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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원중 2학년 조선 전기 문화(2-4) by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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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조선 전기 문화에 대한 내용을 온라인에서 조사하고 전시해봅시다.</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0-11-02 01:40: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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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국유사 (20400 이인희)</title>
         <author>irisinhe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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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고려시대 충렬왕 시기에 승려 일연이 지은 역사서이다. 불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수록되지 않은 다양한 전설이나 신화 등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삼국유사는 고조선의 단군설화를 최초로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br><br>-출처: 교과서, 네이버 지식백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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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2 02:55: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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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팔만대장경 (20400 이인희)</title>
         <author>irisinhe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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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우리나라 국보 제 32호로, 고려시대대몽항쟁 시기에 부처의 힘으로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만든 대장경이다. 대장경이란 불교 경전을 모은 것을 의미한다. 총 16년 동안 제작되었으며 8만 개의 판수에 다다르기 때문에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현재는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br><br>출처: 교과서, 네이버 지식백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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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2 02:56: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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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료 조사 방법</title>
         <author>irisinhe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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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 제목에는 각자 맡은 <strong><mark>주제, 학번, 이름</mark></strong>을 함께 적어주세요.<br>예시. 팔만대장경 (20300 이인희)<br><br>2. 자료조사(교과서, 책, 인터넷 등)를 한 후 내가 맡은 문화재에 대한 <strong><mark>간략한 소개를 사진과 함께 올려주세요. </mark></strong><br><br>3. 마지막에는 <strong><mark>출처</mark></strong>를 꼭 밝혀주세요. (예. 출처-교과서, 네이버 지식백과 등) - <strong><mark>출처 내용은 참고하되, 그대로 옮겨오지 말고 본인이 정리하여 작성해보세요.</mark></strong><br><br>4. 문화재 소개를 작성한 후에는, 다른 친구들이 작성한 글도 천천히 감상해보세요.</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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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2 02:57: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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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사관수도20401김규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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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예술인으로 시(詩), 서(書), 화(畫)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絕)이라 일컬어졌던 강희안이 말년이던 15세기 중엽, 1460년대에 그린 그림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배경으로 바위 위에 양팔을 모아 턱을 괸 채 수면을 바라보는 한 노인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에서 '고사관수'의 명칭은 "고결한 선비가 물을 바라본다"라는 뜻이다. 조선 전기와 중기 화풍의 변화를 대변하는 그림으로, 이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를 기점으로 하여 이후부터 한국의 산수화에서 전면에 나무 대신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가기 시작한다. 조선 전기 산수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후 한국 절파계 화가들의 소경산수인물 화풍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조선 말기까지 같은 이름을 가진 고사관수도들이 다량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사진출처우문관,글출처나무위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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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2 21:22: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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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북선 20407배준서</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84290911</link>
