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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제 문화유산 조사하기 by 무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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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7-26 00:16: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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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시) 진묘수란?</title>
         <author>chfhddl07</author>
         <link>https://padlet.com/teachininai/dxqwkkn5c4aqzrwg/wish/3528950611</link>
         <description><![CDATA[<p>진묘수는 입구를 향한 모습으로 연도부 중앙에서 출토되었다. 뭉툭한 주둥이에 입은 살짝 벌리고 있다. 윗 입술과 살짝 솟은 코는 마치 '山' 자 모양이다. 콧구멍 없는 큰 코의 뒤쪽으로 툭 불거진 크고 둥근 반구형 눈이 있고, 이어서 장타원형의 귀가 조각되었다. 오른쪽 귀에만 귓구멍이 표현되어 있다. 쇠로 만든 뿔이 귀뿌리 사이 중앙에 꽂혀 있다. 완만한 등에는 네 개의 돌기를 조각하였다. 앞다리 어깨 부위와 뒷다리 대퇴부에 날개 혹은 터럭을 형상화한 듯한 무늬가 양각되었다. 엉덩이에는 몸통과 이어진 꼬리가 조각되었고, 꼬리 끝에 항문을 표현한 구멍을 뚫었다. 발견 당시 오른쪽 뒷다리는 부러졌으나 현재는 접합된 상태이다. 정면을 응시하며 걷는 듯한 모습이다. 몸통의 재질은 각섬석질의 돌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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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0:17: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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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제 금동대향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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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뚜껑에는 23개의 산들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p><p>이 밖에 6개의 나무와 12개의 바위, 산 중턱에 있는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폭포, 호수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다.</p><p>봉황 앞 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몸체에서 향 연기를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게 하였다.</p><p>연잎의 표면에는 불사조와 물고기, 사슴, 학 등 26마리의 동물이 배치되어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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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10: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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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묘수</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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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고대 중국에서 무덤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상상의 동물 조각상을 말합니다. 무덤 입구나 외곽에 배치되어 악귀나 잡귀로부터 망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주로 남북조시대에 많이 제작되었으며, 귀여운 동물 형상에 3~4개의 갈기를 등 위에 달아 상징성을 부여했습니다. 특히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진묘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진묘수로 알려져 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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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11: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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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묘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achininai/dxqwkkn5c4aqzrwg/wish/3528968548</link>
         <description><![CDATA[<p>(임우준)진묘수(鎭墓獸)는 고대 중국에서 무덤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상상의 동물 조각상을 말합니다. 무덤 입구나 외곽에 배치되어 악귀나 잡귀로부터 망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주로 남북조시대에 많이 제작되었으며, 귀여운 동물 형상에 3~4개의 갈기를 등 위에 달아 상징성을 부여했습니다. 특히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진묘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진묘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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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11: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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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제  금동 대향로</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achininai/dxqwkkn5c4aqzrwg/wish/3528969675</link>
         <description><![CDATA[<p>백제금동대향로는 1993년 12월 12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주차장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이후 조사 결과 해당 향로가 발견된 주차장 공사 현장이 백제 시대 왕실의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밝혀졌다.</p><p><br></p><p>대향로를 언제 제작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대략 6세기 말-7세기 초라고 추정한다. 재야미술사학자 서정록은 2001년 출판한 저서 '백제금동대향로에서 대향로를 제작한 시기가 520~534년쯤이라고 주장했지만, 학계에서 인정받지는 못했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7세기 초쯤이라고 보는 듯하다. 고구려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이래 내정의 혼란을 거듭하던 백제가 안정을 되찾고 꽃피운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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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14: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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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제 금동 대향로</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achininai/dxqwkkn5c4aqzrwg/wish/3528971267</link>
