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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로마 문화 유적 지도 만들기 5조 by 교사 김현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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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로마 문화 유적의 위치를 찾고 그림과 설명을 추가해봅시다.</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3-04-04 05:18: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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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탈리아 로마 Piazza Bocca della Verità, 진실의 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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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해신 트리톤의 얼굴을 새긴 원형 석판으로 원래 로마 시대에는 하수구였다고 한다. 입에 손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입을 닫아 손목을 잘라버린다는 전설이 있다.입뿐만 아니라 코와 눈까지도 관광객들의 손길로 반질반질해져 있다. 영화 &lt;로마의 휴일&gt;을 통해 너무나 잘 알려져 입에 손을 넣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언제나 줄을 서 있다.하지만 영화에 등장한 장소라는 것을 제외하면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한 장 찍고 단아한 모양의 코스메딘 산타 마리아(Cosmedin Santa Maria) 성당으로 들어가 보자.이 성당은 로마에 있는 중세 성당 중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 받는다. 7층 높이의 로마네스크 양식 종탑이 있고 아름다운 바닥 모자이크와 대리석 장식이 눈길을 끈다.</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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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12 05:45: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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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탈리아 로마 팔라티노 언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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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로마의 일곱 언덕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서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웠다는 전설의 무대이며 로마의 시초이다. 기원전 8세기경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정착하여 주거지가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이후 부유한 로마인들의 고급 주택지가 되었다.그러나 로마가 몰락한 이후 점점 폐허가 되어갔고 중세 때는 교회가 들어서고 정원이 조성되기도 하였다.황제의 부인이 살던 집인 까사 리비아(Casa di Livia), 황제의 별궁인 도무스 아우구스티나(Domus Augustina)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저택이라고 하는 도무스 플라비아(Domus Flavia) 등이 있다. 현재도 계속 발굴작업이 진행 중이다.</div><blockquote>다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쪽으로 나와 왼쪽으로 뻗은 큰길로 나가면 버스 정류장(Fermata)이 보인다. 여기서 75번이나 175번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만 가서 내리면 작은 탑이 하나 덩그러니 서 있다. 앞으로 길게 펼쳐진 대전차 경주장(Circo Massimo). Via di S.Gregorio를 따라 걸어서 7~8분 소요. 큰길 왼쪽 건너편으로 보이는 커다란 건물은 UN의 산하 기구인 세계 식량 기구(FAO)의 본부이다. 이제 대전차 경주장을 따라 왼쪽 언덕길로 천천히 산책하며 올라가 보자. 가장 높은 곳까지 가면 벤치가 쭉 놓여 있다. 병풍처럼 펼쳐진 팔라티노 언덕의 유적을 배경으로 이곳에서 사진 한 장. 길 건너에는 19세기 이탈리아의 정치 지도자 마찌니(Mazzini)의 동상이 있고 그 오른편 뒤쪽으로는 시에서 운영하는 아름다운 장미 정원이 있다. 계속해서 가던 방향으로 언덕을 내려가면 사각형의 종루가 솟은 건물이 보인다. 이곳이 진실의 입이 있는 코스메딘 산타 마리아 성당. 길을 하나 건너 앞쪽으로 돌아가면 입구가 있다. 그런데 대전차 경기장이나 진실의 입을 건너뛰고 싶다면 그대로 직진해 보자. 포로 로마노와 캄피돌리오 광장 그리고 베네치아 광장이 일직선처럼 연결되어 있다.</blockquote>]]></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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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12 05:50: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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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탈리아 로마 Piazza di Trevi, 트레비 분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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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트레비 분수는 로마에 있는 분수이다. 이탈리아의 건축가 니콜라 살비에 의해 지어졌고, 높이는 26.3m, 너비는 49.15m이다. 