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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책 읽고 기억하고 싶은  글 소개하기 by youn30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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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0-04-01 07:51: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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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피엔스 </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527208129</link>
         <description><![CDATA[<div>행복에는 중요한 인지적, 윤리적 요소가 존재한다. 의미있는 삶은 한참 고난을 겪는 와중에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br><br>인류는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친구라고는 물리법칙 밖에 없는 상태를 스스로 신으로 만들며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br>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br><br>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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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04-24 01:16: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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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푸른 사자 와니니</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532177361</link>
         <description><![CDATA[<div>이현 장편동화<br><br>스스로 원하던 싸움을 했으니 나는 스스로의 왕이다. 초원의 왕이다.<br><br> -무투와 싸움으로 죽어가던 아산테 아저씨의 말을 떠올리는 와니니는 무투와의 결전이 자신의 숙명임을 깨닫고 달려간다. 잠보, 말라이카, 마이샤도 함께 싸운다. 네 개의 강이 있는 초원을 호령하던 수사자 무투를 향한 그들의 도전은 결국 성공한다. 아빠에게 독립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무투의 아들 바라바라까지 함께하는 와니니무리가 탄생하게 된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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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04-27 02:13: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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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을 쫓는 아이</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535311209</link>
         <description><![CDATA[<div>사람들은 과거를 묻을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것이 틀린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과거는 묻어도 자꾸만 비어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26년 동안 아무도 없는 그 골목길을 내내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br><br>결국 인생은 인도영화가 아니다. 아프간 사람들은 '젠다기 미그자라'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시작과 끝, 행과 불행, 위기 혹은 카타르시스에 상관없이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먼지가 자욱한 코치(유목민)의 마차처럼 인생은 앞으로 느릿느릿 나아간다는 것이다. <br><br>아프카니스탄의 상황에 대해<br>1978년 4월 공산세력 쿠데타-1979년 9월 궁정쿠데타- 12월 기존 정권 수호라는 명분 아래 구소련군이 침공-소련군 대항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59109&amp;ref=y">게릴라전</a>-1989년 2월 10만여 명의 구소련군이 제네바 합의로 철수-1992년 무자헤딘측의 승리-다양한 파벌 주도권 다툼- 1996년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 - 2001년 9월 11일 테러 주범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은신중인 오사마 빈 라덴(Usama Bin Laden) 지목- 탈레반은 오사마 빈 라덴을 양도 거부- 10월 7일부터 영국과 함께 공격 2001년 11월 수도인 카불을 점령하고 탈레반 정권은 무너짐 - 2004년 12월 7일 하미드 카르자이(Hamid Karzai)가 최초의 민주적 선거에 의한 대통령이 되고, 2005년 12월 19일 국회가 개원<br><br>아프카니스탄 민족 구성<br>파슈튠족 42%, 타지크족 27%, 하자라족 9%, 우즈베크족 9%, 아이막족 4%, 투르크멘족 3%, 기타 6% 등<br><br>아프카니스탄 종교<br>80%가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15128&amp;ref=y">수니파</a>(派)에 속하나 타지크족과 하자라족은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18149&amp;ref=y">시아파</a>(派)에 속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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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04-28 05:43: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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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기적인 유전자</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548000666</link>
         <description><![CDATA[<div>믿음은 사람들이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을 믿게 만드는 심리 상태 다. 만약 확고한 근거가 있다면 믿음은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 근거만으로도 사람들은 믿게 될 테니 말이다. <br>믿음의 힘은 동정, 용서, 관대 등 인간 감정에 대한 모든 호소로부터 사람들을 무디게 싸게. 순교자의 영혼은 곧장 천국으로 향하는 믿는 사람들은 공포로부터도 무디다. 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가. 종교적 믿음은 전쟁 술 연보의 한 장을 장식 할만한, 활, 군마, 탱크, 수소 폭탄과 한자리에 나란히 설명 될 수도있을 것이다. <br>자기 복제자가이 세상에서 자신을 유지해가는 데 기술이나 책략이 도량되는 데에 끝이 있었 을까? 개량을위한 시간은 충분하다. 장구 한 세월은 도대체 어떤 기괴한 자기 보존 기관을 만들어 냈을 까? 40 억 년이란 세월 속에서 고대 자기 복제 자의 운명은 어떻게됩니까? 그들은 절멸하지 않았다. 과거 생존 기술의 명수가 아니 었던가. 독립 자기 복제자는 덜거덕 거리는 거대한 로봇 내부에서 세상과 차단 된 채 안전한 집단으로 떼 지어 살면서 복잡한 간접 경로로 바깥 세상과 의사 소통하고 원격 조정기로 바깥 세상을 조종한다. 그들은 당신 안에도 내 안에도있다. 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 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사실이야 인 이론적 근거이기도하다.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지나 여기까지왔다. 이제 유전자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질병, 우리는 생존 기계 다. <br><br>유전자는 개체의 체벽을 통고하여 바깥 세상에있는 대상을 조종한다. 그 대상 중 어떤 것은 무생물 체고, 어떤 것은 다른 생물체 고, 또 어떤 것은 매우 멀리 떨어져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확장 된 표현형의 힘이 방사상으로 뻗은 그물눈 중심에 유전자가 들어 앉아있는 것을 상상할 수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있는 대상물은 여러 생물 개체에 들어 앉은 여러 유전자가있는 수송의 그물이 지점이다. 유전자의 긴 파는 경계 한 경계가 없다. 세상 전체가, 멀거나 가까운 표현형에 존재하는 유전자의 영향을 잇는 인과의 화살로 가득 차있는 셈이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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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05-04 02:57: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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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투명인간</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583883976</link>
