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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급 1주 프로젝트: 미들베리 한국어 학교의 사람들 by AL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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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6-24 01:57:42 UTC</pubDate>
      <lastBuildDate>2026-06-26 15:34:24 UTC</lastBuild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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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의 사람들</title>
         <author>ALS_K_courses</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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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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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27 14:30: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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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들베리의 사람들: 세계인 선생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ALS_K_courses/igafzy834tzi74c4/wish/3504856024</link>
         <description><![CDATA[<p>미들베리 선생님들 보면 무척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특히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프랑스에서 가르치시는 이지훈선생님이다.</p><p><br></p><p>이지훈선생님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톡일인 학생은 나한테 프랑스에서 오신 선생님이 자기 고향을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말했다. 일단 나는 왜 그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가르치시는 것을 선택하셨는지 궁굼해 하다가 이 선생님은 농담을 정말 좋아하신다고 생각하게 됐다.</p><p><br></p><p>우리 인터뷰에서 유괘하고 솔직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왜 그렇습니까? 이지훈선생님 그렇게 사시기 때문이다.</p><p><br></p><p>내가 가르치시면서 특별한 일화가 있으면 주말씀해 주시겠냐고 물어봤다. "[미들베리에서] 첫번째 한국어 잘 못 하는 학생들이 프로그램이 끝날 때 한국어를 하면서 나가는 것을 보고...와 너무 재미있었어요....매일 보니까 [학생 한국어 진보를] 볼수있어요. 그건." 이선생님은 진정한 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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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29 00:16: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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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음악 경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ALS_K_courses/igafzy834tzi74c4/wish/3504856187</link>
         <description><![CDATA[<p>우리 선생님 어렸을 때 피아노를 치시고 어머님 덕분에 클래식을 좋아하신다. 러시아에서 공부하는 동안 오페라에 관심이 생겼다. </p><p>공부할 때 아니면 공부하기 싫을 때는 피아노를 치고 싶으신 순간이 있으시다. 그런데 내가 피아노를 치시면서 무슨 느낌이 있느냐고 물어봤을 때 자유라고 대답하셨다. 안기와 음악을 통해 이선생님 성격을 받으시고 어머님에 대한 추억을 가지시고 자유도 찾으셨다.</p><p>또한 사물놀이에 인생 교훈을 받으셨는데 모든 하면 된다고 말하셨고 어려운 장단도 연습하면 된다고 추천하셨다. </p><p>마지막으로 이선생님은 건강한 생활을 하려면 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p><ol><li><p>잘 먹고</p></li><li><p>잘 자고</p></li><li><p>잘 싸요.</p></li></ol><p><br/></p><p>선생님이 이 인터뷰를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이선샌님 덕분에 내가 재미있고 성실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 정말 감사합니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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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29 00:17: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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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들베리의 사람들: 홀리 조교님과의 인터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ALS_K_courses/igafzy834tzi74c4/wish/3504871357</link>
