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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일차 수련회 찬양팀 묵상 (목사님) by 잠실중앙교회청년교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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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7-31 03:12: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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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jamjoongyouth</author>
         <link>https://padlet.com/jamjoongyouth/second_day/wish/3532560584</link>
         <description><![CDATA[<p>&lt; 수련회 각 곡에 대한 인도자님의 묵상 + 찬양팀 지체들의 묵상 &gt;</p><ul><li><p>분량: 자유</p></li><li><p>형식 / 말투: 자유.&nbsp;</p></li><li><p>내용: 자유&nbsp;</p></li></ul><ul><li><p>가장 와닿았던 가사에 대해서 작성해주셔도 되고, 내 삶의 적용점이나 지체들과 함께 이 찬양을 부르는 것이 공동체로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나에게 힘/도전이 되는 이유, 연습하며 어려웠던 파트? 내용은 정말 뭐든 상관이 없습니다!!</p></li><li><p>익명을 희망하는지 기재 부탁드려요!</p></li><li><p>모든 찬양에 인도자님의 묵상 포함 2개 이상이 되면 좋을것 같지만, 각 지체들이 고르는 곡이 중복되어도 무관하긴합니다! 묵상할 곡을 선택하는 것에서는 자유도가 있는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드네요!</p></li><li><p>수련회장에 가사 묵상 노트가 비치되어 지체들이 오며가며 읽을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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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31 03:20: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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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jamjoongyout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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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31 03:27: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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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jamjoongyout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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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31 03:27: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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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jamjoongyout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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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31 03:28: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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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형식</title>
         <author>jamjoongyout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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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이름: (익명으로 적어도 됩니다)</p><p>찬양 묵상 내용:</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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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31 03:44: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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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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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strong>&lt;찬양 하라&gt;</strong></p><p>사실 이번 여름 수련회 찬양팀을 하지 않으려고 했었어요. 제 다락방 순원들과 주변인들에게는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월요일을 보내는 게 너무 힘들다.” “이제는 그냥 관계에만 집중해야지” 라는 말들로 수련회 찬양팀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표시했었는데요. 하지만 제 안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어요. </p><p><br/></p><p>저는 평생을 주의 자녀로 살아왔어도 복음을 깨닫지 못했던 한 사람으로서 “이제는 다르게 살아보겠다. 나의 삶을 완전히 전환시켜보겠다. 나 이제 진짜 하나님 말씀을 내 마음 중심에 둘 거야”를 수십번, 아니 수천번 다짐했었어요. 하지만 복음 앞에 서는 것조차 하지 않으면서 늘 변화만을 기대하는 모순적인 모습인 저 자신에게 실망을 매번 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스스로 포기하고 살게 된 것 같아요. 늘 힘들 때만 주의 이름을 크게 부르짖으며 찬양을 하고, 기쁨이 넘쳐나는 순간에는 하나님의 이름은 쏙 빼놓고, 모든 공을 저 자신에게 돌리기 일쑤였죠. 찬양의 자리에서 문득 “아, 내가 하는 찬양과 나의 고백은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포장되어 있는 모습들로부터 나오는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내가 찬양을 하면서 드높이고 경외하는 분은 하나님일까? 아니면 그저 하나님을 핑계로 찬양을 하는 내 모습에 취해있는 걸까? 인지 헷갈릴 정도였거든요. </p><p><br/></p><p>참으로 부끄러웠어요. 이런 생각이면 청중들 앞에서 찬양을 하는 제 모습이 거짓된 모습 같을 것이다. 