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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원중 2학년 조선 후기 문화(2-2) by In hee Le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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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조선 후기 문화에 대한 내용을 온라인에서 조사하고 전시해봅시다.</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0-12-21 00:16: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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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팔만대장경 (20600 이인희)</title>
         <author>flotnstls</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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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우리나라 국보 제 32호로, 고려시대대몽항쟁 시기에 부처의 힘으로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만든 대장경이다. 대장경이란 불교 경전을 모은 것을 의미한다. 총 16년 동안 제작되었으며 8만 개의 판수에 다다르기 때문에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현재는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출처: 교과서, 네이버 지식백과]]></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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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0:16: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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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국유사 (20600 이인희)</title>
         <author>flotnstls</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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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고려시대 충렬왕 시기에 승려 일연이 지은 역사서이다. 불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수록되지 않은 다양한 전설이나 신화 등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삼국유사는 고조선의 단군설화를 최초로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출처: 교과서, 네이버 지식백과]]></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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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0:16: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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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료 조사 방법</title>
         <author>flotnstls</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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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 제목에는 각자 맡은 <strong><mark>주제, 학번, 이름</mark></strong>을 함께 적어주세요.<br>예시. 팔만대장경 (20300 이인희)<br><br>2. 자료조사(교과서, 책, 인터넷 등)를 한 후 내가 맡은 문화재에 대한 <strong><mark>간략한 소개를 사진과 함께 올려주세요. </mark></strong><br><br>3. 마지막에는 <strong><mark>출처</mark></strong>를 꼭 밝혀주세요. (예. 출처-교과서, 네이버 지식백과 등) - <strong><mark>출처 내용은 참고하되, 그대로 옮겨오지 말고 본인이 정리하여 작성해보세요.</mark></strong><br><br>4. 문화재 소개를 작성한 후에는, 다른 친구들이 작성한 글도 천천히 감상해보세요.</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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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00:16: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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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탈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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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탈을 쓰고 춤을 추면서 하는 전통 연극이다. 처음에는 궁중 행사에서 광대들이 공연하는 정도였으나 조선 후기에는 민중 문화로 발전했다. 탈춤은 대부분 지배층(양반)을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대부분 마을의 공터나 언덕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장소에서 대중 공연으로 행해졌다.<br><br> -탈춤의 내용<br> 탈춤의 내용은 신분 사회를 풍자하거나 백성들의 힘든 삶을 해학적으로 그린 내용이었다. 그리고 사회.문화적으로 부패한 조선 후기에는 무능하며 계율을 어기고 문란한 생활을 하는 양반을 조롱하고, 그릇된 남녀 관계나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 모습을 풍자하는 경우가 더욱 많았다. <br> <br> -탈춤의 예시(봉산탈춤)<br> 황해도 봉산에 전해지는 탈춤 중 하나인 봉산탈춤은, 가장 예술성이 높다고 평가 받고 있다. 불교의 계율을 어기고 타락한 생활을 하는 스님을 혼내기 위해 부처의 명령을 받고 사자가 찾아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봉산탈춤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17호에 등록되어 있다.