         <description><![CDATA[<p>&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성석제</p><p>삶을 사랑한다고&nbsp;말하는 인간은 스스로를 투명하게 믿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착각, 맹신, 오해이거나 그저 이야기에 불과하거나, 사람들은 그런 데서라도 희망과 위안을 얻으려 하니까... 신화와 동화, 민담은 그래서 생겨났다. 이룰 수 없는 희망을 이야기로 바꾼 것이다. 단 위로가되어 준다. 그래서 허망한 줄 알면서도 인류는 아직 이야기로부터 젖을 떼지 못했다.&nbsp;</p><p><br/></p><p>현실의 쓰나미는 소설이 세상을 향해 세워둔 둑을 너무도 쉽게 넘어 들어왔다. 아니 그 둑이 원래 그렇게 낮고 허술하게 만들어 졌다.&nbsp;</p><p><br/></p><p>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우리는 존재하고 써서 보여줄 뿐이다.&nbsp;</p><p><br/></p><p>만수의 이야기&nbsp;</p><p>죽는 건 절대 쉽지 않다. 사는 게 더 쉽다. 나는 한번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아직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지지하고 지켜줘야 한다. 내가 포기하는 건 가족을 포기하는 것. 지금 같은 순간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내가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 기쁨이 내 영혼을 가득 채우며 차오른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느낌, 개인의 벽을 넘어 존재가 뒤섞이고 서로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 같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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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05-20 02:36: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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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우스트</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982321275</link>
         <description><![CDATA[<div>-1500 년대 독일의 파우스트 전설 <br>원래 영민하고 향상 력이 강하여 만족을 모르는 파우스트는 수학, 천문학, 의학, 마술까지 천지 만의 근원을 탐구했다. 메피스토 펠레 스와 파우스트는 24 년 간 악마의 힘을 빌려 주기로하고 24 년 후 그의 영혼을 악마에게 매도한다는 조건으로 계약한다. 계약 후 8 년 간은 여러 기괴한 일을 사용하는 뷔텐 베르크에있는 파우스트의 집에서 보낸다. 파우스트는 향락에 욕심이 생겨 여자와 결혼하려 하나 메피스토 펠레 스는 향락과 타락은 악마의 본령이지만 결혼이란 루터주의 신의 것이기에 단념하지만. 그리하여 메피는 파우를 데리고 천국과 지옥을 구경하게하고 로마 법왕의 궁전을 방문하고, 콘스탄티노플에도 가고 황제 카알 5 세 앞에서 기기 묘묘 한 마술도 연출한다. 8 년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그에게 의사는 마음을 개선 할 충고하여 악마와의 계약을 파기하려 하나 향락에 다시 빠져 나가 헬레네에 대한 열망이 피아 나고 메피는 그 열망을 풀어 줘 헬레네와 파우는 아이까지 낳는다. 그러나 24 년 계약 기간이 다가와 모든 것이 없어지고 그의 영혼은 악마의 소유가된다. <br><br>괴테는 모든 욕망이 불타는 거인 파우스트를 통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향상하려는 인간에게 멸망이되는 안되는 구제라는 생각을했다. 한 인간이 신을 내고 신을 세계에서 이해하고, 그 세계에서 가장 참된 의미에서 의지에 의지하는 보람있는 생활을 시도하는 인간을 그려 보려했다. 모든 것을 포함하여 우주의 근본에 가까이 가려는 동경과 노력에 따르는 모든 타락이나 향락, 절망 같은 것도 천국 향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파우스트도 구제 받게된다. 인간의 활동은 너무나 쉽사리 이완하며 인간은 무조건 안락을 취하려한다. 그래서 인간은 지상 생활만으로 만족하지 않는 한층 더 높은 생명의 목표를 자안 안에 간직하고있다. 인간 생활은 지상에서의 인간의 요구만으로 지배 할 수 우주의 주, 자연의 원리에 맞는 것이라야. 그러므로 인간은 경지로 구제 될 운명을있다. 또 인간이 가진 고유의 본성에는 파우스트적인 것과 메피스토 펠레 스 ​​적이있어 결국에서는 파우스트적인 것이 승리를 거둔다. <br><br>메피스토 <br>와 비교하지 않는 것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창조 란 도시 무엇 이냔 말이냐! 창조 한 것을 모조리 무 속으로 잡아 채어 가게 아닌가! "지나 갔다"-여기에 무슨 뜻이 있느냐? <br>그러면 처음부터 없던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마치 무엇이있는 듯이 뱅뱅 맴돌고있다. 나는 오히려 영원한 허무가 좋단 말이다. <br><br>신비의 합창 <br>일체의 무상 한 것은 한낱 비유 일뿐<br>미칠 수없는 것 여기에 실현되고, <br>말할 수없는 것 여기에 이룩한 것입니다. <br>영원한 여성은 우리를 인도한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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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03 02:01: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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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아한 거짓말</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982352310</link>
         <description><![CDATA[<div>열네 살 소녀 천지가 자살한다. 언니 만지는 동생이 남긴 흔적을 쫓으며 퍼즐을 뒤에 간다. 가까웠 던 친구 화연은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천지를 이용했고, 천지가 사랑했던 가족들은 그녀의 고민을 알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천지는 자신이 미워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빨간실을 감은 실타래를 남겼고 그 실을 모두 풀고 나면 용서의 편지를 받게 배려하고 떠났다. 내 자식의 상처를 알아보지 못한 엄마의 고통, 내 동생의 상처를 알아보지 못한 언니의 고통, 친구가 겪는 고통의 무게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남은 자들의 고통... 다 가슴아프기만한 이야기입니다. <br><br>이 소설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추적하는 과정과 인물들의 심리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추리 소설을 보는듯한 구성과 복선이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특히 산 자와 죽은 자, 두 가지 시점에서 이야기를 교차 둘러싼 천지와 주변 인물을 둘러싼 사건과 감정의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죽은 자'인 천지는 내레이션을 통해 그동안 집어 온 가슴에서 일들과 고통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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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03 02:20: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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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          </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1005076156</link>
         <description><![CDATA[<div>실험용 병 속에서 태아가 자라나고 267일 만에 기계적으로 대량생산된다. 인간생산공장에서는 인간의 계급이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등으로 정해져 필요한 인간유형이 결정, 생산된다.&nbsp; 인간감정을 최소화시키고 안정적 세계질서를 최고가치로 여기는 사회윤리 속에서 진정한 사랑은 싹트지 못하고 왜곡되고 금기시된다.&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br>&nbsp; 토마스는 25년 전 뉴멕시코로 여행을 갔을 때 그곳에서 애인 린다를 잃어버렸는데 린다는 그녀의 아들 존과 그곳 원시인 마을에 생존해 있었다. 버나드가 찾아내고 존은 레니나의 아름다움에 끌려 버나드와 함께 린다의 고향에 가게 된다.<br>&nbsp; 존은 사람 몸에서 태어난 존재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는 인조인간들에게 유명한 존재가 되지만 린다는 오히려 처량한 신세가 되어 소마를 과잉복용하면서 환각상태에 빠진다.&nbsp;<br>  존은 버나드 마르크스나 레니나에게 거부감을 보이고&nbsp; 자신을 잔인하게 때려 상처를 입히는 광란적인 심리상태를 보인다. 어머니가 죽은 뒤 일과를 끝마치고 소마를 배급받기 위해 병원 현관에 모여 웅성대는 똑같은 모습의 인조인간 162명에게 존은 소마는 행복을 주는 약이 아니라 독약이라고 외쳐댄다.&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존은 "문명인은 불쾌한 것을 참을 필요가 있으며 자기 부정과 순결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존은 언덕 위의 등대 옆에 숨어, 잠도 자지 않고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어머니에 대한 불효를 뉘우치면서 자신을 마구 채찍질하면서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br>&nbsp; &nbsp;사람들은 떼를 지어 존을 구경하며 온갖 야유와 조롱을 한다. 존 집 앞에서 야단법석의 노래와 난장판을 치른다. 