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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2-1학기 일본정치외교의 이해 by 김태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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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생각을 키우기 위한 공부</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2-04-06 03:29: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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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토론해 봅시다~</title>
         <author>teseus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1906751</link>
         <description><![CDATA[<div>오늘날 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55년 체제라는 보수질서의 이념적 좌표는 어디인가? 오늘의 일본은 55년 체제에서 얼마나 이동해 왔는가?</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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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6 03:32: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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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토론해 봅시다~2</title>
         <author>teseus7</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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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민주주의정치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한 정당이 38년간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어.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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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6 03:34: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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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동규</title>
         <author>LeeDonggyu</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1940898</link>
         <description><![CDATA[<div>1. 한 정당의 장기집권 배경<br>자민당의 탈이념적이고 유연한 경제노선 정책이 실제로 고도성장이라는 성과를 거두며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br><br>2. 내정과 외정의 연계에 있어 요시다 독트린의 성과<br>미국에 안보를 의존함으로써 미국과의 유대를 굳힘과 동시에 국내의 안보 관련 갈등을 잠재우고 경제발전에 집중하는 균형잡힌 성과를 내지 않았나 생각한다.<br><br><br>3. 오늘의 일본에서의 55년 체제의 흔적<br>보수당이 정권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자체적인 안보 수행 능력을 확장하려 하는 노선이 닮아있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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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6 04:10: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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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3059 최재혁 55년 체제</title>
         <author>choi_jaehyuk</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2439826</link>
         <description><![CDATA[<div>&nbsp;전후 일본은 자유로운 풍토를 바탕으로 여러 개의 정당이 출현하였다. 본격적인 정당정치로 일본의 정치의 허리를 이루게 되었는데 보수쪽에서는 일본자유당, 일본진보당, 일본협동당이 형성되었고 혁신 측으로는 일본사회당, 일본공산당이 등장하게 되었다.&nbsp;<br>&nbsp;<br>&nbsp;이후 냉전시대로 인해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국가로 양분화 되고 미국의 위기의식으로 인해 일본을 재무장시키고 자유진영의 방패막이로 삼으려 했지만 개헌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 밖에 없었기에 요시다 시게루는 대신 '보수본류'를 택하면서 일본의 보수정치의 안정을 꾀하려고 했다.&nbsp;<br><br>&nbsp;본격적으로 보혁(보수와 혁신)대립구도가 확립되면서 하지만 보수의 통합당인 자민당이 과반수인 64퍼의 의석을 확보했고 유연한 정치적, 경제적 정책을 펼치면서 38년간의 긴 기간동안 자민당의 지배 하에 일본이 다스려졌다.<br><br>&nbsp;그렇다고 혁신세력과 혁신정당이 마냥 가만히 있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미일안보조약에 있어서 군국주의 태동을 감시하고 이것을 저지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시위를 벌였으며 그 중 일본교원노조는 미군기지와 재군비, 원수폭 금지운동을 활발히 펼쳤었다. 기시 내각은 이를 탄압하기 위해 경찰관직무직행법을 국회에 제출해 미일안보조약을 개정하려고 했지만&nbsp; 반대세력의 운동때문에 큰 난관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개정은 되었지만 헌법을 바꾸는 데 있어서는 저지를 할 수 있었고 그 의의는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한 것이었다.<br><br>이 이후에도 거시적으로는 자민당은 일본의 질서를 주도하고 미시적으로는 사회당이나 공산당 등의 혁신정당이 '혁신지자체' 라는 지방단체장을 맡음으로써 견제를 이어나가 우경화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냈다.<br><br>&nbsp;<br>&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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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6 11:34: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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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3401 주현우 </title>
         <author>jhw01049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2496904</link>
         <description><![CDATA[<div>55년 체제는 왜 성공했는가? 를 따져보자면, 우선 야당은 왜 실패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수밖에 없다. 55년 체제는 집권 자민당이 극히 일부의 시기를 제외한다면 안정적으로 중의원 과반을 차지한 채 진행되었고, 이는 곧 자민당에 대항하는 사민당, 공명당, 민사당, 공산당 등이 그 기간 동안 지리멸렬하게 패배했음을 뜻한다.<br><br>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야당은 왜 실패했는가? 실패 원인을 따지자면 그 책임은 우선 55년 체제 기간동안 가장 큰 야당이었던 일본사회당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당은 왜 실패했는가?<br><br>가장 큰 원인은 노선투쟁의 장기화를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1950년대 사회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긍정하는 맑스-레닌주의 정당이냐, 아니면 이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정당이냐의 노선투쟁이 존재했다. 이는 당시 시대상을 따져보면 있을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상황이었다. 당장 현재는 집권당이 된 독일 사민당도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의 채택 이전까지는 어느정도 노선에 맑스주의가 포함되어 있었다.<br><br>문제는 이러한 노선투쟁이 1950년대를 넘어, 1960년대를 넘어, 1970년대를 넘어, 다시 1980년대까지 지속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권의 취득을 위해 정당은 어느 순간 대중정당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사회당은 그러지 못했다. 1960년대의 노선투쟁에서도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1970년대의 노선투쟁에서도 결국 사민주의정당으로의 이행은 이뤄지지 않았다.&nbsp;<br><br>결국 사회당이 사민주의와 대중정당 노선을 결정한 것은 1986년의 일로, 소련이 붕괴되고 탈냉전이 다가오기 겨우 5년 전의 일이었다. 그동안 사회당은 노조의 조직표 정도에 의존해 선거를 치뤘고, 그 결과 선거의 판세를 결정하는 대중은 사회당에 표를 던지지 않았다. 사회당의 중의원 의석수가 1958년 이래 단 한번도 150석을 넘기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의미하는 바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 사회당이 취할 수 있었던 득표의 파이는 민사당, 공명당, 공산당 심지어는 자민당의 좌파블럭에게 넘어갔다.&nbsp;<br><br>사회당은 1995년 집권하고 나서야 적극적으로 현실적 노선을 받아들이지만, 자사사 연립정권이 급작스럽게 성립되었듯이, 무라야마의 총리 취임에 따른 사회당의 노선전환도 심각하게 급작스러웠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무라야마의 말처럼, 1993~5년에는 사회당 의원들조차 정권취득의 집념이 사라진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의원들조차 여당 생활이 불편하다고 하는 망발을 저지르고 있는 와중에, 지지층이 그런 정당을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br><br>갈팡질팡하던 사회당은 결국 있던 지지층마저 신진당과 민주당으로 떨어져나가는 결과를 맞았고, 여기에 사회당에게는 지극히 불리할 수 밖에 없었던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의 변환까지 겹쳤다. 결국 1과 2분의 1 체제에서 2분의 1을 담당하던 정당은 기어코 16분의 1을 거쳐 460분의 1까지 떨어지게 되었다.<br><br>어쨌든 55년 체제는 사회당의 실패로 점철된 시대였다. 물론 어떤 순간순간을 살펴보면 사회당에게 어느 정도 운이 따라주지 않은 면도 존재하기는 하나,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당의 실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민당이 당 내부에서 변혁을 거치면서 대중정당화를 이뤄낸 반면, 사회당은 그렇지 못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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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6 12:18: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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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68 송수민 장기집권과 우경화</title>
         <author>kuroshe7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3731343</link>
         <description><![CDATA[<div>역사적으로 자민당을 통한 정치적 경제적 성공과 함께 미야자키 감독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국민의 비난을 받는 정책을 고집있게 시행하는 혁신당과 국민의 시선과 비난을 우려하여 상황을 지켜보는 자민당의 차이에서 일정부분 국민의 지지 방향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민주주의정치 체제이기 때문에 더욱 국민의 지지와 비난은 집권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br><br>미야자키 감독은 역사인식과 현재 일본 정치에 대한 연관성을 언급한다. 그들의 기억은 자민당의 집권 하에 화려했던 고도성장의 시기에 멈춰있으며 과오가 존재하는 지난 역사에 대한 인식의 부족 역시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를 가지는데 영향을 준다.<br><br>미야자키 감독의 인터뷰에서 한가지 더 흥미로웠던 이야기가 있다. 일본의 자민당은 다수가 지지해서 된 것이 아니라 다수가 투표하지 않아서 자민당이 된 것이라고. 자민당이 될 것이라는 신뢰와 잘못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자민당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힘을 잃은 혁신 세력 지지자들 또한 투표를 해도 자민당이 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투표율은 저조했고 한 정당이 장기집권하는 체제로 유지되었을 것이다.<br><br>자민당은 기업활동에 우호적이었으며 이들의 장기집권이 경제적 안정에도 간접적인 기여를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정적인 자민당의 정치적, 경제적 네트워크의 긍정적인 힘은 무시할 수 없으나 부정적안 효과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장기집권과 우호적인 기업활동은 정치가 관료, 기업과의 유착관계를 만들고 사회의 특정 세력의 소외를 만든다. 유착관계를 끊는 것이 새로운 일본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이 발판을 만드는 자, 그 발판을 밟고 올라가는 자, 그리고 그곳에 선 자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같이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없다면 일본은 잘못된 우경화의 길 밖에 나아갈 수 없다.&nbsp;<br><br>한 기사에서는 일본의 장기집권의 한순간의 몰락을 비판하기도 했다. 자민당을 지지하는 기업들의 몰락이 정치세력의 몰락까지 이어온 것이다. 일본은 많은 것들이 하나의 체제로 묶여있으며 정치체제도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쉬이 무너지지 않으나 한번 작은 금이라도 가기 시작한다면 산산조각나버리는 것이다. 자민당을 통한 고도성장과 장기집권에 대한 자부심 뿐만 아니라 더 비판적인 사고로 정치 체제를 바라보아야할 필요가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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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01:46: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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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53 엄희경 자민당의 장기집권</title>
         <author>cord20010306</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3980004</link>
         <description><![CDATA[<div><br><br>Q. 일본은 민주주의정치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한 정당이 38년간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어.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br><br>일본은 1955년 이래, 민주당의 집권은 두 번에 불과하다. 이러한 자민당의 장기집권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은 자민당, 아베 신조의 정치 정책이 인기가 없음에도 장기 집권이 가능하게 된 이유로, 장기적인 정치적 무력감과 불신감이 일본 전체에 만연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투표율이 저조하게 된 것을 꼽았다. 그는 과반수의 지지를 얻은 것이 아닌 투표를 하지 않아서 자민당이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투표율이 70%에 육박했던 2009년에 자민당은 민주당에 집권당이라는 타이틀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자민당이 집권세력으로 복귀했던 2012년엔 투표율이 60% 이하로 하락했다. 이는 투표 및 정치에 국민들이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다.<br><br>또한 자민당에는 다양한 후보가 있고, 대안 야당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도 자민당의 장기집권의&nbsp; 한가지 이유가 될 수 있다.&nbsp; 현재 일본 중의원에서 자민당이 276석으로 과반수이상을 차지 하고 있다.&nbsp; 반면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은 113석으로 전체 의석의 465석의 24%에 불과하다. 이렇듯 대안 야당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자민당 내 다양한 후보가 있기에 한 가지 의견 혹은 대안을 철회하더라도 다른 후보를 내세울 수 있다는 점이 장기집권의 이유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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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05:23: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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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2889 고은서 국가의 책임과 국민의 책임</title>
         <author>hwangyeolj</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4682619</link>
         <description><![CDATA[<div>국가의 책임과 국민의 책임<br><br> 자민당의 장기 집권화의 비결을 묻는 외신 기자의 질문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망설임없이 대답한다. 그것은 '일본의 투표율이 매우 저조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br>즉, 일본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br><br> 그렇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남기정 서울대학교 교수가 설명한다.<br> 전쟁을 강행했던 1920년대 자국의 과거 모습을 모델 삼아 바라보고 있음을 언급한다. 또한, 안보조약 등의 역사를 거치면서 국민이 국가에게 가지는 정치적 기대감은 갈수록 하락했다.<br><br> 일본 정부는 과거를 우러러보며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역사에 있어 과거는 참고사항이 될 뿐, 그 자체로 돌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내용이 옳든 그르든 말이다. 더군다나 그 과거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면, 그것 자체만으로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규탄받아야 한다.<br> 이러한 행보는 일본인들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일조했다고 본다.<br><br> 국가는 국민을 위해 힘써야 한다. 그것이 국가 존재의 의의이자 의무이며이며,&nbsp;그 능력을 상실한 경우 국가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br> (모든 정치적 인물 및 단체가 그래야겠지만 특히)자민당은 집권한 이상, 국민이 '거부하는' 정책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들의 불신과 외면을 되돌리는 것도 국가의 몫이다.<br> 국민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에 대한 신뢰도가 없다고 하여 정치적 관심을 끊어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가? '거부'만이 표현의 방식이 아님을 명확히 해야 한다.<br> 국가와 국민은 각자 맡은 책임이 존재한다. 두 존재가 서로 공존해야 비로소 '일본'이라는 국가가 완성될 것이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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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14:17: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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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111974 응웬테바오</title>
         <author>ftghkcm9229</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4764672</link>
         <description><![CDATA[<div>오늘날 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55년 체제라는 보수질서의 이념적 좌표는 어디인가? 오늘의 일본은 55년 체제에서 얼마나 이동해 왔는가?<br><br><br>1950년대는 일본에게 큰 변화를 주고 지금의 경제대국에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중요한 변환점이 된 때였다. 당시 패전국으로써 연합군의 점령 하에서 많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일본은 한국전쟁의 반발과 함께 미국의 동맹국으로 독립하게 되면서 경제력의 발전을 이루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내각이 존재했지만 연합군의 점령 하였기에 이들의 명령에 따라야 했던 정치체제에서도 변화가 이루어졌다. 이는 자국을 대변하는 정치체제로 변화 하였으며, 보수와 진보 양당의 대립구조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두 세력 간의 대립에서 보수의 승리로 인해 단독 정당 체제가 형성되었다. 보수의 정당은 오랜 기간 정치 세력을 유지했다. 이것을 ‘55년 체제’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br>이 ‘55년 체제’는 1993년 호소카와 연립 내각이 들어서기까지 이어졌으며, 보수의 단독 정당이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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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14:57: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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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20110268 오채연 38년간의 장기집권</title>
         <author>ocy200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4906638</link>
         <description><![CDATA[<div>&nbsp;일본은 자민당이 38년간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는데, 이 장기집권은 단순히 야당이 열세했다는 하나의 이유로 설명되기엔 부족할 만큼 당시 여러가지의 상황이 맞물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야당이 내세운 정책이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당시의 다양한 상황이 존재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자민당의 장기집권에도 납득이 갈 것이다.&nbsp;<br><br><br></div><div>&nbsp;일단, 자민당은 ‘성장제일주의’의 관념에서 여러가지 정책을 제시하였다. 이를 중점으로 민생의 안전과 미일안보체제의 유지를 위한 정책을 확장해 나갔다. 그에 반하여 사회당은 자민당의 지지를 꺾을 만한 효과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정권교체 가능성을 더욱 감소시켰다. 정책의 결정은 여당의 관할이 되었으며, 이는 ‘파벌 정치’를 초래하게 되었다. 일본 정치에서 나타난 파벌은 독특한 선거제도 하에 발전되었으며, 후원회를 유지와 운영 등 다양한 요인들이 파벌을 선택하도록 만들어졌다. 이렇게 자민당 내에 자리잡은 파벌정치는 파벌 간 경쟁과 협조를 반복하며 장기집권이 가능해질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을 생성하였다.&nbsp;<br> 이렇듯 자민당이 강조한 성장제일주의와 파벌정치가 일본이 민주주의정치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38년간 장기집권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바라보는 바이다. <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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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7 16:15:1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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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308 김재우 </title>
         <author>watchagongyou</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6736229</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이 우경화 되고 있다는 견해가 떠오르는 이유를 일본 국민의 정치 무관심이 부른 자민당의 장기집권으로 바라 볼 수도 있다. 또한 야당의 연속적인 실패가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켜 현재의 일본으로 도래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 민주주의의 근원을 살펴 본다면 일본의 우경화는 시작부터 정해진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br><br>전전의 일본은 천황이라는 독보적인 통합의 상징이 존재했다. 천하를 평정해 일본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한 시대든, 전국시대의 혼란스러운 정국의 시대든 천황은 (비록 권력은 없어도) 언제나 최상위 권위자로서 일본 통합을 상징하는 신성불가침한 존재였다. 이러한 존재가 메이지 유신에서 권력과 권위의 정점을 찍고 그 여느 때보다도 일본 통합을 상징하는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 매김 하였다. 덕분에 전후 일본은 천황의 권위와 맥아더의 권력으로 군국주의 국가가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 하는데 성공한다.<br><br>이처럼 일본은 천황의 권위로 일본 국민을 통합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탄생 과정인데, 일본 국민이 간절히 원해서 그들 스스로 민주주의를 이루어 낸 것이 아니다.&nbsp; 6.25 전쟁, 프랑스혁명, 미국 독립혁명 등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들이 직접 이루어낸 민주주의이다. 하지만 일본은 천황의 권위 아래 맥아더의 권력으로 이루어낸 인위적인 민주주의이다. 물론 일본의 민주주의도 다른 민주주의 국가랑 다를 건 없으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br><br>하지만 현재 일본의 우경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본 민주주의의 근원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자신들이 선택한 민주주의가 아닌 체제 속에서 일본 국민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일본의 우경화는 갑작스러운 현상도 아니다. 이미 20여년 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남기정 교수는 아베 정부를 메이지 유신의 계승자라 말한다. 메이지 유신의 주역인 조슈 번을 정치 기반으로 삼은 아베 정부가 일본 경제 불황 속에서 메이지 유신의 후광과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는 정책들로 나타나면서 본격적으로 우경화 우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1930년대 일본이 극심한 불황 속에서 본격적으로 군국주의 체제로 돌입 했듯이 일본은 이번에도 이와 비슷한 결정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한 원인을 55년 체제 속에서 자민당의 장기집권이라 설명할 수도 있다.&nbsp;<br><br>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내면화 하지 못한 일본인들의 교육관이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주어진 대가 없는 평화로운 민주주의를 일본인들이 후대에 명확한 교육관으로 남길 필요성이 있었을까? 때문에 정치혁신을 불러 일으킬 원동력인 젊은 층은 정치에 무관심하게 된 것이고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중장년층만이 정치에 참여하게 된 것은 아닐까.&nbsp;<br><br>하지만 결국에는 미야자키 감독이 말한 것처럼&nbsp; 자민당의 장기 집권 같은 현상은 영속적인 것이 아닐 거라고 예상해 본다. 아무리 인위적인 민주주의라 할 지라도 국민의 행동을 좌지우지 할 천황의 권위는 절대적이지 않게 되었고 일본 국민들은 참여만 안 할 뿐이지 이미 성숙한 민주 국가의 국민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우경화라는 현상에 제동을 거는 날이 오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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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8 17:53: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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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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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303</title>
         <author>hsuwei85</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6752841</link>
         <description><![CDATA[<div>&nbsp; 자민당의 38년간의 장기집권 가능한 것은 주요 반대세력인 사회당이 자민당과 대항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이상적인 이념만 가지며 성과를 올리지 않았다. 쇠퇴한 길에 가게 될 수 밖에 없었다. 반대로 보면 자민당이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경제고도성장의 성과를 거뒀다. 55년체제는 1993년에 끝이라고 했지만 지금까지도 영향을 많이 끼친다.<br><br></div><div>&nbsp; 현재까지 자민당이 계속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이유는 과거에 경제정책이 성공한 것도 있었지만 투표도 그중에 하나인 것 같다. 두 번째 영상은 기자분이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왜 자민당이 항상 선거에서 이기냐고 물었을 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답 동감한다. 자민당이 전부의 지지를 얻은 게 아니라 다들 투표를 안 해서 그런 결과가 되었다고 했다. 일본인들 특히 젊은이 정치에 대해서는 무관심이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좀 놀랐다. 유튜브에서 이런 영상을 봤었는데 어떤 유튜버가 길에다가 일본 젊은이에게 왜 정치에 관심이 없냐고? 왜 투표 안하냐고 물었는데 ‘지금의 사회에 그렇게 만족하지 않지만 투표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답을 주었다. 정치에 대해서 아주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을 찬성한다. 자민당의 지지자가 많지만 영원히 아니다. 현재 사회에 불만이 있어 바꾸고 싶으면 전 국민이 나와서 투표하는 것은 낫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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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8 18:05: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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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210988 신민호 일본의 정치적 무관심</title>
         <author>minhomino0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117726</link>
         <description><![CDATA[<div>&nbsp;누군가에게 우리나라의 정당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누구는 민주당, 누구는 국민의힘, 누구는 정의당 등 다양한 계열의 정당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유독 많은 사람들이 '자민당'만을 떠올리며 대외에서도 일본은 자민당의 국가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진보적 정당의 민주당이 집권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을까?<br><br>내가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선거방식과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 그리고 그와 반대로 또 다른 대형 유권자들인 고령층의 자민당 사랑, 마지막으로 가장 큰 일본의 총리 결정 방식이다.<br><br>우선, 일본의 의원 선거에서의 투표 방식은 우리나라처럼 도장을 찍음으로써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아닌, 직접 손으로 후보의 이름을 쓰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름 또한 한자로 쓰는 일본이기에 한자를 잘못 쓰면 해당 표는 무효표가 되며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던 후보의 자손들에게 투표하는 경향이 많다. 그들은 성이 같기에 틀릴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선거는 정책 싸움이 아닌 이름 싸움이라고 불리운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로 인해 좋은 정책을 지닌 후보나 신인 후보들은 선거에서 득표를 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으며 자민당의 장기집권으로 정권이 달라진 적이 없을 뿐더러 바뀐 정권의 바뀐 정책을 경험한 적이 없던 청년들은 '다음 총리는 어차피 자민당'이라는 인식을 가진 채 투표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2017년 중의원 선거에서의 20대 투표율은 34%에 그쳤다)<br><br>또한 일본 자민당 집권 이래 일본은 거대한 호황기를 맞았었다. 그 당시 일본의 청년세대였던 이들은 이제 중장년층 혹은 고령층이 되어있다. 그들은 일본의 호황기 시절의 자민당을 보며 자민당이 있었기에 국가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청년을 제외한 대다수의 유권자인 중장년 혹은 고령층은 자민당에게 표를 던지게 되고, 어차피 정권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정치에 무관심한 청년들은 표를 던지지 않기에 정권과 정책은 항상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nbsp;<br><br>마지막으로&nbsp; 일본은 유권자의 직접 투표가 아닌 국회의 다수파가 총리를 결정하는 의원 내각제를 택하고 있기에 국가의 근본이 되는 '민심'보다는 정치 파벌 세력이 총리 선출의 기틀이 된다. 그렇기에 국회의 다수파인 자민당, 그 내에서도 어느 파벌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총리의 정책이 좌지우지 된다고 볼 수 있다. 자민당 에는 여러 개의 파벌이 존재하며 그들은 각자 다른 정치적 노선을 취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파벌은 우리나라에게도 익숙하며 일본의 우경화를 재촉하던 '아베 신조'의 '호소다파'이다. 호소다파는 대표적인 일본 보수 본류이며 자민당 내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기에 자연스레 보수적 성향을 지닌 인물이 총리에 오를 가능성이 크며 그는 자신의 힘이 아닌 파벌의 힘으로 총리가 되었기에 그들의 입김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nbsp;<br><br>이것이 현재 일본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들이며 이것들을 혁파하기 위해서는 선거 방식의 개편과 내각제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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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9 03:02: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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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3 정은채</title>
         <author>spring_crb</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168093</link>
         <description><![CDATA[<div>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배운 것은 일본의 정치적 균형 즉, 좌익과 우익이 세력균형을 할 만큼 좌익세력이 크지 않다는 것, 즉 좌익 세력의 붕괴와 자민당의 일당우위체제가 영속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학생 운동의 실패로 좌익 세력은 붕괴했고 정치적 균형은 붕괴되었다.&nbsp;<br><br></div><div>자민당이 38년간 일당우위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드문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정권교체는 민주주의에서 굉장히 중요한 정치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이벤트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정치형태는 비민주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형태라서 민주주의 국가인 일본에서 나타난 것이 조금 놀랐다. 일본이 그렇다고 해서 비민주주의 국가인 것은 명백히 아니다. 정권도 ‘선거’를 통해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치적 참여 역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든다. 특히 국민들의 정치 참여 부분이 상당히 미흡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일본은 선거 참여의 벽이 굉장히 높다고 느꼈다. 투표를 진행할 때, 일본은 직접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야 하는 특이한 투표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단순히 도장을 찍는 것보다는 이름을 적는 것이 훨씬 번거로운 작업이고 의지가 없는 사람들은 투표장까지 가는 것을 포기해버릴 것이다. 이런 벽의 존재가 국민들이 정치를 외면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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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9 05:02: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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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3195</title>
         <author>wenjingcai546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180703</link>
