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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례조사-진정한 사과가 미래를 만든다 by Tae Yun Kyoun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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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3-05-06 05:23: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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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33 경태윤&lt;예시&gt;</title>
         <author>korea0103409792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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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강제##<br>사례: 교과서 서술내용, 정치인발언 등등<br>출처: 개인블로그 등 신빙성이 떨어지는 매체나<br>&nbsp; &nbsp; &nbsp; &nbsp; &nbsp;카더라 뉴스는 출처로 인정하지 않음<br>내용</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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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6 05:34: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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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33 경태윤&lt;예시&gt;</title>
         <author>korea0103409792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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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강제##<br>사례: 교과서 서술내용, 정치인발언 등등<br>출처: 개인블로그 등 신빙성이 떨어지는 매체나<br>&nbsp; &nbsp; &nbsp; &nbsp; &nbsp;카더라 뉴스는 출처로 인정하지 않음<br>내용</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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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6 05:36: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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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33 경태윤&lt;예시&gt;</title>
         <author>korea0103409792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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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강제##<br>사례: 교과서 서술내용, 정치인발언 등등<br>출처: 개인블로그 등 신빙성이 떨어지는 매체나<br>&nbsp; &nbsp; &nbsp; &nbsp; &nbsp;카더라 뉴스는 출처로 인정하지 않음<br>내용</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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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6 05:37: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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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20 조경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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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독도vs다케시마<br>(사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잘못된주장<br>(출처)http://contents.nahf.or.kr/eddokViewer/contens.do?viewType=Elementary&amp;levelId=eddok.d_0002_0050_0010<br>(설명) 1904년 일본의 어업인이 독도에서 강치잡이를 독점하기 위해서 일본 정부에 독도 영토 편입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독도를 ‘죽도(다케시마)’라고 이름 붙이고 독도 영토 편입을 일방적으로 결정했습니다. 일본은 이러한 결정을 소위 ‘시마네 현 고시 제40호’를 통해 알렸다고 하면서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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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0:29: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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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최홍영 3122</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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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strong>강제징용</strong>은 일본 제국주의가 노동력 보충을 위해 조선인을 강제노동에 동원하고, 종사하게 한 일을 말합니다. 중국 침략 전에는 조선의 값싼 노동력을 모집하여 일본의 토목공사장·광산에서 집단노동하게 했으나, 중·일전쟁(1937) 후부터는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고 국민 징용령을 실시, 강제동원에 나섰다고해요.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113만 혹은 146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어요. 이들은 주로 탄광·금속광산·토건공사·군수공장에서 가혹한 노동조건 밑에 혹사를 당했습니다. 또한 ‘근로동원’이란 명목으로 초등학생까지 군사시설공사에 동원했으며, 1944년에는 ‘여자정신대근무령’을 발표, 12세에서 40세까지의 여성 수십만 명을 강제징집, 군수공장에서 일하게 하거나 군대 위안부로 보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강제징용된 조선인은 공사 후 기밀유지를 이유로 집단 학살당한 경우도 있고요. 일본 정부는 1990년 6월 강제징용 한국인 총수를 66만7648명으로 공식 발표했을 뿐, 이들에 대한 어떤 보상도 외면하고 있다고 합니다.<br><br>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br>여운택과 이춘식은 1941~43년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일본제철의 일본 공장에 강제동원돼 고된 노역을 했다. 그러나 일제 패망 이후 여씨 등은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한 채 귀국했다.<br><br>일본에서의 소송<br>여운택과 이춘식은 1997년 일본 법원에 임금과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997년 12월 24일 일본 <a href="https://namu.wiki/w/%EC%98%A4%EC%82%AC%EC%B9%B4">오사카</a>지방재판소에, 피고인 신일본제철 주식회사와 일본국을 상대로 국제법 위반 및 불법행위 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금과 강제노동기간 동안 지급받지 못한 임금 등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던 것.<br><br>그러나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는 2001년 3월 27일 원고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에 원고들은 오사카고등재판소에 항소하였으나, 2002년 11월 19일 항소기각판결을 선고받았다. 이에 원고들은 일본 최고재판소에 상고하였으나, 2003년 10월 9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상고기각 및 상고불수리 결정을 내렸고, 이로써 위 판결들이 확정되었다.<br><br>일본판결은 위 원고들을 사건 당시 일본인이었던 것으로 보고, 당시의 한반도를 일본 영토의 구성부분으로 봄으로써 위 원고들의 청구에 적용될 준거법을 일본법으로 정하였다. 일본의 한국병합 경위에 관하여 일본판결은 다음과 같이 설시하였다.<br><br>또한 일본판결은 구 일본제철의 위 원고들에 대한 채무가 구 일본제철과 별개의 법인격을 가지고 있는 피고 신일본제철 주식회사에 승계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더라도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일본의 재산권조치법에 의해 위 채무는 소멸하였다고 설시하였다. 다만 일본판결은 구 일본제철이 사전 설명과 달리 위 원고들을 오사카제철소에서 자유가 제약된 상태로 위법하게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한 점, 실질적인 고용주로서 위 원고들에 대하여 일부 임금을 지급하지 아니하고, 안전배려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한 점 등 위 원고들의 청구원인에 관한 일부 주장을 받아들였다.<br><br>1심<br>이에 여씨 등 4인의 원고는 위의 일본소송이 종료한 이후인 2005년 2월 28일 대한민국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피고인 신일본제철 주식회사를 상대로 국제법 위반 및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금의 지급을 구하면서 소송을 제기하였다. 원고 2인은 일본소송에서 주장한 청구원인과 동일한 내용을 이 사건 소송의 청구원인으로 하였다.<br><br>2008년 4월 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0부(윤준 부장판사)는 지난 2005년 일제 강점기 때 강제징용을 당했다가 귀국한 여운택(85) 등 5명이 "미불 임금과 돌려받지 못한 강제 저축금·위자료 등을 지급하라"며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5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br><br>재판부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의 시효가 소멸됐다는 점 ▲일본제철과 신일본제철은 서로 다른 회사라는 점 등을 들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했다.<br><br>재판부는 "당시 일본 정부의 조직적인 인력 동원에 일본제철이 적극적으로 참여, 인력 확충에 나선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일본제철과 신일본제철은 법인격도 다르고 채무승계 관계에 있지도 않은 만큼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할 권리가 없다"며 "여씨 등 2명은 일본에서 최종 패소 확정 판결을 받았고, 일본 법정의 판결이 국내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밖의 사회질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국내에서도 기속력을 갖는 만큼 다시 판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br><br>다만 재판부는 "원고 중 이씨 등 3명의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협정에 의해 소멸된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가 일본과 맺은 청구권 협정에 의해 우리나라 국민의 일본국에 대한 청구권 자체가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br><br>또한 재판부는 이날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그것에 대한 한국 법원의 재판관할권도 인정해 눈길을 끌었다.<br><br>재판부는 "일본 정부가 제철소에 인력을 강제 동원하고 구 일본제철도 일본정부의 동원 정책에 가담하는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원고들은 일제 강점기하에서 기망에 의해 동원됐고 어린 나이에 구체적 임금도 모른 채 강제노동에 종사했다는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일본정부가 제철소 인력 확보를 위해 어린 나이의 원고들을 강제로 징집하고 열악한 환경속에서 강제 노역을 하게 한 점 ▲원고들이 가족과 떨어져 구체적 임금 액수도 모른 채 상시 감시를 당하며 일본 정부의 조직적 기망행위에 이용당한 점 등은 증거 자료에 의해 충분히 입증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고들이 동원돼 강제노동을 했기 때문에 불법행위는 대한민국 내 원고들의 각 거주지역에서 원고들을 동원한 것으로부터 일본에 이르러 강제노동에 종사시키기까지 일련의 계속된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므로 대한민국은 불법행위지에 해당하고, 우리나라 법원에 재판관할권이 있다"고 밝혔다.<br><br>2심<br>2009년 7월 16일, 서울고법 제21민사부(김주현 부장판사)는 원심과 마찬가지로 패소 판결하였다.<br><br>대법원<br>그러나 2012년 5월 대법원 1부(주심 <a href="https://namu.wiki/w/%EA%B9%80%EB%8A%A5%ED%99%98">김능환</a> 당시 대법관)는 다음과 같이 원고승소 취지의 <a href="https://namu.wiki/w/%ED%8C%8C%EA%B8%B0%ED%99%98%EC%86%A1">파기환송</a> 판결을 내렸다.<br><br>먼저 일본판결의 이유에는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하여, 일제의 <a href="https://namu.wiki/w/%EA%B5%AD%EA%B0%80%EC%B4%9D%EB%8F%99%EC%9B%90%EB%B2%95">국가총동원법</a>과 국민징용령을 한반도와 위 원고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는 <a href="https://namu.wiki/w/%EB%8C%80%ED%95%9C%EB%AF%BC%EA%B5%AD%20%ED%97%8C%EB%B2%95">대한민국 헌법</a>에 위배된다고 하였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a href="https://namu.wiki/w/3.1%20%EC%9A%B4%EB%8F%99">3·1운동</a>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러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비추어 볼 때,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강점)에 지나지 않고, 일본의 불법적인 지배로 인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그 효력이 배제된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br><br>이에 따른다면, 일본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판결 이유가 담긴 일본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임이 분명하고,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일본판결을 승인하여 그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br><br>또한 <a href="https://namu.wiki/w/%EC%8B%A0%EC%9D%BC%EB%B3%B8%EC%A0%9C%EC%B2%A0">신일본제철</a>이 구 일본제철과 동일한 법인격인지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일본법이 아닌 한국법에 따라 두 회사가 동일한 회사라고 판시하였다. 구 일본제철이 신일본제철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신일본제철이 구 일본제철의 영업재산, 임원, 종업원을 실질적으로 승계하여 회사의 인적, 물적 구성에는 기본적인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 국내법인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 등에 따르면, 구 일본제철이 해산되고 제2회사가 설립된 뒤 흡수합병의 과정을 거쳐 신일본제철로 변경되는 등의 절차를 거친 이상, 두 회사는 동일한 회사가 아닌 게 되지만, 이러한 일본 국내법들은 전후처리 및 배상채무 해결을 위한 일본 국내의 특별한 목적 아래 제정된 기술적 입법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본 국내법을 이유로 구 일본제철의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채무가 면탈되는 결과로 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비추어 용인할 수 없다고 보았다.<br><br>또한 1965년의 <a href="https://namu.wiki/w/%ED%95%9C%EC%9D%BC%EA%B8%B0%EB%B3%B8%EC%A1%B0%EC%95%BD">청구권협정</a>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하였다.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a href="https://namu.wiki/w/%EC%83%8C%ED%94%84%EB%9E%80%EC%8B%9C%EC%8A%A4%EC%BD%94%20%EC%A1%B0%EC%95%BD">샌프란시스코 조약</a>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서, 청구권협정 제1조에 의해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은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 대가관계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아니하였음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아니하였다고 판시하였다.<br><br>나아가 국가가 조약을 체결하여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함에 그치지 않고 국가와는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국민의 개인<a href="https://namu.wiki/w/%EC%B2%AD%EA%B5%AC%EA%B6%8C">청구권</a>을 직접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근대법의 원리와 상충되는 점을 대법원은 지적하였다. 설령 국가가 조약을 통하여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것이 국제법상 허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와 국민 개인이 별개의 법적 주체임을 고려하면, 조약에 명확한 근거가 없는 한 조약 체결로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 이외에 국민의 개인청구권까지 소멸하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인데, 청구권협정에는 개인청구권의 소멸에 관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점 역시 지적되었다.<br><br>마지막으로 <a href="https://namu.wiki/w/%EC%86%8C%EB%A9%B8%EC%8B%9C%ED%9A%A8">소멸시효</a>와 관련해서는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시하였다. 적어도 위 원고들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할 시점인 2005년 2월까지는 위 원고들이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근거에서였다. 따라서 구 일본제철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법적 지위에 있는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여 위 원고들에 대한 채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대법원은 판시하였다.<br><br>파기환송심<br>2013년 7월 10일, 서울고법 민사19부(윤성근 부장판사)는 여운택, 이춘식씨 등 4명이 신일본제철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원고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br><br>재판부는 "일본의 핵심 군수업체였던 구 일본제철은 일본 정부와 함께 침략 전쟁을 위해 인력을 동원하는 등 반인도적인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 침략 전쟁은 국제질서와 대한민국 헌법뿐 아니라 현재 일본 헌법에도 반하는 행위다"며 "신일본제철이 구 일본제철과의 동일성을 부정하거나 한일청구권협정 등을 내세워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수호하고자 하는 핵심적 가치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행위 불법성의 정도와 그 고의성, 피해 정도, 50년이 넘는 기간 책임을 부정한 태도 등과 함께 국민소득 수준이나 통화가치가 변화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자료 액수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br><br>원고 여씨는 판결 선고 직후 "18살에 일본에 가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나처럼 원한 맺힌 대한민국 국민이 몇 명이나 더 있을지 모르겠다. 걱정하고 성원해 준 여러분께 백 번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br><br>대법원 재판거래 및 선고지연<br>파기환송심 이후 피고인 일본 신일철주금 주식회사는 이에 재상고를 하였고,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넘어가게 된다.<br><br>그러나 2013년 2월 출범한 <a href="https://namu.wiki/w/%EB%B0%95%EA%B7%BC%ED%98%9C">박근혜</a> 정부는 한일관계를 고려해 소송 결과가 번복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마침 그 전부터 <a href="https://namu.wiki/w/%EC%96%91%EC%8A%B9%ED%83%9C">양승태</a>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2년 5월 대법원판결에 대해 "선고 전 김능환 대법관이 귀띔도 안 해주고 선고해 전원합의체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불만을 드러낸 상태였다.<br><br>미쓰비시 등 전범기업을 대리한 <a href="https://namu.wiki/w/%EA%B9%80%EC%95%A4%EC%9E%A5">김앤장</a> 법률사무소 측은 손해배상 인정 판결에 대한 양 전 대법원장의 부정적 입장을 확인한 뒤 법원행정처 수뇌부와 적극 접촉해 '판결 뒤집기'를 시도했다. 그래서 김앤장 송무팀을 이끌던 한상호 변호사가 2013년 3월 양 전 대법원장을 직접 만났고, 이때 양 전 대법원장은 "한일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데 결론이 적정한지도 모르겠다"는 취지를 밝혔다.<br><br>이후 <a href="https://namu.wiki/w/%EA%B9%80%EC%95%A4%EC%9E%A5">김앤장</a>은 <a href="https://namu.wiki/w/%EC%9C%A0%EB%AA%85%ED%99%98">유명환</a> 전 외교부 장관, <a href="https://namu.wiki/w/%ED%98%84%ED%99%8D%EC%A3%BC">현홍주</a> 전 주미대사 등 전직 외교부 고위공무원과 법관으로 구성된 강제징용사건 대응팀을 만들어 양승태 사법부 고위 관계자들을 비공식적으로 수시 접촉했다. 당시 양승태 사법부와 청와대는 외교부가 강제징용 소송에 대한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하면, 대법원은 의견서를 근거로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마침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판결이 확정되면 나라 망신이고 국격 손상"이라며 대법원에 외교부 의견서를 보내 다른 해결책을 찾으려 애썼다. 그때는 한·일 위안부 협상을 진행했던 시기로, 일본과 신뢰를 구축할 필요성이 있었다.<br><br>그러나 외교부는 의견서 제출을 머뭇거렸다. 이에 <a href="https://namu.wiki/w/%EA%B9%80%EC%95%A4%EC%9E%A5">김앤장</a> 한상호 변호사는 2015년 11월 양 전 대법원장을 찾아가 "외교부가 소극적이어서 걱정이다"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양 전 대법원장은 "외교부의 요청으로 시작된 일인데, 외교부가 절차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였다.<br><br>이때 <a href="https://namu.wiki/w/%EC%9E%84%EC%A2%85%ED%97%8C">임종헌</a>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김앤장 측에 외교부의 의견 제출을 요청하는 촉구서를 제출하라는 '컨설팅'을 해주었다. 임 전 차장은 여기서 더 나아가 김앤장 측에서 써온 촉구서를 직접 고쳐주었고, 김앤장 측에 "(외교부에 지금) 촉구서를 내라, 주심 김용덕 대법관과도 얘기가 됐다"고 문서 제출 시기까지 세밀하게 조율하기도 했다.<br><br>그리고 김앤장이 촉구서를 제출한 직후인 2016년 10월께 한상호 변호사가 양 전 대법관의 집무실로 찾아가 "외교부가 이번에는 잘하겠지요"라고 묻자 양 전 대법관은 "잘 되겠지요"라며 전원합의체를 통해 청구 기각 판결을 내주겠다는 입장을 확인해줬다. 그 후 청와대와 외교부는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이 조기에 선고되지 않도록 해주고, 외교적 차원의 의미와 파장 등을 고려해 전원합의체 회부를 통해 신중히 결정해 달라"고 사법부에 수차례 관련 요청을 넣었다.<br><br>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서둘러 회부하지 않고, 청와대와 협상을 시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로 2019년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양승태 대법원은 대법원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의 도입과 법관의 해외 공관 파견 확대를 위한 지렛대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활용하려 했다고 한다.<br><br>뿐만 아니라 양승태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에 <a href="https://namu.wiki/w/%EC%86%8C%EB%A9%B8%EC%8B%9C%ED%9A%A8">소멸시효</a>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국회 입법 추진에 반대하기도 했다. 2015년 3월 국회에서 <a href="https://namu.wiki/w/%EC%9D%B4%EC%96%B8%EC%A3%BC">이언주</a> 의원 등에 의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에는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일제강점하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소송에 관한 특례법안'이 발의되자, 당시 <a href="https://namu.wiki/w/%EB%B2%95%EC%9B%90%ED%96%89%EC%A0%95%EC%B2%98">법원행정처</a> 사법지원실은 <a href="https://namu.wiki/w/%EB%B0%95%EB%B3%91%EB%8C%80">박병대</a>와 강형주 당시 <a href="https://namu.wiki/w/%EB%B2%95%EC%9B%90%ED%96%89%EC%A0%95%EC%B2%98">법원행정처</a> 차장에게 "법률안이 제정될 경우 소급 입법에 해당해 위헌 시비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보고를 한 것.<br><br>이후 <a href="https://namu.wiki/w/%EB%B2%95%EC%9B%90%ED%96%89%EC%A0%95%EC%B2%98">법원행정처</a>는 <a href="https://namu.wiki/w/%EB%B0%95%EB%B3%91%EB%8C%80">박병대</a>의 승인 하에 국회에 법률 제정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전달했고, 2016년 <a href="https://namu.wiki/w/%EC%A0%9C19%EB%8C%80%20%EA%B5%AD%ED%9A%8C">제19대 국회</a> 임기 만료와 함께 법안은 폐지됐다. 당시 <a href="https://namu.wiki/w/%EB%B2%95%EC%9B%90%ED%96%89%EC%A0%95%EC%B2%98">법원행정처</a>는 2012년 "일본 전범기업에 배상책임이 있다"고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기산점으로 민법상 소멸시효 3년이 지날 때까지 재상고심 결론을 내지 않는 방안을 구상했다.<a href="https://news.v.daum.net/v/20190212231149558">연합뉴스</a> 실제로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에 대한 재상고심 심리와 선고를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시기인 2017년 9월까지 계속 미뤘다.<br><br>대법원 전원합의체 확전 판결<br>그 후 2017년 9월 25일 <a href="https://namu.wiki/w/%EA%B9%80%EB%AA%85%EC%88%98(%EB%B2%95%EC%A1%B0%EC%9D%B8)">김명수</a> 대법원장이 새로 취임하였음에도, 대법원은 이 사건의 심리와 선고를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8년 7월에야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재판장 <a href="https://namu.wiki/w/%EA%B9%80%EB%AA%85%EC%88%98(%EB%B2%95%EC%A1%B0%EC%9D%B8)">김명수</a> 대법원장)에 회부했다. 그 얼마 후인 2018년 8월경에는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직 당시의 사법부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을 갖고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하려 했다는 정황이 발견되었다.<br><br>그리고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회부 이후 겨우 석달만인 2018년 10월 30일에 이 사건의 확정판결을 선고했다. 이렇게 선고를 서두른 것은, ‘재판거래’ 의혹에 따른 사법 불신이 깊어질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a h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7981.html">#</a><br><br><a href="https://www.scourt.go.kr/supreme/news/NewsViewAction2.work?pageIndex=1&amp;seqnum=6391&amp;gubun=4&amp;type=5">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대법원 2018. 10. 30. 선고 전원합의체 판결)</a>, <a href="https://www.scourt.go.kr/sjudge/1540892085928_183445.pdf">2013다61381 판결문 전문</a>, <a href="https://www.scourt.go.kr/portal/news/NewsViewAction.work?seqnum=1585&amp;gubun=6&amp;searchOption=&amp;searchWord=">대법원 선고 2013다61381 손해배상(기) 사건에 관한 보도자료</a><br><br>전원합의체는 최종확정판결에서 지난 2012년 5월의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당시 대법관) 판결을 대부분 그대로 재확인했다. 먼저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 여부에 관하여, 전원합의체는 ‘여씨 등 원고패소로 확정된 일본 법원의 판결 효력’에 대해 “일본의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전제 아래 <a href="https://namu.wiki/w/%EC%9D%BC%EC%A0%9C%EA%B0%95%EC%A0%90%EA%B8%B0">일제강점기</a>의 법령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일본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므로,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일본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현재의 신일본제철이 여씨 등을 강제동원한 옛 일본제철을 그대로 승계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며, 여씨 등 피해자들이 옛 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신일철주금에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br><br>대법원은 이와 함께 “여씨 등이 2005년 2월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당시까지도 피해자들이 피고 일본기업을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일본기업이 <a href="https://namu.wiki/w/%EC%86%8C%EB%A9%B8%EC%8B%9C%ED%9A%A8">소멸시효</a>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br><br>그리고 핵심 쟁점인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a href="https://namu.wiki/w/%ED%95%9C%EC%9D%BC%EA%B8%B0%EB%B3%B8%EC%A1%B0%EC%95%BD">한일협정</a>)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는지’에 대해, 대법원 <a href="https://namu.wiki/w/%EC%A0%84%EC%9B%90%ED%95%A9%EC%9D%98%EC%B2%B4">전원합의체</a>는 7대6 의견으로 ‘피해자들의 <strong>개인</strong>청구권은 <a href="https://namu.wiki/w/%ED%95%9C%EC%9D%BC%EA%B8%B0%EB%B3%B8%EC%A1%B0%EC%95%BD">한일협정</a>에 불구하고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기업의 반인도적 <a href="https://namu.wiki/w/%EB%B6%88%EB%B2%95%ED%96%89%EC%9C%84">불법행위</a>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에 대한 <a href="https://namu.wiki/w/%EC%9C%84%EC%9E%90%EB%A3%8C">위자료</a> 청구권’이어서 <a href="https://namu.wiki/w/%ED%95%9C%EC%9D%BC%EA%B8%B0%EB%B3%B8%EC%A1%B0%EC%95%BD">한일협정</a>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수의견은 “따라서 한일협정으로 피해자들의 개인적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은 그 이유로 △청구권 협정으로 일본이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이 권리 문제의 해결과 법적 대가 관계라고 보기 어렵고,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면서, 한-일 정부가 일본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대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 등에 들었다.<br><br>다만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해 <a href="https://namu.wiki/w/%EA%B6%8C%EC%88%9C%EC%9D%BC">권순일</a>·<a href="https://namu.wiki/w/%EC%A1%B0%EC%9E%AC%EC%97%B0">조재연</a> 대법관은 “개인 청구권은 한일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며, 한일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권리행사가 제한된다”고 반대의견을 밝혔다. <a href="https://namu.wiki/w/%EC%9D%B4%EA%B8%B0%ED%83%9D(%EB%B2%95%EC%A1%B0%EC%9D%B8)">이기택</a> 대법관은 “손해배상청구권은 한일협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2012년 5월 대법원 소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따라 이번에도 같은 판결을 해야 한다”고 다수의견의 결론에 찬동하는 취지의 별개의견을 밝혔다. <a href="https://namu.wiki/w/%EA%B9%80%EC%86%8C%EC%98%81(%EB%B2%95%EC%A1%B0%EC%9D%B8)">김소영</a>·<a href="https://namu.wiki/w/%EC%9D%B4%EB%8F%99%EC%9B%90(%EB%B2%95%EC%A1%B0%EC%9D%B8)">이동원</a>·<a href="https://namu.wiki/w/%EB%85%B8%EC%A0%95%ED%9D%AC">노정희</a> 대법관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한일협정의 적용대상에는 포함되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된 것에 불구하므로 피해자들은 일본기업을 상대로 우리나라에서 개인적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별개의견을 냈다.<br><br>https://youtu.be/qZFUCcAo-Kk<br><br>https://youtu.be/VVHAjf4yanU<br><br>출처 나무위키<br>영상출처 비디오머그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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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0:30: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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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2김견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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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강제징용 Vs 지원채용<br>사례: 군함도 옛 도민의 거짓되고 모순된 증언<br>영상 처럼 한국에서 군함도 강제징용 피해를 증언하는 사람의 증언이 모순되고, 거짓인 점이 있다는 것과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미군 및 대한민국 군경을 총기로 공격한 극좌파 친북 공산주의 게릴라 활동을 했다는 점을 들어 "지리멸렬한 주체사상파 극좌분자의 거짓선동" 이라거나 한국에서 팩트체크조차 안하고 잘못된 사실을 군함도 만행으로 호도한 언론의 오류를 찾아내어 적극적으로 군함도 노역자 학대와 학살은 거짓 선동이라 홍보 하고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단체는 '올바른 역사를 추구하는 하시마 도민회(真実の歴史を追求する端島島民の会, 하시마회)'이며, 일반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 산하 사이트 '<a href="https://www.gunkanjima-truth.com/l/ko-KR/index.htm">군함도의 진실: 조선인 징용공의 검증</a>'을 통해 이를 선동하고 있다<br><br>태평양 전쟁 <strong>당시 많은 식민지 주민들과 전쟁 포로들이 군함도에 </strong><a href="https://namu.wiki/w/%EA%B0%95%EC%A0%9C%20%EC%A7%95%EC%9A%A9"><strong>강제 징용</strong></a><strong>되어 끌려왔다.</strong> 그 중 조선인은 징용 및 요시다합숙소 노동자가 도합 500~600명 정도였으며, 자의로 온 조선인 노동자가 추가적으로 80명 정도 있었다.<br><br>1986년 일본의 시민단체인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서 사료로서 제시한 화장매장인허증에 따르면 1925년~1945년 사이 하시마 탄광에서 총 1,295명이 숨졌으며 이 중 조선인은 122명이었다.<br><br>섬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당시 조선인들은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지옥문'이라고 불렀으며 섬 자체도 지옥섬 또는 감옥섬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게다가 이들이 받은 대우는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할 정도. 파도가 들이치는 바닷가 집에 강제로 살게 했는가 하면 햇빛도 안 들어오는 아파트 지하층에서 살게 한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군함섬을 탈출하려고 시도한 조선인들이 여럿 있었으나 험한 파도에 휩쓸리거나 발각되어 총살당하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였다고 한다. 