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rss version="2.0">
   <channel>
      <title>책모임하자 by jiyeon</title>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link>
      <description>하자 마을책방에서 진행되는 졸업생 책모임 웹페이지입니다</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17-11-08 14:30:04 UTC</pubDate>
      <lastBuildDate>2023-02-15 06:05:25 UTC</lastBuildDate>
      <webMaster>hello@padlet.com</webMaster>
      <image>
         <url>https://padlet-assets.s3.amazonaws.com/icons/Lovecoffee.png</url>
      </image>
      <item>
         <title>사람, 장소, 환대 책에 관한 한겨레 기사</title>
         <author>jiyeon</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04835307</link>
         <description><![CDATA[<div><br><strong>당신은 매일매일 사람 대접 받고 있습니까</strong><br><br>인류학자 김현경은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한국의 근대화와 해외유학 관행에 대한 박사 논문을 쓰고 돌아와 여러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쳤다. 지난해 피에르 부르디외의 &lt;언어와 상징권력&gt;을 번역하기도 했다. ‘사람, 장소, 환대’에 대한 분석은 ‘독립연구자’로서 그가 진행한 10년 연구의 산물이다. 이 개념은 신자유주의의 차별과 불평등을 분석하는 유용한 아이디어로서 책이 나오기 전부터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a href="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86292.html">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86292.html</a></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blob.core.windows.net/prod/28340207/e32c09328c80ab16e728fc91268b02da/20__________600x886.jpg" />
         <pubDate>2017-11-08 14:48:1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04835307</guid>
      </item>
      <item>
         <title> 밑줄긋기 </title>
         <author>jiyeon</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04841539</link>
         <description><![CDATA[<blockquote><strong>1장 사람의 개념</strong></blockquote><div><br>p.31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 -도덕적 공동체- 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즉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nbsp;</div><div><br></div><div>태아</div><div>p.32 인간의 태아는 분명히 인간이지만, 사회 안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nbsp;</div><div>p.33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아기가 태어나는 즉시 국가가 개입한다. 아기는 출생과 동시에 사람으로 인지되며, 사람으로서 보호된다.&nbsp;</div><div><br></div><div>노예&nbsp;</div><div>p.34 통과의례는 의례를 통과한 집단과 아직 통과하지 못한 집단을 갈라놓는 게 아니라, 의례를 거치는 집단과 거치지 않는 집단을 갈라놓는다고 부르디외는 지적하였다...“노예는 태아와 같다”</div><div><br></div><div>p.36 노예에게 얼굴이 없다는 것은 그에게 지켜야할 체면 또는 명예가 없다는 것, 타인을 대함에 있어서 얼굴 유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p.39 소유권이란 사람과 물건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다(사람과 물건이 ‘관계’를 맺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행위하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의 잠재적 현상 공간인 공론 영역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권력이다.”“권력은 함께 행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서 사람들이 흩어지는 순간 사라진다” <strong>주인들은 ‘우리’를 만들 줄 알았기에, 권력이 있고 지배할 수 있다. 반면 노예는 고립되어 있기에 무력하다.</strong> 노예는 기껏해야 주인들에게 폭력으로 맞설 수 있을 뿐이다. (맞아, 그 인물이나 의견을 지지하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의 힘 또는 권력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div><div><br></div><div>군인</div><div>p.42 사실 군인이 적에 의해 죽는 것은 이미 자기 편에 의해서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존재로, 아니 어떤 의미에서 죽어 있는 존재로 강등되었기 때문이다.</div><div><br></div><div>p.44 그들은 명예를 위해 싸우는 대신 생존을 위해 싸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잃어버릴 명예 따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p.47 제1차 세계대전은 “종교적 의례, 문화적 가치 등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싸우는” 총체전의 면모를 그 이전의 다른 어떤 전쟁보다 분명하게 드러내었다.&nbsp;</div><div><br></div><div>사형수</div><div>p.52 다른 사람의 생명, 자유, 재산을 침해한 자는 자연법을 위반했기에 자연적 공동체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잃는다고 로크는 말한다. “전 인류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셈이기 때문에, 호랑이나 사자처럼 살해되어 마땅하다”... 사형이 살인이 아닌 이유는, 사형수가 숨을 거두기 전에 이미 사람자격을 박탈당하고 물건의 지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p.54 범죄자가 이미 사회 바깥에 있다는 생각은 그를 좀더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단순한 생명에 불과하기에, 그의 고통은 어떤 상징적인 가치도 갖지 않으며, 그에 대한 마지막 배려 역시 ‘동물 복지’를 논할 때와 유사하게,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문제에 집중된다.&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7-11-08 14:56:5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04841539</guid>
      </item>
      <item>
         <title>11월 둘째주 모임 : 사람, 장소, 환대</title>
         <author>duswn6543</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05858024</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프롤로그: 그림자를 판 사나이 + 1장: 사람의 개념</strong><br>모인 사람들_ 션, 굴, 핑두, 푸른<br><br>푸른이 프롤로그를 읽어오지 않아 (원래 잘 안읽음ㅜㅜ;) 굴, 핑두, 션이 그 부분을 간단히 설명해주며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편이었지만 본문을 이해하는데에 도움이 된다는 평이었고, 듣는 이로서 세명이 서로 보완해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했습니다!ㅎㅎ<br><br><br></div><blockquote>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 도덕적 공동체- 안에서<mark> 성원권</mark>을 갖는다는 뜻이다. 즉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사람과 인간의 다른 점이다. 이 두 단어는 종종 혼용되지만, 그 외연과 내포가 결코 같지 않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지, 사회적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개체가 인간이라면, 그 개체는 우리와의 관계 바깥에서도 인간일 것이다. 즉 우리가 그것을 보기 전에도,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고요한 특성에 의해 이미 인간일 것이다. 반면에 <strong>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strong>  p.31</blockquote><div><mark>성원</mark> 1) 소리를 질러 응원함, 격려하거나 도와줌 2) 모임이나 단체를 구성하는 인원<br><br><br></div><div><br><strong>태아</strong></div><blockquote>신생아와 태아의 도덕적 지위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은 간과되기 쉬운데, <strong>신생아가 사회속으로 들어올 때 더 이상 아무런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기에 더욱 그러하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출생과 사회적 환대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었고, 그 기간 동안 아기는 아직 사람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다.</strong>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든가 배내옷을 입히는 것 등은 아기가 이 세상에 들어오지 못하고 문지방 단계에 있음을 표시한다. 이 기간이 끝나면 아기는 통과의례(세례, 백일잔치)를 거쳐 사람이 되는데, 그 전에 죽을 경우 태아와 마찬가지로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매장되었다.   p.33</blockquote><ul><li>현대 사회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자궁에서 수정되자마자) 국가가 바로 개입을 한다. 여러 의례가 사라졌고 마을 또한 사라졌다. 대신 국가가 그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li><li>이름을 붙인다는 것의 의미는 역시 크다. 그 사회의 성원권을 갖게 되는 것, 소속이 되고 식구됨을 인정한다는 이야기에 동의한다.  길고양이를 임시보호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면 그들은 보통 새끼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별을 염두해 두고 정을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노예들에게도 이름이 없다. </li></ul><div><br><br><strong>노예</strong></div><blockquote>노예에게 얼굴이 없다는 것은 그에게 지켜야 할 체면face 또는 명예honor가 없다는 것, 타인을 대함에 있어서 얼굴유지face-work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또한 상대편에서 노예의 얼굴을 고려할 필요가 없음을 뜻한다. p.36</blockquote><ul><li>체면, 명예없이 일한다는 것. 그런 상황과 관계는 무엇일까?.. 긍지 없이, 자부심 없이 일했던 상황들이 떠오른다. 노예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해석도 인상이 깊은데, 사람으로서 인정되지 않으니 당연히 그의 자식에 대한 양육권, 책임을 질 권리 등도 부정된다. 아이가 태어나서 숨을 쉬는 그 순간부터 자랄 때 까지의 모든 시간과 비용은 주인에게 지는 빚이므로 아이 또한 당연히 주인의 노예가 된다. </li></ul><div><br></div><blockquote>권력이란 '우리'를 만드는 능력이자, 우리 속에서 생겨나는, 행동의 잠재적 가능성이다.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면, "행위하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의 잠재적 현상 공간인 공론 영역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함께 행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서 사람들이 흩어지는 순간 사라진다" <strong>주인들은 '우리'를 만들 줄 알았기에, 권력이 있고 지배할 수 있다. 반면 노예는 고립되어 있기에 무력하다. </strong> p.39</blockquote><ul><li>함께 볼만한 영화 &lt;노예12년&gt;. 사실 주인은 소수이고, 노예들은 다수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주종관계가 유지되는 까닭은, 주인이 '주인들만의 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곧 권력이라 설명한다. </li></ul><div><br><br><strong>군인</strong><br>현재 주변에 군인이 있고, 군인이 될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읽으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div><blockquote>루소는 무기를 버린 적이 더 이상 적이 아닌 이유는 전쟁의 주체가 개인이 아닌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전쟁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이다. 