         <description><![CDATA[<p>"왜 한국어를 배우게 됐고 어떻게 미들베리를 선택하게 됐습니까?"</p><p><br></p><p>"사실 제가 고등학교 때 제 친구가 케이팝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친구가 저한테 이 비디오 도움 보여줄까... 그래서 제가 보고 그 음악 들었을 때 그 언어 너무 예쁘다고 생각해서 그때부터 그 배우기 시작했어요. 제가 원래 혼자서 공부했는데, 제가 대학교 시작했을 때 우리 학교가 한국어 수업이 없는데, 제가 다른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했어요. 그래서 그때 제가 미들베리 대해서 처음 알았고, 그다음 여름 때 미들베리 캘리포니아 캠퍼스에서 다녔어요."</p><p><br></p><p>"어떻게 조교님이 되셨습니까? 왜 조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까?"</p><p><br></p><p>"사실은 제가 2021년에 4급 했는데 선택이 있었어요. 그 다음해에 5급 할까요? 아니면 조교로 할까요? 그런 선택이 있는데, 사실은 제가 제 언어 목표는 다른 사람 하고 편하게 얘기하는 목표이니까 저에게 5급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왜냐면 5급 보통 북한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그리고 기사를 많이 읽고 그거 대해 언어 목표하고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제가 조교는 가입했어요."</p><p><br></p><p>"마치막으로, 이 한국어 프로그램 경험 10년 후에 어떤 영향을 주기를 바랍니까? 인생의 한국어 꿈이 무엇입니까?"</p><p><br></p><p>"제가 원래 한국을 취미로 배우기 시작했고... 아직 취미로 공부하고 다른 사람 하고 편하게 얘기하면 좀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보통 어떤 취미가 있으면 집중하고 또 빨리 좀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 취미는 버려요. 근데 한국어 배우는 것 좀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10년 후에도 계속 공부하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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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29 01:34: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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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들베리의 사람들: 김 선생님과의 인터뷰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ALS_K_courses/igafzy834tzi74c4/wish/3504904623</link>
         <description><![CDATA[<p>김 성생님과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첫번째 질문은 기본적인 정보를 얻으려고 김 선생님께 "왜 미국으로 오셨나요?"라는 질문을 물어 봤다. 그 순간에 김 선생님의 마음이 좀 더 열려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셨다.&nbsp;</p><p><br/></p><p>김 선생님은 솔직하게 한국에 재미가 없어 그랬다고 대답하셨다. 나는 지금 한국에서 군인으로 근무하고 있으니 한국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국에 사는 것이 아직도 여행인듯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 선생님의 경험은 마찬가지다. 한국에 태어나셨으니&nbsp;어릴때부터 한국생활에 이미 익숙해져 번아웃 느낌을 풀러 외국으로 갈 생각이 들었다고 말씀해주셨다. 미국에 꼭 가야 된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영어를 말할 수 있으니 가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김 선생님의 태평스러운 태도로 미국에 오신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에는 선생님도 자기의 미래에 대한 긴장을 좀 풀게 됐다.&nbsp;</p><p><br/></p><p>마지막으로는 김 선생님께 어떻게 가르치는것을 시작했냐고 여쭤 봤을때 이렇게 대답하셨다. “원래 선생님이 될 생각 하나도 없었거든요. 고등학교때는 외국인 친구들 몇명 있었는데 그들한테 재미로 기본적인 한국어를 그냥 가르쳐 줬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그때부터는 계속 가르치면 앞으로도 재미있을 거 같다라는 생각있어서 그랬어요.”&nbsp;</p><p><br/></p><p>나는 솔직히 말하면&nbsp;스스로를 들여다보거나 뒤돌아보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의 태평스러운 성격이기 때문인지 내 실수에서 배우지 못 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내 미래가 과거와 닮을까 봐 두렵다. 그렇지만 김 선생님같은 존경하는 사람이 나만큼 미래에 대해 불확실한 상태에서 인생이 바뀌는 결정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음이 놓인다.&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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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29 04:00: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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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들베리 사람들: 쉘비 선생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ALS_K_courses/igafzy834tzi74c4/wish/3506211928</link>