기껏 파도를 헤치고 탈출에 성공해도 다다른 곳은 전시 상태의 일본 본토였다. 즉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이다.<br><br>한 때 이 섬에 한글로 된 낙서가 있는 것이 알려지기도 했으나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처참한 학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고 한다. 그리고 징용이 본격화된 그 시기에는 한글과 한국어를 썼다는 까닭만으로 엄청난 처벌과 학대를 받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를 미루어 생각해 보면 글로 남기지도 못할 학대의 상흔이 남아 있는 곳임은 틀림없다.<br><br>출처: 나무위키<br>영상출처: https://youtu.be/4i2LzqGHScQ</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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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0:35: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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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01 김달환</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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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위안부 강제차출vs위안부 존재부정or희망지원<br><br>사례:위키백과<br><br>출처: https://ko.m.wikipedia.org/wiki/%EC%9C%84%EC%95%88%EB%B6%80<br><br>내용: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A0%9C2%EC%B0%A8_%EC%84%B8%EA%B3%84%EB%8C%80%EC%A0%84">제2차 세계대전</a> 당시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9D%BC%EB%B3%B8%EC%A0%9C%EA%B5%AD">일본</a> 정부는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A4%91%EC%9D%BC%EC%A0%84%EC%9F%81">중일전쟁</a>과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D%83%9C%ED%8F%89%EC%96%91%EC%A0%84%EC%9F%81">태평양전쟁</a>을 치르는 동안 일본 군인들의 성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집단적 성행위 장소인 이른바 군대 위안소를 제도화하고, 식민지 및 점령지 출신의 여성들을 전선으로 수송하여 성노예 역할을 강요했다.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A%B9%80%EC%A2%85%ED%95%84">김종필</a> 전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A%B5%AD%EB%AC%B4%EC%B4%9D%EB%A6%AC">국무총리</a>는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9D%BC%EC%A0%9C%EA%B0%95%EC%A0%90%EA%B8%B0">일제강점기</a>에 위안부로 끌려가던 조선의 누이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9C%84%EC%95%88%EB%B6%80#cite_note-15"><sup>[15]</sup></a> 일본군이 영내에 설치된 위안소에 식민지 여성들을 끌고 가 병사들을 상대로 강제적인 성노리개로 삼았는데, 이를 자기들 용어로는 "위안부"라고 불렀다. 위안부란 말도 실제로는 완곡어법에 불과했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성노예였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여성들의 의사에 관계없이 강제로 끌고 가거나 혹은 "일자리를 소개시켜 준다",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라고 모집한 뒤 태평양 섬 등지의 외딴 곳에 성노예로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사 성매매를 시킨다고 고지한 후에 데려갔다고 하더라도 위안부자체는 심각한 인권 유린이다. 절도를 할 때 모르게 절도를 하는 것과 위협을 하여 알게 뺏는 강도의 차이 정도에 불과하다<br><br>일본의 입장<br>일명, 고노 담화라고 일컬어지는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9C%84%EC%95%88%EB%B6%80_%EA%B4%80%EA%B3%84_%EC%A1%B0%EC%82%AC%EA%B2%B0%EA%B3%BC_%EB%B0%9C%ED%91%9C%EC%97%90_%EA%B4%80%ED%95%9C_%EA%B3%A0%EB%85%B8_%EB%82%B4%EA%B0%81%EA%B4%80%EB%B0%A9%EC%9E%A5%EA%B4%80_%EB%8B%B4%ED%99%94">위안부 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관방장관 담화</a>에서 위안부 모집에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하였으며 강제연행을 인정하고 있으나, 일본 내의 우익 세력은 위안부의 강제 연행은 없었으며 단순한 매춘부로서, 인권침해는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고노 담화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br><br>이에대한 한국의 입장<br>이에 대해,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_%EA%B5%AD%EA%B0%80%EC%9D%B8%EA%B6%8C%EC%9C%84%EC%9B%90%ED%9A%8C">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a>는 일본의 정치인과 민간인이 위안부 피해자 및 이들을 옹호하는 인권활동가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면서, 일본 정부에 재발 방지를 촉구하였다.<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9C%84%EC%95%88%EB%B6%80#cite_note-44"><sup>[44]</sup></a> 하지만 바우넷 재팬등의 일부 시민단체는 여전히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2005%EB%85%84">2005년</a>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8%EC%9B%94_1%EC%9D%BC">8월 1일</a> 도쿄에 바우넷 재팬의 전 대표인 아츠 야오리의 유산으로 일본군 위안부 홍보관을 설립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9C%84%EC%95%88%EB%B6%80#cite_note-autogenerated1-4"><sup>[4]</sup></a><sup><br>출처:https://ko.m.wikipedia.org/wiki/%EC%9C%84%EC%95%88%EB%B6%80</su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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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2:05: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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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02 김성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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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위안부 강제 자출VS 위안부 존잰부정 or 희망자원<br>일본 주장: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우익세력을 중심으로 한 역사부정주의자들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세 가지 주장이 있다. "강제연행은 없었다" "성노예가 아니다" "위안부 20만 명은 근거 없다". 이른바 '역사부정 3종세트'라 불린다.<br><br>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 간 해결 과제로 떠오른 1990년대 이후 일본 우익은 줄곧 이 역사부정 3종세트를 되뇌왔다.<br><br>1991년 김학순 할머니를 시작으로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국제사회 조사보고서, 미국 의회의 사죄 요구 결의안 등이 잇따랐지만 역사부정주의자들은 요지부동이었다.<br><br>민간단체나 학계의 주장으로 시작된 위안부 부정은 2006년 1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점차 일본 정부 입장으로 공식화돼 간다.<br><br>2010년대 들어 일본 우익은 국내에서는 이러한 역사부정주의 시각이 미디어를 지배하는 등 역사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보고, 국제사회에서의 전파 활동을 넓혀갔다.<br><br>일본 정부도 이에 편승했다. 2016년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일본 정부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외무심의관은 이렇게 말했다.<br><br>"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20만 명'이라는 숫자도 구체적 증거가 없는 숫자다" "또한 '성노예'라는 식의 표현은 사실에 반한다".<br><br>그동안 위안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해명하던 소극적 입장에서 벗어나 국제기구에서 역사 부정주의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은 이후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정됐다.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에 대해 아베 총리는 2007년 3월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관헌이 집에 쳐들어가 사람을 유괴하듯이 끌어간다고 하는 그런 강제성"이라고 규정했다.</div><div><br>이에 대해 김창록 교수는 "이른바 '협의의 강제성'을 전제로 하는 '강제연행'이란, 강제연행이라는 단어의 법적·상식적 의미에 반하는 것이며, 아베의 일본이 발명해낸 일본에서만 통하는 어설픈 은어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br><br>강제연행의 법적·상식적 의미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끌고 가는 것으로 1993년 고노 담화에서 일본 정부의 강제연행 인정은 끝났다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br><br>'고노 담화'는 "감언·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고, 나아가 관헌 등이 직접 이 일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고 명시했다.<br><br>김 교수는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여했고, 위안소 생활이 강제적인 상황 아래서 이뤄진 가혹한 것이었던 사실만으로도 일본은 당시 국제법을 위반했고, 그것만으로 일본의 국가 책임이 발생한다"고 말한다.<br><br><strong>■ "성노예가 아니다"?</strong><br><br>"노예제의 요체는 사람에 대한 지배이며, 여기에서의 지배란 사람의 자유 또는 자율성을 심대하게 박탈하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고노 담화가 인정하듯이 "강제적인 상황 아래에서의 가혹한 위안부 생활"만으로 위안부는 성노예였다.<br><br>위안부가 성노예였다는 사실은 1996년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1998년 게이 맥두걸 보고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판결 등에서 널리 인정돼 국제사회의 상식이 되었다.<br><br>또 "2015년 합의 당시 한국 정부가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일본 정부의 기술도 사실이 아니다.<br><br>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위안부 합의 당시 우리 측이 확인한 것은 위안부 문제 관련 우리 정부의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라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br><br><strong>■ "20만 명이라는 숫자는 증거가 없다"?</strong><br><br>실제 '20만 명'이라는 숫자의 명확한 근거가 제시돼 있지 않고, 위안부의 총수를 제시하는 자료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위안부 숫자는 2만, 8만, 20만, 40만 이상 등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추산되고 있다.<br><br>1944년 8월 버마 미치나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을 심문한 미중연합군 소속 원 로이 챈 대위는 1986년 발간한 '버마-비화'라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기술했다"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제국 일본군이 이 불행한 젊은 여성들을 얼마나 많이 위안부로 강요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20만 명 넘게 추산된다…일본인들은 제국군의 역사에서 이 부분에 대한 모든 기록들을 파괴했다."</div><div><br>이 같은 상황에서 '20만 명'이라는 숫자는 '수많은'이라는 의미를 담기 위한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김창록 교수는 말한다.<br><br>김 교수는 "일본 정부에게 증거가 있는 숫자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20만이 아니다'라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일본의 공문서를 열심히 뒤져서 '증거가 있는 숫자'를 밝히면 된다"고 강조한다.<br><br></div><div>일본의 '역사부정 3종세트'. 우익세력의 주장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정된 데 이어, '하버드 대학'과 '국제학술지'라는 권위를 차용한 법경제학자의 논문으로 왜곡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nbsp;<br>출처: KBS 뉴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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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2:14: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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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03 김연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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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강제징병vs모집,자원입대<br><br>사례:나무위키<br><br><br>출처:나무위키<br><br></div><var><br></var><div>내용:<br>1.일본군 징집을 알리는 소집영장. 종이 색깔이 빨간색이라서 <strong>아카가미(赤紙)</strong>라고도 부른다.<br>1944년 <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B%89%B4%EC%8A%A4">일본뉴스</a>의 전토에 징병제(全土に徴兵制) 실시 보도 영상.(<a href="https://www2.nhk.or.jp/archives/shogenarchives/jpnews/movie.cgi?das_id=D0001300351_00000">원본1</a>, <a href="https://youtu.be/Yq4yo8W4JrU">원본2</a>) 이 무렵에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에서 징병제가 실시되기 시작되었다. 대만에 징병제가 실시되어 대만 학도 300명이 궁성에서 절을 하고, 천황폐하 만세 삼창을 하고, 대만에서는 경축 분위기라고 나오며, 만주에서 군사훈련을 받는 <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A%B5%B0/%EC%A1%B0%EC%84%A0%EC%9D%B8">조선인 일본군</a> 훈련병이 나온다.<br><br><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s-1">1</a>. 개요</div><div><br><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20%EC%A0%9C%EA%B5%AD">일본 제국</a>이 <a href="https://namu.wiki/w/1873%EB%85%84">1873년</a>부터 <a href="https://namu.wiki/w/2%EC%B0%A8%20%EC%84%B8%EA%B3%84%EB%8C%80%EC%A0%84">2차 세계대전</a> 패망으로 <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A%B5%B0">일본군</a>이 해체된 1945년 8월까지 일본의 남성을 <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A%B5%B0">일본군</a>에 <a href="https://namu.wiki/w/%EC%A7%95%EC%A7%91">징집</a>한 제도.</div><div><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toc">2.</a> 역사<br><a href="https://namu.wiki/edit/%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section=2">[편집]</a></div><div><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A%B5%B0">일본군</a> 창군 초기인 1869년에는 <a href="https://namu.wiki/w/%EB%AC%B4%EC%82%AC(%EC%97%AD%EC%82%AC)">무사</a> 위주로 돌아갔지만 <a href="https://namu.wiki/w/1873%EB%85%84">1873년</a>에 징병령이 발효되면서 일본의 평민을 병사로 징집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농민이 죽창, 낫 등으로 무장봉기하여 관청을 습격하고 학교를 방화하거나 파괴하는 등 권력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형태로 징병제를 반대하기도 했다.<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fn-1">[1]</a> 이 일본의 징병제는 1889년에 <a href="https://namu.wiki/w/%EB%8C%80%EC%9D%BC%EB%B3%B8%EC%A0%9C%EA%B5%AD%20%ED%97%8C%EB%B2%95">대일본제국 헌법</a>이 공포되면서 헌법화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div><blockquote>일본 신민은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병역의 의무를 진다.<a href="https://namu.wiki/w/%EB%8C%80%EC%9D%BC%EB%B3%B8%EC%A0%9C%EA%B5%AD%20%ED%97%8C%EB%B2%95">대일본제국 헌법</a> 제20조</blockquote><div><br>위와 같이 당시 일본헌법은 일본인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여했고 헌법제정 전부터 시행된 징병령도 일본의 병역의무를 정하는 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제국에서 징병제를 시행한 초기에는 면제규정이 많아서 실제 현역병으로 입영하는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당시에는 일가의 주인인 자, 가정의 대를 이을 자, 가문을 승계할 자, 대인료 납부자, 관성부현의 공무원, 관립학교 생도, 양자로 들어간 자도 병역면제가 가능했다. 그래서 이런 규정을 이용해 합법적인 형태를 통해 병역을 피하는 경우도 생겼다. 대인료를 납부하거나 호적매매 또는 양자로 들어가는 경우가 속출했다. 그래서 당시 일본에서는 합법적으로 병역을 피하는 것을 가르치는 내용이 있는 출판물이 나올 정도였다.<br><br>징병제 시행 초기의 일본 제국에서는 특정 지역에 거주하면 병역이 면제되는 규정도 있었는데, <a href="https://namu.wiki/w/%ED%99%8B%EC%B9%B4%EC%9D%B4%EB%8F%84">홋카이도</a>, <a href="https://namu.wiki/w/%EC%98%A4%ED%82%A4%EB%82%98%EC%99%80">오키나와</a>, <a href="https://namu.wiki/w/%EC%98%A4%EA%B0%80%EC%82%AC%EC%99%80%EB%9D%BC">오가사와라</a> 등은 징병제 시행 초기에는 징병을 시행하지 않아 홋카이도, 오키나와, 오가사와라 거주자들은 징병이 면제되었다.<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fn-2">[2]</a> 이 규정은 1898년에 폐지되었다.<br><br>1927년 4월에는 징병령이 병역법으로 바뀌면서 일본의 병역제도가 바뀌었는데 일본의 병역법도 제국신민의 남자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기본적인 내용이며, <a href="https://namu.wiki/w/%EC%83%81%EB%B9%84%EB%B3%91">상비병역</a>, 후비병역, 보충병역, 국민병역으로 병역의 종류가 규정되었다. 상비병역은 현역과 예비역으로 나뉘었고, 보충병역은 제1보충병역, 제2보충병역으로 나뉘었다. 국민병역도 제1국민병역과 제2국민병역으로 나뉘었다.<br><br>당연히 육군에서 영장이 날아왔는데 해군에 입대하면 육군의 영장은 무효 처리가 되었다.<br><br>1944년전까지는 <strong>일본 본토의 </strong><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C%9D%B8"><strong>일본인</strong></a><strong> 남성</strong>만을 상대로 징병제를 했고 일본 제국이 패망할때까지 일본의 식민지였던 <a href="https://namu.wiki/w/%EC%9D%BC%EC%A0%9C%EA%B0%95%EC%A0%90%EA%B8%B0">조선</a>과 <a href="https://namu.wiki/w/%EB%8C%80%EB%A7%8C%EC%9D%BC%EC%B9%98%EC%8B%9C%EA%B8%B0">대만</a>은 지원제였는데 이것도 식민지 시절의 조선인과 대만인의 경우에는 식민지가 되고 거의 후반기까지 일본군 입대불가였다가 나중에 지원제를 실시해 입대가능으로 바뀐 것이다.<br><br>실제로 조선인의 경우 지원병 제도 도입된 <a href="https://namu.wiki/w/1938%EB%85%84">1938년</a>부터 일본군에 입대할 수 있었는데 이마저도 육군 한정으로 해군의 경우 1943년에야 조선인 지원병을 받았다. 이렇듯 식민지인들에게 한정적으로만 개방되어 있던 군문은,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후반기로 갈수록 본토 일본인만으로는 병력수가 모자라 병역법을 개정, 식민지 남성들 상대로도 징병제를 실시하게 되면서 열리게 되었다. <a href="https://namu.wiki/w/1944%EB%85%84">1944년</a> 이후부터 <a href="https://namu.wiki/w/%EC%A1%B0%EC%84%A0%EC%9D%B8">조선인</a>뿐만 아니라 <a href="https://namu.wiki/w/%EB%8C%80%EB%A7%8C%EC%9D%B8">대만인</a>도 징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조선인 징병검사가 1944년 4월부터 8월까지 이루어졌다. 이에따라 실제로 조선인 병사가 일본육군으로 배치된건 1944년 10월 즈음 이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시점이라<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fn-3">[3]</a> 실전 투입 사례는 미미한 수준이고 대부분 한반도 방어부대로 배치되었다.<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fn-4">[4]</a><br><br>참고로 1944년 조선인을 상대로도 징병제가 시행됨과 동시에 1945년 1월을 기점으로 조선인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되었는데 이에따라 1945년 <a href="https://namu.wiki/w/%EC%A4%91%EC%9D%98%EC%9B%90">중의원</a>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이전에는 조선인에게는 일본신민으로서의 의무<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fn-5">[5]</a>가 없으니 권리도 보장할 수 없다는 입장이였지만 전세가 급박해지자 방침을 바꾼것이다.<br><br>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의 항복 선언으로 인한 패전, 이에 따른 일본군 해체로 일본의 징병제가 폐지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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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2:16: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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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04 김용찬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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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강제징병vs자원입대<br>사례 일본 초등교과서 역사<br>왜곡<br>출처 mbc뉴스<br><strong>앵커</strong><br><br>일본 정부가 올해 또 다시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역사왜곡을 저질렀습니다.<br><br>오늘 새로 채택된 사회교과서에서 조선인을 강제징용했다거나 일본군에 '징병'했다는 등의 표현이 모조리 빠졌습니다.<br><br>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기술한 교과서마저 '일본의 고유한 영토'로 고치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br><br>도쿄에서 현영준 특파원이 보도합니다.<br><br></div><div><strong>리포트</strong><br><br>오늘 일본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통과한 초등학교 학생들의 사회 교과서입니다.<br><br>일본의 태평양 전쟁 역사를 가르치는 단원에서 현행 교과서는 조선 사람들을 징병해 전쟁터에 내보냈다고 기술했지만 새 교과서엔 '징병'했다는 말이 쏙 빠졌습니다.<br><br>또 다른 교과서에서는, 조선인이 '강제로 끌려왔다'던 표현을 '강제로 동원됐다'는 표현으로 순화했고, '일본군에 징병 됐다'는 말도 '일본군에 참가했다'는 표현으로 왜곡했습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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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2:22: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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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22 현우람</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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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위안부 강제차출 Vs 위안부 희망모집<br><br>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우익세력을 중심으로 한 역사부정주의자들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세 가지 주장이 있다. "강제연행은 없었다" "성노예가 아니다" "위안부 20만 명은 근거 없다". 이른바 '역사부정 3종세트'라 불린다.<br><br>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 간 해결 과제로 떠오른 1990년대 이후 일본 우익은 줄곧 이 역사부정 3종세트를 되뇌왔다.<br><br>1991년 김학순 할머니를 시작으로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국제사회 조사보고서, 미국 의회의 사죄 요구 결의안 등이 잇따랐지만 역사부정주의자들은 요지부동이었다.<br><br>민간단체나 학계의 주장으로 시작된 위안부 부정은 2006년 1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점차 일본 정부 입장으로 공식화돼 간다.<br><br>2010년대 들어 일본 우익은 국내에서는 이러한 역사부정주의 시각이 미디어를 지배하는 등 역사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보고, 국제사회에서의 전파 활동을 넓혀갔다.<br><br>일본 정부도 이에 편승했다. 2016년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일본 정부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외무심의관은 이렇게 말했다.<br><br>"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20만 명'이라는 숫자도 구체적 증거가 없는 숫자다" "또한 '성노예'라는 식의 표현은 사실에 반한다".<br><br>그동안 위안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해명하던 소극적 입장에서 벗어나 국제기구에서 역사 부정주의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은 이후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정됐다.<br><br><strong>■ "강제연행은 없었다"?</strong><br><br>"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에 대해 아베 총리는 2007년 3월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관헌이 집에 쳐들어가 사람을 유괴하듯이 끌어간다고 하는 그런 강제성"이라고 규정했다.<br><br>이에 대해 김창록 교수는 "이른바 '협의의 강제성'을 전제로 하는 '강제연행'이란, 강제연행이라는 단어의 법적·상식적 의미에 반하는 것이며, 아베의 일본이 발명해낸 일본에서만 통하는 어설픈 은어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br><br>강제연행의 법적·상식적 의미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끌고 가는 것으로 1993년 고노 담화에서 일본 정부의 강제연행 인정은 끝났다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br><br>'고노 담화'는 "감언·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고, 나아가 관헌 등이 직접 이 일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고 명시했다.<br><br>김 교수는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여했고, 위안소 생활이 강제적인 상황 아래서 이뤄진 가혹한 것이었던 사실만으로도 일본은 당시 국제법을 위반했고, 그것만으로 일본의 국가 책임이 발생한다"고 말한다.<br><br><strong>■ "성노예가 아니다"?</strong><br><br>"노예제의 요체는 사람에 대한 지배이며, 여기에서의 지배란 사람의 자유 또는 자율성을 심대하게 박탈하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고노 담화가 인정하듯이 "강제적인 상황 아래에서의 가혹한 위안부 생활"만으로 위안부는 성노예였다.<br><br>위안부가 성노예였다는 사실은 1996년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1998년 게이 맥두걸 보고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판결 등에서 널리 인정돼 국제사회의 상식이 되었다.<br><br>또 "2015년 합의 당시 한국 정부가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일본 정부의 기술도 사실이 아니다.<br><br>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위안부 합의 당시 우리 측이 확인한 것은 위안부 문제 관련 우리 정부의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라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br><br><strong>■ "20만 명이라는 숫자는 증거가 없다"?</strong><br><br>실제 '20만 명'이라는 숫자의 명확한 근거가 제시돼 있지 않고, 위안부의 총수를 제시하는 자료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위안부 숫자는 2만, 8만, 20만, 40만 이상 등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추산되고 있다.<br><br>1944년 8월 버마 미치나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을 심문한 미중연합군 소속 원 로이 챈 대위는 1986년 발간한 '버마-비화'라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기술했다.<br><br>출처:Kbs뉴스 https://www.google.com/url?sa=t&amp;source=web&amp;rct=j&amp;url=https://news.kbs.co.kr/news/view.do%3Fncd%3D5161949&amp;ved=2ahUKEwil9qGO3un-AhVQZN4KHYajABgQFnoECA4QAQ&amp;usg=AOvVaw3L_mR8i8RsMs0tbYfzStF2</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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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2:23: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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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01김공</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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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민족말살정책 vs문명화정책<br>출처: 우리역사넷 <br>사례:<br><br><br><br>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div><div>일제는 식민 통치를 합리화하고 지배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황국 신민화 정책에 따른 우민화 교육을 실시하였다. 일제의 숨은 뜻은 우리의 고유 문화를 말살하여 일본에 동화시키는 데에 있었다.<br><br></div><div>일제는 국권 강탈 후 조선교육령을 만들어 식민지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강조하면서, 낮은 수준의 실업 교육을 통해 식민지 공업화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려 하였다.<br><br></div><div>3⋅1 운동 이후 일제는 한국인의 반일 감정을 무마하기 위하여 교육 제도를 바꾸었다. 조선어를 필수 과목으로 규정하고, 경성 제국 대학도 설립하였다. 표면상 일본인 교육과 대등하게 보이도록 하였지만, 실질적으로 교육 차별은 여전하였다.<br><br></div><div>1930년대 만주 침략 이후에는 한국인을 침략 전쟁의 협조자로 만들려는 교육이 더욱 강화되었다. 내선 일체와 일선 동조론을 강조하여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였고, 한국사 왜곡을 심화시켰다.<br><br></div><div>언론 분야에도 식민지 통치 정책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1910년대에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을 강제 폐간시켜 민족 언론을 탄압하였다. 3⋅1 운동 이후에는 문화 통치의 일환으로 1920년에 조선 일보, 동아 일보, 시사 신문의 일간지와 일부 잡지 발행을 허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총독부는 신문에 보도할 기사의 통제를 계속하다가 1940년에 조선 일보와 동아 일보마저 폐간시켰다.<br><br></div><div>일제는 침략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할 목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철저히 왜곡하거나 말살하려고 하였다. 일제는 타율성, 정체성, 당파성을 주장하는 식민주의 사관을 앞세워 한국사의 자율성과 독창성을 부정하였다. 특히, 총독부가 설치한 조선사 편수회는 식민주의 사관을 토대로 조선사를 편찬하여 한국사 왜곡에 앞장섰다.<br><br></div><div>종교 활동 역시 총독부의 철저한 탄압을 받았다. 독립 운동가들이 민족 정신을 강조하는 종교 단체에 가입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제는 1930년대 후반 이후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신사 참배를 강요하였으며, 이에 저항하는 종교 교단과 지도자들을 박해하였다.<br><br></div><div>일제의 교육 정책겉으로는 동화(同化)를 내세우면서 실질적으로는 차별하는 식민지 교육을 실시하여 순종적인 식민지 인간형을 만들려고 하였다.</div><div><br></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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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2:44: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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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원입대Vs 강제징병</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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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3307 김하랑</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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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2:49: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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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23 주호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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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식민지 침탈vs식민지 발전<br>출처:논문<br>사례:논문<br><br></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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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2:53: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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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02 김단우 독도VS다케시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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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사례: 한국 외교부<br>출처: 한국 외교부</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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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2:53: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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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02 김단우 독도VS다케시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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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사례: 일본 외무성<br>출처: 일본 외무성</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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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2:54: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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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10 박선민</title>