<br><br>-자료출처: 네이버 지식백과<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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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17:13: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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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단오풍정 (20214 서윤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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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음력 5월 5일 단오는 예로부터 설날, 추석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큰 명절이다. 단옷날에는 농사일을 잠시 쉬고 모두가 새 옷을 입고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여인들은 물가에서 몸을 씻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기도 했다. 그런데 여인들의 모습을 바위 틈으로 몰래 훔쳐보고 있는 동자승들이 있다.<br><br>&lt;단오풍정&gt;을 그린 신윤복은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지칭된다. 가늘고 유연한 선과 원색의 산뜻하고 또렷한 색채사용, 현대적인 구도와 독특한 상황 설정으로 조선시대 풍속화의 영역을 보다 다채롭게 넓혀 주었다.<br><br>신윤복의 풍속화는 무엇보다도 남녀의 애정행각을 다룬 에로틱한 표현의 춘의도가 많다. 이는 조선시대 성리학 이념의 폐쇄적 굴레에 반하는 획기적인 일로 그는 양반귀족들의 위선과 불륜을 대담하게 파헤치고 풍자하면서 인간의 본질적이고 은폐되었던 면을 화폭에 담아냈다. 또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존재감을 얻지 못했던 여성들을 작품에 등장시키기도 했다.</div><div><br>출처: <strong>[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19119">신윤복</a> [申潤福] (두산백과), <strong>[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81356">단오풍정</a> - 혜원 신윤복 (천재학습백과 초등 명화미술관)<br><br></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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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1 23:19: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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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해동역사(20209 김현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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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mark>단군조선으로부터 고려시대까지를 서술한 한국의 역사서이다.</mark><br>조선 정조·순조 때의 사학자(史學者) 한치윤이 편술한 본편 70권과 그의 조카 한진서가 보충한 속편 15권을 합쳐 필사본으로 85권 6책이다.(책은 한치윤이 죽기 10여년 전부터 착수해 본편 70권만 이루고 죽었다. 이에 미처 마무리짓지 못한 지리고(地理考) 15권을 한진서가 속편으로 완성한 것이다. <br>청나라 마숙(馬驌)이 찬술한 ≪역사 繹史≫를 모범으로 하여 ‘해동역사’라 했다.</div><div>조선의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등의 서적은 물론 중국의 사서 523종과 일본의 사서 22종 등 550여종의 외국 서적에서 조선 관련 기사를 발췌하여 세기(世紀)와 지(志) 및 전기(傳紀) 부분으로 나누어 편찬하였다.</div><div>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해동역사 [海東繹史]</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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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00:06: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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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발해고(20223 최유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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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 <strong><mark>발해고는 1784년 유득공이 쓴 발해의 역사책이다.<br></mark></strong> 실사구시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청나라의 학문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유득공은 고려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자처한 발해의 역사를 기술하지 않아 그 실체를 잃게 되었다고 비판하고,조선의 역사책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사서들을 종합하여 발해의 역사를 정리해 편찬하였다.대략적인 책의 내용은 9고로 나누어 정사의 체계를 엮었고 역대왕에 관하여 기술한 본기이며 학자들에 관하여 정리한 열전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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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00:13: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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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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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동사(이종휘) 20202 김다은<br>조선후기에 이종휘가 지은 역사책<br><br>동사 는 기전체형식에 따라 본기(本紀)·세가(世家)·열전(列傳)·연표(年表)·표(表)·지(志)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조선과 삼한, 그리고 부여·고구려 계통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것이 특징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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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01:07: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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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의보감 (20220 이준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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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5권 25책. 1610년에 완성하여 1613년 내의원에서 개주갑인자 목활자로 첫 간행된 조선 최고의 의학서적이다.