많고 예측 불가능한 일들고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p><p>과학이 유일한 진리라 하면 다른 지식 영역은 그냥 한 학자의 망상같은 취급을 받으며 무시당할것 같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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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0:53: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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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과학은 인간의 관찰과 완전히 독립된 진리를 다룰 수 있을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07615</link>
         <description><![CDATA[<p><br/></p><p>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질문을 하는 것도 인간이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문과 답을 내는 모든 과정에서 관찰자인 인간이 관여하므로 인간과 독립된 진리를 다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설사 발견된 진리가 인간과 관련이 없어 보이더라고 그것 마저 인간의 기준에서 관련 없다 느끼는 것이므로 관련이 없을 수 없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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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0:54: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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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08974</link>
         <description><![CDATA[<p>2. 우리는 우리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또한 이는 인간으로서 당연하며 이러한 오류는 인간이 이를 줄이기 위한 여러 검증 도구나 다른 사람간의 교차 검증을 통해 이를 고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것도 믿어야 한다. </p><p><br/></p><p>3. 문학이나 예술처럼 상상력을 원동력으로 하는 지식들이 만드는 가설이나 상상은 모두 거짓이 되므로 인간간의 진실된 의사소통을 하는 역할을 잃어버릴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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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0:55: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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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11913</link>
         <description><![CDATA[<ol><li><p>인간의 관찰을 토대로 발견된 수치나 사실로부터 수학적으로 연역할 수 있는 지식에 한해. 즉 과학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은 인간의 직접적 관찰, 또는 인간의 직접적 관찰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사실에 해당한다.</p></li><li><p>과학적 방법은 인간의 기대나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비판과 수정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과학 공동체가 건전하게 작동한다면, 인간의 편향으로 인해 왜곡된 발견이나 그릇된 원리 역시 언젠가는 다른 과학자들의 비판과 재현 시도 등에 의해 논박될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과학적 방법을 통해 얻은 지식을 맹신하는 것도, 인간의 기대에 휩쓸릴 수 있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도 설득력이 낮다.</p></li><li><p>과학적 지식은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기술이나 묘사를 하는 데 의의를 가지고, 그것은 인간이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 인간 사회의 문제나 활동들은 관찰적 진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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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0:58: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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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11952</link>
         <description><![CDATA[<p>과학은 인간의 관찰과 완전히 독립된 진리를 다룰 수 있는가?</p><p>과학은 객관적 진리를 탐구하려 하지만, 인간의 관찰과 해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관찰 방법과 실험 장비, 연구자의 인식 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고대에는 천동설이 과학적 진리로 받아들여졌지만, 이후 관측 기술이 발전하며 지동설로 바뀌었다. 이처럼 과학은 인간의 관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 볼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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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0:58: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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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gs25162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12505</link>
         <description><![CDATA[<p>과학이 완전한 객관성을 보장하지 못할 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우선 한 사람의 주장이나 단일 연구보다 여러 독립적 연구에서 반복된 증거와 재현성을 믿어야 한다. 또한 연구 방법과 데이터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의심을 유지해야 하며, 데이터와 방법의 투명성이 확보되어 다른 전문가들이 검증할 수 있는 과정을 신뢰해야 한다. 과학적 결론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현재까지의 최선 설명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새로운 증거에 따라 수정될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독립적으로 일치하는 합의와 여러 형태의 증거가 함께 제시될 때 그 판단을 신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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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0:58: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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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 1</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12591</link>
         <description><![CDATA[<ol><li><p>우리 주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반적인 과학은, 인간의 관찰과 완전히 독립된 지리를 다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상적으로 만나는 상황이나, 이에 관해 생각해 보기 위해 진행하는 탐구 등은, 우리의 관찰 없인 진행되기 매우 어렵다. 결과를 관찰하기 위한 의도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것이 실험이고, 간혹 관찰에 실패한 과학이 있더라도, 이는 인간의 관찰과 완전히 독립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생각한다. 단, 아직 인간이 관찰하지 못하는, 매우 복잡한 계산 또는 머나먼 우주 너머 등의, 우리가 만든 기계로만 관찰이 가능하거나, 아니면 관찰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인간의 관찰과 완전히 독립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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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0:58: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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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현상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12623</link>
         <description><![CDATA[<ol><li><p>모든 관찰 결과를 해석하여 이를 토대로 지식을 얻어진 집합체가 과학입니다. 그리고 관찰을 하며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던 편견등에 의해 관측값이 당연히 달라집니다. 아무리 같은 관찰결과여도 여러가지 주장이 나온다는 것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과학은 인간의 관찰과 독립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p></li><li><p>과학적 방법이 객관적이지 않다고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태어날 때 부터 서서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다양하게 접하면서 다양한 가지관이 형성되는데 과학은 선대의 사람들의 현상에 대한 해석이 담겨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해석을 가지고 자신에게, 모두에게 충분히 납득될 수 있는 설명을 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p></li><li><p>역할을 잃는다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언어학, 논리학, 심리학, 철학과 같은 인문적인 과목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추상적인 부분을 가지고 이것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과학이 절대적인 진리라해도 이러한 지식을 뛰어넘는 상황을 설명하는데에 유용할 수 있습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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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0:58: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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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6차시 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13896</link>
         <description><![CDATA[<p>1.모든 과학의 시작은 관찰에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눈으로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추상적으로 상상하여 보는 것도 관찰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관찰이 없는 과학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과학은 인간의 관찰과 완전히 독립된 진리를 다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p><p>2.과학적 방법이 인간의 기대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우리가 믿어야 될 것은 과학 못지않게 현실적인 방안이다. 과학은 다른 학문보다도 훨씬 현실적이고 사실을 중요시하는 학문이다. 특정한 방법이 없어진다면 그 방법의 가장 큰 특징의 대체제를 찾아야되는데 그 학문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과학과 비슷한 방법을 믿어야된다고 생각한다.</p><p>3.과학적 지식이"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할 때 다른 지식 영역은 추상적인 것과 같은 존재하지 않는 관점이 역할을 잃을 것이다.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과학은 현실적이고 사실을 기반으로 한 학문인데,만약 과학이 유일한 진리가 된다면 다른학문들의 자신만의 논리를 통한 설명은 실제로 입증되지 않았을 때 절대 인정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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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0:59: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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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 &amp; 탐구 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15601</link>
         <description><![CDATA[<ol><li><p>과학은 인간의 관찰과 완전히 독립된 진리를 다룰 수 있을까?</p><p>과학은 우리 인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의 관찰과 이론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들어가게 된다.따라서, 과학이 인간의 관찰과 완전히 독립된 진리를 다루는 지를 결정하는 것은 다소 불분명하나, 인간의 관찰로 과학이 탐구되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적 지식이 인간에게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고 생각한다.</p></li><li><p>과학적 방법이 인간의 기대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p><p>과학적 방법이 인간의 기대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과학을 믿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부분을 맹신하는 것이 아닌 확실하게 증명된 진리(ex 빛은 직진한다.)나, 여러번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반복 검증된 과학적 지식 등을 신뢰해야 한다. 또한, 이때까지의 과학적 진리와 모순되는 부분이 크게 없어야 하며, 미래에 밝혀질 진리를 예측할 수도 있어야 한다.</p></li><li><p>과학적 지식이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할 때, 다른 지식 영역은 어떤 역할을 잃게 될까?</p><p>과학적 지식만이 유일한 진리라면, 윤리, 철학 등의 인간의 보편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영역들이 사회적 결정력을 잃게 되고, 또 다른 탐구 학문의 경우 과학이 아니라면 그저 오락에 불과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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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00: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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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과학은 인간의 관찰과 완전히 독립된 진리를 다룰 수 있을까?</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17177</link>
         <description><![CDATA[<p>완전히 독립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독립된 진리는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블랙홀의 경우만 봐도 인간이 내부를 관측하지는 못했지만 블랙홀 내부의 특이점의 존재가 호킹-펜로즈 특이점 정리로 인해 증명되고 또다른 여러 성질들이 다양한 방정식과 해로 증명이 된 것처럼 인간의 관찰이 과학의 진리에 있어서 무조건 필요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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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02:1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17177</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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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6차시 질문 &amp; 탐구 1</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18563</link>
         <description><![CDATA[<p>Q1. 과학은 인간의 관찰과 완전히 독립된 지리를 다룰 수 있을까?</p><p><br/></p><p>A1. 과학이 인간의 관찰과 완전히 상관없이 지리를 다룰 수 있냐는 질문은 좀 어려운 문제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이해하려고 관찰이나 실험, 측정을 하는 것에 의존한다. 그래서 인간의 경험이랑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가 관찰하지 않으면 자연의 어떤 현상이나 지리적 사실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p><p>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자연이 인간과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지리적 특성들은 인간이 관찰하지 않더라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은 그걸 이해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자연이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걸 인정한다.</p><p>하지만 또 다른 생각은, 우리가 자연을 알기 위해선 결국 관찰과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연이 아무리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걸 알기 위해선 인간의 관여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과학이 자연의 독립성을 인정한다 해도, 결국 인간의 관찰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p><p>결론적으로 자연이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자연의 지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결국 인간의 관찰과 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연이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면, 과학은 그걸 설명하는 도구일 뿐이고, 완전히 독립적으로 자연의 지리를 이해하는 건 어렵다고 볼 수 있다.</p><p><br/></p><p>Q2. 과학적 방법이 인간의 기대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p><p><br/></p><p>A2.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개인의 주관적 믿음이나 선입견이 아니라, 객관적 증거와 논리적 근거에 기반한 사실과 이론이다. 또한, 과학은 언제든 새로운 증거나 발견에 따라 수정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검증과 재평가를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확립된 증거와 검증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사실과 그 과정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한다.</p><p><br/></p><p>Q3. 과학적 지식이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할 때, 다른 지식 영역은 어떤 역할을 잃게 될까?</p><p><br/></p><p>A3. 과학적 지식이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할 때, 다른 지식 영역은 자신의 역할과 가치를 일부 잃게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철학, 예술, 종교, 인간의 경험과 직관 등은 과학적 방법론으로 완전히 설명하거나 검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러한 영역들은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 가치, 정서, 창의성 등을 탐구하는 역할을 축소되거나 경시될 위험이 있다. 또한, 과학이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다는 태도는 인간의 주관적 경험과 다채로운 문화적 맥락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결국, 과학이 강력한 도구임은 분명하지만, 다양한 지식 영역이 각각의 독특한 역할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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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03: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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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18744</link>
         <description><![CDATA[<ol><li><p>과학은 체계적인 관찰과 실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다. 아무리 정교한 실험 장비를 사용하더라도 최종적으로 그 값을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관찰과 인식 능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또 과학적 지식은 그 자체가 사회적 맥락에서 형성되고 발전되기 때문에 인간의 관찰이라는 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p></li><li><p>나는 그래도 계속 과학을 믿고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이 완벽한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현재까지의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하고 더 나은 과학적 지식이 나타나면 기존의 이론을 수정하거나 보완하면 된다. 또 과학적 방법은 체계적이고 표준화된 방식을 제공하여 종교적 신념과 달리 우리가 개인적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일관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p></li><li><p>과학은 통하면 철학적 질문과 같이 인간의 사고를 요하는 질문들을 쉽게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철학이나, 인문학 분야에서 고유한 문화를 잃을 수 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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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03: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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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amp;탐구 20251020 (1)</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18817</link>
         <description><![CDATA[<p> 과학은 인간의 인간의 관찰과 완전히 독립된 진리를 다룰 수 없다. 과학은 인간이 세상의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관찰 결과가 없다면 어떠한 가설도 증명할 수 없으므로 진리를 다룰 수 없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간의 관찰 없이는 어떠한 과학적 사실도 발견될 수 없고 다뤄질수도 없다. 지식은 크게 수학적 지식이나 논리학 지식처럼 경험과 무관한 것과 과학적 지식처럼 경험에 의존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경험과 관측을 통해 발생된 과학적 지식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할 경우 나머지 지식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수학적 지식의 경우, 경험보다는 추론을 통해 지식을 얻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후 그 지식은 계산 결과나 실제 적용을 통해 증명되게 된다. 증명되지 않은 지식은 지식이라고 볼 수 없으며 증명될 필요 없는 지식은 새로운 지식이라고 볼 수 없다. 이와 같이 모든 지식은 결국경험을 통한 검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과학만이 진리라고 해도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적 지식이 인간의 기대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할지언정 인간은 과학적 지식을 믿어야 한다. 그 외에 믿을 것은 신 밖에 더 없고 그것은 인간 문명의 퇴화이다. 또한 인간의 기대로 관측된 현상도 보편적인 것이라면 과학적 방법의 조건과 같이 계속하여 관측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사라질 것이므로 인간의 기대 또한 과학현상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관측해야 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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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03: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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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21168</link>
         <description><![CDATA[<ol><li><p>과학은 흔히 인간의 주관과 무관한 객관적 진리를 탐구한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자연의 법칙이나 물리 상수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아도 변하지 않아 과학은 보편적 진리를 다루는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의 출발점은 항상 인간의 관찰과 해석이며, 이것이 완전히 중립적일 수는 없다. 관찰자는 자신이 가진 지식, 문화 속에서 현상을 바라본다. 따라서 과학이 제시하는 진리 또한 시대적 관점에 의해 구성된다. 따라서 과학은 인간의 관찰로부터 완전히 독립될 수는 없고, 인간은 주관을 최소화하고 객관성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과학의 진리는 절대적니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 시대에 가장 신뢰할 만한 지식 체계이다.</p></li><li><p>과학은 객관적 사실을 탐구하는 도구로 여겨지지만 인간의 기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연구자는 관측할 현상, 통제할 변수 등을 정할 때 자신의 기대가 반영되고 결국 과학은 인간의 인식 구조 안에서 작동하는 체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과학을 믿지 않으면 다른 더 객관적인 사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은 어떠한 지식 체계보다 비판과 수정에 열려 있으며, 잘못된 것은 교정되고 실험은 반복을 통해 확인된다.  이러한 교정의 과정이 활발하므로 과학은 신뢰받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오류 수정 과정을 믿어야 한다.</p></li><li><p>과학적 지식이 유일한 진리로 여겨진다면, 인간의 사고와 문화는 심각한 불균형에 빠질 수 있다. 과학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객관적 사실을 밝히지만, 그것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가치, 의미, 도덕, 에술, 인간의 감정 등은 여전히 인간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만약 과학만이 진리라고 주장한다면, 철학은 존재와 인식의 근본적 질문을 던질 이유를 잃고, 윤리학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준을 상실하며, 예술과 문학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으로만 취급될 것이다. 따라서 과학은 세상의 의미를 해석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다른 영역의 영향이 필요하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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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05: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21168</guid>
      </item>
      <item>
         <title>질문 &amp;탐구 </title>
         <author>gs25190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21231</link>
         <description><![CDATA[<p>과학은 관찰과 측정에 의존하고 </p><p>과학은 경험적 체계를 기반으로 합니다.</p><p>즉, 과학의 모든 명제는 관찰, 실험, 측정을 통해 검증됩니다. 따라서 과학의 진리는 어떻게 관찰하냐에 의존한다.</p><p><br/></p><p>과학주의가 지배하면, 철학은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됩니다.왜냐하면 과학이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철학은 과학이 의존하는 전제 자체를 성찰하는 영역입니다.따라서 철학이 배제되면, 과학은 자신의 전제에 대한 비판 능력을 잃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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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05:5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21231</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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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탐구 활동</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38470</link>
         <description><![CDATA[<p>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질식사한다는 예시가 있다. 이것이 과학이 아닌 이유는 적절한 근거가 없고 선풍기 때문에 죽었다는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과학이 실패한게 아니라 그냥 거쳐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언젠간 과학이 완벽해지는 순간이 올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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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19:5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38470</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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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유사 과학의 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38720</link>