생각이 들었고, 4부 찬양팀의 자리도 고민했을 뿐더러 수련회 찬양팀은 참여하는 것은 더더욱 망설였어요. </p><p><br/></p><p><strong>“예수 나의 이름 부르시고</strong></p><p><strong>그의 품에 감싸 안으시네”</strong></p><p><br/></p><p>언제인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목사님께서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찬양팀의 무대는 나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자리임을 분명히 해주셨어요. 연습 한 번 더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 더 읽고,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도 말씀해 주셨어요. 저는 찬양팀을 하며 그저 실수하지 않은 날에만 기뻐하고, 실수를 했던 날엔 오늘 예배 전부를 망쳤다는 생각에 잠식되기도 했어요.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그날 하루 찬양팀 무대를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이 그 주일의 기분을 정하는 지표가 되었었어요. 오롯이 이 찬양의 주체가 “나”였기 때문이죠. </p><p><br/></p><p> 내 삶의 모습과 내가 드리는 찬양의 고백이 양 끝점에 있는 것이 아닐지,  요 며칠간 찬양팀의 자리를 놓고 많이 기도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연약한 제 모습마저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제 이름을 부르시고, 찬양팀이란 자리에 세워주셨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선택한 자리가 아닌, 하나님께서 나를 올해 저를 찬양의 도구로 불러주셨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고 이 자리에 임하고 싶어요. 그 마음을 품고 다시 싱어의 자리에 임했을 때는 찬양의 메시지가 주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의 축복이 제 삶에도 스며들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그리고 목사님께 찾아갔어요. “목사님, 혹시 아직 싱어팀 자리 남았나요?”</p><p><br/></p><p><strong>“내 마음 부서진대도 붙들을 가치 있는 그 이름 주 이름 예수”</strong></p><p><br/></p><p>이번 수련회 2일 차 집회의 시작을 알리는 곡 “찬양하라”는 제가 앞으로 주님께 드리고 싶은 찬양의 메시지가 담긴 곡이라 생각해요. 우리의 삶의 형태가 어떻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품에 안아주시는 줄을 믿습니다. 잠시 잠깐 있다 갈 이 곳에서 우리 공동체가 하늘 소망을 기대하며, 이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기쁨인지 같이 누렸으면 좋겠어요. </p><p><br/></p><p><strong>숨 쉬는 사람마다 주님을 찬양 하여라. 할렐루야 (시편 150: 6)</strong></p><p><strong>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시편 148:13) </strong></p><p>-민철-</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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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02 07:55: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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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jooyeong0726</author>
         <link>https://padlet.com/jamjoongyouth/second_day/wish/3534162706</link>
         <description><![CDATA[<p>이름: 조주영</p><p>묵상내용:</p><p><strong>(가사) 주의 사랑을 주의 선하심을 주의 은혜를 생각해보라, 하늘보다도 더 높으신 아버지의 사랑 크고 놀랍네. 내 어찌 그 사랑 잊으리, 내 어찌 주의 긍휼 잊으리, 나 길을 잃고 헤맬 때 그 사랑 날 찾아 내셨네, 내 영혼의 모든 소원 만족시킨 하나님.</strong></p><p><br/></p><p>짧다면 짧겠지만, 저에게는 평생이었던 24년의 삶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평생에 흔들리지 않을 확신의 어조로 이야기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겨 눈동자와 같이 돌보시지 않으셨다면, 그 압도적인 사랑으로 은혜를 베푸시고 돌처럼 굳어버린 저의 마음을 부숴 회복시켜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속이 죽은 삶을 살거나, 아예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요. </p><p><br/></p><p>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크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아멘.</p><p>어떻게 그 사랑을, 그 긍휼을 잊을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땅에 닿일듯 세차게 흔들리고 코를 박기까지 넘어지면서도 오뚜기처럼 계속 계속 일어나게 하는 유일한 힘이 그것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나에게 동일하게 비추입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저를 어김없이 찾아 내십니다. 그 크신 사랑은 찬양받아 마땅하며, 모든 사람이 알아야만 합니다. 이 사랑을 알기 전후의 삶은 정말정말 다르기 때문입니다. </p><p><br/></p><p><strong>"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strong></p><p><strong>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strong></p><p><strong>잠언 3장 3-6절 말씀. 아멘.</strong></p><p><br/></p><p>함께 찬양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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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02 13:57: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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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jooyeong0726</author>
         <link>https://padlet.com/jamjoongyouth/second_day/wish/3534172106</link>