<br> 이 책은 원래 1596년에 태의 허준이 왕명을 받아 유의인 정작과 태의 이명원·양예수·김응탁·정예남 등과 함께 찬집하였는데, 정유재란으로 일시 중단되었다가 그 뒤 선조가 허준에게 다시 명하여 계속 편집하도록 하였으며, 내장방서 500권을 내주어 고증하게 하였다. 허준이 전심전력하여 1610년에 마침내 완성.<br> 책 제목의 ‘동의’란 중국 남쪽과 북쪽의 의학전통에 비견되는 동쪽의 의학 전통 즉, 조선의 의학 전통을 뜻한다. ‘보감’이란 “보배스러운 거울”이란 뜻이다. 허준은 조선의 의학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과 조선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는 뜻으로 ‘동의보감’이라 이름 지었다.<br><strong>[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4501">동의보감</a> [東醫寶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br><br></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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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02:27: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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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상평통보-20211박서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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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상평통보는 조선시대의 화폐로 숙종4년에 시행되었고 조선후기에 폐지되었다. <br><br>구체적으로는, 1633년(인조4년)에는 김신국, 김육 등의 주청으로 상평청을 설치하고 주조하여 처음 유통하였으나, 중지되었다. 그리고 1678년(숙종4년)상평통보의 주조를 다시 주장하여 서울 일대와 서북 일부 지역에 유통케 하였으며, 법하로 채택하였다. 가장 먼저 당일전을 발행했고, 그 뒤에 당이전과 당오전을 발행해 유통시켰다. 1894년(고종 31년)에 주조발행사업이 중단되고, 1904년 화폐정리사업으로 인해 회수·폐기되었다. 기록이 정확하게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총 1,784,038개가 주조됐다고 알려진 당백전을 제외하고는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상평통보가 주조됐으며 각각 얼마의 가치를 지녔는지 정확이 알기는 어렵다.<br><br>이것은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에서 엽전이라고 기록이 되어있다. <br>수공업, 상업 진흥을 할때 상평통보의 사용도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조선왕조가 상평통보를 법화로 주조, 유통하기로 결정한 뒤, 호조·상평청(常平廳)·진휼청(賑恤廳)·정초청(精抄廳)·사복시(司僕寺)·어영청(御營廳) 및 훈련도감(訓鍊都監) 등 7개 관청 및 군영에서 그것을 주조하도록 하였다.<br><br>[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상평통보(常平通寶))] [출처: 위키백과]<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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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02:51: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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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청계천-최형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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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서울의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를 흐르는하천. 2003년에 태평로를 시점으로 동대문을거쳐 신답 철교까지 5.84km 구간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2005년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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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03:27: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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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춘향전 (20210 류지원)</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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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 춘향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 소설로, 조선 시대의 한글 소설이다. 양반인 이몽룡과 기생의 딸 춘향(성춘향)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로, 해학적이고 풍자적이며 조선 후기의 평민 의식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작자와 정확한 창작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예부터 전해지던 설화가 판소리로 불리다가 소설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br> 춘향과 이몽룡 외에 변학도(부패한 관리), 월매(예전에 기생이었던 춘향의 어머니) 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신분제도에 대한 풍자와 부패한 관리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품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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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08:15: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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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왕제색도 (20217 윤수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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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인왕제색도는 조선 영조대 화가였던 겸재 정선이 서울 인왕산을 그린 그림이다. '인왕'은 삼청동 뒤편에 자리잡은 인왕산을 말하는 것이고, '제색'은 비가 온 후 막갠 풍광을 일컫는 말이다. 