로마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분수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세계적으로도 매우 유명한 분수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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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12 05:53: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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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탈리아 로마 Piazza del Colosseo, 콜로세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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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이탈리아 로마의 중심지에 위치한, 고대 로마시대에 건설된 투기장. 원래 이 타입의 것은 원형극장(Amphitheatre)이라고 하는 건축물로 서기 80년경 완공되었다. 원형극장도 두 종류가 있어서 하나는 콜로세움처럼 검투사 경기나 서커스 관람 등을 하는 스타디움의 개념인 앰피시어터가 있고, 다른 것으로 원형 좌석이 있어서 희곡, 연주 등을 행하는 예술적 상영장인 앰피시어터가 있다. 콜로세움은 전자의 것으로, 로마가 건축한 것 중에서 가장 큰 원형극장이다. 또한 간과하기 쉬운 사실로 완전한 원형이 아니라 타원 모양이다.<br><br>흔히 원형경기장 아무것에나 콜로세움이라고 붙이는 일이 많으나[15], 로마 시의 중심부에 있는 그것만을 콜로세움이라고 부른다. 다른 지방에도 원형극장(경기장)이 여럿 있지만 콜로세움이라고 부르지 않고 각각의 이름, 내지는 어디어디의 앰피시어터로 부른다. 콜로세움은 그중에서 로마 중심지에 있고 제일 크고 보존도 잘된 편이라서 유명하다보니 대명사처럼 사용될 뿐이다.<br><br>1980년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Historic Centre of Rome, the Properties of the Holy See in that City Enjoying Extraterritorial Rights and San Paolo Fuori le Mura)이라는 이름으로 로마 전역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로마 안에 위치한 콜로세움도 역사 지구에 포함되어 등재되었다.<br><br>이탈리아 정부가 2년간 나무판을 깔아 콜로세움 바닥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2021년에 지하 부분을 완전 개방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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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12 05:53: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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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탈리아 로마 Via Appia Antica, 산 칼리스토의 카타콤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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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s://padlet.com/jhk951130/fkcc4bwqhtpcvy4e/wish/2551179612</link>
         <description><![CDATA[<div>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지하묘소. 이교도나 유대교도의 것도 있지만, 특히 그리스도 교도의 것을 가리킨다. 본래 로마 교외의 성 세바스찬의 지하묘소를 가리킨 &lt;아드 카타쿰바스(ad catacumbas, &lt;웅덩이의 옆&gt;이라는 뜻)&gt;에서 유래된 말이다. 고대 로마의 매장 형식은 2세기 전반에 화장에서 토장형식으로 이행하고, 지상의 묘지 외에 소규모의 지하묘실인 히포게움(hypogeum)이나 지하에 광범위하게 통로로 연결한 묘실을 가진 카타콤베 형식의 묘소가 있었다. 그리스도 교도도 이 전통에 따라서 2세기 후반부터 7세기경까지 지하묘실을 사용하고, 발전시켰다.</div><div>박해시대에는 피난소나 예배당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원칙적으로 각 카타콤베는 순교 성인의 이름을 가지며, 역대의 교황이나 성직자, 그리스도 교도의 묘소이다. 나폴리나 시라크사 외에 소아시아, 북아프리카의 각지에도 그리스도 교도의 카타콤베가 발견되고 있는데, 대부분은 로마 및 그 근교에 있다. 카타콤베는 1578년에 재발견될 때까지 오랫동안 잊혀졌다. 최근에도 1955년에 로마 교외의 라티나가 길을 따라서 하나가 발견되었다. 비교적 단순한 히포게움 형식의 것도 포함해서 현재 로마 근교에는 39개의 카타콤베가 알려져 있으며, 모두 고대 로마 성벽 밖의 주요 가도를 따라서 위치한다. 주된 것에 라비카나 가도의 성(聖)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632016&amp;ref=y">베드로</a>와 마르케리누스의 카타콤베, 앗피아 가도의 성 카리스투스의 카타콤베(역대 교황의 묘가 있었다), 도미티라의 카타콤베 등이 있다. 모두 미발굴된 부분도 있지만, 수백m 사방의 부지 지하에 통로로 연결된 무수한 묘실이 3층이나 4층을 이루면서 설치되었는데 묘실에는 석관이 있다. 요소에 통기공이나 채광공을 가진 통로의 벽면에도, 상하로 선반처럼 겹쳐진 가난한 자를 위한 무수한 묘가 묻혀져 있다. 묘실의 벽면은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되어 있으며, 석관부조와 함께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631107&amp;ref=y">초기 그리스도교 미술</a>의 귀중한 유례가 되어 있다.</div><div>2세기 말~3세기 중엽의 벽화는 백지를 선으로 구획하고, 식물이나 동물의 모티브를 배열한 단순한 것이 많다. 