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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5-2-3 문학 A by 국어교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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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문학은 사랑의 실천일까?</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4-23 23:18: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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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활의 노래 들어 봤니? &#39;기억이 부르는 날에&#39;...... 충담사가 부릅니다. &#39;찬기파랑가&#39;</title>
         <author>korean5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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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열치며</p><p>나타난 달이</p><p>흰 구름 좇아 떠가는 것 아닌가</p><p>새파란 시냇가에</p><p>기랑의 얼굴이 있구나</p><p>이로부터 시냇가 조약돌에</p><p>낭의 지니시던</p><p>마음의 끝을 좇고 싶어라</p><p>아! 잣 가지 높아</p><p>서리 모르시올 화랑장이여 </p><p><mark>&lt;양주독 해독 기반 현대어 풀이&gt;</mark></p><p><br></p><p>가끔씩, 무례하게도, 아주 가끔씩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린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당신들의 표정과 목소리와 이름을 떠올려 보는 그때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의 존재를 믿고 느낀다.</p><p><br></p><p>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코코'에 담긴 이야기에는 멕시코에서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의 명복을 비는 명절('죽은 자의 날')과 집집마다 있는 제단에 사진을 놓고 그들을 잊지 않고 함께 살아가려는 풍속이 잘 담겨 있다. 겨울왕국의 'Let it go'를 작곡한 부부가 작곡해서 더욱 놀라웠던, 영화 OST 'Remember me'를 읊조리면서, 누군가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과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메리 골드(금잔화) 다리처럼 아름답게 서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p><p><br></p><p>배경 설화에도 나오지만, '영복'한 스님, '충담사'께서도 '찬기파랑가'에서 '기파랑'의 이름을, 그의 모습과 인품을 기리며 'Remember 기파랑'을 부르고 있다. 단순한 추모, 순수한 추도이든 혹은 다른 정치적 의도나 시대적 요구가 숨어 있든, '기파랑'이라는, 현실에는 없는 존재를 여러 자연물들에 빗대어 빛나고 깨끗하며, 강인하고 원만하며, 고결한 존재로 다시 소환하고 있는 듯하다.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p><p><br></p><p>멕시코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을 3가지로 나눈다고 한다. 첫 번째 죽음은 심장이 멎은 때, 두 번째 죽음은 땅에 묻힌 때, 세 번째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때.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화자는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고 했는데 그 역설의 의미도 조금 이해할 듯하다.</p><p><br></p><p>추신. '코코' 시즌 2는 '체코'가 배경이지 않을까? 멕시코, 체코, 이하 '코코'</p><p><br></p><p>&lt;향가 '안민가', '찬기파랑가'의 배경 설화&gt;</p><p>삼국유사 권 제2 기이 제2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p><p>경덕왕이 재위한 것이 24년간이었고 오악(五岳)이나 삼산(三山)의 신(神)들이 때때로 궁전 뜰에 나타나 모시기도 하였다. 3월 3일에 왕이 귀정문 문루에 행차하셔서 좌우의 신하에게 말하기를 "누가 나가서 영복한 스님을 얻어 오겠느냐?"하였다. 마침 큰 스님 한 분이 위풍이 정결하고 당당하게 지나가자 좌우 신하들이 모셔다 뵙게 하였다. 왕은 "내가 말하는 영복한 스님이 아니다." 하고 보내었다. 다시 한 스님이 헤어진 장삼을 입고 앵통을 지고 남쪽에서 왔다. 왕이 기뻐하여 문루 위로 맞아들이고 통 속을 보니 차 달이는 기구를 담았을 뿐이었다. "네가 누구냐?"고 묻자 "충담입니다."하였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하니 "소승이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이면 차를 달여서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공양하는데 오늘도 벌써 차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하였다.왕이 "과인에게도 한 잔 나눌 수 있느냐?"고 묻자 곧 차를 달여 드렸는데 차 맛이 특이하고 그릇에서도 특이한 향기가 풍겼다. 왕은 "짐이 듣건대 대사가 기파랑을 기려서 사뇌가를 지었고 그 뜻이 매우 고상하다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고 묻자 "그렇습니다."고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짐을 위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노래를 짓도록 하라." 충담사는 곧 칙명을 받들어 노래를 지어 바쳤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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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30 14:34: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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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조 세 편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맛을 표현해 본다면? ㅠㅠ 애틋한 사랑의 맛, ^^ 자연 속에서 느끼는 흥의 맛, --;; 탐관오리들을 향한 풍자의 맛</title>
         <author>korean53</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433106540</link>
         <description><![CDATA[<p><mark>&lt;황진이, '어져 내 일이야~' 현대어 풀이&gt;</mark></p><p>아! 내가 한 일이야, 그리워할 줄을 (미처) 몰랐더냐?</p><p>(1) 있으라 했더라면 (임이) 굳이 떠나려 했겠느냐마는</p><p>(2) 있으라 했더라면 (임이) 떠나려 했겠느냐마는 (내가=화자가) 굳이</p><p>보내고 (이제 와서 새삼) 그리워하는 마음은 나(화자 자신)도 모르겠구나.</p><p><br/></p><p>결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방탄소년단의 'Fake love'의 가사 일부를 인용해 봅니다.</p><p>"널 위해서라면,</p><p>난 슬퍼도 기쁜 척 할 수가 있었어.</p><p>널 위해서라면,</p><p>난 아파도 강한 척 할 수가 있었어."</p><p><br/></p><p>임과의 이별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 이별로 인해 생겨날 고통과 외로움을 감내할 수 있는 척, 그렇게 센 척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고 무지였음이 여지없이 드러나 버린 자책과 한탄, 후회와 푸념은 화자의 임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여리고, 애틋한 것인지를 잘 드러내 주고 있는 것 같다.</p><p>Don't fake your love, Don't fake your feeling!</p><p><br/></p><p><mark>&lt;윤선도, '만흥'의 현대어 풀이&gt; </mark></p><p>제3수</p><p>술잔을 들고 혼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니,</p><p>그리워하던 임이 온다 하여 반가움이 이보다 더하겠는가?</p><p>(산)이 말도 없고 웃음도 없지만 못내 좋아하노라.</p><p>제4수</p><p>누가 (자연이) 삼정승보다 더 낫다고 하더니 만승천자가 이만하겠는가?</p><p>이제 생각해 보니 소부와 허유가 영리했구나.</p><p>아마도 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지내는 흥취는 비할 데가 없으리라. </p><p>제5수</p><p>내 천성이 게으른 것을 하늘이 아셔서</p><p>인간 만사의 일을 하나도 맡기지 않으시고,</p><p>다만 다툴 이가 없는 강산(자연)을 지키라고 하시는구나.</p><p><br/></p><p>'저절로 일어나 넘치는 흥'을 의미하는 '만흥(총 6수)'은 윤선도가 56세 경 전남 해남 금쇄동에 기거할 때 창작한 총 18수의 연시조('산중신곡'이라 불림)에 포함된 작품으로 오우가 6수와 함께 전해진다. 남인 출신으로 유배 4번, 총 25년을 유배지에서 보냈지만, 많은 유산으로 실제로는 풍족하게 살았다고 한다. 세 가지의 핵심 키워드를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안빈, (임천)한흥, 연군' 조선 사대부들이 추구했던 '강호가도'의 맥락을 잇고 있다.</p><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m.blog.naver.com/awriter/221289679620">https://m.blog.naver.com/awriter/221289679620</a></p><p><br/></p><p><mark>&lt;작자 미상, '일신이 사쟈 하엿더니~'의 현대어 풀이&gt;</mark></p><p>이 (한) 몸이 살자 했더니 무는 것 (많아) 힘겨워 못 살겠다.</p><p>비파 같은 빈대 새끼, 사령 같은 등에, 각다귀, 사마귀, 흰 바퀴, 누른 바퀴, 피 껍질 같은 작은(새끼) 이며, 보리알 같은 살찐 이며, 굶주린 이, 갓 깐 이, 잔 벼룩, 왜벼룩, 뛰는 놈, 기는 놈에, 다리 기다란 모기, 부리 뾰족한 모기, 살찐 모기, 여윈 모기, 그리마, 뾰록이(로 인해 생긴) 심한 피부병에 더 (견디기) 어려워라. </p><p>그중에 차마 못 견디는 것은 오뉴월 복더위에 쉬파리인가 하노라. </p><p><br/></p><p>인간의 생활에 해를 끼치는 벌레('믈ㄱ것')를 통틀어 이르는 해충들(사마귀는 조금 억울하겠지만...)이 들끓는 작품으로는 유일하지 않나 싶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리 삶을 더 힘들게 만드는 해충 같은 존재들이 예나 지금이나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에 뒷맛이 씁쓸하다. </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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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01 15:17: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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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포 김만중, 경남 남해군 노도에서 &#39;사씨남정기&#39;를 낳다.</title>
