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rss version="2.0">
   <channel>
      <title>알리고 싶은 인물 소개하기 by 송양지</title>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1-11-17 01:09:36 UTC</pubDate>
      <lastBuildDate>2024-08-20 01:30:34 UTC</lastBuildDate>
      <webMaster>hello@padlet.com</webMaster>
      <image>
         <url>https://padlet.net/icons/png/1f970.png</url>
      </image>
      <item>
         <title>신사임당-장시호</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03415</link>
         <description><![CDATA[<div>출생:<br>1504년 12월 5일, 강릉시 오죽헌에서 태어났다.<br><br>2.사망 정보:<br>1551년 5월 17일, 북한 평안도에서 사망하했다<br><br>3.본명:<br>신인선(申仁善)<br><br>4.배우자:<br>이원수 (1522년–1551년)<br><br>5.자녀:<br>이이, 이준, 이선, 이우<br><br>6.부모:<br>신명화, 용인 이씨<br><br>7.손주:<br>이경정, 이경림<br><br>8.신장:<br>147~150cm<br><br>9.작품:<br>자리도,산수도,초충도,노안도의 작품들을 그렸다<br><br>10.성격:<br>화가<br><br>11.유형:<br>인물시대조선출생이다<br><br><br><br>&nbsp; &nbsp; 출처:&nbsp; &nbsp; &nbsp; &nbsp;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0271&amp;cid=46622&amp;categoryId=46622&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2689946556715DC23" />
         <pubDate>2021-11-18 02:04:5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03415</guid>
      </item>
      <item>
         <title>신사임당-하은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04429</link>
         <description><![CDATA[<div>1. 유형: 인물시대 조선 출생&nbsp;<br><br>2.사망:1504년(연산군 10) ~ 1551년(명종 6)<br><br>3. 성격:화가<br><br>4.성별여본관평산(平山)저서<br><br>5.작품:자리도, 산수도, 초충도, 노안도,수박과 들쥐<br><br>6.시와 그림에 능한 예술가이자 율곡 이이를 낳은 훌륭한 어머니. 48세를 일기로 작고할 때까지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훌륭한 작품을 남긴 천재 화가로서. 사임당은 현모양처(賢母良妻)를 상징하는 인물로 5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추앙받고 있다.<br><br>7.신장:147~150<br><br>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0271&amp;cid=46622&amp;categoryId=46622</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81014/486263/72388973/1323387562/fd1052bde79397c75270ce1c4761edce.jpg" />
         <pubDate>2021-11-18 02:05:2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04429</guid>
      </item>
      <item>
         <title>강감찬에 대한 것 -강민호-</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05216</link>
         <description><![CDATA[<div>1.출생-사망</div><div>&nbsp; &nbsp;948년 12월 22일<br><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A%B3%A0%EB%A0%A4">고려</a>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A%B8%88%EC%A3%BC">금주</a>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대한민국</a>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84%9C%EC%9A%B8%ED%8A%B9%EB%B3%84%EC%8B%9C">서울특별시</a>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A%B4%80%EC%95%85%EA%B5%AC">관악구</a>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B4%89%EC%B2%9C%EB%8F%99">봉천동</a>/ 1031년 9월 9일 (82세) 출처: 위키백과<br><br><br>2. 업적<br>&nbsp; 고려시대의 명장. 거란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 서북면행영도통사로 상원수가 되어 흥화진에서 적을 무찔렀으며 달아나는 적을 귀주에서 크게 물리쳤다.&nbsp; 출처:인물한국사<br><br><br>3. 신장과 모습<br>&nbsp; 강감찬은 유난히 키가 작고 얼굴에 곰보 자국까지 있었다. 출처: 한 권으로 끝내는 교과서 위인<br><br><br>4. 태어난 곳<br>&nbsp; 고려의 명장 인헌공 <strong>강감찬</strong> 장군이 <strong>태어난</strong> 곳이다. <strong>태어난</strong> 날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 하여 그 생가의 터를 낙성대落星垈라 하였다. 출처: 인물한국사<br><br><strong><em><br>5.직업: 문관 /출처: 위키백과<br><br><br>6. </em></strong>부모: 강궁진/출처: 위키백과<br><br><br>7. 자녀: 강행경/출처: 위키백과<br><br><br>8. 학력: 983년(고려 성종 3년) 과거 장원 급제/출처: 위키백과</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dh.aks.ac.kr/Encyves/wiki/images/2/26/%EC%97%AD%EC%82%AC%EC%9D%B8%EB%AC%BC%EC%B4%88%EC%83%81%ED%99%94_%EC%B4%88%EC%83%81_%EA%B0%95%EA%B0%90%EC%B0%AC_%ED%91%9C%EC%A4%80%EC%98%81%EC%A0%95.jpg" />
         <pubDate>2021-11-18 02:05:3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05216</guid>
      </item>
      <item>
         <title>삼별초의 항쟁에 대하여  - 강서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05567</link>
         <description><![CDATA[<div><br>&nbsp;삼별초의 정의 : 삼별초는 고려 무신정권 때의 특수군대이다.<br><br>삼별초의 시작 : 1219년(고종 6년) 무신정권을 계승한 최우가 자신의 안전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별초란 ‘용사들로 조직된 선발군’이라는 뜻이다.&nbsp;<br><br>삼별초의 항쟁 : 그 뒤 야별초에 소속한 군대가 증가하자 이를 좌별초 ·우별초로 나누고, 몽골의 침입 이후 몽골의 병사와 싸우다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병사들로 신의군을 조직하고, 이를 좌 ·우별초와 합하여 삼별초의 조직을 만든다.&nbsp; 삼별초는 무신정권의 전위(전부를 위임한 것)로서 다분히 사병적인 요소도 있었다. 그러나 항몽에서는 그 선두에서 몽골병과 싸웠으며,  몽골과 화친이 성립되고 고려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개경정부 및 몽골과 대항 항쟁을 하였다.&nbsp;<br>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 백과 삼별초)&nbsp;<br><br>삼별초가 왜 유명한 이유 : 삼별초의 항쟁은 13세기 고려가 몽골에 대항 최후까지 항쟁한 대표적인 사례이다.<br><br>삼별초의 최후 : 여몽연합군의 조직적 공략에 의하여 원종 14년(1273) 4월 제주 삼별초 역시 무너지고 말았다. 삼별초의 항전은 고려 대몽항전의 최후였으며 삼별초가 없어진 이후로 고려는 14세기 중반까지 원의 정치적 관리 하에 놓이게 되버린다.<br>&nbsp;(두산백과 삼별초의항쟁)<br><br>제가 삼별초를 조사한 이유 : 삼별초가 제가 보기에는 고려판 독립운동가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448508255/2e620a68b3aab39dd310671b0d9a6364/image.png" />