         <description><![CDATA[<p>이름: 조주영</p><p>묵상내용:</p><p><strong>(가사) 주님만 주님만, 주님만 사랑하리. 나의 왕 나의 주님. 주님을 더욱 알기 원해. 나 주님께 오직 주께 경배하네. 거룩 거룩, 존귀 존귀하신 주 사랑합니다.</strong></p><p><br/></p><p>최근에 금요기도회에서 이 곡을 함께 찬양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적은 양의 가사가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곡들이 주는 깊은 감동이 있는 것 같아요. 예배당에 있는 우리가 한분이신 주님께 주님 너무 사랑해요. 당신은 나의 왕이십니다. 그런 주를 더욱 알기 원하며, 거룩하고 또 존귀하신 당신께만이 경배합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하는 그 고백을 반복해서 내뱉었던 그 순간이 말로 하기 어려운 감동과 은혜가 되었습니다.  </p><p><br/></p><p>찬양을 위해 고민하고 기도하고 씨름하다보면, 찬양의 본질이 어떤 걸까? 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하게 돼요. 아무래도 회중예배를 위한 것일때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짜 문제는,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제 안에, 불안감과 불만족감을 채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기적이고 미운 감정들이 차오르면서 결국에는 예배가 아닌 쇼를 위해 시간을 쓰는 저를 발견하게 되던 날들이 많았고, 그때의 허망함도 컸습니다.</p><p><br/></p><p>그런데, 그렇게 잔뜩 꼬이고 얽힌 마음을 가지고 소일거리를 하면서 그날의 찬양 콘티를 곱씹는데, 그게 갑자기 엄청난 은혜의 자리가 될때가 종종 있습니다. 진짜 냅다 은혜받아버리는 조금 웃기지만 기쁜 시간을 만끽하면서 설거지 하다 말고 혼자 고무장갑 낀 손을 치켜들고 찬양을 하곤 하는데, 그런 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일단 감사드리고, 아 결국 찬양이란 이런 거였지를 느낍니다. </p><p><br/></p><p>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놀라운 일들 보이셨는지, 어떤 선물을 주셨는지 제대로 누리고 감사하는 것. 그 사랑에 감격하는 것. 자유를 체감하며 그 자유를 주신 분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 그것이 이제는 나를 넘어서서 공동체, 교회, 나라의 것이 됨을 기뻐하고 간구하는 것. 그 일을 남은 삶가운데 보기를 소망하는 것. 등등등!!!</p><p>이 모든 복합적이고도 단순한 고백들이 찬양이라고 생각합니다.</p><p>그리고 그런 가사의 고백이 이 주님만 사랑하리 라는 곡에 담겨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p><p><br/></p><p>이 찬양을 함께 하는 그 순간에, 우리 공동체가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함께 기뻐하고. 마음이 상한 사람들을 위해 함께 가슴아파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준비합니다!</p><p><br/></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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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02 14:27: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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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jamjoongyouth/second_day/wish/3534175069</link>
         <description><![CDATA[<p>이름: 박주은</p><p>묵상내용:</p><p>[가사]</p><p>이제는 내가 없고</p><p>오직 예수님만</p><p>내 안에 살아계신</p><p>오직 예수님만</p><p>찬양하며 살리라</p><p>예배하며 살리라</p><p>내 안에 계신 오직 예수님만</p><p>주님은 나의 아바 아버지</p><p>내 상한 영혼 만지시고</p><p>주님은 나의</p><p>하늘 아버지</p><p>나의 모든 것 주님께 맡기리</p><p>이제는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 위에 죽었으니</p><p>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p><p>내 안에 주님이 사신 것이라</p><p><br/></p><p>제가 잠중에 처음왔던 2024년 겨울수련회부터 TF로 참여했던 2025년 겨울수련회까지의 1년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p><p><br/></p><p>모태신앙으로 주일예배를 빠뜨린 적은 한 번도 없던 저였지만, 당시 하나님이 감각되지 않고, 믿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믿어지지 않아 신앙에 있어서 암흑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인게 이상하다고 여겨지고, 믿지 않는 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말도 안되는 종교를 믿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응급처치를 위해 잠중에 오게 되었고, 그 1년의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의 실체를 잠중 공동체를 대신하여 보여주셨고, 저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감각하며 다시 그 믿음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p><p><br/></p><p>하나님의 존재를 새롭게 인지하고 난 뒤, 청소년의 시간 동안 하지 못했던 "하나님 알아가기"를 하기 위해 양육과정, 다락방 시간, 교회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했고, 사역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그 경험이 쌓이니 이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채워진 듯 했습니다.</p><p><br/></p><p>그 이후 반년의 시간, 요새 가장 어려운 것은 '나의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을 내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찬양 가사를 따라부르다 보면, 주님을 주인 삼는 것의 정답을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너무나 쉽게 알 수 있기에 더욱 고통스럽습니다.</p><p><br/></p><p>이전에는 하나님을 몰라서 믿지 못했기에 고통스럽기보다는, 더 열심히 주님을 알아갈 동력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내 자아를 고집하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런 제가 너무 부끄럽고 고통스럽습니다.</p><p><br/></p><p>&lt;이제는 내가 없고&gt;를 부르는 것은 제게 너무 힘든 고백입니다. 내가 싱어로서 고백하는 찬양의 가사가 진정 내 고백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는 하면서, 정작 그 고백에 가까워지고 있지도 않은 내 모습을 대면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부족한 것을 고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려진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려야 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p><p><br/></p><p>가사를 들을 때마다 나를 자책하게 되고, 슬픔에 빠지지만, 저는 수련회를 위해 몇 번씩 이 노래를 듣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과연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아하실까?' 주님께서는 나를 충분히 기다려주실 수 있는 분이란 걸 압니다. 주님께서도 내 자아를 비우고, 아버지의 자아를 채워 넣길 원하시겠지만, 그 과정이 고통스럽긴 원치 않으실 겁니다. 