인오아제색도는 이름 그대로 한여름 소나기가 스치고 지나간 인왕산의 봉우리를 그린 그림이다.<br>그림을 보다보면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인왕산의 봉우리는 검은색이 아니라 흰색인데, 정선은 그것을 검게 그렸다. 비가 온 후에는 봉우리가 젖어 검은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진경산수화의 특징 중 하나이다.검게 칠한 바위에서는 남성적인 웅장함이 느껴진다. 이는 그림의 구성에서도 드러나는데, &lt;인왕제색도&gt;의 상단 봉우리 일부분은 잘려있고, 좌우 아래는 생략되어 있다. 일반적인 그림에서 볼 수 없는 구성이다. 이는 그림을 보는 사람이 봉우리 가까이 다가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정선은 인왕산이 주는 압도적인 중량감을 표현하기 위해 파격적인 구도로 봉우리를 배치한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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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08:43: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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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동여지도 (20218 이세준)</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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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대동여지도〉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C%97%AC%EB%8F%84">동여도</a>와 마찬가지로 가로 80리, 세로 120리를 한 개의 방안(方眼)으로 하여 한 개 면(面)으로 하고, 2개 면은 한 개 도엽(圖葉)인 목판 한 장에 수용하였다. 그러므로 대동여지도는 전체 지도 도엽은 목판 121매이고, 제책하였을 때의 면수는 213면이다. 그러나 여기에 부록 격인 지도유설·도성도·경조오부도 등이 첨가되었기 때문에 실제 도엽은 126목판<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B%8F%99%EC%97%AC%EC%A7%80%EB%8F%84#cite_note-6"><sup>[5]</sup></a> 이고, 전체 면수는 227면이다. 전체 크기는 가로 19판, 세로 22층(22첩이라고 표시하기도 한다)이며,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가로 360센티미터, 세로 685센티미터이다. 이는 지도의 대량 보급을 염두에 둔 제작 기법으로, 동서 19판을 연폭으로 남북 22첩을 계속 인접하면 한반도 전체의 지도가 되게끔 하였다.<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B%8F%99%EC%97%AC%EC%A7%80%EB%8F%84#cite_note-daedong-7"><sup>[6]<br></sup></a><br></div><div><br>한편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84%B1%EB%B6%80">한양</a>이, 〈청구도〉에서는 두 면에 걸쳐 있었는데, 〈대동여지도〉에서는 한 면의 중앙 부위에 위치하여 한양을 둘러싼 경계가 모두 수용되었다. 이는 당시의 수도권의 지역적 범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br><br></div><div><br>또한 〈대동여지도〉에서는 각 층의 도엽을 동에서 서로 연폭(連幅)으로 길게 잇고 이것을 병풍식으로 접어 모두 22층으로 하는 분첩절루(分帖折壘) 또는 분첩절첩(分帖折帖)의 방법으로 제책하여 지도첩이 되게 하였다. 이때 책의 크기는 가로 20센티미터, 세로 30센티미터로서 당시 서지류의 크기와 비슷하게 만들어 책처럼 보관할 수 있다.<br><br></div><div><br>이 지도의 제작에서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C%A6%9D%EB%8F%99%EA%B5%AD%EC%97%AC%EC%A7%80%EC%8A%B9%EB%9E%8C">신증동국여지승람</a>(新增東國輿地勝覽)》을 참고하였으며,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C%84%EB%8F%84">위도</a> 측정에 다소 오차는 있으나 서양 지도학의 영향을 직접 받지 않고 한국의 전통적인 지도학을 대성한 것이다.<br><br></div><div><strong><br>지도의 표기</strong>[<a href="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8C%80%EB%8F%99%EC%97%AC%EC%A7%80%EB%8F%84&amp;action=edit&amp;section=2">편집</a>]</div><ul><li>1 첩에 나타낸 지역은 동서 80리, 남북 120리이며, 지도 전체로는 동서 1,520리, 남북 2,640리이다. 이때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B6%95%EC%B2%99">축척</a>은 약 1:216,000이다. 이는 〈청구도〉의 남북 2900리보다 260리의 차이를 보이는데, 〈청구도〉에서 공백 및 여백으로 표시한 부분을 〈대동여지도〉에서는 생략하였기 때문이다.</li><li>산줄기는 봉우리와 능선을 따라 이어 그렸다.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0%B1%EB%91%90%EC%82%B0">백두산</a>에서 시작하여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7%80%EB%A6%AC%EC%82%B0">지리산</a>에서 끝나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0%B1%EB%91%90%EB%8C%80%EA%B0%84">백두대간</a>을 하나의 줄기로 표기하였다.</li><li>도읍은 원으로 표기하고 원 안에 이름을 표기하였다.</li><li>주요 도로를 표기하고 10리마다 거리 표시를 하여 도읍간 거리를 알 수 있도록 하였다.</li><li>지도표(지도식)을 두었으며, 산천·해도(海島)·영아(營衙)·읍치(邑治)·성지(城池)·진보(鎭堡)·역참(驛站)·창고·목소(牧所)·봉수·능침(陵寢)·방리(坊里)·고현(古縣)·고진보(古鎭堡)·고산성(古山城)·도로 등을 나타냈다.</li></ul><div>함경도 옆에 표시한 대동여지도의 지도표. (제1첩 6면)</div><div>산 | <br>산줄기는 굵은 줄로, 높은 산은 위로 솟은 톱날 모양으로 표현했다. 이름난 산이면 좀더 묘사를 했다.예: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B%9D%BC%EC%82%B0">한라산</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0%B1%EB%A1%9D%EB%8B%B4">백록담</a>과 그 주변<br>강 | <br>배를 타고 수송을 할 수 있는 강이면 푸른 색으로 두껍게, 그렇지 않으면 중간 굵기의 선으로 표시했다.