         <pubDate>2021-11-18 02:05:4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05567</guid>
      </item>
      <item>
         <title>장영실-김지환(김zㅣ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06275</link>
         <description><![CDATA[<div><br><br>1.출생~사망<br>&nbsp; &nbsp;장영실은 출생뿐 아니라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도 알려진 것이 없다.&nbsp;<br><br>세종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천으로 온천욕을 떠나는 길에 장영실이 만든 임금의 수레가 부서지는 사고가 일어났는데, 그 책임으로 곤장 80대를 맞고 관직에서 쫓겨났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nbsp;<br><br>2. 만든것<br>&nbsp; &nbsp;천문을 관측하는 간의,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측정하는 혼천의, 금속 활자인 갑인자, 한국 최초의 물시계인 자격루, 솥단지 모양의 해시계인 앙부일구,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 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강물의 양을 재는 수표 등이 그가 만든 대표적인 과학 기구들이다.&nbsp;<br><br>3.업적<br>&nbsp; &nbsp;그는 중국에 가서 천문 기기를 연구하고 돌아와서 여러 가지 과학 기구들을 만들었다.&nbsp;<br><br>4.부모님의 직업<br>&nbsp; &nbsp;다만 그는 본래 경상도 동래현의 관아에 속한 노비였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동래현에 속한 기생이라고 알려져 있다.<br><br><br>출처-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60726&amp;cid=47306&amp;categoryId=47306&amp;expCategoryId=47322<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i.ytimg.com/vi/51fuvUKvPxk/maxresdefault.jpg" />
         <pubDate>2021-11-18 02:06:0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06275</guid>
      </item>
      <item>
         <title>세종대왕 - 김보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09082</link>
         <description><![CDATA[<div>&nbsp; &nbsp;<br>&nbsp;1. 출생 <br>&nbsp; &nbsp; &nbsp;1397년 ~ 1450년 <br><br>&nbsp;2. 본명 <br>&nbsp; &nbsp; &nbsp;이도(李祹)<br><br>&nbsp;3. 이명<strong>자</strong> <br>&nbsp; &nbsp; &nbsp;원정(元正)<br><br> 4. 본관 <br>&nbsp; &nbsp; &nbsp;전주(全州)<br><br> 5. 시대 <br>&nbsp; &nbsp; &nbsp;조선<br><br> 6. 직업 <br>&nbsp; &nbsp; &nbsp;조선조 제4대 임금<br><br> 7. 가족관계 <br> <strong>&nbsp; &nbsp; 아버지</strong> : 태종<br> <strong>&nbsp; &nbsp; 어머니</strong> : 원경왕후 민씨<br><br>8. 인물이 만든 것&nbsp;<br>&nbsp; &nbsp; &nbsp;집현전 - 조선 전기 학문 연구를 위해 궁중에 설치한 기관<br>&nbsp; &nbsp; &nbsp;농사직설 -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방법을 모아논 책<br>&nbsp; &nbsp; &nbsp;혼천의 - 해와 달, 별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기구<br>&nbsp; &nbsp; &nbsp;앙부일구 - 가마솥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는 모양의 해시계<br>&nbsp; &nbsp; &nbsp;자격루 - 스스로 종을 쳐서 시각을 알려주는 물시계<br>&nbsp; &nbsp; &nbsp;측우기 - 비를 측정하는 기구 - 세금을 걷는 데 활용<br>&nbsp; &nbsp; &nbsp;칠정산 - 조선에 맞는 달력<br>&nbsp; &nbsp; &nbsp;훈민정음 - 혀와 입술의 모양에서 과학적 원리를 찾아 창체<br>&nbsp; &nbsp; &nbsp;훈민정음 해례본 - 우리글을 읽는 방법을 설명한 책<br>&nbsp; &nbsp; &nbsp;세종실록지리지 - 고을의 자세한 내용을 기록한 지리책<br><br>9. 인물이 한일 (국방)<br>&nbsp; &nbsp; &nbsp;쓰시마섬(대마도) 정벌 - 이종무<br>&nbsp; &nbsp; &nbsp;4군 6진 개척해 조선의 국경을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확대<br>&nbsp; &nbsp; &nbsp;<br><br>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사회 교과서</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45813425328F7B71E" />
         <pubDate>2021-11-18 02:07:3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09082</guid>
      </item>
      <item>
         <title>강감찬 -강서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0853</link>
         <description><![CDATA[<div>1. 출생 및 사망<br>-출생 948년 ~ 사망 1031년<br><br>&nbsp;2. 강감찬에 대한 일화<br>&nbsp; -어느 날 키 크고 잘생긴 선비를 관리 복장을 하게 하고 자신은 허름한 옷을 입고 그 뒤에 섰는데, 송나라 사신이 한눈에 강감찬을 알아봤다고 한다.<br> 북두칠성은 일곱 별마다 도교적 색채의 이름이 있다. 국자의 맨 앞별에서부터 차례로 탐랑성∙거문성∙녹존성∙문곡성∙염정성∙무곡성∙파군성이라 한다. 강감찬이 과거에 장원급제한 문신이면서도 거란을 물리친 무장의 재능을 갖추었기 때문에 두 별이 등장한 듯싶다. <br>중국에서는 문곡성의 화신을 판관 포청천으로 봤다. 그 문곡성이 중국에서 고려로 건너온 셈이니 그가 바로 강감찬 장군이다. <br>그러나 송나라는 국력이 쇠퇴한데다 그 무렵 거란과 동맹을 맺고 있었다. 송나라의 도움을 받지 못한 가운데 고려는 1016년(현종 7년) 또다시 거란의 침입을 받았다. 이렇듯 쉴 새 없이 소모전을 벌이던 거란의 공격은 소합탁이 패배한 뒤로 약 1년 동안 잠잠하였다.<br><br> 3. 업적<br>-<strong>계속되는 거란의 침입으로 궁지에 몰린 고려, 회심의 일격을 준비한다</strong><br>잠시 소강기를 갖게 되자 고려는 거란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는 척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빈틈없는 준비에 온 힘을 기울였다.&nbsp;<br>고려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사이 마침내 거란의 성종은 1018년 12월 소배압에게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게 했다. 소배압은 앞서 1차 침입 때에 왔던 소손녕의 형으로 2차 침입 때에는 거란 성종을 따라 개경까지 왔던 인물이다.&nbsp;<br>&nbsp;<br><br>출처:인물한국사</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215013750C5B9DC2C" />