십자가 보혈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고, 우리에게 스스로 해나갈 수 있는 능동적 믿음을 선물하였습니다.</p><p><br/></p><p>이 찬양의 가사를 고백하며, 이 가사가 진정 내 고백이 아님에 낙심하고 무너지는 내가 아닌, 언젠가 나의 고백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기 기도하고, 노력하는 이 딸의 모습을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둘째날 경건회 시간에 이 찬양을 같이 고백할 우리 잠중의 지체들도 주님의 자아를 채워넣지 못하는 모습에 낙심하는 것이 아닌, 십자가 보혈의 사랑을 누리며 나를 버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남을 그 날을 위해 찬양의 고백을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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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02 14:37: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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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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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이름 : 신예준&nbsp;</p><p><br></p><p>묵상내용 :&nbsp;<br></p><p>요즘 들어 자주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대학교 3학년이자 입대를 앞둔 지금, 이제는 어느 정도 삶의 방향성이 잡혀 있어야 할 것 같은데도 아직 중심은 잘 나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바쁜 시간들을 보내다 하나님 앞에 문득 멈춰 설 때면, 마음 속에는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이 퍼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nbsp;</p><p><br/></p><p><br/></p><p>무언가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그 끝에 진짜 소망이 있는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솔직히 확신이 없는 순간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던 중 ‘모든 생명들아 소리쳐’라는 찬양을 처음 들었을 때,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가사 한 줄 한 줄이 제 삶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nbsp;</p><p><br></p><p><strong>“공허한 이 세상 소망 하나 없는데 우리 약함을 동정하는 이 포기치 않으시네 어둠은 갈라지고 주 빛이 내리네 빛으로 생명 되신 예수 소망을 이루셨네”&nbsp;</strong></p><p><br></p><p>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이 주는 것들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속에서 제게 가장 크게 위로로 다가왔던 것은, 주님께서 저의 약함을 아시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nbsp;</p><p><br></p><p>제 자신을 돌아보면, 너무나도 쉽게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릴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도 주님은 여전히 제 손을 놓지 않으셨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nbsp;</p><p><br></p><p>이번 여름 수련회에서 저는, 처음으로 찬양팀의 반주자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섬김의 자리는 저에게 참 큰 도전이었고, 여전히 떨리는 자리입니다. 처음 반주를 맡게 되었을 때, ‘내가 이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제 연주 하나로 예배의 흐름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담이 컸고, 혹시 실수라도 하게 되면 예배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nbsp;</p><p><br></p><p>하지만 그렇게 걱정과 떨림으로 시작한 찬양 중 불현듯, 찬양 가사 속에 담긴 그 고백들이 제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어두운 제 마음 한가운데 빛처럼 내려앉는 구절이 있었고, 그 순간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지, 주님께서 제 안의 작고 미약한 믿음 하나를 기쁘게 받으시고 사용하시겠다는 부르심에 순종했을 뿐이라는 것을요.&nbsp;</p><p><br></p><p>그리고 찬양은 이렇게 이어집니다.&nbsp;</p><p><br></p><p><strong>“온 하늘과 숨 쉬는 모든 생명들아 소리쳐 아름답고 위대하신 주 우리 주를 찬양해”&nbsp;</strong></p><p><br></p><p>이 구절을 묵상하고 찬양하면서, N이라서 상상력이 풍부한(?) 제 마음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 아래에서 바람에 나뭇잎은 흔들리고, 작은 새들이 지저귀며, 주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들의 입술에서 저마다의 찬양이 터져 나오는 광경이었습니다.&nbsp;</p><p><br></p><p>그 거대한 찬양의 물결 속에, 저도 함께 있다는 사실이 참 벅차고 감사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nbsp;연약하고 자주 넘어지는&nbsp;저 역시 주님을 찬양하는 모든 생명 중 하나로 초대받았다는 것을, 감사하며 고백하게 되었습니다.&nbsp;</p><p><br/></p><p><br/></p><p>제가 숨 쉬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찬양이 되고, 제가 누르는 건반 하나하나가 예배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더욱더 이 찬양이 저와, 제 공동체 모두의 가슴벅찬 고백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nbsp;</p><p><br></p><p><strong>“아름답고 위대하신 주, 우리 주를 찬양합니다. ”&nbsp;</strong></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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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03 02:45: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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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title>
         <author>jamjoongyouth</author>
         <link>https://padlet.com/jamjoongyouth/second_day/wish/3535496378</link>