         <description><![CDATA[<div>고려말 조선초에 왜적을 격퇴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며, 기록상으로는 조선초 문헌에 처음 나타난다. 임진왜란 직전에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창제귀선을 건조하여 왜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세계 최초의 돌격용 철갑전선(鐵甲戰船)으로 평가된다.</div><div><a href="https://m.terms.naver.com/imageDetail.nhn?docId=1058356&amp;imageUrl=https%3A%2F%2Fdbscthumb-phinf.pstatic.net%2F2765_000_16%2F20180828132106540_K47JCYPWR.jpg%2F80320.jpg%3Ftype%3Dm4500_4500_fst%26wm%3DN&amp;mode=entry">이미지 갤러리 가기</a></div><div><br></div><div>현재까지 전해오는 문헌 중에서 ‘거북선[龜船]'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타나는 기록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1413년(태종 13) 5월 초에 “왕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이 왜선으로 꾸민 배와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고, 2년 후에는 다시 “거북선이 매우 견고하여 적선이 해치지를 못한다”고 되어 있으나, 어떤 형태와 규모였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적혀 있지 않아서 알 길이 없다. 그 후 180여년 간 거북선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다가 이순신 장군의 임진년(1592) 일기인 《난중일기(亂中日記)》 2월 8일 기사에 “거북선에 사용할 돛 베(帆布) 29필을 받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난중일기》에 따르면 거북선에 비치한 포(砲)를 처음 발사한 날은 임진년(壬辰年:1592) 3월 27일이며, 처음 해전에 참가한 것은 장계(狀啓)에서 “5월 29일 사천해전(泗川海戰)”이라 기록하고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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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2 22:18: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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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농사직설 20403 김유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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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조선 세종 때 1429년에 관찬으로 간행하여 이듬해 각 도의 감사와 주·부·군·현의 2품 이상에게 널리 나누어 주었다. 이 시기에는  조선 사람들의 농업 경험을 담은 책이 한 권도 없었고,  그 당시 가장 많이 보던 농사 책은 모두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이런 책에 실린 농업 정보는 중국을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기후와 토양이 다른 조선에 적용하기에는 문제점이 많았었기 때문에, 세종은 각 도의 관찰사들에게 농부들이 말하는 경험담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기록하라고 보고한 다음, 그 내용을 다듬어서 정리하도록 하고,  이 글들을 적어 중앙으로 보낸 뒤, 정초와 변효문 등은 전국에서 올라온 수많은 경험담 중에서 중복되는 것을 버리고 가장 중요한 내용만을 뽑아서 책을 만들고, 이 책의 제목을 농사직설이라고 지었다.<br><br></div><div>출처: 네이버 지식백과<br><br></div><div><br><br><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br></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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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3 01:13: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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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몽유도원도 20417 이윤하</title>
         <author>kingcrab0106</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84638211</link>
         <description><![CDATA[<div>몽유도원도는 1447년 4월 20일 안평대군이 무릉도원에 관한 꿈을 꾸었고, 그 내용을 안견에게 설명하여 단 3일만에 그림이 완성되었으며, 매죽헌에서 제서를 달았다. 이 그림의 화풍은 꿈속 도원을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으로, 기암절벽 위에 복사꽃이 만발하고, 띠풀로 엮은 초막과 폭포수 아래 빈 배도 보이는 꿈속의 낙원을 표현한 안견의 걸작품이다. 아래는 몽유도원도의 사진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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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3 01:38: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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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화차 20402 김예은</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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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조선시대 때 수레 위에 총을 수십개 장치하여 이동이 쉽고, 한번에 여러 개의 총을 쏠 수 있게 한 무기이며, 우리 나라에는 조선시대에만 5종의 화차가 있었다. 첫 번쨰는 작은 수레에 철로 만든 날개를 단 철령전을 장진한 수십개의 동통을 실은 것으로서, 화약을 사용하여 발사하도록 되어 있고, 두 번쨰는 두 바퀴가 달린 수레 위에 총통기나 신기전기 중 하나를 올려놓고 사용한 우리의 독창적인 무기이며, 세계 역사상 흔하지 않게 왕이 직접 발명하고 대량으로 제작하여 사용한 훌륭한 무기이다.<br>세 번째는 문종화차의 총통기에 4전총통 대신 주자총통50개를 설치하여 사용한 것인데, 주자총통은 1490년(성종 21)경 세종 때 제작된 삼총통에 붙인 새 이름이었다. 