         <description><![CDATA[<p>(기자): “쉘비 선생님 혹시 한국에서 여행이나 공부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p><p>(선생님): “네, 그… 어제 말한 것처럼… 일 년 동안 한국에서 영어 가르쳤어요. 중학교에서 하고 고등학교에서 대화하는 영어 가르쳤어요. 그리고 한국에 아마 두 세 번 돌아갈 계획 있었어요. 그리고 그 여행 동안 우리 홈스테이 가족 방문했고 사물놀이하고 농악도 배웠어요. 한 번은 풍물 캠프에 다녔어요. 1주일 동안 매일 하루 종일 하루 종일 풍물… 풍물 아세요?”</p><p>(기자): “풍물 무엇입니까?”</p><p>(선생님): “사물놀이 같은 장르지만 풍물은 작은 마을에서 하는 악기 놀이예요.”</p><p>(기자): “네, 전통 놀이입니까?”</p><p>(선생님): “사물놀이… 사실은 현대 놀이예요. 1970년부터 생겼어요. 사물놀이… 그렇지만 풍물 아니면 농악이라는 음악은 몇 백년 동안 [있어왔어요.]”</p><p>(기자): “그래서 거기에서 사물놀이 처음 하셨습니까?”</p><p>(선생님): “사실은 한국에 살았을 때 풍물을 배웠어요. 사물놀이는 미국에 돌아왔을 때 MIT에서 대학원생이었을 때 거기서 학생 동아리에서 사물놀이 배웠어요.”</p><p>(기자): “그렇습니까? 그래서 대학원생이셨을 때 사물놀이 하시기 시작하셨습니까?”</p><p>(선생님): “네, 맞아요. 그리고 돌아왔을 때 그 사물놀이 동아리에 [저만 빼고] 다 한국 사람이었으니까 이 사람들하고 편하게 말하고 싶어서[요.]”</p><p>(기자): “그런데 어떤 언어로 [사물놀이를] 가르쳐주셨습니까?”</p><p>(선생님): “보통 한국어로 말했어요. 다른 동아리 학생한테”</p><p>(기자): “네, 왜냐하면 쉘비 선생님 [외에] 다 한국분이셨습니까?”</p><p>(선생님): “네, 한국분 아니면 [다 교포였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 사물놀이 듣는 게 [저에게는] 한국 활동이라서 그 활동하면서 좀 자연스럽게 한국말 나왔어요. 그리고 아마 다른 학생들이 이 활동하는 목적이 아마 한국사람이랑 한국말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저 때문에 영어 해야 했으면 불편했어요. 저에게”</p><p>(기자): “그래서 그때부터 사물놀이 하셨군요. 장구 맞습니까?”</p><p>(선생님): “네, 대부분 장구 배웠어요. 그렇지만 [꽹과리도 좀 배우기] 시작했어요.”</p><p>(기자): “그러니까요! [지금] 우리 사물놀이 선생님이십니다. 당연합니다.”</p><p><br></p><p>나는 3년전 여름에 미들베리 1금 한국어 학생이었을 때 사물놀이 동아리에서 쉘비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그때부터 우리 선생님 어떻게 사물놀이 잘하시게 되는지 정말 궁금했다. 나는 쉘비 선생님을 인터뷰하면서 그 궁금한 것에 대해 점점 이해하게 됐다. 쉘비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좀 있는데: 선생님~ 우리 미들베리 한국 학교에 여름 매번 사물놀이를 가르쳐 주시게 오시기 바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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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30 15:14: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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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1주 미들베리의 사람들: 저에게 미스 코리아 선생님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ALS_K_courses/igafzy834tzi74c4/wish/3507320523</link>
         <description><![CDATA[<p>미들베리의 오리엔테이션에서 조 선생님을 처음 봤다. 첫 인상은 아주 밝고 흥이 많은 분처럼 보였다. 나는 문학을 써본 적이 없는데 조 선생님 스트레스 풀 수 있는 실력을 봤을때는 갑자기 문학 동아리에 가고 싶은 생각이 났다. </p><p><br></p><p>선생님에게 “한국 교육 제도에 대해서 무엇을 바꾸고 싶으세요?“ 라고 물어봤을때는 “선행 학습 금지”라고 대답했다. 나는 한국 학원 문화가 심하다는 건 이미 알았는데 선생님께서 그걸 인정해서 신기했다. 조 선생님의 아들도 열심히 공부해야 됐지만 아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부모님들은 아이를 S.K.Y 대학교에 보내고 싶어해서 학원에 등록하고 선행 학습을 지지한다. 조 선생님의 말로는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선행 학습을 시작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학원에 안 가도 경쟁은 굉장히 치열해서 낙오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부모님들의 두려움이라고 설명했다. 이 심각한 현실때문에 학습 스트레스를 계속 올린다.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서 선행 학습 금지하면 좋겠다고 말했다.</p><p><br></p><p>인터뷰 할 때 선행학습 같은 진지한 주제에 대해 얘기하긴 했지만, 재미 있는 순간들도 많았다. 우리의 인터뷰 녹음을 다시 들어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선생님께 "무엇이 행복하세요?"라고 물어봤을 때는 미들베리 학생들이라고 말했는데 내 같은 경우에는 조 선생님하고 대화할때 행복하다.</p><p><br></p><p>선행 학습에 대한 내 의견은 학생들한테 아주 부담스럽다. 물론 도움이 더 필요한 학생이 있으면 추가 연습을 받아 줘야 되는데 선행 학습은 너무 불공평하다. 그리고 학생의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가족이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어린시절은 소중한 시간인데 학생들이 공부만 하면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없다.</p><p><br></p><p>감사합니다 조 선생님!</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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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01 12:34: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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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미들베리의 사람들: 긍정적으로 보시는 김선생님 &gt;3</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ALS_K_courses/igafzy834tzi74c4/wish/3509191619</link>
