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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선야곡 by 김광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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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6반 2조</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14-10-14 05:23: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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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선야곡의 작곡가 박시춘/임재민</title>
         <author>user_1412660427</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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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작곡가. 1913년 10월 28일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박순동(朴順東)이다. 밀양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중도에 그만두었고, 이후로도 별다른 음악교육은 받지 않았다. 원래 집안이 부유한 편이었으나,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병 치료에 가산을 다 써 버려 곤궁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악기 연주에 능했고, 열한 살 무렵 가출하여 약 10년 동안 여러 공연단체 소속으로 각지를 떠돌아다니는 유랑생활을 했다. 다양한 악기를 다 잘 다루었으나 특히 기타 연주에 능했고, 이후 음반으로 발표한 작품에도 기타를 사용한 것이 많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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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14-10-14 05:39: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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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휴전의 배경/임재민</title>
         <author>user_1412660427</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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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p>유엔군의 북진에 맞서 1950년 11월 중공군의 개입이 시작되었다. 이에 유엔 총회는 	전투의 확대를 방지하기 위해 12월 14일 ‘정전 3인단(Three-<span>man Group on 	Cease</span>-Fire)’을 설치할 것을 결의하였으며, 캐나다의 L.페르슨, 이란의 N.엔테잠, 	 인도의 B.라우가 임원으로 선출되었다. 정전 3인단의 임무는 한국에서 만족할 만한 	정전의 기초를 결정하고 이를 총회에 권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전&nbsp; 3인단은 	중공대표와의 회담·교섭에 완전히 실패했으며, 이어 1951년 1월 1일에 중공과 	북한은 대규모공세를 시작하였다. 이로써 총회의 정전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중공의 의사가 명백해졌다.&nbsp; </p><p>이에&nbsp;1951년 2월 1일 유엔 총회는 미국의 제안에 따라 ‘평화를 위한 단결’ 결의에 	의거 중공은 한국의 침략자라는 결의를 채택하고, 이어 5월 18일에는 동 결의 	제6항에 의거 부과된 ‘집단적 조치위원회(<span>Collective Measures Committee</span>)’의 	보고에 따라 중공과 북한에 대한 전쟁물자의 공급중지를 가맹국에 권고하는 결의를 	채택하였다. 특히, 6월 23일의 유엔 주재 소련대표 Y.A.말리크의 성명을 통하여 	침략군이 전투행위를 중지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유엔군사령부는 공산군사령부와 직접적인 연락을 취하고, 7월 초에 휴전회담 개시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nbsp; </p><p>1952년 10월의 휴전회담 중지에 이어서 유엔 총회는 1952년 12월 3일의 결의로써 	자유의사에 의한 송환원칙을 재확인하고 전쟁포로문제 해결을 위한 총괄적 계획을 	제안하였으나 공산측은 이를 거부하였다. 공산측이 광범위한 지연책을 쓰고 나서 	 1953년 7월 13일과 14일에 전란 중 최대의 공세를 취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에 비로소 <a h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57177&amp;ref=y" target="_blank"><u>판문점</u></a>에서 유엔군 사령관과 공산군(북한군과 중공군) 	 사령관 간에 휴전이 조인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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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14-10-14 05:46: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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