네 번째는 임진왜란중인 1592년(선조 25) 변이중이 문종화차를 개량하여 만든 것으로, 수레 위에 40개의 승자총으로 총통기를 설치하고 총의 심지를 이어서 차례로 쏘게 한 무기이다. 19세기 초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변이중의 화차에서 사용된 승자총 대신에 조총 50개를 설치한 것이다. 10개의 조총을 한 층으로 다섯 층을 쌓아 만들었으며, 한 층의 10개 조총이 한 곳에 붙어 있어 한 번에 한층의 조총을 장전할 수 있도록 개량된 무기 이다.<br><br>출처= 네이버 지식백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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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3 01:48: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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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혼천의, 간의 20405 박수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84715289</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br>혼천의<br>ㄴ</strong> 천체 관측기구로 태양, 달, 오행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었음<br><strong>ㄴ</strong>만원 지폐 뒷 면에 위치</div><div><strong>ㄴ실내의 천문시계 역할</strong><br><strong>ㄴ</strong>혼천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후를 예측하기 위한 천문 관측에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측정을 할 때마다 수동으로 작동을 해야 할 필요가 없이 자동으로 알아서 시간과 날짜를 알려 주었다.<br><br><strong>간의<br>ㄴ </strong>조선 세종<strong> </strong>때 제작된 실외용 천문 관측기구<br><strong>ㄴ혼천의-&gt; 간소화한 것이라고 할 수 O</strong><br><strong>ㄴ</strong>적도 에 관한 위치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혼천의의 육합의, 삼진의(三 , 사유의 중에서 적도환과 백각환, 사유형만을 따로 떼어서 간의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음. <br><strong>ㄴ천체의 위치를 관측하는 데는 간의가 주로 사용되었음. </strong><br><strong>ㄴ</strong>세종 19년에 완성된 간의의 제도는 《원사》에 나타난 곽수경법에 의하여 제작된 것이다.<br><br>*사진은 혼천의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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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3 02:25: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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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향약집성방 20413 윤성재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84753915</link>
         <description><![CDATA[<div>이 책은 1399년(정종 1) 제생원에서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 鄕藥濟生集成方≫ 30권의 구증(舊症)과 구방을 기본으로 하여 다시 향약의 모든 방문들을 수집하고, 또는 널리 방서들을 빠짐없이 모아서 분류, 첨가하여 만든 것이다.<br><br></div><div><br></div><div>구증이 388이던 것이 959로, 구방이 2,803이던 것이 1만706이 되었으며, 그 밖에 침구법(鍼灸法) 1,416조, 향약본초 및 포제법(炮製法) 등을 합하여 85권으로 되었다. 세종이 권채(權採)에게 서를 명하고, 같은 해 8월전라도·강원도 두 도에서 나누어 간행하게 하였다. 그 뒤 1478년(성종 9)에 복간되고, 1633년(인조 11)에 훈련도감 소활자로 중인되었다.<br><br></div><div><br></div><div>향약이라는 말은 우리 나라 향토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의미한 것인데, 중국산의 약을 당재(唐材)라고 부르는 데 대한 우리 나라산의 총칭이다.<br><br></div><div><strong><br>[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27365">향약집성방</a> [鄕藥集成方]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br><br></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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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3 02:46: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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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선왕조실록 (20414 윤지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84774964</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제1대 왕 태조로부터 제25대 왕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이다. 1,893권 888책. 필사본·인본. 정족산본과 태백산본 등이 일괄적으로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1997년에는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의 임금이 왕위에 있는 동안 조정에서 일어난 일과 그 밖의 여러 사실들을 정리한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의 특징은 크게 이렇게 4가지가 있다.</div><div>1.조선왕조실록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천재지변 등 다방면의 자료를 수록한 종합사료로서 가치가 높다.</div><div>2.일본 ․ 중국 ․ 월남 등 유교문화가 퍼진 곳에는 모두 실록이 있는데 편찬된 실록은 후손 왕이 보지 못한다는 원칙을 지킨 나라는 조선왕조뿐이다.</div><div>3.이 원칙의 고수로 조선왕조실록은 기록에 대한 왜곡이나 고의적인 탈락이 없어 세계 어느 나라 실록보다 내용 면에서 충실하다. 권수로 치면 중국 명 실록이 2900권으로 더 많으나, 실제 지면수로는 조선왕조실록이 이보다 훨씬 많아 분량면에서 세계 제일이다.</div><div>4.일본, 중국, 월남의 다른 실록들은 모두 당대 만들어진 원본이 소실되었고 근현대에 만들어진 사본들만 남아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왕조 시기의 원본이 그대로 남아 있다.</div><div><br></div><div>출처:네이버 지식인, 지식백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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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3 02:58: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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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앙부일구 20415윤찬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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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천구의 모양을 본 떠 만든 반구 형태의 해시계. 