         <description><![CDATA[<p><strong>만약에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볼 매우 큰 간판이 있다면 거기에 뭐라고 쓰시겠어요?</strong></p><p><br/></p><p>"오늘 하루에 감사하고 행복하자"</p><p><br/></p><p><br/></p><p><strong>왜 그렇게 쓰시겠어요?</strong>  <strong>감사가 왜 중요합니까?</strong></p><p><br/></p><p>"부정적으로 보면 안 좋게 많이 볼 수 있는데, 차라리 감사로 보면 더 좋게, 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어요."</p><p><br/></p><p><br/></p><p><strong>교과서 만드는 거 대단한 일인데, 여기 학생이 만약에 그런 거 나중에 만들고 싶다면 어떻게 오늘부터 준비할 수 있을까요?</strong></p><p><br/></p><p>"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이미 할 수 있어요. 뭐, 독립 출판이 있어서 이미 만들 수 있어요. 자기가 공부하는 것들을 발전시키거나 잘 하는 것들이나, 아니면 팟캐스트도 가능해요...제가 교과서 만들 때 3년 걸렸어요. 그리고 책에서 배우는 것들을 실제 의사소통에 연결하도록 노력했어요. 가르칠 때 실생활에 연결할 수 있게 항상 도와주도록 해요. "진짜 표현"들 많이 넣도록 노력했어요."</p><p><br/></p><p><br/></p><p>인상이 깊은 부분 포함했다. 긍정적인 것에 집중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김보경 선생님이 세계를 그렇게 봄으로써 대단한 일을 더 많이 이루신 거 같다. 그리고 교과서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하기 위한 준비에 대해 물어봤을 때, 오래 준비해야한다는 기대했던 대답과 반대로 지금 이미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대답은 참 놀라웠다. 나도 그렇게 미루지 않고 오늘부터 시작하는 태도를 더 잘 실천해야 할 것 같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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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03 04:03: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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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진현님,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해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ALS_K_courses/igafzy834tzi74c4/wish/3964753668</link>
         <description><![CDATA[<p> 기자: 리나 니에  </p><p>2026년 6월 24 일</p><p><br></p><p>진현님,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해라”</p><p><br></p><p>1970년대 태어난 추 진현, 지금 미들베리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있다. 어렸을 때 힌국문화에 관심이 있었지만, 기회가 별로 없어서, 꾸준히 공부할 수 없었다. 이 기회에 비하면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에 대해 방황했다. 진현님의 할아버지는 미국계 일본인이고 엄마는 한국사람이고 자기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즉,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고향은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었다. 이것은 진현님만 겪는 도전이 아니라 많은 미국의 아시아 이민자와 그들의 후세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수많은 고민과 방황의 끝에, 중국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蘇東坡 가 말했듯이, </p><p><strong><em>“마음이 편안한 곳이 곧 나의 고향이다” (此心安處是吾鄉)</em></strong>. 천천히 진현님은 한국을 자기의 마음이 편안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려도 배는 결국 항구로 둘아가야 한다. 시간이 흘러 다시 뒤돌아보더라도, 이 고향의 문화를 공부하기로 결정한 이 순간이 결코 늦지 않다.</p><p><br></p><blockquote><p><strong><em>“원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해라” </em></strong></p></blockquote><p><br></p><p>이것이 고향을 찾을 뿐만 아니라, 진현님이 그의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진현님이 어렸을 때, 춤을 좋아해서 무용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은 전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반대하셨고, 그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엔지니어가 되었다. 