         <pubDate>2021-11-18 02:08:2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0853</guid>
      </item>
      <item>
         <title>왕건-김규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0930</link>
         <description><![CDATA[<div>&nbsp;1.출생지 북한개성<br><br>&nbsp;2.태어난날 사망날자<br>918년~933년 사망장소, 북한개성<br><br>&nbsp;3.왕건의 업적:&nbsp; 고려를 세운 <strong>왕건</strong>은 통일 역량을 기르기 위하여 안으로는 지방 세력(호족)을 흡수, 통합하고, 밖으로는 중국<strong>의</strong> 5 대 여러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어 대외 관계<strong>의</strong> 안정을 꾀하였다. 태조는 궁예와 달리 신라에 대하여 적극적인 우호 정책을 내세웠다.<br><br> 4.왕건의 가족관계:</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cfile238.uf.daum.net/image/99E98D4C5D5CB3DC0856C3" />
         <pubDate>2021-11-18 02:08:2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0930</guid>
      </item>
      <item>
         <title>장영실 이채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2451</link>
         <description><![CDATA[<div>1. 인물의 출생과 사망<br>&nbsp; 1442년(세종 24) 종적을 감춘 이후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 조차도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br>그가 갑자기 행적이 묘연해진 것은 안여(安輿)가 부서진 사건 때문이다. 안여는 왕이 타는 가마였다. 조선시대 왕은 잘 걷지 않았고 어가 행렬에서 왕의 가마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왕이 탄 가마가 움직이는 것은 국가가 움직이는 것이었고, 왕이 탄 가마가 머무르는 곳이 곧 왕궁이었다. 그런 큰 의미를 지닌 어가가 부서진 것이다.<br><br>2.<br><br>[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 번 등장할 정도로 유명인이었지만, 정작 그의 삶은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장영실이 어떻게 출생하여 성장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까닭은 그의 출생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그간 장영실이 세운 업적은 조선 최초의 천문관측대인 간의대를 비롯하여, 대간의·소간의·규표·앙부일구·일성정시의·천평일구·정남일구·현주일구·갑인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1442년(세종 24) 종적을 감춘 이후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 조차도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세종대 자격루를 만든 주인공으로 과학자로만 부각되어 왔던 장영실은 신분 탓인지 직접 남긴 글이 하나도 없다.장영실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를 한국 최초로 만든 인물이다.<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11-18 02:09:1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2451</guid>
      </item>
      <item>
         <title>김태욱 궁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3649</link>
         <description><![CDATA[<div>&nbsp; 1.간략한 궁예의 삶:궁예(弓裔, 857?~918, 재위 901~918)는 진골의 집안에서 태어나 ‘나라를 망칠 놈’이라는 예언과 함께 모진 인생역정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타고난 힘과 재주로 사람을 모아 드디어 후고구려를 세우는 왕이 되었다. 그는 살아있는 미륵으로 자처했으며, 관심법(觀心法)이라는 특유의 술책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았다. 그것이 지나쳤을까, 포악한 성격으로 주변의 인심을 잃고, 드디어 부하인 왕건에 의해 내몰려져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br>&nbsp;<br>&nbsp; 2.궁예의 모습+태어난 과정“궁예는 스스로 미륵불이라 부르며, 머리에 금빛 고깔을 쓰고, 몸에 방포를 입었다. 맏아들을 청광보살이라 하고, 막내아들을 신광보살이라 하였다. 외출할 때는 항상 백마를 탔는데, 채색 비단으로 말갈기와 꼬리를 장식하고, 동남동녀들을 시켜 일산과 향과 꽃을 받쳐 들고 앞을 인도하게 하였다. 또 비구 2백여 명을 시켜 범패를 부르면서 뒤따르게 하였다.”<br>&nbsp; 외가에서 태어난 궁예는 장차 나라에 이롭지 못할 듯하니 기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일관(日官)의 예언을 듣는다. 데려가서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이 차마 그러지 못하고 아이를 다락 밑으로 던졌는데, 마침 젖 먹이던 종이 아이를 몰래 받아 들다가 잘못하여 손으로 눈을 찔렀다. 그래서 한쪽 눈이 멀었다<br><br> 궁예가 출중한 솜씨를 발휘하여 우두머리로 올라서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절문을 나선 지 3년 만인 894년궁예는 강릉을 거점으로 삼아 무려 3천5백 명 이상의 대군을 편성하였다. 이때 그는 ‘사졸과 함께 고생하며, 주거나 빼앗는 일에 이르기까지도 공평무사하였다.’라고 [삼국사기]는 전해 준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를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사랑하여 장군으로 추대하였다. 세력이 커지자 태백산맥을 넘어 철원으로 그 거점을 옮겼다. 게다가 거기서 천군만마와도 같이 왕건이라는 뛰어난 부하를 얻었다. 본디 개성 출신인 왕건은 철원으로 와 896년부터 궁예의 휘하에서 혁혁한 전공을 올렸다. 왕건에 대한 호감 때문이었을까, 궁예는 개성이야말로 한강 북쪽의 이름난 고을이며 산수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도읍을 개성으로 옮겼다.&nbsp;<br>궁예의 거침없는 기세 앞에 불편해진 이가 양길이었다. 제 밑에서 싸움질을 배운 피라미가 이제는 자신을 향해 칼날을 곧추세우고 있음을 알았다. 양길은 궁예의 힘을 꺾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수를 친 것은 도리어 궁예였다.그러나 이제 그는 왕이었다. 드디어 901년, 왕을 자칭하며 사람들에게 말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11-18 02:09:5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3649</guid>
      </item>
      <item>
         <title>세종대왕 - 권민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4217</link>
