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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반 백석과 신경림의 시 by 2020김혜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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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작성자를 밝히고, 백석과 신경림 시에 대해 조사하여 올리세요. </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2-04-06 23:34: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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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21</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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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strong>낙타 <br></strong>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br>별과 달과 해와<br>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br>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 것도 못 본 체<br>손 저어 대답하면서,<br>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br>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br>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br>별과 달과 해와<br>모래만 보고 살다가,<br>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br>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br>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br>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br>길동무 되어서.</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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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01:16: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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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0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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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div><div>* 가즈랑집</div><div>* 고방</div><div>* 귀농</div><div>* 수박씨 호박씨</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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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01:17: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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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10 박준휘</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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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strong>여승&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br></strong>&nbsp;</div><div>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div><div>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div><div>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div><div>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div><div><br>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div><div>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div><div>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div><div><br>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div><div>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div><div>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div><div><br>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div><div>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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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01:18: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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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18</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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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935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56년 &lt;문학예술&gt;에 「갈대」, 「墓碑」 등이 추천되어 시단에 나오게 되었다. 신경림은 우리나라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사람 사는 이야기와 민요들을 모으는 데 관심을 기울였으며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을 받았다.</div><div>&nbsp;</div><div>신경림의 『농무』만큼 1970년대 한국 시단과 독서계에 큰 충격과 감동을 던진 시집은 없다. 농민들의 삶의 애사(哀史)를 리얼하게 묘사해내면서 민중문학의 힘찬 전진을 예고한 이 시집 한 권으로 신경림은 우리 시단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만해문학상’을 받은 『농무』는 개발독재의 서슬 퍼런 시대에 이데올로기적으로 눌리고 2, 3차 산업의 활황에 소외된 농촌의 열악한 현실 상황을 시편 하나하나마다 전형적으로 포착하여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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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01:18: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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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02 김동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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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평안북도 정주 출생</div><div>백석은 일본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1924년 귀국해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첫 작품인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이후 백석은 영생 여자 고등 보통학교와 세관에서 근무하며 작품활동을 이어 왔습니다.</div><div>​</div><div>1935년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등단한 백석은 이후 시와 수필, 야화 등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백석 시인의 대표작으로는 「여우난곬족」, 「여승」, 「고방」 등이 담긴 [사슴]이 있습니다.</div><div>백석의 작품은 민족적 전통성의 가치에 주로 중점을 두었습니다.</div><div>백석의 시는 대체로 농촌의 정서를 특유의 평안도 사투리를 활용해 나타내어 민속적, 토속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문단을 휩쓸던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지역적인 색채와 민속적인 소재를 사용하며 백석만의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div><div>​</div><blockquote>백석 시인의 대표적인 작품 중 '여우난곬족'은 평안도 사투리를 활용ㅕ해 향토적 느낌을 주며 사라져가는 농촌 공동체의 풍요로움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시각, 후각 등 감각적 이미지를 구사해 명절의 풍성한 분위기를 형상화했습니다. 이는 유년 시절의 농촌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과 순수함을 드러내는 작품입니다.