그때 부모님이 허락해 주셨다면, 지금 유명한 무용가가 되었을 거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마음의 소리를 한순간도 포기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무시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올해  다시 꿈을 추구했고, 하와이 대학교 교육학 석사 과정을 지원해 공립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기자가 왜 그렇게 했냐고 물어봤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p><p><br></p><blockquote><p><strong><em>“제가 40대에 다시 출발해서 꿈을 향해 나아갔거든요. 혹시 운이 좋아서 교사가 되면, 학생들에게 꿈이 있으면 언제든지 늦지않다고 격려할 거예요.   정말 멋진 일이 아닐까요?”</em></strong></p></blockquote><p><br></p><p> 기자도 진혐님처럼 언제나 인생의 여정에서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싶다. </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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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6-06-25 17:30: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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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미들베리의 사람들: 다니엘 김님과의 인터뷰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ALS_K_courses/igafzy834tzi74c4/wish/3964822457</link>
         <description><![CDATA[<p>다니엘 김 선생님은&nbsp; 똑똑하고 흥미로운 사람이다. 다니엘의 삶과 가족사에 대해 알게 되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nbsp;</p><p><br></p><p>다니엘 님이 뉴욕시에서 태어났고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시카고 대학교 법학대학원에도 다녔다. 지금 은퇴했지만 은퇴하기 전에는 특허 변호사(변리사) 였다.&nbsp;</p><p><br></p><p>다니엘 님의 부모님들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그의 평생에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했지만 부모님들은 가족이 모두 영어를 배우기를 원하셨다. 집에서 부모님들의 친구가 왔을 때 한국어 대화를 했지만 다니엘이 한국어를 이해 못 했다. 어렸을 때 한국어 학원에 다녔지만 다른 학생들은 이미 한국어 잘 알아서 다니엘은 잘 배우지 못 했다. 한국어 수업 동안 다니엘은 한글 쓰기와 읽기만 배웠다.&nbsp;</p><p><br></p><p>대학교에서 다니엘 님은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수업 등록 문제가 생겨서 한자 번역 수업만 다닐 수 있었다. 다니엘님과 한국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국어 어휘가 매우 고급스럽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 한자 교육 배경이 이해가 된다.&nbsp;<br></p><p>게다가 다니엘 님의 가족이 재능이 있다. 외할머니께서 한국의 유명한 작가인 김말봉이었다. 예를 들면, 1930년대 소설 책 “찔레꽃“을 쓰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소설 책은 400페이지정도라서 매주 신문에 연재됬다. 10년전에 다니엘 님이 그 소설 책을 번역했다.&nbsp;</p><p><br></p><p>다니엘 님의 외할머니인 김말봉과 이모부 금수현과 함께 “그네”라는 유명한 한국 노래를 썼다. 김말봉은 가사를 썼고 금수현은 작곡을 했다. 금수현도 유명한 작곡가였다. 또한 금난새 지휘자는 다니엘 님의 사촌이다.<br></p><p>마지막으로, 그는 북한에 친척이 살아서 북한에 가고 싶지만 요즘 미국 정부의 정책과 위험한 상태 때문에 못 간다. 그렇지만 북한에 갈 기회가 있으면 갈 것 같다고 했다.&nbsp;</p><p><br></p><p>이렇게 흥미로운 한국 가정사를 가진 지적인 사람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다. 하지만 다니엘 님을 처음 만나면 그에 대한 이 정보를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다니엘 님은 매우 겸손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수업 중 옆자리에 앉았고 인터뷰를 맡게 되어 이 정보를 알게 되었을 뿐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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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6-06-25 20:36: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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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들베리 사람들: 리나 니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ALS_K_courses/igafzy834tzi74c4/wish/3965116156</link>