전쟁 관계에서 개인이 서로 적이 되는 것은 우발적이며, <strong>이때 개인은 인간도 아니고 심지어 시민도 아니며 단순한 병사일 뿐이다</strong>.' ' ' " p.41</blockquote><div><br></div><blockquote>군인은 적에 의해서도 죽지만, 자기 편에 의해서도 죽는다(명령을 위반 할 경우). 사실 군인이 적에 의해 죽는 것은 이미 자기 편에 의해서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존재로, 아니 어떤 의미에서 <strong>죽어 있는 존재</strong>로 강등되었기 때문이다.  p.42</blockquote><ul><li>남자들은 이 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사실 아무 생각없이 군대에 그냥 다녀오는 게 제일 속 편할 수 도...   함께 볼만한 영화 &lt;덩케르트&gt;</li></ul><div><br></div><blockquote>고프먼은 &lt;수용소&gt;에서 재소자의 인격에 가해지는 체계적인 모독의 테크닉을 자세히 기술한 바 있다. ' ' ' 군대에서 이런 과정은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합리성을 부여받고 있지만, 그 진정한 목적은 군인들의 인격을 부정하여 그들을 사물로, <strong>사회적으로 죽은 사람</strong>으로 만드는 데 있다. <strong>모독mortification의 어원에 <br>죽음mort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strong> p.43</blockquote><ul><li>군대뿐만이 아니라 학교, 회사와 같은 장소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이런 경험은 아주 shit 임. 입시제도에 대한 이야기... 입시 shit 임을 확인했다. </li></ul><div><br></div><blockquote>1차 세계대전은 "종교적 의례, 문화적 가치 등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싸우는 총체전의 면모를 그 이전의 다른 어떤 전쟁보다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의 공허한 눈빛과 말을 잃은 듯한 침묵이 그것을 반영한다. ' ' ' 진흙 구덩이 속에서 죽음과 싸우며 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던 <strong>그들의 전쟁 경험 속에는 주체성을 증명할 아무것도, 서사를 구성할 어떤 단편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strong> p.47</blockquote><div><br><br><strong>사형수 </strong></div><blockquote>다른 사람의 생명, 자유, 재산을 침해한 자는 자연법을 위반했기에 자연적 공동체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잃는다고 로크는 말한다. 사형이 정당화되는 것은 이렇게 해서이다. 강조하는 의미에서 같은 문장을 다시 한 번 인용하면, 그는 "<strong>전 인류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셈이기 때문에, 호랑이나 사자처럼 살해되어 마땅하다.</strong>" p.52</blockquote><ul><li>로크의 사회계약설 <br>참고) <a href="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ostuk&amp;logNo=20058161427&amp;proxyReferer=https%3A%2F%2Fm.search.naver.com%2Fsearch.naver%3Fquery%3D%25EB%25A1%259C%25ED%2581%25AC%2B%25EC%2582%25AC%25ED%259A%258C%25EA%25B3%2584%25EC%2595%25BD%25EC%2584%25A4%26where%3Dm%26sm%3Dmtp_hty">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ostuk&amp;logNo=20058161427&amp;proxyReferer=https%3A%2F%2Fm.search.naver.com%2Fsearch.naver%3Fquery%3D%25EB%25A1%259C%25ED%2581%25AC%2B%25EC%2582%25AC%25ED%259A%258C%25EA%25B3%2584%25EC%2595%25BD%25EC%2584%25A4%26where%3Dm%26sm%3Dmtp_hty</a></li></ul><div><br></div><div><br></div><blockquote>현대의 사형제도는 이와 대조적으로, 범죄자를 격리된 장소로 끌고 가서 소수의 입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안락사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범죄자가 이미 사회 바깥에 있다는 생각은 그를 좀더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단순한 생명에 불과하기에, 그의 고통은 어떤 상징적인 가치도 갖지 않으며, 그에 대한 마지막 배려 역시 '동물 복지'를 논할 때와 유사하게,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문제에 집중된다. p.54</blockquote><div> </div><ul><li> 최근에 화자가 되고 있는 조두순 이야기가 나왔다. 조두순이 2020년에 출소한다고 한다. 그가 나영이가 사는 동네에 살겠다고 주장할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적인 조치는 없다. </li><li>사형제도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생각해볼만한 것이다. 현재 사형제도는 어떻게 집행되고 있지? 어차피 진행될 것이라면,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아 단시간에 사형을 집행하는게 맞지 않나? 하는 의견은 어떻게 생각해볼 수 있을까? </li></ul><div><br> <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7-11-11 06:18:3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05858024</guid>
      </item>
      <item>
         <title>20171109 </title>
         <author>duswn6543</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05871003</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blob.core.windows.net/prod/237960489/407031c8d1ecc8f11a144c128a451828/IMG_5250.jpg" />
         <pubDate>2017-11-11 10:30:0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05871003</guid>
      </item>
      <item>
         <title>20171109</title>
         <author>duswn6543</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05871155</link>
         <description><![CDATA[<div>ㅎㅎ</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blob.core.windows.net/prod/237960489/01b4e12cf868de8f6f6ef7569ab3d476/IMG_5252.jpg" />
         <pubDate>2017-11-11 10:32:2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05871155</guid>
      </item>
      <item>
         <title>2장 성원권과 인정투쟁 밋줄긋기</title>
         <author>hyunsean9811</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07535316</link>
         <description><![CDATA[<div>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말해서 사회는 하나의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의 개념은 또한 장소의존적이다.  57p. <br><br>사회를 유기체나 시계, 또는 벌떼가 와글거리는 벌집에 비유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회는 그와 같이 물리적으로 분명한 윤곽을 갖는 실체가 아니라, 각자의 앞에 상호주관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58p.<br><br>외국인의 문제<br>우리는 외국인들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면서, 그들이 우리 문화의 장점들을 제대로 평가해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이상적인 외국인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한에서이다.  돈 많고, 교양있고, "원더풀:이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 그들이 이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는 게 판명된다면, 가령 그들이 돈이 없고, 교양도 없는데다 남의 나라에 와서도 자기네 방식을 고집한다면, 게다가 금방 돌아가지 않고 눌러앉아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우리의' 여자들을 건드린다면, 그들에게 주어졌던 환대는 철회될 것이다. 69p.<br><br>사람들은 외국인이라는 범주에 집착하면서, 자기들이 하나의 사회 속에 있음을 부인한다. 그들은 외국인은 다른 나라에서 왔고 자기 나라가 있으므로, 내 나라 사람과 다르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 하지만 외국인으로 계속 살아야하는 사람, 외국인이라는 운명 속으로 추방된 사람에게 그 말은 다르게 들릴 것이다. 외국인으로서의 삶 외에 다른 삶을 택할 수 없는 사람에게 그것은 그가 결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72p.<br><br>오염의 메타포<br>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br><br>여성이라는 범주에 언제나 붙어 다니는 더러움과 오염의 관념 -- 그에 따라 여성은 더러운 여성과 깨끗한 여성으로 나누어진다 -- 을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7-11-16 06:53:1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07535316</guid>
      </item>
      <item>
         <title>사람이 되어라 </title>
         <author>jiyeon</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09600427</link>
         <description><![CDATA[<div><a href="https://youtu.be/7tkc5OooleQ">https://youtu.be/7tkc5OooleQ</a></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7-11-23 05:04:3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09600427</guid>
      </item>
      <item>
         <title>5장 우정의 조건, 6장 절대적 환대 밑줄긋기</title>
         <author>jiyeon</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16039686</link>
         <description><![CDATA[<div>5장 우정의 조건</div><div>p.174 환대는 시민적 의무이지만, 우정은 의무가 아니다. 환대를 거부하는 것은 모욕으로 해석되지만, 우정을 거절하는 것은 모욕이 아니다. </div><div><br></div><div>p.175 타자에 대한 그 같은 헌신 밑에 있는 것은 증여를 통해 자아의 결핍을 메우려는 욕망이다. </div><div><br></div><div>p.176 문제는, 정신적인 특징들 역시 따지고 보면 환경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흔히 영혼의 깊이를 측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곤 하는 음악에 대한 취향은 청소년기에 어떤 음악에 주로 노출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이는 다시 계급적이고 세대적인 변수들로 환원된다. </div><div><br></div><div>p.177 우정을 지탱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기억뿐이다. </div><div><br></div><div>p.181 “경제적 자율성에 기초한 자유로운 관계”라는 우정의 이상은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혹은 타인의 경제력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를 간과한다. </div><div><br></div><div>p. 184 우리는 ‘가부장제를 보완하는 국가’라는 말로 이러한 시스템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국가는 사회의 기초가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가족을 부양자와 피부양자, 대표자와 나머지 구성원으로 나눈다. ‘경제’와 ‘정치’에 접속되어 있는 사람은 전자, 즉 부양자 대표자이다. 후자 역시 소비자이자 유권자로서 경제와 정치에 연결되어 있지만, 그들의 역할은 제한적이며 수동적인 성격을 띤다. </div><div><br></div><div>p.184 체사레 베카리아는 가족을 구성단위로 하는 국가에서는 자녀들의 가장의 전횡 아래 있기 때문에 온전한 의미에서 시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div><div><br></div><div>p.188 사람에 토대를 둔 가족, 혹은 관계 그 자체가 중요한 가족 ‘관계적 가족’의 구조는 우정의 구조와 비슷하다. 관계 속의 개인들이 서로를 도구화하지 않고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인 관심을 관계 바깥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관심이 가운데 놓이자마자, 관계는 복잡해지고 불안정해진다. </div><div><br></div><div>p.200 반면 도서관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영혼들은 책을 매개로 서로에게 접근한다. 