앙부일구는 세종 때에 처음 제작하였는데, 종묘 남쪽 거리와 혜정교 옆에 설치하여 공중용 해시계로 사용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앙부일구들은 모두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이다. 앙부일구는 오목한 반구 안에 북극을 지향하는 영침과 영침의 그림자를 받는 시반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반면에는 24기(12절기와 12중기)를 나타내는 13개 계절선과 15분 간격의 시간을 나타내는 시각선이 있다.</div><div>출저 - 네이버 지식백과<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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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3 03:33: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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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훈민정음 20408백강희</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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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조선시대 이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한자로 글을 적었다. 그러나 우리말을 한자로 옮기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한자는 너무 복잡해 먹고 살기 바쁜 백성들이 배우기에는 너무 어려운 글자였고 당연하게 양바늘만 글자를 사용했던것이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훈민정음 즉 한글을 만드셨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출발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최만리 등의 학자들이 말하기를,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것은 큰 나라를 모시는 예의에 어긋나며,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것입니다'라며 격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뜻을 굽히지 않고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끝까지 연구를 해 1443년 드디어 훈민정음이 창제 되었다. 세종대왕의 서문에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한다. 내가 이것을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들이 쉽게 익혀서 날마다 편리하게 사용하기를 바란다'고 얘기했다.<br><br>출처- 교과서, 네이버 지식백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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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3 05:24: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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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훈민정음 20423 최진홍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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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주제: 훈민정음 <br><br>훈민정음은 1443년에 세종대왕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의 의미<br>로 창제해낸 언어 이며<br>그 당시 한문을 사용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모든 백성이 자신의 뜻을 잘 표현을 못하는 것을 세종대왕이 가엽게 여겨 창제 되었다. <br><br>사실 훈민정음은 언어가 업그레이드 한 버전이라고 볼 수있다.<br> <br>처음에는 그림문자로 벽이나 바닥에 그림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였고 <br>발전하여 상형문자인 한자를 사용하 였다. 한번더 발전하여서 향찰이라는 것이 창제 되었었는데 향찰은 지금의 훈민정음과 가장 흡사하다고 볼수있다. <br>하지만 향찰은 우리의 말로 고치기에는 너무 복잡하였고 우리말의 새로운 창제의 필요성을 느낀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한다. <br>학자들의 도움으로 훈민정음이 창제가 이루어진후 양반들은 한문을 알고 사용 할수 있다는 것을 하나의 지식과 능력으로 여겨서 불만을 가졌다는 일화도 있다	 <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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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3 07:19: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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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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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칠정산 20411 오지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86045678</link>
         <description><![CDATA[<div>우리나라는 삼국 이래로부터 조선이 들어설 때까지 중국에서 만든 역서를 수입해서 사용하였다.이에 세종대왕이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역법을 만들라고 지시, 국내에서 대간의, 소간의 등 천문기구들을 제작하여 수도 한양ㆍ백두산ㆍ강화도 마니산ㆍ한라산 등 주요지점에 관리들을 파견하여 각지의 북극고도를 측정하고, 별을 관측하여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시간과 오성 운행시간을 알아내는 노력을 기울여 처음으로 독자적 역법인 칠정산을 만들었다<br><br>출처:구글 나무위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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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3 12:53: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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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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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상열차분야지도 20422최윤정</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86329753</link>