자정이 넘어 모두가 떠나간 뒤 소마를 먹고 관능의 발작 상태에 지쳐 잠들어 있던 존은 깨어나 "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을 외치다가 그날 저녁 천장에 목매어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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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10 05:46: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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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칭코</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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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한국계 1.5세인 미국 작가 이민진의 장편소설 『파친코』 제2권. 내국인이면서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자이니치(재일동포)들의 처절한 생애를 깊이 있는 필체로 담아낸 작품이다. 저자가 자이니치, 즉 재일동포의 존재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생이었던 1989년, 일본에서 자이니치들을 만났던 개신교 선교사의 강연을 들은 때였다. 상승 욕구가 강한 재미동포들과 달리 많은 자이니치들이 일본의 사회적, 경제적 사다리 아래쪽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저자는 그때부터 자이니치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번 작품에서 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4대에 걸친 핏줄의 역사를 탄생시켰다.<br><br>삶은 모두에게나 고통이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에게는 더더욱 가혹했다. 그들은 그저 자식만큼은 자신들보다 나은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보통 사람들이었지만, 시대는 그들의 평범한 소원을 들어줄 만큼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가난한 집의 막내딸 양진은 돈을 받고 언청이에 절름발이인 훈이와 결혼한다. 양진은 남편 훈이와 함께 하숙집을 운영해나가며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그녀는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면서 유일한 자식이자 정상인으로 태어난 딸 선자를 묵묵히 키워나간다. 선자는 생선 중매상 한수에게 빠져 결국에는 한수가 유부남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만다. 불행의 나락에 빠진 선자를 목사 이삭이 아내로 맞이하면서 구원을 받게 되고, 둘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이삭의 형 요셉 부부가 사는 일본의 오사카로 향한다. 일본에서 한수의 핏줄인 첫째 노아와 이삭의 핏줄인 둘째 모자수를 낳는다. 이삭이 천황에 대한 의식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감옥에 갇히고 결국 죽음 직전 풀려나 가족 품에서 죽어간다. 한수는 선자 몰래 선자가 김치를 만들어 팔 수 있게 돕고 일본 패망 위기에 선자 가족을 시골로 도피시킨다. 요셉은 나가사키 원폭 피해로 집안에서 생활하는 신세가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자와 요셉 안내는 한수 도움 없이 노아를 와세다대학에 입학시킨다. 그러나 학비 마련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수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3년 후 노아는 자신이 한수의 아들임을 알고 가족들로부터 도피한다. 10년이 훌쩍 흐르는 동안 모자수는 형대신 가족을 위해 파친코 사업에서 성실하게 일하여 경제적으로 넉넉해진다. 노아도 출신을 속이고 일본인으로 파친코 사업에서 성실하게 성공하지만  선자가 찾아온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br> 뼈아픈 시대적 배경 속에서 차별받는 이민자들의 투쟁적 삶의 기록, 유배와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고향과 타향, 개인의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인지 질문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세 여성은 강인한 어머니이자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며, 한편으로는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이라는 굴레가 얼마나 한 여성의 삶을 안쓰럽게 만드는지도 보여준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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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3-29 02:59: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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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1454057008</link>
         <description><![CDATA[<div>달러 구트 꿈 백화점<br>시간의 신과 세 제자 이야기를 통해 꿈의 시간을 삶의 시간과 연결 시킨 기발함에 감탄했다. 비록 줄거리는 일상적이었지만 작가의 특별한 시선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림자(꿈)가 밤새 대신 경험한 기억은 과거에 사는 연약한 이들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미래만 쫓는 경솔한 이들이 잊지 말았어야 할 것들을 아침이면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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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4-24 02:41: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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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죄와 벌</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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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nbsp;『죄와 벌』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형선고에 이은 8년간의 유형 생활 후 두 번째로 발표한 작품이다.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심리가 낱낱이 파헤쳐진다. 죄와 속죄에 대한 다양한 인식들이 팽팽하게 갈등하고 교차한다.&nbsp;<br>&nbsp; 1860년대 후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초,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23세로, 법학도였으나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한 상태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고향 소도시에서 그를 뒷바라지하며 그가 출세하여 집안을 일으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라스콜니코프는 학교를 그만둔 후 마치 ‘관’ 같은 방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완벽한 계획을 짜고, 어느 날 저녁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전당포 노파와 그녀의 이복여동생 리자베타를 도끼로 내리쳐 살해한 것이다. 그런 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져 며칠 동안 열병에 시달린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완전 범죄, 그러나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구체적 증거가 없음에도 라스콜니코프의 심리를 꿰뚫으며 그를 압박해 온다.<br>&nbsp;주정뱅이 마르멜라도프의 딸 열여덟 살인 소냐는 “뭘 그리 애지중지하니? 그게 무슨 보물이라고!”라는 카체리나의 말에 몸을 팔게 되고 그렇게 번 돈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런 소냐에게 라스콜니코프는 성경을 읽어 달라고 부탁한 후 처음으로, 오직 그녀에게만 살인을 고백한다.<br>&nbsp;결국 자수하고 그는 형벌을 치르기 위해 시베리아로 가는데, 소냐도 고아가 된 동생들의 뒤처리를 끝낸 뒤 그의 뒤를 따른다. 또한 그의 누이동생 두냐는 시종 사랑이 변하지 않는 그의 친구 라즈미힌과 결혼식을 치르게 된다.<br>&nbsp;죄에 대한 혹독한 내적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는 도전은 결국 실패하고만다. 인간이 정의를 위해 잔인해질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였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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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10-29 11:58: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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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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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마이클 센델)</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1853808539</link>