예: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6%81%ED%95%9C%EA%B0%95">북한강</a> ·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2%A8%ED%95%9C%EA%B0%95">남한강</a> ·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2%BD%EC%95%88%EC%B2%9C">경안천</a>의 합류지점 (지금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8C%94%EB%8B%B9%ED%98%B8">팔당호</a>)<br>도로(道路) | <br>가는 줄을 그리고 십리마다 표시했다.<br>영아(營衙)와 진보(鎭堡) | <br>영아는 군영을, 진보는 전방·해안 등에 배치한 진지를 말한다. 각각 크고 작은 사각형으로 표시하며 성이 있을 때에는 빨간 테두리를 그렸다.예: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2%BD%EC%83%81%EC%A2%8C%EC%88%98%EC%98%81%EC%84%B1%EC%A7%80">경상좌수영</a>(큰 사각형)과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B%9E%98%EA%B5%B0">동래</a> 근처의 진들(작은 사각형)<br>읍치(邑治) | <br>노란 원으로 표시하고 성이 있을 때에는 빨간 테두리를 그렸다.예: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5%95%EB%B3%80%EA%B5%B0">녕변</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B2%A0%EC%98%B9%EC%84%B1">철옹성</a><br>성지(城池) | <br>성과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95%B4%EC%9E%90">해자</a> 등을 말한다. 산성(山城)과 관성(關城)을 구분해서 표시했다.예: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B9%A0%EA%B3%A1">칠곡</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0%80%EC%82%B0%EC%82%B0%EC%84%B1">가산산성</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2%AD%EC%A3%BC%EA%B5%B0">삭주</a> <a href="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A7%89%EB%A0%B9%EC%A7%84&amp;action=edit&amp;redlink=1">막령진</a> 주변의 성곽<br><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7%AD%EC%B0%B8">역참</a>(驛站) | <br>노란 원 안에 세로줄을 그렸다.예: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2%BC%EB%A1%80%EC%97%AD_(%EC%97%AD%EC%B0%B8)">삼례역</a><br>창고(倉庫)<br>검은 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성이 있을 때에는 빨간 테두리를 그렸다.<br>목소(牧所) | <br>나라에서 말을 기르는 곳이다. 빈 사각형 안에 ‘牧’으로 표시했다.<br><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4%89%EC%88%98">봉수</a>(烽燧) | <br>산 위에 붉은 삼각형으로 표시했다.예: 최북단인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8%A8%EC%84%B1%EA%B5%B0">온성</a> <a href="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AF%B8%EC%A0%84%EB%B3%B4&amp;action=edit&amp;redlink=1">미전보</a> 주변의 봉수대들<br>능침(陵寢) | <br><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C%99%95%EB%A6%89">왕릉</a>을 말한다. 붉은 원으로 표시했다.예: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4%A0%EC%A0%95%EB%A6%89">선정릉</a>(위)과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97%8C%EC%9D%B8%EB%A6%89">헌인릉</a>(아래)<br>방리(坊里) | <br>빈 원으로 표시했다.<br>고현(古縣) | <br>검은 원으로 표시하고 성이 있을 땐 붉은 테두리를 그렸다.예: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2%BD%EC%A3%BC%EC%8B%9C">경주</a> 옆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83%81%EC%84%B1_(%EC%84%B1)&amp;action=edit&amp;redlink=1">상성</a><br>고진보(鎭堡) | <br>검은 삼각형으로 표시하고 성이 있을 땐 원으로 테두리를 그렸다.예: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5%88%EC%82%B0%EC%8B%9C">안산</a>의 구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B4%88%EC%A7%80%EC%A7%84">초지진</a> (현종 때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0%95%ED%99%94%EB%8F%84">강화도</a>로 옮겼다.)<br>고산성(古山城) | <br>산 모양 안에 흰 원으로 표시했다.예: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8%81%EC%B6%98%EB%A9%B4">영춘</a> 옆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B%A8%EC%96%91_%EC%98%A8%EB%8B%AC%EC%82%B0%EC%84%B1">온달산성</a>과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B%A8%EC%96%91_%EC%98%A8%EB%8B%AC%EB%8F%99%EA%B5%B4">석굴</a><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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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09:24: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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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농가집성 - 김승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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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조선중기에 문신 이지당 신속이 엮은 농업서적으로, 1655년(효종 6)에 간행되었다.<br>≪농사직설≫·≪금양잡록≫·≪사시찬요초≫의 세 농서와 부록으로 ≪구황촬요≫가 덧붙어 있는 합편이다. 그러나 각 부분의 내용은 시대에 따른 개수와 보충이 있어 당시로서는 내용과 체재를 갖춘 종합 농서라고 할 수 있다.