         <description><![CDATA[<p><strong>일상생활 속 유사 과학 예시</strong></p><ul><li><p><strong>점성술:</strong></p><p>별의 위치를 통해 성격이나 미래를 파악한다는 주장입니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합니다.&nbsp;</p></li><li><p><strong>혈액형 성격설:</strong></p><p>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결정된다는 주장으로, 과학적 근거가 없는 유사 과학입니다.&nbsp;</p></li><li><p><strong>선풍기 위험설:</strong></p><p>선풍기를 켜고 자면 질식사한다는 속설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유사 과학입니다.&nbsp;</p></li><li><p><strong>산성비와 탈모:</strong></p><p>산성비가 탈모를 유발한다는 주장으로, 산성비의 산도가 샴푸보다 낮아 과학적 근거가 부족합니다.&nbsp;</p></li><li><p><strong>게르마늄 팔찌/목걸이:</strong></p><p>혈액 순환 개선과 같은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유사 과학입니다.&nbsp;</p></li><li><p><strong>육각수:</strong></p><p>육각수 구조의 물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이 있으나, 육각수 자체가 검증되지 않았습니다.&nbsp;</p></li><li><p><strong>전자파 차단:</strong></p><p>전자파 차단 스티커나 선인장이 전자파 차단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nbsp;</p></li><li><p><strong>해독 주스:</strong></p><p>특정 주스를 마시면 몸의 독소가 해독된다는 주장으로,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합니다.&nbsp;</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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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20:1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38720</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39621</link>
         <description><![CDATA[<p>1. msg의 위험성--&gt;거짓 msg는 자연에서 추출한 감칠맛의 정수일 뿐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p><p><br/></p><p>2.과학의 실패 또한 다른 과학의 인정과 동반되므로 가치가 있고,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많은 가설로 더 많은 가능성을 열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p><p><br/></p><p>3.유사과학이 가짜라는 것을 받아드리려면 확실한 근거를 찾고 틀림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것의 속도는 유사과학이 퍼지는 속도보다 너무나 느리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진실이라 믿기 때문에 유사과학을 퍼뜨리는 것은 쉬워도 이를 거짓이라 말하고 증명하는 것에는 너무 많은 반대가 있기 때문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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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21:0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39621</guid>
      </item>
      <item>
         <title>질문&amp; 탐구</title>
         <author>gs25190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41058</link>
         <description><![CDATA[<p>Q1. </p><p>점성술은 사람이 태어난 시간과 별자리, 행성의 위치가 그 사람의 성격이나 운명, 건강 등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적이 없으며, 실험이나 통계 분석으로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 또한 점성술의 예측이 틀려도 해석이 달랐다거나 상황이 변했다는 식으로 설명해 반증이 불가능하다. 과학은 검증과 반증이 가능한 이론만을 인정하지만, 점성술은 이를 충족하지 못해 정당한 과학이 아닌 유사과학으로 분류됨 </p><p>Q2.</p><p>과학이 틀렸다고 증명되는 것은 과학의 실패가 아니다. 과학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관찰과 실험을 통해 얻은 가장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체계이기 때문.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기존 이론은 수정되거나 대체될 수 있으며, 이는 과학의 핵심 원리인 반증 가능성 덕분에 가능함. 예를 들어, 뉴턴 역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일부 수정되었지만, 이는 실패가 아니라 과학이 더 넓은 범위를 설명하게 된 진보의 과정임</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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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22: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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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41732</link>
         <description><![CDATA[<p>1. </p><p>대표적인 유사과학으로 점성술을 들 수 있다. 점성술은 별자리의 위치나 움직임이 인간의 성격이나 운명을 결정한다고 주장하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다.</p><p>반복 가능한 살험이나 통계적 검증이 불가능하며, 반증 가능성 또한 없다. 과학은 증거와 검증을 통해 진리를 다루지만, 유사과학은 신념과 해석에 으자노하기 때문에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학이라 할 수 없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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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22: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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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42438</link>
         <description><![CDATA[<p>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예는 "좋은 말 / 나쁜 말" 실험이 아닐까. 청각 기관이나 뇌가 없는 식물이 말의 뜻을 알아듣고 생장을 조절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 뿐더러, 좋은 말 / 나쁜 말의 기준과 잘 생장한 / 못 생장한 식물의 기준 역시 실험자의 주관에 철저히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어디에도 과학적인 구석이 없는 실험이다. 아동에게 언어 습관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훌륭한 비유이긴 하지만, 이것이 비유가 아니라 정당한 근거인 양 소개하는 것은 어폐가 심하기에 유사과학의 훌륭한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p><p><br/></p><p>특정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과학 이론은 그 시대에서 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이론이기도 하므로 의의가 있다. 또한 하나의 가설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과학의 지식 체계는 물론 조사 방식까지도 크게 진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므로 틀린 과학도 실패한 과학이라 하기 어렵다. 실질적인 문제는 그 틀린 지식 때문에 발생하는 인명이나 환경 등에의 피해가 어마어마할 수 있다는 것일 테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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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23: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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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과학이 틀렸다고 증명되면 그것은 과학이 실패 했다는 의미일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46556</link>
         <description><![CDATA[<p>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그것 또한 과학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과학이고 진리라 믿고 있는 모든 것이 사실 거짓 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괗가은 그런 것들에서 나아가는 과정이며 사실 그 사실 자체가 완전히 정확한가 아닌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도로 적절한 수준으로 알면 되기 때문이다.요번 중간 범위에나온 예시인데,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를 6자리 까지 정확히 알아도 그거리는 매우 멀다 .하지만 만약 그 거리라는 정보가 필요한 사람이 그저 내일 일출 시간을 알고 싶을 뿐이라면 끄정도로 충분하지만 인공 위성을 보내려는 것이면 더 정확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보의 불확실성의 중요도는 상황마다 다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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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26: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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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상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48810</link>
         <description><![CDATA[<ol><li><p>유사과학: 지평설의 근거는 현재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으며, 오히려 수많은 과학적 증거들이 지구가 구형(sphere)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지평설은 지구의 모양이 납작한 평면이라고 주장하는 비과학적인 이론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지구설(globe)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지평설을 주장하는 단체들도 과학보다는 의사과학에 해당하며, 주요 근거로 제시하는 주장들도 과학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p></li><li><p>틀린 과학이라 하더라도 틀린 사실을 통해 더 향상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많은 과학적 사실들은 그전에 틀린 사실을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원자의 발견도 기존에 아리스토텔레스가 4원소설을 제시했고 이러한 사실들이 틀렸음이 밝혀지면서 원소, 원자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렇듯 틀린 것은 과학을 더 진보되게 해줍니다. </p></li><li><p>유사과학은 비과학적인 현상을 살명하기 위해 만들어졌기에 그 상황에서 있을 때  그 유사과학을 통해 현상을 설명하거나 예측합니다. 가령 동전 던지기를 통해 문제를 찍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유사과학이 과학처럼 보입니다. </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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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28: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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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48842</link>
         <description><![CDATA[<p>1. 예시: 점성술</p><p>점성술은 행성과 별의 위치가 인간의 성격이나 미래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겉보기엔 체계적인 계산과 전문용어를 사용해 과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실험적 검증과 반증 가능성이 없다. 과학은 ‘같은 조건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는가’를 검증하지만, 점성술은 재현성이 없고 결과가 사람마다 다르다. 또한 점성술의 예측이 틀려도 그것을 실험으로 반박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과학적 이론으로 인정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점성술은 과학의 외형만 모방했을 뿐, 과학의 핵심 원리인 객관적 검증 가능성과 논리적 일관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유사 과학’이다.</p><p>2. 아니다. 오히려 과학이 발전했다는 뜻이다.</p><p>과학은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는 학문이 아니라, 증거를 통해 더 나은 설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p><p>예를 들어, 뉴턴의 역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대체된 것은 뉴턴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더 정교한 이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과학의 힘은 완벽함이 아니라 자기 수정 능력에 있다. 새로운 실험 결과가 이전의 이론을 부정하더라도, 그것은 과학이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오류를 교정하며 진리에 가까워진다는 증거이다.</p><p>3.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나 불안한 상황 속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운세나 타로카드 같은 유사 과학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어도 믿게 된다. 이때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정보만 받아들이는 확증 편향에 빠지기도 한다. 또한 무엇이 과학이고 유사 과학인지 판단하는 일도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 그러나 과학은 실험과 논리 검증을 통해 객관성에 다가간다는 점에서 유사과학과 구분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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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28: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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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식물에게 칭찬을 해주면 더 잘 자란다.</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49117</link>
         <description><![CDATA[<p>'식물에게 칭찬을 해주면 더 잘 자란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유사과학으로, 식물에게는 언어와 감정을 이해할 뇌와 신경계가 없기 때문에 칭찬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또한, 식물의 성장은 칭찬이 아닌 햇빛, 물, 영양분 같은 명확한 과학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며, 말을 걸어주는 행위로 인해 식물에 더 많은 관심과 보살핌을 주게 되는 '관심 효과'가 실제 성장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즉, 이 믿음은 과학적 사실이 아닌, 돌보는 이의 정서적 경험과 세심한 관리가 만들어낸 착시 현상을 유사과학적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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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28: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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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탐구활동</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49985</link>
         <description><![CDATA[<p>1.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선풍기 바람을 정면에서 쐬었을 때 강한 맞바람 때문에 호흡이 어려워지는 느낌, 또 청소를 하지 않아 더러워진 선풍기 날개에 묻은 먼지 등이 호흡기에 들어가 감기, 비염, 천식 등이 생긴 기억 등 선풍기의 특징이 여러 사람들의 뇌리에서 조합되고 부풀려져 만들어졌을 확률이 높다. 또한 전반적인 살림살이가 윤택하지 않던 시절에,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한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이것이 대중적으로 퍼진 것에는 197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이다. 실제로 선풍기 때문에 사망했다고 밝혀진 경우는 전 세계에서 1건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껏 속설이 이어진 데에는 3가지 근거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산소 부족, 호흡 곤란, 저체온증이다.</p><p>먼저 선풍기는 산소 부족을 유발할 힘이 없다. 그저 공기의 흐름을 바꿀 뿐 산소 농도를 바꾸지는 못한다. 또, 선풍기가 아니라도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서는 산소 부족이 생길 수 있다. 다만, 방문과 창문을 닫는다고 산소가 완벽히 차단되진 않는다.</p><p>그나마 호흡 곤란을 유발할 수 있다는 근거는 과학적 논리를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기는 높이 차가 있는 곳을 빠르게 흐르면 위, 아래 압력이 달라진다. 얼굴에 직접 선풍기 바람을 쏘여주면 코가 주는 높이 차로 호흡기 근처 압력이 낮아져 호흡곤란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풍기 바람도, 코의 높이도 그 정도 압력 차를 낼 수 없다. 실제로 2013년 한 방송사에서 선풍기를 틀고 얼굴 주변 공기 압력 변화를 간접적으로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선풍기를 틀기 전과 비교해 수치의 변화가 없었다. 단순히 증명되지 않은 근거로 나온 논리로 과학적으로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었기에 정당한 과학이 아니다.</p><p>2.유사과학과 같이 과학적으로 어긋난 과학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과학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대의 과학자들이 어떠한 현상에 대해서 원리를 설명한 과학 같은 경우에는 비록 그것이 틀렸다고 할지라도 과학 역사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에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성공적인 과학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해서 실패된 과학을 만든다면 그것도 일종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실패했다고 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p><p>3.이때까지 믿어왔던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처음 듣게되면 그 사실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예를 들어 우리가 초등학생까지 산타가 존재한다고 믿어왔던 것이나 사이비 종교 같은 것들도 그 존재가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모두 부정할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과학과 유사과학인지 결정할 떄 객관적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언제나 중립을 지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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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29:1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49985</guid>
      </item>
      <item>
         <title>탐구 활동</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56663</link>
         <description><![CDATA[<p>유사과학의 예: mbti, 혈액형, 음이온, 지구 평면설, 사주, 선풍기 사망설, 무한 동력</p><p>이러한 유사과학들이 정당한 과학이 아닌 이유는 공통적으로 우선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개 정도 골라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우선, 사람들이 선풍기 사망설을 유사과학으로 믿는 이유는 이는 사람들이 선풍기를 틀고 자면 저체온증이나 저산소증에 걸려 사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잘못된 것으로 선풍기는 산소 농도에 변화를 주지 않고 또 사람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려면 체온이 8도 이상 떨어져야 하는데, 밀폐된 공간에서는 그럴 확률이 거의 없다. 두 번째로, 예전부터 일부 사람들이 계속해서 지구 평면설을 믿는 이유는 땅이 직선 형태이고, 또 그저 현대 과학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그러나, 나사에서 보여준 영상을 보기만 해도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레이저와 높이 자를 이용한 간단한 실험으로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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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34:4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56663</guid>
      </item>
      <item>
         <title>6차시 탐구 활동</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58217</link>
         <description><![CDATA[<p><strong>선풍기 틀고 잠자기:</strong></p><p>선풍기를 틀고 자면 질식사한다는 속설이 있으나, 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유사과학이다. 질식사는 밀폐된 공간에서 산소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며, 선풍기가 산소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nbsp;</p><p><br/></p><p>Q1. 과학이 틀렸다고 증명되면, 그것은 과학이 실패했다는 뜻인가?</p><p><br/></p><p>A1. 과학이 틀렸다고 증명되는 경우, 그것이 반드시 과학이 실패했다고 볼 수 없다. 과학은 자기 수정과 발전을 통해 더 나은 이해를 추구하는 체계이다. 만약 기존 이론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이는 과학이 한계와 오류를 인식하고 더 나은 설명을 찾기 위한 과정의 일부이다. 따라서 과학의 실패보다는 적응하고 진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p><p><br/></p><p>Q2. 만약 어떤 것(예를 들어 차로 카드 운세)을 믿는다면 그것이 유사과학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왜 어려울까? 무엇이 과학이고 무엇이 유사 과학인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을까?</p><p><br/></p><p>A2. 어떤 것(예를 들어 차로 카드 운세)을 믿는 것이 유사과학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믿고 싶은 것에 대한 확신을 갖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차로 카드 운세와 같은 것들은 직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를 과학적 근거나 검증 가능성과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더불어, 유사과학이 주는 일시적인 위로나 희망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그것이 과학이 아니라고 받아들이는 것에 저항감을 느낄 수 있다.</p><p>과학과 유사과학을 구별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느냐는 질문은 매우 중요한데, 사실 완전한 객관성은 어렵다. 과학은 실험과 검증, 재현 가능성, 그리고 증거 기반의 방법론에 기반하여 구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인간의 인지 편향, 문화적 배경, 과학적 기준에 대한 이해 수준 등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적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가능한 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며, 동시에 다양한 관점과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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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35:4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58217</guid>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63451</link>
         <description><![CDATA[<ol><li><p><strong>점성술</strong></p><p>점성술의 예측은 너무 모호하고 일반적이어서 반증하는 것이 것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당신은 오늘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와 같은 예측은 거의 모든 사람의 삶에서 언제든 적용될 수 있다. 또 점성술은 천문학, 물리학 등 확립된 과학적 지식이 뒷받침해줄 수 없고 과학적인 실험이나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다. </p></li><li><p>과학이 틀렸다고 증명되는 것은 과학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과학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의 핵심은 모든 이론이 검증 가능하고 반증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우고 발전한다. 예측할 수 없는 오류에도 쉽게 대응할 수 있어서 오히려 과학적 진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p></li><li><p>타로 운세와 같은 유사 과학이 허구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객관적이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한 지식의 부족을 넘어 인간의 깊은 심리적 요인과 인지적 편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타로 운세는 이러한 불안한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제공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따라서 사람들은 유사 과학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뿐만 아니라 타로 운세는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함으로써 정서적인 위안을 주는데 이것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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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40:0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63451</guid>
      </item>
      <item>
         <title>질 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64324</link>
         <description><![CDATA[<p>배아를 편집하는것이 더 윤리적이다. 왜냐하면 배아도 생명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필요에 따라 버리는 것은 비윤리적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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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40:4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64324</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 20251020 (2)</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64378</link>
         <description><![CDATA[<p> 유사과학 사례로는 전자레인지가 암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있다(솔직하게 나는 이 주장을 5살부터 믿었고 사실 지금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이 주장은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인체에 영향을 미쳐 암을 유발한다는 것인데, 실제로 전자레인지는 마이크로파를 이용해 음식물에 열을 내는 것이다. 이 마이크로파가 바깥으로 누출된 전자파가 해롭다는 것인데, 마이크로파는 강한 수준에 노출되면 열상을 입는 등 피해를 입을 수 있지만, 전자레인지에서 발생하는 미량으로는 현재 피해 사례가 발견되고 있지 않으며, 아직 마이크로파로 인한 암 발생에 대해 신빙성 있는 연구 결과는 없기 때문에(물론 분명한 아니라는 결과도 없긴 하지만) 정당한 과학이라고 보기 어렵다. </p><p> 과학이 틀렸다고 증명되면, 그것은 말 그대로 과학이 실패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를 바꾸어 해석하면 이전까지는 잘못 알고 있던 지식이 바로잡혔다는 것이므로 해당 과학 지식과 관련된 부분은 실패했더라도, 과학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p><p> 일상 생활에서 사소한 징크스나 비과학적 현상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 내 입장(물론 과학적으로 분명히 아님이 검증된 것은 믿지 않는다.)에서는 어떤 것이 유사과학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것이 어려운 이유는 '혹시나'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조금이라도 여지가 있는 것은 안 믿는것 보단 믿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좀 더 보편적으로 보면 점성술과 같은 유사 과학을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미래에 대한 불안을 없애기 위한 정신적 의존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유사과학임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분명한 것은 무엇이 과학이고 유사과학인지 구분하는 것에 있어서 객관적인 것은 순수한 경험 뿐이며, 어느 한 쪽의 입장에서 탐구하려 하는 순간 그 증명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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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40: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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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gs25162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65452</link>
         <description><![CDATA[<p>나는 유사과학의 사례로 점성술을 찾았다. 점성술을 유사과학으로 보는 이유를 간결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점성술은 개인의 성격이나 운명을 천체 위치로 설명하나, 예측이 모호하고 반복 재현되지 않아 실험적 검증에 실패한다. 반증 가능성을 회피하고 예측이 틀릴 때 해석을 바꾸는 경향이 있어 과학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또한 천체가 개인에게 어떤 물리적 메커니즘으로 영향을 주는지 설명하는 근거가 부족하고, 성공 사례만 강조하는 선택적 증거와 확인편향에 의존한다. 독립적·다중 증거와 동료검증에서도 일관된 유효성이 확인되지 않으므로 점성술은 정당한 과학이라 보기 어렵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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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41: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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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차시 질문탐구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68502</link>