         <description><![CDATA[<div>2020년 우리는 공정의 문제로 1년 넘게 분열했다. 조국 장관 자녀의 입시 비리... 부모의 인맥으로 얻은 스펙이 좋은 대학, 의대편입 등으로 이어지면서 전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로지 시험이라는 방법만이 공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If you try, you can make it. 교사 생활 20년 넘게 경험한 바로는 이게 정답이 아니었다. 가정이 불안한 학생, 경제적으로 곤란한 학생, 심리적으로 문제를 타고난 학생, 지적 능력이 낮은 학생... 그들도 모두 노력은 하고 있었다. 죽도록 노력하지 않았다 탓할 수 없었다. 많은 요소가 학업 성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가 얻은 성취가 정녕 나 자신만의 노력의 열매가 아니었다. 그런 사실은 인정한다면 우리는 연대와 나눔의 역할을 좀더 책임감있게 받아들일까? 기득권을 당연시 여기며 경제적 약자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많은 이들이 센델의 이야기를  낮은 마음 자세로 들었으면 좋겠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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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10-29 12:35: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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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1853813638</link>
         <description><![CDATA[<div>&nbsp;  조르바는 크레타 독립 전쟁에서 정의가 없는 살육을 경험하고 인간이라는 존재만으로 가치롭다고 믿게 되었다. 신, 악마, 성스러움 등을 모두 거부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지금의 선택을 고민없이 할 수 있었던 사람. 카잔차키스는 항상 무언가에 마음이 걸려서 모든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너무도 다른 초자아적이 조르바에 끌려 크레타 광산사업을 함께 한다. 조르바가 음식을 먹는 일, 산투르를 연주하는 일, 온 마음으로 춤 추는 일, 여자에게 사랑을 바치는 일까지 모두 외경의 마음으로 함께 한다. 광산 사업은 케이블 설치가 모두 망가져 실패하지만 조르바도 카잔차키스도 절망이 없다. 돌아보지 않는다. 다른 일이 생길 것이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다시 시작하면 된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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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10-29 12:38: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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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앵무새 죽이기, 파수꾼</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2647055089</link>
         <description><![CDATA[<div>애티커스&nbsp;핀치라는 변호사가 백인 강간죄로 모함을 받은 흑인을 변호하면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어린 딸의 눈으로 쓰여진 글이다. 다 같이 알고 지내는 이웃들, 모두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고 품위있게 지내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흑인의 문제, 래들리의 문제는 평범하지 않거나 우리와 같지 않은 다른 존재에 대한 문제로 다가온다. 어린 스카웃, 딜의 눈에는 어른들의 그런 부조리한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 다만 애티커스와 몇 명의 경찰만이 정당한 것과 정당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그에 알맞은 법률 집행을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한다. 애티커스는 흑인을 옹호한다거나 특별한 인권을 대변하는 투사로 그려지지 않는다. 자신이 수행하는 직업 정신에 의거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고 믿는 일에 대해 군중 심리로 뭉쳐 저항하는 이웃들까지도 존중하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해나가는 것이다. 애티커스에게 받은 감동은 그런 부분이었다. 누군가에게 인류애를 강요하거나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아가는 그런 선구자가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정당하다고 믿는 것을 해나가는 강인함이다. 굴복하기 쉬운 상황이었고 굴복했다고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을 상황이었으나 그는 옳은 것은 옳기 때문에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나간다.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일반인이 이렇게 올곧은 선택을 견지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운 것이기에 그 어떤 영웅의 이야기보다 묵직한 울림이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또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재판 과정을 지켜보던 딜이 구토할 것 같은 고통에 울게 되는 장면이다. 어린이에게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그런게 중요하지 않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게 부당함이 가해질 때 함께 고통을 느끼는 순수한 아이의 시선이 잘 드러났던 장면이었다. 하퍼리의 글은 대사 한 마디 행동 한 동작도 다 그 사람의 인물됨을 보여주는 즐거운 글이었기에 파수꾼도 읽어야겠다 싶었다. 20년 가까이 흐른 것 같은 시기. 스카웃의 눈에 애티커스가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애티커스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인류애에 넘치는 그런 영웅은 아니었으니까... 그는 자신의 일에서 옳은 부분을 지켰던 것이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억울하게 재판받게 할 수 없는 게 변호사의 일이었던 것이다. 그가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었던 시절이 아니었는데 스카웃에게는 아버지가 보여준 소신있는 태도가 파수꾼으로 자신을 키워왔을 뿐이었다. 애티커스는 인권을 존중하는 백인 우월주의자였다. 다름은 다름대로 각자의 삶이 있는데 다름을 모두 섞어버리는 것은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결국 아버지의 변화에 대한 배신감보다 가족이라는 연결에 중요성을 둔다. 생각의 차이로 가족이 연결되지 못하고 분열할 수는 없다. 내 성장에 부모라는 든든한 파수꾼이 있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부모님의 모습은 내가 일부 각색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를 지켜줬던 부모의 모습이 지금은 다르다고 해서 등을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파수꾼에 대해 혹평이 있다. 그러나 앵무새 죽이기 속의 애티커스를 영웅으로 잘못 이해했기에 그런 혹평이 이어진 게 아닐까? 오히려 평범한 일상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죽을 각오를 하고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로 가며 살기도 하지만 정의라고 불리는 이상을 위해 그런 게 아닐 경우가 있다.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애티커스가 파수꾼에서 보여주는 인종차별적 행동은 어느 정도 그럴 수도 있겠다 수긍이 되는 그의 모습이라고 생각되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보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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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7-18 07:53: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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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2651533264</link>
         <description><![CDATA[<div> 요즘 금쪽이 이야기로 교사들은 지쳐있다. 그런 교사들에게 이 책 속의 아버지는 진상 학부모로 비칠 수도 있겠다. 아버지(시오)이기에 자폐스펙트럼이라는 장애로 아이를 낙인 찍을 수 없었고 내 아이를 위해 헌신함으로써 아이를 돕고 싶었던 절절한 마음을 너무도 이해하고 싶다.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었고 엄마처럼 동물에 대해 고통에 대해 깊게 이해하기에 더 상처가 컸던 아들(로빈). 너무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결말로 공감보다 상처로 남은 것 같지만 평범하지 않은 아들을 존중하고 품어주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은 잊지 않고 싶다.   <br>'세상이 근본적으로 엉망진창이기 때문에 공감 능력이 크면 그만큼 고통도 깊을 수밖에 없었다.'&nbsp;<br>˝완벽한 사람은 없어요.<br>우리 모두가 너무나 아름다운 방식으로 부족하죠.˝</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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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7-26 13:35: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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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도둑맞은 집중력</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2812156276</link>