</blockquote>]]></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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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01:19: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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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06 김태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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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br>가난한 내가&nbsp;</div><div>아름다운 나탸사를 사랑해서</div><div>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div><div>&nbsp;</div><div>​</div><div>나탸사를 사랑은 하고</div><div>눈은 푹푹 나리고</div><div>나는 혼자 쓸슬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div><div>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div><div>나탸사와 나는</div><div>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div><div>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nbsp;</div><div>&nbsp;</div><div>​</div><div>눈은 푹푹 나리고</div><div>나는 나탸사를 생각하고</div><div>나탸사가 아니 올 리 없다</div><div>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div><div>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div><div>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div><div>&nbsp;</div><div>​</div><div>눈은 푹푹 나리고</div><div>아름다운 나탸사는 나를 사랑하고</div><div>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nbsp;</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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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01:19: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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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08 노영준</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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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br>• 여우난 곬곡<br>•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br>• 흰 바람벽이 있어<br>• 여승<br>• 고향<br>• 나 취했노라<br>• 비<br>• 늙은 갈대의 독백<br>• 광원<br>• 산비<br>• 바다<br>• 수라<br><br><strong>나 취했노라</strong></div><div><br></div><div>&nbsp;</div><div><br></div><div><strong>나 취했노라</strong></div><div><strong>나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술에 취햇노라</strong></div><div><strong>나 슬픔에 취했노라</strong></div><div><strong>나 행복해진다는 생각에 또한 불행해진다는 생각에&nbsp; 취했노라</strong></div><div><strong>나 이 밤의 허무한 인생에 취햇노라</strong></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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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01:19: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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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03 김성준</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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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였다. 1924년 오산소학교를 졸업하고 오산학교(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일 때 조만식, 홍명희가 교장으로 부임한 적이 있고, 6년 선배인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다. 1929년 오산고보를 졸업한 후,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었고, 조선일보사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東京]의 아오야마[靑山] 학원 영어사범과에 입학하였다. 유학 중 일본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즐겨 읽었고, 모더니즘 운동에 관심을 가졌다.</div><div>1934년 졸업 후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서울생활을 시작하였고, 허준, 신현중 등과 자주 어울렸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8월 30일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주막」, 「여우난골족」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36년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한정판으로 간행하였다. 이 해에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함흥에서 소설가 한설야, 시인 김동명을 만났고, 기생 김진향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고야」, 「통영」, 「남행시초(연작)」 등을 발표하였다.</div><div>1937년 소설가 최정희, 시인 노천명, 모윤숙 등과 자주 어울렸으며, 「함주시초」, 「바다」 등을 발표하였다. 1938년 함경도 성천강 상류 산간지역을 여행하였고, 함흥의 교원직을 그만두고 경성으로 돌아왔다. 「산중음(연작)」, 「석양」, 「고향」, 「절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물닭의 소리(연작)」 등 22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1939년 자야와 동거하면서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하다가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div><div>1940년 만주의 신경(神京, 지금의 장춘(長春))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의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만에 그만두었다. 6월부터 만주 체험이 담긴 시들을 발표하기 시작하였고, 10월 중순 자신이 번역한 토마스 하디의 장편소설 『테스』의 출간을 앞두고 교정을 보러 경성에 다녀갔다. 「목구」, 「수박씨, 호박씨」, 「북방에서」, 「허준」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41년 「귀농」,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을 발표하였다. 1942년 만주의 안둥[安東] 세관에서 일하였다.</div><div>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0월에 조만식을 따라 소설가 최명익, 극작가 오영진 등과 ‘김일성 장군 환영회’에 참석해 러시아어 통역을 맡았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되었으나 처음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가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일에 매진하였다. 허준이 백석이 해방 전에 쓴 시 「적막강산」,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등을 보관하고 있다가 1947년 말부터 1948년 가을에 걸쳐 서울의 잡지에 실었다. 1948년 『학풍』 창간호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발표하였다. 남쪽 잡지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였다.</div><div>1949년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 등을 번역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1953년 전국작가예술가대회 이후 외국문학 분과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번역에 집중하였다. 1956년 동화시 「까치와 물까치」, 「집게네 네 형제」를 발표하였고,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나의 항의, 나의 제의」 등의 산문을 발표하였다. 10월에 열린 제2차 조선작가대회 이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정현웅의 삽화를 넣어 간행하였고, 동시 「멧돼지」, 「강가루」, 「기린」, 「산양」을 발표한 뒤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6월에 「큰 문제, 작은 고찰」과 「아동문학의 협소화를 반대하는 위치에서」를 발표하면서 아동문학 논쟁이 본격화되었고, 9월 아동문학토론회에서 자아비판을 하였다. 1958년 시 「제3인공위성」을 발표하였고, 9월의 ‘붉은 편지 사건’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문학적 활동이 대부분 중단되었다.</div><div>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에 있는 국영협동조합으로 내려가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았다. 삼수군 문화회관에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면서 농촌 체험을 담은 시 「이른 봄」, 「공무여인숙」, 「갓나물」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60년 1월 평양의 『문학신문』 주최 ‘현지 파견 작가 좌담회’에 참석하였고, 시 「눈」, 「전별」 등과 동시 「오리들이 운다」, 「앞산 꿩, 뒷산 꿩」 등을 발표하였다. 1961년 「탑이 서는 거리」, 「손벽을 침은」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62년 시 「조국의 바다여」, 「나루터」 등을 마지막으로 발표하였다. 10월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활동을 일절 하지 못하게 되었다. 1996년 삼수군 관평리에서 사망하였다.</div><div>백석은 소월과 만해, 지용이 다져놓은 현대시의 기틀 위에서 새로운 시의 문법을 세움으로써 한국 시의 영역을 넓히는 데 기여한 시인이다. 평안 방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언어들을 시어로 끌어들이고 고어와 토착어를 빈번하게 사용함으로써 시어의 영역을 넓히고 모국어를 확장시켰다. 또한 우리말의 구문이 품고 있는 의미 자질을 적절히 활용하여 경험세계를 감각적으로 재현하였다. 백석의 시는 형태적인 측면에서도 정제된 운율이 있는 전통적인 서정시 형식 대신 이야기 구조를 갖춘 서사지향적인 시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때 ‘이야기 구조’는 서사양식처럼 사건의 서사적 진행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장면 묘사와 서술에 의미의 중심이 놓여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주 짤막한 형태로 이루어진 시들은 대상의 미감을 가장 압축된 형태로 포착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또한 시각 외에 청각과 후각, 촉각, 미각 등 거의 모든 감각을 사용하여 대상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표현해냈다. 