         <description><![CDATA[<p><strong>1. 찬양하라. song by WELOVE</strong></p><p>예수 나의 이름 부르시고 그의 품에 감싸 안으시네…</p><p>찬양하라, 날 위해 죽으신 영광의 하나님…</p><p>경배하라, 그 사랑으로 나를 온전케 하시네</p><p>&nbsp;</p><p>요즘 찬양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자기 고백은 부르는 청중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듣고 또 부르게 되는 것 같아요. 제 지인 중에 CCM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요. 오래전 나눴던 함께 나눈 대화 중에 “사람들이(성도이겠죠) 들어줘야 앨범을 만드는 데(현실적인 자본 문제) 그러려면 많이 듣는 곡을 만들고 부를 수밖에 없다.”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사역자이지만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하는 말이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화의 끝은 이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기 고백적 찬양보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찬양은 부르면 부를수록 더 큰 은혜를 받는다.”</p><p>&nbsp;</p><p>목사인 저조차도 자기 고백적 찬양이 더 와닿고 깊은 울림을 받을 때가 많았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왕이신 하나님’이나 ‘온 세상 창조주’와 같은 경배 찬양들은 괜스레 자주 부르지 않게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매주 찬양과 예배를 인도하는 제겐 그 친구의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울림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p><p>&nbsp;</p><p>왜냐하면 예배의 드림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내가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대상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 위에 예배드림의 묵상은 제게 큰 깨달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저한테만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부터가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온 인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이 “지금 저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결국 그 은혜의 시작점이 바로 나로부터가 아니라 창조 세계의 충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p><p>&nbsp;</p><p>첫 찬양으로 “찬양하라”를 선택한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공동체가 함께 나아가길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날 위해 죽으신 것! 그것은 우리 청년교구 전체를 위한 대속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잠실중앙교회라는 공동체만이 아니라 여전히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을 나누고 싶습니다.</p><p>&nbsp;</p><p>그렇게 모두가 한목소리로 올려드리는 찬양 속에 “나의 존재”를 재발견하면 좋겠습니다. 그 온 세상의 주인이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주님의 크심을 더 고백할때, 나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크게 와닿지 않겠습니까?</p><p>&nbsp;</p><p>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지금 당신에게 주어졌습니다. 무엇을 하시겠습니까?</p><p>  Praise the Lord !! That’s all He need! Amen</p><p><br/></p><p><strong>- 말씀 한 구절로 마음 준비하기 </strong></p><p>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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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05 02:30:3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amjoongyouth/second_day/wish/3535496378</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jamjoongyouth</author>
         <link>https://padlet.com/jamjoongyouth/second_day/wish/3535496702</link>
         <description><![CDATA[<p><strong>2. 모든 생명들아 소리쳐 song by WELOVE</strong></p><p>공허한 이 세상 소망 하나 없는데…</p><p>어둠은 갈라지고 주 빛이 내리네…</p><p>온 하늘과 숨 쉬는 모든 생명들아 소리쳐… 아름답고 위대하신 주 우리 주를 찬양해</p><p>&nbsp;</p><p>잠실중앙교회에 부임한 이후로 담임목사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큰 영향력이 되었던 것 하나는 바로 사람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목사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요. 이때 함께 하는 사역하는 교역자들, 섬김이들, 순장장과 순장들, 4찬과 금찬이들, 청년위 집사님들까지…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교재하고 섬기는 일들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p><p>&nbsp;</p><p>분명 사람은 어떤 새로운 이해와 인식이 있을 때 이전과는 다른 관점과 방향으로 나아갈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p><p>&nbsp;</p><p>찬양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찬양은 결국 존재와 근본적인 목적이 담겨있는 고백입니다. 그것이 전능한 하나님의 존재이든, 연약한 인간 존재의 고백이든 찬양에는 그런 본질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두 번째로 나눌 “모든 생명들아 소리쳐”라는 찬양도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측면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찬양입니다.</p><p>&nbsp;</p><p>첫 가사에서 고백하듯이, 세상은 공허와 허무함으로 가득합니다. 그것이 디폴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 속에 우리를 동정하시고 빛을 비추시사 기어이 생명을 생명 되게 하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찬양은 바로 이런 허무와 인생에서 발견하는 한 줄기 빛이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자들의 고백입니다. 우리 인생만 그렇습니까? 모든 생명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미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이 창조 세계가 바로 그 분안에서 지금 그렇게 운행되고 있습니다.