         <description><![CDATA[<div>&lt;돌에 생긴 밤하늘&gt;<br>조선조 태조 4년에 고구려 시대 평양에서 각석한 천문도 비석의 탁본을 바탕으로 돌에 새긴 천문도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천(全天) 천문도 가운데 하나로써 우리 역사의 대표적인 유산이며, 세계적인 보물이다..<br>‘천상열차분야지도’란 하늘의 모습 ‘천상’을 ‘차’와 ‘분야’에 따라 벌려놓은 ‘그림’이라는 뜻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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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3 14:23: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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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측우기 20420 정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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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측우기란 세종 때 만들어진 강수량을 측정하는 기구이다.농업사회였던 조선은 강수량이 굉장히 중요하였고 이 업무도 도의 감사들이 해야하는 일 중 하나였다.하지만 단위가 통일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이에 세종이 세자였던 문종에게 명을 내려 측우기를 만들게 하였다.(사실 장영실이 만들었다고 알려져있지만 제작을 장영실이 했지 아이디어를 고안해낸 것은 세종의 명을 받은 그의 아들 문종이다.)세계 최초의 측우기이다.측우기의 외관은 눈금을 새겨놓은 금속원형통이다.<br>출처-네이버 지식백과&amp;나무위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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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3 15:11: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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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국통감 20419 임채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88319076</link>
         <description><![CDATA[<div>새로 완성된 《동국통감》은 편년체 사서로 단군조선으로부터 삼한까지는 책머리에 외기(外紀)로 다루었고, 삼국의 건국부터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18788&amp;ref=y">신라</a>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95380&amp;ref=y">문무왕</a> 9년(669)까지를 삼국기, 669년에서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61454&amp;ref=y">고려</a>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52493&amp;ref=y">태조</a> 18년(935)까지를 신라기, 935년부터 고려말까지를 고려기로 구분하여 서술했다. 삼국 이전을 외기로 처리한 것은 자료 부족으로 인하여 체계적인 서술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며, 신라기를 독립시킨 것은 신라통일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삼국 중 어느 한 나라, 즉 신라를 정통으로 내세우지는 않았고 대등하게 서술했다. 연대 표기에 있어서도 《동국사략》의 서술인 유년칭원법(踰年稱元法)과는 달리 삼국 당시의 제도대로 즉위년칭원법을 썼다. 삼국의 연기는 연호로써 표기하지 않았고 중국과 삼국의 연기를 아울러 썼다. 또한 범례는 《자치통감》에 따르고, 필삭(筆削)의 정신은 《자치통감강목》을 따라서 두 사서의 체제를 절충하였다.</div><div><strong><br>[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83977">동국통감</a> [東國通鑑] (두산백과)<br><br></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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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4 01:11:3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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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훈민정음</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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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0409 오유진<br>네이버 백과사전<br>훈민정음은 조선의 네번째 임금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다<br>조선 시대 이전까지는 한자를 사용하였지만 우리말을 한자로 옮기는 것은 매우 어려웠고 한자는 복잡해 먹고살기 바쁜 백성들이 배우기에는 어려운 글자였다 세종대왕이 백성들이 글자를 모르는것을 안타깝게 여겨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훈민정음을 만드셨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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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4 02:20: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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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자 20412유도은</title>
         <author>yudoeun17</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88509521</link>