         <description><![CDATA[<p>1.편집하는 것이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아무리 뛰어나지 않은 유전자의 배아라도 선택하지 않고 버린다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고 그 유전자를 어떻게든 활용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배아를 편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아를 편집하는것이 선택되지 않은 배아를 버리는 것보다 더 윤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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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44: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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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70060</link>
         <description><![CDATA[<p>배아 선택이든 배아 유전자 조작이든 특정 형질을 인간의 기호에 따라 선택한다는 데서 본질은 실상 다를 바 없다. 이들 기술이 규제되어야 하는 까닭은 그 자체가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이 주장은 합리화하는 데 이성을 넘어서는 논의를 요하므로), 그 기술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되어 사회 계급이 걷잡을 수 없이 확고해지는 일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 형질이 다른 형질보다 더 우수하고 선택받을 만하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퍼지는 순간, 그에 따른 차별은 상상할 수 없이 가혹할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위험이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에 배아 유전자 조작이 상용화되는 것을 규제해야 하는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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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45: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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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70430</link>
         <description><![CDATA[<p>편집하는 것이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편집하는 것은 지금 가진 배아를 고치려는 노력을 해서 자연의 섭리에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보이지만, 배아를 선택하는 것은 인간이 창조주가 된것 마냥 생사를 결정하는 것이 섭리에 거스르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추가로 예전에는 여자가 발목을 드러내는 것부터가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 것과 다르게 윤리가 발전한 것처럼 과학이 발전하면 그에 따른 윤리도 발전하고 거기에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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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45: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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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gs25190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70691</link>
         <description><![CDATA[<p>배아 편집은 특정 유전 질환을 예방하거나 건강한 출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적으로 일정 부분 유리. 예를 들어, 낭포성 섬유증이나 근이영양증과 같은 단일 유전자 질환은 편집을 통해 제거할 수 있으며, 유전적 리스크를 줄여 아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존재. 그러나 다유전자 질환이나 복합 형질은 편집해도 효과가 불확실하며, 오프타겟 변이로 인해 다른 유전자가 의도치 않게 변형될 위험도 존재. 또한 편집된 배아가 성장하면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나 질병이 나타날 수 있어 장기적 안전성도 충분히 검증X. 따라서 배아 편집은 과학적 유리성을 가지지만, 기술적 한계와 예측 불가능성을 항상 고려해야 하며, 완전한 안전성을 보장X.</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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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45: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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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71693</link>
         <description><![CDATA[<p>과학의 발전이 인류를 위해 정말 '좋은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존재한다. 과학은 질병 치료나 생활 편의 향상 등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환경 오염, 생명 윤라 문제, 기술 남용 같은 부정적 결과도 초래했다. 예를 들면 유전자 조작이나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류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통제  불가능한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결국 과학 발전의 가치는 그것이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지향할 때 비로소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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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46: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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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73814</link>
         <description><![CDATA[<p>배아를 편집하는 것이 더 윤리적이다. 많은 배아 중 선별해 나머지 배아를 버리는 것은 여러 생명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생명을 언제부터 인정해줄 지는 논란이 존재하지만 배아를 편집하는 것이 많은 배아를 버리는 것보다 훨씬 생명을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배아 중 선택을 하는 것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으면 더 많은 시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효율적이지도 않다. 또한 유전자 질환을 유전자 편집을 통해 제거하는 것은 오히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10-20 11:48: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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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상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75699</link>
         <description><![CDATA[<p>저는 편집하는 것이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아를 죽이는 것보다는 그 생명을 살리는 대신 그에게 약간의 패널티를 주는 것이 생명을 살리기 때문에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배아를 편집하여 심각하고 해로운 질명을 없앰으로써 아이의 건강을 안정적이게 하기 때문에 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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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49: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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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 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75945</link>
         <description><![CDATA[<p>Q. 배아를 편집하는 것이 더 윤리적인가?, 아니면 많은 배아를 선별하여 선택되지 않은 배아를 버리는 것이 더 윤리적인가?</p><p>A. 나는 배아를 편집하는 것이 그나마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부모가 성별 등의 이유로 배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낙태를 하거나 자녀를 버리는 것을 할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부모가 원하는대로 유전자 편집을 실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하면, 임산부에게도 건강 악화 문제를 해결하는 등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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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49: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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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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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차시 탐구 활동 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76346</link>
         <description><![CDATA[<p>나는 배아를 편집하는 것과 많은 배아를 선별하여 선택되지 않은 배아를 버리는 것 중 더 윤리적인 것은 배아를 편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배아를 판별하였을 때, 선택되지 않은 배아는 버린다는 것 자체가 생명을 버린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아를 편진하는 것은 생명을 버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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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50: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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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윤리적 관점</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78022</link>
         <description><![CDATA[<p>배아를 편집하는 것이 더 윤리적일까 아니면 많은 배아를 선별하여 선택되지 않은 배아를 버리는 것이 더 윤리적일까? 일단 둘 다 윤리적이라고 보기는 힘들긴 하지만 굳이 따진다면 전자가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전자는 질병 예방, 장애 제거 등 여러 이점을 보장할 수 있는 반면 후자에서 버려지는 배아들은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박 대해지기 때문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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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51: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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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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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80239</link>
         <description><![CDATA[<p>배아 편집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으며 아직 유전자 편집 기술은 정교하지 않아 예기치 못한 돌연변이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생식세포와 배아 편집은 후세대에 영향을 미치므로 신중히 해야한다. 만약 배아 편집이 가능해진다면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고 사회적 합의 없이 기술이 남용될 경우 우월한 유전자를 선호하는 우생학적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갈 수 있다.</p><p>많은 배아중에 선별하는 것도 우생학적이고 윤리적 논란이 존재할 수 있지만 배아를 선별하는 것은 후대 유전적 문제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고 배아 편집보다 복잡하지 않아 배아 선별이 배아 편집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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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52: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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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 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82385</link>
         <description><![CDATA[<p>선택되지 않은 배아를 버리는 것이 더 윤리적이라 생각한다. 많은 배아를 선별하여 선택되지 않은 배아를 버리는 것은, 실제 자연의 원리를 수정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선별하는 것에 해당한다. 하지만, 배아를 편집해 버리면, 이들의 본질을 왜곡하여 승리자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배아를 버리는 것이 덜 윤리적이라는 주장에서, 이미 수억개의 정자 중 단 하나만이 선택되어 배아가 되니까, 수많은 정자들은 죽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려고 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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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54: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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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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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 20251020 (3)</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40882390</link>
         <description><![CDATA[<p>(위험한 발언이긴 하지만) 많은 배아를 선별하여 선택되지 않은 배아를 버리는 것이 더 윤리적이다. 지금의 기술로써는 배아를 자유롭게 편집하는것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며, 반면 (더 위험한 발언이긴 하지만)선택되지 않은 배아를 버리는 것은 배아가 성체가 되었을 때 사회에 맞지 않는 개체가 겪게 될 자연선택을 조금 더 빠르게 함으로써 사회에 발생하는 혼란을 줄이는 방향이 유리할 수 있다(이것은 근거 없는 우생학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에 기반을 둔 인간의 발전 과정이다). 배아기에 선별하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사회라면 선별 될 개체는 선별되므로 오히려 의식이 형성되기 전에 버리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윤리적이라는 기준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으나 사회 전체의 이익을 뜻한다면 선별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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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0 11:54: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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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탐구활동 1.</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75830</link>
         <description><![CDATA[<p>A: 유도된 질문(정구열쌤은 좋다)</p><p>B: 의도된 질문</p><p>C: 의도된 질문</p><p>D: 의도된 질문</p><p>E: 유도된 질문(우리는 언론을 믿는다)</p><p>F: 유도된 질문(크다)</p><p><br/></p><p>A: 정구열 선생님은 어떤가요?</p><p>B: 7반 반장에게 "어떤" 문제가 있나요?</p><p>C: 올해 집값이 얼마나 오를 거 같나요?</p><p>D: 범죄자를 왜 유죄로 판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p><p>E: 여러분은 언론을 믿나요?</p><p>F: 여러분이 본 개는 어떻게 생겼나요?</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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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20: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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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탐구활동</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76715</link>
         <description><![CDATA[<p>cdf</p><p>정구열 선생님은 어떤가요?</p><p>7반 반정은 어떤가요?</p><p>올해 집값이 어떻게 될까요?</p><p>우리는 범죄자를 어떻게 생각하나요?</p><p>여러분은 언론은 믿나요?</p><p>여러분은 개의 크기를 어떻게 생각하나요?</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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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21: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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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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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79228</link>
         <description><![CDATA[<ol><li><p>'정구열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p></li><li><p>'문제가 있다'는 중립적이지 않은 표현 때문에 답변이 편향될 가능성이 있다. </p></li><li><p>'오른다'는 중립적이지 않은 표현 때문에 답변이 편향될 가능성이 있다.</p></li><li><p>'판결의 대상은 범죄자가 맞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p></li><li><p>'순진하다'는 중립적이지 않은 표현 때문에 답변이 편향될 가능성이 있다.</p></li><li><p>'답변자는 개를 보았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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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23: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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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80068</link>
         <description><![CDATA[<p>a: 학생을 가르치려는 열정과 사랑(유도하는 질문:정구열 선생님은 좋다)</p><p>b:모름(의도된 질문)</p><p>c:네(의도된 질문)</p><p>d:네(의도된 질문)</p><p>e:아니요(유도하는 질문:언론을 믿으면 순진하다)</p><p>f:많이 큼(유도하는 질문: 우리가 개를 봤다)</p><p><br/></p><p>2.a:정구열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인가요?</p><p>b:7반 반장에게 특이사항이 있나요?</p><p>c:올해 집값은 어떻게 변동할 것 같나요?</p><p>d:우리는 범죄자를 어떻게 처분해야 할까요?</p><p>e:우리가 언론을 믿어야 하나요?</p><p>f:당신은 개를 봤나요?</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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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24: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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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 20251027 (1)</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80257</link>
         <description><![CDATA[<p>A.'무엇이 정구열 선생님을 그렇게 좋은 선생님으로 만들까요?' 에는 정구열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라는 가정이 있는 의도된 질문이다.</p><p>B.'7반 반장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나요?'에는 7반 반장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질문이다.</p><p>C.'올해 집값이 오를 것 같나요?'는 '집값이 오른다'라는 내용을 강조하는 의도된 질문이다.</p><p>D.'우리가 범죄자를 유죄로 판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는 '범죄자를 유죄로 판결해야 한다'는 답변을 기대하는 의도된 질문이다.</p><p>(수정 : '범죄자'에서 이미 '유죄'를 전제로 하는 의도된 질문이다)</p><p>E.'여러분은 언론을 믿을 만큼 순진한가요?'는 언론을 믿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질문이다.</p><p>F.'여러분이 본 그 개는 얼마나 큰가요?'는 '그 개가 크다'라는 편향을 이끄는 유도하는 질문이다.</p><p> 각 질문을 다시 구성해보면</p><p>A.정구열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이고,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나요?</p><p>B.7반 반장은 어떤 사람인가요?</p><p>C.올해 집값은 어떻게 변할 것 같나요?</p><p>D.우리가 피의자를 어떻게 판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p><p>E.여러분은 언론을 믿나요, 믿지 않나요?</p><p>F.여러본이 본 개의 크기는 어떤가요?</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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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24: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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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탐구활동1</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80562</link>
         <description><![CDATA[<p>1.유도된 질문,의도된 질문</p><p><br/></p><p>A 유도된 질문</p><p>B 의도된 "</p><p>C 의도된 </p><p>D 유도된"</p><p>E 유도된"</p><p>F 의도된 "</p><p><br/></p><p>2.개선</p><p>D 범죄자를 판정할 때 어떤 기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p><p>ㄸ 언론 보도의 신뢰성을 평가할 떄 어떤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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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24: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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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82125</link>
         <description><![CDATA[<p>유도: B, D, F</p><p>의도: A, C, E</p><p>A: 정구열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p><p>C: 집값은 변화한다.</p><p>E: 언론은 믿을 만하지 않다.</p><p>A: 정구열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인가요?</p><p>C: 집값은 변화하나요?</p><p>E: 언론은 믿을 만한가요?</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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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25: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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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83103</link>
         <description><![CDATA[<p>1.의도된 질문 정구열이 좋은 선생님이라는 가정이 있다.</p><p>2.유도된 질문  7반에 문제가 있다는 가정</p><ol start="3"><li><p>의도되는 질문 짒값에 변동이 있을 것이라는 질문</p></li><li><p>의도된 질문 범죄자가 있다는 가정</p></li><li><p>유도하는 질문 언론이 우리는 순진하게 만든다.</p></li><li><p>의도된 질문 개가 크다는 가정</p></li></ol><p><br/></p><p>정구열 선생님의 장단점을 말해보시요</p><p>7반 반장의 좋은 점과 나쁜점을 말해보시오</p><p>집값의 변동이 있을까요</p><p>범죄자는 유죄인가요</p><p>언론을 어느정도 신뢰하나요</p><p>여러분이 본 개는 크기가 얼마나되나요?</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10-27 10:26: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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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도질문</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83156</link>
         <description><![CDATA[<p>유도질문: a,d,e</p><p>의도된 질문: b,f,c</p><p>a:정구열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인가요?</p><p>b:7반 반장은 어떤가요?</p><p>c:올해 집값은 어떤 추이를 보일까요?</p><p>d:우리는 범죄자를 어떻게 처리해야할까요?</p><p>e:여러분은 언론을 어떻게 생각하나요?</p><p>f:여러분은 개를 봤나요?</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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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26: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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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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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차시 탐구활동 1</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84053</link>
         <description><![CDATA[<p>Q1. A에서 F까지 질문을 보세요. 3개의 의도된 질문과 3개의 유도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의도된 질문에 포함된 가정은 무엇일까요?</p><p><br/></p><p>A. 무엇이 정구열 선생님을 그렇게 좋은 선생님으로 만들었을까요?</p><p>B. 7반 반장에게 문제가 있나요?</p><p>C. 올해 집값이 오를 것 같나요?</p><p>D. 우리가 범죄자를 유죄로 판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p><p>E. 여러분은 언론을 믿을 만큼 순진한가요?</p><p>F. 여러분이 본 그 개는 얼마나 큰가요?</p><p><br/></p><p>A1. 의도된 질문인 B, C, D에는 특정한 가정이나 전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들은 중립적으로 정보나 의견을 묻는 질문이다.</p><p>가정이 포함된 질문은 유도 질문인 A, E, F이며 그 가정은 다음과 같다.</p><p><br/></p><p>A. (무엇이 정구열 선생님을 그렇게 좋은 선생님으로 만들었을까요?): 정구열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이미 전제하고 있다.</p><p>E. (여러분은 언론을 믿을 만큼 순진한가요?): 언론을 믿는 것은 순진하다는 부정적인 판단을 전제하고 있다.</p><p>F. (여러분이 본 그 개는 얼마나 큰가요?): 응답자가 개를 보았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p><p><br/></p><p>Q2. 의도되거나 유도되지 않은 방식으로 질문을 다시 작성하세요.</p><p><br/></p><p>A2. 유도 질문(A, E, F)을 중립적인 질문으로 다시 작성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p><p><br/></p><p>A. 정구열 선생님의 교수법이나 자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p><p>E. 여러분은 언론 보도를 얼마나 신뢰하십니까?</p><p>F. 개가 보였는가? 만약 보였다면, 그 개는 얼마나 컸는가?</p><p><br/></p><p>의도된 질문(B, C, D)은 이미 중립적이므로 명료성을 유지하며 다시 작성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p><p><br/></p><p>B. 7반 반장의 역할 수행에 관하여 우려되는 점이 있는가?</p><p>C. 올해 국내 주택 시장의 가격 변동을 어떻게 예상하는가?</p><p>D. 특정 범죄 사건에서 범죄자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는가?</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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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27: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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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탐구활동 1.</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84608</link>
         <description><![CDATA[<p>의도된 질문:B, C, F</p><p>유도된 질문:A, E, D</p><p><br/></p><p>A 정구열 선생님은 어떤 사람일까?</p><p>B 7반 반장은 어때?</p><p>C 올해 집값이 어떻게 될 것 같나?</p><p>D 피고인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가?</p><p>E 여러분은 언론을 믿는가?</p><p>F 여러분이 본 그 개는 어떠한가?</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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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28: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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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 7</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84800</link>