         <description><![CDATA[<p>집중력의 위기는 내가 생각하던 이유드로가 유사하면서도 대기업의 운영 방식이 원인이 되었음도 상기시켜주었다. 또 ADHD라 명명되는 나의 많은 학생들에게 약물이 진정한 해법인지 늘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하게 해주었다. 마지막에 집중력 향상을 위한 노력 중 몇 가지를 정리하고 싶다. 1. 스스로와의 약속을 통해 지나친 전환을 멈춘다. 2. 산만함에 대해 자책하지 않는다.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을 떠올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몰입을 추구한다. 3. 딴생각도 중요하다. 우리의 생각은 주변 환경에서 멀어지도록 내버려둘 때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보기 시작하여 그동안 알게 된 다양한 정보를 연결한다. 내 주의력에 배회할 공간을 줌으로써 나의 사고가 더 예리해지고 더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다. 4. 수면은 여덟 시간 정도 유지 5. 가공식품 줄이기 6. 명상하기 7. 요가같은 느린 수련 꾸준히 하기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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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2-04 01:39: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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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2852607547</link>
         <description><![CDATA[<p>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라는 영화를 너무 좋아한 어진이 덕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두 번이나 볼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고 특히 주인공인 킬리언 머피의 잘생김에 반해 있었다. 매불쇼 영화 평론에서는 영화의 가치는 높게 평가했으나 내용이 대중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리학자 이름이 너무 많이 나오고 어렴풋이 들어본 정도의 주인공이기에 이왕이면 책을 읽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인 이 책을 읽어봤다. 엄청난 분량에 건조한 인터뷰 편집과 평론이기에 재미는 없었지만 물리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 성과와 도덕적인 책임감 사이에서 죄의식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구 상 최고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매카시 열풍이 불던 1950년대 사상적 차이에 대한 배척이 한국 못지 않았고 집요했음을 알 수 있었다. 미국에게 세계를 굴복시킬 핵무기를 만들어준 오펜하이머 조차도 지나간 정치적 행보로 의심하고 배제시켰으니... 대중의 인식 밖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가혹했을까? 어쩌면 지금의 미국의 자유는 이 시기의 강력한 반공주의로 완벽한 체제 경쟁을 마무리 지었기에 꽃피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가져다 주면서 인류는 문명을 만들 수 있었지만 그는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처벌을 받았다. 오펜하이머도 인류에게 전쟁을 두렵게 만드는 핵무기를 만들어 주고 추앙과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일본에 핵무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전황이었음에도 소련에 대한 견제의 의도로 무고한 히로시카와 나가사키 주민을 20만 명 가까이 희생시켰다. 결정이야 트루먼이 했지만 맨해튼 프로젝트 연구 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의 책임감은 결코 작지 않았다. 오펜하이머는 핵무기에 대한 정보를 세계가 공유하고 특히 소련에 공유해서 서로 더이상의 무기개발 경쟁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지금 보유한 핵무기만으로도 지구는 전체가 멸망할 정도의 위력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국제원자력기구를 만들어 전세계가 노력하게 유도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시대는 미소 냉전 체제가 시작되었고 두 국가는 무한 경쟁의 힘겨루기를 멈추지 않았다. 과학자의 순진한 생각처럼 국제 정세나 정치는 도덕적이지 않다. 다만 핵무기의 위험을 인지한 세계는 전쟁을 하더라도 핵무기 사용만은 자제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인가? 일본에 핵무기가 떨어진 후 이미 지구를 몇 번이나 멸망시킬 만큼의 핵무기가 세계 각국에 존재하고 있다. 여러 전쟁이 치러졌지만 일본에서 목격한 핵무기의 엄청난 파괴력은 인류에게 두려움을 주었기에 80여 년 동안 사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희미해진 기억으로 핵무기 사용을 검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오펜하이머 영화를 통해 인류는 다시 한번 기억해내야할 것이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인류 문명을 모두 쓸어내기 위해 신이 보낸 경고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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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1-18 00:02: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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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대의 소음</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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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정말 오래 전에 읽어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들을 때마다 승강기 옆에 양복을 입고 가방을 내려 두고 서 있는 그를 떠올리게 되는 계기가 된 소설이라 잊을 수가 없다. 침대에서 갑자기 허둥지둥 깨어나 끌려가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매일 밤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승강기 옆에 서 있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소련 전체주의의 폭력 앞에서 한 개인이 겪는 불안과 타협, 저항의 미묘한 경계를 따라 음악이라는 예술의 정신을 잃지 않으려 전전긍긍했던 쇼스타코비치의 복잡한 마음이 전개됩니다. 이 소설 속 쇼스타코비치는 영웅이나 기회주의자로 단정하기보다, 살아남아 음악을 남기기 위해 ‘겁쟁이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 망명의 기회를 잡아 떠난 자와 남은 자에 대한 갈등, 음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권력을 위해 복종하는 것인지 음악가의 것인지 등에 대한 갈등, 존재 자체가 예술인 음악에 봉사하려 하지만 사회 속 인간으로서 쇼스타코비치가 평생 안고 살아야 했던 다양한 내적 갈등을 깊게 조명합니다. 시대의 소음에 묻혀 예술의 의미가 빛을 잃을 때 소음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존재하게 하려던 그의 갈망을 읽을 수 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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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1-23 12:31: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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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예루살렘의 아이히만</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3096781190</link>