         <description><![CDATA[<div>1. 출생 - 사망1397년 ~ 1450년 <br><br>2. 본명 -  이도<br><br>3. 업적 - 농사직설: 조선 풍토에 맞는 농서 편찬 지시.<br> (출처 : 나무위키 최근 수정 시각: 2021-11-11 22:45:00)&nbsp;<br><br>(1)대마도 정벌: 이종무 장군에게 명해 왜구를 토벌.[2]&nbsp;<br><br>(2)4군 6진 개척: 최윤덕 장군(4군)과 김종서 장군(6진)에게 명해 두만강까지 영토를 확장.&nbsp;<br><br>(3)집현전: 정책, 학문 연구 및 국왕자문기구 설립.&nbsp;<br><br>(4)고려사 편찬.&nbsp;<br><br>(5)훈민정음 반포.&nbsp;<br><br>(6)정간보: 박연이 음악 정리, 새로운 악기 개발.&nbsp;<br><br>(7)속육전, 등록 등의 법전 편찬 및 정리.&nbsp;<br><br>(8)해시계 앙부일구, 물시계 자격루 등 발명.&nbsp;<br><br>(9)유교 사상 발전.&nbsp;<br><br>(10)전세 제도 확립.&nbsp;<br><br>(11)총통, 신기전, 화차를 비롯한 각종 화약 무기 대대적 개발, 개량.&nbsp;<br><br>(12)한성을 기준으로 한 역법인 칠정산 편찬. 등이 있다.&nbsp;<br><br>4. 시대 : 조선<br><br>5. 세종대욍님의 명언<br>(1). 진실로 차별 없이 만물을 다스려야 할 임금이 어찌 양민과 천민을 구별해서 다스릴 수 있겠는가&nbsp;<br><br>(2). 무릇 잘 된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전대의 잘 다스려진 세상과 어지러운 세상의 역사가 남긴 자취를 보아야 할 것이다.<br><br></div><div>(3). 인재를 얻어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이 있으면 맡기지 말아야 한다.<br><br></div><div>(4). 관직이란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데려다 앉히는 것이 아니다. 그 임무를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을 택해 임명하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정적이고 나에게 불경한 신하일지라도 말이다.<br><br></div><div>(5). 당대의 일을 찬양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뒷세상에서 평가하게 하여 그때 노래하게 하자.<br><br></div><div>(6). 임금이 할 일은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이들을 제어해 그들의 능력을 백성에 이롭게 쓰는 것이다.&nbsp;<br><br></div><div>(7). 고기는 씹을수록 맛이 난다. 책도 읽을수록 맛이 난다. 다시 읽으면서 처음에 지나쳤던 것을 발견하고, 새롭게 생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100번 읽고 100번 익히는 셈이다.&nbsp;<br><br></div><div>(8). 백성이 나를 비판한 내용이 옳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니 처벌해서는 안 되는 것이오 설령 오해와 그릇된 마음으로 나를 비판했다고 해도 그런 마음을 아예 품지 않도록 만들지 못한 내 책임이 있는 것이니 어찌 백성을 탓할 것인가.&nbsp;</div><div>(<strong>aria****)<br><br>6. 세종대왕 도우미 : 장영실, 집현전 학자<br><br>7. 세종대왕님의 사망 이유 : </strong>세종대왕은 육식을 좋아했다. 그래서 혈류순환 장애가 심했고, 당뇨를 얻어 그걸로 사망했다고 추정한다.<br>(<strong>gkdlsfl12)</strong></div><div><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blogthumb2.naver.net/20100717_230/haks991_1279302927244cFQ4k_jpg/%BC%BC%C1%BE%B4%EB%BF%D5_%BE%EE%C1%F8_haks991.jpg?type=w2" />
         <pubDate>2021-11-18 02:10:1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4217</guid>
      </item>
      <item>
         <title>이방원-이우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4235</link>
         <description><![CDATA[<div>1.시-하여가 <br><br><strong>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strong><br>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br>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 <br><br>2. 업적<br>-태종은 국방에도 힘써 노략질을 일삼는 여진을 물리쳤다.<br>-활자를 만드는 주자소를 세운 뒤 동활자인 계미자를 만들어 《고려사》 등을 편찬하게 했다. <br>- 집집마다 베를 거두었던 호포제를 폐지했다.<br>-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풀어주기 위해 신문고를 설치했다.<br><br>3. 출생 및 정보<br>-출생: 1367년 6월 13일, <a href="https://www.google.com/search?safe=images&amp;client=tablet-android-samsung-ss&amp;v=12.37.22.23.arm64&amp;hl=ko-KR&amp;cs=0&amp;cds=2&amp;q=%ED%95%A8%ED%9D%A5%EC%8B%9C&amp;stick=H4sIAAAAAAAAAOPgE-LUz9U3MMooNMlWAjONC-JNM7TEspOt9AtS8wtyUoFUUXF-nlVSflHeIlbOt1NXvJ279E33nB2sjACS2z7JPwAAAA&amp;sa=X&amp;ved=2ahUKEwi93MSU9Kr0AhVTIIgKHdunCOgQmxMoAHoECA8QAg">북한 함흥시</a></div><div>-사망: 1422년 5월 30일, <a href="https://www.google.com/search?safe=images&amp;client=tablet-android-samsung-ss&amp;v=12.37.22.23.arm64&amp;hl=ko-KR&amp;cs=0&amp;cds=2&amp;q=%ED%95%9C%EC%84%B1%EB%B6%80&amp;stick=H4sIAAAAAAAAAOPgE-LUz9U3MMooNMlW4gIx85LScg0ttOSzk630C1LzC3JS9VNSk1MTi1NT4gtSi4rz86xSMlNTFrFyvp06503LxtfbGnawMgIA-4pvnUkAAAA&amp;sa=X&amp;ved=2ahUKEwi93MSU9Kr0AhVTIIgKHdunCOgQmxMoAHoECBcQAg">한성부</a></div><div>-본명: 이방원</div><div>-묘지: <a href="https://www.google.com/search?safe=images&amp;client=tablet-android-samsung-ss&amp;v=12.37.22.23.arm64&amp;hl=ko-KR&amp;cs=0&amp;cds=2&amp;q=%ED%97%8C%EC%9D%B8%EB%A6%89&amp;stick=H4sIAAAAAAAAAOPgE-LUz9U3MMooNMlW4gIx85LSDNLNtLSyk630C1LzC3JS9VNSk1MTi1NT4gtSi4rz86wKchKTUxXy0xSSSosyE3MWsXK-nd7zZu6O18s6d7AyAgBNeghpVAAAAA&amp;sa=X&amp;ved=2ahUKEwi93MSU9Kr0AhVTIIgKHdunCOgQmxMoAHoECA0QAg">서울특별시 헌인릉</a></div><div>-배우자: <a href="https://www.google.com/search?safe=images&amp;client=tablet-android-samsung-ss&amp;v=12.37.22.23.arm64&amp;hl=ko-KR&amp;cs=0&amp;cds=2&amp;q=%EC%8B%A0%EC%88%9C%EA%B6%81%EC%A3%BC+%EC%9D%B4%EC%94%A8&amp;stick=H4sIAAAAAAAAAOPgE-LUz9U3MMooNMlW4tFP1zcsNK2sNKyKN9GSyE620i9IzS_ISQVSRcX5eVbFBfmlxamLWIXfdC940zHn1bbGN4v3KLyZu-XNlBU7WBkBck2Rak4AAAA&amp;sa=X&amp;ved=2ahUKEwi93MSU9Kr0AhVTIIgKHdunCOgQmxMoAHoECAkQAg">신순궁주 이씨</a> (1422년–1422년), <a href="https://www.google.com/search?safe=images&amp;client=tablet-android-samsung-ss&amp;v=12.37.22.23.arm64&amp;hl=ko-KR&amp;cs=0&amp;cds=2&amp;q=%ED%98%9C%EC%88%9C%EA%B6%81%EC%A3%BC+%EC%9D%B4%EC%94%A8&amp;stick=H4sIAAAAAAAAAOPgE-LUz9U3MMooNMlW4tFP1zcsNK0yL6woytaSyE620i9IzS_ISQVSRcX5eVbFBfmlxamLWIXfzpjzpmPOq22NbxbvUXgzd8ubKSt2sDICANXTfHJOAAAA&amp;sa=X&amp;ved=2ahUKEwi93MSU9Kr0AhVTIIgKHdunCOgQmxMoAXoECAkQAw&amp;biw=712&amp;bih=1138&amp;dpr=2.25">혜순궁주 이씨</a> (1422년–1422년), <a