</p><p>&nbsp;</p><p>이 찬양을 함께 부를 때 우리 청년교구가 세상의 공허함에 잠식되지 않았음을, 하나님의 빛으로 인해 살아나고 소리치는 공동체임을 고백하면 좋겠습니다.</p><p>&nbsp;</p><p>비록 아직 이것이 크게 와닿지 않아도 이 찬양의 가사와 멜로디를 고백할 때 하늘과 땅, 시간과 공간을 다시 바라보는 믿음의 외침이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향한 이해와 인식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기대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불러볼까요?</p><p><br/></p><p>If you have breath, praise the God who gave you breath.</p><p>&nbsp;</p><p><strong>- 말씀 한 구절로 마음 준비하기 </strong></p><p>시편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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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05 02:30: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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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title>
         <author>jamjoongyouth</author>
         <link>https://padlet.com/jamjoongyouth/second_day/wish/3535497020</link>
         <description><![CDATA[<p><strong>3. 주와 함께 걸어가네. song by Team Luke Worship</strong></p><p>어둠이 무너지고 텅 빈 맘 멈춰 설 때… 다시 내게 바람 불어오네</p><p>나는 주와 걷겠네… 주 내 맘에 계시니… 날마다 빛으로 걸어가네…</p><p>믿음의 닻 주께 던지고 주께 붙들려 걷겠네</p><p>&nbsp;</p><p>우리가 매주 예배하고 하나님의 사람들과 교제하는 시간 속에 많이 하는 결단 중의 하나는 ‘하나님을 따라가겠다’라는 고백일 겁니다. 이것은 꽤 우리에게 습관적이고 또 오랫동안 굳어져 스스로 진정성과 진실성에서 의구심을 가지게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p><p>&nbsp;</p><p>무엇이 우리를 꽤 습관적이고 관습적인 고백으로 고착화 하는 것일까요? 의외로 신앙인의 삶에 있는 경험 부족입니다. 하나님을 따른다고 했지만, 그 하나님을 따르는 것의 경험과 같은, 하나님을 선택한다고 했지만 그 선택의 경험이 적은 겁니다. 하나님을 위한 결단으로 어떤 결과를 경험했는지 경험하지 못하게 될 때 우리는 점점 무뎌지는 것이죠.</p><p>&nbsp;</p><p>사람은 누구나 안전한 길을 선택합니다. 우리 역시도 길을 예측하여 위험 요소를 피해 결정하길 좋아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한계는 가장 안전하고 완전하게 예측하여 예상한 결과값의 오류가 없는 길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명확하고 분명한 한계입니다. 그러나 안전한 선택과 실수 없는 결정을 해야 하는 길은 지금 우리 앞에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그때 우리는 바로 이 찬양의 첫 가사의 지점에 도착하는 것 같습니다. “어둠이 무너지고 텅 빈 맘 멈춰 설 때...”</p><p>&nbsp;</p><p>어둠이란 여러 시대에 절망과 고요와 고독 그리고 침울과 우울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어떤 것이든 사람에게 어둠은 앞으로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심각하고 불안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의도 했든, 그렇지 않았든 이런 어둠의 지점을 발견하고 도달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길에서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빛은 삶의 어두음을 몰아내고 감춰졌던 길을 드러나게 합니다.</p><p>&nbsp;</p><p>저는 이 찬양을 하는 우리 청년교구가 이런 삶의 어둠에서 빛으로 바꾸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결단으로 함께 부르면 좋겠습니다. 시편 23편의 고백처럼 나의 목자께서 어둠 가운데 있는 지금의 내 마음에 정말 빛으로…음성으로…도움으로…지금도 지팡이를 들고 지금도 찾아오십니다. 특별히 마지막에 있는 찬양의 “걷.겠.네”는 어둠 속에 갇힌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서 어둠을 뚫고 앞장서 가시는 것을 상상하며 의지적으로 자신에게 선포하는 결단이었으면 좋겠습니다.</p><p>&nbsp;</p><p>Say with me! 걷겠네!</p><p>&nbsp;</p><p><strong>- 말씀 한 구절로 마음 준비하기 </strong></p><p>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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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05 02:30: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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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title>
         <author>jamjoongyouth</author>
         <link>https://padlet.com/jamjoongyouth/second_day/wish/3535497273</link>
         <description><![CDATA[<p><strong>4. 내 몸은 구주의 성전이니. song by GIFTED</strong></p><p>내 몸은 구주의 성전이니… 예수의 밝은 빛 비추며 살리라</p><p>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늘 함께 하시니 기뻐하리로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의 영이 함께 하시네…</p><p>&nbsp;</p><p>이번에 소개할 찬양은 현대 사회의 트렌디한 찬양곡으로 손꼽히는 ‘내 몸은 구주의 성전이니’입니다. GIFTED의 구성원들은 찬양하는 청년으로서 매우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가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 이 시대 속에서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찬양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p><p>&nbsp;</p><p>제가 이 찬양을 처음 접했을 때, 청년 교구에서 우리 시대 청년들의 육체와 몸에 대한 고민을 많이 나누던 시기였습니다. 연애 관계에서의 너무 깊은 스킨십, 포르노그라피와 같은 반복적인 음란 노출 등 육체를 가진 우리가 가진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단순한 성적, 음란 문제뿐 아니라 몸의 혹사, 피로, 과로, 노동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제게 아름다운 멜로디와 분위기와는 달리,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을 기반으로 한 가사에서 묵직한 무엇인가를 다시 느끼게 했습니다.