구체적인 생활 현장에서 벌어지는 삶의 면면들을 그려낸 시들은 풍속을 시로 재현해냄으로써 풍속사적인 의의를 담고 있기도 하다. 백석의 시 중에서 1인칭 화자의 주관적 독백을 표출하는 전형적인 서정시들은 특별한 수사나 기교 없이 평명한 언어로써 차분하게 내면을 성찰하고 있다.</div><div><br>[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백석(白石))]</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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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01:20: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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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22 조용호</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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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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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01:20: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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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16윤동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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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신경림은 시골에서 살았지만 농촌의 그만그만한 집안은 아니었다. 한학을 한 할아버지의 형제들은 모두 개화주의자로 일찍이 한글 전용과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으며 후손 중에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시인의 아버지는 면 서기와 농협 서기로 일했는데 술과 친구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독립운동에 비밀자금을 지원하던 명문가 출신으로 한학에 밝고 꼼꼼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당숙이 하나 있었는데 일자무식이었으나 악단의 단장을 맡고 연극과 소리, 피리 불기 등 예능에 재주가 많은 이였다. 신경림은 어릴 적에 이 당숙과 즐겨 어울린다.</div><div>​<br><br>1943년 신경림은 노은국민학교에 입학한다. 4학년 때 그는 당숙과 어른들의 얘기 속에 낙원의 이미지로 나오곤 하던 목계에 가게 된다. 그는 이때 본 목계의 풍경을 공책 한 귀퉁이에 글로 남기는데, 이것이 선생의 눈에 띄면서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 뒤 도에서 시행한 글짓기 대회에서 자신은 물론 전교생과 교사들까지 모두 그의 장원을 따 놓은 당상으로 여기고 있다가 기대와는 달리 보기 좋게 낙방한 기억은 그에게 오래 상처로 남는다.</div><div>​<br><br>1948년 충주사범병설중학교에 입학해 정춘용 선생을 만난 것은 그의 문학 인생에 커다란 행운으로 작용한다. 담임이자 문예반 지도교사이던 정춘용은 일찍이 신경림의 시재(詩才)를 알아보고 격려와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정춘용 선생의 권유로 그는 나중에 졸업만 하면 취업이 보장되는 사범학교를 그만두고 충주고등학교에 들어간다. 그가 사범학교를 그만둔 더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이 전교에서 풍금을 칠 줄 모르는 단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범학교 학생이 풍금을 칠 줄 모른다는 것은 결격 사유에 들었다.</div><div>​<br><br>중학교 시절 신경림은 집안에 굴러다니던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55816&amp;ref=y">이광수</a>,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55817&amp;ref=y">김동인</a>, 현덕,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55825&amp;ref=y">이기영</a>, 김내성 등의 문학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댄다. 한국전쟁은 그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터진다. 피난살이를 하던 그의 가족은 9·28수복 뒤 곧바로 집을 찾았다가 낭패에 빠지기도 한다. 1·4후퇴 때 다시 피난을 간 그는 미군 하우스 보이로 몇 달을 지낸 끝에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전란 중에 시인의 집안은 좌익과 우익의 틈바구니에서 해를 입고 풍비박산의 비운을 겪는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집안에서 운영하던 광산은 폐쇄되고,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당숙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div><div>​</div><div>9·28수복 후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미처 후퇴하지 못한 인민군 패잔병을 피해 또 한 번 몸을 숨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버지와 나는 광산 가까운 산 속에 숨어 며칠을 지냈다.<br>인민군 패잔병이 거의 도망쳤을 것으로 판단되는 어느 날, 한 대의 지프차가 광산에 들이닥쳤다. 태극기를 꽂은 헌병차였다. …… 몇 갱구를 뒤진 헌병 소위는 굴 속에 숨어 있던 광부 셋을 끌고 나왔다. 금을 찾아내지 못한 그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이 빨갱이들이 금을 가지고 도망치려 했다.”고 여럿 앞에서 이들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 헌병 소위는 더욱 약이 오른 듯했다. 마침내 참다못해 권총을 꺼내 셋 중의 하나를 쏘았다. 또 하나를 쏘았다.<br>― 신경림, 「내 시의 뒷이야기」,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전예원, 1983)</div><div>​</div><div>사람을 죽이는 충격적 장면을 목격한 뒤 시인은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리며, 뒷날 만일 글을 쓰게 된다면 제일 먼저 광산에 관한 글을 쓰리라 다짐한다. 이 결심은 실제로 「폐광」이라는 시를 낳게 한다.<br><br>고등학교에 들어간 시인은 학업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한 절씩 남한강가를 배회하는가 하면 국어 시험지를 백지로 내는 등 문제 학생이라는 딱지가 붙을 지경이 된다. 그러나 당시 국어교사이던 유촌 선생은 처벌 대신 시 다섯 편을 써오라는 과제를 내리는데, 이 과제물을 매개로 신경림은 뒷날 평론가가 되는 유종호와 처음 만나게 된다. 바로 유촌 선생의 아들이며 고등학교 선배인 유종호가 신경림이 낸 시를 읽고 그를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맺어진 인연은 나중까지 이어져 문단에서 유종호는 시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br><br>신경림은 학과 공부보다 책읽기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데 3학년 때 도스토옙스키 전집 열 권을 독파하고, 투르게네프의 소설과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55823&amp;ref=y">백석</a>,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55828&amp;ref=y">임화</a>,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55834&amp;ref=y">이용악</a>,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55832&amp;ref=y">오장환</a>,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55829&amp;ref=y">정지용</a>,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55833&amp;ref=y">윤동주</a>, 그리고 청록파의 시집을 밤새워 읽곤 한다. 이 가운데 그의 마음을 특히 사로잡은 것은 백석과 정지용의 시로, 특히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柳洞朴時逢方)」을 읽고는 책을 떨어뜨릴 정도로 감동하며 “나중에 내가 시를 쓰면 백석 같은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는다. 임화, 이용악, 백석의 시에서 그는 쉽고 간결한 시적 구문, 서사적 맥락, 묘사의 사실성을 배우고 익혀 뒷날 자기 시의 능기로 삼는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백석의 시집 『사슴』을 읽었을 때의 감동은 매우 커서 며칠 동안 그는 마음을 가누지 못한다.</div><div>​</div><div>나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고, 얼마 동안은 매일처럼 그 시집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다방에서고 강의실에서고 꺼내 읽었다. 한동안 나는 『사슴』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고 말한대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br>― 신경림, 「내 인생의 책」, &lt;동아일보&gt;(1999. 4. 30.)</div><div>그가 고교 시절 교지에 발표한 「이형기론」은 문예반 학생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문예반 소속이 아니어서 더욱 화제가 된다.<br><br>1955년 신경림은 동국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한다. 유종호와 함께 하숙한 그는 독서회에 나가면서 『공산당 선언』 등의 좌익 책자를 구해 읽는다. 그 사이 집안 형편은 더욱 기울어 그는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하며 어렵게 서울 생활을 유지한다. 1956년 신경림은 이한직의 추천으로 진보적 성향의 문예지 《문학예술》에 「갈대」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다. 이즈음 그는 금서를 읽던 친구가 진보당 사건으로 검거되는 일을 겪는다. 그는 이 일로 말미암은 충격과, 평소 품고 있던 문단에 대한 불신이 겹쳐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낙향한다.