href="https://www.google.com/search?safe=images&amp;client=tablet-android-samsung-ss&amp;v=12.37.22.23.arm64&amp;hl=ko-KR&amp;cs=0&amp;cds=2&amp;q=%EC%84%A0%EB%B9%88+%EC%95%88%EC%94%A8&amp;stick=H4sIAAAAAAAAAOPgE-LUz9U3MMooNMlW4tZP1zc0MrY0Miiy1JLITrbSL0jNL8hJBVJFxfl5VsUF-aXFqYtYed-0LHi9s0PhzdSON1NW7GBlBACngu0bRwAAAA&amp;sa=X&amp;ved=2ahUKEwi93MSU9Kr0AhVTIIgKHdunCOgQmxMoAnoECAkQBA">선빈 안씨</a> (1421년–1422년), <a href="https://www.google.com/search?safe=images&amp;client=tablet-android-samsung-ss&amp;v=12.37.22.23.arm64&amp;hl=ko-KR&amp;cs=0&amp;cds=2&amp;q=%EC%8B%A0%EB%B9%88+%EC%8B%A0%EC%94%A8&amp;stick=H4sIAAAAAAAAAOPgE-LUz9U3MMooNMlW4gIx85JSyirTtCSyk630C1LzC3JSgVRRcX6eVXFBfmlx6iJW3jfdC17v7FAAUm-mrNjByggAWQrpJUYAAAA&amp;sa=X&amp;ved=2ahUKEwi93MSU9Kr0AhVTIIgKHdunCOgQmxMoA3oECAkQBQ">신빈 신씨</a> (1414년–1422년), <a href="https://www.google.com/search?safe=images&amp;client=tablet-android-samsung-ss&amp;v=12.37.22.23.arm64&amp;hl=ko-KR&amp;cs=0&amp;cds=2&amp;q=%EC%88%9C%ED%98%9C%EC%98%B9%EC%A3%BC+%EC%9E%A5%EC%94%A8&amp;stick=H4sIAAAAAAAAAOPgE-LUz9U3MMooNMlW4tVP1zc0TDYuSy-zMC_TkshOttIvSM0vyEkFUkXF-XlWxQX5pcWpi1iF33TMeTtjzpsZO98s3qPwZt7SN1NW7GBlBAAIO5LvTwAAAA&amp;sa=X&amp;ved=2ahUKEwi93MSU9Kr0AhVTIIgKHdunCOgQmxMoBHoECAkQBg">순혜옹주 장씨</a> (1412년–1422년), <a href="https://www.google.com/search?safe=images&amp;client=tablet-android-samsung-ss&amp;v=12.37.22.23.arm64&amp;hl=ko-KR&amp;cs=0&amp;cds=2&amp;q=%ED%9A%A8%EB%B9%88+%EA%B9%80%EC%94%A8&amp;stick=H4sIAAAAAAAAAOPgE-LUz9U3MMooNMlW4tZP1zc0MjYwTyss05LITrbSL0jNL8hJBVJFxfl5VsUF-aXFqYtYed_OWvF6Z4fCq50Nb6as2MHKCABwu8KTRwAAAA&amp;sa=X&amp;ved=2ahUKEwi93MSU9Kr0AhVTIIgKHdunCOgQmxMoBXoECAkQBw">효빈 김씨</a> (1411년–1422년), <a href="https://www.google.com/search?safe=images&amp;client=tablet-android-samsung-ss&amp;v=12.37.22.23.arm64&amp;hl=ko-KR&amp;cs=0&amp;cds=2&amp;q=%EC%88%99%EA%B3%B5%EA%B6%81%EC%A3%BC+%EA%B9%80%EC%94%A8&amp;stick=H4sIAAAAAAAAAOPgE-LUz9U3MMooNMlW4tZP1zc0NS0st8gz1pLITrbSL0jNL8hJBVJFxfl5VsUF-aXFqYtYhd90zHy1eeurbY1vFu9ReLWz4c2UFTtYGQGVBK7OTQAAAA&amp;sa=X&amp;ved=2ahUKEwi93MSU9Kr0AhVTIIgKHdunCOgQmxMoBnoECAkQCA&amp;biw=712&amp;bih=1138&amp;dpr=2.25">숙공궁주 김씨</a> (1411년–1421년)</div><div><br>이방원에 큰 업적&nbsp;<br>&nbsp;&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11-18 02:10:1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4235</guid>
      </item>
      <item>
         <title>세종-박지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4970</link>
         <description><![CDATA[<div><br></div><div><strong>세종대왕</strong></div><div><br>1. 출생 - 사망 1397년 ~ 1450년<br><br>2. 본명 이도<br><br>3. 시대&nbsp; 조선<br><br>4. 직업 조선조 제4대 임금<br><br>5. 가족관계 <strong>아버지</strong> :태종<br><strong>어머니</strong> : 원경왕후 민씨<br><br></div><div>6. 세종대왕의 업적: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785132&amp;ref=y">집현전</a>을 넓히고, 궁중에 설치하여 학자를 키우고, 학문을 숭상하며, 옛 제도를 연구 검토하게 함으로써 정치와 문물제도를 정리하여 행정체제를 확립하였다. 역사, 지리, 정치, 경제, 천문, 도덕, 예의,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784355&amp;ref=y">문자</a>, 운학, 문학, 종교, 군사, 농사, 의약, 음악 등에 관한 각종 저서를 하게</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11-18 02:10:3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4970</guid>
      </item>
      <item>
         <title>태조-이성계 (왕오르기전)  (김성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6027</link>
         <description><![CDATA[<div>1.출생: 1335년 10월 11일, 영흥군<br>&nbsp;<br>&nbsp;2.업적: (1356년 <strong>공민왕의 명령</strong>으로 쌍성 총관부를 공격할 당시에</div><div><strong>아버지와 같이 공을 세워서 함경도지방의 경비</strong>가 되었습니다.&nbsp;</div><div>1631년 고려왕권을 위협하는 만호 박의의 반란을 평정하였고</div><div><strong>흥건적이</strong> 압록강이 언 틈을 타 <strong>공격, 수도를 빼앗겼으나</strong>&nbsp;</div><div><strong>이성계가</strong> 휘하의 고려인과 여진족의 조직을 거느리고</div><div><strong>다시 수도를 탈환</strong> 하였으며 이성계의 능력을 높게산</div><div>왕에 의해서 <strong>병마사</strong>에 올라가게 되었고&nbsp;</div><div>원나라의 군대를 격퇴시키면서 명성이 크게 알려졌습니다.)<br><br></div><ol><li>원나라와 홍건적을 격퇴 1356년 공민왕의 명령으로 쌍성 총관부를 공격할 당시에</li><li>신진사대부와의 연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개혁집단이지만 무력이 없는 신진대사부와 연을 맺어</li><li>황산대첩(왜구의 격퇴)</li><li>위화도 회군</li><li>조선 건국</li></ol><div>(왕오르기전)<br><br><br><br><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db.kookje.co.kr/news2000/photo/2010/1113/20101113.22015214444i3.jpg" />
         <pubDate>2021-11-18 02:11:0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6027</guid>
      </item>
      <item>
         <title>간송 전형필-박나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6232</link>
