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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 지역의 역사인물 조사하기 by 이정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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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1. 내 이름:
2. 역사인물 이름:
3. 태어난 시기: 
4. 태어난 장소:
5. 역사인물이 한 일: 
6. 느낀점:
7. 관련사진:</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1-04-28 04:56:01 UTC</pubDate>
      <lastBuildDate>2026-02-21 23:01:42 UTC</lastBuild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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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오하은</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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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최익현<br>3. 1833년 12월5일&nbsp;<br>4.경기포천<br>5.조선후기의&nbsp; 지사 흥선 대원군 과의 갈등이 깊었고 일본과 문호를 개방하는 협상을 반대 했고 독립운동가로 써 일본으로 부터 우리 나라를 지키려 힘썼다. <br>6.우리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까지바치는 애국 정신이 대단하다.</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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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0:45: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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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설재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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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조헌<br>3.1552년11월 11일(음력)<br>4.조선 한성부 인달방 도정궁(조선)<br>5.(직업)저술가(작가)<br><br>6.'조헌'이라는 사람이 심지어 누군 지도 몰랐지만이번으로 많이 알아본것 같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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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0:45: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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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임가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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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 유관순열사<br>3.1902년12월16일<br>4. 천안시<br>5. 1916년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감리회 선교인 사애리시 부인(사부인)의 추천으로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장학생으로 편입하고, 1919년에 이화학당 고등부에 진학하였다. 3월1일3.1운동에 참여하고 3월5일의 만세 시위에도 참여 하였다. 총독부의 휴교령으로 천안으로 내려와 후속 만세 시위에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되었다. 일제의 교도소 내1920년9월28일 날에 사망했다ㅠㅠㅠㅠㅠ<br>6. 우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 유관순열사를 존경 해야 할거 같습니다.&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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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0:50: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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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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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 조아인&nbsp;<br>2. 한훈<br>3.1890. 2. 27.<br>4.충청남도 청양&nbsp;<br>5. 한말의 독립운동가.&nbsp;<br>무장항일운동단체인 광복회를 조직하여 일본헌병 분견대를 기습, 사살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nbsp;<br>조선독립군정서에 가입했으며 미국의원단의 내한을 기회로 총독 사이토 마코토 등 일본고관을 암살하기 위하여 결사대 조직,모의 중 붙잡혀 복역하였다.<br>6. 나라를 위해 목숨바쳐 독립운동을 하신 것을 알게됬다. 그런데 많이 힘드셨을 것 같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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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0:50: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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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김지우</title>
         <author>bluesky7872</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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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정충신<br>3.1576~1636<br>4.현 전남 나주시<br>5.천민으로 태어나 조선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임진왜란에서 살아남으며 충무공의 칭호를 받고 인생을 역전한 인물이다.어린 시절까지는 천민으로 자라왔기 때문에 글을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br>6.이 분을&nbsp;조사하기 전에는 이 분을 전혀 알지 못했는데 이 조사를 하면서 이 분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것 같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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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0:51: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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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최아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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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윤봉길<br>3.1908.6.21~1932.12.19<br>4.