<br><br>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까지 신경림은 평창·영월·문경·춘천 등지를 떠돌며 광부·농부·장사꾼·인부·강사 등으로 지낸다. 하루는 술자리에서 정권을 비난하는 말을 했다가 붙잡혀 가서 29일 만에 풀려나기도 한다. 이 시기에 그는 시와 점점 멀어지면서 사회·과학 서적은 더러 봐도 문학 서적은 읽지 않으며, 소중히 간직해온 시집과 문학잡지마저 몽땅 버리기도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서 비롯된 무력감 내지 절망감, 그리고 동료 시인들에 대한 불타는 듯한 질투심이 그를 이런 식으로 흐르게 한다.</div><div>이때 내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이 증오심뿐이었다. 이 증오심만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을 미워했다. 잘사는 사람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학식 있는 사람을 미워했다. 가난한 사람을 미워하고 무지한 사람을 미워했다. 더욱 미워한 것은 시인들이었다. 나는 이들의 성실성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얘기는 전부가 거짓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것이 다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로서 이들에 대하여 갖는 질투심에 연유함은 물론이었다.<br>― 신경림, 「내 인생의 책」, &lt;동아일보&gt;(1999. 4. 30.)</div><div>짧지 않은 이 방황기에 신경림은 평소 존경하던 정치가 조봉암의 사형 소식을 접하고는,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치밀어 오르는 울분과 쓸쓸함을 속으로 삭인다. 죽산 조봉암은 사회주의 노선에 입각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뒤에는 공산당과 결별하고 제헌국회의원에 이어 농림부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혁신정당인 진보당을 꾸려 1956년 5월의 제3대 대통령 선거 때 후보로 나선 조봉암은 남북총선거에 의한 평화통일안을 내놓기도 한다. 조봉암은 이승만 정권의 과녁이 되어 이윽고 ‘진보당 사건’에 휘말린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엮인 조봉암은 1959년 2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고 같은 해 7월 31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br><br>시인은 뒤늦게 정미소 뒷방에서 신문을 뒤적이다가 사형집행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시인은 더욱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다. 시인은 시 쓰기며 사회활동을 작파해버리고 산골을 돌며 약초를 구하는 이들의 길 안내를 맡아 충청북도 북부와 강원도 남서부 일대를 떠돈다. 이때 가난하고 세상에 대한 복수심과 체념으로 일그러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혼자 삶의 속내를 짚어보곤 하는데, 시인은 뒷날 이런 기억을 「눈길」, 「그날」 등의 시편에 담아낸다.<br><br>1965년 신경림은 충주의 한 사설학원에서 영어 강사 노릇을 하며 영어로 된 『공산당 선언』의 문장을 가르치는 위험한 행동을 하는데, 어느 날 시내에서 거지 몰골로 쏘다니던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55835&amp;ref=y">김관식</a>과 만난다. 술을 걸친 김관식은 막무가내로 “네가 안 쓰면 나도 안 쓰겠다.”며 그의 꺼져가는 시심에 불씨를 지피고, 시골 생활에 적당히 지쳐 있던 그를 서울로 불러 올린다. 김관식의 강권으로 충주에서 짐을 싸들고 서울 홍은동 김관식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시인은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 쓰기에 몰두한다. 마침내 『농무』의 시편들이 태어나는 것이다.<br>시세계<br>신경림 시의 항구적 미학성은 물론 그의 독자적인 시세계를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파악하기 위하여 첫 시집 『농무』(1973)로부터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1998)까지 8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하여, 언어용법 및 시적 내용과 화자와의 관계를 중시한 내재적 분석 방법을 먼저 취하고 다음으로 형식적 측면인 형상화 방법에 대해 살펴 보았다. 신경림의 시는 다양한 양식적 탐색에 비해 비교적 완만한 변모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보여지며, 등단 초기의 시에서 부터 최근의 시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테마로 비교적 일관된 시적 지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시를 시집별로 구획하여 살펴보는 것 보다는 그의 시가 담고 있는 내용을 공통 주제별로 유형화하여 분석하는 것이 신경림 시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br>Ⅱ장에서는 신경림의 시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는 시적인 요소와 시 의식의 탐색을 위해 그의 전기적 사실과 씨론 및 시관, 그리고 그가 등단한 이래 공백기를 거친 후 시작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시킨 1970년대 시단의 흐름속에서 그의 시가 속한 현실주의 시의 주류를 살펴보았다.<br>먼저, 신경림의 생애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시인 신경림의 삶의 진실은 곧 그의 시적 진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신경림의 시는 그의 체험적 삶과 분리해서는 온전하게 접근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다른 모든 예술적 성과물이 다 그러하기는 하지만 특히 신경림의 시는 그의 체험과 직접적인 항수관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 자신도 이점을 시인하면서 그의 시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진실한 삶을 반영'하고자 노력하는 데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br>다음으로, 신경림의 시론 또는 문학관을 보면 문학은 민중의 삶을 바탕으로 한 민중문학의 형식을 밟아야 바람직하고 올바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경림은 그가 내세운 문학관을 그 나름대로 실천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자신의 시관에 비추어 시창작에 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론과 실제의 형을 추구한 작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br>끝으로, 우리 시사에서 현실참여 계열의 시들은 흔히 리얼리즘 정신과 현실인식에의 지나친 집착으로 말미암아 시적 미학을 희생시켜버리는 결과를 빚어내곤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70년대에 들어 그러한 시들은 신경림을 매개로 하여 자신들의 방법론을 반성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서정성이야말로 시를 시답게 만들어 주는 근원적인 힘이며 결정적인 관건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시대현실에 충실할 때 우리 현대시의 영역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신경림의 시는 이른바 시대정신에 걸맞는 산문정신과 미학의 조화를 잘 성취해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70년대 신경림의 서정적 현실주의 시는 우리시의 지평을 새롭게 확대하였으며, 80년대 이후의 시적 모색에 한 방향성을 제시하였다는 의미론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br>Ⅲ장에서는 신경림의 시세계에 대한 주제론적 고찰펄서 다양한 테마를 통해 구현하고 있는 시의식을 그 주제별로 유형화하여 분석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신경림의 시적 탐색이 민중의 현실문제에만 비중을 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서정에 근거하여 개별화된 자아의 고뇌와 성찰에도 천착바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시적 탐색이 단순히 어떤 한 시기에 한정되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등단 초기에서부터 현재까지 그 연속성을 지니며 꾸준히 이루어져 왔음을 알게 되었다.<br>신경림의 전 시집에 걸쳐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는 공통적인 주제를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표1＞에 제시하였으며, 그 분류 기준은 주제의식을 중심으로 개별 시 작품에 나타난 언어와 언어 용법의 관찰, 그리고 시적 진술 내용과 화자와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들 주제는 존재에 대한 탐색과 대상에 대한 직관을 통한 내면적 자아의 탐구, 전래의 풍물 또는 기행시를 통한 공동체 의식의 구현,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에 대한 연민과 애정, 시대 현실의 반영 및 저항의식, 그리고 이들을 통한 역사적 전망 및 과제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을 큰 테두리에 넣어 정리하면 다음의 세 가지 측면으로 요약할 수 있다.<br>먼저, 신경림의 개인적 서정을 읊은 시들은 인간 존재에 대한 쓸쓸함이나 고독, 지식인으로서의 고뇌, 시인이 동경하는 세계에 대한·그리움과 사랑,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기쁨, 유랑하는 고독한 예술가의 비애 등 다양한 정서를 수반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감상적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절제된 언어의 압축미를 통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경림 시의 시적 관심이 많은 부분 민중의 현실적 삶에 근거하고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 서정의 세계도 그의 시세계를 차지하고 있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신경림의 순수 서정시가 민중시인이라는 이름에 가리워져 소홀히 여겨진 바 없지 않은 것 같다. 이를 밝힌 점에 본 연구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br>다음으로, 사라져 가는 전통 풍물의 세계를 다룬 신경림의 시는 근래의 사회변화 속에서 친근한 우리의 전통적인 삶의 실상을 충실하게 드러내 주고 있어 개인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잃어가는 것에 대한 서정적 탐구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옛 공동체가 소멸되고 사회집단과 계층간의 거리가 심화되어 있는 오늘날, 집단의 동질성으로 특징지어진 공동체 의식의 구현과 공동체적 생활양식에 대한 희구 또는 동경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작업이라 여겨진다.