         <description><![CDATA[<p>백제금동대향로는 안 그래도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가 모두 뛰어난 국보이지만 하마터면 발견되지 못 한 채 영원히 땅속에 묻힐 뻔했다가 극적으로 발견된 비하인드 스토리 때문에 더욱 이야깃거리가 된다. 1993년, 능산리 고분군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늘면서 당시 막 발굴이 시작된 능산리 절터 인근에 주차장 공사를 하기로 했는데, 주차장 공사를 하기 전 혹시나 있을 유물 발굴을 위해 주차장 부지로 지정된 논을 사전시굴조사를 하기로 하였다. 유물이 가장 없을만 한 곳을 주차장 부지로 지정했기 때문에 예상대로 첫 조사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그대로 묻고 주차장 공사를 진행할 뻔했다가 발굴책임자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당시 부여군 문화재보호국 과장에게 추가예산집행을 요청했고, 해당 과장이 허락하면서 추가 조사가 진행되었다. 이때 추가예산집행을 허락해준 사람이 전 문화재청장인 노태섭이었다.</p><p><br/></p><p>그렇게 추가 조사를 위해 터를 파던 도중 12월 12일 오후 4시 30분, 물이 고인 진흙 웅덩이 속에서 무언가가 발견되었다. 발굴단은 그것이 향로인 줄은 몰랐지만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유물임을 확신했고 도굴을 우려해 인부들을 모두 귀가시킨 후 학예연구직만 남아 장장 4시간에 걸쳐 유물을 온전하게 발굴해냈다. 부랴부랴 유물을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옮겨 뚜껑과 몸통을 짜맞추고 이물질을 닦아내는 유물처리를 하고나서야 향로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났다. 기나긴 세월 동안 땅속에 묻혔음에도 불구하고 진흙에 잠겨 산소가 차단된 덕에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미지근한 물에 담근 면봉으로 향로에 묻은 이물질을 닦아내는 과정에서 하나하나 그 자태를 드러내는 향로에 발굴단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p><p><br/></p><p>이후 추가적인 조사 결과 대향로가 발굴된 곳은 사찰에 부속된 대장간 자리였으며 향로가 출토된 웅덩이는 공방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는 구유형 목제 수조가 있던 자리였음이 밝혀졌다. 대향로가 중국제가 아닌 백제 자체 제작품이라는 결정적인 근거이다. 바로 이 대장간에서 만들었다는 것.</p><p><br/></p><p>중국 학자들 중에는 박산향로 양식이 아예 없던 백제에서 느닷없이 대향로를 제작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대향로가 중국제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남조 국가들의 무덤 벽화에서 대향로와 상당히 유사한 그림이 발견되기도 했음을 대향로가 중국제라는 주장의 근거로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향로가 하필 능산리 절에 부속된 대장간 자리에서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사찰 내에서 자체제작한 물품이라는 강력한 증거이다. 물리적 근거는 당연히 정황 근거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에 중국 측의 억지 주장을 쉽게 반박할 수 있다. 사실 대향로를 제작할 즈음이면 중국에서 박산향로 전통이 완전히 사라진 지 수백 년이 지난 뒤이다. 중국에서 백제의 성왕을 추모하기 위해 수백 년 전 중국의 전통을 되살려, 심지어 중국 본토에 있던 향로를 능가하는 명품을 만들어 백제에 선물했다는 주장은 개연성이 너무 떨어진다.</p><p><br/></p><p>국보 제288호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扶餘陵山里寺址石造舍利龕)에 새겨진 명문으로 미루어 보아, 해당 사찰은 아들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빌고자 왕실 차원에서 세운 원찰인 듯하다. 위덕왕은 왕자 시절 대신들의 반대에도 신라 공격을 감행했고 성왕은 그런 아들의 결정을 지지해 주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554년 관산성 전투 당시 성왕은 아들(미래의 위덕왕)과 백제군을 위문하고자 현장을 방문하다 신라군의 매복에 걸려 전사했고, 위덕왕은 죄책감에 시달려 즉위를 거부하고 승려가 되려고 하는 등 정신적으로 크게 방황했다. 대향로는 그런 위덕왕이 자신 때문에 죽은 아버지 성왕을 기리며 만든 사찰에서 출토된 향로이니, 백제금동대향로는 최상의 예술성과 미적감각뿐만 아니라 6세기 백제 성왕과 위덕왕 부자의 가슴 아픈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긴 최고의 문화재이다.</p><p><br/></p><p>그리고 660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수도 사비성이 함락되자 어느 백제인이 나당연합군의 약탈을 피해 대향로를 땅속에 묻어 숨겨둔 것이 1,300여 년이 지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대향로가 묻혀있던 바닥에서는 기와와 토기 조각 등이 함께 발견되었고 주변에서는 섬유 조각도 발굴되었는데 대향로를 감싼 천이 세월이 지나 삭은 것으로 추정된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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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18: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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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령왕릉 의 역사적의미</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achininai/dxqwkkn5c4aqzrwg/wish/3528971741</link>
         <description><![CDATA[<ul><li><p><strong>주인 확인:</strong></p><p>무덤의 주인이 무령왕임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지석이 발견되어 삼국시대 고분 연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nbsp;</p></li><li><p><strong>백제 웅진 시대의 중심:</strong></p><p>웅진 시대(공주)에 조성된 왕릉으로, 백제 문화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입니다.&nbsp;</p></li><li><p><strong>동아시아 교류의 증거:</strong></p><p>무덤 양식과 출토 유물들이 중국 남조 양나라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며, 백제와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활발한 문화 교류를 증명합니다.&nbsp;</p></li><li><p><strong>고고학적 가치:</strong></p><p>도굴되지 않고 완전하게 발굴되어 백제 시대의 장묘 문화와 부장품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합니다.