         <description><![CDATA[<ol><li><p>유도된 질문: A, D, E</p><p>의도된 질문: B, C, F</p></li><li><p>A: 정구열 선생님은 좋은가요, 나쁜가요? 좋으면 좋은 이유는, 나쁘면 나쁜 이유는 무엇인가요?</p><p>B: 7반 반장은 어떤가요?</p><p>C: 올해 집값이 변할 것 같나요, 고정될 것 같나요?</p><p>D: 범죄자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해야 할까요?</p><p>E: 여러분은 언론을 믿나요?</p><p>F: 여러분이 본 그 개는 크기가 어떤가요?</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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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28: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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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85078</link>
         <description><![CDATA[<p>유도하는 질문</p><p>A.무엇이 정구열 선생님을 그렇게 좋은 선생님으로 만들까요?--정구열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인가요</p><p>D.우리가 범죄자를 유죄로 판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피고인을 어떤 기준으로 판결해야 하나요</p><p>E.여러분은 언론을 믿을만큼 순진한가요?</p><p><br></p><p>의도된 질문</p><p>B.7반 반장에게 문제가 있나요?</p><p>F.여러분이 본 그 개는 얼마나 큰가요?</p><p>C.올해 집값이 오를 것 같나요?</p><p><br></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10-27 10:28: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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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title>
         <author>gs25190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85242</link>
         <description><![CDATA[<p>1.의도된 질문</p><p>좋게 만드는 요소를 묻는 일반적인 정보/의견 요청 질문임.</p><p>2.유도 질문</p><p>반장에게 문제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 답변을 유도하거나, 문제 여부를 확인하려는 질문으로 해석될 수 있음.</p><p>3.의도된 질문</p><p>미래 상황에 대한 단순한 예측이나 의견을 묻는 질문임.</p><p>4.의도된 질문</p><p>특정 행위에 대한 질문자의 일반적인 의견을 묻는 질문임.</p><p>5.유도 질문</p><p>답변하는 사람을 순진하다는 부정적인 전제나 판단에 동의하도록 유도하는 질문임.</p><p>6.의도된 질문</p><p>개 크기에 대한 단순하고 객관적인 사실여부를 묻고있따.</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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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28: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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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title>
         <author>gs25190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86194</link>
         <description><![CDATA[<p>A.정구열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이고,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나요?</p><p>B.7반 반장은 어떤 사람인가요?</p><p>C.올해 집값은 어떻게 변할 것 같나요?</p><p>D.우리가 피의자를 어떻게 판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p><p>E.여러분은 언론을 믿나요, 믿지 않나요?</p><p>F.여러본이 본 개의 크기는 어떤가요?</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10-27 10:29: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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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94325</link>
         <description><![CDATA[<p>체온의 변화</p><p>지구 온도의 변화</p><p>온도 변화 그래프</p><p>ph변화 그래프</p><p>전류 변화</p><p>시험 점수의 변화(보통 작은 변화)</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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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36: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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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97464</link>
         <description><![CDATA[<p>이해하기 난해한 상황들을 여러가지 계산과 변수만으로, 하나의 식으로 정리해서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다른 모든 경우도 하나의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미지에 대한 정복감이 아름다움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 같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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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39: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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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97814</link>
         <description><![CDATA[<p>패턴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건 규칙성인것 같다. 어떤것이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그것이 무한해진다면 사람은 그것을 아름답고 완벽한 것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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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40: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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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298782</link>
         <description><![CDATA[<p>수학에서의 패턴이 아름다운 것은 단지 패턴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기보다, 규칙성이 전혀 발견되지 않을 것 같았던 부분에서 뜻밖에도 패턴이 발견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수열에는 규칙성이 있지만 우리는 결코 모든 수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고, 그 수열에서 어떤 예상치 못했던 특징이 나타날 때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 주제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오일러 등식(<em>e<sup>iπ</sup></em> + 1 = 0) 역시 다른 모든 등식과 마찬가지로 규칙적이지만, 서로 다른 수 체계에서 발생한 수들이 뜻밖에도 규칙성을 이루고, 이것이 뜻밖에도 수많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응용되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이는 시각 예술이나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로,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거나 부조화를 이루는 것들 사이에서 뜻밖에 조화가 이루어지는 경우(재즈!)에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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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41: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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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학괴 미학</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02981</link>
         <description><![CDATA[<p>모듬 패턴이 아름다운 건 아니다. 수학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패턴은 질서와 조화 속에 단순함과 규츄기성이 함께 있는 경우다. 예를 들면 황금비, 프랙탈 구조 대칭등 같은 것들이다. 이들은 복잡하면서도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어 사람의 인지 체계에 안정감을 준다. 즉, 균형,비례,규칙성이 수학적 패턴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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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45:2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02981</guid>
      </item>
      <item>
         <title>질문</title>
         <author>gs25190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04653</link>
         <description><![CDATA[<p>수학은 패턴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체계입니다. 모든 패턴이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수학적 아름다움은 단순한 규칙이 복잡하고 깊이 있는 구조를 만들어낼 때 빛납니다. 패턴의 아름다움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특징은 단순함 속의 복잡성입니다. 설명이 간단한 규칙이 무한하거나 정교한 결과를 낳을 때, 지적인 만족감과 조화를 느끼게 됨.</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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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46: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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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수학과 미학</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04832</link>
         <description><![CDATA[<p>패턴의 아름다움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특징은 대칭인 것 같다. 이는 자연의 패턴에서부터 르네상스 건축 그리고 현대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관찰되며 대칭성을 통해 복잡한 현상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우주의 근본 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여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므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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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47: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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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 7</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04879</link>
         <description><![CDATA[<p>수학이란 패턴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체계라고 한다면 모든 패턴이 아름다울까? 가장 크게 기여하는 특질은 무엇일까?</p><p><br/></p><p>우선, 나는 모든 패턴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수학에서의 피보나치 수열이나, 오일러 공식처럼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들이 있는 반면,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수의 나열은 아름답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p><p>그리고 가장 크게 기여하는 특질은 바로 연관성과 대칭성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연관성이 한 특질인 이유는 어떠한 다른 분야와 수학적 공식이 연관성이 있다면 이 때의 수학 공식은 아름다움에 기여하는 특질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대칭성은 예전부터 미술의 다양한 분야와 연결되며 아름다움의 상징(ex, 황금비)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이것이 아름다움에 기여하는 특질이라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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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47: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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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 20251027 (2)</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06317</link>
         <description><![CDATA[<p>모든 패턴이 수학적으로 인식되더라도 모든 패턴이 아름답지는 않다. 그 이유는 간단히 반례를 들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반복적인 원 모양 패턴에 대한 혐오감(원은 분명히 수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등. 패턴의 아름다움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특징은 패턴의 복잡함과 섬세함이다. 패턴은 예측 가능해야 하지만, 단순하면 오히려 지루함과 피로감을 줄 수 있고, 엉성하면 패턴을 인식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바로크 음악과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에 나타나는 장식 패턴과 같이 복잡하고 화려하면서도 정교하고 반복성 있는 경우가 그 예시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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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48: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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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06697</link>
         <description><![CDATA[<p>패턴의 아름다움에서 어떤 특질이 가장 크게 기요할까? 나는 아마도 적절한 혼돈이 가미된 질서라 생각한다. 인간의 뇌는 패턴을 감지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도록 진화하였다. 이러한 심리적 경향 때문에 인간은 예측 가능한 질서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완전히 예측 가능한 패턴에는 곧 흥미를 잃는다. 따라서 패턴의 아름다움은 적절한 '혼돈'이나 변주가 있을 때 더욱 극대화된다.</p><p>이는 뇌가 패턴 속 미세한 불규칙성을 해석하며 새로운 발견의 기쁨과 탐구의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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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48: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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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07113</link>
         <description><![CDATA[<p>수학에서 아름다움은 규칙성과 무질서가 조화를 이룰 때 생긴다. 너무 규칙적이면 지루하고, 너무 무질서하면 불편하다. 예를 들면 수학에서 어느 정도의 규칙을 근거로 문제를 만들지만 문제 자체는 다양하고 푸는 방식도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 수학은 아름다움을 가지며, 놀라움을 불러일으킨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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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49: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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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7차시 수학과 미학</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08444</link>
         <description><![CDATA[<p>Q1. 수학이란 패턴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체계라고 한다면 모든 패턴이 아름다울까? 패턴의 아름다움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특질은 무엇일까?</p><p><br/></p><p>A1. 수학은 패턴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학문이지만, 존재하는 모든 패턴이 아름다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움이란 주관적인 요소가 강함에도 불구하고, 수학자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수학적 아름다움'을 결정짓는 핵심 특질이 있다. 이 미적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간결함(Simplicity)과 깊이(Depth)의 역설적인 조화다.</p><p><br/></p><p>이와 함께, 어떤 패턴이나 개념이 서로 다른 수학 분야는 물론, 자연 현상(예: 피보나치 수열, 황금비)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보편성(Universality)을 가질 때, 그 패턴은 단순한 규칙을 넘어선 깊은 진리를 포착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는 패턴이 겉보기보다 더 큰 의미와 풍부한 연결고리를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p><p>또한, 완벽한 균형을 상징하는 대칭(Symmetry)의 질서와 함께, 간단한 규칙에서 시작하여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복잡하고 풍부한 결과가 필연적으로 도출될 때(예: 프랙탈 구조, 카오스 이론) 우리는 강렬한 지적 놀라움(Surprise)과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한다.</p><p><br/></p><p>결론적으로, 수학적 아름다움은 패턴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패턴이 얼마나 간결한 형태로 깊고 보편적이며 필연적인 질서를 담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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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50: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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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수학과 미학</title>
         <author>gs25162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12070</link>
         <description><![CDATA[<p>수학을 ‘패턴을 찾아 분류하는 체계’로 본다면, 모든 패턴이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름다움은 단순히 규칙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생기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인식과 감정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패턴은 너무 단순해서 금방 지루해지고, 어떤 패턴은 너무 복잡해서 아무리 봐도 의미를 찾기 어려워 미적 즐거움을 주지 못합니다.</p><p>패턴의 아름다움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특징은 ‘단순함과 복잡함의 균형’입니다. 적당히 규칙적이어서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예상 밖의 변주나 놀라움을 주는 구조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예컨대 프랙탈은 간단한 반복 규칙으로 매우 복잡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고, 수학적 증명에서 짧고 명확한 논증은 ‘우아하다’고 평가됩니다.</p><p>이 외에도 대칭과 변주는 안정감과 흥미를 동시에 제공하고, 특정 비율이나 비례(예: 황금비)는 균형감을 줍니다. 하나의 패턴이 여러 분야에서 연결성을 보이면 더 깊은 아름다움으로 느껴지고, 동일한 현상을 간결하게 설명하는 능력은 미적 가치를 높입니다.</p><p>결국 모든 패턴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며, 아름다움은 관찰자의 인식과 패턴의 구조적 특성들이 어우러져 생깁니다. 특히 단순함과 복잡함의 균형, 대칭과 변주, 적절한 비율과 연결성, 그리고 표현의 간결성(우아함)이 패턴의 아름다움에 큰 영향을 줍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10-27 10:52:3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12070</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13025</link>
         <description><![CDATA[<p>우리 인간은 진보적인 성향보다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로 기계를 도입하거나 AI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듯이 말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안전성, 전통을 추구하기 때문에 패턴이 있는 예측할 수 있는 안전성을 선호합니다. 아마도 이런 특성이 인간이 패턴을 좋아하는 데 기여하는 듯합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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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53: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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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수학이라는 것이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때 패턴의 아름다움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무엇일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14928</link>
         <description><![CDATA[<p>나는 인간이 패턴을 아름답다 여기는 이유가 진화론 적으로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인식하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사용된다.인간은 원시 상태 일 때 부터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려 한다.  무언가를 구체화하고 패턴화 하는 것이 생존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따라서 예측되지 않는 것보다 예측되는 패턴이 더 안정적이고 에너지가 적게 쓰여 더 아름답다 여기는 것이 아닐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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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0:55: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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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25725</link>
         <description><![CDATA[<p>수학이란 패턴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체계라고 한다면 모든 패턴들이 아름다울까? 패턴의 아름다움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특징은 무엇일까?</p><p><br/></p><p><strong>1. 대칭과 균형</strong>&nbsp;</p><ul><li><p><strong>정다면체</strong>: 모든 면이 같은 모양의 정다각형으로 이루어진 정다면체는 완벽한 대칭과 균형을 보여주어 수학적 아름다움의 정수로 여겨진다.</p></li><li><p><strong>프랙탈</strong>: 자연에서 발견되는 브로콜리나 해안선의 프랙탈 구조는 전체적인 형태가 부분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자기닮음꼴을 보여준다. 이는 예측 가능한 패턴의 반복을 통해 보는 이에게 미적 만족감을 준다.&nbsp;</p></li></ul><p><strong>2. 단순함과 우아함</strong>&nbsp;</p><ul><li><p><strong>오일러 항등식</strong>:</p><p>𝑒𝑖𝜋+1=0</p><p>은 가장 아름다운 수학 공식 중 하나로 꼽힌다. 이는 수학의 다섯 가지 중요한 상수(0, 1, e, i, π)를 단순하면서도 우아하게 연결하며, 그 안에 담긴 깊은 의미가 아름다움을 더한다고 할 수 있다.</p></li><li><p><strong>황금비율</strong>: 자연과 예술에서 발견되는 황금비(</p><p>ϕ≈1.618phi is approximately equal to 1.618</p><p>𝜙≈1.618</p><p>)는 단순한 비례 관계이지만,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느낌을 주어 아름다움에 기여하기도 한다.</p></li></ul><p><strong>3. 깊이와 복잡성</strong>&nbsp;</p><ul><li><p><strong>풍부한 연결고리</strong>: 수학의 한 분야에서 발견된 패턴이 다른 분야의 현상과 연결되거나, 깊은 의미를 지닐 때 아름답다고 평가된다. 예를 들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같이 단순한 방정식에 숨겨진 복잡하고 풍부한 증명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p></li><li><p><strong>예상치 못한 발견</strong>: 평범해 보이는 문제에서 예상치 못한 새로운 패턴이나 구조를 발견했을 때 느끼는 놀라움과 기쁨이 아름다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p></li></ul><p><strong>4. 보편성과 객관성</strong>&nbsp;</p><ul><li><p><strong>문화 초월성</strong>: 아름다운 수학적 패턴은 문화나 개인의 취향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수학 공식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예술 작품에 대한 미적 기준과 비슷한 기준을 공유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p></li><li><p><strong>직관적인 이해</strong>: 복잡해 보이는 패턴이 결국은 단순한 원리로 설명될 때, 우리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낀다.&nbsp;</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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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05: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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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수학과 미학</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28774</link>
         <description><![CDATA[<p>모든 패턴이 아름다움이란 특징은 가지지만, 그것이 발현되는 정도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이란 학문은, 아름다운 패턴을 보며 마치 예술 작품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패턴의 아름다움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특질은, 안정성이나 단순한 규칙성으로 부터 비롯되는 안정감이라 생각한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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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08: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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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29946</link>
         <description><![CDATA[<p>도쿄 타워에는 황금비가 사용되지 않은 것같다. 왜냐하면 현대의 건축물인 도쿄 타워 특성상 도시에서 눈에 띌 수 있는 특성인 높이와 이에 따른 큰 하중을 잘 견디게 만들기 위한 하중 분배가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서 황금비를 사용하지 않은 것같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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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09: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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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30460</link>
         <description><![CDATA[<p>이 정도의 오차는 허용할 만할지도...</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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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09: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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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30473</link>
         <description><![CDATA[<p>인도의 타지마할은 중앙 돔의 높이와 기반부의 폭 비율이 황금비이고 외각 정원 구획도 황금비를 기반으로 대칭인 구조이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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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09: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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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탐구활동3</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31030</link>