그들을 연결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소통 가능성이다. </div><div><br></div><div>p.202 하지만 개인과 공동체는 결코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며, 공동체 정신을 추구하는 것과 사생활의 자유를 갖는 것 사이에는 본디 아무 모순도 없다. 개인에게 자리/장소를 마련해주고 그의 영토에 울타리를 둘러주는 것이 바로 공동체의 역할인 까닭이다. </div><div>뒤르켐이 지적했듯이, 공공성이 강화될수록 사생활의 자유는 오히려 커진다. 가부장이 이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국가가 가정을 가부장의 사적 영토로 간주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개입을 자제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가부장 사회의 약자들이 겪는 사생활 박탈은 그들이 공공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프라이버시의 결여 ‘자기만의 방’이 없다는 것과 공적 공간에서의 배제는 장소 상실의 두 형태로서,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다. </div><div><br></div><div>6장 절대적 환대</div><div><br></div><div>p.208 환대란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며, 이러한 인정은 그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몸짓과 말을 통해 표현된다. </div><div><br></div><div>p.214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다. </div><div><br></div><div>p.215 이는 개인의 정체성의 핵이 더 이상 이런 요소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바탕으로 정체성 서사를 써나가는 주체의 저자성 자체임을 뜻한다. 정체성에 대한 인정은 특정한 서사 내용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서사의 편집권에 대한 인정이다. </div><div><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7-12-14 04:45:2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16039686</guid>
      </item>
      <item>
         <title>[페미니즘의 도전] 1부 사랑과 섹스</title>
         <author>lunshu03</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19124482</link>
         <description><![CDATA[<div><br>※ e-book 기준으로 작성하였기 때문에 종이책과 쪽수에 차이가 있습니다.<br><br>4. 스와핑에 대하여<br>p.117 '북핵 문제'라는 말은 조지 부시의 언어다. 이 말은 이미 북한에 핵이 있는 것처럼 간주한다. 이러한 명명에서 문제 집단은 전쟁을 일으키려는 미국이 아니라 핵을&nbsp; 보유한 것으로 가정된 북한이 된다.&nbsp; (중략) '양성평등'이나 '여성의 사회 진출'은 내가 피하는 말들 중 하나다. '북핵 문제' 처럼 이러한 용어들은 자신의 고통을 지배자의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모든 사회적 약자의 딜레마를 압축한다.<br>'양성 평등'은 인간이 두 가지 성으로 구성되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러한 인식 체계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양성구유자로 태어나는 사람의 존재를 비가시화하고, 양성의 경계를 문제화하는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 같은 성적 소수자를 '제 3의 성'으로 전락시킨다. '여성의 사회 진출'? 그렇다면, 여성이 생활했던 가정은 사회가 아닌가?&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br><br>p118. 일부일처제가 실현된 사회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부계 가족의 영속은 여성의 섹슈얼리티 통제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일부일처제는 여성에게만 강요된 규율이었다.<br><br>5. 여관의 정치경제학<br>&nbsp;p.121 한국은 강력한 가족주의 사회지만, 당위적으로 가족의 가치를 강요하고 신화할 뿐이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은 친밀성과 자발적인 상호 보살핌의 공간이 아니라 지나치게 도구적이다.<br>-지난 시간에 책 후보로 고민했던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어보고 싶은 구절이었어요.<br><br>6. 늑대와 여우의 사랑?<br>p.122 "너(여성)의 벗은 몸을 사진&nbsp;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겠다.", "내가(남성)너를 성폭행한 것을 세상에 알리겠다."라는 말은, 여성의 인격과 존재성을 성/몸으로 환원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만 협박으로 작동할 수 있다.<br><br>p.123 인권운동가 한채윤의 지적처럼, 가부장제 사회의 관습대로 남자는 늑대이고 여자는 여우라면, 늑대는 늑대끼리, 여우는 여우끼리 사랑하고 섹스하는 것이 '정상'이다. 늑대랑 여우랑 섹스를 하다니! 이야말로 하느님의 섭리를 어긴 것이며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너무나 '변태'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중략) 내 이야기는,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동성애가 문제가 아니라, 동성애냐 이성애냐를 구분하는 경계선은 누가 정하는가가 진짜 문제(질문)거리다. 또한 똑같은 인간을 다른 종(늑대, 여우······)으로 분류하여, 다르게 취급하는 성별 제도가 앞에 말한 모든 문제들의 근원일지 모른다.<br><br>7. 그들이 '화학적 거세'를 선호하는 이유<br>p.127 성범죄의 원인은 일상의 성차별, 성역할 구조인데, 이를 수용하게 되면 모든 남성은 피곤해진다. 남성은 잠재적 피고인이 되지 않기 위해 기존의 여성관, 세계관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 그러나 소수 '변태'의 문제로 축소하면 성범죄는 남성 문화의 결과가 아니라 특수화, 엽기화된다. 그럴수록 여성들은 밤거리나 여행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등 스스로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br>&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1-07 07:51:5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19124482</guid>
      </item>
      <item>
         <title>20180104  [페미니즘의 도전] 첫 모임</title>
         <author>duswn6543</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19221575</link>
         <description><![CDATA[<div>참석자_ 현(정현아),&nbsp; 나무(성윤서), 온(최하은), 금자(고다운), 주디(주화경), 지연(이지연), 찌루(성지윤), 푸른(이연주)&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blob.core.windows.net/prod/237960489/3af7e544b1bcdccec1d7b285bffd917f/____2.jpg" />
         <pubDate>2018-01-08 03:25:0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19221575</guid>
      </item>
      <item>
         <title>페미니즘의 도전 2부 밑줄긋기</title>
         <author>jiyeon</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21961013</link>
         <description><![CDATA[<div>p134 가정폭력은 계급 문제로 인한 억압이 아니라 성별 권력 관계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여성이라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nbsp;</div><div><br></div><div>p135 가정이 평화로운 공간이라는 언어는 누구의 경험인가?</div><div><br></div><div>p139 폭력으로 평화로운 가정이 깨져서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으로도 (남성 중심적) 가정이 깨지지 않는 것이 더 문제다.&nbsp;</div><div><br></div><div>p143 가정폭력은 인정되지 않는 고통, 믿을 수 없는 고통이다. 정치적이고 공적인 장에서 인정되는 고통과 달리 재현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지 못한 타자의 고통이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p147 여성에게 섹스와 모성은 자원이자 억압이다. 이 사실은 성매매와 성폭력이 명확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섹스의 주체는 오로지 남성이라는 의미이다.&nbsp;</div><div><br></div><div>p152 성폭력 ‘피해자 중심주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실현되기 힘들며, 피해자 진술의 객관성은 피해자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사회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nbsp;</div><div><br></div><div>p160 원래 권리로서 표현의 자유 개념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력한 국민국가가 탄생한 뒤, 거대한 국가 권력에 비해 취약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집회의 자유, 사상의 자유 역시 같은 맥락의 권리들이다. 즉, 표현의 자유는 아무 때나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 규범에 대한 사회적 약자의 저항일 때만 권리로 존중될 수 있다.&nbsp;</div><div><br></div><div>p172 여성폭력은 언제나 피해 여성 개인의 고통보다 그 여성이 속한 집단의 명예와 관련되어 논의되어 왔다. 특히 유교 전통과 성의 이중 규범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범죄나 인권 침해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명예나 도덕과 관련한 문제로 인식하게 되면, 여성은 피해 사실에 분노하기보다 수치심을 느끼게 되고 피해 여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명예를 ‘더럽힌’ 존재가 된다.&nbsp;</div><div><br></div><div>p173 예를 들면 가정 폭력 현상의 사회적 인식은 필연적으로 가족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중재가 필요한데, 이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남편)을 통해서만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획득해 왔던 여성이 국가사회와 직접 협상하는 주체, 사회적 시민으로 나서게 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크기 때문에, 이제까지 여성운동 진영조차 가족 아동 중심의 관점에서 가정폭력을 논의해 온 것이다.&nbsp;</div><div><br></div><div>p180 인권운동은 사회적 약자에게 인권의 개념이 확대 적용되는 것을 넘어, 기존의 인권 개념을 문제시, 재구성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인권의 운동’ 과정이기도 하다. 인권운동은 인권 개념의 운동을 낳고, 동시에 새로운 개념은 인권운동을 발전시킨다.&nbsp;</div><div>p185 나이에 맞는 삶에 대한 문화적 규율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인생을 다르게 살 자유, 방황할 자유가 없고 그것은 쉽게 낙오로 연결된다. 취업시 나이 제한이 당연한 규정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남과 다르게 사는 것은 곧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가 된다. (미국에서는 1967년부터 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구인 광고나 이력서에 나이를 명시하는 것은 불법행위로 본다.)</div><div><br></div><div>p187 나이 듦이 적용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 나이 듦은 권력에 접근하는 유용한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다.&nbsp;</div><div><br></div><div>p197 우리는 대단히 자발적으로 나이 듦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누가 지배하는지 모르는-를 수용하고 있으며 나이 든 자, 나이 든 여성을 혐오한다. 일상의 아주 감정적인 차원에서부터 나이 듦에 대해 동일한 해석틀을 지니고 있으며, 미세한 검열과 규율에 예속되어 있다. 나이에 따라 삶의 가능성이 체계적으로 억압된 사회, 이것은 ‘고도로 조직화된 조용한 폭력’이다. 나이 든 사람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을 다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반(反)연령주의 정치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1-17 07:05:1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21961013</guid>
      </item>
      <item>
         <title>페미니즘의 도전 2부 밑줄 긋기 -찌루</title>
         <author>jiyounsung99</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22856819</link>