         <author>huijong012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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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강제징병VS자원입대<br>사례:초등학교 교과서 왜곡<br>출처:SBS NEWS<br><br>일본의 한 교과서는 "조선인 남성은 일본군의 병사로 징병됐다"는 기존 표현을 "병사"로 '참가'하게 되고, 후에 징병제가 취해졌다고 바꿈<br>'병사가 된 조선 젊은이들'이랑 사진설명에는 '지원'했다는 표현을 추가<br>징병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거나, 일부 시기에만 이뤄진 것처럼 기술, 지원이라는 단어를 써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참여한것처럼 씀<br>"다수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적으로 끌려왔다는 표현에서 '끌려왔다'를 '동원했다'로 바꿔 강제됐다는 느낌을 덜함</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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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2:54: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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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23 주호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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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사례:논문<br>출처:논문</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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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2:54: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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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18 이호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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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식민지 침탈vs식민지 발전<br>사례:일제강점기의 시작<br>출처:유튜브<br>https://youtu.be/kdq559ElpkM</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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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3:01: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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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19정동건</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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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div><div>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우익세력을 중심으로 한 역사부정주의자들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세 가지 주장이 있다. "강제연행은 없었다" "성노예가 아니다" "위안부 20만 명은 근거 없다". 이른바 '역사부정 3종세트'라 불린다.<br><br>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 간 해결 과제로 떠오른 1990년대 이후 일본 우익은 줄곧 이 역사부정 3종세트를 되뇌왔다.<br><br>1991년 김학순 할머니를 시작으로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국제사회 조사보고서, 미국 의회의 사죄 요구 결의안 등이 잇따랐지만 역사부정주의자들은 요지부동이었다.<br><br>민간단체나 학계의 주장으로 시작된 위안부 부정은 2006년 1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점차 일본 정부 입장으로 공식화돼 간다.<br><br>2010년대 들어 일본 우익은 국내에서는 이러한 역사부정주의 시각이 미디어를 지배하는 등 역사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보고, 국제사회에서의 전파 활동을 넓혀갔다.<br><br>일본 정부도 이에 편승했다. 2016년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일본 정부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외무심의관은 이렇게 말했다.<br><br>"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20만 명'이라는 숫자도 구체적 증거가 없는 숫자다" "또한 '성노예'라는 식의 표현은 사실에 반한다".<br><br>그동안 위안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해명하던 소극적 입장에서 벗어나 국제기구에서 역사 부정주의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은 이후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정됐다.<br><br></div><div><br><em>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게시 ‘위안부 문제’</em></div><div><a href="https://www.mofa.go.jp/mofaj/files/000472256.pdf">https://www.mofa.go.jp/mofaj/files/000472256.pdf</a><br><br>현재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시된 '위안부 문제'라는 제목의 문건이다. 일본어와 영어, 독일어, 한국어본이 있다. 이 문건에서 일본 정부는 한일 간 위안부 문제의 경과와 자체 해결 노력을 설명하면서, 마지막 부분에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며 이른바 '3종세트'를 끄집어낸다.<br><br></div><div><br></div><div><br>위안부를 '성매매 업주와 자발적 계약을 맺은 매춘부'로 규정하는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왜곡 논문도 사실 이런 역사부정주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고 위안부 연구자들은 지적한다.<br><br>일본 정부와 우파의 역사부정 3종세트가 왜 허구인지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설명을 토대로 살펴본다.<br><br><strong>■ "강제연행은 없었다"?</strong><br><br>"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에 대해 아베 총리는 2007년 3월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관헌이 집에 쳐들어가 사람을 유괴하듯이 끌어간다고 하는 그런 강제성"이라고 규정했다.<br><br>이에 대해 김창록 교수는 "이른바 '협의의 강제성'을 전제로 하는 '강제연행'이란, 강제연행이라는 단어의 법적·상식적 의미에 반하는 것이며, 아베의 일본이 발명해낸 일본에서만 통하는 어설픈 은어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br><br>강제연행의 법적·상식적 의미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끌고 가는 것으로 1993년 고노 담화에서 일본 정부의 강제연행 인정은 끝났다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br><br>'고노 담화'는 "감언·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고, 나아가 관헌 등이 직접 이 일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고 명시했다.<br><br>김 교수는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여했고, 위안소 생활이 강제적인 상황 아래서 이뤄진 가혹한 것이었던 사실만으로도 일본은 당시 국제법을 위반했고, 그것만으로 일본의 국가 책임이 발생한다"고 말한다.<br><br><strong>■ "성노예가 아니다"?</strong><br><br>"노예제의 요체는 사람에 대한 지배이며, 여기에서의 지배란 사람의 자유 또는 자율성을 심대하게 박탈하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고노 담화가 인정하듯이 "강제적인 상황 아래에서의 가혹한 위안부 생활"만으로 위안부는 성노예였다.<br><br>위안부가 성노예였다는 사실은 1996년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1998년 게이 맥두걸 보고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판결 등에서 널리 인정돼 국제사회의 상식이 되었다.<br><br>또 "2015년 합의 당시 한국 정부가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일본 정부의 기술도 사실이 아니다.<br><br>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위안부 합의 당시 우리 측이 확인한 것은 위안부 문제 관련 우리 정부의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라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br><br><strong>■ "20만 명이라는 숫자는 증거가 없다"?</strong><br><br>실제 '20만 명'이라는 숫자의 명확한 근거가 제시돼 있지 않고, 위안부의 총수를 제시하는 자료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위안부 숫자는 2만, 8만, 20만, 40만 이상 등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추산되고 있다.<br><br>1944년 8월 버마 미치나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을 심문한 미중연합군 소속 원 로이 챈 대위는 1986년 발간한 '버마-비화'라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기술했다.<br><br></div><div><br><em>조선인 위안부 포로를 심문하고 있는 원 로이 챈 대위(맨 왼쪽/1944년 8월)</em></div><div><br>"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제국 일본군이 이 불행한 젊은 여성들을 얼마나 많이 위안부로 강요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20만 명 넘게 추산된다…일본인들은 제국군의 역사에서 이 부분에 대한 모든 기록들을 파괴했다."<br><br>이 같은 상황에서 '20만 명'이라는 숫자는 '수많은'이라는 의미를 담기 위한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김창록 교수는 말한다.<br><br>김 교수는 "일본 정부에게 증거가 있는 숫자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20만이 아니다'라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일본의 공문서를 열심히 뒤져서 '증거가 있는 숫자'를 밝히면 된다"고 강조한다.<br><br>일본의 '역사부정 3종세트'. 우익세력의 주장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정된 데 이어, '하버드 대학'과 '국제학술지'라는 권위를 차용한 법경제학자의 논문으로 왜곡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div><div><br>출처:kbs뉴스</div><div>사례:일본 외무성</div><div><br></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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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3:02: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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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02 김단우 독도VS다케시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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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사례:일본 국방부<br>출처:일본 국방부</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www.cas.go.jp/jp/ryodo_kr/ryodo/takeshima-ryodo.html" />
         <pubDate>2023-05-09 03:07: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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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09류도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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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강제 징병vs자원 입대<br>출처:나무위키<br><strong>징병제</strong>는 <a href="https://namu.wiki/w/%EA%B5%B0%EB%8C%80">군대</a>를 유지할 목적으로 국민에게 <a href="https://namu.wiki/w/%EB%B3%91%EC%97%AD">병역</a>을 강제적으로 수행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말로 국민개병제가 있다.<br><br>정확하게 기록되지 않았으나 전쟁사는 인류사와 맥을 같이 하므로 씨족이나 부족이 전쟁하는데 있어서 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부터 인적자원을 총동원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br><br>한국의 경우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징병제(=양인개병제, 농병일치제)를 시행하였다. 반도라는 지리환경으로 인해 전선이 2중, 심하면 3중으로 형성되기 쉬웠기 때문에 국경을 방어하고, 전선에서 싸울 병력이 많이 필요했다. 여기서 전선의 2중화 즉 양각이란 북방에 한족, 여진족 등이 있고 남방에는 왜(일본)가 있었다. 지킬 국경이 두개나 되기에 병력도 둘로 나뉜다. 영토의 70% 이상이 산지임에도 북방의 기병 전력에 맞서기 위해 대규모는 아니더라도 기병 양성에 꾸준히 힘쓰며 조총이 도입되기전에는 활과 쇠뇌가, 조총 도입이후에는 조총이 보병의 주력 무기로 자리잡았다.<br><br>역사적으로 징병제는 근대국가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지방 단위로 뿔뿔히 흩어진 정체성을 가진 개인들을 대규모로 징집해, 군인으로 양성하는 과정에서 확고한 국가관을 형성시켜 국가 전체의 정체성을 공고히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징병제를 통한 "사회적 단합"에는 한계가 있는데, 징병제를 통한 사회화가 획일성, 동질성을 바탕에 두고 있으며, 뒤집어 말하면 다름과 차이의 존재를 부정하는 특징을 가진다. 결국 징병제를 통한 사회적 단합은 "저 사람이 설령 나와 다를지라도 차별할 이유가 없다"가 아니라, "저 사람이 나와 같기 때문에 차별할 이유가 없다, 만약 다르다면 그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에 해당한다.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상, 모두가 군복무에 적합할 수는 없으므로, 징병제 제도 하에서는 복무부적격 판정을 받고 징병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징병을 통해 획일성, 동질성을 내면화한 사람들은 이들을 포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징병을 경험한 이들이 사회에 나와 이런 저런 이유로 징병에서 제외된 동료 시민들을 <a href="https://namu.wiki/w/%EB%B9%84%EA%B5%AD%EB%AF%BC">비국민</a> 내지는 2등 시민으로 여겨 경멸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현상이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로 20세기 서방세계에서 징병제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심하게 겪은 후, 많은 서방 국가들이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했다.<br><br>올해 2023년에 <strong>군입대</strong>하는 남성들중에서 연령대가 19~21세에 해당하는 2002년생~2003년생 남성들이 가장 많이 입대한다. 그리고 <strong>올해 2023년에 모집병으로 군입대하는 2004년생 남성들도 있다.</strong><br><br><a href="https://namu.wiki/w/%EB%8C%80%ED%95%9C%EB%AF%BC%EA%B5%AD">대한민국</a>은 <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징병제</a>를 실시하기 때문에 신체가 건강한 대한민국 <strong>남성</strong>은 <a href="https://namu.wiki/w/%EB%8C%80%ED%95%9C%EB%AF%BC%EA%B5%AD%EC%9D%98%20%EB%B3%91%EC%97%AD%EC%9D%98%EB%AC%B4">병역의 의무</a>를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a href="https://namu.wiki/w/%EA%B5%B0%EC%9D%B8">군인</a>이 되어야 하며, 기초군사훈련이 면제된 신체등위 4급이거나, 신체등위 5·6급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리 4급이라도 일생에 한번은 이 '입대'라는 걸 어떤 방식으로든 경험하게 된다.<br><br>이런 어려움 때문에 병무청 자유게시판은 군대에 못가서 하소연하는 젊은이들의 글들로 도배된 상태. 게시판의 하소연 중에 "국방의 의무는 있으면서 제 인생에 대한 권리는 없는겁니까" 라는 글이 있는데 현재 이 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는 말이다. 지원 횟수만 두자리가 넘고 오직 군대 가려고 헌혈, 봉사활동, 자격증까지 따는데 합격이 안되니 매년 자신의 인생이 밀리는 사람들은 미칠 노릇. 병무청 공무원들도 해당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부에서는 <strong>"군부대를 확충하든지 해야할 거 아니냐!"</strong>며 아우성 치고 있지만 저출산 세대의 입영에 대비해 군 당국에서 선제적으로 군 부대를 감축해오고 있는 상황이라 입대난을 해소하고자 군부대를 확충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br> ..........................<br><br>(몰루)</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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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3:08: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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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06김찬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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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강제징용vs희망모집<br>사례:일제 강제징용 배상<br>출처:유튜브</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youtu.be/alEkREZTL78" />
         <pubDate>2023-05-09 03:11: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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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21조상진 주제 : 강제징용 vs 희망모집</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orea01034097923/h091hz5fbr3m1ciq/wish/2583057817</link>
         <description><![CDATA[<div>사례 : 일본정부가 강제징용을 강제노동 사례로 보기 어렵다 주장함<br>출처 : https://m.yna.co.kr/view/AKR20230306155000088<br>내용 :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최근 유엔에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 문제와 관련해 노동자들이 일본 땅으로 유입한 경로가 다양하며 국제협약상 금지된 '강제노동' 사례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을 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br><br></div><div>6일(현지시간) 유엔 인권이사회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31일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열린 국가별 정례 인권검토(UPR) 절차에서 "한반도에서 온 민간인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본 땅으로 들어왔는지를 단순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br>일본 정부는 "당시에는 자유의사에 따라 일본으로 온 노동자들, 관(官)의 알선이나 징발 등으로 일하게 된 노동자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제공된 노동이 국제 노동협약에 나오는 '강제노동'이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br><br></div><div>UPR은 유엔 회원국 193개국이 돌아가면서 자국 인권 상황과 권고 이행 여부 등을 동료 회원국들로부터 심의받는 제도로, 2008년부터 시행됐다.<br><br></div><div>일본이 자국의 인권 상황을 동료 회원국들로부터 심의받는 자리에서 강제징용 피해에 관한 질의가 나오자 당시 노동자들의 입국·취업 경위 등에 비춰 강제노동을 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br><br></div><div>국제노동기구(ILO)의 1930년 제29호 협약은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을 폐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역시 1932년 이 협약을 비준했다.<br>그러나 자발적인 근로 참여, 전쟁 등 비상시 부과된 노역 등이 강제노동 예외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어 일본 정부는 국제협약을 어긴 게 아니라는 주장을 편 것으로 보인다.<br><br></div><div>이는 한국 노동자들이 구(舊) 일본제철이나 미쓰비시 등 가해기업들의 불법행위 피해자인지 단정하기 어렵다는 논리와 연결된다.<br><br></div><div>불법행위 여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 소멸 여부와 더불어 강제징용 피해 문제의 핵심적인 법리 쟁점이기도 하다.<br><br></div><div>일본 기업이 아닌 한국 정부 산하의 재단이 한국 기업들에서 돈을 모아 배상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 해법을 이날 우리 정부가 제시한 데에는 강제징용 피해의 불법성부터 인정할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완강한 태도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br><br></div><div>다만, 일본 정부는 당시 UPR 회의에서 "작년 11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로 재확인했으며 대한민국 정부와 긴밀한 소통을 유지할 것"이라고 답변했다.<br><br></div><div>UPR에서 강제징용 피해 문제를 거론한 건 북한이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강제징용 피해 문제를 유엔 회의장에서 쟁점화한 것은 이 사안의 해법을 협의 중인 한일 정부 간 균열을 초래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관측도 제기됐다.<br><br></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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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3:11: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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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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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14 이건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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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 제: 강제징용 vs 희망모집&nbsp;<br><br>사례: 일본의 주장은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등재 결정문 속 '강제로 노역을 했다(forced to work)'라는 표현은 '일하게 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고 밝히면서 "원치 않은 노동을 했다 해도 도의적으로 미안할 뿐, 법적 책임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일본은 강제징용이<br>아니라 일하게 했다 또는 희망모집이라며 주장했다.<br><br>일본은 강제징용이 아닌 희망모집이라며 주장하였지만&nbsp;<br>강제징용 사실에 대한 자료,증거가 있었다 먼저&nbsp;<br>kbs뉴스의 내용을 보면:<br>&nbsp;일제시대&nbsp; 강제동원 피해자들입니다.<br><br>&nbsp;손용암 씨는&nbsp; 사복 형사에게 끌려간 날이 수십 년이 지나도록 생생히 기억납니다.<br><br>&nbsp;[손용암/日 다카시마 탄광 강제동원 피해자&nbsp; : "(사복 형사가) 오라 해서 가니까 웬 여관을 들어가라고 해요. 방에 보니깐 한 6~7명인가 와있더라고요."]<br><br>&nbsp;이들이 목적지도 모르고 도착한 곳, 일본 각지의 탄광과 조선소였습니다.<br><br>&nbsp;고 최장섭 씨는 이 가운데 일명 '군함도'로 알려진 하시마 탄광으로 갔습니다.<br><br>&nbsp;밥 대신 깻묵을 먹으며 중노동을 해야 했습니다.<br><br>[고 최장섭/日 하시마 탄광 강제동원 피해자&nbsp; : "숙소는 제일 하층에 질퍽질퍽한데. 바닥이. 일본놈들은 고층에 이렇게 해서"]<br><br>&nbsp;목숨을 걸고 일했지만, 아무도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br><br>&nbsp;[손성춘/日 미이케 제련소 강제동원 피해자 : "돈 돌려준다고도 안 하고 한 달 되면 오라고 해요. 도장 갖고 도장 찍고 이 돈은 월급은 집으로 보낸다."]<br><br>&nbsp;강제동원 노동자들은 고국에서도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br>또한 많은 사건으로 :<strong>군함도:</strong></div><div>일본 나가사키 현(長崎県) 남서쪽에 있는 무인도인 하시마(端島)는 해상군함을 닮아 '군함도'라고 불린다. 하시마 섬이 군함 모양이 된 것은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三菱)'가 이곳 해저 탄광에서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 시멘트를 매립하고 사방에 콘크리트 벽을 세우면서부터다.<br><br></div><div><br></div><div><br></div><div>조선인 500~800여 명이 군함도로 끌려왔다(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의 추정치). 해저 1000m 탄광 갱도로 내려가 평균 45도가 넘는 고온과 95% 습도, 유독가스 속에서 석탄을 채굴했다. 하루 12시간~16시간 일하면서 사료·비료에나 쓰일 만한 찌꺼기로 겨우 끼니를 때웠다. 일본인 헌병이 칼을 차고 이들을 감시했다.<br><br></div><div>군함도에는 아파트를 비롯해 학교·병원 등 주거에 필요한 시설이 갖춰져 있었지만, 일본인을 위한 공간이었다. 조선인들은 3평 남짓한 목조건물에 웅크려 자야 했고, 암석에 의한 부상·피부병·과로·굶주림 등 몸이 아파도 방치됐다.<br><br></div><div><br>[<a h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21/2017062102253.html">눈물과 한(恨) 서린 작은 섬</a>]<br><br></div><div><strong>다카시마 섬:</strong></div><div>미쓰비시 주도로 다카시마(高島) 섬에는 하시마 섬에 앞서 해저 탄광이 개발돼 있었다. 다카시마 섬은 시멘트를 매립해 3개의 섬을 이어붙인 것으로, 하시마 섬보다 규모가 더 컸고, 미쓰비시가 일본 대표 군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토대였다.<br><br></div><div><br></div><div><br></div><div>다카시마 탄광으로 끌려온 조선인은 4000여 명에 달했다. 그중 익사·압사·병사한 조선인들의 시체가 다카시마 섬 한쪽에 무더기로 매장됐다. 미쓰비시 측에서 사망자 신원을 적은 위패를 불태워버려 조선인들의 유골이 몇 구나 묻혀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지금도 '공양탑(供養塔)'이라는 이름으로 비석이 남아 있지만, 가는 길이 폐쇄됐다.<br><br></div><div><strong>유바리 시:</strong></div><div>홋카이도(北海道) 중심부에 있는 유바리 시(夕張市)는 일제강점기 최대 석탄도시였다. 전범기업 '단코키센(北海道炭礦汽船)'과 미쓰비시를 중심으로 유바리 탄광이 운영됐다. 이곳에서는 70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노역했는데 대다수 폭발 위험이 있는 갱내에서 채광을 전담했다. 홋카이도청이 1999년 작성한 '조선인 강제연행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1939년에서 1945년까지 유바리 탄광에서 조선인 127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사망 127건 중 123건은 사인이 '원인 불명'이었다.<br><br></div><div><br></div><div><br></div><div>석탄 산업이 쇠퇴하면서 유바리 지역은 파산했다. 유바리 탄광에 대해 설명해주는 전시관도 폐관된 상태다. 조선인들이 강제 노역을 했다는 것을 기억할 만한 자료를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br><br></div><div><strong>이이즈카 시:</strong></div><div>"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한 것" 등 우리나라에서 '망언 정치인'으로 유명한 일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증조부는 1만 명이 넘는 조선인을 강제 노역시킨 전범기업 '아소 그룹'의 창업주다.<br><br></div><div>'아소 그룹'은 후쿠오카 현(福岡県) 이이즈카 시(飯塚市)에서 모태회사 아소 탄광을 운영하면서 조선인 강제 징용에 앞장섰다. 일본 정부에 노동력이 싸다는 이유로 조선인 강제 연행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이에 1939~1945년에만 조선인 징용자 1만 623명이 아소 탄광에서 일했고 이 가운데 약 124명이 사망했다.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이 작성한 '아소광업㈜ 피해자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에 1944년~1945년의 사망자 수가 포함되지 않아 더 많은 사망자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혀 있다.<br><br></div><div><br></div><div><br></div><div>아소 탄광은 조선인들 사이에서 '착취 지옥'으로 불렸다. 하루 17시간씩 일을 하는 것은 물론, 할당량을 채울 때까지 갱내에서 못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아울러 구타가 일상적이었다. 조선인들은 케이블선·벨트·목도 등으로 얻어맞으며 생사를 넘나들었다.<br><br></div><div>아소 탄광의 만행은 책으로도 나와 있다. 일본인 사학자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는 지난 2013년 '조사·조선인 강제노동 탄광편'을 출간하면서 일제강점기 조선인 광부의 수난사를 고발했다.<br><br></div><div><strong>오무타 시:</strong></div><div>후쿠오카 현 오무타 시(大牟田市)의 미이케 탄광(三池炭鉱)은 일제강점기 일본 전체 석탄 생산량의 ¼을 차지할 만큼 최대 탄광이었다. 외교부는 지난 2015년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 특별위원회에 1938∼1945년 사이 미이케 탄광 노역을 위해 끌려온 조선인들은 최소 9200여 명이었고, 이 가운데 32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했다.<br><br></div><div><br></div><div><br></div><div>전범기업 '미쓰이(三井) 그룹'이 미이케 탄광을 운영했는데, 한반도로 직원을 보내 조선인을 직접 잡아 오게 했다. 조선인들은 죄수나 다름 없었다. 뜨거운 갱내에서 훈도시(褌, 일본의 전통 남성속옷)만 입은 채 하루 2교대로 일했다. 몸이 아파 못 나간다고 말하면, 일본인 감독관이 옷을 다 벗긴 다음 나무 회초리나 벨트 등으로 구타했다.<br><br>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 최고 사령부가 미쓰이 그룹을 해체했다. 1950년대 들어 재결합했지만, 지주 회사 없이 경영하고 있다.<br><br></div><div><br></div><div><br></div><div><strong>우토로 마을 비행장:</strong></div><div>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일본은 조선인 1300여 명을 동원해 혼슈(本州) 교토 부(京都府)에 군 비행장을 건설하려고 했다. 1300여 명 조선인들 가운데 경제적 궁핍을 못 견뎌 일본으로 건너왔다가 강제 노역에 동원된 사람도 포함돼 있었다.<br><br></div><div><br>[<a h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9/14/2007091401121.html">관련 기사▶</a>]<br><br></div><div><br></div><div><br></div><div>이들은 우지 시(宇治市)에서 6000평가량 불모지에 가건물 숙소를 지어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다 1945년 일본이 패망했고 비행장 건설도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일부가 고국으로 돌아갈 뱃삯을 구하지 못해 이곳에 정착하면서 지금의 우토로 마을이 형성됐다.<br><br>우토로 마을에는 여전히 60세대, 180여 명이 일본 국적 취득을 거부한 채 우리나라 국민으로 살고 있다. 지난 2007년 일본 정부가 이들의 거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 철거할 것을 요구해 쫓겨날 위기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정부 지원금과 모금 등을 통해 땅 일부를 사들일 수 있었다. 우토로 마을은 지난해 7월부터 재개발을 위해 철거에 들어간 상태로, 2019년 공적 주택 2동이 완공될 예정이다.<br><br></div><div><br></div><div><br></div><div><strong>나가사키 조선소:</strong></div><div>1941년부터 1945년 사이 일본의 태평양 전쟁 시기 군함과 전투기, 어뢰 등 핵심 무기가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생산됐다. 규슈 나가사키 현에 있는 조선소로, 이 일대 탄광과 함께 미쓰비시가 운영했다.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서 추정하기로는 조선인 4747명이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군함을 만드는 데 동원됐다. 미군과의 수차례 해상 전투에 투입됐던 전함 '무사시(武蔵)'와 일본 특공대 가미카제(神風) 자폭 전술에 이용된 전투기 '제로센(零戰)'이 이곳에서 생산됐다.<br><br></div><div><br></div><div><br></div><div>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현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날에도 조선인들은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1만여 명이 숨졌다. 원폭 직후 복구 작업에 동원돼 피폭 피해자도 2만 여 명으로 많았다.<br><br></div><div><strong>야하타 제철소:</strong></div><div>후쿠오카 현 기타큐슈시(北九州市])에 있는 야하타(八幡) 제철소는 태평양 전쟁 때 일본 본토 내 철강 생산량 절반을 점유할 정도로 군수산업의 거점이었다. 여기서 생산된 철강으로 군함과 전투기, 어뢰 등이 제작될 수 있었다.<br>등이 있다<br><br><br></div><div><br></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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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3:11: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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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22 조인성-민족 말살 정책 vs 문명화 정책</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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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nbsp;민족 말살 정책(民族 抹殺 政策)은 일본 제국이 무단통치, 문화통치에 이어&nbsp; 식민지 조선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고 일본인에 동화시켜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협력하도록 민족 말살을 시키고자 했던 정책이다.<br>&nbsp;그 구체적인 종류로는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정책, 남면북양정책, 국가총동원법 등이 있다.<br>&nbsp;•내선일체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제국이 조선을 식민통치하기 위해 내놓은 민족말살정책 중 하나이자 "내지(內地: 일본열도)와 조선은 한 몸"이라는 뜻을 지닌 일제강점기의 표어이다. <br>"조선과 일본은 하나이므로 조선인도 (권리는 없지만) 황국신민으로서의 의무<strong>만</strong> 다해야 한다."는 식으로 <strong>수탈과 동화를 편리하게 하기 위한 </strong>용도였으며 내선일체의 개념에 따라 황국신민화 정책을 추진하였다.<br>&nbsp;•황국신민화 정책 : 위에서 추진한 내선일체와 일환으로 우선 황국신민서사라는 맹세문 암송을 강요하였고, 한국어 교육 전면 금지,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궁성요배, 그리고 신사참배의 강요도 이 시기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일본식 성명으로 강제 개명시키는 이른바 창씨개명으로 화룡 점정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br>&nbsp;•남면북양정책 : 1930년대에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농민에게 강요한 정책으로 일본 제국의 공업 원료 증산 정책들 중 하나다.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목화를 재배하게 하고, 북쪽에서는 가구당 다섯마리의 양을 키우게 했다. 이것으로 인한 조선 농민들의 고통에 쌀수탈로 인한 고통은 덤으로 안겨졌다.<br>&nbsp;•국가총동원법 : 중일전쟁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군비 문제가 생기게 되자 일제는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고 이를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과 타이완에도 적용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인적수탈과 물적수탈이 자행되게 된다. 