         <description><![CDATA[<div>냉전 후 일본 정치의 우경화는 정치 사조로서 일본 정계, 언론,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일본 정치의 우경화 경향은 한층 더 격화되었고, 일본의 보수 역량은 이미 점차 일본 정계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일본이 전후 평화 발전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br><br>1955년 자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일본은 점령 상태에서 막 주권을 회복했는데, 이 때의 일본은 아직 원기가 회복되지 않은 패전 국가였다. 80, 90년대 이후에 일본은 세계 일류 선진국이 되었고, 경제적으로 90년대에 일본은 이미 세계 2위를 차지하였다. 자민당의 치적이 현저하게 드러나자 그의 정치적 라이벌인 좌파 정당들이 자민당을 비난하는 것은 매우 무기력해 보인다.<br><br>우익은 그 자체로 정치적 성향을 묘사하는 정치적 단어이다. 일본의 일반 국민들 대부분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으며, 정치에 대한 영향력도 자연히 제한되어 있다. 비록 그들이 현실에서 절대적인 소수이지만, 정치는 종종 한 나라의 방향을 결정하고, 또한 소수가 다수의 운명을 결정하는 한 분야이기 때문에, 왜 우익의 수가 많지 않더라도 일본이 여전히 전반적으로 우경화되어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1990년대의 일본 정세는 격렬하게 요동쳤다. 일본이 평화 발전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회당은 군소 당파로 전락했고, 사회당을 대표로 하는 일본 좌익 정당은 약화되어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일본 정치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역할 다른 정당들은 강령상 기본적으로 보수적 우익 정당에 속해 있으며, 일본 정치 전체가 보수적 우익에 의해 독점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br><br>나는 일본 국민들이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 일당 장기 집권을 고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선거제도에 대해 요즘 젊은 일본인들은 무관심하다고 할 수 있다. 투표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자민당을 옹호했던 구세대 일본인들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자민당의 장기집권화의 원인으로 일본의 낮은 투표율을 꼽았다. 그래서 자민당의 장기적 일당 집권으로 이어진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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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9 05:46: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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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9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199451</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민주주의 정치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한 정당이 38년간 장기 집권을 했다. 그러면 왜 한 정당만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을까?<br>&nbsp;55년 체제의 상황을 보면 냉전시대와 같은 시대였다. 자본주의인 미국과 사회주의인 소련이 냉전 중일 때, 일본에서는 55년 체제가 시작되었다. 55년 체제와 냉전. 이 둘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 55년 체제가 시작되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우선 55년 체제에서 당시 핵심세력인 소련 등의 사회주의를 지원하는 사회당에 저항하기 위해 자유민주당이 설립되었고, 현재까지 일당우위 상태이다. 일본 국내에서는 사회당을 비롯한 서방국가에서 탈퇴하고자 하는 핵심세력이 확산되었다. 미국입장에서는 일본이 소련과 협력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 보수세력의 힘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보수세력인 민주당은 이 흐름에 맞춰 미국의 지휘하에 일본을 안전하게 운영하고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일본을 세계 일대 부강국으로 성장시켰다. 이러한 경제발전은 경제계에서도, 그리고 국민에게서도 큰 지지를 받는 정치가 되었다. 나는 이러한 미국 정부의 지원도 55년 체제에 한 정당의 장기집권의 큰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한다.<br>&nbsp;지금도 일본에서는 자민당이 정권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은 일본의 투표율이 낮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투표율이 낮다는 의견을 듣고 현재의 투표율은 현재 장기집권의 이유이고, 55년 체제는 또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투표율이 낮은 데에는 젊은 사람들의 저조한 투표율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어떤 조사에서 투표하지 않은 큰 이유들로 ‘지금 살고있는 지역에서 투표할 수 없다’, ‘선거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선거에 가는 것이 귀찮다’ 등의 이유들이 나왔다. 이런 조사결과에 관해서는 나도 공감하는 바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지방에서 상경하는 사람들과, 본가와 떨어진 타 지역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주민표를 옮기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상태로 투표를 하게 되면 본가에 내려가서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한국은 사전투표라는 제도가 있어서 지역에 관계없이 투표를 할 수 있지만, 일본은 부재자투표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온라인으로 처리할 방법이 없어서 직접 공관에 가서 처리해야 하는 등 불편한 이유들이 많아서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적어 투표에 참여하기 힘들다.&nbsp;<br>투표율을 상승시키기 위해 어떤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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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9 06:37: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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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7110309 자민당의 장기 집권체제</title>
         <author>songkim158a</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244483</link>
         <description><![CDATA[<div>55년 체제는 일본에서 자민당, 즉 자유민주당과 사회당이 2대 정당으로 일본 정치계를 양분하던 체제를 말하며 이는 1955년에 성립되었기 때문에 55년 체제라고 말한다.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 사회당이나 일본 공산당 등이 합법화 됨과 동시에 보수 정당이 난립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후 1951년에 일본 사회당이 평화 조약과 미일 안보 조약에 대한 견해 차이로 우파 사회당과 좌파 사회당으로 분열되었으나 보수 정권에 의한 일본의 민주화와 비군사화를 철회하려는 개헌에 대항하기 위해 호헌과 반 안전보장조약을 내걸고 1955년에 사회당 재통합을 이루게 된다. 결국 일본 사회당의 통합에 위기감을 느껴 당시 보수 정당이었던 일본 민주당과 자유당이 통합을 이루어 자유민주당이 탄생하게 된다.&nbsp;<br><br></div><div>보수 세력인 자민당은 “개헌, 보수, 안보 수호”를 전면에 내세우는 반면 진보 정당인 사회당은 “호헌, 혁신, 반안보”를 전면에 내세우며 2대 정당 체제가 성립되었다. 하지만 결국 1955년부터 1993년까지 자민당이 약 38년동안 장기집권을 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자민당이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br><br></div><div>50년대 후반에 과거 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가 등장하며, 이때부터 자민당은 안보조약 개정 등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평화헌법을 바꾸고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나가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에 반대하는 일본 진보세력은 안보 투쟁을 대대적으로 벌여서 좌파와 우파의 갈등은 더욱 고조되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좌우의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하면서 60년대에 등장한 자민당의 “이케다” 내각은 여러 사회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수출주도 고도성장책을 내놓습니다. 나라에 부가 상승하면 국민들 또한 만족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경제 발전은 나날이 큰 폭으로 상승을 하게 되고 이에 따라 국민들은 투쟁적인 진보 사회당 세력에 관심을 주지 않기 시작합니다. 반면에 자민당의 큰 전략은 성공하여 국민들의 지지율은 높아져 갔습니다. 이는 자민당의 “이케다” 내각의 고도성장책으로 인해 체제에 순응적인 국민들을 만들어 냈다. 결국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자 과거 전쟁시기의 가난이 지긋지긋하던 일본사회는 체제에 순응하는 보수토양이 커지기 시작했고, 재벌과 자민당의 기득권 세력은 텐노를 중심으로 국가주의 보수 프로파간다를 점차 성공시켜 나갔습니다. 이는 자민당의 장기집권체제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br><br></div><div>이에 반해 진보좌파 세력은 점차 힘을 잃어가고, 국민들은 관심조차 주지 않기 시작하여 60~70년대에 극단주의 치닫게 됩니다. 이는 결국 적군파, 중핵파, 전공투 등의 반체제 운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는 결국 일본 국민들에게 진보좌파세력의 인식을 더욱 나쁘게 만들고 실망시키게 합니다. 이 또한 결국 자민당에게 좋은 영향을 가져다 주어 자민당의 장기집권체제에 도움을 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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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9 08:40: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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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1811319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351565</link>
         <description><![CDATA[<blockquote>일본 정치의 우경화는 1980년대부터 진행돼 아베정권으로는 최고조에 달했다. 보수파 즉 자민당은 55년차제에서 개발주의로 정부가 일본경제에 깊게 개입하며 이익유도형정치이며 국제협력적인 외교에서 미국이나 아시아 간에 긴장감을 가지지 않고 안전 보장은 모두 미국에 맡겨 오로지 경제로 집중하는 정책을 실행했다. 그리고나서 80년대부터 미일 경제 마찰이 문제화하여 국내에서 이익유도장치의 혜택에서 가장 먼 층부터의 비판이 늘어났다. 그리고 국외에서도 “일본은 미국에서 수호되기만 하면서 국제 공헌하지 않다”고&nbsp; 비판을 받았다.<br>나카소네 정권이 신자유주의적 정치를 실행하기 시작했다. 이 것은 “경제 활동에의 국가 개입을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라는 것을 신조로 했다.&nbsp;<br>외교면에서는 아시아에서의 화해를 중시하는 로선도 있었지만 오키나와전쟁 이후 “일본도 안전 보장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흐름이 일어났다.<br>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에 되며 국가 권력은 관저•내각에 권력이 집중하며 외교 보안 면에서는 더 적극적인 안전보장이 할 수 있게 실행했다.&nbsp;<br>정부 조직으로서는 수상 주변에 권력이 집중하게 되었다.<br>이렇게 55년자체부터 일본 정치는 우경화하고 있다.<br><br></blockquote><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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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9 13:02: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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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20110255 이세영 자민당의 장기집권</title>
         <author>jennyda1013</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377475</link>
         <description><![CDATA[<div>냉전이 격화됨에 따라 미국의 대일 점령정책은 비군사화, 민주화를 중점으로 한 2d 정책에서 일본 부흥 강화 정책으로 바뀌었다. 중국 대륙에서 공산당이 빠르게 우위를 점하자 미국은 그에 대응할 새로운 거점으로 일본을 택한 것이었다. 자민당 창당에는 미국 또한 일조를 했는데, 일본이 사회주의에 편입될 것을 경계한 미중앙정보국이 경쟁 구도에 있던 보수파에게 서로 합칠 것을 권하며 수년 동안 자금을 지원했다고 한다. 냉전 체제로 인해 우리나라는 남북이 갈라져 각기 다른 정부가 세워졌다면 일본은 국가 내에서 하나의 세력만이 집권하는 독재의 시대가 펼쳐졌다. 물론 두 사건을 동일한 선상에 놓고 본다는 뜻은 절대 아니며, 일본 또한 미소 간 냉전의 여파로 정치적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거에 의미를 두었다.<br><br></div><div>해당 영상에서 외신 기자의 질문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답이 매우 인상 깊다. ‘자민당은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은 게 아니에요. 다수의 시민이 투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하를 얻은 것이죠.’ 자민당의 장기 집권 요인에는 위에서 언급한 외부의 관여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저조한 국민의 정치 참여율이 지금 현재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치지 않나 싶다. 자민당이 본격적으로 집권한 1960~70년대 일본은 막대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였기 때문에 그 시대를 활발히 살았던 중장년층들은 ‘자민당이 집권하면 잘 먹고 잘 산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밖에도 옳고 그름을 따지는 토론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는 조직의 상층부에서 정한 결정에 따르는 쪽을 선택하는 일본 사회의 경향도 한몫 하는 것 같다.<br><br></div><div>저번 달 대선 시기 때 어느 교수님께서 일본은 여전히 투표 용지에 유권자 이름을 써는 방식으로 투표를 하냐는 식의 물음을 던진 적이 있으셨다. 도장 찍기에 워낙 익숙해져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반신반의를 하였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알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도장 찍는 것보다 훨씬 수고롭고, 일어날 변수도 많으며 글자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처럼 투표 방식을 시작으로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며 국민의 정치 참여율을 높여야 할 것이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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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9 13:35: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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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77 김여경  자민당의 장기집권</title>
         <author>yeokyoeung</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397293</link>
         <description><![CDATA[<div>&nbsp; 지금껏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답을 해 보자면 사회당이 경제 영역에 있어서 성장제일주의와 서양 따라잡기에 대항하는 담론을 제시하지 못하였고, 외교 안보 영역에서도 자민당의 요시다 노선 즉, 미일 동맹에 의존하여 경제 번영의 성취에 매진한다는 정책에 대해 비무장중립이라는 비현실적인 노선을 고수하는 이외에 이렇다 할 대항 담론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기자회견 영상을 보고 투표율 역시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권이 수립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투표를 무시할 수 없는데 자민당은 다수의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투표율이 너무 저조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장기집권이 가능했다는 것이다.&nbsp;<br><br>&nbsp; 정치학자 호사카 유지 교수는 자민당이 야당의 정책까지 다 해버리기 때문에 야당의 필요성이 사라져 버렸으며, 당내 파벌 교체를 정권 교체로 착각하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에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덧붙여 일본은 세습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정치도 하나의 세습되는 직업으로 인식하며, 실제로 국회에서 세습의원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세습 정치에 대해 소극적인 모습과 함께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정치적 성향이 수년간 굳혀져 복합적으로 자민당이 장기집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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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9 14:08: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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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86 박종호</title>
         <author>sjweye123456789</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427892</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경우 미국에 의해 정당정치가 부활했다. 첫 선거때는 보수당이 의석의 80퍼센트를 차지하며 완승을 거두기도 하였지만 이후 사회당이 과반을 넘기지는 못했지만 제1당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기업들은 좌파정당이 아닌 보수정당이 정권을 잡길 원했고 보수의 결집을 촉구했다. 그렇게 자민당이 탄생했고 경제발전, 공산당의 견제라는 이념 하에 38년을 집권해왔다. 그 후 일본은 실제로도 높은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룩해왔고 미국 다음 세계 2위 경제대국이라는 위치까지 올라왔었다. 물론 이것은 자민당 만의 공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단순히 이것만이 장기집권이 이유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1980년 버블이 꺼진 후 55년 체제는 붕괴했다. 이때 자민당이 아닌 민주당 등 다른 정권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자민당 체제로 돌아섰다. 다시 말해 일본인들에게 타 정당들은 정권교체의 필요성에 대한 어필을 실패했다는 것이다. 미야자키가 말했듯 일본인들의 낮은 정치 참여율, 그로 인한 낮은 투표율도 그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낮은 정치 참여율이 정말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지금, 혹은 과거 자민당의 장기집권 때보다 많은 사람이 정치에 참여한다고 해서 야당이 자민당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냐는 것이다. 과거 중국 요순시대에는 백성들이 왕의 이름을 잘 몰랐다는 일화가 있다. 즉 태평성대에는 정치에 대해 무관심 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상황을 보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부터 현재까지 지금만큼 정치에 대한 참여도, 관심이 높았던 때가 없다. 각종 비리, 불법에 연루된 장관, 국회의원들의 이름을 이렇게까지 잘 알던 때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국민의 정치 참여도가 높았던 현 정부가 역대 최고의 정부라고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선 이견이 난무할 수 있지만 확실하게 맞는다고 대답할 수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며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이 성공한 정부의 척도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아니다. 필자는 자민당의 장기집권에는 더 많은 이유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전후 일본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미국은 동아시아 공산주의 세력의 방파제로 일본을 선택한 바 있다. 또한 이와 함께 옆 나라인 한국이 공산당과의 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입는 것을 보았고 중국의 공산화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즉 반공, 반 좌파가 우경화라면 그것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다는 것이다.&nbsp;</div><div>필자는 일본의 우경화가 2차대전 당시 제국주의를 꿈꾸는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후 미국으로부터의 영향 옆 나라 한국의 전쟁,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의 경제발전 등 여러 요소가 합해진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경화가 아닌가라고 질문한다면 우경화가 맞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2차대전 당시의 일본제국화, 제국주의화와는 무관한, 좌파, 공산주의적 가치관에 대항해 오른쪽에 가까워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55년 체제의 이념적 좌표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경제발전을 표방하는 오른쪽이라고 생각하고 그 위치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2차대전 당시의 일본제국과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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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9 14:59: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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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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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99 일본학과 감기원</title>
         <author>kam9908141</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436379</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우경화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자국민들의 저조한 투표 때문이다. 정치적 무관심뿐만 아니라 일본의 투표 방식 또한 장기집권을 가능케한 요소라 생각한다. 후보자의 이름을 한자로 써내여야하고, 한자를 잘못 표기했을시,&nbsp; 무효표 처리되기 때문에 이것 또한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역사적 영향이 크다. 1960년대 경제 성장을 이룬 자민당이 후에도 ‘비슷하거나 더한 성과를 이룰 것이다’생각하는 중년층 혹은 고령의 지지율과 문외한 젊은이들이 선거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보수의 힘이 강한 것이 아니라 진보의 힘이 너무 부족하기에 장기집권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인터뷰 서두발언과 같이, 역사적 사건으로 인한 장기간 정치적 무력감과 불신감이 일본 전체에 만연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생각해보앟을때, 일본에서 우경화는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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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9 15:14: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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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247 윤지원 </title>
         <author>jiwon033979</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440181</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민주주의정치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한 정당이 38년간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어.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br>일본인들의 정치적 무관심에 대해서는 이웃나라인 우리나라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다. 그 정도로 일본 내에서는 투표의 중요성에 대한 무지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그랬듯 정치적 참여의 결여가 한 정당의 터무니 없는 정책제시에도 그들이 38년이라는 장기적 집권체제를 이어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주었다. 또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야당 역시 현실성이 떨어지는 비호감적인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여당에 힘을 실어주기도 하였다.<br><br>오늘날 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다고한다. 그렇다면 55년 체제라는 보수질서의 이념적 좌표는 어디인가? 오늘의 일본은 55년 체제에서 얼마나 이동해 왔는가?<br>여당과 야당이 서로 의논하는 방식이 비선적으로 이루어지던 은밀한 방식의 협상에서 다수결 방식 혹은 여당과 야당의 정상이 직접적으로&nbsp; 문제 해결을 위해 도모한다는 점에서 정책 의사 결정의 과정이 공개적이고 투명화된 진일보적으로 나아간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선 질문에서 언급하였던 일본의 장기적인 집권체제의 배경으로 인해 안정적 정치체제였던 55년 체제가 붕괴된 이후, 일본은 새로운 정치체제로의 개편해 나아가기까지 현재까지도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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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9 15:21: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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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5년 체제와 투표율에 대하여 : 투표율 결정론에 대한 반론제기 </title>
         <author>jhw01049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486199</link>
         <description><![CDATA[<div>교수님께서 제시해주신 영상의 미야지키 하야오도, 그리고 많은 학우분들께서 55년 체제와 자민당의 장기집권의 원인을 투표율에 초점을 두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초점에는 반론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투표율의 저하가 자민당의 장기집권 지속에 큰 영향을 준 것이 없다는 것이 제 주장의 요지입니다.<br><br>일본 정치가 세계적으로도 꽤나 이례적으로 한 정당의 장기집권을 허용하였음에는 분명합니다만, 그것이 과연 투표율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만약 "투표율이 낮으면 자민당은 집권을 이어간다"라는 명제가 성립하려면, 반대로 "투표율이 높으면 자민당은 집권을 하지 못한다"는 명제 또한 성립해야 할 것입니다.<br><br>그렇다면 55년 체제의 투표율을 보겠습니다. 의외로 55년 체제, 즉 1955년부터 1993년까지 중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그리 낮지 않았습니다. 자민당이 성립된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28회 중의원 총선거(1958년)의 투표율은 76.99%였습니다.&nbsp;<br><br>이후 투표율은 67.26%~74.57% 사이에서 상승과 하락을 반복했는데, 동시기 미국의 대선 투표율은 50.3%~62.8%를 넘나들었습니다. 영국의 사례를 보아도 총선 투표율은 72.0%~78.8%였습니다. 55년 체제의 투표율이 낮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이유입니다.<br><br>그렇다면 55년 체제 하에서, 투표율이 올라가면 자민당의 의석수가 줄어들었을까요? 55년 체제의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1976년, 1979년, 1983년, 1993년 참패 혹은 참패에 가까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반면 1960년, 1963년, 1980년, 1986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압승에 가까운 결과를 얻었습니다.<br><br>그렇다면 각 선거들의 투표율 변화를 보겠습니다. 먼저 패배한 선거들을 보면, +1.69%p(1976), -5.44%p(1979), -6.63%p(1983), -6.05%p(1993)이었고, 승리한 선거들을 보면 -3.48%p(1960), -2.37%p(1963), +6.56%p(1980), +3.46%p(1986)이었습니다. 즉 사회당과 야당은 외려 투표율이 크게 줄어든 선거에서 의석수를 늘렸고, 자민당의 의석수가 크게 는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큰 변수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nbsp;<br><br>비슷한 경향은 참의원 선거에서도 이어집니다. 자민당이 참패한 1989년 참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65.02%로 직전선거 대비 투표율이 -6.34%p였습니다. 반면 자민당이 압승을 거둔 1983년 참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71.36%로 직전선거 대비 +7.05%p였습니다.<br><br>지금까지 보셨다시피 투표율과 야당의 의석수에 양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외려 투표율이 낮아져야 야당의 의석수가 늘어나는게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해 보입니다. <br><br>그렇다면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일까요? 저는 앞서 쓴 글에서처럼 야당의 총체적인 실패를 그 원인으로 봅니다. 야당은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분열되었습니다. 반면 자민당은 55년 체제의 해체 직전까지 소규모 회파가 탈당하는 일은 있었어도, 대규모 분열은 없었을뿐더러, 당내 노선투쟁을 통해 어느 정도의 대안을 제시했습니다.<br><br>그 결과 일본이란 국가의 정치지형은 어느정도 자민당 측으로 기울어지게 된 것입니다. 투표율이 큰 폭으로 낮아진 선거에서 야당의 의석이 증가했다는 역설은, 자민당 지지층이나 여타 친자민 투표층이 투표장으로 나오기 싫을 정도의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야당의 득표율과 의석이 증가한 게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할 정도입니다. 설령 55년 체제의 어느 순간 중의원선거의 투표율이 95.0%를 기록했다고 가정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사회당의 승리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고 보는 이유입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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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9 16:45: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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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811028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559153</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미국의 점령 정책을 통해 개혁이 되었다.<br><br>일본은 민주혁명, 시민혁명을 자신의 손으로 하지 않았다. 일본의 점령 정책을 주도한 미국인들은 일본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군국주의 체제를 부수는 비군사화와 민주주의 도입 및 개혁에 중점을 두었다. 일본의 민주주의 과정에서 미국의 점령통치는 빼놓을 수 없다. 점령 초반 일본을 다시 전쟁을 일으킬&nbsp; 수 없게 하며 민주주의국가로 재편하려 하였지만 점령 후반기에는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방벽으로 군대를 보유한 보통 국가로 하고자 하였다.<br>이러한 이중성은 보수-혁신이라는 자민당과 사회당 간의 정치 대립 구도로 55년 체제를 형성하였다고 본다&nbsp;<br>사회당은 사회주의 측면이 강했던 반면에 자민당은 일본의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었고 사회복지정책 또한 실현시켰다.<br>이러한 정책들은 사회당의 지지계층이었던 노동자들이 자민당으로 발을 돌리게 만들었다.<br>또한 일본은 경제 측면에서 한때 미국을 견제할 수 있을만큼 성장했었는데 전성기를 이끈 것 또한 자민당이다. 이 상황에서 국민들은 굳이 다른 야당을 뽑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던 것이다<br>일본은 국회에서 구성한 내각이 국정을 이끄는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임기, 선출방법이 각자 다른 중의원, 참의원으로 구성되는 양원제 국회가 시민들을 대신해 최고 의사결정자인 총리를 선출한다.<br>총리의 재량으로 국정 운영의 중의원을 해산할 수 있고, 선거일도 법으로 정해지지 않아 해마다 다르다. 이에 관련된 규정도 복잡하여 시민이 상황을 파악하기 힘든 구조이다. 이는 시민이 직접 투표하여 대표를 선출하는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한국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br>또한 젊은 층의 정치적 관심이 매우 낮다는 것도 원인 중 하나이다.2021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60대(72%), 70대(62%)의 투표율을 보이는 반면 10대(43%),20대(36%)의 투표율을 보였다.이는 일본에서는 1960년대 정치적 중립성을 중시해야한다는 법률의 제정으로 인해 학교에서 정치에 대한 것을 거론할 수 없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정치 참여, 시민 의식에 무지한 청년층이 만들어진 것이다.<br>이런 이유들로 인하여 일본의 장기집권정당이 발생하였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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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09 19:06: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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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본의 민주주의와 자민당(2020110251 김부건)</title>
         <author>buugeon</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775860</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정권이 자민당의 일당우위체제로 지속적인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일본은 민주주의정치 체제임에도 불구하고...’라는 부분에서 조금 의문점이 생겼다. 근본적인 부분으로 접근하자면, “과연 일본은 민주주의체제인 것일까?” 굉장히 위험한 발언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근본적인 물음을 하게 된 이유는 일본의 전후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조금은 들어볼 만한 주제이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후의 일본은 GHQ의 영향으로 미국의 점령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군국주의적 모습이었던, 천황이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권력을 차지했었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민주주의의 색채를 가진 미국에 의한 민주주의 노선으로의 변경은 일본 국민들에게 있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즉, 일본 국민들에게는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던 천황 중심의 체제에서 민주주의로의 급노선 변경이라는 부분은 아직 정치체제의 변화에 있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아가 이러한 부분이 자민당이라는 보수정당과 사회주의 혁신정당의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사실은 국민들의 인식에서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점이 외부적 시선에 있어 ‘정치적 무관심’, ‘자민당의 일당체제’로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민주주의 정당체제라는 것이 과연 국민들에게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는 배경이 있었던 것인가?, 일본 국민들에게 있어서 자민당이라는 정당이 아닌 하나의 고정된 정부로서 인식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곧 무관심, 장기집권과 연관되는 것은 아닌가? 일본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것인가? 라는 여러 질문들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핀트가 엇나간 것일지도 모르지만 혁신 정당의 몰락, 보수 정당의 선방이라는 관점 이외에서 한 번 생각해보고 싶었다.</div><div>&nbsp; &nbsp;</div><div>앞서 이야기한 내용에 이어서 일본의 우경화라는 것도 아주 가볍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경화가 무엇인가? 사실 명확하게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나름 쉽게 이해한 부분은 일종의 보수화라는 부분이었다. 나는 70%정도 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동북아의 입장에서 일본의 우경화를 논할 수 있는지는 사실 조금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대외적인 상황에서 동북아는 어쩌면 모두 우경화의 노선을 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개헌과 재군비라는 아베의 정책을 보면서 우경화를 이야기하며 비판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이해하기 난잡한 주제라고 생각했다.</div><div>&nbsp; &nbsp;</div><div>예외적으로 궁금했던 부분은 본 강의와 아무런 연관이 없을지 모르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야기를 보면서 평소 관심 있게 보던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작가들은 작품에서 일본의 혁신세력을 이야기하고, 전공투를 이야기하며 현 정권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을 하는 것인지가 조금 궁금해졌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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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0 04:22: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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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2강서문</title>
         <author>223913661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803528</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관료 세력은 유난히 방대합니다.일부는 전쟁 전 유풍의 영향으로 자민당 내 관료파 세력이 오랫동안 당인파를 억압해 왔고, 고도성장기의 세 총리 기시 노부스케·이케다 쓰토무·사토 에이사쿠는 모두 고위 관료 출신입니다.당시 사무차관 같은 공무원의 꼭짓점을 찍은 고위 관료도 50대에 불과할 정도로 정치인으로서 부자가 강했던 때였습니다.이들은 공무원 임상의 관계를 통해 자민당의 특정 파벌로 돌아섰고, 자민당의 가지와 특정 기업·민간단체의 옹호 속에 국회의원에 당선돼 대신은 물론 총리까지 오른 경우가 많았습니다.정치인과 국회의원, 심지어 대신·총리가 된 뒤에도 후배 고위 관료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정치를 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반면 정치권에 들어가지 않는 고위 관료들은 민간 기업에 취체역(이사) 이상의 요직을 맡기는 등 선후배 정치인·고위 관료들과 긴밀한 협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이것이 바로 정·관·재 3계의 이른바 유착관계입니다.<br>그런데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특히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국제공운이 저조해짐에 따라 일본사회당은 나날이 우경화되었고, 일공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길을 포기하였고, 사공투는 점차 파산하게 되었습니다.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 계급은 서로 타협해 슈퍼여당을 유지할 필요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공동의 적의 쇠퇴는 내부 모순의 부각을 의미합니다.자민당 내 파벌 투쟁은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고, 각복전쟁처럼 국회를 마비시키는 악재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결국 자민당은 냉전 종식과 거품경제의 파탄으로 분열했고, 이른바 55년 체제는 그렇게 끝났습니다.<br>일본 지방정치는 국정에 비해 비교적 다원화된 모습을 보여 왔고, 자민당은 한 번도 하늘을 가린 적이 없습니다.이는 지방정부의 권력이 작고 하부갈등이 복잡하기 때문이며, 지역사회의 행태와 천차만별도 관련이 있습니다.<br><br>사회당 세력이 뿌리 깊은 대도시에서는 혁신 진영이 사공투(社共鬪)를 통해 선거를 치르고 장기 정권까지 수립하는 사례가 흔했고, 한때 수도에서도 미노베 료키치 도쿄 도지사를 비롯한 혁신 자치체 정권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교토부와 같은 혁신의 본거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이들 자치체 정치에서는 기본적으로 자민당과 사회당 양당이 각각 지사 후보를 내 대결했고, 교대 집권도 흔한 일이었습니다.<br>자민당 세력이 뿌리 깊은 농촌부나 낙후된 도현은 보수파가 장기 집권하는 게 일반적입니다.그러나 집권자가 반드시 자민당이 장악한 중앙정부에 지방의 이익을 위해 맞설 정도로 자민당과 가까운 것은 아니다.물론 전반적으로 이들 보수파가 장악한 자치체는 자민당의 지지를 받아 국정선거의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결국 일본의 일부 정(町)·촌(村)에서는 의원이 세습되고 수장이 50년 연속 무투표 당선되는 것은 사실상 선거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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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0 05:49: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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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110270 김선아</title>
         <author>ryangistreaming</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818655</link>