<br>마지막으로, 신경림의 민중적 서정에서 객관적 상관물로는 주로 파행적 현대 정치사와 산업화로 인해 와해되어 가는 농촌의 삶과 농민들, 그리고 삶의 기반을 잃고 떠도는 도시 서민들의 생활이 선택된다. 그의 민중적 서정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는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절망감과 무력감, 去외된 민중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 또는 연대감 등이 짙게 깔려 있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한 시대현실을 객관적으로 그려내어 그것에의 저항의지 및 역사적 전망을 담고 있는 경우이다. 그러나 전자에 해당하는 유형의 시들은 시인이 민중들의 식의와 좌절을 피부로 체감하면서도 그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준 근본적인 원인이 부조리한 사회 구조의 모순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비판적 인식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신경림의 시 중에서 가장 중심에 놓이는 것으로 민족과 민중 현실을 바탕으로 한 역사의식을 형상화하고 있다. 문학 작품에서의 리얼리즘이 결국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창작 태도이며 역사의 진보를 전제로 하는 세계관을 지향하고 있다고 할 때, 이들 유형의 시들은 부조리한 현실의 반영과 동시에 그것에 저하하면서 미래에의 전망을 담아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신경림은 작품을 통해 현실의 시대적·역사적인 상황속에서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그는 외세나 분단과 같은 민족문제와 당대의 정치적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다양한 문학적 탐구를 통해 바람직한 민족문학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신경림의 시에서 시대현실의 반영이라는 문제에 접근할 때, 시대적 상황에 근거한 작품들은 고통받고 억눌린 민중의 실체를 좀 더 현실적인 안목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시인 자린의 역사의식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민중들의 실제 삶을 통해 터득한 역사관은 '진정한 역사 발전은 민중에 의해 이룩되어야 한다'는 민중적 역사관인 것이다.<br>Ⅳ장에서는 신경림의 시세계가 어떠한 시적 원리와 방법적 특성을 지니고 형성되어 있는지 살펴 보았다. 신경림의 시에서 주목되는 시적 형상화 방법은 민요를 비롯한 구비문학적 요소의 채용, 서사성과 서정성의 조화를 꾀한 서사적 서정양식, 토착어의 시어 수용, 중심이미지인 '울음'이미지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시의 주제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br>먼저, 신경림이 민요를 비롯한 민담의 화소·굿거리 형식·판소리 사설조·민속놀이의 노래 등 전래의 구비적 유산을 수용한 구체적인 양상을 그에 해당하는 작품을 대상으로 고찰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신경림 시세계의 독특한 면모를 살펴보았다. 신경림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구비문학적 요소의 채용방식은 시인 자신을 비롯한 민중의 현실적 삶과 정서의 형상화 방법에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신경림의 시의식과 현실인식이 구비 전통을 활용하려는 시적 의도와 결합하여 생겨난 결과로 이해된다.<br>다음으로, 신경림 시의 양식적 특성중의 하나는 서정성과 서사성이 융합된 '서사적 서정' 또는 '서정적 서사'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신경림의 서사적 서정시는 60년대 이후 기존 서정시로서는 미처 급변해 가는 서사적 현실의 복잡성을 바르게 형상하는 것이 역부족이라는 양식적 자각의 시적 성취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그의 시에 이야기적 요소의 도입을 통하여 서정 양식의 갱신을 꾀하고 있다. 이는 주관적 경험과 내적 세계의 표현을 기본적인 장르적 특성으로 삼는 서정 양식으로는 구체적인 현실을 객관적으로 표상할 수 없기 때문이며, 경험 현실의 문학적 재구성아 있어서 객관성은 핵심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민중적 서정을 담고 있는 신경림의 작품들은 대체로 시적 대상과의 거리에 기초한 지적인 방식을 통하여 객관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 객관성은 거리를 두고 현실을 바라보고 형상화하려는 리얼리즘적 정신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1920년대 이후 우리 근대시사에서 이미 하나의 전통으로 형성되어 온 이러한 참작방법을 신경림이 창조적으로 계승함으로써 독자적인 시적 성취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의 서사적 장시에서조차 서정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서정시인으로서의 면모를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그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다.<br>또한, 신경림이 즐겨 사용하는 시어를 통해 그의 시의식을 살펴 보았는데, 신경림에게 있어 시어는 농촌 공동체적 삶과 전통적인 정서의 발현이며 민중적 삶의 모습의 재구이기도 하다. 신경림은 토착어를 통해 전래의 풍속을 구체적이고 생동감있게 묘사하여 우리 전통의 숨결을 담아내고자 한다. 토착어를 시어로 사용하는 것은 시어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그 의의를 지니며, 그만큼 작품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된다. 따라서 토착어가 적절하게 사용된 시는 표현의 미와 함께 민중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고 하겠다. 우리 현대시사에서 소월과 백석이 토착어 지향이라는 독특한 시세계를 이루어 낸 바 있는데, 오늘날 신경림에 이르러 그것이 다시 재현되고 있다. 토착 언어인 순수한 우리말이 구사된 그의 작품들은 우리 모국어가 이룩해 낸 소중한 결실의 보고(賓庫)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경림의 문체는 삶의 한 단면을 간결하게 압축된 문장으로 담아내고 있어 탁월한 절제의 린을 지니고 있다. 민중의 삶을 담아내되 그 주관화 된 정서를 절제된 묘사적 언어로 걸러내는 힘은 신경림의 문체가 지닌 특징이라 할 것이다.<br>마지막으로, 신경림 시의 중심 이미지는 '울음' 이미지이다. 신경림의 시 전체 작품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울음'이미지는 작가의 주제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시적 주제 유형이 다양한 만큼 이미지를 통한 주제의 구현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신경림은 '울음'이미지를 통해 시인 개인의 서정세계를 미학적으로 담아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생활현실에 대한 연민과 애정 그리고 시대에 대한 시인 의식, 역사의석 및 미래에의 전망 등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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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01:21: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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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01권동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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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시인 백석(白石). 그는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인해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신음하던 1912년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마을에서 아버지 백시박과 어머니 이봉우 사이에서 3남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그가 태어나서 얻은&nbsp; 호적상의 이름은 백기행이다. 우리들이 백기행이란 이름은 모르지만 백석이란 이름에 오히려 익숙한 까닭은 그의 고향,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를 다니면서 그가 문학에 뜻을 두고 필명을 백석이라 개명한 뒤,1955년 북한에서 사망했을 때까지 사용했기 때문이다.백석은 13살에 오산보통학교에 입학하고 18살 무렵에는 오산고보를 졸업하여 그가 일본으로 유학가서 사학의 명문, 야오야마(靑山) 학원에서 대학생활을 하기 이전까지 오산학교 교정에서 대부분의 학창시절을 보냈다.그가 문학에 대해 남다른 소질을 보이고 자신의 인격을 다듬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와 같이 훌륭했던 스승들과 선배들의 밑에서 공부했던 이 무렵의 일이라고 생각한다.외국어에 상당한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strong>처음에는 체홉 등이 쓴 러시아의 소설과 산문들을 번역하였으나 시릉 번역하기 시작하며 번역하는일을 점차 줄이고 창작시에 전념했고 조선일보에 「定州城」이란 자신의 창작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strong><br> <strong>이때부터 탁월한 시의 재능을 보였다. </strong>&nbsp;그러던 그가 시인의 입지를 더욱 굳힌 것은 그의 첫시집 『사슴』을 발간한 뒤였다. 조선일보사에서 직장일을 하면서도 더욱 많은 시를 써서 발표했고 점점 더욱 많은 문인들과 사귀었다. 그때 그가 사귀었던 대표적인 문인들은 신석정과 함대훈 등이었다. 그 시기는 '향수'의 정지용과 '모란이 피기까지는'의&nbsp; 김영랑 시인이 첫시집을 내던 때였다.사실, 그 당시 그는 회사에서 바쁘게 보냈지만, 문학에만 전념함으로서 그에게 있어서는 그의 문학이&nbsp; 참으로 내실을 기한 매우 소중한 시기였다. 그리고 시집 '사슴' 발표이후 그는 오늘날의 표현으로 문단에서 조명받는 스타가 되어 있었다.<strong>함흥에서 2년동안 교사로 재직시에 그에게는 또 다른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기생 자야와의 만남과 사랑이었다.</strong> <br><br><strong>이때 백석의 나이가 26살이었고 그녀의 나이는 22살이었다.자야의 본명은 김영한. 