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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제 사회와 성립의 발달 by 신진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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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O반 2모둠</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1-03-12 04:51: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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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0412 박현수 세계화</title>
         <author>kr5gpbz4zf</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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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세계화는 생각보다 우리 삶 가까이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아이폰에도 세계화를 찾아 볼 수 있다. 아이폰의 제조국가는 미국이지만 아이폰을 제조할 때 필요한 700개 이상의 부품과 20여개의 금속광물을 15개 이상 국가에서 채취된다. 그 외에도 유명한 스타벅스 ,맥도날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커피콩, 종이컵, 우유, 설탕을 19개 나라자원이 사용된다. 가상의 하루를 예를 들어 조금 더 알아보면 우리는 아침에 종정 미국 아침 음식인 시리얼을  먹는다. 그 후 빌게이츠 기술로 만들어진 운영체제 ,한국과 대만 등 여러나라의 부품으로 만들어진 컴퓨터를 사용해 인터넷을 보게되고 미국인 3명이 만든 유튜브를 사용하여 온라인 수업을 듣는다. 이렇게 밥 ,운동 ,공부 할 때 일상의 모든 생활이 전 세계 모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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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3-12 05:11: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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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0409 김예진 베스트팔렌 조약</title>
         <author>kyj82427758</author>
         <link>https://padlet.com/tlswlsrudokok/eh378hlrk65yohak/wish/1301427954</link>
         <description><![CDATA[<div>신성로마제국은 카톨릭 (구교) 와 개신교 (신교)로 나뉘어져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페르니난트 2세는 카톨릭을 강요했고, 이로 인해서 아우크스부르크 회의가 파괴되었다. 신성로마재국의 개신교인들의 제후동맹 후 프리드리히 5세가 선출 되었고, 카톨릭도 제후 연맹 후 바이에른 막시 밀리안 1세가 선출 되어 1620년 백산전투에서 카톨릭이 이기게 된다. 그 후 스페인이 신성로마제국을 지지하면서 힘이 더욱 세졌고,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 사이에 있던 프랑스는 카톨릭을 믿었지만, 보이지않게 신성로마제국을 지원했다. 신성로마제국의 힘이 더욱 커지면서 주변 국가인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에서 신성로마제국을 공격해봤지만 실패로 끝이 났다. 1635년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 사이에 있던 프랑스가 참지못하고 전면전을 펼치는데 1641년 위협을 느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러디난트 3세가 종전을 제의했다. 이 이후 1648년 베스트 팔렌 조약이 성사되면서 전쟁이 종료되었고, 이 이후 칼뱅파는 신앙의 자유 획득하고, 함스부르크 왕가는 권위 추락하게 된다. 전쟁 이후 신성로마제국은 제후국 우월권을 잃었고, 황제 칭호를 못 쓰게 되었다.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했고 스페인의 힘은 떨어지게 되었다. 또 다른 주변 국가인 영국은 시민혁명(청교도 혁명, 명예혁명)을 통해 강국이 되었다. 사람들은 30년의 전쟁을 보고 유럽은 종교중심중세봉건 국가에서 영토 중심의 근대국민토가가 되었다고 평가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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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3-12 05:23: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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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0408 김승주</title>
         <author>8qss3z8mzb</author>
         <link>https://padlet.com/tlswlsrudokok/eh378hlrk65yohak/wish/1301440116</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lt;세계대공황&gt;<br>&nbsp;</strong>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이때 미국 자본가들이 유럽에 투자하면서 세계 경제의 중심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 미국의 호경기가 지속되자 뉴욕 월스트리트는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게 되었다.&nbsp;<br>&nbsp;한편 1920년대의 유럽과 미국은 기계의 도입으로 공업 생산량이 크게 늘었고 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늘어난 생산량에 비해 소비량은 한없이 부족했고, 잉여 생산물이 남아돌자 노동자와 농민의 소득이 감소하고 공업까지 정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 가격은 꾸준히 상승세였다.&nbsp;<br>&nbsp;그러나 투자가 로저 뱁슨이 "호경기는 곧 끝날 것"이라는 발언을 하자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팔기 시작했고, 1929년10월24일 사상 최악의 세계대공황이 시작되었다. 공장 기계의 작동은 중지되었고, 거리엔 실업자가 된 노동자들과 굶주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주식가격은 폭락하였다.