         <description><![CDATA[<div>1. 일본에서 자민당의 일당우위체제가 장기적으로 가능했던 이유는? 일본에서 야당이 힘을 갖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br><br>자민당이 경제 노선을 중심으로 잡고 실제로 그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자민당이 장기집권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듯이, 경제성장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유능함을 보여주기 쉬운 수단이다. 반면에 야당의 경우, 실질적으로 보여준 성과가 없고, 그것을 보여주기에는 집권 기간이 짧았다. 야당 집권시기 당시, 지진이나 원전사고 등 안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남과 동시에 여론이 안좋아졌던 것도 이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nbsp;<br><br><br>2. 오늘날 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55년 체제라는 보수질서의 이념적 좌표는 어디인가? 오늘의 일본은 55년 체제에서 얼마나 이동해 왔는가?<br><br>일본은 1955년 이후 지금까지, 대부분 자민당이 집권당으로 군림해왔다. 집권당이 거의 교체되지 않았다는 점을 포함해 여러가지를 고려하면, 일본이 지난 55년 체제 붕괴 이후 달라졌다는 인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우선 일본시민들의 낮은 역사인식과 투표율을 관련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말했듯, 많은 득표율이 나오는게 아니라 모두가 투표하지 않아서 당선된다는 것은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이외의 사람들은 그들의 행적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모든 일본의 정치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과격한 행보(특히 극우적 언동 관련)를 보이는 정치인들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가 상당히 적다는 점이 바로 그 근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55년 체제 이후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정치수동적 태도가 변화했는지는 의심해볼만하다고 생각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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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0 06:35: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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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79</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838097</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민주주의 정치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한 정당이 38년간 장기 집권을 했다. 그러면 왜 한 정당만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을까? &nbsp;<br>&nbsp;<br>자민당이 38년간 장기 집권한 가운데 경제발전을 위한 정책을 펼쳐 국민의 바람과 요구에 부응하는 국가발전을 도모하고 있다.일부 응원도 받았다.야당으로서도 당의 힘이 약하고 지지를 많이 받지 못해 자민당과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없다.국민투표 영향도 일부 있습니다.미야자키는 자민당이 절반 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많은 시민이 표를 뽑는 데 참여하지 않아 성공했다고 말했다.일본은 오랫동안 정치적인 무력감과 불신이 만연했다고 했다.&nbsp; 정치 문제에 대한 일본 국민의 관심이 적고 참여감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래서 투표는 국민의 태도가 잘 드러나지 않다.국가의 발전은 국민의 동참을 떠나서 장기적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소극적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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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0 07:2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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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2 김기려 장기집권</title>
         <author>Giryo</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841378</link>
         <description><![CDATA[<div>젊은 층의 무관심, 그 중에서도 특히 반박하려는 마음이 안드는 무기력함이 크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비판하지 않으니 평화로워 보일 수 있다.&nbsp;</div><div><br></div><div>일본은 누구나 인정하는 경제 대국이며 사회 전반이 골고루 발달한 선진 국가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정치적 후진도 전세계가 아는 사실이다.</div><div>나는 이러한 정치적 후진성에는 역사적 배경과 국민성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치며 무사들이득세하는 칼의 문화가 지배하였다. 피지배계층은 폭력적인 지배계층에게 훨씬 더 순종적으로 복종하였고 이러한 복종심이 수평적인 현대사회에 들어와서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nbsp;</div><div><br></div><div>다음은 화로 대표되는 일본의 국민성도 개개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빠른 변화를 받아들이는 민주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돌출된 행동과 사고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는 보수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변화를 싫어하는 국민성은 정치인들이 지역구마저 세습하게 하였다. 이러한 이유들로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한 정당이 오랫동안 집권하는 전근대적인 정치 후진국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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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0 07:37: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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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본 중의원 투표율</title>
         <author>teseus7</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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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이 수치를 보면 단순히 일본인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서 투표하지 않는다고만은 할 수 없을지도요.. 그럼 이 수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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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0 07:51: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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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3 정붕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885978</link>
         <description><![CDATA[<div>2차대전 종전 후 민주화 개혁에서 일본의 파벌 정당은 급성장했다.1950년대 가장 활발하고 커진 세 정당은 민주당·사회당·자유당인데, 이 중 사회당은 개혁을, 민주당과 자유당은 보수로 기울었다.힘을 모으기 위해 1955년 같은 보수세력인 민주당과 자유당이 자유민주당, 줄여서 자민당으로 통합됐다.<br>이때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는 선봉대로 만들기 위해 일본 내 민주적 흐름을 탄압했다.이런 추세에서 보수 성향의 자민당은 친미적이고 미국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됐다.합당 후 거대 세력과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자민당은 1955년부터 단독 집권해 38년 만에 끝났다.<br>자민당은 집권 내내 미국의 지지를 받아왔고, 사회당은 당시 제1야당이었지만 힘이 자민당을 꺾을 수 없었고, 다른 야당과 정견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연맹을 만들어 자민당에 맞서기도 어려웠다.이에 따라 자민당의 지위는 확고해 왔다.'55년 체제'의 시대는 일본이 경제 도약을 이루고 세계 2위의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는 시대라는 점에서 자민당의 성공적인 경제정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성과다.자민당의 장기 일당 독재가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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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0 09:25: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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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0 시문옥  55년체제</title>
         <author>moonok</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886690</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새로운 55년 체제로 나아갈 조짐은 있지만 아직은 뚜렷하지 않다.지금은 여전히 자민당이 일당이 정치권을 독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민당도 55년 체제 아래의 자민당이 아니다.55년 체제에서 자민당은 단 한 차례 연립정권이 출현했다.지금의 자민당이 개헌에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공명당과 묶어놓아야 하니 자민당이 55년 체제의 그 자민당이라고 보기 어렵다.자민당은 그때의 자민당이 아니었지만 구사회당이 무너진 지금,구사회당의 자리를 고스란히 이어받을 정당을 찾기는 쉽지 않다.자민당은 내부 싸움이 치열하고 의원 개인과 지역 유권자 간 특수한 이익교환 관계가 있으며 각 업종 단체나 대기업 등 이익집단이 자민당 각 파와 의원 개인에게 정치헌금을 제공할 때 투명성이 떨어지고 특정 요구를 수반해 정치부패를 초래하기 금권정치를 쉽게 유발한다.자민당인 사회당의 대결정치 구도의 역할인 사회당과 자민당의 대결은 경제성장에 어느 정도 큰 힘이 되고 있다.사회당 및 많은 국민의 압력에 의해 자민당은 사회당의 주장을 벤치마킹하여 사회기본제도와 복지제도를 보완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촉진하고 사회당의 사회기반을 침식하였다.자민당 정권이 60년대 초 전 국민이 건강보험과 연금제도에 가입한다는 목표를 달성한 것이 대표적이다.국민의 의견과 요구에 자민당이 비교적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데다가 야당의 정책까지 수용하는 일이다.자민당 정권이 시행하는 사회보장•복지제도에는 사회당의 정책 주장이 담겨 있다.따라서 파벌제가 잘 운용되는 것은 자민당의 민주적 운영에는 유리하지만 잘못 운용되는 것도 파벌들의 관직과 이익 쟁탈의 도구가 돼 국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총체적으로 55년 체제는 일본의 전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전후 정국이 안정기에 접어든 것을 대변한다.자민당 일당 집권 38년 동안 자민당은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거뒀다.그 끈질긴 경제우선전략으로 냉전의 풍운 속에서도 일본 경제의 안정적 성장은 일본 경제가 상당히 짧은 기간에 회복되고 더 크게 발전해 일본의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야당이 총선에 의존하지 못하고 정권을 탈취하는 바람에 양당제의 존재는 공염불이 됐다.자민당은 장기집권 38년 동안 박빙의 적수가 없어 숱한 문제와 갈등을 빚으면서 전체 집권구조와 정책이 경직돼 해체됐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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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0 09:27: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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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289 이민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895150</link>
         <description><![CDATA[<div>&nbsp;일본의 자민당은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들을 통해서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케다를 중심으로한 자민당은 소득배증계획이라는 정책을 통하여 경제 성장을 강조하였고, 저자세 정치로 이념을 초월하는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외부적으로는 서구권이 있었기 때문에,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국민들의 공통된 인식도 자민당의 오랜 집권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br>&nbsp;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회당의 경우 안보투쟁만을 강조했기 때문에 국민들로 부터 외면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자민당이 이념을 떠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을 때, 사회당은 군사안보정책에만 과도하게 집중하였다. 좌파정당으로서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였을 때, 구시대적인 이념이었다고 생각한다. 사회당의 당명은 96년이 되어서야 겨우 사민당으로 바꾸었을 정도로, 이념적인 발전도 더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이 자민당의 집권을 장기화 시켰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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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0 09:49: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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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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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1</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896917</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민주주의정치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한 정당이 38년간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어.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br><br>첫째, 자민당이 미·소 대립의 국제구도 속에서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50년대 초반 미·소 양 진영은 대립 구도를 형성했다.이런 국제정세 속에서 미국과 동맹을 맺고 일본의 안보를 지키는 기본 국책이 선택됐다.1955년 자민당이 창당된 뒤 이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미국의 보호에 의지하여 비교적 적은 군비 지출을 사용함으로써 점차 군사력을 발전시키고 경제 발전을 촉진한다. 미국의 지원으로 일본은 국제경제기구에 가입할 수 있었다. 세계 규모의 자유무역과 국제 분업에 따른 경제적 혜택은 세계 규모의 자유무역과 국제 분업에 따른 경제적 혜택을 공유한다. 미국의 원조 아래 국내 통치를 실시하다.<br>둘째, 정무·관료·재무가 삼위일체의 통치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이다.재계는 자민당에 기부를 하고 자민당은 재계로부터 정치자금을 풍부하게 지원받아 경제정책을 수립할 때 재계의 이익을 충분히 챙기고 재계의 지지를 얻어 국가의 경제적 운명을 장악했다.자민당은 정부 조직을 통해 의사결정 능력이 뛰어난 정책 전문가의 지지를 받아 국가의 행정권과 입법권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국가 정권의 중추를 잡는다는 목표다.<br>셋째, 자민당의 정책이 장기통치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이다.경제적으로 '높은 속도'를 추구하며 각종 경제 수단을 통해 경제 발전을 촉진한다.재정·금융·산업정책 수립을 통해 거시경제에 대한 통제를 실현하고 재정지출을 늘려 세수를 줄이며 기업은 재생산을 확대한다.일본은 60년대 말 '경제대국'이 됐다.경제가 발전하고 인민생활이 개선되면서 정치적 안정을 요구하는 '중산층'이 생겨났다."중산층은 자민당이 38년간 유지해온 대중적 기반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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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0 09:54: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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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4110282 일본 정치</title>
         <author>ynho123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7953629</link>
         <description><![CDATA[<div>&nbsp;현대에 와서 일본 정치의 특징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가장 많이 나올까? 아마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은 '일본인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혹은 '일본은 일당 독재 체제나 다름이 없다' '전쟁을 옹호하는 것을 보니 일본은 심각하게 우경화 되어가고 있다.' 라는 대답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본 정치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 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어서 대략적인 이미지만을 가지고 일본 정치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진짜 정치 환경은 어떠한가?<br> 일본의 자민당 장기 집권은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전후 시기를 마무리하고 일본은 고도의 경제 성장기를 맞이했다. 한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박정희 대통령 시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국가의 역량을 한 곳에 모아 빠른 발전을 추구했기 때문에 장기집권을 어느 정도 용인해 주었다. 일본의 국민들도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전의 일본을 빠르게 복구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일당의 독주를 수긍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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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0 12:04: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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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본학과 여민화 2018113201</title>
         <author>teseus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38531840</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학과 여민화 2018113201<br><br></div><div>'55년 체제'란 1955년부터 등장한 일본 정치권의 체제, 즉 정당 구도가 여당인 자유민주당과 야당인 일본사회당의 양당 구도를 오래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55년 체제'라는 용어는 1964년 일본 학자 승미준노스케가 발표한 논문 '1955년 정치체제'에서 처음 나왔다. '55년 체제'는 대체로 1955년에 이뤄진 정치·경제·사회를 포함한 전후 일본 체제의 총체라는 넓은 의미의 이해도 가능하다. '55년 체제'의 특색과 핵심은 일본 자유민주당 일당이 장기 집권하고 자민당이 장기 집권하는 동안 일본은 다시 공업화·현대화의 급속한 발전을 이루며 세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는 점이다.따라서 '55년 체제'를 연구하는 것도 당대 일본 정치발전의 핵심이 되고 있다.&nbsp;<br><br></div><div>&nbsp;<br><br></div><div>1. '55년 체제'의 역사적 배경.<br><br></div><div>전후 일본은 미군의 점령 하에 있었으며, 전후 초기 일본의 경제 재건과 정치 변혁은 미국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다.전후, 동 · 서 간에"냉전"이 나타났고, 50년대 초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러한 국제 정세와 주변 정세는 전후 일본의 정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br><br></div><div>&nbsp;<br><br></div><div>2.'55년 체제'의 장기화 원인 분석.<br><br></div><div>'55년 체제'의 장기 존속 및 자민당 장기 집권은 국제 정세와 강력한 경쟁자 부재라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nbsp;<br><br></div><div>일본 자민당은 일본의 각급 행정기관의 관료층에 긴밀히 의존하여 재계 재단과의 교역과 의존관계를 형성하였으며, 정치인, 직업기술관료와 재단과의 긴밀한 결합은 사실상 일본의 중요한 비공식 제도와 체제가 되었다. 자민당의 노선, 방침, 정책의 적응성과 유연성. 자민당은 장기집권의 실천가운데서 끊임없이 모색하고 량호한 정책 적응성과 령활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자민당이 장기적인 경쟁적선거에서 불패의 지반을 세울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법보이다. 자민당의 노선, 방침, 정책의 적응성, 유연성은 주로 다음과 같은 면에서 나타난다. 한 시기의 사회 주요 문제와 모순을 포착하는 데 능하고, 목적성 있게 노선, 방침, 정책을 제정한다.사회 형세의 변화에 따라 노선, 방침, 정책을 조정하는 데 비교적 능하다.기타 정당, 지어는 정치적수의 주장가운데의 합리한 요소를 비교적 잘 흡수하여 자기에게 리용되게하고 대담하게 조절하여야 하다.<br><br></div><div>일본 자민당 내에는 일본 보수의 연합과'토건 정치'의 작용, 그리고 당시 실시된'중선거구'제도의 영향으로 수많은 파벌이 형성되었다.일당다파는 자민당의 특색이다.각 파벌의 규합은 자민당의 대오를 강하게하고 세력을 강화시켰다.<br><br></div><div>정관재'철 3 각'의'토건 정치', 정책의 유연성, 당내 조정 메커니즘은 자민당 장기집권의 3대 신기로 꼽히는데, 경쟁적 선거를 통한 헌정 체제 속에서 일당 독주의 장기집권을 지켜냈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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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1 02:42: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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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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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41163925</link>
         <description><![CDATA[<div>먼저 자민당이 국민다수의 지지를 받은데에는 이념보다 경제성장에 집중한 요시다 노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요시다는 경제성장에 중점을 두고 안보는 미국에 위임하는 노선을 펼쳤다. 헌법과 이념을 중시하는 사회당과 이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반발하였고 사회당은 높은 지지도를 갖게 되었가. 이러한 보수와 혁신의 대립구도 속에서 자민당은 이념적 차원보다 물질적 보상에 기초한 형태를 취했다.&nbsp;<br>자민당은 사회를 견제하기 위해 경제제일주의를 바탕으로 빠른 경제성장응 이루어 고도성장기를 가져왔고 사회당을 대신해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자민당은 지역,산업과의 격차를 줄여나갔고 농촌은 자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이 되었다. 또 자민당 의원들은 이것을 바탕으로 후원회를 조직해 많은 자금과 표를 동원했다.&nbsp;<br>또 전체적인 사회분위기 측면에서 일본 국민들은 경제 성장으로 호황을 누리면서도 한편으로 안보투쟁 때문에 사회가 혼란하다고 느꼈다. 자민당이 경제적인 성과로 지지를 얻는동안 사회당은 1960년 말까지도 이념에 집중하였다. 안보투쟁으로 사회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점점 떨어졌고 경제적인 성과를 이룬 자민당에게 그 지지율이 돌아왔다.&nbsp;<br>자민당이 지난 몇십년간, 잠시 자리를 빼앗겼던 몇년을 제외하고는 항상 여당의 자리를 지켰고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집권당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자민당은 또 언제든지 야당이 될 수 있고 복지국가를 추구하는것이  자민당이 계속해서 여당의 자리를 지킬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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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2 17:02: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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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215472 윤건희  일본의 자민당 장기집권</title>
         <author>jkheeyoon</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48793021</link>
         <description><![CDATA[<div>자민당 장기 집권 가능한 이유</div><div>첫 번째 야당의 여러 가지정책도 거침없이 흡수하는 자민당은 여당이 야당 정책도 스펀치처럼 흡수한다&nbsp;</div><div>두 번째 당내 파벌 교체를 정권 교체로 착각하는 국민들  정치 구조 개혁하려는 국민들의 움직임은 없나? 개혁의지있는 국민들은 극소수 세습 문화에 익숙한 일본 정치도 세습되는 하나의 직업으로 인식 일본 정치는 세습</div><div>&nbsp; &nbsp;</div><div>세습 정치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생각은?</div><div>정당은 세습제한을 해야하는가? 51퍼 49퍼 제한할 필요는 없다.</div><div>세급 정치에 관대한 일본인들이다.</div><div>&nbsp; &nbsp;</div><div>정치 관심도가 굉장히 낮다 사람이 바뀌니까 정치도바뀐다라는 일본국민들의 의식</div><div>일본의 대표적 국민성이 보임 &gt;&gt;&gt; 현실 수용 일본 국민들의 무관심에 더해진 특수한 문화이다.</div><div>&nbsp; &nbsp;</div><div>일본의 중앙집권 시기는 1868년이고</div><div>각 지방 영주들이 백성들을 지배했던 일본은</div><div>자신의 능력으로 신분상승이 어려웠던 시기였다.</div><div>일본의 모든 신분은 세습으로 대물림이다.</div><div>가업을 잘 이어받으면 나라도 문제없을 거라는 생각이고 일왕은 1500년간 같은 혈통</div><div>태어났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세습 문화 영향이 크다</div><div>문제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일본 국민들 투표로 뽑을 수 없는 일왕이 있고</div><div>마음대로 되지 않는 총리 선출 그들이 가진 막강한 권력 일왕 총리의 권한이다.</div><div>역사 문화적으로 세습을 당연시 해온 일본 국민과는 거리가 먼 자민당 우위 체제</div><div>국민의사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일본 정치 국회의원들끼리 나눠먹기식의 일본 정치 구조이고</div><div>정치에 무관심한 일본 국민들 일본의 정치가 변해야 새로운 나라가 될 수 있고 그럴 것 같은데 국민들의 정치 개혁 의지가 강해질수록 일본 정치가 달리질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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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19 15:32: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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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토론주제(2) 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는가?</title>
         <author>teseus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6242729</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는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 논거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 논거를 제시해 주세요.&nbsp;<br><br>우경화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우경화되고 있지 않다는 사람을 설득시키는, 우경화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우경화되고 있다는 논리를 설득시키시기 바랍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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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2 03:16: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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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동규 일본의 우경화</title>
         <author>LeeDonggyu</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6278241</link>
         <description><![CDATA[<div>헌법 개정이나 대한 방침 등의 정책을 추진하는 현 일본 정부에 따라 민중들 사이에서도 우경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류 등으로 인해 한국에 호감을 가지는 일본인들이 늘었고, 그 연장선으로 한일 간의 역사와 정치 등을 공부함으로써 반우경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는 추세다.<br><br>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딱 중도적인 입장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역사와 현재의 시류가 충돌하는 새로운 일본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지금까지의 일본을 겪어오며 자위권의 필요성을 느끼나 동시에 지난 과오를 무시하려 하는 자들과, 지난 일본을 겪지 못했으면서 치우친 목소리에 휩쓸려 배척과 혐오에 물든 자들, 그리고 타국을 문화로, 더 나아가 사람 대 사람으로 바라보려는 자들이 부딪히는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br><br>이것을 딱 잘라 우경화냐 아니냐 단언하는 것은 현재의 나로서는 조심스럽다. 특히 일본에서 직접 살아가며 국민들의 목소리에 스치고 섞이는 입장이 아니고서는.</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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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2 04:15: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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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21112889 영화영상학과 고은서 일본 우경화</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6363880</link>
         <description><![CDATA[<div>&nbsp;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다.<br>&nbsp;일전 해당 수업 과제를 위해 읽은 책이 있다. &lt;영속패전론 : 전후 일본의 핵심&gt;이라는 도서이다. 이를 바탕으로 논거를 제시하려고 한다. 해당 저서에서는 일본이 ‘패전’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정치/외교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 여러 문제들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의 우경화이다.<br>&nbsp;일본이 미국에게 보이는 태도와, 아시아에게 보이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필자는 이것이 일본이 패전을 부인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베 일각이 전후 체제의 탈각을 계속하여 말하지만, 그가 보이는 정치적 행보는 이와 반대되는 방향이다.<br>&nbsp;이러한 양상이 일본의 우경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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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2 06:17: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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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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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308 김재우 일본의 우경화</title>
         <author>watchagongyou</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6570554</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우경화를 논하기에 앞서 우경화의 기준을 명확히 세워야 할 필요성이 있다. 흔히 우경화라는 것은 정치, 사회 분위기가 반공주의적, 보수주의적,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해지는 의미로 통용된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우경화라고 통칭하기에는 그 범위가 넓다. 따라서 우경화를 논할 때의 기준을 국가 정책 방향성과 이에 대한 국민 여론으로 한정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nbsp;<br>&nbsp;<br>일본은 우경화를 할 수밖에 없으며 이미 어느정도 우경화가 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일본이라는 나라가 극우 민족주의적 국가로 변해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앞서 말한 기준으로 따졌을 때 국제 정세의 흐름에 따라 기존의 스탠스(개헌 시도 등)에서 더욱 더 우경화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br><br></div><div>&nbsp;<br><br></div><div>미국을 예로 들자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슬로건으로 당선된 트럼프 행정부가 대표적인 우경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군사부문만 차치하고 본다면 진보적 성향이 강했던 행정부로 트럼프와 대조되는 정책을 펼쳤었다. 특히 외교 정책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우며 보호무역주의로 자국우선주의를 주장했고 오바마는 ‘우리’를 내세우며 자유무역협정을 주장했다.<br>&nbsp;<br>&nbsp;기존의 국가 성향이 어떠했든 현재의 일본은 우경화 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러-우 전쟁을 꼽을 수 있다. 러-우 전쟁이 일본에게 더욱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쿠릴(지시마) 열도 분쟁인데, 러-우 전쟁의 명분 중 하나가 크림반도를 나치즘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우 전쟁으로 러-일 관계가 악화된 현재 일본도 마냥 방관할 수 없는 것이, 직접적으로 영토 분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기시다 정권이 들어서고 대러시아 제제를 선언하면서 러일 평화조약 체결 협상을 러시아측에서 중단했다. 이는 남쿠릴열도와 일본 사이의 무비자 여행 중단과 공동 경제 활동에 대한 협상도 중단되는 결과를 낳았다.&nbsp;<br><br></div><div>&nbsp;<br><br></div><div>또한, 러-우 전쟁이 발발하고 기시다 정권의 적극적인 대러시아 제제는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일본 내의 대러시아 제제에 대한 찬성론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앞으로 일본 국내 경제 및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더라도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3.7%가 "계속해야 한다"고 답변 하기도 했다. 우경화를 논할 때 우선적으로 나오는 개헌에 대한 여론도 작년과 크게 차이가 났다. 지난해 개헌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56%만이 찬성했던 것과는 달리 러-우 전쟁 발발 후 유권자 67%가 찬성 의사를 밝혔다. 특히 주목할 만한 대목은 9조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의 응답인데, '안전 보장 환경이 크게 변했다'(74%)고 그 이유를 밝혔다.&nbsp;<br><br></div><div>&nbsp;<br><br></div><div>이처럼 일본의 대러시아 제제로 나타나는 일본 국민의 반러 여론과 그에 따른 개헌에 대한 찬성론의 대두는 일본이 우경화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물론 앞서 말한대로 극우 또는 극단적인 보수화의 우경화가 아닌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른 일본의 재무장과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국민 여론의 우경화를 의미한다. 동일한 전범국인 독일 마저도 GDP대비 3% 수준으로 군비증강을 통해 재무장을 실천하는 와중에 더 이상 상식이 통하지 않는 러시아의 외교 횡포, 지정학적으로도 가깝고 직접적으로 영토 분쟁 중인 일본이 우경화가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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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2 10:39: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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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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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55 이세영 일본의 우경화</title>
         <author>jennyda1013</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6923376</link>
         <description><![CDATA[<div>​아베 정권이 집권한 이후로 우경화가 심해졌다고 생각하는데, 그 논거로는 평화 헌법 제정과 자위대의 군대 전환 두 가지가 있다. 일본은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41309&amp;ref=y">제2차 세계 대전</a>에서 패한 뒤 군사 전력을 보유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다. 일본 평화 헌법 조항 제9조에는 일본은 군대를 보유하지 않고, 국제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무력행사를 할 수 없으며, 타국과의 교전권 또한 인정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러나 1950년 6 〮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치안 유지를 목적으로 경찰예비대를 창설하였으며 이는 현재의 자위대로 명칭이 굳어졌다. 자위대는 명목 상의 군대가 아니며 공격을 받았을 때만 자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일본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40470&amp;ref=y">정부</a>는 계속해서 자위대의 전력을 확충하였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일본 정계의 우경화 분위기와 함께 헌법상 자위대 보유의 명문화와 집단자위권 행사 보장 등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늘어났다. 일본 보수 우익들은 지금의 헌법은 점령군에게 강요된 것이므로 일본만의 자주 헌법으로 개정해야 비로소 자주 독립 국가의 면모를 갖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역대 일본 내각은 '집단적 자위권'은 보유하고 있으나, 헌법 제9조로 인해 행사할 수 없다고 해석해 왔지만 2014년 7월 1일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는 헌법 해석 변경을 결정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가속시켰다고 생각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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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2 15:14:2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6923376</guid>
      </item>
      <item>
         <title>윤녕후 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는가?</title>
         <author>ynho123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7539132</link>