         <description><![CDATA[<p>나느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선택하였다. 건물의 너비와 높이를 측정해보니 비율이 약 1:1.6으로 황금비 1:1.618과 매우 가까웠다. 이를 통해 고대 건축가들이 이미 수학적 비례를 이용해 미적 조화를 추구했음을 알 수 있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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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0: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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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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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탐구활동 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31526</link>
         <description><![CDATA[<p>처음엔 황금비가 단순히 이론적인 내용이고, 실제 생활에 쓰이고 적용되는 곳은 많지 않다 생각했다. 하지만, 조사를 통해, 수많은 고대 건축물에서 황금비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라미드, 고대 신전, 심지어 한국 석탑까지도, 황금비가 숨어 있었다. 이로부터 황금비가 보편적으로 아름다운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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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0: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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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34923</link>
         <description><![CDATA[<p>황금비는 유클리드 저서 중 하나인 '원론'에 등장한 특정한 비율이다. 많은 건축물과 신분증 등 각종 용품에 사용되었다고 널리 알려져 있는데, 매력적이라고 생각되는 건물들에서 황금비는 어떻게 나타날까?</p><p>파르테논 신전은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1호이다. 19세기 초 누군가 파르테논 신전과 황금비를 연관 짓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사실인 것처럼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1992년 조지 마코스키 미국 메인대 정보과학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논문 에서 파르테논 신전에는 황금비가 없다 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파르테논 신전의 일부가 황금비라고 설명한 책마다 가로의 기준이 다르고, 오히려 파르테논 신전은 9:4의 정수비가 적용되는 것으로 드러났다.</p><p>결론적으로, 수많은 건축물 중에서도 의도적으로 황금비를 이용하여 만든 것은 보기 힘들다. 황금비율이 반드시 건축가의 의도적인 설계에 따른 결과라기보다는, 시각적으로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주는 비율이 우연히 일치했을 가능성이 높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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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4: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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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탐구활동 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35057</link>
         <description><![CDATA[<p><strong>고대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strong></p><ul><li><p><strong>특징:</strong> 피라미드 밑면 한 변의 길이와 높이의 비율이 황금비율에 가깝다는 설이 있다.</p></li><li><p><strong>의미:</strong>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후 세계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황금나선의 황금비율을 건축에 적용했다는 주장도 있다.&nbsp;</p></li></ul><p><strong>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strong></p><ul><li><p><strong>특징:</strong> 정면의 가로와 세로 비율이 약 1.618:1에 가까워 가장 아름다운 건축미의 표본으로 여겨져 왔다.</p></li></ul><p><strong>인도 타지마할</strong></p><ul><li><p><strong>특징:</strong> 전체적인 구조와 돔의 높이가 너비의 1.618배에 해당한다는 설이 있다.</p></li><li><p><strong>의미:</strong> 무굴 건축의 대표작으로 전체적인 비례와 규모에서 황금비율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nbsp;</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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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4: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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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매력적이라 생각 했던 사진에 황금비가 적용되는 경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35755</link>
         <description><![CDATA[<p>생각보다 예쁜듯</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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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4: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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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 7</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35884</link>
         <description><![CDATA[<p>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건축물은 노트르담 대성당, 기자 피라미드, 유엔 사무국 등이 있는 것 같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서쪽 정면의 폭과 높이의 비가 황금비라고 하고, 기자 피라미드에는 밑면의 반과 높이가 황금비를 이룬다고 한다. 또한, 유엔 사무국과 우리나라의 석탑도 황금비를 이룬다고 한다. 이를 통해, 황금비는 생각보다 다양한 건축물에 이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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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4: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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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판테온 신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36280</link>
         <description><![CDATA[<p><strong><em>로마 판테온 신전의 가장 큰 특징은</em></strong></p><p><strong><em>내부 돔의 높이와 지름이 </em></strong></p><p><strong><em>1∶1</em></strong></p><p><strong><em> 비율을 이루는 완벽한 균형입니다</em></strong>. 황금비는 아니지만 하늘을 보며 신을 바라보는 고대인들을 통해 이신전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황금비가 미의 유일한 기준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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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5: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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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38334</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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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6: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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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38384</link>
         <description><![CDATA[<p>이 정도의 오차는...?</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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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6: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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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 20251027 (3)</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38576</link>
         <description><![CDATA[<p>미 국회의사당의 경우 하원 의사당을 좌, 중간, 우 부분으로 나누고 바닥 도면을 고전적인 방법(화면에 자를 대고 재는 방식)으로 잰 결과 가로 약 8.7cm, 세로 약 5.6cm으로 그 비율이 1.55..로 황금비와 무려 0.1의 오차 범위 내에 들어오는 것을 보아 일부러 맞추려 의도한 것은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혹은 안정적인 모양으로 설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에 근접한 비율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을 해 볼수는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므로 아마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고 예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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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7: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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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39941</link>
         <description><![CDATA[<p>황금비가 적용된 사진</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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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8: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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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자의 대피라미드(쿠푸왕 피라미드)</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40222</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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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8: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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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7차시 탐구 활동 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40849</link>
         <description><![CDATA[<p>Q1. 매력적이라고 생각되는 건물 사진을 몇 장 살펴보세요. 건물의 특징적인 곳들을 측정하세요. 츠정치들의 비율 중 1.618:1과 관련된 경우가 있나요?</p><p><br/></p><p>A1. 내가 선택한 건물은 에펠탑, 피사의 사탑, 경복궁이다. </p><p><br/></p><p>에펠탑은 황금비와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에펠탑은 <strong>구조적 안정성</strong>과 <strong>시각적 조화</strong>를 동시에 추구한 결과물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에펠탑의 기저부 폭과 1층 플랫폼까지의 높이 비율이 1.618:1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율은 미학적인 의도 외에도 <strong>구조 역학적 필요성</strong>에 의해 자연스럽게 도출된 결과로 해석되기도 한다. 에펠탑은 황금비를 <strong>직접적이고 명시적인 설계 원리</strong>로 사용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p><p><br/></p><p>피사의 사탑은 1.618:1의 황금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건축물로 보기는 어렵다. 이 탑의 건축적 주요 관심사는 <strong>무게중심의 역학</strong>과 <strong>기울어짐에도 무너지지 않는 안정성</strong>에 집중되어 있다. 탑의 높이, 지름, 그리고 기울어진 각도가 구조적인 핵심 요소이다. 외관의 아치와 기둥 배열에서 황금비가 발견된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탑의 <strong>건축적 정체성</strong>을 나타내는 핵심적인 특징은 아니다.</p><p><br/></p><p>경복궁을 포함한 한국의 전통 건축은 서양의 <strong>1.618:1의 황금비</strong>가 아닌, <strong>1:1.414의 금강비</strong>를 주요 미적 기준으로 사용하였다. 금강비는 한 변의 길이가 1인 정사각형의 가로와 대각선의 길이 비율이며, 한국 건축에서는 <strong>안정감</strong>과 <strong>자연과의 조화</strong>를 추구하는 동양적 미학을 담고 있다. 따라서 경복궁의 주요 건축 비율은 1.618:1과는 다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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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8: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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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40853</link>
         <description><![CDATA[<p>유엔 본부 사무국 건물은 르 코르뷔지에와 오스카 니마이어 등 현대 건축가들의 협업으로 탄생했으며, 조화와 균형미를 위해 황금비가 적용되었다. 건물의 전체적인 높이와 폭의 비율이 황금비에 가깝게 설계되었으며, 이는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외벽을 구성하는 창문들과 정문의 구성 또한 황금 직사각형의 비율을 따르며 통일된 미감을 형성한다. 건물 내부에 있는 로비의 나선형 경사로 역시 각 계단의 높이와 폭 비율에 황금비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디자인은 르 코르뷔지에의 모듈 시스템에 기반한 것으로, 인체 비례를 고려한 수학적 조화를 추구한 결과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황금비의 정확한 적용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기도 하며, 이는 건축가의 의도가 미학적으로 유연하게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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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8: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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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40988</link>
         <description><![CDATA[<p>세계의 건축물들 중 황금비가 사용된 사례</p><p><br/></p><p>일반적으로 피라미드의 황금비는 피라미드 단면을 이루는 직각삼각형에서 찾아집니다. 이 삼각형의 세 변의 비율이 다음과 같이 황금비에 근접한다는 주장입니다.&nbsp;</p><ul><li><p><strong>빗변(옆면 높이) : 밑변(밑면의 절반) = 약 1.618 : 1 (황금비)</strong>&nbsp;</p></li></ul><p>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p><ul><li><p><strong>정확한 측정값과의 일치</strong>: 추정된 대피라미드의 원래 치수를 보면, 빗변과 밑변의 절반의 비율이 황금비에 매우 가깝습니다. 오차 범위가 0.025%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p></li><li><p><strong>높이와 밑변의 비율</strong>: 높이와 밑변의 비율 역시 황금비와 유사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p></li><li><p><strong>헤로도토스의 기록</strong>: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피라미드의 각 면의 넓이가 그 높이를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와 같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조건은 피라미드에 황금비가 나타나게 하는 기하학적 특징입니다.&nbsp;</p></li></ul><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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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9: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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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탐구 활동 3.</title>
         <author>gs25162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41584</link>
         <description><![CDATA[<p>파르테논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도리스 양식 신전으로, 균형 잡힌 비례로 유명합니다. 측정할 때는 정면 전체 너비(A)와 높이(B), 기둥 높이와 기둥 간격 등을 비교합니다. 연구에서는 전면의 가로·세로 비율이나 일부 장식에서 1.6 내외의 값이 나와 황금비(약 1.618)에 근사한 경우가 관찰되기도 합니다.</p><p>다만 고대 건축가가 정확히 1.618을 의도했는지는 불확실하며, 사진 측정 시 원근 왜곡에 주의해야 합니다. 실무에서는 1.55~1.70 정도를 황금비 근사 범위로 봅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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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9: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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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title>
         <author>gs25190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42116</link>
         <description><![CDATA[<p>캐나다 토론토의 CN 타워는 현대 건축물 중 황금비가 적용된 사례로 종종 언급됨. 타워의 전체 높이(약 553.3m)와 7층 높이의 메인 전망대인 '스카이포드' 아래 부분(약 342m)의 높이 비율이 황금비(1:1.618)와 매우 근사한 것으로 측정, 또한 멕시코 치첸이트사의 엘 카스티요(쿠쿨칸의 피라미드) 계단과 각 층의 비율에서도 황금비와의 연관성을 찾는 연구가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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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19: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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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45357</link>
         <description><![CDATA[<p>아름다움은 수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다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다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황금비를 발견한 것 같다. 왜냐하면 황금비는 인위적인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가장 완벽한 비율이기 때문에 자연환경에서도 많이 볼수있기 때문이다. 수학적 질서가 없는 예술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작가의 의도와 예술의 표현이 함께 어울어져 아름답다고 느끼는것 같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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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22: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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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46011</link>
         <description><![CDATA[<p>2</p><p>황금비는 자연과 인간이 공통으로 느끼는 조화의 비율로, 예술가들이 발견했다기보다 관찰을 통해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활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즉, 자연 속 질서를 인간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발견과 창조의 중간 지점이라 할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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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23: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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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49019</link>
         <description><![CDATA[<p>1.수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할것 같다. 왜냐하면 수학적으로 아름답지 않은 것이여도 사람은 저만의 기준과 사회의 기준이 융합된 각자의 기준으로 미를 판단하고, 또 같은 사람이여도 가지고 있는 감정, 주변의 분위기 등으로 인해 느끼는 아름다움의 종류와 정도가 상이하기 때문이다.</p><p>2.창조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이 자연선택으로 인해 사용되어오던 비율을 직접 발견하고 황금비라고 명명했기 때문에 특정 비율이 주목받을 수 있게된 것이므로 예술가가 창조한 것이다.</p><p>3.추상화나 표현주의는 직관적이고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보다 그 작품의 사회적 맥락에 더 주목해서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수학적 아름다움이 없어도 아름답게 느끼는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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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25: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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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49031</link>
         <description><![CDATA[<p>아름다움은 수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p><p>증명이라는 개념이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이란, 어떠한 형상을 보고 우리 마음에 와닿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이것을 본질적 원소로 환원하여 단순히 수학적으로만 바라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개개인마다 지향하는 아름다움과 가치가 서로 다르므로, 어떤 사람들에겐 수학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형상만이 아름답다 느껴질 수 있으므로, 상대적인 개념이라 생각한다</p><ol start="2"><li><p>예술가들은 황금비를 발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p><p>만약 황금비가 특정 지역이나 문화적 배경에서만 나타나는 것이었다면, 황금비를 그들이 창조하여 그들끼리만 아름답다고 여겼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까 조사한 사례처럼, 대부분의 지역에서 황금비나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발견된다. 그러므로, 각 지역의 예술가들이 황금비가 아름답게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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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25: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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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51639</link>
         <description><![CDATA[<ol start="3"><li><p>수학적 질서가 없는 예술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p><p>1번에서 말했듯이, 아름다움은 상대적 개념이라 생각한다. 모든 사람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다르니, 수학적 질서만을 아름답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에겐, 수학이 반영되지 않았지만 아름다움을, 다른 감정적 특성 등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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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26: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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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52014</link>
         <description><![CDATA[<p>아름다움은 수학적으로 증명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사람이 느끼기에 따라 다르고, 상황이나 시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어느 정도 보편적인 것은 나타낼 수 있겠지만 여러 예외까지 반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p><p>예술가들은 황금비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근접하게 자신들의 작품을 창작한 경우가 많다. 이는 보편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과 우연적으로 황금비가 일치했을 확률이 높다. 또한, 1: 1.618 말고 1: 1.5 등의 비율도 찾아보면 많을 것이지만 황금비라는 말이 유명해져서 1: 1.618만 찾는 경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p><p>이러한 이유에 따라 아름다움은 상대적이므로 수학적 질서가 없는 예술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느껴질 수 있다. 작품 안에서는 저마다의 질서와 규칙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질서를 황금비 하나로 끼워맞추는 것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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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26: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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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title>
         <author>gs25190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52079</link>
         <description><![CDATA[<p>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감정의 영역이므로 수학으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수학은 황금비, 대칭, 프랙탈처럼 우리가 보편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의 구조적 특징을 '설명'하고 정량화할 수는 있습니다.</p><p>황금비는 자연 현상과 기하학 속에 이미 존재하는 고유한 수학적 비율이므로 '발견'된 것입니다. 예술가들은 이 발견된 비율이 미적 조화를 준다고 믿었고, 이를 작품에 의식적으로 '적용'하며 미를 창조하는 도구로 활용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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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26: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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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아름다움은 수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53479</link>
         <description><![CDATA[<p>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론 물리학에서는 실제로 적용되는 것이 아닌(ex. 차원이론, 평행 우주 이론) 등 수학적으로 증명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비록 실생활에는 적용 불가 하더라도  전혀 동떨 어진 것 같았던 두 물리학 이론과 수학적 계산이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ex.끈 이론).  따라서 이론 적인 것과 아름다운 것 또한 연관되어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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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27:3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53479</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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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55250</link>