대표적인 인적수탈로는 징병과 징용이 있고, 일본군 '위안부' 역시 이 법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표적인 물적수탈로는 금속에 대한 공출령과 식량 배급제 등이 있다.<br>&nbsp;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아시아ㆍ아프리카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어 지배할 때 내세운 합리화의 논리가 바로 ‘문명화’였다.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문명화’의 구호를 내세웠다.<br>&nbsp;일본은 보다 우월한 무력을 앞세워 조선을 침략했지만, 폭력만으로는 안정적인 식민통치를 이어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본은 ‘문명화’라는 합리화 논리를 동원했고, 이것은 일제의 침략에 일정하게 이바지했다.<br>&nbsp;일제는 자신들의 시책을 ‘문명화 사업’으로 선전했다. 이것은 조선인을 대상으로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한편 서구 열강에게 일본의 역량을 과시하려는 작업이기도 했다.<br>&nbsp;일제의 선전(propagate)은 서구 열강과 조선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이 문명국가로서 조선을 지도할 자격과 능력을 갖추었고 자신들의 식민지배가 조선인의 복지를 향상시킬 것이라는 주장을 유포하는 것이 선전의 핵심이었다.</div><div>&nbsp;일본은 조선 침략을 ‘시정개선’이나 ‘문명화 사업’으로 합리화했지만, 그들의 진정한 관심사는 철저히 일본의 국익이었다. 오야마 도스케(小山東助)는 일본의 대조선 정책의 목표를 네 가지로 구분했다.<br>&nbsp;1.일본의 자존을 위해 조선의 국시를 일본의 국시에 일치시키는 것.<br>&nbsp;2.경제적으로 조선을 일본의 영향권으로 삼는 것.<br>&nbsp;3.문화적으로 조선 민족을 계도하는 것.<br>&nbsp;4.조선 민족을 악정ㆍ미신ㆍ무지에서 구출하여 ‘자주독립의 신생활’로 들어가게 하는 것.<br>그렇지만 자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국제무대의 현실을 고려하면 가장 본질적인 목표는 1항과 2항이라고 보아야 한다. 3항과 4항은 일본의 국익 추구를 합리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br>&nbsp;이로서 민족 말살 정책은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의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의 확보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식민지 조선을 본국과 다르게 보면 동원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으로 식민지 조선인을 일본인화할 이유가 생겨버렸고 일본의 자존을 위해 이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 문명화는 커녕 조선은 중일전쟁으로 인한 여러 문제점들도 더해지게 되면서 <strong>일제강점기 시절 중 가장 최악의 시기</strong>를 맞아하였다.<br><br>참고 문헌<br>https://namu.wiki/w/%EB%AF%BC%EC%A1%B1%20%EB%A7%90%EC%82%B4%20%ED%86%B5%EC%B9%98%EA%B8%B0#s-2.2<br>https://namu.wiki/w/%EB%82%B4%EC%84%A0%EC%9D%BC%EC%B2%B4<br>https://namu.wiki/w/%EB%82%A8%EB%A9%B4%EB%B6%81%EC%96%91<br>https://nocturnal-landscape.tistory.com/m/133</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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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3:11: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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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15 이승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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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안중근 의거 VS 또다른 인물 테러<br>사례:KCI 학술지에 일본이 생각하는 안중근 의사는 광견이다 라고&nbsp;<br>대부분의 잡지에 표기했다라고 나온다&nbsp;<br>이러던 일본이 한국의 나무위키와 비슷한 위키피디아에 안중근은 이토히로부미 암살자가 아니다<br>라고 나오고 일본의 큰 학술지에도 안중근 의사가 정말 이토히로부미의 암살자인지 이의있다고&nbsp;<br>공식적으로 물어봄<br><br>출처:KCI학술지,사피엔스 스튜디오라는&nbsp;유튜버</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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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3:12: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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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03김동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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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944년 <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B%89%B4%EC%8A%A4">일본뉴스</a>의 전토에 징병제(全土に徴兵制) 실시 보도 영상.(<a href="https://www2.nhk.or.jp/archives/shogenarchives/jpnews/movie.cgi?das_id=D0001300351_00000">원본1</a>, <a href="https://youtu.be/Yq4yo8W4JrU">원본2</a>) 이 무렵에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에서 징병제가 실시되기 시작되었다. 대만에 징병제가 실시되어 대만 학도 300명이 궁성에서 절을 하고, 천황폐하 만세 삼창을 하고, 대만에서는 경축 분위기라고 나오며, 만주에서 군사훈련을 받는 <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A%B5%B0/%EC%A1%B0%EC%84%A0%EC%9D%B8">조선인 일본군</a> 훈련병이 나온다.<br><br><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20%EC%A0%9C%EA%B5%AD">일본 제국</a>이 <a href="https://namu.wiki/w/1873%EB%85%84">1873년</a>부터 <a href="https://namu.wiki/w/2%EC%B0%A8%20%EC%84%B8%EA%B3%84%EB%8C%80%EC%A0%84">2차 세계대전</a> 패망으로 <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A%B5%B0">일본군</a>이 해체된 1945년 8월까지 일본의 남성을 <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A%B5%B0">일본군</a>에 <a href="https://namu.wiki/w/%EC%A7%95%EC%A7%91">징집</a>한 제도.</div><div><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toc">2.</a> 역사</div><div><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A%B5%B0">일본군</a> 창군 초기인 1869년에는 <a href="https://namu.wiki/w/%EB%AC%B4%EC%82%AC(%EC%97%AD%EC%82%AC)">무사</a> 위주로 돌아갔지만 <a href="https://namu.wiki/w/1873%EB%85%84">1873년</a>에 징병령이 발효되면서 일본의 평민을 병사로 징집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농민이 죽창, 낫 등으로 무장봉기하여 관청을 습격하고 학교를 방화하거나 파괴하는 등 권력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형태로 징병제를 반대하기도 했다.<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fn-1">[1]</a> 이 일본의 징병제는 1889년에 <a href="https://namu.wiki/w/%EB%8C%80%EC%9D%BC%EB%B3%B8%EC%A0%9C%EA%B5%AD%20%ED%97%8C%EB%B2%95">대일본제국 헌법</a>이 공포되면서 헌법화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div><blockquote>일본 신민은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병역의 의무를 진다.<a href="https://namu.wiki/w/%EB%8C%80%EC%9D%BC%EB%B3%B8%EC%A0%9C%EA%B5%AD%20%ED%97%8C%EB%B2%95">대일본제국 헌법</a> 제20조</blockquote><div><br>위와 같이 당시 일본헌법은 일본인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여했고 헌법제정 전부터 시행된 징병령도 일본의 병역의무를 정하는 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제국에서 징병제를 시행한 초기에는 면제규정이 많아서 실제 현역병으로 입영하는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당시에는 일가의 주인인 자, 가정의 대를 이을 자, 가문을 승계할 자, 대인료 납부자, 관성부현의 공무원, 관립학교 생도, 양자로 들어간 자도 병역면제가 가능했다. 그래서 이런 규정을 이용해 합법적인 형태를 통해 병역을 피하는 경우도 생겼다. 대인료를 납부하거나 호적매매 또는 양자로 들어가는 경우가 속출했다. 그래서 당시 일본에서는 합법적으로 병역을 피하는 것을 가르치는 내용이 있는 출판물이 나올 정도였다.<br><br>징병제 시행 초기의 일본 제국에서는 특정 지역에 거주하면 병역이 면제되는 규정도 있었는데, <a href="https://namu.wiki/w/%ED%99%8B%EC%B9%B4%EC%9D%B4%EB%8F%84">홋카이도</a>, <a href="https://namu.wiki/w/%EC%98%A4%ED%82%A4%EB%82%98%EC%99%80">오키나와</a>, <a href="https://namu.wiki/w/%EC%98%A4%EA%B0%80%EC%82%AC%EC%99%80%EB%9D%BC">오가사와라</a> 등은 징병제 시행 초기에는 징병을 시행하지 않아 홋카이도, 오키나와, 오가사와라 거주자들은 징병이 면제되었다.<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fn-2">[2]</a> 이 규정은 1898년에 폐지되었다.<br><br>1927년 4월에는 징병령이 병역법으로 바뀌면서 일본의 병역제도가 바뀌었는데 일본의 병역법도 제국신민의 남자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기본적인 내용이며, <a href="https://namu.wiki/w/%EC%83%81%EB%B9%84%EB%B3%91">상비병역</a>, 후비병역, 보충병역, 국민병역으로 병역의 종류가 규정되었다. 상비병역은 현역과 예비역으로 나뉘었고, 보충병역은 제1보충병역, 제2보충병역으로 나뉘었다. 국민병역도 제1국민병역과 제2국민병역으로 나뉘었다.<br><br>당연히 육군에서 영장이 날아왔는데 해군에 입대하면 육군의 영장은 무효 처리가 되었다.<br><br>1944년전까지는 <strong>일본 본토의 </strong><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C%9D%B8"><strong>일본인</strong></a><strong> 남성</strong>만을 상대로 징병제를 했고 일본 제국이 패망할때까지 일본의 식민지였던 <a href="https://namu.wiki/w/%EC%9D%BC%EC%A0%9C%EA%B0%95%EC%A0%90%EA%B8%B0">조선</a>과 <a href="https://namu.wiki/w/%EB%8C%80%EB%A7%8C%EC%9D%BC%EC%B9%98%EC%8B%9C%EA%B8%B0">대만</a>은 지원제였는데 이것도 식민지 시절의 조선인과 대만인의 경우에는 식민지가 되고 거의 후반기까지 일본군 입대불가였다가 나중에 지원제를 실시해 입대가능으로 바뀐 것이다.<br><br>실제로 조선인의 경우 지원병 제도 도입된 <a href="https://namu.wiki/w/1938%EB%85%84">1938년</a>부터 일본군에 입대할 수 있었는데 이마저도 육군 한정으로 해군의 경우 1943년에야 조선인 지원병을 받았다. 이렇듯 식민지인들에게 한정적으로만 개방되어 있던 군문은,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후반기로 갈수록 본토 일본인만으로는 병력수가 모자라 병역법을 개정, 식민지 남성들 상대로도 징병제를 실시하게 되면서 열리게 되었다. <a href="https://namu.wiki/w/1944%EB%85%84">1944년</a> 이후부터 <a href="https://namu.wiki/w/%EC%A1%B0%EC%84%A0%EC%9D%B8">조선인</a>뿐만 아니라 <a href="https://namu.wiki/w/%EB%8C%80%EB%A7%8C%EC%9D%B8">대만인</a>도 징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조선인 징병검사가 1944년 4월부터 8월까지 이루어졌다. 이에따라 실제로 조선인 병사가 일본육군으로 배치된건 1944년 10월 즈음 이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시점이라<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fn-3">[3]</a> 실전 투입 사례는 미미한 수준이고 대부분 한반도 방어부대로 배치되었다.<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fn-4">[4]</a><br><br>참고로 1944년 조선인을 상대로도 징병제가 시행됨과 동시에 1945년 1월을 기점으로 조선인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되었는데 이에따라 1945년 <a href="https://namu.wiki/w/%EC%A4%91%EC%9D%98%EC%9B%90">중의원</a>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이전에는 조선인에게는 일본신민으로서의 의무<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fn-5">[5]</a>가 없으니 권리도 보장할 수 없다는 입장이였지만 전세가 급박해지자 방침을 바꾼것이다.<br><br>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의 항복 선언으로 인한 패전, 이에 따른 일본군 해체로 일본의 징병제가 폐지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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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3:12: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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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02 김단우 독도VS다케시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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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출처:일본 지방현<br>사례:일본 지방현</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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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3:12: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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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효빈3312</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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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아닌 또 다른 인물의 테러?(일본의 주장과 대한민국의 견해)<br><br><br>일본은 이토를 죽인건 안중근이 아닌 또다른 저격수라고한다 그 이유는 이토의 주치의가 이토의 몸을 부검했을때 총알 세발이 위에서 아래로 사선으로 내려온걸로 봐선 안중근일수가없다며 부정을하고 있고&nbsp; 또다른 암살자가 2층에서 저격했다고 주장한다.&nbsp;여기서 안중근이 의거한것이 아니라는 두번째 주장은 이토를 쏜 총기의 총알과 안중근의 총은 다르다 라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일본의 마지막 주장은 이토의 유언이다 하지만 그의 부하중 무로타라는 사람이 들었다고 했지만 사진상 그 부하는 멀리 떨어져 있던 하지만 대한민국은 일본의 주장에 반박을 한다 일본의 첫번째 주장인 총알이 사선으로 박혀있던것은 각도가 2층에서 1층의 각도가 아다 라고 주장했고 두번째 주장은 이토의 시체를 부검 조금만하고 바로 시체를 안치했기에 알수가 없고 그 주위 부하가 맞은 총알도 안중근 의사의 것이다. 세번째 주장은 앞에서 처럼 말이 안되니 생략한다.<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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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3:12: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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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11 박준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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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출처:https://youtu.be/_-PWh9HHcJY<br>주제:식민지 침탈vs식민지 발전<br>사례:일제시대 산 증인의 증언</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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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4:24: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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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17 이지수</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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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https://dokdo.mofa.go.kr/kor/<br>주제:독도Vs다케시마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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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4:33: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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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08 김형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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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strong>일본군 위안부</strong>(<a href="https://namu.wiki/w/%E6%97%A5">日</a><a href="https://namu.wiki/w/%E6%9C%AC">本</a><a href="https://namu.wiki/w/%E8%BB%8D">軍</a><a href="https://namu.wiki/w/%E6%85%B0">慰</a><a href="https://namu.wiki/w/%E5%AE%89">安</a><a href="https://namu.wiki/w/%E5%A9%A6">婦</a>) 또는 <strong>일본군 성노예 제도</strong>(日本軍性奴隸制度)는 <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C%9D%98%20%EC%A0%84%EC%9F%81%EB%B2%94%EC%A3%84">일본의 전쟁범죄</a> 중 하나<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A%B5%B0%20%EC%9C%84%EC%95%88%EB%B6%80#fn-3">[3]</a>로, <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20%EC%A0%9C%EA%B5%AD">일본 제국</a> 정부의 관여 및 묵인 하에 자행된, 식민지 및 점령지의 <a href="https://namu.wiki/w/%EC%97%AC%EC%84%B1">여성</a>을 대상으로 한 전시강간 등의 <a href="https://namu.wiki/w/%EC%84%B1%EB%B2%94%EC%A3%84">성범죄</a> 행위를 이른다.<br><br><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20%EC%A0%9C%EA%B5%AD">일본 정부</a>는 <a href="https://namu.wiki/w/2%EC%B0%A8%20%EC%84%B8%EA%B3%84%EB%8C%80%EC%A0%84">2차 세계대전</a>을 치르는 동안 <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A%B5%B0">일본 군인</a>들의 위안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군대의 기밀 유지를 위하여 별도의 <a href="https://namu.wiki/w/%EC%84%B1%ED%96%89%EC%9C%84">성행위</a> 장소인 <a href="https://namu.wiki/w/%EA%B3%B5%EC%B0%BD">군대 위안소</a>를 만들고, 식민지 및 점령지 출신의 여성들을 모집하여 관리한 것이다.이것이 자기들의 용어로 '위안부'였다. 이 위안부의 모집에 문제가 있었고, 빚을 빌미로 인신을 구속하거나 취업 사기가 빈번했다. 일본 본토, 한반도, 대만에서 성매매알선업자들이 "일자리를 소개시켜 준다.",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며 모집하였는데 막상 도착한 곳은 위안소인 식으로 여성들을 끌어들였고 일본정부는 이를 사실상 묵인하였다.<br><br>이 역사적 과오이자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며 <a href="https://namu.wiki/w/2023%EB%85%84">2023년</a> <a href="https://namu.wiki/w/5%EC%9B%94%202%EC%9D%BC">5월 2일</a> 기준 위안부 피해자는 9명이 남았다.<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A%B5%B0%20%EC%9C%84%EC%95%88%EB%B6%80#fn-4">[4]</a> 제대로 된 사과가 없는 사건<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A%B5%B0%20%EC%9C%84%EC%95%88%EB%B6%80#fn-5">[5]</a>으로도 유명하다. <a href="https://namu.wiki/w/%ED%8C%8C%EC%9D%BC:N4nXsmh.jpg">한국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대응</a><br><br><a href="https://namu.wiki/w/2015%EB%85%84">2015년</a> <a href="https://namu.wiki/w/12%EC%9B%94%2028%EC%9D%BC">12월 28일</a> <a href="https://namu.wiki/w/%EB%B0%95%EA%B7%BC%ED%98%9C%20%EC%A0%95%EB%B6%80">박근혜 정부</a>의 <a href="https://namu.wiki/w/2015%EB%85%84%20%ED%95%9C%EC%9D%BC%20%EC%9C%84%EC%95%88%EB%B6%80%20%EB%AC%B8%EC%A0%9C%20%ED%98%91%EC%83%81%20%ED%95%A9%EC%9D%98">한일 외교장관 간 위안부 문제 합의</a>로 이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되는 단초가 되는 듯 하였으나 합의 자체의 여러 한계들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이 내용은 밑의 항목으로.<br><br><a href="https://namu.wiki/w/2017%EB%85%84">2017년</a> <a href="https://namu.wiki/w/7%EC%9B%94%2011%EC%9D%BC">7월 11일</a> <a href="https://namu.wiki/w/%EB%AC%B8%EC%9E%AC%EC%9D%B8%20%EC%A0%95%EB%B6%80">문재인 정부</a>가 <a href="https://namu.wiki/w/8%EC%9B%94%2014%EC%9D%BC">8월 14일</a><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A%B5%B0%20%EC%9C%84%EC%95%88%EB%B6%80#fn-6">[6]</a>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로 공식 지정하였다. <a href="http://m.insight.co.kr/newsRead.php?ArtNo=112405">#</a><br><br><a href="https://namu.wiki/w/2021%EB%85%84">2021년</a> <a href="https://namu.wiki/w/1%EC%9B%94%208%EC%9D%BC">1월 8일</a> <a href="https://namu.wiki/w/%EC%84%9C%EC%9A%B8%EC%A4%91%EC%95%99%EC%A7%80%EB%B0%A9%EB%B2%95%EC%9B%90">서울중앙지방법원</a>에서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고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a href="https://www.bbc.com/korean/news-55583344">#</a> 위안부 문제 배상에 관한 피해자들의 첫 승소로, 사건 접수 이후 5년만에 나온 판결이다. 하지만 가해국인 일본 최고 법원이 아니라 피해국인 한국 법원에서 내린 판결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이를 묵인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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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4:34: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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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17 이지수</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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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http://contents.nahf.or.kr/eddokViewer/contens.do?viewType=Elementary&amp;levelId=eddok.d_0002_0050_0010<br>주제:독도Vs다케시마</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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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4:37: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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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23 주호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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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식민지&nbsp;발전이라면 저항을 했을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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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4:38: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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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유주3320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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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4:40: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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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10 박선민</title>
         <author>huijong012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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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4:42: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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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16 이예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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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독도 vs 다케시마<br>사례: 일본의 주장<br>출처: https://www.kantei.go.jp/jp/headline/takeshima.html</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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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4:54: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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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0 유태연</title>
         <author>huijong012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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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강제징용 vs 지원채용<br>사례:<br>출처:나무위키<br>일본의 강제징용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1938년 국가총동원법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었다.일본의 국가총동원법으로 징병(조선인 일본군),위안부,그리고 노무동원을 시켰다.월급에 대해서는 아예 설명도 하지 않거나,고향에 송금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주지 않았다. 설사 서류상으로 월급, 가족수당, 개근수당, 잔업수당 등을 주더라도 역시 서류상으로 퇴직적립금, 국민저축 등의 공제를 해서 실제 현금을 거의 받지 못 했다. 식량 배급량도 적어서 항상 배가 고팠다는 진술이 많다. 길가에 버려진 귤껍질을 주워 먹었다는 증언도 있다.<a href="https://namu.wiki/w/%EC%A0%9C%EC%B2%A0%EC%86%8C">제철소</a>의 경우 삽으로 탄을 옮기는 막일, 공장 내 철도의 신호소에서 선로 전환과 관리 등의 일을 시켰다. <a href="https://namu.wiki/w/%EC%A1%B0%EC%84%A0%EC%86%8C">조선소</a>의 경우 도금공장에서 구리 파이프를 구부리는 일, 철재 운반 작업 등을 시켰다. 똑같은 기업에서 일했다고 해도 일본인 기술자들과의 대우는 천지차이였다.하지만 똑같은 조선소 건물에서 일하던 징용 노무자들은 해군과 육군 헌병들의 감시를 받으며 채찍으로 얻어맞고 월급도 받지 못 하는 등 노예로서의 삶을 살았다. 조선인 외에 중국인, <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A%B5%B0/%ED%8F%AC%EB%A1%9C">연합군 포로</a>들도 노예로서 강제노역에 함께 종사당했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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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11: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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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23홍정승</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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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독도 Vs 다케시마<br>사례:교과서 서술<br>출저: 1.<a href="https://www.google.com/url?sa=i&amp;source=web&amp;cd=&amp;ved=0CAQQw7AJahcKEwj4sd7dyuf-AhUAAAAAHQAAAAAQAg&amp;url=https%3A%2F%2Fwww.kci.go.kr%2Fkciportal%2Fci%2FsereArticleSearch%2FartiPreView.kci%3FsereArticleSearchBean.artiId%3DART001935325&amp;psig=AOvVaw0z5CK6GoPh3fMUk7Z22q5E&amp;ust=1683699098729469">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artiPre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35325</a><br>&nbsp; &nbsp; &nbsp; &nbsp; 2.<a href="https://www.google.com/url?sa=i&amp;source=web&amp;cd=&amp;ved=0CAQQw7AJahcKEwiw16HOzOf-AhUAAAAAHQAAAAAQAg&amp;url=https%3A%2F%2Fwww.cas.go.jp%2Fjp%2Fryodo_kr%2Fryodo%2Ftakeshima01-04.html&amp;psig=AOvVaw3fZuSy6zsonnQa5vAa8ObU&amp;ust=1683699751796475">https://www.cas.go.jp/jp/ryodo_kr/ryodo/takeshim</a></div><div>설명: 1.일본이 독도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로는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nbsp;<br>있다. 첫째, 일본은 독도가 근세초기 이래 일본의 영토였다고 주장한다. 둘째,&nbsp;<br>1905년의 영토편입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해왔으며, 일본은 독<br>도가 편입 당시 주인 없는 돌섬으로 무주지(terra nullius)라는 점을 확인하고&nbsp;<br>이를 선점한 것이므로 국제법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셋<br>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2조 a항에서 독도가 누락되었으므로 일본의 영토임<br>이 틀림없다는 입장이다.<br>&nbsp; &nbsp; &nbsp;  &nbsp;2.한국이 인용한 문헌에는 다케시마에 관한 기술이 없으므로 다케시마를 영유하는 증거라고 할 수 없습니다.</div><div>&nbsp;한국의 주장에는 증거자료와 결론의 인과관계가 없으며 증거자료의 해석에도 잘못이 있습니다.<br><br></div><div>① 다케시마(한국명:독도)가 이런 문헌의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지 설명이 없습니다.<br><br></div><div>②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우산도’는 이 문서의 ‘팔도총도’에서 한반도와 울릉도 사이에 그려져 있으므로 다케시마를 가리킨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br><br></div><div>③ “세종실록”의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라는 기술은 훗날 더욱 자세한 해설을 첨부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봉우리 머리의 수목과 산밑의 모래톱을 역력히 볼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다케시마에는 수목이 없으므로 울릉도에서 다케시마가 보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br><br></div><div><br><br></div><div>&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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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11: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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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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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21조현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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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강제징병<br>사례: 교과서 서술내용<br>출처: 한겨레(일 초등 교과서 '강제동원•징병' 대놓고 뭉갰다.)<br>https://m.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1085501.html?_fr=gg#cb<br>&nbsp;<br>도쿄서적은 2019년 검정 통과본에선 ‘전쟁과 조선사람들’ 부분에 실린 사진을 설명하며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이라고 적었지만, 올해는 “지원해서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표현을 바꿨다.일본이 조선에서 육군지원병제도를 도입한 것은 1938년이고 징병제를 실시한 것은 1944년부터다. 관련 사진의 촬영 시점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조선인을 전쟁터로 끌어낸 행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고, 조선인들이 ‘자발성’을 강조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교과서 본문 내의 기술도 “남성은 일본군의 병사로 징병되고”에서 “남성은 일본군의 병사로 참가하고, 후에 징병제가 시행됐다”로 수정됐다.</div><div><br>한-일 간 핵심 현안이었던 강제동원 피해자와 관련된 구절에선 “다수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적으로 끌려와서”라는 표현이 “강제적으로 동원되어”로 바뀌었다. 일본 정부가 2021년 각의(국무회의)를 통해 강제연행·연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며 ‘끌려와서’라는 부분이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교이쿠(교육)출판 교과서에선 “일본군 병사로 징병되어 전지에 보내졌다”는 문구에서 “징병”이라는 단어만 쏙 삭제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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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11: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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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6김현수</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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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안중근 의거 Vs 다른 인물 테러<br><br>사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에 대해서는 허설과 오류가 쌓이기 마련이다. 안중근 의사도 예외는 아니다. 