<br>&nbsp;유럽에선 미국의 투자가 끊기고 유럽 내 달러가 부족해지자 공황에서 탈출하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영국은 '파운드블록'을 형성해 연방국가끼리만 자유무역을 허가하고 타국엔 높은 관세를 부과하였다. 이를 따라 프랑스 등 다른 제국주의 열강도 파운드블록을 형성했고 무역전쟁은 심화되었다. 살기 힘든 노동자들은 사회주의혁명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국가의 탄압이 지속되었다.<br>&nbsp;세계대공황으로 인해 당시 진리로 받아들여지던 아담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국가가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을 중시해야한다)는 종말하게 되었다. 자유방임주의의 토대 위에 생산이 소비를 초과하면서 대공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케인즈는 유효수요이론을 내세웠다. 그는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려 노동자의 소득을 늘리고 소비를 활성화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br>&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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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3-12 05:31: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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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0414 신진경</title>
         <author>tlswlsrudokok</author>
         <link>https://padlet.com/tlswlsrudokok/eh378hlrk65yohak/wish/1309003976</link>
         <description><![CDATA[<div>[ 세계화의 문제점 ]<br>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많은 수화물이 사람의 손을 거쳐 별다른 포장 없이 배에 싣고 이동하였고 제품 가격이 최고 25%까지 차지해 운송비가 비쌌기에 국경을 넘어 물건이 오고 가는 건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20세기 말에 약 40톤의 커다란 철제 상자가 등장하였고 축구장 3개를 합해 놓은 크기의 배에 실려 먼 나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로써 항구에 내려 놓는 시간이 절약되고 이 컨테이너의 등장으로 운송비가 절감되었다. 이렇게 원자재, 부속품, 완제품을 가득 싣고 서로의 나라를 오가는 컨테이너들의 행진 덕분에 전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시장인 세계화를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이 세계화 속에서 전 세계가 풍요로워졌는데 이익을 가져가는 건 몇몇의 강대국 뿐 부자인 나라만 부자가 되고 가난한 나라는 여전히 가난할 뿐이었다. 1870년 부유한 나라의 수입과 가난한 나라의 수입의 차이는 9배였지만 2008년에는 최대 42배의 차이가 발생해 빈부격차가 발생하였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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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3-15 04:56: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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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0410 박나영</title>
         <author>cjy0108075</author>
         <link>https://padlet.com/tlswlsrudokok/eh378hlrk65yohak/wish/1309035814</link>
         <description><![CDATA[<div>냉전이 발생한 이유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전 세계 공산화 목표로 팽창정책을 추진하였고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 마셜 플랜을 추진하여 봉쇄정책을 펼쳤고 이 두 이념이 직접적으로 대립한 사건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이다<br> 1960년대 비동맹국가 제3세계가 급부상하면서 데탕트시대가 시작되었다 1989년 지중해 몰타에서 열린 미.소 정상회담을 통해 사상 처음으로 공동기자회견을 가졌고 몰타선언을 통해 '냉전의 해체'가 공식 선언된 후 냉전의 상징과 같던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통일 되었다 <br> 그리고 소련은 해체되고 남북 공동 UN에 가입등으로 냉전은 종식되었다<br> 그리고 탈 냉전 시대가 개막되고 이념보다는 경제적 실리 중시 경향이 강화되고 세계화의 진전으로 국가간의 상호의존성도 증가하였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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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3-15 05:08: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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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7r7tft2kv8</author>
         <link>https://padlet.com/tlswlsrudokok/eh378hlrk65yohak/wish/1309046686</link>