         <description><![CDATA[<ol><li><p>아무리 보아도 아름다움은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너무도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가령 음악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해당 작품이나 아티스트, 장르를 얼마나 많이 접해 보았는지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 사실이다. (처음 들을 때는 베토벤의 교향곡이든 블랙 메탈이든 재즈 캐롤이든 온전히 아름답다고 느끼기가 쉽지 않다) 이 맥락에서 아름다움을 수치화한다는 것은 효용이나 윤리성을 수치화하는 것과 같아서, 설령 어느 정도 들어맞는 기준을 마련했더라도 어느덧 수없이 많은 예외에 맞추기 위해 기준을 이리저리 늘이고 줄여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p></li></ol><ol start="3"><li><p>우선, 추상화도 색이나 형태의 활용, (아무리 그 기법 자체가 무작위적일지라도) 기법의 선정 등에서 작가가 추구하는 조화를 고려하고 만들어진다. 프리 재즈와 같은 막무가내처럼 느껴지는 장르도 결국에는 악기 구성이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조직된 것이다 (정말로 의도 없이 무질서하게 만들어진 음악과 다르게!). 하지만 이러한 예술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궁극적 이유는, 보통과 다르다는 신선함에서 느껴지는 쾌감과 자극이 큰 역할을 차지할 것이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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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28: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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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 &amp; 탐구 7</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55514</link>
         <description><![CDATA[<ol><li><p>아름다움은 수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p><p>사람들의 주관적인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특정 수학적 공식에 맞는지의 여부에 따라 아름다움을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li><li><p>예술가들은 황금비를 발견한 걸까, 창조한 걸까?</p><p>우리가 통합사회 시간에 배웠듯이 '발명(창조)'는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거나 기존의 것을 변형시키는 것이지만, '발견'이란 원래부터 존재해왔지만 인간이 그저 찾아낸것이다. 이에 따르면, 예술가들은 황금비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 원래 자연에 존재했었던 것을 '발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p></li><li><p>우리가 수학적 질서가 없는 예술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p><p>나는 우리가 수학적 질서가 없는 예술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가 기존의 방식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특정한 '틀'에 다양한 영향을 받으면서 산다. 그러나, 예술이 이러한 '틀'의 영역에서 벗어난 상태라면, 위의 사람들은 틀에서 벗어난 해방감 등을 느끼며 아름답다 생각할 것이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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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2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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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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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57645</link>
         <description><![CDATA[<p>모든 아름다움은 수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씨나 예술처럼 추상적인 것들 또한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다. 이들은 수학과 별개의 아름다움이다. </p><p><br/></p><p>황금비는 발견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황금비는 자연계에 이미 존재하는 수학적 원리이며 예술가들은 이를 인식하고 자신의 작품에 의도적으로 적용한 것뿐이다. 황금비는 솔방울, 해바라기 씨앗 등 다양한 자연물에서 찾을 수 있다.</p><p><br/></p><p>수학적 질서가 없는 예술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미학적 경험이 질서와 규칙에만 국한되지 않고 감정, 표현, 문화적 맥락 등 다양한 심리적, 감정적 요인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추상 미술과 같이 혼돈을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예술도 개인의 주관성, 감정의 연결, 인간의 불완전성 등을 고려하여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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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30:0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57645</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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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57656</link>
         <description><![CDATA[<p>1.아름답다는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추상적인 관념입니다. 사람마다 어떤 현상, 사물등을 두고 여러가지 의견이 갈리고 아름답다, 못생겼다등의 여러 가지 의견이 생깁니다. 하지만 수학은 어떤 현상에 대해 정해진 한가지 답밖에 내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수학으로 인간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p><p>2. 예술가들이 발견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물이나 인간이 만든 사물등에 일정한 비율이 있어고 인간이 그것들을 감상하다가 우연찮게 거의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사물에 특징을 탐구하다가 황금비를 발견하였다고 할 수 있스비낟.</p><p>3.수학비가 없더라도 인간은 다양한, 각자가 모두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수학적인 특징과 비율이 없다고 하더라고 그것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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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30: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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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57694</link>
         <description><![CDATA[<p>아름다움은 수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저 아름다움이란 개개인에 따라그 기준이 달라지는 추상적인 개념이기에 수학적 공식이나 개념으로 일반화할 수 없다. 물론 황금비나 프랙탈 등 봤을 때 아름답다고 느끼는 몇 가지 수학의 산물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는 모두 균형이라는 특질을 안정되고 편안하게 여기는 인간의 본성이 적용된 결과이지 않나 싶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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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30: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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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7차시 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58052</link>
         <description><![CDATA[<p>Q1. 아름다움은 수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p><p><br/></p><p>A1. 아름다움은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증명될 수 없다. 수학은 객관적인 진리를 다루지만,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감정과 문화적 배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다만, 황금비나 대칭처럼 특정 수학적 패턴이 많은 사람에게 미적 쾌감을 준다는 것은 증명될 수 있다.</p><p><br/></p><p>Q2. 예술가들은 황금비를 발견한 것일까?, 창조한 것일까?</p><p><br/></p><p>A2. 황금비는 피보나치 수열과 연관되어 해바라기 씨앗 배열, 나선형 조개껍데기의 성장 패턴 등 자연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수학적 패턴이다. 따라서 예술가가 황금비를 '창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비율이 인간의 눈에 가장 조화롭고 안정적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발견하였고, 이후 수많은 예술가와 건축가들(예: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 코르뷔지에)이 작품의 미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 자연의 질서를 의식적으로 적용(재창조)한 것이다.</p><p><br/></p><p>Q3. 수학적 질서가 없는 예술(추상화, 표현주의 등)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p><p><br/></p><p>A3. 추상화나 표현주의처럼 겉보기에 명확한 수학적 질서(대칭, 반복, 비율)가 부족한 예술 작품들도 아름다움을 전달하는데, 이는 인지 심리학적 요인과 감정적 공감 때문이다. 감정적 공감과 경험의 투영이다. 수학적 질서가 주는 안정감 대신, 추상 예술은 작가의 내면적 감정이나 격렬한 상태를 색채, 질감, 형태로 직접 전달한다. 관람자는 구체적인 형상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에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투영하여 깊이 공감함으로써 미적 울림을 느낀다. 예상 밖의 새로움과 인지적 쾌감이다. 인간의 뇌는 익숙하고 안정된 패턴을 선호하지만, 동시에 새롭고 예상치 못한 복잡성을 해독하고 해석하려는 과정에서도 큰 즐거움을 얻는다. 추상 예술은 기존의 규칙을 깨고 새로운 시각적 도전을 제공하며, 이 해석 과정 자체가 미적 쾌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색채와 질감 자체의 감각적 힘이다. 수학적 구조와 관계없이, 색채와 질감은 그 자체로 강력한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 마크 로스코의 색면 회화처럼, 색채의 배치와 조화만으로도 관람객에게 숭고함이나 평온함과 같은 순수한 감각적, 심리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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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30:1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58052</guid>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gs25162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60891</link>
         <description><![CDATA[<p>아름다움을 수학적으로 완전히 증명할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수학은 황금비, 대칭성, 프랙털 차원, 반복 패턴 같은 미적 요소를 수치로 표현하고 비교할 수 있게 해 주며, 여러 실험은 사람들이 대체로 대칭적이거나 특정 비율에 가까운 형태를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미적 판단은 문화, 개인 경험, 시대적 유행, 맥락 등 비수학적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으므로 같은 형태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집니다. 따라서 수학은 아름다움의 일부 원리와 경향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 유용하지만, 아름다움 전체를 절대적이고 완전하게 증명하는 도구는 아니며 감성적·사회적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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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32:1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60891</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60912</link>
         <description><![CDATA[<p>아름다움은 수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p><p><br/></p><p>아름다움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이며 인간의 지각에 달려 있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수학이 아름다움의 특정 측면을 설명하는 데 기여할 수는 있지만, 미학적 판단의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nbsp;뇌 스캔 연구에 따르면, 아름답다고 평가되는 수학 공식은 위대한 예술 작품이나 음악을 감상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감정 영역과 동일한 부분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수학은 우주와 자연 현상에 숨겨진 질서를 드러내어 우리에게 깊은 만족감과 아름다움을 줍니다. 대칭성, 균형, 프랙탈과 같은 수학적 개념은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nbsp;하지만, 수학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p><p>아름다움에는 수학적 규칙성 외에도 개인의 경험, 문화적 배경,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일부 수학자들은 아름다움의 기준을 수학적 특성으로 설명하려 했지만, 다른 수학자들은 베토벤 교향곡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없듯이 수학적 아름다움도 납득시키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nbsp;</p><p><br/></p><p>예술가들은 황금비를 발견한 것일까, 창조한 것일까?</p><p><br/></p><p>수학적 질서가 없는 예술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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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32:1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60912</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 20251027 (4)</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61074</link>
         <description><![CDATA[<p>아름다움은 수학으로 증명될 수 없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에 억지로 수를 부여하고 규칙성을 찾는 방식으로 정리할 수는 있어도,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수학으로 나타낼 수는 없다. 예술가들은 의도적으로 황금비를 창조한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리고, 아름답다고 생각되도록 표현한 뒤 계산해 보니 우연히 그와 유사한 비율이 됨을 발견한 것이다. 이 비율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 원인이 근본적인 무언가에 있다고 하더라도, 수학은 단지 그것을 측량한 것이지 그 자체로 아름답게 만든 것이 아니다. 실제로 고대의 건축물과 중세 미술의 화가들이 수학적으로 황금비를 의도하였다는 근거는 없다. 즉, 수학적 질서가 없는 아름다움도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아름다움들은 불규칙성, 비대칭성 등을 통한 반전으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추가) 나는 추상화와 표현주의 그림이 예상치 못한 강렬한 인상을 준다는 것 외에 어떤 아름다운점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으니 누군가에는 이와 같이 수학적 증명이 어려운 아름다움도 가능하다는 증거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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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32:2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61074</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gs251515</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79825</link>
         <description><![CDATA[<p>수학의 진리는 논리적 증명 위에만 성립한다.  증명이 없다면 그것은 지관이나 추측의 영역일 뿐 진리로 확정할 수 없다. 다만 수학사의 여러 추측처럼 증명 이전의 아이디어가 진리 탐구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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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46:4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79825</guid>
      </item>
      <item>
         <title>질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81012</link>
         <description><![CDATA[<p>증명이 없다면 수학적 진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증명을 해야 수학적 진리라고 부를 수 있고 그것이 진리를 찾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비공식적인 발표도 정식 학문적 검증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발표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학문적으로 새로운 내용이나 증명을 하면 그 내용은  이제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에 인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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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47:3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81012</guid>
      </item>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82852</link>
         <description><![CDATA[<p>2.수학자에게는 진리탐구 외에는 윤리적 책임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수학 법칙의 증명으로 인해서 영향을 받을 것들은 생각하기에 너무 막연하고 만약 그러한 제약에 발이 묶여 수학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피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p><p>4.페렐만과 같은 가난한 수학자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논문 사이트에 접근할 환경이 제공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그러한 사이트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고, 혹은 복잡한 절차에 발전이 늦어지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으니 수학으로서의 모순만 없다면 어느 방식으로 논문을 발표하던 문제는 없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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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48: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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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증명이 없다면 수학적 진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84450</link>
         <description><![CDATA[<p>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개인적 이야기를 예시로 들어보면 수학 문제를 풀 때 한번씩 직관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 이때 이 모든 것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훨씬 고차원적인 수학자들은 직관적으로 보이는 것이 적어도 나보단 훨씬 많지 않을까?  즉, 증명이라는 것은 '수학'이라는 것의 본질이 아니라 수학을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 만든 소통 수단일 뿐이라 생각한다.물론 진리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고 명예를 누리기 위해서는 의사소통과정이 필수적이겠지만 의사소통을 거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10-27 11:50: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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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86652</link>
         <description><![CDATA[<ol><li><p>계속해서 논의했듯, 증명이 없는 "진리"를 용인하는 순간 수학뿐 아니라 어떤 학문 분야이든 그 근간이 무너진다.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에서 끊임없는 검증과 논박에 대한 집착적 강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자연과학을 믿고 따를 수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p></li><li><p>수학자에게 윤리적 책임이란 연구 윤리를 최우선으로 들 수 있다. 자신의 연구 성과를 부풀리거나 타인의 연구 성과를 축소하지 않고, (이상적으로는) 진리 탐구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동업자 의식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시너지로 말미암아 훌륭한 업적이 탄생한 사례도 많고 말이다.</p></li><li><p>인류 지식 체계의 발전에 한몫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면 물론 좋겠지만, 자신의 성과가 인류에게 해악을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성과를 어떻게 할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결정이다. 상이나 영예를 거부했다고 해서 어떤 윤리 의식의 위반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지 않은가.</p></li><li><p>전술했듯, 어떤 설이 지식 체계에 편입되는 것은 확실하고 충분한 근거의 존재와 필요충분 관계여야 한다. 누가, 어떤 매체로, 어떤 이유로 발표했는지와 상관없이 논리적 증명이 있다면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지식 체계가 발전한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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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51: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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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 &amp; 탐구 7</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89534</link>
         <description><![CDATA[<ol><li><p>지식을 공유하지 않거나 상을 거부하는 행위는 비윤리적인가, 아니면 지식의 순수성을 지키는 행위인가?</p><p>상을 거부하는 행위는 본인의 의사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에 도움이되는 선구적인 지식을 공유하지 않는 행위는 지식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아닌 우리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요소를 없애는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페렐만의 증명처럼, 인간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들은 많은 가치가 있기 때문에 공유하는 것이 윤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li><li><p>페렐만의 증명처럼, 비공식적 발표가 정식 학문적 검증으로 인정될 수 있을까?</p><p>비공식적이든 공식적이든 정확하고 타당한 증명이라면 정식 학문적 검증으로 인정될 수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어떤 난제를 증명한 사람이 공식적으로 본인의 학문적 검증을 보여줄 마땅한 수단이 없을 수도 있고, 또 비공식적인 발표이더라도 본인의 것인 것만 증명하면 학문적 검증으로 증명되기 때문이다.</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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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54:1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89534</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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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91940</link>
         <description><![CDATA[<p>주장할 수는 있지만 설득력은 없을 것이다. 학계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주장을 인정받을 수는 없을 것이고 당연히 수학적 진리라고 하고 증명을 못하는 것은 단지 가설일 뿐이지 진리는 아닌 것이다. 진리란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되고 통용되어야 하는데 자신이 증명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이해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p><p>수학자에게는 진리 탐구 외에 윤리적 책임은 어떤 것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지식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수학자를 비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 수학자가 알아낸 지식은 우리의 것이 아닌 그 사람의 것이다. 그 수학자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지식을 공유할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식을 어떤 이유로든 공개하는 경우가 많지만(돈, 명예 얻음/ 사람들의 지식 수준을 높임 등), 어떤 사람들은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아쉬울 수 있지만 공개하라고 윤리적인 기준을 만들어 가며 비판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p><p>비공식적 발표도 정식 학문적 검증으로 인정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멋진 발명을 했는데 다른 사람이 그 발명을 베껴서 먼저 특허를 등록했다고 하자. 그러나 그 사람이 베낀 것이 밝혀지면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는다. 물론 특허권이 수정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처음 발명한 사람을 인정할 것이다. 또한 비공식적 사이트에 발표했다고 해도 날짜 등이 신뢰성이 있어 먼저 적었다고 인정될 수 있으면 당연히 이는 정식으로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웬만큼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공식적인 것으로 인정될 수 있게 발표를 할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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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55: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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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title>
         <author>gs25190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94594</link>
         <description><![CDATA[<p>수학자는 진리 탐구 외에도 자신의 연구가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윤리적 책임이 있다. 예를 들어, 암호학, 알고리즘, 데이터 분석 등은 감시, 차별, 금융 시스템 불안정 등 사회적 문제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연구 결과의 잠재적 오용 가능성을 인지하고,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알고리즘의 공정성을 확보하려 노력해야 함.</p><p>수학에서 증명은 진리를 확립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증명이 없다면 아무리 강력한 직관이나 방대한 수치적 증거가 있더라도 그것은 '추측(conjecture)'일 뿐, '수학적 진리'라고 주장할 수 없다. 증명은 명제가 '참'임을 보장하는 논리적 근거이며, 수학적 지식의 견고함을 지탱하는 핵심.</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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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1:57: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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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7차시 질문 &amp; 탐구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99941</link>