         <description><![CDATA[<div><br><em>“이 글은 가정폭력의 실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각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춘다.”-p.132</em></div><div>&gt;추신: 한 개인이 하는 행동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해석하는 사회의 시선, 그리고 나의 시선이 중요한 것 같다. <br><br><em>“‘여성에 대해서는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당위가 깔려있다. (...) 이들의 말할 수 있는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가?”-p.132</em></div><div>&gt;추신: 여성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남성들의 권력….<br><br><em>“여성운동은 “먹고 사는 데 아무지장이 없는” 여성들이 하는 운동이 아니라 “맞아 죽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최소한의 자구책이다.”-p.134</em></div><div>&gt;추신: 페미니즘은 나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온갖 일에 예민해져 피곤하지만 나의 피곤한 그 삶이(몰카, 늦은 밤거리 공포, 노출이 있는 옷 등) 당연한 것이 아닐뿐더러 내 탓이 아니라는 것에 용기를 얻었다. 그러니까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니가 무감각한 거라고요….</div><div>*자구책: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한 방책(네이버 사전)<br><br><em>“가정이 평화로운 공간이라는 언어는 누구의 경험인가? 여성에게 무엇이 일상이고 무엇이 전쟁인가?”-p.135</em></div><div>&gt;추신: 페미니즘 소설집 &lt;현남오빠에게&gt; 중 &lt;당신의 평화&gt;라는 단편소설이 떠올랐다. 엄마와 딸, 두 여성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가사노동에 대한 고역을 티격태격 이야기 하고 있는 상황. 거실에서 jtbc 뉴스룸을 시청하던 아빠는 둘에게 “설거지 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서로 양보하면서 해야지. 그래야 가정이 평화롭지.”라고 말한다. 참나 어이가 없어서.</div><div>남성에게 집은 휴식공간이지만 여성에게 집은 노동의 공간이다. 하여 여성은 휴식을 원할 때면 밖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지 않는가. <br><br><em> </em></div><div><em>“진보개념을 변화시키기보다는 확대하는 방향으로 소수자 문제가 ‘활용’된다. 이를테면 “진정한 진보주의자는 이런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p.135</em></div><div>&gt;추신: 우리가 당신들 소재거리는 아니거든요^^;;<br><br> </div><div><em>“나는 가정도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인간 사회인 이상, 폭력이 발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반대로 가정에는 폭력이 없을 것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가정폭력의 발생 기제라고 본다.”-p.139<br> “여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으로도 (남성중심적) 가정이 깨지지 않는 것이 더 문제다.” -p.139</em></div><div> <br><em>“젠더 범주는 여성을 개인이기 이전에 여성으로 묶는다.”-p.151</em></div><div>&gt;추신: ‘여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나로서 존재하고 사유하자’!<br><br><em>“성폭력 사건의 객관성은 피해여성이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존중하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p.152</em></div><div>&gt;추신: 모두가 괜찮다고 해도 내가 안 괜찮으면 아닌 거야!<br><br><em>“ ‘빵을 훔친 사람은 징역에 처한다.’ 라는 법은 평등하지 않다. 부자는 빵을 훔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법은 가난한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이처럼 개인 갖는 권리의 내용은 그 개인이 속해있는 성별, 인종, 계급 등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p.160</em></div><div>&gt;추신: 법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 예시.<br><br><em>“정의로서 평등한 인권은 같아짐(same)이라기보다는 공정함(fairness)을 추구하는 것이다.” </em>-p.179</div><div><em>“공정함의 시각에서 평등은 기회의 평등에만 머물지 않고, 조건의 평등, 더 나아가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 -p.180</em></div><div>&gt;추신: “경주를 할 때 비장애인과 신체적 장애가 있는 장애인의 출발선을 같게 하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br><br><em> </em></div><div><em>“심리적 타자들- 장애인, 노숙자, 나이든 여성들-에게는 성과 사랑의 욕망이 없다고 상정하기 쉽다”-p.194</em></div><div> <br><br>"<em>나이 든 사람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을 다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반 연령주의 정치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p.197</em></div><div>&gt;추신: 모든 것에 적용되는 말인 것 같다. 타자의 억압을 이해하는 일, 그 타자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다시 바라보자.<br><br>1/18 책모임에서 떠오른 키워드</div><div>: 대화의 방식</div><div>가정폭력과 성폭력을 이야기 하면서 성폭력을 당한 당사자와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힘들게 꺼냈을 때 가장 잔인한 대답은 “네가 착각한 거 아니야?” 혹은 “그런 상황에서 나였으면 (당사자가 대처를 제대로 못했다는 식의) ---이렇게 했겠다.” 따위의 말이란 걸 알았다. 언젠가 친구가 나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이야기 한다면 나는 더 조심하고 섬세하게 듣고 말해야겠다. </div><div> 페미니즘을 모르는, 혹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 상대와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해야 할까. 그들이 나에게 던지는 바보 같은 질문(여자들만 이익 보려고 하는 거 아냐?, 그게 왜 여혐이야? 등)에 내가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왜곡된 사실을 재생산하고 다니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지만 일일이 이야기 해주고 설득시키는 것도 힘들고 지친다. 어떻게 해야 할까아~~~~</div><div> </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1-19 16:46:3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22856819</guid>
      </item>
      <item>
         <title>페미니즘의 도전 3부 밑줄 긋기 지연</title>
         <author>jiyeon</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24511977</link>
         <description><![CDATA[<div>3부</div><div>성매매를 둘러싼 차이의 정치학&nbsp;</div><div><br></div><div>p223 현재 한국 사회에서 성매매를 둘러싼 논쟁 구도인 ‘근절 대 허용’론은, 둘 다 “여성은 모두 같다.”라는 입장에서 자신들이 성판매 여성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성매매 근절론자들은 생존권 데모에 나온 성판매 여성들을 ‘업주의 꼭두각시‘로 간주한다. 허용론자, 성매매 방지법 반대론자들은 자신들이 성판매 여성들의 노동권, 생존권, 이해를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근절론자들은 성판매 여성의 피해와 여성들의 일상적 성폭력 피해는 동일한 원인에 의한 것으로 보고, 성판매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들의 젠더 이해가 같다고 본다. 이에 반해 허용론자들은 여성은 남성을 기준으로 남성과 다름으로부터 구성되는 존재라고 보면서,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는 성노동이 사회적 노동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논의 구도 안에서는 1. 여성주의자와 성판매 여성의 대립은 불가피하며, 2. 여성들 간의 차이는 곧 대화 불능으로 이해되며, 3. 당사자 운동으로서 반反성매매 운동의 가능성은 모색하기 힘들어진다. 가장 큰 문제는, 성매매 찬반 논쟁을 넘는 다른 방식의 사유와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p227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성매매를 반대하는 것은 성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성매매는 성 보수주의나 윤리의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성매매는 기본적으로 성별 권력 관계의 문제이다. 성매매와 포르노그래피는 남성이 여성의 몸을 사용하는 것을 정상화, 정당화하는 남성 중심 시스템의 핵심이다. 성매매는 성폭력과 다르지 않다.&nbsp;</div><div><br></div><div>p228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성판매 여성을 가부장제의 피해자로 간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성판매 행위는 당사자 여성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간에 남성의 성적 실천에 기여하게 된다고 본다. 이러한 논리에서는, ‘자율적 의지’로 성판매를 ‘선택’했다고 주장하는 성판매 여성들의 주장은 남성들에게 ‘세뇌’된 ‘허위의식’에 불과하다. 이 점이 바로, 섹슈얼리티와 여성 종속에 대한 풍부한 이론을 생산했으며 실천적으로 헌신해 온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가장 많이 비판받는 부분이다. 이들의 관점은 성판매 여성의 행위성을 무시하고, 피해자화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p229 가부장제 사회에서 타자인 여성은 일방적으로 억압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타자성을 활용한다. 타자는 제한당하지만 힘을 갖기도 한다. 남성 욕망의 대상으로서 여성은 남성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nbsp;</div><div><br></div><div>p231 그러나 성매매를 성폭력이 아니라 성 노동이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의 견해는, 여성의 성 노동을 옹호하는 남성의 시각과는 구별된다. 성 노동자 페미니즘은 성매매 자체를 지지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성판매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 사회의 낙인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들은 가부장제 사회의 성판매 여성 혐오와 기존 페미니즘의 피해자화 모두, 성판매 여성의 목소리를 침묵시킨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의 정치적 목표는 성매매 근절이라기보다는, 성판매 여성에 대한 지지이다. 그러나 이들의 입장은 성매매의 성별 차이, 즉, 왜 언제나 파는 사람은 여성이고 사는 사람은 남성인지를 설명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젠더 억압을 은폐한다고 비판받고 있다.&nbsp;</div><div><br></div><div>p234 역사와 문화를 초월하여 분석 과정에 선행하는 동일한 집단으로서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여러 사회 관계의 현장에 진입하기 전에, 이미 성적, 정치적 주체로 구성된 남성과 여성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주의와 관련된 지식에 대한 판단 역시, 그 지식이 구성된 사회에 대한 맥락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성에게 성은 본질적으로 억압적이거나 동일한 방식으로 억압적인 것이 아니다. 이 입장은 성매매는 근절되어야 한다는 정치적 지향을 갖고 있으면서도, 성매매를 젠더 모순으로 환원하지 않는다.&nbsp;</div><div><br></div><div><strong>p236 여성주의자와 성판매 여성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현실에 의해 정해진다. 여성주의는 공통된 본질과 정체성을 지닌 경험적 집단의 투쟁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범주과 종속적으로 구성되는 복합적 형식에 대한 투쟁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성매매 역시 다른 방식의 접근을 모색해볼 수 있다. 여성주의자의 입장이나 성판매 여성의 입장이나 모두 ‘부분적 진실’이고, ‘상황적 진실’이다.&nbsp;</strong></div><div>p237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즈 같은 여성주의자들은 근본적인 인간의 욕구 충족을 바탕으로 한 절대주의와 보편주의는, 근대 서구 남성 중심적 보편적 인권 개념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만일 여성주의가 ‘성매매 근절’이라는 입장보다 ‘근본적인 인간 욕구 충족’을 정치적 목표로 상정한다면, 성판매 여성과 대화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이러한 대화는 성매매를 반대하는 여성운동이 다양화, 다원화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성운동의 다원화는 성별 의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성숙을 요구한다.