</p><p>&nbsp;</p><p>고린도는 그리스의 상업과 무역 중심지로서 각 지역의 문화가 교류하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도덕적 타락과 우상숭배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도 이러한 문화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이에 일부 성도들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종한 삶을 살았고, 사도 바울은 이를 경계했습니다. 물론 보수적인 교단에서는 이를 통해 절대적 순결을 지키는 것으로 강조하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것이 우리의 몸(육체)이기 때문입니다.</p><p>&nbsp;</p><p>하지만 저는 단순히 신체의 성적 사용 여부나 당대의 문화적 영향을 배제해야 하는 논쟁을 넘어, 신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근원적인 메시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식하고, 그 가치를 알아 무너진 것을 회복하고 다시 거룩함으로 사용되는 것에 더 중요한 무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율법적인 측면보다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나의 몸을 사랑하시고, 그 몸에 함께 머무길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서야 몸의 참된 가치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회복이 있습니다. 그렇게 회복된 우리 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사용되는 것입니다.</p><p>&nbsp;</p><p>로마서 12장 1절에서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몸은 예배와 관련되어 있으며, 우리는 하나님께 드릴 만한 예배의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의 가치를 자녀라는 존재로 회복시키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뿐 아니라 육체에도 해당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몸에 성적인 문제, 음란, 호색, 불의, 원망, 시비, 분노와 같은 것들이 깃들어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토로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죄에서 구별된(분별하는) 존재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산제물입니다.</p><p>&nbsp;</p><p>이 찬양의 아름다운 멜로디보다 가사가 예배하는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다가와 구별된 존재로 찬양하게 하는 초청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우리를 성전으로부터 부르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신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내주하시는 몸으로 이 찬양의 가사를 하나하나 올려드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p><p>*구분: 분류. 나눔 구별: 차이, 분간, 식별</p><p>Living sacrifice, Living worship!</p><p><br/></p><p><strong>- 말씀 한 구절로 마음 준비하기 </strong></p><p>이사야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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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05 02:31:0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jamjoongyouth/second_day/wish/3535497273</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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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title>
         <author>jamjoongyouth</author>
         <link>https://padlet.com/jamjoongyouth/second_day/wish/3535497891</link>
         <description><![CDATA[<p><strong> 5.주의 사랑을 주의 선하심을 + 주님만 사랑하리</strong></p><p>주의 사랑을 주의 선하심을 주의 은혜를 생각해 보라</p><p>하늘보다도 더 높으신 아버지의 사랑 크고 놀랍네</p><p><br> 나의 왕 나의 주님 주님을 더욱 알기 원해</p><p>나 주님께 오직 주께 경배하네</p><p>거룩 거룩 존귀 존귀하신 주 사랑합니다</p><p>&nbsp;</p><p>‘주의 사랑을 주의 선하심을’이란 찬양을 하기 전엔 본래 ‘내가 주인 삼은’이라는 찬양을 하려고 했습니다. 찬양을 준비하면서 앞선 찬양의 고백 속에 다시 우리가 주인 삼고 있는 것들, 육체와 영혼 그리고 마음의 거짓 주인들을 되돌아보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렇게 준비한 찬양을 팀원들과 함께 모여 예배하면서 한 가지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은 무엇으로 변하는 가?입니다.</p><p>&nbsp;</p><p>흔히 사람은 혼나고 책망과 지적을 당하면 자기 잘못을 교정합니다. 하지만 자녀를 키우면서 드는 생각인데요. 사람은 단순히 매!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매!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정의가 각자 너무 다르겠지만 고린도전서 13장에서의 사랑, 오래 참음이 시작이라는 것은 그냥 의미없이 써놓은 것이 아닙니다.</p><p>&nbsp;</p><p>사람은 계속해서 헛된 우상을 마음에 들여 번민하는 존재입니다. 내 눈으로 보기에 좋고 나를 만족시키는 것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공허한 우상엔 결국 허무가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허무를 또다시 원하는 존재 아니겠습니까? 무엇으로 이 헛된 주인들과 이별할 수 있는가? 저는 확신하건데 가장 완전한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p><p>&nbsp;</p><p>이런 측면에서 함께 부를 찬양의 가사가 그런 의미를 가지게 합니다. ‘사랑해라! 사랑해야만 해!’가 아니라 ‘주의 사랑을 생각해보라’라고 말합니다. 그 사랑을 생각하기 위해서 그의 선하심, 즉 그의 십자가가로 우리를 구원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해보라는 겁니다. 한번 깊이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p><p>&nbsp;</p><p>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사랑할 때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사랑받을 때에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이 바로 우리를 행복한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존재로 만드시는 것입니다.</p><p>&nbsp;</p><p>뒤 이어 고백하는 주님만 사랑하리는 그런 행복한 존재로서의 부르는 고백이면 좋겠습니다. 