         <author>korean53</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454284286</link>
         <description><![CDATA[<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www.kislandnews.com/3239">https://www.kislandnews.com/3239</a></p><p>김만중의 『사씨남정기』는 숙종 대 인현왕후 폐위 사건을 배경으로 창작된 고전소설로, 권선징악 구조를 바탕으로 유교적 덕목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는 사씨를 인내와 예의를 갖춘 인물로 설정해 이상적인 여성상을 구현하고, 교씨를 간사한 첩으로 그려 참언과 간계의 말로를 보여준다. 이는 당시 유교 사회의 가족 질서와 여성의 역할에 대한 관념을 문학적으로 재현한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김만중은 작품을 통해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갈등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당대의 정치 상황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극적인 서사 전개와 인물의 대비를 통해 독자의 흥미를 끌며, 당시의 윤리 의식과 시대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은 한 가정 내에 일어난 분란과 그 해결을 넘어 조선 후기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문학적 자료로서 의의가 크다.</p><p>&nbsp;</p><p><mark>&lt;숙종의 인현왕후 폐위와 복위 과정&gt;</mark></p><p>조선 제19대 왕 숙종(재위 1674~1720)은 재위 기간 동안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붕당 간의 권력 균형을 활용한 ‘환국 정치’를 시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표적인 사건으로 인현왕후 민씨의 폐위와 복위가 있다.</p><p>&nbsp;</p><p>1689년, 장희빈(희빈 장씨)이 원자(훗날 경종)를 낳자 숙종은 이 아들을 세자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집권 세력이던 서인들은 신분 문제를 이유로 반대했고, 이에 숙종은 서인을 제거하고 남인을 등용하였다. 이 정치적 전환을 '기사환국(己巳換局)'이라 하며, 이때 인현왕후는 폐위되고, 장희빈이 왕비로 책봉되었다.</p><p>&nbsp;</p><p>하지만 장희빈과 남인 세력의 전횡, 그리고 민심의 반감이 커지면서 숙종은 다시 서인을 등용하고 남인을 축출하게 된다. 이는 1694년의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이때 인현왕후는 복위되고, 장희빈은 다시 후궁으로 강등되었다.</p><p>&nbsp;</p><p>이러한 환국 정치는 국왕이 붕당 사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며 정국을 조정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인현왕후의 폐위와 복위는 단순한 궁중의 갈등이 아니라 당쟁과 정치 세력의 교체가 얽힌 복합적 사건으로 평가되며, 후에 김만중의 『사씨남정기』 등 문학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사건은 조선 후기 정치의 불안정성과 왕실 내 여성의 정치적 위치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이기도 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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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6 13:44: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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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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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9;나타&#39;와 &#39;아집&#39; 깨우는 &#39;죽비&#39;, &#39;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39;?</title>
         <author>korean53</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471530492</link>
         <description><![CDATA[<p>  탈무드에 보면 한 젊은이가 랍비에게 [탈무드]를 공부하고 싶다고 청을 하자 다음과 같은 테스트 문제를 내면서 맞히면 제자로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랍비가 낸 문제는 “두 사람이 집의 굴뚝을 청소했네. 그런데 한 사람은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서 굴뚝에서 내려왔고，다른 사람은 그을음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네. 자네는 어느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으로 생각하는가?”<br>  그 젊은이는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씻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랍비는 틀렸다면서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그 젊은이는 정답이 무엇인가 묻자, 랍비는 “굴뚝 청소를 한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깨끗한 얼굴로， 또 한 사람은 더러운 얼굴로 내려왔네. 얼굴이 더러운 사람은 얼굴이 깨끗한 사람을 보고 자기 얼굴도 깨끗하다고 생각하네. 그러나 얼굴이 깨끗한 사람은 얼굴이 더러운 사람을 보고 자기 얼굴도 더럽다고 생각할 걸세”<br>  그러자 젊은이는 테스트를 다시 한 번 할 수 있도록 청하였다. 이에 랍비는 젊은이의 청을 받아들이면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했는데, 한 사람은 깨끗한 얼굴로, 다른 한 사람은 더러운 얼굴로 내려왔네, 자네는 어떤 사람이 얼굴을 씻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러자 젊은이는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 씻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랍비는 젊은이의 대답이 틀렸다고 하고 있다.<br>  젊은이는 이런 경우 탈무드는 무엇이라고 답하는지를 묻자 랍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답은 두 아이가 모두 씻지, 왜냐하면 굴뚝 청소를 했다면 깨끗한 얼굴로 내려올 수 없기 때문이니까.”<br>  앞의 교훈은 사람들은 자신을 타인을 통해서 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뒤의 교훈은 어떤 문제를 볼 때 마음과 눈을 열고 볼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똑같은 질문이니까 똑같은 대답이 정답일 것이라는 생각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br>  자신을 타인을 통해서 본다면 자신과 타인이 똑같은 처지에 있을 때만 객관적이고 올바르게 보고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과 똑같은 타인이나 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탈무드는 두 번째 이야기에서 우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황이 다르면 그에 대한 답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br>  세상과 사회의 많은 문제에는 정답이 있으면서 정답이 없다. 자신의 시각에서 보면 정답이 있지만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정답이 아닌 경우가 많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답인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ity:한 사람의 후생을 더 좋게 하면서 다른 사람의 후생을 감소시키지 않는 상태)의 해결 방법은 이상과 관념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 사는 세상에 올바른 정답이 될 수 없다.<br>  우리는 정답이 없는 것을 정답이 있는 것처럼 찾아 헤맨다. 그러다 보니 자기주장과 자기가 내세운 정답이 올바르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속임수, 과장, 억압 등의 온갖 수단을 쓴다. 우리는 없는 정답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주장과 다른 해답을 찾아 헤매는 노력도 필요하다. 비록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br><br>출처 : [박홍운 교수의 창](<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www.ccdn.co.kr">https://www.ccdn.co.kr</a>)</p><p><br/></p><ol><li><p>'나(질문을 받은 사람)'의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p><p>  '나'의 관점에서 보면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씻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씻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는 것이다. </p></li><li><p>'나(이야기 속 한 인물)'의 관점을 '타인(이야기 속 상대)'의 관점과 비교하고, 수정,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p><p>  내 얼굴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상황(상대방의 얼굴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의 관점이나 판단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고, 오류를 발견했다면 열린 자세로 수정, 보완해야 한다.  </p></li><li><p>질문이 제시하는 상황이나 조건에 대해 근원적으로(메타적으로)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답은 없지만 정답에 가까워지려면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p><p>  어떤 대상이나 사실에 대한 질문은 종종 우리를 오도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황에서 한 아이는 얼굴에 그을음이 묻지 않고, 다른 아이의 얼굴에는 그을음이 잔뜩 묻을 수는 없지 않은가? 쉽지 않지만, 질문에 대해서도 질문을 해야 한다. </p></li></ol><p><br/></p><p>단편소설 '난.쏘.공'을 읽은 후, 다시 소설집 '난.쏘.공' 전체를 찾아 읽으며 느낀 (아주 고된 독해의 시간이었지만) '슬픔과 분노'가 '아직 내 혈액 속에 흐르고' 있다는 말로 그 감동과 영향을 표현하고 싶다. 고 조세희 작가님께 경의를 표합니다.</p><p><br/></p><p> '난.쏘.공'에는 우의적인 성격의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합니다. '뫼비우스의 띠'나 '클라인 씨의 병'에 관한 것들 모두, 일상 속에서 '멍' 때리고, '나타'에 젖은 채 살아가는 내 의식을 깨우고, '자기'와 '세상'에 대한 단단한 고집과 편견을 깨뜨리는 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을, 정말 듣고 싶습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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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29 00:07: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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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오늘 저녁에 고운 노을을 바라보며, 마음 주머니에 &#39;천 원짜리 지폐&#39; 한 장 적립하기 위해 퇴계 선생과 함께 &#39;만보(1만 걸음:萬步)&#39;를 걸어 보지 않으실래요?</title>
         <author>korean53</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471650957</link>
         <description><![CDATA[<p>인간의 감정, 그 근원이 두 가지인지 한 가지인지, 사단과 칠정이 그 뿌리가 다른 것인지, 같은 것인지, 그 결론에 대한 궁금함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하나의 학문적 주제로 촉발된 교분(사귐)에 관한 것이다. 26살이나 차이가 나는 퇴계 이황(성균관 대사성 ≒ 서울대 총장)과 고봉 기대승(성균관 출신 무명의 젊은 유생)이 12년 동안 안동-서울-광주를 거쳐 200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견해를 완성해가는 과정과 그런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는 토론과 사유의 장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p><p><br></p><p>퇴계 이황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명망 있던 학자로서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후학의 문제 제기를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려는 자세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고, 고봉 기대승의 도전과 패기 또한 부럽지 않을 수 없다.</p><p><br></p><p>두 분의 브로맨스가 더 궁금하다면,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사단칠정논쟁에 대해 찾아 보시길 권합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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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29 01:10: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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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301 강신욱</title>
         <author>hanyangksw</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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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작다’는 말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난장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키가 작은 인물이 아니라, 세상이 의도적으로 축소시킨 인간의 형상이기도 하다. 그는 가난 속에서 가장 높이 비약하는 상상력을 지녔고, 그 상상력이 쏘아올린 작은 공은 현실을 관통해 우주로 닿는다. 나에겐 그것이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이겨내는 방식처럼 보였다. 아주 작게, 그러나 아주 멀리 날아간 공 하나가 이 거대한 세상을 흔들 수 있다는 믿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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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2 04:58: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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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320 박하나</title>
         <author>24hy10135</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478802348</link>
         <description><![CDATA[<p>소설 속 난장이 가족은 도시 개발에 의해 희생당한다.</p><p>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사업은 화려한 건물과 도로를 남겼지만,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난 이들은 기본권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주인공 가족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받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성실히 일하지만, 그 대가는 언제나 최소한의 생존을 겨우 이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오래된 삶의 터전을 철거하는 것이나 부당한 해고, 열악한 노동 환경 등은 단지 가난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의 사회가 얼마나 쉽게 약자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p><p>이러한 상황은 한 가정의 비극 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 전반이 어떻게 약자에게 무관심하고 냉혹했는지를 드러낸다. 정책과 개발의 결정권을 가진 이들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했고, 그 결과는 인간의 존엄이 무너지는 참담한 현실이었다.</p><p>나는 이 장면들을 보며 인간이 소외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p><p>특히 누군가의 아픔이나 절박함이 구조 안에서 보이지 않게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소외는 내게 더욱 심각하게 느껴졌다.</p><p>특히 인간이 사회 속에서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수단이 되었을 때 많은 이들의 삶이 손쉽게 무너지는 것이 안타까웠다.</p><p>이러한 현실은 인간이 목적이 아니라 ‘도구’처럼 취급될 때 얼마나 쉽게 고통과 붕괴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사회는 효율과 이익만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과 생명은 결코 숫자로 환산될 수 없다.</p><p>또한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는 사회는 결국 모두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소외된 소수만이 고통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불안정성과 불평등은 사회 전체를 위협하게 된다.</p><p>소설을 읽으며 나는 한 사회가 진정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p><p>이 이야기가 쓰인지 50년 가까이 흐른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많은 재개발 지역 거주민과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처우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앞으로 나는 이 작품에서 느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사회 속 사회적 약자들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으며, 그 처우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를 탐구해보고자 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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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4 11:28: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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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301 정영석</title>
         <author>24hy11104</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478944414</link>