<br>현재 1655년 목판본은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교과 규장각도서에, 1678년 고활자본은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1746년 목판본은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br><br>[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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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10:14: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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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사강목 - 반승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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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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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12:22: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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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허생전-20208 김진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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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조선 후기에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작자의 문집인 『연암집(燕巖集)』 별집(朴榮喆本, 1932)의 『열하일기(河日記)』 중 「옥갑야화(玉匣夜話)」에 수록되어 있다. 이가원(李家源) 소장의 일재본(一齋本) 필사본에는 「진덕재야화(進德齋夜話)」에 들어 있다. 두 이본의 내용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후지(後識)는 전혀 다르다.</div><div>「옥갑야화」는 작자 박지원이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옥갑에 들러 여러 비장(裨將)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적은 것이다. 「허생전」은 윤영(尹映)에게서 들은 변승업(卞承業) 할아버지의 치부 유래를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삽입되어 있다. 본디 제목 없이 편의상 「허생」 또는 「허생전」이라 부른다. 「옥갑야화」 전체를 한 편의 작품으로 처리하기도 한다.</div><div>「허생전」을 지은 연대는 분명하지 않다. 박지원이 중국에 다녀온 것이 1780년(정조 4)이고, 『열하일기』를 다시 기술한 것이 1793년이므로 그 사이에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덕재야화」의 후지로 미루어 1780년 이전의 4, 5년 사이에 쓰여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div><div>허생은 남산 아래 묵적골의 오막살이집에 살고 있었다. 그는 독서를 좋아하였으나 몹시 가난하였다. 아내가 삯바느질을 하여 살림을 꾸려나갔다. 굶주리다 못한 아내가 푸념을 하며 과거도 보지 않으면서 책은 무엇때문에 읽으며, 장사 밑천이 없으면 도둑질이라도 못하느냐고 대든다. 허생은 책을 덮고 탄식하며 문을 나선다.</div><div><strong><br>[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27471">허생전</a> [許生傳]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br><br><br>허생은 한양에서 제일 부자라는 변씨를 찾아가 돈 만 냥을 꾸어 가지고 안성에 내려가 과일장사를 하여 폭리를 얻는다. 그리고 제주도에 들어가 말총장사를 하여 많은 돈을 번다. 그 뒤에 어느 사공의 안내를 받아 무인도 하나를 얻었다.</div><div>허생은 변산에 있는 도둑들을 설득하여 각기 소 한 필, 여자 한 사람씩을 데려오게 하고 그들과 무인도에 들어가 농사를 짓는다. 3년 동안 거두어들인 농산물을 흉년이 든 나가사키(長崎 장기)에 팔아 백만금을 얻게 된다.</div><div>그는 외부로 통행할 배를 불태우고 50만금은 바다에 던져버린 뒤에 글 아는 사람을 가려 함께 본토로 돌아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남은 돈 십만금을 변씨에게 갚는다.</div><div><strong><br>[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27471">허생전</a> [許生傳]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br><br></div><div><br></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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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15:09: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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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판소리 20204김상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lotnstls/fjzax9tj16y8bmla/wish/1038239206</link>
         <description><![CDATA[<div>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북치는 사람)가 음악적 이야기를 엮어가며 연행하는 장르이다.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표현력이 풍부한 창(노래)과 일정한 양식을 가진 아니리말 풍부한 내용의 사설과 너름새(몸짓) 등으로 구연 되는 이 대중적 전통은 지식층의 문화와 서민의 문화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최대 8시간 동안 연행되는 동안 남성, 또는 여성 소리꾼은 1명의 고수의 장단에 맞춰 촌스럽기도 하고 학문적이기도 한 표현을 섞은 가사를 연행하는 즉흥 공연이다.</div><div>‘판소리’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는 뜻의 ‘판’과 ‘노래’를 뜻하는 ‘소리’가 합쳐진 말이다. 판소리는 17세기 한국의 서남지방에서, 굿판에서 무당이 읊조리는 노래를 새롭게 표현한 것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한편 조선 영조 30년(1754)에 유진한이 지은 춘향가의 내용으로 보아 적어도 숙종(재위 1674~1720) 이전에 발생하였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고, 조선 전기 문헌에 보이는 광대소학지희(廣大笑謔之戱)가 토대가 되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광대 집단과 관련이 있다는 측면에서 판소리는 소리꾼과 청중의 적극적인 참여로 완성되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후 판소리는 서민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19세기 말경에 문학적 내용으로 더욱 세련되어졌으며 도시의 지식인들 사이에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div><div>판소리를 구성하는 배경, 등장인물, 상황 등은 조선시대(1392~1910)에 뿌리를 두고 있다. 