         <description><![CDATA[<p>Q1. '증명'이 없다면 수학적 진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p><p><br/></p><p>A1. 증명이 없다면 수학적 진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p><p>수학에서 증명은 명제의 진리성을 논리적이고 보편적으로 확립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증명은 공리와 이미 확립된 정리를 바탕으로 오류가 없는 추론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증명이 없는 주장은 아무리 많은 사례가 뒷받침하더라도 단지 추측이나 가설로 남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골드바흐 추측은 수많은 숫자에 대해 참으로 보이지만, 증명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정리'가 아닌 것이다.</p><p><br/></p><p>Q2. 수학자에게는 '진리 탐구' 외에도 어떤 윤리적 책임이 있을까? </p><p><br/></p><p>A2. 수학자는 진리 탐구 외에도 학문과 사회에 대한 여러 윤리적 책임을 지닌다.</p><p>가장 기본적인 책임은 연구의 성실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연구 과정에서 표절, 위조, 변조와 같은 비윤리적 행위를 피하고, 연구 결과를 정직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연구 결과를 학계 동료들의 공정한 검토(Peer Review)에 맡겨 지식의 오류를 줄일 책임을 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응용 수학 분야의 경우, 자신의 연구(예: 암호학, 알고리즘)가 사회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인식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p><p><br/></p><p><br/></p><p>Q3. 지식을 공유하지 않거나 상을 거부하는 행위는 비윤리적인가, 아니면 지식의 순수성을 지키는 행위인가? </p><p><br/></p><p>A3. 지식 공유를 거부하는 행위는 학문 공동체에 대한 비윤리적인 행위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p><p>수학적 진리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인류 지식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지식을 공유하지 않는 것은 다른 연구자들의 발전 기회를 박탈하고, 중요한 발견에 대한 공동 검증을 막아 결과적으로 학문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다. 반면, 상을 거부하는 행위는 지식의 순수성을 지키는 개인적인 선택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리고리 페렐만의 사례처럼, 명예나 상금보다 순수한 학문적 성취와 진리 탐구 자체를 중시하는 연구자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행위인 것이다. 이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학문의 본질적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p><p><br/></p><p>Q4. 페럴만의 증명처럼, 비공식적 발표(arXiv 업로드)가 정식 학문적 검증으로 인정될 수 있을까?</p><p><br/></p><p>A4. 비공식적 발표(arXiv 업로드)는 그 자체로 정식 학문적 검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p><p>정식 학문적 검증은 원칙적으로 학술지 편집자와 동료 심사자들의 엄격한 검토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페렐만의 푸앵카레 추측 증명 사례는 예외적인 경우인 것이다. 페렐만은 논문을 arXiv에만 올렸지만, 해당 난제의 중요성 때문에 전 세계 최고 수학자들이 수년에 걸쳐 자발적이고 철저한 공동 검증을 수행하였다. 이 공동 검증은 정식 저널의 심사보다도 훨씬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진행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수학계는 그의 증명에 오류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따라서 극히 중요한 난제의 경우, 비공식 발표라도 학계 전체의 자발적이고 성공적인 검증을 거친다면 사실상의 최종적 학문적 진리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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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2:01: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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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질문 &amp; 탐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399990</link>
         <description><![CDATA[<ol><li><p>증명이 없다면 엄밀히 생각해보면 수학적 진리를 주장할 수 없다. 증명은 논리적으로 어떤 명제가 참임을 보여주는 과정이며 수학적 진리의 보편성과 절대성을 확립하는 핵심 도구이다. 하지만 증명 없이도 받아들여지는 수학적 진리를 '공리'라고  하며 공리는 증명할 필요가 없는 가장 기초적인 명제다. '공리'처럼 증명이 없다고 해서 수학적 진리가 아니라고 보기는 어렵다.</p></li></ol><p>   3. 지식을 공유하지 않는 행위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윤리적 또는 비윤리적일 수도 있지만 나는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을 공유하지 않으면 사회의 이익, 혁신과 성과를 저해하며 팀원 간의 불신, 지식을 개인의 권력이나 지위 유지 수단으로 여겨 악용하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p><p>  </p><p>  상을 거부하는 행위는 개인의 자유이고 사회적으로 해를 가하는 행위가 아니므로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상을 거부한 사례로 장 폴 사르트르(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는모든 상을 일체 거부해 왔던 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러시아의 작가)는 소설 '닥터 지바고'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당시 소련 당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수상을 거부했다.&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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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2:01: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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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400037</link>
         <description><![CDATA[<p>수학적 진리 중 증명하기 위해서 요소들이 필요한데 모든 요소들또한 다른 요소들에 의해 증명되야 된는데 이렇게 되면 이러한 순환이 계속 반복되게 되는데 즉 이것은 증명이 필요없는 수학적 진리가 있어야 그것을 토대로 수학적 진리를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증명이 필요없는 수학적 진리가 존재할 수 있다할 수 있습니다. </p><p>수학자는 자신이 만든 공식을 사람들에게 알릴 뿐이기 때문에 그 공식을 활용하는 사용자에게 책임이 있을 뿐 수학자에게 책임이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p><p>자신이 발견한 공식을 알리지 않는 것은 비윤리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알리지 않는다 해도 다른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윤리 여부를 판단할 수 없기 떄문입니다. </p><p>학문적 자료에 타당성, 증명이 올바른 경우 그것은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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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2:01: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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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400152</link>
         <description><![CDATA[<p>수학자 진리 탐구 이외의 어떤 윤리적 책임을 가질까? 수학자는 연구 성과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깊이 숙고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 수학은 금융,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학자가 개발하는 도구나 기술은 사회에 긍정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p><p>예시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사회적 편향을 강화하거나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으며, 수학자들은 이러한 잠재적 위험에 대해 책임을 진다. 이와 동시에, 수학적 전문성을 활용해 기후 변화, 빈곤 감소, 공중 보건 등 인류의 중요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p><p>책임 있는 참여를 위해, 수학자는 연구와 그 응용 분야에 대해 일반 대중에게 명확하고 투명하게 소통해야 한다. 특히, 연구의 잠재적 위험이나 한계를 숨기지 않고 공개해야 한다. 나아가, 기술 전문가로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여 수학적 모델링의 한계와 문제점을 설명하고, 사회를 위한 건전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p><p>결론적으로, 수학자는 연구의 사회적 영향력을 이해하며, 책임 있는 참여를 통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윤리적 의무를 지닌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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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2:01: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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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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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amp;탐구 20251027 (5)</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401005</link>
         <description><![CDATA[<p>'진리'란 참인 이치라는 뜻으로,'증명'이 없이 수학적 진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수학적 진리의 정의에 따라 다르다. 수학적 진리를 '지금까지는 반례 없이 항상 옳았던'것이라 한다면 '증명'없이 수학적 진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괴델의 불완전성 원리에 따르면 명제가 참이라는 것이 증명 가능하다는것을 뜻하지 않고, 모순되지 않음을 증명 할 방법은 없지만 아직가지 참이고 수학적 진리로 간주된다. 예시로 '그 차가 2인 소수의 쌍이 무한히 존재한다(3과 5, 17과 19, 29와 31..)'라는 명제 등이 있다. 반면 수학적 진리를 '참을 증명 가능한 이치'라고 보면 불가능할 것이다.</p><p> 수학자에게 '진리 탐구'외의 윤리적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저작권에서의 문제와 같이 타인의 업적을 도용하거나 거짓 결과를 발표하는것, 소극적으로 자신의 발견이 최대한 활용될 수 있게 하는 것 정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에서 수학자가 지식을 공유하지 않거나 상을 거부하는 행위는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의 순수성에 대한 자신의 신념으로 해당 행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나는 이것이 단지 '내 기분이 나쁘니 안 알려줘'라는 투의 개인주의적 반항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은 그 표면적인 순수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로써 얻는 이윤이 중요한 것이다. 지식을 공유하지 않고 무덤까지 들고 들어가는 것은 발견하지 못한 것만도 못한 인류의 발전을 방해하는 행위이다. 상을 거부하는 행위는 그 상과 그 상을 받은 모든 사람과 그 공로와 상을 수여해 주는 사람들의 명예와 노력과 업적까지 깎아내리고 훼손하는 매우 부도덕적이고 이기적인 행위이다.  페렐만의 증명처럼 비공식적인 발표는 이미 검증되었듯이 정식으로 인정될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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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2:02:1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401005</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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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52402375</link>
         <description><![CDATA[<p>증명이 없다면 수학적 진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p><p><br/></p><p><strong><mark>증명 없이 수학적 진리를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수학계에서 공인된 '진리'로 인정받기는 어렵습니다</mark>.</strong> 수학에서 '진리'는 경험적 증거가 아닌, 엄밀한 논리적 증명 과정을 통해 확립되기 때문입니다. 증명은 수학적 주장을 확실한 사실로 만드는 '최고의 기준'입니다.&nbsp;</p><p>증명 없는 수학적 주장은 일반적으로 다음 세 가지 범주 중 하나에 속합니다.</p><p><strong>1. 공리 (Axiom)</strong></p><ul><li><p><strong>정의:</strong> 공리란 증명 없이 참이라고 가정되는 기본적인 진술입니다. 어떤 수학적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며, 다른 모든 정리를 연역적으로 도출하는 출발점이 됩니다.</p></li><li><p><strong>예시:</strong>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은 하나뿐이다"와 같은 명제는 공리이며,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p></li><li><p><strong>역할:</strong> 공리는 정의만큼이나 자명하게 참이라고 간주되지만, 객체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성질을 설명합니다.&nbsp;</p></li></ul><p><strong>2. 추측 (Conjecture)</strong></p><ul><li><p><strong>정의:</strong> 추측은 참일 것으로 강력히 추정되지만 아직 증명되지 않은 진술입니다. 경험적 증거나 직관을 통해 지지받지만, 증명이 없으므로 '진리'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p></li><li><p><strong>예시:</strong> "골드바흐의 추측"은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주장으로, 수많은 컴퓨터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지만 아직 증명되지 않은 대표적인 예입니다.</p></li><li><p><strong>역할:</strong> 수학자들은 추측을 증명하거나 반증하기 위해 노력하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수학적 발견이 이루어집니다.&nbsp;</p></li></ul><p><strong>3.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strong></p><ul><li><p><strong>정의:</strong> 20세기 수학자 쿠르트 괴델은 페아노 공리계를 포함하는 모든 무모순적인 공리계에는 참이지만 그 공리계 내에서는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존재함을 증명했습니다.</p></li><li><p><strong>결과:</strong> 이 정리는 "진리의 세계가 증명의 영역보다 훨씬 방대하고 심오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어떤 명제는 참이지만 증명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p></li><li><p><strong>함의:</strong> 이는 증명이 없는 수학적 진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이는 특정 공리계의 한계에 따른 결과이며, 여전히 그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다른 증명 방식을 통해 확신해야 합니다.&nbsp;</p></li></ul><p><strong>증명의 역할과 의의</strong></p><p>증명이 없다면 수학적 진리는 단순한 가설에 머무릅니다. 증명은 직관이나 경험적 사실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절대적이고 논리적인 확실성을 부여합니다. 이것이 수학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 복잡한 증명에 매달리는 이유입니다.&nbsp;</p><p><strong>최근 동향:</strong> 인공지능이 복잡한 수학적 증명을 보조하거나 새로운 수학적 공식(추측)을 만드는 등 수학적 진리 탐구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엄밀한 증명은 인간 수학자들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nbsp;</p><p><br/></p><p>수학자에게는 진리탐구 외에 어떤 윤리적인 책임이 있을까?</p><p><br/></p><p>지식을 공유하지 않거나 상을 거부하는 행위는 비윤리적인가, 아니면 지식의 순수성을 지키는 행위인가?</p><p><br/></p><p>페렐만의 증명처럼, 비공식적 발표가 정식 학문적 검증으로 인정될 수 있을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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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12:03: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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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지식과 언어</title>
         <author>knowngirl</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74931824</link>
         <description><![CDATA[<p>&lt;탐구 질문&gt;</p><p>1. 언어의 범위</p><p>- 이모티콘이나 이모지는 오늘날 하나의 ‘언어’처럼 기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p><p>- 수학 기호, 악보, 화학 구조식과 같은 상징 체계도 ‘언어’라고 부를 수 있을까?</p><p>- 언어의 의도(intentionality) 는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일까?</p><p>- 언어가 창조적이고 혁신적이라면, 예술 작품도 하나의 ‘언어’로 간주할 수 있을까?</p><p>- AI 번역기는 ‘언어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한다고 할 수 있을까?</p><p><br/></p><p>2. 언어와 사고</p><p>-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까? (말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생각하나요? 이미지나 감정, 느낌으로 생각하나요? 혹은 완전히 다른 방식이 있을까요?)</p><p>-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만들고 바꾼다고 할 수 있을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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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10 08:34: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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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지식과 기술</title>
         <author>knowngirl</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74932608</link>
         <description><![CDATA[<p>&lt;탐구 질문&gt;</p><p>1. 기술의 영향</p><p>-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정말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걸까?</p><p>- 기술이 편리하긴 하지만, 혹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나 창의력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p><p>- 기술은 우리가 지식을 배우는 데 도움을 주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있는 범위를 정해 버리는 걸까?</p><p><br/></p><p>2. 기술의 신뢰성</p><p>- AI는 인간의 지식과 ‘앎’의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우리의 지식을 넓히는 걸까, 아니면 위협하는 걸까?)</p><p>- 빅데이터는 인간보다 더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p><p>- 데이터가 언제나 객관적인 진실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을까?</p><p>- AI와 빅데이터가 중심이 된 시대에도, 인간의 직관과 경험은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p><p>-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의 편향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장치나 인간의 역할이 필요할까?</p><p><br/></p><p>3. 기술의 정체성</p><p>- AI가 만들어낸 성과는 인간의 지식일까, 아니면 AI의 지식일까?</p><p>- 인간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AI의 결과물도 ‘지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p><p>- 앞으로 나는 AI를 어떤 방식으로 지식을 배우고 탐구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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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10 08:35: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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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지식과 정치</title>
         <author>knowngirl</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74933562</link>
         <description><![CDATA[<p>&lt;탐구 질문&gt;</p><p>1. 정치적 권위</p><p>- 역사 속에서 권력이 지식을 통제하거나 조작한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검열, 교육 제도, 언론 통제 등)</p><p>- 권력은 어떤 지식을 강조하고, 또 어떤 지식을 배제했을까?</p><p>- 정치적 상황에서 ‘진리’라고 불리는 지식은 정말 보편적인 진리일까? 아니면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일까?</p><p>- 사회적 안정과 개인의 알 권리가 충돌할 때, 우리는 어느 쪽을 더 우선해야 할까?</p><p><br/></p><p>2. 정치적 관점</p><p>- ‘공익을 위해 지식을 공개하는 것’과 ‘사회 질서를 위해 지식을 숨기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나요?</p><p>- 핵티비즘(hacktivism)을 통해 공개된 정보와 지식은 사회 변화를 위한 정당한 행동일까요, 아니면 법과 질서를 해치는 위험한 행위일까요?</p><p>- 에드워드 스노든의 내부 고발은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높인 용기 있는 행동일까요, 아니면 국가의 안전을 위협한 배신일까요?</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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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10 08:35:4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74933562</guid>
      </item>
      <item>
         <title>지식과 종교</title>
         <author>knowngirl</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74934604</link>
         <description><![CDATA[<p>&lt;탐구 질문&gt;</p><p>1. 종교의 분류</p><p>- 우리나라의 주요 종교는 동의의 종교인가, 혈통의 종교인가? 아니면 이 둘 사이의 어떤 종교인가?</p><p>- 혈통의 종교와 동의의 종교는 지식을 어떤 방식으로 전승하고, 또 어떻게 정당화할까요?</p><p>- 현대 한국 사회에서 무종교인의 증가 현상은 혈통의 종교와 동의의 종교 중 어디와 더 관련이 깊은가?</p><p>- 글로벌 시대에 종교 개종이 늘어나는 현상은 어떤 의미에서 ‘동의의 종교’를 강화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p><p><br/></p><p>2. 종교 텍스트</p><p>- 성스러운 텍스트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종교적 지식의 강점일까 약점일까?</p><p>- 새로운 사회적 변화(예: 여성의 권리, 과학의 발전)가 등장할 때, 종교 전통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할까?</p><p>- 성스러운 텍스트의 ‘불변성’은 종교적 지식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p><p>- 세속 사회의 변화가 종교 공동체의 지식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당한 일일까?</p><p><br/></p><p>3. 종교와 과학</p><p>- 지식의 가치는 ‘출처’에 달려 있을까 아니면 ‘검증 가능한 결과’에 달려 있을까?</p><p>- 만약 라마누잔이 신앙적 영감에서 얻은 수학 공식을 증명하지 못했다면 ‘지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p><p>- 지식의 ‘출발점’이 신앙일 수 있지만 지식의 ‘정당화’는 반드시 합리적 증명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는가?</p><p>- 라마누잔의 사례는 종교와 과학(또는 수학)의 관계를 어떻게 다시 생각하게 하나요?</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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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10 08:36: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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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예술</title>
         <author>knowngirl</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74935505</link>
         <description><![CDATA[<p>&lt;탐구 질문&gt;</p><p>1. 예술의 범위</p><p>-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지를 우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p><p><br/></p><p>2. 아름다움</p><p>-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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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10 08:37:1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74935505</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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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자연과학</title>
         <author>knowngirl</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74942744</link>
         <description><![CDATA[<p>&lt;탐구 질문&gt;</p><p>1. 과학적 방법</p><p>- 과학은 사람의 생각이나 관찰과 상관없이 진리를 알아낼 수 있을까? (완전히 객관적인 과학이 가능할까?)</p><p>- 과학이 연구하는 사람의 생각이나 기대에 영향을 받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p><p>- 만약 과학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진리’라고 한다면 예술, 종교, 역사 같은 다른 지식은 어떤 의미를 잃게 될까?</p><p><br/></p><p>2. 유사과학</p><p>- 무엇이 과학이고, 무엇이 유사과학인지 판단할 때 우리는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을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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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10 08:43: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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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수학</title>
         <author>knowngirl</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74943210</link>
         <description><![CDATA[<p>&lt;탐구 질문&gt;</p><p>1. 수학과 미학</p><p>- 아름다움은 수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p><p>- 예술가들은 ‘황금비’를 발견한 걸까, 아니면 새롭게 만들어낸 걸까?</p><p>- 수학적 질서가 없는 예술(추상화, 표현주의 등)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p><p><br/></p><p>2. 수학과 윤리</p><p>- ‘증명’이 없이 직관이나 영감만으로는 수학적 지식이 될 수 없을까?</p><p>- 수학자에게는 단순히 ‘진리를 찾는 일’ 외에 어떤 윤리적 책임이 있을까?</p><p>- 자신의 연구를 공개하지 않거나 상을 거부하는 행동은 비윤리적인 걸까? 지식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정당한 선택일까?</p><p>- 지식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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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10 08:43: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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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탐구 주제 및 질문 만들기 #1</title>
         <author>knowngirl</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74945264</link>
         <description><![CDATA[<p>연필 질문으로 수업시간에 다룬 주제에서 자신만의 탐구 질문을 만들어 봅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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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10 08:45: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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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탐구 주제 및 질문 만들기 #2</title>
         <author>knowngirl</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74946544</link>
         <description><![CDATA[<p>활동지를 활용해 수업시간에 다룬 주제에서 자신만의 탐구 질문을 만들어 봅시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usc1.storage.googleapis.com/2628694620/2f1af2828ac313479ff5fa12d9a516a6/_____2.jpg" />
         <pubDate>2025-11-10 08:46: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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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quot;과연 과학기술은 우리 인류를 더 행복하게 만들까?&quot;</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75154310</link>