         <description><![CDATA[<p>&lt;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gt;에서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칼을 가는 일이나 고층의 유리창을 닦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헌신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난장이로서 받는 사회적 시선들을 이겨내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 왔지만, 체력이 다하여 더 이상 가족들을 보살필 수 없게 된다. 그때의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철거 계고장을 받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책을 읽는 모습에서 겉으로는 무덤덤하게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이 열악한 ‘죽은 땅‘에서 더 이상 살아가지 못하겠구나,라는 불안감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열심히 손수 만든 집을 철거하라는 것은 가슴에 비수가 꽃히는 듯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큰아들 영호와의 대화에서 ‘너희들은 학교에만 나가면 돼‘라고 말하면서 자식들이 힘들게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 말은 자신이 겪어온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인 것 같다. 가족의 미래에 꽃길만 있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p><p><br/></p><p>1부에서 큰아들 영호는 맏아들로서 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나에게 그렇게 한다고 시킨다면 단칼에 거부했을 것이다). 영호는 어릴 때 가난한 가정 형편이 싫었던 탓에 아버지를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버지가 했던 노력과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을 동생들에게 똑같이 실천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영희에게 기타를 사주기 위해 값싼 라디오를 고르는 행위는 영희에 대한 애정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나도 장남으로서(밑에 동생 1명이 있다) 동생을 보살펴주고 아끼지만 큰아들 영호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더 빛이 나게 된 것 같고, 나로 하여금 진정한 형은 무엇인지 고찰하게 하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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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4 13:50: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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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327 이현</title>
         <author>24hy10622</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479002439</link>
         <description><![CDATA[<p>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은 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소외되고 짓밟힌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드러낸 사회 고발 소설이다. 난장이 가족의 눈을 통해 드러나는 세상은 인간의 존엄이 무너진 세계이며, 그 안에서도 여전히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작은 사람들의 절박함과 희망이 있다. </p><p> </p><p>가장 소외된 이들이 쏘아올린 질문은 결코 작지 않다. 무엇이 인간다운 삶이고 우리는 누구를 위해 발전하고 있는지. 이 작품은 그 질문을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던진다. 읽고 나면 마음속에 작고 단단한 울림이 남는다.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선과 책임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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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4 14:39: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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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307 권나린</title>
         <author>m7rbnjf7gm</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479368664</link>
         <description><![CDATA[<p>“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나서 마음이 조금 무거웠습니다.</p><p>가난한 난쟁이 가족이 재개발로 집을 잃고 고통받는 모습이</p><p>너무 안타까웠습니다.</p><p>특히 인상깊었던 장면은 공장노동자들의 이야기였는데요.</p><p>공장은 서로가 단절되어 일을 하고(공장회사에게 폭동을 일으키지 못하게)</p><p>짧은 운동시간도 벽에 축구공을 차며 보내는</p><p>안타까운 장면이 기억이 납니다.</p><p>영수와 영호,영희 남매가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에 맞서는 모습도 </p><p>인상깊었습니다.</p><p>하지만 사회의 벽은 너무나도 높고 그들의 꿈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p><p>안타까웠습니다.</p><p><br/></p><p>난쟁이 가족의 작은 희망이 언젠가 현실이 되길바라는 마음이 들었고,</p><p>작은공이 다시 떨어져도, 그 소망만은 꺼지지않는다는 메세지가</p><p>인상깊었습니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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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4 23:17: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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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312 김연우</title>
         <author>kywagnes0815</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483042666</link>
         <description><![CDATA[<p>사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누구의 목소리만을 듣고 있는것인가- 하는 질문을 읽는 내내 지울 수 없었다. 분명 사람들은 우리 ‘사람’을 위해 사회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지금의 사회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소외되는 자들의 목소리는 듣지않고 지배하는 자들,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의 목소리만 듣는 사회가 과연 우리가 꿈꾸는 사회의 모습을 띄고 있는 것일까, 싶어졌다.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만 한다. 나 하나에 대한 책임, 우리 가족에 대한 책임. 더 나아가서, 난장이라고 불릴만한 소외계층을 줄이는 데 힘을 써야하는 책임. 현재의 사회는 이러한 책임을 묵인하고 있고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난장이들이 남아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거인들의 목소리는 속삭이기만 해도 우리에게 잘들리지만 난장이들의 목소리는 그들이 아무리 고함을 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들리지 않는다. 현재의 사회를 만들고 훗날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주축이 될 우리부터 책임을 가지고, 사회에 대해 돌아보며 가지고 있는 시선을 바꿔야한다고 느끼게 해준 소설이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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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09 04:48:1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483042666</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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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리한 풍자와 너른 해학이 펼쳐지는 한마당, &quot;탈춤을 추자.&quot;</title>
         <author>korean53</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485073615</link>