         <description><![CDATA[<p><strong>리나 니에</strong> 님은 2024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대학교 텍사스 에이엔엠에서 몽골 역사 교수님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strong>리나</strong> 님의 얘기는 14500킬로미터 떨어진 ‘우루무키’라는 꽤 큰 중국 도시에서 시작된다. 거기에서 1993 년에 태어나서 자랐다. 중국 서북쪽에 있는 이 도시는 카자흐스탄과 몽골리아 사이에 있다.&nbsp;</p><p><br></p><p>“이런 먼 지역에서 온 사람을 만날 때마다 좀 특이하다, 안 그래요?”</p><p><br></p><p>우리 <strong>리나</strong> 님은 한 홍콩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역시 전공은 두 곳에서 다 역사학이었다.</p><p><br></p><p>취미는 요가, 여행하기, 음악 듣기, 악기 연주하기와 물론 역사적인 활동들이다 (예를 들면, 박물관 방문하기 등).</p><p><br></p><p>우리 <strong>리나</strong> 님은 네 살 된 딸 한 하나가 있는데, 엄마로서 딸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역사 전문가가 되면 참 좋겠다고 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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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6-06-26 02:31: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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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들베리 사람들: 숀 스티븐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ALS_K_courses/igafzy834tzi74c4/wish/3965616280</link>
         <description><![CDATA[<p>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샌프란시스코 인근 캘리포니아 주에서 태어나 콜로라도에서도 살았던 숀 스티븐스 (51세) 이다.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과학자로 일하고 있는 남동생 한 명이 있다. 숀은 만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미 해군에 입대했다. 특히 처음에 한국어 통역관으로 일했고 약 3년 동안 통역관으로 일했다.이후 장교로 임관하며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바로 헬리 조종사를 선택했다. 그는 요즘도 여가 시간이 있으면 직접 소형 비행기를 조종한다. 휴일에는 아내와 함께 등산을 가거나, 와인 테이스팅을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또한, 집에서는 기타를 연주한다.</p><p><br/></p><p>숀은 외국어에 대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18세 때 국방외국어대학교를 다녔다. 숀씨에 따르면 매일 추가 수업에 참석하니까 그는 군인 언어시험에서 반 학생들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수석으로 졸업하게 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언어를 사랑했다. 그는 37세에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6개월 동안 국방외국어대학교로 돌아갔다. 아내도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외국어로 대화한다.</p><p><br/></p><p>숀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먼저 왜 장교가 되기로 결심했는지 물었다.    그는 조금 더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고 답했다. <strong><em>그에게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동기" 이다</em></strong>. 동기가 없다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p><p><br/></p><p>이어서 그에게 모든 언어를 같은 방법으로 배우는지 물었다. 숀은 <strong><em>"언어마다 어려운 부분은 다르지만 배우는 방법은 모두 똑같다"</em></strong>고 말했다. 바로 "<strong><em>자신이 배우고 있는 언어로 모든 것을 해야 한다"</em></strong>는 것이다. "<strong><em>스스로 그 언어로만 대답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em></strong>고 강조했다. 예를들면 그는 러시아어 노래를 듣거나 아내와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p><p><br/></p><p>마지막으로 왜 이곳 미들베리에서 한국어를 배우기로 선택했는지 물었다.  그는 한국어가 자신에게 가장 어려운 언어처럼 느낀다고 했다. 그동안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미들베리를 찾은 것이다. </p><p><br/></p><p>그는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어 실력을 키울 수 있게 됐다. 도전적인 삶과 평화로운 일상의 균형을 멋지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닮고 싶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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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6-06-26 12:32: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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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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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들배리의 사람들: 캐롤라인 커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ALS_K_courses/igafzy834tzi74c4/wish/3965617777</link>