         <description><![CDATA[<div>&nbsp;최근 일본에 대해 논할 때 가장 이슈가 되는 문제 중 하나가 일본의 우경화 문제이다.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군비 증강, 국정교과서 문제 등 국내 언론은 끊임 없이 일본의 우경화 관련 뉴스를 생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일본은 정말로 우경화하고 있는가?<br>&nbsp;일본이 우경화하고 있는지 알기 쉽지 않은 이유는 먼저 '우경화'란 무엇인지를 바라보는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우경화의 뜻을 '우익적인 사상으로 기울어지게 되다. 또는 그렇게 만들다.'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은 우경화에 대해 아주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경화를 대표하는 몇가지 키워드-전쟁, 재무장,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 혐한 등-를 가지고 우경화를 판단한다고 생각한다.&nbsp;<br> 사전적 기준이든 국민적 정서의 기준이든 일본은 현재 우경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헌법개정 움직임, 재무장, 역사관 등 일본의 우경화를 뒷받침할만한 근거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만의 독특한 경향이라기 보다는 전세계적인 유행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행보, 미국의 트럼프 당선 등 전세계에서 우경화의 징후를 찾아볼 수 있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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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00:14:0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7539132</guid>
      </item>
      <item>
         <title>2018210988 신민호 &lt;일본의 우경화&gt;</title>
         <author>minhomino0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7575675</link>
         <description><![CDATA[<div>&nbsp;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군국주의의 일본은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을 통해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였다. 그때가 그들의 최전성기였다. 하지만, 그들의 침략은 진주만을 공격한 뒤 급속도로 하향곡선을 타기 시작했고, 미국의 원자폭탄에 의해 강제적으로 항복을 하였고, GHQ에 의해 강제적으로 민주주의를 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일본은 본래 민주주의 주체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nbsp;<br><br>&nbsp;그랬기에 과거 군국주의 세력(기시 노부스케, 미우라 고로, 이토 히로부미 등)의 사상을 계승한 보수주의 정당(자민당)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그들의 입맛대로 역사는 왜곡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중 대표적인 일화는 2013년 있었던 아베 총리의 망언이었다. 그는 “침략의 정의는 학계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국가 간의 관계에 있어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전범국인 일본의 역사를 왜곡했다. &nbsp;<br>&nbsp;또한 14년도에는 가미카제특공대의 유서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많은 이들의 반발로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일본이 우경화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은 러시아, 중국, 북한과 같은 국가들을 견제하고 있지만, 혼자서 모두를 견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때 일본이 알아서 방위비를 늘리며 중국을 견제해주는 것을 통해 미국은 손을 덜 수 있기에 그저 그들의 우경화를 바라보는 것이다.&nbsp;<br>&nbsp;그 결과, 미국에서 보수주의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허만칸 상’(대표적 수상인물로는 레이건 대통령, 국제정치학자 헨리 키신저, 딕 체니 부통령 등이 있다)을 미국인이 아닌 유일한 사람으로서 아베가 수상한 것을 들 수 있다. 결국, 가장 강한 나라 미국이 자신들의 우경화를 지지하고 있었으니 그들은 맘 놓고 우경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br><br></div><div>&nbsp;또한 일본의 기시다 총리는 22년 5월 3일 시행 75주년을 맞는 헌법에 대한, 그 중에서도 전범국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평화헌법 9조에 대한 개정 의지를 드러냈다. 군국주의 사상을 이어받은 보수주의 진영에서의 그러한 왜곡이 계속 이어지며 과거 침략전쟁을 겪은 중,장년층은 제대로 된 역사를 알지만, 현재 일본의 젊은 층은 그러한 역사를 배우지 못하고 있다. 결국 그들은 일본의 빛나던 전성기 시절과 추악한 왜곡된 역사를 배우며 치우친 사상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한다.&nbsp;<br>&nbsp;<br> 결국, 그러한 과정이 계속 이어져온 것이 현재 일본의 우경화이며 자위대를 보유하는 것은 평화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야당이 집권하지 않는 이상 우경화는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야당이 집권한다고 우경화가 멈추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논리에 맞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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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00:50: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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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77 김여경 일본의 우경화</title>
         <author>yeokyoeung</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7700511</link>
         <description><![CDATA[<div>  우선 ‘우경화’라는 것을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정치나 사회 분위기가 우익, 극우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여기서 우익이란 종래의 사회 질서와 경제적 불평등이 불가피하거나 자연스럽다고 보는 정치적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논해 보자면, 일본은 우경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nbsp;</div><div>&nbsp; &nbsp;</div><div>  종전 이후 일본은 55년 체제에 들어서는데, 이 시기 일본의 자민당은 일당우위체제의 지속 하에 장기집권하게 된다. 자민당은 대표적인 보수 세력으로, 38년간 일본 정계를 장악하면서 사회적인 분위기 역시 보수적인 성격으로 굳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 이슈와 같은 문제, 위안부 관련 문제와 과거 패전하기 전, 승전국이었던 시절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일부 장년층과 그들을 포함한 한혐 세력 등등은 일본의 보수적인 색체를 드러내 주는 사례들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일본에 태어나서 다행이다. (日本に生まれてよかった)’라는 표현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이러한 대사가 나오는 상황을 몇 가지 살펴보자면 일본 음식이 맛있어서, 마을의 거리가 깨끗해서, 일본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많아서 등등으로, 일상적이고 단순한 것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이를 주제로 한 노래도 존재할 정도로 일본인들은 애국심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어느 국가나 애국심이 존재하며 이를 결코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와 같이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서 비롯된 애국심이, 결과론적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보수적인 우익 쪽으로 기우는 데에 가속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일본의 유명 아이돌 가수가 인터뷰에서 “K-pop의 뿌리는 J-pop이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일본은 자국과 타국의 문화를 비교하여 자국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일본의 사소한 것들로부터 비롯된 애국심, 소위 과도한 ‘일뽕’에 심취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일본에 만연하게 퍼져 있는, 또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애국심이 자민족 우월주의와 같은 보수적인 성향으로 연결되기도 하며 이 역시 일본의 우경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써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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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02:54: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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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2 김기려</title>
         <author>Giryo</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7735532</link>
         <description><![CDATA[<div>우경화란 쉽게 말해서 우익적으로 변한다는 뜻이다.</div><div>일본은 어찌됐건 우경화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이 뿌리는 옛날부터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메이지유신때 애국심이 있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뿌리깊은 애국심이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 커지면서 ‘일본이 최고다’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보다 일본을 치켜세우면서 민족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것 같다.</div><div><br></div><div>&nbsp;더불어 일본의 장기적인 경제침체로 인한 좌절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잦은 지진과 자연재해에 대한 불안감 등이 국민들의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서 가장 쉬운 반한감정을 비롯한 반외국인 정서를 조장함으로써 우경화되고 있다.&nbsp;</div><div><br></div><div> 최근에 2차 대전 전범자들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정치적 거물들이 대거 참배 하는 행동 등은 그 좋은 예이기도 하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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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03:34: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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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68 일본의 우경화</title>
         <author>kuroshe7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7745703</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이 국가 전체적으로 우경화하고 있다는 의견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우경화는 일본 내 극우 세력의 영향력이 높아지고 사회적 기류가 보수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시점에서 일본을 바라본다면 우경화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우경화(化)라는 언어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일본 정치의 흐름이 우경화되어가고 있냐에 대한 질문에는 약간의 의문을 가져야한다. 여전히 많은 정당들이 일본에 존재하며, 그들의 의견조차 우경화되어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꾸준히 변화를 외치는 정치인도 일본 사회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경화=보수화'라고 생각하며 보수화조차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의문을 가져야한다. 세계시장과 국제사회가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공유하고 있는 지금, 그것이 모든 국가에 적용되기 쉬운 것은 아니다. 억지로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고자 하면 오히려 역효과로 국력이 쇠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도 신자유주의로의 변화의 압박을 동일하게 받아왔다. 하지만 그것을 수용하되, 국가 상황에 어느정도 보수적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일본이 행하고 있는 것은 우경화가 아니라 '보수주의화'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직까지 권력을 쥐고있는 자민당 역시 완전히 우경화하고 있는거에 대해서도 비난만 해야할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유력 정치인인 노다세이코는 '다양성 있는 일본사회'라는 가치를 내세운다. 선거용의 일시적인 슬로건이라기 보다는 좌파에서 제기되는 비판을 일부 수용하여 자신들의 수용선을 넓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정치적 전략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으나, 이런 전략을 세우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일본 사회 변화의 씨앗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할 것이다.<br><br>현재 일본이 행하고 있는 '헤이트 스피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고집' 등의 행위는 충분히 국제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으며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일본사회 전체를 우경화하고 있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일본 사회를 단순함과 편협함에 가두어버리며 '일본의 보수화'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어렵게 만드는 사고법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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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03:48: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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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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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53, 일본의 우경화</title>
         <author>cord20010306</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7794181</link>
         <description><![CDATA[<div><br><br><br>우경화는 좌파 또는 중도주의적이였던 정치나 사회에서 극우세력들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혹은 반공, 보수,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짙어지는 것을 이른다. 일본은 우경화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 아니다 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경화라는 사회현상은 다른 사회현상과 다르게 이렇다 할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령화 등 다른 사회현상들은 한 사회가 그 사회현상에 포함되는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할 수 있으나 우경화는 그 기준이 모호하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을 보고 있자면. 일본이 우경화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br><br>우경화는 대부분 경제, 사회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혹은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무기력할 때 심화되는 경우가 많다. 몇십년 동안 지속되는 경제 침체, 대지진, 영유권 문제 등... 일본 사회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로 인해 일본 사회는 그리 좋지 않은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일본의 우경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한다.<br><br>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거나 왜곡하는 미디어와 교과서, 일본 자위대의 군대 전환,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넷우익 등... 일본사회에서 보여지는 여러 우경화 예시들은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최근 2030, MZ세대 등의 보수화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예시를 보고있자면, 일본의 보수화,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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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04:58: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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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3 일본학과 정은채</title>
         <author>spring_crb</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7839989</link>
         <description><![CDATA[<div>&nbsp;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점점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해지고 있고 특히 한국이나 재일교포나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았을 때 점점 우경화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nbsp;<br><br>그렇다면 일본만 우경화가 되가는 것인가? 유럽은 난민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이로 인해 난민을 거부하는 난민정책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일본만 우경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적인 트렌드이고 특히 한국을 겨냥한 반한시위나 한국을 혐오하는 헤이트스피치등을 우리가 많이 접하기 때문에 일본만 우경화한다고 생각되어진다고 생각한다. 사실 각 나라의 우경화 정도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보아야한다고 생각한다.&nbsp;<br><br>&nbsp;그런 기준에 덧대어봐도 일본의 우경화정도는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은 일본 외의 것에서는 상당히 배타적리아고 볼 수 있다. 또 평화헌법 개정에서도 일본의 우경화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일본의 이런 모습은 현재 독일이 젊은층들 사이에서 퍼지는 나치즘처럼 퍼지고 있는 일종의 사회현상이라고 생각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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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06:04: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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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3059 최재혁 &lt;일본의 우경화&gt;</title>
         <author>choi_jaehyuk</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7884539</link>
         <description><![CDATA[<div>&nbsp;"지금 일본이 우경화인가?"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나는 어느정도에서는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다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서는 자민당이 일당우위체제로 긴 시간동안 유지하고 있었고 우익적인 행위를 삼아왔었다.&nbsp;<br><br>&nbsp;헌법개정, 민영화, 경제촉진 등 일본은 '정치권'에서 점점 우경화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의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그럴지도 몰라도 실질적으로 일본 내의 일상이나 사회에서는 "과연 어떨까?"라는 의문이 든다.&nbsp;<br><br>&nbsp;자민당 체제가 전후에 있어서 반공을 내세우고 경제우선성장주의를 내세우기 전에 일본은 국토가 초토화되고 연합국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시기가 잘 맞았던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부흥이라는 "잘 먹고 잘 살고싶다" 라는 인간의 내재적 심리와 더 나아가 소련의 동아시아 세력 확장으로 인해 자유민주주의로의 위협이 자민당의 체제를 굳히는 데 아주 좋은 양지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사회당 등의 좌익 세력의 입지는 파이먹기식으로 그 입지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히로히토 일왕 또한 반공세력을 우려한다는 미일정상회담의 회고록으로 인해 드러난 생각과 의견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br><br>&nbsp;그렇지만 위에 말했듯이 내 의문은 실생활적인 면에서 우경화라고 말해지는 것들이 "과연 일본 국민들에게 일치하는가?"에 대해서 생각이 든다. 거기에 가장 큰 요인으로 삼는 것은 바로 '정치적 무관심'이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투표율은 세대가 젊을수록 혀전히 떨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거기에 젊은층들은 정치권에 대항하는 이미지로 연상되는데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데에 그 효과가 미미하기에 정치적 관심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자민당의 역사와 함께 해온 중장년층들은 자신들의 의견과 생각이 일치한 부분이 많았기에 더욱 더 양극화는 극명하게 나타났다.&nbsp;<br>&nbsp;<br>&nbsp;앞으로 이 젊은층들이 시간이 지나, 정치적인 무관심을 안고 사회의 허리가 되는 입지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 메이지유신은 '위로부터의 근대화'라는 변혁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근대화 구조속에서 소수가 다수를 이끄는 형태로 변혁이 이루어졌기에 범국민적으로 사회를 형성하는 건은 한계가 있었다. 앞으로 일본의 정치적 구조는 다시 이 메이지유신때와 같은 형태로 회귀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여당으로 자리잡고 있는 자민당의 소수가 우경화를 더욱 더 부추길 거라는 예상이 가고있다.<br><br>&nbsp;<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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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06:55: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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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EAI 논평] 아베 정권과 일본 헌법 개정</title>
         <author>teseus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7931746</link>
         <description><![CDATA[<div>헌법개정=우경화라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자민당의 헌법개정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직접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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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07:45: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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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811029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7974744</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우경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div><div>다만 국민 전체로 보면 아직 잘 모르고 정부는 우경화되고 있다고 본다.</div><div>우경화의 기준은 나라가 국가주의 경향으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div><div>국가주의란 개인보다 국가를 절대적인 우위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국민이 희생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div><div><br></div><div>전후 일본의 헌법은 국민주권, 평화주의, 기본적 인권존중의 3원칙이지만 이런 헌법을 바꾸려는 자민당의 헌법개정안이있다.</div><div>문제가 되고 있는 9조 등을 보면 국가주의를 지향하는 쪽으로 가고있다. 즉 우경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현재의 헌법은 국가가 지키는 규칙인것에 비해 개정안은 국민이 지키는 규칙이라는 말도 많이 듣는다.</div><div>이것 역시 국가주의의 형상이 있다고 본다.</div><div><br></div><div>일본의 정권은 현재 자민당이 잡고 있고, 앞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 국민들도 자민당을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앞으로도 계속 우경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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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08:33: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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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8113195 일본의 우경화</title>
         <author>wenjingcai546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026004</link>
         <description><![CDATA[<div>침략의 역사를 왜곡하고 부인한다. 교과서를 수정하고 난징 대학살을 부인하는 등 터무니없는 행위를 제외하고 가장 대표적인 행동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이다. 평화 헌법을 수정하려고 시도하다.일본 우익은 ‘평화헌법’을 수정하여 규제를 깨려고 시도하고 2차 세게 대전 후 국제 질서에 도전한다. 영토 문제에 자주 문제를 일으킨다. ‘중국 위협론‘을 악의적으로 표현한다. "일본은 2014년판 &lt;방위백서&gt;를 발표하다시 한 번 새로운 ‘중국군사위협론’을 일으켰으면서 국방 지출을 급격히 증가시켜 군비 전쟁을 적극적으로 확대한다. 이러한 행위가 일본 우경화하는 증거이라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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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09:27: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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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일리본의 우경화</title>
         <author>hsuwei85</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060601</link>
         <description><![CDATA[<div>나는 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좌우는 그냥 사회문제에 대한 생각이 다를 뿐이고 정답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역사문제와 패전 후의 처리가 잘 되지 않아서 우경화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부정적인 연상을 주는 것 같아요. 특히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중국은 군국주의의 부활로 일본의 군비와 민족주의를 비난한다.<br><br></div><div>일본은 국가를 보호하는 명의로 평화헌법 개정 요구, 군비의 증가와 재일한국인과 중국인을 반대하는 시위 활동 등 뉴스에서 많이 봤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정당화와 과도한 민족주의로 생긴 배타주의 이것도 우경화 대표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국민 큰 지지를 얻은 자민당은 우파라서, 아무래도 자민당이 장기간 정권을 잡아왔고, 자민당 퉁치하에 일본이 이렇게 점점 우경화가 된 것은 어쩔수없는 것 같다. 나중에도 지속적으로 이어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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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0:06: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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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3 정붕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068989</link>
         <description><![CDATA[<div>네, 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다. 다섯 가지로 일본이 우경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일본의 정당세력조합이 총체적으로 보수화되고, 일본 정계가 우경화되면서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 잦아지고, 개헌세력이 주류화되고, 군사대국 전략이 체제화를 가속화하고 있다.<br>냉전 이후 분화된 일본의 정치단체들은 보수 우익이 주를 이뤘다.국제정세의 변화는 일본이 세계적인 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정치대국으로의 도약을 가속화하도록 자극해 정치적 급진·우경화를 초래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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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0:15: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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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79</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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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우경화됐다고 생각한다.정치 우경화 문제는 이미 일본 내 정치, 경제, 문화뿐만 아니라 주변국에도 동시에 파급되고 있다.<br>개헌 운동을 추진함으로써 주변국 및 동아시아 지역의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중국 위협론"은 중국과 타국 외교의 비용과 어려움을 증가시켰다.어려운 것은 중일 경제무역 관계에도 손상을 주고 있다. 그리고 자민당은 비교적 온건한 우파이기 때문에 오랜 집권 경험은 다른 정당보다 외교적 위기 수습에 더 진중할 것이다.일본의 우경화는 계속됐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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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0:25: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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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51 김부건 일본의 우경화</title>
         <author>buugeon</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085477</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이 우경화하고 있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 그들의 우경화 범위를 먼저 이야기해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우익 세력이라고 칭해지는 일본 자민당은 분명 우경화의 행동들을 보이고 있다. 신사 참배, 평화헌법의 개헌 등 어떤 세계의 안보에 위협을 가할 수 있을 만한 그들의 행보는 우경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단순히 일본 정치가들의 행보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 우리는 일본이라는 나라 전반의 우경화 행보에 주목해보는 것이 이 같은 우경화 문제를 다루는 것에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민당 파벌의 계속되는 집권과 함께 각종 우익 단체들에 대한 뉴스와 소식들을 매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국민들은 이러한 우익적 활동에 지지하는 것일까? 결국 자민당을 뽑고, 이러한 행보를 자처한 것은 국민의 투표와 선택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은 현재 우경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div><div>그러나 이 일본의 우경화라는 문제에서 우익 세력이 아닌 반대로 좌익 세력의 문제 또한 눈여겨 보아야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좌익세력에 의한 우익세력의 견제, 좌익세력의 정책적 무능함, 무관심 등은 단지 우익 세력의 우경화 문제는 아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적극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 같다. 분명 일본의 정치적, 국가적 문제에 대해서는 우경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비단 한 쪽 세력의 문제로만 보는 것에는 문제점이 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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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0:33: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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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3401 주현우 </title>
         <author>jhw01049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091501</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이 우경화하고 있을까? 우경화하고 있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우선 우경화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경화란 무엇인가? 만약 언론에서 지칭하는 우경화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일본은 대략 1980년대부터 우경화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980년대부터 우경화가 지속된 것이라면 2022년인 지금 일본은 우측의 끝에 존재한다고 봐야 하는 것인가?&nbsp;<br><br>일본 사회라는 대상의 우경화가 대략 40년간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면, 대상이 우경화를 하고 있음에도 기존의 위치가 너무나도 좌측이었기 때문에 지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아니면 우경화라는 지칭이 애매하고 부정확하기 때문에 적절한 기준 없이 지칭이 반복되고 있는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후자라고 생각하고 있음은 차치하고서라도, '우경화'라는 용어 자체에는 모호함이 가득하다.&nbsp;<br><br>그렇기 때문에, '우경화' 대신에 '보수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정치적 지형에서, 사회적 지형에서 보수는 과거에 비해 우위를 차지했는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관점이 필요할 것이다. 대략적으로 나눠서, 사회적 측면, 정치적 측면으로 나눠 따져볼 것이다.<br><br>사회적으로 일본은 한국보다 진보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LGBT의 문제가 가장 대표적이다. 그러나 보수의 가치관 중 하나인 내셔널리즘 또한 발흥하고 있다. 물론 내셔널리즘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고조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NHK가 1973년부터 실시한 &lt;일본인의 의식&gt; 여론조사를 보면, "일본인이 다른 국가의 국민에 비해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다"는 응답과 "일본은 일류국가다"라는 응답은 2008년에 비해 2013년 과반을 돌파했다. 이러한 경향은 2018년에도 이어진다.<br><br>2013년 이전 해당 수치가 50%를 넘었던 적이 1983년과 1988년이고, 그 당시는 일본의 경제적 위치가 세계 2위에 해당하여 일본의 미국 추월론까지 나오고 있었음도 고려해본다면, 2013년과 1983년의 시대적 상황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해당 수치가 늘어났다는 것은, 2008년과 2013년의 기점 어딘가에 일본 내셔널리즘의 부흥이 존재했다는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br><br>이는 정치적 측면에서의 보수화로도 이어진다. 2008년과 2013년 사이에 존재했던 가장 큰 정치적 이벤트는 일본 민주당 정권의 탄생과 붕괴일 것이다. 2009년 중원선으로 개헌선을 넘겨버린 일본민주당은 자살적인 3내각을 지나친 끝에 결국 2012년 압도적인 패배를 당하며 그 조직력과 구심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br><br>2012년의 참패 이후 야당은 분열되었으며, 아직도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했다. 그나마 2021년 총체적인 선거연대가 이뤄졌지만, 이 또한 중원선에서의 참패로 해소되고 있다. 기존의 호헌-리버럴 세력의 득표 파이가 제3의 정당인 유신회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중원선에 이어 차기 참원선에서도 어느 정도의 세력 감소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br><br>즉, 일본의 사회적 지형, 특히 내셔널리즘은 정치적 지형에서의 보수화와 맞물려 덩달아&nbsp; 부흥했다. 결국 일본은 어느 정도의 보수화가 진행중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우경화'라는 것은, 그 단어 자체의 모호함때문에, 일본 사회의 현상을 지칭하기에는 무리가 존재한다고 보인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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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0:39: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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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8 오채연 일본의 우경화</title>