         <description><![CDATA[<div>인물이 한 일:<br>&nbsp; &nbsp;한국의 교육가이자 문화재 수집가로 민족문화재를 수집하는 데 힘썼으며 한남서림(翰南書林)을 지원·경영하며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nbsp;<br><br>&nbsp;인물의 출생과 사망:&nbsp;<br>&nbsp; &nbsp;본관은 정선이고 호는 간송이다. 1906년 7월 29일 서울 종로구에서 출생하였고, 1962년에 사망하였다.&nbsp;<br><br>인물이 이루워 낸 업적:<br>&nbsp; &nbsp;간송은 조선의 중요한 서화를 수집하면서 안목을 키워나갔고 스승 오세창의 지도와 조언을 받아 문화재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고,수집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1938년 개인 박물관인 보화각( 간송미술관)을 세웠다. 1954년 문화재 보존위원이 되었다.&nbsp;<br><br>인물이 수집 한 문화재:<br>&nbsp; &nbsp;신윤복의 미인도, 청선의 금강내산, 심사임당의 포도, 청자 상감 운학문매병 등이 있다<br><br>인물의 가족:<br>&nbsp; 배우자는 김점순이고, 아들은&nbsp;두명으로 전성우와 전영우이다. 형제로는 전형설이 있다.<br><br>출처-네이버 지식백과</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610/10/htm_20161010152630651761.png" />
         <pubDate>2021-11-18 02:11:1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6232</guid>
      </item>
      <item>
         <title>신사임당 -김효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6400</link>
         <description><![CDATA[<div>1.본명:<br>신인선<br><br><br>2.출생:<br>1504년 12월 5일<br>조선 강원도 강릉 죽헌리 북평촌<br><br><br>3.사망:<br>1551년 6월 20일 (46세)<br>조선 경기도 파주군 주내면 율곡촌<br><br><br>4.가족관계<br><br>남편 : 이원수(李元秀, 1501년 ~ 1561년)<br>장남 : 이선<br>장녀 : 이매창(李梅窓)<br>차남 : 이번<br>차녀 : 이씨<br>삼남 : 이이(李珥)<br>자부 : 교하 노씨, 노경린(盧慶麟)의 딸<br>삼녀 : 이씨<br>사남 : 이우(李瑀)<br><br><br>5.종교:<br>유교(성리학)<br><br>6.직업:<br>문인 · 유학자 · 화가 · 작가 · 시인<br><br><br>7.유명작품:<br> 산수도(山水圖), 초충도(草蟲圖), 연로도(蓮鷺圖), 자리도(紫鯉圖), 노안도(蘆雁圖), 요안조압도(蓼岸鳥鴨圖)와 6폭 초서병풍 등이 대표적이다.<br><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www.picturebook-illust.com/upload_board/new_Gallery/Original/d/201612841212.jpg" />
         <pubDate>2021-11-18 02:11:1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6400</guid>
      </item>
      <item>
         <title>서희-윤수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8155</link>
         <description><![CDATA[<div><br>1.출생<br>&nbsp; &nbsp;서희942년생998 사망<br>&nbsp;(지식백과)&nbsp;<br><br>2.외교 담판<br>&nbsp; &nbsp;거란의 침략 의도가 고려와 송나라의 관계를 끊는 데 있다는 것을 안 서희는 거란족의 장군 소손녕을 만나겠다고 자청했다<br>&nbsp;고려가 송나라와 관계를 끊는 대신, 거란으로 가는 길목인 압록강 동쪽 280리 지역을 돌려받기로 했다.<br>&nbsp; &nbsp;거란은 뒤늦게 이 지역이 중요한 군사 지역인 것을 알고 되돌려 달라고 했지만, 고려는 거부했다. 고려는 이 지역에 강동 6주를 설치하고 약속과 달리 거란에 사신을 보내지 않았다.<br>&nbsp;(지식백과)&nbsp;<br><br>3.업적<br>&nbsp;3-1. 서희는 거란(* 요나라)의 1차 칩입 때 무력이 아닌 "외교 담판"으로 거란의 80만 대군을 몰아낸다&nbsp;<br><br>​&nbsp;<br><br>3-2.당시 서희는 고려의 수도를 개경(* 개성)이 아닌 평양이라고 하여 고려가 곧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기 때문에 오히려 거란이 지금 차지하고 있는 영토는 고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강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 이에 거란의 소손녕을 따로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nbsp;<br><br>​&nbsp;<br><br>3-3. 외교 담판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고려가 "강동 6주"를 얻어내는 성과를 거둔다<br>(지식인 찬비내리는 숲)</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img.seoul.co.kr/img/upload/2016/06/07/SSI_20160607161949.jpg" />
         <pubDate>2021-11-18 02:12:0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8155</guid>
      </item>
      <item>
         <title>이재욱:세종대왕</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9917</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네이버 지식백과]</strong>세종 [世宗](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br> 서울 중구 덕수궁에 있는 조선 제4대 왕 세종(1397-1450)의 동상.<br> <br>1. 이칭별칭<strong>자:</strong> 원정(元正), <strong>시호</strong> 장헌(莊憲)<br> 2. 유형:인물<br> 3. 시대:조선<br> 4. 출생-사망:1397년(태조 6) ~ 1450년(세종 32)<br> 5. 성격:왕<br> 6. 출신지한양<br> 7. 성별:남<br> 8.본관:전주(全州) <br><br><strong>[네이버 지식백과]</strong>세종 [世宗](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br> 서울 중구 덕수궁에 있는 조선 제4대 왕 세종(1397-1450)의 동상.<br> <br>개설 <br><br>재위 1418∼1450.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도(李祹), 자는 원정(元正). 태종의 셋째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閔氏)이다. 비는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昭憲王后)이다. <br><br>1408년(태종 8)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지고, 1412년 충녕대군에 진봉(進封)되었으며, 1418년 6월 왕세자에 책봉되었다가 같은 해 8월에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했다.<br><br><strong>세종의 즉위 과정</strong> <br><br>원래 태종의 뒤를 이을 왕세자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이었다. 그러나 양녕대군이 개와 매[鷹]에 관계된 사건을 비롯해, 세자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킨 일련의 행동과 사건들로 인해 태종의 선위에 대한 마음이 동요되었다. <br><br>그래서 태종은 자신이 애써 이룩한 정치적 안정과 왕권을 이어받아 훌륭한 정치를 펴기에 양녕대군이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였다. 태종의 마음이 이미 세자 양녕대군에게서 떠난 것을 알게 된 신료(臣僚)들은 그를 폐위할 것을 청하는 소(疏)를 올려 양녕대군을 폐하고 충녕대군을 왕세자로 삼기에 이르렀다. <br><br>이 때 태종에게는 왕후 민씨 소생으로 양녕·효령(孝寧)·충녕 등 세 대군이 있었고, 양녕대군에게도 두 아들이 있었다. 따라서 그를 폐하고 새로이 세자를 세우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세자 폐립에 관해 의론이 분분하였다. <br><br>그러나 태종의 마음은 이미 셋째아들인 충녕대군에게 쏠려 있었다. 1418년 6월에 태종은 “충녕대군은 천성이 총민하고, 또 학문에 독실하며 정치하는 방법 등도 잘 안다.”