&nbsp;</div><div><br></div><div>군사주의와 남성성</div><div><br></div><div>p239 '통일'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여럿이 되는 것이다.-조한혜정</div><div><br></div><div>p242 모든 폭력 행위 혹은 폭력이 행사되는 순간에는, 폭력 주체와 폭력 대상이 배타적인 존재로 설정된다. 폭력은 행위자와 대상자 사이에 그 어떤 공감, 소통, 연민, 관계성이 없다고 믿을 때 가능해지므로, 폭력은 극단적인 형태의 이분법적 인식론을 전제한다. 이때 폭력 행위자가 임의로 설정한 대상자와의 경계는 그 자체로 절대 질서가 된다.&nbsp;</div><div><br></div><div>p243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는, ‘신사’, ‘생계부양자’라는 전통적인 남성의 성역할을 하지 않으면서도, 남성의 권위를 강조하고 폭력을 자원으로 삼는 이른바 ‘제3세계 식민지 초남성성’의 주요 요소이다.&nbsp;</div><div><br></div><div>p245 젠더를 군사주의의 핵심 요소로 보는 후자의 관점에서 성별화된 군사주의의 양상들은 1. 모든 권력 관계에서 지배자는 남성 젠더로, 피지배자는 여성 젠더로 성별화된 정체성을 갖게 되며, 2. 이제까지 군사주의의 담론과 행위는 철저히 성별화이거나 성중립적이어서 결과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별 정치학을 간과했기 때문에 여성주의 관점이 배제된 탈군사화의 대안 역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점....등이 있다.&nbsp;</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1-25 04:45:2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24511977</guid>
      </item>
      <item>
         <title> 밑줄긋기</title>
         <author>duswn6543</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26496815</link>
         <description><![CDATA[<div><br><strong>페미니즘의 도전</strong>, 정희진, 교양인</div><div>&nbsp;</div><div>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 알려는 노력, 세상에 대한 애정과 고뇌를 유보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사유하지 않음, 이것이 바로 폭력이다. P. 45</div><div>&nbsp;</div><div>여성은 남성의 눈으로 자신의 몸을 만든다. 물론, 요즘 세상에 다이어트나 화장 등 외모 관리를,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고 촌스럽게 말하는 여성은 거의 없다. 대개는 “자기 만족을 위해서”라고 말하며, 실제로도 그렇다. 그러나 그 ‘바람직한 자기 이미지’는 미디어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남성은 여성만큼 ‘자기 만족을 위해’ 다이어트와 외모 관리에 몰두하지 않는다. P.113</div><div>&nbsp;</div><div>가부장제에 저항하기 위해 여성의 공통성을 강조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여성을 성별 정체성으로 환원하여 모든 여성을 동질적인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가부장제 프로젝트에 기능적이다. ‘’’ 여성이 느낀 것이 아니라 개인이 느낀 성폭력 피해의 의미를 구성해야 한다. 성폭력 피해 인식의 근거를 젠더가 아닌 여성 개인의 몸에서 찾고, 법 담론 중심의 협소한 성폭력 개념을 극복해야 한다. P.150-151</div><div>&gt;얼마나 섬세하게 대응해야 할까.. 개인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기록할 그릇을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한가? 개인이 살아나는 곳, 존재하는 곳. 그건 국가의 일인가? 마을의 일인가?</div><div>&nbsp;</div><div>모든 사람은 한 가지 정체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다중적 주체인데, 인간을 성별이나 피부색을 기준으로 ‘여성’, ‘흑인’으로 환원하여 규정하는 것이 바로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이다. ‘’’ 인간을 남성, 여성으로 구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이성애 제도의 산물인 것이다. P.155</div><div>&nbsp;</div><div>나이에 맞는 삶에 대한 문화적 규율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인생을 다르게 살 자유, 방황할 자유가 없고 그것은 쉽게 낙오로 연결된다. 취업 시 나이 제한이 당연한 규정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남과 다르게 사는 것은 곧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가 된다. P.186</div><div>&nbsp;</div><div>이제까지 성을 사는 남성은 문제화되지도 않았고 사회적 낙인의 대상도 아니었다. 만일 성매매가 ‘더러운 것’이라면,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말대로, 성을 파는 여성은 일부지만 성을 사는 남성은 대다수이므로 ‘더 더러운’ 것은 남성 집단이 아닌가? P.225</div><div>&nbsp;</div><div>여성은 병역의 의무가 면제된 것이 아니라 배제된 것이다. P.248</div><div>&nbsp;</div><div>여성은 남성 정치학의 충격 흡수대다. 가장 낮은 계급의 병사라 할지라도, 여성에 대해서만큼은 ‘지배자’가 될 수 있으며, 섹스를 통해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P.266</div><div>&nbsp;</div><div>군대 내 성매매를 ‘위안’이나 ‘휴식’ 등의 용어로 표현하는 것은, 정치적 권력 행위로서의 성폭력 문제를 ‘신체의 요구’라는 생물학적 주제로 이동시켜, 가해 남성의 책임을 비가시화하고 여성의 고통을 주변화한다. P.267</div><div>&nbsp;</div><div>나의 변태는 곧 사회의 변화이다. 사회와 나는 연속선상의 한 몸인데, 어느 지점에서 그 몸을 자를 수 있단 말인가? P.291&nbsp;<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1-31 11:11:1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26496815</guid>
      </item>
      <item>
         <title>엄마에 대하여</title>
         <author>jiyeon</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26914425</link>
         <description><![CDATA[<div> 여덟살 때부터 우리 집은 가정폭력 집안이었다. 아버지는 매일 밤, 술에 취해 들어와 엄마한테 욕을 퍼부었고, 집 안에 있는 가구를 때려 부쉈다. 그럴 때면 난 이불 속에 숨어서 두려움에 떨었다. 엄마가 죽진 않을까, 떠나지 않을까 두려웠다. 한 번은 엄마가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걸 보았다. 충격적이었다. 그 다음 날 엄마의 눈엔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고, 아버지는 엄마에게 계란 한 알을 쥐어주며 미안하다며 얼굴에 문지르라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오빠는 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나는 오빠한테도, 아버지한테도, 엄마한테도, 친구들한테도, 선생님들한테도, 그 누구한테도 이 일들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두렵고 화나고 무력한 감정이 한 곳에 뭉쳐져 내 가슴 속에 박혔고, 난 이를 언어로 풀어내지 못했다. </div><div><br></div><div> 집을 떠났지만, 또다시 두려웠다. 가끔씩 들리는 아버지의 폭력성 때문에 불안했다. 아버지는 최근에 엄마의 목을 졸랐고, 부재중 기록을 50통 남기곤 했다며 엄마를 통해 들었다. 나는 제발 좀 헤어지라고, 왜 같이 사느냐고 화를 냈다. 그런데 아뿔싸, 엄마는 아버지를 용서한다고 했다. 아버지를 이해한다고 한다. 엄마는 그 오래된 기간 동안 영성을 공부했고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을 협박하는 사람을 두고, 용서한다며, 용서란 사랑이고 평화고 치유라고 얘기했다. 정신승리 했다. 나도 한 때 아버지를 용서한 적이 있었다. 미쳐버릴 것 같아서, 그만 괴롭고 싶어서, 너무 약해서, 복수할 수 없어서. 난 당하고 사는 엄마가 너무 한심스러웠다. 진짜 너무 한심스러웠다. 엄마는 아버지가 폐인이 될까봐 걱정돼서 헤어질 수 없었다고 한다.</div><div><br></div><div> 페미니즘을 만나게 된 뒤로 나는 내 가슴 속에만 묻어두었던 이 일들의 모서리에 조금씩 찔리며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만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점점 알게 되었고,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들을 더 마주할 용기와 언어가 생겼다. 이 일이 아버지의 분노조절 장애뿐만이 아닌 사회적인 성별권력관계이고, 한국에 관습처럼 이어져오던 가부장의 아내 폭력이라는 것을. 자식을 대안학교에 보낼 정도로 자유롭고 진보적인 386세대의 부부에서도 가정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급과 정치성향에 상관없어도 여성이라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엄마는 그때 페미니즘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div><div><br></div><div> 나는 이제 엄마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는 영문도 모른 채 당했고, 자신이 잘못했으며 맞아도 싸다고 자책했고, 헤어지는 것보단 자신을 덜 괴롭혔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을 가졌을 것이다.    힘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이혼하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과 물음은 잠시 접고 엄마를 더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겐 헤어지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 날 아침 문득 잠에서 깼는데 조금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div><div>‘헤어지든 안 헤어지든 엄마를 응원하고 싶다’</div><div><br></div><div>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남성을 적대시하는 게 아니라 들리지 않았던 여성의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정희진의 책 &lt;페미니즘의 도전&gt;을 읽고 우리 집에서 일어났던 끔찍했던 일과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가끔은 상황을 해결하지 않아도 이해하면 저절로 사라지는 묵은 감정이 있다. 아마도 난 좀 더 자유로워진 것 같다. 엄마를 이해했다. 아버지랑, 오빠를 이해할 수 있을까? </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2-01 07:26:0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26914425</guid>
      </item>
      <item>
         <title> [페미니즘의 도전] 회고 기록</title>
         <author>duswn6543</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29038766</link>