         <description><![CDATA[<p>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p><p>한나 아렌트</p><p><br/></p><p>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 인종청소라는 끔찍한 비도덕적 행위에 왜 협조했는가? 세상에는 자신의 말을 못하는 인간. 생각을 못하는 인간. 판단을 하지 못하는 인간이 있다. 도덕적 딜레마를 사고 없이 사회적 결정에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인간들이 많다. 특히 그 사회가 유죄의 사회라면 더더욱 그렇게 무사고의 인간이 되기 쉽다. </p><p>  사회가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해줄 때 비로소 인간은 스스로 사고하게 될 것이다. </p><p> 살상도구를 자신의 손으로 사용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의 정도는 증가한다. 그래야 사회를 이끄는 자들이 윤리적 정책을 만들 것이다. </p><p> 물론 모두 비도덕적 행동에 무사고로 협조할 때 도덕적 사고로 거부하는 자도 존재해야하고....</p><p>  매체의 확장에 우리는 쉽게 선동에 휩싸인다. 윤리적 사고를 하는 개인의 철학도 중요해지고 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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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9-01 04:26: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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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희랍어 시간</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3302716332</link>
         <description><![CDATA[<p>한강의 글은 문장 하나하나가 시같다. 특히 이 작품 주인공은 삶과 말이 하나인 사람이다. 존재에 대한 고통은 실어증으로 나타난다. 이미 의미들이 한정된 말들로 나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그녀는 말을 잃었다. 한강의 작품들은 말이 옮길 수 없는 말 너머의 관념들에 천착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 같다. 말 한 마디 마다 고통스러울 만큼 깊게 다듬어 발화해야 하는 한강 작가의 무거운 고통을 들여다 본 것 같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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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1-24 02:29: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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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넥서스</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3534450287</link>
         <description><![CDATA[<p>넥서스는 AI세상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우려와 그 우려를 미리 준비하자는 촉구를 담고 있다. 넥서스는 과세연결점이라는 말이다. 인류는 다른 공간에서 같은 순간 연결되어지고 그렇게 발생하는 소득에 대한 과세의 기준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생각해보게 한다. 민주주의가 발전해 온 인류의 역사를 믿고 그 믿음으로 AI로 변화하는 세상도 언젠가는 올바르게 작동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일침을 가한다. 특히 미얀마 사태가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추천 방식으로 혐오와 증오를 부추겼다는 사례를 들며 폭증하는 정보의 흐름을 제어하는 역할이 없을 때 얼마나 잔혹한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준다. AI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 상황을 예측하여 제기하면서 세계인이 함께 준비하지 않으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도 일정한 규제가 작동하면서 더 공고한 지위를 획득해 왔듯이 AI세상에 대한 규제 합의가 필요함을 설득하고 있다. </p><p>AI의 위험성</p><p>완벽한 감시가 가능하다. </p><p>자동화로 고용시장이 불안해진다.</p><p>자체 편향 해석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p><p>설명이 부가능하므로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p><p>디지털 무정부 상태를 조장한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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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03 13:59: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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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간인간</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3534452549</link>
         <description><![CDATA[<p>괴베클리 테페에서 시작된 인간의 건축 유산. 종교적 신성성 확보를 위한 건축. 정치적 권위를 확보하기 위한 건축. 시민의 결속과 유대를 위한 건축. 시민의 복지와 참여를 위한 건축. 건축과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함께 성장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p><p>공간은 절대적인 물리량이 아니라 인간의 뇌에서 만들어낸 인식의 산물이다. 우리의 뇌가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 곧 세상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정보를 우리 뇌에 넣어도 뇌는 시공간을 구축한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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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03 14:07: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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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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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찬란한 멸종(이정모)</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3534749655</link>
         <description><![CDATA[<p>인류 여러분, 여러분의 행동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상은 조상들의 선택으로 형성된 과거의 그림자입니다. 자연계의 운명을 바꿀 힘은 여러분 자신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이 남긴 유산은 다음 세대를 위한 세상을 정의할 것입니다.</p><p>생명의 특징은 진화한다는 것입니다. 진화는 새로운 생명의 등장이죠.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려면 누군가 그 자리를 비켜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멸종이라고 합니다. 흔히 멸종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새로운 생명 탄생의 찬란한 시작이기도 합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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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04 04:05: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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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가 알던 사람 알츠하이머의 그늘에서(샌디프 자우하르)</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3545058807</link>
         <description><![CDATA[<p>너는 나를 잊어버리지 마라. 나는 나를 잊어도....</p><p>기억이 없는 삶도 삶일까?</p><p>소멸되는 기억과 붕괴하는 자아.</p><p>그리고 기억을 초월해 재구성되는 관계와 존재.</p><p><br/></p><p>  알츠하이머라는 치매에 대해 영상으로 많이 접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정보가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생물학 교수이고 두 아들은 의사인 지식인 가정이었으나 알츠하이머를 피할 수 없었다는 것 부터가 상식적이지 않게 느껴졌는데 이것이 바로 알츠하이머에 대한 내 상식의 한계였다는 것이다. </p><p>  알츠하이머의 증상에 대해 인정하기 어려운 아버지 프렘 자우하르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환자를 상대하거나 돌보는 것은 지치고 힘든 가족들의 고통이 상세하게 전달된다. 뇌의 퇴화... 기억력 저하. 단기기억력 저하. 지남력 저하. 인지력 저하. 신체 능력 저하. 배회 충동. 결국 거동 불가. 그렇게 단계적으로 서서히 악화되어 죽음으로 향하는 시간을 늦출 수는 있지만 되돌릴 수는 없다고 한다. </p><p>  기억하는 자신, 스스로 움직여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 있게 존재하는 자신 등 이런 여러 의미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비로서 인간으로서 정의되어진다. 아버지가 완벽하게 모든 기억을 잃은 것은 아니기에 조금 달라진 내 부모에 대한 존중과 희망을 포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건강하게 인간의 삶을 살아갈 때 결정한 존엄한 죽음에 대한 선언이지만 의사인 자녀 조차 연명 치료를 중단하기 어려운 상황도 공감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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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16 14:51: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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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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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레 미제라블(빅토르 위고)</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3551344067</link>