         <author>ocy200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092195</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이 우경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특히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대답이 지배적일 것이다. 나 역시도 일본이 우경화 성향이 더욱 강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과거에 비하면 보통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고 바라볼 수 있으나, 아직 여전히 우익 세력에 치우쳐져 있다고 본다.&nbsp;<br><br>정치적 측면에서 자민당의 오랜 기간의 장기 집권으로 우익적인 행위는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일본 역사 왜곡, 헌법 개정 등 우경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은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br><br>일본의 우경화는 정치권 내에 제한되지 않는다. 민간 차원에서도 우경화를 찾아볼 수 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논란이 되었던 일본의 ‘혐한’ 서적 코너가 민간 차원에서의 우경화 사례이다. 또한 종교보수나 넷우익 등의 사회적 분위기만 보더라도 우경화의 성향이 더 강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극우 공기’는 이미 일본을 지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nbsp;<br><br></div><div>물론 일본에도 반우익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다수 존재하지만, 사회적 권위나 기존 질서를 옹호하는 보수 세력의 영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일상 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정책의 변화보다는 기존 질서에서 안정성을 찾고 있는 것 같다.&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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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0:40: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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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2강서문</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104847</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 우경화, 그리고 일본 우경화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우경화, 기득권은 더 이상 성장점을 찾지 못하고, 지역 간 격차가 커지고, 기술혁명이 더뎌지고, 기초과학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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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0:53: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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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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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4 </title>
         <author>yoonsoo246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128761</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면 일본인은 우경화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의 탓을 논하는 기사들이 많이 있다. 여러가지 관점이 있지만 한 일본 신문에서는 일본의 우경화를 한국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행보마저 일본이 우경화를 하고 있다는 증조인 것 같다. 일본이 우경화 하는 데에는 물론 일본 정권, 그리고 자민당의 탓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자민당과 그들의 행보를 지지하는 것은 일본 국민들이기 때문에 일본 국민들의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일본 국민들은 왜 계속해서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일까?&nbsp;<br><br></div><div>또 일본인들은 과거 자신들의 침략 정책에 대한 사과나 반성을 하는 대신 역사를 왜곡하고 미화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 2015년부터 일본의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는 일본의 땅인 독도를 한국인들이 불법점령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그런 교과서를 보고 배우는 학생들은 그 내용을 전부로 받아들이고 그들은 자라서 또 잘못된 극우 세력들의 행보를 지지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게 되면 일본의 우경화는 계속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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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1:19: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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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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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최의매</title>
         <author>keailegemie</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136971</link>
         <description><![CDATA[<div>&nbsp;일본은 지금 우경화되고 있다고 본다. 과거에 비해서 확실히 우경화가 심해졌다.<br>일본의&nbsp;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난징대학살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관을 우익분자는 '신역사관'이라고 한다. 우익분자 외는 '군국주의 사관' 또는 '역사수정주의'라고 한다.어느 설이든 일본의 과거 사관과 오늘날 주류의 사관과 우익의 사관은 다르다는 점을 명료하게 보여준다.<br>&nbsp;그리고 타이완, 댜오위다오, 남중국해 등 구체적인 의제와 관련됐을 때 일본 측은 중국이 현 상황을 바꾸면서 스스로 대응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대응은 일본 내에서 지지를 받아 사실상 우익 세력에게 어시스트를 해주고 있다고 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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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1:27: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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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1 일본의 우경화</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139646</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우경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br><br>우선 일본 우경화의 근원은 군국주의가 제대로 조치되지 않은 데 있다고 생각한다.반성을 하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를 세우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야스쿠니 신사의 대다수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장병들로 일본인들의 군국주의 사상이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br><br>둘째는 평화헌법 개정을 시도하고, 일본의 군비무장력 확충을 위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에 공연히 도전하고 있다는 점이다.나는 이런 사상이 바로 매우 급진적인 사상이라고 생각한다.<br><br>셋째 는 일본이 최근 몇 년 동안 한국과 영토분쟁을 벌여 왔고, 독도 문제와 댜오위다오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br><br>넷째는 다른 나라에 대한 일본의 침략 역사를 왜곡하고 심지어 침략 역사까지 미화하고 교과서 수정 등을 통해 일본 침략 역사에 대한 일본 인민들의 의식과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br><br>일본이 우경화되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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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1:30: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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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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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8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143764</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우경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br>물론 일본 전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소수이지만 우경화를 우려하고 벗어나기 위해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일본은 우경화되고 있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역사교과서를 새로 바꾼다거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중장년층들은 빛났던 과거의 일본을 생각하며 과거의 실패를 지우고, 바꾸고, 왜곡하며 그들의 주장을 앞세우고 있다. 현재 청년층은 왜곡된 교육과 숨겨진 역사로 인해 한일 역사 등과 같은 내용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것들을 바로잡고 현재의 정치를 바꾸고자 노력한다면 이는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우경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맞다고 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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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1:34: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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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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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0 시문옥 일본의 우경화 </title>
         <author>moonok</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148024</link>
         <description><![CDATA[<div>우경화는 일종의 급진적이고 모험주의다.일본 정치의 우경이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국민이 형성한 일종의 군국주의로 일부는 전쟁을 숭상하고 극단적인 사상체계를 말한다.저는 일본에서 우경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예를 들어 일본 정치권에서 대만 관련 발언을 비롯한 대중 강경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는 것은 일본 국내 정치의 큰 변화 때문이 아니다.하지만 그동안의 정치적 우경화와 관련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전 총리安倍가 2차 집권 이후 일본 정치의 우경화 추세가 두드러지면서 소장 우익 정치인을 양산해 강군 개헌의 중요성을 고취시켰다.<br>또,일본 정치의 우경화는 주로 네 가지 표현이 있다.첫번째는 침략의 역사를 왜곡하고 부인하는 것이다.일본 우익 정치인들은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고 미화하고 있다.교과서 수정,난징 대학살 부인 등 터무니없는 행태 외에 대표적인 것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하는 것이다.둘째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다.일본 우익은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제약을 타파하고 평화적 진로를 포기하고 일본을 재무장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에 공공연히 도전하려 하고 있다.셋번째는 영토 문제에 빈번히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이다.아베 정부는 2012년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공공연히 댜오위다오를 매입하는 이른바 '국유화'를 단행했다.넷째는 중국 위협론을 악의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다.우선 어떤 점이든 당당한 중국인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이것은 우리 조상 대대로 피눈물로 빚어낸 역사인데 일본 우익분자들은 감히 시비를 뒤바꾸려 한다.게다가 세계인들이 평화발전을 추구하는 오늘날에도 일본은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정치적 우경화의 길에서 멀어지며 전후의 평화주의의 길에서 벗어나 군사력과 군사행동을 그 외교국방정책의 도구로 삼는 방향으로 나아가 이웃나라와의 영토문제에 누누이 문제를 일으키며 지역과 국제안보를 해치는 불확실한 요소가 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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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1:39: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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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215472 윤건희 일본의 우경화</title>
         <author>jkheeyoon</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151959</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우경화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0년간 걸친 경제불황과 그로 인한 자신감 저하, 사회내부의 모순의 민족주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급격한 성장에 따른 불안감과 위기의식이다. 즉, 중국과의 사이에서 동아시아에서의 주도권 쟁탈전이 벌어질 것을 대비해 힘쎈 일본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그리고 역사 교육의 소홀과 함께 전후세대의 무책임과 부채의식의 결여도 있다. 일본의 우경화는 20년 이상 계속되는 내수 침체에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일본 사회 전체가 무기력해진 탓 도 있고 한국과의 독도문제 중국과의 센카쿠열도 문제 등 이러한 갈등도 우경화의 원인이 되고있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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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1:43: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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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289 이민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167404</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이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며 내셔널리즘의 모습을 보이는 점과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들고 있다.<br>그러나 역사왜곡와 평화헌법 개정은 일본의 극우 단체들과 자민당이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장이 일본 전체인 흐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br>일본 내에서 보수 정당의 집권이 길었던 만큼, 상대적으로 진보 세력의 목소리가 작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nbsp;<br>지금까지 자민당의 뜻대로 헌법을 개정해가며 자위권을 되살리려는 시도는, 북한을 핵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위기감을 이용하여 실행할 수 있었을 뿐이다.<br>일본 전체가 평화헌법을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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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1:58: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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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309 김송환 (일본의 우경화)</title>
         <author>songkim158a</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167826</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볍을 한다면 현재 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는 것은 맞지다고 생각하지만, 국가 전체의 모든 것을 아울러서 우경화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조금 힘든 부분이 있다.&nbsp;<br>일본의 우경화의 흐름을 본다면 우경화운동의 배후세력이자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회의가 형시적으로 1997년에 발족된다. 일본 우파 세력의 염원임 "연호법 제정" 운동의 성공의 여세를 몰라 1981년 결성된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우파 종교단체가 결집해 1974년에 결성된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통합하면서 탄생했다. 이전부터 서로 인적, 물적으로 긴밀하게 연대하면서 우경화 흐름을 이끌어왔으며, 더욱 요과적으로 운동을 하기 위해 이때 통합을 했다고 볼 수 있다.<br>이 단체를 보면 14년에 발족한 아베 2차 내각 때의 각료 19명중 15명이 일본회의 국회의원간담회 소속 의원이고, 총리 보좌관 등 총히 관저 스태프가 거의 이 간담회 회원으로 채워졌었다. 이 정점에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있다. 그는 퇴임 뒤인 지금도 최대 파벌의 수장으로 일본 정치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힘이 어마무시한 단체라고 표현할 수 있다.<br>이들 일본회의가 하는 일을 간단히 말하면 천황이 지배하는 전전체제로 일본의 역사를 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중에는 지학적인 역사관의 부정으로 15년도 기준 그들의 교과서에 독도 그들의 땅으로 한국인들이 불법점령하고 있다고 하든지, 천황, 황실, 천황제의 수호와 숭배를 보면 야스쿠니 참배를 고집하는 등은 결과적으로 한쪽으로 취우친 정치적 행위하고 생각하게 된다.<br>이와 같은 것들을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적인 측면으로 보는 것을 통해서 본래 의미인 보수적인 정치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어야 한다. <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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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1:58: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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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110270 김선아</title>
         <author>ryangistreaming</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8172381</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는가?<br>위 질문에 대해 일단 나는 반은 맞고 반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보통 사람들은 일본이 우경화하고 있다고 많이들 말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적으로 우경화의 대상이 일본 전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nbsp; 보통 우리가 일본이 우경화되어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일본'을 '일본정부'로만 생각하여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일본과 일본정부는 구분되어야한다. 따라서 '일본정부'와 '일본국민'들의 생각을 각각 따져볼 필요가 있다.<br><br><br>제2차세계대전 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천황의 아래에 모여 천황을 위해 자신들을 바쳤다. 당시에는 국민들이 실제로 그렇게 믿었고, 천황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지금의 일본인들은 그 때와는 다르다. 이전처럼 천황, 혹은 국가지도부에 대한 충성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아직도 전체주의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긴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이 개인을 중요시 여기는 보통의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 이전에 정치 이슈에 대해 시민들을 인터뷰하는 영상을 몇차례 본적이 있는데, 보통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해당 이슈에 대해 자세히 답변하지 못하는 모습이 자주 비쳤다. 아무래도 이런 모습을 볼 때, 국민들이 우경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nbsp;<br><br>&nbsp;반면, 일본 정부는 우경화가 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아베 정권 당시, 평화헌법을 지속적으로 개정하려했다는 점만 보더라도 이를 알 수 있다. 실제로 당시, 일본에 간적이 있는데 시부야에서 많은 일본인들이 '아베는 그만두고 헌법을 지켜라!' 라는 슬로건을 외치는 모습을 본적이 있었다. 이 모습만 봐도 일본 정부와 보통 시민들 간의 생각 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nbsp;<br><br>이렇듯 현재는 일본 정부와 일본인들 사이에 의견의 불일치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이 아닌 일본 정부 차원에서 우경화되려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결과적으로 일본 국내 우경화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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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3 12:02: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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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319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9120271</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는 경향은 있다고 생각한다. 아베정권의 “강한 일본을 만든다”는 이 말만 보면 완전히 우경화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하지만 일본 전제가 우경화하는 것보다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조금 우경화를 내비치는 것 같다. 그러나 요즘 우쿠라이나전쟁으로 ‘일본도 언제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 얼른 헌법 9조를 개정해서 스스로 일본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져야한다”라는 생각도 나오기도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완전히 우경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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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4 00:21: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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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86 박종호</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9241624</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우경화를 말하기전에 우경화가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경화가 무엇인가? 정치나 경제에 관하여 민주주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노선을 타는것을 우경화라고 할것인가 혹은 제2차세계대전때의 제국주의, 파시즘화를 우경화 라고 규정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분명히 할 수 있어야한다. 먼저 전자의 경우를 우경화 라고 한다면 일본은 우경화 한것이 맞다고 할 수 있으며 그에 더하여 필자는 궁극적으로 나아가 모든 국가가 우경화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에 반에 후자를 우경화라고 규정할경우 극단적인 면에서 그런 면을 보이긴 하지만 국가가 전체적으로 파시스트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기엔 지나친 비약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물론 여러 역사 문제 혹은 독도와 같은 영토문제로 일본의 우경화 문제를 거론한다면 그것이 관련없다고 할 수는 없을것이다. (먼저 이 문제를 말하기전에 필자는 일본의 전쟁에서의 범죄행위는 용납 혹은 옹호될 수 없으며 독도는 한국이 점유중인 합법적인 대한민국 영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영토 혹은 역사의 왜곡 문제는 많은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문제이다. 한국사의 삼국사기~대한제국,일제강점기에 대해 많은 역사왜곡이 일어나고 있으며 독도뿐 아니라 센카쿠 열도역시 영토적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우를 돌아볼때 한국,중국,대만이 우경화 되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할 수 없을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사례를 들어 일본이 파시스트적, 제국주의적 면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이를 우경화라고 이름 붙일 수 없음을 주장하는 바이다. 파시즘과 우파주의적 가치관이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로 들리는 우경화 라는 단어 자체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팔자는 이 우경화라는 말이 좌파 혹은 공산주의자들의 단어적 프레이밍이라고 생각한다.&nbsp;<br> 일단 이 문제는 일단락하고 일본의 일본의 파시즘화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이 문제를 거론할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교과서의 역사왜곡 문제이다. 물론 전쟁에서의 범죄행위에 대한 왜곡은 용납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로 일본 전국민의 생각을 잠식하고 있는가 는 생각해볼 만한 논제이다. 실제로 역사왜곡 교과서에 대한 일본 학교들의 채택률은 그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되었을때도 5~6프로수준이었고 2020년대에 와서는 0.5프로로 사실상 교육계에서 퇴출된 수준이다. 혹자는 이를 보고 교과서에서 역사왜곡이 이루어 있는 상황 자체를 지적할지도 모르겠으나 이는 누가보아도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행위이고 전국민이 우경화 되었다는 증거로는 채택하지 못할것이다.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행위는 그 어떤 나라라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례로 독일은 여전히 나치즘을 찬양하는 네오나치들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지만 그 누구도 독일을 우경화국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필자는 일본과 독일의 경우를 완전히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br>결론적으로 일본은 제국주의적으로 우경화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문제를 거론할때 우경화라는 단어를 쓰기보단 제국주의화, 파시즘이라는 단어를 쓰길 바라는 바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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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4 01:56: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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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99 감기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9276563</link>
         <description><![CDATA[<div><br><br></div><div>일본은 우경화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의 앞서 우경화는 무엇일까? 우경화는 일본 내 보수세력들의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사회적 기류가 보수적으로 변화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일본은 우경화되고 있는가? 과거의 일본 같은 경우는 어느정도 우경화되는 경향이 보여진다 생각한다. 2012년에는 실제로 극우 정책의 인기가 높았고, 자민당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죄의식 없는 모습을 보이며 우익의 성향이 묻어있었다. 우파 세력의 이러한 모습은일본 교과서에도 보였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며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우익은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일본의 정친인들의 야스쿠니 참배는 확실한 보수세력의 성향이 많이 묻어있는 모습이다. 하지만이러한 극우 세력의 일본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까? 어느 정도의 영향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큰 범주에서 이를 보았을때 그렇지 않다 생각한다. 교과서에 역사적으로 왜곡된 사실을 싣는 행위는 일본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으며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그라들었다. 또한 일본의 우익 세력들이 정기권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일본 청년들의정치적 무관심이라 생각한다. 극우 세력의 정치사상이 몇몇 청년들이 우경화에 영향을 주었지만, 그얼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지 우경화되어있지는 않다. 또한 몇몇 청년들은 극우 세력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경향이 현재에서 많이 보여지고 있다. 정부자체로 보았을때 우경화는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일본 사회속에서 우경화되는 모습은 미미하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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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4 02:29: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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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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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0247 윤지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69346175</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우경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br>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이 과거 저지른 침략의 역사에서의 정당화나 일본의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한 의원의 종군 위안부라는 명칭에는 일본의 강제성이 내포되어있는 것이냐는 질의에 명칭을 위안부로 정정하겠다는 태도와 같이 교묘한 말장난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치인들의 모습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해 정확한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총리의 보고 시스템 존재 유무에 대한 부정에도 이를 그저 받아들이는 일본 시민들의 태도에서도 일본의 우경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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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04 03:46: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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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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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본 사회운동이 쇠퇴하게 된 배경과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아요~</title>
         <author>teseus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87707345</link>
         <description><![CDATA[<div>https://www.youtube.com/watch?v=e4-QWNo3_HU<br>(아사마산장 사건)<br><br></div><div><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NcpVavd3KoQ&amp;has_verified=1">https://www.youtube.com/watch?v=NcpVavd3KoQ&amp;has_verified=1</a> (적군파의 몰락1부)</div><div><br><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O90PJUY2mxg">https://www.youtube.com/watch?v=O90PJUY2mxg</a> (적군파의 몰락2부)<br><br><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P80IMrf3w5o">https://www.youtube.com/watch?v=P80IMrf3w5o</a> (시민운동가의 인터뷰)</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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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14:17: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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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18210988 신민호 일본의 사회운동과 쇠퇴 이유</title>
         <author>minhomino0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2207044</link>
         <description><![CDATA[<div>&nbsp;일본 사회운동의 몰락에 큰 기여를 한 적군파 사건이 실패할 수 없었던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br><br>&nbsp;첫째. 적군파는 무고한 시민들을 볼모로 삼았다는 것이다. 1970년 국제 근거지 마련을 위해 적군파는 일본항공의 여객기 요도호를 납치하여 평양으로 향하였고, 그 과정에서 1대 의장을 비롯한 다수가 체포된다. 이후, 2대 의장이 된 모르쓰네오는 시민들의 돈이 묶여있는 은행을 털어 돈을 마련하였고, 적군파와 연합을 하여 연합 적군을 탄생시키는데 일조한 혁명좌파는 총포점을 약탈하였다. 결국, 이들이 한 행동은 이러한 약탈을 한 뒤, 정부에 무력으로 대항하여 "시민 사회에 도움을 주기 위해"라는 프레임을 씌워도 그저 범죄라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그들은 마지막 투항 과정에서 아사마 산장에 있는 사람을 인질로 삼고, 자신들의 투쟁을 이어나갔다. 또한 이들을 체포 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무고한 시민 1명도 사망했다.&nbsp;<br>&nbsp;결국, 생중계되고 있던 체포 과정을 보던 시민들은 그들의 운동이 무고한 시민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느꼈을 것이다.<br><br>&nbsp;둘째. 내부 불신.<br>&nbsp;한 사람이 뜻을 세우면 그 길로 향할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이 뜻을 세우면 가고자 하는 방향과 속도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이들을 이끌어주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연합적군의 리더 모리쓰네오는 그들을 다룰 방법으로 '총화' 즉, 자기불신을 사용하였고, 대원들이 스스로를 믿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한 내부 고발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인원들을 탄압하였다.<br>&nbsp;결국, 이러한 내부 불신이 그들의 단합력을 붕괴시켰고, 붕괴된 단합력으로 인해 연합적군파는 힘을 잃었다.<br><br> 이러한 적군파의 행실이 많은 시민들에게 알려지며 그들은 '진보계열'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당과 시민 운동을 보면 적군파가 좌익 단체라는 것을 이유로 그들을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것은 자연스레 운동의 쇠퇴를 불러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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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01:25: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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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68 송수민</title>
         <author>kuroshe7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2726684</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 사회운동이 쇠퇴하게 된 배경에는 시민들의 지지 하락, 내부분열, 지속적인 권력자들의 탄압 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운동이 발생했을 때 권력자들의 탄압은 없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회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기반되어야 하는 것이 강한 조직력과 민중의 지지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에서도 많은 노조운동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일부는 지지를 받고 일부는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지지받지 못하는 노조운동들은 대부분 지속적으로 노조운동을 진행하여도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지지해주지 않는다면 사회운동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의 불만 토로라는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지지받지 못해 성과를 얻지 못하는 운동에서는 내부분열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br><br></div><div>일본의 사회운동 역시 사람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내부분열이 일어나면서 권력자들의 강한 탄압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와해되어버리는 결과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지를 얻지 못하고 내부분열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br><br></div><div>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적군파 사건을 빼놓고 일본 사회운동의 쇠퇴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젊은 청년들로 이루어졌던 적군파는 혈기왕성하고 열정적인 분위기 속에 급진적인 혁명을 추구했다. 급진적인 혁명이 반드시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도만을 중시하여 과격한 혁명으로 바뀌는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적군파는 1970년 여객기 납치 사건을 포함하여 총포점 약탈, 민간인 인질 등 다수의 불법적 행위를 저지르고도 그것을 사회운동이라는 이름 하에 미화했다. 그것이 가장 극대화 되었던 사건이 ‘아사마 산장 사건’이다. 이후 그들의 내부분열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도 발견되면서 적군파는 자신들의 뜻을 위해 무고한 사람도 죽이는 단체로 전락해버렸다.&nbsp;<br><br></div><div>과거 시민운동가였던 스즈키씨의 인터뷰에서 일본 사회운동의 몰락 이유를 다수 찾아볼 수 있었다. 스즈키씨 역시 폭력적인 시도들이 잘못되었다고 언급한다. 폭력적인 행위들이 민중의 지지를 하락하는 요인으로만 작용한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이 반대로 그들의 목소리가 향하는 권력가들의 탄압구실이 된다는 말이 인상깊었다. 그렇기 때문에 탄탄한 조직력이 뒷받침 되어야 권력가들의 탄압에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일본 사회운동 분파들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사회운동이 활발하던 시대에는 데모에 참여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존재했다. 그래서 이것을 일본은 당시 젊은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부분열 상황에서 강압적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하게 했고 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자연스레 힘을 잃게 된 것이다.<br><br></div><div>스즈키씨의 인터뷰를 보며 느낀 점을 한가지 더 덧붙이고 싶다. 스즈키씨의 ‘일본의 민주주의는 빌려온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스스로 이뤄낸 민주주의라고 보기에는 약간의 허점이 존재한다. 민주주의의 성립에는 미국이라는 다른 나라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스스로 쟁취해낸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스스로 얻어내지 못한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권력가들의 탄압에 약하고 강한 자에게 붙으려한다는 말에는 약간의 의문이 든다. 스즈키씨를 포함하여 많은 과거 젊은이들은 사회운동을 통해 일본의 과거 역사를 접했다. 국가 숨기려했던 사실을 배우면서 스스로 권리를 쟁취하고자 했던 움직임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어찌하다가 일본에게 쥐어진 민주주의 말고 또 다른 순수한 그들의 권리를 손에 쥐고자 하는 사회운동도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흘려가며 얻지 못했기 때문에 권력의 압력에 약하다는 말은 마치 굶주려본적이 없기 때문에 간절하지 못한다는 말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피흘려가며 얻었다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가는 상당히 주관적이며 굶주려본 경험은 어떤 일에 간절해지기 위한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희생하고 피흘리면서 얻어낸 민주주의가 권력의 탄압에 강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이렇게 주장한다고 하여 적군파와 같은 과격 좌익 단체의 행동을 옳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청춘들의 사회 운동의 실패를 스스로 얻지 못했던 약한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아야할 점이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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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08:55: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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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53 엄희경 일본 사회운동의 쇠퇴 이유</title>