라고 해 택현(擇賢: 어진 사람을 고르는 것)의 명분을 주어 세자로 책봉하기로 결정하였다. <br><br>이처럼 충녕대군에 대한 세자책봉은 태종의 뜻에 따라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대부분의 신하들도 이를 환영하였다. 두 달 뒤인 1418년 8월 10일 태종의 선위를 이어받아 세자 충녕대군이 왕위에 올랐으니 이 사람이 세종이다.&nbsp; <br><br>이처럼 세종은 모든 일을 행할 때 백성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 현명한 임금이었어. 그래서 그는 농사철에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관청에서 사업을 벌이지 못하도록 지시하였으며, 선진 농법을 소개한 『농사직설』을 발간하여 전국에 보급하기도 했다.<br><br>한글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종은 한자가 너무 어려워 많은 백성들이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집현전 학자들을 독려하여 훈민정음을 만들어 냈어. 그러나 훈민정음이 반포되었을 때, 당대의 지식인들은 크게 반발 했다. <br><br><strong>[네이버 지식백과]</strong> 세종은 어떻게 조선의 문화를 크게 꽃피웠나요? (장콩 선생님과 함께 묻고 답하는 한국사카페 1, 2011. 8. 5., 장용준(장콩), 서은경)</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448512355/5c2736157fd5cf90823c0d9f2741687f/9610ea1d_c25e_4c.png" />
         <pubDate>2021-11-18 02:12:5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19917</guid>
      </item>
      <item>
         <title>세종대왕의 업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24694</link>
         <description><![CDATA[<var>세종대왕은 1397년에 태어나 1450년에 생을마감 하였다.세종대왕은 본명이 이도
이고 본관이 전주이다. 아들은 원정,시호,장헌 이다.아버지는 조선의 왕 이셨던
태종대왕이시다.세종의 업적은 애민정신으로 부터 만들어졌다.
백성들이 날짜와 시기를 몰라,풍년이 들자
집현전에서 학자들을 모아 '칠정산과 농사직설'을 만들었다 칠정산은 지금의 달력과
 다를바가 없다.농사직설은 농사를 잘모르는 백성들을 위해만들었다.
또 세종은 절대음감이여서 한 음을 듣고도 음이다른걸 알아 챘다.
또 세종은 정영실을 학자로 만들어,혼천의,앙부일구,자격루를 만든 학자로 만들었다.
특히 농사에 도움이되었던 측우기를 만든 학자가 되었다.
또 백성들이 글을 모르자 과학적으로 한글을 만들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세종이 절대음감 이여서 음악이 발달하고,인쇄술과 언어(훈민정음)가
발달했다. 세종은 국방에도 힘을썼다. 대마도(쓰시마섬)을 정벌했다.
또 고을의 자세한 내용을 기록한 세종실록지리지 같은
지리책을 만들어 나라일에 활용했다.그러다 세종은 시력이 없어져갔지만,
백성을위해 계속 일을하다, 타계하셨다.</var>]]></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ost-phinf.pstatic.net/MjAxODA5MTBfMTk4/MDAxNTM2NTcwNjUwMDUy.F2G6NyAsR5sRYmOL-A8tQJxz6NuHVDARJ3g28EOBoNgg.g2JnkXNFM6A4C7ZloyowHQc_4skHr1PtOsKG0vA641sg.JPEG/%EC%84%B8%EC%A2%85.jpg?type=w1200" />
         <pubDate>2021-11-18 02:15:1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898424694</guid>
      </item>
      <item>
         <title>이순신 장군 최윤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905085118</link>
         <description><![CDATA[<div><br>출생-사망 | 1545 ~ 1598<br>본관 | 덕수(德水)<br>국적 | 조선<br>활동분야 | 군사<br>출생지 | 서울 건천동(現 인현동)<br>주요저서 | 《난중일기》<br>주요업적 | 임진왜란에서 왜적을 물리침<br>시대 | 조선시대<br><br>&nbsp; <strong>출생</strong></div><div>본관은 덕수이고, 자는 여해, 시호는 충무이다. 1545년(인종 1) 4월 28일 한성부 건천동(현재 인현동)에서 이정과 초계 변씨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보성군수 등을 지낸 방진(方震)의 딸인 상주 방씨와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으며, 이 밖에 해주 오씨와의 사이에 2남 2녀가 있었다.<br><br><strong>전라도 </strong><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15098&amp;ref=y"><strong>수군절도사</strong></a></div><div>1589년(선조 22) 이산해(李山海)의 추천으로 다시 관직에 나서게 된 이순신은 감사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34161&amp;ref=y">이광</a>(李洸)의 군관으로 전라도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그 해에 조방장(助防將)과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12048&amp;ref=y">선전관</a>(宣傳官) 등을 거쳐 정읍현감이 되었으며, 1591년(선조 24)에는 진도군수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부임하기도 전에 다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 전라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42641&amp;ref=y">좌수영</a>은 전함을 건조하고 군비를 확충하며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였다.<br><br><strong>임진왜란과 해전</strong></div><div>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수사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31083&amp;ref=y">원균</a>의 요청을 받아 경상도 해역으로 출정해 왜군과의 해전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두었다. 6월 16일 옥포와 합포에서 왜선 30여척을 격파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고(<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28910&amp;ref=y">옥포해전</a>), 다음날에도 적진포에서 10여척의 왜선을 격파하였다(<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39238&amp;ref=y">적진포해전</a>). 이 전투들에서의 승리로 조선 수군은 왜군과의 해전에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공으로 이순신은 종2품 가선대부로 승진했다. 7월 8일 원균과 합류해 사천에서 서해로 북상하려던 왜선 13척을 모두 격침시켰다(사천해전). 이 전투에서는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58356&amp;ref=y">거북선</a>이 처음으로 실전에 배치되었다. 7월 10일에는 당포에서 왜선 21척을 불태웠으며(<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27436&amp;ref=y">당포해전</a>), 7월 13일에는 왜군이 도주해 진을 치고 있는 당항포를 공격해서 왜선 26척을 격침시켰다(제1차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27437&amp;ref=y">당항포해전</a>). 이러한 잇따른 승리로 이순신은 정2품 자헌대부가 되었다.<br><br><br></div><div><br></div><div><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11-22 02:21:2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905085118</guid>
      </item>
      <item>