         <description><![CDATA[<p>초등학교 시절부터 들어온 장발장 이야기 미리엘 주교와 장발장의 일화를 통해 관용과 용서, 믿음에 대한 보답 등을 일깨운 이야기로만 알았었다. 어진이가 학교에서 레미제라블 영화를 보고 와서 Do you hear the people sing? 장면을 다시 보기 했다. 이렇게 멋진 음악이... 그리고 이 장면은 프랑스 혁명? 궁금함이 생겼다. 어진이도 책을 읽고 싶다고 해서 5권을 모두 구입했다. 오히려 내가 더 빠져서 5권을 읽어 내려 갔다. 모든 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하고 모든 건물, 역사, 장면의 의미와 에피소드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책이 5권으로 만들어진 이유였다.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거나 긴장된 갈등 등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세밀한 감정 표현들이 인물의 상황을 더 깊게 공감하게 해주어서 흥미로웠다. 특히 장발장이 자신과 닮아서 억울하게 감옥에 가게 된 사람의 처지를 알고 자수하러 가려고 준비하던 새벽 시간의 번뇌를 표현한 부분은 단연 압권이었다. 찰스디킨즈는 재미있는 사건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이야기 꾼이라면 빅토르 위고는 숨 소리까지 섬세하게 설명하고 심리를 담아낸 디테일 장인이다. 노트르담의 고추를 읽으며 백과사전 같은 역사, 건축, 인물 소개에 놀랐었는데 다시 한번 위대한 빅토르 위고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뮤지컬 음악도 너무 좋아서 어진이와 함께 블루스퀘어에서 공연을 보기도 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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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22 06:02: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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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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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체(류츠신)</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3594667258</link>
         <description><![CDATA[<p>근래 들어 이렇게 가슴 뛰며 읽은 책이 있었나 싶다. 류츠신이 나의 사고의 영역을 어떤 세계까지 인도하려는 것인지 궁금해서 이 두꺼운 책을 한 두 장으로 정리해서 누가 알려주면 안되나 싶게 조급한 마음이었다. '인류는 벌레다' 나에게 전하는 그 메시지는 한낱 눈에 보이는 공간과 흐름을 경험하는 시간 속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한계를 지적해주는 충고였다.</p><p><br/></p><p>[옌펴펑]의 추천사 중 </p><p>-&lt;삼체1&gt; 역사감과 현실감이 가장 뛰어남,&lt;삼체2&gt;완성도가 가장 높고 완벽한 구성, 명확한 플롯, 화려함의 극치, &lt;삼체3&gt;우주를 바라보는 시야와 본질적인 사고를 극한으로 끌어올렸음</p><p>-우주에 수많은 문명이 존재한다면 그것들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류츠신은 '우주사회학'이라는 분야를 탄생시켜 이 문제를 깊게 연구했다. 우주사회학에는 두 가지 공리가 있다. "첫째, 생존은 문명의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 둘째, 문명은 끊임업이 성장하고 확장되지만 우주의 물질 총량은 불변한다." 얼핏 보면 평이하고 재미없게 보이는 '공리'이지만 &lt;삼체2&gt;의 예상치 못한 합리적 전개를 보면 소설의 첫머리와 절묘한 호응을 이룬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숭배하던 '논리와 역사이 통일'일 것이다. </p><p>-류츠신은 이성주의와 인문 정신에 입각하여 거시적인 사고와 초월적인 시야를 유지했다. 그는 '종극'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으며 과학적인 논리와 사실적인 디테일을 작품에 불어넣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을 당시, 일부는 가치는 해체되었지만 또 다른 가치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과거의 신화는 사라졌지만 새로운 신화는 지금도 계속 탄생하고 있다. 인류는 신화를 좇는 발걸음을 한 번도 멈춘 적인 없다. 과학과 기술이 반영된 류츠신의 세계는 특이점에서 우주의 경계선에 이르는 모든 거리를 포함하고, 백악기부터 억만 년 뒤 미래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을 초월했으며, 사고의 속도와 폭은 과거의 모든 경계를 넘어섰다.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든 조물주는 비웃을 테지만, 인간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 조물주는 비웃음조차 짓지 않을 것이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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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0 03:59: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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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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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리와 분노</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3751935500</link>
         <description><![CDATA[<p>의식의 흐름대로 서술하면서 인물들의 고통과 아픔을 전달할 수 있다니 놀라운 소설이었다. 시각이 후각으로 표현되고 청각이 시각으로 표현되는 언어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상처, 증오, 두려움, 혼란 등이 잘 표현된 작품이었다. 미국 남부 부유층 콤슨 가족이 노예 해방 시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흔들리며 서서히 몰락해 가는 과정에서 각 인물들이 어떻게 붕괴되는지 공감하게 하는 화법이 단연 이 작품의 의의라고 보인다. </p><p><br/></p><p>옮긴이 공진호의 해설을 요약해 보겠다.</p><p>모더니즘 작가들은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를 찾았다. 그들은 서술로 과거의 기억을 불러들이지만 그것은 그들이 경험하는 현재가 반영된 기억이다.</p><p>독자는 백치인 벤지의 머릿속에서 출발해서 햄릿형 퀜틴의 기억과 몽상으로 옮겨진 다음, 합리주의자인 양 행동하는 완고하고 과민한 제이슨의 관찰에 도달한다. </p><p>포크너는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스스로 그 의미를 이해하기를 강요한다.</p><p>포크너는 인쇄되어 침묵하는 단어들을 통제하기 위해 구두법과 철자 표기와 같은 시각적 장치들을 창의적으로 사용하다. 문법, 구문, 구두법, 철자 등은 서로 경쟁하며 작중인물이 말하는 것 이외의 것을 드러내 보인다. 그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 숨기려는 것, 그들에게 고통과 치욕을 초래한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p><p>퀜틴의 아버지는 상담역이 되고 조언을 해주고 고해를 받아주는 역할에 실패하고 엄마는 사랑의 원천이 되어야 하는 역할에 실패한다. 낭만적 이상주의자인 퀜틴은 삶을 회피하는 방편으로 죽음을 택하지만, 냉소적 현실주의자인 아버지 콤슨은 술을 택한다. 엄마는 벤지가 백치라는 사실의 발견하고 가문의 수치로 생각한다. 그녀는 사악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정상적인 가족 관계를 마비시키는 부정적 성향의 차가운 무게로 가족 전체를 내리누르는 존재다.</p><p>포크너에게 현재는 혼돈된 소음 또는 소리, 그리고 지나간 미래다. 퀜틴에게 현재는 존재하지 않고 과거만 있을 뿐이다. 현재는 과거가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내고 존재하기 시작한다. </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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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6-01-15 07:50: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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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프로젝트 헤일메리</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3906467502</link>