하얼빈 의거와 뤼순의 순국 1세기가 넘어가지만 안 의사에 대한 잘못되거나 근거없는 정보와 일화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최서면(83) 국제한국연구원장은 “1969년 &lt;안응칠 역사&gt; 발견 이래 반세기 가까운 안중근 연구 과정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 희열의 순간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잘못된 근거에 따른 오류와 의도적으로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고자 끊임없이 확인하고 지적하는 논쟁의 반복이기도 했다”고 말했다.그는 특히 안 의사에 대한 상반된 인식과 평가에 따라 한·일 두 나라에서 떠도는 허설의 양상도 대조적인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쪽에서는 주로 안 의사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비하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왜곡 사례가 나온다면, 한국 쪽에서는 안 의사를 지나치게 영웅시하거나 숭모하려는 시각에서 과장된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div><div>광고</div><div>이를테면 일본 쪽에서는 해방 이전부터 나온 ‘이토의 마지막 유언 바카야로설’과 ‘제3자 저격설’이 대표적이라면, 한국 쪽에서는 ‘십자가 총알’과 ‘12단지동맹’을 둘러싼 오해를 꼽을 수 있다.‘이토는 총에 맞은 뒤 응급치료를 받았고, 브랜디를 두 잔 마셨다. 조선인이 가해자라는 말을 듣고 “바카야로!”(바보 같은 녀석)라고 읊조리더니 곧 숨을 거두었다. 저격 후 30분이 지난 뒤였다.’</div><div>1909년 10월26일 오전 10시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안 의사의 저격을 받고 쓰러질 당시 수행했던 주치의 고야마 젠이 그려서 검찰과 일본 정부에 보고한 주검 검안도. ‘2층에서 제3의 범인이 쏜 총에 맞아 총알 3개가 모두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박혔다’는 무로타의 주장과 달리 거의 수평이다.(왼쪽 사진) 안 의사가 쏜 브라우닝 권총에서 나온 총알로 일본 국회의사당 앞 헌정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끝 모서리에 새겨진 십자 모양은 안 의사가 새긴 게 아니라 ‘엑스프레소’라는 제품의 특징으로 밝혀졌다.(오른쪽 사진)</div><div>2009년 가을 이토의 고향인 일본 야마구치현 히가시에서 열린 이토 히로부미 사망 100주기 특별전시회에 나온 ‘이토의 피묻은 와이셔츠’를 소개한 설명이다. 와이셔츠를 보관한 나무상자의 뚜껑에 적혀 있는 것으로, 당시 이토를 수행한 귀족원 의원 무로타 요시아야의 증언을 인용한 것이다. ‘위키피디아’를 비롯해 한·일 두 나라에서 나온 수많은 안 의사 관련 기록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목이다.“한마디로 거짓말이야.”<br>최 원장은 그 진원지로 &lt;무로타 요시아야 옹의 이야기&gt;(室田義文翁譚·조요메이지기념회 도쿄지부 펴냄)를 지목했다. 이토를 수행한 무로타(1847~1938)가 생전에 했다는 이야기를 모아 42년에 펴낸 이 책에서 처음 나온 목격담이라는 것이다.“의거 당시 하얼빈역에서 이토의 저격 순간을 목격한 수행원은 모두 9명으로, 무로타를 비롯해 비서 후루타니, 귀화중국인 통역 정영방, 육군소령 마쓰모토, 궁내부 대신 모리, 궁내부 소속 주치의 고야마, 그리고 시종 3명이 있었어. 의거 직후 이들은 모두 증인 신문을 받았고, 귀국한 뒤에는 사건 현장 보고서를 제출했어. 그런데 무로타만 다른 얘기를 했고 그래서 공식 조사에서도 무시됐는데 마치 사실처럼 되살아난 거지.”무로타의 증언을 근거로 한 이설 중에는 이토가 안 의사의 총알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고 진범은 러시아인일 것이라는 이른바 ‘제3자 저격설’도 들어 있다. ‘이토가 맞은 탄환은 안 의사가 들고 있던 브라우닝 권총이 아니라 하얼빈역사 2층 식당에서 진범이 쏜 프랑스제 기마총(카빈총)에서 발사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이토의 몸에 박힌 총탄 세 발은 모두 위에서 아래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그러나 최 원장은 “이토가 맞은 총알은 지금까지 누구도 본 적이 없다. 더구나 무로타는 이토가 죽는 순간도 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 모두가 지어낸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일본 외교사료관에 보관돼 있는 수행기록과 주치의의 검안 보고서, 당시 뤼순과 일본에서 나온 신문의 보도 내용 등이 반론의 근거다. ‘이토는 3발의 총격을 받고 열차로 옮겨져 30분 만에 숨을 거뒀다. 비서가 유언을 받으려 했을 때는 이미 혼수상태였다. 무로타는 이토 바로 뒤쪽에서 의장대 사열을 하다, 이토가 쓰러진 순간 부축해서 열차로 옮길 때까지만 수행했다. 이토의 주검은 곧바로 일제 관할지이자 일본으로 가는 배편이 있는 다롄항으로 이송됐다. 열차에는 주치의인 고야마 젠이 상비해온 솜으로 출혈을 막으며 동행했다. 다롄에 도착한 뒤 일본적십자병원장, 헌병 군의관, 고야마가 모여 부검 여부를 논의했다. 이들은 총알이 너무 깊이 박혀 빼내려면 또한번 주검을 훼손해야 하는데 잔인한 노릇이어서 그대로 밀봉하기로 합의하고 일본식 관에 염을 했다.’따라서 누구도 이토를 부검하지 않았다. 그러니 총알은 지금도 주검에 박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당시 이토에 이어 안 의사의 총에 맞은 다나카 세이지로 만철 이사의 구두 안에 남아 있던 총알을 통해 안 의사의 브라우닝 권총에 맞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안 의사 재판 때 ‘이토 사살의 증거’로 제출된 이 총알은 다나카의 사후 유족들의 기증으로 일본 국회의사당 앞 헌정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일본의 한 르포작가가 &lt;무로타…&gt; 책을 보고 직접 총알 감식을 의뢰해 그 결과를 책으로 펴내기도 했는데, ‘아무리 입을 놀려도 권총알이 카빈총알이 될 수는 없다’고 인정했어.”천엔짜리 화폐에 들어 있던 이토의 초상을 20년 만에 바꾸는 논란이 일었던 84년 무렵, 최 원장의 강연회장으로 찾아온 이토의 손자(셋째 아들 신이치의 후손)도 “할아버지는 총격 직후 사망해 유언은 한마디도 없었다고 들었다”고 확인해줬다.이미 66년 3월 일본의 권위있는 종합잡지인 &lt;문예춘추&gt;에서 무로타의 설을 인용한 수기를 실어 우리 학계에서 반박과 항의를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순국 100돌을 계기로 지난해 일본에서는 ‘이중저격설’을 내세운 새 책들이 또 출간됐다. “일제 당국도 터무니없어 무시한 낭설임이 명명백백한데도 이런 왜곡된 주장을 계속하는 배경에는 ‘안 의사와 한국인’을 비하하려는 일본의 극우적 시각과 흥미 위주의 상업성이 깔려 있다”고 최 원장은 분석했다.그런가 하면 국내에서는 한동안 바로 이 총알이 안 의사의 독실한 신앙을 상징하는 증거로 잘못 풀이되기도 했다. 총알의 끝 모서리에 십자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가톨릭 신자로서 안 의사가 일부러 만들었다고 오해한 것이다.당시 재판 기록을 보면, 검사가 동지 우덕순에게 ‘총알의 십자 모양은 원래 그런 것이냐, 안중근이 만든 것이냐’고 거듭 묻자, ‘연해주와 시베리아 일대에서 흔히 파는 것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구했다’고 답하는 대목이 나온다.“‘엑스프레소’란 이름의 십자 총알은 몸에 맞았을 때 회전을 하면서 살을 파고드는 특징이 있었어. 그래서 1899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1차 만국평화회의에서 끝 모서리에 납을 묻혀 살을 썩게 하는 ‘덤덤탄’과 더불어 비인도적 살상기구란 이유로 사용금지를 결의해 놓았거든.” 그는 “일제 재판부는 이미 이런 국제규약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안 의사가 이토를 잔인하게 죽이고자 일부러 총알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진술을 끌어내려 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div><div>하얼빈 의거 101돌과 순국 100돌을 맞아 지난해 10월26일 새로 개관한 서울 남산의 안중근의사기념관 전경.(왼쪽 사진) 1909년 3월 안 의사와 11명의 동지가 모여 왼손 약지의 첫마디를 잘라 혈서로 ‘대한독립’(오른쪽 사진)을 쓰며 항일 결사를 했다는 ‘12단지동맹’을 상징해 12개의 기둥 모형을 살렸다. 그러나 안 의사와 더불어 11명의 동지들 모두 단지를 했다는 흔적은 지금껏 확인되지 않고 있다.</div><div>최 원장은 마지막으로 ‘12단지동맹’과 관련해서도 의문점과 함께 오류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동의단지회’로도 불리는 단지동맹은 안 의사가 재판 과정과 &lt;안응칠 역사&gt;에서 언급하면서 처음 등장한다. ‘1909년 연추 방면으로 돌아와 동지 12명이 모여 단체를 만들기로 하고 각각 왼손 약지를 끊어 태극기에 ‘대한민국’을 혈서로 쓴 다음 대한독립만세를 세번 부르고 흩어졌다’는 내용이다.사형이 확정된 뒤 1910년 3월 안 의사는 뤼순형무소로 면회를 온 두 동생에게 ‘왼손 약지를 잘라낸 단지와 몇가지 유품을 백규삼의 집에 보관해뒀다’고 일러줬고, 순국 이후 동생 정근은 이를 찾아 얼굴사진·태극기·단지사진 등을 넣은 ‘안 의사 엽서’를 2000부 제작해 항일운동 자금을 모으기도 했다.그런데 당시 안 의사는 동지들을 보호하고자 11명의 이름 전부를 끝내 공개하지 않아, 지금까지도 단지동맹의 명단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뿐 아니라, 안 의사의 단지 말고는 다른 동지들의 단지 사실은 사진도 기록도 확인된 적이 없다. 실제로 의거 동지인 우덕순의 예를 보면, 인터넷 백과사전에는 그가 ‘동의단지회’의 12명 중 한명이라고 소개해놓았으나, 안중근의사기념관의 전시 안내문에 나와 있는 명단에는 들어 있지 않다. 단지를 했다는 장소로 일제가 기록해 놓은 한자 지명도, 연추의 가리인지 하리인지 불분명하고, 그나마 지금은 러시아령으로 한인 후예들도 남아 있지 않아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다.최 원장은 “안 의사가 12명 모두 단지를 했다고 말한 까닭은 항일 동지들의 결의와 기개를 과시하고자 과장했을 것으로 짐작된다”며 다른 동지들은 단지를 하지 않았음을 추론할 수 있는 기록 가운데 하나를 소개했다. “얼마 전, 헌병사령관 아카시가 의거 직후 뤼순에 왔을 때 묵었던 집의 일본인 주인이 남긴 회고록을 찾았는데, 아카시는 당시 누구보다 단지동맹의 동지 11명을 체포하는 데 혈안이 됐지만 끝내 ‘단지’는커녕 흔적도 찾지 못한 채 조선으로 돌아가며 한탄을 했다는 대목이 나와 있어.”최 원장은 세월이 흐를수록 이처럼 왜곡되거나 한때는 근거가 없어 무시됐던 허설들이 새로운 사실인 양 등장할 수 있으므로 이를 예방하고 역사적 고증을 위해서도 우리 정부·학계에서 공인하는 ‘안중근 전기’를 간행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제안했다.<br><br>출처: 한겨레 뉴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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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13: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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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4 이준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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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식민지 침탈vs식민지 발전<br>사례:일본때문에 일제강점기 시작<br>출처:유튜브&nbsp;<br>https://www.youtube.com/watch?v=_93Uy8LBYKc&amp;pp=ygUi7Iud66-87KeAIOy5qO2DiHZz7Iud66-87KeAIOuwnOyghA%3D%3D</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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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18: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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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8 박경준</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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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식민지 침탈 Vs 식민지 발전<br>사례:일제강점기 이유<br>출처:유튜브<br>https://youtu.be/kdq559ElpkM</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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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21: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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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5 김지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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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https://m.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1068510.html?_fr=gg#cb</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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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22: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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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3 이은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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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강제징병vs자원입대<br>사례: 일제가 조선에 강제 징병제를 실시하고 지금 상황에서는 자원입대라 우기며 역사를 왜곡함<br>출처:나무 위키,MBC뉴스<br>설명:일본의 징병제(일본제국이 1873년부터 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일본군이 해체된 1945년 8월까지 일본의 남성을 일본군에 징집한제도)<br><br>1944년전까지는 <strong>일본 본토의 </strong><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EC%9D%B8"><strong>일본인</strong></a><strong> 남성</strong>만을 상대로 징병제를 했고 일본 제국이 패망할때까지 일본의 식민지였던 <a href="https://namu.wiki/w/%EC%9D%BC%EC%A0%9C%EA%B0%95%EC%A0%90%EA%B8%B0">조선</a>과 <a href="https://namu.wiki/w/%EB%8C%80%EB%A7%8C%EC%9D%BC%EC%B9%98%EC%8B%9C%EA%B8%B0">대만</a>은 지원제였는데 이것도 식민지 시절의 조선인과 대만인의 경우에는 식민지가 되고 거의 후반기까지 일본군 입대불가였다가 나중에 지원제를 실시해 입대가능으로 바뀐 것이다.<br><br>실제로 조선인의 경우 지원병 제도 도입된 <a href="https://namu.wiki/w/1938%EB%85%84">1938년</a>부터 일본군에 입대할 수 있었는데 이마저도 육군 한정으로 해군의 경우 1943년에야 조선인 지원병을 받았다. 이렇듯 식민지인들에게 한정적으로만 개방되어 있던 군문은,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후반기로 갈수록 본토 일본인만으로는 병력수가 모자라 병역법을 개정, 식민지 남성들 상대로도 징병제를 실시하게 되면서 열리게 되었다. <a href="https://namu.wiki/w/1944%EB%85%84">1944년</a> 이후부터 <a href="https://namu.wiki/w/%EC%A1%B0%EC%84%A0%EC%9D%B8">조선인</a>뿐만 아니라 <a href="https://namu.wiki/w/%EB%8C%80%EB%A7%8C%EC%9D%B8">대만인</a>도 징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조선인 징병검사가 1944년 4월부터 8월까지 이루어졌다. 이에따라 실제로 조선인 병사가 일본육군으로 배치된건 1944년 10월 즈음 이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시점이라 실전 투입 사례는 미미한 수준이고 대부분 한반도 방어부대로 배치되었다.<br><br>참고로 1944년 조선인을 상대로도 징병제가 시행됨과 동시에 1945년 1월을 기점으로 조선인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되었는데 이에따라 1945년 <a href="https://namu.wiki/w/%EC%A4%91%EC%9D%98%EC%9B%90">중의원</a>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이전에는 조선인에게는 일본신민으로서의 의무가 없으니 권리도 보장할 수 없다는 입장이였지만 전세가 급박해지자 방침을 바꾼것이다.<br><br>일본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통과한 초등학교 학생들의 사회 교과서입니다<br><br>일본의 태평양 전쟁 역사를 가르치는 단원에서 현행 교과서는 조선 사람들을 징병해 전쟁터에 내보냈다고 기술했지만 새 교과서엔 '징병'했다는 말이 쏙 빠졌습니다.<br><br>또 다른 교과서에서는, 조선인이 '강제로 끌려왔다'던 표현을 '강제로 동원됐다'는 표현으로 순화했고, '일본군에 징병 됐다'는 말도 '일본군에 참가했다'는 표현으로 왜곡했습니다.<br><br>심지어 강제로 끌려와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조선인 신병들 사진 밑에는 '자원해서 일본군에 입대했다'는 설명이 새로 붙었습니다.<br><br>교과서 내용대로라면, 조선인들이 자신의 뜻에 따라 일본에 노동을 하러 왔거나, 일본군에 스스로 입대해 전쟁터에 나갔다는 뜻이 됩니다.<br><br>이는 최근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 동원과 강제 징병에 대해 유입 경로가 사람마다 다르다며 모두 강제로 끌려 온 건 아니라고 주장하던 입장과 일맥상통합니다.<br><br>[스즈키 토시오/일본 교과서 시민단체]<br>"일본의 법원도 매우 비참한 노동이었다고 인정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강제 노동도 부정하는 것이 현실입니다."<br><br>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도 여전합니다.<br><br>특히 한 출판사가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만 표기하자 교과서검정심의회는, '일본의 고유한 영토'로 고치라고 지적했습니다.<br><br>일본이 고유라는 용어에 집착하는 건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 번도 다른 나라의 영토가 된 적이 없다'는 주장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br><br>게다가 조선인 6천 명 이상 학살된 관동대지진 관련 내용이 통째로 빠져, 어린 학생들은 이 사실을&nbsp;<br>학교에서 배울 수 없게 됐습니다.<br><br>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today/article/6468518_36207.html<br><br>https://v1.padlet.pics/1/image.webp?t=c_limit%2Cdpr_3%2Ch_518%2Cw_666&amp;url=https%3A%2F%2F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2F2043197014%2F8e536273b62541c4ab3b5a20ec5a8fc3%2Fimage.png</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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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23: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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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3 김은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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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출처: https://youtu.be/rj1lHJjeUZs<br><br>주제: 민족말살정책Vs문명화 교육<br><br>한국입장(민족말살정책)<br>내용: 한국어 금지,이름 일본어로 바뀌기,신민서사암송등으로 민족의 단합력 약화로 분열또는 친일파 발굴</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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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23: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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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20 조경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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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독도vs다케시마<br>(출처)https://k-dokdo.com/index.do?menu_id=00010018&amp;menu_link=/icms/bbs/selectBoardArticle.do&amp;bbsId=BBS_00070&amp;nttId=18000&amp;bbsTyCode=BBST01&amp;bbsAttrbCode=BBSA03<br>(설명)독도는 6세기 초엽(512년) 신라가 복속한 우산국의 영토라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독도에 대한 통치 역사는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독도는 신라의 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정복한 뒤 지금까지 줄곧 우리의 땅이었다.<br><br>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기록은 많이 남아 있는데 『세종실록지리지』(1454년)는 울릉도(무릉)와 독도(우산)가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두 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독도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 『동국문헌비고』 (1770년), 『만기요람』 (1808년), 『증보문헌비고』(1908년) 등 다른 관찬 문헌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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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24: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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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7나대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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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교도통신은 6일 세계 제2차대전 중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의 포로수용소에서 네덜란드 여성 35명을 강제 연행해 위안부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공문서를 도쿄 국립공문서관이 지난달 말부터 6일까지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시민단체의 정보 공개 청구에 따라 일본 정부가 자료를 공개한 것으로, 위안부 강제 연행 과정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의 기초가 된 이 자료의 존재와 주요 내용은 알려져 있었지만 상세한 문서 내용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라고 통신은 전했다.<br>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007008011<br>서울신문</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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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25: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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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6장주형</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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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식민지 침탈vs식민지 발전<br>사례일제시대의 산 증인의 증언<br>출처:유튜브<br>https://youtu.be/_-PWh9HHcJY</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youtu.be/_-PWh9HHcJY" />
         <pubDate>2023-05-09 06:27: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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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8정민기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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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https://youtu.be/rj1lHJjeUZs<br><br>영상을 보면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는 한국인의 이름을 사용 불가하게 하는 "창씨개명", 한국어•한글 사용금지, "신민서사암송" 등이 있다. 일제는 한국국민의 민족성을 파괴해 민족의 단결성을 약화하고, 이를 통해 친일파의 발굴등을 하기의해 이 정책을 시행하였다.&nbsp;<br><br>이에대해 일제는 민족말살정책이 아니라 문명화 정책이라 주장하였다. 일제의 주장의 내용은 "문명화가 되어있지않던 한국을 일제가 문명화 시킨다" 이었다. 문명화 정책을 주장한 다른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나라의 주장도 이와 같다. 이는 한창 식민지 만들기가 활발하던떼에 존재하던 제국주의 이념으로 인해 생긴것이다. 문명화 정책은 일본이 한국의 민족 단결성을 약화 시키기위해 시행하였던 민족말살정책을 합리화하기위해 주장한 그저 그럴뿐인 주장이다.<br>아래 자료가&nbsp; 위 내용에 대한 자료이다.<br><br>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m/view.do?levelId=km_030_0080_0040<br><br>요즈음 일본은 한국의 역사를 많이 왜곡하고 있다.<br>내가 조사한 "민족말살정책 vs 문명화정책" 도 일본역사왜곡의 일부이다.<br><br>우리는 일본이 주장하는 어이없는 내용을 그저 웃으며 넘기지말고 맞받아쳐야한다.<br>그래야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지킬 수 있을것이다.<br><br><br>출처<br>● https://youtu.be/rj1lHJjeUZs<br>●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m/view.do?levelId=km_030_0080_0040<br><br><br><br><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youtu.be/rj1lHJjeUZs" />
         <pubDate>2023-05-09 06:28: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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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24홍정호</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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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식민지침탈vs식민지개발&nbsp;<br>일단 일본은 배상을 실시한 적이 없읍니다.<br>한국은 배상금을 받은적이 없고,일본도 배상금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br>왜냐하면 일본은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이라는 논리를 받아드리지 않는다.<br>식민지 지배가 합법이었는데 왜 우리가 배상해야해?&nbsp;<br>라는게 일본의 입장입니다.<br><br><br>출처,https://www.mk.co.kr/news/would/10596494</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www.mk.co.kr/news/world/10596494" />
         <pubDate>2023-05-09 06:29: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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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7 장하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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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위안부 강제진출 vs 위안부 희망모집<br>사례: 교과서 서술<br>출처: 한겨레 기사 https://m.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988852.html?_fr=gg#cb<br>&nbsp; &nbsp; &nbsp; &nbsp; &nbsp; 제목: ‘위안부 강제’ 지운 교과서 모든 일본 교교생 배운다. &nbsp; (2021-03-30)<br><br>내용: 내년부터 일본의 모든 고등학생이 배워야 할 역사 교과서 12종 중 단 한 곳만이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서술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이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역사 교육을 통해 잊지 않겠다고 선언한 ‘고노 담화’를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br>교과서에 참고자료 형태로 소개한 곳이 4곳이다. 분량은 대체로 한두 문장으로 서술한 곳이 많으며 일본 외무성 자료를 그대로 옮겨놓은 교과서가 세 문장으로 가장 길다.<br><br>각지의 전장에서는 위안소가 건설돼 일본과 조선, 대만 점령지의 여성이 위안부로 모집됐다. 강제로 오기도 하고 속아서 연행되기도 한 예도 있다”고 서술했다. 이 출판사는 역사총합을 3종 냈는데 나머지 2종에는 강제성을 빼거나 ‘위안부’를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br><br>나머지 교과서들은 간단한 사실관계를 적고, “강제”라는 표현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 실태에 대한 설명도 없이 전후 보상 문제만 언급한 교과서도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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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31: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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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9정우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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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nbsp; 위안부 강제차출 Vs 위안부 희망 모집<br><br><br>일본의 주장은 위와 같다.<br><br>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161949<br><br><br>사례 : 일본의 왜곡<br><br>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위안부’와 ‘강제연행’ 등의 용어가 삭제되는 등 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교과서에 반영하도록 일본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다.<br><br>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10#_enliple<br><br><br><br>한국의 주장<br><br>일본군이 위안부 피해자를 강제 연행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또 공개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위안부 강제 연행을 입증하는 내용은 아니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일본 &lt;교도통신&gt;은 17일 일본 국립공문서관이 일본군 부대가 위안소 운영과 위안부 강제 연행과 관련돼 있음을 나타내는 공문서 19건, 182점을 내각관방(내각 주요 정책의 기획·입안·조정을 담당하는 기관)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br><br><br><br>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791085.html#cb<br><br><br>"일본군이 위안부 직접 운영"…증거문서 또 발견<br><br>위안부를 일본 군대가 아니라 민간에서 운영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일본군의 비밀문서가 발견됐습니다.<br><br>한일문화연구소는 일본군에서 작성한 '진중일지' 일부를 입수했다고 밝혔습니다.<br><br>이 자료에는 "병참에서 지정한 위안소 외에 사창가에 들어가는 것은 금지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으며, 공식 문서임을 증명하는 연대장의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br><br>https://www.yonhapnewstv.co.kr/news/MYH20170118019100038?source=1834p<br><br><br><br><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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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31: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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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4김종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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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nbsp;<br>민족말살정책을 시행하였다.<br>"민족말살정책"은 우리나라의 단결성을 약화 시켜<br>분열을 시키거나 친일파를 발굴했다.<br>일본은 풍수사상을 중요시여기는<br>&nbsp;한국의 혈을 끈으려고 전국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br>조선의 건물을 붕괴하고 일본 상징 건물들을 세웠다.<br>https://youtu.be/ZuzdOASRqGA<br>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시대 창씨개명이 많아진 이유는 창씨개명을 하지않으면 행정 업무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여서 창씨개명이 많아졌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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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32: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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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서진3111</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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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 안중근 의거 vs 다른 인물 테러<br>사례 : 일본 아시아 뉴스<br>출처 : http://www.asianews.seesaa.net<br><br><br><br>내용 : 1909년 10월 26일 이토히로 부미가 암살 당하던 날, 당시 추밀원 의장이었던 히로부미는<br>만주와 조선분제를 놓고 러시아의 재무장관 블라디미르 코코체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으로<br>갔다. 오전 9시 차내에서 코코체후의 인사를 받은뒤 홈에서 러시아군의 사열을 받은 히로부미는<br>군중으로 가장해 접근한 안중근이 발사한 총탄 세발을 맞고 약 30분 후에 사망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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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36: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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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9백건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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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br>안중근 의거 vs 다른 인물 테러<br><br>사례<br>일본 아시아 뉴스의 2017년 5월 16일차 뉴스/일본 일각에서 주장하는 이토 히로부미 제 3자&nbsp; &nbsp; &nbsp; &nbsp; &nbsp; 저격설<br>조선 일보의 2022년 10월 21일차 뉴스/이토 히로부미를 쏜 사람은 안중근이 아닌 제 3자의 저격자라고?<br><br>출처<br>http://www.asianews.seesaa.net<br>http://www.chosun.com<br><br>-&gt;1909년 10월 26일에 하얼빈 역에서 일어난 안중근의 의거. 이 사건에 대해 일본 측에선 이를 부정하며 맞은편 2층 건물에서 제 3자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로는 키가 비슷한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가 있을 때 총상이 위에서 아래로 날 수 없다 하는 것인데, 이는 총을 맞으며 이토가 쓰러져 아래를 보며 맞출 수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의 허점이 있다. 실제로 전문가는 이토 히로히로부미의 총상의 각도가 2층에서 쐈을 때의 각도가 아니며, 일본인 의사의 진단서에 일자로 입은 총상이 있다는 부분에서 안중근이 저격했다는 증거가 있어서 이 주장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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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36: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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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5임유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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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안중근 의거vs다른 인물 테러<br>사례:<br><br>이토가 피격당하던 그 상황에서 하얼빈역 1층 찻집에서 나온 안중근 의사가 권총으로 쏜 것이 아니라, 2층에 숨어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진범’(이 음모론이 꼬리에 꼬리를 문 나머지 ‘러시아 비밀조직원이 그 실체’ ‘일본 제국주의를 견제하려는 전세계 유대인의 소행’이라는 허풍 섞인 이야기로도 발전이 됐다고 합니다)이 카빈총으로 비스듬히 내려 쐈다는 얘깁니다. 