         <description><![CDATA[<div><br>조선에 이르러서는 명나라 백자의 영향과 흰 것을 사랑하고 숭상하던 일반적 풍조에 따라 초기부터 후기 전반까지 꾸준히 발전되었다. 물론 초기에는 고려에서 시작된 <a href="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D%99%94%EB%AC%B8_%EC%9E%90%EA%B8%B0&amp;action=edit&amp;redlink=1">화문 자기</a>에 눌려서 주류를 이룩하지는 못했다. <br>《<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4%B8%EC%A2%85%EC%8B%A4%EB%A1%9D_%EC%A7%80%EB%A6%AC%EC%A7%80">세종실록 지리지</a>》에는 전국에 자기소가 136군데 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백자가 기술적으로 완성된 것은 이 시기로 추측된다.. 같은 기록에 도기소는 185군데라고 하였다.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84%B8%EC%A1%B0">세조</a> 때에는 청료의 수입이 어려우므로 백자는 주기이외에는 사용을 금지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예종 때에는 한국에서도 청료를 채취하도록 하였다 한다. 이후 전국적으로 그 제조가 성행하였는데,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E%84%EC%A7%84%EC%99%9C%EB%9E%80">임진왜란</a>으로 위축되어 버리고,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BC%EB%B3%B8">일본</a>에 전파되어 일본 백자의 모태가 되었다.<br>이후 조선 백자는 화문 자기풍으로 변하여 근대에 이른 것으로 생각된다.<br>조선 백자는 완벽을 자랑하는 중국 백자와는 달리 대청색·대회백색·유백색의 것으로 그 색체에서도 특색을 지님은 물론, 기교면에서도 번잡에서 초탈한 소박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정적으로 이끄는 매력이 있다. 고려 백자에 비해 정련된 기묘한 멋은 없다고 하나 조대호방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br>출처:위키백과<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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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4 03:06: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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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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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훈민정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88625800</link>
         <description><![CDATA[<div>20421 주요찬 <br>1443년 세종대왕이 창제한 문자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한문은 일반인은 읽을 수 없었던 어려운 문자였기 때문에 세종대왕은 자기 뜻을 표현 못하는 백성들을 안타깝게 여겨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훈민정음은 28자로 이루어졌고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훈민정음은 국보 제70호이다. <br><br>출처 - 네이버</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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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4 04:24: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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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목민심서 20406 박우창</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88692949</link>
         <description><![CDATA[<div>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저술한 까닭은 단지 조선의 피폐한 사회상을 고발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당대의 병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분석이 선행해야 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div><div><br>이를 위해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제도와 법령을 조목조목 분석한다. 환곡, 조운선, 지방재정의 운영방법 등 경제적인 상황부터 법령의 제정과 반포 현황 및 그에 따른 백성들의 피해 사례, 토지의 구획과 수확량, 민이 져야 할 세금과 부역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루지 않고 살핀다.</div><div>『목민심서』는 우선 그 사료적 가치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한 저작이다. 정약용 자신이 중앙의 고위관료로만 한평생을 지냈다면 절대 알 수 없었던 조선 후기 백성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목민관이던 아버지 임지에서 보고들은 내용, 자신이 암행어사가 되어 파악한 현실, 유배지에서 직접 목격한 백성들의 참담한 상황을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증언한다.</div><div><br>정약용의 탁월한 분석과 사례조사가 조선 후기 경제사 ‧ 사회사 ‧ 문화사 연구자들에게 소중한 사료의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 까닭에 현대에 이르러서도 조선의 사회상을 속속들이 구체적으로 그려낸 인문학의 고전으로, 절체절명의 시대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경륜이 가득 담긴 탁월한 사상서로 인정받고 있다.<br>출처 네이버 지식백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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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4 05:05: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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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혼일강리역대국지도 20424 한승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89404497</link>
         <description><![CDATA[<div>혼일강리역대국 지도는 김사형,이무,이회가 조선초기(1402년)에 만든 세계지도이고 아시아와 유럽,아프리카를 포함하고 있다. 이 지도는 국도연혁이 상세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br>옜날 중국 지도는 일본을 잘 표기하지 않았지만 이 지도는 일본도 표기하고 서해안과 동해안의 해안선이 지금의 지도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록 정확해서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지도라고 평가받고 있다. 현재는 한국에 있지 않고 일본에 있다.<br>          -출처:네이버 지식백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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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4 10:29: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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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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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격루 20404 김현진</title>