         <description><![CDATA[<div>냉전시대</div><div>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연합국의 대표들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 결과 1945년 10월 ‘국제연합’이 탄생했다. 미국과 소련은 처음엔 같은 마음인 줄 알았지만 소련은 동유럽에 사회주의 정권이 세워지도록 도왔고 미국은 서유럽 국가들을 도와서 사회주의 세력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애를 썼다. 세계가 두 편으로 나뉘어 힘겨루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중 독일을 놓고 미국 세력과 소련 세력이 부딪히는 일이 일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은 미국과 소련, 영국, 프랑스가 서로 나누어 다스렸다 동쪽은 소련이, 북서쪽은 미국·영국·프랑스가 차지하고, 수도인 베를린도 네 나라가 각각 쪼개서 다스렸다. 그러던 중 소련이 베를린으로 가는 길을 막아 버렸다. 그러자 세 나라는 깜짝 놀랐다. 소련이 길을 막아 버리면 세 나라가 관리하던 서베를린은 꼼짝없이 갇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행히 전쟁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독일은 결국 동서로 나눠지고 말았다. 이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세력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세력의 대립은 전 세계로 넓어졌다 1950년에는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 당시 우리나라도 미국과 소련 때문에 둘로 나뉘어 있었다. 처음에는 북한이 서울을 차지하고 빠른 속도로 남쪽으로 내려왔지만, 미국과 국제연합이 군대를 보내어 상황이 뒤바뀌었다. 그러자 사회주의 국가가 된 중국이 북한에 군대를 보내주었다.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의 싸움은 점점 심해졌다. 1959년 쿠바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정부를 세웠다. 그러자 미국은 쿠바와 외교관계를 끊어 버렸고 쿠바는 코웃음을 쳤다. 카스트로는 재빨리 소련에게 손을 내밀었고 소련은 쿠바의 손을 잡고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 소식을 들은 미국은 비행기를 보내 쿠바를 조심스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던 1962년 10월, 미국의 비행기는 쿠바의 한 지역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쿠바가 소련의 도움을 얻는 대신,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세우는 것을 허락한 것이었다. 쿠바는 미국과 아주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쿠바에서 미사일을 쏘면 미국 어느 곳이든 닿을 수 있었다. 소련도 그것을 노렸던 것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케네디는 미국의 해군에게 명령했다. 쿠바의 모든 미사일 기지를 막으라고 그리고 소련에게도 주의를 보냈다. 만약 소련이 쿠바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미국은 소련으로 핵무기를 쏘아 올리겠다고</div><div>그로부터 한 달 동안 온 세계가 공포에 휩싸이고, 미국과 소련은 서로 팽팽하게 맞섰다. 이때 국제연합이 나섰다 미국이 쿠바를 치지 않겠다면, 미사일 기지를 없애겠다고 했고</div><div>그에 소련도 해군들을 물러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소련은 케네디의 약속을 믿고 쿠바에서 물러났고 미국도 바닷길을 풀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미국과 소련의 다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베트남에서 전쟁이 벌어지자 미국은 남베트남에 소련은 북베트남에 군대를 보내 서로 맞붙었다. 이렇게 미국과 소련은 세계 곳곳에서 으르렁거렸다. 이 소리 없는 싸움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50여 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 시기를 가리켜 ‘냉전 시대’라고 부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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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3-15 05:12: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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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0423 차수린 제국주의</title>
         <author>x2zvt5yfh6</author>
         <link>https://padlet.com/tlswlsrudokok/eh378hlrk65yohak/wish/1309052160</link>
         <description><![CDATA[<div><br>콩고지역의 제국주의는 1865년 벨기에의 국왕으로 즉위했던 레오폴드 2세의 개인적 야심이 큰 역할을 한다.1876년 레오폴드는 아프리카에서의 인도주의와 학문을 증진시킨다는 목표를 천명하며 "국제 아프리카 주식 회사"를 창설하고 3년후에 오늘날의 콩고 지역을 국제 콩고 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고 콩고 지역땅을 주식회사가 사들이게 한다. 결국 이 시기에 콩고는 레오폴드의 사유지가 되버린셈이다. 하지만 초기에 콩고 자유국은 레오폴드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1880년대 후반부터 국제 무역에서 고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변화되었다. 레오폴드는 콩고 자유국에게 마을 단위로 2주마자 고무에 대한 할당량을 지급했는데 남자들이 고무를 가져올 때까지 아내나 가족원중 여성을 인질로 잡고 정해진 기간보다 늦게 오거나 할당량을 못채울 경우 그 여성을 처형하였다. 그리고 마을에 반란이 일어나면 마을 전체를 불태우고 아이까지 포함해 모든 주민을 사살하기까지 했다. 레오폴드는 콩고 자유국 군대의 사병을 토착민으로 세우고 개인적인 사냥이나 저항하는 토착민과 협조를 막기위해 "총알 하나 당 오른손 하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명령을 못 지키면 사형이기 때문에 사병들은 희생자나 총을 맞아도 살아있는 사람의 손을 자르기도 했고 노동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코를 잘라오기도 하였다. 원래 2천 5백만명으로 추정되었던 콩고 지역의 인구는 레오폴드의 식민통치를 겪은 이후에는 천 오백만명으로 줄어들어있었다. 이 사건은 1900년 초까지만 해도 국제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선박회사 직원의 조사로 인해 사태의 전말이 들어났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묻히게 되고 벨기에 사회에선 레오폴드의 기억이 완전 세탁되고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벨기에 역사책에서 레오폴드는 식민지 지역을 근대화하고 해방시킨 인물로 표현되고 종종 동상도 발견된다. 벨기에는 아직까지 콩고에서의 학살에 관한 책임감있는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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