판소리의 창자는 아주 다양하고 독특한 음색을 터득하고 복잡한 내용을 모두 암기하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혹독한 수련을 거친다. 창자 특유의 해석 방식을 개발하여 특정 이야기를 연행하게 되면서 특수한 연행으로 이름난 판소리 대가들이 많다.</div><div>한국이 급속하게 현대화되면서 판소리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1964년 국가가 판소리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조치로 아낌없는 제도적 지원이 장려되었고, 그 결과 판소리의 전통은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판소리는 전통적 무대예술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장르지만, 원래의 판소리가 지니고 있었던 즉흥성은 많이 잃었다. 판소리 작품의 기록이 증가하면서 판소리가 가진 특징인 즉흥성은 억제되는 경향이 생겼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판소리가 이렇게 발전을 이루게 된 것은 오히려 판소리를 보존하기 위해 기록하고 정리하는 과정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오늘날에는 판소리의 즉흥성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창자도 드물지만 관객들 역시 판소리의 즉흥적 독창성 및 전통 판소리의 내용에 그다지 감동을 받지 않고 있다.</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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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2 15:33: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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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원 화성 (20205 김서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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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수원 화성은 정조가 그의 아버지인 사도 세자의 묘를 옮기면서 수원에 건설한 성을 말한다. 수원 화성은 정조의 통치 철학과 당시의 과학 기술이 잘 어우러진 신도시로 건설되었다고 한다.<br>수원 화성 건설에는 김홍도, 채제공, 정약용 등 최고의 지식인들이 함께 참여했고 수원 화성은 다른 성들에 비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짧은 기간(2년 반)에 완성했다고 한다.<br>그 까닭은 과학적인 설비와 발달된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정약용이 설계하여 만든 거중기이다.<br>수원 화성은 다른 아시아 국가의 궁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동서양의 군사 시설 이론을 바탕으로 외부의 침입을 막아 내는 방어 기능이 뛰어나다고 한다.<br>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br>(네이버 지식백과 참고)</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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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3 00:23: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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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전도비- 20219이연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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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원래는 한강변 삼밭나루터의 항복을 했던 곳에 세워졌다가, 1895년 청일 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여 조공 관계가 단절되자 강물에 수장시켰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인 1913년에 일제가 다시 세워놓았고, 1945년 광복 직후에 주민들이 땅 속에 묻어버렸다. 1963년에 홍수로 다시 모습이 드러났고, 여러 차례 이전을 거듭하다가 1983년에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송파구 석촌동 289-3번지에 옮겼다.[3] 이후 고증을 거쳐 2010년 4월 25일에 비석이 서 있던 원래 위치인 석촌호수 수중에서 30여m 떨어진 송파구 잠실동 47번지의 석촌호수 서호 언덕으로 옮겼다.[4]<br><br><br>2007년 2월에는 30대 남성이 삼전도비에 붉은 페인트를 사용해 '철거 370'이라고 적어 훼손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정치인들이 나라를 잘못 이끌면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점을 경고하기 위해서" 삼전도비를 훼손했다고 밝혔다. 또한 '370'은 인조가 청 태종에게 무릎꿇은 지 370년이 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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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3 01:08: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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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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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은 조선조 태조 4년(1395)에 고구려 시대 평양에서 각석한 천문도 평양 성도 비석의 탁본을 바탕으로 돌에 새긴 천문도이다.

이 천문도에 적혀 있는 설명문에는 천문도의 제작 경위가 적혀 있다. 그 글에 따르면,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였을 때, 어떤 사람이 천문도의 탁본 한 점을 바쳤는데, 그 탁본의 원본 석각은 원래 평양성에 있었던 것이었으나 전쟁으로 인해 강물에 빠졌다고 한다. 이성계가 이 탁본을 귀중하게 여겨서 새로 돌에 새길 것을 명하였다. 이 천문도가 새 왕조가 하늘의 뜻에 의하여 세워졌다는 권위를 부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 석각을 제작하는 작업은 특진보국숭록대부 판문하부사 권중화가 책임자로 있던 서운관의 천문학자들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권근이 설명문을 작성하였고 류방택이 새로 중성기를 계산하여 수정하였으며 설경수가 비문의 글씨를 썼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이 설명문에 따르면, 성도는 탁본의 내용을 따르고, 중성기를 새로 계산하여 돌에 새겼다고 적혀 있다.