예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br>5.그는 1982년에 부흥원을 조직하고 또 1929년에는 월진회를 조직하는 등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으나, 이 같은 활동으로 인하여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자 1930년 2월 만주로 망명한 후 다시 상하이로 옮겨 갔습니다. 젊은 윤봉길은 1931년에 상해에서 세탁소회 계원과 모직공장직공 등으로 전전하며 백범 김구선생님이 주도하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게 됩니다.<br>1932년 백범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4월29일, 일왕의생일인 천장철 및 상해사변 전승기념식이 열리는 훙코우공원에 들어가 폭탄을 던져 일본의 상하이 파견군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하고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을 즉사시키고 일본 제3함대 사령관인 노무라와 2ㅔ9사단장 우에다 그리고 주중 일본공사 시게마쓰 등은 중상을 입혔습니다.<br>6.예산에 이런 역사인물이 있는줄 몰랐다. 또 윤봉길이 위대한 분 이라는 걸 알았다.<br>7.</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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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0:51: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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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 윤예슬</title>
         <author>yyun88121</author>
         <link>https://padlet.com/jh7942/j4a2gpmzg7n0wvi0/wish/1476387311</link>
         <description><![CDATA[<div>2. 성삼문 <br>3. 1418년 ~ 1456년 (세종대왕~단종)<br>4. 현재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br>&nbsp;외가에서 출생했다.<br>5. 집현전 시절 성삼문은 세종의 명을 받고 훈민정음 창제를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1443년(세종 25) 세종이 훈민정음 28자를 만들 때, <a href="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A0%95%EC%9D%B8%EC%A7%80">정인지</a>, 신숙주, <a href="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B5%9C%ED%95%AD">최항</a>, 박팽년, 이개 등과 더불어 성삼문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br>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성삼문은 어린 임금을 보필하였다. 그러나 1453년(단종 원년) 왕위를 탐내던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고명대신 <a href="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A%B9%80%EC%A2%85%EC%84%9C">김종서</a>를 죽이고 아울러 집현전 신하들에게는 <a href="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C%A0%95%EB%82%9C%EA%B3%B5%EC%8B%A0">정난공신</a>의 칭호를 내려 주었다. 공신의 칭호를 성삼문은 부끄럽게 여기고 이를 사양하는 상소를 올렸다.&nbsp;</div><div>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잃고 다시 아버지마저 잃은 어린 단종은 위협에 못 이겨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당시 단종의 옥새를 수양대군에게 전달하는 임무는 예방승지로 있었던 성삼문이 맡았다. 양위식을 담당한 성삼문은 옥새를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세조가 울고 있는 그를 한참 동안이나 차갑게 노려보았다.</div><div>이런 상황에서 집현전 출신의 젊은 관료들과 단종 및 문종의 처가 식구들을 중심으로 단종 복위 움직임이 조심스럽게 이뤄지고 있었다.&nbsp;</div><div>“성삼문과 박팽년이 말하기를 6월 1일 연회장의 운검(雲劒)으로 성승과 유응부가 임명되었다. 이날 연회가 시작되면 바로 거사하자. 우선 성문을 닫고 세조와 그 오른팔들을 죽이면, 상왕을 복위하기는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을 것이다.”</div><div>그러나 이들의 거사는 채 이루기도 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성삼문과 함께 단종복위를 도모하던 <a href="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amp;where=kdic&amp;ie=utf8&amp;query=%EA%B9%80%EC%A7%88">김질</a>이 단종 복위계획 사실을 누설해 버린 것이다. 김질을 통해 진상을 파악한 세조는 성삼문을 불러들여 결박하였다. 성삼문의 뒤를 이어 함께 거사를 도모했던 박팽년·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박정 등이 끌려와 심문을 받았다.</div><div>성삼문의 당찬 말에 화가 치민 세조는 쇠를 달구어 다리를 뚫게 하고 팔을 자르게 했다. 극심한 고문에도 성삼문은 얼굴빛을 바꾸지 않고 “다시 달구어 오게 하라. 나으리의 형벌이 참으로 독하다.”고 태연히 말할 뿐이었다.</div><div>성삼문은 세조, 즉 수양대군을 자신의 군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녹봉으로 받은 것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였으며, 세조를 향해 나으리라는 호칭으로 군신관계가 결코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그에게 있어 세조는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불의한 인간이자 역모자일뿐이었다. 실제로도 그가 죽은 뒤에 가산을 빼앗아 보니 1455년 즉 세조 즉위년부터 받은 녹봉을 별도로 한 곳에 쌓아두고 ‘어느 달의 녹’이라고 기록해 놓았다.&nbsp;</div><div>성삼문이 한창 고문을 받고 있을 때 오랜 벗이자 동료였던 신숙주가 세조 옆에 있었다. 그를 본 성삼문이 노려보며 말했다.</div><div>“옛날에 너와 함께 집현전에 있을 때 영릉(세종의 능호)께서 원손을 안고 뜰을 거닐면서 세월이 흐른 뒤에 너희들이 이 아이를 잘 생각하라는 당부가 아직 귓전에 남았는데, 네가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div><div>호통을 들은 세조는 신숙주를 피신시켰다. 그리고 성삼문은 고문 끝에 돌아가셨다.<br>6. 성삼문의 충성이 멋지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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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0:51: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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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박준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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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성왕<br>3.삼국시대 백제의 왕<br>4.공주<br>5.