         <description><![CDATA[<p><mark>부조리·갈등 넘어 소통과 화해의 춤</mark> (기사 인용)</p><p><br></p><p>2022년을 마무리하는 달인 12월 첫째날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가 열린 모로코에서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바로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풍자와 해학’으로 지친 서민의 시름을 달래준 한국의 전통 가면극 탈춤이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오른 것이다. 등재 명칭은 한국어 발음 ‘탈춤’을 영문으로 옮긴 ‘한국의 탈춤’(<mark>Talchum, Mask Dance Drama in the Republic of Korea</mark>)이다.</p><p> 이번 등재로 한국은 총 22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탈춤은 무형문화유산 제도가 한국에 처음 도입된 1960년대부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한국인에게는 무형유산의 상징으로 인식돼온 종목이기 때문에 이번 등재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유네스코가 등재 결정문에서 밝힌 따끈따끈한 주요 등재 사유를 함께 살펴보면 기쁨이 배가 될 것 같아 아래 발췌했다.</p><p>“탈춤은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는 역할 이외에도 지역 방언과 지역 민요를 포함함으로써 지역의 정체성 강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탈춤 공연은 지역 축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중략) 전통 탈춤 공연은 <mark>보편적 평등의 가치와 사회적 신분제에 대한 비판</mark>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주제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들이다. 탈춤은 <mark>전승 지역의 문화 정체성에 상징적인 요소</mark>로 자리 잡고 있다. (중략) 탈춤 등재는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전통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배양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무형유산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다.”</p><p>민중의 삶과 의식 구체적 묘사</p><p>한국의 탈춤은 조선시대 성행했던 가면 놀이다. 조선 전기 각 지역에서 연행되다가 17세기 중반 궁궐 주관 아래 산대(민속놀이를 하려고 마련한 무대)에서 주로 상연됐으나 인종 12년인 1634년 궁중 공연이 폐지되면서 민중에 유입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p><p>탈춤은 춤과 음악, 노래, 연극의 모든 요소가 총망라된 종합예술이다. 정식으로 차려진 무대가 아니더라도 배우와 관객만 있으면 공터에서도 공연이 가능하다. 탈춤의 주요 내용은 <mark>부조리한 사회 이슈와 윤리적 모순</mark> 등을 주제로 했다. 여기에 <mark>풍자와 해학</mark>을 곁들여 재치 있게 풀어내면서 배우와 관객이 소통했다. 탈춤은 배우의 드라마뿐만 아니라 <mark>관객의 동조와 호응</mark>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소통 예술의 특성을 보인다.</p><p>한국의 탈은 모양이 귀엽거나 예쁘다기보다는 기괴하다는 인상을 준다. 너털웃음을 짓는 하회탈조차도 다소 과장된 주름과 표정에 깜짝 놀랄 때가 있을 정도다. 왜 그럴까. 공연에 사용하는 탈은 배우가 자신을 감추고 또 다른 자아를 드러내는 도구다.</p><p>한국의 탈을 종류별로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 자신이 일생 짓게 되는 희로애락의 온갖 감정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을 눈치 챌 것이다. <mark>인간의 표정을 감추려고 쓴 탈이 인간 내면의 솔직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있는 셈이다</mark>. 탈춤에 사용되는 가면은 바로 한국 민중의 삶과 의식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p><p>갈등 넘어선 조화의 전통유산</p><p>한국의 탈춤은 총 18개 무형유산 종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봉산탈춤과 북청사자놀음, 하회별신굿탈놀이, 양주별산대놀이, 통영오광대 등이다. 맛보기로 봉산탈춤을 한번 들여다보자. 강령탈춤과 함께 해서(海西)탈춤의 대표 격인 봉산탈춤은 황해도 일대에서 추어오던 탈춤이다. 중부지역의 양주별산대놀이와 견줘 볼 때 뛰어노는 춤이 많아 굉장히 활달하고 씩씩하며 빠른 템포의 특징을 갖고 있다.</p><p>탈도 사실적 외관을 하고 있다. 봉산탈춤은 몰락한 양반과 하인, 무당, 파계승, 서민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권선징악을 주제로 익살스러운 재담을 곳곳에 배치하면서 현실의 부조리를 폭로한다. 무속과 불교 신앙적 색채도 가미돼 있지만 종교적 의미는 크지 않고 민중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오락적 요소가 풍부하다.</p><p>한국의 탈춤은 언뜻 <mark>부조리와 갈등을 공론화하고 단순히 이를 풍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거기서 더 나아가 화해의 춤으로 마무리한다</mark>. <mark>갈등을 넘어선 화해와 조화의 전통유산</mark>이라는 문화예술적 가치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p><p>배우는 관객과 적극적으로 환호와 야유를 주고받으며 양반과 사회의 문제를 호되게 비판하지만 마지막으로 흐르면서는 모두가 더불어 하나 되는 세상을 지향하는 상호 존중의 유쾌한 공동체적 퍼포먼스로 극을 흐르게 한다. 상대의 말에 좀처럼 귀 기울이지 않는 요즘 세태에 신명 나는 탈춤 한마당을 펼쳐 보이며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건 어떨까.</p><p>김정필 &lt;한겨레&gt; 기자</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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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10 10:07: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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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절정에서 약간 비켜선 채로, 조금쯤 비겁하고 옹졸하게,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며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소시민들을 위한 노래, &#39;자그냐 자그냐&#39;</title>
         <author>korean53</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485077449</link>
         <description><![CDATA[<p>항상 절정 위에 있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만, 나의 일상이 정면에서 너무 비껴나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이닥칠 때 이 시를 읽습니다. 김수영 시인이 살아 있다면, 첫 연의 4행을 조금 고쳐달라고 청하고 싶지만("설렁탕집 주인에게 욕을 하고" 정도로 말이죠), 그는 이미 없으니 어쩔 수 없네요. 첫 연의 4행이 마음에 몹시 걸리지만 그래도 이 시의 <mark>놀라운 정직함</mark>을 좋아합니다. 후대의 시인으로서 김수영 시인에게서 배운 가장 큰 것이라면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mark>삶에 대해 가져야 할 정직함과 번민의 자세</mark>입니다. 이 시는 1960년 4.19혁명 이후 들이닥친 1960년 5.16 군사쿠데타, 그 반혁명의 시절을 살아내는 <mark>소시민으로서의 자신에 대해 회초리를 들고 있습니다</mark>. 제가 느끼기에 시인으로서의 김수영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자유를 향한 지칠 줄 모르는 갈망과 일상에 대한 냉혹한 반성이 만날 때입니다. 그리하여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 사랑을 발견하겠다"(「사랑의 변주곡」 첫 부분)고 열기 어린 사랑의 지향을 노래할 때입니다. <mark>60년대의 김수영이 거론하는 '비겁'의 목록을 2010년대의 '비겁'의 목록으로 바꾸어 읽어봅니다. 떠오르는 많은 괄호들이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mark>. 아,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 이 탄식이 하릴없는 자조로 침몰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씩씩해져야겠습니다. 오, 자유! 오, 사랑! </p><p>문학집배원 김선우</p><p><br></p><p>김수영 시인을 향한 헌사로 느껴지는, 강은교 시인이 김수영 시인이 시 '푸른 하늘을'을 패러디한 작품입니다. '하찮은 것들의 위대함'이라는 역설이 뼈를 때립니다.</p><p><br></p><p>그대의 들</p><p>                      강은교</p><p>'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로 시작되는</p><p>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하네</p><p>하찮은 것들의 피비린내여</p><p>하찮은 것들의 위대함이여 평화여</p><p>밥알을 흘리곤</p><p>밥알을 하나씩 줍듯이</p><p>먼지를 흘리곤</p><p>먼지를 하나씩 줍듯이</p><p>핏방울 하나 하나</p><p>그대의 들에선</p><p>조심히 주워야 하네</p><p>파리처럼 죽는 자에게 영광 있기를!</p><p>민들레처럼 시드는 자에게 평화 있기를!</p><p>그리고 중얼거려야 하네</p><p>사랑에 가득 차서</p><p>그들의 들에 울려야 하네</p><p>'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대신</p><p>모래야 우리는 얼마큼 작으냐</p><p>'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대신</p><p>바람아, 먼지야, 풀아 우리는 얼마큼 작으냐, 라고</p><p>세계의 몸부림들은 얼마나 얼마나 작으냐, 라고</p><p><br></p><p>출처 : 더뷰스(<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www.theviews.co.kr">http://www.theviews.co.kr</a>)</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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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6-10 10:12: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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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302 김신가온</title>
         <author>24hy10502</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511095275</link>