         <description><![CDATA[<p>"과연 과학기술은 우리 인류를 더 행복하게 만들까?"</p><p>난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엔트로피』를 근거로 위 질문에 대해 회의적이다. 사회과학자였던 리프킨은 현대 문명이 기반하고 있는 고에너지 소비 시스템과 사람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인류의 장기적인 행복을 저해하고 있다고 역설한다.</p><p>『엔트로피』의 핵심 논리는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뿌리를 둔다. 이 법칙은 모든 닫힌계에서 에너지는 끊임없이 분산되고 소모되어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변하며(엔트로피 증가), 결국 무질서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지구또한 일종의 거대한 닫힌계이며, 우리가 화석 연료와 같은 유한한 에너지를 사용할수록 유용한 에너지는 줄어들고 환경 오염과 폐기물 같은 무질서도가 증가한다. 리프킨은 현대 과학기술이 엔트로피 증가 속도를 극적으로 가속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증기 기관에서부터 제트기,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첨단 기술은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기술 발전은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부추기며, 이는 자원 고갈과 환경 위기를 심화시킨다. 리프킨에게 과학기술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아니라, 오히려 종말을 앞당기는 조력자인 셈이다. 우리는 수많은 서구 철학자들이 성립시키고 기반을 다졌던 '기계적 사고방식' 아래 과학기술이 가져다준 편리함과 물질적 풍요를 '행복'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리프킨은 이것이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리프킨은 위와 정반대의 동양의 철학자들의 의견을 지지하며, 현재의 풍요는 유한한 자원을 무분별하게 착취한 결과이고,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다시말해 단기적인 만족을 위해 미래 세대의 생존 기반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고에너지 문명은 인간 소외와 공동체 해체라는 사회적 엔트로피까지 증가시켰다. 속도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삶은 인간관계를 단절시키고, 경쟁과 개인주의를 심화시켰다. 리프킨은 진정한 행복이 물질적 소유가 아닌 인간적 유대와 관계 속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p><p>결론적으로, 리프킨은 "과학기술은 현대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까?"라는 질문에 대해 현재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그는 현재의 고에너지 중심 문명에서 벗어나 저에너지, 즉 저엔트로피 사회로의 전환을 촉구한다. 이는 성장이 아닌 안정, 효율이 아닌 보존, 물질주의가 아닌 공동체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사고와 과학의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p><p>따라서 태양 에너지와 같이 지속 가능하고 분산된 에너지 체계로 전환하고, 엔트로피의 증가 속도를 늦추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을 채택해야만 인류가 진정한 행복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엔트로피』의 강력한 메시지이다.</p><p><br/></p><p><br/></p><p><br/></p><p><br/></p><p>24일까지</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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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10 11:41: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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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세특</title>
         <author>gs251113</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79586133</link>
         <description><![CDATA[<p>나는 '지식과 기술'단원에서 '알고리즘이 내린 결정을 인간이 무조건 따라야 할까?, 아니면 결정해야 할까?' 질문에서 알고리즘은 과거의 사건, 경험 등을 기반하기 때문에 약간의 편파적인 면을 보일 수 있으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며 해외 알고리즘의 차별적인 선별 방법 등 여러 알고리즘의 차별적이고 편향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알고리즘이 내린 결정을 인간이 무조건 따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제에 대해 답을 하면서 '만약 AI 알고리즘을 통해 진료하는 중 오진을 내린다면 책임은 담당 의사한테 있을까? 아니면 AI개발자에게 책임이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나는 AI 오진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이 의사에게 있다는 가정을 세웠다. 현재 의료 분야에서 AI는 진단, 신약 개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AI는 이전 데이터를 학습하여 패턴을 분석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 2019년 한 사례를 보면 한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에게 의사는 심전도 검사를 처방했는데 심전도 자동 판독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다. 하지만 환자는 그 병원에 입원한 지 6일이 지난 뒤에야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다. 환자는 결국 사망하였고 법원은 의사의 잘못으로 판단하여 유가족에게 수억 원을 배상하게 했다(출처: 코메디닷컴). 이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AI는 아직 완벽하지 않으며 AI는 의료 장비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람인 의사가 AI의 활동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감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앞으로의 AI 발전과 사용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를 고려하여 미래에도 의사가 모든 책임을 진다면(나의 가정) 몇 가지 문제점 및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첫 번째로 기술적 면에서 의사가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데 책임을 지게 된다면 공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두 번째로 의사들이 모든 책임을 진다는 부담으로 AI 사용을 기피하면 AI 사용으로 진료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AI 사용 목표와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러한 오류(문제점)를 고려하여 윤리적 책임과 환자 생명에 대한 책임은 의사에게 있으나 기술적 결함에 대한 책임은 개발자에게 분담되어야 하며 AI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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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12 16:37: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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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인공위성 빅데이터는 객관적 진실을 보여주는가, 아니면 알고리즘에 의해 왜곡되는가?</title>
         <author>gs251618</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94775923</link>
         <description><![CDATA[<p>나는 위성 관측 데이터가 흔히 “객관적 사실”이라고 여겨지는 점에 의문을 느꼈다. 위성은 인간 시야로 볼 수 없는 광대역 정보를 촬영해 제공하지만, 그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는 다양한 알고리즘, 전처리 방식, 필터가 사용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위성 데이터는 진짜 사실인가, 아니면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해석일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번 탐구를 시작하게 되었다.<br>처음 세운 가설은 “위성 데이터는 물리적 정보를 포함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객관적이지만, 분석 과정의 알고리즘 선택에 따라 어느 정도의 해석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였다. 즉, 편향이 존재해도 결과 전체의 맥락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NASA가 제공하는 Landsat과 ESA가 제공하는 Sentinel의 원본 위성 이미지와 NDVI(식생지수), 구름 탐지 알고리즘이 적용된 결과를 비교하는 탐구 설계를 세웠고, 동시에 서로 다른 알고리즘(SVM, RandomForest, CNN)을 사용해 동일 지역의 이미지 분류 결과를 비교 분석했다.</p><p>탐구를 실시한 결과, 원본 데이터와 알고리즘 처리 후 이미지 사이에는 색 보정 차이, 경계 왜곡, 구름·설원 오탐지 등 다양한 차이가 존재했다. 특히 서로 다른 알고리즘을 적용했을 때 같은 지역에 대해 ‘식생이 높다’ 혹은 ‘낮다’처럼 완전히 다른 판단이 도출되는 경우도 확인되었다. 이 과정에서 위성 데이터는 단순한 ‘관측 사실’이 아니라, 처리 과정에서 의미가 구성되는 ‘가공된 해석 결과’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p><p>그러나 실험 결과는 나의 가설 일부를 반박했다. 나는 “해석의 차이가 있더라도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라고 기대했지만, 알고리즘 종류나 전처리 방식이 달라질 때 예상보다 훨씬 큰 해석 편차가 나타났다. 이는 내가 놓쳤던 중요한 실패 포인트였다.<br>이 실패의 원인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빅데이터가 만드는 세상(마이클 니나시·제이 제이슨)'을 참고했다. 이 책에서는 “데이터는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전처리·필터링·분류 과정에서 수많은 주관적 선택이 개입된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위성 데이터도 처음부터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알고리즘과 기준 속에서 해석된 ‘선택된 정보’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댄 애리얼리의 '거짓말하는 착한사람들'을 참고하여 인간 역시 데이터를 볼 때 무의식적으로 패턴을 해석하려는 성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내가 ‘데이터는 객관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이유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br>이후 동일한 지역을 대상으로 서로 다른 알고리즘(CNN, RandomForest)을 번갈아 적용하고 결과의 차이를 정량적으로 비교하는 것을 통해 알고리즘 선택이 위성 빅데이터의 해석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p><p>결론적으로 위성 빅데이터는 분명 물리적 관측 정보를 담고 있지만, 그 정보가 ‘지식’으로 해석되는 과정에서는 알고리즘의 구조, 전처리 방식, 색 보정 기준, 분류 모델 등의 편향이 개입한다. 즉, 데이터는 객관적이지만, 해석은 객관적이지 않다. 따라서 우주·지구 관측 자료를 활용한 연구에서는 단일 알고리즘에 의존하기보다 서로 다른 분석 모델을 교차 검증하는 ‘다중 해석 프레임’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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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23 05:01: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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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탐구보고서-박성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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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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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23 06:28: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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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95099986</link>
         <description><![CDATA[<p>‘빅데이터는 인간보다 공정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수업 토론에서 공정성을 정확도로만 바라보던 사고의 한계를 인식하고, 집단별 오탐(FP)·누락(FN) 편차가 발생하는 이유를 구체적 사례 분석을 통해 확인함. 이를 바탕으로 공정성이 단순 수치 문제가 아니라 목적·지표·가중치의 선택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공정성은 규칙이 만드는가, 규칙을 선택하는 가치가 만드는가?’라는 심화 질문으로 확장함. 이후 직접 설계한 간단한 위험점수 기반 모델을 활용해 의사결정 절차에 따라 공정성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검증함. 구글 시트와 파이썬을 이용해 모의 데이터를 생성하고, 위험행동·결석·과제 미제출 등의 지표를 바탕으로 0~5점의 점수 체계를 구성한 뒤, 임계값(컷)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정확도 최대, 기회균등(집단별 재현율 일치), 비용 민감(FN 비용 3, FP 비용 1) 등 세 가지 정책 시나리오를 비교 분석함. 혼동행렬을 통해 정책별·집단별 정밀도·재현율·오류 비율을 산출하고, 컷 선택 방식이 수혜·부담 분배를 어떻게 바꾸는지 시각화함. 특히 기회균등 정책은 필요한 학생을 놓치지 않는 장점이 있으나, 특정 집단에서 오탐이 크게 증가해 정확도는 오히려 낮아지는 현상을 확인함. 반면 FN 비용을 크게 설정한 정책은 두 집단 모두 누락을 줄이지만 오탐 증가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도 실험을 통해 도출함. 이 과정에서 공정성의 핵심이 결과값이 아니라 절차(목적 설정–지표 후보 도출–가중치 선택–근거 공개–이의제기 절차)에 있음을 재확인하고, 탐구 결과를 바탕으로 학급 의사결정에 적용 가능한 ‘절차적 공정성 프로토콜’을 제작함. 프로토콜을 발표 순서·역할 배분 결정 과정에 시범 적용하여, 같은 결과라도 절차의 투명성이 높을수록 구성원의 수용성과 신뢰가 높아짐을 확인함. 전 과정에서 질문 생성–오류 인식–모델 설계–도구 기반 분석–절차 재설계–현장 적용의 과정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며 기술적 도구를 활용한 탐구 역량을 보여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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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23 16:39: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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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title>
         <author>gs251412</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95252050</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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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23 22:16: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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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전자 편집 기술(CRISPR)은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될까, 아니면 위험을 내포할까?</title>
         <author>gs251621</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96073872</link>
         <description><![CDATA[<p>나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유전자 편집 기술, 특히 CRISPR-Cas9 기술이 정말 질병 치료에 안전하게 쓰일 수 있는지 궁금했다. 뉴스나 과학 기사에서는 이 기술이 희귀 질병 치료에 도움을 준다고 하지만, 부작용이나 윤리적 논란에 대한 내용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유전자 편집 기술이 과학적으로 안전한가, 아니면 위험이 존재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이번 탐구를 시작했다.</p><p>처음 세운 가설은 “CRISPR 기술은 과학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연구자의 선택과 기술 적용 방식에 따라 안전성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였다. 즉, 기술 자체는 객관적이지만, 적용 방식에 따라 해석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나는 인터넷과 학교 도서관에서 CRISPR 관련 논문, 뉴스 기사, 시뮬레이션 자료를 수집하고, 치료 목적과 윤리적 논란 사례를 나누어 비교하는 탐구를 설계했다.</p><p>탐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사와 논문만 비교하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자료마다 기술의 장점과 위험을 다르게 강조해 같은 사례를 보고도 서로 다른 결론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한 논문에서는 CRISPR가 특정 유전자 질환을 거의 완벽하게 교정할 수 있다고 했지만, 다른 자료에서는 오프타깃 문제로 치료 효과가 불확실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어떤 자료가 맞는 걸까?’라는 혼란 때문에 탐구가 멈출 뻔했다.</p><p>이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마이클 니나시와 제이 제이슨의 [빅데이터가 만드는 세상]을 참고했다. 책에서는 “데이터나 기술은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분석 과정과 해석에서 사람의 선택과 기준이 개입된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자료마다 다른 결론이 나오는 이유가,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과 강조점의 차이 때문임을 깨달았다. 이후에는 단순히 자료를 비교하는 것을 넘어서, 각 자료가 어떤 목적과 기준으로 작성되었는지 분석하고, 서로 다른 해석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탐구를 진행했다.</p><p>탐구 결과, CRISPR 기술은 질병 치료의 잠재력을 분명히 가지고 있지만, 자료 해석과 적용 방식에 따라 안전성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기술 자체는 객관적이지만, 그 의미와 가치 판단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p><p>결론적으로 유전자 편집 연구를 이해하고 활용하려면, 단일 자료에 의존하기보다는 다양한 연구 사례와 기사, 전문가 의견을 비교·검토하는 ‘다중 검토 방식’이 필요하며, 기술과 윤리 문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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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24 10:12:0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96073872</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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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특</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696106872</link>
         <description><![CDATA[<p>자연과학 단원을 학습하며 <em>“과학은 인간의 지각·사유 체계와 독립하여 객관적 진리를 획득할 수 있는가?”</em>라는 근본적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된 토론에서 핵심 논지를 주도적으로 구성함. 과학은 인간의 인식 구조를 전제한 해석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과학철학·인식론적 근거들을 스스로 탐색함. 특히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사례로 자연 현상 자체와 그것을 이론으로 조직화한 과학적 구성물 사이의 존재론적·인식론적 분할을 제시하며, 중력이 ‘발견’된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관찰·추론 체계에 의해 ‘구성’된 규범적 틀임을 논증함. 이어서 <em>“감각 체계가 근본적으로 상이한 존재가 과학을 수행한다면 동일한 법칙을 도출할 것인가?”</em>라는 사고실험을 전개하며, 과학적 지식이 관찰 주체의 생물학적 조건·지각 양식에 구조적으로 종속된다는 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함. 이를 확장하여 칸트의 ‘물자체’와 ‘현상’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인간이 접근 가능한 세계는 인식 구조에 의해 재구성된 현상계에 제한된다는 철학적 귀결을 도출함.</p><p>이러한 인식론적 성찰을 한의학의 ‘기(氣)’ 개념과 경락 이론에 적용하여, 서양 과학의 관찰 가능성 기준 또한 절대적 규범이 아니라 특정 기술·지각 체계에 기반한 역사적·방법론적 패러다임임을 비판적으로 검토함. 이를 통해 현대의학이 채택한 환원주의적 분석과 한의학이 강조하는 전체론적 조망이 서로 다른 인식 구조에서 비롯된 상보적 관점임을 밝히고, 두 체계 간의 통합 가능성을 모색함. 더 나아가 이러한 분석을 기반으로 언어문화 프로젝트에서 ‘기존 과학 프레임을 전제하지 않는 새로운 질문 구조’를 제안하는 활동을 기획하며 학제적 사유 역량을 발휘함. 전 과정에서 과학철학·인식론·의학적 패러다임을 종합적으로 연계하여 스스로 논지를 구축하고 확장하는 등 미래 한의학 연구자로서 요구되는 분석력, 개념적 사고력, 이론적 재구성 능력을 두드러지게 보여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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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1-24 10:42: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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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질문&amp;탐구</title>
         <author>knowngirl</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712414519</link>
         <description><![CDATA[<p>질문을 하기에 앞서 제가 생각하는 언어의 기준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말로 하는 대화뿐 아니라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 언어라고 생각한다.</p><ol><li><p>일상 속에서 sns를 통해 이모티콘으로 자신의 기분 상태를 나타내어 의사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li><li><p>수학기호나 악보 화학구조식을 통해 자신이 나타내고 싶은 공식,음악, 화학반응식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언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li><li><p>언어를 사용할 때 항상 의사소통을 위하여 사용되고 혼잣말 같이 타인간의 의사소통이 아닌 언어는 나자신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p></li><li><p>예술 작품이 언어라면 말하는 화자는 그 자리에 없을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서 작품을 보는 사람은 작품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다를 지라도 화자가 말하고 싶은 것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li><li><p>AI 번역기는 문장에서의 단어가 수많은 의미 중에서 어떤 의미인지 원래 말한 사람이 어떤 의도로 말한 건지 그 사람의 감정 상태 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번역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한 말의 의도를 완전히 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p></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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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2-06 02:23:0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712414519</guid>
      </item>
      <item>
         <title>공감은 타고나는가, 학습 가능한가？
</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713168284</link>
         <description><![CDATA[<p>나는 공감을 인지적 공감과 정서적 공감으로 구분한다. 인지적 공감은 상대의 기분과 상태를 머리로 추론하는 능력으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학습될 수 있지만, 정서적 공감은 타인의 감정이 내 마음까지 깊게 흔들리는 경험에 가까워 타고난 감수성과 초기 경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본다. 그래서 공감력이 약한 사람이나 인공지능은 상황별 반응 규칙을 익혀 겉으로는 공감하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으나,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내적 경험은 부족하다. 나는 이러한 반응을 진정한 공감이라기보다는 형식적인 공감, 또는 공감을 사회적으로 연기하는 방식에 가깝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러한 공감 학습은 타인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로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5-12-07 11:40: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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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탐구보고서</title>
         <author>gs251807</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713277111</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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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2-07 14:39: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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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세특</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714179391</link>
         <description><![CDATA[<p>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정말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걸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진행된'지식과 기술' 단원의 토론에서 알수 있는 정보의 범위는 넓어지더라도 검색의 편리함이 오히려 장기기억 속으로 지식이 들어갈 필요성을 못 느껴 지식을 더 줄어들게 한다고 주장함. 단기 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꾸어서 뇌 안에 지식을 저장한다면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서 더 많은것을 알게 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단기기억을 어떻게 장기기억으로 효과적으로 바꿀까?라는 의문을 갖고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이 저장되는 원리를 조사해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조사하고 기술의 발전과함께 우리의 지식도 향상시킬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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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2-08 08:11: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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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quot;과연 과학기술은 우리 인류를 더 행복하게 만들까?&quot;</title>
         <author>gs251719</author>
         <link>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715138316</link>
         <description><![CDATA[<p>"과연 과학기술은 우리 인류를 더 행복하게 만들까?"</p><p>난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엔트로피』를 근거로 위 질문에 대해 회의적이다. 사회과학자였던 리프킨은 현대 문명이 기반하고 있는 고에너지 소비 시스템과 사람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인류의 장기적인 행복을 저해하고 있다고 역설한다.</p><p>『엔트로피』의 핵심 논리는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뿌리를 둔다. 이 법칙은 모든 닫힌계에서 에너지는 끊임없이 분산되고 소모되어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변하며(엔트로피 증가), 결국 무질서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지구또한 일종의 거대한 닫힌계이며, 우리가 화석 연료와 같은 유한한 에너지를 사용할수록 유용한 에너지는 줄어들고 환경 오염과 폐기물 같은 무질서도가 증가한다. 리프킨은 현대 과학기술이 엔트로피 증가 속도를 극적으로 가속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증기 기관에서부터 제트기,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첨단 기술은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기술 발전은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부추기며, 이는 자원 고갈과 환경 위기를 심화시킨다. 리프킨에게 과학기술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아니라, 오히려 종말을 앞당기는 조력자인 셈이다. 우리는 수많은 서구 철학자들이 성립시키고 기반을 다졌던 '기계적 사고방식' 아래 과학기술이 가져다준 편리함과 물질적 풍요를 '행복'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리프킨은 이것이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리프킨은 위와 정반대의 동양의 철학자들의 의견을 지지하며, 현재의 풍요는 유한한 자원을 무분별하게 착취한 결과이고,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다시말해 단기적인 만족을 위해 미래 세대의 생존 기반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고에너지 문명은 인간 소외와 공동체 해체라는 사회적 엔트로피까지 증가시켰다. 속도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삶은 인간관계를 단절시키고, 경쟁과 개인주의를 심화시켰다. 리프킨은 진정한 행복이 물질적 소유가 아닌 인간적 유대와 관계 속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p><p>결론적으로, 리프킨은 "과학기술은 현대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까?"라는 질문에 대해 현재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그는 현재의 고에너지 중심 문명에서 벗어나 저에너지, 즉 저엔트로피 사회로의 전환을 촉구한다. 이는 성장이 아닌 안정, 효율이 아닌 보존, 물질주의가 아닌 공동체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사고와 과학의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p><p>따라서 태양 에너지와 같이 지속 가능하고 분산된 에너지 체계로 전환하고, 엔트로피의 증가 속도를 늦추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을 채택해야만 인류가 진정한 행복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엔트로피』의 강력한 메시지이다.</p><p><br></p><p><br></p><p><br></p><p><br></p><p>24일까지</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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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2-08 23:03:4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hgh2024/kviir2pazy6ib2an/wish/3715138316</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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