         <description><![CDATA[<div><br>&lt;페미니즘의 도전&gt;  2018. 2. 1 목요일<br>참석자: 굴, 현, 찌루, 나무, 금자, 온, 푸른<br><br>푸른: 베스트 10 밑줄 공유<br><br>굴: "엄마에 대하여" 공유<br><br>나무: 전에 카톡에서 공유하였듯이 아버지께 페미니즘 관련 책을 추천하였다. 아버지는 선생님이신데,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만났던 학생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페미니즘하는 애들은 꼬치꼬치 따진다' 하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페미니즘을 안좋게 바라보고 계셨고, 나와 약간 다투듯이 이야기를 하였다.  1월 한 달간 &lt;페미니즘의 도전&gt;을 읽으며, "변하지는 않더라도 권하기는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lt;82년생 김지영&gt;을 추천해드렸다. 부모님과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br><br>찌루: 왜 페미니즘 하는 사람들은 '따지는 사람' 이런 이미지가 되는 걸까? 한, 두 번들은 이야기가 아니다.<br><br>온: 애초에 '따진다'는 말도 주로 여자한테 쓰지 않아요?<br><br>현: 남자애들은, 똑같은 말을 해도  '너 참 개념차다', '생각이 깊구나' 하는 이야기를 듣던데..     '따진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계속 말을 꺼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br><br>찌루: '따진다' 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는데요. "문제가 되는 일을 상대에게 캐묻고 분명한 답을 요구하다" 라는 의미래요. 생각해보면 '따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전에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br><br>굴: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 권력을 지키려고...<br><br>온: 문제제기를 하고 고쳐가야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의지가 없는 사람한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어렵다. 나도 완벽하지 않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내가 모르고 '벙어리 장갑'이라는 표현을 하면, 장애인 혐오표현임으로 '손모아 장갑' 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식으로, 모든 부분에 완벽한 사람이 아니면 쉽게 무시당하는 것 같다. <br><br>찌루: 베스트 10 밑줄 공유 <br>"누군가 나에게 페미니즘이 뭐냐고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해야하지?" 하는 고민을 처음부터 했었다. 아직도 깔끔하게 대답하지는 못한다. &lt;페미니즘의 도전&gt;을 읽고 오히려 명료해지지 않고 횡설수설할 것이 많아진 것 같다. 즉, 보태여 이야기할 것이 많아졌다. 전에는 괜히 찔려서? 공격당할까봐? 말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제는 "여성주의는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학문이다" 하는 식으로 말하는 힘이 생긴 것 같다.<br><br>온: 저는 더 명료해진 느낌. 이제까지는 알고 있었고, 생각만 했지 밖으로 표현할 언어가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내 언어가 생긴 느낌이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입장이다 보니 생각하게 되는 것은, 한국어에는 여성단어가 정해진 것이 많이 없지만, 스페인어 같은 경우는 모든 단어가 여성/남성/중성으로 나눠져 있다. 언어가 가진 성차별이 심하다는 것을 외국어 공부를 하며 느끼고 있다. 사소하게는 man 이나 history 같은 것도 있고... 꽃, 달 이런 것도 여성언어로 되어 있는 것이 많다. 우리가 못느꼈을 뿐이지 언어에 문제가 참 많다.   <br><br>모두: 아... (탄식)<br><br>나무: 찾아보니 "한국어는 왜 이리 남성중심적인가?" 하는 글도 있다. 한국어에는 언어의 구분 자체가 없을 뿐이지 사용방식에는 차별이 존재한다. 수식어를 붙이는 식이다. 여교사, 여검사 같이. 수식을 달고 말을 하다보니 수식이 없는 것이 즉, 기본형이 남성을 뜻하게 되었다.<br><br>금자: 저는 책을 읽으며 목요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고, 목요일이 기다려졌어요. 알고 싶은 분야를 함께 공부하니 좋았고 확실히 페미니즘은 함께 이야기 할 수 록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성은 나의 동료다." 책모임을 하며 막연했던 부분들이 또렷해졌고, 좋은 양분이 된 것 같다. 남자친구와 함께 참여하여 좋았던 부분도 있었다. 항상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면 남자들이 더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답답하던 부분이 있었는데, 남자친구와 함께 하여 좋았다.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테니 앞으로 더 이야기 해보고 싶다.<br><br>찌루: 정말 남성과 여성은 다른 것 같다. 사소한 부분도.. 예를들면 밤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던가. 남성에게는 선택권이 있지만 여성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것들이 많다.  <br><br>현: 저도 명료해진다는 느낌과 언어가 생기는 것 같아 좋은 경험이었다. 아쉬웠던 부분은 약간 반복되는 것이 많아 지치는 감이 있었고, 이 책을 읽어야하는 사람은 남성일 것 같은데..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 내용을 설명해야 할까? 하는 답답함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이 페미니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br><br>금자: 남자친구에게 언뜻 들었던 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인데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  혹은 '남성 페미니스트' 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남성 세계에서 자신은 왕따당하는 것 같다... 는 느낌이라 한다.<br><br>현: 각자가 아는 남자 한 명씩 데리고 오기! 이야기가 저번에 나왔었는데 그건 어떨까?남성 페미니스트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br><br><br>다음책은 <br>&lt;이상한 정상가족&gt; 김희경, 동아시아 <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2-07 11:19:3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29038766</guid>
      </item>
      <item>
         <title>Never Violence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title>
         <author>duswn6543</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36951818</link>
         <description><![CDATA[<div><br>1978년, 독일 도서협회가 주는 평화상을 타면서 <br>‘폭력에 반대합니다 Never Violence’ 라는 제목의 연설을 한 <br>아동문학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Astrid Lindgren. <br>&nbsp;<br>&lt;이상한 정상가족&gt; 4부, 209p<br>영어 전문 일단 공유해요. <br>나중에 한 문단씩 번역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br><br><a href="http://www.swedishbookreview.com/article-2007-2-never-violence.asp">http://www.swedishbookreview.com/article-2007-2-never-violence.asphttp://www.swedishbookreview.com/article-2007-2-never-violence.asp</a></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3-01 15:13:2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36951818</guid>
      </item>
      <item>
         <title> 리뷰</title>
         <author>duswn6543</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39141083</link>
         <description><![CDATA[<div>&nbsp;</div><div>&nbsp;</div><div>1.&nbsp; &nbsp; &nbsp;초등학교 2학년 때, 반에서는 정기적으로 한자시험을 봤다. 100점을 맞은 아이부터 차례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높은 점수를 받은 아이는 박수를 받았고, 낮은 점수를 받은 아이는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았다. 꽤 아팠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나의 점수가 반 전체에 공포된다는 부끄러움도 컸다. 나는 밤마다 한자를 반복해서 쓰며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맞지 않고, 멸시받지 않기 위해) 공부했다. 결국, 한자 급수 시험에 통과하여 8급인가 7급인가 인정을 받았지만, 그 후로는 한자를 싫어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다.</div><div>&nbsp; &nbsp; &nbsp;</div><div>2.&nbsp; &nbsp; &nbsp;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엄마 손을 잡고 무용학원에 가게 되었다. 핑크색 스타킹과 수영복 같은 레오타드를 입고 머리도 빠짐없이 묶어야 했다. 선생님은 여기서 가슴이 더 커지면 곤란하다고 엄마와 어정쩡한 미소를 띠며 이야기했다. 통통한 허벅지와 볼록한 배를 넣기 위해 매일 빠짐없이 복근운동을 했다.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스트레칭 시간이었다. ‘스트레칭 하자’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거울에 자신의 엉덩이를 대고 누워 다리를 활짝 벌린다. 그러면 선생님은 허벅지를 밟고 올라서서 다리가 1자가 되게 누른다. 아이들끼리 서로 역할을 주고받으며 해줄 때도 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애국가를 부르거나 숫자를 셌는데, 비명과 울먹거림에 가까운 목소리들이었다. 당시에 예고 입시를 앞둔 언니가 학원에 한 명 있었다. 선생님은 그 언니를 보며 ‘내가 너 서울예고 보낼 거야’ 라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했다. 언니는 가만히 서 있을 때도 쇄골로부터 아래로 정확히 3개의 가슴뼈가 보였다. 나는 ‘가슴뼈 3개가 보여야 서울예고에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학원에서 보통 ‘야’ ‘너’ ‘거기’ ‘거기 머리띠’ 정도로 불렸다 (엄마가 없을 때). 선생님들은 박자를 세다가도 종종 소리를 지르며 그 나무 막대기를 집어 던지기도 했다. 아무 이유 없이, 바와 거울 앞에 서면 숙연하고 긴장된 시간의 연속이었다. 무용하는 긴 생머리 여자들이 가진 표독스러움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인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div><div><br><br>왜 &lt;이상한 정상가족&gt;을 읽고, 가족 이야기나 할 것이지.. 이런 이야기가 떠오른 걸까?</div><div>한국에서 한 아이가 교육과정에서 얼마나 쉽게 학대를 당하는지, 폭력과 차별이 ‘아이’라는 이유로 허용되는 경우를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에 대한 문제는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책을 읽으며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책에서는 특정한 분류인 ‘아이’로 나타내고 있지만, 모든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대입해볼 수 있다고 본다. 제대로 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 가는 것, ‘공공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문제들을 수면 위로 올리고, 의미 있는 대화들이 쌓여가는 가운데에 발 빠르게 해야 하는 일이다. 법적인 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알리고, 수정하고, 신뢰를 만들어가는 일을… 한국이 앞으로 해낼 수 있을까?&nbsp;<br>우리는?&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3-07 14:06:2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39141083</guid>
      </item>
      <item>
         <title> 이상한 정상가족 리뷰</title>
         <author>jiyounsung99</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39488330</link>
         <description><![CDATA[<div>2018.03.08 </div><div><br><br></div><div> “정서적 위로나 조언을 주는 사람은 친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기능적 도움은 원가족에게서, 정서적 도움은 친구에게서 받는 것이다. (…) 이는 도구적 가족주의로 인해 가족 간 소통과 친밀성이 낮은 우리 가족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p.118 &lt;2. 한국에서 ‘비정상’가족으로 산다는 것&gt;</div><div><br></div><div> 나에게 가족은 중요하다. 물질적 지원을 해주기 때문(경제적 지원, 거주 공간, 음식, 교육 등). 이것은 곧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기도 한다.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령 임신중절 수술을 하고 싶다거나. 나를 바로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나의 부모뿐이다. 만약 나 혼자서 위에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들의 통제에 얽매이지 않을 지도. 부모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던 내가 원치 않으면 거절하고 집을 박차고 나올 텐데. 그러나 나에게는 부모와 함께 사는 집 외에 도망칠 곳이 없다. </div><div>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이유는 최근 집안에서 갈등 때문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나의 귀가시간을 통제하려 들었다. 부모와 자식이 뭐 길래. 같은 공간에서 살 뿐 서로 각자의 경험과 몸, 생각을 가진 인격체인데. 갑갑하다. 우리 사이의 온도를 조금 낮추고 싶다. “친밀한 관계의 복종, 희생과 상호의존에 의해 형성되는 ‘뜨거운 신뢰’말고 개인의 자율성과 평등을 추구하는 ‘차가운 신뢰”를 원한다. </div><div><br></div><div>“‘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 및 문화적 구조와 사고방식을 말한다. 바깥으로는 이를 벗어난 가족 형태를 ‘비정상’이라 간주하며 차별하고, 안으로는 가부장적 위계가 가족을 지배한다. 정상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가족이 억압과 차별의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p.10 &lt;프롤로그&gt;</div><div><br></div><div> 나의 오랜 친구 H는 이혼가정이다. H는 어렸을 때부터 그는 엄마와 둘이 살았다. 