거짓말이란 디테일한 군더더기가 더 붙을수록 진짜 같아 보이는 법. ‘무로다 옹의 이야기’란 책에서는 이런 설명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 식당은 격자 구조로 돼 있어 아래로 쏘기에는 절호의 장소였다.”<br><br></div><div>그렇게 위에서 아래로 총탄이 비스듬히 내려가도록 쏜 결과, 이토의 몸에 박힌 총탄 세 발이 모두 그런 방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뒷받침하듯 책은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이토 피격 진술도’를 수록했습니다.<br><br></div><div>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수행했던 귀족원 의원 무로다 요시아야가 그린 '이토 피격 진술도'.</div><div><br>이 그림으로 본다면 안중근 의사가 수평으로 쏜 총에서 발사된 탄환일 수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최서면 원장은 “그림 자체가 근거 없는 날조”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무로다는 이토의 몸 속에 있는 총탄을 볼 수 없었습니다!” 총격을 받고 열차 안으로 옮겨진 이토가 30분 만에 사망하자 러시아 측이 부검을 건의했으나 일본 측은 “감히 이토 공의 몸에 칼을 댈 수 없다”며 반대했습니다. 열차는 이토의 시신을 싣고 황급히 하얼빈을 떠났습니다. 무로다는 이토가 쓰러진 뒤 부축해서 열차로 옮긴 순간 수행했을 뿐, 이토가 죽는 순간도 보지 못했습니다.<br><br></div><div>열차가 일본 조차지인 관동주(關東州) 다롄(大連)에 도착한 뒤 수행 의사, 다롄병원장, 관동군 군의관이 긴급 회의를 열어 부검 여부를 논의했으나, 몸 속의 탄환을 꺼내는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이토 몸 속의 탄환은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br><br></div><div>그러나 이토를 쏜 총에서 나온 탄환은 딱 한 발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토 옆에 있다가 다리를 부상당한 사람이 만철(滿鐵) 이사였던 다나카 세이지로(田中淸次郞)였는데, 그가 죽은 뒤 유족은 이 총탄을 도쿄 헌정기념관에 기증했습니다. 이것은 분명 카빈총이 아닌 권총 탄환이었습니다. 한 일본 르포 작가가 무로다 책을 본 뒤 총알 감식을 의뢰해 그 결과를 책으로 냈는데 “아무리 입을 놀려도 권총알이 카빈총알로 둔갑할 수는 없다”고 실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br>출처 조선일보</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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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40: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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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1권원중</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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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독도vs다케시마<br>사례:독도 영유권 왜곡,일본교과서 왜곡<br><br>출처:Ministry of Foreigh Affairs of japan<br>(https://www.kr.emb-japan.go.jp/territory/takeshima/g_ninchi.html)<br>서울 신문<br>(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328008010)<br><br>설명:위 그림을 보면 독도가 우리나라인 근거가 있지만 일본은 확실한 근거가 없다.<br>그나마 있는 근거도 모두 틀린 것들이다.<br>"현재의 다케시마는 일본에서 일찍이 ‘마쓰시마(松島)’로 불렸으며, 반대로 울릉도가 ‘다케시마’ 또는 ‘이소 다케시마’로 불렸습니다"라고 했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다.<br><br>이와 같이 일본은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일보교과서에 들어냈다<br>일본 문부과학성의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독도에 대한 기술이 일본 정부 견해대로 수정된 것으로 28일 확인되면서 교과서 검정 제도 문제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br><br>일본문교출판은 6학년 사회 교과서 검정 신청본에서 독도를 ‘다케시마’를 ‘일본의 영토’가 아닌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고쳤다. 검정 과정에서 ‘아동이 일본 영토에 대해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는 지적을 받은 데 따른 조치다.일본 문부과학성의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독도에 대한 기술이 일본 정부 견해대로 수정된 것으로 28일 확인되면서 교과서 검정 제도 문제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br><br><br></div><div><br>https://v1.padlet.pics/1/image.webp?t=c_limit%2Cdpr_3%2Ch_869%2Cw_666&amp;url=https%3A%2F%2F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2F2043196703%2F85861b9a29d19ac68a81c63f0a282583%2Fimage.png</div><div><br>https://v1.padlet.pics/1/image.webp?t=c_limit%2Cdpr_3%2Ch_869%2Cw_666&amp;url=https%3A%2F%2F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2F2043196703%2F85861b9a29d19ac68a81c63f0a282583%2Fimage.png</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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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06:41: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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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20 조준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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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독도 vs 다케시마<br>사례: 독도 영유권에 관한 일본의 일관된 입장<br>출처: kr.emb-japan.go.jp/territory/takeshima/links.html<br>내용:<br>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도 또한 국제법상으로도 분명히 일본국 고유의 영토입니다.<br><br></div><div>한국에 의한 다케시마 점거는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이 행해지는 불법 점거이며, 한국이 이런 불법 점거에 따라 다케시마에 대해 실시하는 그 어떤 조치도 법적인 정당성을 가지지 않습니다.<br><br></div><div>일본국은 다케시마 영유권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국제법에 따라 침착하고도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생각입니다.<br><br></div><div>(주) 한국측으로부터는 일본이 다케시마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영유권을 재확인한 1905년 이전에 한국이 다케시마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것을 나타내는 명확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nbsp;<br><br><br><br><br></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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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09 14:34: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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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8정민기&lt;사진1&gt;</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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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8정민기&lt;사진2&g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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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5김지성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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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20 조경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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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0유태연 강제징용 사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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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7 장하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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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23홍정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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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24홍정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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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2김견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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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3김은찬&lt;사진1&g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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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03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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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6장주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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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6 김현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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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5김지성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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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6 김현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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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1권원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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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5임유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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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5임유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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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24최유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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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16 이예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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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1:50: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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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23 주호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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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쌀을&nbsp;싣고 가는 화물차</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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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1:56: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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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25 최찬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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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1:59: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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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0유희종</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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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강제징용vs지원채용<br>사례:정부(정치인 발언+신문)<br>출처:(한겨례 신문)<br>https://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04928.html?_fr=gg#cb<br>내용:일본 정부는 왜 군함도의 진실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2차대전 시기 강제동원 피해자를 돕는 일본 시민단체 ‘나가사키 중국인 강제연행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신카이 도모히로 사무국장은 “일본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근본적 이유는 과거 불법적 식민지배와 아시아 국가 침략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그는 20, 22일 &lt;한겨레&gt;와 한 비대면 화상과 서면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는 ‘징용의 특성상 대상자가 본인 의사에 반해 끌려왔을 수 있지만, 전시 징용은 합법적 수단이며 (법적) 문제는 없다’는 논리를 편다. 이런 배경에는 한반도 병합 자체가 합법이었으며, 이후 한국인을 상대로 한 일본의 모든 행위는 ‘법에 근거한’ 합법 행위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카이 사무국장은 일본 내 평화운동가이자,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2차대전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원해왔다. 민족문제연구소 등 한국 평화단체들과도 긴밀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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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2:43: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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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4 이지운</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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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사례:나무위키<br>출처:나무위키&nbsp;<br>내용:<br><br></div><blockquote><strong>징병제가 헌법 위반이라는 것은 의사에 반한 노예 같은 고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절대 찬성할 수 없다.</strong> - <a href="https://namu.wiki/w/%EC%9D%B4%EC%8B%9C%EB%B0%94%20%EC%8B%9C%EA%B2%8C%EB%A3%A8">이시바 시게루</a> 자민당 간사장<strong>자위대원이 몇십 명 죽었을 때 지금 방식으로 자위대가 모집되겠느냐. 집단자위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징병제로 갈 수밖에 없다.</strong> - <a href="https://namu.wiki/w/%EC%97%90%EB%8B%A4%EB%85%B8%20%EC%9C%A0%ED%82%A4%EC%98%A4">에다노 유키오</a> 전 관방장관<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fn-6">[6]</a><strong>젊은이들에게 좀 더 인간의 연대감을 느끼게 하고 싶다. 자위대에 들어가도 좋고, 경찰에 들어가도 좋다. 무언가 무상(無償)의 행위를 하는 경험을 하는 편이 좋다. 실제로 (징병제를) 할지 안 할지는 동료와 상담해보겠다.</strong> - <a href="https://namu.wiki/w/%EC%9D%B4%EC%8B%9C%ED%95%98%EB%9D%BC%20%EC%8B%A0%ED%83%80%EB%A1%9C">이시하라 신타로</a> 전 도쿄 도지사<strong>전투에 참전하는 자위대에 지원하는 젊은이가 있겠느냐, 집단적 자위권 도입으로 지원제가 징병제로 전환될 것.</strong> - 가토 고이치 전 자민당 간사장<strong>자위대 지원자가 없어지면 징병제는 나올 수밖에 없다.</strong> - <a href="https://namu.wiki/w/%EB%85%B8%EB%82%98%EC%B9%B4%20%ED%9E%88%EB%A1%9C%EB%AC%B4">노나카 히로무</a> 전 자민당 간사장</blockquote><div><br>2014년 <a href="https://namu.wiki/w/%EC%95%84%EB%B2%A0%20%EC%8B%A0%EC%A1%B0">아베 신조</a> 총리가 평화 헌법 개정을 계속 들먹이면서 <strong>언젠가 일본의 징병제가 부활될 것</strong>이라는 예상이 있다. 평화 헌법 개정으로 인해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하여 직접적으로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결국 전쟁터에 나갈 일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부담을 느낀 자위대원들이 앞다퉈 전역을 신청하여 인원이 부족해져서 징병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을거라는 논리. <a h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mid=sec&amp;sid1=104&amp;oid=032&amp;aid=0002510673">#</a> 그러나 <a href="https://namu.wiki/w/%EC%95%84%EB%B2%A0%20%EC%8B%A0%EC%A1%B0">아베 신조</a> 총리를 비롯한 <a href="https://namu.wiki/w/%EC%9D%BC%EB%B3%B8%20%EC%A0%95%EB%B6%80">일본 정부</a>의 관료들은 이구동성으로 징병제에 대해서 <a href="https://namu.wiki/w/%EA%B7%B8%EB%9F%B0%EA%B1%B0%20%EC%97%86%EB%8B%A4">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a>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br><br>2015년 7월 아베 총리가 안보법 통과를 밀어붙이자 <a href="https://namu.wiki/w/%EB%AF%BC%EC%A3%BC%EB%8B%B9(%EC%9D%BC%EB%B3%B8%201998%EB%85%84)">일본 민주당</a>이 또 징병제를 언급하면서 일본인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물론 앞서 말했다시피 일본의 안보 환경상 징병제를 도입할 정도인 수준은 아니지만, <a href="https://namu.wiki/w/%EC%95%84%EC%A0%84%EC%9D%B8%EC%88%98">아전인수</a>식으로 헌법을 해석해대는 아베 정권의 방식대로라면 징병제를 언제 시행해도 이상할게 없다는 것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주장. <a h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mid=sec&amp;sid1=104&amp;oid=001&amp;aid=0007712716">#</a> 실제로 헌법상 징병제를 금지한다는 명확한 문구가 없기 때문에 아베 정권처럼 아전인수격 해석을 한다면 징병제가 합헌이라고 하면서 강행할 여지도 있긴 하다.<br><br>다만 징병제를 할 경우 일본이 해외에 무력을 투사하거나 위험 지역에 병력을 투입하기가 지금보다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있다. <a href="https://namu.wiki/w/%EB%8C%80%ED%95%9C%EB%AF%BC%EA%B5%AD%20%EA%B5%AD%EA%B5%B0">대한민국 국군</a>의 경우 해외파병은 특전사 위주로만 주로 가는데 이들이 정예병력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특전사 전투병력은 전원이 자의로 지원한 부사관 이상의 인력들로<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fn-7">[7]</a> 구성되어 있어 투입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자위대 역시 징병제를 하게 될 경우 오히려 <a href="https://namu.wiki/w/%EC%A7%91%EB%8B%A8%EC%A0%81%20%EC%9E%90%EC%9C%84%EA%B6%8C">집단적 자위권</a>의 행사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질 수도 있다. 대규모 해외파병을 추진할 경우 사상자 발생은 불가피한데 그나마 현 모병제 하에서는 사상자 발생이 직업군인인 그들만의 일로 치부되지만, 징병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a href="https://namu.wiki/w/%EC%9A%B0%EB%9D%BC%EB%8F%8C%EA%B2%A9">인명피해에 별 신경쓰지 않는다는 이미지</a>가 퍼진 그 <a href="https://namu.wiki/w/%EB%9F%AC%EC%8B%9C%EC%95%84%EA%B5%B0">러시아군</a>마저 징병된 자기 아들들을 체첸같은 분쟁지역에 보내지 말라는 어머니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국방장관이 징병된 병사들을 절대 분쟁지역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이고, 실제로 분쟁지역에 파견되는 것은 계약병<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fn-8">[8]</a>들과 직업 특수부대원. 비정규 용병들로 채우고 있다.<br><br>여담으로 징병제 논란이 커지자 <a href="https://namu.wiki/w/2ch">2ch</a>을 비롯한 일본 내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a href="https://namu.wiki/w/%EB%84%B7%20%EC%9A%B0%EC%9D%B5">넷 우익</a>들의 <a href="https://namu.wiki/w/%EC%A0%95%EC%8B%A0%EC%8A%B9%EB%A6%AC">정신승리</a>가 대부분인 가운데<a href="https://namu.wiki/w/%EC%A7%95%EB%B3%91%EC%A0%9C/%EC%9D%BC%EB%B3%B8#fn-9">[9]</a> 몇몇 진지충을 중심으로 <a href="https://namu.wiki/w/%EC%B9%98%ED%82%A8%ED%98%B8%ED%81%AC">군대 가기 싫다는 절규</a>가 판을 쳤다.<br><br><br>2015년 8월 30일 안보법안을 반대하는 시위. 이날 일본 국회 앞에만 무려 12만명이 모였다.<br><br>한편 모병제 시행으로 현 <a href="https://namu.wiki/w/%EC%9E%90%EC%9C%84%EB%8C%80">자위대</a>가 인생낙오자들의 집합소로 채워지는 문제점을 이유로 들어 징병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기는 하다. 일본 자위대는 <a href="https://namu.wiki/w/%EB%AF%B8%EA%B5%B0">미군</a>처럼 아예 1인 1실에 필수시설만 공동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분대급 침대 생활관에서 사실상의 병영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질이 낮은 병사들을 모아놓으면 <a href="https://namu.wiki/w/%EB%98%A5%EA%B5%B0%EA%B8%B0">똥군기</a>와 <a href="https://namu.wiki/w/%EB%B3%91%EC%98%81%EB%B6%80%EC%A1%B0%EB%A6%AC">병영부조리</a>, <a href="https://namu.wiki/w/%EA%B0%80%ED%98%B9%ED%96%89%EC%9C%84">가혹행위</a>가 벌어지기가 한국군보다 더 쉽기도 하다. 덕분에 <a href="https://namu.wiki/w/%EB%AA%A8%EB%B3%91%EC%A0%9C">모병제</a>에 병력수는 한국군의 절반이 못 되면서 <a href="https://namu.wiki/w/%ED%95%9C%EA%B5%AD%EA%B5%B0">한국군</a> 자살수의 4배라는 충격과 공포급 비율을 자랑한다.<br><br>징병제는 반세기가 넘는 일본 <a href="https://namu.wiki/w/%EC%9E%90%EC%9C%A0%EB%AF%BC%EC%A3%BC%EB%8B%B9(%EC%9D%BC%EB%B3%B8)">자민당</a> 독주 체제를 <strong>한순간에</strong> 완전히 끝낼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속마음이 어떨진 몰라도 표면상으로는 극구 부인하고 있다. 청년층의 정치 참여율이 낮은 일본이지만 다른것은 피부로 잘 와닿지 않는데 반해 징병제가 실시되면 <strong>당장 자기가 끌려가게 되므로</strong> 청년층이 투표를 안할 수가 없게 된다. 게다가 위에도 나와있듯이 징병제를 실시해야 할 정도로 일본의 안보 상황이 나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설득력도 없다.<br><br>2015년 9월 19일에 <a href="https://namu.wiki/w/%EC%A7%91%EB%8B%A8%EC%A0%81%20%EC%9E%90%EC%9C%84%EA%B6%8C">집단적 자위권</a> 법이 <a href="https://namu.wiki/w/%EB%82%A0%EC%B9%98%EA%B8%B0">날치기</a>로 통과되어 자위대의 활동반경이 훨씬 더 넓어짐에 따라 일본은 2차대전 종전 70년만에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되었고, 만약에 정말 그렇게 할 마음이 있다면 모병 확대건 징병제건 병력 확충은 당연한 일이 되는데, 이로 인해서 일본의 징병제가 서서히 현실화되어 간다고 일본인들은 불안해 하는 중. 물론 자민당 측에선 징병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민당 독주체제가 끝날 수 있는데 징병제를 시행하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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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03 김연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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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21 최주환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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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출처: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br>주제:독도vs다케이마<br>https://www.korea.kr/news/reporterView.do?newsId=148823496#reporte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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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2:49: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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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06 김태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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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안중근 의거vs다른 인물 테러<br><br>사례:나무위키빛 네이버 이미지<br><br><a href="https://namu.wiki/w/%EC%95%88%EC%A4%91%EA%B7%BC">안중근</a> 의사가 <a href="https://namu.wiki/w/%EC%9D%B4%ED%86%A0%20%ED%9E%88%EB%A1%9C%EB%B6%80%EB%AF%B8">이토 히로부미</a>를 저격하는 장면을 다룬 민족기록화 (박영선 作)<br><strong>일시</strong> | <a href="https://namu.wiki/w/1909%EB%85%84">1909년</a> <a href="https://namu.wiki/w/10%EC%9B%94%2026%EC%9D%BC">10월 26일</a><br><strong>장소</strong> | <a href="https://namu.wiki/w/%EB%9F%AC%EC%8B%9C%EC%95%84%20%EC%A0%9C%EA%B5%AD">러시아 제국</a> <a href="https://namu.wiki/w/%ED%95%98%EC%96%BC%EB%B9%88">하얼빈</a><br>(現 <a href="https://namu.wiki/w/%EC%A4%91%EA%B5%AD">중국</a> <a href="https://namu.wiki/w/%ED%97%A4%EC%9D%B4%EB%A3%BD%EC%9E%A5%EC%84%B1">헤이룽장성</a> <a href="https://namu.wiki/w/%ED%95%98%EC%96%BC%EB%B9%88%EC%8B%9C">하얼빈시</a> 다오리구 푸순가)<br><strong>목적</strong> | <a href="https://namu.wiki/w/%EC%9D%B4%ED%86%A0%20%ED%9E%88%EB%A1%9C%EB%B6%80%EB%AF%B8"><strong>이토 히로부미</strong></a><strong> 살해와 독립과 평화 목적</strong><br><strong>원인</strong> |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자주 독립 요구<br><strong>결과</strong> | <a href="https://namu.wiki/w/%EC%9D%B4%ED%86%A0%20%ED%9E%88%EB%A1%9C%EB%B6%80%EB%AF%B8"><strong>이토 히로부미</strong></a><strong> 사살 성공</strong><br>일본 제국의 정국을 강경파가 주도하기 시작<br><strong>영향</strong> | <a href="https://namu.wiki/w/%EC%95%88%EC%A4%91%EA%B7%BC">안중근</a> 사형 선고</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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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2:50: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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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09소현우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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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안중근 의거 VS 다른인물 테러<br>사례: 이토히로부미 제3자 저격설<br>출처: https://asianews.seesaa.net/article/449936364.html<br>내용: 안중근이 사용했던 브라우닝 권총은 벨기에의 FN사가 만든 것으로 권총에 새겨진 일련번호(262336)를 추적한 결과 1906년 9월 8일에 '쿤후토사'에 팔린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쿤후토사'의 주요 납품처는 러시아 육군이었다.<br><br>따라서 안중근은 히로부미를 암살한 진범을 숨기기 위해 이용당한 것이며, 진짜 범인은 러시아에 있었던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히로부미에 명중된 총알은 프랑스 기병대의 카빈총 탄환이었는데, 안중근의 브라우닝 권총으로는 카빈총 탄알을 쏠 수가 없기 때문이다.<br><br>당시 히로부미의 수행원이었던 무로타 요시후미 귀족원 의원은 히로부미의 몸에서 나온 총알은 안중근이 썼던 브라우닝 7연발 권총이 아니라 프랑스 기마병 총이었다는 기록을 남겼다.게다가 히로부미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 그에게 치명상을 입힌 총알의 탄도는 위쪽에는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다. 결국, 암살자는 위쪽에서 아래쪽을 향해 쐈던 것이다.<br><br>그런데 안중근은 히로부미와 키가 비슷했고, 요시후미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안중근은 조금 주저앉은 자세로 쐈다고 한다. 즉, 아래쪽에서 위쪽을 향해 쐈던 것이다.<br><br>요시후미 의원은 "당시 역내 2층 식당에서 프랑스 기병총으로 쏜 사람이 있었다. ... 오른쪽 어깨에서 대각선 아래 방향으로 쏘려면 2층에서 쏘는 방법 외에는 없다. 2층은 격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 아래쪽을 향해 총을 쏘기에는 안성마춤이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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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2:51: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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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2 이성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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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출처:contents.nahf.or.kr<br>        http://contents.nahf.or.k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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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2:52: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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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3 이승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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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출처 국가기록원</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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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2:52: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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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24 황의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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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강제징용vs지원채용<br>사례:정치<br>출처: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52749<br><br>"일본은 1938년 4월 1일 '국가총동원법'을 제정, 공포하고, 1942년 '조선인 내지 이입 알선 요강'을 제정, 실시하여 한반도 각 지역에서 관 알선을 통하여 인력을 모집하였으며, 1944년 10월경부터는 '국민징용령'에 의하여 일반 한국인에 대한 징용을 실시하였다."<br>​<br>위의 문장은 대법원 판결문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 역사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 일본의 조선인 강제 동원은 1939년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민간 기업 주도의 모집이 시작됐다. 모집 과정에 총독부 조직이 개입했다.<br><br>1942년부터는 조선인 내지 이입 알선 요강에 따라, 모집이 관 알선으로 바뀐다. 관 알선은 총독부가 도·군·면에 동원 인원을 할당하고, 경찰이 책임을 지고 노동자를 동원하며 일본 도항을 위한 집단 편성까지 맡았다는 점에서 모집보다 훨씬 강화된 동원 방식이다. 1944년 8월부터는 영장을 통해 동원하는 징용으로 더욱 강화됐다. 학계에서는 보통 모집, 관 알선, 징용의 세 형태를 모두 합쳐 '강제 동원'이라고 한다. 이런 세 가지 형태의 강제 동원을 통해 1939년부터 해방 전까지 대략 70만~80만 명의 조선인이 일본 등으로 연행된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br>​<br>일본 정부가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라고 쓰는 것은 대법원 판결의 원고들이 징용령에 따른 것도 아니라 모집 등으로 온 사람들이라는 것, 따라서 '강제성이 없다'는 것을 일부러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징용자도 징용령이라는 합법적인 수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br>​<br>이런 일본 정부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받아들이기 어렵다. 