무령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백제의 수도를 공주에서 부여로 옮기고, ‘남부여’라고 나라 이름을 고쳤다. 일본에 불교를 전파 하였다.<br>6.왕은 참 힘든것 같다. <br>7.</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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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0:54: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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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김민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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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한용운<br>3.1879년(고종16) 8월 29일<br>4.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번지<br>5.한용운은 1879년에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한학을 배우며 자랐고 청년 시절에는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했다.<br>동학 농민 운동이 실패로 끝난 뒤 설악산의 오세암에서 불교를 공부했고, 1905년에는 백담사에서 승려가 되었다.<br>한용운은 당시 우리나라의 불교계가 점점 침체되어 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며 불교의 개혁과 대중화에 앞장섰다. 뿐만 아니라 종교인들의 친일 행위를 강하게 비판했다.1908년에는 일본을 방문해 새로운 문물을 둘러보았으며, 1910년에 한일 강제 병합으로 나라를 빼앗긴 뒤에는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br>그는 1913년까지 중국과 만주, 시베리아 등을 돌며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독립군 부대를 방문해 격려하기도 했다.<br>1919년 3.1운동 때는 독립 선언서의 행동 강령인 ‘공약 3장’을 썼고,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했다.<br>신간회 조직에 앞장섰고, 창씨개명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으며, 조선 총독부의 탄압에 맞서 한국 불교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3·1운동 때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이고,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을 지낸 독립 운동가이자, 한국 현대 시사의 거봉으로 우뚝 솟아 있는 민족시인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 그의 작품「님의 침묵」은 “시문학 사상 가장 넓고 높으며 깊은 인간성을 표현한 절실한 시”라는 호평 속에 한국인 정서의 정화(精華)를 보여주었다.<br>6.우리나라를 위해 대단한 일을 하신 분인것 같고 훌륭한 분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br>7.</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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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0:54: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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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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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정정균<br>2무령왕<br>3 461년에 태어났다.<br>4일본에서 태어났다.<br>5백제의 제 25대 왕으로 한강유역을 고구려에 빠앗긴뒤 혼란에 빠져있던 백제를 안정시키고 문화강국의 틀을 닦은위대한 왕이다.<br>6무령왕은 자기도 백제를 빼앗겨 혼란스러울 것 같은데 백성들을 안정시켜 화를 잘다스리는 것같다.<br>7</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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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0:56: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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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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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김설아&nbsp; 2.김정희&nbsp; 3.</div>]]></description>
         <pubDate>2021-04-30 00:58: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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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7942/j4a2gpmzg7n0wvi0/wish/1476417878</link>
         <description><![CDATA[<div>ㄷ1.박소현<br>2.이종일<br>3.1858. 11. 6.<br>4.충청남도 태안<br>5.서울 출신. 일본 도쿄제국대학 공학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광복 후 미군정청 상무부 전기과장을 거친 뒤, 194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로 취임하였다.<br>[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종일)<br>6.딱히없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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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1:02: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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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 이서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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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 류방택<br>3. 1320 ~ 1402<br>4. 충남 서산시<br>5. 충청남도 서산 출신으로 경서와 천문역법(天文曆法)에 뛰어났다.<br>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대표적 천문학자로서 2000년 국내에서 발견6한 소행성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고, 2006년부터 서산시에서 '류방택 별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딴 천문기상과학관이 건립되었다.<br>6. 천문학자였던 류방택분의 대해 몰랐던걸 조사 하면서 많이 알았다.<br>7.