그녀는 1916년에 서울에서&nbsp;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사별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다가 어머니가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그녀의 집안은 재산을 모두 날리고 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자 16살에 조선 권번(券番)에 들어가서 기생이 되었다.</strong><br> <strong>그곳에서 그녀는 정악계(正樂界)의 대가로 이름을 날리었던 하규일의 문하생이 되어 창과 가무를 배웠다고 한다. 문학에도 재능을 보였던 그녀는 기녀의 생활을 하면서도 '삼천리 문학'에 수필을 발표하여 인텔리 기생으로 불리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문인들과 사귀었다. 그러던 중, 그곳을 자주 찾던 조선어학회의 해관 신윤국의 주선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strong><br> <strong>신윤국은 1894년(고종 31년) 황해도의 연백(延白)에서 태어나서 1917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에 회원으로 미주 지역의 항일 운동에 투신한 이후, 도산 안창호가 이끌었던 흥사단(興士團) 활동했던 인물이다. 뜻한 바가 있어 귀국을 결심하고 고국으로 되돌아온 그는 1932년&nbsp; 『국사강의록(國史講義錄)』을 간행했고, 조선물산장려회(朝鮮物産奬勵會)에도 참가해 항일운동과 더불어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다시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에 가입하여 『조선어사전』 편찬 재정위원으로 활약했다.</strong><br> <strong>&nbsp; 그의 후원으로 도쿄에서 공부를 하다가 스승으로 섬기던 신윤국이 동우회사건(同友會事件)과 관련해 동우회원 181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귀국했다. 함흥경찰서에 투옥되어 잔혹한 고문을 받고 있는 그를 어떻게든 만나려고 하였으나 사상범(思想犯)의 이유로 면회가 안되자 그녀는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함흥에 눌러앉게 되었다. 그녀는 고심하던 끝에 함흥에서 기생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찿아오는 사람중에 법조인이 오면 그에게 부탁해서 신윤국을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끝까지 면회의 허락이 안되 만나지 못했지만, 영생고보 선생들의 회식자리에 나갔다가 백석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다.</strong><br> <strong>&nbsp;첫눈에 반해버린 백석은 학교에서 퇴근하면 그녀의 하숙방으로 달려가서 그녀와 밤을 지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둘사이는 사실상의 부부관계라고 해도 좋을 만큼 뜨거웠다. 자야라고 하는 이름은 백석이 그녀에 붙여준 이름이다.어느날 그녀가 서점에 들러 '당시선집(唐詩選集)을 사왔는데 이태백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를&nbsp; 읽다가 '자야(子夜)라는 아호를 지어준 것이다. 달콤했던 그들의 사랑은 그녀가 먼저 서울로 떠나면서 백석과 그녀는 서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얼마나 사랑하였을까 둘은 서로 보고 싶어&nbsp; 하루속히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어느 날, 조선축구학생연맹전 조 대표선수 인솔 교사로 발탁되어 그들을 서울로 인솔하는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그는 선수들은 여관에 투숙시킨 다음 자신은 청진동의 자야집에 가서 둘만의 사랑을 불태웠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학교서는 그에게 책임을 물어 사임을 강요했고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백석은 사표를 제출하고 상경했다. 그는 결국 청진동 그녀의 집에서 살림을 차리고 동거에 들어갔다. 다시 지금의 서울인 경성으로 되돌아와 조선일보사에 재입사했다. 그는 거기서 조선일보 계열사인 「여성」誌의 편집일을 맡았는데 이는 예전에 했던 일이고 문학에 관련된 일이라서 모든 일이 익숙했다. 그들은 마치 부부처럼 생활하며 서로가 없으면 하루라도 못살 것첨럼 행복하게 사는 듯했다. 그러나, 백석의 부모는 아들이 기생과 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서로 헤어지게 만들려고 아들에게 다른 여자와 결혼토록 강요했다. 부모의 강요에 못이겨 그는 고향으로가서 정혼녀와 혼인했다. 마지못해 혼인은 했지만 백석은 그녀와 첫날밤도 치르지 않은 채 도망치듯 고향집을 빠져나와 자야의 곁으로 돌아갔다.그해 말에 느닷없이 다시 회사를 그만두고 이번에는 북만주의 신경, 오늘날의 長春(장춘)이란 곳으로 홀연이 떠나갔다. 신경으로 떠나갈 때 그녀에게 함께 가서 살자고 하였으나&nbsp; 자신이 백석의 장래를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에 괴롭지만 백석을 혼자 보내게&nbsp; 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보낸다는 유행가의 가사처럼 서로 헤어지게&nbsp; 되었는데 그들간의 사랑은 아쉽게도 그렇게 끝이 났다. 시인 백석과 그녀가&nbsp; 격였을 이별의 고통이 짐작된다.</strong><br> <strong>&nbsp;"그런데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이별이 될 줄 몰랐다"고 1995년 출간한 ‘내 사랑 백석’(문학동네)에서 그렇게 회고했다.</strong><br> <strong>&nbsp;백석이 그녀와의 이별을 아쉬워해 그의 그런 심경을 담아 쓴 시가 바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다.</strong><br><br><br>&nbsp;<br><br>쓰는 작품마다&nbsp; 고향의 지명이나 이웃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고향인 평안남도 정주를 사투리를 넣어 향토색이 짙은 서정시를 많이 썼다<br> 고향의식의 회복, 이를 통한 제국주의 문화의 극복, 전통 문화유산에 대한 따뜻한 긍정, 백석 특유의 방언주의와 북방정서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백석의 시는 우선 문체상의 개성이 다른 시인들에 비해 매우 뚜렷하다. 그가 즐겨 쓰고 있는 방법들은 대개 회고체, 방언체, 구어체, 의고체, 연결체, 만연체, 아동 어투의 독백체 등이며, 이는 민중적 정서를 농도짙게 풍겨나게 하는 기대를 갖고서 구사된다. 시인 자신의 유소년 시절의 체험과 고향 정서로써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방법들이 어김없이 회고체를 채택하게 하는 것이며, 시인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지역의 방언이 그의 시작품의 방언적 토대가 되고 있다. 특히 구개음화가 되지 않은 구어체를 그대로 표기함으로써 생생한 현장감을 드높이고 있다. '금덤판,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 녕감, 니차떡, 석박디, 데석님, 디운구신, 녀귀' 따위가 그 사례이다. 더불어 작품의 서사적 구조로 독자들을 이끌어 들이는 하나의 장치로써 연결형이 구사되고 있는 듯하다. ∼고, ∼며, ∼는데, ∼도 등이 가장 빈도수가 높은 연결형 어미와 조사들이다. 백석의 시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표기형태는 '슳븐' '얹헜다' 등의 분철(分綴)과 '울ㄴ다' '알ㄴ다' '달ㄴ' 등에서 보여주는 ㄹ과 ㄴ의 자음겹침 형태이다. 이는 작중 화자가 사투리로 직접 말하는 듯한 생동감을 드높이기 위해 시도하는 형태로 여겨진다. 이러한 표기법들은 정서법의 체계가 제대로 갖추어 있지 못한 시기에서 의고적 분위기를 고조시키려는 시인 자신의 의도와 배려가 강력히 담겨 있는 부분이다.&nbsp;<br><br> 백석의 시는 형태면에서도 독특한 변별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시가 대체로 서사성을 담보하고 있는 사례가 많으므로 담시, 서술시, 이야기시의 형태로 자연스럽게 구체화된다. 그러므로 그 외적 양식이 줄글 형태의 산문적 성격으로 구현되는 것은 당연하다. 띄어쓰기도 시작품의 내용이나 분위기에 따라서 낭송하기에 편리하도록 한 차례의 낭송호흡에 필요한 일정한 어절을 서로 통합하여 띄어쓰기 규칙성을 일부러 무시하고 있다. 백석 시의 원문을 주의해서 지켜보면 이런 점들이 당시 정서법 체계의 무질서가 아니라 시인 자신의 세심한 배려에 기인된 것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연(聯)에 관한 부분에서도 아예 연구분이 없는 비연시 형태와 분명하게 연 구분을 획정하고 있는 연시 형태가 거의 반반씩 균형을 이룬다. 비연시 형태에서는 시「비」의 경우처럼 단 2행으로 전체 형태가 완결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청시(靑枾)」「산비」처럼 3행 형태도 있다. 그런가 하면 4행형과 5행형 이상도 다수 있다. 연시 형태는 시「초동일(初冬日)」처럼 특이한 2연형이 있고, 기타 3연형에서 5연형 이상까지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으나 이 가운데 단연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3연형이다. 줄글 형태는 행구분과 연구분을 모두 벗어난 산문시의 형태인데 백석은 이러한 형태도 더러 구사하고 있다. 백석의 시를 곰곰히 읽다 보면 그의 시가 조선 후기의 서정적 분위기가 감도는 사설시조의 형태를 방불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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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04:16: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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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2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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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갈대&nbsp;</div><div>&nbsp;</div><div>신경림&nbsp;</div><div>&nbsp;</div><div>&nbsp;</div><div>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div><div>조용히 울고 있었다.</div><div>&nbsp;</div><div>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div><div>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div><div>&nbsp;</div><div>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div><div>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div><div>까맣게 몰랐다.