그런 H에게 사람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거나 안쓰러워했다. H는 그런 시선을 받았을 때마다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혼가정이라는 것을 말하기 꺼려했다. 무엇이 H를 말하기 힘들게 만든 걸까. 나는 그것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부(남성), 모(여성)와 자녀로 이루어진 이성애중심 핵가족 형태를 벗어나기만 하면 온갖 질문과 시선 혹은 연민 등 차별이 난무한다. 제도적으로도 그렇다. 동성애 결혼이 법제화 되지 않고 비혼모가 자녀를 혼자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div><div><br></div><div>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처음 맞는 명절, 설날이었다. 큰엄마들은 주방에만 있고 큰아빠들은 거실에서 상을 펴고 술을 마셨다. 그 풍경을 보며 18년 만에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그 풍경이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div><div>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부엌에서 부인이 저녁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아이는 부모가 그토록 원한 시험에서 일등을 하고 온가족은 하하호호 웃으며 축하한다. 완벽한 ‘정상가족’의 모습이다.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이 집 안에서 노동을 하는 강도와 횟수가 남성보다 많지만 이러한 여성의 노동은 당연시 여겨진다. 부모는 자녀가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대하고 그들을 통제한다. 부모의 자리가 권력인 듯이. </div><div>도대체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가. 우리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div><div><br></div><div> </div><div><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3-08 03:04: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39488330</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39526491</link>
         <description><![CDATA[행에 대한 박사 논문을 쓰고 돌아와 여러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쳤다. 지난해 피에르 부르디외의 <언어와 상징권력>을 번역하기도 했다. ‘사람, 장소, 환대’에 대한 분석은 ‘독립연구자’로서 그가 진행한 10년 연구의 산물이다. 이 개념은 신자유주의의 차별과 불평등을 분석하는 유용한 아이디어로서 책이 나오기 전부터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86292.html
favorite_border
0


댓글 추가
]]></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3-08 07:35:3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39526491</guid>
      </item>
      <item>
         <title>「다시 봄이 올 거예요」 리뷰</title>
         <author>lunshu03</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48745595</link>
         <description><![CDATA[<div>2018.4.5<br><br><br>세월호 참사가 일어 난지 횟수로 4년이 되어간다. 아프고 더뎠던 시간들. 근 1년 새에 바뀐 것은 많았지만, 변화를 이끌기 위해 흘린 눈물을 헤아리기 어렵다. 유가족 분들에겐 더욱 더 그러했으리라.<br>어디선가 세월호는 “우리 세대의 트라우마”라고 했다. 내게도 그렇다. 어린 시절, 신문에 하루가 다르게 거대한 사건이 터져도 그들만의 일이겠거니 생각했고 한편으론 막연히 국가는 내 편 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2014년 4월 16일 그 날 이후 유년의 세계를 탈피한 지 오래이다. 사건 당일 저녁 티브이에서 본 화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늘어가는 사망자 수와 정체된 생존자 수, 손 놓고 앉아있던 책임자들.&nbsp; 세월호는 단지 그들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었으며 국가의 무능과 방임을 제대로 자각한 첫 순간이다 . 당연히 구해져야 할 사람들이 구해지지 못했고 국가의 손길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선 한 척만이 그 몫을 할 뿐이었다.<br>책에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철이 들었다고, 성숙해졌다고 말하는 형제자매 분들이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감당하려다보니 생겨난 변화이다. 나도 느리지만 그 변화를 따라가고자 했다. 세월호의 흔적을 찾아서 나도 감당해보고자 했다. 그렇게 광화문집회에서 받았던 세월호 리본을 보다 안산에 갔다. 안산분향소에서 헌화할 동안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 마냥 멈추지 않던 눈물을 모아서 올해 진도에 갔다.&nbsp;<br>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그 사이를 거센 바람이 굴러다녔다. 리본과 종이 마구 흔들렸다. 편지를 썼다.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br>“바람이 셉니다. 단숨에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파도가 너울집니다. 사회가 구하지 못한 304명의 영혼들이 부디 평온하길 바랍니다. 그들을 위해 흘린 눈물에 거짓은 없었건만 나는 이제야 와버렸습니다. 미안해요... 나는 앞으로 당신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좋은 나라를 만들 거 에요. 꿋꿋이 살아갈 거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거에요 ····· (중략)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 언니오빠들의 나이를 넘겼네요. 나는 스무 살이 되었어요. 내가 나이를 먹어서 허리가 굽어도 나는 세월호를, 그 당시 어른들이 만들었던 사회를 잊지 않을 거예요. 미안해요, 쉬어요.”<br>세월호 참사가 일어 난지 횟수로 4년이 되어간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유가족 분들이 짊어졌던 짐을 같이 나누어 보자. 비상식적인 상황을 직시하고 이 앞은 달라야 한다고 말하자. 세월호를 함께 기억하고 슬퍼하자.&nbsp;<br>‘슬픔은 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모두의 것이다. 책임은 모두의 것이지만 개인의 것이기도 하다.’ -416프로젝트&lt;공동의 기억: 트라우마&gt;</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4-05 05:34:3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48745595</guid>
      </item>
      <item>
         <title>다시 봄이 올 거예요 리뷰</title>
         <author>jiyounsung99</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49656523</link>
         <description><![CDATA[<div><br><strong>"우리가 말한다. 너희는 들어라"<br></strong><br></div><div><br></div><div>&nbsp; 여기 또렷한 목소리가 있다. 언론의 거짓말과 정부의 잡음이 섞이지 않은, 어떤 것으로도 가공되지 않은 목소리이다. 그 날 세월호에 있던 사람, 가족을 잃은 형제 자매가 말한다. 그들의 목소리가 쉽게 사라지지 않도록 단단한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나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div><div><br></div><div>&nbsp; 지금껏 우리는 잡음에 둘러 쌓여있었다. 세월호가 바다 밑으로 잠기던 순간에도 언론은 전원구조라는 거짓말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후로 정부는 배/보상금, 특례입학, 의사자 지정 등으로 세월호 유가족의 목소리를 덮어 버렸다. 가족들은 2014년 4월 16일부터 나의 자식이, 나의 언니 오빠 형 동생이 도대체 왜 죽었는 지 알려달라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정부는 가족들에게 대답을 해주긴 커녕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는 소음을 만들어 가족들의 목소리를 묻어버렸다.</div><div><br></div><div>&nbsp; 세월호 사건 이야기의 주체는 언제나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세월호에 있던 사람들, 유가족, 생존학생, 세월호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이들이어야 한다.&nbsp;</div><div><br></div><div>&nbsp; 그러나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듣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에게 &lt;다시 봄이 올 거예요&gt;는 도저히 혼자서 책의 첫장을 넘기기 힘든 책이었다. 다행히(?) 조용한 혁명의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모여 앉아 각자 소리내어 읽을 수 있는 만큼 낭독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어 나가기로 했다.</div><div><br></div><div>&nbsp; 사고 당시 세월호 선내에 있던 생존학생의 구술을 낭독하고 있을 때였다. 쓰러지는 캐비닛에 친구들이 휩쓸려 갔다거나 신발을 챙겨 신을 새도 없이 발 밑으로 물이 차올랐다거나 바닥이 벽이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머리가 빙빙 돌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무서웠다.&nbsp;<br>한 시간 동안 낭독을 하고 나면 우리는 늘 말이 없었고 가끔은 탈진했다.</div><div><br></div><div>&nbsp; 그럼에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이유는 많은 것이 밝혀지지 않은 이 상황 속에서 오직 그들의 목소리만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아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진실을 모르는 채로 타인에게 상처를 줄 바에는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다.</div><div><br></div><div>&nbsp;“진정한 위로는 연민이 아닌 상실의 의미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나온다. 이들이 경험한 상실은 단지 어린 나이에 친구와 형제자매를 잃은 안타까운 경험이 아니라, 세월호참사라는 큰 그림 안에서 조명되고 이해될 수 있는 사회적 상실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위로는 ‘말’이 아니라 ‘간절히 원했던 답을 함께 찾아 나서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p.347)</div><div>&nbsp;</div><div>&nbsp;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가 바라는 것은 안타까워하기만 하는 동정과 연민이 아니다. 가로막힌 벽을 함께 넘을 동료이다. 나도 그들의 동료가 될 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진실을 함께 찾아가는 든든한 동료가 되고 싶다. 🎗<br>-2018.04.09 찌루(성지윤)</div><div><br></div><div>p.s 리뷰의 제목은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해 열린 페미퍼레이드에서 외친 구호를 인용했다.&nbsp;</div><div><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4-09 06:22:2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49656523</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rene2102</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50993847</link>
         <description><![CDATA[<div>2018.04.05.<br>조용한 혁명<br>&lt;다시 봄이 올 거예요&gt;를 읽고<br>르네<br><br>나이를 먹는 게 너무 무서워요. 나도 변할까봐… 기득권, 어른의 때가 묻을까봐. -p.235’  <br><br>그들은 어른들이 원망스럽다고 했다.<br>온갖 오보와 자극적인 문구로 제목을 쓰는 기자들이나,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 희생자들을 욕하는 이들이나, 혹은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 이들. 노란 리본 배지만 달아도 당장 떼라고 하는 말이나, ‘아직도 세월호냐’라는 식의 반응들.<br>그리고 지난 3월, 희망의 촛불에 달린 수많은 노란 리본들은 일부 집회 참가자에 의해 처참하게 땅에 떨어져 짓밟혔다.<br>누군가는 자식을, 형제자매를, 선생님을, 친구를 영영 잃은 것인데, 심지어 그 원인조차 불분명하게, 아무 대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그저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데’ 라고 생각했던 것에 씻지 못할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데, 그들을 둘러싼 어른들은 ‘정말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노골적으로-부끄러워해야 할 만큼-보여주고 있다. <br>4주기가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말이다.<br>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적 재난 앞에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과, 오히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희생자와 남은 유가족들을 마구 힐난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세월호 세대로서,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어른답다’는 것은 무엇인지 항상 고민한다. 어른이 됨은 무엇일까?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되는 걸까? 세월호 참사 이후 ‘평범한 삶’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이들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 할까?</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4-12 04:29:3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50993847</guid>