&nbsp;</p></li><li><p><strong>국제적 위상:</strong></p><p>당시 백제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는 증거로 평가되며, 백제사 연구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입니다.&nbsp;</p></li><li><p><strong>주요 발견:</strong></p></li><li><p><strong>지석:</strong></p><p>무덤의 주인공이 무령왕과 왕비임을 명확히 밝혀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nbsp;</p></li><li><p><strong>금속 공예품:</strong></p><p>금으로 만든 관 장식, 용과 봉황 장식의 칼, 글자가 새겨진 팔찌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nbsp;</p></li><li><p><strong>벽돌 무덤:</strong></p><p>중국 남조 양나라의 영향을 받은 벽돌 무덤 양식을 보여줍니다.&nbsp;</p></li><li><p>무령왕릉은 백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며, 동아시아 고대사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nbsp;</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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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20: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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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령왕릉</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achininai/dxqwkkn5c4aqzrwg/wish/3528971976</link>
         <description><![CDATA[<p>백제 무덤 중 유일하게 주인이 확인된 왕릉이자 도굴되지 않고 고스란히 발굴된 유적이다. 무령왕릉 말고도 무왕의 무덤으로 거의 확실시 되는 쌍릉도 있는데, 쌍릉은 주인은 확실시되었지만 역시 백제의 멸망 후 천수백년간 이미 여러 번 도굴당한 상태이고 무령왕릉처럼 주인을 확실시할 지석이 남아있지 않은 관계로 심증은 충분하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공식적인 명칭이 무왕릉이 아닌 쌍릉인 이유이기도 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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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21: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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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산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achininai/dxqwkkn5c4aqzrwg/wish/3528972683</link>
         <description><![CDATA[<p>충청남도 공주시에 위치한 산성으로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 웅진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공산의 산세를 그대로 살려 성벽을 쌓아 전체적으로 들쭉날쭉한 외형이 특징이다.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서쪽 문 금서루 말고도 성 곳곳에 크고 작은 정자들이 남아 있다.</p><p><br></p><p>백제가 멸망한 뒤, 북문인 공북루 인근의 땅에 마을이 조성되었고, 이 마을은 이라 불리게 되었다. 성안마을은 백제, 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1997년까지 같은 곳에 있었으며, 마을은 이후 진행된 문화재 발굴 및 관광지 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관련 다큐</p><p><br></p><p>이후 발굴 및 정비작업이 진행되었고, 2015년에는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인근의 다른 백제시대 유적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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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23: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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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산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achininai/dxqwkkn5c4aqzrwg/wish/3528972746</link>
         <description><![CDATA[<p><br/></p><p>공산성은 백제 웅진기의 왕성인 만큼 웅진 천도 이후에 축조되었는데요. 백제웅진기의 왕성인 만큼 웅진기 백제 도읍지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곳이며, 아울러 한성기와 사비기의 도읍지 구조 및 백제 도성의 변천 과정을 이해할 때에도 큰 도움을 주는 곳이라고 합니다. 또한 통일신라 때와 조선시대에는 공산성을 중심으로 지방 통치가 이루어졌던 만큼 치소성의 구조와 특징을 파악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단서 역할을 하기도 하는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 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p><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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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23: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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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산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achininai/dxqwkkn5c4aqzrwg/wish/3528972847</link>
         <description><![CDATA[<p>백제가 공산성으로 간 이유는 고구려의 공격으로 인해 수도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전사했기 때문이다 총 연장 2,660m의 고대 성곽으로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한다. 475년 백제가 고구려에게 한성이 함락되고 난 후 급하게 도읍지로 삼았던 곳이기 때문에 산세가 험하다석성은 대부분 조선시대 때 만들어졌지만 일부는 백제 초축 당시의 성벽도 확인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아예 토성으로 형성된 구간이 있기도 하다공산성에서는 성 내부에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건물지들이 발견되어 이 곳이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로 기능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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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23: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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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령왕릉</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achininai/dxqwkkn5c4aqzrwg/wish/3528973792</link>