</div><div>&nbsp;</div><div>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div><div>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div><div>그는 몰랐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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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1 02:36: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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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19이승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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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strong>​</strong></div><div><strong>​</strong></div><div><strong>​</strong></div><div><strong>&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신경림 / 시인&nbsp;</strong></div><div><strong>​</strong></div><div><strong>​</strong></div><div><strong>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strong></div><div><strong>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strong></div><div><strong>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strong></div><div><strong>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strong></div><div><strong>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strong></div><div><strong>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strong></div><div><strong>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strong></div><div><strong>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strong></div><div><strong>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strong></div><div><strong>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strong></div><div><strong>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strong></div><div><strong>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담 툇마루</strong></div><div><strong>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지로 변해</strong></div><div><strong>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strong></div><div><strong>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strong></div><div><strong>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strong></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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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1 02:37: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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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1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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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936년 4월 6일 <a href="https://namu.wiki/w/%EC%B6%A9%EC%B2%AD%EB%B6%81%EB%8F%84">충청북도</a> 충주군(현 <a href="https://namu.wiki/w/%EC%B6%A9%EC%A3%BC%EC%8B%9C">충주시</a>) 노은면 연하리 상입장에서 면서기를 지낸 아버지 신태하(申泰夏, 1914. 4. 17 ~ 1976. 7. 26)와 어머니 <a href="https://namu.wiki/w/%EC%97%B0(%EC%84%B1%EC%94%A8)">곡산 연씨</a>(谷山 延氏) 연인숙(延仁淑, 1912. 12. 19 ~ 2001. 8. 13)<a href="https://namu.wiki/w/%EC%8B%A0%EA%B2%BD%EB%A6%BC#fn-5">[5]</a> 사이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노은초등학교와 충주사범학교병설중학교, <a href="https://namu.wiki/w/%EC%B6%A9%EC%A3%BC%EA%B3%A0%EB%93%B1%ED%95%99%EA%B5%90">충주고등학교</a>, <a href="https://namu.wiki/w/%EB%8F%99%EA%B5%AD%EB%8C%80%ED%95%99%EA%B5%90">동국대학교</a> <a href="https://namu.wiki/w/%EC%98%81%EC%96%B4%EC%98%81%EB%AC%B8%ED%95%99%EA%B3%BC">영어영문학과</a>를 졸업했다.<br><br>1955년에 등단하여 '낮달', '갈대', '석상'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br><br>데뷔한 이래로 10여년 동안 시를 쓰지 않았으나, 1965년 겨울에 동료 시인이자 절친이었던 <a href="https://namu.wiki/w/%EA%B9%80%EA%B4%80%EC%8B%9D">김관식</a>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면서 다시 시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한동안 생활 형편이 어려워 동네 학원에서 영어 강사 일을 하면서 끼니를 이어야 할 지경이었다고도 한다.<br><br>이후에는 '원격지', '산읍기행', '시제', '농무' 등의 시를 발표하였으며 시학(詩學) 해설서인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를 출간하며 이미 작고한 국내 시인들과 생존해 있는 시인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br><br>1973년 만해문학상, 1981년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하였다.<br><br>이후 <a href="https://namu.wiki/w/%EB%8F%99%EA%B5%AD%EB%8C%80%ED%95%99%EA%B5%90">동국대학교</a> 석좌교수에 부임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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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1 02:37: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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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1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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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우울하다. 암울하다. 어둡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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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1 02:40: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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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70년대 농촌의 현실과 관련된 작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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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삼포가는 길</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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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1 02:42: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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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25 황도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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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lt;시제(時祭)&gt;<br>20년이 지나도 고향은<br>달라진 것이 없다 가난 같은<br>연기가 마을을 감고<br>그 속에서 개가 짖고<br>아이들이 운다 그리고 그들은<br>내게 외쳐 댄다<br>말하라 말하라 말하라<br>아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nbsp;<br><br><br>시대 상황 : 양심의 외침을 외면하고, 침묵하지 않을 수 없던 시대였다. 많은 죽음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농촌 사람들이 많은 좌절과 절망을 느꼈던 시대이다.<br><br></div><div><br><br></div><div>시대 상황 :&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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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1 02:43: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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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11 배재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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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당시는 일제에 의한 산미증산 계획이 본격화 되었던 시기이다. 일본의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식량이 부족하게 되자 일제는 조선 농업을 쌀 단일 품종 위주로 재편한다. 