거기에는 이교도 미술의 모티브를 그리스도교적 의미로 전용한 것이 많으며, 물고기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도 나타난다. 3세기 중엽 이후에 성서장면이 나타나는데, 아담과 이브를 비롯해서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631792&amp;ref=y">노아</a>,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628864&amp;ref=y">다니엘</a>, 요나,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631953&amp;ref=y">모세</a>의 이야기 등 『구약성서』장면이 압도적으로 많다. 4세기에 들어가면 &lt;그리스도와 사자들의 모임&gt;과 같은 『신약성서』의 주제도 나타나는데, 이미 교회의 승리 시대가 되어서 지상의 교회당에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628736&amp;ref=y">그리스도교 미술</a>이 개화하자 카타콤베의 벽화는 그 주류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한 카타콤베의 벽화에는 고대 신화장면 등의 이교적 주제 및 모티브도 많이 인정된다. 그 중에는 명백히 그리스도 교도 이외의 비교(祕敎)를 믿은 자들의 묘실로 보여지는 것도 존재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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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12 05:53: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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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페인 세고비아 Plaza Azoguejo, 세고비아 수로</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k951130/fkcc4bwqhtpcvy4e/wish/2551180258</link>
         <description><![CDATA[<div>세고비아는 복잡한 역사적 실재를 보여 주는 지표(指標)이다. 거주 집단, 거리, 주택이 배열되어 있는 것은 다양한 문화 공동체가 사회적 계층 구조보다 강할 때 나타나는 특징을 보여 준다. 무어인, 기도교인, 유대인이 오랫동안 이 중세 도시에서 함께 살았고, 16세기에 제조업 붐이 일었을 때 이들은 함께 일했다. 세고비아에서는 개인 주택부터 거대한 종교적 · 군사적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건축 기법과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 환경의 모든 구성 요소를 볼 수 있다.<br><br>스페인의 세비야(Sevilla), 톨레도(Toledo), 칼라오라(Calahorra)에 있던 로마 시대 수도교들은 남아 있지 않지만, 221개의 거대한 교각을 보면 사라고사(Zaragoza) 지방에 있던 아틸리아나에 수로 교각(Aquae&nbsp;Atilianae)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메리다(Mérida), 타라고나(Tarragona), 세고비아에 남아 있는 이 인상적인 기념물은 프론티누스(Frontinus)가 ‘제국에 대한 가장 장엄한 증거’라고 묘사했다. 승승장구하는 로마 군대의 발걸음을 따라 영토가 늘어남에 따라 정치적으로도 수도교의 건설은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br><br>세고비아의 상징인 이 수도교는 기념비적 가치와 훌륭한 보존 상태, 특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경관이 있는 곳이라는 이유로 토목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위업의 하나로 꼽힌다. 과다마라(Guadarrama) 산맥에 있는 프리오(Frío) 강의 강물을 평균 경사도 1퍼센트를 유지하면서 운하를 통해 18㎞ 떨어진 세고비아까지 보낸 수력공학자들은 수도교 끝부분에 있는 클라모레스(Clamores) 강의 계곡을 가로지르는 공사를 하면서 아주 까다로운 자연적 장애물과 마주쳤다.<br><br>도시가 있는 바위산까지 물을 끌어가려면 4개의 평판 복공재(覆工材, 세그먼트)와 313m 길이의 기둥이 떠받치는 2층 회랑(arcade) 구조의 거대한 석조 건축물을 세워야 했다. 계곡의 가장 낮은 부분에서는 수도교가 바닥으로부터 28.5m 높이에 설치되었다.<br><br>이 거대한 건축물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문서는 없다. 그러나 이 수도교의 회랑의 전체 윤곽과 건축 기법은 38년~52년에 건설된 로마의 클라우디아(Claudia) 수도교와 형태상 유사한 것들이 이용되었다. 게다가 기둥 아래 부분에 대한 발굴 결과를 보면, 이 수도교의 건축 시기가 대략 50년 무렵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br><br>1484년에 가톨릭 국왕들이 처음 시작한 복구공사가 끝난 뒤에 수도교는 계속 사용되면서 잘 관리되었다. 가장 심각한 손상은 지난 세기에 생겼다. 무거운 트럭이 통행할 때 발생하는 진동과 매연으로 인해 돌이 부식되었고, 그에 따른 균열이 발생해 16세기에 돌로 만들었던 수관을 1929년~1930년에 콘크리트로 교체했다. 돌로 된 수관은 그전의 목재 수관을 교체한 것이었다. 이런 물리적 · 화학적인 손상은 주로 잘못 입안된 도시 개발 정책 때문이다. 이로 인해 수도교의 아름다움을 해치고 보존을 방해하는 주차장, 큰 도로, 진출입로 등이 들어서면서 기념물 주변의 환경이 파괴되었다.<br><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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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12 05:54: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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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탈리아 로마 Via della Salara Vecchia, 포로 로마노</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hk951130/fkcc4bwqhtpcvy4e/wish/2551183151</link>