         <description><![CDATA[<p>사적 제 13호인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백제 웅진시기 왕실의 자취가 깃든 곳으로 금강의 남쪽 구릉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일제 강점기 조사에 의하면 수십여기에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무령왕릉을 비롯한 7기의 무덤만이 정비되어 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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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25: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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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산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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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공산성(公州 公山城)은 사적 제12호로, 대한민국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소재하고 있는 성이다. 해발고도는 110m이다.</p><p><br/></p><p>공주 공산성</p><p>(公州 公山城)</p><p>(Gongsanseong Fortress, Gongju)</p><p>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사적</p><p><br/></p><p>종목</p><p>사적 (구)제12호</p><p>(1963년 1월 21일 지정)</p><p>면적</p><p>371,621.3m2</p><p>시대</p><p>삼국 시대</p><p>소유</p><p>국유, 사유</p><p>위치</p><p>공주 공산성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공주 공산성공주 공산성</p><p>주소</p><p>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 2번지</p><p>좌표</p><p>북위 36° 27′ 48″ 동경 127° 7′ 37″</p><p>정보</p><p>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p><p>백제역사유적지구</p><p>공주 공산성</p><p> 유네스코 세계유산 </p><p><br/></p><p>영어명*</p><p>Baekje Historic Areas</p><p>프랑스어명*</p><p>Aires historiques de Baekje</p><p>등록 구분</p><p>문화유산</p><p>기준</p><p>(ⅱ), (ⅲ)</p><p>지정번호</p><p>1477</p><p>지역**</p><p>아시아·태평양</p><p>지정 역사</p><p>2015년  (제39차 정부간위원회)</p><p>* 세계유산목록에 따른 정식명칭</p><p>** 유네스코가 구분한 지역</p><p>삼국시대의 성곽으로, 백제의 문주왕 원년(475) 한성에서 웅진으로 이주한 후 성왕 16년(538년)에 사비로 옮길 때까지 도성이었으며 그 후 신라·고려·조선 시대에도 행정과 군사적 요충지였다. 백제시대 토성 735m, 신라시대 석성 1925m, 총둘레 2,660m의 포곡형 산성이다.</p><p><br/></p><p>산성의 북쪽에는 금강이 흐르고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하는 천연의 요새로서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성곽의 길이는 2,660m이며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포곡형으로 원래 백제 시대에는 토성이었으나 조선 시대 대부분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총 8개의 유적지들 중 공주 2곳(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 4곳(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나성), 익산 2곳(왕궁리 유적, 미륵사지)이 세계 유산 등재 심사를 최종 통과했다. 이번 세계 유산 등재는 충청권에서는 최초로 선정되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f/fa/%EA%B3%B5%EC%A3%BC%EA%B3%B5%EC%82%B0%EC%84%B1-Gongsanseong-Fortress-3.jpg" />
         <pubDate>2025-07-26 01:25: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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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묘수의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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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고대 한족은 저승에는 온갖 종류의 야생 귀신과 악귀가 있어 죽은 자의 영혼을 해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무덤에 진묘수를 배치하는 목적은 악령을 막고 악령을 몰아내고 죽은 자의 영혼을 축복하고 보호하며 다음 생에서도 부와 명예를 계속 누리기를 바라는 천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p><p>무덤에 괴수를 놓아 무덤 주인을 지킨다는 관념은 중국에서 매우 오래된 것이다.&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A0%84%EA%B5%AD_%EC%8B%9C%EB%8C%80">전국 시대</a>부터 무덤에 입과 혀를 가진 뿔로 장식된 옻칠한 나무로 만든 추상적인 무덤용 짐승이 무덤에 개별적으로 등장했다.&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B6%81%EC%9C%84_(%EB%B6%81%EC%A1%B0)">북위</a>&nbsp;시대&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D%97%88%EB%82%9C%EC%84%B1">허난성</a>에서 출토된 진묘수는 사자 얼굴과 사람 얼굴을 하고 짐승의 발과 몸을 가졌으며 등에 세 개의 굽은 뿔이 있고 평판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수나라 장성의 무덤에서 나온 백자 진묘수는 기본 형태가&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8B%B9%EC%82%BC%EC%B1%84">당삼채</a>&nbsp;진묘수와 완전히 유사하다. 당나라에서는 이 진묘수가 쌍을 이루어 무덤 입구에 배치되어 무덤의 문을 지켰다. 우뚝 솟은 한 쌍의 뿔, 바깥쪽으로 뻗은 날개, 화려하게 흐르는 다양한 유약의 색 등 세부 사항을 강조한다. 