불법적인 식민 통치로 35년간 큰 고통을 받은 한국의 입장에서는 더더구나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이다.<br>​<br>한국 정부는 학계의 연구 성과를 수용해 역사적 사실에 맞게 용어를 수정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부터라도 '강제 징용'이라는 용어를 버리고 '강제 동원'이라는 용어를 채택하는 것이다. 징용이란 용어에 이미 강제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강제 징용'이라고 하는 것은 말의 정확성과 경제성 면에서 적절하지 않다.<br><br>더욱 중요한 것은 대법원에 상고한 피해자들은 징용령에 따라 징용된 사람들이 아니라 모집 또는 관 알선을 통해 일본 기업에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정부, 특히 외교부는 관성대로 '강제 징용'을 되뇌지 말고 역사 사실에 맞으며 강제성을 제대로 부각할 수 있는 '강제 동원'이란 용어를 쓰는 게 맞다. 다시 강조하지만 정확한 용어를 써야 정확한 해법을 끌어낼 수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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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2:52: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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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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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2:53: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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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독도VS다케시마  출처: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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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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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2:54: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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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24 황의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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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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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2:56: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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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1윤도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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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식민지근대화론 ( 植 民 地 近 代 化 論 ) 현대 한국의 경제적·정치적 성장의 원동력을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 찾는 역사적 관점. 현대 한국의 경제적·정치적 성장의 원동력을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 찾는 역사적 관점.<br>으로 대표적인예로 예컨대 제도적으로 <a href="https://namu.wiki/w/%ED%86%A0%EC%A7%80%20%EC%A1%B0%EC%82%AC%20%EC%82%AC%EC%97%85">토지 조사 사업</a> 등을 통하여 사유재산권 등이 확보되고, 부동산 <a href="https://namu.wiki/w/%EB%93%B1%EA%B8%B0">등기</a>제도가 정착한점이나 사유재산권의 성립으로 문중과 가문에 의거한 양반 향교와 문중, 종중의 재산을 분열시켜 <a href="https://namu.wiki/w/%EC%8B%A0%EB%B6%84%EC%A0%9C">신분제</a> 해체를 가속화한 점<a href="https://namu.wiki/w/%EC%8B%9D%EB%AF%BC%EC%A7%80%20%EA%B7%BC%EB%8C%80%ED%99%94%EB%A1%A0#fn-32">[32]</a>, 금융권과 은행이 설치되고 근대적 회사와 공장이 등장하게 된 점등이 이후 광복 이후 경제성장을 하는데에 경험적으로 영향력을 끼쳤다는 점등을 지적한다. 그 밖에 식민지기에 형성된 인적자원들이 광복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끼쳤음을 언급한다. 등이 있으며 이를 반론하는 주장으로는 한국의 농업생산은 식민지기에 다소 증가한 것은 사실이나 <a href="https://namu.wiki/w/1940%EB%85%84%EB%8C%80">1940년대</a>에 농업생산은 궤멸했고, <a href="https://namu.wiki/w/1955%EB%85%84">1955년</a>까지 미곡생산량 혹은 미곡의 단보당 생산량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식민지체제 하에서의 조선경제는 <a href="https://namu.wiki/w/%EB%AF%BC%EC%A1%B1">민족</a>별로 대단히 불평등한 경제였다"</div><div>"생산수단은 후기로 갈수록 소수 일본인의 수중에 장악돼 가고 있었다. 교육 역시 민족적 차별이 뚜렷해 식민지체제하에서는 조선인들의 인적 자본 형성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br>광복 이후 귀속재산불하로 가치가 하락하고, 그나마 남아있는 것도 <a href="https://namu.wiki/w/%ED%95%9C%EA%B5%AD%EC%A0%84%EC%9F%81">한국전쟁</a>으로 <strong>상당수가 유실</strong>되었기 때문이다.<br>등이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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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2:56: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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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01 김달환</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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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div><div><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1944%EB%85%84">1944년</a> 8월 14일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AF%B8%EC%96%80%EB%A7%88">버마</a>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AF%B8%EC%B9%98%EB%82%98">미치나</a>에서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AF%B8%EA%B5%B0">미군</a>의 심문을 받는 <a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A1%B0%EC%84%A0%EC%9D%B8">조선인</a> 위안부의 모습<br><br>출처:https://ko.m.wikipedia.org/wiki/%EC%9C%84%EC%95%88%EB%B6%80</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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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4이지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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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09소현우 안중근의거 사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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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2:59: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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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9 조석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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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주제 - 강제 징용 VS 지원 채용<br><br>사례 - 우리 역사넷<br>출처 - 우리 역사넷<br><br>제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 제정한 ‘국가총동원법’(1938) 시행 이후의 인적 자원의 동원 중 병역에 복무시키는 징병을 제외한 나머지를 ‘징용’으로 총칭한다. 징용의 제도로는 모집, 관알선, 징용 등이 있고, 좁은 의미로는 ‘국민징용령(國民徵用令, 1939)’에 의한 징용만을 징용으로 부르기도 한다. 어떠한 형태의 징용이든 노동자 확보와 배치에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가 깊숙이 개입했으며, 납치나 인신매매 같은 방법이 사용되기도 했다.<br><br>사례 - 나무위키<br>출처 - 나무위키<br><br>조선인에 대한 일반병 모집이 처음 거론된 것은 <a href="https://namu.wiki/w/%EB%A7%8C%EC%A3%BC%EC%82%AC%EB%B3%80">만주사변</a> 직후인 1932년이었다. 여기에 앞장 선 이가 바로 일본 중의회 의원이자 대표적인 <a href="https://namu.wiki/w/%EC%B9%9C%EC%9D%BC%ED%8C%8C">친일파</a> 두목이었던 박춘금(朴春琴)이었다. 1934년 2월 8일 일본 중의원에서 그는 "내선일체"의 실현을 위해 내각과 육군성에 조선인들에게도 "황군"으로서의 의무를 부여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우선 "지원병제"의 실시를 건의하였다. 여기에 대해 일본 정부와 군 수뇌부는 "조선인을 필요로 할 만큼 병력이 부족하지 않고 지원병제의 실시 역시 시기상조"라고 대답하였다.<br><br>그러나 이와 별도로 그의 영향력이 강했던 조선 총독부와 조선군 주차 사령부에서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여 "육군지원병제"의 실시에 필요한 각종 행정적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중일전쟁 직전인 1937년 6월 조선군 사령부의 명의로 육군성에 "조선인지원병제"의 실시를 정식으로 건의하였다. 또한 박춘금을 비롯한 친일 어용단체들은 서울에서 조선인 지원병제 실시를 촉구하는 간담회와 발기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br><br>결국 일본 내각은 1937년 12월 24일 "조선인 특별지원병제"의 실시를 결정하였고 1938년 2월 2일 칙령 제95호에 의해 "육군특별지원병령"이 공포되었다. 지원병령 제1조에는 "호적법(본토의 일본인에게만 적용되었다)에 적용되지 않는 17세 이상의 제국 신민인 남자로서 육군에 복무할 것을 지원한 자는 현역 또는 제1보충역에 편입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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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2:59: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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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07서태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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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일본정부의 입장이다<br><br>이에 반박하는 근거는<br><br><strong>"강제연행은 없었다"?</strong><br><br>"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에 대해 아베 총리는 2007년 3월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관헌이 집에 쳐들어가 사람을 유괴하듯이 끌어간다고 하는 그런 강제성"이라고 규정했다.<br><br>이에 대해 김창록 교수는 "이른바 '협의의 강제성'을 전제로 하는 '강제연행'이란, 강제연행이라는 단어의 법적·상식적 의미에 반하는 것이며, 아베의 일본이 발명해낸 일본에서만 통하는 어설픈 은어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br><br>강제연행의 법적·상식적 의미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끌고 가는 것으로 1993년 고노 담화에서 일본 정부의 강제연행 인정은 끝났다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br><br>'고노 담화'는 "감언·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고, 나아가 관헌 등이 직접 이 일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고 명시했다.<br><br>김 교수는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여했고, 위안소 생활이 강제적인 상황 아래서 이뤄진 가혹한 것이었던 사실만으로도 일본은 당시 국제법을 위반했고, 그것만으로 일본의 국가 책임이 발생한다"고 말한다.<br><br><strong>■ "성노예가 아니다"?</strong><br><br>"노예제의 요체는 사람에 대한 지배이며, 여기에서의 지배란 사람의 자유 또는 자율성을 심대하게 박탈하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고노 담화가 인정하듯이 "강제적인 상황 아래에서의 가혹한 위안부 생활"만으로 위안부는 성노예였다.<br><br>위안부가 성노예였다는 사실은 1996년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1998년 게이 맥두걸 보고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판결 등에서 널리 인정돼 국제사회의 상식이 되었다.<br><br>또 "2015년 합의 당시 한국 정부가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일본 정부의 기술도 사실이 아니다.<br><br>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위안부 합의 당시 우리 측이 확인한 것은 위안부 문제 관련 우리 정부의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라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br><br><strong>■ "20만 명이라는 숫자는 증거가 없다"?</strong><br><br>실제 '20만 명'이라는 숫자의 명확한 근거가 제시돼 있지 않고, 위안부의 총수를 제시하는 자료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위안부 숫자는 2만, 8만, 20만, 40만 이상 등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추산되고 있다.<br><br>1944년 8월 버마 미치나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을 심문한 미중연합군 소속 원 로이 챈 대위는 1986년 발간한 '버마-비화'라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기술했다.<br><br><br><em>조선인 위안부 포로를 심문하고 있는 원 로이 챈 대위(맨 왼쪽/1944년 8월)</em><br>"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제국 일본군이 이 불행한 젊은 여성들을 얼마나 많이 위안부로 강요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20만 명 넘게 추산된다…일본인들은 제국군의 역사에서 이 부분에 대한 모든 기록들을 파괴했다."<br><br>이 같은 상황에서 '20만 명'이라는 숫자는 '수많은'이라는 의미를 담기 위한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김창록 교수는 말한다.<br><br>김 교수는 "일본 정부에게 증거가 있는 숫자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20만이 아니다'라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일본의 공문서를 열심히 뒤져서 '증거가 있는 숫자'를 밝히면 된다"고 강조한다.<br>                                 출처 KBS<br><br></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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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3:00: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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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3 이승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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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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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3:05: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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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0유희종</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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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강제징용vs지원채용<br>사례:서울신문<br>출처: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722500164<br>내용:사진</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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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3:05: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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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최주환 3221</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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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3:05: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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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찬영3217</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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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식민지침탈 Vs 식민지 발전<br>사례: 일본 교과서<br>출처: 대한민국 공식 전자 정부 누리집 사진출처:경북기록문화 연구원<br>내용: 역사교육연대 서중석 교수는 “2001년 ‘새역모’ 교과서는 침략과 만행 등 잘못을 숨기고 은폐하는 것에서 2005년 교과서는 한국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체제나 서술 등은 세련되고 교묘해졌으나 일본역사와 침략행위를 미화하고 자신의 피해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br><br>새역모 역사교과서 신청본은 한국을 중국의 복속국, 청의 최후의 유력한 조공국 등으로 비하하고 러일 전쟁때까지 구미열강으로부터 독립을 위협받은 것으로 과대포장하며 주권침해 행위나 명성황후 살해 등의 만행에 대한 언급없이 ‘조선의 근대화를 도운 일본’이라는 소제목의 컬럼을 신설해 식민지 근대화론을 합리화하고 있다.<br><br>또한 이 역사교과서에서는 독일 등의 경우에는 침공 등으로 표현하지만 일본은 ‘진출’ ‘진주’ 등으로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일제의 군국주의나 천황제파시즘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체 자신들은 전쟁범죄와 관련 없는 것으로 강조하는 등 일본의 침략행위와 만행을 은폐하고 있다.<br><br>[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www.korea.k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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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3:06: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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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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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0유희종</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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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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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3:06: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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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0유희종</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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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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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3:06: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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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08 성현호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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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민족말살정책 vs 문명화 교육<br>출처https://www.google.com/url?sa=t&amp;source=web&amp;rct=j&amp;url=https://japan.hani.co.kr/arti/culture/34241.html&amp;ved=2ahUKEwi6_eOM5On- &nbsp;<br><br>AhVC7WEKHa3nACEQFnoECBkQAQ&amp;usg=AOvVaw2uaRf5wic0M95i-9CIcp8ihttps://www.google.com/url?sa=t&amp;source=web&amp;rct=j&amp;url=https://japan.hani.co.kr/arti/culture/34241.html&amp;ved=2ahUKEwi6_eOM5On-AhVC7WEKHa3nACEQFnoECBkQAQ&amp;usg=AOvVaw2uaRf5wic0M95i-9CIcp8i<br><br>2005년 4월 일본의 극우신문이라 불리는 산케이신문의 자매지 '정론'이라는 잡지에 한승조 전 고려대 교수(정치학)가 '친일행위가 즉 반민족행위인가?'라는 기고를 실었다 , 한국이 끓어오른 적이 있다. 당시 제정된 '일제강제 점령하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이런 기고문을 쓴 직접적 계기였다. 일부 신문에서는 '일본의 식민지배는 축복'이라는 자극적인 타이틀로 보도함으로써 한 교수는 여론의 엄격한 질책을 받았다. 그의 주장 중에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특징이 똑같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영호 인하대학 교수(사학과)는 이를 '식민지 근대화론의 커밍아웃'이라고 말했다.</div><div>&nbsp;식민지 근대화론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여론에서 일제히 두드렸지만 잊었을 무렵에는 반드시 튀어나오는 것 같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학자가 쓴 '반일 종족주의'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고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보수 우파의 기본적 생각에도 빠지는 내용”이라고 말하며 장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책을 읽는 동안 격렬하다 두통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만큼 이 책은 보수·진보를 불문하고 대다수의 한국 국민의 보편적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div><div>&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자 등은 겁먹는 곳이 없다. 그것은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르지만 “객관적 사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학자적 양심에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승조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 정치학자 중 한 명이었고 '반일 종족주의' 저자도 높은 학문적 수준을 가진 학자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를 가지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며, 감상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div><div>&nbsp;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용어는 국사학계가 씌운 프레임과 같다고 해서 식민지 근대화론자 본인들은 특히 만족하지 않은 것 같다. 그 때문에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신중하게 되지만, 본인들이 자신들의 학문사조에 대해서 특별히 무언가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편의상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div><div>&nbsp;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것은 누군가 한 사람의 견해가 아니라 다양한 연구자들의 집합된 생각이다. 연구자의 전공도 경제학뿐만 아니라 역사학, 정치학, 사회학 등 매우 다양하며 연구 대상 시기도 조선 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 때문에 공통분모를 찾는 것은 쉽지 않고, 다소 하면 일반화의 실수를 범할 수 있지만, 시기별로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요한 주장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div><div>(1) 조선 말기 사회가 생산력의 붕괴와 함께 자멸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div><div>(2)일제강제점령기간 일본으로부터 근대적인 다양한 제도가 도입되어 선진적인 자본이 대거 투입됨에 따라 조선이 급속히 개발되어 그 결과 조선인의 생활수준도 향상되었다.</div><div>(3) 이러한 식민지적 개발의 경험과 유산이 해방 후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의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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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3:07: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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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20 조준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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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독도 vs 다케시마<br>출처 SBS 뉴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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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3:08: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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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5 이태훈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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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안중근vs다른 인물      사례테러본에서는 '테러리스트', 한국에서는 '독립운동가'로 불리는 안중근! 그가 '친한파'였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과연 그가 암살한 것일까? 아니면 토사구팽으로 억울하게 죽은 것은 아닐까?<br><br>1909년 10월 26일 히로부미가 암살당하던 날, 당시 추밀원 의장이었던 히로부미는 만주와 조선 문제를 놓고 러시아의 재무장관 블라디미르 코코체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갔다.<br><br>오전 9시 차내에서 코코체후의 인사를 받은 뒤 홈에서 러시아군의 사열을 받은 히로부미는 군중으로 가장해 접근한 안중근이 발사한 총탄 세 발을 맞고 약 30분 후에 사망했다. 그때 안중근은 '코레야 우라!(Корея! Ура!)'라고 러시아어로 크게 외쳤다.<br><br>문제는 히로부미의 시신에서 발견된 총탄과 총상이 안중근이 발사한 총탄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히로부미의 급소를 명중시킨 총탄은 케네디를 암살했던 '마법의 총알(저격수의 총알)'과 같은 것으로, 당시 안중근이 소지하고 있던 총은 7연발 브라우닝 권총이었기에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br><br><br></div><div><br>브라우닝 권총</div><div><br>안중근이 사용했던 브라우닝 권총은 벨기에의 FN사가 만든 것으로 권총에 새겨진 일련번호(262336)를 추적한 결과 1906년 9월 8일에 '쿤후토사'에 팔린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쿤후토사'의 주요 납품처는 러시아 육군이었다.<br><br>따라서 안중근은 히로부미를 암살한 진범을 숨기기 위해 이용당한 것이며, 진짜 범인은 러시아에 있었던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히로부미에 명중된 총알은 프랑스 기병대의 카빈총 탄환이었는데, 안중근의 브라우닝 권총으로는 카빈총 탄알을 쏠 수가 없기 때문이다.<br><br>당시 히로부미의 수행원이었던 무로타 요시후미 귀족원 의원은 히로부미의 몸에서 나온 총알은 안중근이 썼던 브라우닝 7연발 권총이 아니라 프랑스 기마병 총이었다는 기록을 남겼다.&nbsp;<br>출처 아시아 신문</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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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0 03:09: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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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9 조석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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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제 - 강제징용 VS 지원 채용<br>사례 - 한겨례<br>출처 - 한겨례<br><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2043196335/ae8b89aa73b19d51e1a05cd6863b06ea/123182246250_20090114.jpeg" />
         <pubDate>2023-05-10 03:10: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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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2이승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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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사례:일본이 강제징병을 자원입대라고 우긴다<br>출쳐:한계래<br><br>설명<br>내년부터 일본 초등학교 6학년이 배우는 사회 교과서에 조선인 징병을 포함해 강제동원과 관련한 강제성 기술이 이전보다 약화됐다. 초등학교 고학년(3~6학년)용 교과서에선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이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부당한 주장이 더 상세해졌다.한-일 간 역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진정성 있는 호응’을 기대하는 윤석열 정부의 기대와 달리, 지난 식민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이제 그만 ‘망각’하려는 일본의 속내가 좀 더 노골화된 모습이다.일본 문부과학성은 28일 2024년부터 사용하게 될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등의 검정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분석한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의 검토 자료를 보면, 이날 검정을 통과한 초등 6학년 사회 교과서(3종) 모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강제성’ 관련 기술이 4년 전인 2019년 검정 때보다 더 후퇴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쿄서적은 2019년 검정 통과본에선 ‘전쟁과 조선사람들’ 부분에 실린 사진을 설명하며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이라고 적었지만, 올해는 “지원해서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표현을 바꿨다.일본이 조선에서 육군지원병제도를 도입한 것은 1938년이고 징병제를 실시한 것은 1944년부터다. 관련 사진의 촬영 시점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조선인을 전쟁터로 끌어낸 행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고, 조선인들이 ‘자발성’을 강조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교과서 본문 내의 기술도 “남성은 일본군의 병사로 징병되고”에서 “남성은 일본군의 병사로 참가하고, 후에 징병제가 시행됐다”로 수정됐다.<br>한-일 간 핵심 현안이었던 강제동원 피해자와 관련된 구절에선 “다수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적으로 끌려와서”라는 표현이 “강제적으로 동원되어”로 바뀌었다. 일본 정부가 2021년 각의(국무회의)를 통해 강제연행·연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며 ‘끌려와서’라는 부분이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교이쿠(교육)출판 교과서에선 “일본군 병사로 징병되어 전지에 보내졌다”는 문구에서 “징병”이라는 단어만 쏙 삭제했다.<br>2023년 검정을 통과한 도쿄서적 초등 6학년 사회교과서에 ‘전쟁과 조선 사람들’ 부분의 사진 설명에서 이전 교과서에선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서술했지만, 이번엔 ‘지원해서’라는 말을 새로 추가했다. ‘징병’이 강제가 아닌 자발적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제공<br>조선인 강제동원 관련된 전반적인 기술이 부실한 것도 문제다. 초등 6학년 사회교과서 3종 모두에 관련 내용이 실려 있었지만, 2~3문장 정도로 극히 짧았다. 올해로 100주년이 되는 1923년 9월1일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 학살에 대한 기술도 사라졌다. 니혼분쿄(일본문교) 교과서는 “잘못된 소문이 퍼져 많은 조선인들이 살해당하는 사건도 일어났다”고 언급했는데, 이번엔 통째로 사라졌다. 초등학교 교과서인 탓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기술은 이뤄지지 않았다.<br>그에 반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일본의 부당한 영토 주장은 모든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기술 또한 자세해졌다. 모든 초등 3~6학년용 사회·지도(지리) 교과서에 일본의 부당한 독도 주장이 실렸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려고 “일본 정부가 항의하고 있다”는 내용도 니혼분쿄 6학년 사회 교과서만 빼고 전부 실렸다.<br>일본 초등학교 교과서 내 독도 관련 기술은 2010년엔 1개 출판사에만 포함돼 있었지만,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인 2014년부터 모든 교과서로 확대됐다. 관련 언급도 구체화되고 있다. 도쿄서적 5학년 사회교과서는 이전엔 “한국이 불법으로 점령”이라고 표현했는데 “70년 정도 전부터”라는 내용이 추가됐다.<br>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역사 부정 정책이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며 “이웃 나라에 대한 침략과 불법 지배 등 아픈 역사를 가르치지 않으면, 아시아인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미래의 일본인을 길러내지 못하게 된다”고 우려했다.<br><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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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00:09: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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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02 이름 김성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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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위안부 강제차출 VS 위안부 희망모집<br><br>위안부를 '성매매 업주와 자발적 계약을 맺은 매춘부'로 규정하는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왜곡 논문도 사실 이런 역사부정주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고 위안부 연구자들은 지적한다.