&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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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1:07: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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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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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사진 안올려져서 따로 올려요</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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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1:17: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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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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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윤호영<br>2.김옥균<br>3.1851~1894<br>4.충남 공주시<br>5.김옥균은 스스로 일본의 근대화 실정을 시찰하기 위해 1881년<br>음력12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가들과도 접촉하여<br>그들의 정치적 동향 등을 상세히 팍학하였다<br>돌아오는 도중에<br>일본의 시모노세키에 이르렀을 때 본국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귀국하였다<br>6.김옥균같은 사람도 많지않아서 놀라웠다</div>]]></description>
         <pubDate>2021-04-30 01:20: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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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역사인물 조사하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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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김예솔<br>2.남이흥<br>3.1576년8월21일 출생(조선시대)<br>4.조선 한성부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이 충남 당진에 있음)<br>5.조선시대 남이흥 장군은 1627년 펑안병마절도사 겸 영변부사로 재직 중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30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안주성에 쳐들어온 3만 6000여 명의 후금 군대와 맞서 싸우다 미리 준비한 화약상자에 불을 붙여 적군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br>6.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진 충장공 남이흥 장군의 애국심을 본받고싶다<br>7.<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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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1:21: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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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이시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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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이시현<br>2.김좌진<br>3.1889년 12월16일 1930년 1월 24일<br>4.홍성군 갈살면 행산리<br>5.일제강점기 군인,독립운동가,민국 임시정부시대 정치인 청산리전투참전<br>6.이런 위인들을 보면 참대단하신것갔다<br>7.</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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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1:34: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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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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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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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1:35: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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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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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 신무진<br>2. 최익현선생님<br>3. 1833년12월5일 태어남 1906년11월17일 사망함<br>4. 강직한 유학자이고 선비이자 정치가.<br>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항일의병운동을 벌이시고&nbsp;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nbsp; 모았음.순창전투에서 패하고&nbsp; 일본 쓰시마섬에 유배되신후 그 곳에서 옥사하셨습니다.<br>5. 나라를 위해서 일본에 맞서 싸우시고 옥사하셔서 슬프다.<br><br></div>]]></description>
         <pubDate>2021-04-30 06:12: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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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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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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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6:21: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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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 김유준</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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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 계백<br>3.미상~660년<br>4.부여군 충화면 천당리 천등산 자락<br>5.삼국시대 백제의 황산벌 전투에 참전한 장수이다. 그는 전장에 나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릴 것을 각오 하였다.목숨을 버릴 것을 맹세한 결사대 5000명의 용맹은 연합군과 네번에 걸쳐 싸움에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br>6.