심지어 서역의 호수 모습의 사람의 얼굴을 한 진묘수도 등장해 당시 문화 교류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p><p>무덤 안의 진묘수의 모양과 기능, 위치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유형과 네 가지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B6%98%EC%B6%94%EC%A0%84%EA%B5%AD_%EC%8B%9C%EB%8C%80">춘추전국 시대</a>의 초나라 양식인&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new" href="https://ko.m.wikipedia.org/w/index.php?title=%EC%B4%88%EC%8B%9D_%EC%A7%84%EB%AC%98%EC%88%98&amp;action=edit&amp;redlink=1">초식 진묘수</a>, 진한 시대부터&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9C%84%EC%A7%84%EB%82%A8%EB%B6%81%EC%A1%B0_%EC%8B%9C%EB%8C%80">위진남북조 시대</a>의&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new" href="https://ko.m.wikipedia.org/w/index.php?title=%ED%95%9C%EC%8B%9D_%EC%A7%84%EB%AC%98%EC%88%98&amp;action=edit&amp;redlink=1">한식 진묘수</a>, 수당 시대의&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new" href="https://ko.m.wikipedia.org/w/index.php?title=%EB%B3%B5%ED%95%A9%EC%8B%9D_%EC%A7%84%EB%AC%98%EC%88%98&amp;action=edit&amp;redlink=1">복합식 진묘수</a>(당식 진묘수)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초식 진묘수와 복합식 진묘수는 두 양식의 절정이며, 한식 진묘수는 과도기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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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26: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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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제 금왕관</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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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백제 금관은 백제 왕이나 귀족이 착용했던 금으로 만든 관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주로 왕의 머리에 얹는 왕관이나 관모의 장식으로 사용되었으며,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제관식과 같이 순금으로 만들어진 경우도 있고, 금동관처럼 금을 도금한 경우도 있습니다. </p><p>백제 금관의종류입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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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26: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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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령왕릉 역사적 의미</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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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무령왕릉은 백제 웅진 시대(475-538)의 대표적인 왕릉으로,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동아시아와의 활발한 교류를 보여주는 역사적 유물입니다.&nbsp;특히, 무덤의 주인이 무령왕임을 명확히 밝혀주는 지석이 발견되어 삼국시대 고분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합니다.&nbsp;</p><p><strong>무령왕릉의 역사적 의미:</strong></p><ul><li><p><strong>주인 확인:</strong></p><p>무덤의 주인이 무령왕임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지석이 발견되어 삼국시대 고분 연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nbsp;</p></li><li><p><strong>백제 웅진 시대의 중심:</strong></p><p>웅진 시대(공주)에 조성된 왕릉으로, 백제 문화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입니다.&nbsp;</p></li><li><p><strong>동아시아 교류의 증거:</strong></p><p>무덤 양식과 출토 유물들이 중국 남조 양나라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며, 백제와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활발한 문화 교류를 증명합니다.&nbsp;</p></li><li><p><strong>고고학적 가치:</strong></p><p>도굴되지 않고 완전하게 발굴되어 백제 시대의 장묘 문화와 부장품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합니다.&nbsp;</p></li><li><p><strong>국제적 위상:</strong></p><p>당시 백제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는 증거로 평가되며, 백제사 연구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입니다.&nbsp;</p></li></ul><p><strong>주요 발견:</strong></p><ul><li><p><strong>지석:</strong></p><p>무덤의 주인공이 무령왕과 왕비임을 명확히 밝혀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nbsp;</p></li><li><p><strong>금속 공예품:</strong></p><p>금으로 만든 관 장식, 용과 봉황 장식의 칼, 글자가 새겨진 팔찌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nbsp;</p></li><li><p><strong>벽돌 무덤:</strong></p><p>중국 남조 양나라의 영향을 받은 벽돌 무덤 양식을 보여줍니다.&nbsp;</p></li></ul><p>무령왕릉은 백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며, 동아시아 고대사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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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27: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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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제의 금동대향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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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높이 64㎝,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크게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4부분으로 구성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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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28: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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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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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제금동대향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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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백제금동대향로(이하 '대향로')는 1993년 12월 12일(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주차장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이후 조사 결과 해당 향로가 발견된 주차장 공사 현장이 백제 시대 왕실의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밝혀졌다.