<br><br>일본 정부와 우파의 역사부정 3종세트가 왜 허구인지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설명을 토대로 살펴본다.<br><br><strong>■ "강제연행은 없었다"?</strong><br><br>"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에 대해 아베 총리는 2007년 3월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관헌이 집에 쳐들어가 사람을 유괴하듯이 끌어간다고 하는 그런 강제성"이라고 규정했다.<br><br>이에 대해 김창록 교수는 "이른바 '협의의 강제성'을 전제로 하는 '강제연행'이란, 강제연행이라는 단어의 법적·상식적 의미에 반하는 것이며, 아베의 일본이 발명해낸 일본에서만 통하는 어설픈 은어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br><br>강제연행의 법적·상식적 의미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끌고 가는 것으로 1993년 고노 담화에서 일본 정부의 강제연행 인정은 끝났다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br><br>'고노 담화'는 "감언·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고, 나아가 관헌 등이 직접 이 일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고 명시했다.<br><br>김 교수는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여했고, 위안소 생활이 강제적인 상황 아래서 이뤄진 가혹한 것이었던 사실만으로도 일본은 당시 국제법을 위반했고, 그것만으로 일본의 국가 책임이 발생한다"고 말한다.<br><br><strong>■ "성노예가 아니다"?</strong><br><br>"노예제의 요체는 사람에 대한 지배이며, 여기에서의 지배란 사람의 자유 또는 자율성을 심대하게 박탈하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고노 담화가 인정하듯이 "강제적인 상황 아래에서의 가혹한 위안부 생활"만으로 위안부는 성노예였다.<br><br>위안부가 성노예였다는 사실은 1996년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1998년 게이 맥두걸 보고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판결 등에서 널리 인정돼 국제사회의 상식이 되었다.<br><br>또 "2015년 합의 당시 한국 정부가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일본 정부의 기술도 사실이 아니다.<br><br>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위안부 합의 당시 우리 측이 확인한 것은 위안부 문제 관련 우리 정부의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라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br><br><strong>■ "20만 명이라는 숫자는 증거가 없다"?</strong><br><br>실제 '20만 명'이라는 숫자의 명확한 근거가 제시돼 있지 않고, 위안부의 총수를 제시하는 자료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위안부 숫자는 2만, 8만, 20만, 40만 이상 등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추산되고 있다.<br><br>1944년 8월 버마 미치나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을 심문한 미중연합군 소속 원 로이 챈 대위는 1986년 발간한 '버마-비화'라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기술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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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00:59: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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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08 자료</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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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https://youtu.be/ZU56V4L9fPw<br><br>중·일전쟁 이후 일제가 우리 민족을 말살하고 이른바 황국신민화하기 위해 취한 정책.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시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조선인의 민족의식과 저항을 잠재우고 전쟁협력을 강요하기 위해 일련의 황국신민화 정책을 폈다. &lt;내선일체(內鮮一體)&gt; &lt;일시동인(一視同仁)&gt;을 내세우고,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다. 우리는 합심하여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한다」는 내용의 &lt;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gt;를 만들어 제창하게 하고, 38년에는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을 모두 폐지, 일어를 상용케 하며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919884&amp;ref=y">창씨개명</a>을 강요하는 등 역사상 유례없는 민족말살정책을 자행했다.</div><div>또한 어용학자들을 동원, &lt;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gt;을 강조했는데, 이는 본래 합방을 합리화하기 위해 조작했던 이론으로, 전시에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잠재우는 데 이용되었다. 곧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919482&amp;ref=y">일본</a>인들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신주를 각 가정에 걸어 놓고 숭배하게 하는 외에도 일장기게양·황궁요배·<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919882&amp;ref=y">신사참배</a>·정오묵도 등을 강요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철저한 민족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항일운동은 꾸준히 계속되었다. 반면, 자발적으로 황국신민화하여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한 조선인도 상당수 있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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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01:12: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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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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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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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01:17: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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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0유희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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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https://news.nate.com/view/20210724n03463</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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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01:20: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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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0유희종</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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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https://news.nate.com/view/20210724n03463</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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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01:21: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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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03 김여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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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01:21: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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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6정선빈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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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1920년대 말에 시작된 세계대공황을 겪으면서 세계 자본주의 각국은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경제블록 구축과 경제통제를 통해 체제위기를 타개함으로써 세계적 규모의 국가독점자본주의화가 진행되었다. 후발자본주의 국가인 일본 역시 이 파국적인 경제공황의 돌파구를 일본 독점자본의 재편성, 식민지정책 강화, 중국대륙의 침략 등에서 찾아나갔다. 만주침략에 이은 일만(日滿)경제블록의 구축과 경제통제를 통해 체제위기를 타개하고자 한 것이다. 이후 군부 주도 아래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 등 전면적인 침략전쟁을 감행한 일제는 전시총동원체제를 구축하면서 식민지·점령지에서 전쟁 수행을 위한 자원수탈·물자동원체계를 확립해나갔다.<a href="https://www.yeoju.go.kr/history/jsp/Theme/NoteView.jsp?Note_ID=a0256_001"><br></a>특히 1937년 본격적인 중국침략 개시에 따른 전시체제로의 전환은 조선 민중에게 전쟁수행정책에 대한 전면적 협력을 강제하게 되었다. 일제는 임시자금조정법(1937), 국가총동원법(1938), 가격통제령(1939) 등 일련의 법안을 제정하여 자금·인력·물자 등의 생산·분배·소비를 철저히 통제하고 이를 전쟁물자 조달에 집중 배분하는 전시경제통제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사상적으로는 황국신민화, 내선일체 정책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였다. 즉 침략전쟁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한국인에 대한 통제와 수탈을 자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통제와 수탈을 합리화시키는 정책을 실시한 것이다.&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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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01:26: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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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8 조건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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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div><div>일제는 식민 통치를 합리화하고 지배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황국 신민화 정책에 따른 우민화 교육을 실시하였다. 일제의 숨은 뜻은 우리의 고유 문화를 말살하여 일본에 동화시키는 데에 있었다.<br><br></div><div>일제는 국권 강탈 후 조선교육령을 만들어 식민지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강조하면서, 낮은 수준의 실업 교육을 통해 식민지 공업화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려 하였다.<br><br></div><div>3⋅1 운동 이후 일제는 한국인의 반일 감정을 무마하기 위하여 교육 제도를 바꾸었다. 조선어를 필수 과목으로 규정하고, 경성 제국 대학도 설립하였다. 표면상 일본인 교육과 대등하게 보이도록 하였지만, 실질적으로 교육 차별은 여전하였다.<br><br></div><div>1930년대 만주 침략 이후에는 한국인을 침략 전쟁의 협조자로 만들려는 교육이 더욱 강화되었다. 내선 일체와 일선 동조론을 강조하여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였고, 한국사 왜곡을 심화시켰다.<br><br></div><div>언론 분야에도 식민지 통치 정책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1910년대에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을 강제 폐간시켜 민족 언론을 탄압하였다. 3⋅1 운동 이후에는 문화 통치의 일환으로 1920년에 조선 일보, 동아 일보, 시사 신문의 일간지와 일부 잡지 발행을 허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총독부는 신문에 보도할 기사의 통제를 계속하다가 1940년에 조선 일보와 동아 일보마저 폐간시켰다.<br><br></div><div>일제는 침략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할 목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철저히 왜곡하거나 말살하려고 하였다. 일제는 타율성, 정체성, 당파성을 주장하는 식민주의 사관을 앞세워 한국사의 자율성과 독창성을 부정하였다. 특히, 총독부가 설치한 조선사 편수회는 식민주의 사관을 토대로 조선사를 편찬하여 한국사 왜곡에 앞장섰다.<br><br></div><div>종교 활동 역시 총독부의 철저한 탄압을 받았다. 독립 운동가들이 민족 정신을 강조하는 종교 단체에 가입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제는 1930년대 후반 이후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신사 참배를 강요하였으며, 이에 저항하는 종교 교단과 지도자들을 박해하였다.<br><br></div><div>일제의 교육 정책겉으로는 동화(同化)를 내세우면서 실질적으로는 차별하는 식민지 교육을 실시하여 순종적인 식민지 인간형을 만들려고 하였다.</div><div><br></div><div>목검으로 검도 연습을 하는 학생들</div><div><br></div><div>조선 신궁 참배에 동원된 여인들</div><div><br>https://v1.padlet.pics/1/image.webp?t=c_limit%2Cdpr_3%2Ch_509%2Cw_666&amp;url=https%3A%2F%2F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2F2043209077%2Fff3d62a6e1110f90777d0813ce119649%2Fimage.png</div><div><br>https://v1.padlet.pics/1/image.webp?t=c_limit%2Cdpr_3%2Ch_509%2Cw_666&amp;url=https%3A%2F%2F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2F2043209077%2Fe212e58f9bb4d065142466664e30412c%2Fimage.png</div><div><br>https://v1.padlet.pics/1/image.webp?t=c_limit%2Cdpr_3%2Ch_509%2Cw_666&amp;url=https%3A%2F%2F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2F2043209077%2Fe212e58f9bb4d065142466664e30412c%2Fimage.png</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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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6 01:26: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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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05김준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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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사례:인터넷<br>출처:한겨례<br><br><br>도쿄서적은 2019년 검정 통과본에선 ‘전쟁과 조선사람들’ 부분에 실린 사진을 설명하며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이라고 적었지만, 올해는 “지원해서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표현을 바꿨다.일본이 조선에서 육군지원병제도를 도입한 것은 1938년이고 징병제를 실시한 것은 1944년부터다. 관련 사진의 촬영 시점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조선인을 전쟁터로 끌어낸 행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고, 조선인들이 ‘자발성’을 강조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교과서 본문 내의 기술도 “남성은 일본군의 병사로 징병되고”에서 “남성은 일본군의 병사로 참가하고, 후에 징병제가 시행됐다”로 수정됐다.한-일 간 핵심 현안이었던 강제동원 피해자와 관련된 구절에선 “다수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적으로 끌려와서”라는 표현이 “강제적으로 동원되어”로 바뀌었다. 일본 정부가 2021년 각의(국무회의)를 통해 강제연행·연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며 ‘끌려와서’라는 부분이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교이쿠(교육)출판 교과서에선 “일본군 병사로 징병되어 전지에 보내졌다”는 문구에서 “징병”이라는 단어만 쏙 삭제했다.</div><div>2023년 검정을 통과한 도쿄서적 초등 6학년 사회교과서에 ‘전쟁과 조선 사람들’ 부분의 사진 설명에서 이전 교과서에선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서술했지만, 이번엔 ‘지원해서’라는 말을 새로 추가했다. ‘징병’이 강제가 아닌 자발적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제공</div><div>조선인 강제동원 관련된 전반적인 기술이 부실한 것도 문제다. 초등 6학년 사회교과서 3종 모두에 관련 내용이 실려 있었지만, 2~3문장 정도로 극히 짧았다. 올해로 100주년이 되는 1923년 9월1일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 학살에 대한 기술도 사라졌다. 니혼분쿄(일본문교) 교과서는 “잘못된 소문이 퍼져 많은 조선인들이 살해당하는 사건도 일어났다”고 언급했는데, 이번엔 통째로 사라졌다. 초등학교 교과서인 탓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기술은 이뤄지지 않았다.그에 반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일본의 부당한 영토 주장은 모든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기술 또한 자세해졌다. 모든 초등 3~6학년용 사회·지도(지리) 교과서에 일본의 부당한 독도 주장이 실렸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려고 “일본 정부가 항의하고 있다”는 내용도 니혼분쿄 6학년 사회 교과서만 빼고 전부 실렸다.일본 초등학교 교과서 내 독도 관련 기술은 2010년엔 1개 출판사에만 포함돼 있었지만,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인 2014년부터 모든 교과서로 확대됐다. 관련 언급도 구체화되고 있다. 도쿄서적 5학년 사회교과서는 이전엔 “한국이 불법으로 점령”이라고 표현했는데 “70년 정도 전부터”라는 내용이 추가됐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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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02:19: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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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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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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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7 02:51: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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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06김찬민(소감)</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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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포스터를 만들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되었고<br>내가 만든 포스터가 다른 사람이 볼때 이해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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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0:02: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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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건우3314 (소감)</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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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이 수업을 하면서 내가 몰랐던게 이렇게나 많은 지식을 얻은것 같다 내가했던 주제 강제징용vs희망모집에 대한 자료를 찾아볼때 엄청나게 많은 사례를 보았는데 내가 아는건 군함도 밖에 없었다 그래도 포스터 수업 덕분에 많은 지식을 얻은것 같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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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0:18: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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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15 이승민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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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이렇게 일본에 역사왜곡을 알아보고 포스터도 만들고하면서 심각성을 알았고 다른 사람들도<br>심각성을알고 일본역사왜곡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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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0:27: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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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24최유준(소감)</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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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포스자료조사&nbsp;하면서 일본이 왜 독도를 자기땅이라 우기는지 목적이 뭔지를 알았다 인스타에 올려 사람들이 우리들의 자료를 보고 일본이 이렇다는걸 알면 좋겠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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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0:36: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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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105김지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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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1:17: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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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9백건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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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1:17: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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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5김지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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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1:18: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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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9백건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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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1:18: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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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9백건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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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1:20: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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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8정민기&lt;사진3&gt;</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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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1:27: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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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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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1:29: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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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20조준현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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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출처&nbsp;:세정일보</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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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2:57: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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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19정동건(소감)</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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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남들 열심히 하고있을때 핑핑 놀고 사진찾을때 잠깐찾고 만드는데 1시간도 안걸렸지만 그래도 굉장히 유익했고 역사가 왜곡되고 있단걸 알게되서 좋았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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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5:46: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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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308 김형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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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반 애들이 열심히 할때 놀고 떠들었다<br>발표시간에 발표를 듣고 유익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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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8 05:51: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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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213 이승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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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나는&nbsp;다른 애들이 열심히 하고 있을 때 나는 자거나 놀았다 하지만 머리를 맞고싶지 않아서 우리반 실장 소현우에게 도움을 받고 벼락치기를 하였다 인상깊었고 재미 있었다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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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9 00:41: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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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18정민기 &lt;소감&gt;</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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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나는 평소에는 일본역사왜곡 이나 일제강점기 때의 내용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본역사왜곡 대응 수업을 하고나서 강제로는 자의로든 역사왜곡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찾아보고 난 후 일본역사왜곡에 대해 다시한번 깊게 생각해보게 되고, 일본의역사왜곡을 가만히 보고있지만 말고 대응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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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9 05:20: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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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21조현우 &lt;소감&gt;</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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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강제 징병에 대해서 조사를 하면서 몰랐던 사실을 계속 알아가게 되어서 좋았고,<br>포스터도 처음 만들었기 때문에 안해봤던걸 하게 되어 좋았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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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9 05:24: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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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9백건영&lt;소감&gt;</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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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평소&nbsp;일본의 역사왜곡이라 하면 별 생각 없었다. 그저 '일본이 나빴다.'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역사 왜곡을 조사하며 일본의 역사왜곡의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게다가 우리 주제는 안중근 의거에 대한 음모론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보니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되어 새로웠다. 유익한 활동이었던 것 같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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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9 05:32: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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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23홍정승 (소감문)</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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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역사 왜곡을 대응 수업을 듣고 독도가 우리나라의 땅인 이유를 내가 직접 찾으니까<br>독도의대해 잘 알았다. 처음으로 자료를 찾고 내가 직접 포스터를 만들어서 늑별한 시간이 된것 같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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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9 05:37: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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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진 1 3121조현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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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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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9 05:43: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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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진 2 3121 조현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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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19 05:44: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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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09백건영&lt;사진&g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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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5-21 13:57: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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