         <description><![CDATA[<p>문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적어도 인격화된 대상을 다룬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같이 당대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고발하는 작품을 읽더라도 독자는 결국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사회와 더불어, 필연적으로 그러한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을 관찰하게 된다. 작품이 묘사하는 1970년대의 ‘낙원구 행복동’은 ‘난장이 가족’에 의해 경험됨으로써 독자에게 도달하는 사회 이면의 투영임과 동시에 이를 살아내는 ‘난장이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말 그대로 ‘배경’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전자의 경우에서 인물은 사회를 직접 체험하며 우리에게 보여주는 파견 기자로서, 후자에서 인물은 작품 속에서 인간을 대표하는 하나의 주체로서 독자에게 주제를 전달한다.</p><p>가족들은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주한 어려움을 타개하려 한다. 닿을 수 없는 이상을 꿈꾸는 아버지, 노동 환경 개선을 외친 영수와 영호, 입주권을 되찾아온 영희처럼. 그러나 결국 그 누구도 ‘난장이 가족’이 처한 상황을 개선시키지는 못한다. 가족은 무기력하게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거나, 그 현실을 도피하는 수밖에 없다. 영호가 무너진 집 위에서 쓰러지듯 잠에 드는 것처럼.</p><p>문학은 인간을 다룬다고 했다. 인간은 이상적일 수 없으므로 따라서 문학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불완전성과 나약함을 포착하게 된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사회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사회에 종속된 개인이 거대한 구조 앞에서 마주하는 무능함과 그에서 비롯되는 좌절감을 보여준다.</p><p>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난장이 가족’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독자가 이 작품에 공감할 수 있는 까닭은 그 안에 드러난 인물들이 시대성에 갇히지 않은 보편적 인간상을 나타내기 때문일 것이며, 그 인간상을 공유하는 우리가 여전히 인물들이 느끼는 사회 속의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 고통에 감응하기 때문일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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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05 09:39: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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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325 이소예</title>
         <author>24hy10217</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517922906</link>
         <description><![CDATA[<p>이 시는 사소해 보이는 일들에 분노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현실의 문제 앞에서는 당당히 맞서지 못하는 내면의 갈등을 담고 있다. 이는 억압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개인이 마주하게 되는 모순과 한계를 드러낸다. 화자가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듯, 문학은 현실의 부조리와 개인의 내면적 고민을 동시에 비추며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성찰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라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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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3 12: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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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332 백영광</title>
         <author>rdcymmrv4d</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518082029</link>
         <description><![CDATA[<p>『사씨남정기』를 읽고 느낀 점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끝까지 바르게 행동하면 결국에는 좋은 결과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사씨는 교씨의 모함으로 쫓겨나고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자신의 억울함을 아무에게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견디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다 이는 결국 시간이 지나 진실이 밝혀지고 사씨는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앞으로 어떤 억울한 일이 생기더라도 함부로 감정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꼈다 반면 교씨는 질투심과 이기심으로 사씨를 괴롭히고 거짓말로 남의 자리를 빼앗으려 했지만 결국 그런 행동은 오래가지 못하고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온다 이걸 통해 겉으로는 이긴 것처럼 보여도 잘못된 방법으로 얻은 건 결국 다 무너진다는 걸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단순한 고전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사는 사회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질투나 시기로 다른 사람을 해치려 하기보다는 내가 나답게 행동하고 중심을 지키는 게 진짜 중요하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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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3 22:58: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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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318 박소이</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518089203</link>
         <description><![CDATA[<p>[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책은 산업화라는 그늘 아래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려놓은 책이다  나는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고 질문을 던저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p><p>이 책은 1970년대 산업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급격한 산업화는 도시의 외형을 바꾸어 놓았을지 몰라도 사람들의 삶까지 좋게 바꿔놓지는 못했다 이런 점이 이 책에 잘 나와있었는데 특이한 점은 작품에 나와있는 공간이 행복동이라는 설정이였다 나는 이 점에서 반어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작품에 비극성을 더 더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계속 달나라로 가고 싶어해 끝내 굴뚝위로 올라가 추락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아버지가 가고 싶어하는 달나라는 유토피아에 불과한것이 아닐까? 리고 생각했다</p><p>책 제목인 &lt;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gt;은 사실 하늘 높이 떠오르지 못하고 떨어진다 하지만 나는 그 작은 공이야말로 이 사회에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공은 비록 낮게 떴지만 누군가가 매우 노력하고 절실히 원해서 그 정도 높이 까지 뜰수 라고 있었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었던것같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사회와 생활에도 깊이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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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3 23:20: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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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314 노윤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518091042</link>
         <description><![CDATA[<p>처음에는 이 작품이 그저 ‘불쌍한 사람들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그 안에 담긴 구조적 폭력과 현실의 냉혹함이 읽을 수록 더 크게 다가오는 소설이였다. 단지 한 가족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자본과 권력 앞에서 존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조용하지만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인물들이 겪는 가난은 단순히 물질의 부족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지워지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박탈당한 상태라는 점이 충격이였다. 특히 아이들이 공잘에 내몰리고 어른이 되기도 전에 체념하는 장면에서는 화가 났다기 보다는 마음이 깊이 쓸려 나가는 무력함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작은 공을 하늘로 쏘아올리고, 누군가는 날개 없는 몸으로 상상하고 꿈꾼다. 그 장면에서 문학은 현실을 폭로함과 동시에 그 안에서 희망의 형태까지 건져 올리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 역시 편한 일상에 안주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언어와 시선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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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3 23:25: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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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326 이은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518096513</link>