         <description><![CDATA[<p>  꽤나 어려운 과학적 원리들이 가득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상황은 그런가보다 하면서 넘어가면서 읽었다.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읽기 시작했으므로 과학적 이해 부분은 몰라도 그만이겠다 싶었다. 삼채를 읽으며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생명들이 암흑의 숲이고 태양계가 사라지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어 두렵고 막막해지는 것 같았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생명은 언제나 서로 연대한다는 따뜻한 서사로 두렵던 마음에 약간의 빛이 스며드는 것 같아서 좋았다. </p><p>  아스트로파지가 태양의 열을 뺏어가고 지구 온도가 내려가고 있다는 설정이 터무니 없기는 하지만 편도 우주 비행을 마다하지 않는 인류애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태양계가 아닌 다른 은하에 있는 타우세티만이 아스트로파지에 감염되어도 온도가 낮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한 지구인은 아스트로파지를 연료로 타우세티에 '헤일메리' 우주선을 보낸다. 원하지 않았지만 우주인이 된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40 에리다니' 행성에서 온 로키라는 외계인과 협력하게 된다. 아스트로파지를 없애는 방법을 찾아내는 험난한 과정에서 서로 협력하고  희생하며 우정을 쌓는 이야기이다. </p><p>  아스트로파지를 로키에게 얻어 지구로 돌아갈 수 있게 된 라일랜드는 지구를 향해 가던 중 아스트로파지가 감염되는 원인이 로키가 물건을 만들 때 사용한 제노나이트에 적응한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로키의 우주선이 아스트로파지로 감염되어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로키를 구하기 위해 지구로 귀환을 포기한다. 로키를 구하고 라일랜드는 로키의 행성에서 살게 된다. 지구로 돌아오느냐 마느냐가 결말은 아니었다.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우정을 나눌 수 있고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다. 희망적인 메시지 따뜻한 결말이다. 다만 읽는 내내 마션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기시성 탓에 흥미진진함이 아쉽기도 했다.</p><p>  책을 읽은 후 바로 극장에 갔다. 광활한 우주, 돌덩이 같이 묘사된 우주인, 헤일메리호 등등 글로 이해한 것들이 시각적, 청각적으로 어떻게 표현되었을 지 무척 궁금했다. 함께 갈 사람은 없고 내일이면 영화 상영이 끝난다 하고 해서 혼자서 봤다. 무려 2시간 30분이나 상영하는데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줄거리를 다 알고 있는데 우주 공간, 사운드가 나의 시간을 압도하여 순간으로 몰입시켰다. 마치 내가 헤일메리에 탑승한 듯이 타우세티 근처에 머무르는 듯이... 전율이 느껴지는 멋진 영화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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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6-05-11 06:25: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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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김애란 작가와 함께</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3906478515</link>
         <description><![CDATA[<p>질문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김애란 작가에 대해 존경의 마음이 생겨서 책을 사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빌리기도 했다. 5일 연휴 기간 동안 딱히 외출 계획도 없어서 이 책들을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 </p><p><br/></p><p>[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을 때는 피아노 학원 가기가 싫어질 만큼 말 재미가 컸었다. 감정을 묘사한 적절한 표현을 위한 고민이 문장 곳곳에 스며있고 부모의 사랑, 조로증으로 생을 마감하는 과정이 담담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시선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자신의 몸 곳곳에 대해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청춘을 부럽다고 표현하는 부분에서 몸이 아픈 것은 정말 겪어 보지 않고 짐작하기 어려운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상적이었다. 17 나이에 자신의 34살을 아버지 얼굴을 통해 상상하며 세상과 작별해야 하는 아름이를 보내면서 가슴 아파하기 보다 몸이 아프지 않은 세상으로 소풍 떠났을 것이라 웃어주고 싶다.</p><p><br/></p><p>[안녕이라 그랬어] 단편집에서는 내 생각 속에 깊게 들어가 들여다 본 것처럼 누군가에게 차마 꺼낼 수 없었던 경제적 한계를 드러내 주고 있어 반가웠다. 책 뒷표지에 김애란을 사회학자라 불러도 되겠다는 평가에 깊게 공감했다. </p><p>안녕이라 그랬어 중 [숲속 작은 집] 한 부분 이다. </p><p>메시지를 보내기 전 미안하단 말을 지울까 고민하다 그대로 나뒀다. 그러곤 중등교육을 받지 못한 엄마가 여러 번 고치고 또 새로 썼을 문장을 가만 바라보았다. '고맙다'는 말을 들었는데 왜 뿌듯하기보다 복잡한 감정이 이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돈 때문에 부담을 느껴서만은 아니었다. 내가 실직중이라는 것과 엄마의 외동딸이란 사실에 압박을 받아서만도 아니었다. 평소에도 여러 번 들은, 눈 깜짝할 사이 폭삭 늙어버린 엄마가 내게 보낸 '고맙다'는 문자를 보자, 이상하게 그 말은 받은 게 어니라 언젠가 내가 상대에게 준 무언가를, 아니 오랜 시간 상대가 내게 주었다 생각한 무언가를 도로 빼앗은 기분이 들었다. </p><p><br/></p><p>[바깥은 여름]은 다양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객관적 시선으로 서술해서 에피소드 마다의 매력이 있었다. 지금도 내 주변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작가도 궁금하다고 말하듯 나 역시 그런 상처에도 불구하고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싶다.</p><p><br/></p><p>바깥은 여름 작가의 말 중 일부</p><p>앞으로도 저는 여전히 삶이 무언지 모른 채 삶을, 죽음이 무언지 모른 채 죽음을 그릴 테지만, 때로는 그 '모름'의 렌즈로 봐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새로 배워나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p><p><br/></p><p>바깥은 여름 신형철 해설 중 일부</p><p> 그럴 필요 없는데, 아니 그래선 안 되는데, 언제나 경제적 인간(호모에코노미쿠스)으로만 살아가게 되어버린 우리가 이 책에 있다. 그들은 제 이웃을 제 돈과 같이 사랑하거나 그보다 덜 사랑한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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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6-05-11 06:30: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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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수레바퀴 아래서</title>
         <author>napessimist</author>
         <link>https://padlet.com/napessimist/g6hk7kr00il8/wish/3953267532</link>
         <description><![CDATA[<p>  한스 기벤라트, 데미안의 싱클레어, 유리알 유희의 크네히트 세 명 모두 헤르만 헤세의 분신들인 것 같다. 헤르만 헤세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설에 담아서 더욱 청소년의 방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p><p>  한스 기벤라트의 삶은 신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경쟁에 적응했다가 다시 실패하게 되고 아버지의 차가운 실망 속에 고향에서 지낸다. 그러다 사랑하는 여인이 생기고 대장장이 견습공 생활로 활기를 되찾는 듯 했지만 여인에게 버림받으며 죽음으로 이어진다.  </p><p>  지금은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나 숨막히는 경쟁을 치르느라 다 한스 기벤라트로 내몰리고 있다. 그러니 아직도 헤세의 작품들이 청소년의 방황과 성장, 높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 등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수레바퀴 아래서는 여전히 청소년 권장 도서로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p><p>  나도 중학교 시절 헤르만 헤세 책을 정말 좋아했었다. 일부러 헤르만 헤세의 책만 골라 읽더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남은 기억은 우울하고 사색하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정도이다. 어진이가 데미안과 이 책을 생기부에 남기기 위해 읽는다고 해서 함께 읽었다. 덕분에 헤르만 헤세의 전반적인 글쓰기 주제 의식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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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6-06-15 05:39: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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