         <description><![CDATA[<p>이름:	캐롤라인 커니 (한국어 4급)</p><p>직업:	연세대학 박사학생</p><p>면접자:	다니엘 김<br></p><p><br></p><p>캐롤라인님은 북한–미국 관계에 관심이 있어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그 관심이 몇 년 전에 시작됐다. 그때 캄보디아에서 평화센터에서 일하면서 아시아 지역 갈등들이 많이 있어왔다. 예를 들면 평화센터가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에 집중했다. 그리고 2015년부터 평화센터가 북한도 집중했다. 그런 일 했을 때 캐롤라인님이 북한에 관심이 돋았다.<br></p><p><br></p><p>(캐롤라인님은 북한에 가본 적이 없다. 2017년부터 미국 사람들은 북한에 못 간다.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갈 수 있지만 불법이고 위험하다.)<br></p><p><br></p><p>캐롤라인님은 캄보디아에서 평양 식당에 한 번 가봤다. 대한민국 관광객들은 자주 그 식당에 식사하러 갔다. 북한 직원들이 음식을 제공한 후 무대에서 공연했다.</p><p><br></p><p><br></p><p>캄보디아에 도착할 때 캐롤라인님은 한국어를 못했고 대한민국과 북한에 대해 관심이 완전히 없었다. 하지만 캐롤라인님이 평양 식당에 갔을 때 대한민국 관광객 약 50명은 식당에 가서 식사하고 공연을 봤다. 그 공연에서 북한 직원들은 전통 한국 노래 부르고 대한민국 관객들도 같이 불렀다.<br></p><p><br></p><p>그 대한민국 관광객들은 앙코르 와트 보러 왔었다. 북한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서 평양 식당에 가봤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북한 직원들은 대한민국 관객들과 같이 똑같은 전통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 특히 노인들은 – 감동해서 울기 시작했다. 캐롤라인님은 깜짝 놀랐다. 이 사람들이 울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 했다. 미국에서 6.25 전쟁에 대해 많이 안 배웠었다. 어떤 게임밖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p><p><br></p><p>그로 인해 캐롤라인님이 갑자기 한국과 북한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그 후에 책과 기사를 많이 읽고 전문가들에게 질문 많이 했다. 2016년부터 4년 동안 캄보디아 평화센터에서 일하고 북한–미국 관계와 대한민국–북한 관계도 연구하기를 시작했다.<br></p><p><br></p><p>그때부터 현재까지 그 일을 계속해왔으니까 한국어를 배워야 됐다. 외국 학생으로서 한국 교육부에서 장학금을 받아서 한국어를 배우러 한국으로 이사 갔다. 5년 반 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어를 공부했고 많이 계속하고 싶었다.</p><p><br></p><p>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캐롤라인님의 성격은&nbsp; 한국 교육과 잘 안 맞았다. 교육 스타일이 너무 엄격하고 생활이 외로웠다. 다행히 친구들은 미들버리를 추천해서 캐롤라인님은 여기에 오기로 결정했다.<br><br><br><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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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6-06-26 12:36: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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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폴휴즈를 만납시다!</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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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폴 휴즈에 대해 소개하겠다. 폴 휴즈는 재능있는 군대 통역사이다. 지난 일년쯤 동안 서울에서 통역을 했다. 그래서, 한국어 실력을 향상시키려고 미들버리 어학당에 왔다. 문제가,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영어를 많이 쓴다. 이번 여름방학 동안, 폴은 다른 학생들하고 같이 한국말만 말하고 있다.&nbsp; &nbsp;</p><p><br></p><p>폴 휴즈의 고향은 와싱턴인데, 대학은 버몬트주에 있는 놀위치대학을 다녔다. 대학을 다녔을 때, 정치학을 공부헸고 여러가지 무술을 연습했다. 한국어는 폴씨의 첫번째 외국어이다. 그는 대학 졸업한 후에,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했다. 미국 국방외국어 대학에 일년이상 다니면서 한국 말을 배웠다. 거기서 성공했고 다른 학생중에 졸업시험에서 제일 높은 성적을 받았다.</p><p><br></p><blockquote><p>그에 따르면 언어를 꾸준히 쓰고 언어로 밤낮없이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한 학습 방법이다. 그는 </p><p><br></p><p><strong>“국방외국어 대학을 다녔을 때, 쉬는 시간에도 선생님의 사무실로 갔고 아무거나에 대해 대화를 했어…다른 학생들은 쉬는 시간 때 영어로만 말했어요.”</strong> </p><p><br></p></blockquote><p>그 외에도, <strong><em>“0교시 (수업시간 전에) 아니면 점심시간 때 1 대1 연습도 했고요” </em></strong>라고 했다. </p><p><br></p><p>이런 방법 덕분에, 그는 제일 높은 급에 도달했다.&nbsp;&nbsp;</p><p><br></p><p>시간이 있으면, 그는 독서와 등산을 제일 좋아한다. 미들버리 한 다음에, 그는 서울에 돌아가고 통역을 계속해서 할 것이다.&nbsp;&nbsp;&nbsp; &nbsp;&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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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6-06-26 12:44: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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