</p><p><br/></p><p>대향로를 언제 제작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대략 6세기 말-7세기 초라고 추정한다. 재야미술사학자 서정록은 2001년 출판한 저서 '백제금동대향로'(학고재 출판)에서 대향로를 제작한 시기가 520~534년쯤이라고 주장했지만, 학계에서 인정받지는 못했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7세기 초쯤이라고 보는 듯하다. 고구려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이래 내정의 혼란을 거듭하던 백제가 안정을 되찾고 꽃피운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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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28: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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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묘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achininai/dxqwkkn5c4aqzrwg/wish/3528975041</link>
         <description><![CDATA[<p>진묘수(鎭墓獸)는 고대 중국에서 무덤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상상의 동물 조각상을 말합니다 악귀나 잡귀로부터 망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진묘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진묘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양한 동물의 특징을 조합하여 만든 상상의 동물입니다. 등에 3~4개의 갈기가 달려 있으며,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무덤 입구 또는 외곽에 놓여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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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28: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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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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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주공산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achininai/dxqwkkn5c4aqzrwg/wish/3528975224</link>
         <description><![CDATA[<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82%BC%EA%B5%AD%EC%8B%9C%EB%8C%80">삼국시대</a>의 성곽으로,&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B0%B1%EC%A0%9C">백제</a>의&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AC%B8%EC%A3%BC%EC%99%95">문주왕</a>&nbsp;원년(475)&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disambig"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D%95%9C%EC%84%B1">한성</a>에서&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9B%85%EC%A7%84">웅진</a>으로 이주한 후&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B0%B1%EC%A0%9C_%EC%84%B1%EC%99%95">성왕</a>&nbsp;16년(538년)에&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82%AC%EB%B9%84">사비</a>로 옮길 때까지 도성이었으며 그 후&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8B%A0%EB%9D%BC">신라</a>·<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A%B3%A0%EB%A0%A4">고려</a>·<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A1%B0%EC%84%A0">조선</a>&nbsp;시대에도 행정과 군사적 요충지였다. 백제시대 토성 735m, 신라시대 석성 1925m, 총둘레 2,660m의 포곡형 산성이다.</p><p>산성의 북쪽에는&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A%B8%88%EA%B0%95">금강</a>이 흐르고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하는 천연의 요새로서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성곽의 길이는 2,660m이며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포곡형으로 원래 백제 시대에는 토성이었으나 조선 시대 대부분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총 8개의 유적지들 중 공주 2곳(<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A%B3%B5%EC%82%B0%EC%84%B1">공산성</a>,&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86%A1%EC%82%B0%EB%A6%AC_%EA%B3%A0%EB%B6%84%EA%B5%B0">송산리 고분군</a>), 부여 4곳(<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B6%80%EC%97%AC_%EA%B4%80%EB%B6%81%EB%A6%AC_%EC%9C%A0%EC%A0%81">관북리 유적</a>&nbsp;및&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B6%80%EC%97%AC_%EB%B6%80%EC%86%8C%EC%82%B0%EC%84%B1">부소산성</a>,&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B6%80%EC%97%AC_%EB%8A%A5%EC%82%B0%EB%A6%AC_%EA%B3%A0%EB%B6%84%EA%B5%B0">능산리 고분군</a>,&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B6%80%EC%97%AC_%EC%A0%95%EB%A6%BC%EC%82%AC%EC%A7%80">정림사지</a>,&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B6%80%EC%97%AC_%EB%82%98%EC%84%B1">나성</a>), 익산 2곳(<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C%99%95%EA%B6%81%EB%A6%AC_%EC%9C%A0%EC%A0%81">왕궁리 유적</a>,&nbs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mw-redirect" href="https://ko.m.wikipedia.org/wiki/%EB%AF%B8%EB%A5%B5%EC%82%AC%EC%A7%80">미륵사지</a>)이 세계 유산 등재 심사를 최종 통과했다. 이번 세계 유산 등재는 충청권에서는 최초로 선정되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6/%EA%B3%B5%EC%A3%BC%EA%B3%B5%EC%82%B0%EC%84%B1-Gongsanseong-Fortress-2.jpg" />