         <description><![CDATA[<p>조선후기 유행했던 민속극은 후기의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담아낸 공연 양식으로, 단순한 오락을 넘어 백성들의 삶과 의식을 드러낸다. 양반, 승려, 무당,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여 서로 말다툼을 벌이고 갈등을 겪는 과정은 당시 사회의 계층 구조와 불평등을 생생하게 반영한다. 특히 겉으로는 수행자인 척하지만 실상은 위선적인 승려의 모습이나, 권위만 내세우는 양반의 태도는 조선 후기의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러한 민속극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당시 민중의 정서와 현실 인식을 담은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서 의미가 크며, 이를 통해 시대적 배경과 민중 문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깊이 있게 이해하고 분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p><p><strong>이 과정을 통해 나는 민속극이 단순한 전통 예술이 아니라, 민중의 목소리와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은 표현 수단이었다는 점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strong></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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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3 23:35: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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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313 김주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518101988</link>
         <description><![CDATA[<p>화자는 자신이 작고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고 정작 중요한 일, 정말로 분노해야 하는 일에는 그러지 못했다고 반성한다. 나는 그러한 구절들을 읽으면서 당대 지식인의 자기검열과 무기력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화자의 태도에 대해 비판했다. 그러나 그때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 보면, 나라고 해서 화자와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사소한 것에 대신해서 화를 내지는 않지만, ‘나라고 해서 비판해야 할 부분에 대해 소리내어 비판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소에 일어나는 시위들에 대해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나와는 관련없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동조하지 못했다. 회피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나 나는 이 시를 읽고 화자와 비슷한 내 모습에 반성했다. 직접적으로 시위나 연대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서명을 하는 등의 노력을 조금씩 기울이고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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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3 23:43: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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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324 이보혜</title>
         <author>gktxb2dbxd</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518102216</link>
         <description><![CDATA[<p>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은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에게서 나온다. 하지만 사회의 개인은, 특히 현대 사회의 개인은, 과거의 인습과 기득권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각종 언론과 미디어가 조장하는 여론, ‘과거에 비하면 낫지’ 라는 게으른 타성에 젖어 그저 흘러가는대로, ‘고궁’의 음탕을 비판하기는커녕 국밥집 주인이나 야경꾼 같은 소시민들에게 그것이 마치 대단한 정의구현이라고 되는 양 화살을 겨누기 일쑤이다. 이러한 개인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단 말인가.</p><p>12월부터 지금까지 많은 집회 현장을 보고 들으며 개인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은 사유하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득권과 모순적인 사회 구조의 병폐를 알고서 비판하지 못하고 내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일개 개인에게만 분노를 돌리는 것이 ‘옹졸하’고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부터 사유는 시작된다. 출퇴근 시간에 시위를 벌여서 지하철을 연착하게 만드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대가 왜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차들이 많이 다니는 주말, 도로를 통제하며 직진할 수 있는 길을 멀리 돌아가게 만드는 기후정의 시위대,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 시위대, 성소수자들이 왜 거리로 나왔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내가 누려야 할 것들, 또는 국가의 부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인질로 잡’고 -가령 빠른 택배나 자동차나 배터리 등등-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이 왜 파업을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p><p>시의 화자를 욕할 때가 아니다. 당장의 우리가 눈앞의 상황만 보고 화를 낸다. 그 이면에 숨은 -장애인들이, 기후정의, 팔레스타인, 성소수자 시위대가, 노동자들이, 그 외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게 만든 맥락은 모른다. 그렇게 하게 만든 사회에 대고 화를 낼 줄은 모른다.</p><p>왜?를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덜 옹졸해지고, 조금 덜 작아지고, 조금 더 ‘절정’에 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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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3 23:44: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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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311 김송하</title>
         <author>24hy11113</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518103968</link>
         <description><![CDATA[<p>[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1960년대 독재정권이 지배하던 시대에 지어졌습니다. 이&nbsp;시는&nbsp;김수영 작가가&nbsp;1965년&nbsp;11월&nbsp;4일&nbsp;고궁&nbsp;나들이를&nbsp;다녀오고&nbsp;나서&nbsp;쓴&nbsp;작품입니다.&nbsp;시의 주제는 억압적인&nbsp;정치&nbsp;권력에&nbsp;대적하지&nbsp;못하고&nbsp;방관하는&nbsp;지식인의&nbsp;무능과&nbsp;허위&nbsp;의식의&nbsp;폭로입니다. ‘왜&nbsp;나는&nbsp;조그만&nbsp;일에만&nbsp;분개하는가’라는&nbsp;시적&nbsp;진술에서&nbsp;드러나듯이&nbsp;작가는 역사와&nbsp;현실의&nbsp;불합리,&nbsp;부조리에&nbsp;대해서는&nbsp;저항하거나&nbsp;비판하지&nbsp;못하고&nbsp;일상의&nbsp;사소한&nbsp;일에만&nbsp;화를&nbsp;내는&nbsp;자신의&nbsp;소시민적&nbsp;태도에&nbsp;대해&nbsp;비판하고&nbsp;있습니다. 4·19&nbsp;혁명으로&nbsp;한층&nbsp;부풀었던&nbsp;자유와&nbsp;사랑과&nbsp;양심에의&nbsp;희망이&nbsp;5·16&nbsp;군사&nbsp;쿠데타로&nbsp;일순간에&nbsp;물거품이&nbsp;된&nbsp;상황에서&nbsp;김수영은&nbsp;소시민으로서&nbsp;살아가는&nbsp;일만이&nbsp;가능한&nbsp;자신의&nbsp;처지를&nbsp;조롱합니다. 그의 모습은 오늘날 남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저 방관만 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이는 물론 사회적 억압과 남들의 시선에 대한 걱정이 섞여있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올까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이러한 우리의 사회를 잘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해보지 않으려는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과 무책임한 마음이 잘 드러나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도 주인공의 자기비판(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시를 통해 깨달은 점이 몇 가지 생겼습니다. 먼저, 문학은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나아가서 지금의 성공한 모든 사람들이 과연 처음부터 응원을 받았을까요? 그들 중 일부는 남들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실행해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저 가만히 있는다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남의 눈치만 보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결국 발전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기에 자기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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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3 23:46: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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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317 박선유</title>