         <description><![CDATA[<div>설명:세나토리오 궁 뒤쪽 좌우에 설치된 테라스나 팔라티노 언덕에 올라가면 언덕 아래로 넓게 펼쳐지는 포로 로마노(<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95920&amp;ref=y">로마</a> 공회장) 유적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포로 로마노가 세워진 지역은 처음에는 비가 오면 물이 괴는 습지였는데, 하수시설을 확충한 후 도시 생활의 구심점을 이루는 장소가 되었다. 또한 주변의 언덕들이 마주치는 곳이어서 도시를 방어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였다.</div><div>공회장(Foro)은 신전, 바실리카(공회당), 기념비 등의 건물들로 구성된 도시 공간으로 공공생활을 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었다. 나중에는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로 발전하면서 약 1,000년 동안 로마제국의 심장 역할을 했다.</div><div><br>283년 화재로 파괴된 후 복구되긴 했으나 중세 이후로는 이 공회장의 건물들을 헐어 건축자재로 쓰기도 했다. 그 후 1871년에 발굴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한때는 막강했던 위엄 있는 건물들이 지금은 거의 폐허가 되었지만, 아직 옛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을 통해 로마의 영광을 되새겨볼 수 있다.</div><div>방문 시간은 강렬한 햇빛이 비치는 오후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그늘진 곳이 없어 관광이 편치 않다.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962654&amp;ref=y">콜로세움</a> 쪽 입구에서 일직선인 사크라 거리(Via Sacra)를 따라가면서 구경한다. 티투스 황제 개선문,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베스타 신전, 원로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 순서로, 또는 역순으로 돌아 보자.</div><div>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을 통과해 계단을 올라가면 왼편에 세나토리오 궁(Palazzo Senatorio)이 있다. 이곳 테라스에서 바라본 포로 로마노 전경은 일품이다. 직진하면 캄피돌리오 광장이 나온다. 여유가 되면 바티칸 우체국에서 판매하는, 과거의 화려했던 모습과 폐허가 된 현재의 모습을 비교한 그림 책자를 참조하면서 상상력을 동원해 보자.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div><div>티투스 황제 개선문(Arco di Tito)은 콜로세움에서 포로 로마노로 들어갈 때 가장 먼저 보이는 유적이다.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그의 형인 티투스 황제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대 예루살렘 전투 승전(70년)을 기념하며 81년에 세운 가장 오래된 개선문이다.</div><div><br>개선문의 내벽에는 로마군의 전쟁 장면과 쌍두마차를 타고 개선하는 티투스의 모습이 아름답게 부조되어 있다. 개선문 꼭대기에는 라틴어로 ‘원로원과 로마 시민이 티투스에게 바친다’라고 쓰여 있다. 티투스 황제 개선문을 지나 사크라 거리 오른편에는 아치 모양의 건물인 막센티우스 바실리카(Basilica di Massenzio)가 보인다. 이 공회당은 막센티우스에 의해 건축되기 시작했지만 밀비안 다리 전투에서 막센티우스를 물리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완성되었다. 훗날 브라만테가 이 건축물을 토대로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설계했다고 한다.</div><div>막센티우스 황제의 바실리카를 지나면 바로 오른쪽에 안토니우스와 파우스티나의 신전(Templum Divi Antonini et Divae Faustinae)이 있다. 141년 안토니우스 황제가 죽은 황후 파우스티나를 위해 만든 신전으로, 황제 자신도 사후에 이곳에 매장되었다. 기독교 시대에는 미란다의 산 로렌초로 옮겨졌었다.</div><div>베스타 신전(Tempio di Vesta)은 로마제국에서 약 천 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온 성화를 숭배하는 신앙의 전당으로서 매우 신성한 장소였다. 원형 평면으로 된 유적으로 이 신전에는 미네르바 여신의 형상과 로마의 영원함을 상징하는 성화가 모셔져 있는데, 성화가 꺼지면 흉조라 여겨졌다. 귀족 가문에서 선발된 7~8세의 처녀들이 30년간 순결을 지키며 이 성스러운 업무를 헌신해야만 비로소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처녀 제관들은 순결을 잃는 경우 생매장을 당해 죽었다고 한다. 신전 뒤에는 191년에 마지막으로 고쳐서 세운 처녀 제관들의 집 유적이 남아 있다.</div><div>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으로 들어서기 전 오른편에 보이는 붉은 벽돌의 큰 건물은 원로원(Curia)이다. 성당 부분을 복원한 원로원은 로마 공화정 시대에는 입법 자문기관으로 정치와 외교를 지도했다. 로마 공회장 유적지 안에서 가장 온전하게 남아 있는 건물로 기원전 670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마지막으로 손질을 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div><div><br>원로원 제도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오래 유지되었던 정치 형태였다. 이 원로원에서 카이사르가 아들처럼 아꼈던 브루투스에게 암살되면서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원로원 건물 앞의 광장은 ‘코미티움(Comitium)’이라 하여 시민들이 모여 집정관을 선출하던 곳이다.</div><div>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Arco di Settimio Severo)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10년 통치를 치하하고, 그의 아들 카라칼라와 제타의 파르티아, 아라비아, 아시리아 등지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원로원과 시민들이 203년에 세운 것이다. 이곳에 새겨진 신들의 모습은 르네상스 시대에 전 유럽에 전해졌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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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4-12 05:57: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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