         <pubDate>2025-07-26 01:29: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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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산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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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조선 인조의 파천</p><p><br/></p><p>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는 공주로 파천을 하였다. 인조는 한양에 입성하여 경복궁 옛터에서 선조의 열 번째 아들 흥안군 제(興安君 瑅)를 왕으로 세웠다. 공산성 내의 가장 높은 곳에서 있는 쌍수정에 머물러 금강 건너편을 바라보며 반란 진압 소식을 기다렸다. 인조는 7일 동안 공주에서 머물렀다.공주 공산성(公州 公山城)은 사적 제12호로, 대한민국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소재하고 있는 성이다. 해발고도는 110m이다.</p><p><br/></p><p>공주 공산성</p><p>(公州 公山城)</p><p>(Gongsanseong Fortress, Gongju)</p><p>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사적</p><p><br/></p><p>종목</p><p>사적 (구)제12호</p><p>(1963년 1월 21일 지정)</p><p>면적</p><p>371,621.3m2</p><p>시대</p><p>삼국 시대</p><p>소유</p><p>국유, 사유</p><p>위치</p><p>공주 공산성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공주 공산성공주 공산성</p><p>주소</p><p>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 2번지</p><p>좌표</p><p>북위 36° 27′ 48″ 동경 127° 7′ 37″</p><p>정보</p><p>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p><p>백제역사유적지구</p><p>공주 공산성</p><p> 유네스코 세계유산 </p><p><br/></p><p>영어명*</p><p>Baekje Historic Areas</p><p>프랑스어명*</p><p>Aires historiques de Baekje</p><p>등록 구분</p><p>문화유산</p><p>기준</p><p>(ⅱ), (ⅲ)</p><p>지정번호</p><p>1477</p><p>지역**</p><p>아시아·태평양</p><p>지정 역사</p><p>2015년  (제39차 정부간위원회)</p><p>* 세계유산목록에 따른 정식명칭</p><p>** 유네스코가 구분한 지역</p><p>삼국시대의 성곽으로, 백제의 문주왕 원년(475) 한성에서 웅진으로 이주한 후 성왕 16년(538년)에 사비로 옮길 때까지 도성이었으며 그 후 신라·고려·조선 시대에도 행정과 군사적 요충지였다. 백제시대 토성 735m, 신라시대 석성 1925m, 총둘레 2,660m의 포곡형 산성이다.</p><p><br/></p><p>산성의 북쪽에는 금강이 흐르고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하는 천연의 요새로서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성곽의 길이는 2,660m이며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포곡형으로 원래 백제 시대에는 토성이었으나 조선 시대 대부분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총 8개의 유적지들 중 공주 2곳(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 4곳(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나성), 익산 2곳(왕궁리 유적, 미륵사지)이 세계 유산 등재 심사를 최종 통과했다. 이번 세계 유산 등재는 충청권에서는 최초로 선정되었다.[1]</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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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29: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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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륵사지 석탑</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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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우리나라 석탑중 규모가 가장크고 창건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진 석탑이고, 원래는 9층으로 추정되지만 반파되어 6층의 일부만 남아있다. 17~18세기 이전 1층둘레에 석충이 보강되고 1915년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운 상태로 전해졌다. 석탑은 1998년 구조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이듬해 해체수리가 결정되었고 2001년 해체조사에 착수하여 2017년 조립공정이 완료되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고대의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충실하게 잘 보여준다. 또한 고대건축의 실제 사례로써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우리나라 불탑건축 연구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화유산이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8/86/Mireuksaji_Stone_Pagoda_20190506002.jpg" />
         <pubDate>2025-07-26 01:29: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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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묘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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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s://padlet.com/teachininai/dxqwkkn5c4aqzrwg/wish/3528975511</link>
         <description><![CDATA[<p>진묘수는 1974년 7월 9일 국보 제 162호로 제정되었다.</p><p>진묘수의 높이는 30.9cm 길이는 49cm 너비는 29cm이다.</p><p>입을 뭉뚝하고 붉게 칠한 흔적이 있다.</p><p>콧구멍없는 큰 코에 눈과 귀가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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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26 01:30: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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