         <title>신사임당-김동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905088930</link>
         <description><![CDATA[<div>&nbsp; 태어난 날짜-1504년 강릉시 오죽헌<br>사망-1551년 5월17일 부간 평안도<br><br>신사임당이 살았던 시대- 조선시대<br><br>직업:화가,작가,시인<br><br>대표적 작품-초충도- 풀 벌레 열매 산수화 포도등을 잘 그렸다.<br><br>가족-</div><ul><li>남편 : 이원수</li><li>오남 삼녀<ul><li>장남 : 이선</li><li>장녀 : <a href="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9D%B4%EB%A7%A4%EC%B0%BD&amp;action=edit&amp;redlink=1">이매창</a>(李梅窓)</li><li>차남 : 이번</li><li>차녀</li><li>삼남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9D%B4">이이</a>(李珥)</li><li>자부(며느리) : </li><li>삼녀 : 이씨</li><li>사남 :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9A%B0_(1542%EB%85%84)">이우</a>(李瑀), 문신, 화가</li><li>오남 : 이준</li></ul></li></ul><div><br><br>가치관-<br>1.자신의 적성 살리기<br>2.남편과 수평적 부부관계 유지<br>3.자녀교육 중시<br><br><br>출처 네이버 지식in</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www.picturebook-illust.com/upload_board/new_Gallery/Original/d/201612841212.jpg" />
         <pubDate>2021-11-22 02:23: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905088930</guid>
      </item>
      <item>
         <title>세종대왕 -권민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905104664</link>
         <description><![CDATA[<div>출생 - 사망 &nbsp; 1397년~1450년<br>본명 -&nbsp; 이도<br>이명 -&nbsp; 원정 (元正)<br>묘호 -&nbsp; 세종 (世宗)<br><br>세종대왕의 업적 - 집현전 확충&nbsp; 주자소 설치, 활자 만듦&nbsp; 훈민정음 창제 음악 작곡 &nbsp;<br>앙부일구, 혼천의, 측우기 등 발명&nbsp; 이종무로 하여금 대마도를 토벌하게 하여 항복을 받음<br>4군 6진 개척&nbsp; 세종실록지리지 등<br><br>세종대왕의 명언 -&nbsp;<br>*남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고,<br>위엄과 무력으로 엄하게 다스리는 자는 항상 사람들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br><br>*고기는 씹을수록 맛이 난다. 그리고 책도 읽을수록 맛이 난다.<br>다시 읽으면서 처음에 지나쳤던 것을 발견하고, 새롭게 생각하는 것이다.&nbsp;<br>말하자면 백 번 읽고 백 번 읽히는 셈이다. 어찌나 같은 사람으로서 책을 백 번도 안읽겠는가.<br><br>세종대왕의 용인술 5가지 -<br>(1) 마음이 착한지를 보았다.<br>(2) 열정이 있는가를 보았다.<br>(3) 단점을 덮고 장점을 보고 이를 최대한 발휘하게 한다.<br>(4) 정실을 배제하고 역량 위주로 선발했다.<br>(5) 일단 채용했으면 의심치 않고 믿었다.<br><br>*출처 : NAVE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newsimg.sedaily.com/2020/05/13/1Z2QG18AJV_1.jpg" />
         <pubDate>2021-11-22 02:34:1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905104664</guid>
      </item>
      <item>
         <title>이방원 김예서 (출처:네이버 지식백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905108587</link>
         <description><![CDATA[<div>출생:1367~1422/재위기간:1400~1418<br><br>이방원의 개인정보:태조와 신의왕후사이에서 태어남.다섯째아들 (12남 17녀)29명의 자녀와 10명의 부인이 있음.<br><br>업적:개국파의 마지막걸림돌 개혁파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살해함.1400년 조선 3대왕으로 즉위함.세금을 정확하게 물리는 제도를 만듬.<br><br><br><br><br><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11-22 02:36:3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905108587</guid>
      </item>
      <item>
         <title>신사임당 이세인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905109912</link>
         <description><![CDATA[<div>출처:네이버 지식백과 <br><br>시대:조선<br>유형&nbsp; 인물<br>출생 - 사망1504년(연산군 10) ~ 1551년(명종 6)<br>&nbsp; 성격 화가<br>&nbsp; 성별 여<br>&nbsp; 본관 평산(平山)<br>&nbsp; 저서(작품) 자리도, 산수도, 초충도, 노안도 <br><br><strong>정의</strong> <br><br>조선전기 「자리도」의, 「초충도」의, 「노안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br><br><strong>개설</strong> <br><br>본관은 평산(平山). 아버지는 신명화(申命和)이며, 어머니는 용인 이씨로 이사온(李思溫)의 딸이다. 남편이 증좌한성 이원수(李元秀)이고, 조선시대의 대표적 학자이며 경세가인 이이(李珥)의 어머니이다. 시·그림·글씨에 <br> <br><br><strong>생애 및 활동사항</strong>&nbsp;<br><br>사임당은 당호이며, 그 밖에 시임당(媤任堂)·임사재(妊思齋)라고도 하였다. 당호의 뜻은 중국 고대 주나라의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을 본받는다는 것으로서, 태임을 최고의 여성상으로 꼽았음을 알 수 있다. 외가인 강릉 북평촌(北坪村)에서 태어나 자랐다.<br>&nbsp;<br><br>성격만큼이나 그림·글씨·시도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데, 그림은 풀벌레·포도·화조·어죽(魚竹)·매화·난초·산수 등이 주된 화제(畫題)이다. 마치 생동하는 듯한 섬세한 사실화여서 풀벌레 그림을 마당에 내놓아 여름 볕에 말리려 하자, 닭이 와서 산 풀벌레인 줄 알고 쪼아 종이가 뚫어질 뻔하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br> &nbsp;<br><br>신사임당의 시<br> (신사임당의 명언은 찾아봐도 없어서 시로 올립니다;;)<br><br>대관령은 넘어서 친정을 바라보다&nbsp;<br><br>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br> 외로이 서울길로 가는 이 마음<br>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br> 흰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br> 어머님 그리워<br> 산 첩첩 내고향 천리언마는<br> 자나깨나 꿈속에도 돌아가고파<br> 한송정 가에는 외로이 뜬 달<br>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br> 갈매기 모래톱에 헤락 조이락<br> 고깃배들 바다 위로 오고가려니<br> 언젠가 강릉길 다시 밟아 가<br> 색동옷 입고 앉아 비느질할꼬</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www.picturebook-illust.com/upload_board/new_Gallery/Original/d/201612841212.jpg" />
         <pubDate>2021-11-22 02:37:3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hdwldjs258/id3cvuigsyvx0w9o/wish/1905109912</guid>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