         <author>cord20010306</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3246922</link>
         <description><![CDATA[<div>아사마 산장 사건, 적군파 등 1960년대 당시 일본 사회운동의 예시를 통해 일본 사회운동이 쇠퇴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br><br>첫째, 사회운동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된 폭력과 시민들의 피해이다.&nbsp; 대부분의 사회운동은 폭력을 수반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현대에 이르러서야 평화적인 사회운동이 증가하고 있지만, 역사속에서 대부분의 사회운동은 폭력성을 띠었다. 아사마 산장사건과 적군파 또한 그러하다. 은행강도, 총포상 습격, 하이잭, 공항난사 등... 사회운동이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폭력과 무고한 피해가 발생하였고, 시민들은 사회운동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사회운동은 대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폭력과 무고한 피해가 지속되며 시민들은 사회운동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이것이 사회운동이 쇠퇴하게 된 큰 이유 중 한가지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br><br>둘째, 집단의 내부 분열과 불신, 그리고 권력자의 횡포이다. 아사마 산장사건이 두번째 이유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생각을 한다. 권력자의 정당하지 못한 총괄 지시, 이것은 권력자의 횡포를 명확하게 나타내는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계속되는 총괄로 인한 내부 분열과 불신, 그리고 도주. 이러한 내부 분열과 결속되지 않는 사회운동 단체 또한 쇠퇴의 또 한가지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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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16:28: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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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일본사회운동 쇠퇴 이유</title>
         <author>hsuwei85</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3311286</link>
         <description><![CDATA[<div>&nbsp;</div><div>1.안보투쟁의 실패</div><div>1960년대 믾은 학생이 참가한 대규모 사회운동- 안보투쟁의 실패는 학생에게 큰 좌절감이 느껴졌다. 일본 젊은이 사이에 평화적으로도, 치열한 방식으로도 여당의 정책을 바꿀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런 좌절감은 오늘날 일본인들의 정치 무관심에 중요한 역사적 요인이다.</div><div>&nbsp;</div><div>2.사회운동에 대한 반감</div><div>안보투쟁 실패해서 학생운동이 극단화(폭력) 되고, 심지어 국민의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안 좋은 이미지를 주었다. 적군파도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행동을 인해서 일본국민이 반감을 불러일으켰다.&nbsp;</div><div>&nbsp;</div><div>3.사회운동에 대한 모름</div><div>70년대 후에 사회운동은 쇠퇴가 시작되었고 일반사람들이 사회운동을&nbsp;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젊은이들은 사회에 대해 비판과 대항하는 규칙을 전혀 모른다. 사회운동에 따른 변화를 목격했다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사회운동 자체를 보지 못했다면 동참할 수 없다.</div><div>&nbsp;</div><div>4.경제</div><div>경제에서 대학등록금이 대폭 인상되어 학생에게 아주 큰 부담이 되었다. 금전적인 어려움 때문에 취업에도 스트레스의 원인중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주장을 공표해서 권위를 향해 목소리 내는 것이 쉽지 않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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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17:22: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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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20110255 이세영 일본 사회운동 쇠퇴 이유</title>
         <author>jennyda1013</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3353347</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 사회 운동의 쇠퇴에는 내부 분열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일본 운동권 학생운동은 낮에는 훈련을 하고 밤에는 사상 교육을 받으며 결속을 다졌으나 집단의 수뇌부가 대원의 사상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이는 무자비한 집단 린치까지 이어졌다. 시민운동가인 스즈키 씨의 인터뷰만 봐도 그러하다. 차이를 두고서 여러 신좌익 단체들이 생겨나며 사회 운동의 주체가 분열했다. 분열된 단체는 폭탄을 제조하는 등 점점 과격해지기 시작했고 미츠비시 중공업 같은 기업을 테러하기에 이른다. 적군이라는 그룹 또한 세 그룹으로 분열하더니 서로 동료를 죽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산 속의 비밀기지에서 전 동료를 살인하기를 반복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짓은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이었으며 사회 운동에 대한 인식이 나빠짐에 따라 쇠퇴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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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0 17:57: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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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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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3 정은채</title>
         <author>spring_crb</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3759393</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사회운동이 실패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내부분열과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부분열은 집단을 와해시키고 내부 결속을 약화시켰다. 특히 아사마 신장 사건 등을 보면 굉장히 집단적으로 행동하고 집단의 목적에서 벗어나면 가차없이 집단에서 제거하는 등의 행위가 당시 일본 학생사회의 특징을 보여준다. 집단이 강압적일수록 집단은 와해되기 쉽고, 갈라지기 쉽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내부결속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시골의 산장에가 집단적으로 훈련을 받고 결속력을 강화하려 했지만 나중에 집단의 소속원을 살해하는 등의 행동들을 보였으며 이는 국민적 지지까지 멀어지게 만들었다. 적군파는 테러단체라고 칭해질 정도로 굉장히 테러와 동일한 행동들을 자행했다. 테러 혹은 이와 비슷한 행동들이 과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행위일까?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무리 자신들의 이념과 생각을 전하려해도 정당하지않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일본 사회운동은 쇠퇴의 길로 걸어갔다고 생각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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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07:45: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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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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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2 김기려</title>
         <author>Giryo</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3761463</link>
         <description><![CDATA[<div>1.적군파사건</div><div>&nbsp;폭력적인 방법으로 사회불안을 조장한 후로 사람들의 시선이 부정적이게 변했다. 그리고 모임이 변질되어 원래의 뜻을지키지않게 되었다. 그걸 보고 신뢰도가 깨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은 학생권운동하면 적군파사건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고 들었었는데, 그만큼 이미지가 좋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신뢰가 깨진집단이기 때문에 형성되기가 어렵다.&nbsp;</div><div><br></div><div>2.무관심</div><div>&nbsp;일본인들의 관심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일본인들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그냥 관심 자체가 적어보인다. 그만큼 잘 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며, 나서는 분위기가 형성돼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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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07:51: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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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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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본 사회운동이 쇠퇴하게 된 배경과 이유 2020110277 김여경</title>
         <author>yeokyoeung</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3769056</link>
         <description><![CDATA[<div>  일본의 사회운동이 쇠퇴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사회운동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1960년대 일본은 사회적으로 학생운동이 활발했다. 니혼 대학의 불법 비자금 발견과 관련해 전학공투회의 즉, 전공투가 생기고 이 전공투가 여러 분파로 나뉜다. 그중 적군파가 혁명좌파와 연합해 연합적군이 형성되는데 이들은 경찰을 피해 산속에 숨어서 투쟁을 계속한다. 그러던 중 적군파 2대 수장 모리 츠네오와 혁명좌파 수장 나가타 히로코가 체포되면서 그들의 본거지가 밝혀지고 남아있던 5인이 아사마 산장에서 10일간 인질극을 벌이다 소탕되는 일명 ‘아사마 산장 사태’가 발생한다. 그와 함께 산속에 파뭍혀 있던 12구의 시체가 발견되며 연합적군 내부에서 폭력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 또한 밝혀진다. 당시 이 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민간인이 사망하기도 했으며, 진압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방송의 시청률이 90%를 넘었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물론 기시노부스케와 공안 당국이 비자금 사건을 덮으려고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그들을 고문했던 것 역시 사실이며 이로 인해 전국적인 학생 운동이 발생했지만, 이것이 과격화되고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으며 처음의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사마 산장 사태는 사회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극에 달하게 했고, 이러한 부정적인 낙인으로 인해 일본의 사회운동은 자연스레 쇠퇴의 길을 걷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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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08:09: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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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일본 사회운동의 쇠퇴 2014110282 윤녕후</title>
         <author>ynho123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3780730</link>
         <description><![CDATA[<div>현대 일본의 정치, 사회적 특징에 대해 이야기 할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는 일본의 빈약한 사회운동이다. 흔히 '일본인은 파업을 하지 않는다' 와 같은 인식이 한국에는 많이 퍼져있는 듯 하다. 한국의 7~80년대와 비교해 보아도 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은 매우 활발했다. 그렇다면 1960년대의 격렬했던 일본의 사회운동이 쇠퇴한 이유는 무엇일까<br>&nbsp;가장 먼저 일본의 사회운동은 그 진짜 의도가 어떠했는지와는 별도로 폭력적인 이미지가 많았다. 사회, 학생운동 하면 떠오른는 대표적인 사건이 적군파사건일만큼 일본의 사회운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운동의 폭력적인 이미지는 이후 일본사회에서 사회운동이 쇠퇴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br> 두 번째로는 일본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꼽을 수 있다. 본래 사회운동이란 사회의 성장이 어느 정도 정체되고 구성원의 분배에 대한 압력이 커질 때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 한창 사회운동이 벌어지던 시기는 일본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이고 이후에도 일본 경제가 잠깐 주춤하는 시기가 몇 번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꾸준하게 우상향 한다. 여러 이유로 인해 경제성장기에는 사회 운동의 불이 붙지 않았고 이후 경제 정체기에는 사회운동의 이미지가 이미 좋지 않아 그 동력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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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08:38: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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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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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본의 사회운동 쇠퇴 배경과 원인에 대해서2021110247 윤지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3839463</link>
         <description><![CDATA[<div>1960~1970년 대까지만해도 전국적으로 활발히 사회운동이 일어난 일본에서 시민들의 정치참여 저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br>현재 일본의 모습이 10년 후 우리나라의 모습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사회운동의 경우 우리나라와 일본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특히 청년의 젊은 계층에서 더욱 도드라지는데 나는 일본 시민들의 정치참여 저조현상이 사회운동의 명칭과 사회운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경우 흔히 데모로 표현하는 사회운동에 대해 국민의 행동이 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없으며 젊은층일 수록 데모에 대해 민폐, 과격하며 사회적으로 한 쪽에 부정적으로 치우쳐졌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br>과거 일본에서 만연했던 시민운동의 사례들을 생각해보면 현재 일본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무관심은 과거로부터 당연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이 아닌 세대가 교체되며 진행되는 가치관에 대한 변화라고 생각한다.&nbsp;<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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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11:03: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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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20110268 오채연</title>
         <author>ocy200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3841155</link>
         <description><![CDATA[<div>현재 일본의 사회운동은 단체의 성격을 띄기보다는 개인들의 시민 활동 성향이 강하다. 전지구적 문제에 대해 다양한 글로벌 사회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nbsp;<br>하지만, 집단으로 구성되어 사회 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의 일본 분위기를 떠올린다면 60년대 일본 내에 활발했던 학생운동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nbsp;<br>이처럼 과거에 비하여 일본의 사회운동은 쇠퇴하게 되었는데, 그 원인은 바라보는&nbsp; 시선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내부 분열이라고 생각된다.<br><br>어떤 무리에 속해있든 내부분열은 치명적이다. 예를 들어, 아시마 신장 사건을 볼 때, 소속 집단 내에서 발생하는 의심과 가혹한 행위등은 내부 결속력을&nbsp;단번에 와해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집단 내의 돈독함과 결속력을 위해 행해진<br>훈련과 활동들은 결국 소속원을 살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어쩌면 사회운동이라는 명목 하에 폭력과 상급자의 권력 남용이 당연하게 벌여지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운동에 대한 지속적인 부정적인 시선들은 결국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였고, 현재까지 지속되지 못하게 된것이 아닌가 싶다. 타인에게 의해 보여지는 시선을 중요시 하는 일본 문화에서&nbsp;한 번 찍힌 부정적인 낙인은 자연스럽게 일본의 사회운동의 쇠퇴로 이어졌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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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11:07: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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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17110308 김재우</title>
         <author>watchagongyou</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3894545</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사회운동이 쇠퇴하게 된 원인은 내부분열과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에서 찾아 볼 수 있다.&nbsp;<br><br>어느 집단이든 내부적으로 결함이 없어야 효율적이게 집단 행동이 가능하다. 비단 사회운동 뿐만 아니라 스포츠 집단이든 정치 집단이든 결국 내부의 결속력이 집단의 지속력을 결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사회운동 집단은 대체적으로 결함이 많았다. 전공투의 시작은 대학 내의 비리나 학생 탄압이 기폭제가 되어 이를 해결하고자 등장한 집단이다. 그러나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다양한 집단이 등장한다. 이때 정치적 의도를 가진 집단이 등장하면서 사회운동의 방식이 과격해지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연합체를 모토로 삼았기에 수많은 집단이 생겨났지만 정작 이를 통제할 사람은 없어서 기존의 대학 내 여건 개선을 위한 운동이 아닌 정치적 운동으로 노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전공투에 대한 대중의 인식 또한 나빠져만 갔다. 일본의 정치 성향은 한국과는 달리 다양해서 수많은 연합체들이 생기고 이들의 대립도 심했기에 결국 과격파만 남게 된다. 노선차이로 인한 결속력 부재는 사회운동 집단의 와해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다 과격파를 대표하는 적군파와 혁명좌파의 연합체가 아사마 산장 사건을 일으키고 이미 와해된 전공투는 결국 쇠퇴하였다.<br><br>그러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고도경제성장으로 학생운동 세대 또한 경제적 혜택을 보게 된다. 사회운동은 국가 내의 사회가 불합리하다거나 무엇인가 문제가 있어야지 대중의 지지를 얻고 집단 행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일본에서 이미 와해된 일본의 사회운동 집단들이 다시금 대중의 관심을 받기에는 사회적으로 적합한 상황이 아니었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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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13:05: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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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1811028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4111608</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사회운동은 일본의 단체들의 행동에 의해 쇠퇴되었다.<br>대표적인 것이 전공투의 사례이다. 처음 이 단체는 학생을 탄압하는 것을 없애고자 시작한 단체이다. 다만 성장함에 따라 건전하지 못한 방향으로 활동이 진행되면서 시민들의 신뢰 또한 잃게 되었다.<br>특히 야마나 산장 사건으로 범죄를 통한 무기, 자본의 획득경로 등과 더불어 군사훈련과 정도를 넘어선 단속 등으로 사람이 죽기까지 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br>이들은 통일된 마음가짐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권력을 잡고 있던 사람의 잘못된 행동들과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휩쓸렸던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한다.<br>한편 2차세계대전 당시 배웠던 일본의 민주주의는 일본 스스로 행하여 얻은 것이 아닌 미국에 점령에 의해 성립되었다는 것 또한 한 요인으로 여겨진다.<br>자신들의 힘으로 얻고자 하는 간절함이 부족했기에 탄압과 횡포에도 굴하지 않고 싸우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쉽게 무너지게 되었다고 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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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1 19:30: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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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16110281 이동규 일본 사회운동의 쇠퇴 이유</title>
         <author>LeeDonggyu</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4295254</link>
         <description><![CDATA[<div>기본적으로는 안보투쟁을 계기로 결성된 운동 조직들이 보인 과격하고 해악적인 모습이 사회운동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움으로써 입힌 타격이 가장 컸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운동권이라 하면 일부 과격한 모습으로 연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모 탤런트는 실제로 운동권 시절 미국 문화원에 시한폭탄을 설치했다는 이유로 미국 입국금지 대상자가 되었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사회운동의 과격함이란 한국의 것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었다. 은행강도, 폭탄테러, 인질극, 하이재킹까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행위로 보기 어려울 만큼의 폭력이자 테러 행위였다.<br><br>'남에게 명백히 해를 끼치는 시위'를 폭력시위라고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비폭력시위라고 간주해 보자. 폭력시위는 그 메시지와 의도에 안 좋은 이미지를 덧씌운다는 것부터 성공적인 궤도를 그릴 수가 없다. 그리고 폭력을 통해 자신들의 입맛대로 바꿔 놓은 세상이라면, 그 세상에는 또 다른 변화를 위해 어떤 폭력이 용납될 것인가 불안에 떨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이 불편했던 만큼 불특정 다수도 불편해 보라는 미러링은 보복성 폭력을 옹호하는 것과도 같고, 이는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것과도 같다.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린 판국에 새로운 법이 비집고 들어올 정당성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br><br>우리나라처럼 한창 민주주의의 과도기일 때에 일본은 각자의 신념을 밀어붙이기 위해 무슨 행동이든 서슴치 않았다. 타인과 타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 폭력주의자들의 이기적인 독실함 때문에 그 신념은 오히려 빛이 바래게 되었다. 남에게 납득시킬 수 없는 방법을 택하고 만 그 시절 일부 운동가들 때문에 현대에 이르러서도 일본의 사회운동은 끈끈한 연대도 맺지 못하고 크다 할만한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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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2 05:04:3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4295254</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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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8110294 </title>
         <author>512towaka</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4300850</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사회운동이 쇠퇴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부의 분열이라고 할 수 있다. 분열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사회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혁명을 빨리 이루어야 한다는 급한 마음이 생겨서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이 때 내부의 분열이 심해져서 본인들과 조금이라도 생각이 다른 집단이 있으면 그 집단을 살해하는 등의 일들이 일어났다. 이런 폭력적인 성향은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켰고 사회운동가들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 또한 좋지 못하게 되었다. 대중들의 시선이 나쁘다 보니 사회운동가들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 힘이 약해진 사회운동 단체들은 서서히 쇠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br><br>&nbsp;두 번째 이유로는 일본의 민주주의는 투쟁을 통해 쟁취한 민주주의가 아닌 미국의 힘으로 인해 빌려온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여러가지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이 활발하였고 이를 탄압하는 권력가들에게 운동의 의미와 필요한 변화들을 알려왔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운동들로 인해서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집단의 결속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일본은 앞에서 말했다시피 미국에게서 빌려와 완성된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실제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방법을 모르고 결속력이 약하고 개인주의성향의 활동들이 많다 보니 권력가의 탄압에 그대로 무너져버리는 단체들이 많아 점점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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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2 05:22: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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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51 일본의 사회운동과 쇠퇴, 그리고 영향</title>
         <author>buugeon</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4568791</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 사회운동이라는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경우도 그렇듯 어떠한 사회운동에 있어서 국민, 즉 다수의 지지와 사상적 기반이 있어야 이것이 사회운동에 있어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며, 나아가 유의미한 목적 달성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일본의 사회운동, 아사마 산장 사건과 같은 경우에는 사상의 강요와 무의미한 훈련과 정신개조만이 있을 뿐 그들의 결속력과 다수의 지지가 결여되어 있었다. 또한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60-7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와는 달리 일본의 눈부신 경제적 성장은 이와 반대로 급성장하고 있었기에 일본의 국민층의 지지는 자연스럽게 없었을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운동의 시작은 순수한(?) 사상운동이었지만, 이것들의 결말과 사건의 발단 등은 앞선 이유로 인해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div><div>&nbsp; &nbsp;</div><div>이것이 곧 당시의 학생운동에 가담했던 지금의 일부 중년층을 제외하고, 여러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인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러한 사상적 배경을 가진 정당 혹은 단체들이 외면 받는 이유 또한 과거의 사건으로 인한 피해가 이어져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합적으로 아사마산장 사건과 같은 사회운동의 여파가 현재까지 이어져 옴과 동시에 자민당의 지지와 타 정당들의 무능력함, 구조적 문제들로 인한 일본의 ‘우경화’라고 불리는 것이 이러한 이유에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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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2 15:03: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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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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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215472 윤건희 일본의 사회운동과 쇠퇴하게 된 배경과 이유</title>
         <author>jkheeyoon</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4723909</link>
         <description><![CDATA[<div>70년대 들어오면서 ‘시민운동’ 이라기보다는 ‘주민운동’으로서 주로 자신들의 생활의 장인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때의 운동은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의 해결을 지역주민 공동의 과제로 설정 지역의 생활환경을 침해나는 공권력과 자본의 힘에 저항하는 저지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고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div><div>&nbsp; &nbsp;</div><div>사회경제 조건의 변화도 크다 70년대 대학의 학비도 대폭 상승했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층이라고 여겨지는 대학생도, 과거에 비교해서 시간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궁핍해 지고 있다.</div><div>학비, 장학금의 부담은 학생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 취직활동헤의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 정치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권위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쉽지않기 떄문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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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2 18:56: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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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8110286 박종호</title>
         <author>sjweye123456789</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5134851</link>
         <description><![CDATA[<div>&nbsp;일본 사회운동의 실패는 너무 급진적이었고 그것이 테러에 준하는 행위에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집권당의 경제적 성공역시 그 이유에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평화롭고, 부유할때 변화를 두려워 하거나 꺼려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지지할리 만무하다.<br> 또한 그들 내부의 가혹함 역시 쇠퇴에 영향을 주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사마 산장사건 등 내부의 가혹행위는 결코 시민들에게 우호적으로 보일 수 없다. 특히 이런 행위는 중도파 혹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층의 등을 돌렸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어떠한 사상을 주장, 주입할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그 사상의 명분, 타당성이 아닌 이미지이다. 한국의 좌파와 같은 경우 오래 전부터 자신들에게 선, 옳음이라는 이미지를 프레이밍 화 했었고 그를 통해 중도층에 대한 지지 작업을 반복해 왔다. 이는 19대 대통령 선거, 21대 총선에서 그러한 효과를 톡톡히 받기도 했다(물론 이에는 우파의 자멸이 큰 이유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일본의 운동권은 이러한 이미지 프레이밍화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잠재적 지지층에게 버림받을 만한 행위를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부부터 곪았으니 한 단체로서 결집될 가능성도 희박했다. 즉 적군파사건, 아사마 산장 사건 등으로 이미지도, 내부의 결속력 모두를 잃은 운동권의 자멸이 사회운동 쇠퇴의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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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3 03:22: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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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3401 주현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5169822</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 사회운동 쇠퇴의 가장 큰 원인은 대중조직화의 실패에 있었다. 일본 전후 반전의 움직임은 분명 거셌고, 그 여론 또한 충분히 컸다고 본다. 이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 1950년대 중반의 선거결과와 안보투쟁이다. 재무장론에 대항하여 "청년들이여! 총을 들지 말라"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일본사회당은 1955년 실시된 중의원 선거에서 약진했고, 이러한 기세는 1960년 안보투쟁까지 이어졌다.<br><br>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전후 최대 시위의 열기는 대중조직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청년들은 제도권에서 벗어나 극단화되어갔으며, 제도권 정치에 참여한 경우에도 꽤 급진적인 주장을 이어나갔다. 제도권 정치는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결국 극단화된 청년들의 결말은 일본에서는 아사마 산장 사건, 해외에서는 요도호 사건을 비롯한 각종 테러사건으로 이어진다.&nbsp;<br><br>이러한 급진적이며, 극단적인 행동은 사회운동으로부터 대중적 지지가 멀어지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전후 일본의 여론과 사회운동의 주장 간에는 어느 정도의 접점이 존재했다고 본다. 예컨대 반전과 같은 구호들은 많은 대중이 찬성했을 만한 구호였다. 그러나, 사회운동의 극단화는 대중의 접근을 차단케 하는 가장 큰 원인이었고, 그 사이 경제를 내세운 자민당은 대중 속으로 침투해갔다.<br><br>결국 대중은 사회운동세력의 주장보다는 자민당의 주장에 더욱 동조하게 되었다. 자민당은 이익분배의 메커니즘을 통해 자민당에 친화적인 조직들을 특히 농촌 지역에서 많이 구성하였다. 반면 사회운동은 극단화되어 청년들이 총을 들고 농촌 지역으로 들어갔다. 누가 더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되었을지는 자명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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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3 03:54: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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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3195 채원징</title>