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쳐서 대단하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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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30 09:13: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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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심동주 (보령)</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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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이지함&nbsp;<br>3. 1517년~1578<br>4.보령<br>5.조선 선조 때 &lt;토정비결&gt;을 저술한 조선 중기의 학자. 기인으로 자는 형백, 형중, 호는 토정, 수산이며 선조 6년 탁행으로 천거돼 포천현감을 지내다가 이듬해 사직했고 이후 아산현감으로 부임해서 걸인청을 세웠다. 지리, 음양, 술서 등에 능했으며 괴상한 행동과 기지, 예언, 술수에 대한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복서에 뛰어나다는 소문이 퍼져 1년의 신수를 봐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lt;토정비결&gt;을 지었다.&nbsp;<br>6.이자함이라느 학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음<br>7.</div><div><a href="https://100.daum.net/multimedia/122_51000014_i3.jpg">&nbsp;</a></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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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5-01 08:10: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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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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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김동권&nbsp;<br>2.김장생&nbsp;<br>3.1548년(명종 3) ~ 1631년(인조 9)<br>4. 서울<br>5. 조선의 전기의 정치가 이자 조선을 대표하는 예학자, 선조때 창릉참봉으로 관직에 입문하였고 정선현감, 호조정랑 등을 지냈다. 선조 말, 광해군 때에는 단양을 비롯 여러 지방관을 지냈으나 이후 관직을 사양하고 향리하고 향리에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김집,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등 후진을 양성했으며 저서로서는 &lt;가례집람&gt;, &lt;상례비요&gt;, &lt;근사록석의&gt;, &lt;경서변의&gt;&nbsp; 등이 전한다.<br>6. 훌륭한 인재양성에 힘썼다니 대단하신 분 같다.<br>7.&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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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5-02 04:49: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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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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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정정균<br>2심정순<br>31899~1967<br>4서산의읍내리 학돌재에서 태어났다.<br>5농사를 짓다가 26세 무렵에 음악을 시작하여 한소리,잡가,풍류를 두루 공부하고 가야금,양금,단소까지 배웠다.<br>1911년에는 일본의 축음기 회사에서 가야금 연주자로 활동하였다.1911 축음기 회사에서 춘향가,심청가,수궁가등을 수록한 음반을 냈다.<br>6심정순 선생님이 재미있는 노래들을 만드셔서 감사하다.<br>7</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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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5-02 08:52: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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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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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황준호<br>2.<strong>석오 이동녕<br>3.</strong>1869년 2월 17일~1940년 3월 13일<strong><br>4. </strong>천안시 목천읍 동리<strong><br>5.천안을 빛낸 역사적인 인물, 임시정부를 이끈 독립운동가<br>6.나는&nbsp; 이동녕&nbsp; 선생님을&nbsp; 처음에는 몰랐는데&nbsp; 검색하다가 새롭게 알게 되어 기쁘다.<br></strong><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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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5-02 10:28: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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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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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오하은<br><br>2.시인 신동엽<br><br>3.1930년 8원 18일<br><br>4.부여 동남리 294번지<br><br>5.한국의 대표적인 민족 시인 신동엽<br>&nbsp;민주 정신과 자유사상이 이어지기를 갈망하며 글을 통해당시 힘들었던 시대를 비판하고 국민들이 자유롭게 잘 살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많은 노력을 했다.<br>6.나라를 지키려는 용기와 희생 정신을 본 받고 싶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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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5-02 10:49: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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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 이재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7942/j4a2gpmzg7n0wvi0/wish/1482316444</link>