국립 고궁 박물관에 현존하는 이 천문도의 석본은 가로 122.8cm, 세로 200.9cm의 돌에 새겨진 것인데, 그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성도는 원형의 중심에 북극이 있고, 그 북극을 중심으로 하여 관측지의 북극의 고도에 따른 작은 원과 더 큰 적도 및 황도권이 그려져 있다. 원의 주위에는 28수의 명칭과 적도수도가 기록되어 있고, 각 수의 거성과 북극을 연결하는 선에 의하여 개개의 별의 입수도가 눈으로도 매우 정밀하게 읽어갈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관측의 글에는 28수 거극분고, 24절기의 동틀 무렵과 저물 무렵에 자오선을 지나는 별에 대한 글, 12국 분야 및 성수분도, 해와 달에 대한 글, 논천설, 천문도 작성 경과, 작성자들의 관직과 성명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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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3 01:17: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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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청화백자 20203김보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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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청화백자는 중국의 경우에는 14세기 초엽경에 본격적으오 생산되었으나, 우리나라에는 14세기 말엽에 전래되어 생산단계에ㅡ들어간 것은 15세기 중엽경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15세기 중엽경의 초기 청화백자는 기형과 문양이 명나라 청화백자의 영향을 짙게 보이지만, 15세기 후반경에는 독자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에 코발트 안료를 중국에서 수밉하여 사용했으나 후에는 자체내에서 개발하여 사용하였다.<br>청화백자의 청아한 문양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시기별로 문야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로 15세기에서 16세기경에는 매조, 수산화, 추초 등, 둘째 17세기에서 18세기경에는 세필의 난초 및 매조, 송죽, 매죽 등을 그렸고 19세기 이후에는 물고기, 용, 장생문 등의 문양이 주조를 이룬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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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3 01:52: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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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열하일기ㅡ202222김지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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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780년 박지원이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해 사행하는 박명원을 수행해 청나라의 고종의 피서지인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 청조치하와의 북중국 과 남만주일대를 견문하고 그 곳 문인,명사들과의 교유 및문율제도를 접한 결과를 소상하게 기록한 연행일기이다.각권의내용은(도강록)_,(성경잡지),(일산수필),(관내정사),(막북행정록),(태학유관록),(구외이문),(환연도중록),(옥갑야화),(허생전),(알성퇴술) ,(앙엽기) ,  (황교문답) , (행재잡록) , (반선시말) , (희본명록) , (산장잡기) , (찰십륜포) , 망양록 , (심세편) , (곡정필담) , (환희기) ,  (피서록)등의 26권으로 이뤄져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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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3 02:35: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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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텍리지 20201강성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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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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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3 03:56: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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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홍길동전 (20225 이윤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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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홍길동전은 조선 중기 광해군 때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허균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이다.<br>부패한 사회를 개혁해 새로운 세상을 이루고자 했던 허균의 혁명적인 사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책이다. <br>또한, 홍길동전은 조선 사회의 모순을 비판한 최초의 사회 소설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고 사회적인 문제점을 왜곡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므로 사실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성격을 띤다.<br><br>홍길동은 비범함이 남달라 영웅호걸이 될 만한 아이였으나 천한 종의 몸에서 태어났기에 벼슬길에 오를 수 없는 신분이었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는 처지였다.<br>길동은 집을 나와 도적의 우두머리가 되고 지혜와 술법을 써서 합천 해인사의 재물을 훔쳐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준다. 이후 홍길동은 전국 팔도에서 재물을 훔쳐 백성들을 도와주고 다녔다. 나라에서 길동을 잡으려고 하지만 잡지 못하자 임금은 길동의 요구대로 길동을 병조 판서에 임명하였다. 그 뒤 홍길동은 사라졌다.길동은 조선을 떠나 3000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성도라고 하는 섬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요괴에게서 세 여인을 구하고 세 사람을 모두 부인으로 맞았다.성도 근처에 율도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새 왕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백성을 돌보지 않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길동은 율도국을 정벌하고 율도국의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한 다음 왕의 자리에 올라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길동의 나이 72세가 되었을 때 왕위를 왕자에게 물려주고 왕비와 함께 산으로 들어가 지내다가 어느 날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div><div><strong>[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81888">홍길동전</a> <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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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3 04:58: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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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멜표류기-20221인정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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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헨드릭 하멜이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하던 중 태풍을 만나 조선 제주도에 표착하여 14년간 조선에 억류된 생활을 기록한 보고서 였다. 하멜이 이 보고서를 작성한 이유는 14년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받지 못한 임금을 받기위한 것이었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다.<br> 하멜과 그 일행은 제주도에 표착하여 10개월간 감금되었으며, 다음 해인 1654년 5월에 서울로 호송되어 훈련도감의 군인으로 배속되었다. 청나라 사신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였다가 발각되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었으며 7년 후 강진에 흉년이 들자 전라도 지방 여러곳으로 분산 이송되었다. 전라도 여수로 이송된 하멜은 1666년 9월 동료 7명과 함께 해변에 있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탈출하였다. 일본 나가사키로 도망하여 1668년 7월에 네덜란드로 귀국하였다.<br><br>《하멜 보고서》는 조선의 존재를 유럽인에게 뚜렷하게 알렸을 뿐 아니라, 당시 한국의 사회실정 ·풍속 ·생활 등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사료가 된다. </div><div><br></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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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2-23 08:09: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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