         <author>wenjingcai546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5362558</link>
         <description><![CDATA[<div>무장투쟁은 일본에서는 안 된다. 일본 부르주아지 정부는 결코 일본 인민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일본 전후의 경제굴기는 미국의 도움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일본 자체가 미 제국주의 체제하의 기득권자이며, 정부와 미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일본의 광대한 부르주아지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일본이 국내 복지체계를 끊임없이 개선한 후, 심지어 무산계급에서도 혁명에 대한 흥미는 특별히 크지 않다.<br><br>사회운동은 새롭게 대두되는 사회문제에 빠르게 대처하는 특징이 있다.사회문제의 출현은 항상 사회운동의 발생을 가져온다.일부 사회문제가 개선되고 해결되면서 사회운동의 목표와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노동운동은 이제 사회운동의 주류를 끊고 주민운동이 등장했다.<br><br>냉전이 끝난 뒤 동서 양 진영의 대진은 끝났다.1990년대 이후 일본 내 환경도 크게 변했고, 좌익으로 대표되는 일본 사회당의 쇠약과 해체로 혁신 역량이 보수와 견제하는 데 쇠퇴했다.일본 사회사조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사회운동에 반영되어 민족보수주의와 평화민주주의라는 두 세력의 치열한 대결로 나타날 것이다.<br><br>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의 해체는 노동운동의 쇠락과 좌익의 퇴조를 의미한다.한편 1955년 이후 일본 국회에서 오랫동안 제2당을 차지했던 일본 사회당은 쇠락과 타협을 거듭했다.여기에 거대 무당층이 등장해 상당수 민중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그러다 보니 평화민주주의 사조로서 중요한 지지층이 위축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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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3 06:32: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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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17110309 - 일본 사회 운동의 쇠퇴 이유 및 배경 </title>
         <author>songkim158a</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5647902</link>
         <description><![CDATA[<div>&nbsp; &nbsp;사회 운동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좋은 목적과 취지를 가지고 시작되지만, 점차 그 성향이 폭력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본의 사회 운동 또한 폭력적인 성향이 점차 두드러지면서 시민들의 지지가 하락하면서 점차 쇠토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사건들을 볼 수 있다.&nbsp;<br>&nbsp; &nbsp; 먼저&nbsp; 젋은 청년들로 이루어진 적군파 사건을 볼 수 있다. 이는 혈기왕성하고 열정만 앞선 청년들의 기세를 밀어붇여 급진적인 혁명은 점차 과격한 혁명으로 바뀌게 되는 사건이다. 1970년에 여객기 납치 사건과 총포점 약탈, 민간인 인질 등과 같은 불법적인 행위를 저지르며 사회 운동의 질을 더럽혔다.&nbsp;<br>&nbsp; &nbsp; &nbsp;이외에도 아시마 산장 사건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적군파의 내부 분열로 인해 무소한 시민들이 희생다하는 데에 마다하지 않는 살인자에 불과한 사회 운동 단체로 전락하고 만다.&nbsp;<br>&nbsp; &nbsp; &nbsp; 이처럼 적군파 사건을 비롯해서 아시마 산장 사건은 일본 사회 운동의 과정에서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그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불법적인 것도 마다하지 않는 과격한 면모는 점차 시민들의 지지를 잃어갔다. 심지어 과격한 활동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자들의 탄압에 강경하게 맞섰다고 하더라도 눈에 띄는 성과마저 보이지 않고 결국에는 내부 분열까지 일으키는 모습은 시민들의 신뢰를 잃게했다.&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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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3 10:20: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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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20110283 정붕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5943910</link>
         <description><![CDATA[<div>&nbsp;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일본에서는 사회주의와 사회 민주주의와 같은 혁신주의 사조가 성행하였는데, 그 형태는 번창하고 다원화된 혁신주의 사회 운동이다.전후 초기에 있어서 일본 사회 운동에는 주로로 호헌 반전, 반핵, 평화 안보 투쟁을 주제로 한 운동과 동 계급 자신의 권익을 도모 할 수 있는 사회주의 운동, 그 모두는 보수주의적 통치자에 대한 혁신주의자들의 정치적 항쟁이 항쟁에서 일본의 전후 초기도 확실히 좋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br>&nbsp;전후 초기의 일본은 패전국으로서 국가 파탄 지경, 식량 공급 부족, 실업자 급증, 인플레이션 등 일련의 사회 문제가 누적되어 민중의 생활이 극도로 어려웠다.&nbsp;일본의 일부 사회주의 정당은 노동조합과 정부와의 교섭, 파업 등 방식을 통해 중하층 민중들을 조직하여 주동적으로 정치적 요구를 표현하였다. 이 시기, 생활권을 수호하고 평등권을 추구하는 것은 일본 노동자계급 사회운동의 주요 선율이 되었다. 일본의 전후 초기의 경제혼란은 노동운동의 왕성한 발전을 불러일으켰으며 이 시기에 일본 노동계급은 끊임없이 자산계급에게 압력을 가하였다.<br>&nbsp;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의 수호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전략적 이익을 위해, 일본의 공산주의화를 막고, 자산계급 및 무력 탄압을 주장하는 보수주의 정객들과 강화하였다.&nbsp;보수 세력은'일본 경 단련'이라는 재계연합 구축, 일본생산성본부를 둘러싼'일본노사협회'설립, 노조와의 협상, 일련의 조합권법으로 전세를 역행하는 데 성공하며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nbsp;외부 힘의 강제적인 관여와 혁신 세력의 연약성은 전후 일본 노동운동을 침체기에 빠뜨렸다. "2 · 1"총파업은 일본 무산계급 세력의 단 한 번의 대연합이며, 다른 때는 무산계급이 산산이 흩어진 모래와 같았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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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3 14:07: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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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99 감기원</title>
         <author>kam9908141</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6979587</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 사회운동이 쇠퇴하게 된 배경은 사회운동의 대중화 실패 때문이라 생각한다.&nbsp;<br>적군파는 혁명이라는 명목 아래 텔아비스 공항 사건, 하이재킹 등&nbsp; 사회운동이 아니라 테러에 준하는 범죄를 행하였고, 이는 대중의 눈으로 바라 보았을 때 그들의 투쟁은 반인류적 행위로 인식되었다. 민간인이 피해를 입고 부정적인 시선이 늘어나면서 이들은 자연스레 힘을 잃었다.&nbsp; 적군파의 대수가 경찰에 체포된 후, 남은 적군파와 혁명좌파는 단합하여 연합적군을 탄생시켰다. 적군파는 은행을 털어 돈은 있었으나 무기가 없었고 반대로 혁명좌파는 총이 있는 대신 돈이 없었다. 적군파와 혁명좌파, 각 파는 추구하는 바는 달랐지만,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단합하였다.&nbsp; 연합적군의 의장은 모리쓰네였다. 모리쓰네는 강압적으로 팀원들에게 자신의 이념을 주입시켰고, 대중의 부정적인 시선을 합리화하여 내부 세력 반대 목소리또한 묵살시켰다. 이는 자연스레 내부 분열을 발생시켰고, 이는 연합군이지만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nbsp;모리쓰네는 모두의 지지를 받는 바람직한 리더가 아니라 독재자에 가까웠다. 대중의 지지 또한 잃은 시점에서, 그는 내부 세력의 단합 또한 이루지 못하였으며, 이는 사회운동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점만 만들었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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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4 04:14: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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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3196</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197373503</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사회운동이 쇠퇴한 원인으로는 일본을 바꾸려고 모인 사람들이 팀 안에서 일어난 과격한 폭력, 살인으로 인해 정신적으로도 미쳐버린 팀원 대부분이 결국에는 목적을 잃고 뭐가 맞고 뭐가 잘 못한 건지 판단할 수 없게 되면서 서로를죽이고 스스로 파멸로 향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사회운동이 밝혀지면 점점 지지받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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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24 08:56: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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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토론(4) 일본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title>
         <author>teseus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04120717</link>
         <description><![CDATA[<div><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Mduiakz3iP8">https://www.youtube.com/watch?v=Mduiakz3iP8</a> (1부)</div><div><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TA-zYS0HuDw">https://www.youtube.com/watch?v=TA-zYS0HuDw</a> (2부)</div><div>&nbsp; &nbsp;<br>6월 6일 월요일 자정까지 코멘트를 올려주시기 바랍니다.&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www.youtube.com/watch?v=Mduiakz3iP8" />
         <pubDate>2022-05-30 05:04: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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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6110281 이동규 일본외교</title>
         <author>LeeDonggyu</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07315646</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에서 벌어진 갈등들을 아우르는 안건들 중 하나가 안보다. 패전 후 미국에 의해 헌법을 고쳐쓰며 무력의 행사와 전력의 보유권을 잃은 이후로 끝없이 내외적으로 부딪혀 온 사안은, 전범 경력이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디까지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다.<br><br>애초에 다른 나라라면 마땅히 궁리했을 국방의 발전이 일본에서는 왜 걸림돌이 되는가? 결국 과거의 제국주의적 행보가 일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정치나 외교라는 것은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바라볼 수만은 없다. 아니, 오히려 감정이라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전쟁과 식민지배 행위는 다른 나라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깊은 감정의 골을 남긴 굵직한 칼질이었다.<br><br>일본의 무력 소유 범위는 어디까지나 일본이 스스로 결론을 내야 하는 문제이다. 다만 그들에게 있어 안보 강화의 걸림돌이란 전쟁의 재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함이었던 것만큼, 그 걸림돌을 뛰어넘고 싶다면 떳떳한 일본을 전세계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 걸프전 때 나왔던 얘기처럼 국력과 위상에 걸맞는 일본을, 무력만이 아니라 굳은 정의감과 죄의식으로서 보여줄 필요가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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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1 10:04:2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07315646</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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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68 송수민</title>
         <author>kuroshe77</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08682443</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 외교의 시작과 끝은 '미국'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도 미국에게 보장 받았던 안보를 바탕으로 하면서 추가적인 경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남기정교수님의 강의를 보면 일본의 외교를 일방주의 외교의 전형이라고 표현한다. 이를 대표하는 사례가 수출절차 우대국 명단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 사례이다. 일본의 이러한 행위를 행동하는 외교로의 변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본의 외교와 관련해서 다양한 이슈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화이트리스트 사건이 직접 행동함으로 영향을 준 것은 적었기 때문에 그만큼 대표적인 행동외교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일본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일방주의적으로 행동하는 외교를 보일 것 같다.<br><br>그 배경에 역시 그들이 일본 외교의 모델로 하고 있는 1920년대 일본 외교가 있을 것이다. 제국주의 열강의 협조적인 위치에서 제 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힘을 잃은 서구 열강을 대신해서 국제연맹을 이끌었던 모습을 의미하는데 이처럼 동아시아를 이끌어가고자 하는 야망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을 깊게 신경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보았을 때 전략의 영향력과 성공을 위해서도 미국을 끌어들였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미국이 일본을 버릴 때를 대비한 이중 포석이라고도 볼 수 있다.&nbsp;<br><br>일본의 미국 의존도 해결이 일본의 외교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지속적인 위기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를 대비한 조금 더 다양한 국가와의 다양한 외교가 필요하다.<br><br>또한 일방주의 외교는 반드시 한계점을 드러날 것이다. 그의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말했던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최근 결과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에 수출규제 품목의 대부분에서 대일 의존도를 절반으로 줄이고 일부는 0에 수렴하기도 했다. 닛케이신문에서도 "일본의 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는 실패했다는 점을 명확히 할필요가 있다."라고 작성하기도 했다. 일방주의 외교는 상대국과의 교류가 적기 때문에 반응을 예측하기 어렵고 오히려 상대국에게 기회를 줄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경제 안보에 반하는 조치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일본은 이러한 일방주의적 외교에서 벗어나 글로벌 사회에 걸맞는 상호주의적 외교를 미국 이외에 다양한 나라들과 돈독히 할 것을 고려해야할 것이다.&nbsp; &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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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2 08:11: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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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18210988 신민호 &lt;일본 외교&gt;</title>
         <author>minhomino02</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09907156</link>
         <description><![CDATA[<div>&nbsp;일본의 외교는 떠넘기기식 외교이다<br>&nbsp;2010년대부터 한일 관계의 핵심은 '과거사'였고, 2018년 후반부터는 역사, 경제, 안보의 문제로 번졌다. 그럼에도 일본은 미국에 대한 의존을 강화하며 한국과의 관계는 악화시키고, 중요 사안들은 계속해서 미루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일본 정부가 한 해의 외교 활동과 국제 정세 등을 담은 '외교청서'에서 한일관계의 가장 핵심인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를 한국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br><br>&nbsp;바이든 정부에서 날로 도발을 퍼붓고 있는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한미일의 연계를 강조하였고, 일본은 그에 따라 한국을 '중요한 이웃 국가'로 명시하며 한미일 세국의 연계가 불가결하다고 썼다. 하지만, 한국과의 외교에서 가장 핵심인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에 이루어진 위안부 합의를 한국이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썼으며 여전히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했다.&nbsp; &nbsp;<br><br> 이렇듯 일본은 일방주의적인 외교형세를 보이고 있다. 자신들의 주장만 강조하며 역사적 문제를 다음 정권에 떠넘기거나 무기 휴회하고 있으니 한국 정권에서는 일본의 이러한 대응에 진절머리가 나 양국의 외교 문제는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한국의 태도는 일본에게는 더 없이 좋은 것이기에 한국 정부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할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br>&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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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3 07:11: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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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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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308 김재우</title>
         <author>watchagongyou</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0646685</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외교는 남기정 교수님이 설명했듯이 일방주의적 외교로 전형적인 강대국의 외교방식이다. 1920년대 일본 제국이 서구 열강들 사이에서 위상이 급부상해 국제연맹을 이끈 것처럼 현재 일본은 전전의 일본으로 이때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행동주의 외교는 일본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강행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중국의 국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반면 본래 동아시아 패권국이었던 일본의 국력은 눈에 띄는 진전이 없다. 지난 30년간 경제발전도 더디어 경제적 우위 또한 유지할 수 없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태평양 전략처럼 미국의 이익을 공유하는 동시에 미국의 부재를 대비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br><br>남기정 교수님이 언급한 중국과 러시아의 일방주의적 외교 단행이 미국의 존재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결국 러우 전쟁으로 현실화 됐다. 일본 입장에서 본다면 그동안 한국을 상대로 일방주의적 외교를 강행 했지만 그다지 큰 이득은 없었다. 또한 일본은 러우 전쟁으로 보여진 극단적인 일방주의 외교는 앞으로 일본이 가야 할 노선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정권교체로 인한 대일 외교정책 노선변경은 한일 관계에 있어서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예상컨대 일본은 앞으로 한미일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면서 인도태평양 전략 같은 연합체제를 이끌어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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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4 00:48: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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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일본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title>
         <author>choi_jaehyuk</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0817180</link>
         <description><![CDATA[<div>전후부터 지금까지 일본은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형제인 관계로 쭉 이어졌다. 미국의 비호 아래에서 지정학적 위치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데올로기적 위치가 결합하여 전략적 국가가 되었다.<br><br>일본이 샌프란시스코의 조약과 안보조약의 방패로 삼아 6.25전쟁에서 대폭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냈고 그곳을 발판삼아 60년대에는 경제대국 2위의 쾌거를 이뤄냈다. 이들의 외교는 점점 대범해지고 국제연합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슬슬 국방적으로 진취적인 그림을 그려나갔다.&nbsp;<br><br>최근,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 헌법개정이 큰 이슈로 현재까지 세간에서 화제가 되고있는데 이것은 전후부터 경찰예비대부터 자위권창설 그리고 현재까지 연속적인 큰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었다. 이제는 동아시아 혹은 그 우방국에 영향력을 끼칠 차례가 되었다.<br><br>중국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 옳은 길인가 아닌가에 생각해보았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이 이러한 행보를 나갈 수 있는 헌법개정에 있어서 굉장히 부정적인 의견들을 다수 표출했고 특히 한국에 있는 나로서도 굉장히 그런 느낌이 피부로 잘 느껴졋다. 하지만 근대의 세계정세와는 다르게 현재의 그것은 전혀 다른 맥락이다. 지금은 미국-중국의 패권전쟁으로 인해서 자유진영 vs 공산진영 구도로 나아가고 있는데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발휘하면 과연 현상유지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과거 일본이 그랬듯이 폭주하는 제국주의적 열망을 서서히 드러낼까 하는 의문이 든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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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4 10:27: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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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18113195 일본외교</title>
         <author>wenjingcai5464</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1211866</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과거 부터 대륙과 떨어진 섬나라고,한반도라는 완충지대가 있기때문에 중국과 직접적으로 마찰이 없으므로 2차세계대전 패망이후부터 지금까지 노골적으로 무조건 친미정책 방향을 고집해온 외교를 했음<br><br>헌법 개정은 야심 있는 일본 정치인들에게 거의 필수 코스이다.<br><br>이번에 제출된 개정 내용과 현재의 일본 헌법을 비교한 결과, 제9조의 추가 개정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개정된 헌법은 제9조에 자위대 관련 내용을 명기하려 한다. 이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완화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셈이다.<br><br>자위대에 헌법이 직접 인정하는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일본이 아시아 국가를 침략한 역사에 대한 공공연한 '배신'이다.<br><br>일본은 다자외교를 통하여 자기의 발언권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에서의 자기의 지위를 제고하고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탈피하는 동시에 아시아 각국에 대한 외교적 공세를 강화하여 아시아와 유럽의 다리가 되어 자기의 대국의 꿈을 실현하고자 한다.但그의 강경한 외교자세는 주변 각국의 이익에 매우 손상을 입히기 쉬우며, 중국, 한국, 러시아 등 국가와의 끊임없는 갈등을 초래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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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5 06:40: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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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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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3 일본학과 정은채</title>
         <author>spring_crb</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1263750</link>
         <description><![CDATA[<div>최근 일본 특히 아베 정부시절 외교는 일방주의적 외교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하고자하는 세계 강대국들이 전 세계를 상대로 식민지를 건설하고 자신들의 파워를 제시하며 외교방식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일본의 외교전략은 시대에 걸맞지 않고 오히려 외교적으로 큰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과 큰 마찰이 예상되었고 실제로도 한일관계과 단교 수준까지 갔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한미일 동맹을 견고하게 다지기를 원하지만 쉽지많은 않는다. 일방주의적 외교는 특히 한일관계에서 볼 수 있는데,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이들의 일방주의적 외교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br><br></div><div>이렇게 강력하게 일방주의적 외교를 진행하는 것은 1900년대 동아시아의 패권을 다시 한 번 가져오려는 일본의 야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때와 달리 한국의 성장과 더불어 특히 미국과 패권 다툼을 하려는 중국의 성장으로 더욱 힘들어보인다. 일본의 일방주의적 외교는 실효성이 없고 오히려 이들의 외교전략을 바꾸어 패권을 획득하는 것보다 협력을 통한 외교적 이익을 얻어야 하는 것이 더 현실성 있고 이익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nbsp;<br><br></div><div>현재 한미일 동맹을 더욱 견고히 하여 한국과 협력해 동아시아에서 끼치는 영향력을 크고 확실하게 해야한다. 미국을 제외하고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것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기에 위의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모든 국가가 자국우선주의를 선택하기에 일본 역시 일방주의적 외교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일본이 증명해냈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정말로 동아시아의 패권, 큰 영향력을 원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외교 전략을 다시 한 번 재고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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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5 09:44: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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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18110285</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1263978</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외교는 2차세계대전이후 낮은 위치에서 출발하였다. 미국의 통치 시절 만든 평화헌법으로 군사적인 외교는 벌이지 못하게 되어 경제적인 부분을 통한 외교를 목적으로 하였다.<br>미일안보조약도 있었기에 자국의 군사 방면은 미국에게 맡기고 그동안 경제에 온힘을 쏟고자 하였다. 이는 성공적으로 달성되어 미국도 위협하는 세계 경제대국이 되었다.<br>이처럼 일본의 외교는 미일동맹을 가장 중심적인 축으로 삼고 서양국가들과 서서히 관계를 맺어가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다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던 일본이었는데<br>쿠웨이트 침공 사건을 계기로 능동적으로 바뀌고 군사력을 가지고자 하는 생각을 점차 키워나갔다.<br>현재 일본은 찬란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자 한다. 미국과의 동맹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그대로다. 다만 그 의존성을 점점 벗어나 동등한 위치에 서고자 하며, 동아시아 관계에서는 국가 간의 협력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일방적인 외교를 통해 우위를 점하고자 한다.<br>일본의 외교방향성을 전략을 보았을때에도 한국과의 관계는 틀어져도 상관이 없다고 쓰여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헌법개정을 계속 시도하며 자위대까지 창설하고 역사적 문제에 대해서는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결국 이러한 것은 대외관계에서 완벽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이상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br>따라서 일본은 일방주의적인 외교를 펼치기보다는 주위 국가들과 우호적인 태도를 통해 관계를 공고히 할 필요성이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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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5 09:45: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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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20110253 일본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title>
         <author>cord20010306</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1296139</link>
         <description><![CDATA[<div><br><br>일본의 외교 정책은 일본의 지리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과거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던 중국으로부터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중국보다 미국에 우호적인 외교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nbsp;<br><br>그리고 남기정 교수님의 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은 다자주의 보다는 일방주의적 외교라는 강대국의 외교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와 달리 일본의 일방주의적 외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과거 일본은 한국에 대해 일방주의 적인 외교정책을 펼쳤지만, 마찰만 일으켰을 뿐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앞으로 일본은 일방주의적 외교보다는 다자외교를 차용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약해진 일본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는 정책을 펼것이라고 생각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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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5 11:33: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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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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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3401 주현우 </title>
         <author>jhw01049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1316508</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 외교는 결국 친미라는 단어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전후부터 현재까지도, 일본의 외교가 친미라는 기본적인 틀에서 벗어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는 현실적인 판단에 의거한 것이었다. 소련이라는 위협과 마주하게 된 일본의 선택지는 재무장을 통해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 대신 막대한 국방비를 소모하거나, 미국에게 안보를 위탁함으로써 어느정도 외교적 자율성을 포기하는 대신 경제발전에 필요한 여력을 얻는 것이었다. 일본은 후자를 택했다.<br><br>그리고 이러한 기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일본은 미국의 보급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베트남전에서는 미 공군 폭격기의 발진 기지를 제공했다. 걸프전에서는 막대한 자금을 제공했다. 그리고 냉전이 끝난 지금도, 일본은 중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대립적인 위치에 서고 있다.<br><br>이러한 현상은 어느 정도 일본의 현실적인 선택임에 더불어,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체급에 걸맞는 위상을 얻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걸프전 이후 국제 연합군에 자금만을 지원한 일본 정부에 국제 사회의 비난이 있었고, 이로 인해 일본 사회에 어느 정도의 충격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일본이 그 직후 PKO 법안을 성립해 가결시킨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br><br>지금 신냉전이 진행중인 중국에 대해서도, 일본은 주도적인 위치에 섬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위상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나, 일본은 중국 정부의 신장위구르 지역에 대한 노골적인 인권 탄압을 중점적으로 비판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우호국가였던 대만에 대해서도 더욱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앞서 말한 것처럼, 중국에 대항하는 주도적인 위치에 서려는 시도로 보인다.<br><br>우려되는 점은 그러한 일본의 행동이 과연 동아시아의 안보적인 딜레마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일본의 안보 강화는 다시 중국과 북한의 안보 강화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다시 남한과 일본의 안보 강화로 이어지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1980년대 유럽에서 보였던 핵미사일의 대립상황이 동아시아에서도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nbsp;<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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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5 12:35: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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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21110247 윤지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1347080</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br>일본은 과거 서양 강대국들과 함께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친 탈아시아급 선진국 중 하나였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지는 해, 과거의 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로 불리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br><br>첫 번째는 식민지 문제이다.<br>한일 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일제강점기 시기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일 것이다.&nbsp;일본은 사과문화가 따로 있을 정도로 사과를 한다는 것은 정말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담은 약간은 수치스러운 행동으로 일컫어 지기도 하는 만큼 외교라는 국가의 대표성을 띄는 부분에 있어서 과거의 잘못에 대한 언급을 꺼려 한다. 더더욱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과의 경우 한국을 상대로 한다는 점도 민심에 의해 어느정도 크게 작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독일이 세계대전에서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자세와 매우 대비되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일본의 외교적 성장이 더딘 원인으로 작용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br><br>두 번째는 전후 이후 근대화에 따라 자주적인 국가로 성장시키는 데 제대로 대응하지 못 하였다는 점이다.<br>이전에도 일본의 경우 미국에 의지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힐러리와 트럼프의 대선에서 힐러리에 모든 힘을 들였으나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해 일본의 전략 구상안이 한 차례 흔들리고 한반도에서는 남북관계에 진보적인 문재인 정권이 등장하게 되며 또 한 차례 자신들의 구상이 흔들리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기존에 내부에서 정의해 둔 질서를 외교적 변화에 맞추어 개편해 나가지 않았다.<br>이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앞으로 일본의 경우 상대를 정확히 보고 각각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파악하는 능력향상이 필요해 보인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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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5 13:56: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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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9113215</title>