         <description><![CDATA[<div>2. 김장생<br>3. 1548년(명종3)~1631년(인조9)<br>4. 서울<br>5. 조선 중기의 정치가, 예학사상가.<br>&nbsp; &nbsp; 임진왜란 중에는 정산현감으로 있으면서 피란 온 사대부들을 구출했다.<br>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노령임에도 양호호소사의 직함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는데 앞장섰다.<br>1630년 가의대부로 임명되는 등 인조와 조정에서 출사를 요청했으나, 원종의 추숭논의 이후로는 향리에 머물면서 제자와의 강학에만 열중하면서 노년을 마쳤다.<br>6. 김장생이라는 분에 대해서 새롭게알게 되었다.<br>&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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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5-02 12:16: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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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김민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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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김수문<br>3.1506년~1568년<br>4.충남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br>5.논산이 낳은 김수문 장군은 조선 중종 때 무과에 급제했다. 1535년(중종30) 여진족이 함경도 종성을 침입하여 백성들을 납치해 갔을 때 김수문은 영달만호(永達萬戶)의 직책으로 전투에 참가해 많은 적을 사살하고 끌려갔던 조선의 백성들을 구해왔다.</div><div>김수문 장군이 용맹을 떨친 시기는 1555년 왜구들이 해적선 80여척을 거느리고 전라남도 해남군에 침략했을때 왜구들을 몰아냈다.&nbsp;<br>또 김수문 장군이 2년 7개월 동안 제주목사(1555~1557)로 재임하는 동안 해적들은 제주도에서 섬멸되었다.</div><div>김수문 장군은 1557년(명종 12) 10월, 청렴하고 매사에 조심성과 재략(才略)이 있으며 변방을 맡아 명성과 치적을 쌓은 공을 인정받아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어 떠나니 사람들은 그를 훌륭한 목민관이라 불렀다.장군은 1558년(명종 13) 지중추부사를 지냈으며 1565년(명종 23) 한성판윤에 특진되었고, 같은 해 평안도병마절도사가 되어 만주인의 침입을 격퇴했다. 이후에도 두 차례나 평안부사로 보직되어 북변 방위에 많은 공을 세웠으나 전장에서 발생한 부종으로 인해 사망했다.</div><div>&nbsp;6.논산시 역사인물을 조사하면서 알게되었는데 훌륭한 분이셨다고 생각한다.<br>7.</div><div>&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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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5-02 13:13: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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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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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nbsp;1 김설아 <br><br>2&nbsp; 추사 김정희&nbsp; <br><br>3&nbsp; 출생 - 사망 | 1786년(정조 10년) ~ 1856년(철종 7년)<br><br>4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년)는 18세기 말에 태어나서 19세기 외척 세도 정치기에 활동한 조선 예원의 마지막 불꽃 같은 존재이다. 조선이 고유 문화를 꽃피운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1624655&amp;ref=y">진경시대</a>의 세계화에 성공한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진경시대의 학문 조류인 북학 사상을 본궤도에 진입시킴으로써 조선 사회의 변화 논리에 힘을 실어준 장본인이다.</div><div>그는 영조가 지극히 사랑한 화순옹주(和順翁主)와 김한신(金漢藎)의 증손자이다. 왕실의 내척(內戚)으로서 태어날 때부터 경축 분위기에 싸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신비스러운 탄생 설화도 갖고 있다. 아버지 노경(魯敬)과 어머니 기계 유씨 사이의 장남으로 24개월 만에 출생했는데, 그가 태어난 향저(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의 뒤뜰에 있는 우물물이 말라버리고 뒷산인 오석산의 원맥 팔봉산의 초목이 모두 시들었다가 그가 태어나자 샘물이 다시 솟고 초목이 생기를 되찾았다고 한다. 그가 어린 시절 서울 집 대문에 써 붙인 입춘첩의 글씨를 우연히 보게 된 재상 채제공(蔡濟恭)이 그의 아버지에게 충고했다는 일화가 있다.</div><div>“이 아이는 글씨로서 대성하겠으나 그 길로 가면 인생 행로가 몹시 험할 것이니 다른 길을 선택하게 하시오.”<br><br>천재성이 그의 인생에 빛과 그림자를 아울러 드리우고 있음을 노재상이 알아본 것이다. 그가 살다간 19세기 조선 사회는 18세기의 진경문화에서 벗어나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조선 문화의 보편성으로 흡수해야 하는 전환기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다.<br><br>5 나도 김정희선생님처럼 글씨를 잘쓰고싶다<br><br><br></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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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석윤아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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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김대건<br>3.1821년<br>4.충청남도 당진<br>5. 신부님<br>6.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이라는걸 알게 되었다<br>7.김대건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심했던 1821년 충청남도 내포 솔뫼(당진)에서 독실한 천주교의 신자인 김제준의 아들로 태어남.</div><div><br>증조할아버지는 50세 때 천주교에 입교하였는데, 천주교 박해로 여러 차례 검거되어 고초를 겪다가 1718년 옥중에서 순교. 이에 김대건의 할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경기도 용인으로 이주</div><div>○ 아버지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1839년 기해박해 때 한양 서소문 밖에서 순교. 이 같은 순교자의 집안에서 자란 김대건은 1836년(헌종 2년) 프랑스 신부 모방에게 세례를 받고 신학생이 됨.</div><div><br>김대건은 최양업 · 최방제 등과 함께 마카오로 건너가 그곳에 있는 파리 외방 선교회에서 프랑스어, 라틴어, 중국어, 신학, 그리고 철학 등 새로운 학문을 수학</div><div>○ 공부를 마친 김대건은 기해박해 이후로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나라로 들어오려고 했으나 두 차례 실패 후 1845년 1월 비로소 국경을 넘어 한양에 몰래 들어옴.</div><div><br>그러나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매우 심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그해 8월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음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됨.</div><div>○ 신부가 된 김대건은 프랑스의 페레올, 다블뤼 주교와 함께 상하이를 떠나 충청남도 강경으로 몰래 숨어들어와 방방곡곡을 돌면서 비밀리에 전교 활동</div><div>○ 김대건은 이듬해 동료 선교사들이 국내로 들어올 수 있는 비밀 입국 통로를 알아보기 위해 백령도 부근을 돌아보다가 붙잡혀 한양으로 압송</div><div>○ 김대건은 몇몇 대신들의 부탁으로 옥중에서 세계 지리에 관한 책을 제작하고, 영국에서만든 세계 지도를 번역. 