         <author>76052635a</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89624752</link>
         <description><![CDATA[<div>자동으로 시보를 알려주는 장치가 되어 있는 물시계로 1434년 왕명으로 장영실이 제작하였다.시,경,점에 맞추어 종,북,징을 쳐서 시각을 알렸다.<br>작동원리는 파수호에서 흘러내린 물이 수수호로 들어가 살대가 떠오르면 부력이 지렛대와 쇠구슬에 전해지고, 쇠구슬이 떨어지면서 동판 한쪽을 치면 동력이 전해져 나무로 된 인형 3구가 종,북,징을 쳐서 시보장치를 움직인다. 나무인형 둘레에는 12신을 배치하여 1시부터 12시의 시각을 알리도록 하였다.<br>출처 네이버 지식백과<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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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4 12:27: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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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갑인자 (20418 이채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90175423</link>
         <description><![CDATA[<div>1434년, 즉 세종 16년에 만들어진 급속 활자 이다. 육십갑자중 갑인년에 만들어졌다 하여 갑인자라 이름 붙여졌다. 이 활자를 만드는 데 관여한 인물들은 당시의 과학자나 또는 정밀한 천문기기를 만들었던 기술자였으므로 활자의 모양이 아주 정밀하고 섬세하게 만들어 졌다.</div><div> 경자자와 비교하면 대자와 소자의 크기가 고르고 활자의 네모가 평정(平正)하며, 조판(組版)도 완전한 조립식으로 고안하여 납(蠟)을 사용하는 대신 죽목(竹木)으로 빈 틈을 메우는 단계로 개량, 발전되었다.</div><div>그리하여 하루의 인출량(印出量)이 경자자의 배인 40여 장으로 크게 늘어났다. 현재 전하고 있는 갑인자본을 보면 글자획에 필력(筆力)의 약동이 잘 나타나고 글자 사이가 여유있게 떨어지고 있으며, 판면이 커서 늠름하다. 또 먹물이 시커멓고 윤이 나서 한결 선명하고 아름답다. 우리나라 활자본의 백미이다.</div><div>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활자인쇄술은 세종 때 갑인자에 이르러 고도로 발전하였으며, 이 활자는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여섯 번이나 개주(改鑄)되었다. 뒤의 개주와 구별하기 위해 특히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라 하였다.</div><div>이 초주갑인자는 1580년(선조 13)에 재주(再鑄)될 때까지 140여 년간에 걸쳐 오래 사용되었기 때문에 전해지고 있는 인본의 종류가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성암고서박물관(誠庵古書博物館) 소장의 ≪대학연의 大學衍義≫,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분류보주이태백시 分類補註李太白詩≫ 등을 초인본으로 들 수 있다.</div><div><strong>[네이버 지식백과]</strong>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5202">갑인자</a> [甲寅字]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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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4 14:54: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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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416 이수경 (고려사)</title>
         <author>sookyeong06</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92892114</link>
         <description><![CDATA[<div>고려시대를 다룬 사서(史書)로 완질본으로는 부산광역시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보유한 판본이 있다. 부산시도유형문화재 제104호로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진 않았다.</div><div><br></div><div>건국 후 조선 왕조는 태조 대부터 동양 유교적 왕조의 전례대로 전(前) 왕조의 정사(正史)를 편찬했는데, 이것이 고려사로서 5대 문종 대에 와서야 완성하였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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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5 06:19: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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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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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410 오정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irisinhee/Bookmarks/wish/896072824</link>
         <description><![CDATA[<div>1443년에 창제된 훈민정음에 대한 한문해설서.《훈민정음예의본(訓民正音例義本)》과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이 있다. 국보 제70호이다.</div><div>언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br>조선 세종 28년(1446)에 훈민정음 28자를 세상에 반포할 때에 찍어 낸 판각 원본.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의 취지를 밝힌 어제 서문(御製序文), 자음자와 모음자의 음가와 운용 방법을 설명한 예의(例義), 훈민정음을 해설한 해례, 정인지 서(序)로 되어 있다.<br>어학사전,지식백과<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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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0-11-05 22:06: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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