         <author>24hy10413</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518112104</link>
         <description><![CDATA[<p>이 작품은 많은 1960-70년대 소설과 같이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로 인한 아픔을 잘 보여준다. 작가는 작중 주인공 가족이 사는 동네의 이름을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모순적인 이름으로 설정하며 소외되는 하층민의 비극을 강조했다. 나는 이러한 역설적인 표현을 보며 어쩌면 도시개발, 나아가 우리 사회 자체가 굉장히 모순적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더 나은 삶과 발전을 위해 시작한 일이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을 빼앗고 행복을 짓밟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고 안타까운 일인 것 같다. 이러한 문제는 현재 사회에서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멋지게 포장된 도시 이면에는 여전히 고통받는 난장이 가족들이 존재한다. 작가는 이 소설이 청소년들에게 옛날이야기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작품이 현실에 대한 반영이 아닌, 그저 가슴 아픈 이야기로만 읽힐 때 비로소 우리는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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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3 23:55: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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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20328 전서윤</title>
         <author>concert0811</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518136720</link>
         <description><![CDATA[<p>조세희 작가의 &lt;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gt;은 산업화 도시에서 살아가는 도시 빈민의 삶을 자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나는 문학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불평등과 차별을 생각하게 했다. 문학은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주고, 나 아닌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느꼈다.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고통을 이해하고, 나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난장이 가족의 삶을 따라가며 느꼈던 감정은, 뉴스나 통계로 접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게 다가왔다. 등장인물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그들의 선택에 대해 고민하며, 나는 문학을 통해 더 나은 공감 능력과 사회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었다. 결국 문학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사람과 세상을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매개체이며,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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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4 00:19: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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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321 배수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518143206</link>
         <description><![CDATA[<p>'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가장 먼저 느낀 건 무력감이었다. 도시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무너져가는 가족과 삶은 단지 허구 속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현실 같았다. 난쟁이 아버지가 로켓을 쏘아올리는 장면은 절망 속에서도 꿈을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마지막처럼 느껴졌다. 사회 구조가 어떻게 약자들을 짓밟는지를 이토록 노골적이고 생생하게 드러낸 작품은 드물다. 읽고 나서 마음이 먹먹해졌고, 문학이 사회를 고발할 수 있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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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4 00:23:1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518143206</guid>
      </item>
      <item>
         <title>20321 배수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518154377</link>
         <description><![CDATA[<p>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 숨어 있는 시대의 무게와 자책을 느끼게 해주는 시였다. 처음엔 그냥 고궁을 산책하는 평범한 일상을 그린 것처럼 보였지만, 시가 진행될수록 시인의 내면에 쌓인 분노와 죄책감이 겹겹이 드러나면서 나도 모르게 시 속에 빨려 들어갔다. 특히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구절은 시 전체의 핵심이었다. 그 문장은 우리 사회에서 침묵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느껴졌다. 나 또한 무언가 불의한 일에 침묵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우리가 무언가에 분노할 자격이 있다면, 그건 진짜로 세상을 바꾸려 할 때뿐이라는 사실도 함께 느꼈다. 이 시는 단순히 ‘옛 시’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방관일 수 있다는 사실과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잘못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짧은 시 한 편이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나에게 시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양심을 흔드는 울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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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4 00:29: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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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308 권예지</title>
         <author>annakwon85</author>
         <link>https://padlet.com/hanyangpadlet/cjpjstz537dy9is1/wish/3518210642</link>
         <description><![CDATA[<p>‘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약자들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작 중 '난쟁이'는 신체적 왜소함을 넘어 사회적 신분의 왜소함, 즉 소외와 약자성을 상징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지명은 실제로는 빈곤과 불행이 가득한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이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강조함으로써 산업화의 그늘에 가려진 도시 빈민의 참혹한 삶를 더욱 부각시킨다. 제목의 '쏘아올린 작은 공'은 바로 그런 절망 속에서의 평범한 일상을 위한 소박한 꿈과 희망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 공은 결국 중력에 의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는 사회 구조의 벽 앞에서 약자의 꿈이 번번이 좌절되는 현실을 비유한다.</p><p>'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산업화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 계급 갈등, 사회적 약자의 소외 문제를 다양한 상징과 복합적인 관점으로 나타낸 작품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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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4 01:04: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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