이후 여섯 차례에 걸쳐 심한 고문을 받다가 효수형(목을 베어 달아놓는 형)을 선고받고 신부들과 교우들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긴 뒤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div><div>○ 김대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 천주교에 대한 모진 박해를 무릅쓰고 천주교 교리와 문화를 전파하다 죽은 순교자임. 김대건 신부는 1984년 한국 가톨릭 2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에 온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우리나라 다른 순교자 102명과 함께 성인으로 시성됨.<br><br></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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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5-03 12:30: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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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김민서</title>
         <author>yyun8812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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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김수문<br>3.1506년~1568년<br>4.충남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br>5.논산이 낳은 김수문 장군은 조선 중종 때 무과에 급제했다. 1535년(중종30) 여진족이 함경도 종성을 침입하여 백성들을 납치해 갔을 때 김수문은 영달만호(永達萬戶)의 직책으로 전투에 참가해 많은 적을 사살하고 끌려갔던 조선의 백성들을 구해왔다.</div><div>김수문 장군이 용맹을 떨친 시기는 1555년 왜구들이 해적선 80여척을 거느리고 전라남도 해남군에 침략했을때 왜구들을 몰아냈다.&nbsp;<br>또 김수문 장군이 2년 7개월 동안 제주목사(1555~1557)로 재임하는 동안 해적들은 제주도에서 섬멸되었다.</div><div>김수문 장군은 1557년(명종 12) 10월, 청렴하고 매사에 조심성과 재략(才略)이 있으며 변방을 맡아 명성과 치적을 쌓은 공을 인정받아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어 떠나니 사람들은 그를 훌륭한 목민관이라 불렀다.장군은 1558년(명종 13) 지중추부사를 지냈으며 1565년(명종 23) 한성판윤에 특진되었고, 같은 해 평안도병마절도사가 되어 만주인의 침입을 격퇴했다. 이후에도 두 차례나 평안부사로 보직되어 북변 방위에 많은 공을 세웠으나 전장에서 발생한 부종으로 인해 사망했다.</div><div>&nbsp;6.논산시 역사인물을 조사하면서 알게되었는데 훌륭한 분이셨다고 생각한다.<br>7.</div><div>&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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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5-10 05:37: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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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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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정아준<br><br>2.문양목<br><br>3.알수없음<br><br>4.충청남도 서산<br><br>5.1903년 경기도 인천에서 서당교사로 재직중 1905년 을사조약 체결후 미국인의 노동자 모집에 응하며 도미, 캘리포니아 새크라맨트에 거주하며 항일만족운동을 하였다.<br><br>6.없다.....................<br><br>7.</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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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5-10 08:38: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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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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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김우찬<br>2.권율장군<br>3.1537년(중종32)~1599년(선조32)<br>4.안동<br>5.1582년(선조 1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이어 전적·감찰·예조좌랑·호조정랑·전라도도사·경성판관을 지냈다. 1591년에 재차 호조정랑이 되었다가 바로 의주목사로 발탁되었으나, 이듬해 해직되었다.</div><div>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에 제수되어 바로 임지로 떠났다. 왜병에 의해 수도가 함락된 뒤 전라도관찰사 이광(李洸)과 방어사 곽영(郭嶸)이 4만여 명의 군사를 모집할 때 광주목사로서 곽영의 휘하에서 중위장(中衛將)이 되어 서울의 수복을 위해 함께 북진했다.</div><div>이광이 수원과 용인 경내에 이르러 이곳에 진을 친 소규모의 적들을 공격하려 하자 극력 반대하면서 자중책을 말하기도 했다.</div><div>즉, 서울이 멀지 않고 대적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적은 적과의 싸움에서 도내의 병력을 모두 소모할 것이 아니라, 조강(祖江: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곳)을 건너 임진강을 막아서 서로(西路)를 튼튼히 하여 군량미를 운반할 수 있는 도로를 보장한 다음에 적의 틈을 살피면서 조정의 명을 기다리는 것이 옳겠다는 것이었다.</div><div>그러나 주장인 이광이 듣지 않고 무모한 공격을 취해 대패하고 선봉장 이시지(李詩之)·백광언(白光彦) 등 여러 장수들이 전사했다. 오직 혼자만이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광주로 퇴각해 후사를 계획했다.</div><div>한편, 남원에서 1,000여 명의 의군을 모집해 다시 북진, 금산군에서 전주로 들어오려는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의 정예 부대를 맞아 동복현감(同福縣監) 황진(黃進)과 함께 이치(梨峙: 전북 금산 근처)에서 싸웠다.</div><div>이 싸움에서 황진이 총을 맞아 사기가 저하되었으나 굴하지 않고 군사들을 독려해 왜병을 격퇴시켜 호남을 보존하였다. 그해 가을 이치싸움의 공으로 곧 전라감사에 승진하였다.</div><div>12월 도성 수복을 위해 1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북진 길에 올라 직산에 이르러 잠시 머물다가, 체찰사 정철(鄭澈)이 군량미 마련 등에 어려움이 있으니 돌아가 관내(管內)를 지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에 잠시 주저했으나 북상하라는 행재소의 전갈을 받고 북진을 계속했다.</div><div>그러나 앞서 용인에서 크게 패한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 바로 북상하는 것을 피하고, 수원독성산성(禿城山城)에 들어가 진지를 구축했다.</div><div>대병이 그곳에 와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왜병의 총사령관 우키타[宇喜多秀家]는 후방의 연락이 단절될 것을 염려한 나머지 도성에 주둔한 왜병을 풀어 삼진(三陣)을 만들고 오산 등 여러 곳에 진을 친 다음 서로 오가게 하며 독성산성의 아군을 밖으로 유인하려 했다.