         <author>keailegemie</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1372502</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 정계의 최근 몇 년 추세를 보면 특히 두 가지 특징이 뚜렷하다. 첫째는 대국 지위를 극구 추구하고 둘째는 보수화와 우경화이다. 현재로선 일본의 미래 정계는 여전히 매파 우익세력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 모두 우익 보수 성향 정치인에 속하며, 그 대외정책의 기조는 일미관계의 발전을 주장하고 미국에 협조하여 중국에 대한 억제와 포위를 강화하는 것이다. 예측 가능한 미래에 외부 환경이 밝아지면 일본은 새로운 국면을 따라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아직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지만, 상당히 놀라운 속도로 전환될 것이라고 본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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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5 14:51: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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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8110286박종호</title>
         <author>sjweye123456789</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1471173</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외교정책은 여러 패권국가들 처럼 일방주의 외교 정책을 펼치고 있다. 패전 이후로 일본은 자신들을 미국의 아래로 들어가 서방진영과의 연대를 취해 북한 중국 소련을 견제하는 형태가 되었고 한국전쟁 특수 부터 시작된 경제 발전을 개기로 한때는 미국 다음 제2의 경제대국으로 급부상 하게 되었다. 남기정 교수에 의하면 문재인정권과의 마찰을 대화로 풀어나가지 않고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외교정책에서 대한민국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듯함을 보여주는등의 사례를 들어 일본은 강대국식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취하고있다고 한다. 전형적인 패권국가의 외교방식 이라는것인데 이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것이 일본의 재군사화이다. 물론 패전이후 밀접하게 미국과 관계가있던 일본이기에 한국전쟁으로 인한 안보공백을 매우기위해 창설된 경찰예비대 부터 시작해 오늘날의 자위대까지 모두 미국의 요구 혹은 허가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외교정책과 맞물려서 생각을 해 본다면 2차대전 당시의 초강대국과도 같은 지위를 되찾고 싶어함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은 단지 경제적 수준만으로 취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니며 이는 군사력이 뒷받침했을때 가능한 스탠스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2차대전 당시처럼 세계와의 전쟁을 꿈꾸는 것이라고 말하기엔 어렵다. 그렇지만 미일동맹을 필두로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위한 움직임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nbsp;<br>&nbsp;20세기 후반의 일본은 제2경제 대국으로서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나라였으며 아시아의 패권국가로써 그 영향력이 매우 강력했고 지금도&nbsp;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21세기에 들어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오명과 함께 경제적으로 침체기에 들어 제2대국의 칭호는 중국에 넘겨준지 오래되었으며 옆나라의 한국의 영향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또한 미일동맹에 있어서 일본은 경제, 군사적으로 안보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센카쿠 열도의 영토분쟁이나 중국의 인권탄압 비판,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대해 규제에 동참한것이 그 일환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이러한 상황에 있어서 동아시아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게된 한국을 영원히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본이 현재까지는 일방주의적 외교노선을 타고있지만 결국 동아시아의 패권위해 나아가, 안보와 주변국과의 협력을 위해 일방주의적 외교노선을 수정해야함이 불가피하다고 생각되는 바이다.&nbsp;다시말해 일본의 외교정책과 그에 동반한 군사화를 보았을때 과거의 패권을 되찾고싶어함은 분명해 보이지만 동아시아의 국제정세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기에 일본의 외교정책은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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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5 18:23: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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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215472 윤건희 일본외교</title>
         <author>jkheeyoon</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1560515</link>
         <description><![CDATA[<div><br>일본의 외교 방향</div><div>&nbsp; &nbsp;</div><div>2차대전 패전 이후 미국으로부터 약 7년간 통치를 받았고, 이후에는 55년 체제가 성립이 되었다. 냉전기 일본의 외교전략은 한국가 마찬가지로 미국의 통치와 우위를 받아들이고 유럽에 속한 나라와 연대하여 북한/중국/소련 공산주의 국가를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자기 나라의 경제적 역량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에서 부분적 패권 유지도 같이 추구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찬란했던 발전은 미국 마저 위협하고 플라자합의 이후 거품이 꺼지고 읽어버린 10년 상당한 경제 침제기가 찾아왔다. 그 사이 중국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발목이 잡혀버렸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진국이자 경제 대국이라는 이점이 있지만, 겅치 경제 안보적으로는 다소 불안한 외교적 위치에 놓여있는게 현실이다.<br><br>일본은 계속 미국 안정된 관계를 유지 할 것이고 안정된 미일관계는 일본에 있어서 안정성을 보장받고 미일관계에 있어 대등한 발언권을 확보를 할 수 있기 떄문이다. 일본 외교의 과제들은 중국과 마주 보고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어떤 상황도 미국의 껴 있을 밖에 없다.&nbsp; 앞으로 일중 관계는 미중 관계라는 요인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동시에 한국과의 협력도 상정하며 중대한 국면에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br><br></div><div>영상에서 일본의 진정한 목표는 인도 태평양 구상이다. 즉 탈아입구이다. 아시아에서 일본의 입지는 매우 막강한 위치였다. 하지만 근래의 들어 중국, 한국 및 비롯한 아시아나라들이 엄청난 발전을 통해 패권 경쟁이 진행이되어 상황이 달라졌다. 인도 태평양을 비롯한 나라들을 포석을하고 인도, 호주, 동남아시아와의 연대를 강화하여 역내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겠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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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5 22:05: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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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0294</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1820764</link>
         <description><![CDATA[<div>흔히 일본 외교는 약하다는 말을 듣는다.<br>이것은 전후 평화조약 9조의 전쟁 포기와 군대 포기로 인해 군사력이 없어졌다는 점, 미국과의 미일안전보장조약 등을 이유로 모두 미국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과 손을 잡고 있으면 안전이 보장되고 미국과의 관계만 신경쓰면 되지만 일본이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br><br><br>세계정세의 변화를 직시하고 그 변화에 대응하면서 외교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아시아 외교가 중요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과의 외교에 신경을 쏟고 있기 때문에 선택지가 없어지고 있다. 좋은 미일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이웃 아시아와의 관계에도 힘써야 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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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6 05:51: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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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55 이세영 일본 외교</title>
         <author>jennyda1013</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1893600</link>
         <description><![CDATA[<div>2019년 일본이 한국으로의 반도체 수출을 규제했던 사건이 기억난다. 전국민이 ‘노노 재팬’을 앞세우며 불매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한국인의 반일 감정은 최고치를 찍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한일 관계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나빠졌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그 기세가 한 풀 꺾였다.</div><div>일본의 외교는 다소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왔다. 여러 차례 사과를 해왔다고 한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고위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 교과서 왜곡, 전범 미화,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은 사과에 대한 진정성을 없앤다. 이런 모순적인 행태가 더욱 일본을 향한 신뢰감이나 우호적인 감정을 감소시킨다고 생각한다.</div><div>현재 일본 과거 우위를 점했던 시절로 돌아가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고로 미국을 포함한 서구권 국가와는 동맹을 맺고 아시아권과의 외교에는 회의적으로 대한다. 이와 같은 일방주의적 외교는 요즘 시대와는 맞지 않은 외교 전략이라고 생각한다.&nbsp;적어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세력과의 관계에는 순항을 기대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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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6 07:08: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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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110309 일본 외교의 방향</title>
         <author>songkim158a</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1947253</link>
         <description><![CDATA[<div>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관계는 지속적인 협력을 보여 왔지만, 최근 몇 년의 갈등 양상은 과거와는 비교하여 다른 양상을 띈다고 볼 수 있다. 역사 논쟁, 안보 갈등, 무역 보복 등으로 이어지는 복합적 갈등이 발생하소, 이는 전례 없는 결제 협력 위축으로 이어지며 양국 관계는 수십 년 만에 최저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현재 한일관계의 상황이 너무나 좋지 못한 부분에서 리더의 교체가 해결 방안으로 가장 대두되고 있다. 이번에 제 100대 일본 총리로 기사다 후미오가 취임을 했다. 그는 자민당의 7개 파벌 중 평화주의를 내건 온건차 고치카이를 이끄는 비둘기파로 알려져 왔기에 9년간의 아베 내각과 이를 계승한 스가 내각과의 정책적 차별성에 희망이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기시다 통리의 정책 노선이 지난 아베 정권과 별다른 것이 없다는 평가가 있다. 그 역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기존의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nbsp;<br>한일 관계에 있어서 두 나라는 곧 불가피한 지리적 상황과 더불어 협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기억과 트라우마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식의 영향은 두 국가가 화해를 이루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각 국가의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한 사과와 반성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역사적 부정의에 대한 책음 어느 세대까지 이어져야 하는 것인지와 같은 많은 이슈들을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는 두 국가의 리더들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해보고 싶다.&nbsp;<br>일본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기시다 총리의 취임은 곧 일본의 정책 노선에 있어서 변화를 줄 수 있는 가장 큰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미일 관계는 일본의 외교정책에 있어서 중요했으며, 미국의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통해 일본과 한국 두 국가의 리더십 교체가 앞으로의 외교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리더십이 중요하게 작용된다고 생각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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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6 08:11: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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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3 정붕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2169695</link>
         <description><![CDATA[<div>미국의 이동화 3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은 머저 2구 그림이 만들어지고 그 밑에 한국을 두고 이 벌어지는데 그걸 한국은 들 미국의 한국한테 직접 원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제대로 그림이 마춰지고 않아 가야될에 원다 잘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고 하는 생각했다.&nbsp; 당시 한국에서는 도저히 이 연구는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따 자료가 5일단 없고 남기정 교수는 일본 유학을 해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확대된 주제를 가지고 공부를 했다. 남기정 교수의 연구에 따라 정치적 현실주의자로서 추구하는 것은 1920년대 일본의 외교를 모델로 한것이고 제국주의 열강의 협조에 불과했던 국제협조주의의 가치 하에 국제연맹을 이끌었던 영광의 일본 외교가 그 모델이다.&nbsp; 일본이 먼저 주장하고 미국이 받아들인 모양새로 전대되는 인도태평양 전약은 재기하는 일본 구상의 일환이다. 트럼프의 미국을 상대로, 한편으로는 미일동맹에 미국을 묶어 놓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미국이 일본을 버릴 때를 대비한 이중의 포석이 인도태평양 전략이다.&nbsp; 일본은 인도태평양에 관심을 갖는 미국과 전약적 이익을 선점하여 공유하는 한편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빠져 나갔을 때를 대비하여 이 지역에 돌아오고 있는 영국 프랑스 등과의 관계를 정력적으로 반적시키고 있다.<br><br></div><div>일분 전후체제로서 전후헌법의 탄생하였고 천황(제 1장) 제 1~8조 상징천화제에 관한 규정이 있고 개정의 조건이 제 96조 양의원에서 2/3이상 찬성으로 국회에서 발의 국민투표에서 괴반수 찬성으로 개정이다. 한국은 전쟁의 위기응 고조시켜 온 한반도 정전협정체제를 종식시키려 한 반면 일본 한반도 정전혐정체제를 전제로 성림한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이 것이 한일 사이에 지정학의 전선을 형성이다. 한일 사이에서 정전과 냉전을 해석하는 역사적 층위가 어긋나면서 상호불신을 증폭이다. 신한반도체제란 한반도가 전쟁과 대립의 무대에서 평화와 협력의 무대로 변화하여 만들어내는 새로운 질서다. 이를 위해 동북아에 전쟁의 논리를 강요하는 두 개의 전후를 극복해야한다. 냉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와 정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는 한국 전쟁 전후가 한반도에서 중첩되어 전쟁의 위기를 고조기켰던 것이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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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6 12:53: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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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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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62 김기려</title>
         <author>Giryo</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2222119</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일본 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br></strong><br></div><div><br></div><div><br></div><div>아베 정권 이후에 조금 더 중도적인 색채를 띄려고 노력 중인 것 같다. 그렇지만 가장 적극적인 지지세력인 과격한 우익과 손절은 쉽지 않아 보인다. 중도적인 세력을 넓히기 위한 조금 더 온화한 외교정책을 펼치고자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nbsp;</div><div><br></div><div>친미적인 정책 기본으로 하여 자국의 이익을 본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북 강경책을 곁들였다. 그런 점에서 자국이익을 우선하는 점에서는 외교에 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과의 유연한 관계가 숙제로 남겨져있다. 그래서 앞으로 한국과의 좋은 관계를 기대해보고 싶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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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6 13:39: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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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20110251 김부건</title>
         <author>qnrjs40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2264881</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br><br></div><div>단순히 일본의 외교라는 것을 동북아 세력에서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미국과의 친화적인 외교를 통한 일본의 안보수호와 개헌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 등의 이유만으로 생각하기보다 더 발전된 일본, 외교적인 이익을 취하면서 국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일본이 어디로 가야하는가?’ 라는 부분이 앞으로도 더욱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 질문으로 돌아와 일본의 외교는 지금의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대부분 친미적인 외교방안을 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도 그렇고, 일본의 민주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국의 세를 고려하면 이러한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사태일지도 모른다. 영상에서 남기정 교수님은 일본이 1920년대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이상적으로 보고 이를 추구해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일본 내에서의 자발적인 민주주의의 약동과 논의, 경제적 성장 등의 화려함은 지금의 외교적 본보기로 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옳은 판단인가? 일본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 이것이 외교라는 것에 있어서 일본에만 국한되는 상황인가? 등... 더 생각을 거듭할수록 여러 의견과 대립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위와 같은 질문들 속에서 일본은 어디로 가야하나? 일방적 외교, 친미, 한미일의 삼각체제, 우경화 등등 다양한 국제적인 시선과 입장들 속에서 분명한 것은 지금의 쇠약해진 일본의 사회적 문제와 경제를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고, 그들의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종적인 일본의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교와는 거리가 멀지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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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6 14:16: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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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9110270 김선아</title>
         <author>ryangistreaming</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2298703</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의 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br><br><br>&nbsp;몇 년전, 트럼프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아베가 트럼프와 골프를 치다가 모래구덩이(벙커)에서 넘어지는 모습이 현지 언론에 포착된 적이 있었다. 아베총리는 구덩이에서 벗어나다가 골프공을 발로 밟고 도로 벙커로 굴러 넘어졌다. 넘어진 이후 그가 바로 트럼프에게 달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그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일본과 미국의 외교적 처지를 떠올렸을 거라고 생각한다.<br>&nbsp;개인적으로 일본외교는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도 그랬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선 일본의 근대 외교 성립에 결정적인 힘을 실어준 국가가 바로 미국이라는 점이 바로 그렇다. 미국은 2차세계대전 이후로 재기불가능이었던 일본을 다시 세계무대로 불러들였다. 당시 한국 전쟁의 영향으로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의 반공기지로 삼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일본에게 면책권을 주었다. 이후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20세기 후반 경제호황을 누리며 전성기를 누렸다.<br>&nbsp;지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일본은 미국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거리가 있는데도 미국과 친분을 유지하는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영토분쟁 문제이다. 일본은 현재 한국을 포함해 러시아 중국 등 많은 나라들과 영토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또, 한국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과는 2차세계대전 당시의 역사 갈등 또한 남아있다. 나아가 현재진행형인 미국과 중국의 양강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미국과의 긴말한 협력은 필요하다. 이미 전성기가 지나버린 일본으로서는 중국을 넘을 전력은 남아있지 않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은 생산 가능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가 14배 가까이 되는 중국의 생산력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다양한 이유로 일본은 계속해서 미국에게 의지하는 방식의 외교방식을 고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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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6 14:43: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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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8113201 일본학과 여민화 일본의 외교는 어디로 간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2317735</link>
         <description><![CDATA[<div>전후 일본 정치외교의 발전은 일본이 정치를 주제로 한 시대에 들어서면 신국가주의로 도약할 것임을 보여준다.반면 국가주의가 잠복 칩거하던 1960년대 일본처럼 정치시대는 경제시대로 자리를 옮겼다.국가주의는 국민 이익이 아닌 지배계급이 표방하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한다는 내용이다.동시에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때로는 잠시나마 이익 추구를 포기해야만 한다.전후 초기 일본의 전면적 독립 욕구는 억제되고 전면적이지 않은 독립, 즉 '일·미 기축과 경제외교'를 강조하면서, 마찬가지로 60년대의 일본은 국제정치의 대국적 지위향상에 대한 욕구가 팽배해 있었지만, 이는 일본 지배층의 주관적인 권력포기가 아니라, 지배층의 경제적 이익을 일시적으로 국제정치적 대국적 지위추구보다 우선시하도록 하는 사회적 가치선택, 가치공감이 있었다.요시다는 국익의 선택 과정에서 정치 발전 목표와 경제 발전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을 때 후자, 즉 경제 발전을 우선시했고, '보수 방류'는 정치 발전을 목표로 선택했다.냉전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일본의 국력을 발전시키는 데는 '보수 본류'와 '보수 방류'의 근본적 이견이 없다.이견을 언급한다면 둘 중 어느 쪽이 먼저냐의 문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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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6 14:59: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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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0110284 일본 외교</title>
         <author>yoonsoo246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2426799</link>
         <description><![CDATA[<div>&nbsp; 21세기에 들어서 일본은 여러가지 경제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좌절감을 느끼며 냉전 종결 직후와는 크게 달라진 상황을 맞이했다. 이러한 좌절감은 일본의 우경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국민들, 그리고 일본의 근본적인 정치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일본의 우경화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일본의 우경화는 일본의 외교와 그 방향에 있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미국과 밀접한 동맹 관계를 유지해 왔고 이는 계속해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나라의 안전과 번영에 있어 필수적인 안정적인 국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일 안보체제의 영역 확대, 등 다양한 지역 분쟁,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에 대한 대처에 힘써왔다. 일본의 정치외교에 있어서 미국은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정권이 바뀌면서 여러가지 의견이 많이 나오기도 했지만 미국과 일본의 동맹은 계속해서 유지 될 것 같아 보인다.&nbsp;<br><br></div><div>&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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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6 16:31: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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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17110289 이민수</title>
         <author>penpenguin2018</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2615080</link>
         <description><![CDATA[<div>일본은 G7에 속하는 선진국이기에 많은 국가들과 교류를 하고 있지만, 일본 외교의 핵심은 미일관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일본 외교가 목적지는 미일관계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한 직후에는 미일 관계에 틈이 생기는 듯 했다.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을 향해서 ‘안보 무임승차’라고 비판하며, 동맹 관계에 대해서 문제점을 제시하였다. 특히 주일미군의 방위비가 큰 문제였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 시기의 미일관계는 악화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총리가 집권하는 현재에는 미일동맹이 더 강하게 유지되면서 미일관계가 회복되는 모습이 보여진다.</div><div>중국이 새로운 패권국가로 등장하게 되어 미국과 경쟁을 하게 된 상황에서, 사실 일본은 중국의 ‘일대일로’라는 경제정책에 초기에는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 미일관계를 해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에게 있어 중국은, 많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국가였기 때문이다. 이대로 갔다면, 일본 외교의 미래는 드디어 대미종속을 끝내고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와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인해서 일본은 확실하게 반중 의사를 보였고, 미일관계는 회복될 수 있었다.</div><div>하지만 미일관계가 회복된 것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러시아가 동아시아의 안보 위기를 가져왔고, 일본 내에서도 안보의 중요성이 다시 인식되면서 미일동맹이 강화가 된것이다. 주일미군 방위비에 대하여 일본이 부담액 증가를 받아 들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div><div>미일관계는 전쟁이나, 코로나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 없었다면 약해졌을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일본은 친미 외교를 보여주었지만, 이제 일본은 대미종속에서 벗어나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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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6 19:36: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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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20110277 김여경</title>
         <author>yeokyoeung</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2950388</link>
         <description><![CDATA[<div><br></div><div>일본 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div><div>일본은 미국과의 외교에만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패전 이후 미군의 통치를 받았고, 미국과 여러 조약을 체결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선진국으로서의 영향력이 커진 지금 서양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들과의 외교에도 역시 신경을 써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특히 한국과는 위안부, 역사 왜곡, 독도 문제 등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외교에 앞서 이러한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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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7 02:38:3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2950388</guid>
      </item>
      <item>
         <title>2020110282강서문</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3032307</link>
         <description><![CDATA[<div>바로 '탈아입미'의 동맹 전략입니다.<br><br>일본의 20세기 외교전략은 가능합니다.'강한 자와 한패'로 요약하면 전반기 영국과 동맹을 맺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오랫동안 따라다녔습니다.양국과의 동맹 기간은 총결산 동맹 시간의 90%를 넘습니다.<br><br>이 동맹 방책은 주로 원래부터 시작된 것입니다.자신의 변방 의식과 이익 극대화라는 외교 전략을 구사합니다.일본은 순수한 섬나라로 국제 체계와 지리적으로 변방이며, 아시아 유럽으로의 귀속 인정에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변방의식은 매우 현실적인 기회주의, 고아의식, 위기의식을 낳습니다.기회주의는 일본이 동맹을 통해 국익을 얻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외교 전략을 끊임없이 바꾸게 하고, 고아 의식은 동맹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게 하고, 위기의식은 '세계는 안전하지 않다'며 동맹을 통해 안정감을 얻을 수 있게 합니다.동맹에 열을 올리는 일본의 '이익 극대화' 전략과 동맹 과정에서의 무원칙성 때문에 일본이 최강자를 끝까지 따라갈 수 있다는 심리적 부담감은 전혀 없습니다.<br><br>미·소 양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1세를 이뤘습니다.아우들이 대치기에 접어들었고, 이제 막 미국의 부양을 받아 새로운 정치체제를 확립한 일본은 적극적으로 미국의 품에 안겼고, 미 마셜플랜의 도움으로 빠르게 경제를 회복했습니다.일본은 자립을 목표로 하는 경제회복을 맞이했습니다.흥의 새로운 단계. 한국전쟁 후 일본은 '재군비'를 하였으나, 요시다 시게루 내각은 '경무장, 중경제'라는 전략을 제시하였습니다.이 시기의 일본 외교정책은 비교적 실용적이었고, 기본적으로는 중국·한국과의 관계개선을 포함한 경제회복을 목표로 했습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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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7 04:02:4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3032307</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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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1112889 고은서 일본 사회운동 쇠퇴의 배경과 이유</title>
         <author>hwangyeolj</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6069112</link>
         <description><![CDATA[<div>&nbsp;사회적 사건이 일어나고 물러남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했기에 그러한 일련의 일들이 있을 수 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몇 가지를 뽑아야 한다면, 크게 두 가지를 언급할 수 있을 것&nbsp; 같다.<br>&nbsp;첫째로는 집단의 분열과 불신이며, 둘째로는 시민들, 즉 외부 세력의 지지를 얻지 못함이다.<br><br>먼저 첫 번째, 집단의 분열과 불신이다. &nbsp;<br>&nbsp;집단이라 함은 절대 혼자가 아니기에, 반드시 그 안에서의 합이 잘 어우러져야 단체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리더 모리 츠네오의 정당하지 못한 리더십이 이들을 '단체'가 아닌 단체를 구성하는 각 '개인'에 한정되도록 만들어 버렸다. 내부 불신이 심화된 것에 도주까지 더해져 사회운동은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br><br>&nbsp;두 번째로는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br> 시민들도 어떻게 보면 '외부 세력'에 해당한다. 집단 안에서 의견을 함께 하여 행동을 같이 하는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의 최종 목표는 이런 시민들, 즉 외부 세력까지 설득해야 비로소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실패함으로 사실상 일본 사회운동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일차적 목표를 실패한 것과 다름없다. 아사마 산장사건, 공항난사 등 사회운동을 명목으로 폭력을 '경험'한 시민들로부터 사회적 지지를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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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9 09:00: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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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21112889 고은서 일본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title>
         <author>hwangyeolj</author>
         <link>https://padlet.com/teseus7/dcokwh0gys7lwdr0/wish/2216082830</link>
         <description><![CDATA[<div>&nbsp;한 나라의 외교의 방향성을 짧은 글로 모두 정의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한국인이기에, 한국과 일본의 외교를 중점으로, 일본의 외교 중에서도 일부를 조심스레 다루어보고자 한다. 어쩌면 폭력적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단면적인 부분을 보고 판단을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br><br>&nbsp;일본과 한국의 분위기를 직접적인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일반 국민, 즉 일개 시민으로서 보자면 '좋지 않다'. 그렇게 생각한다. 언론과 대중의 태도가 그 근거이다. 여기에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일본-한국 간의 개인 비자 문제도 일조한다.&nbsp;<br>&nbsp;<br>&nbsp;이러한 일본-한국 간의 정세가 그러하듯이,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와 일본 사이의 외교는 갈등을 빚고 있다. 와중에 일본과 미국의 외교 양상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 볼만 하다.<br> 나는 이 일본 외교의 양상에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한 번 더 차지하려는 의도가 녹아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맥락을 가지고 있기에 현재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br><br><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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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6-09 09:15: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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