이런 단일 품종 재배는 생산량을 증가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황에 취약하게 된다. 1930년대 초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일본 경제에 예속된 한국 경제 특히 농촌은 타격을 받게 된다. 식민지 시대 초반에 조선의 봉건적 토지 소유는 지주-소작 관계로 재편되고 고율의 세금과 소작료는 농민의 어깨 위에 전가된다. 게다가 고리대자본에 의해 농촌의 파괴는 더욱 심화된다. 일제에 순응하는 일부 농민에게는 기회였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농민은 몰락하고 만주 이주를 계획하고 그 중 일부는 실행에 옮긴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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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1 02:43: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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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04 김승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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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strong>북한</strong>의 작가. <a href="https://namu.wiki/w/%EC%9D%BC%EC%A0%9C%EA%B0%95%EC%A0%90%EA%B8%B0">일제강점기</a>에 태어나 청년기를 보낸 <a href="https://namu.wiki/w/%EC%8B%9C%EC%9D%B8(%EB%AC%B8%ED%95%99)">시인</a>으로 <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일본</a> <a href="https://namu.wiki/w/%EC%95%84%EC%98%A4%EC%95%BC%EB%A7%88%EA%B0%80%EC%BF%A0%EC%9D%B8%EB%8C%80%ED%95%99">아오야마가쿠인대학</a>에서 유학했다.<br><br><a href="https://namu.wiki/w/1930%EB%85%84">1930년</a>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며 등단하였으며, <a href="https://namu.wiki/w/1935%EB%85%84">1935년</a> 시 『정주성』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단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a href="https://namu.wiki/w/1936%EB%85%84">1936년</a> 첫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다. 해방 이후 고향인 이북에서 문예 활동에 전념했으나, '사상 이외 문학성도 중시해야 한다'는 그의 논조로 인해 1960년대 즈음 <a href="https://namu.wiki/w/%EB%B6%81%ED%95%9C">북한</a> 문단에서 숙청당했다. 이후 <a href="https://namu.wiki/w/%EB%9F%89%EA%B0%95%EB%8F%84">량강도</a> <a href="https://namu.wiki/w/%EC%82%BC%EC%88%98%EA%B5%B0">삼수군</a>의 한 협동농장에서 농부로 일하면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과외 지도하며 여생을 보냈지만, 문단에는 복귀하지 못하고 199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br><br><a href="https://namu.wiki/w/%EB%B3%B8%EB%AA%85">본명</a>은 백기행(白夔行)<a href="https://namu.wiki/w/%EB%B0%B1%EC%84%9D(%EC%8B%9C%EC%9D%B8)#fn-5">[5]</a>, <a href="https://namu.wiki/w/%ED%95%84%EB%AA%85">필명</a>은 백석(白石, 白奭)인데 주로 '白石'으로 활동했다. 일본의 시인 <a href="https://namu.wiki/w/%EC%9D%B4%EC%8B%9C%EC%B9%B4%EC%99%80%20%EB%8B%A4%EC%BF%A0%EB%B3%B4%EC%BF%A0">이시카와 다쿠보쿠</a>(石川啄木)의 시를 너무나도 좋아하여 그의 이름의 '석'을 빼와서 썼다고 한다.<br><br>과거 <a href="https://namu.wiki/w/%ED%95%9C%EA%B5%AD">한국</a>에서는 <a href="https://namu.wiki/w/%EC%9B%94%EB%B6%81">월북</a> 작가라는 인식이 강해 언급을 피하는 편이었다.<a href="https://namu.wiki/w/%EB%B0%B1%EC%84%9D(%EC%8B%9C%EC%9D%B8)#fn-6">[6]</a> 그러나 월북 문인의 해방 이전 작품에 대한 공식 해금 조치가 이루어진 1988년부터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토속적인 우리말로 민중들의 삶을 노래한 뛰어난 시인으로, 지금도 많은 시인들이 인정하고 존경하는 명실상부한 현대시 최고의 명창</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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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1 02:43: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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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12석지현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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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조선은 이 연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일제의 모진 탄압과 민족말살정책으로 수난을 받게 되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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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1 02:44: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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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14 유도겸</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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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일제의 탄압-&gt;암울하고 어두운 현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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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1 02:47: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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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26 김지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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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970년대는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대였고, 소설문학에도 그런 산업화에 따른 불안과 위기의식이 민감하게 반영된 시대였다.<br>작가의 상황 설정과 인물 구성, 풍경 묘사를 비롯하여 사건 전개의 방식, 농민들의 대화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우리 고유의 토착어.격언.속담.풍자.익살 등이 이 소설의 지문과 대화의 곳곳에서 적절하게 섞여있음 알 수 있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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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1 02:49: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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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815</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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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삶:1955년에 등단하여 '낮달', '갈대', '석상'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br><br>데뷔한 이래로 10여년 동안 시를 쓰지 않았으나, 1965년 겨울에 동료 시인이자 절친이었던 <a href="https://namu.wiki/w/%EA%B9%80%EA%B4%80%EC%8B%9D">김관식</a>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면서 다시 시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한동안 생활 형편이 어려워 동네 학원에서 영어 강사 일을 하면서 끼니를 이어야 할 지경이었다고도 한다.<br><br>이후에는 '원격지', '산읍기행', '시제', '농무' 등의 시를 발표하였으며 시학(詩學) 해설서인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를 출간하며 이미 작고한 국내 시인들과 생존해 있는 시인들을 만나기도 하였다.<br>1973년 만해문학상, 1981년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하였다.<br>신경림의 시 "목계장터"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불안정해진 농촌사회에서 방황하는 농민들의 삶을 다룬 시다.<br><br>. 1970년대 초, 산업화의 급속적인 진행으로 퇴색해 가는 농촌 사회의 민중의 삶의 힘겨움, 즉 갈등과 회한을 통해 '떠돌이 민중의 상실감과 애환'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br><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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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1 02:53: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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