</div><div>그러나 성책을 굳게 해 지구전(持久戰)과 유격전을 펴가면서 그들에게 타격을 가하자 몇 날이 지난 다음 영책(營柵)을 불사르고 도성으로 물러났다. 적이 퇴각할 때 정예 기병 1,000명을 풀어 적의 퇴로를 기습해 많은 왜병을 베었다.</div><div>그 뒤 명나라 원군과 호응해 도성을 수복하기 위해 독성산성으로부터 서울 근교 서쪽 가까이로 옮기기로 하고 먼저 조방장 조경(趙儆)을 보내 마땅한 곳을 물색하도록 해 행주산성을 택했다.</div><div>조경에게 명해 2일간에 걸쳐 목책(木柵)을 완성하게 하고 이어 독성산성으로부터 군사를 옮기는 작업을 개시했다. 대군의 행렬을 위해서 독성산성에 소수의 군사만을 남겨 많은 군사가 계속 남아 있는 것 같이 위장한 뒤 불시에 행주산성으로 옮겼다.</div><div>행군 중 휘하 병 가운데 4,000명을 뽑아 전라병사 선거이(宣居怡)로 하여금 금천(衿川: 지금의 시흥)에 주둔하게 하고 도성의 적을 견제하도록 하였다.</div><div>이때 휴정의 고제(高弟) 처영(處英)이 의승병(義僧兵) 1,000명을 이끌고 당도하였으나, 행주산성에 포진한 총 병력은 수천 명에 불과했다.</div><div>그 뒤 정예병을 뽑아 도성에 보내어 도전하니 적장들은 이치싸움에서 대패한 경험이 있고, 또 독성산성에서의 치욕을 경험한 탓으로 일거에 침공해 멸하지 않는 이상 큰 위협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div><div>이리하여 도성에 모인 전군을 총출동시켜 행주산성을 공격하겠다는 결의를 제장(諸將)의 중론으로 정하고 조선 침입에서 한번도 진두에 나서본 일이 없었던 총대장 우키타를 위시해서 본진장령(本陣將領)들까지 3만의 병력으로 행주산성을 공격했다.</div><div>왜병은 7대로 나누어 계속해 맹렬한 공격을 가해 성이 함락될 위기에까지 직면했으나, 일사불란한 통솔력과 관군과 의승병이 사력을 다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div><div>대패한 적은 물러가기에 앞서 사방에 흩어져 있는 시체를 모아 불을 질렀으나, 그밖에도 유기된 시체가 200구에 달했고 타다 남은 시체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div><div>권율의 군대는 그들이 버리고 간 기치(旗幟)와 갑주(甲胄)·도창(刀槍) 등 많은 군수물을 노획했다. 이것이 1593년 2월 12일에 있었던 행주대첩이다.</div><div>그 뒤 권율은 왜병의 재침을 경계해 행주산성은 오래 견디어내기 어려운 곳으로 판단, 파주산성(坡州山城)으로 옮겨가서 도원수 김명원(金命元), 부원수 이빈(李薲) 등과 성을 지키면서 정세를 관망했다.</div><div>그 뒤 명나라와 일본 간에 강화 회담이 진행되어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휴전 상태로 들어가자, 군사를 이끌고 전라도로 복귀했다.</div><div>그해 6월 행주대첩의 공으로 도원수로 승진되어 영남에 주둔했는데, 1596년 도망병을 즉결한 죄로 해직되었으나 바로 한성부판윤에 기용되었으며, 호조판서·충청도관찰사를 거쳐 재차 도원수가 되었다.</div><div>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적군의 북상을 막기 위해 명나라 제독 마귀(麻貴)와 함께 울산에 대진했으나 도어사 양호(楊鎬)의 돌연한 퇴각령으로 철수했다.</div><div>이어 순천 예교(曳橋)에 주둔한 왜병을 공격하려 했으나, 전쟁의 확대를 꺼리던 명장(明將)들의 비협조로 실패했다.</div><div>1599년 노환으로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7월에 죽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1604년(선조 37)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으로 추봉되었다.</div><div>1841년 행주에 기공사(紀功祠)를 건립, 그해 사액되었으며, 그곳에 향사되었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훈을 중심으로 기록된 사적이 『권원수실적(權元帥實蹟)』이란 책명으로 1권이 전한다. 시호는 충장(忠莊)이다<br>6.임진왜란때 활약하신 점을 처음 알게되었습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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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5-10 09:07: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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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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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ol><li>서민지&nbsp;</li><li>김경태&nbsp;</li><li>1874</li><li>청양</li><li>김경태는 1874년생이며 충청남도 청양군 출신이다. 그는 1917년 대한광복회에 가담한 뒤 친일부호 처단 활동을 수행했다. 1918년 1월 <a href="https://namu.wiki/w/%EA%B9%80%ED%95%9C%EC%A2%85">김한종</a>, <a href="https://namu.wiki/w/%EC%9E%A5%EB%91%90%ED%99%98">장두환</a>, 임봉주(林鳳柱) 등과 함께 악질면장으로 지목되어 처단 대상이었던 충남 아산군 도고면 면장 박용하(朴容夏)를 처단했다. 그러나 대한광복회 조직이 발각되면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21년 8월 <a href="https://namu.wiki/w/%EC%84%9C%EB%8C%80%EB%AC%B8%ED%98%95%EB%AC%B4%EC%86%8C">서대문형무소</a>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li><li>우리나라지키주셔서감사합니다</li><li>없습</li></o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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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5-10 10:15: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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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김응빈&nbsp;<br>안종화<br>태어난시기1860<br>태어난장소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고대리 에서태어났다<br>안종화는 태어나 종2품가선대를부를 지닌 관료이자 학자다 1905년 을사는약이 강제 제결도자 안종화 는 을사는ㄱ약 파기늘 위한 상소운동을 전개하였다 또 한직접 교육에 나서 휘문 의숙 교사와숙장을 지냈고 각종 교과서와 역사서를 발간하여 계몽 운동에 앞장섰다<br>예전 역사 인물&nbsp; 존경스럽다고 느낀다 책이나 공책.불도 없음에도 학업에 충실하며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 생각한다 나도 이제 책을꼭 한권씩 읽고자야겠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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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5-10 12:59: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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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오랫만이다 ㅎㅎ</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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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16 01:43: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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