오직 나의 왕,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한 전심의 노래가 되길 소망합니다. 제 가정에 두 자녀인 서윤와 서준이가 진심으로 아빠를 부르는 소리에 아빠는 반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소리의 감정에 따라 때론 눈물이 나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 달려오기도 합니다.</p><p>우리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을 감동(to impress)하게 하는 울림(to move &amp; touch)의 예배자 되길 소망합니다.</p><p>&nbsp;</p><p>A man after God's own heart!</p><p>&nbsp;</p><p><strong>- 말씀 한 구절로 마음 준비하기 </strong></p><p>시편 136: 1-4 “1.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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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05 02:31: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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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jamjoongyouth</author>
         <link>https://padlet.com/jamjoongyouth/second_day/wish/3535498102</link>
         <description><![CDATA[<p><strong>6.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 +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strong></p><p>당신은 하나님의 사람 그 아들 주시기까지 사랑한 소중한 존재</p><p>당신의 삶을 통하여 그 사랑 세상이 알리</p><p>&nbsp;</p><p>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삶을 통해 열매를 맺고</p><p>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p><p><br>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란 찬양(축복송)은 청년교구에게 생소한 찬양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찬양의 가사는 분명 삶의 위기와 고난 속에서 일어날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찬양은 단순한 위로나 격려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언이자 부르심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소중한 부르심이 당신의 존재안에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 부르심 위에 세워진 삶을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선언은 변하지 않을 목표가 됩니다.</p><p>&nbsp;</p><p>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단지 한 시점에서 멈춘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각 사람 안에서 자라고 있고,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삶을 통해 열매 맺기를 원하고 있습니다.</p><p>&nbsp;</p><p>그렇기에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보내셨기에 우리가 함께 웃고, 찬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함께 세워갈 수 있습니다. 없었으면.. 너무 속상했겠죠?</p><p>&nbsp;</p><p>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믿기로 결심한 어떤 결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한 알의 씨앗을 우리의 영혼 속에 심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은 이 씨앗을 '하나님 나라'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한 가지 질문으로 요약됩니다. "누가 내 인생의 주인인가?" 즉, 누가 다스리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p><p>&nbsp;</p><p>그러나 이 고백은 때때로 오해되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있으면 당연히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 같고, 놀라운 변화가 즉각적으로 나타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p><p>&nbsp;</p><p>"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정체성에 대한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가만히 보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이 땅에서의 삶은 고난과 고통, 거절과 십자가로 가득했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 나라를 누구보다 가지셨던 분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고난 속에서 심긴 사랑의 씨앗은 제자들의 마음에 뿌리를 내렸고, 결국 로마 제국을 뒤흔들었으며,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는 열매를 보게 됩니다.</p><p>&nbsp;</p><p>하나님께서 사랑하신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는 자라납니다. 조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자라납니다. 그 생명력을 가진 여러분, 함께 찬양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이, 또 다른 사람의 삶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바라며 축복합니다.</p><p>&nbsp;</p><p>bless you all!!</p><p>&nbsp;</p><p><strong>- 말씀 한 구절로 마음 준비하기</strong></p><p>빌립보서 1장 6절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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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05 02:32: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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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jamjoongyouth</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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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8-12 05:30: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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