      </item>
      <item>
         <title>&#39;다시 봄이 올 거예요&#39; 리뷰</title>
         <author>duswn6543</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51001227</link>
         <description><![CDATA[<div>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nbsp;<br><br>바닷속으로 서서히 잠겨가는 뱃머리를 똑똑히 본 그날을 기억합니다. 삼 일 내내 우중충했던 날씨와 뉴스 속보만을 기다리던 사람들, 그리고 도망치기 바빴던 TV 속의 어른들을 기억합니다.&nbsp;<br>제게는 처참한 상황에 대한 분노 그리고 어이없음과 함께, 고통받는 유가족분들을 마주하기 두려운 마음이 오래 남아있었습니다. 마치 겪어보지 못한 경험 앞에서 몸이 얼어버리는 것처럼.. 남들보다 오랜 시간 동안 얼어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가방에 노란리본을 처음 달았던 날, 저는 '진상규명' 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정확한 사실을 직시하고, 부끄러워할 줄 알며 재발을 막겠다는 다짐. 한 사회의 시민이자 어른으로서 그들을 기억하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nbsp;<br><br>‘다시 봄이 올 거예요’는 읽기 쉬운 책은 아닙니다.&nbsp; 책을 보다가도 잠시 차를 마시며 가만히 있어야 하기도 했고, 눈물을 참지 못한 날도, 심장이 빠르게 뛴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함께 모여앉아, 서로의 목소리를 빌려 생존 학생과 형제자매의 이야기를 천천히 읽어내려갔습니다. 모임을 하며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조용한 혁명’과 함께했기 때문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nbsp;<br><br>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무너질 대로 무너진 이 사회의 안전망을 마주하고 매년 바다로 이어질 검은 행렬을 바라본다는 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참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인 것 같아요. 아무리 인터넷을 보고 책을 찾아봐도 모르겠는 참사의 이유를 밝혀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겠지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세월호 세대'라 불리게 된 사람들이 가진 힘은, 사회를 똑바로 바라보려 노력한다는 것이지 않을까요? 후쿠시마도 그렇고 봄이 오면 반가운 봄바람 사이로 아픈 생각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nbsp; &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4-12 05:29:2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51001227</guid>
      </item>
      <item>
         <title>&lt;외모 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gt; 머리말 ~ 2장</title>
         <author>duswn6543</author>
         <link>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64929598</link>
         <description><![CDATA[<div>&lt;조용한 혁명&gt; - 외모 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 머리말 ~ 2장<br>2018년 5월 31일 목요일 4시~6시 </div><div><br></div><div><strong>1. 근황나눔 </strong><br>지난주에 <br>찌루는 지리산에서 1주일정도 지내며 평온하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졌다.  <br>나무는 '10대 연구소' 컨퍼런스에 참석하였다. (영상 함께 공유)<br>르네와 푸른은 책모임에 참석하여 <br>'외모 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 1장 밑줄긋기를 나눔.<br><br><br></div><div><strong>2. '외모 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 머리말 ~  2장</strong></div><div>+<mark> "미적 경멸이란 외모를 이유로 특정인에 대한 멸시를 의미한다. 미적압력은 외모 꾸미기를 부추길 뿐 아니라 아름답지 않은 사람에 대한 경멸을 필연적으로 정당화한다." p.22  </mark></div><div><br>- 이 책에서 말하는 '미적경멸'도 여성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듯하다. 같은 거울을 보더라도 여자는 자신이 부족하게 보이고 남자는 만족해 하는 짤이 있고 공감한 경험이 있다. 남성들은 여자보다 외모에 대한 지적, 스트레스를 덜 받는게 사실이지 않은가? 물론 맨박스가 있지만 여성이 받는 멸시와 공포에 비할 수 없는 것 같다.<br> </div><div>-어렸을 때부터, 남성은 가정에서 기둥이니 장남이니 하며 존중받고 지지를 받는데 반면에 여성은 '조신히 앉으라', '행동을 조심히 하라' 하는 지적을 일상적으로 받는 것 같다. 이런 부분들이 쌓인 것도 주요한 원인이지 않을까?</div><div><br></div><div>+<mark> "그렇다면 대중은 자본주의의 경제 논리를 벗어나 외모 꾸미기 미학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개인이 주체로서 미적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그것을 외모로 체현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또 체현의 과정에 개입되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해 각자 어떠한 선택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p.23</mark></div><div><br>-첫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알바를 구할 때, 올리브영에 자리가 있는 것을 보았고 시급이 높아서 고민을 하였는데, 내가 굳이 미용산업에 종사하여야 하나? 하는 질문이 들어 지원하지 않았다. 외모꾸미기를 강요하는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div><div><br>-친구가 지금 미용산업을 하는 한 브랜드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 세일기간에 얼굴에 크게 'sale'이라는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지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이 단순히 그 매장의 소품처럼 여겨진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div><div><br></div><div>+<mark>여성을 설명하는 존재론적 범주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재생산 도구로서의 몸' 과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서의 몸', 이 두가지로 충분했다. 이 때 여성들의 두 몸 (재생산하는 몸/성적 대상으로서의 몸)은 근본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종종 여성들에 대한 남성의 욕망이 세분화되면서 이 두 몸을 가진 여성들 사이에 분리가 일어나고, 심지어 서로 대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p.27<br></mark><br></div><div>-요즘 옷을 입을 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이 이옷을 입고 뛸 수 있는가?' 이다. 사실 뛸 수 없는 옷들은 다 불편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거리를 보면서 5분정도 관찰해보았는데, 여성들의 옷차림은 대부분 이 기준에 들지 않았다. 남성들은 물론 맘껏 뛸 수 있을 것 처럼 보였다.<br> </div><div>-예전부터 동작 자체에 제한이 있는 옷에 여성들이 익숙해졌다. 코르셋처럼.</div><div><br>-'이 옷은 예쁘다' 라고 자본주의에서 정의하고 소비하도록 만드는 건데, 그 옷들은 다 편한 옷이 아니다. 연예인들은 포토라인에서 잠깐 옷을 입고 있는 것 뿐이지만 우리는 아니다.</div><div><br></div><div>+<mark>"그럼에도 왜 우리는 미인이기를 여전히 열망하는가? 그리고 도대체 누가 미인인가? 이 문제는 이제 다음의 방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누가 무엇을 미라고 규정하는가?'" p.60</mark> </div><div><br></div><div>+<mark>"여성은 자기 자신은 물론 남성들조차 신체미에만 탐닉하게  하여 정신미로의 고양을 방해한다고 비난받는다. 이러한 방해는 아름다운 신체를 가진 여성을 '팜므 파탈'로 부르는 이유가 되었다. ''' 그러나 팜므 파탈에 관한 정당한 토론이 되려면 이성을 갖춘 남성들이 왜 기껏 여성의 신체에 대한 욕망 따위를 통제하지 못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팜므 파탈에게는 정신이 없으므로 어떤 의도도 책임도 없다. 근원적으로 미학적, 도덕적 책임은 이성을 소유한 남성에게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진짜 영웅이라면 도은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그녀는 아름다웠을 뿐이다. 그러나 이성 중심주의는 남성 영웅을 탓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여성의 신체에 묻는다. 여성의 신체미는 악이라고 매도되고 남성 영웅은 비운의 주인공으로 남는다." p.86</mark></div><div><br></div><div>-한국 드라마에서는 이런 서사가 너무 많다. 꽃뱀이라고 하는 것. 남성들은 스스로 똑똑하다고 하면서 여성의 신체미에 유혹되었다가 그렇게 유혹된 원인은 여성에게 있다고 하는 것. 잘못된 것 같다.  <br>  </div><div>-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엄청 심하다. 개콘을 안본지 꽤 오래 되었다. 사람의 외모, 뚱뚱하고 마른 것. 이런 것을 가지고 웃음소재로 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안사라지고 있지 저런 프로그램은? 오랜기간 살아남은 개그우먼은 두 부류로 나뉜다. 일명 '아줌마' 캐릭터를 가진 사람으로 억척스럽고 스스로 외모적으로 많이 '망가지는'부류와 일반적인 개그우먼 같지 않은, 마르고 예쁘다고 정의되는 부류. 두 가지 인 것 같다. 왜 여성은 개그에서도 주체가 될 수 없는지? </div><div><br></div><div>+<mark>" 여성 신체미의 기준은 여성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 있다. 여성들이 신체에 들이는 모든 노력은 오직 남성들의 미적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마치 여성은 외모 꾸미기의 영역에서 미의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그 영역에서 미의 기준을 만드는 자도, 그것을 즐기고 판정을 내리는 자도 사실은 남성이다. 여성은 남성의 즐거움을 위한 대상일 뿐이다.p.105 </mark><br>  </div><div>+<mark>"바로 이것이 가부장제 이성 중심주의 미학이 여성에게 가한 이중의 미적 경멸이다. 애초에 신체미를 열등한 것으로 폄하한 뒤 그것을 여성에게 할당한 것이 첫 번째 경멸이고, 그 신체미에서조차 여성을 대상으로 소외시키는 것이 두 번째 경멸이다." p.106</mark></div><div><br></div><div><strong>3. 포스터</strong> <br>- 작가가 쓰는 어법이 어렵지 않은 편이라서, 나무가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이 책을 잘 나타내는 문장이 있다면 인용하여 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div><div><br></div><div><strong>4. 월경페스티벌 리뷰</strong><br>- 불꽃페미액션 부스에 참여한 나무, 겨털해방과 찌찌해방을 하였다. 가슴과 겨털을 드러내는 활동이었다. 여성의 몸이 남성의 몸과 다르지 않고, 성적대상이 아니라 같은 몸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div><div>- '보지그리기' 코너가 좋았다. 내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한 쪽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코너이기도 했던 것 같다.</div><div>- 다양한 생리컵을 실제로 보고 만져볼 수 있어서 좋았다. 생리컵을 실제로 시도하기 어려운데, 용기를 내볼 수 있게 되었다!       </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18-06-01 02:25:2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iyeon/chekmoimhaja/wish/264929598</guid>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